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도요새에 관한 망상 - 김원일 -

하얀모자 1 2025. 6. 28. 12:27

 

            도요새에 관한 망상
                                                    - 김원일 -
 1 
모든 강은 바다로 이어졌다.
강의 하구에는 흙과 모래가 쌓인 삼각주가 있었다.
연장 54킬로미터의 동진강은 동해 남단 바다와 닿았다.
강 하구는 물살이 완만했고 민물과 짠물이 섞였다.
수심 얕은 수초 사이가 산란에 적당하기에 물고기가 모였다.
새우 무리와 조개 무리, 민등뼈동물도 모여들었다.
철새와 나그네새도 삼각주에서 주린 배를 채우며
날개를 손질하곤 떠났다.
나는 강 하구의 얕은 언덕에 앉아 있었다.
삼각주와 바다가 잘 내려다보였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강 하구에서 갈매기들이 날아올랐다.
갈매기들이 날개깃을 쳐대자 그 수다로 조용하던 개펄이 소란해졌다.
갈매기들은 주황빛 공간을 한 바퀴 선회하다 바다로 곤두박질했다.
수면에 이르자 날개를 꺾어 개펄을 따라 멀리로 날아갔다.
새벽의 공간에 자유스러운 비상이 힘찼다. 그 날갯짓이 부러웠다.
주위의 뭇시선으로부터 나도 저렇게 해방될 수 있다면.
그 해방을 어른들은 방종이라고 말하며 타락했다고 손가락질했다.
그러나 손가락질은 저들이 받아야 마땅했다.
우리 세대의 타락은 그들로부터 배웠다.
그들이 새로운 타락 방법을 만들어내면 우리는 그 방법을
재빨리 답습했다. 나는 형을 생각했다.
봄부터 철새와 나그네새에 미친 형이었다.
형은 새처럼 자유인이 되고 싶어했고,
내가 보건대 그 원대로 한 마리의 나그네새가 되었다.
그러나 형이 과연 새가 될 수 있을까.
새는커녕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을까.
한마디로 형은 미쳐버렸다. 나는 형의 얼굴을 지웠다.
찬 공기를 들이마시며 심호흡을 했다.
내 눈길이 남쪽 개펄을 따라 멀어지는 갈매기를 쫓았다.
이쪽으로 돌아오려니 했는데 웅포리 쪽으로 사라졌다.
바닷가가 고즈넉이 가라앉았다.
나는 세운 무릎에 얼굴을 박고 한동안 침묵을 익혔다.
한기로 등이 시렸다. 새도 아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형을 비웃을 수 있어도 나는 나자신을 알지 못했다.
나는 형처럼 수재가 아니었다. 지방대학 입시에 매달려
주위의 눈치만 힐끔대다 주눅이 든 한 마리 새앙쥐였다.
새 떼의 날개깃 치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나는 머리를 들었다.
이번에는 한 무리의 작은 새떼였다.
족제비가 말한 새는 동진강에는 찾아오지 않는다 했으니
도요새가 아닐 것이다. 자세히 보니 기억이 났다.
형의 책꽂이에 꽂힌 『조류도감』중에 접힌 부분이 있었다.
흰목물떼새였다.
강 하구의 갈대숲 사이를 누비다 날아올랐다.
흰목물떼새의 등은 연갈색이고 배 쪽은 흰색이었다.
목에는 흰 테를 둘렀다. 몸통은 참새를 닮았다.
뻘밭이나 물가를 걷기에 알맞게 다리가 길었다.
몸집은 병아리만했다. 날개깃 치는 소리가 갈매기만큼 시끄럽지 않았다.
흰목물떼새는 몸짓이 재빨라 금세 내 시야를 가로질러
바다로 줄달음치더니, 새벽노을로 차고 올랐다.
흰목물떼새는 텃새가 아니라,
철새 아니면 나그네새라는 것쯤은 나도 알았다.
남으로 내려갈 나그네새인지 동진강 삼각주에서 월동을 할 철새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절기로 보아 이제 가을이었다.
아열대 지방에서 월동을 하러 내려오고 있겠지.
나는 아무렇게나 생각했다. 모래사장에 내려앉아 개펄을 거닐던
흰목물떼새 중에 한 마리가 먼저 날았다.
이를 신호로 무리가 뒤 따라 날아올랐다.
창공을 질러 북쪽 해안으로 멀어졌다.
바다와 개펄은 다시 정물화가 되었다.
갈대숲은 푸른 엽록소가 탈진하여 누렇게 바래졌다.
날이 밝아오자 삼각주의 모래사장도 희끔하게 드러났다.
동진강 물이 맑지 못해 모래가 회백색이었다.
그 뒤쪽 거대한 암청색 등판을 드러낸 망망한 새벽 바다는
파도가 없었다. 많은 잔주름이 미명의 빛 속에 잘게 쪼개졌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사이나를 넣은 콩을 뿌려놓고 족제비가 가버린 지도 한참 지났다.
나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바닷바람이 차가웠다.
오한이 가슴을 훑었고 어깨가 떨렸다.
나는 날이 새기 전에 족제비와 함께 삼각주 개펄로 나왔다.
일을 마치자 족제비가 먼저 가버렸다.
나는 혼자 삼십 분쯤 언덕에 앉아 있었고,
그동안 한 일은 수음밖에 없었다. 해가 솟아올랐다.
언제 보아도 둥근 낯짝은 부끄럼 없이 당당했다.
발기하던 내 생식기처럼 힘찼다.
왜소한 나로서는 해를 보기가 창피했다.
나는 어두워야 활동하는 야행성 동물이었다.
암내나 밝히는 새앙쥐였다. 나는 또 윤희를 생각했다.
고고 미팅에서 오늘 처음 만난 짝이었다.
고고 홀은 통금해제와 더불어 끝났다.
악사도 퇴장한 뒤라 홀은 비어 있었다.
객석의 불도 꺼졌고 비상구 쪽 백열등만 켜져 있었다.
여관으로 가자고 잡아챌까봐 윤희는 줄행랑을 친 뒤였다.
종호는 운이 좋았다. 맞춘 짝과 점잖게 꺼졌다.
둘은 가까운 여관에 들었겠지. 그때, 덩돌이 족제비가 말했다.
그 역시 나처럼 맨돌부대(재수생)였다.
녀석은 재수생의 고민덩어리 골통가방을 들고 있었다.
 
“내시가 아닌데도 난 계집앨 보냈지.
 지금부터 돈벌이를 해야 하거든.” 녀석이 말했다.
 
“남의 집 담장 넘을 작정인가?”
 
“병식아, 날 따라갈래?”
 
“어딜?”
 
“동진강 하구, 삼각주.”
 
“신새벽부터 거긴 왜?”
 
“새 좀 잡게.”
 
“새는 눈이 멀었나, 네게 잡히게?”
 
“음독을 시키는 게지. 오후에 수거하면 돼.”
 
“죽은 새 구워 먹어?”
 
“그걸 팔지. 오늘 내 용돈도 그렇게 마련했어.”
 
“죽은 새 사다 뭘 해. 포장집 술안주?”
 
“내장 먹었다간 식중독으로 급행 타게.
  박제사(剝製士)에게 중개무역을 하지.”
 
“아무 새나 다 박제하나?”
 
“갈매기 따윈 쓸모없고 나그네새나 철새만. 한철 장사야.
  지금 삼각주는 그 새로 성시를 이룰 때거든.”
 
“자연보호에 위배되잖아?”
 
“그럼 용돈을 어떻게 만져.”
 
“한 마리에 얼마 받아?”
 
“청둥오리나 고니가 제값을 받지.”
 
“수입이 쏠쏠한 모양이군?”
 
“잘함 독서실 비용까지. 오늘 일당은 너랑 분배할 수도 있어.
  너 도요새 아니?”
 
“그런 새 이름도 있나?”
 
“박제사 아저씨가 그 새를 좀 구해오래.”
 
“어떻게 생겼게? 공작처럼 멋있냐?”
 
“나도 사진으로만 봤는데, 물떼새와 비슷하더군.
  여기가 공업지구로 지정되기 전에는 동진강 삼각주가
  도래지로 유명했대. 강물이 오염되자 자취를 감췄어.”
 
“도요새라?”
 
고고 홀의 어두운 비상계단을 내려가며 내가 중얼거렸다.
 
“도요새 중 동진강 중부리도요가 값이 나간데.
  희귀하니깐 가수요가 붙은 게지.”
 
“오늘 널 따라 견습이나 해보기로 하지.”
 
나는 족제비를 따라나섰다.
우리는 가방을 든 채 석교 쪽으로 빠지는 길을 잡았다.
새벽 공기가 냉랭했다. 먼 데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바다 쪽으로 바람이 부는 새벽녘이라 매연을 맡을 수 없었다.
우리는 어둠 속으로 열심히 걸었다.
삼각주 개펄에 도착하자 족제비는 가방에서 도톰한 편지봉투를 꺼냈다.
서른 개 정도의 물에 불린 콩이 들어 있었다.
족제비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지 쪽에서 기계 소리가 들렸고,
새벽바람이 바다 쪽으로 빠졌다.
족제비는 사방 오백 미터 정도의 면적에 불린 콩을 흘뿌렸다.
나는 그를 따라다녔다. 일이 끝났다.
 
“어른들 뜨기 전에 토끼자구.”
 
족제비가 말했다.
 
“시체 수거는?”
 
“해질녘에 우리 집에 와.
  등산용 가방에다 넣어 시내로 반입해야 하니깐.”
 
“넌 살인자야.”
 
내가 말했다.
 
“살인자가 아닌, 살조자인 셈이지.”
 
“너 먼저 가. 나온 김에 난 남았다 갈래.”
 
“죄책감이 드니”
 
“죄책감? 웃기고 자빠졌네.”
 
“인간은 무엇이든 죽일 수 있어. 인간은 파괴자야.”
 
“제법인데?”
 
“인간은 자연을 정복했어. 정복이란 살인이지.”
 
“그만 해둬. 이빨에 땀나겠다.”
 
“우리가 새를 잡는 건 소나 닭을 죽이는 것과 다를 바 없어.
 위법 따지자면 길바닥에 가래침 뱉어도 안 돼.
 오늘날 준법정신 지켰단 영양실조 걸려.”
 
“그만 해두라니깐. 난 남았다 일출이나 볼까 하구.”
 
나는 윤희를 생각했다. 족제비는 떠났다.
나는 바다가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가며 윤희의 알몸만 떠올렸다.
시든 풀밭에 앉자 청바지를 내리고 수음부터 즐겼다.
일을 끝내고 돌아갈까 하다, 형이 생각났다.
새에 미치고부터 형은 일출을 보겠다며 부산을 떨었다.
떠오르는 해와 함께 기상하는 새 떼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그 통에 내 달콤한 새벽잠이 엉망이었다.
나도 일출을 보기로 작정하며, 수음에 대해 생각했다.
왜 하루 한 번은 꼭 수음을 해야 하나?
나는 뾰족한 답을 말할 수 없었다.
주간지를 보면 건강에는 별 지장이 없다고 했다.
내가 섹스의 노예일까? 무한소수같이, 맞는 답을 구할 수 없었다.
타성이고 습관이라면 그만이었다.
나는 가방을 들고 언덕길을 내리 걸었다.
길섶의 풀이 바지 아랫도리에 감겼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눈꺼풀이 무거웠다.
독서실이 아니라 오늘은 집으로 들어가 엄마를 만나야 했다.
길 양쪽으로 공단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
산업도로는 인적이 드물었다. 이따금 시내버스가 빈 거리를 달렸다.
손수레를 끌고 가는 청소부 아저씨가 눈에 띄었다.
A단지 끝까지 갔을 때였다. 내 또래 공원들을 만났다.
야근을 하고 나온 여공들이었다.
걸음걸이가 힘이 없었고 얼굴이 파르족족했다.
여공 둘이 내 뒤를 따라왔다. 낮게 소곤거리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야식용 빵 있잖아?”
 
