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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무방>
-- 김유정 --
산골에, 가을은 무르녹았다.
아름드리 노송은 삑삑히 늘어박혔다.
무거운 송낙을 머리에 쓰고 건들건들. 새새이 끼인 도토리, 벚, 돌배,
갈잎 들은 울긋불긋. 잔디를 적시며 맑은 샘이 쫄쫄거린다.
산토끼 두 놈은 한가로이 마주 앉아 그 물을 할짝거리고. 이따금 정신이
나는 듯 가랑잎은 부수수 하고 떨린다. 산산한 산들바람.
귀여운 들국화는 그 품에 새뜩새뜩 넘논다. 흙내와 함께 향긋한 땅김이
코를 찌른다. 요놈은 싸리버섯, 요놈은 잎 썩은 내,
또 요놈은 송이―--- 아니, 아니, 가시넝쿨 속에 숨은 박하풀 냄새로군.
응칠이는 뒷짐을 딱 지고 어정어정 노닌다. 유유히 다리를 옮겨 놓으며
이나무 저나무 사이로 호아든다. 코는 공중에서 벌렸다 오므렸다 연신
이러며 훅, 훅. 구붓한 한 송목 밑에 이르자 그는 발을 멈춘다.
이번에는 지면에 코를 얕이 갖다 대고 한 바퀴 비잉, 나물 끼고 돌았다.
‘아하, 요놈이로군!’
썩은 솔잎에 덮이어 흙이 봉곳이 돋아 올랐다.
그는 손가락을 꾸짖으며 정성스레 살살 헤쳐 본다. 과연 귀여운 송이.
망할 녀석, 조금만 더 나오지, 그걸 뚝 따들고 뒷짐을 지고 다시
어실렁어실렁. 가끔 선하품은 터진다. 그럴 적마다 두 팔을 떡 벌리곤
먼 하늘을 바라보고 늘어지게도 기지개를 늘인다.
때는 한창 바쁠 추수 때이다. 농군치고 송이파적 나올 놈은 생겨나도
않았으리라. 하나 그는 꼭 해야만 할 일이 없었다.
싶으면 하고 말면 말고 그저 그뿐.
그러함에는 먹을 것이 더러 있느냐면 있기는커녕 부쳐 먹을 농토조차
없는, 계집도 없고 자식도 없고. 방은 있대야 남의 곁방이요
잠은 새우잠이요. 하지만 오늘 아침만 해도 한 친구가 찾아와서
벼를 털 텐데 일 좀 와 해달라는 걸 마다하였다. 몇 푼 바람에
그까짓 걸 누가 하느냐보다는 송이가 좋았다.
왜냐면 이 땅 삼천리 강산에 늘여 놓인 곡식이 말짱 뉘 것이람.
먼저 먹는 놈이 임자 아니냐. 먹다 걸릴 만치 그토록 양식을 쌓아 두고
일이 다 무슨 난장맞을 일이람. 걸리지 않도록 먹을 궁리나 할 게지.
하기는 그도 한 세 번이나 걸려서 구메밥으로 사관을 틀었다.
마는 결국 제 밥상 위에 올라앉은 제 몫도 자칫하면 먹다 걸리긴
매일반. 올라갈수록 덤불은 욱었다. 머루며 다래, 칡, 게다 이름 모를
잡초. 이것들이 위아래로 이리저리 서리어 좀체 길을 내지 않는다.
그는 잔디길로만 돌았다. 넓적다리가 벌쭉이는 찢어진 고의자락을
아끼며 조심조심 사려 딛는다. 손에는 칡으로 엮어 든 일곱 개 송이.
늙은 소나무마다 가선 두리번거린다. 사냥개 모양으로 코로 쿡, 쿡,
내를 한다. 이것도 송이 같고 저것도 송이 같고.
어떤 게 알짜 송이인지 분간을 모른다. 토끼똥이 소보록한 데 갈잎이
한 잎 뚝 떨어졌다. 그 잎을 살며시 들어 보니 송이 대구리가 불쑥
올라왔다. 매우 큰 송이인 듯. 그는 반색하여 그 앞에 무릎을 털썩
꿇었다. 그리고 그 위에 두 손을 내들며 열 손가락을 다 펴들었다.
가만가만히 살살 흙을 헤쳐 본다. 주먹만한 송이가 나타난다.
얘 이놈 크구나. 손바닥 위에 따 올려놓고는 한참 들여다보며
싱글벙글한다. 우중충한 구석으로 바위는 벽같이 깎아질렀다.
그 중턱을 얽어 나간 칡잎에서는 물이 쪼록쪼록 흘러내린다.
인삼이 썩어 내리는 약수라 한다. 그는 돌 위에 걸터앉으며 또 한번
하품을 하였다. 간밤 쓸데없는 노름에 밤을 팬 것이 몹시 나른하였다.
따사로운 햇발이 숲을 새어든다. 다람쥐가 솔방울을 떨어치며,
어여쁜 할미새는 앞에서 알씬거리고. 동리에서는 타작을 하느라고
와글거린다. 흥겨워 외치는 목성, 그걸 억누르고 공중에 응, 응,
진동하는 벼 터는 기계 소리. 맞은쪽 산속에서 어린 목동들의 노래는
처량히 울려 온다. 산속에 묻힌 마을의 전경을 멀리 바라보다가 그는
눈을 찌긋하며 다시 한번 하품을 뽑는다. 이 웬놈의 하품일까.
생각해 보니 어젯저녁부터 여태껏 창자가 곯렸던 것이다.
불현듯 송이꾸러미에서 그중 크고 먹음직한 놈을 하나 뽑아 들었다.
응칠이는 그 송이를 물에 써억써억 부벼서는 떡 벌어진 대구리부터
걸쌍스레 덥석 물어 떼었다. 그리고 넓죽한 입이 움질움질 씹는다.
혀가 녹을 듯이 만질만질하고 향기로운 그 맛. 이렇게 훌륭한 놈을
입맛만 다시고 못 먹다니. 문득 옛 추억이 혀끝에 뱅뱅 돈다.
이놈을 맛보는 것도 참 근자의 일이다.
감불생심이지 어디 냄새나 똑똑히 맡아 보리.
산속으로 쏘다니다 백판 못 따기도 하려니와 더러 딴다는 놈은 행여
상할까 봐 손도 못 대게 하고 집에 내려다 묻고 묻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행히 한 꾸러미 차면 금시로 장에 가져다 판다.
이틀 사흘씩 공들인 거로되 잘 하면 사십 전, 못 받으면 이십오 전.
저녁거리를 기다리는 아내를 생각하며 좁쌀 서너 되를 손에 사들고
어두운 고개를 터덜터덜 올라오는 건 좋으나 이 신세를 뭐에 쓰나
하고 보면 을프냥궂기가 짝이 없겠고―---
이까짓 걸 못 먹어 그래 홧김에 또 한 놈을 뽑아 들고 이번엔 물에 흙도
씻을 새 없이 그대로 텁석거린다. 그러나 다른 놈들도 별 수 없으렷다.
이 산골이 송이의 본고향이로되
아마 일년에 한 개조차 먹는 놈이 드물리라.
‘흠, 썩어진 두상들!’
그는 폭넓은 얼굴을 일그리며 남이나 들으란 듯이 이렇게 비웃는다.
썩었다 함은 데생겼다 모멸하는 그의 언투였다.
먹다 나머지 송이 꽁댕이를 바로 자랑스러이 입에다 치뜨리곤
트림을 섞어 가며 우물거린다.
송이 두 개가 들어가니 이제는 더 먹을 재미가 없다.
뭔가 좀 든든한 걸 먹었으면 좋겠는데. 떡, 국수, 말고기, 개고기,
돼지고기 그렇지 않으면 쇠고기냐. 아따 궁한 판이니 아무 거나 있으면
속중으로 여러 가질 먹으며 시름없이 앉았다.
