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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영낭자전 (淑英娘子傳)
- 고전소설 -
조선 세종대왕 때, 경상도 땅에 한 선비가 살고 있었으니
성은 백(白)이요 이름은 상군(尙君)이라 하였다.
부인 정씨(鄭氏)와 이십년을 함께 살아왔으나 슬하에 자식이 없어서
걱정하고, 늘 천지신명께 아들 하나 점지해 주시기를 지성으로 축원하였다.
그 간곡한 정성으로 아들 하나를 점지 받았는데, 점점 자라는 동안에
용모가 수려하고 성품이 온유하며 문재(文才)가 넘쳐흘렀다.
백상군 부부는 하늘이 내려주신 이 외아들을 금지옥엽 애중하여
이름을 선군(仙郡)이라 하고 자를 현중(賢仲)이라고 지었다.
백선군은 자라서 어느덧 장가들 나이에 이르렀다.
부모는 자식에게 적당한 짝을 얻어서 슬하에 두고 살아가는 재미를 보고자
널리 구혼하였으나 알맞은 혼처가 얼른 나타나지 않아 항상 걱정이었다.
이때 봄빛이 따뜻하게 버들가지를 희롱하는 좋은 계절에
선군이 서당에서 글을 읽다가 몸이 피로하여 책상에 기댄 채
깜빡 잠이 들었다.
갑자기 녹의홍상으로 차려입은 아름다운 낭자가 살며시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두 번을 절하고 옆에 앉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도련님께서는 저를 모르시나요? 제가 여기에 온 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도련님과저와는 천생연분이라 찾아뵈옵는 것이옵니다."
낭자의 말을 듣고 선군은 크게 놀라며 물었다.
"나는 진세(塵世)의 속객(俗客)이려니와 낭자는 천상의 선녀가 아니오?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 사이에 연분이 있다 하시오?"
그러자 낭자는 말하였다.
"도련님께서는 원래 천상에서 비를 내리는 선관(仙官)이였는데
어느 날 비를 잘못 내리신 탓에 그 죄로 인하여 인간 세상에 귀양을
오셨으니 머지않아 저와 더불어 만나뵈올 날이 있을 것이옵니다."
하고는, 선녀 장자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선녀는 사라졌되 그 향기는 사라지지 않으므로 선군이 이상히 여겨\
선녀가 사라져간 허공을 향해 바라보는 동안에 잠에서 깨어나니
책상에 기대어 조는 동안에 잠시 꾼 꿈이었다.
그러나 꿈속에서 본 선녀의 모습이 너무나 확연해서 잠을 깨고난 후에도
그 모습이 눈에 선연하고 맑고 고운 음성이 귓가에 쟁쟁하였다.
그 후부터 선군은 꿈속에서 만난 그 낭자의 아리따운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서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여
마침내는 병이 되어 몸까지 쇠약해지기 이르렀다.
형용이 수척하여 번민하는 기색이 역력해진 선군을 보고
그의 부모가 크게 염려하고 그 연유를 물었다.
"너의 병세가 심상치 않거니와 무슨 곡절이 있거든
숨기지 말고 말하여라."
"별로 걱정될 만한 일은 없사오니 안심하소서."
하고는 서당으로 물러나와 잡념을 잊고자 가만히 누웠다.
그러나 마음은 낭자 생각으로 가득하여지며 모든 일에
흥미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그 낭자가 구름처럼
나타나서 선군의 옆에 앉으면서 위로하는 것이었다.
"도련님께서 저를 생각한 나머지 이처럼 병을 얻었으니 어찌 제 마음이
편하오리까? 제가 도련님을 위로해 드리고자 제 화상과 금동자 한 쌍을
가져 왔사오니, 제 화상을 도련님 침실에 두시고 밤이면 안고 주무시고,
낮에는 벽에 걸어두고 도련님의 울적한 마음을 달래사이다."
선군은 너무나 반가와서 낭자의 고운 손을 부여잡고 다정하게 속삭이려고
할 찰나에 그만 낭자의 자취는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그러나 금동자 한 쌍과 낭자의 화상이 분명히 옆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선군은 기이하게 여기면서 금동자는 상 위에 올려놓고,
화상은 벽에 걸어두고 밤낮으로 그 곁을 떠나지 아니하였다.
이러한 소문이 밖으로 새어나가 세상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기고
모두들 구경코자 선군의 집으로 몰려드는 것이었다.
"백선군의 집에는 선녀가 갖다 준 신기한 보배가 있다."
하며, 저마다 비단을 갖다가 그 화상과 금동자 앞에 바치고는 구경도하고
저마다 복을 빌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백선군의 집은 점점 형편이 나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백선군은 오로지 그 낭자를 사모하는 일념으로 넋을 잃어
만사에 뜻이 없었는지라 그 정경은 참으로 가련한 것이었다.
점점 악화되는 병세 속에서 선군은 백약이 무효하여 드디어는
자기에 드러 누워 식음을 전폐하기에 이르렀다.
선군의 그러한 딱한 정상을 동정하여 낭자도
‘선군이 나를 사모한 까닭에 이처럼 병을 얻었는데
내 어찌 가만히 있으리오?’
하고는 선군의 꿈에 자주 나타나서 위로해 주는 것이었다.
"도련님께서 저를 잊지 못한 나머지 이처럼 병을 얻었으니 저로서는
이토록 고마울 데가 없어서 다만 감격할 뿐이옵니다. 저와의 연분은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기로, 그 동안 제 대신 시녀 매월이를
보내오니 방수를 정하여 저를 보는 듯이 매월이를 보시고
더불어 심사를 위로하소서."
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선군은 그 꿈을 신기하게 여기고, 낭자의 부탁대로 매월이를
시첩으로 삼아 울적한 심회를 얼마간은 풀었다.
하지만 낭자를 향한 한 마음의 애정은 여전히 선군을 괴롭혔다.
밤낮으로 낭자 사모하는 마음을 잊지 못하는 선군은
창 밖의 새 소리에도 낭자의 생각으로 애간장이 굽이굽이 녹는 듯하였다.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선군의 괴로운 상사병은 뼈속 깊이 박히고 말았다.
선군의 부모는 병이 갈수록 점점 더 위독해지므로 당황하고 초조하여
갖은 약을 다 쓰고 백 가지 문복(問卜)을 하였으나
조금의 차도가 없음에 눈물로 세월을 보내었다.
이때 낭자가 또 생각하기를,
‘도련님의 병세가 저와 같이 위독하여 백약이 무효하니
하늘이 정한 연분의 시기가 아직 멀었지만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구나’
하고, 선군의 꿈 속에서 현몽하여 가로되,
"우리가 아직 만날 시기가 되지 않았습니다만, 도련님께서 그토록
제 생각으로 괴로워 하시니 제 마음도 편하지 못하옵니다. 도련님께서
저를 만나시고자 하신다면 부디 옥연동(玉淵洞)으로 찾아오사이다."
하고는 역시 홀연히 사라져 버리었다.
잠에서 깨어난 선군은 꿈속에서의 황홀함을 잊지 못하여
어찌할 줄 모르다가, 마침내 결심을 하고는 부모님 앞으로 나아갔다.
"요즈음 제 마음이 불안하여 침식이 여의치 못하오니, 경치 좋은 산천과
이름난 절을 두루 유람하여 울적한 심사를 달래보고자 하나이다.
옥연동은 특히 산천의 경치가 매우 수려하다 하오니
그곳에나 수삼 일 다녀오겠나이다."
부모는 아들의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며 만류하는 것이었다.
"네가 이제 정말 실성을 한 게로구나. 몸이 그토록 쇠약하여
문밖 출입도 부자연한 네가 그 험악한 산중엘 어떻게 간단 말이냐?"
하고는 허락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선군은 끝내 굽히지 않고 졸라대었다.
아들이 미칠 듯이 가려고 하므로 부모도 결국은 승낙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백선군은 한 필 말에 올라 동자 한 명만을 데리고
옥연동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산길은 멀고 험하였다. 산행에 밝지 못한 선군은 옥연동을 찾지 못한 채
길을 잃고 방황하였다.
날이 저물어지기 시작하자 선군은 하늘을 우러러 하소연하였다.
"밝으신 하늘은 저의 뜻을 가련히 여기시사 옥연동으로 인도하소서,"
천만 가지 심회가 교차하는 가운데 한 곳에 이르니 어느덧 날이 완전히
저물고 미처 떠나지 못한 새들이 저마다 다투어 보금자리를 찾는 중이었다.
산은 울울첩첩하여 천봉만학이요, 물은 고요히 흘러서 한 폭의 그림을
만들고 있었다. 못에는 연꽃이 피어 불심(佛心)을 머금었고,
깊은 골에는 모란이 피어 학의 깃털처럼 날리고 있었다.
그 사이로 백설같은 나비들이 한가로이 날아들고 버들가지 사이로 드나들며
지저귀는 꾀꼬리 소리는 가히 황금의 음향이었다.
은하수를 휘어낸 듯 층암절벽으로 폭포수가 걸리고,
오작교를 방불케 하는 돌다리가 명사청계(明沙淸溪)에 걸려
외로운 길손의 심정을 헤아리고 있는 듯하였다.
백선군은 그러한 풍경을 좌우로 지나치면서 곧장 산 속으로 들어갔다.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 非人間)’이라더니, 정말 정신이 상쾌해지며
저절로 새의 깃털이 되어 선경(仙境)으로 올라갈 것만 같았다.
다시 얼마를 가노라니 주란화각(朱欄畵閣)이 구름 위에 두둥실 떠있고,
그림같은 비단 창문이 은은하게 빛나는데 금자(金字)로 〈옥연동〉이라고
뚜렷이 쓴 현판이 걸려 있었다.
너무도 기쁜 나머지 백선군은 경황없이 당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때 한 명의 낭자가 불쑥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그대는 속객(俗客)으로서 어찌 감히 선경(仙境)을 범하느나?"
선군은 공손하게 말하기를
"나는 산을 유람온 사람으로서 산천 경치에 취하여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고 방황하여 여기까지 왔는 바,
이곳이 선경인 줄도 모르고 무례히 범하였사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대가 만약 몸을 아끼려 들거든 어서 이곳을 물러나라."
선경의 낭자에게 쫓겨나게 되자 선군은 낙심하여 생각하되,
"이곳이 분명히 옥연동인데 만약 이 기회를 놓치면
어찌 그리운 낭자를 다시 만나랴?"
하고는, 다시 용기를 내어 안으로 들어갔다.
"낭자께서는 어찌하여 나를 이토록 괄시하시나이까?"
그러자 그 낭자는 다시 들은 체도 않고 방으로 들어간 뒤에는
도무지 내다보지도 않는 것이었다.