“크림이 또 변질됐던?”
 
“그게 아니구, 조장말야.”
 
“조장이 뭘 어째서?”
 
“결근한 순이 걸 조장이 먹어치웠어.”
 
겨우 빵 한 개를 가지구 주둥일 찧어. 나는 가소로웠다.
그런 쩨쩨한 생각만 하니 공순이 신세를 못 면한다 싶었다.
 
“어제 병원엘 갔다 왔어.”
 
“하루쯤 조릴 하잖구 야근까지 하다니.”
 
“이번 달엔 고향에 송금도 못했지 뭐냐.”
 
“작년까진 직속 과장이었는데, 수술비도 안 대줬단 말야?”
 
“셋째딸이 장 중첩 수술을 했대. 가불이 많아 또 가불할 수 없다나.”
 
“아무렴, 치사하다, 얘.”
 
“내가 단속 잘못한 탓이지.”
 
“그러다 몸 망쳐.”
 
“만신창이인걸. 벌써 두 번짼데.”
 
“세 번 이상 긁어내면 애 들기도 힘들대.”
 
“이젠 끝났어.”
 
“단물만 뽑아먹구 잊어달라는 쪼로군.”
 
“기혼잔 줄 알면서, 내 잘못이지 뭘. 날 검사과로 옮겨주긴 했지만.”
 
“너 외에도 당한 애가 또 있을걸. 말썽 안 피울 애만 골라서.”
 
“이러다간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화제가 그쳤다. 나는 여공들 얘기에 관심이 없었다.
얼굴과 몸매만 대충 훑어보았다.
예쁜 애는 없고 모두 그저 그런 여자였다.
오른쪽 애 젖가슴이 커보였다. 가짜일 테지.
쟤가 수술한 애일지 몰라. 그러면 가짜가 아닐걸.
애 엄마가 되려다 도중하차했으니깐.
대문의 초인종을 누르자 젖이 컸던 여공의 젖꼭지가 떠올랐다.
종옥이 문을 따주었다.
 
“독서실에서 오는 길이니? 밥은 먹었어?”
 
종옥이 손에 낀 고무장갑의 물기를 털며 물었다.
나흘 만에 보니 반가운 모양이었다.
 
“놀다 온다, 왜. 어쩔 테냐?”
 
부엌데기 주제에 뭘 참견하겠다구. 나는 짜증이 났다.
 
“공연히 신경질이야. 막 쌀 안쳤기에 시장할까봐 물었는데……”
 
엄마는 아직 자냐는 내 말에, 종옥이 머리를 끄덕였다.
 
“밥이고 뭐고 잠부터 자야겠으니 깨우지 마.”
 
“딴 상 벌이려면 네가 차려 먹어.”
 
젖깨나 주물렸다고 매사의 말투가 저랬다.
 
“종옥아, 엄마 외출하면 삼만 원 놓고 가시라고 해.
 학관비하고 식대야. 안 챙겨두면 너 죽어.”
 
아래채로 걷다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아래채는 세를 놓으려 지은 방 두 칸이었다.
작년 여름, 블록으로 방 두 칸을 지을 때였다.
집이 거의 완성 단계였는데, 그게 항공 촬영에 걸렸다.
열흘 안에 허물어 원래대로 해놓으라는 계고장이 날아들었다.
아버지가 구청으로, 시 건축과로 들락거렸으나 별무소득이었다.
시 건축과 직원과 철거반원들이 들이닥쳤다.
자진 철거를 안했기에 어쩔 수 없다고, 시 건축과 직원이 말했다.
우린 법에 따라 조처한다며 철거반원 하나가 웃통을 벗었다.
모두들 들고 온 해머를 휘두르자, 벽이 무너졌다.
집은 쉽게 허물어졌다. 철거반원들은 수돗가 라일락나무 그늘에 앉아
담배를 태웠다.
나중에 귀가하여 허물어진 집을 본 엄마가,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며, 그 바쁜 중에도 직접 나서겠다고 했다.
다시 미장이를 불러 벽을 쌓으라고 엄마가 아버지에게 명령했다.
아버지는 엄마의 말에 고분고분 따랐다.
집은 종전대로 다시 지어졌다. 이제 엄마가 구청으로, 파출소로,
시 건축과로 출입했다. 철거반원들 발길이 그쳤다.
엄마는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지만 수완가였다.
나는 대학물 먹은 아버지를 비웃었다.
 
두 칸 방 중에 하나는 형과 내가 거처했고, 다른 방은 세를 내주었다.
위채 큰방은 부모님이, 마루 건너 골방은 종옥이가 썼다.
나는 미닫이 방문을 열었다.
자던 형이 안경 벗은 게슴츠레 눈을 치켜떴다.
형은 사시(斜視)의 눈을 다시 힘없이 감았다.
형의 자는 모습이 시체 같았다.
형은 이불을 정강이께에다 말아 붙였는데,
러닝셔츠와 팬티가 눈에 들어왔다.
꾀죄죄한 면팬티의 사타구니 중심부가 포장을 쳤다.
형은 목이 칼칼한지 된기침을 캑캑거렸고 입맛을 다셨다.
아직 자는가, 아니면 가수 상태에서 자는 체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책상에 가방을 놓았다. 바지를 벗으며 형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올 여름을 넘기며 형의 얼굴이 까맣게 타버렸다.
여윈 얼굴이 오늘따라 겉늙어 보였다.
머리는 한 달쯤 감지 않은 모양이었다.
머리카락이 비듬과 기름때로 엉겨 있었다.
가파른 콧날 양쪽 뺨은 살점이 없었다. 꺼진 눈자위 주위가 검츠레했다.
형이 아직 건재하다는 증거는 새벽의 힘찬 발기였다.
배설할 길 없는 성욕뿐일까. 형의 피폐한 모습이
자살 직전의 몰골이었다. 만약 형이 죽는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형은 모든 사람을 실망시켰다.
좋은 대학에 연연하는 우리 또래 후배들에게는
치명적인 실망감을 안겼다.
형의 얼굴을 내려다보자 잠시 혼란에 빠졌다.
대학 합격이 성공의 보증수표인지 실패의 부도수표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문제를 형이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았다.
주위 사람들은 형의 앞날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옛 상태로 회복될 가망이 없다고들 말했다.
아까운 청년이 폐인이 됐어. 어쩜 조만간 연기처럼 사라져버릴 거야,
하고 두려워했다. 나도 그런 견해에 동의했다.
형은 한때 내 우상이었다. 그러나 형의 이카로스 날개는
한순간에 퇴화하고 말았다. 형의 텔레파시 회로선은 오직
‘절망’이란 단어만 남발하고 있었다.
나는 형의 절망을 배울까봐 전전긍긍했다.
나는 작년에 부산 K대학교 공대에 응시해 낙방을 했다.
며칠을 부끄럽게 지냈고, 고민은 며칠뿐이었다.
형은 수재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름이 동진 바닥에 알려졌다.
형은 서울의 명문 국립대학교 사회계열에 좋은 성적으로 입학했다.
형은 시력이 나빠 이학년 때 방위병 혜택을 받아 일년만에
군 복무를 끝냈다.
복학해서 육 개월 남짓만에 형은 불장난에 말려들었다.
내 생각으론 형의 객기였다.
아니, 형은 수재였기에 그런 위험을 자초했는지 몰랐다.
재사박덕이란 말이 어울리는 짓거리였다.
형은 하숙방에 등사기를 들여놓고
정부가 금하는 주장이 삽입된 선언문을 찍어냈다.
형의 행위는 긴급조치법 위반이었다. 형은 당연히 입학했듯,
당연히 퇴학당했다. 형은 노란 얼굴로 낙향했다. 이태가 흘렀다.
그동안 형의 변한 점은 하루 한 끼를 줄여 일일 이식을 한다는
점뿐이었다. 형의 안색은 더 창백해지고, 얼굴에서 청춘은 사라졌다.
식욕조차 없는지 하루 두 끼 조차 밥의 양을 줄였다.
나는 구석에 뭉쳐진 내 이불을 폈다. 이불을 덮어썼다.
세든 옆방에서 현자 누나의 말소리가 들렸다.
냉수 한 사발 달라는, 코에 감긴 목소리였다.
어젯밤도 숙취 끝에 자정 가까이 귀가한 모양이었다.
눈을 감자 졸음이 퍼부어 왔다.
고고 홀의 숨 막히던 더위와 뒷골을 쑤시던 사이키 음악.
그리고 어지럽게 섞갈리는 세트라이트.
몸을 비틀던 윤희의 땀 찬 이마와 긴 머리칼. 교성의 열락.
흔들림과 깨어짐의 환희.
그 끈적한 타액 같은 어젯밤의 회상이 환각으로 잠을 흩뜨렸다.
정욕 같은 시간이라는, 고고 홀 화장실의 낙서가 떠올랐다.
정욕 같은 지겨운 시간이여, 어서 끝나라. 대학 입시의 끝,
겨울이 갈 때까지. 몇 시쯤 됐을까.
눈을 뜨자 손목시계부터 보았다. 열시 반이 지났다.
머릿속은 아직도 잠을 더 자두라고 유혹했다.
오늘 하루쯤은 오후까지 내처 자버릴까. 아니다. 엄마를 만나야 했다.
이번 주까지 적분 응용문제를 훑어보기로 했던 계획이 떠올랐다.
나는 일어났다. 방 안에 형은 없었다. 형 책상에 무심코 눈이 갔다.
노트가 펼쳐졌고 깨알 같은 글씨로 무엇인가 적어놓았다.
 
 1. 물은 생활, 공업, 농업, 어업 등 모든 현대문명의 근원이며
 자연이다. 근대 이전에 있어서 물은 주로 양에만 치중하고
 그 화학적 · 물리적 · 생화학적 성질과,
 이것의 생물학적 영향에 관해서 등한시되어왔다.
 이제 지구상에 인구가 급증하고 도시가 비대해지고 많은 공장이
 건설되었다.
 거기서 흘러나오는 대량의 폐하수와 유독 물질이 한정된 수계에
 집중적으로 방출됨으로써 자연정화수는 완전히 상실되어가고 있다.
 
 2. 개발이나 공해로 자연환경이 파손되면 그곳에 살고 있던 생물은
 생존치 못한다. 설령 명맥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입지환경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이상 그 영향은 절대적이다.
 특히 조류는 이와 같은 환경의 변화에 그 영향을 정면으로 받는다.
 최근 각 지방의 물가에서 물촉새의 자취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논과 산림에 사용한 농약이나 공장의 폐수로 하천이 오염되어
 그곳에 살고 있던 물고기나 조개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어 형은 두 행을 비우고, 중부리도요라는 새 이름을
반복해서 낙서해놓았다. 족제비가 떠올랐다.
형도 족제비처럼 중부리도요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형이 박제용으로 찾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형과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내가 줄곧 도서실에서 생활한 탓이었다.
간혹 집에 들러도 형이 없을 적이 많았다.
얼굴을 본들 별 할 말이 없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형은 새에 관해 생각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새와 공해. 형의 생각은 이제 공해 문제에 미쳤음이 분명했다.
정부나 시에서도 엄두를 못 내는 도시의 공해 대책을
형이 어떻게 해결하겠다구.
어쨌든 형은 이상적인 만큼 비현실적이었다. 상식의 궤도를 벗어났다.
거기에 비해 족제비는 실속주의자였다.
나는 마루에서 아침과 점심 사이 어중간한 밥을 먹었다.
밥상에 내려앉은 가을볕이 따뜻했다.
수돗가에 현자 누나가 있었다.
나일론 속치마를 하이타이 거품물로 헹구는 참이었다.
화단의 라일락 잎이 현자 누나 등에 그늘을 내렸다.
얇은 티셔츠 안에 브래지어끈이 선명했다.
공장에 다니던 작년만도 현자 누나 허리는 날씬했다.
올봄 맥주홀에 나가고부터 곡선이 무너졌다.
아버지는 큰방 문 앞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돋보기 너머로 구인 광고란을 살폈다.
 