그는 눈꼴이 슬그러미 돌아간다. 웬놈의 닭인지 암탉 한 마리가 조 아래
무덤 앞에서 뺑뺑 맨다. 골골거리며 감도는 걸 보매
아마 알자리를 보는 맥이라. 그는 돌에서 궁뎅이를 들었다.
낮은 하늘로 외면하여 못 본 척하고 닭을 향하여
저켠으로 널찍이 돌아 내린다. 그러나 무덤까지 왔을 때 몸을 돌리며,
“후, 후, 후, 이 자식이 어딜 가 후―”
두 팔을 벌리고 쫓아간다.
산꼭대기로 치모니 닭은 허둥지둥 갈 길을 모른다.
요리 매낀 조리 매낀, 꼬꼬댁거리며 속만 태울 뿐.
그러나 바위틈에 끼어 왁살스러운 그 주먹에 모가지가 둘로 나기에는
불과 몇 분 못 걸렸다.
그는 으슥한 숲속으로 찾아들었다. 닭의 껍질을 홀랑 까고서
두 다리를 들고 찢으니 배창이 옆구리로 꿰진다.
그놈은 긁어 뽑아서 껍질과 한데 뭉치어 흙에 묻어 버린다.
고기가 생기고 보니 연하여 나느니 막걸리 생각.
이걸 부글부글 끓여 놓고 한 사발 떡 겯으면 똑 좋을 텐데 제―기.
응칠이의 고기는 어디 떨어졌는지 술집까지 못 가는 고기였다. 아무려나
고기 먹고 술 먹고 거꾸론 못 먹느냐. 그는 닭의 가슴패기를
입에 들여대고 쭉 찢어 가며 먹기 시작한다. 쫄깃쫄깃한 놈이 제법 맛이
들었다. 가슴을 먹고 넓적다리, 볼기짝을 먹고 거반 반쯤을 다 해내고
나니 어쩐지 맛이 좀 적었다. 결국 음식이란 양념을 해야 하는군.
수풀 속으로 그냥 내던지고 그는 설렁설렁 내려온다.
솔숲을 빠져 화전께로 내리려 할 때 별안간 등뒤에서,
“여보게, 저 응칠이 아닌가.”
고개를 돌려 보니 대장간 하는 성팔이가 작달막한 체수에 들갑작거리며
고개를 넘어온다.
그런데 무슨 긴한 일이나 있는지 부리나케 달려들더니,
“자네 응고개 논의 벼 없어진 거 아나?”
응칠이는 그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 바쁜 때 농군의 몸으로
응고개까지 앨 써 갈 놈도 없으려니와 또한 하필 절 보고 벼의 없어짐을
말하는 것이 여간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잡담 제하고 응칠이는,
“자넨 어째서 응고개까지 갔던가?”
하고 대담스레 그 눈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성팔이는 조금도 겁먹은 기색 없이,
“아 어쩌다 지났지 뭘 그래.”
하며 도리어 얼레발을 치고 덤비는 수작이다. 고얀 놈, 응칠이는 입때
다녀야 동무를 팔아 배를 채우고 그런 비열한 짓은 안 한다.
낯을 붉히자 눈에 불이 보이며,
“어쩌다 지냈다?”
응칠이가 이 동리에 들어온 것은 어느덧 달이 넘었다.
인제는 물릴 때도 되었고, 좀 떠보고자 생각은 간절하나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망설거리는 중이었다.
그는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았다.
산으로 들로 해변으로 발부리 놓이는 곳이 즉 가는 곳이다.
그러나 저물면은 그대로 쓰러진다.
남의 방앗간이고 헛간이고 혹은 강가, 시새장. 물론 수가 좋으면
괴때기 위에서 밤을 편히 잘 적도 있었다. 이렇게 하여 강원도 어수룩한
산골로 이리 넘고 저리 넘고 못 간 데 별로 없이 유람 겸 편답하였다.
그는 한구석에 머물러 있음은 가슴이 답답할 만치 되우 괴로웠다.
그렇다고 응칠이가 본시 역마 직성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그도 오 년 전에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고 아들이 있었고 집도 있었고,
그때야 어딜 하루라도 집을 떨어져 보았으랴.
밤마다 아내와 마주 앉으면 어찌 하면 이 살림이 좀 늘어 볼까
불어 볼까, 애간장을 태우며 갖은 궁리를 되하고 되하였다마는,
별 뾰족한 수는 없었다. 농사는 열심으로 하는 것 같은데
알고 보면 남는 건 겨우 남의 빚뿐. 이러다가는 결말엔 봉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루는 밤이 깊어서 코를 골며 자는 아내를 깨웠다.
밖에 나아가 우리의 세간이 몇 개나 되는지 세어 보라 하였다.
그리고 저는 벼루에 먹을 갈아 찍어 들었다. 벽에 바른 신문지는 누렇게
끄을렀다. 그 위에다 아내가 불러 주는 물목대로 일일이 내려 적었다.
독이 세 개, 호미가 둘, 낫이 하나로부터 밥사발, 젓가락,
짚이 석 단까지 그 다음에는 제가 빚을 얻어 온 데, 그 사람들의 이름을
쪽 적어 놓았다. 금액은 제각기 그 아래다 달아 놓고,
그 옆으론 조금 사이를 떼어 역시 조선문으로 나의 소유는 이것밖에
없노라. 나는 오십사 원을 갚을 길이 없으매 죄진 몸이라 도망하니
그대들은 아예 싸울 게 아니겠고 서로 의논하여 억울치 않도록 분배하여
가기 바라노라 하는 의미의 성명서를 벽에 남기자
안으로 문들을 걸어 닫고 울타리 밑구멍으로 세 식구가 빠져나왔다.
이것이 응칠이가 팔자를 고치던 첫날이었다.
그들 부부는 돌아다니며 밥을 빌었다. 아내가 빌어다 남편에게,
남편이 빌어다 아내에게. 그러자 어느 날 밤 아내의 얼굴이
썩 슬픈 빛이었다. 눈보라는 살을 에인다. 다 쓰러져 가는 물방앗간
한구석에서 섬을 두르고 어린애에게 젖을 먹이며 떨고 있더니 여보게유
하고 고개를 돌린다. 왜 하니까 그 말이,
이러다간 우리도 고생일 뿐더러 첫째 어린애를 잡겠수,
그러니 서로 갈립시다, 하는 것이다. 하긴 그럴 법한 말이다.
쥐뿔도 없는 것들이 붙어다닌댔자 별수는 없다. 그보담은 서로 갈리어
제 맘대로 빌어먹는 것이 오히려 가뜬하리라. 그는 선뜻 응낙하였다.
아내의 말대로 개가를 해가서 젖먹이나 잘 키우고 몸 성히 있으면
혹 연분이 닿아 다시 만날지도 모르니깐, 마지막으로 아내와 같이
땅바닥에서 나란히 누워 하룻밤을 새고 나서 날이 훤해지자
그는 툭툭 털고 일어섰다.
매팔자란 응칠이의 팔자이겠다.
그는 버젓이 게트림으로 길을 걸어야 걸릴 것은 하나도 없다.
논 맬 걱정도, 호포 바칠 걱정도, 빚 갚을 걱정, 아내 걱정,
또는 굶을 걱정도. 호동그란히 털고 나서니 팔자 중에는 아주 상팔자다.
먹고만 싶으면 도야지구, 닭이구, 개구, 언제나 옆을 떠날 새 없겠지,
그리고 돈, 돈도.
그러나 주재소는 그를 노려보았다.
툭하면 오라, 가라, 하는데 학질이었다. 어느 동리고 가 있다가 불행히
일만 나면 누구보다도 그부터 붙들려 간다. 왜냐면
그는 전과 사범이었다. 처음에는 도박으로, 다음엔 절도로,
또 고 담에는 절도로, 절도로.
그러나 이번 멀리 아우를 방문함은 생활이 궁하여 근대러 왔다거나 혹은
일을 해보러 온 것은 결코 아니었다. 혈족이라곤 단 하나의 동생이요,
또한 오래 못 본지라 때없이 그리웠다.