선군은 망설이다가 할 수 없이 다시 당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때 낭자가 방에서 나와 옥같은 얼굴에 화사한 기색을 가득 담고
화란(畵欄)에 기대어 서서 붉은 입술을 반쯤 열어 미소를 보내며
나직한 목소리로 백선군을 불렀다.
"낭군께서는 가시지 마시고 제 말씀을 들으사이다.
낭군께서는 어찌 그리 눈치도 없으신가요? 우리 사이에
제아무리 하늘이 정해준 연분이 있다 하더라도 처녀의 몸으로서
어찌 그리 쉽게 허락할 수 있으리오?
낭군께서는 부디 섭섭한 생각 갖지 마시옵고 다시 올라 오소서."
백선군은 선녀의 목소리를 듣자 전에 꿈에서 보던 그 낭자임을 알고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곧장 당상으로 뛰어 올라가서
낭자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낭자의 얼굴은 틀림없이 화상의 얼굴이었다.
얼굴은 구름 속의 보름달과 같이 희고 고왔으며, 그 태도는
아침 이슬을 머금은 한 떨기 모란 꽃과도 같았다.
두 눈에 머금은 추파는 맑은 물과 같고,
가는 허리는 봄바람에 나부끼는 버들가지 같았으며,
붉은 입술은 마치 앵무단사(鸚鵡丹沙)를 물고 있는 듯하여,
그 아리따운 모습이란 가히 독보적인 절세가인이라고 할 만하였다.
선군은 마음이 더없이 황홀하여 낭자를 보고 이르되,
"이제 낭자같은 아름다운 선녀를 대하니
오늘 밤은 죽더라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하고는, 그 동안 낭자 생각에 잠못 이루던 그 무수한 밤의 정회를
술회하니 낭자는 수줍어 하면서 말하였다.
"한낱 저같은 계집을 그처럼 잊지 못하여 병까지 얻으셨으니
어찌 대장부라 하겠나이까? 우리가 하늘의 정하심으로
배필을 맺을 기약이 아직도 삼 년이나 남았습니다.
삼 년이 지나면 파랑새로 하여금 중매를 서게 하여
함께 만나 육례(肉禮)를이루고 백년해로를 할 것이옵니다.
그러나 만약 오늘 제 몸을 낭군님께 허락한다면 천기를 누설한 죄로
천상에 갇혀 다시는 인간 세상으로 내려올 수 없을 것이옵니다.
그러하온즉 낭군께서는 오늘 초조한 마음을 참으시고,
앞으로 삼 년 동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그 동안도 이렇듯 참지 못하고 병까지 얻었는데,
한 시인들 어찌 더 견디겠소?오늘 내가 이대로 돌아간다면 남은 목숨도
부지하지 못하고 죽어서 구천을 방황하는 원혼이 될 것이니,
그렇게 된다면 어찌 낭자의 한 몸인들 편안하리오? 모름지기 낭자께서는
나의 간절한 정상을 살피어, 그물에 갇힌 고기를 살려 주시오."
하고는 낭자의 손을 부여잡고 간곡히 애원하였다.
선군의 정성이 지극하여 또한 그 정상이 가긍한지라, 낭자는 마음을 돌려
미소를 지으니, 꽃떨기 같은 얼굴에 화색이 무르익었다.
선군은 낭자의 손을 끌어잡고 침실로 가서 그 동안 쌓아온 가슴속의
회포를 마침내 풀었다. 절절하고 황홀한 운우지락(雲雨之樂)이 끝난 후
낭자는 부끄러운 모습으로 일어나 앉으며 말하기를,
"이제 이미 제 몸이 부정해져서, 더 이상 이 선경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으니 낭군님을 따라 함께 가겠나이다."
하고는 청노새를 끌어내어 선군과 함께 나란히 타고 집으로 향하였다.
선군의 부모는 쇠약해진 아들을 내어보낸 뒤 초조하고 불안하여
좌불안석 잠을 못 이루다가 결국 노복을 사방으로 보내
선군의 종적을 찾았으나 그 자취는 모연하였다.
백상군 부부는 집을 나간 아들 선군의 소식을 알지 못하여 근심 걱정으로
해와 달을 보내던 중, 하루는 말발굽 소리가 문전에 들리더니
뜻밖에도 집을 나간 선군이 돌아왔다.
선군은 곧장 집 안으로 들어와 부모님께 절을 한 후,
그 동안 다녀온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양친은 잃었던 외아들을 다시 찾은 듯이 기뻐하였다.
"그 동안 어떤 곳을 두루 다녔느냐? 네가 집을 나간 뒤에 사방을 찾아
헤매어도 너의 자취를 찾을 수 없어 늙은 우리는 연일 문에 기대어
너 오기만을 학수고대하였단다."
"부모님께 그 동안 걱정을 끼쳐 드려 소자 죄송지감에
몸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저는 옥연동에 가서
그 동안 마음 속에 그리던 낭자를 만났나이다."
집을 나간 후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자초지종을 낱낱이 말씀드리고,
한 편 낭자를 집안으로 들여 부모님을 뵙게 하였다.
낭자가 종종 걸음으로 사뿐사뿐 걸어서 부모께 절을 하니,
부모는 천만 뜻밖이라 낭자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기품있는 체모와
아리따운 얼굴이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꿈인가 생시인가, 부모는 기뻐하여 낭자를 애지중지 하고
동별당에 침소를 정해주니, 선군과 낭자의 금실은 실과 바늘처럼,
물과 물고기처럼 결토 떨어질 줄 몰랐다.
이렇듯 선군은 낭자와 한 시를 떨어지지 않고 있으니 드디어는
학업을 전폐하기에 이르렀다. 부친이 선군의 장래를 위하여
매우 걱정하였으나, 낭자와의 떨어짐을 권유하면 또 다시
상사(想思)의 병이 될까 하여 그냥 두고 지켜보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서 어느 덧 팔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남매를 두었는데 천성이 영혜하고 총명한 딸의 이름은
춘앵(春鸚)이라 하였고, 아들은 동춘(東春)이라 하였다.
춘앵의 나이 일곱에 동춘의 나이는 셋으로, 특히 동춘은 부친의 기풍에
모친의 모습을 닮아 집안의 화기가 더욱 복돋아 주는 보배로운 존재였다.
집안의 동편 뜰에 정자를 짖고, 꽃피는 아침나절과 달이 뜨는
저녁 무렵에는 젊은 부부가 정자에 올라앉아 칠현금(七絃琴)을 타며
노래를 화답하여 아름다운 풍류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부모는 늘 아들이 공부에 뜻이 없는 것을 탄식하였다.
그러던 차에 마침 알성과(謁聖科)를 실시한다는 방이 나붙었다.
이것을 계기로 부친은 아들 선군을 불러놓고 조용히 타일렀다.
"나라에서 이번에 과거를 실시한다 하니 너도 꼭 응시하여라.
다행히 급제하게 된다면 조상을 빛내고 부모도 영화롭지 않겠느냐?"
부친의 타이름을 들은 선군은 정좌한 채로 여쭈었다.
"아버님, 불효불측한 자식 굽어살피소서. 과거며 공명은
모두가 한낱 속물이 탐하는 헛된 욕심이옵니다. 우리 집에는
수천 석을 헤아리는 전답이 있삽고, 비록 등이 천여 명이나 되며,
하고자 하는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사온데 무슨 복이 또 부족하여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아치 되기를 바라시나이까?
만약에 제가 과거에 응시하고자 집을 나선다면 낭자와는
이별하게 될 것이온즉 사정이 절박하옵니다."
하고는 동별당으로 돌아와 낭자에게 부친의 과거 응시 권고를 말하였다.
그 말을 듣고 낭자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사랑이 그윽한 눈길로
선군을 타이르는 것이었다.
"과거를 보시지 않겠다는 낭군님의 말씀이 그릇된 줄로 아옵니다.
대장부가 세상에 나면 입신양명하여 부모님을 영화롭게 하여 드리는 것이
자식된 도리입니다. 그리하온데 낭군께서는 어찌하여 저같은 규중 처자에
얽매인 나머지 장부의 당당한 일을 포기하고자 하시니,
이것은 불효가 되고 그 욕이 마침내 저에게 돌아오니 결코 마땅한 일이
아닌 줄로 아옵니다. 하오니 낭군께서는 깊이 생각하시어 속히
과거 준비를 하시고 상경하여 남의 웃음을 면하시도록 유념하소서."
이처럼 충고하면서 또한 과거에 응시할 차림과 여정의 행장을 갖추어
주는 것이었다. 행장이 차려지자 낭자는 다시 강경한 다짐을
선군에게 하는 것이었다.
"낭군께서 이번 과거에 급제하시지 못하고 낙방거사가 되어 돌아오신다면
저는 결코 살지 아니할 것이옵니다. 하오니, 다른 잡념 일체를 버리시고
오직 시험에 대한 일념으로 상경하셔서
꼭 급제하여 돌아오시기 바라옵니다."
부모에게 듣던 말보다도 낭자에게 들으니 선군의 급제는 스스로
더욱 절실하게 생각되어졌다. 할 수 없이 부모님께 하직인사를 올리고
떠나려 하다가 다시 낭자에게 들려 말하기를,
"내가 과거 급제하여 돌아올 때까지 부디 부모님 잘 모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리시오."
하고는 평범한 말로 이별을 고하였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였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떠나려 하니 걸음이 옮겨지지 않아 한 걸음에 멈추어
서고 두 걸음에 뒤를 돌아다 보며 애련한 정을 뿌리치지 못하였다.
이를 보고 낭자가 중문 밖에까지 따라나가 배웅을 하면서 남편과
마찬가지로 기쁨과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였다. 선군은 마침내 눈물이
앞을 가려 처절한 정경을 보이면서 사랑하는 숙영낭자와 이별하였으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그 날은 하루 종일 삼십 리밖에 가지 못하였다.
주막집을 찾아들어 저녁상을 받고서도 오직 낭자 생각에만 골몰하여
음식조차 먹을 수가 없었다.
이를 본 하인이 민망히 여기여 근심을 토로하였다.
"그토록 식사를 아니하시면, 앞으로 천리길을 어떻게 가시려 하나이까?"
"아무리 먹으려 해도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는구나."
하고는 길게 탄식할 뿐이었다. 적막한 주막집 방을 좌정하고 앉으니
더욱 마음이 산란해지는 것이었다.
마치 낭자가 곁에 있는 듯하여 껴안아 보면 허공 뿐이라
허전하기 이를 데 없고, 낭자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여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면 낭자의 목소리 대신 창 밖의 소슬한 바람 소리가
공허한 적막감을 더욱 무겁게 해줄 뿐이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점점 더 잠이
오지 않아 그 허전한 마음은 결국 실신한 것만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낭자의 생각이 간절해진 선군은 하인이 잠들기를 기다려
부랴부랴 신발을 둘러메고 날걸음으로 집에 돌아와,
담을 넘어 아내의 방으로 들어갔다.
