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인간문제 (4 중 1) - 강경애 -

하얀모자 1 2023. 6. 1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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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문제. 4 중 1 >
                                                                            - 강경애 -

이 산등에 올라서면 용연 동네는 저렇게 뻔히 들여다볼 수가 있다.
저기 우뚝 솟은 저 양기와집이 바로 이 앞벌 농장 주인인
정덕호 집이며, 그 다음 이편으로 썩 나와서 양철집이 면역소며,
그 다음으로 같은 양철집이 주재소며,
그 주위를 싸고 컴컴히 돌아앉은 것이 모두 농가들이다.
그리고 그 아래 저 푸른 못이 원소(怨沼)라는 못인데,
이 못은 이 동네의 생명선이다. 이 못이 있길래 저 동네가 생겼으며,
저 앞벌이 개간된 것이다.
그리고 이 동네 개 짐승까지라도 이 물을 먹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 못은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무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동네 농민들은 이러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이 전설을 유일한 자랑거리로 삼으며,
따라서 그들이 믿는 신조로 한다.
그들에게서 들으면 이러하였다―---
 
옛날 이 원소가 생기기 전에,
이 터에는 장자 첨지가 수없는 종들과 전지와 살진 가축들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첨지는 하도 인색하여서,
연년이 추수하는 곡식을 미처 먹지 못하고 곡간에서 푹푹 썩어 내도
근처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할 생각은 고사하고,
어쩌다 걸인이 밥 한술을 구걸하여도 그것이 아까워서는 대문을 닫아 걸고
끼니도 끓여 먹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침 몇 해를 거푸 흉년이 들어서 이 동네 사람들이 모두 굶어 죽게
되었을 때 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장자 첨지에게 애걸을 하였다.
그러나 첨지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나무라고 문간에도
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는 수 없이 몰래 작당을 하여 가지고
밤중에 장자 첨지네 집을 습격하여 쌀과 살진 짐승들을 끌어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며칠 만에 장자 첨지는 관가에 고소장을 들여
이 근처 농민들을 모두 잡아가게 하였다. 그래서 무수한 악형을 하고
혹은 죽이고 그나마는 멀리 쫓아 버렸다는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혹은 아들 딸을 잃어버린 이 동네 노인이며 어린것들은
목이 터지도록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며 혹은 아들과 딸을 찾으며
장자 첨지네 마당가를 떠나지 않고 울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울고 울고 또 울어서 그 눈물이 고이고 고이어서 마침내는
장자 첨지네 고래잔등같은 기와집이 하룻밤 새에 큰 못으로 변하였다는
것이다. 그 못이 즉 내려다보이는 저 푸른 못이다.
표면에 나타나는 이 못의 넓이는 누구나 얼핏 보아도 짐작하겠지마는,
이 못의 깊이는 이때까지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이 못의 깊이를 알고자 하여 명주실꾸리를 몇 꾸리든지
넣어도 끝이 안 났다는 그런 말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이 동네 농민들은 어디서 새로 이사 오는 사람들이 있으면 반드시 쫓아가서
원소의 전설부터 이야기하고 그리고 자손이 나서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이 전설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애들로부터 어른까지 이 전설을
머리에 꼭꼭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 원소에 대하여서 막연하나마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농민들은 무슨 원통한 일이 있어도 이 원소를 보고
위안을 얻으며 무슨 괴로운 일이 있어도 이 원소를 바라보면
사라진다고 하였다.
사명일 때면 그들은 떡이나 흰밥을 지어 이 원소 부근에 파묻으며
옷이며 신발까지도 내다 버리는 것이다. 그만큼 그들은 정성을 표하곤
하였다. 더구나 그들이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도 이 원소에 와서 빌면
그 병은 곧 물러간다고 그들은 말하였다.
이러한 원소를 가진 그들이건만 웬일인지 해를 거듭할수록
나날이 궁핍과 고민만이 닥쳐왔다. 그래서 근년에는 그들의 먹는 것이란
밀죽과 도토리뿐이므로 흰밥이며 떡을 해다 파묻는 일도 드물었다.
그들의 이러한 아픔과 쓰림은 저 원소라야만 해결해 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원소를 바라보며 위안을 얻었다.
예나 지금이나 저 원소의 물은 푸르고 푸르다.
흰 옷감을 보면 물들이고 싶게 그렇게 푸르다.
 
억새풀이 길길이 자란 그 밑으로
봄을 만난 저 원소 물이 도랑으로 새어 흐르고 또 흐른다.
그 주위로 죽 돌아선 늙은 버드나무는 겉보기에는 다 죽은 듯하건만,
그 속에서 새 움이 파랗게 돋아난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물매미 한 마리가 탐방 뛰어들어,
시원스럽게 원형을 그리며 돌아간다.
그러자 어디서인지 신발 소리가 가볍게 들려 온다.
신발 소리가 차츰 가까워지더니 산등으로 계집애 하나가 뛰어 올라온다.
그는 무엇에 쫓기는 모양인지 자주자주 뒤를 돌아보며
숨이 차서 달아 내려온다.
계집애는 이 동네서 흔히 볼 수 있는 메꽃 물을 들인 저고리를 입었으며
얼굴빛은 좀 푸른기를 띠었으나 티없이 맑았다.
그리고 손에 든 나물바구니가 몹시 귀찮은 모양인지 좌우 손에 번갈아
쥐다가는 머리에 였다가 그도 시원치 않아서 이번에는 가슴에다 안으며
낯을 찡그린다. 그리고 흘금흘금 산등을 돌아본다.
뒤미처 나무꾼애가 작대기를 휘두르며 쫓아온다.
 
“이놈의 계집애, 깜작 말고 서라!”
 
소리를 버럭 지르며 다그쳐 오는 속력은 몹시도 빨랐다.
계집애는 가슴에 안았던 바구니를 머리에 이며 죽을 힘을 다하여
내려오다가, 그만 푹 거꾸러져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렸다.
바구니는 그냥 데굴데굴 굴러 내려간다.
나무꾼애는 이것이 재미스러워 킥킥 웃으면서 계집애 곁으로 오더니
막아 섰다.
 
“이 계집애 진작 줄 것이지, 도망질은 왜 하니.
  아무러면 나한테 견딜 것 같니. 좋다! 넘어지니 맛이 어때?”
 
흑흑 느껴 우는 계집애는 벌떡 일어나며 바구니가 어디로 갔는가 하여
둘러보다가 저편 보리밭 머리에 있는 것을 보고야 나무꾼애를
힐끔 쳐다본다. 그리고 슬며시 돌아선다.
나무꾼애는 얼핏 뛰어가서 바구니를 들고 왔다.
 
“이놈의 계집애! 싱아 다 꺼내 먹는다, 봐라.”
 
계집애가 서 있는 앞에 바구니를 갖다 놓고 그는 손을 넣어 싱아를 꺼냈다.

그리고 일변 어석어석 씹어 먹는다. 계집애는 또다시 힐끔 쳐다보더니,
 
“이리 다오, 이 새끼!”
 
앞으로 다가서며 바구니를 뺏는다. 나무꾼애는 계집애의 뾰로통한 모양이
우스워서 킥 웃었다. 그리고 계집애 눈등의 먹사마귀가 그의 눈을 끌었다.
 
“너 요게 뭐야?”
 
나무꾼애는 계집애의 눈등을 꾹 찔렀다.
계집애는 흠칫하며 나무꾼애의 손을 홱 뿌리치고,
 
“아프구나! 새끼두.”
 
“계집애두 꽤 사납게는 군다…… 나 하나만 더…….”
 
나무꾼애는 코를 훌떡 들이마시며 손을 내밀었다. 계집애는 그의 부드러운
음성에 무서움이 다소 덜려서 바구니에서 싱아를 꺼내 내쳐주었다.
나무꾼애는 떨어진 싱아를 주워 껍질도 벗기지 않고 시시 하고 침을 삼키며
먹다가 웬일인지 앞이 허전한 듯해서 바라보니, 있거니 한 계집애가 없다.
그래서 두루 찾아보니 계집애는 벌써 원소를 돌아가고 있다.
 
“고놈의 계집애! 혼자 가네.”
 
나오는 줄 모르게 이런 말이 굴러 나왔다.
그는 멀리 계집애의 까뭇거리는 모양을 바라보며
그도 동네로 들어가고 싶은 맘이 부쩍 들었다.
 
“이애 선비야! 나하고 같이 가자.”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내려갔다. 그가 원소까지 왔을 때는
계집애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무 데나 펄썩 주저앉았다.
 
“고놈의 계집애…… 혼자 가네. 고런 어디서…….”
 
이렇게 투덜거렸다.
한참 후에 무심히 내려다보니,
원소 물 위에 그의 초라한 모양이 뚜렷이 보인다.
그는 생각지 않은 웃음이 픽 하고 나왔다. 그리고 물을 들여다보며
다리팔을 놀려 보고 머리를 기웃 거릴 때,
아까 뾰로통해 섰던 계집애의 눈등에 있는 먹사마귀가 얼핏 떠오른다.
 
“고게 뭐야?”
 
하며 그는 휙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다.
 
“고놈의 계집애, 정말…….”
 
그는 계집애가 사라진 버드나무숲 저편을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따라서 물 먹고 싶은 생각이 버쩍 들었다. 그래서 그는 벌떡 일어서며
땀 밴 적삼을 벗어 풀밭에 휙 집어던지고 언덕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넙적 엎디며 목을 길게 늘이어 물을 꿀꺽꿀꺽 마신다.
목을 통하여 넘어가는 물은 곧 달큼하였다. 한참이나 물을 마신 그는
얼핏 일어나며 가쁜 숨을 후유 하고 내쉬었다.
원소를 거쳐 불어오는 실바람은 짙은 풀내를 아득히 싣고 와서
땀에 젖은 그의 겨드랑이를 서늘하게 말리어 준다. 그는 휭 맴돌이를 쳤다.
 
“내 지게……?”
 
무의식간에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자, 그가 계집애를 따라 여기까지 온 것을
생각하고 단숨에 달음질쳐서 산등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지게 있는 곳으로 와서 낫을 가지고 산 옆으로 돌아가며
나무를 깎기 시작하였다.
나무를 깎아 가지고 지게 곁으로 온 그는 그 지게를 의지하여 벌렁 누워
버렸다. 풀내가 강하게 끼치며 속이 후련해진다.
잠이라도 한잠 푹 자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눈을 감았다. 갑자기,
 
“첫째야!”
 
하고 누가 부른다.
잠이 사르르 오던 그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래서 휘휘 돌아보니
이서방이 나무다리를 짚고 씩씩하며 이편으로 온다.
 
“이서방!”
 
그는 이서방을 보니 반가움과 함께 배고픔을 깨달았다.
 
“너 여기 있는 것을 자꾸 찾아다녔구나.”
 
이서방은 나무다리를 꾹 짚고 서서 귀여운 듯이 첫째를 바라본다.
그들의 그림자가 산 아래까지 길게 달려 내려갔다.
첫째는 나뭇짐을 낑 하고 지며,
 
“날 찾아다녔수?”
 
“그래 해가 져가는데두! 어머니께 대답질을 하면 쓰나.
    후담에는 그러지 말아라.”
 
첫째는 이서방과 가지런히 걸으며 히이…… 웃었다. 그리고 강한 햇빛을
눈이 부시도록 치느끼며 그는 지금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명치를 않았다.
 
“어머니가 밥 지어 놓고 여간 너를 기다리지 않는다.”
 
어머니에 대한 노염을 풀어 주려고 이서방은 말끝마다 어머니를 불렀다.
 
“밥 했수?”
 
첫째는 멈칫 서서 이서방을 보다가 무심히 저편 들을 바라보았다.
석양빛에 앞벌은 비단결 같다.
 
“이서방, 나두 올부터는 김 좀 맸으면…….”
 
이서방은 가슴이 뜨끔하였다. 그리고 저것이 벌써 김을 매고 싶어하니
어쩐단 말이누 하는 걱정과 함께 지난날에 일하고 싶어 날뛰던 자기의
과거가 휙 떠오른다. 그는 후― 한숨을 쉬며 불타산을 멍하니 노려보았다.
 
“이서방, 난 김매구,
  이서방은 점심 가지고 나헌테 오구, 그리구, 또…….”
 
그는 말만 해도 좋은지 방긋방긋 웃는다. 이서방은 
 
‘너 김맬 밭이 있냐?’하고 금방 입이 벌어지려는 것을 꿀꺽 삼켜 버렸다.
따라서 가슴속에서 무엇이 울컥 맞받아 나온다.
 
“그러구 이서방도 동냥하러 다니지 않고 내가 농사한 곡식을 먹구…….”
 
이서방은 그만 우뚝 섰다. 그리고 나무다리를 힘있게 짚었다.
그가 일생을 통하여 이러한 감격에 취하여 보기는 아마 처음일 것이다.
반면에 차디찬 이 세상을 이같이 원망하기도 역시 처음이었다.
그가 어려서부터 남의 집을 살며 별별 모욕을 받다 못해서 이 다리까지
부러졌지만, 아! 여기다 비기랴!
첫째는 흥이 나서 말을 하다가 돌아보니,
이서방이 따르지 않는다. 그는 멈칫 섰다.
 
“이서방! 왜 울어?”
 
첫째는 눈이 둥그래서 이편으로 다가온다. 이서방은 눈물을 쥐어 뿌린다.
그리고 나무다리를 다시 놀린다.
 
“어머니가 또 뭐라고 했구만. 그까짓 어머니 발길로 차 든져.”
 
눈을 실쭉하니 뜬다. 이서방은 놀라 첫째를 바라보며,
아까 싸운 노염이 아직도 남아 있음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 아이가
무엇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증오심이 이리도 큰가?
 
“이애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못쓴단다.”
 