그래 모처럼 찾아온 것이 뜻밖에 덜컥 일을 만났다.
지금까지 논의 벼가 서 있다면
그것은 성한 사람의 짓이라 안 할 것이다.
응오는 응고개 논의 벼를 여태 베지 않았다. 물론 응오가 베어야
할 것이다. 누가 듣던지 그 형 응칠이를 먼저 의심하리라. 그럼 여기에
따르는 모든 책임을 응칠이가 혼자 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응오는 진실한 농군이었다. 나이 서른하나로 무던히 철났다 하고
동리에서 쳐주는 모범 청년이었다. 그런데 벼를 베지 않는다.
남은 다들 거둬 들였고 털기까지 하련만 그는 벨 생각조차 않는 것이다.
지주라든 혹은 그에게 장리를 놓은 김참판이든
뻔찔 찾아와 벼를 베라 독촉하였다.
“얼른 털어서 낼 건 내야지.”
하면 그 대답은,
“계집이 죽게 됐는데 벼는 다 뭐지유―---”
하고 한결같이 내뱉는 소리뿐이었다.
하기는 응오의 아내가 지금 기지 사경이매 틈은 없었다 하더라도
돈이 놀아서 약을 못 쓰는 이 판이니 진시 벼라도 털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왜 안 털었던가.
그것은 작년 응오와 같이 지주 문전에서 타작을 하던 친구라면 묻지는
않으리라. 한 해 동안 애를 졸이며 홑자식 모양으로 알뜰히 가꾸던
그 벼를 거둬 들임은 기쁨에 틀림없었다. 꼭두새벽부터 엣, 엣, 하며
괴로움을 모른다. 그러나 캄캄하도록 털고 나서
지주에게 도지를 제하고, 장리쌀을 제하고, 색초를 제하고 보니
남은 것은 등줄기를 흐르는 식은땀이 있을 따름. 그것은 슬프다
하기보다 끝없이 부끄러웠다. 같이 털어 주던 동무들이 뻔히 보고
섰는데 빈 지게로 덜렁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건 진정 열적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참다 참다 못해 응오는 눈에 눈물이 흘렀던 것이다.
가뜩한데 엎치고 덮치더라고 올해는 고나마 흉작이었다.
샛바람과 비에 벼는 깨깨 비틀렸다. 이놈을 가을하다간 먹을 게 남지
않음은 물론이요 빚도 다 못 가릴 모양. 에라, 빌어먹을 거 너들끼리
캐다 먹든 말든 멋대로 하여라, 하고 내던져 두지 않을 수 없다.
벼를 거뒀다고 말만 나면 빚쟁이들은 우― 몰려들 거니깐.
응칠이의 죄목은 여기에서도 또렷이 드러난다. 국으로 가만만 있었더면
좋은 걸 이 사품에 뛰어들어 지주의 뺨을 제법 갈긴 것이 응칠이었다.
처음에야 그럴 작정이 아니었다. 그는 여러 곳 물을 마신 이만치
어지간히 속이 틘 건달이었다. 지주를 만나 까놓고 썩 좋은 소리로
의논하였다. 올 농사는 반실이니 도지도 좀 감해 주는 게 어떠냐고.
그러나 지주는 암말 없이 고개를 모로 흔들었다.
정 이러면 하여튼 일년 품은 빼야 할 테니 나는 그 논에다 불을
지르겠수, 하여도 잠자코 응치 않는다. 지주로 보면 자기로도 그 벼는
넉넉히 거둬 들일 수는 있다마는, 한번 버릇을 잘못 해놓으면
어느 작인까지 행실을 버릴까 염려하여 겉으로 독촉만 하고 있는
터이었다. 실상이야 고까짓 벼쯤 있어도 고만 없어도 고만,
그 심보를 눈치채고 응칠이는 화를 벌컥 낸 것만은 좋으나 저도 모르게
대뜸 주먹뺨이 들어갔던 것이다.
이렇게 문제 중에 있는 벼인데 귀신의 놀음 같은 변괴가 생겼다.
다시 말하면 벼가 없어졌다. 그것도 병들어 쓰러진 쭉정이는 제쳐 놓고
무얼로 그랬는지 알장 이삭만 따갔다. 그 면적으로 어림하면 아마
못 돼도 한 댓 말 가량은 될는지!
응칠이가 아침 일찍이 그 논께로 노닐자 이걸 발견하고 기가 막혔다.
누굴 성가시게 굴려고 그러는지. 산속에 파묻힌 논이라 아직은
본 사람이 없는 모양 같다. 하나 동리에 이 소문이 퍼지기만 하면
저는 어느 모로든 혐의를 받아 폐는 좋이 입어야 될 것이다.
응칠이는 송이도 송이려니와 실상은 궁리에 바빴다.
속중으로 지목 갈 만한 놈을 여럿 들어 보았으나 이렇다 찍을 만한
증거가 없다. 어쩌면 재성이나 성팔이 이 둘 중의 짓이리라,
하고 결국 이렇게 생각던 것도 응칠이가 아니면 안 될 것이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응칠이는 저의 짐작이 들어맞음을 알고 당장에 일을 낼 듯이 성팔이의
눈을 들이 노렸다.
성팔이는 신이 나서 떠들다가 그 눈총에 어이가 질려서
고만 벙벙하였다. 그리고 얼굴이 핼쑥하여 마주 대고 쳐다보더니,
“그래, 자네 왜 그케 노하나.
지내다 보니깐 그렇길래 일테면 자네보고 얘기지 뭐.”
하고 뒷갈망을 못 하여 우물쭈물한다.
“노하긴 누가 노해!”
응칠이는 뻐팅겼던 몸에 좀더 힘을 올리며,
“응고개를 어째 갔더냐 말이지?”
“놀러 갔다 오는 길인데 우연히…….”
“놀러 갔다, 거기가 노는 덴가?”
“글쎄, 그렇게까지 물을 게 뭔가.
난 응고개 아니라 서울은 못 갈 사람인가.”
하다가 성팔이는 속이 타는지 코로 후응 하고 날숨을 길게 뽑는다.
이렇게 나오는 데는 더 물을 필요가 없었다. 성팔이란 놈도 여간내기가
아니요 구장네 솥인가 뭔가 떼다 먹고 한 번 다녀온 놈이었다.
많이 사귀지는 못했으나 동리 평판이 그놈과 같이 다니다가는 엉뚱한 일
만난다 한다. 이번에 응칠이 저 역시 그 섭수에 걸렸음을 알고,
“그야 응고개라고 못 갈 리 없을 테…….”
하고 한 번 엇먹다,(사리에 맞지 않는 말과 행동으로 비꼬다.)
그러나 자네두 알다시피 거 어디야, 거기 바로 길이 있다든지 사람 사는
동리라면 혹 모른다 하지마는 성한 사람이야 응고개에 뭘 먹으러 가나,
그렇지 자네야 심심하니까, 하고 앞을 꽉 눌러 등을 떠본다.
여기에는 대답 없고 성팔이는 덤덤히 쳐다만 본다. 무엇을 생각했는가
한참 있더니 호주머니에서 단풍갑을 꺼낸다. 우선 제가 한 개를 물고
또 하나를 뽑아 내대며,
“궐련 하나 피우게.”
매우 듬직한 낯을 해보인다.
이놈이 이에 밝기가 몹시 밝은 성팔이다. 턱없이 궐련 하나라도 선심을
쓸 궐자가 아니리라, 생각은 하였으나 그렇다고 예까지 부르대는 건
도리어 저의 처지가 불리하다.
그것은 짜장 그 손에 넘는 짓이니,
“아 웬 궐련은 이래.”
하고 슬쩍 눙치며,
“성냥 있겠나?”
일부러 불까지 거 대게 하였다.