“엄만 언제 나갔나요?”
 
내가 아버지께 물었다.
 
“곧 온댔어.”
 
“광고란에 중고 신참 쓸 마땅한 일자리라도 있나요?”
 
“그저 보, 보는 거지.”
 
아버지가 어물쩍 말했다.
 
“놀고 지내기도 심심하죠? 저하고 바꿔 됐음 좋겠어요.”
 
아버지는 대답 없이 재떨이에 놓인 꽁초를 입술에 끼웠다.
아버지 연세는 올해로 쉰하나였다.
노동은 모르지만 아직 사무 일은 볼 수 있는 나이였다.
다리를 잘름거리고 말은 약간 더듬지만 건강에는 이상이 없었다.
작년 초까지 아버지는 시내 공립중학교 서무과장이었는데,
작년 학기말에 물러났다. 엄마 탓이었다.
엄마는 아버지를 통해 학교 공금을 빼내 썼던 것이다.
아버지가 처음부터 엄마 농간에 놀아나지는 않았다.
공금을 빼내 개인 용도로 쓸 만큼 아버지가 배짱이 있지 못했다.
아버지는 꽁생원으로, 소심하고 옹졸했다. 겁이 많았다.
아버지는 이를 전쟁 탓으로 돌렸다.
언젠가 아버지는, 고향을 잃고부터 가슴에 큰 구멍이 뚫렸다고 말했다.
통일이 되지 않는 한 메울 수 없는 구멍이라고 자탄했다.
고향을 잃고 살기는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기에 아버지 이유는 타당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금강산을 낀 강원도 통천군 두백리가 고향이었다.
들은 바로, 그곳에서 배 열 척과 어장을 가진 수산업 재력가 아들로
태어났다. 해방 전 일본에서 전문학교를 다녔고,
해방 후 서울에서 대학에 적을 두었다.
전쟁이 난 해 6월, 결혼을 하려 고향으로 간 게 그만 발이 묶였다.
그해 7월 아버지는 고향서 징집 당해 인민군 소위로 참전했다.
지난봄 어느 날, 아버지는 나도 낀 자리에서 형 질문에 대답했다.
아버지는 공산주의가 원래 생리에 맞지 않았다고 했다.
객관적으로 어느 주의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
그들은 매사에 과격하다는 것이다.
사나운 맹수가 인간의 탈을 쓰고 인간을 집단으로 길들이려 덤비니,
인간을 생각하는 동물로 남겨두지 않는다고 했다.
 
“혁명, 투쟁, 반동, 처단…… 단어만 들어도 끄, 끔찍해.
 사람은 다 개성이 다르기에 가, 각자의 꿈과 소망이 다르듯,
 나는 그런 개성과 차, 창의력을 존중해.
 또 너들이 알다시피 인간이 생산과 노동 이외 마음대로 옮겨 살 자,
 자유와 사색도 피, 필요하구……”
 
아버지의 더듬는 말이었다. 그 말에 형이,
아버지는 전쟁의 희생자로 분단 현실이 당신의 희망을 앗아갔다고
토를 달았다. 그 말에 내가 나섰다.
 
“교과서의 통일이란 말씀은 귓구멍에 못으로 박혔어.
 그런데 뭐야. 지금 상태에서 저쪽과 무슨 대화가 통해.
 선생님도 자유민주주의와 전제공산주의는 무력의 길 외에는 통일이
 힘들다고 말했어. 나도 동감이야. 통일을 위해 누가 전쟁을 원해?
 오천만이 넘는 인구중 몇 할이 전쟁과 통일을 바꾸자고 나서겠어?
 전쟁은 모든 걸 망쳐. 전쟁을 통해 통일을 도모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영구적인 분단이 오늘을 살기에는 편해.”
 
내 말을 형이 반박했다.
 
“너희 세대는 통일의 중요성을 몰라. 그런 사고방식을 갖게 된 건
 잘못된 교육 탓이야.”
 
형 말에 아버지가 머리를 주억거리며,
모든 게 오늘의 교육 탓이라고 했다. 이 물량 위주의 자본주의 사회가
젊은 애들을 나쁜 쪽으로 몰아가서 가치판단의 기준을 잃게 했다며,
교육계에 몸 담았던 티를 냈다.
 
“통일을 외치는 아버지나 형보다 저희들은 통일에 무관심한 세대죠.”
 
내가 콧방귀를 뀌었다.
인간은 정직이 중요한데 네 생각은 정직하지 못하다고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 말에 잘못은 없었다. 아버지는 정직을 생활신조로 삼았다.
아버지는 학교에서 빼낸 공금을 보름 안으로 꼭 메우겠다는
엄마의 약속을 긴가민가했다. 엄마는,
파산 끝에 가족이 거리로 쫓겨난다,
청산가리로 집단자살하자, 보름이면 꼭 그 돈 돌려막을 수 있다,
나 혼자 감옥에 가거든 잘먹고 잘살라는 극단적인 위협을
서슴지 않았다. 협박과 공갈로 아버지를 설득시켜,
그 결과 오백만 원 돈을 우려낼 수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으로 돌아왔다.
 
“이건 나, 날강도다. 일을 저, 저질렀어.
 이젠 나도 책임질 수 없다……”
 
아버지는 우리방으로 건너와 형과 나를 잡고 겁에 질려 훌쩍였다.
엄마는 그 돈으로 깨어지려는 계를 겨우 수습했다.
아버지와 약속한 보름이 지났다. 엄마는 그 돈을 갚지 못했다.
아버지는 안절부절, 엄마는 안달을 냈다.
이제는 아버지가 날마다 자살 타령을 읊조렸다.
결국 아버지는 교장에게 사실을 자백했고, 권고사직을 당했다.
아버지의 스물네 해 공직 생활은 불명예로 끝났다.
퇴직금을 얼마간 받았으나 그 돈으로 횡령한 공금을 다 메울 수 없었다.
학교에서 송별회를 마치고 술에 취해 돌아온 날 밤,
아버지는 우리들 앞에서,
 
“암탉이 울면 지, 집안이 망한다더니……”
 
하는 말만 읊조렸다. 그로부터 아버지는 집 안에 들어앉았다.
달마다 만천 원씩 나오는 삼급 상이용사 연금이
아버지의 유일한 벌이였다. 엄마는 역시 수완가였다.
식구를 거리에 나앉게 하지 않았고, 끼니를 거르게 하지도 않았다.
엄마의 능력으로 우리 식구의 생활은 예전 그대로의 수준을 유지했다.
경제권이 엄마에게 옮겨간 것이 달라진 점이라 할 수 있으나,
사실은 전에도 엄마가 경제권을 쥐고 있었다.
대문의 초인종이 울렸다.
내가 밥그릇을 비우고 숭늉으로 입안을 헹굴 때였다.
종옥이 대문께로 나갔다. 엄마가 치맛귀를 싸쥐고 들어오며
나를 힐끔 보았다. 엄마는 가죽백을 마루에 던지며 주저앉았다.
 
“망했어. 빚내서 이자 치르면 또 새 이자 빚이 늘어나고……
 도대체 돈이 씨가 말랐나, 이렇게 융통이 안 돼서야.
 우리도 끼니 거를 날이 올 테지. 종옥이도 내보내야겠다.
 아파트에 손댄게 잘못이었어.”
 
엄마가 한숨 끝에 말했다.
 
“서울 부동산 경기 침체가 예까지 쳐들어왔나?
 프리미엄만 떼이면  될 텐데.”
 
내가 말했다. 아버지가 신문에서 눈을 떼고 엄마를 보았다.
한마디 할 듯 입술을 달싹거렸으나 잔기침만 뱉곤
신문에 다시 눈을 주었다.
 
“이제 전매가 안 된다잖아. 실수요자 아님 집을 살 수 없대.”
 
“아파트를 은행에 담보 잡혀 돈을 돌리세요.”
 
“넌 하란 공부 안하고 머리가 그쪽으로만 트이냐? 요즘 어때?
 독서실 배겨낼 만해?”
 
“그저 그렇죠, 뭐.”
 
“올해 낙방하면 걷어치워. 뭐 꼭 대학을 나와야 돈을 잘 버냐.
 너도 네 밑 닦을 줄 알아.”
 
나는 돈이 필요했다. 엄마 푸념에 물러설 수 없었다.
엄마의 저런 넋두리와 짜증에 나도 만성이 된 터였다.
 
“엄마, 삼만원쯤 줘. 학관비를 내야겠구, 용돈도 없구.”
 
“맨날 무슨 돈타령이니. 넌 엄마 낯짝이 돈으로만 뵈니?”
 
“사실은 오만 원이 필요한데 깎아서 부른걸요.
 밤샘하며 라면만 먹었더니 속도 쓰리구……” 
 
나는 끝말을 죽였다. 늘 구걸하는게 버릇이 되었다.
정에 약한 엄마를 이용하는 데는 응석부림이 효과가 있었다.
 
“공부구 뭐구 때려치워. 형 꼴 좀 봐.
 네 형만 보면 억장이 무너지니……”
 
하더니, 엄마는 백을 당겨 오천 원권 석 장을 집어냈다.
 
“강습소고 독서실이고 집어치워. 집에 들앉아 공부한다구
  안 될 게 뭐냐.”
 
돈을 챙긴 나는 얼른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골목 입구 약방 앞까지 왔을 때였다.
 
“병식아, 나 좀 봐.” 누가 뒤에서 불러 돌아보니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잘름거리며 쫓아왔다. “돈 오천 원만 비, 빌려주겠니?
 월말에 돌려줄게.”
 
“내가 쓰기도 모자라요.”
 
사실이 그랬다.
어젯밤 고고 홀에 갈 때 족제비가 오천 원을 빌려주었다.
그 돈은 오늘 갚기로 약속했다.
 
“원호금 타면 돌려주마. 급히 쓸 데가 있어서 그, 그래.”
 
“엄마한테 말하지, 왜 날보구 이래요?
 돈 타낼 때 엄마 잔소리 하는 거 들었잖아요?”
 
나는 몸을 돌렸다. 아버지의 발소리가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발걸음은 기원으로 돌려질 터였다.
거기 나가면 함경도 출신의 삼팔따라지 바둑 친구 강회장이 있었다.
아버지는 강회장에게 돈을 빌릴 것이다. 나는 내처 걸었다.
독서실에서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는 족제비네 집으로 가서
박제품 수거에 따라붙어야지. 나는 쉽게 결정을 내렸다.
 