이렇게 말하는 이서방은 이애가 벌써 자기 어머니의 비행을 눈치챔인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며, 유서방과 영수, 그리고 요새 같이 다니는
대장장이가 번갈아 떠오른다. 그는 말할 용기를 잃어버렸다.
그들은 밀밭머리 좁은 길로 들어섰다.
 
“이서방! 오늘 돈 얼마나 벌었수?”
 
이 말에 이서방은 용기를 얻어,
 
“이애 돈이 뭐가, 오늘은 저 앞벌 술막집 잔채하는 데 종일 가 있다가,
  이제야 왔다.”
 
“잔챗집에…… 그럼 떡 얻어 왔지, 떡 얻어 왔지?”
 
작대기를 구르며 이서방을 바라본다.
 
“그래, 얻어 왔다.”
 
“얼마나?”
 
그는 입맛을 다시며 대든다.
 
“조금 얻어 왔다.”
 
“또 어머니 주었수?”
 
“아니 그냥 있다.”
 
이애가 실망할 것을 생각하고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눈허리에 벌레가 지나는 것 같았다.
 
“이서방, 나는 떡만 먹고 산다면 좋겠더라.”
 
그는 침을 꿀꺽 넘기었다.
 
“내 이 담엔 많이 얻어다 줄 것이니, 이 배가 터지도록 먹으렴.”
 
첫째는 히이 웃으면서 작대기로 돌부리를 툭툭 갈긴다.
이런 때에 그의 내리뜬 눈은 볼수록 귀여웠다.
그들이 집까지 왔을 때는 어슬어슬한 황혼이었다.
첫째 어머니는 문 밖에 섰다가 그들이 오는 것을 보고,
 
“저놈의 새끼 범두 안 물어 가.”
 
나오는 줄 모르고 이런 말을 하고도 가슴이 선뜩하였다.
이때까지 기다리던 끝에 악이 받쳐 이런 말을 하고도,
곧 후회가 되었던 것이다. 첫째는 나뭇짐을 벗어 놓고 일어난다.
첫째는 방으로 들어오며,
 
“나 떡.”
 
뒤따르는 이서방을 돌아보았다. 첫째 어머니는 냉큼 시렁 위에서
떡 담은 바가지를 내려 놓았다.
 
“잡놈의 새끼, 배는 용히 고픈 게다…… 떡떡 하더니 실컨 먹어라.”
 
첫째는 떡바가지를 와락 붙잡더니, 떡을 쥐어 뚝뚝 무질러 먹는다.
그들은 물끄러미 이 모양을 바라보며 저것이 얼마나 배가 고파서
저 모양일까 하고 측은한 생각까지 들었다.
첫째는 순식간에 그 떡을 다 먹고 나서,
 
“또 없나?”
 
첫째 어머니는 등에 불을 켜놓으며,
 
“없다, 그만치 먹었으면 쓰겠다.”
 
“밥이라도 더 먹지.”
 
이서방은 불빛에 빨개 보이는 첫째 어머니의 볼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첫째 어머니는 등 곁에서 물러앉으며,
 
“애는 저 이서방이 버려 놓는다니, 자꾸 응석을 받아 줘서…… 
  저 새끼가 배부른 게 어디 있는 줄 아오. 욕심 사납게
  있으면 있는 대로 다 먹으려 드는데.”
 
아까 떡 한 개 더 먹고 싶은 것을, 첫째가 오면 같이 먹으려고 두었던
것이나, 막상 첫째가 배고파 덤비는 양을 보고는, 차마 떡그릇에 손을 넣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한개도 남기지 않고 다 먹는 것을 보니 섭섭하였다.
 
“이서방, 나가자우.”
 
첫째는 벌써 눈이 감겨 오는 모양이다. 이서방은 첫째 어머니와 이렇게
마주앉고 있는 것이 얼마든지 좋으나, 첫째의 말에 못 견디어서
안 떨어지는 궁둥이를 겨우 떼었다. 그리고 나무다리를 짚고 일어나며,
 
“나가자.”
 
첫째도 일어나서 이서방의 손에 끌리어 건넌방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 아랫목에 쓰러져서, 몇 번 다리팔을 방바닥에 들놓더니
쿨쿨 잔다. 이서방은 어둠 속으로 첫째를 바라보며, 아까 첫째가 빙긋빙긋
웃으며 아무 거침 없이 하던 말을 다시금 되풀이하였다.
그리고 나오는 줄 모르게 한숨을 푹 쉬었다.
안방에는 벌써 누가 왔는지, 수군수군하는 소리가
그의 귀로만 들어오는 듯하였다.
 
“어느 놈이 또 왔누?”
 
한숨 끝에 이렇게 중얼거리며,
어느 놈의 음성인지를 분간하려고 귀를 가만히 기울였다.
암만 분간하려나 원체 가늘게 수군거리니 분명치를 않았다.
그저 첫째 어머니의 호호 웃는 소리가 간혹 들릴 뿐이다.
그는 잠을 이루려고 눈을 감고 있으나, 그것들의 수군거리는 소리에
잠이 홀랑 달아나고, 화만 버럭버럭 치받친다.
이놈의 집을 벗어나야지, 이걸 산담……? 그는 거의 매일 밤 이렇게
성을 내면서도 번번이 이 꼴을 또 보는 것이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담배를 피워 물고 창문 곁으로 다가앉았다.
뚫어진 문 새로는 달빛이 무지개같이 쏘아 들어온다. 그는 담배를 빨아
연기를 후 뿜었다. 달빛에 어림해 보이는 구불구불 올라가는 저 연기!
그것은 흡사히 자기 가슴에 뿜어 오르는 어떤 원한 같았다.
그는 무심히 곁에 놓아 둔 나무다리를 슬슬 어루만졌다.
그는 언제나 속이 답답할 때마다 이 나무다리를 어루만지는 것이다.
아무 반응이 없는 이 나무다리! 사정없이 뻣뻣한 이 나무다리! 그나마
이 나무다리가 그의 둘도 없는 동무인 것이다.
 
“고놈의 계집애 정말…….”
 
이서방은 놀라 돌아보니, 첫째가 입맛을 쩍쩍 다시며 잠꼬대하는 소리다.
이서방은 첫째가 잠꼬대한 말을 다시금 되풀이하며,
저 애가 벌써 어떤 계집애를 생각함에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쓸데없는 자기의 생각 같았다. 따라서 첫째를
장성하게 못 할 수만 있다면 어디까지든지 그를 어린애 그대로 두고 싶었다.
첫째의 장래도 자기가 걸어온 그 길과 조금도 다를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첫째 곁으로 바싹 가서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씩씩 잔다. 지금 이 순간이 첫째에게 있어서는 다시없는
행복스러운 순간 같았다. 그리고 낮에 
 
“나도 김매고 싶어” 하던 말을 다시금 생각하며
그의 볼 위에다 볼을 갖다 대었다.
첫째의 볼로부터 옮아 오는 따뜻한 이 감촉! 그리고 기운 있게 내뿜는
그의 숨결, 자기의 살과 피가 섞여 있은들 이에서 더 따구울 수가 있으랴!
그는 무의식간에 첫째의 목을 꼭 쓸어안으며, 
 
‘내 비록 병신이나마 나머지 여생은 너를 위하여 살리라’
 
하고 몇 번이나 맹세하였다.
마침 짜근거리는 소리에 이서방은 머리를 번쩍 들었다.
 
“이 개갈보 같은 년아!”
 
목청껏 지르는 소리에 지정이 저렁저렁 울린다.
이서방은 문 곁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아이 이 양반이 미쳤다? 왜 이래.”
 
“요년 아가리 붙여라, 이 더러운 쌍년, 네년이 저놈뿐이 아니라
  나무다리 비렁뱅이도 붙인다지, 저런 쌍년, 에이 쌍년!”
 
침을 탁 뱉는 소리가 난다. 이서방은 ‘병신거지도 붙인다지’
하던 말이 언제까지나 귓가를 싸고돌았다. 그리고 전신이 짜르르 울리며,
손발 하나 놀릴 수가 없었다.
 
“아이쿠, 이 년놈들 잘한다.”
 
짝짝 쿵 하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영수와 새로 다니는 대장장이와
맞붙은 모양이다.
 
“흥, 하룻개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네게 두고 이른 말이구나.
  이 경칠 자식, 그래, 온전한 부녀인 줄 알았냐?”
 
어떻게나 하는지 죽는 소리를 한다.
 
“이 년놈들 내 칼에 죽어 봐라.”
 
“아이 저 칼! 저 칼!”
 
첫째 어머니의 이 같은 소리에 이서방은 벌컥 일어나며 나무다리를 짚고
뛰어나갔다. 안방 문짝이 떨어져 봉당 가운데 넘어졌으며,
등불조차 꺼져서 캄캄하였다. 첫째 어머니는 봉당으로 달아나왔다.
 
“이거 이거.”
 
숨이 차서 헐떡이며 칼을 쑥 내민다. 이서방은 칼을 받아 들고
부엌으로 나가며 얻다가 이 칼을 둬야 좋을지 몰라 한참이나 왔다갔다
하다가 나뭇단 속에 감추어 놓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거 왜들 이러슈. 점잖으신 터에 참으시죠들.”
 
서로 어우러진 것을 뜯어 놓으려니,
 
“이 자식은 왜 또 이래…… 너 깡뚱발이로구나.
   너도 한몫 들어 매 좀 맞으려니?”
 
누구인지 발길로 탁 찬다. 이서방은 팩 하고 나가자빠졌다.
그 바람에 나무다리는 어디로 달아났는지 암만 찾아봐도 없다.
이서방은 온 봉당을 뻘뻘 기어다니며 나무다리를 찾았다.
그리고 몇 해 싸두었던 원한이 일시에 폭발됨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꾹 참으며 나무다리를 얻어 짚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전 같으면 밖에 구경꾼들이 얼마든지 모였을 터이나
오늘은 밤이 오랜 까닭인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나뭇가리 곁으로 와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컴컴한 저 불타산 위에 뚜렷이 솟은 저 달! 저 달조차도 이서방의
이 나무다리를 비웃느라 조롱하느라 이 밤을 새우는 것 같았다.
 
“이서방!”
 
찾는 소리에 이서방은 휙근 돌아보았다. 첫째가 내달아오며 일변 오줌을
솰솰 내뻗친다. 이서방은 첫째의 버릇을 아는지라 가슴이 뜨끔해지며
저놈이 또…… 하고 불안을 느꼈다.
그리고 곧 첫째 곁으로 와서 그의 꽁무니를 꾹 붙들었다.
오줌을 다 누고 난 그는 울컥 내닫는다.
 
“이놈들! 이놈들!”
 
목통이 터져라 하고 고함을 치며 내닫다가 이서방이 붙든 것을 알자
주먹으로 몇 번 냅다 쳤다.
 
“놔, 이거!”
 
“이애 첫째야! 첫째야! 너 그럭하면 못쓴다, 응.
   이애 매맞는다, 응, 이애.”
 
“매맞아도 좋아, 이놈들.”
 
이번에는 사정없이 머리로 이서방의 가슴을 들이받으며 발길로 차던졌다.
이서방은 또다시 자빠졌다.
첫째는 나는 듯이 지게 곁으로 가서 낫을 뽑아 가지고 안으로 들어간다.
 
“이애! 이애!”
 
이서방은 너무 급해서 벌벌 기어 달려 들어가며 그의 발목을 붙들었다.
이 눈치를 챈 첫째어머니는 내달아 왔다. 그리고 대문 빗장을 뽑아 들었다.
 
“이놈의 새끼, 왜 자지 않고 지랄이냐.”
 
“흥, 저놈의 새끼들은 왜 지랄이누.”
 
어머니의 머리채를 잡아 숙친다.
안방에서는 더한층 지끈자끈하는 소리가 벼락치듯 난다.
이서방은 소름이 쭉 끼쳤다. 안방의 놈들이 이리 기울어지면 어린 첫째는
어디든지 부러지고야 말 것 같았다. 따라서 옛날에 자기가 주인과 맞붙어
싸우다가 이 다리가 부러지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며 그때 그 비운이
오늘에 또 이 어린것에게 사정없이 닥치는 듯싶었다.
이서방은 첫째의 발길에 채어 이리저리 굴면서도 그의 발목은 놓지 않았다.
그때 코에서는 선혈이 선뜻선뜻 흘러나온다.
 
“첫째야, 너 자꼬 그러면 다시는 떡 얻어다 안 준다.”
 
이서방은 생각지 않은 이런 말이 불쑥 나왔다.
 
“정말? 이서방!”
 
첫째는 숨이 가빠서 훌떡훌떡하면서 돌아선다.
이서방은 벌떡 일어나며 그의 목을 꼭 쓸어 안았다.
그러자 이서방의 눈에서는 눈물이 좌르르 쏟아졌다.
선비 어머니가 뒤뜰에서 이엉을 엮어 나가며, 약간씩 붙은 나락을 죽 훑어서
옆에 놓인 바가지에 후르르 담을 때 밖으로부터 선비가 뛰어 들어온다.
 
“어마이.”
 
숨이 차서 들어오는 선비를 이상스레 바라보며 그의 어머니는,
 
“왜 무엇을 잘못하다가 꾸지람을 들었니?”
 
선비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어머니 귀에다 입을 대었다.
 
“어머니, 저어…… 큰댁 아지머님과 신천댁과 싸움이 나서
   큰집 영감이 생야단을 하셨다누.”
 
선비 어머니는 귓가가 간지러워서 조금 머리를 돌리며,
 
“밤낮 싸움이구나. 그래 누가 맞았니?”
 
“그전에는 큰댁 아지머님을 따리지 않았어? 그런데 오늘은 신천댁을
  사정없이 따리데, 아이 불쌍해!”
 
선비는 무심히 나락 바가지에 손을 넣어 휘저어 보면서
얼굴에 슬픈 빛을 띤다.
 
“남의 첩질하는 년들이 매를 맞아야 하지,
    그래 큰어미만 밤낮 맞아야 옳겠니?”
 