응칠이에게 액을 떠넘기어 이용하려는 고 야심을 생각하면 곧 달려들어
다리를 꺾어 놔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마당에 떠들어 대고 보면
저는 드러누워 침뱉기. 결국 도적은 뒤로 잡지 앞에서 어르는 법이
아니다. 동리에 소문이 퍼질 것만 두려워하며,
“여보게, 자네가 했건 내가 했건 간.”
하고 과연 정다이 그 등을 툭 치고 나서,
“우리 둘만 알고 동리에 말을 내지 말게.”
하다가 성팔이가 이 말에 되우 놀라며 눈을 말똥말똥 뜨니,
“그까진 벼쯤 먹으면 어떤가!”
하고 껄껄 웃어 버린다.
성팔이는 한 굽 접히어 말문이 메였는지 얼떨하여 입맛만 다신다.
“아예 말은 내지 말게, 응 알지.”
하고 다시 다질 때에야 겨우 주저주저 입을 열어,
“내야 무슨 말을 내겠나.”
하고 조금 사이를 떼어 또,
“내야 무슨 말을…… 그건 염려 말게.”
하더니 비실비실 몸을 돌리어 저 갈 길을 내걷는다.
그러나 저 앞 고개까지 가는 동안에 두 번이나 돌아다보며
이쪽을 살피고 살피고 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응칠이는 그 꼴을 이윽히 바라보고 입 안으로 죽일 놈, 하였다. 아무리
도적이라도 같은 동료에게 제 죄를 넘겨씌우려 함은
도저히 의리가 아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응오가 더 딱하지 않은가. 기껏 힘들여 지어 놓았다
남 좋은 일 한 것을 안다면 눈이 뒤집힐 일이겠다.
이래서야 어디 이웃을 믿어 보겠는가.
확적히 증거만 있어 이놈을 잡으면 대번에 요절을 내리라 결심하고
응칠이는 침을 탁 뱉어 던지고 산을 내려온다.
그런데 그놈의 행티로 가늠 보면 응칠이 저만치는 때가 못 벗은
도적이다. 어느 미친놈이 논두렁에까지 가새를 들고 오는가.
격식도 모르는 풋둥이가 그러려면 바로 조 낟가리나 수수 낟가리 말이지
그 속에 들어앉아 가위로 속닥거려야 들킬 리도 없고 일도 편하고
두 포대고 세 포대고 마음껏 딸 수도 있다.
그러나 틈 보고 집으로 나르면 그만이지만 누가 논의 벼를 다……
그렇게도 벼에 걸신이 들었다면 바로 남의 집 머슴으로 들어가
한 달포 동안 주인 앞에 얼렁거리며 신용을 얻어 오다가 주는 옷이나
얻어입고 다들 잠들거든 볏섬이나 두둑이 짊어메고 덜렁거리면
그뿐이다. 이건 맥도 모르는 게 남도 못살게 굴려고
에―이 망할자식두…… 그는 분노에 살이 다 부들부들 떨리는 듯싶었다.
그러나 이런 좀도적이란 봉이 나기 전에는 바짝 물고 덤비는 법이었다.
오늘 밤에는 요놈을 지켰다 꼭 붙들어 가지고 정강이를 분질러 노리라.
밥을 먹고는 태연히 막걸리 한 사발을 껄떡껄떡 들이켜자,
“커! 가을이 되니깐 맛이 행결 낫군!”
그는 주먹으로 입가를 쓱쓱 훔친 다음 송이 꾸럼에서 세 개를 뽑는다.
그리고 그걸 갈퀴같이 마른 주막 할머니 손에 내어 주며,
“엣수, 송이나 잡숫게유.”
하고 술값을 치렀으나,
“아이, 송이두 고놈 참.”
간사를 피우는 것이 겉으로는 반기는 척하면서도 좀 시쁜 모양이다.
제딴은 한 개에 삼 전씩 치더라도 구 전밖에 안 되니깐.
응칠이는 슬며시 화가 나서 그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움푹 들어간 볼때기에 저건 또 왜 저리 멋없이 불거졌는지 툭 나온
광대뼈하고 치마 아래로 남실거리는 발가락은 자칫 잘못 보면
황새발목이니 이건 언제 잡아 가려고 남겨 두는 거야―---보면 볼수록
하나 이쁜 데가 없다. 한두 번 먹은 것도 아니요 언젠가 울타리께 풀을
베어 주고 술사발이나 얻어먹은 적도 있었다. 고렇게 야멸치게
따질 건 뭔가. 그는 눈살을 흘깃 맞히고는 하나를 더 꺼내어,
“옜수, 또 하나 잡숫게유!”
내던져 주곤 댓돌에 가래침을 탁 뱉었다.
그제야 식성이 좀 풀리는지 그 가축으로 웃으며,
“아이구 이거 자꾸 주면 어떻게 해.”
“어떡하긴 자꾸 살찌게유.”
하고 한마디 툭 쏘고 일어서다가 무엇을 생각함인지
다시 툇마루에 주저앉는다.
“그런데 참 요즘 성팔이 보셨수?”
“아―니, 당최 볼 수가 없더구먼.”
“술도 안 먹으러 와유?”
“안 와!”
하고는 입 속으로 뭐라고 중얼거리며 의아한 낯을 들더니,
“왜, 또 뭐 일이……?”
“아니유, 본 지가 하 오래니깐!”
응칠이는 말끝을 얼버무리고 고개를 돌리어 한데를 바라본다.
벌써 점심때가 되었는지 닭들이 요란히 울어 댄다. 논둑의 미루나무는
부 하고 또 부 하고 잎이 날리며 팔랑팔랑 하늘로 올라간다.
“성팔이가 이 마을에서 얼마나 살았지요?”
“글쎄, 재작년 가을이지 아마.”
하고 장죽을 빡빡 빨더니,
“근대 또 떠난대든가, 홍천인가 어디 즈 성님한테로 간대.”
하고 그게 옳지, 여기서 뭘 하느냐, 대장간이라구 일이나 많으면
모르거니와 밤낮 파리만 날리는데 그보다는 즈 형이 크게 농사를
짓는다니 그 뒤나 거들어 주고 국으로 얻어먹는 게 신상에 편하겠지.
그래 불일간 처자식을 데리고 아마 떠나리라고 하고,
“농군은 그저 농사를 지야 돼.”
“낼 술 먹으러 또 오지유.”
간단히 인사만 하고 응칠이는 다시 일어났다.
주막을 나서니 옷깃을 스치는 개운한 바람이다. 밭 둔덕의 대추는 척척
늘어진다. 멀지 않아 겨울은 또 오렷다. 그는 응오의 집을 바라보며
그간 죽었는지 궁금하였다.
응오는 봉당에 걸터앉았다. 그 앞 화로에는 약이 바글바글 끓는다.
그는 정신없이 들여다보고 앉았다.
우중충한 방에서는 아내의 가쁜 숨소리가 들린다.
색, 색 하다가 아이구, 하고는 까무러지게 콜록거린다. 가래가 치밀어
몹시 괴로운 모양. 뽑아 줄 사이가 없이 풀들은 뜰에 엉켰다.
흙이 드러난 지붕에서 망초가 휘어청휘어청 바람은 가끔 찾아와
싸리문을 흔든다. 그럴 적마다 문은 을씨년스럽게 삐―꺽 삐―꺽.
이웃의 발발이는 부엌에서 한창 바쁘게 달그락거린다. 마는,
아침에 아내에게 먹이고 남은 조죽밖에야. 아니 그것도 참 남편이 마저
긁었으니 사발에 붙은 찌꺼기뿐이리라.
“거, 다 졸았나 부다.”
응칠이는 약이란 다 졸면 못쓰니 고만 짜 먹여라 하였다.
약이라야 어젯저녁 울 뒤에서 옭아들인 구렁이지만. 그러나
응오는 듣고도 흘렸는지 혹은 못 들었는지 잠자코 고개도 안 든다.
“옜다, 송이 맛이나 봐라.”
하고 형이 손을 내밀 제야 겨우 시선을 들었으나 술이 거나한 그 얼굴을
거북살스레 훑어본다. 그리고 송이를 고맙지 않게 받아 방에 치뜨리고는
“이거나 먹어.”