잠자리에 누워 있던 낭자가 크게 놀라며 일어나 앉았다.
"이 밤중에 어인 일이오이까? 아침에 떠나신 분이 어느 곳에 계시다가
다시 돌아오셨나요?"
하고는, 낭자의 고운 손을 이끌어 금침 속으로 끌여들여
밤이 다하도록 애뜻한 정회를 풀었다.
이때 부친 백공(白公)이 아들을 서울로 과거 응시를 보내고는 심사가
허전하여 잠을 못이루다가 도적을 살피려고 청려장을 짚고 마당 안을
돌아다니며 문단속을 살피고 동정을 가늠하였다.
그런데 동별당에 이르러 본 낭자의 방안에서 갑자기 다정하게 주고 받는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남편인 아들이 집을 비우고 없는 이 마당에
며느리 방에서 왠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다니 백공은 기절초풍을 면치 못할
지경이었다. 한편으로는 귀를 의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해괴한 생각을 금할 수가 없었다.
"며느리 숙영이는 얼음같이 차갑고 옥같이 맑은 마음과 송죽(松竹)처럼
굳은 절개를 가진 숙녀이거늘, 어찌 외간 남자를 끌여 들여 음행한 짓을
하랴? 하지만 세상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니 한 번 알아봐야겠구나."
하고는 속으로 불길한 생각을 가지며, 가만가만 별땅 앞으로 다가가서
귀를 기울이고 방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엿들어 보았다.
그때 숙영이 소리를 낮추어 말하는 것이었다.
"시아버님께서 문 밖에 와 계신 듯하니,
당신은 이불 속에 몸을 깊이 숨기십시오."
하고는, 잠에서 깨어나는 아이를 달래면서 하는 말이,
"아가 아가 착한 아가, 어서 어서 자려므나, 아빠께서 장원급제하여
영화롭게 돌아오신다. 우리 아가, 착한 아가, 어서 어서 자려므나."
백공은 마침내 크게 의심하였으나 며느리의 방 안을 뒤져서 외간 남자를
적발해 낼 수도 없고 하여 그냥 꾹 참고 돌아왔다. 이때 숙영낭자는
시아버지가 창 밖에는 엿듣는 기척을 재빨리 알았기 때문에
남편을 재촉하여 강경히 충고하였다.
"장부로서 과거길을 떠나다가 규중 처자 하나를 못 잊고 다시 돌아옴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오며, 만약 시부모님께서 이 사실을 아신다면
저를 요망한 계집이라고 책망하실 터이니 날이 밝기 전에
어서 돌아가사이다."
선군은 숙영의 말을 옳게 여겨 다시 옷을 주워 입고 담을 넘어 도망치듯이
주막집으로 달려갔다. 그리운 임을 보고자 오가는 길은 천리가 지척같아
걸음도 빨라서, 주막에 돌아오니 아직도 하인이 잠속에 깊이 빠져 있었다.
날이 밝아 다시 길을 재촉하여 떠났으나 낭자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려
도무지 발걸음이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떼어놓는 발길이 마치 천 근 무게와 같이 느껴지고
또한 뒷머리를 숙영낭자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것만 같아
하루 종일 겨우 십리 길을 걷다가 해를 넘기고 말았다.
다시 주막에 숙소를 정하고 달빛이 은은한 객창에 홀로 앉아
심사를 달래더니, 숙영낭자의 사랑스런 눈길과 붉은 입술을 반개한
미소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려 도무지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이리돌려 앉고 저리 뒤척여 앉으며 천만가지로 고민을 쌓다가 결국은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또 다시 집으로 달려갔다.
어제 밤과 마찬가지로 또 담장을 넘어 낭자의 방으로 슬며시 들어가니
낭자가 크게 놀라 일어나 앉으며 낭군을 꾸짖는 것이었다.
"낭군께서는 어제밤에 제가 그토록 간곡히 부탁드린 말씀을 잊으셨나이까?
이처럼 저를 애틋하게 생각해 주는 정의(情誼)는 고마우나
이런 일로 인하여 천금같은 귀체(貴體)가 여행 중에 병을 얻으시면
어찌하려 하시나이까? 지금 이 순간부터는 제 생각일랑 딱 잘라내시고
어서 떠나시어 과거날에 늦지 않도록 상경하소서."
숙영낭자는 강경한 표정으로 이와 같이 말하였으나
그 목소리는 비가(悲歌)처럼 떨려고 그녀의 눈망울에는
알알이 이슬이 맺혀 있었다.
"난들 어찌 그럴 줄을 모르겠소만, 낭자를 하루밤만 보지 못하여도
미칠 것 같은심사에 잠을 이룰 수가 없으니 어찌 하겠소.
과거를 치루지 못하여도 결코 낭자와 떨어져서 지낼 수는 없소."
"낭군께서는 정말 딱하신 분이오이다. 그러하오시다면 앞으로는 제가
낭군님이 가시는 숙소마다 밤으로 찾아가서 위로하여 드릴 것이오니
걸음을 늦추지 마소서."
"낭자는 규중의 아녀자로서 걸음도 느릴 터인데 어찌 점점 멀어져 가는
서울길을 밤마다 나를 찾아 왕래할 수가 있겠소?
"정말 딱하시구려. 아무튼 그것은 제가 알아서 잘 하겠사오니 염려하시지
마시옵고 앞으로 다시는 집으로 걸음을 돌리지 마소서. 이왕 먼 밤길을
오셨으니 빨리 회포나 푸시옵고 날이 밝기 전에 급히 떠나소서."
하고는, 숙영낭자는 그토록 지극히 사랑해 주는 낭군의 정성이 고마워서,
머뭇거리는 낭군의 몸을 이끌어 서둘러 금침으로 모시었다.
그리고는 다시 몸을 빼어 일어나 앉아 한 장의 그림을 주었다.
"이 화상은 저의 모습 그대로이니, 길을 가시다가 제가 보고 싶어지시면
꺼내어보시고 심회를 푸사이다. 그리고 만약 이 화상의 빛이 변하거든
제 몸이 불편한 줄로 알아주소서."
하고는 눈물을 뿌리며 날이 밝기 전에
어서 선군을 집에서 떠나보내려고 달래었다.
선군의 부친 백공은 어젯밤의 며느리의 행실이 괘씸하여
울분을 참고 있다가 오늘밤에도 발소리를 죽이고 동별당으로 가서 창 밑에
서서 귀를 기울이고 엿들었다. 숙영의 음성이 나직히 들리다가 가끔씩
남자의 음성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가느다랗게 흘러나왔다.
"이런 고얀 일이 있나? 이런 해괴한 일이 우리 집에서 일어나고 있다니
왠 망신인가? 우리 집의 담장이 저렇듯 높고, 상하의 눈이 적지 않은데
어찌 외간 남자가 남편 없는 틈을 타서 밤마다 드나들까?
이는 필시 두 연놈이 짜고 밤으로 통정(通情)을 하는 게 틀림없다.
저 아이가 내 집 며느리가 되어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고 제 남편에게도
유달리 다정하였는데, 이처럼 간통의 흉죄를 범하다니
실로 사람의 마음의 옥석(玉石)은 가리기 어렵구나."
하고는 의심이 점점 짙어졌다. 백공은 그 날부터 이 일을 어떻게 하면
흉한 소문이 나지 않고 처리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부인을 불러서 자초지종을 말하고는,
"아직 그 외간 남자가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나, 만일에 이런 불미한 일이
밖으로 세어나가면 양반의 집에서 체통이 어떻게 되겠소?
이 일을 장차 어찌하면 좋을 꼬?"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있겠소? 그것은 아마 영감이 잘못 들으신 걸게요.
우리 숙영이가 어떤 며느린데 공연한 누명을 씌우시려 하시오?
그토록 의심이 되시오면 내막을 더 자세히 알아보사이다."
"나 역시 믿고 싶지 않으나, 내 귀로 이틀밤이나 들었기에,
며느리를 불러 나무랄까 하면서도 괜히 누명을 씌워 시아비의 체면을
잃을까 두려워하여 주저하고 있었으나,
아무래도 오늘은 며느리를 불러 엄히 물어봐야겠소."
백공은 이미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그러시다면 같은 말을 물으시더라도,
의심을 보이는 질문을 하시지 마시고 넌지시 떠보시도록 조심하시구려."
부인은 앞 일을 걱정하여 남편에게 조심하도록 당부를 하였다.
이리하여 시부모는 시비를 시켜 숙영낭자를 시부모의 처소로 불러 들였다.
"춘앵의 아비가 서울로 떠난 뒤에 집안이 하도 적적하기로 내가 마당을
두루 돌아 다니다가 네 방에 가까이 갔을 때, 방 안에서
웬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 듯 하기로, 이상히 여기고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하여 본즉 설마 역시 네 방에서 또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너를 차마 의심하는 것은 심히마음이
괴로우나, 여하간에 사실대로 말해다오."
숙영이 크게 놀라 안색이 변하였으나 이내 곧 마음을 가라앉히고
태연하게 말하였다.
"밤이 되면 늘 잠을 설치는 춘앵이와 동춘이 남매를 데리고
매월이와 얘기를 나누며 지내었사오나, 외간 남자가 어찌 제 방에 와서
이야기를 하겠나이까? 저로서는 정말 천만 뜻밖의 말씀이옵니다."
백공은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어서 며느리를 돌려 보내고,
시녀 매월이를 불러 엄하게 문초했다.
"너는 어제 그제 이튿 밤에 아씨 방에서 시중을 들었느냐?"
"소녀의 몸이 약간 불편하여 이틀 동안은 밤중에 가 뵙지 못하였사옵니다."
매월의 대답을 듣고 보니 백공의 마음은 더욱 더 의심이 짙어졌다.
"그게 사실이렸다? 요즈음 해괴한 일이 있어서 아씨에게 물은즉
밤으로는 너와 함께 자고 있었다 하거늘 너는 또한 아씨에게
간 적이 없다 하니, 말이 서로 같지 않으니 아씨가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한 게 분명하다. 너는 앞으로 아씨의 동정을 비밀리에
잘 엿보아 아씨 방에 드나드는 놈을 붙잡아 대령하라.
만약 이 말이아씨에게 누설된다면 너는 살지 못하리라."
하고는 비밀리에 엄명을 내렸다.
매월은 목숨이 아까와서 밤낮으로 아씨 방을 지켰으나, 외간 남자는
씨도 안 보이니, 없는 도적을 어떻게 잡을 수가 있겠는가?