딸의 새침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올봄부터는 선비의 두 뺨에 홍조가 약간 피어오른다.
 
“그래두 어마이, 신천댁의 말을 들으니 그가 오고 싶어 온 게 아니라
  저의 아부지가 돈을 많이 받고 팔아서 할 수 없이 왔다고 그러던데 뭐.”
 
“하긴 그랬다고 하더라…… 그러기에 돈밖에 무서운 것이 없어.”
 
선비 어머니는 지금 매를 맞고 울고 앉아 있을 신천댁의 얼굴을 생각하며
꽃봉오리같이 피어오르는 선비의 장래가 새삼스럽게 걱정이 되었다.
 
“어서 가서 무얼 하려무나, 왜 그러고 앉어 있니.
   오늘 빨래에 풀하지 않니?”
 
“해야지.”
 
그는 어머니 말에 어려워 부시시 일어나면서
다시 한번 나락 바가지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빙긋이 웃었다.
 
“어마이, 이것도 찧으면 쌀이 한 되나 될 것 같우, 참…….”
 
“이애 얼른 가봐라.”
 
“응.”
 
선비는 나락 바가지를 놓고 밖으로 나간다. 그의 어머니는 물끄러미
딸의 뒷모양을 바라보며 세월이란 참말 빠르구나! 하고 탄식하였다.
그리고 선비도 오래 데리고 있지 못할 것을 깨달으며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그는 무의식간에 한숨을 푹 쉬며 손을 내밀어 이엉초를 꾹 쥐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손끝은 짚에 닳아져 빨긋빨긋하게 피가 배었다.
그때에 얼핏 떠오른 것은 자기의 남편이다.
남편의 생전에는 비록 빈한하게는 살았을망정, 이렇게 이엉을
엮는 것이라든지 울바자를 세우는 것 같은 그런 밖의 일은 손도 대어 보지
않았다. 보다도 봄이 되면 으레 이 모든 것이 새로 다 되는 것이니……
하고 무심히 지내 보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남편이 없어지매 모두가 그의 손끝 가지 않는 것이 없고 힘은
배곱 쓰건마는 무슨일이나 마음에 들도록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집안 살림 명색치고 단 두 간살이를 하더라도 시재 돌멩이 하나 놓일 자리에
놓여야 하고 새끼 한 오라기 헛되이 버릴 것이 없었다.
남편의 생전에는 뜰을 쓸어 치는 비 같은 것이나 벽을 바르는 매흙이 나는
그런 줄을 모르고 되는 대로 쓰고 버리고 하였건마는 지금에는 그것조차도
마음놓고 쓸 수도 없거니와 손수 마련치 않으면 쓸 것도 없었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이엉초는 또 누구의 손을 빌려 저 지붕에다 올려
펼까 하는 걱정이 불쑥 일어난다. 지붕 해 이을 새끼는 그가 며칠 밤
자지 못하고 꼬아서 네 사리나 만들어 두었고, 이 이엉 엮는 것도
내일까지면 마칠 것이나 지붕 한복판에 덮는 용구새 트는 것이라든지
이엉초를 지붕 위에 올려 펴고 새끼로 얽어매는 것 같은 것은
남정들의 손을 빌려야 할 것이었다.
그는 속으로 누구의 손을 좀 빌릴까…… 하고 두루두루 생각해 보다가,
에라 되든지 안 되든지 내가 그만 이어 볼까 하고 흘금 지붕을 쳐다보았다.
작년에 한 해를 건넜음인지 우묵우묵 골이 진 그 새에 풀이 이따금씩
파랗게 보인다. 그는 벌컥 일어나며,
 
“왜 날 두고 혼자 갔누?”
 
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머리를 돌려 저 앞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앞에 얌전하게 돌아앉은 작은집과 큰집! 모두가 말쑥하게
새로 이엉을 해 이었다. 그 위로 햇빛이 노랗게 덮이었다.
쨍쨍히 내리쬐는 봄볕을 받아 샛노랗게 빛나는 저 지붕과 지붕!
얼마나 저 지붕들이 부럽고도 탐스러운 것이냐!
그는 눈을 꾹 감았다. 그러나 그 지붕들은 점점 더 또렷또렷이 나타나
보인다. 그리고 그 지붕 새로 굵단 남편의 손끝이 스르르 떠오른다.
그리고 임종시까지 차마 눈을 감지 못하고 끼르륵 하고 숨이 넘어가던 그!
그의 남편 김민수는 위인 된 품이 몹시도 착하고 정직하였다.
그러므로 정덕호 앞으로 몇십 년의 부림을 받았어도 일동전 한닢 축내지
못하는 것이 그의 특성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몸이 고달프더라도
덕호의 명령이라면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덤벼들곤 하였다.
그래서 온 동네 사람들까지도 민수를 믿어 왔으며 덕호 역시 믿었다.
그러므로 거액의 돈받이 같은 것은 일부러 민수에게 맡기곤 하였다.
이렇게 지내기를 근 이십 년이었던, 지금으로부터 팔 년 전 겨울이었다.
바로 선비가 일곱살 잡히던 때였다.
그날―--- 아침부터 함박눈이 부슬부슬 떨어진다.
이날도 민수는 일찍 일어나서 덕호네 집으로 왔다.
그래서 안팎 뜰을 쓸고 소 여물까지 끓여 놨을 때 덕호는 나왔다.
 
“자네 오늘 방축골 좀 다녀오겠나?”
 
민수는 머리를 굽실해 보이며,
 
“다녀옵지유.”
 
“좀 이리 오게.”
 
덕호는 쇠죽간을 거쳐서 사랑으로 들어간다. 그도 뒤를 따랐다.
덕호는 아랫목에 놓아 둔 문갑을 뒤져 장부를 꺼내 놓고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아니 방축골 그놈이 근 오십 원이나 되네그리……
   자네가 가서 꽤 받을까? 그놈은 몹시 질긴데.”
 
민수는 머리를 숙인 채 가만히 있다. 덕호는 안타까운 듯이,
 
“가보겠나, 어떻게 하겠나? 가서 받지 못할 바에는 꼴찌아비를 보내겠네,
  응 말을 해.”
 
민수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라 얼굴이 뻘개지며 머뭇머뭇한다.
 
“에이그 저 사람! 왜 그렇게 사람이 영악지를 못해……
  좌우간 갔다 오게. 그러구 말이야, 
  이번에 안 물면 집행하겠다고 말을 똑똑히 좀 해,
  그러구 좀 단단히 채여.”
 
덕호는 살기가 얽힌 눈을 똑바로 뜨고 민수를 바라본다.
 
“가는 김에 명호와 익선이도 찾어보게.”
 
“네.”
 
“그럼 오늘 꼭 가게.”
 
덕호는 다시 한번 다지고 나서 장부를 문갑 안에 넣고 일어선다.
그리고 잔기침을 두어 번 하고 밖으로 나간다. 민수는 곧 그의 뒤를
따라 나왔다. 가마 부엌에서 여물 끓인 내가 구수하게 났다.
민수는 여물을 푹 떠가지고 외양간으로 가니 벌써 소는 냄새를 맡고
부시시 일어나 구유 곁으로 나온다. 그리고 더운 김이 뭉클뭉클 오르는
여물을 맛이 있게 먹는다.
여물을 다 퍼 지르고는 민수는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함박눈은 소리 없이
푹푹 쏟아진다. 그는 근심스러운 듯이 하늘을 쳐다보며,
 
“눈이 오는데…….”
 
이렇게 중얼거렸다.
집까지 온 민수는 신발을 부덕부덕하였다.
선비 어머니는 의아한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어디 가시려나요, 뭐?”
 
“음, 저기 돈 받으러.”
 
“아, 뭐 오늘 같은 날에요.”
 
“왜 오늘이 어떤가? 이렇게 함박눈 오는 날이 오히려 푸근하다네.”
 
옆에서 말똥말똥 바라보던 선비는 얼른 일어나 아버지 품에 안기며,
 
“아버지 나두 가, 응.”
 
머리를 갸웃하고 들여다본다. 민수는 딸을 꼭 껴안으며 밥상에 마주앉았다.
그리고 밥을 좀 뜨는 체하고 곧 일어났다.
 
“내 가면 며칠 될 것이니 그 동안 선비 잘 간수하게. 불도 뜨뜻이 때고.”
 
“눈 오는 날 가실 게 뭐야요……
   다른 사람의 몸은 몸이 아니고 쇳덩인 줄 아나 베.”
 
선비 어머니는 주인 영감을 눈앞에 그리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 그 사람…… 별소리 다 해.”
 
민수는 눈을 크게 떴다. 선비 어머니는 얼굴이 빨개지며 선비의 손을
어루만진다. 민수는 선비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 본 후에 문을 열고
나섰다. 눈빛에 눈허리가 시큰시큰하였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아내의 인사를 귓결에 들으며 민수는 성큼성큼 걸었다.
한참이나 수굿하고 걷던 그는 선비의 울음소리에 휙근 돌아보니 선비가
눈 속으로 뛰어온다.
민수는 선비를 바라보고 무의식간에 몇 발걸음 옮겨 놓았을 때
선비 어머니는 선비를 붙들어 안으며 우두커니 섰다.
민수는 두어 번 손짓을 하여 들어가라는 뜻을 보이고 돌아섰다.
아까보다 눈은 점점 더 많이 쏟아진다.
함박꽃 같은 눈송이가 그의 입술 끝에 녹아지고 또 녹아졌다.
그때마다 그는 찬 냉수를 마시는 듯하여 가슴이 선뜻하곤 하였다.
길이란 길은 모두 눈에 묻혀 버리고 길가의 낯익은 나무들도 눈송이에
흐리었다. 그리고 그 높은 불타산도 뿌옇게 보일 뿐이다.
민수는 길을 찾을 수가 없어 한참이나 밭고랑으로 혹은 논둑을 밟다가
동네를 짐작하고야 길을 찾곤 하였다.
그리고 눈에 젖었던 신발은 얼어서 대그럭 소리를 내었다.
이렇게 눈 속에 푹푹 빠지며 민수가 간신히 몇 집을 둘러 방축골까지
왔을 때는 벌써 그가 집에서 떠난지 이틀째 되는 황혼이었다.
 
“주인 계시우?”
 
걸레로 한 주먹씩 틀어막은 문을 열고 나오는 주인은 민수를 보자 한층더
얼굴이 허옇게 질린다.
 
“이 눈 오는데 어떻게 여기를…… 어서 들어가십시다.”
 
민수는 방 안으로 들어가니 너무 캄캄해서 지척을 분간하는 수가 없었다.
그는 한참이나 눈을 감고 있다가 가만히 떠보니 숨이 답답해지며 차라리
오지 말았더면…… 하는 후회가 곧 일어난다.
그리고 이 저녁거리나마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참 이 눈 오는데…… 제가 한목 들어가려고 했지마는 너무 오래 빈말로만
   올려서 어디…  … 참 오작이나 치우셨습니까.”
 
주인은 어느 것부터 먼저 말해야 좋을지 몰라 쩔쩔매었다.
 
“여보게 저녁 진지 짓게, 뭐 찬이 어디 있어야지…….”
 
그의 아내는 머리를 내려 쓸며 부시시 일어 나간다.
민수는 정신을 가다듬어 아랫목을 바라보았다. 시커먼 누더기 속에서
조잘조잘하는 소리가 자주 들리며 누더기가 배움하고 열리더니 까만 눈알이
수없이 반들거렸다. 그리고 킥킥 웃는 소리가 난다.
몇 아이나 되는지 모르나 어쨌든 한두 아이가 아님은 즉시 알았다.
이 저녁부터는 바람까지 일었는지 바람소리가 휙 몰려갔다가 몰려온다.
그리고 문풍지가 드르릉드르릉 울리며 눈보라가 방 안으로 스르륵
몰려들었다. 민수는 방 안에 앉았느니보다 차라리 밖에 어떤 토굴 같은 곳이
있으면 그리로 나가서 이 밤을 지내고 싶은 맘이 부쩍 들었다.
그러나 이 밤에 어디가 토굴이 있는지를 모르고 무턱하고 나갈 수도 없어서
맘을 졸이며 앉았노라니 마치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고,
더구나 이 밤새에 몇 사람의 죽음을 볼 것만 같았다.
밥상이 들어온다. 민수는 배고프던 차에, 한 술 떠보리라 하고 술을 드니,
밥이 아니라 죽 이었다. 조죽에 시래기를 넣어서 끓인 것이다.
민수는 비록 남의 집을 살았을지언정, 일생을 통하여 이러한 음식을 먹어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조겻내까지 나서 그의 비위에 몹시 거슬리나
꾹 참으며 국물을 후루루 들이마셨다.
그때 아랫목에서 애들이 벌떡벌떡 일어났다.
 
“엄마 나 밥!”
 
“엄마 나 밥! 응야.”
 
이 모양을 바라보는 주인은 눈을 부릅뜨며,
 
“저놈의 새끼들을 모두 쳐죽여 버리든지 해야지, 정…….”
 
그리고 민수를 돌아보며,
 
“어서어서 많이 잡수시유,
  저놈들은 금시 먹고도 버릇이 그래서 그럽니다그리.”
 
민수는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그리고 술을 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만 술을 놓고 물러앉았다.
 
“왜, 왜 안 잡수십니까, 뭐 자실 것이 되어야지유.”
 
주인은 머리를 벅적벅적 긁으며 상을 밀어 놓았다.
사남매는 일시에 욱 쓸어 일어나며 저 마다 죽그릇을 잡아당기기에
먹지도 못하고 싸움만 벌어졌다.
주인은 벌떡 일어나더니 장죽을 들고 돌아가며 붙인다.
민수는 너무 민망하였다. 그래서 주인을 붙들며,
 
“이게 무슨 일이오니까. 애들이 다 그런 게지유. 놔유, 어서 놔유.”
 