 2
9월 중순을 넘기면서 가을도 성큼 한발 다가섰다.
여름 동안 무성했던 뭉게구름이 하늘에서 자취를 감추고
건조한 바람이 대기를 채워 불었다.
강가의 작은 벌레나 물고기, 조류도 살이 오르고,
겨울을 날 생물들은 겨우살이 준비에 착수했다.
식물은 뿌리를 더 견고하게 대지에 박고,
먹이를 쫓는 동물의 싸댐도 분주해졌다.
이런 절기쯤이면 동진강 하구의 삼각주에는 여러 종류의 나그네새와
철새를 볼 수 있었다.
천둥오리 · 바다오리 · 황오리 · 왜가리 · 고니 · 기러기 
꼬마물떼새 · 흰목물떼새 · 중부리도요 · 민물도요 · 원앙이
농병아리 등, 수십 종의 철새와 나그네새가 먹이를 쫓아
싸대는 수다스런 행동거지가 볼 만했다.
각양각색의 목청으로 우짖는 소리와 날개 치는 소리가
강변 갈대밭을 덮었다.
동남만 일대가 공업화의 도전을 받자 새의 종류와 수가 줄어들었다.
근년에 그 현상은 더 현저해져 공해에 강한 새들만
동진강을 찾아들 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새나 보호조는
날아들지 않는 종류까지 생겼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 늦가을이니 다섯 해 전이었다.
문리대생들의 교내 소요가 있자 학교당국은 일주일 동안
가정학습을 실시했다. 나는 급우와 함께 고향집으로 내려왔다.
우리는 닷새 동안 바다와 맞닿은 동진강 하구의 삼각주 개펄에
텐트를 치고 야영했다.
그때만 해도 공해나 자연보호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고,
나그네새나 철새를 관찰한다는 특별한 이유로 야영을 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라디오도 소지하지 않았고 오직 자연을,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보고 즐겼다.
세상 밖 문명이나 지식, 우리 연령대의 열정과 고뇌,
분노도 망각한 채 외곬으로 자연에 함몰된 상태로 닷새를 보냈다.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에 빠졌던 때였으나
나는 닷새 동안 책을 읽지 않았다.
 
“병국아, 잠 깼니? 또 우짖기 시작하는군그래.”
 
미명 무렵, 친구가 말했다. 새 떼가 기상을 시작한 것이다.
천막 밖은 어둠이 걷혀갔고 한랭한 공기가 천막 안으로 밀려 들었다.
바닷가에서는 늦잠을 잘 수 없다며 친구가 일어나 앉았다.
 
“어제처럼 개펄로 달려볼까?”
 
머리맡의 안경을 찾아 끼며 내가 말했다.
 
“우리 발걸음에 쫓긴 수백 마리 새 떼의 아우성이 듣고 싶어?”
 
“재밌잖아? 날려 보내면 금세 우리 뒤로 돌아와 앉을 텐데.”
 
“산탄총을 갈겨대면?”
 
 친구가 물었다.
 
“총알에 맞은 새는 한 점 순수로 떨어질 테지.”
 
나는 어느 시인의 시구를 인용하며 웃었다.
 
“총알에 맞지 않은 새는?”
 
친구가 빤한 질문을 했다.
 
“멀리 날아가 다시 오지 않을걸.”
 
우리는 큰 소리로 웃곤 파카를 껴입고 텐트 밖으로 나왔다.
바닷바람이 소금 냄새를 풍겼다.
밤새 바다와 하늘을 묶어놓았던 어둠이 퇴각하고 있었다.
수평선이 상하로 쪼개지며 선을 그었고,
그 선을 구획 삼아 붉은 빛살이 살아났다.
바다의 어둠이 빛살을 빨아들인다면 하늘의 어둠은 빛살에 튀어 터지는
참이었다. 우리는 맨발인 채 개펄로 뛰었다.
발바닥에 닿는 습기찬 모래땅의 감촉이 좋았다.
새벽노을을 배경으로 점점이 뿌려져 나부끼는 새 떼의 힘찬 비상을
볼 수 있었다. 다섯 해 전 그때만 해도 나는 수십 마리,
또는 그 이상으로 떼를 이룬 도요새 무리를 보았다.
메추라기 같은 몸체에 머리 위와 눈썹 부분이 크림색이던 도요새는,
지금 따져보면 중부리도요가 틀림없었다.
우리가 가까이 가도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삼각주 개펄에서
긴 부리로 조개나 게, 새우 따위를 쪼던 모양이
지금도 눈에 선히 떠올랐다. 친구가 서울로 올라가고 이태 뒤였다.
나는 학교로 정배형을 찾아갔다. 형은 동진시의 유일한 전문대학에서
생물학을 가르치는, 내가 나온 고등학교 육 년 선배였다.
 
“중부리도요는 울음소리로 금세 구별할 수 있지.”
 
그 방면에는 내 스승격인 정배형이 말했다.
그는 공해 문제 중 수질오염에 관심이 많았고,
그 방면의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떻게 우는데요?”
 
내가 물었다.
 
“글쎄, 입소리로 그걸 어떻게 흉내 낼까.
 폿폿, 폿폿폿폿 또는 폿폿폿, 폿폿폿폿 하고 예닐곱번씩 계속 읊어.”
 
“녹음해둔 건 없나요?”
 
“녹음기가 있긴 해. 그러나 성능이 좋지 않아.
 테이프레코더는 갖춰야 하는데, 선생 박봉으론 엄두나 나야지”
 
하며 정배형이 웃었다.
 
“며칠 전에 사흘 동안 삼각주 갈대밭에서 야영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우는 새는 못 봤는데요.”
 
나는 동진강 하구 삼각주 갈대밭에서 나그네새, 철새 종류를 관찰하며
기록한 노트를 정배형에게 보였다. 정배형이 노트를 훑어보았다.
 
“낙동강 하구가 도요새 도래지이지만 예부터 동진강 하구는
 중부리도요 도래지로 알려졌어.
 우리나라 동남해안 일대에서는 유일한 중부리도요 서식처인 셈이지.
 그래서 서울의 조류 연구가도 중부리도요 습성을 관찰하러
 봄가을로 이곳을 찾곤 했었지. 그러나 수 년 사이 중부리도요는
 나도 못 본걸.”
 
정배형이 말했다.
 
“수질 오염으로 먹이가 없어서 도래를 않는다면
 동남만 부근의 다른 못이나 개펄로 옮겨간 게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찾아보면 새로운 도래지를 발견할 수 있을거야.”
 
“언제 자전거라도 빌려 타고 해안 일대를 수색해볼까요?”
 
“좋은 생각이야. 수업이 없는 토요일 오후쯤이 좋겠군.”
 
“일박이일로요?”
 
“취사 일체는 내가 준비하지.”
 
“쓰던 논문은 어떻게 마무리되어갑니까?”
 
“논문이랄 게 있나. 겨우 원고지 백 장 분량인걸. 대충 끝냈어.”
 
“수질 오염도가 어때요?”
 
“동진강 하구 삼각주 지역 해수는 말할 것도 없고
 웅포리 개펄 수은 농도가 평균 0.013피피엠이야.
 허용 농도가 0.005피피엠이니, 허용 기준치를 많이 초과한 셈이지.
 더욱이 공해병인 이타이이타이병(病)을 일으키는
 카드뮴의 함량이 0.016피피엠이야.”
 
“시장에서 파는 미역이나 다시마는 물론이구
 웅포리 회도 못 먹겠군요. 대부분 이곳 동남만 인접 어장에서
 수거하거나 잡아오니깐요.”
 
“작은 문제가 아니라니깐.”
 
“제가 서울 Y신문 주재기자 한 분을 아는데 자리 마련해볼까요?”
 
“이런 발표일수록 신중해야지. 생계가 걸린 사람들의 피해도
 무시할 수 없으니깐. 환경오염 피해는 십 년이나 이십 년 후에
 나타나지만, 당장 반응이 오는 그런 고발 기사의 역효과도
 생각해야 해. 하루벌이 목판장수들, 영세어민 등,
 그들 대책도 아울러 강구해야지.”
 
“대의를 위해서는 부득하잖습니까. 
 그 보고는 사실에 입각한 거니깐요.”
 
“그렇긴 하지. 조치가 빠를수록 우리들 식탁이 건강해지니깐.”
 
“진실은 알릴 필요가 있어요. 일본의 미나마타 공해병(公害病)을
 보더라도 말입니다.”
 
미나마타병은 일본 구마모토 현 미나마타 시에 있는
신니치 질소 비료공장이 아세트알데히드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나온 메틸수은이 함유된 폐수를
미나마타 강에 그대로 배출함으로써 야기된 공해병이었다.
메탈수은에 오염된 어패류를 장기간 섭취한 현지 주민이
그 병에 걸리자, 앓는 환자가 천육백여 명,
사망한 환자가 이백팔십여 명이나 되었다.
미나마타병은 지각장애, 청각장애, 혀의 경화 등을 일으키며,
임산부의 경우에는 태아가 그 수은을 흡수하면 태아성 미나마타병에
걸려 출생 후부터 일생을 식물인간으로 살아야 하는
무서운 공해병이었다.
나는 라이프지 기자 유진 스미스 부부가 미나마타 마을을 취재해서
찍은 사진들 중 한 컷을 본 적이 있다.
유진 스미스 부부는 취재 도중 현지 주민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실명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사진은 일본식 욕조 안 광경이었다.
어머니가 태아성 미나마타병에 걸린 십칠 세 딸을
목욕시키는 장면이었다.
전면에 부각된 딸은 몸통을 욕조에 담그고 다리와 상체는 
욕조 밖으로 내놓고 있었다.
백치 딸은 눈을 치켜뜬 채 허공을 응시했으나 그 눈은 태어날 때
이미 맹인이었고, 두 다리는 장작개비같이 말라 있었다.
딸의 어깨를 씻겨주는 엄마의 표정은 우는 듯 일그러졌는데,
딸의 얼굴을 쳐다보는 모성의 애절한 눈망울이 인상적이었다.
십칠 년을 식물인간 상태로 숨 쉬는 딸을 지켜보아야 했던
엄마의 정신적 고통은 어떤 보상으로도 해결될 수 없으며,
문명의 부산물인 공해병이 얼마나 가공할 파괴력으로
인류 사회에 침투하는지 증언한 충격적인 사진이었다.
 
“우선 논문이 정리되는 대로 곧 학계에 보고하겠어.”
 
정배형이 말했다. 정배형이 쓰던 논문은 
 
「동남만 생산 식용해조 중 수은 카드뮴 납 및 구리의 함량분석」
 
이었다.
형은 그 논문의 자료 수집을 위해 지난 겨울방학을
동남만 개펄에서 보냈다. 형과 내가 이런 대화를 나누기는 올 봄,
내가 정배형을 찾아가 인사를 나눈 지 일주일 뒤였다.
내가 정배형을 찾은 이유는 나그네새의 습성과 도래에 관해
자문을 얻기 위해서였다.
정배형은 내 질문에 소상한 설명을 아끼지 않았다.
외로운 작업에 동지 한 명을 얻어 기쁘다고 했다.
 
“자네도 이 신흥 공업도시의 공해문제에 관심이 크군그래.”
 
정배형은 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로부터 형과 나는 동지가 되었다. 나는 날마다 정배형 학교로,
형 집으로 쫓아다녔다. 형 연구실에서, 술집에서,
동진강 하구에서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특히 나그네새나 철새의 생태에 수질오염이 미치는 영향을 두고
이야기했다. 그때부터 나는 새에 미쳐버렸다.
학교 대형 게시판의 제적자 명단에 내 이름이 나붙기는
이 년 전 가을이었다. 나는 하릴없이 열흘 동안 서울에 머물렀다.
그때부터 나는 하루 세끼 식사 중 두 끼만 먹기로 결심했다.
일일 이식이 건강에 좋다고 해서 그 말에 따른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 육체를 학대하면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고행 끝에 달관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인도의 힌두교도들처럼
극기의 초기 단계로 절식을 결심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긴장의 한 방법으로 선택했을 뿐이었다.
 