백공의 엄명은 괜히 매월이로 하여금 간계를 꾸미게 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매월은 늘 숙영낭자에 대하여 심한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숙영낭자가 선군을 만나 이 집에 정식 부인으로 오기 전까지만 해도,
꿈속의 숙영을 잊지 못하여 괴로워하는 선군의 정회를 풀기 위하여
임시종첩으로 사랑하였으나, 숙영낭자가 정식 부인으로 들어온 다음부터는
종첩 신세에서 하락되어 단순한 시비로서 소박을 당한 몸이 된 것이다.
이렇게 쌓인 몇 년 동안의 질투를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매월에게 주어진 것이다.
바야흐로 서방님이 없는 이 기회에 영감마님이 숙영낭자의 부정한 행실을
의심하였으니, 바로 이때를 이용한다면 숙영낭자를 간통죄로 몰아
없애버릴 수가 있지 않겠는가?
매월은 독한 마음을 먹고 그 동안 마음 속에 쌓아온 질투의 성을
허물기로 결심을 하였다.
인생에 있어서 기회란 늘 그리 흔하지 않은 법,
매월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숙영낭자를 없애 버림으로써 그 동안 뼈속 깊이
사무친 질투의 원한을 풀고자 하였다.
아씨 몰래 수천 냥의 돈을 훔쳐내어 무뢰배 한 명을 매수하였다.
"너가 만약 내 말대로 해준다면 돈 수천 냥을 주마."
이리하여 불량배 한 명이 팔을 걷고 쑥 나서서,
"내가 무엇이든지 해내겠다."
하니, 그 자는 이름을 도리라고 하는 힘이 세고 언변이 좋은 무뢰한이었다.
매월은 도리를 조용한 곳으로 끌고 가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너에게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댁의 서방님께서 나를소첩으로 삼아 예전에는 끔찍히 사랑하시더니
숙영낭자를 본실로 맞아들인 후로는 팔 년이 넘도록 한 번도 가까이
하지 않고 종년으로만 부려먹으니, 내 마음이 어찌 절통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숙영낭자를 모함하여 이 댁에서 몰아내어분함을 풀고자 하니,
너는 내가 하라는 대로 착오 없이 해야 한다?"
"누구 부탁인데 소홀히 하겠니? 더욱이나 돈까지 많이 준다는데
무슨 일인들 못하랴? 죽기 아니면 해낼테니 염려 푹 놔라."
도리가 이렇게 거듭 다짐하니, 매월은 그날 밤에 동별당으로 통하는
뒷문을 열어 주면서 귓속말로 말하기를,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내가 영감 처소에 가서 적당히 둘러대면
영감이 격분하여 뛰처나올 것인즉, 그때 너는 영감이 볼 수 있도록
낭자의 방에서 나오는 척하고 뒷문을 열고 도망하되
부디 실수하지 말라."
"그건 염려말고 어서 행동 개시나 해라."
"그럼 잘 부탁해."
하고 매월은 곧장 영감 처소로 달려가서 여쭈기를,
"영감님의 분부를 받자와 밤마다 잠을 자지 아니하고 동별당을
지켰사온 즉 오늘밤에 과연 어떤 놈이 아씨 방으로 몰래 들어가서
해괴한 희롱을 하고 있기에 서둘러 고하옵나이다.
제가 어떤 놈이 들어온 줄을 알고는 창문 뒤로 가서 아씨 방안의 거동을
엿들은 즉 끔찍한 흉계를 꾸미고 있어 놀랐나이다.
아씨가 그 놈에게 이르는 말이 서방님은 벌써 낙방거사가 되어
돌아올 것인즉 죽여버리고 재물을 훔쳐서 같이 도망가서 살자고
수작하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그렇게도 현부인의 탈을 쓰고 오신 아씨가
그토록 변심을 하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옵니다.
하오나 영감 마님께서 현명하옵신 까닭에 그런 징조를 미리 아시고
저에게 증거를 잡으라고 분부하셔서 천만다행이옵니다.
아씨 방에 든 저 놈을 그냥 두었다가는 서방님께서 어떤 변을 당하실는지
모르겠사오니 어서 바삐 영감마님께서 처리하시옵소서."
백공은 매월이의 말을 곧이 듣고 분기가 대승하여 칼을 빼들고 별당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낭자의 방에서 나온 듯한 괴한의 그림자가 놀란 토끼마냥
뛰어나와서 높은 담장을 뛰어넘어 도망치는 것이 아닌가?
백공은 괴한의 뒤를 쫓았으나 비호같이 빠른 괴한의 뒤를 따를 수가 없었다.
억울하게 놓쳐 보내고 나서 다시 처소로 돌아와서 분기를 억누르지 못하고
비복들을 불러 세워놓고 엄히 문초하였다.
"우리 집에 문단속이 엄하여 바깥 사람이 감히 출입할 수 없거늘
낭자 방에 밤으로 수상한 놈이 자유로 드나드니, 부끄러운 추궁이지만
아무래도 너희들 중에서 어떤 놈이 감히 낭자와 서로 통하는 것이
아니냐? 사실대로 자백한다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거니와 만일 숨기려고
한다면 끝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그러니 그리 알고 지금 당장 자백하라."
그러나 비복들이 무슨 죄가 있으리오? 천만 뜻밖의 호통에
그만 어리둥절할 뿐 모두가 다 꿀먹은 벙어리처럼 묵묵부답일 뿐이었다.
"너희들은 냉큼 가서 낭자를 이리 잡아오너라."
영감의 불호령이 추상같은지라, 매월이년이 맨 먼저 신나게 뛰어가서
동별당의 낭자의 방문을 활짝 열어제키며 큰 소리로 말하였다.
"낭자는 무슨 잠을 그리 태평하게 자고 있소이까?
영감마님께서 낭자를 당장 잡아오랍시니 어서 가보시오!"
숙영은 깜짝 놀라 일어나며,
"이 깊은 밤중에 집안이 어인 일로 이리 소란스러우냐?"
하고 방문을 열고 내다본즉, 달려온 비복들이 뜰에 가득 대기하고 있었다.
"너희들은 무슨 일이냐?"
그러자 노복 한 명이 앞으로 쑥 나서면서 퉁명스럽게 쏘아댔다.
"아씨께서는 도대체 어떤 놈과 간통하는 거요?
아씨 때문에 죄없는 우리들만 경을 치잖아요?
우리를 더 이상 경치게 하지 마시고 어서 가서 바른대로 자백하시오."
하고는, 상전대접은 간 곳 없이 구박이 자못 심하였다.
뜻밖에 종놈으로부터 모욕을 당한 숙영낭자는 넋이 빠진 듯
간담이 서늘해졌다.
어이없어 하는 낭자에게 비복들이 달려들어 어서 가라고
재촉이 성화같았다. 낭자는 옷맵시를 가다듬고 시부모 앞에 나아가
땅에 엎드리며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제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밤중에 이런 꾸중으로 부르시옵나이까?"
"해괴한 일이 잦아 너에게 묻노라. 선군이 경성으로 떠난 다음 적막하여
매월과더불어 밤에 이야기하며 함께 잤다 하기에 내 반신반의로 매월에게
물어보니 그동안 네 방에서는 한 번도 잔 적이 없다 하니 어인 일이냐?
그 동안 증거를 잡지 못하여 아무 소리 못하고 있었다만,
이제 어떤 놈과 사통하고 밤으로 네 방에 드나들며 해괴망칙한 행동을
한 사실이 분명히 드러났거늘,
그래도 네가 뻔뻔스럽게 시치미를 뗄 작정이냐?
"아버님께옵서는 어찌 그런 무언(誣言)을 곧이 듣고 노비들에게까지
이런 봉변을보게 하시나이까?"
숙영낭자가 억울함을 이기지 못하여 흐느껴 울자,
백공은 크게 노하여 큰 소리로 꾸짓었다.
"무엄하구나, 닥쳐라! 내 두 귀로 직접 듣고, 또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거늘,네가 끝내 속이려 들다니, 너는 죄를 더욱 무겁게 만드려고
하느냐? 양반의 집안에 이런 해괴한 일이 있음은 참으로 망칙한 변괴다.
너와 상통한 놈의 이름을 대라!"
시아버지의 호령은 늦가을 서리만큼이나 차갑고 매서웠다.
그러나 죄가 없는 숙영낭자는 안색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구김이 없는 목소리를 말하였다.
"아무리 시부모님의 간택으로 육례를 치루지 못한 며느리라고는 하나
어이하여 그다지도 끔찍한 말씀을 하시나이까?
이처럼 억울한 일을 맞이하여 제가 누명을벗기 위해 변명하는 것도
삼가 부끄러운 노릇이오나, 아버님께서도 상세히 조사해 보시옵소서.
제 몸이 지금은 비록 인간으로 되어있다 하오나 빙옥(氷玉)같은
굳은 정절로 살아오다가 어이 이런 더러운 말씀을 들을 수 있사오리까?
억만 번을 죽는다 하여도 사실에 없는 일을 어찌 여쭈오리이까?"
하니, 비복들이 일시에 내달아 몸을 묶고 머리를 풀어헤치게 하여
마당에 꿇어 앉혔다.
단정하고 우아하여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기품을 늘 가지고 잇던 낭자가
졸지에 더러운 죄인으로 몰려 학대를 받는 광경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었다.
"네 죄를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으니,
어서 빨리 너와 간통한 놈을 대라."
숙영낭자를 대답 대신 흐느껴 울기만 하였다.
백공은 비복을 시켜 이실직고할 때까지 매질을 하라고 호령하였다.
사정을 두지 않고 마구 치는 비복들의 매 밑에서 숙영낭자의 백옥 같은
귀밑에는 피망울 같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눈 같이 흰 살결은 핏물이 배어 붉은색으로 변하였다.
낭자는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서도 고통을 참고 이를 악물며 말하였다.
"지난번에 낭군께서 길을 떠난 날 밤과 그 이튿날 밤과 두 번을
삼십 리쯤 가다가 숙소를 정하였으나 저를 잊지 못하고 밤중에 집으로
몰래 돌아왔삽기에 제가 한사코 타일러서 다시 돌려보낸 일은
있었사옵니다. 그때는 어린 제 소견으로 시부모님께 꾸중을 들을까봐
겁을 내어 지금까지 고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옵니다.
하오나 조물주가 그것을 밉게 여기시고 귀신이 그것을 시기하여
이런 씻지 못할 누명을 입은 듯하옵니다.
이제 와서 늦은 변명같이 되었사오나, 밝은 하늘이 낱낱이 살펴아시오니
아버님께옵서는 그러한 사실을 밝히시어
저의 정상을 다시 헤아려 주시옵소서."