상 귀에서 흐른 죽을, 그중 어린 것이 입을 대고 쭉쭉 핥아 먹는다.
이 꼴을 보는 주인 마누라는 나그네 보기가 부끄러운 듯이 어린애를
붙들어다 젖을 물리고 콧물을 씻는 체하면서 고름끈을 눈에 갖다 대곤 한다.
애써 말리는 나그네의 생각을 함인지,
주인은 씩씩하며 맷손을 놓고 물러앉는다.]
 
“아 글쎄 글쎄, 새끼는 왜 그리 태었겠수.
  이것두 아마 죄지유. 전생에서 무슨 큰 죄를 지고 나서 이 모양인지.”
 
홧김에 때리기는 하고도 그만 억울하고 분하여서 소리쳐 울고 싶은 것을
겨우 참는 모양이다. 못 먹이고 못 입히기도 억울한데 더구나 굶고 앉은
그들을 공연히 때리었구나…… 하는 후회가 일었던 것이다.
이제까지 아우성치고 울던 그들이건만 그런 일은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누더기 속에서 소곤소곤하고는 킥킥 웃는다.
민수는 그날 밤잠 한 잠 못 자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되풀이하였다.
그리고 남의 일이라도 남의 일 같지를 않고 자기의 앞에도 이런 비운이
닥쳐오지나 않으려나 하는 불안이 문풍지를 울리는 바람과 같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렇게 밤을 새우고는 민수는 채 밝기도 전에 일어앉았다.
추운 방에서 자서 그런지 몸이 가뿐치를 않고
아무래도 감기에라도 걸린 것 같다.
 
“몹시 치우시지유?”
 
주인은 마주 일어앉는다. 민수는 얼결에,
 
“네…… 뭐.”
 
이렇게 분명치 못한 대답을 하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리고 담뱃갑을 주인 앞으로 밀어 놓았다. 주인은 황송한 듯이 머리를
숙이며 담배를 붙여 문다. 민수는 담배를 한 모금 쑥 빨며 무심히 들으니
벌써 아랫목에서 소곤소곤하는 소리가 들린다.
민수는 얼핏 머리를 들어 아랫목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분간치 못할 컴컴한 속으로 그침없이 조잘거리는 이 소리.
지금쯤은 우리 선비도 깨어서 제 어미와 “아부지 어디 갔나?” 하고
조잘조잘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뒤 이어 선비의 얼굴이
저 아랫목 위로 스르르 떠오른다. 
 
“어마이 배고파!”
 
민수는 이 소리가 꼭 선비의 음성 같아서 깜짝 놀랐다.
그래서 무의식간에 담배를 휙 집어 뿌렸다. 그 다음 순간 그 음성이 선비의
음성이 아니라고 부인하면서도 웬일인지 가슴이 짜르르 울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민수는 안타까웠다. 그만 곧 일어나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가 벌컥 일어났을 때 그는 무의식간에 그의 거지 안에서 일 원짜리 지화를
꺼내 가지고 나왔다. 그래서 주인의 손에 쥐어 주었다.
 
“애들 밥 한 끼 해주!”
 
주인은 어리둥절하였다. 그리고 자기 손에 쥐인 것이 돈이라는 것을 깨닫자
칵 쓰러지며 엉 하고 울고 싶었다. 민수는 두 다리가 가늘게 떨리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 순간에 덕호의 성난 얼굴을 똑똑히 보았다. 그는 진저리를
쳤다. 그리고 주인의 붙잡는 것을 뿌리치고 그 집을 나왔다.
간밤 동안에 얼마나 바람이 불었는지 눈이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어
어떤 곳은 눈산을 이루어 놨다. 민수는 신발 소리를 사박사박 내며 분주히
걸었다. 흰눈 위에는 이따금씩 날짐승들의 발자국이 꽃잎같이 뚜렷이 났다.
민수는 속이 불편하였다. 이제 덕호를 만나 뭐라고 말할 것이
난처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리저리 궁리해 보며 혹은,
 
‘이 원만 받았다고 속일까? 그리고 나중에 내 돈으로
  슬그머니 갚더라도…… 그래도 속이느니보다는 바로 말을 해야지,
  주인님도 사람이지, 그 말을 다 하면 설마한들 잘못했다고 할까?
  그렇지는 않겠지.’
 
이렇게 속으로 다투나, 두 가지가 다 시원치를 않았다.
누가 곁에 있으면 물어라도 보고 싶게 안타까웠다. 그러나 마침내는
속이기로 결정하고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히려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쓸데없는 일이었다. 사내자식이 돈 일 원이 무엇이기에……
하며 스스로 꾸짖어도 보았다.
이렇게 망설이며 다투면서 동네까지 온 그는 반가워야 할 이 동네건만
발길이 얼른 들여놓이지를 않았다. 그래서 그는 동구에 멍하니 서서
한참이나 무엇을 생각하다가 들어왔다.
덕호의 집까지 온 민수는 사랑문 앞에서 발을 툭툭 털며 주인님이 사랑에
계시지 않았으면…… 하고 가만히 문을 열었다. 욱 쓸어 나오는 담배 연기
속에서 덕호의 늘 피우는 담뱃내를 후꾼 맡았을 때 그는 머뭇머뭇하였다.
 
“몹시 칩지, 어서 들어와 불 쬐게.”
 
덕호는 머리를 기웃하여 내다본다.
둘러앉은 노인들도 한마디씩 말을 던졌다. 민수는 하는 수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화로를 피하여 앉았다.
덕호는 문갑 위에서 산판을 꺼내 들며,
 
“그래 이번에는 좀 주던가, 방축골 그놈이?”
 
덕호는 그가 너무 미워서 이름도 부르지 않는 것이다.
민수는 얼굴이 빨개지며 머뭇머뭇하다가,
 
“아니유.”
 
“아 그래 그놈을 가만히 두고 왔단 말인가? 사지라도 부러치고 오지.”
 
“뭐, 물 턱이…….”
 
민수는 말끝을 마치지 못하고 푹 숙일 때 상가에 흐르는 죽을 젖 빨듯이
빨아 먹던 어린애가 얼핏 떠오른다. 그리고 그 어두운 방 안이 휙 지나친다.
민수의 늘어진 말에 덕호는 화가 버쩍 났다.
 
“물 턱 없는 놈이 남의 돈을 왜 쓴단 말인가!”
 
소리를 버럭 지른다. 민수는 꿈칠 놀라 조금 물러앉았다.
덕호의 손길이 그를 후려치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래 딴놈들은?”
 
“바 받았습니다.”
 
덕호는 찡그렸던 양미간을 조금씩 펴며,
 
“그래 얼마씩이나 받았는가?”
 
“아마 삼 원…….”
 
민수는 자기 말에 깜짝 놀랐다. “이 원 받았습니다” 하고 말하려던
것인데, 누가 이렇게 시켜 주는지 몰랐다. 다음 순간 그는 모든 것을
바로 말하리라 하고 결심하였다. 두 귀는 무섭게 운다.
 
“모두 이자만 받았네그려…… 그 방축골놈 때문에 일났어!
   아 그놈이 잘라먹으려고 든단 말이어. 받아 온 것이나 내놓게.”
 
민수는 지갑 속에서 돈을 내어 덕호 앞으로 밀어 놓았다.
그의 손끝은 확실히 떨렸다. 덕호는 지전을 당기어 헤어 보더니,
 
“이 원뿐일세……?”
 
의아한 듯이 바라본다. 민수는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의 눈에는 어린애 같은 천진한 애원이 넘쳐흐른다.
 
“저 남성네 어린것들이 굶어…… 굶어 있기에 주, 주었습니다.”
 
마침내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뜩 괴었다.
 
“뭐?”
 
덕호는 순간으로 눈이 뒤집히며 들었던 산판을 휙 집어 뿌렸다.
산판은 민수의 양미간을 맞히고 절거륵 저르르 하고 떨어진다.
 
“이 미친놈아, 그렇게 자선심 많은 놈이 남의 집은 왜 살아. 나가!
  네 집구석에서 자선을 하겠으면 하고 말겠으면 말아라.”
 
돌아앉은 사람들은,
 
“그만두슈, 다.”
 
“글쎄 글쎄, 제가 배가 고파서 무엇을 사먹었다든지,
  혹은 쓸 일이 있어 썼다면야 당연한 일이 아니겠수. 아 이 미친놈은
  터들터들 가서 보행료도 못 받아 처여면서 그런 혼 나간 짓을 하니
  분하지 않우? 이애 이놈 나가라!”
 
덕호는 벌컥 일어나며 발길로 냅다 찬다. 사람들이 아니면 실컷 두드리고
싶으나 체면을 생각해서 꾹 참고 다시 앉았다.
 
“그 돈 일 원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어, 그놈이 내 돈을
  통째 삼키려는 판에 피천 한푼이나 왜 준단 말이냐, 이놈아.”
 
덕호는 이를 북북 갈며 사뭇 죽일 듯이 달려들다가 그만 휙 나가버린다.
돌아앉았던 사람들도 뿔뿔이 가버리고 말았다. 한참 후에 민수는 정신을
차려 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그리고 눈이 텁텁한 듯하여 만져 보니
양미간이 좀 달라진 듯하였다. 
민수는 이렇게 주인에게 매를 맞고 욕을 먹었지만 웬일인지 분하지도
노엽지도 않고 오히려 속이 푹 가라앉으며 무슨 무거운 짐을
벗어 놓은 듯하였다. 그는 얼핏 일어나 그의 집으로 왔다.
그가 싸리문을 열 때 선비 모녀는 뛰어나왔다.
칵 매어달리는 선비를 안은 민수는 뜻하지 않은 눈물이 앞을 가리었다.
그리고 사남매의 모양이 또다시 떠오른다. 오늘은 그들이 무엇을 좀 먹어
보았을까? 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물끄러미 부녀의 모양을 바라보던 선비 어머니는,
 
“미간 새가 왜 그래요?”
 
“왜 무엇이 어떤가.”
 
그는 손으로 양미간을 비벼치며 드러눕는다.
선비 어머니는 이불을 내려 덮으며 어디서 몹쓸 놈을 만나
곤경을 당하였나? 혹은 노독 때문인가? 하고 생각하며,
 
“진지 지을까요?”
 
“글쎄! 미음이나 좀 먹어 볼까…… 쑤게나.”
 
미음 쑤라는 말에 선비 어머니는 남편의 몸이 불편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그래서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려니 민수는 눈을 꾹 감고 돌아눕는다.
그날부터 민수는 자리에서 일지 못하고 몹시 앓았다.
선비 어머니는 온갖 애를 다 썼으나 아무 효험이 없었다.
어떤 날 선비 어머니는 밖으로부터 들어오며 눈등이 빨개졌다.
 
“큰집 영감님한테 산판으로 맞었단 말이 참말입니까?”
 
“누가 그러던고?”
 
“아 뭐, 다들 본 사람들이 그러던데요.”
 
“듣그러워! 그런 말 청신해 가지고 다닐 것이 없느니…… 
  좀 또 맞었다면, 영감님이 나를 미워서 때렸겠나,
  부모 자식 새(사이) 같으니…….”
 
“아니, 글쎄 맞기는 분명합니다그려.”
 
“듣그럽다는데…… 이 사람.”
 
그는 앓는 소리를 하며 돌아눕다가,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눈을 번쩍 뜨고 아내를 바라보았다.
 
“내가 만일 죽게 된다드라도,
   그런 쓸데없는 말을 곧이들어서는 못써…….”
 
민수는 자기 병세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음을 알았다.
그러나 덕호에게서 맞은 것이 원인이 되었다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죽는다는 말이 남편의 입에서 떨어지자, 선비 어머니는 그만
아뜩하여 다시는 두말도 꺼내지 못하였다.
그 후 며칠 만에 민수는 드디어 가고 말았다.
선비가 안타깝게 매어달려 우는 것도 모르고…….
이러한 과거를 되풀이한 선비 어머니는 어느새에 눈물이 볼을 적시었다.
그는 눈물을 씻고나서, 다시 한번 그의 지붕을 쳐다보았다.
주인을 잃어버린 컴컴한 저 지붕! 저 지붕에 남편의 굵다란 손길이
몇천 번이나 돌아갔을까!
싸리문 열리는 소리에, 선비 어머니는 선비가 오는가 하고,
얼른 주저앉았다. 그리고 눈물 흔적을 없이한 후에 이엉을 엮었다.
그러자 방문 소리가 났다. 선비 어머니는 선비가 아니라 딴 마을꾼이
오는가 하여 귀를 기울였다.
 
“어데들 다 갔수?”
 
말소리를 듣고야 선비 어머니는 누구임을 알았다.
 
“아이 어떻게 우리집에를 다 오셔요?”
 
선비 어머니는 곧 일어나며 뒷문을 열었다.
방문을 시름없이 열고 섰는 신천댁은 푸석푸석 부은 눈에 약간 웃음을 띠며,
 
“일하시댔소?”
 
말끝을 이어 한숨을 푹 쉬었다.
 
“어서 들어와요.”
 
신천댁은 방 안으로 들어와 앉으며 뒤뜰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우리 어머니두 지금…….”
 
말을 맺지 못한다. 선비 어머니는 무엇을 의미한 말임을 얼핏 깨달으며
측은한 생각이 불쑥 들었다.
 
“왜 어데가 편치 않으세요?”
 
“선비 어머니, 난 내일 그만 우리집으로 갈까 봐…….”
 
눈물이 샘처럼 솟는다. 선비 어머니는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라
한참이나 멍하니 앉았다가,
 
“그게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난 정말 그 집에선 못살겠어. 글쎄 안 나오는 아이를 어떻게 하라고
  자꼬 들볶으니 글쎄 살겠수?”
 
이제 겨우 이십이 될락말락하는 그의 입에서 자식 말이 나올 때마다
선비 어머니는 잔망하게 보았다. 동시에 측은한 맘도 금치 못하였다.
 
“왜 또 무어라고 허십데까?”
 
“글쎄 요전에 월경을 한 달 건는 것은 선비 어머님도 잘 알지,
  그런데 오늘 아침에 그게 나왔구려!”
 