나를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내 생리적 욕구부터 절제하는 게
필요했다. 자기 수련은 가득 찬 상태보다
비어 있는 홀가분한 상태에서 시작해야 했다.
뒤에 안 일이지만 체중을 가볍게 하는 새가 그랬다.
나는 열흘 동안 서울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다. 입이나 살 정도의 일거리는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바닥에서 끼니 잇기가 현재 상태보다 나아질 조짐이
없어 보였다.
상한 마음을 위로 받을 길 없이 끓는 열정을 꾹꾹 눌러 삭이는 친구들,
웬만큼 익숙해져 세상형편에 적당히 얹혀버린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조증을 앓는 마음을 달래느니 낙향이 나을 것 같았다.
고향에서 내가 할 일이 없더라도 그곳은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성장지였다. 나는 짐을 챙겨 다시는 서울에 걸음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고속버스에 올랐다.
밤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파리하게 시든 병약한 청년이 불안한 눈동자로 나를 마주보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소심한 벙어리 청년이 되어버렸다.
비로소 내가 어떤 면에서 말더듬이 아버지를 닮았음을 깨달았다.
구치소에서도 울지 않았던 눈에서 말더듬이 아버지를
닮았음을 깨달았다. 구치소에서도 울지 않았던 눈에서 더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광야에서 초인을 기다리던 설렘과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를 그리던
내 열정이 노래로 남고, 삶의 열정조차 덧없는 한때로 받아들일 때,
나는 내 낙향을 젊음의 끝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고향 역에 도착하니 밤 열시,
깜깜한 하늘이 가을비를 뿌렸다.
고향에서 나는 당분간 칩거를 각오했다.
엄마는 거지로 돌아온 이도령을 맞듯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여자 몸으로 시장바닥을 싸대며 일수놀이해서
가정교사도 하지 말라 하고 공무원 봉급만큼이나 비싼
서울 하숙까지 시켰더니 그 결과가 이 꼴이냐며
며칠을 식음조차 놓았다.
내가 결코 암행어사가 될 수 없음을 나도 알았지만
부모를 실망시킴도 죄악임을 깨달았다.
나에 대한 엄마의 기대가 컸던 만큼 내 낙향은 반비례의 배반이었다.
 
공학박사로 동진시 공업단지를 총괄할 행정 책임자 정도는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엄마로서는 그 넋두리가 당연한 결과였다.
며칠의 넋두리가 끝나자 
엄마는 그전에 내게 보였던 사랑을 증오로 갚기 시작했다.
넋두리가 욕설로 변했다. 용돈은 십 원 한 장 줄 수 없다.
앉은자리에서 자결해라. 자결을 못 하겠담 문밖 출입을 말아라.
대역죄인이니 동네 사람들 보기가 부끄럽다.
엄마 말은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었기에 나는 그 말을 소화해냈다.
낙향 닷새째, 엄마는 표범으로 돌변했다.
내 방의 책들을 마당으로 꺼내어 불살라 버린 것이다.
화가 돋친 엄마는 방으로 뛰어들어 내 옷가지와 심지어
구두까지 불길에 던져버렸다.
친구나 이웃에게 자랑하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
상장도 불길 속에 던져졌다.
그때 나는 엄마가 내게 걸었던 기대가 모성보다는
자식에게 기댄 허영심임을 알았다.
 
그런 엄마를 나는 미워할 수 없었다.
다만 내 마음을 차지했던 엄마의 비중이 조금 낮아졌을 뿐이었다.
그 뒤부터 엄마의 잔소리가 귀 밖으로 흘러갔다.
병식이가 나를 보는 눈도 엄마 못지않았다.
아우는 노골적으로 표정에 경멸을 담았으나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나름대로의 삶의 길에 내가 배척당했다고,
그의 생각을 수정시킬 필요는 없었다.
그의 사리분별력도 나름 객관적이었으나 나와는 다른 객관이었다.
개인 의사가 존중되어야 하는 만큼 그의 생각도 자유였다.
그러나 오직 아버지만은 내 편이었다.
아버지는 낙향 첫날, 나를 따뜻이 위로 했다.
돌아온 탕아를 맞이한 예수처럼 나를 맞아들였다.
경제권이 없어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지 못했지만,
일생 중 한번은 넘어진다,
 
그러나 그 한 번에 인생 전부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내 손을 잡고, 이 세상의 영화나 권력, 재물과 닿지 않더라도
삶에는 여러 길이 있음을 더듬는 말로 이야기했다.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면,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히고, 그의 살과 뼈를 지치게 만들고,
그의 육체를 주려 마르게 하고, 그의 생활을 궁핍하게 해서,
하는 일마다 그가 꼭 해야 할 일과는 어긋나게 만든다는
맹자의 비유까지 들먹였다.
 
방 안에서 보내는 감금 상태의 생활에도 한도가 있었다.
내가 방 안에서 갇혀 지내야 할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었다.
열흘 뒤부터 나는 고등학교 친구를 찾거나 시립도서관 출입으로
외출을 시작했다. 나를 보는 이웃의 시신이 의외로 차가운 데
또 한 번 곤욕을 치렀다. 모두 나를 경원하고 두려워했다.
그로써 나는 가족과 사회, 어느 곳에도 안주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내가 환경을 거부했는지 환경이 나를 도태시켰는지
한동안 갈피를 못 잡은 채 어리둥절해했다.
나는 홀로인 채 도시의 매연 낀 거리와 폐수로 오염된 개펄을 방황했다.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내 실체만 남고 내 정신은 나로부터 떠났다.
흘러간 시간은 다만 공간이며 흐르는 현재 시간이
진정한 시간이라는 베르그송의 말에 동의한다면,
현재 시간조차 각성치 못하는 상태에서 다가올 시간을 어떻게 믿으랴.
나는 어느덧 삶을 비극의 본질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졌다.
때때로 자살을 생각해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죽음의 선택이 자유스러운 만큼 그 결단은 단순한 사고를
요청하지 않았다. 나는 너무 나약한 심성의 소유자였다.
 
나는 약육강식의 시대에 아직 내가 맡아야 할 일이 남아 있을 거라며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희망적인 낌새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우리 나이가 중년에 이르렀을 때쯤,
이 시대가 당도할 좌절이나 희망만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죽음을 유보하면서도 삶답지 못한 생존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이 도시의 생활환경이 왜 자연을 파손시키느냐 하는
또 다른 문제에 나는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동진강 하구의 삼각주 개펄에서 새 떼를 만났다.
실의의 낙향으로 술만 죽여내던 깜깜한 생활 안으로
나그네새의 울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새가 내 머릿속으로 자유자재 날아다녔다.
수백 마리씩 떼를 지어 의식의 공간을 휘저었다.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가진 것은 동진강 하구에서 자취를 감춘
도요새였다.
 
나는 깨어진 내 청춘의 꿈 조각을 맞추겠다고 도요새를 찾아
미친 듯 헤매었다. 도요새 중에서도 중부리도요를 발견하려고
휴일에는 정배형과 함께, 다른 날은 나 혼자 동남만 일대의
습지와 못과 개펄을 싸돌았다.
봄은 짧았고 곧 초여름으로 접어들었다.
그때는 이미 물떼새목(目)의 도요새과(科)에 포함된 그 무리는
우리나라 남단부를 거쳐 휴전선 하늘을 질러 북상한 뒤였다.
다시 도요새 무리가 도래할 시절을 기다렸다.
시베리아, 알래스카, 캐나다의 툰드라에서 편도 일만 킬로미터를 날아
남으로 내려오는 그 작은 새 떼의 긴 여정에 밤마다 환상으로 동참했다.
 
내 사고의 닫힌 문을 도요새가 날카로운 부리로 쪼며 밀려들어,
떠남의 자유와 고통에 대해 여러 말을 재잘거렸다.
 ―우리는 여름을 한대 추운 지방에서 번식해
가을이면 지구 반을 가로지르는 여행길에 오른다.
우리는 떠나야 할 때를 안다.
얇은 햇살 아래 파르스름하게 살아 있던 이끼류와 작은 떨기나무가
잿빛으로 시들고, 긴 밤이 북빙의 찬바람을 몰아올 때쯤이면
여정의 채비를 차린다.
여름 동안 자란 새끼도 날개를 손질하며 출발의 한때를 기다린다.
우리의 여행은 생존에 필요 불가결한 자유를 찾기 위한
고통의 길고 긴 도정이다. 처음 떠날 때, 우리는 무리를 이루지만,
창공을 가로질러 쉬지 않고 날 때는 혼자 날 뿐이다.
마라톤 선수가 42.195킬로를 완주할 때 오직 자신과 싸우듯,
작은 심장으로 숨가빠하며 혼자 열심히 난다.
그렇다고 방향이나 길을 잃는 법은 없다.
혼자 날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고,
내 유전자 속에는 조상새로부터 물려받은 선험적인 길눈이 따로 있다.
우리는 각각 떨어진 개체지만 나는 속도가 일정하고,
행로가 분명하기에 낙오되거나 헤어지지 않는다.
오백만 년 전 신생대부터 조상새는 고통의 긴 여행을 터득해왔기
때문이다. 인간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바다와 하늘이 맞물려 있는
무공천지에 길을 열어 봄가을로 두 차례 대이동을 한다.
오직 생활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라고 치부한다면
인간도 거기에 예외일 수 없다.
오히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한다는 핑계로 사악해지고,
탐욕스럽고, 음란하고, 권력욕에 차 있다.
자연의 환경을 파괴하고 끝내 너희들을 파멸의 길로 이끌 물질문명의
노예가 되지 않았던가……
 
나는 여름 내내 도요새의 이런 재잘거림을 환청으로 들었다.
가을이 왔다. 이제 동진강 하류의 삼각주에서 중부리도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중부리도요보다 몸집이 큰 마도요,
등이 불그스름한 민물도요도 볼 수 없었다.
동진강은 공장 지대에서 흘러나온 폐수로 수질이 크게 오염되었다.
많은 철새나 나그네새 중에 공해에 비교적 강한 몇 종류의 철새와
나그네새만 도래할 뿐이다.
바다쇠오리 · 청둥오리 등의 오리 무리와, 흰목물떼새 꼬마물떼 등,
물떼새 무리가 그들이다.
나는 열 개의 미터글라스가 꽂힌 시험관꽂이를 들고
수질 오염도가 높은 동진강 하류 석교천 둑길을 걷고 있었다.
석교천은 이쪽 둑과 건너 둑 사이가 사십 미터 남짓한 개울이었다.
초등학교적 소풍을 자주 갔던 진양산이 발원지로,
길이가 오 킬로미터 정도였다.
석교 마을은 개울과 동진강이 만나는 기슭에 자리 잡았다.
개울 양쪽은 만여 평의 공한지였고, 개울 상류 멀리로 웅장한
B공단 공장 건물이 임립해 있었다.
내가 든 열 개의 미터글라스 중 여덟 개는 삼분의 이쯤 물이 찼고
두 개만 빈 글라스였다. 석양 무렵이었다.
해안 쪽 하늘에는 새털구름이 점점이 널렸고,
구름 한쪽이 놀빛에 물들어 입체감이 뚜렷했다.
도수 높은 안경알이 놀을 흡수했다. 나는 석교천을 내려다보았다.
개울물은 검은 주단처럼 칙칙했다.
석양 탓만은 아니었다. 이따금 회백색 거품이 냇물 표면에 응어리져
떠내려갔다. 시계를 보았다. 여섯시 사십오분 이었다.
나는 둑에서 개울가 자갈밭으로 내려갔다.
자갈밭에 쭈그리고 앉아 농구화와 양말을 벗었다.
시험관꽂이에서 집어 낸 빈 미터글라스를 들고 검정 바지를 걷어올려
개울 속으로 들어갔다.
싸한 냉기가 발목에서부터 차올라 검은 개울물이 장딴지를 가렸다.
바지를 한껏 걷고 물 가운데로 들어갔다.
물빛은 더 검어져 숯가루를 뿌려놓은 듯했다.
개울물 가운데 지점까지 오자 물이 정강이 위로 차올랐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미터글라스가 삼분의 이쯤 차게 냇물을 떠냈다.
미터글라스를 들여다보았다.
좁은 유리관 속에서 혼탁한 물이 맴돌았다.
물결 소요가 가라앉자 물빛이 회색으로 변했고,
물속에서 검은 수포가 어지러이 움직였다. 검은 유액이 여러 겹의
명주실처럼 긴 띠를 이루어 유리관 벽을 감아 돌았다.
자세히 보니 또 다른 기름 입자가 물속에서 용해되지 않은 채
노랗게 떠돌았다.
그 외에도 유리관 안에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다량의
중금속 불순물이 떠돌고 있을 터였다.
나는 참담한 마음으로 개울물을 내려다 보았다.
안경알을 통해 놀빛에 반사된 검은 개울물이 독극물 같았다.
그 독극물이 내 다리의 땀구멍을 통해 전염해 오고 있었다.
 