그러나 한 번 눈과 귀로 확인한 의심인지라, 백공은 점점 더 노하여
비복에게 더욱 심한 매질을 가하도록 호령하였다.
낭자는 참을 수 없는 매 밑에서 하늘을 우러러 호소하였다.
"아아, 푸른 하늘은 무고한 이내 몸을 굽어살피소서.
오월에 서리가 나리고 십 년을 원망해야 할 이 원한을
어느 누가 풀어 주오리이까?"
하고는 엎어져서 혼절하고 말았다.
이 참상을 보다 못한 시어머니가 울면서 영감에게 말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한 번 엎지른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다
하였사오니, 영감께서 사실도 잘 모르시면서 티없이 굳은 정절을 가진
며느리를 억울하게 음행(淫行)의 죄를 씌워 다스리시니,
만약 며느리의 무죄함이 밝혀졌을 때 무슨 면목으로 현부(賢婦)를
대하려 하시나이까?"
하면서, 뜰 아래로 뛰어내려가 낭자를 부여잡고 목을 놓아 울었다.
"너의 백옥같이 티 없는 굳은 절개는 내가 잘 알고 있다.
오늘 이런 변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니 그 아니 원통하겠느냐?"
낭자가 절박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옛말에도 다른 소문과는 달리 음행의 소문을 씻기는 어렵다 하였사온 즉,
동해 바닷물을 모두 기울인다 한들 이 누명을 씻으오리까?
이런 씻지 못할 누명을 쓰고 어찌 구차히 살기를 바라오리까?"
시어머니는 낭자를 가엾게 여기고 갖은 말로 무수히 위로하였다.
그러나 낭자를 듣지 않고 바른 손에 옥비녀를 빼어들고
하늘을 우러러 절을 한 다음 빌었다.
"밝고 밝은 저 황천(黃泉)은 부디 굽어살피소서. 제가 만일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한 사실이 있거든 이 옥비녀가 제 가슴팍에 꽂히고,
이것이 억울한 누명이거든 이 옥비녀가 저 섬돌에 박히도록
영험을 베풀어 주옵소서."
하고는, 옥비녀를 허공을 높이 던지고는 땅에 엎드렸다.
그러자 잠시 후에 옥비녀가 떨어지면서 섬돌에 깊이 박히었다.
하늘이 심판한 이 놀라운 기적을 본 백공은 비로서 크게 놀라
창백한 얼굴이 되어 신기하게 여기며 낭자의 무죄함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자기도 모르게 버선발로 마당으로 내려가
낭자의 손을 잡고 빌었다.
"이 못난 늙은 것이 망령이 들어 착한 며느리를 모르고 네 절개를
의심하여 이처럼 과오를 범하였으니 내 잘못은 만 번 죽어도 싸도다.
너는 나의 잘못을 용서하고, 모든 일을 안심하도록 하라."
그러나 낭자가 통곡하면서 말하기를,
"아직 흉칙한 누명을 쓰고 어찌 차마 세상을 살으오리이까?
차라리 죽어서 아황여영의 혼백을 쫓으려 하옵니다."
하고 전혀 의욕을 비치지 아니하였다.
백공은 더욱 놀라 백방으로 며느리를 위로하였다.
"자고로 군자도 더러 참소를 당하며, 현부열녀도 더러 누명을 쓰는
법이다. 이것도 또한 일시의 운액이라 생각하고 이 늙은 것의
망령된 언동을 용서하여 다오."
시어머니도 낭자를 부축하여 동별당으로 데리고 가서
입이 닳도록 위로를 하였다.
하지만 낭자는 눈물을 흘리며 죽기를 작정하고 탄식하여 가로되,
"저같은 계집도 악명이 세상에 퍼져 부끄러운지라,
가군(家君)께서 돌아오시면 어찌 서로 낯을 대하리요?
오직 죽어서 세상사를 잊고자 하오니 말리지 마옵소서."
하고 목놓아 흐느끼니, 진주같은 눈물이 옷깃을 홍건히 적시었다.
시어머니는 처절한 정상을 보고는,
"네가 만일 죽는다면, 선군도 또한 너를 따라 죽을 것이나,
이런 답답하고 절통한일이 어디 있으랴?"
하고 통곡을 멈추지 못하면서 처소로 돌아갔다.
낭자가 슬퍼하는 것을 보고 딸 춘앵이가 말하였다.
"어머니, 아직은 죽지 마시고, 아버지가 돌아오시거든 억울한 사정이나
말씀드리고 죽든 살든 마음대로 하세요.
이제 만약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면 동생 동춘이는 어떻게 하오며,
나는 누굴 믿고 살아야 하나요?"
하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춘앵을 옆에 앉히고, 동춘에게 젖을 먹인 다음,
하얀 비단옷을 꺼내어 입었다.
"춘앵아, 부디 건강하게 잘 자거라. 이 어미는 결국 죽어야 할 몸이다."
하고는 자결할 것을 결심하였다.
숙영낭자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면서 딸 춘앵에게 일렀다.
"나는 이제 죽거니와, 네 아버지가 천 리 밖에 있어서 내가 죽는 줄도
모르실테니, 마지막 죽어가는 마음조차도 의지할 곳이 없구나,
나의 사랑하는 딸 춘앵아, 이 백학선(白鶴扇)은 천하에 다시 없는
기보(寄寶)란다. 이 어미가 죽기 전에 너에게 남겨주는 것이니
잘 간수하도록 하여라. 이 백학선은, 추울 때 부치면 더욱기운이 나고
더울 때 부치면 서늘한 기운이 나오는 신기한 보배이니,
잘 가지고있다가 춘앵이가 자라거든 전해 주어라. 아아, 슬푸구나.
기쁨의 뒤에는 슬픔이 있고, 괴로움이 다하면 즐거움이 오는 것은
세상의 이치라고 하지만 이 어미의 팔자가 기구하여 이렇듯
억울한 누명을 쓰고, 너의 부친을 다시 못보고 황천의 원혼이 되니,
난들 어찌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느냐? 가련하구나.
춘앵아, 내가죽더라도 너무 슬퍼 말고, 네 동생 동춘이를 잘 보살피거라."
유언 삼아 탄식 삼아 구구절절이 눈물을 뿌리던 숙영낭자는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아직 나이 어린 춘앵은 그의 어미를 부여안고는
흐느껴 울었다.
"어머니, 정신 차려요. 이게 웬일이세요, 어머니?"
춘앵은 통곡을 하다가 기진하여 그만 기절한 어머니를 안은 채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후 숙영낭자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보니,
어린 춘앵이가 울다가 지쳐 잠이 들어 있었다.
그 모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 어린 것이 너무나 가엾고,
또한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 너무나도 분 한 마음이 들어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역시 억울한 누명을 씻기 위해서는
죽는 길 밖에 별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잠이 든 딸이 깨어나면
죽기가 어려우므로 딸이 깨지 않도록 가만히 쓰다듬으면서 한탄을 하였다.
"불쌍한 춘앵아, 내가 너희 남매를 두고 어찌 마음 편히 갈 수 있으랴?
내가 죽은 후에 너희는 이 어미가 그리워 어찌 살겠느냐?
아아, 너희들을 두고 어찌 가랴?"
눈물을 훔치면서 금침을 깔고 그 위에 단정히 앉아 백옥같은 손을 들어
비수를 잡고 가슴을 힘껏 찌르니 숙영낭자는 엎디어지면서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순간 천지가 더욱 어두워지면서 천둥소리가 하늘과 땅을 진동하였다.
춘앵이 깜짝 놀라 깨어보니 어머니가 가슴에 칼을 꽂고 유혈이 낭자한 채
금침 위에 엎디어져 있었다. 소스라쳐 놀라면서 떨리는 손으로 어머니의
가슴에 꽂힌 비수를 잡아 빼려고 하였으나 빠지지를 않았다.
춘앵은 어머니의 얼굴에 낯을 부비면서
하늘과 땅을 원망하여 대성 통곡을 하였다.
"아이고, 어머니, 이게 웬일이세요? 하늘도 무심하세요?
우리 남매를 두고 어머니께선 어디로 가시나이까?
우리 남매는 장차 누구를 의지하고 살란 말인가요?
어린 동생 동춘이가 어머니를 찾으면 무슨 말로 달래야 하나요?
어머니, 왜 그런 짓을 하셨나요?"
간장이 끊어지는 듯 망극애통해 하는 어린 춘앵의 정상이야말로
차마 목석(木石)이라 한들 어찌 눈을 뜨고 볼 수 있으랴?
백공부부와 노복들이 놀라서 뛰쳐나와 보니, 낭자가 가슴에 비수를 꽂고
죽어 있으므로 칼을 잡아 빼려고 하였으나 끝내 빠지지 않았다.
이때 어린 동춘이 잠에서 깨어 어미가 죽은 줄도 모르고 젖을 먹으려고
죽은 어미의 가슴을 끌어안고 울기 시작하였다.
춘앵이 동생을 달래며 밥을 주어도 먹지 않고 동춘은 계속 울기만 하였다.
"가여운 내 동생 동춘아! 우리 남매도 차라리 어미를 따라 지하로 가자."
하면서 춘앵은 동생을 끌어안고 통곡하니, 그 정상은 참으로 눈뜨고 보기
어려운 참상이 아닐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난 후에 백공부부는,
"며느리가 이토록 참혹하게 죽었으니, 선군이 과거를 치르고 돌아오면
가슴에 칼꽂힌 것을 보고 우리가 모함하여 죽인 줄 알고
저도 또한 죽으려 할 것인즉,
선군이 오기 전에 한시바삐 낭자의 시체를 장사지내도록 합시다."
하고는, 숙영의 방으로 가서 시체를 움직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기괴한지고, 시체가 조금도 움직이질 않지 않은가?
이상하게 생각하여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움직여 보려고 무수히
애를 썼지만 시체는 그 자리에서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백공은 속으로,
‘이것은 필시 하늘의 뜻이라’하고 초조하게 괴로워할 뿐이었다.
한편, 선군은 아내에 대한 그리운 생각을 한시도 못 잊고,
서울로 향하는 발걸음을 떼지 못하다가,
숙영의 충고로 겨우 마음을 달래었다.
가까스로 상경한 선군은 여관을 잡아 숙소를 정하고 과거날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 날이 되자 팔도 각처에서 모여든 선비들이 과거장을 향해
구름처럼 몰려가고 있었다. 선군도 시지(試紙)를 옆구리에 끼고
춘당대(春塘臺)로 갔다. 현제판(顯題板)의 글제를 보고는 단숨에 글을
지어 맨 먼저 올렸다.
많은 선비들이 글을 지어 바치자, 상감께서 시관(試官)들과 더불어
여러 문장을 뽑아 검토하다가 선군의 글을 보시고는 무수히 칭찬하시면서
장원으로 뽑은 후에 성명의 비봉을 떼어보니
경상도 안동에 사는 백선군이었다.