“나왔어요? 월경도 건너 나오는 수도 있지요.”
 
“글쎄 그 빌어먹을 것이 왜 남의 애를 태우겠소.”
 
신천댁이 월경을 건너니 덕호는 먹을 것을 구해 들이느라 보약을 쓰느라
온 동네 사람들까 지 들볶아 대었던 것이다.
덕호가 하늘같이 떠받칠 때는 웬일인지 밉더니만 오늘 저렇게
시름없이 와서 앉은 것을 보니 측은도 하고 우습기도 하였다.
 
“아니 이제 날 테지, 벌써…… 글쎄.”
 
“그러기 말이에요. 내 나이 삼십이 됐소, 사십이 됐소.
  글쎄, 그 야단을 할 턱이 뭐겠수.”
 
신천댁은 한숨을 쪽 쉬더니,
 
“난 내일 가겠수, 자꾸 가라니깐 어떡해요.”
 
“그게야 영감님이 일시 허신 말씀이겠지요.”
 
그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고 말소리를 낮추어,
 
“요새 영감님이 간난네 집에를 단긴다우.”
 
선비 어머니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삼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며칠 동안 어머니가 가슴앓이병으로 앓아누워서,
선비는 큰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어머니 곁에 꼭 마주앉아 있었다.
아직도 이 집에는 남포등을 쓰지 못하고 저렇게 접시에 들깨 기름을 부어
쓰는 것이다. 불꽃은 길게 끄름을 토하며 씩씩히 올라가다는 문바람에
꺼풋꺼풋하였다.
선비는 어머니가 좀 잠이 든 듯하여 등불 곁으로 왔다.
불빛에 보이는 그의 타오르는 듯한 볼은 한층더 빛이 났다.
그는 무엇을 생각하느라 물끄러미 등불을 바라보다가 부시시 일어나서
윗방으로 올라간다. 한참 후에 그는 바느질 그릇을 들고 내려와서
 등불을 마주앉으며 일감을 들었다.
 
“아이구!”
 
하는 신음소리에 선비는 바느질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어머니, 또 아파?”
 
선비 어머니는 폭 꺼진 눈을 겨우 뜨며,
 
“물 좀 다우.”
 
“어머니, 물을 자꾸 잡수면 안 된대.”
 
선비는 어머니 곁으로 가며 들여다보았다.
오래 앓은 까닭인지 무슨 냄새가 좀 나는 듯하였다.
 
“이애 좀 줘!”
 
조금 더 크게 소리친다. 선비는 거의 울듯이 애원을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듣지 않고 소리소리치다가 일어나려고 머리를 든다.
선비는 할 수 없음을 알고 부엌으로 나와서 물을 끓여 가지고 들어왔다.
김이 펄펄 올라가는 것을 본 그의 어머니는,
 
“누가 그 물 먹겠다니, 잡년의 계집애, 어서 찬물 다오…….”
 
“아이 어머니…….”
 
그는 어머니를 붙들고 물을 입에 대어 주었다.
선비 어머니는 좌우로 머리를 흔들다가 마침내 뜨거운 물을 몇 모금
 마시고 도로 누웠다.
 
“이애.”
 
한참 후에 어머니는 선비를 보며 이렇게 불렀다.
 선비는 또다시 일감을 놓고 곁으로 갔다.
 
“어제 꿈에 너의 아버지를 만났구나. 그런데 어떻게 반갑지도 않고,
  그리 싫지도 않고, 그저 전에 살림하고 살던 때라구 하는데……
  너의 아부지가 너를 업구서 어데로 자꾸 가두나.
  그래서 내가 따라가면서 어델 가느냐 물어도 말두 안 하고 가겠지……
  그게 무슨 꿈일까.”
 
선비는 새삼스럽게 아버지의 얼굴이 휙 떠오른다. 그러나 아버지의
그 얼굴은 분명치를 않고 안개 속에 묻힌 것같이 어림해 보일 뿐이다.
그는 어머니를 보았다. 그 찰나에 어머니는 확실히 아버지 환영을 보는
모양이다. 선비는 소름이 쭉 끼치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선비는 어머니를 흔들며 다가앉아 어머니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어머니는 눈을 치뜨고 천장을 바라본다.
 그 무서운 눈을 굴려 딸을 보았다.
 
“왜?”
 
선비 어머니는 딸을 보자 흑흑 느껴 운다. 그리고 입술을 풀풀 떨며,
 
“너를 어서 임자를 맡겨야…… 헐, 헐 터인…….”
 
어머니 입에서 또렷하게 말이 흘러나올 때, 그는 안심을 하였다.
그리고 사람이 죽어지면 아무리 부모라도 무서워진다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에 싸리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므로, 선비는 얼른 문 편으로 바라보았다.
방문이 열리며 덕호가 들어온다. 선비는 놀라 일어났다.
 
“아직도 아픈가, 그거 안되었군.”
 
덕호는 문 안에 선 채 선비 어머니를 바라보며 걱정을 한다. 선비 어머니는
덕호임을 알자, 일어나려고 애를 쓴다. 선비는 곁으로 가서 부축을 하였다.
 
“어서 눕지, 어서 눠…… 무엇 좀 먹었니?”
 
선비를 바라보았다. 선비는 머리를 조금 드는 체하다가 도로 숙였다.
 
“아무것도 못 잡수시어요.”
 
“허, 거 정 안되었구나. 우리집에 꿀이 있니라.
   그것을 좀 갖다가 물에 타서 먹게 하여라.”
 
아무것이나 좀 먹어야지, 되겠니.”
 
덕호는 담배를 피워 물며 앉으려는 눈치를 보이더니, 
 
“원 저게 뭐란 말인구, 저 등을 쓰구야 답답해서 어찌 산단 말이냐.”
 
덕호는 지갑을 내어 오 원짜리 지화를 한 장 꺼내어서 선비 앞으로 던져
주었다. 선비는 꿈칠 놀랐다. 그때 별안간 방문이 바스스 열렸다.
그들은 놀라 바라보았다. 신천댁을 내쫓고 그 후를 이어 들어온 덕호의
작은마누라인 간난이였다. 간난이는 문을 열기는 하고도 차마 들어오지
못하고 머뭇머뭇하고 섰다. 덕호는 간난이를 노려보았다.
 
“왜 와? 응…… 그 문 여는 법이 어서 배운 법이야. 왼상것 같으니.
  사람의 집에 사람 다니는 법이 어디 그렇담.”
 
이 모양을 바라보는 선비네 모녀는 뭐라고 말해야 그들의 불평을 완화시킬지
몰랐다. 그래서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선비 어머니는,
 
“어서 들어와요.”
 
“뭘 하러 들어와, 어서 가! 계집년의 문 여닫는 법이 그런 법이
  어디 있담! 어서 당장 못 가겠니!”
 
주먹을 부르쥔 덕호는 눈을 부릅뜬다. 선비는 얼결에 일어났다.
 
“앗으셔요, 참으셔요.”
 
간난이는 얼굴이 빨개지며 밖으로 뛰어나간다.
덕호는 문을 쿡 닫고 들어왔다. 그리고 지화를 보며,
 
“아, 고런 망상시러운 것이 어디 있담…… 어서 넣어 둬라.
  그리고 내일은 저 등도 갈고, 의원도 좀 오래서 뵈지,
  응 이애 내 말 들었니?”
 
선비 어머니는 선비를 꾹 찔렀다. 그제야 선비는,
 
“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선비는 그 돈 집을 것이 난처하였다. 그렇다고
그 돈을 도로 물리는 수는 없는 터이고…… 하여 망설망설할 때,
선비 어머니는 그 돈을 집어 딸의 손에 쥐어 주었다. 선비는 마지못해서
그 돈을 받아 이불 아래에 쑥 쓸어 넣었다.
덕호는 더 섰기가 무엇하여 돌아서며,
 
“내일 꿀도 잊지 말고 가져와.”
 
“네.”
 
그의 어머니가 대신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선비를 꾹 찌르며 문 밖까지
따라 나가라는 뜻을 보였다. 선비는 부시시 일어나서
 덕호의 뒤를 따라 싸리문턱까지 나갔다.
 
“안녕히 가세요.”
 
“오, 내일은 집에 들어왔다가 가거라.”
 
“네.”
 
덕호가 문 밖을 나서자 선비는 곧 싸리문을 지치고 들어왔다.
웬일인지 간난이가 다그쳐 들어오는 것 같아서 공연히 숨이 가빴다.
선비는 어머니 곁으로 앉으며,
 
“어머니, 간난이가 어째 왔을까?”
 
그의 어머니도 지금 그것을 생각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글쎄…… 아이구 가슴이 또 치미누나.”
 
선비 어머니는 얼굴을 찡그리고 아구구 소리를 연발한다.
선비는 어머니의 허리를 쓸면서 아까 간난이가 돌연히 나타나던 것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평생 가야 오지 않던 그들이 별안간 무슨 생각을 하고
우리집에를 왔을까? 어머니의 병 때문일까, 혹은 무슨 다른 일이 있음인가?
암만 생각해도 그들이 하나도 아니요 둘씩 왔다가 가는 것은 이상스러웠다.
간난이는 선비의 둘도 없이 친하던 동무였다.
그러나 덕호의 작은집으로 들어가면서부터는 웬일인지 그들의 사이는
벌어졌다. 그래서 피치 못하여 마주치게나 되면 눈웃음으로 인사를 건네고
말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동무였던 그를 하루 아침 사이에 상전으로 섬겨야
할 터이니 그것이 싫다는 것보다도 오히려 어려웠던 것이다.
한참이나 신음하던 어머니는 가슴이 좀 내려간 모양인지 가만히 있다.
선비는 이불을 덮어놓고 나서 등불 앞으로 왔다. 그래서 바느질감을 드니
어쩐지 속이 수선거리고 아까와 같이 일이 되지를 않았다.
그는 그만 일감을 착착 개어 놓으며 멍하니 등불을 바라보았다.
 
“남포등을 사다가 불을 켜라지…….”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아까 오 원짜리 지화를 던져 주던 덕호의 얼굴을
다시금 그려보았다. 그리고 이때까지 볼 수 없던 그의 후한 마음!
그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이때껏 느껴 보지 못한 어떤 불안을 가슴이 답답하도록 느꼈다.
그는 어머니를 돌아보며,
 
“어머니.”
 
하고 부르니 아무 대답이 없다. 그리고 약간 코고는 소리가 가늘게 들린다.
가슴이 내려간 틈에 어머니는 저렇게 잠을 자는 것이다.
그는 얼결에 어머니를 불러 놓고도 어째서 그가 어머니를 불렀는지 꼭
집어낼 수는 없었다. 그는 물끄러미 어머니의 핏기 없는 얼굴을 바라보며
이불 속에 아까 넣어 둔 오 원짜리 지화를 생각하였다.
따라서 뜻하지 않은 한숨이 폭 나왔다.
선비는 어실어실해서 그만 일어나고 말았다. 어젯밤 잠을 못 잔 탓인지
골머리가 띵하니 아팠다. 어머니의 아픔도 아픔이려니와, 어젯밤 돌연히
나타난 덕호와 간난의 행동이 수상스러워서 한 잠 못 잤던 것이다.
 
“어머니, 물 데워서 손발 좀 씻어 올릴까요?”
 
“그래.”
 
간신히 대답한 어머니는 “아이구!” 하며 돌아눕는다.
 선비는 어머니 곁으로 가서,
 
“아직도 아파? 자꾸.”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음음” 하고 신음할 뿐이다.
그는 이불을 꼭 덮어 준 후에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날은 채 밝지 않았다. 그는 멍하니 어젯밤 일을 다시금 되풀이하며
가만히 부엌문을 열었다. 김치 시어진 내가 훅 끼친다. 그는,
 
“김치는 다 시어지눈.”
 
이렇게 중얼거리며 앞뒷문을 활짝 열어 놨다.
그가 솥에 물을 붓고 불을 살라 넣을 때 누가 싸리문을 흔든다.
순간에 선비는 간난의 얼굴이 휙 지나친다. 그래서 그는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누가 이 새벽에 올까?
마침내 싸리문이 찌걱 하고 열리는 소리가 난다.
 
“거 누구요?”
 
선비는 부엌 문턱에 서서 내다보았다.
그때 선비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질겁을 하여 방으로
뛰어들었다. 어머니도 놀랐는지 돌아보며,
 
“왜 그러냐, 응?”
 
선비는 어머니 곁으로 가서 문 편을 바라보며,
 
“어떤 사나이가 싸리문을 열고 들어와.”
 
어머니는 이 말에 도적이 드는가 하여 벌컥 일어나려다가 도로 쓰러지며,
 
“그거 누구냐? 응, 누구야?”
 
목청껏 소리친다. 문 밖에서 머뭇거리던 사나이는,
 
“아저머니, 내유.”
 
“응, 내가 누구란 말이야, 이 새벽에.”
 
그의 음성을 분간하여 짐작하려나 도무지 들어 보지 못하던 음성이다.
그는 마침내 방문을 부시시 열었다. 그들은 뛰는 가슴을 진정하며
바라보았다. 아직도 컴컴하므로 분명치는 않으나 그 윤곽과 키를 짐작하여
첫째인 것을 알았다.
그들은 뜻하지 않은 첫째임에 더한층 놀랐다. 그리고 속으로는
저 부랑자놈이 누구를 또 어쩌려고 이 새벽에 왔는가 하니
가슴이 후닥닥 뛰었다.
 
“응, 자네가 어째서 이 새벽에 왔는가?”
 
“아저머니가 아프시다기 저 소태나무 뿌리가 약이라기에 가져왔수.”
 
그의 음성은 차츰 입 속으로 숨어들고 있었다.
이 말에 그들 모녀는 적이 안심하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의문이 뒤범벅이 되어 돌아가고 있다.
 
“아심찮으이, 원…….”
 