정배형 연구실에서 본 사진이 떠올랐다.
육가(六價)크롬화(禍)로 코의 중앙연골에 구멍이 뚫린 환자가
치료받고 있는 장면이었다. 초로의 남자 얼굴이 뒤로 젖혀있고,
양쪽 콧구멍에 핀셋으로 약솜을 넣는 사진이었다.
그는 일본화학공업이란 직장에서 이십 년간 근무하다 정년퇴직한
일본인이었다. 육가크롬이란 중크롬산소다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연소의 하나로 폐질환 · 신경장애 · 관절통 · 빈혈
위궤양 · 턱 뼈가 썩는 증상, 이가 빠지고 상하는 증세 등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독극물로서,
크롬이 오염된 땅에는 식물이 자라지 못하고,
그 폐수는 사람 다리를 썩게 할 정도라고 정배형이 말했다.
 
“1970년 일본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지.
 일본화학공업 네 개 회사, 크롬회사 여섯 개 공장에서 폐암 등으로
 죽은 사람 수만도 삼십구 명, 약 백 명이 콧속에 구멍이 뚫리는
 비중격천공(鼻中隔穿孔) 피해를 입는 중증을 보였어.”
 
정배형은 신문 스크랩북을 펼쳤다.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육가크롬화 환자가 있었다는
 공식 기록은 없지요?”
 
“왜, 73년에 비중격천공의 피해 환자가 나왔지.
 그 외에도 모르긴 하지만 다수의 환자가 있었을걸.”
 
“담양 고씨 일가족 전신 마비사건도 분명 수은 중독에서 온 거죠?”
 
“그렇게 보는 게 일반적 견해지.”
 
정배형은 1975년 8월의 신문에서 스크랩한 곳을 가리켰다.
일본의 육가크롬화 사건기사였다.
도쿄발 특파원의 기사 내용 중 붉은 줄을 쳐 강조한 부분이 있었다.
정년퇴직한 지 오 년, 흉부의 심한 고통으로 사경을 헤매는
어느 육가크롬화 환자 딸의 인터뷰 내용이었다.
―예전 우리 집은 고마스가와 1가 다리 밑 고마스가와 제2공장 근처에
있었지요. 낡은 사택이었습니다.
바로 옆에 크롬 찌꺼기의 황색 흙이 산처럼 쌓였고,
게다가 회사의 트럭이 유산 가스를 매일 실어다 날랐습니다.
여름에는 남풍이 불어 붉은 먼지 때문에 세탁물을 말릴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아버지는 태풍 때면 비번임에도 불구하고
공장으로 급히 달려갈 만큼 애사심이 강했어요.
 
“직무에 그토록 충실했던 근로자의 말로가 어떤 결과를 빚게 되었나.
 만년엔 결국 불치의 병에 시달리게 된 게지.
 공해병이란 증상이 즉시 나타나지 않는 게 특징이야.
 십 년이 지나면 신체조직에 천천히 이상이 생기거든.
 유전인자를 통해 다음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구.”
 
정배형이 말했다.
 
“우리나라도 강 건너 불 보듯 할 얘기가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일본의 공업화를 답습하는 셈이니 상황이 닮은꼴로 전개된다고
 봐야겠지. 벌써 학계의 관심을 넘어서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됨을
 자네도 알지 않는가.”
 
그때 정배형의 말이 그랬다. 나는 시험관꽂이를 들고
자갈밭으로 되돌아 걸었다.
석교천은 도저히 살아 있는 물이라 부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석교천 물은 죽어버렸다. 폐유가 결국 동진강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강폭이 팔십 미터에 가까운 동진강은 몰라도 석교천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만큼 크롬산이나 수은이
다량 섞여 있을 것이다.
석교천 주민이 십 년이나 이십 년 뒤 육가크롬화의 중병을
앓지 않는다고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자갈밭에 앉아 양말을 신었다.
 
“두고보라구. 내가 석교천은 물론, 동진강까지 예전의 자연수 상태로
 반드시 만들고 말 테니.” 
 
누가 들으란 듯 내가 말했다.
이 중얼거림은 스스로도 수백 번을 반복해서 자기최면에 걸린 말이었다.
누가 듣는다면 헛된 집념이라고 비웃으며, 미쳤다고 손가락질할 것이다.
그러나 지구 절반 거리의 무공천지를 한 해에 두 번씩 건너야 하는
작은 도요새의 고통보다 그 일이 결코 어렵게 생각되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60년대부터 경제성장에 발돋움을 시작해
대망의 중화학공업 시대로 돌입했던 70년대 벽두, 아홉 해 전이었다.
내가 중학교 삼학년 때,
정부는 이 동남만 일대를 대단위 중화학공업단지로 고시했다.
이태 후 가을, 군청소재지조차 못 되었던 동진읍은
일약 시로 승격되었다. 
그 이전까지 읍은 인구 만 명을 웃돌던 동해남부선의 한 작은 역이었다.
석교 마을은 읍내에서도 해안 쪽으로 치우친 변두리였다.
읍내에서 석교 마을까지 나가자면 석교천 둑방길로 삼 킬로는
걸어야 했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한 그때만도 석교천 물은 속이 환히 들여다보이게
투명했다. 깊은 곳은 허리를 채울 정도였지만
물속에서 눈을 뜨고 내려다보면 물밑의 길 동그란 자갈이 맑게 드러났다.
추위도 추위지만 길이 멀어 겨울철은 예외였지만,
학교가 파한뒤 반 애들과 어울려 조갑지나 불가사리 따위를 주우러
바다로 나가곤 했다.
석교 마을 앞을 지나며 냇가에 늘어앉아 빨래하던 여자들의 재잘거림과
킥킥대던 웃음소리도 들었다.
60년대, 그때만 해도 이곳 자연 상태는 완벽하게 보호되었다.
누가 나서서 보호해서가 아닌, 자연 그대로의 상태였다.
사십여 호의 석교마을까지 오면 석교천과 동진강이 합쳐지고,
우리는 거기서부터 넓게 트인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동진강 하구에서 시작되는 삼각주 갈대밭과 다복솔 울창한
해안 구릉 사이로 보이는 바다는 철에 따라 색깔이 달랐다.
봄이면 녹청색을 띠다, 여름이면 짙푸른 파랑, 가을이면 감청색으로
어두워졌고, 겨울이면 짙은 남색으로 변했다.
바다다! 하고 외치던 친구가 노래를 불렀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다른 친구는 바다 노래를 불렀다.
 
“초록바다 물결 위에 황혼이 지면……”
 
노랫소리는 바닷바람이 읍내 쪽으로 몰아갔다.
그 시절, 나는 꿈을 꿀 때도 동진강을 따라 바다로 나갔고,
거룻배를 타고 연안 바다로 떠돌았다.
어떤 날 밤은 고래가 나를 태워 여러 나라로 돌아다니는 꿈도 꾸었다.
나는 석교천 물을 떠 온 미터글라스.에 종이를 붙이고
볼펜으로 날짜와 시간을 적었다.
코르크 마개로 주둥이를 닫고 시험관 꽂이에 꽂았다.
시험관 꽂이를 들고 둑길로 올라섰다. 갈대와 풀이 죄 말라 버린
만여 평의 공한지가 양쪽으로 펼쳐져 있었다.
벌레는 물론이고 지렁이류의 환형동물조차 살 수 없는 버려진 땅이었다.
이 땅에도 내년이면 연간 오만 톤의 아연을 생산할
아연 공장 착공식이 있을 예정이란 신문 기사를 읽었다.
내가 중학을 졸업하던 해까지 이 들녘은 일등호답이었다.
가을이면 알곡을 매단 볏대가 가을바람에 일렁였다.
참새 떼의 근접을 막느라 허수아비가 섰고 사방으로 쳐진 비닐 띠가
햇살에 반짝였다. 바다를 끼고 있었지만 석교 마을은
어업보다 농업 종사자가 많은 부촌이었다.
마을 입구 들길에서 나는 산책 나온 임 영감을 만났다.
 
“이곳도 참 많이 변했죠?”
 
마을 경로회 부회장인 임 영감에게 물었다.
 
“공업 단지가 들어서고 말이지.”
 
임 영감은 회갑 연세로 석교 마을에서 삼대째 살고 있는
읍 서기 출신이었다.
 
“변하다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 않는가.
 공업 단지가 들어선 지도 벌써 팔 년째네.”
 
“언제부터 농사를 못 짓게 됐나요?”
 
“공단이 들어서고 이태 동안은 그럭저럭 농사를 지었더랬지.
 그런데 이듬해부터 농사를 망치기 시작했어.
 못자리에 기름 물이 스며들지 않나, 모를 내도 뿌리째 썩어 버리니,
 결국 폐농했지.”
 
“보상 문제는 어떻게 해결 지었나요?”
 
“관에 폐수 분출 금지 가처분 신청인가 뭔가도 냈지.
 그러나 폐농한 마당에 소장(訴壯)이 문젠가.
 용지 보상 대책 위원회를 만들어 시청과 공단 측에 항의했더랬지.
 공장에서 쏟아 내는 기름 찌꺼기 때문에 땅을 망쳤다구 말야.
 일 년을 넘어 끌다 끝장에는 동남만 개발 공사에서 땅을
 사들이기로 해서, 삼 년 연차로 보상을 받긴 받았지.
 우리만 손해를 봤지 뭔가. 옛날부터 그런 사람들과 싸워
 촌무지렁이가 이긴 적이 있던가.”
 
“공단 측은 수수방관한 셈입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그 사람들 세도는 대단해.
 지도에 등재도 안 된 촌이 자기네들 입주로 크게 발전을 했는데
 그까짓 피해가 대수롭냐는 게지.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랐으니
 팔자 고치지 않았느냐구 우기더군.
 이젠 귀에 익은 소리지만 그때만 해도 생경한 수출입국이니,
 중공업 시대니, 지엔피(GNP)니 하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지. 공단 측은 마을 대책 위원과 촌로들을
 초청해서 술 사주며 선심을 쓰다,
 나중에는 마을 청장년을 자기네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고 해서
 흐지부지 끝났어.”
 
“어르신 댁도 혜택을 봤나요?”
 
“우리 집 둘째 놈이 제대하고 와 있던 참이라
 피브이시(PVC) 공장엔가 들어갔어. 제 놈이 배운 기술이 있어야지.
 월급 몇 푼 받아 와야 제 밑 닦기 바빠.
 딸년은 바람이 들어 서울로 떠났지.
 거기서 공장 노동자 짝을 얻어 월세방 살아.”
 
임 영감이 기침 돋워 가래침을 뱉었다.
 
“여보게 젊은 양반, 이 가래침 봐. 새까맣지 않은가.
 서남풍이 불 때면 굴뚝 매연이 이쪽으로 날아와 우리 마을만 해도
 해소병처럼 기관지병 걸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네.
 어디 사람 살 동넨가 말일세.”
 
“그 당시 땅값이 올랐으니 땅 팔아 벼락부자 된 분도 많겠네요?”
 