상감은 선군을 불러 칭찬하시고 곧장 승전원주서의 벼슬을 내리셨다.
선군은 장원급제에 벼슬을 제수받은 사실을 시골에 기별하기 위해 편지를
써서 하인에게 주어 보냈다.
하인이 편지를 가지고 여러 날만에 시골에 다다라 선군의 부친과
숙영낭자에게 각각 전하여 올렸다. 백공이 황급히 편지를 뜯어보니,
〈소자 하늘이 도우셔서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승전원주서를 제수받아
방금 입작(入爵)하였사오니, 감축무지하옵나이다. 하향(下鄕)하여
뵈올 날짜는 이 달 보름께나 될 것이오니 그리 아시옵소서.〉
하는 반가운 기별이었다. 그리고 이미 받아볼 주인공이 없는 죽은 낭자에게
온 편지를 시어머니가 받아 들고 소리내어 울면서 손주딸 춘앵에게 주었다.
"에그, 가벼운 춘앵아! 동춘아! 이 편지는 너희 애비가 너희 어미에게
보낸 것이니 잘 간수하거라."
춘앵이 편지를 들고 어머니의 빈소로 가서, 아직 그대로 모셔둔 어머니의
시체를 흔들면서 편지를 펴들고 통곡하였다.
"어머니, 어서 일어나세요! 아버님께서 장원급제하시고,
어머님께 이렇게 편지를 보내셨어요. 모두가 기뻐하는데 왜 어머니께서만
기뻐하시지 않으시나요? 어머니께서 그 동안 아버님 소식 알지 못하여
매일 걱정하시더니, 오늘 이 기쁜 편지가 왔는데도 어이 아무 말씀이
없으시나요? 나는 아직 글을 몰라 어머니 혼령 전에 글을 읽어드리지도
못하오니 답답할 뿐이옵니다. 어머님, 아이고, 어머님!"
하고 한참을 울던 춘앵은, 할머니에게로 가서 그 손을 끌어잡고
어머니의 빈소로 와서 말했다.
"할머니, 어머니의 혼령 앞에서 이 편지를 읽어주시면
어머니께서 감동하실 것입니다."
할머니가 어린 손주의 말에 눈물을 훔치면서
아들이 며느리에게 보낸 편지를 소리내어 읽기 시작하였다.
〈이제 백선군은 한 장의 편지를 낭자에게 부치나니,
그 동안 두분 부모님 모시고 편안히 잘 있으며 어린 춘앵과 동춘이도
아무탈 없이 잘 있는지요? 나는 다행히 장원급제하여 입신양명하였으니,
천은이 망극할 뿐이오. 다만 낭자와 헤어져 천리 밖에 있으므로 사모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구려. 낭자의 모습이 밤낮 눈앞을 떠날 날이 없고
낭자의 목소리가 또한 귓가에 은은하다오. 달빛이 사방에 가득하고
두견새가 슬픈 소리로 울며 밤을 재촉할 때 홀로 서서 고향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에 싸인 산은 더없이 무거워 보이고 푸른 물줄기는
천 리 밖으로 흐르더이다. 새벽녘 달이 기울고 찬바람이 외기러기 울음을
실어 적막함을 더해줄 때, 반가운 낭자의 소식을 기다렸더니, 빈 허공에
푸른 하늘 소슬한 바람소리 뿐 낭자의 소식은 오지 않는구려.
객지에서 홀로 지내며 낭자 사모하는 심사가 더욱 간절해지오.
나는 오로지 잘 있거니와 한 가지 슬픈 것은 낭자가 준 낭자의 화상이
날이 더할수록 요즘 색이 변해가니 필시 낭자에게 무슨 변이 있는 것만
같아 불안한 생각에 침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겠소.
기쁨이 다하면 슬픔이 오는 것,
이러한 일상사는 고금에 자주 있는 것이라, 낭자에 대한 궁금한 마음에
어서 빨리시골로 내려가고픈 생각이 간절하오만, 조정에 대인 몸이라
뜻대로 할 수 없으니 심히 안타까울 뿐이오. 낭자에게 달려가고픈 심정이
이토록 간절하지만, 탄식할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내 바라건대 낭자께서는 부디 독수공방을 서러워하지 말고 기다려 주면
머지않아 서로 만나 그동안 쌓인 정회를 풀 수 있으리라.
새가되어 창공을 헐헐 날아 금방이라도 낭자 곁으로 가고싶은 마음
절박하나, 내 몸에 날개가 없는 게 다만 한스러울 뿐이오.
하고 싶은 말은 천 날을 지새워도 못 다 할 것이로되,
이만 붓을 놓겠소. 그럼 부디 평안하게 잘 있으시구려.〉
할머니가 편지를 다 읽고 손주딸 춘앵을 쓰다듬으며 애걸복통을 하였다.
"슬프구나, 어린 네가 어미를 잃고 얼마나 애통하랴?
야속하게 죽은 네 어미의 영혼이라도 너를 차마 잊지는 못하리라."
"어머니, 불쌍한 우리 어머니, 아버님 사연 들으시고도 어찌 아무 말씀
안하시나요? 우리 남매는 어머니 없이는 촌각인들 살 수 없으니
어서 빨리 어머니 계신 곳으로 데려가 주세요."
자지러질 듯이 복통하는 춘앵이의 모습은 그야말로 가련하기 이를데 없었다.
백공부부는 머지않아 아들이 돌아올 것을 생각하니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겁도 났다.
"며칠 후에 선군이 내려오면 분명히 죽은 낭자를 생각하고
저도 따라 죽으려고 할 것이니 이 일을 도대체 어찌하면 좋을꼬?"
밤낮으로 탄식한들 한 번 엎지른 물을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있으랴?
무죄한 며느리를 모해하여 스스로 자결케 만든 것을 생각하면
도무지 침식에 마음이 가질 않았다.
이때 선군을 모시고 있다가 돌아온 노복이 백공부부가 근심하는 것을
알고는 공손히 조아려 아뢰되,
"지난 번에 소상공(小相公)이 경성으로 가시는 길에,
풍산 땅에 이르러 보니, 온갖 꽃 만발하여 봄빛이 영롱할 제
어떤 한 미인이 백학과 더불어 춤을 추고있었더이다. 동리 사람들에게
물어 본 즉 임진사(林進士)댁 규수라 하였사온데, 소상께서 그 미인을
한번 보시고 흠모하여 잠시 떠나지 못하셨습니다. 그러하오니 소인의
생각으로는 그 규수를 찾아 성혼하신다면 소상공이 기뻐하시고 필히
숙영낭자를 잊으시리라 믿사옵니다."
그러자 백공이 크게 기뻐하였다.
"네 말이 옳은지고. 임진사는 나와 친교가 있는 분이니 내 말을
허트루 듣지는 않을 게고, 또한 선군이 이미 입신양명하였으니
그 댁에 구혼한들 괄시하지는 않으리라."
하고는 백공은 차비를 차려 임진사 집을 방문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백공이 임진사 집을 방문하니 임진사가 반가히 맞아들였다.
서로 인사를 하고 좌정한 후에, 임진사는 백공의 아들 선군이 용문(龍門)에
오른 경사를 치하하고, 주찬을 극진히 차려 백공을 편히 모시었다.
"이처럼 누추한 곳에 백형이 친히 찾아 주시니 감사하여이다."
"임형께옵서는 그런 말씀 삼가시오. 친구끼리의 심방은 예사이거늘
임진사택을 누추한 곳이라뇨? 그런 말씀을 듣고 보니 도리어 서운하오이다."
"하하하."
서로 정답게 웃으면서 술을 주거니 받거니, 환담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그러다가 술이 서너 순배 쯤 돌아올 때 백공이
주인인 임진사에게 넌지시 물었다.
"헌데, 내가 긴히 부탁할 말이 있는데 임형께서는 들어주시겠소?"
"허허, 그야 들을 만한 것이라면 들어야지요. 어디 얘기를 해 보시지요."
"실은 다른 일이 아니오라, 지식 선군이 숙영낭자와 인연을 맺어 금실이
좋기로 자식 남매를 낳아 잘 살았는데,
선군이 과거를 보려 상경한 사이에 그만 낭자가 갑자기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지 뭡니까? 불쌍한 생각은 가이없으나, 선군이 돌아와서
낭자가 죽을 줄을 알면 필경 병이 날 것인즉,
급히 규수를 널리 구하는 중이랍니다. 그러던 중 듣자하니
임형 댁에 어진 규수가 있다하여 자식놈의 몸이 이미 때묻음을
생각지 못하고 감히 귀댁에 구혼하는 바이니,
모름지기 임형께서 이 간곡한 부탁을 물리치지 않기를 삼가바라오."
백공의 말을 듣고 임진사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에겐 천한 딸자식이 있으나,
영식의 짝으로서는 부족하기 이를 데 없고, 또한 지난 해 칠월 보름에
우연히 영식과 숙영낭자를 보았는데, 낭자의 모습이 마치 월궁항아처럼
아름다운 숙녀였습니다. 그러니 비록 내가 백형의 뜻을 좇아 청혼을
허락한다 하더라도 영식의 마음에 차지 않을 것이요,
그때에는 여식의 신세가 불쌍하게 될 것이니,
이 말씀은 합당하지 못한 줄로 아나이다."
"그건 너무 겸손하신 말씀이외다."
백공은 거듭 임진사에게 청혼을 받아줄 것을 간청하였다.
마지못하여 임진사가 허락을 하자, 백공은 크게 기뻐하고,
"그러면 이달 보름날에 선군이 집에 돌아올 것인즉, 그때 귀댁 문 앞을
지나가게될 것이니 그날 곧바로 성례함이 좋을 듯한데
임형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백형의 형편에 따를 터이니 좋도록 하십시다."
"허허허,
지나친 부탁을 거절 안하시고 모두 받아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오."
백공이 백배 사례하고 임진사와 하직한 후 집으로 돌아와서 부인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곧 예물을 갖추어서 임진사댁으로 보내었다.
그러나 부인은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 걱정을 거듭하다가
백공에게 물었다.
"임진사댁 규수와 성혼하게 된 것은 잘된 일이오나 숙영낭자가 죽은 줄을
모르고 내려올 것이니, 집에 와서 낭자가 죽은 연유를 물으면
어찌하오리이까?"
"그것은 사실대로 말할 것이 아니라……"
백공과 그의 부인 정씨는 이리이리 하자고 약속하고는,
선군이 내려올 날을 기다려 풍산의 임진사 댁으로 가서
혼례를 치르기로 하였다.
백선군은 벼슬을 제수받은 후 특별 휴가를 얻어 조정을 하직하고
안동을 향하여 내려왔다.