방 안으로 들여놓는 소태나무 보자기를 보며 선비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는 보자기를 들여놓고는 곧 돌아서 나간다. 선비 어머니는,
 
“잘 다녀가게.”
 
그의 신발 소리가 멀리 사라진 후,
 
“아 그놈, 또 하는 짓이…….”
 
선비 어머니는 선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렇게 혼자 하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 막연하나마 선비로 인하여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불쑥 들어, 어서 선비를 처치 하여야겠다는 생각이 한층더
강하여진다.
방 안은 활짝 밝았다. 무섭게 해어진 보자기 사이로 금방 캐온 듯한
싱싱한 소태나무 뿌리가 삐죽삐죽 나와 있었다. 선비는 무서워서 깜작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렸을 때 싱아 빼앗기던 생각까지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이애, 저것 어디 감추어 둬라. 누가 보나다나 해두……
   그 부랑한 놈이 그게 웬일이야?”
 
선비 어머니는 생각할수록 이상하였다. 그리고 일종의 공포까지 느꼈다.
그만큼 첫째네 모자는 이 동네서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하였던 것이다.
더구나 첫째는 술 잘 먹고 사람 잘 치기로 유명하였던 것이다.
선비는 어머니의 말에 어딘가 모르게 섭섭함을 느꼈다. 동시에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슬픈 생각이 소태나무보를 싸고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그의 이러한 맘이 무엇 때문인지 풀 수가 없었다.
그는 어머니가 자리에 눕는 것을 보고야, 소태나무 보자기를 들고 윗방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문 앞에 다가서며,
이건 밤에 캐온 겐가? 잠두 못 자고…… 이렇게 생각하며,
아까 문 밖에 섰던 첫째의 얼굴을 다시금 그려 보았다.
그가 무엇 때문에, 왜 이것을 가져왔을까? 그때 그의 볼이 화끈 달며
무서움이 온몸에 흠씬 끼친다. 그는 무의식간에 소태나무보를 홱 던졌다.
그리고 무엇이 다그쳐 오는 것처럼 달아 내려왔다.
며칠 후 선비 어머니는 마침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덕호의 주선으로 어머니의 장례를 무사히 치르어 낸 선비는 아주 덕호의
집으로 옮겨 오게 되었다. 그래서 안방 맞은편 방 옥점이(덕호의 딸) 있던
방을 제 방으로 정하고 있었다.
덕호의 부부는 선비 어머니가 살았을 때보다 선비를 한층더 귀여워하고
측은히 생각하였다. 더구나 선비가 가사에 막히는 것이 없이 능한 까닭에
옥점 어머니는 선비를 수족같이 알아서 집안 살림을 전수이 밀어 맡기었다.
옥점 어머니는 장죽을 물고 안방에서 나오며 마루 걸레질하는 선비를
보았다. 그리고 담뱃대를 입에서 뽑으며,
 
“그것은 할멈을 시키고 너는 옥점의 옷을 하여라.”
 
부엌 편을 향하여,
 
“할멈, 마루 걸레질하우.”
 
선비는 걸레를 대야에 넣고 부엌으로 들어가서 손을 씻고 나온다.
옥점 어머니는 안방에서 옷 마른 것을 가지고 나오며,
 
“이애, 요새 서울서는 모두 옷을 작게 입는다더라.
   이것을랑 아주 작게 하여라.”
 
선비는 일감을 받아 가지고 재봉침에 마주앉았다. 그리고 약간 기계를
수선한 후에 일을 시작하였다. 한참씩 재봉침 바퀴를 굴려 나가다가
뚝 끊으며 눈결에 보면 할멈은 씩씩 하며 마루 걸레를 치다가 어려워서
멍하니 앉아 있다. 그때마다 선비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마루 걸레 치기가 저렇게 힘들까!”
 
옥점 어머니의 호통에 할멈은 꿈칠 놀라 다시 걸레질을 한다.
옥점 어머니는 할멈의 걸레치는 것을 쏘아보며 늙은 것들은 저렇게 굴고
젊은 것들은 말 잘 듣지 않고, 어린것을 두어야 좋담, 이렇게 생각하였다.
마침 덕호가 들어온다. 옥점 어머니는 헬금 쳐다보았다.
덕호가 첩네 집에만 묻히어 있는 까닭이다.
 
“아니 당신도 우리집에 올 줄 아우?”
 
덕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옥점 어머니를 노려보았다.
 
“저년 때문에 우리집에 무슨 일이 나구야 말 테야. 에이 보기 싫어서!”
 
재봉침을 굴리는 선비의 뒷모양을 흘금 바라보며 덕호는 마루로 올라왔다.
 
“옥점이가 아프다고 편지했어…… 집에서 저년이 생긴 흉조를 다 부리고
  있으니 그런 일이 안 날 탁이 되나?”
 
편지를 거지에서 꺼내어 휙 팽개친다.
옥점 어머니는 비상히 당황하여 편지를 주워 한참이나 들여다 보다가,
 
“어디 좀 똑똑히 보우, 흘려 써서 난 잘 모르겠수.
    어데가 아프다고 했수?”
 
덕호는 아내의 주는 편지를 받아 읽어 들렸다.
옥점 어머니는 금시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아이고 저를 어쩌면 좋우. 내 글쎄 요새 며칠 꿈자리가 사납더니
  저 모양이구려. 내가 갈까요?”
 
“자네가 가서 뭘 알겠나, 내가 가야지. 어서 펄펄 옷 준비를 해.”
 
어느 사이에 부부의 노염은 풀어지고 말았다.
옥점 어머니는 안방으로 들어가며,
 
“이애 그것은 그만두고 이걸 해라. 그리고 할멈은 어서 숯불 좀 피우.”
 
선비는 하던 일감을 착착 개어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걸 펄쩍 동정을 달아…… 언제 이제 떠날 차가 있수?”
 
기웃하여 들여다보는 덕호를 쳐다보았다.
 
“차가, 웬 차가, 자전거로 읍까지 가면 그게서야 떠날 차가 있겠지.”
 
선비는 동정을 시침하며 옥점의 그 둥글둥글한 눈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어디가 아픈지는 모르나 이렇게 집에서 걱정해 줄 아버지 어머니를
가진 옥점이가 끝없이 부러웠다.
그리고 어디가 몹시 아파도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 줄 사람조차 없는
자기의 외로운 신세가 새삼스럽게 더 슬펐다.
 
“나 서울 떠나면 선비는 아랫집 가서 자게 하여라.”
 
“어딜 누가 가는 게요, 선비를 왜……?”
 
옥점 어머니는 말을 중도에 끊으며 당장에 뾰로통해진다.
 
“아, 저년이 길 떠나랴는데, 웬 방정을 저다지 떨어. 이애 이년아…….”
 
턱을 철썩 받친다. 선비는 근심스러운 듯이 쳐다보았다.
덕호는 흘금 선비를 보며 물러앉았다.
 
“글쎄 저런 맥힌 년이 어디 있겠니.”
 
옥점 어머니는 뭐라고 대답을 하려다가 그만 참았다.
검정이가 쫓기어 들어오며 컹컹 짖었다.
중대문이 열리며 옥점이가 들어온다.
 
“어머니!”
 
옥점 어머니는 딸의 음성에 질겁을 하여 뛰어나갔다.
그리고 그의 목을 얼싸안고 목을 놓아 울었다. 옥점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낯 모를 양복쟁이는 모녀를 바라보며 머뭇머뭇하고 섰다.
덕호는 마루 위에 서서,
 
“아니 이게 웬일이냐, 언제 떠났느냐. 전보를 치고 올 것이지,
   아프다더니……?”
 
옥점이는 달려와서 덕호의 손을 쥐며,
 
“아버지, 저이가 우리 학교 선생님의 자제인데, 저 몽금포에 해수욕
  오던 길에 나를 만나서 그래서 우리집에 잠깐 들러 가시라고 해서
  오셨다우.”
 
덕호는 처음엔 웬 양복쟁인가 하고 적지 않게 불안을 가졌으나 자기 딸이
배우는 선생님의 아들이라고 하니 퍽으나 안심되었다.
옥점이는 양복쟁이를 바라보며,
 
“우리 아버지여요.”
 
생긋 웃었다. 양복쟁이는 머리를 번쩍 들며 모자를 벗어 들고 덕호의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인사를 하였다.
 
“이렇게 다 오셔야 만나 보지유. 어서 들어오시우.”
 
덕호는 앞을 서서 들어간다. 그들은 뒤를 따랐다. 옥점 어머니는 옥점의
앞에 서서 들어가는 양복쟁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나도 저런 아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되었다.
 
“아가, 어디 아프댔니? 아버지가 방금 너한테 가시랴댔다.”
 
옥점 어머니는 마루에 올라서며 이렇게 물었다.
 옥점이는 얼굴을 좀 붉히는 듯하면서,
 
“어머니두 밤낮 아기, 아가…… 그게 무슨 말씀이야요.”
 
그들은 일제히 웃었다. 옥점이는 아버지와 양복쟁이를 번갈아 보았다.
 
“아버지, 나두 몽금포 갈 테야요.”
 
덕호는 옥점의 얼굴빛을 자세히 살피며,
 
“어디 아프다는 것은 좀 나으냐. 네 몸만 든든하거던 아무 데라도 가렴.”
 
옥점이는 생긋 웃으며 양복쟁이를 쳐다보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머니, 선비가 내 방에 와서 있다구?”
 
“그래…….”
 
“애이…… 난 몰라, 난 어데 있으라누.”
 
금시 새침을 뗀다. 덕호는 옥점이를 보며, 이런 때에 옥점이는 제 어미와
어쩌면 그다지도 꼭 닮았는지…… 하였다.
 
“이애야, 그럼 선비는 이 방에 있게 하자꾸나.”
 
덕호는 웃으며 양복쟁이를 보았다.
 
“저것이 아직도 어린애같이 굽니다그리, 하하.”
 
양복쟁이도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이 집에서 옥점이를
 어떻게 귀여워하는 것을 잠시간이라도 알 수가 있다.
 
“선비야, 점심 해라.”
 
어머니 말에 옥점이는 벌떡 일어나며,
 
“정말 선비가 우리집에 와 있수, 어디?”
 
뛰어나가는 옥점이는 건넌방 문 앞에서 선비와 꼭 만났다.
 
“선비야 잘 있었니?”
 
선비는 옥점의 손을 쥐려다 물큰 스치는 향내에 멈칫하였다.
그러자 두 볼이 화끈 다는 것을 느꼈다.
 
“애이, 선비 너 고왔구나, 어찌면 저렇게…….”
 
옥점이는 무의식간에 흘금 뒤를 돌아보았다. 안방의 세 사람의 눈이 이리로
쏠린 것을 보았을 때 이때껏 느껴 보지 못한 질투 비슷한 감정이
그의 눈가를 사르르 스쳐가는 것을 느꼈다.
따라서 그의 얼굴까지 화끈 달았다. 옥점이는 냉큼 돌아섰다.
선비는 머리를 푹 숙이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할멈은 김칫감을 다듬다가 선비를 쳐다보며,
 
“아니 그 사내 사람은 누군고?”
 
시집도 안 간 처녀가 남의 사내와 같이 다니는 것이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
 
“모루지요.”
 
아까 옥점이가 그의 아버지에게 양복쟁이를 소개하던 것을 얼핏 생각하였다.
 
“점심 하래요.”
 
“뭐 점심을……? 밥이 가뜩한데 웬 밥을 또 하래 응.
  그 사내를 해 먹이려는군.”
 
선비는 솥을 횅횅 가시며 옥점의 분 바른 얼굴과 양장한 몸 맵시를
생각하였다. 그리고 화로에서 피어나는 숯불을 보았다.
옥점 어머니가 내다보며,
 
“이애, 닭 두 마리 잡고 해라.”
 
“네.”
 
옥점 어머니는 이렇게 이르고 나서 들어갔다. 훌훌 하는 가벼운 소리에
선비는 머리를 번쩍 들었다. 제비 한 마리가 부엌 천장을 돌아, 살대같이
그 푸른 하늘을 향하여 까맣게 높이 뜬다. 선비는 한숨을 가볍게
몰아쉬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저 하늘을 보는 듯하였다.
 
“이애, 닭을 두 마리나 잡으라지?”
 
할멈은 아궁에 불을 살라 넣으며 선비를 쳐다본다.
그리고 눈가로 가는 주름을 잡히며 웃는다. 그는 언제나 닭을 잡게 되면
살을 다 바른 닭의 뼈를 먹기 좋아하였다.
꼬꾸댁! 꼬꾸댁! 닭 우는 소리에 선비는 놀라서 물 묻은 손으로 행주치마에
씻으며 뒷문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가 허청간까지 달려오니, 닭은 꼬꾸댁
소리를 지르며 둥우리 안에서 돌아가다가, 선비를 보고 푸르릉 날아
내려온다. 뒤이어 닭의 똥 냄새가 그의 얼굴에 칵 덮씌운다.
그리고 닭의 털이 가볍게 일어난다.
선비는 기침을 하며 섰다가, 닭이 없어진 후에 둥우리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제 금시 닭이 낳아 논 달걀이 선비를 보고 해쭉 웃는 듯하였다.
그는 상긋 웃으며 달걀을 둥우리 안에서 집어내었다.
 아직도 달걀은 따뜻하다.
 
“이전 마흔 알이지.”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부엌으로 나왔다.
유서방은 풋병아리 두 놈을 잡아 목에 피를 내어 가지고 들어오다가 선비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
 
“달걀 또 낳았니?”
 
“네.”
 
선비는 이 따뜻한 달걀을 누구에게든지 보이고 싶어 쑥 내밀었다.
 
“쟨 달걀을 여간 좋아하지를 않어.”
 
할멈은 유서방이 들고 들어온 닭을 뜨거운 물에 쓸어 넣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할머니, 이것까지 하면 지금 마흔 알이야요.”
 