하다가,
“뭐?”
소리를 크게 질렀다. 그래도 잘 들리지 않으므로,
“뭐야 뭐야, 좀 똑똑히 하라니깐?”
하고 골피를 찌푸린다. 그러나 아내는 손짓만으로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다. 음성으로 치느니보다 종이 비비는 소리랄지,
그걸 듣기에는 지척도 멀었다.
가만히 보다 응칠이는 제가 다 불안하여,
“뒤보겠다는 게 아니냐?”
“그럼 그렇다 말이 있어야지.”
남편은 이내 짜증을 내며 몸을 일으킨다. 병약한 아내의 음성이
날로 변하여 감을 시방 안 것도 아니련만―---
그는 방바닥에 늘어져 꼬치꼬치 마른 반 송장을 조심히 일으키어
등에 업었다.
울 밖 밭머리에 잿간은 놓였다. 머리가 눌릴 만치 납작한 굴 속이다.
게다 거미줄은 예제 없이 엉키었다. 부?돌 위에 내려놓으니 아내는 벽을
의지하여 웅크리고 앉는다.
그리고 남편은 눈을 멀뚱멀뚱 뜨고 지키고 섰는 것이다.
이 꼴들을 멀거니 바라보다 응칠이는 마뜩지 않게 코를 횡 풀며
입맛을 다시었다. 응오의 짓이 어리석고 울화가 터져서이다.
요즘 응오가 형에게 잘 말도 않고 왜 어딱비딱하는지 그 속은
응칠이도 모르는 바 아닐 것이다.
응오가 이 아내를 찾아올 때 꼭 삼 년간을 머슴을 살았다.
그처럼 먹고 싶던 술 한 잔 못 먹었고, 그처럼 침을 삼키던 그 개고기
한 메 물론 못 샀다. 그리고 사경을 받는 대로 꼭꼭 장리를 놓았으니
후일 선채로 썼던 것이다. 이렇게까지 근사를 모아 얻은 계집이련만
단 두 해가 못 가서 이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병이 무슨 병인지 도시 모른다. 의원에게 한 번이라도 변변히
봬본 적이 없다. 혹 안다는 사람의 말인즉 뇌점이니 어렵다 하였다.
돈만 있으면야 뇌점이고 염병이고 알 바가 못 될 거로되 사날 전
거리로 쫓아 나오며,
“성님!”
하고 팔을 챌 적에는 응오도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었다.
“왜?”
응칠이가 몸을 돌리니 허둥지둥 그 말이 이제는 별도리가 없다.
있다면 꼭 한 가지가 남았으니 그것은 엊그저께 산신을 부리는 노인이
이 마을에 오지 않았는가. 그 노인이 응오를 특히 동정하여 십오 원만
들이어 산치성을 올리면 씻은 듯이 낫게 해주리라는데.
“성님은 언제나 돈 만들 수 있지유?”
“거, 안 된다. 치성 들여 날 병이 안 낫겠니.”
하여 여전히 딱 떼고 그러게 내 뭐래든, 애전에 계집 다 내버리고
날 따라 나서랬지, 하고,
“그래 농군의 살림이란 제 목매기라지!”
그러나 아우가 암말 없이 몸을 홱 돌리어 집으로 들어갈 제 응칠이는
속으로 또 괜한 소리를 했구나, 하였다.
응오는 도로 아내를 업어다 방에 뉘었다. 약은 다 졸았다.
불이 삭기 전 짜야 할 것이다. 식기를 기다려 약사발을 입에 대어 주니
아내는 군말 없이 그 구렁이 물을 껄덕껄덕 들이마신다.
응칠이는 마당에 우두커니 앉았다.
사람의 목숨이란 과연 중하군 하였다. 그러나 계집이라는 저 물건이
저렇게 떼기 어렵도록 중할까, 하니 암만해도 알 수 없고.
“너 참 요 건너 성팔이 알지?”
“……”
“너하고 친하냐?”
“……”
“성이 뭐래는데 거 대답 좀 하렴.”
하고 소리를 빽 질러도 아우는 대답은 말고 고개도 안 든다.
그러나 응칠이는 하늘을 쳐다보고 트림만 끄윽 하고 말았다.
술기가 코를 꽉꽉 찔러야 할 터인데 이건 풋김치 냄새만 코밑에서
뱅뱅 돈다. 공짜 김치만 퍼먹을 게 아니라 한 잔 더 했더면 좋았을걸.
그는 일어서서 대를 허리에 꽂고 궁둥이의 흙을 털었다.
벼 도둑맞은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아서라 가뜩이나 울상이 속이
쓰릴 것이다.
그보다는 이놈을 잡아 놓고 낭중 희자를 뽑는 것이 점잔하겠지.
그는 문 밖으로 나와 버렸다.
답답한 아우의 살림을 보니 역 답답하던 제 살림이 연상되고 가슴이
두루 답답하였다. 이런 때에는 무가 십상이다.
사실 하느님이 무를 마련해 낸 것은 참으로 은혜로운 일이다.
맥맥할 때 한 개를 씹고 보면 꿀꺽 하고, 쿡 치는 그 맛이 좋고,
남의 무밭에 들어가 하나를 쑥 뽑으니 가락 무. 이―키,
이거 오늘 운수 대통이로군. 내던지고 그 다음 놈을 뽑아 들고 개울로
내려온다. 물에 쓱쓰윽 닦아서는 꽁지는 이로 베어 던지고
어썩 깨물어 붙인다.
개울 둔덕에 포플러는 호젓하게도 매출히 컸다.
자갈돌은 그 밑에 옹기종기 모였다. 가생이로 잔디가 소보록하다.
응칠이는 나가자빠져 마을을 건너다보며 눈을 멀뚱멀뚱 굴리고 누웠다.
산이 뺑뺑 둘리어 숨이 콕 막힐 듯한 그 마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띄어라 노다 가세
증기차는 가자고 왼고동 트는데
정든 님 품 안고 낙누낙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띄어라 노다 가세
낼 갈지 모래 갈지 내 모르는데
옥씨기 강낭이는 심어 뭐 하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띄어라…….
그는 콧노래로 이렇게 흥얼거리다 갑작스레 강릉이 그리웠다.
펄펄 뛰는 생선이 좋고, 아침 햇살이 빗기어 힘차게 출렁거리는
그 물결이 좋고. 이까짓 둠 구석에서 쪼들리는 데 대다니. 그래도
즈이딴엔 무어 농사 좀 지었답시고 악을 복복 쓰며 잘도 떠들어 댄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어디인가 형언치 못할 쓸쓸함이 떠돌지 않는 것도
아니다. 삼십여 년 전 술을 빚어 놓고 쇠를 울리고 흥에 질리어
어깨춤을 덩실거리고 이러던 가을과는 저 딴쪽이다. 가을이 오면
기쁨에 넘쳐야 될 시골이 점점 살기만 띠어 옴은 웬일인고.
이렇게 보면 재작년 가을 어느 밤 산중에서 낫으로 사람을 찍어 죽인
강도가 문득 머리에 떠오른다. 장을 보고 오는 농군을 농군이 죽였다.
그것도 많이나 되었으면 모르되 빼앗은 것이 한껏 동전 네 닢에
수수 일곱 되, 게다가 흔적이 탄로날까 하여 낫으로 그 얼굴의 껍질을
벗기고 조깃대강이 이기듯 끔찍하게 남기고 조긴 망나니다.
흉악한 자식. 그 알량한 돈 사 전에, 나 같으면 가여워 덧돈을 주고라도
왔으리라. 이번 놈은 그 따위 깍다귀나 아닐는지 할 때 찬 김과 아울러
치미는 소름에 머리끝이 다 쭈뼛하였다.
그간 아우의 농사를 대신 돌봐 주기에 이럭저럭 날이 늦었다.