상감이 내려주신 모자를 쓰고 청사관대를 입고,
오른손에 옥홀(玉笏)를 꽂고, 풍악을 올리며, 청홍개(靑紅蓋)를 앞세우고,
금안준마를 높이 타고 앞뒤에는 따르는 종복들이 옹위하며
큰 길을 행진하여 왔다.
길가에 나와 구경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백선군의 용문에 오른 영광을
칭송하고 그 재기(才氣) 준수함을 부러워하였다.
그렇게 행차하여 남으로 사흘을 간 후에 백선군이 잠시 피로를 풀고자
주점에 들려 쉬고 있는데, 문득 졸음이 와서 눈을 감으니 비몽사몽간이라.
숙영낭자가 온 몸에 피를 흘리며 방문을 활짝 열고 들어와
선군의 옆에 앉더니 절통하게 울면서 호소하는 것이었다.
"낭군께옵서 입신양명하여 영화롭게 오시니 기쁘기 그지없사오나,
저는 이미 박명하여 이 세상을 버리구 구천을 떠도는 원혼이 되었나이다.
일전에 낭군님의 편지 사연을 들으니, 낭군께서 저에 대한 사랑은
간절하시오나, 이것 또한 저의 연분이 척박하여 벌써 이 세상을
하직하였으니, 구천의 혼백이라도 한스럽기 그지없사옵니다.
아무쪼록 저의 원통한 사연을 낭군께옵서 풀어주시어 편히 눈을 감게
하여 주옵소서. 저는 너무나 억울한 누명을 썼기로 아직까지 분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구천을 방황하고 있사오니 모름지기 낭군께서는 소홀히
하시지 마시고 시시비비를 가려 누명을 벗겨 주시오면
죽은 혼백이라도 깨끗한 귀신이 되고자 하나이다."
하고 나서는 낭자의 모습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선군이 크게 놀라 잠에서 깨어나 보니 온몬에 식은 땀이 축축하고
간담이 서늘해졌다.
선군은 마음을 안정하지 못하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연유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다음 날부터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인마를 재촉하여 서둘렀다.
며칠만에 풍산 마을에 이르러 숙소를 정하였으나, 낭자 생각에 골몰하여
식음을 전폐하고 앉아 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밤이 점점 깊어갈 무렵이었다. 갑자기 하인이 와서 이르기를,
"대상공(大相公)께서 오셨나이다."
하였다.
아들을 만난 백공은 망설이다가 가족들이 모두 무사하다고 거짓으로
알리고는 선군이 장원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한 사연을 물으면서 억지로
기뻐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에 선군을 향해 은근한 말로 권유하였다.
"장부가 뜻을 얻으면 아내를 얻는 것이 고금의 상례로 되어있다 하니
너도 이제 그렇게 함이 좋을 듯하구나. 듣자 하니 이 마을 임진사의 딸이
매우 현숙하다 하므로 내가 이미 구혼하여 혼례 일자를 잡아 놓았으니,
이곳에 온 김에 내일 당장육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느냐?"
선군은 숙영낭자가 꿈에 나타나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은 일을
반신반의하고 있다가 막상 부친의 이와같은 말을 듣고 보니 이상한 마음이
들어 생각하되,
‘부친께서 이렇듯 나에게 재취를 권유하시는 것을 보니,
숙영낭자가 죽은 것이 분명하구나. 그래서 나를 속이고 임낭자와
결혼하게 하여 나를 위로해 주시려는 의도임에 틀림없다’
하고는 당장 부친께 말씀 드렸다.
"아버님 말씀은 지당하시오나, 소자의 마음은 급하지 않사오니 나중에
청혼하여도 늦지 않을 줄로 아옵니다.
그러하오니 그 말씀은 지금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아들의 성질을 잘 아는 백공은 더 이상 조르지 못하고 근심 속에서
그날 밤이 지샜다.
첫닭이 울고 먼동이 트기가 무섭게 선군은 행졸(行卒)을 재촉하여
곧바로 안동으로 향하였다.
이때 임진사는 선군이 마을에 와서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오늘의 혼례를 의논하기 위하여 선군의 숙소를 찾아가다가 도중에서
이미 안동을 향해 떠나가는 선군의 행차를 만났다.
임진사는 선군에게 장원급제한 것을 치하하고, 친구 백공을 만나
혼사에 관한 말을 꺼내니, 백공은 아직 서두를 것이 없이 천천히 진행함이
좋다는 아들의 뜻을 전하고는 어물어물 넘겼다.
이미 계획이 틀어진 백공은 당황한 마음으로,
서둘러 달려가는 아들의 뒤를 따라 함께 안동의 집으로 내려왔다.
선군은 본집에 당도한 후에 곧장 부모께 절을 한 후,
모친에게 숙영낭자의 안부를 물었다.
모친이 말문이 막혀 주저하는지라, 선군은 의아스럽게 여겨
즉시 아내의 방으로 달려갔다.
천만 뜻밖의 참경이 선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슴에 칼을 꽂은 채 누워있는 숙영낭자를 보니, 선군은 가슴이 막혀서
울음도 못 울고 그만 방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춘앵이 동생 동춘의 손목을 이끌고 달려와 아버지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통곡했다.
"아버지, 아버지는 왜 이제서야 오시나요? 어머니는 이미 죽은지
오래되었으나 아직 장사도 못 지내고 저렇게 있으니 어찌하면 좋을까요?"
하면서, 아버지를 끌고 낭자의 빈소로 들어가면서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하였다.
"어머니, 불쌍하신 어머니, 아버지가 이제 오셨으니 어서 일어나
반겨 주세요. 그렇게 밤낮으로 아버지 오시기만을 기다리시더니,
왜 그렇게 누워만 계시나요?"
딸 춘앵의 울음소리를 듣고 나서 선군은 비로소 목을 놓고 울었다.
그런 다음 다시 부모 앞으로 나와서 숙영낭자가 왜 저토록 참혹하게
죽었는지 그 연유를 물었다.
부모는 대답을 못하고 흐느껴 울기만 했다.
그러다가 부친이 울음을 멈추고 말하기를,
"네가 과거길에 오른 지 오륙일만에 네 처의 기척이 없어서,
우리가 이상히 여겨 동별당으로 가보니 저런 처참한 모습이더구나.
집안 식구가 모두 크게 놀라 그 곡절을 알아보려고 갖은 애를 다 썼으나
아직도 자세한 곡절을 모르고 있다. 하지만 짐작컨대, 어떤 놈이
네가 집에 없는 줄을 알고 밤중에 침입하여 겁탈하려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칼로 찔러 죽이고 도망친 것이 분명한 것 같다.
그 후 염습을 하려고 해도 칼이 뽑히지 않고, 시체를 옮기려고 해도
꼼짝도 않으니 속수무책이라 지금껏 너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란다.
이런 불상사를 네가 알면 병이 될까 염려하여 미리 임진사의 딸과
정혼하였던 것이니라. 네가 네 아내의 불행을 알기 전에 새 숙녀를 얻어
정을 붙이면 네 아내의 불행이 좀 위로될까 하여 그렇게 하였단다.
그러하니 너도 이왕지사 이렇게 된 일을 가지고
너무 그렇게 상심하지 말고 어서 장례 치를 생각이나 하여라."
이 말을 들은 선군은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다가
다시 아내의 빈소로 가서 크게 목을 놓아 울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와서 집안의 모든 남녀 노복들을
한 자리에 묶어서 마당에 꿇어 앉혔다. 그 가운데 매월이도 끼여 있었다.
선군이 옷소매를 걷어올리고 빈소로 들어가 이불을 벗기고 보니
마치 살아있는 듯 조금도 살이 썩지 않고 있었다.
선군은 울음을 삼키면서, ‘이제 내가 왔으니 낭자는 부디 안심하라.
가슴에 박힌 칼이 빠진다면
그 칼로 원수를 갚아 낭자의 원혼을 달래리라’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칼을 잡고 당기니 가볍게 쑥 바지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낭자의 가슴팍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나와서,
"매월이다. 매월이다. 매월이다."
하고 세 번을 울고는 날아갔다. 조금 후에 또 다른 파랑새가 날아와서,
"매월이다. 매월이다. 매월이다."
하고는 또 세 번을 울고는 날아가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선군은 매월의 질투 소행인 줄을 알고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였다.
형틀을 갖추고 모든 노복들을 차례로 문초하고 매질하였다.
하지만 죄가 없고 또한 비밀도 모르는 노복들이
어찌 진실을 말할 수 있으랴?
마지막으로 매월을 끌어내다가 문초하였으나
간악한 매월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사실을 자백하지 않으면 계속하여 죽을 때까지
사정 두지 말고 매우 쳐라!"
추상같은 선군의 호령에 좌우 사령들이 매월을 향해
사정없이 매질을 가하였다.
매가 백장(白杖)에 이르자, 무쇠같은 몸인들 어찌 터지지 않고 배기랴?
그토록 모진 매월도 절반은 넋이 나가서 개거품을 내어놓으면서 빌었다.
그리고 사건 전말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숙영낭자가 이 댁 본실로 들어온
후로 선군이 자기를 멀리 하고 낭자만 총애하기에,
질투가 생겨 그 원통한 마음을 풀려고 그와 같은 간계를 꾸며
낭자에게 누명을 씌웠노라고 하였다.
선군은 즉시 공모한 불량배 도리를 잡아다가 문초를 하였다.
그런 결과 매월의 꼬임으로 돈에 팔려 숙영낭자의 방에 드나드는 외간
남자처럼 꾸며서 백공의 의심을 사게 하였다는 것이었다.
"에잇,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 이 벌레만도 못한 인간들아!"
선군은 노기가 충천하여 칼을 들고 뜰로 내려와서 매월의 목을 한 칼에
베어 버렸다. 그리고는 배를 갈라 간을 꺼내어 낭자의 시체 앞에 놓고
통곡하며 위로하였다.
"아아, 슬프구나. 성인군자도 참수를 당하고 현부열녀도 욕을 당함은
고금에 없지 않은 불행이라고 하나 숙영낭자같이 원통 절통한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이것은 모두가 다 나 선군의 불찰로 말미암아 생겨난
불행이니 어느 누구를 원망하랴? 오늘 그 원구는 갚았거니와,
한 번 죽은 낭자의 자태를 어디 가서 다시 볼 것인가?
나 또한 마땅히 죽어서 낭자의 뒤를 따를 것인즉,
부모께 끼치는 불효를 부디 용서하여 주옵소서."
선군은 크게 탄식하고 나서 낭자의 시체를 감싸안고는
다시 목을 놓아 울었다. 그리고 매월에게 이용당하여 낭자의 음해 사건에
가담한 불량배 도리는 관가에 넘겨 머나먼 섬으로 귀양을 보냈다.