“그래 좋겠다! 그까짓 것 그리 알뜰하게 모아서 소용이 무언가.”
 
할멈은 가만히 말하였다. 선비도 이 말에는 어쩐지 가슴이 찌르르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이고 또다시 달걀을 들여다보니 볼수록 귀여웠다.
선비는 소리 없이 광문을 열고 들어갔다. 곰팡이 냄새가 훅 끼친다.
그는 독 위에서 달걀 바구니를 내려 들여다보았다. 똑같은 달걀이 바구니에
전과 같이 그뜩하였다. 그는 들고 들어간 달걀을 조심히 올려놓으며
“마흔 알이지” 하고 다시 한번 더 뇔 때, 문틈으로 비쳐 들어오는 광선은
그의 손가락을 발갛게 하였다. 그는 바구니를 쓸어 보고 부엌으로 나왔다.
그리고 닭의 털을 뽑는 할멈 곁에 앉았다.
그들이 점심을 다 해서 퍼들이고 부뚜막에서 밥을 먹을 때 덕호가 들어왔다.
 
“선비야, 안방으로 들어가 먹어라, 응.”
 
선비는 일어나며,
 
“좃습니다.”
 
“아, 왜 말을 안 들어. 어서 가지고 들어가 옥점이와 같이 먹지.”
 
너무 서두는 바람에 선비는 술을 놓고 말았다.
덕호는 암만 말해야 쓸데없을 것을 알고,
 
“아 그전에도 부엌에서만 먹었니?”
 
이렇게 중얼거리며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무어라고나 하는지,
옥점 어머니의 쨍쨍 하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애는 밤낮 그 모양이야 말요, 해야 들어야지요.
  원체 질기기가 쇠가죽 이상인데.”
 
선비는 얼굴이 화끈 달았다. 그리고 닭의 뼈나마 빨아 먹은 물이
도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선비가 설거지를 마치고 건넌방으로 건너갈 때 옥점 어머니가 마루에 섰다.
 
“이전 그 방 임자가 왔으니 넌 이전 할멈과 있든지 나와 있든지 하자.”
 
옥점이가 방에서 툭 튀어나왔다.
 
“어서 그 방 좀 내다구. 그 방의 그게 모두 뭐냐?
  웬 보따리가 그리 많아. 아이, 되놈의 보따리 같데, 호호…….”
 
옥점이는 양복쟁이를 돌아보며 이렇게 웃었다. 선비는 귀밑까지 빨개지며
건넌방으로 왔다. 그리고 봇짐을 모두 한데 싸며 옥점의 하던 말을 다시금
되풀이하였다. 그리고 어디로 이 봇짐을 옮길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안방으로 옮기자니 옥점 어머니와는 같이 있기가 싫고 할멈 방으로
옮기자니 그 방은 몹시 좁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그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때에 그는 어머니와 그가 살던 아랫마을 집이 문득 생각히었다.
비록 초가이나 어머니와 그가 살던 그 집! 그는 불시에 그집이 보고 싶었다.
 
‘그 집에 누가 이사해 왔는지 몰라?’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다시 봇짐을 보았다.
그리고 부시시 일어나며 좌우 손에 봇짐을 들었다.
 
 

“후덥다. 이거 소리나 한마디 하게나.”
 
키 작기로 유명한 난장보살이라는 별명을 가진 자가 키 큰 자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고 호미로 땅을 푹 파올리며 가라지를 얼핏 뽑아
던졌다. 그들은 이렇게 별명을 불러 가며 잡담을 늘어놓곤 하였던 것이다.
 
“응 소리…….”
 
“싱앗대야, 어서 해라! 이놈아, 이거 살겠니.”
 
난장보살이 키 큰 자의 등을 후려쳤다. 그 곁에서 씩씩하며 김을 매는
 첫째는,
 
“소리 한마디 해유.”
 
하고 돌아보았다. 난장보살은 흘금 쳐다보며,
 
“이애, 이 곰도 소리를 들을 줄 아니.”
 
술취하기 전에는 첫째는 누구와 말 한마디 건네기를 싫어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술만 취하면 남이 알아도 듣지 못할 말을 밤새껏 저 혼자
중얼중얼하곤 하였다.
첫째는 난장보살을 보며 픽 웃었다.
그는 대답 대신에 늘 이렇게 웃는 것이 버릇이다.
앞산에서 뻐꾹! 뻐꾹! 하는 소리가 난다. 싱앗대는 앞산을 흘금 바라보더니,
 
“뻐꾹새만 운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목에 핏줄을 불끈 일으키며 노래를 부른다.
 
흙이야 돌이야
알알이 골라서
임 주고 나 먹으려
가을 묻었지
 
길게 목청을 내뽑았다. 땃버리라는 별명을 가진 자가 눈을 스르르 감더니,
 
눈에나 가시 같은
장재 첨지네
함석 창고 채우려고
가을 묻었나
 
굽이쳐 올라가는 멜로디는 스러지려는 듯 꺼지려는 듯하였다.
 
“좋다!”
 
난장보살은 호미로 땅을 치며 이렇게 소리쳤다.
그리고 무어라고 형용 못 할 슬픔이 그들의 가슴을 찌르르 울려 주었다.
 
“이거 왜 이리 늦으니, 어서 또 받지.”
 
유서방이 싱앗대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싱앗대는,
 
“너구리 영감! 나 소리하면 술 사줄 테유.”
 
“암 사주고말구…….”
 
첫째는 술 말을 들으니 목이 더 타는 듯하였다.
그리고 뽀얀 탁배기가 눈에 보이는 듯하여 침을 넘겼다.
 
“그만두겠수다. 탁배기 한 잔에 값비싼 소리를…….”
 
“어서 하자.”
 
여럿이 일시에 소리친다. 유서방은 농립을 벗어 부채질한다.
 
“이거 더워서 견디겠나, 어서 소리라도 이어 하게.
  탁배기가 맛없으면 약주라두 사주리.”
 
“이애 이놈아, 소리마디나 하니까 장한 듯하니? 이리 세를 부리고…….”
 
난장보살은 싱앗대의 농립을 툭 쳐서 벗겨 놓았다.
 
“이놈아, 좀 그만 까불어라…… 너 내일 누구네 김매러 가니?”
 
“왜…… 삼치몰래, 삼치몰래 김매러 간다.”
 
“그 밭이 돌짝밭이 돼서 아주 김매기 힘들지.”
 
“그래두 그 밭에 도지가 닷 섬이다!”
 
“결전이야 저편에서 물겠지, 도지가 그렇게 많으니까.”
 
“결전이 뭐가…… 자담한다.”
 
“뭐 자담이야? 너무하구나! 그 밭은 굶고 부쳐야 하겠군.”
 
싱앗대는 이렇게 말하며 유서방을 곁눈질해 보았다. 유서방은 덕호네 집을
살므로, 언제나 그들은 유서방을 꺼리었던 것이다.
난장보살은 침을 탁 배앝으며,
 
“요새 하는 짓이란 놀랄 만하니.”
 
가만히 말하며, 호미 끝에 조가 상할까 하여 얼핏 손으로 조를 싸고 돌며
미츨하니 북돋아 놓았다. 그때 바람이 가늘게 불어와서 좃대를
살랑살랑 흔들어 준다. 멀리서 송아지가 운다. 싱앗대는 목을 늘여,
 
내가 바친 조알은
밤알 대추알
임의 입에 둥글둥글
구르는 조알
 
땃버리는 기침을 칵 하며 호미를 힘있게 쥐었다.
 
장재 첨지 조알은
죽쩡이 조알
내 가슴에 마디마디
맺히는 조알
 
그들은 뜻하지 않은 한숨이 후 나왔다.
 
“이놈들아, 소리를 하는 바에는 좀 속이 시원한 소리를 하지
  그게 무슨 소리냐!”
 
난장보살은 얼굴이 벌개지며 호미를 집어 팽개친다.
그의 머리에는 장리쌀 가져오던 기억이 회오리바람처럼 일어났던 것이다.
그날―--- 덕호네 그 넓은 뜰에는 장리쌀을 가지러 온 소작인들로
빽빽하였다. 한참 후에 덕호가 장죽을 물고 나왔다.
 
“이게 웬 사람들이 이리 많아?”
 
언제나 장리쌀을 내줄 때에 하는 덕호의 말이다.
덕호는 휘 둘러보았다. 돌아선 농민들은 덕호의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해지며 불행히 자기만이 쌀을 못 얻어 가게나 되지 않으려나
하는 불안에 머리를 푹 숙였다. 덕호는 약간 얼굴을 찡그렸다.
그들 중에는 작년 것도 채 갚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허 거정, 그래 농사 지은 쌀들은 다 어떻게 했담.
  아, 저 사람네도 쌀이 없는가.”
 
덕호는 싱앗대를 바라보았다. 싱앗대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네 그저…….”
 
“그거 웬일이야…… 절용해서 먹지 안 하는 모양일세.
  이렇게 가져만 가니 가을에 가서 자네들이 해놓으랴면 힘들지.
  그렇지 않은가?”
 
농민들은 그저 머리를 숙여 들을 뿐이었다.
덕호는 사랑에서 장책과 붓을 들고 나와서, 농민들의 성명을 일일이
적어 놓고 그리고 몇섬 몇 말 가져갈 것까지 꼭꼭 적어 놓았다.
찌꺽 하는 소리에 그들은 바라보니 유서방이 곡간문을 열었다.
그들 중에 몇 사람은 달려가서 조섬을 끌어내어 마개를 뽑고 이미 펴놓았던
멍석자리에 조를 솨르르 쏟아 놓았다.
낯익은 그 솨르르 하는 소리! 그리고 뽀얗게 일어나는 먼지 속에
풀풀 날리는 좃겨!
무의식간에 그들은 우르르 밀려가서 좁쌀을 한 줌씩 푹푹 뜨며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입에 넣고 씹어 보았다.
작년 가을에 자기들이 바친 조알은 모두가 한알 같아서 마치 잘 여문
밤알이나 대추알을 굴려 무는 듯한 옹골찬 맛이 있었는데 이 조알은 어디서
난 것인지 쭉정이 절반으로 굴려 무는 맛이 거분거분하여
마치 좃겨를 씹는 듯하였다.
이때까지 비록 장리쌀이나마 가져가게 된다는 기쁨에 잠겼던 그들은 어디
가서 호소할 곳없는 그런 애석하고도 억울함이 그들의 머리를 찡하니 울려
주었다. 유서방은 멀뚱멀뚱하고 서로 바라다만 보는 농민들을 돌아보았다.
 
“어서 그릇을 가지고 한 사람씩 이리로 나오시우.”
 
그제야 그들은 정신이 들어 한 명씩 앞으로 나갔다.
말에 옮겨 그들의 쌀자루로 솨르르 하고 들어오는 좁쌀 흐르는 소리!
그들의 가슴에다 돌을 처넣은들 이에서 더 아플 수가 있으랴!
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한숨을 후 쉬며 이마에서 흐른 땀을 쥐어 뿌렸다.
그리고 어린애같이 거두고 귀여워하는 좃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순간에 그는 호밋자루를 던진 채 발길 나가는 그대로 어디든지 가고 싶었다.
 
“어서 소리나 또 하자.”
 
유서방이 그들의 침묵을 깨쳤다. 난장보살은 유서방을 흘금 바라볼 때,
그날 쭉정이 좁쌀을 퍼주던 유서방인 것을 새삼스럽게 발견하였다.
 
“여부슈!”
 
난장보살은 얼결에 이렇게 유서방을 보고 소리쳤으나,
그 다음 말은 생각나지 않아서 멀뚱멀뚱 바라만 보았다.
그들은 맡은 이랑을 다 매고 딴 이랑을 돌려 잡았다. 이 고랑에는 조뱅이가
더 많이 우거졌다. 그리고 그 사이에 냉이꽃이 하얗게 덮였다.
싱앗대는 벌컥 일어나서 해를 짐작해 보며,
 
“해지기 전에 이 밭을 다 맬까?”
 
하고 혼자 하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놈아, 이걸 해지기 전에 못 매어.”
 
난장보살이 싱앗대를 올려다보았다.
 
“어서 소리나 해유.”
 
첫째가 그들을 바라본다.
싱앗대는 도로 주저앉으며 감내기〔農夫歌〕를 불렀다.
 
임 따라가세 임 따라가세
정든 임 따라가세
부러진 다리를 찰찰 끌면서
정든 임 따라가세
 
“좋다!”
 
땃버리가 소리치며 흘금 돌아보았다.
 
“이애 저기 뭐가?”
 
난장보살은 벌컥 일어났다.
그들은 일시에 바라보았다. 어떤 양복쟁이와 굽 높은 구두를 신은 계집이
이편으로 온다. 그들은 호기심에 켕기어 벌떡벌떡 일어났다. 유서방은,
 
“여보게들, 그게 우리 주인의 딸 옥점일세.”
 
“뭐야 옥점이! 서울 가서 학당 공부 한다더니 왜 나려왔나?”
 
“아프다고 왔다네.”
 
“아, 그런데 양복쟁이는 누구여?”
 
유서방도 이 물음에는 궁하여 한참이나 생각하다가,
 
“글쎄 나두 잘 몰라!”
 
“이애 서울 가더니 서방을 얻어 가지고 왔구나.”
 
난장보살이 이렇게 말하며 길 옆 밭머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제길 어떤 놈은 팔자 좋아 예쁜 색시 얻구 돈 얻구,
  요놈은 평생 홀아비 되라는 팔자인가.”
 
첫째는 슬며시 돌아본다. 난장보살은 거지 안에서 익모초를 말린 담배를
꺼내서 신문지 조각에다 놓고 두르르 말아서 침으로 붙인 후에 불을 붙여
물며 차츰 가까워 오는 양복쟁이와 옥점이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곁눈으로 흘금 농부들을 보고 나서 지나친다.
그리고 옥점이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무슨 이야긴지 재미나게 하는 모양이다.
 
“이애 사람 죽이누나!”
 
