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노벨문학상수상 소설가 한강 / 서시

하얀모자 1 2024. 10. 16. 00:24

 

 

 

        서시     /    한강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도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 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한강, 시집<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 지성사, 2013) 中 ‘서시’

 

 

 

 

 (작품: 아제아제바라아제)를 쓰신 소설가 한승원씨는 
소설가 한강씨의 부친 이십니다.
딸의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딸을 평 하시는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 강이의 문장은 우리들이 흉내 낼 수가 없어요.
왜 흉내 낼 수가 없냐하면
굉장히 서정적이고 여린 상처 입은 영혼의 실존 이랄까
그런 것들을 심감하게 묘사해 내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 흉내는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
아무리 탁월해도 흉내 낼 수가 없어요. "
 
"우리 딸은 문장이 아주 섬세하고
아름답고 슬퍼요.
심사위원들이 그 아름다운 문장이라든지
아름다운 세계를 포착했기 때문에
그 후세대(4세대작가)에게 상을 줬다
한림원의 심사위원들이 사고를 친거다. "
  
라고 하십니다.
 
두분 다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