백공부부는 며느리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있다가
모든 것이 밝혀지자 무색해져 아무 말도 못하였다.
그러나 선군은 도리어 부모님을 위로하고 묵묵히 장례를 치를 준비를
서둘렀다. 빈소로 들어가 먼저 염을 하려고 하였으나,
여전히 시체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선군은 사람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혼자서 빈소에 촛불을 밝히고
탄식하면서 시체를 지키다가 문득 잠이 들었다.
그때 숙영낭자가 아름답게 화장을 하고 비단옷 차림으로 들어와 절을
하면서 말하였다.
"낭군께서 제 원수를 갚아 주시니 그 은혜를 어찌 다 갚으오리까?
어제 천상에서 옥황상제께서 저를 불러 말씀하시기를,
‘너는 선군과 자연히 만날 기약이 있는데도 삼 년 기한을 지키지 않고
빨리 인연을 맺었던 까닭에 인간 세상에 내려가서 억울하게 죽게
되었으니 누구를 원망하겠느냐?’ 하시므로, 제가 백배 사죄하고,
옥황상제께 명을 거역한 죄를 백 번 죽어 마땅하나 선군이 저를 따라서
죽으려 하오니 다시 한 번 저를 세상에 보내어서 선군과 못 다한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해 주십사하고 애원하였나이다.
그랬더니 옥황상제께서는 불쌍히 여기시고 시신에게 영을 내리시어
'숙영의 죄는 그 정도로서 이미 징계가 되었으니, 다시 살려서 인간으로
내보내어 선군과 못다한 인연을 맺게 하라'하시고,
또 염라대왕에게도 영을 내려 '숙영을 놓아 다시 인간이 되게 하라'
하시었습니다. 그러자 염라대왕이 옥황상제께 말하기를,
'상제께서 그렇게 분부하시니 마땅히 영을 받들겠사오나,
숙영이 죽은 후에 죄를 벗을 기한이 아직 못되었사오니 이틀만 더 있다가
인간 세상으로 돌려보내겠나이다'하고 청하자,
옥황상제께서 그리하라고 하시었습니다. 또한 옥황상제께서는
남극성(南極星)을 불러서 저의 수명(壽命)을 책정하라고 하시니,
남극성은 팔십까지로 정하고 세 사람이 한날 한 시에 승천케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옥황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 부부가 앞으로 자연히 세 사람이 될 것이니라.
그 이상은 천기(天機)를 누설할 수 없어서 알려 줄 수가 없노라’
하시므로 이상하게 생각하였나이다. 옥황상제께서는 또한 석가여래를
불러서 자식을 점지해 주라고 분부하신즉 여래께서는 아들래를 불러서
자식을 점지해 주라고 분부하신즉 여래께서는 아들 셋을 점지해
주셨사옵니다. 그러하오니 낭군께옵서는 제가 죽었다고
너무 상심하시지 마시옵고 며칠간만 더 기다려 주시옵소서."
하고는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선군은 꿈에서 깨고 나서도
하도 이상한지라 반신반의하며 여러 날을 더 기다렸다.
하루는 선군이 밖에서 나왔다가 집에 돌아와 낭자의 빈소에 들어가보니,
꼼짝도 않던 낭자의 시체가 옆으로 돌아누워 있는 게 아닌가?
선군이 놀라 시체를 만져보니 체온이 산 사람과 같이 따뜻하였다.
선군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부모님께 달려가 그 사실을 알리고,
한편으로는 인삼즙을 내어 입으로 흘려 넣고 팔과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그러자 얼마 후 숙영낭자는 눈을 가볍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 집안 사람들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다.
동춘을 안고 어머니의 시체 옆에 앉아있던 춘앵이가
어머니의 회상을 보고는 너무나 기뻐서 어머니 품에 와락 달려들어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 어머니! 나좀 보세요?
그 동안 어찌 그리 오랫동안 꿈속에만 계셨나요?"
하며, 춘앵은 감격하여 어쩔 줄 몰랐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낭자는 딸의 손을 붙잡고 물었다.
"네 아버님은 어디로 가셨느냐?
그리고 너희 남매는 그 동안 잘 있었느냐?"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이 엄청난 기적 앞에서 모든 사람들은 놀라워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에 잔치를 베풀고
친척을 청하여 크게 즐거워하였다.
이때 선군과 정혼을 한 임진사 집에서는 숙영낭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을 듣고는, 예물을 돌려 보내고 다른 곳으로 구혼하려 하자
임낭자가 그 기색을 알고는 부모에게 아뢰기를,
"여자의 몸으로서 한 번 정혼하고 예물까지 받았사온데,
이제 상처한 전 부인이 희생하였다고 하여 파혼하는 것은 부당한 줄로
아옵니다. 나라의 법에 부인을 둘을 두지 못하도록 금하였으면 모르오나,
그렇지 않는 한에는 소녀는 결코 다른 가문으로 시집가지 않겠나이다."
임진사 부부는 딸의 말을 듣고는 어이가 없어 딸의 말을 무시하고는
다른 집으로 혼처를 구하였다.
그러자 임낭자가 부모님께 찾아와서 말하였다.
"한 번 말씀 드린 것을 어찌 반복하오리까? 이 모든 것은 소녀의 팔자가
기박한 탓이오니, 여자의 말도 천금같이 중한지라.
한평생 시집가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지내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는 굳은 정절의 뜻을 밝혔다. 임진사 부부 역시 딸의 뜻을 돌릴 수
없음을 알고, 다른 가문으로 구혼할 계획을 포기하였다.
이런 저런 고민 끝에 임진사는 백공을 찾아와 숙영낭자의 회생을 치하하고
자기 딸의 정상도 함께 말하면서 탄식하였다. 그러자 백공은 그 모든 것이
자기의 책임인지라 깊이 사죄하면서, 또한 임낭자의 굳은 절개가 기특하여,
"과연 임진사의 따님다운 마음씨외다.
그런 숙녀의 일생을 우리 선군 때문에 망쳐서야 어디 뵈올 면목이
있겠나이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니,
이 모두 가 나의 경솔한 탓이오니 아무쪼록 나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오."
백공은 임진사에게 거듭거듭 사과하였다.
이때 곁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선군이 임진사에게 공손히 여쭈었다.
"임낭자의 금옥같은 마음씨를 듣자오니 감격할 따름이오나,
사정이 매우 난처하옵나이다. 나라의 법에 부인을 둘 두는 것은
허용되어 있사오나, 임낭자가 어찌 남의 둘째 부인이 되려 하겠나이까?"
"허허, 그러나 여식의 뜻이 그러하니 둘째 부인인들 어찌 사양하겠는가?"
하고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돌아갔다.
선군이 숙영낭자에게 돌아와 이 사실을 말한즉,
숙영낭자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였다.
"임낭자의 정념(情念)이 그러할진대 만일 낭군께서 맞아들이지 않으신다면
한 여자의 일생을 그르치는 죄악이 되고 낭군님의 죄악은 또한
저의 허물이 될 것이오니, 모름지기 낭군께서는 제 생각하지 마시고
한 여자의 불행을 구해 주소서. 또한 옥황상제께옵서도
세 사람이 같은 날 승천한다고 하셨으니, 이것도 필시 하늘의 뜻임에
분명하옵니다. 낭군께서는 양가(兩家)의 전후 사정을 상감께 상서하시어
허락을 구하소서. 그러하시면 분명히 상감께서 사혼하실 것이옵니다.
그렇게 된다면 도리어 양가의 영광이 될 것이온 즉,
세상에서도 양가의 미담을 칭송할 것이옵니다."
"상감께 청하는 것이야 뭐 그리 어려울 게 있겠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낭자가 임낭자를 구원하는 넓은 아량이니 미담의
주인공은 바로 낭자이외다. 그러므로 내가 낭자를 더욱 존경하오."
하고, 선군은 낭자의 손을 잡고 치하하여 마치 않았다.
며칠 후 상경하여 어전에 들어간 선군은 상감께 문안 인사를 드린 후,
곧 숙영낭자와 임낭자의 사정을 소상히 기록한 상소문을 올리었다.
선군의 상소문을 보신 상감은 즉석에서 크게 기뻐하시고,
"숙영낭자의 아름다운 관용의 덕은 만고에 드문 일이니
정렬부인(正烈夫人)의 직첩을 내릴 것이요, 임낭자의 절개 또한 기특하니
백선군과 혼인케 하고 숙렬부인(熟烈夫人) 직첩을 내릴 것이니라."
하시고는, 이 사실을 만조 백관에게 널리 알리시었다.
백선군은 하늘의 은혜에 감사하고, 다시 특별휴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와
임낭자와 택일하여 성례를 올리니,
새신부도 또한 보기 드문 요조숙녀였다.
신부는 시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기며 낭군의 사랑과 존경으로
모시었으며, 본실 숙영낭자와도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일이 없어 화합하여
항상 떨어지기를 서운해하였다.
그리하여 백씨(白氏)가문에는 항상 화기(和氣)가 가득 찼고,
부귀(富貴)를 누림에 결코 남을 부러워함이 없었다.
그 후 백공의 부부가 팔십을 향수하여 건강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병을 얻어 하루아침에 세상을 버리시니, 선군 부부 세 사람이 함께
슬퍼하며 선산에 장사를 지내고 삼년상(三年喪)을 치루었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어느덧 정렬부인은 삼남 일녀를 낳았고,
숙렬부인도 또한 삼삼 일녀를 낳으니, 그 팔 남매는 모두 부모를 닮아
한결같이 재기가 뛰어나고 자태가 수려하였다.
팔남매가 모두 차례로 성혼하여 가세의 번영과 함께 자손이 번창하여
대대로 복록을 누리며 만석군(萬石君)의 이름을 세상에 떨치었다.
백선군의 일가(一家)가 하루는 큰 잔치를 베풀고 자자손손이 모여
사흘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상서로운 구름이 사방을 에워싸고
용(龍)울음 소리가 진동하더니, 한 명의 선녀가 내려와서 말하는 것이었다.
"백선군은 듣거라. 인간의 재미도 좋으려니와 천상의 즐거움이
또한 그보다 못하지 않으리라. 그대 부부 세 사람의 승천할 기약이
바로 오늘이니 지체하지 말고 따르도록 하라."
하고는 백선군 노부부 세 사람을 하늘로 불러 올렸다.
이때 백선군 부부의 나이는 모두 팔십 세였다.
자손 일가가 모여서서 하늘을 우러러 보며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고
통곡하며 백선군 부부의 유품을 모아 관(棺)에 넣어서 선산에 안장하니,
후세 사람들이 두고두고 그 덕을 칭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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