그들이 멀리 간 후에, 난장보살은 담배 꼬치를 집어던지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고 호미를 쥐고 김을 매기 시작하였다.
한참 후에 땃버리는 난장보살을 툭 치며,
 
“이 사람아, 자네 요새 장가가고 싶은 모양이네그리.”
 
“어 그래, 이놈 나 장가 보내 주겠니?”
 
땃버리는 생각난다는 듯이,
 
“아니 유서방, 선비가 지금 덕호네 집에 있지유?”
 
“응 있어 왜?”
 
“그 어디 출가시키지 않으려나유?”
 
“글쎄! 시키겠지.”
 
싱앗대가 눈을 꿈벅하며,
 
“뭘, 모르지, 알 수 있나, 그러구저러구 다…….”
 
말을 끊으며 유서방을 쳐다본다. 유서방은 못 들은 체하고 말았다.
첫째는 그 큰 눈을 번쩍뜨고 그들의 말을 듣다가 한숨을 푹 쉰다.
난장보살은 비위가 동하여 땃버리를 바라본다.
 
“그 좀, 자네 중매할 수 없겠나?”
 
“날 보고 말해 되겠나, 그게야말로 덕호에게 청대야 할 노릇이지.”
 
“아따 이 사람, 그러기에 자네가 중매를 들라는 말이어.”
 
“난 자격이 없네.”
 
“선비는 얼굴도 예쁘지만 맘도 고우니…… 참 그것 신통해…….”
 
유서방은 선비의 자태를 머리에 그리며, 아까 싱앗대가 하던 말을 다시금
생각하였다. 첫째는 여러 사람들이 아니면, 유서방을 붙들고 얼마든지
선비에 대한 말을 묻고 싶었다. 이렇게 잡담을 하며 김을 매던 그들은 해가
꼭 져서야 동네로 들어왔다.
집으로 온 첫째는 저녁을 먹은 후 곧 밖으로 나왔다. 웬일인지 집안에
들어앉았기가 답답해서 못 견딜 지경이다. 그는 어정어정 걸었다.
그리고 아까 난장보살에게서 빼앗아 둔 익모초 담배를 꺼내 붙여 물었다.
한 모금 쑥 빨고 나니, 담배와 같이 향기로운 맛이 없고 맥맥하였다.
 그는 휙 집어 뿌렸다.
 
“이걸 담배라고 다 먹나!”
 
이렇게 중얼거리며 보니 덕호의 집 울 뒤였다. 그는 요새 밤마다 이 집
주위를 한 번씩 둘러 가곤 하였다. 행여나 선비를 볼까 하여 이렇게 오나
한 번도 이 집 주위서 그를 만나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저녁을 먹고 나면,
오늘이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또다시 오곤 하였다.
캄캄한 하늘에는 별들이 동동 떴다. 그리고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모기
쑥내가 약간 코끝을 흔들어 준다. 그는 어디라 없이 멍하니 바라보며 손으로
허리를 꽉 짚었다.
덕호네 집에서 간혹 무슨 말이 흘러나오나 누구의 음성인지 또는 무슨 말을
하는지 분간할 수가 없다. 그저 호호 하하 웃는 웃음소리만은 저 별을
쳐다보는 듯이 또렷하였다. 그는 이렇게 우두커니 서 있으니 아까
집어던지던 익모초 담배나마 생각히었다. 그래서 거지 안을 뒤져 보니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는 입맛을 쩍쩍 다시며 풀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밑이 선뜻하여 다는 속이 한결 시원한 듯하였다. 그때 이리로 오는 듯한
신발 소리가 나므로 그는 두 눈을 고양이 눈처럼 떴다.
가까워지는 신발 소리는 뚝 끊어지며, 울바자 밑에 붙어 서는 소리가
바삭바삭 난다. 그리고 급한 숨결소리가 여자라는 확신을 그에게 던져
주었다.
그는 일어나는 호기심과 아울러 선비가 아닌가 하는 의문에 역시 가슴이
뛰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는 저편 사람에게 자기가 있는 것을
눈치채이지 못하게 하려고 조금씩 뒷걸음질을 하였다.
또다시 신발 소리는 이편을 향하여 오더니 멈칫 선다.
그리고 숨을 호 하고 쉬었다. 따라서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한참이나
우두커니 서 있다. 첫째는 어둠 속으로 어림해 보이는 그의 키와 그리고
몸집을 자세히 훑어보는 순간 선비가 아니냐? 하는 생각이 차츰 농후해졌다.
그는 불과 몇 발걸음 사이를 두고 그립던 선비와 이렇게 마주섰거니 하는
생각이 울컥 내밀칠 때, 무의식간에 그는 몇 발걸음 내디디었다.
신발 소리를 들은 저편은 질겁을 하여 달아난다. 첫째는 이미 내친 걸음이라
그의 뒤를 따랐다. 뛰기로 못 당할 것을 안 계집은 어떤 집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그는 할 수 없이 그 집 나뭇가리 옆에 붙어 서서 계집이 나오기를
고대하였다. 그러나 계집은 한참이나 지나도 나오지 않는다.
그는 의심이 버쩍 들었다. 혹시 선비가 아닌가? 그럼 누구여?
이 밤중에 그 집에 와서 엿볼 사람이 누굴까? 그는 눈을 감고 한참이나
생각하여 보아도 얼핏 짚이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억지로라도 그를
선비라고 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밤은 기어코 선비를 만나 몇 해 쌓아
두었던 말을 다만 한마디라도 건네고 싶었다.
이제 선비를 만나면 뭐라고 할까? 이렇게 자신을 향하여 물어 보았다.
그러나 아무 할 말이 없다. 온 가슴은 선비를 대하여 할 말로 터질 듯한데
막상 하려고 하니 캄캄하였다.
 
 뭐라고 하나…… 너 나하구 살겠니? 하고 물을까? 그것도 말이 안 되었어.
 그러면 너 나 알지? ‘아니, 아니어.’ 
 
그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픽 웃어 버렸다. 그리고 여러 가지 말을
생각하며 그 집 문 편만을 주의하였다.
그때 저편에서 지나가는 듯한 신발 소리가 나므로 누가 이 집 앞으로
지나는가 보다 하여 숨을 죽이고 무릎을 쭈그렸다. 마침 신발 소리가 뚝
그치며 술술 하는 소리를 따라 난데없는 물줄기가 그의 얼굴을 향하여
쏟아진다. 그는 주춤 물러서는 순간, 그것이 오줌줄기라는 것을 깨닫자
그는 벌컥 일어나며 이편으로 다가섰다.
 
“이 자식아, 얻다가 오줌을 누느냐?”
 
뜻하지 않은 사람의 음성에 저편은 꿈찔 놀라서 오줌을 줄이치고 물러선다.
 
“거 누구여?”
 
첫째는 그의 음성에 벌써 누구임을 알았다.
 
“이 자식아, 얻다가 오줌을 누냐?”
 
그제야 개똥이는 첫째인 것을 알고,
 
“아 왜 거게 가 섰느냐? 이 자식아.”
 
첫째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우물쭈물하였다. 개똥이는 앞으로 다가서며,
 
“난 너희 집에 갔댔다.”
 
“왜?”
 
“내일 우리 김 좀 매달라구.”
 
“나 벌써 명구네 김 매주겠다고 말했다야.”
 
“응 명구네…… 거 안되었네, 품 한 명이 꼭 모자란데…….”
 
그때 문소리가 나며 초롱불이 나온다. 그들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두운데 잘 건너가우.”
 
개똥 어머니의 말이다.
 
“네.”
 
첫째는 선비의 음성인가 하였다. 그리고 개똥이가 아니면 쫓아가겠는데,
그럴 수도 없고 해서 머뭇머뭇하고 서 있었다.
초롱불은 첫째를 비웃는 듯이 조롱하는 듯이 까뭇까뭇 숨바꼭질을 한다.
첫째는 가슴이 죄어서 한 발 내디디었을 때,
 
“어마이, 거 누구여?”
 
개똥이가 묻는다.
 
“응…… 너 왜 거게 가 섰니?”
 
개똥 어머니는 이편으로 오는 모양이다.
 
“간난이구나, 그애가 이 밤에 왜 왔을까?”
 
“간난이?”
 
첫째는 놀란 듯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개똥 어머니는 멈칫 선다.
 
“거 누구니?”
 
“나유.”
 
“……응 첫째인가.”
 
“간난이가 뭐 하러 우리집에를 왔어?”
 
“글쎄 말이다, 혹 덕호가 보냈는지?”
 
첫째는 멍하니 마지막 사라지는 초롱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맛 가의 오줌을 씻어 내며 터벅터벅 걸었다.
첫째는 무정처하고 걷다가 다시 덕호의 집 주위를 한 바퀴 돌아서
그의 집으로 왔다. 그러나 방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아서 마당가에서
어정어정 돌아다니다가 나뭇가리 옆에 펄썩 주저앉았다. 훅 하고 끼치는
나무 썩어진 내를 맡으며, 아까 개똥이의 오줌을 받은 기억이 떠올라
무의식간에 그의 손은 이맛가를 만졌다. 따라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울분이 울컥 치미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나뭇가리에 몸을 기대며 고놈의 계집애는 도무지 볼 수가 없으니
웬일이어, 어디 앓지나 않는지? 하고 생각할 때 그의 눈 위에서 빛나던
그중 큰 별 하나가 꼬리를 길게 달고 까뭇 사라진다. 그는 그 별이
사라진 곳을 멍하니 바라보며 선비의 눈등의 검은 사마귀를 생각하였다.
티없이 밝은 얼굴에 빛나는 그 검은 사마귀! 그것은 흡사히 이제 사라진
그 별과 같았다. 그는 한숨을 길게 쉬며 눈을 꾹 감았다.
감으면 감을수록 더 또렷이 나타나는 그 검은 사마귀! 이놈의 계집애를……
하며 첫째는 벌떡 일어났다. 그때 저편으로부터
신발 소리가 났다. 그는 공연히 화가 치받친다.
 
“거 누구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첫째냐? 난 널 자꾸 찾아다녔구나, 여기 있는 것을 모르고……
  왜 거기 가 있냐?”
 
이서방은 헐떡헐떡하면서 첫째의 곁으로 와서 그의 손을 끌고 방으로
들어왔다. 첫째는 일어나는 화를 참으며 씩씩하였다. 이서방은,
 
“첫째야!”
 
부르고 나서 그의 곁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첫째는 귀찮다는 듯이 조금
물러앉으며 벌렁 누워 버렸다. 이서방은 그의 이마를 짚으며,
 
“너 요새 뭐 생각하는 것 있지?”
 
첫째는 얼른 선비를 머리에 그리며, 이서방의 손이 거북하였다.
그래서 손을 물리치며 돌아누웠다. 한참 후에 이서방은,
 
“너 자냐?”
 
“아니.”
 
“너 요새 왜 잠두 안 자고 다니니?”
 
“잠이 안 오니께.”
 
“왜, 잠이 안 와?”
 
“……”
 
뭐라고 말을 하렸으나 입이 꽉 붙고 만다. 이서방은,
 
“첫째야, 네가 내게 숨길 것이 뭐냐, 말하면 내 힘 미치는 데까지는
  힘써 보자꾸나.”
 
이서방도 첫째가 어떤 계집을 생각해서 이렇게 잠도 못 자고 다니는 것을
짐작은 했으나, 어떤 계집인지를 꼭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 계집을 첫째에게서 알아 가지고, 될 수 있는대로 힘써 보자는
것이다. 만일 저대로 방임해 두면 첫째는 불일간에 무슨 병에 걸려들지
않으면 무슨 변이라도 낼 듯싶었던 것이다.
첫째는 언제까지나 잠잠하고 있다. 이서방은 바싹 다가누웠다.
 
“너 어떤 계집을 생각하지, 아마?”
 
첫째는 계집이란 말에 그의 얼굴이 화끈 달며 선비의 그 고운 자태가
스르르 떠오른다. 그는 그만 돌아누웠다.
 
“자자우, 이서방.”
 
말하지 않을 것을 안 이서방은 훗날에 천천히 물어 보리라 하고,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첫째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그 밤을 새우고,
어실어실하여 일어나 앉았다. 그때 안방문이 가만히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첫째는 어떤 놈이 또 와 잤군…… 하고 생각하며 장성한
아들을 둔 그의 어머니의 행동이 끝없이 원망스러웠다.
 
“안녕히 가세요.”
 
“음.”
 
“언제 또 오시겠수?”
 
“글쎄 봐야 알지.”
 
소곤거리는 유서방의 음성이다. 그는 도리어 반가운 생각이 들어
벌컥 일어났다. 그리고 방문을 열었을 때,
 
“너 왜 벌써 일어나니?”
 
이서방이 일어나며 그의 꽁무니를 꾹 붙들었다. 이서방은 첫째가 달려나가서
무슨 행패를 할까 하는 불안에서 이렇게 붙들었던 것이다.
그러자 벌써 첫째 어머니는 문을 지치고 들어온다.
첫째는 그의 어머니를 노려보다가,
 
“어머니!”
 
자거니 하였던 첫째의 음성에 그의 어머니는 놀라 멈칫 섰다.
그리고 첫째가 성이 나서 뛰어나오는 것 같아서 뒤로 비슬비슬 물러섰다.
이서방은 이 경우에 모자의 불평을 어떻게 완화시킬지 몰라 한참이나
생각하였다. 문을 열고 아무 말 없이 그의 어머니를 노려보던 첫째는
방문을 쾅 닫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제야 이서방도 물러앉는다.
 

                                                        ***** 이어서  ( 4 중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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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문제(4 중 2)- 강경애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인간문제 ( 4 중 2 ) - 강경애 - 신철이를 따라 몽금포에 내려가서 해수욕을 하고 올라온 옥점이는 오늘 아침차로 상경하겠다는 신철이를 만가지 권유로 겨우 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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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동아일보(1934.8.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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