오늘 밤에는 이놈을 다리를 꺾어 놓고 내일쯤은 봐서 설렁설렁
뜨는 것이 옳은 일이겠다. 이 산을 넘을까 저 산을 넘을까 주저거리며
속으로 점을 치다가 슬그머니 코를 골아 올린다.
밤이 내리니 만물은 고요히 잠이 든다. 검푸른 하늘에 산봉우리는
울퉁불퉁 물결을 치고 흐릿한 눈으로 별은 떴다. 그러다 구름떼가
몰려닥치면 깜깜한 절벽이 된다. 또한 마을 한복판에는 거친 바람이
오락가락 쓸쓸히 궁글고 이따금 코를 찌르는 후련한 산사 내음새.
북쪽 산밑 미루나무에 싸여 주막이 있는데 유달리 불이 반짝인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노랫소리는 나직나직 한산히 흘러온다.
아마 벼를 뒷심대고 외상이리라.
응칠이는 잠자코 벌떡 일어나 바깥으로 나섰다.
그리고 다 나와서야 그 집 친구에게 눈치를 안 채이도록,
“내 잠깐 다녀옴세!”
“어딜 가나?”
친구는 웬 영문을 몰라서 뻔히 쳐다보다 밤이 이렇게 늦었으니
나갈 생각 말고 어여 이리 들어와 자라 하였다. 기껏 둘이 앉아서
개코쥐코 떠들다가 갑자기 일어서니까 꽤 이상한 모양이었다.
“건너마을 가 담배 한 봉 사올라구.”
“담배 여?는데 또 사 뭐 하나?”
친구는 호주머니에서 굳이 연봉을 꺼내어 손에 들어 보이더니,
“이리 들어와 섬이나 좀 쳐주게.”
“아 참, 깜빡…….”
하고 응칠이는 미안스러운 낯으로 뒤통수를 긁적긁적한다.
하기는 섬을 좀 쳐달라고 며칠째 당부하는 걸 노름에 몸이 팔려 그만
잊고 잊고 했던 것이다. 먹고 자고 이렇게 신세를 지면서 이건
썩 안됐다, 생각은 했지만,
“내 곧 다녀올걸 뭐.”
어정쩡하게 한마디 남기곤 그 집을 뒤에 남긴다.
그러나 이 친구는,
“그럼, 곧 다녀오게!”
하고 때를 재치는 법은 없었다. 언제나 여일같이,
“그럼 잘 다녀오게!”
이렇게 그 신상만 편하기를 비는 것이다.
응칠이는 모든 사람이 저에게 그 어떤 경의를 갖고 대하는 것을
가끔 느끼고 어깨가 으쓱거린다. 백판 모르는 사람도 데리고 앉아서
몇 번 말만 좀 하면 대뜸 구부러진다.
그렇게 장한 것인지 그 일을 하다가, 그 일이라야 도적질이지만,
들어가 욕보던 이야기를 하면 그들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아이구, 그걸 어떻게 당하셨수!”
하고 적이 놀라면서도,
“그래 그 돈은 어떡했수?”
“또 그럴 생각이 납디까요?”
“참, 우리 같은 농군에 대면 호강살이유!”
하고들 한편 썩 부러운 모양이었다. 저들도 그와 같이 진탕 먹고
살고는 싶으나 주변 없어 못 하는 그 울분에서 그런 이야기만 들어도
다소 위안이 되는 것이다. 응칠이는 이걸 잘 알고 그 누구를 논에다
거꾸로 박아 놓고 달아나다가 붙들리어 경치던 이야기를 부지런히 하며,
“자네들은 안적 멀었네, 멀었어.”
하고 흰소리를 치면 그들은, 옳다는 뜻이겠지, 묵묵히
고개만 꺼떡꺼떡하며 속없이 술을 사주고 담배를 사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벼를 훔쳐 간 놈은 응칠이를 마구 넘보는 모양 같다.
이렇게 생각하면 응칠이는 더욱 괘씸하였다.
그는 물푸레 몽둥이를 벗삼아 논둑길을 질러서 산으로 올라간다.
이슥한 그믐 칠야.
길은 어둡고 흐릿한 언저리만 눈앞에 아물거린다.
그 논까지 칠 마장은 느긋하리라. 이 마을을 벗어나는 어귀에
고개 하나를 넘는다. 또 하나를 넘는다.
그러면 그 다음 고개와 고개 사이에 수목이 울창한 산중턱을 비겨 대고
몇 마지기의 논이 놓였다. 응오의 논은 그 중의 하나이었다.
길에서 썩 들어앉은 곳이라 잘 뵈도 않는다. 동리에 그런 소문이
안 났을 때에는 천행으로 본 놈이 없을 것이나
반드시 성팔이의 성행임에는…….
응칠이는 공동묘지의 첫 고개를 넘었다. 그리고 다음 고개의 마루턱을
올라섰을 때 다리가 주춤하였다. 저 왼편 높은 산고랑에서
불이 반짝 하다 꺼진다. 짐승불로는 너무 흐리고……
아―하, 이놈들이 또 왔군. 그는 가던 길을 옆으로 새었다.
더듬더듬 나뭇가지를 짚으며 큰 산으로 올라간다. 바위는 미끄러 내리며
발등을 찧는다. 딸기 가시에 종아리는 따갑고 엉금엉금 기어서
바위를 끼고 감돈다.
산, 거반 꼭대기에 바위와 바위가 어깨를 겯고 움쑥 들어간 굴이 있다.
풀들은 뻗치어 굴문을 막는다.
그 속에 돌아앉아서 다섯 놈이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린다.
불빛이 샐까 염려다. 남폿불을 얕이 달아 놓고
몸들을 바싹바싹 여미어 가리운다.
“어서 후딱후딱 쳐, 갑갑해서 원.”
“이번엔 누가 빠지나?”
“이 사람이지 뭘 그래.”
“다시 섞어, 어서 이 따위 수작이야.”
하고 한 놈이 골을 내고 화투를 빼앗아 제 손으로 섞다가 깜짝 놀란다.
그리고 버썩 대드는 응칠이를 벙벙히 쳐다보며 얼뚤한다.
그들은 응칠이가 오는 것을 완고척이 싫어하는 눈치였다.
이런 애송이 노름판인데 응칠이를 들였다가는 맥을 못 쓸 것이다.
속으로는 되우 꺼렸지마는 그렇다고 응칠이의 비위를 건드림은
더욱 좋지 못하므로,
“아, 응칠인가, 어서 들어오게.”
하고 선웃음을 치는 놈에,
“난 올 듯하기에, 자넬 기다렸지.”
하며 어수대는 놈,
“하여튼 한 케 떠보세.”
이놈들은 손을 잡아 들이며 썩들 환영이었다.
응칠이는 그 속으로 들어서며 무서운 눈으로 좌중을 한번 훑어보았다.
그런데 재성이도 그 틈에 끼여 있는 것이 아닌가.
사날 전만 해도 응칠이더러 먹을 양식이 없으니 돈 좀 취하라던 놈이
의심이 부썩 일었다. 도둑이란 흔히 이런 노름판에서 씨가 퍼진다.
그 옆으로 기호도 앉았다. 이놈은 며칠 전 제 계집을 팔았다. 그 돈으로
영동 가서 장사를 하겠다던 놈이 노름을 왔다.
제깐 주제에 딸 듯싶은가. 하나는 용구. 농사엔 힘 안 쓰고 노름에 몸이
달았다. 시키는 부역도 안 나온다고 동리에서
손도(명사. 도덕적으로 잘못한 사람을 그 지역에서 내쫓음)를
맞을 놈이다. 그리고 남의 집 머슴녀석.
뽐을 내고 멋없이 점잔을 피우는 중늙은이 상투쟁이,
이 물건은 어서 날아왔는지 보지도 못하던 놈이다.
체 이것들이 뭘 한다구!
응칠이는 기호의 등을 꾹 찔러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외딴 곳으로 데리고 와서,
“자네 돈 좀 없겠나?”
하고 돌아서다가,
“웬걸 돈이 어디…….”