“목돈 좀 쥔 사람도 있긴 해. 그러나 돈이란 써 본 사람이
 제대로 쓰지, 어디 그 돈이 온전할리 있겠나.
 이런저런 꾐에 빠져 이태를 못 넘겨 다 거덜 났어.
 백수건달 된 치는 도회지로 나가 막노동이나 하겠다며
 식솔 데리고 떠났지. 난리가 따로 있겠나. 그것도 난리야.”
 
“석교도 많이 달라졌어요.”
 
“세상이 확 바뀐 게지. 개벽 이래 말일세.”
 
“어르신은 요즘 어떻게 소일하시나요?”
 
“젊은이가 창피한 것까지 다 묻는군그래. 그 뭔가,
 통닭집에 닭 싸 주는 봉지 있지? 그 종이를 날라다 풀칠하고
 손잡이 끈도 달아 줘. 그래도 아직은 정정한데
 손 재 놓고 놀 수야 있나.”
 
나는 죽은 땅 공한지 건너 공단 쪽을 보았다.
화학 공장들로 이루어진 비(B) 단지였다. 삼영정유 공장,
동산 플라스틱 공장, 진화 화학 석교 공장, 동진 유기 화학 제2 공장
등이 거기 모여 있었다.
솟은 굴뚝 여기저기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검은 연기, 노란 연기, 회색 연기가 바닷바람에 날려 시내 쪽으로
꼬리를 늘였다.
집진기(集塵機)가 제대로 가동이 되는 공장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고장으로 집진기가 못 쓰게 되었거나 노후화되어 성능이 부실하니
있으나 마나 한 매연 대책이었다.
나는 제방 길을 따라 동진강 쪽으로 걸었다.
해안 쪽 하늘은 놀이 자주색으로 침침해 갔다. 
나는 석탑 서점을 들러 오후 세 시에 바닷가로 나왔다.
다섯 시간 정도 석교천을 오르내리며 시간차를 두고 미터글라스에
석교천 물을 수거한 참이라 피로와 허기가 엄습했다.
밤을 몰아오는 바닷바람도 차가워졌다.
점퍼 지퍼를 목까지 당겨 올리며 석교 마을에 눈을 주었다.
잿빛 하늘 아래 눌려 있는 석교 마을은 읍 시절의 옛 모습이 아니었다.
당시 사십여 호의 초가는 그새 절반으로 줄었고
알록달록한 기와지붕의 새 동네로 변했다.
포장된 앞길에는 시내버스 한 대가 달리고 있었다.
마을 뒤를 가렸던 언덕의 소나무 숲은 매연으로 고사해 민둥산으로
버려져 있었다.
산 뒤로 늘어선 열 동의 오층 아파트가 모서리를 보였다.
재작년과 작년에 걸쳐 신축된 아파트를 석교 단지라 불렀다.
지난여름, 엄마가 저 단지 중 십팔 평형 두 채를 빚을 내어 잡았으나,
이어 발표된 부동산 투기 억제법에 묶여 매기를 잃어
지금은 전세를 놓고 있었다.
동진강 제방 둑길을 내려가 하구의 삼각주 갈대밭이 멀리로 보이는
지점까지 왔을 때였다. 남자 둘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둘의 더펄 머리칼이 드러나,
나는 공단 공원으로 짐작했다.
한 녀석은 등산 백을 메었고 복장도 등산복 차림이었다.
거리가 오십미터쯤 가까워졌을 때, 등산 백을 메지 않은 녀석의
걸음걸이가 눈에 익었다. 병식이었다.
 
“형 아냐?” 병식이가 손을 들며 소리쳤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동진강 하구가 형의 서식처니 형 만나지 않을까 생각했더랬지.
 예감 적중이군.”
 
병식이 웃었다.
 
“형, 안녕하슈?”
 
병식이 친구가 등산모를 들썩하며 알은체했다.
 
“어디 갔다 오는 길이니?” 아우를 보고 내가 물었다.
 
“바다 밑에서 곧장 나오는 길이지.” 병식이가 농으로 말을 받았다.
 
“형, 들고 있는 건 뭐요? 냉장고에 넣어 하드 만들려구요?”
 
정배형 실험실로 넘겨질 실험관꽂이 미터글라스를 보고
병식이 친구가 물었다. 나는 아우에게 할 말이 없었다.
독서실에 박혀 입시공부나 하잖고 놀러만 다니느냐는 따위의 충고는
내 역할이 아니었다.
대학을 중도 하차한 나로서는 그렇게 말할 자격이 없었다.
그 점보다 나는 아우의 어떤 면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고,
나를 대하는 아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우에게, 가보라고 말하곤 나는 그들 옆을 스쳐
어둠이 내려앉은 바다로 걸었다.
놀빛이 사그라져 바다는 암청색을 띠고 있었다.
싸늘한 바람이 귓불을 훑었다.
 
“형, 곧장 걸어가면 바다 속으로 들어가.”
 
아우가 등 뒤에서 소리쳤다.
 
“난 새가 될 텐데 왜 바다로 들어가? 비상을 하지.” 내가 말했다.
 
“형, 새가 되더라도 개펄에 떨어진 콩은 주워 먹지 마슈.”
 
병식이 친구가 외쳤다. 나는 걸음을 빨리했다.
잿빛 하늘을 배경으로 어둠 속에 갈매기가 날았다.
바람 소리 속에 끼룩끼룩 우는 울음이 들렸다.
그 소리는 동료나 짝을 부르는 게 아니라 나를 부르는 소리로 바뀌었다.
나는 정말 새가 되고 싶었다. 새처럼 나를 해방시키고 싶었다.
고통의 원인을 제공한 이 땅을 떠나 이상의 세계로 떠나고 싶었다.
윤회설을 믿지 않지만 이승에서 새로 변신할 수 없다면
내세에서는 새가 되어 태어나고 싶었다.
선택권을 준다면 새 중에서도 시베리아나 툰드라가 고향인
도요새가 되고 싶었다.
나는 동진강 하구로 내려가다 삼각주 갈대밭을 채 못 가
남쪽으로 난 큰길로 접어들었다. 바다를 낀 길로 오백 미터쯤 내려가면
해안경비 파견대 군 막사가 있었고,
그만한 거리를 더 내려가면 웅포리란 옛 포구가 나섰다.
개펄에 작은 배들이 닿는 웅포리는 이제 포구가 아니었다.
동남만 연안이 폐수 오염으로 고기가 잡히지 않을 즈음,
때마침 웅포리까지 포장도로가 닦였다.
처음은 그곳 어민이 포장주막을 차리고 멍게, 해삼 따위를
안주로 술을 팔기 시작했다. 이어, 한 집 두 집 술집과 점포가
들어서더니 네온사인 내단 유흥가로 변했다.
불과 삼 년 전이었다. 작업복에 안전모 쓴 공장 직공들이
출퇴근용 자전거나 오토바이 편에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버스 노선이 생기자, 시내 투기꾼이 웅포리에 여자를 갖춘 룸살롱도
열었다. 나는 웅포리로 가는 참이었다.
그곳으로 가면 자주 찾는 집이 있었다.
유흥가에서 떨어진 암벽 아래 해주집이란 이름의 허름한 술집으로,
칠순의 할머니가 손자를 데리고 국밥과 소주, 막걸리를 팔았다.
할머니는 황해도 해주에서 육이오 때 피난 나온 이북 출신으로,
나는 그 집을 아버지로부터 소개받았다.
서울서 내가 낙향했을 무렵, 어느 날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해주집을
찾았다. 소주잔을 놓고 마주 앉은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이젠 애비와 같이 잔, 잔 나눌 나이가 되었어.
 네 어릴 적엔 난 오늘같이 이, 이런 날을 기다렸어.
 내 맺힌 얘기를 들어줄 놈은 맏이 밖에 없으니깐.”
 
그날, 나는 아버지와 많은 말을 나누었다.
 
“ ……유엔군 포로가 되자, 나는 곧 전향했어.
 내 뜨, 뜻에 따라 국군으로 자원입대를 한 셈이지.
 육 개월 후 금화전투에서 훈장을 받구 소위로 진급했지.
 그때가 이, 일사후퇴가 끝난 후니 그로부터 다시 고, 고향땅을 못 밟고
 말았잖은가. 고향땅이 수복되면 가족 데리구 이남으로 나오려구
 꿈꿨던 게 다 수, 수포로 돌아갔어. 내가 변하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야. 껍질 깨고 세상에 나오던 벼, 병아리가 다시 달걀집으로
 들어가고 싶어했으나 워, 원상태 복귀가 불가능한 경우랄까……”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수첩을 뒤져 낡은 편지봉투를 집어냈다.
나는 아버지가 고향 통천에 두고 온 조부모님과 삼촌 두 분,
고모 한 분과 같이 찍은 옛 사진을 보여주는 줄로만 알았다.
나는 그 낡은 사진을 수십 번도 더 보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꺼낸 사진은 통천에 두고 온 가족사진이 아니라,
누렇게 바랜 우표만한 증명사진이이었다.
 
“너, 넌 이해할 거야. 이 사진을 보구 날 미워하지 않을 줄……”
 
아버지는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내게 건넸다.
모서리가 닳았고 주름져 윤곽이 희미한 사진이었다.
사진은 양 갈래로 머리 땋은 흰 저고리 입은 처녀 모습이었다.
나는 그 사진 임자를 짐작할 수 있었다.
 
“통천의 옛 약혼자군요?”
 
아버지는 사진을 내 손에서 빼앗아갔다.
 
“다 흘, 흘러간 시절이야. 접장했던 이 여자두 이젠 느, 늙었을게야.”
 
아버지는 사진을 지갑에 넣었다.
 
“꿈을 파먹고 산다는 게 어, 얼마나 괴로운지 아냐?” 
 
아버지의 주름진 눈가가 눈물로 괴었다.
아버지는 어눌한 모습을 감추기나 하듯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들었다.
 
 3
병식이는 제 어미로부터 만오천 원을 타낸 날로 독서실에 박혔는지
사흘째 귀가하지 않았다. 때맞춰 병국이도 집을 비웠다.
우리 내외만 아침 밥상을 받았다.
병국이가 서울서 대학을 다닐 때도 병식이 새벽반 과외공부를 나가
일요일 외에는 내외가 아침상을 받았는데,
요즘은 가족이 모였어도 호젓한 아침식사는 마찬가지였다.
우리 내외는 말없이 숟가락질만 해댔다.
처가 가자미조림 간이 맞지 않다고 찬투정을 읊조리다 짜증이
보채는지 한마디 했다.
 
“미친 자식. 어쩜 제 애비 성질내미를 족집게 뽑듯 뽑았을까.”
 
병국이를 두고 하는 소린 줄 알면서도 나는 묵묵부답했다.
처는 날 힐끔 쏘아보곤 젓가락을 소리 나게 놓았다.
치미는 울화를 푼다고 쏘아붙였다.
 
“당신도 병 도질 철이 왔는데 개펄로 안 싸돌아요?
 강남 갈 철샌가 뭔가 날아들 시절 아네요?”
 
“웬 차, 참견은. 새 구경 나가는 데두 돈 드남.”
 
“개펄까지 나가자면 차비는 공짜요?”
 
“걸어가지 뭘.”
 
“애비나 자식이나 한통속으로 미쳤어.
 병국이도 새나 보며 허송세월을 하니.”
 
“소, 속요량이 있겠지. 방구석에 있기보담 운동도 되니……”
 
“답답한 양반아. 날아다니는 구름 잡는다더니,
 허공에 나는 새에 미쳐. 잉꼬나 십자매를 키운다면 돈이나 되지.
 집구석 돌아가는 꼴 보면 복장이 터져.
 당신도 햇수로 따져 언제부터요. 이바닥에 주저앉고부터 봄가을로
 새 구경하겠다며 갯벌로 싸대더니 이젠 자식놈까지 그 발광이야.”
 