눈치만 남고 어름어름하니,
“아내와 갈렸다지, 그 돈 다 뭐 했나?”
“아 이 사람아, 빚 갚았지!”
기호는 눈을 내리깔며 매우 거북한 모양이다.
오른편 엄지로 한 코를 막고 흥 하고 내뽑더니 이번 빚에 졸리어 죽을
뻔했네 하고 묻지 않는 발뺌까지 얹어서 설대로 등어리를 긁죽긁죽한다.
그러나 응칠이는 속으로 이놈, 하였다.
응칠이는 실눈을 뜨고 기호를 유심히 쏘아 주었더니,
“꼭 사 원 남았네.”
하고 선뜻 알리고,
“빚 갚고 뭣 하고 흐지부지 녹았어.”
어색하게도 혼자말로 우물쭈물 웃어 버린다.
응칠이는 퉁명스러이,
“나 이 원만 최게.”
하고 손을 내대다 그래도 잘 듣지 않으매,
“따서 둘이 노눌 테야, 누가 떼먹나.”
하고 소리가 한번 빽 아니 나올 수 없다.
이 말에야 기호도 비로소 안심한 듯, 저고리섶을 쳐들고 훔척거리다
쭈삣쭈삣 꺼내 놓는다. 딴은 응칠이의 솜씨면 낙자는 없을 것이다.
설혹 재간이 모자라 잃는다면 우격이라도 도로 몰아갈 테니깐.
“나두 한 케 떠보세.”
응칠이는 우죄스레 굴로 기어든다. 그 콧등에는 자신 있는 그리고
흡족한 미소가 떠오른다. 사실이지 노름만큼 그를 행복하게 하는 건
다시 없었다. 슬프다가도 화투나 투전장을 손에 들면 공연스레 어깨가
으쓱거리고 아무리 일이 바빠도 노름판은 옆에 못 두고 지난다.
그는 이놈 저놈의 눈치를 슬쩍 한번 훑고,
“두 패루 너누지?”
응칠이는 재성이와 용구를 데리고 한옆으로 비켜 앉았다.
그리고 신바람이 나서 화투를 섞다가 손을 따악 짚으며,
“튀전이래지 이깐 화투는 하튼 뭘 할 텐가, 녹삐킨가 켤텐가?”
“약단이나 그저 보지!”
사방은 매섭게 조용하였다.
바위 위에서 혹 바람에 모래 구르는 소리뿐이다. 어쩌다,
“옛다 봐라.”
하고 화투짝이 쩔꺽, 한다. 그리곤 다시 쥐죽은 듯 잠잠하다.
그들은 이욕에 몸이 달아서 이야기고 뭐고 할 여지가 없다.
행여 속지나 않는가 하여 눈들이 빨개서 서로 독을 올린다.
어떤 놈이 뜯는 놈이고 어떤 놈이 뜯기는 놈인지 영문 모른다.
응칠이가 한 장을 내던지고 명월 공산을 보기 좋게 떡 젖혀 놓으니,
“이거 왜 수짜질이야!”
용구는 골을 벌컥 내며 쳐다본다.
“뭐가?”
“뭐라니, 아, 이 공산 자네 밑에서 빼내지 않았나?”
“봤으면 고만이지 그렇게 노할 건 또 뭔가!”
응칠이는 어설피 입맛을 쩍쩍 다시다,
“그럼 이번엔 파토지?”
하고 손의 화투를 땅에 내던지며 껄껄 웃어 버린다.
이때 한옆에서 별안간,
“이 자식, 죽인가!”
악을 쓰는 것이니 모두들 놀라며 시선을 몬다. 머슴이 마주 앉은 상투의
뺨을 갈겼다. 말인즉 매조 다섯 끗을 엎어 쳤다고.
하나 정말은 돈을 잃은 것이 분한 것이다. 이 돈이 무슨 돈이냐 하면
일년 품을 판 피 묻은 사경이다. 이런 돈을 송두리 먹히다니.
“이 자식, 너는 야마시(사기)꾼이지. 돈 내라.”
멱살을 훔켜잡고 다시 두 번을 때린다.
“허, 이놈이 왜 이러누, 어른을 몰라보고.”
상투는 책상다리를 잡숫고 허리를 쓰윽 펴더니 점잖이 호령한다.
자식 뻘 되는 놈에게 뺨을 맞는 건 말이 좀 덜 된다. 약이 올라서
곧 일을 칠 듯이 엉덩이를 번쩍 들었으나 그러나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악에 바짝 받친 놈을 건드렸다가는 결국 이쪽이 손해다.
더럽단 듯이 허, 허 웃고,
“버릇 없는 놈 다 봤고!”
하고 꾸짖은 것은 잘됐으나 기어이 어이쿠, 하고 그 자리에
푹 엎으러진다. 이마가 터져서 피가 흘렀다. 어느틈엔가 돌멩이가
날아와 이마의 가죽을 터친 것이다.
응칠이는 싱글거리며 굴을 나섰다. 공연스레 쑥스럽게 일이나 벌어지면
성가신 노릇이다. 그리고 돈 백이나 될 줄 알았더니 다 봐야 한 사십 원
될까말까. 그걸 바라고 어느 놈이 앉았는가.
그가 딴 것은 본밑을 알라 구 원 하고 팔십 전이다.
기호에게 오 원을 내주고,
“자, 반이 넘네. 자네 계집 잃고 돈 잃고 호강이겠네.”
농담으로 비웃어 던지고는 숲속으로 설렁설렁 내려온다.
“여보게, 자네에게 청이 있네.”
재성이 목이 말라서 바득바득 따라온다. 그 청이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에게 돈을 다 빼앗기곤 구문이겠지.
시치미를 딱 떼고 나 갈 길만 걷는다.
“여보게 응칠이, 아, 내 말 좀 들어!”
그제는 팔을 잡아 낚으며 살려 달라 한다. 돈을 좀 늘릴까 하고
벼 열 말을 팔아 해보았더니 다 잃었다고. 당장 먹을 게 없어
죽을 지경이니 노름 밑천이나 하게 몇 푼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벼를 털었으면 그저 먹을 것이지 어쭙잖게 노름은…….
“그런 걸 왜 너보고 하랬어?”
하고 돌아서며 소리를 빽 지르다가 가만히 보니 눈에 눈물이 글썽하다.
잠자코 돈 이 원을 꺼내 주었다.
응칠이는 돌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덜덜 떨고 있다.
사방은 뺑― 돌리어 나무에 둘러싸였다. 거무튀튀한 그 형상이 헐없이
무슨 도깨비 같다. 바람이 불 적마다 쏴― 하고 쏴― 하고 음충맞게
건들거린다. 어느 때에는 짹, 짹 하고 목을 따는지 비명도 울린다.
그는 가끔 뒤를 돌아보았다.
별일은 없을 줄 아나 호옥 뭐가 덤벼들지도 모른다.
서낭당은 바로 등뒤다. 족제빈지 뭔지,
요동통에 돌이 무너지며 바스락바스락한다.
그 소리가 묘하게도 등줄기를 쪼옥 긁는다. 어두운 꿈속이다.
하늘에서 이슬은 내리어 옷깃을 축인다.
공포도 공포려니와 냉기로 하여 좀체로 견딜 수가 없었다.
산골은 산신까지도 주렸으렷다.
아들 낳아 달라고 떡 갖다 바칠 이 없을 테니까.
이놈의 영감님 홧김에 덥석 달려들면. 앞뒤를 다시 한번 휘돌아본 다음
설대를 뽑는다. 그리고 오금팽이로 불을 가리고는 한 대 뻑뻑 피워
물었다. 논은 여남은 칸 떨어져 그 아래 누웠다.
일심 정기를 다하여 나무틈으로 뚫어보고 앉았다.
그러나 땅에 대를 털려니까 풀숲이 이상스러이 흔들린다. 뱀,
뱀이 아닌가. 구시월 뱀이라니 물리면 고만이다. 자리를 옮겨 앉으며
손으로 입을 막고 하품을 터친다.
아마 두어 시간은 더 넘었으리라. 이놈이 필연코 올 텐데 안 오니
또 무슨 조활까. 이 짓이란 소문이 나기 전에 한번 더 와 보는 것이
원칙이다. 잠을 못 자서 눈이 뻑뻑한 것이 제물에 슬금슬금 감긴다.
이를 악물고 눈을 뒵쓰면 이번에는 허리가 노글거린다.
속은 쓰리고 골치는 때리고. 불꽃 같은 노기가 불끈 일어서
몸을 옥죄인다. 이놈의 다리를 못 꺾어 놔도 애비 없는 후레자식이겠다.
닭들이 세 홰를 운다. 멀―리 산을 넘어오는 그 음향이 퍽은 서글프다.
큰 비를 몰아드는지 검은 구름이 잔뜩 낀다.
하긴 지금도 빗방울이 뚝, 뚝, 떨어진다.
그때 논둑에서 희끄무레한 허깨비 같은 것이 얼씬거린다.
정신을 바짝 차렸다. 영락없이 성팔이, 재성이 그들 중의 한 놈이리라.
이 고생을 시키는 그놈! 이가 북북 갈리고 어깨가 다 식식거린다.
몽둥이를 잔뜩 우려잡았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서 나무줄기를 끼고
조심조심 돌아내린다. 하나 도랑쯤 내려오다가 그는 멈씰하여 몸을 뒤로
물렸다. 늑대 두 놈이 짝을 짓고 이편 산에서 저편 산으로 설렁설렁
건너가는 길이었다. 빌어먹을 늑대, 이것까지 말썽이람.
이마의 식은땀을 씻으며 도로 제자리로 돌아온다.
어쩌면 이번 이놈도 재작년 강도 짝이나 안 될는지.
급시로 불길한 예감이 뒤통수를 탁 치고 지나간다.
그는 옷깃을 여미어 한 대를 더 붙였다. 돌연히 풍세는 심하여진다.
산골짜기로 몰아드는 억센 놈이 가끔 발광이다.
다시금 더르르 몸을 떨었다. 가을은 왜 이 지경인지.
여기에서 밤 새울 생각을 하니 기가 찼다.
얼마나 되었는지 몸을 좀 녹이고자 일어나서 서성서성할 때이었다.
논으로 다가오는 희미한 그림자를 분명히 두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보니 피로고, 한고이고 다 딴소리다. 고개를 내대고 딱 버티고
서서 눈에 쌍심지를 올린다.
흰 그림자는 어느틈엔가 어둠 속에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나올 줄을 모른다. 바람 소리만 왱, 왱, 칠 뿐이다.
다시 암흑 속이 된다. 확실히 벼를 훔치러 논 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여깽이 같은 놈이 궂은 날새를 기화삼아 맘껏 하겠지.
의리 없는 썩은 자식, 격장에서 같이 굶는 터에―---오냐 대거리만
있거라. 이를 한번 부드득 갈아붙이고 차츰차츰 논께로 내려온다.
응칠이는 논께로 바특이 내려서서 소나무에 몸을 착 붙였다.
섣불리 서둘다간 남의 횡액을 입을지도 모른다. 다 훔쳐 가지고
나올 때만 기다린다. 몸뚱이는 잔뜩 힘을 올린다.
한 식경쯤 지났을까, 도적은 다시 나타난다. 논둑에 머리만 내놓고
사면을 두리번거리더니 그제야 기어나온다. 얼굴에는 눈만 내놓고
수건인지 뭔지 헝겊이 가리었다.
봇짐을 등에 짊어메고는 허리를 구붓이 뺑손을 놓는다.
그러자 응칠이가 날쌔게 달려 들며,
“이 자식, 남의 벼를 훔쳐 가니!”
하고 대포처럼 고함을 지르니 논둑으로 고대로 데굴데굴 굴러서
떨어진다. 얼결에 호되게 놀란 모양이다.
응칠이는 덤벼들어 우선 허리께를 내려조겼다. 어이쿠쿠, 쿠― 하고
처참한 비명이다. 이 소리에 귀가 번쩍 띄어서 그 고개를 들고
팔부터 벗겨 보았다. 그러나 너무나 어이가 없었음인지 시선을 치걷으며
그 자리에 우두망찰한다.
그것은 무서운 침묵이었다. 살뚱맞은 바람만 공중에서 북새를 논다.
한참을 신음하다 도적은 일어나더니,
“성님까지 이렇게 못살게 굴기유?”
제법 눈을 부라리며 몸을 홱 돌린다. 그리고 느끼며 울음이 복받친다.
봇짐도 내버린 채,
“내 것 내가 먹는데 누가 뭐래?”
하고 데퉁스러이 내뱉고는 비틀비틀 논 저쪽으로 없어진다.
형은 너무 꿈속 같아서 멍하니 섰을 뿐이다.
그러다 얼마 지나서 한 손으로 그 봇짐을 들어 본다. 가뿐하니
끽 말가웃이나 될는지. 이까짓 걸 요렇게까지 해가려는 그 심정은 실로
알 수 없다. 벼를 논에다 도로 털어 버렸다. 그리고 아내의 치마이겠지,
검은 보자기를 척척 개서 들었다. 내 걸 내가 먹는다―---
그야 이를 말이랴. 하나 내 걸 내가 훔쳐야 할 그 운명도 얄궂거니와
형을 배반하고 이 짓을 벌인 아우도 아우렷다. 에―이 고얀 놈,
할 제 볼을 적시는 것은 눈물이다. 그는 주먹으로 눈물을 쓱, 비비고
머리에 번쩍 떠오르는 것이 있으니 두레두레한 황소의 눈깔.
시오 리를 남쪽 산으로 들어가면 어느 집 바깥 뜰에 밤마다 늘 매여
있는 투실투실한 그 황소. 아무렇게 따지든 칠십 원은 갈 데 없으리라.
그는 부리나케 아우의 뒤를 밟았다.
공동묘지까지 거반 왔을 때에야 가까스로 만났다. 아우의 등을 탁 치며,
“얘, 좋은 수 있다. 네 원대로 돈을 해줄게 나하구 잠깐 다녀오자.”
씩씩한 어조로 기쁘도록 달랬다. 그러나 아우는 입 하나 열려 하지 않고
그대로 실쭉하였다. 뿐만 아니라 어깨 위에 올려놓은 형의 손을
부질없단 듯이 몸으로 털어 버린다. 그리고 삐익 달아난다.
이걸 보니 하 엄청나고 기가 콱 막히었다.
“이눔아!”
하고 악에 받치어,
“명색이 성이라며?”
대뜸 몽둥이는 들어가 그 볼기짝을 후려갈겼다.
아우는 모로 몸을 꺾더니 시나브로 찌그러진다.
뒤미처 앞정강이를 때리고 등을 팼다. 일어나지 못할 만치 매는
내리었다. 체면을 불고하고 땅에 엎드리어 엉엉 울도록 매는 내리었다.
홧김에 하긴 했으되 그 꼴을 보니 또한 마음이 편할 수 없다.
침을 퇴, 뱉어 던지곤 팔자 드신 놈이 그저 그렇지 별수 있나,
쓰러진 아우를 일으키어 등에 업고 일어섰다. 언제나 철이 날는지
딱한 일이었다. 속 썩는 한숨을 후― 하고 내뿜는다.
그리고 어청어청 고개를 묵묵히 내려온다.
출전:조선일보(1935.7.17~31)
만무방은 순 우리말로
예의와 염치가 도무지 없는 사람,
막돼 먹은 사람, 뭇 잡놈의 무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개인을 지칭한다기보다는 한 부류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겠지요. 응칠이나 응오나 모두 만무방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식민지하에서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김유정은 만무방으로 칭한 것이지요.
김유정의 다른 작품 중 <따라지>라고 있지요. 따라지, 만무방 둘 다
같은 표현으로 사회 밑바닥 인생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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