처가 숭늉으로 입 안을 헹구곤 자리 차고 일어났다.
 
“정신 나간 자식이 사흘이나 집구석 찾아들지 않으니 당신도
 수소문 좀 해봐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방구석 지키면 다요?”
 
“언제부터 병국이 거, 걱정했소? 당장 뒈졌음 좋겠다 할 땐 언제구.”
 
“오늘 갯벌로 안 나갈 참이오?”
 
처가 나갈 채비로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잖아도 강회장하고 바람이나 쐴까 하던 참인데……”
 
“그럼 잘됐수. 나가는 길에 병국이 주릴 틀어쥐고 와요.
 참, 나선 김에 웅포리 들러 동해식당 정마담 만나
 이잣돈 팔만 원 꼭 받아와요. 은행이자 갚을 날이 내일이니
 받아내야 해요. 독촉 할 땐 어물거리지 말고 배짱 좀 부려요.”
 
처음부터 심부름 가라고 이를 일이지, 하고 한마디 할까 하다가
말을 삼켰다. 상동 큰시장으로 일수 걷으러 나갈 참인지
처는 방 나서기 전에, 차비 쓰라고 백 원짜리 동전 두 개를
방바닥에 던졌다. 아침상 물리고 동전 두 닢을 손바닥에 올려놓자,
나는 또 부질없이 스물다섯 해나 여편네와 한솥밥 먹고 산
억울한 세월을 한탄했다. 사흘을 주기로 처 잠자리 흥이나 돋궈주는
역할도 이제 힘에 부쳤다.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아무런 결론도,
어떤 결단도 내릴 수 없었다. 내가 처를 만나기는 휴전되던 해,
상이군경 재활원에서였다. 왼쪽 허벅지에 박힌 다섯 개 파편을 꺼내고
좌대퇴골 이음수술, 좌비복근 이식수술,
바스라진 좌족근골 맞춤수술 끝에 부산 군통합병원에서
상이제대를 하게 되기가 그해 가을이었다.
왼쪽 다리를 잘룩거리게 되었으나 절단 위기를 넘겼으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군복을 벗었지만 불구의 내가 찾아갈 곳이 없었다.
수중에 재산이라곤 얼마간의 전역금뿐이었고,
남한 땅에는 친척붙이조차 없었다. 일 년여 전쟁터를 떠돌며
생사의 갈림길을 헤맬 때 내 학구열은 거덜이 나버렸고,
이런 시국에 공부 계속하면 병신 주제에 그걸 어디에 써먹느냐는
회의부터 앞섰다. 다행히 장교 출신에 입대 전 대학에 적을 둔
학력 덕에 해운대 지나 송정리의 상이군경 재활원에서
총무 일을 보게 되었다.
백 명 남짓한 재활원의 상이용사는 대부분이 미혼으로
척추장애자여서 휠체어에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거동 불편한 그들의 시중을 드는 심부름꾼과
취사를 맡은 여자들, 잡역부를 합쳐
재활원 연인원이 이백 명에 가까웠다.
일 년 남짓 그곳 재산 관리를 맡을 동안 나는 처를 만났다.
처는 재활원에서 부엌일 보던 종업원이었다.
처는 경기도 개성의 도붓장사 딸로, 전쟁 중 피난길에 가족을 잃고
어쩌다 이 남도 끝까지 흘러온 모양이었다.
처지가 그렇게 한빈했으나 처는 그늘이 없었고 천성이 명랑한 처녀였다.
나와 나이 다섯 살 차이니 당시 스물한 살이었다.
지금도 달라진 점이 없지만, 그 시절 나는 의욕상실자였고
대인공포증마저 보였다. 살아내기가 힘에 겨운 나날이었다.
병상 생활은 언젠가 건강을 되찾아 퇴원할 거라는 희망이 있었기에
배겨낼 수 있었다. 나는 마음을 못 잡은 채 매사에 초조해했고,
사람을 피했다.
그럴 때면 바닷가로 나가 혼자 만취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
그런 중에도 어서 통일이 되어 고향에 갈 수 있기를 바라는
한 가지 소망만은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소망은 차츰 환상으로 변했다. 향수병은 술로 달랬다.
나는 내가 맡은 일만 보았을 뿐 하루 종일 말이 없었고,
말을 더듬는 버릇도 그때부터 비롯되었다.
그런 음울한 내 마음을 밝은 쪽으로 돌려놓겠다는 듯
처가 깔깔거리며 헤집고 들었다. 전쟁 뒤끝 경황없는 세월이라
학력이나 성격이 결혼의 첫째 조건이 되지 않기도 했지만,
내가 우울증에 시달리다보니 우리 사이가 금방 가까워지지는 않았다.
한 울타리 안에서 말 터놓고 지내는 사이 정도였다.
재활원에서 일 년을 보낼 동안 바깥 사회도 안정을 찾아
지체가 자유로운 상이군경에게도 취직의 문이 열렸다.
송정에서 동남해안을 따라 십오 킬로 위쪽에 위치한 동진읍 공립중학교
서무과에 일자리를 구하자 나는 고물 가죽가방 하나 달랑 들고
재활원을 떠났다. 학교 뒤에 방을 얻어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한 달쯤 지났을까, 처가 홀연히 나를 만나러 왔다.
처는 지금도 이따금, 공일 보내기 심심해 동진읍으로 놀러갔는데
어쩌다 절름발이한테 걸려들었다고 입방아를 찧지만,
어쨌든 나는 그날 밤 처와 살을 섞었다.
아니, 잠자리는 처의 적극성으로 이루어졌다.
처는 의도적으로 내게 몸을 맡겼으니, 그렇게 일을 저질러선
재활원을 빠져 나올 구실을 삼으려는 속셈이었다.
우리는 살림을 차렸다. 그러나 성격 차이에다 도타운 애정이 없다 보니
다툼이 잦았다. 서로 한마디 말없이 열흘, 보름을
한 지붕 아래서 보내는 날도 있었다. 병국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갈라섰을지 몰랐다.
자식이란 부부 사이에 화해의 징검다리였기에,
자식이 서로의 말문을 트게 하는 매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집에선 처 등쌀에 눌려 지냈고, 직장에서도 마음에 맞는
동료가 없어 실향민으로서의 적막감은 가중되었다.
나는 시간이나 쪼아 먹는 한마리 날개 꺾인 새로 변해버렸음을 알았다.
고향이 따로 있나 정들면 고향이지,
이런 유행가 구절도 있지만, 나는 특별한 취미나 마음 붙일 오락도
갖지 못한, 붙임성 없는 위인이었다.
 
휴전이 됐지만 언젠가는 통일의 날이 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고향 통천으로 갈 수 있으려니 하는 희망이
나를 지탱시켜주는 힘이었다. 정을 붙인 곳이 바다였다.
이 타관 땅이 바다를 끼고 있지 않았다면 무엇에 낙을 붙여
지금껏 살아왔을까. 자살해버렸을지 몰랐다.
아니, 그럴 용기조차 없었고,
고향으로 돌아갈 환상이 나를 붙잡는 한 죽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탁 트인 바다를 구경하기 좋아했다.
바다를 보러 다니다 동진강 하구 삼각주가 철새나 나그네새 도래지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사철을 가리지 않았으나,
특히 봄가을의 환절기가 돌아오면 사흘이 멀다 하고
동진강 하류의 개펄을 찾았다.
퇴근하면 집발이 붙지 않아 도시락 가방에 소주 한병을 챙겨 넣고
석교천 방죽길로 자전거를 달렸다.
숨겨둔 여자라도 만나러 가는 마음이었다.
개펄에 도착해 모랫바닥에 다리 뻗고 앉으면 수백 마리의 새 떼가
아귀아귀 우짖으며 나를 반겼다.
동진읍에 정착했던 그해 가을, 전쟁 나기 전 고향땅에서 본
도요새 무리를 동진강 삼각주에서 보았을 때,
나는 헤어진 부모와 동기간과 약혼녀를 만난 듯 반가웠다.
너들이 휴전선 위쪽 통천을 거쳐 여기로 날아왔구나.
대답 없는 물음을 던지면 울컥 사무치는 향수가
심사를 못 견디게 긁었다.
나는 술병을 기울이며 새 떼와 많은 말을 나누었다.
내가 말하고, 내가 새가 되어 대답하는 대화를 누가 이해하리오.
새가 고향땅의 부모님이 되고, 형제가 되고, 어떤 때는 약혼자가 되어
내게 들려주던 많은 말을 기쁨에 들떠, 때때로 설움에 젖어
화답하는 순간만이 내게는 진정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세월의 부침 속에 고향에 대한 향수도 차츰 식어갔다.
개펄도 내 인생과 함께 황혼을 맞았다.
지금 보는 바다는 예전보다 파도가 높아 내가 헤엄쳐
강원도 통천까지는 도저히 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득히 멀어 보였다.
철새나 나그네새는 휴전선 넘어 자유로이 내왕하건만
나는 그곳에 갈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해가 갈수록
이마에 깊은 주름을 새겼다.
나는 담배를 피워 물고 여느 날처럼 신문을 폈다.
특별한 읽을거리나 속 시원한 기사가 눈에 띌 리 없었다.
그래도 일면부터 팔면까지 샅샅이 읽었고 저녁 텔레비전 프로를 살폈다.
 
벽시계를 보니 겨우 열시였다.
지금 기원에 나가도 강회장이 출근했을 리 없었다.
강회장은 함경도 도민회 회장으로, 나와 십오 년 넘게
형제같이 사귀는 사이였다. 그의 고향은 부전령 아래 송화였고
나이는 나보다 여덟 해 연상이었다.
흥남철수 때 처와 자식 셋을 고향에 둔 채 홀로 피난 나와
구제품 행상으로 출발해선 오일륙 전에 여기에 정착해
상동시장에서 포목점을 냈다. 동진읍이 시로 승격되자
그는 점포를 키웠으나, 일 년 전 고혈압으로 쓰러졌다 일어난 뒤
 
포목업도 이남에서 새장가 들어 얻은 여편네한테 넘기곤
나와 바둑으로 소일하고 지냈다.
내가 신문 바둑 관전기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였다.
대문 초인종이 울렸다. 마루 끝에 앉아 껌을 씹으며 라디오 유행가를
따라 흥얼거리던 종옥이가 대문께로 갔다.
초인종 소리가 길게 울리는 것으로 보아 아들들 같지는 않았고
여편네가 뭘 빠뜨리고 나갔다 되돌아왔으려니 생각했다.
누구냐며 종옥이 철문의 쇠빗장을 열며 물었다.
김병국 있냐고, 바깥에서 무뚝뚝한 소리로 물었다.
종옥이 문을 열자, 장교 하나와 사병 둘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장교는 중위였다. 그들 거동이 당당한데다 사병은 총을 멨고
장망 씌운 철모를 쓰고 있었다. 셋이 마당 가운데 서자 
금방 내 가슴이 철렁했고 턱이 떨렸다.
육이오 때 철원전투에서 다리에 중상을 입은 후부터
놀랄 때나 흥분 할 때면 나타나는 부교감신경의 실조증이었다.
병국이가 제 어미한테 돈을 못 타내 내게 오천 원만 돌려달라던 게
그저께였다. 강회장한테 돈을 빌려 주었는데 녀석이 그 돈으로
말썽을 피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엉거주춤 마루로 나섰다.
 
 
지난여름 일이 후딱 떠올랐다. 작년, 더위가 찔 무렵이었다.
B공단 성창비료 석교공장 노무과장이 장정 셋을 거느리고 집에 
들이닥친 일이 있었다.
그날은 종옥이가 시장에 나가 홀로 집을 지키던 참이었다.
 
“김병국이란 작자가 누구요? 어떤 위인인가 상판 좀 봅시다.”
 
힘꼴깨나 써 보이는 한 장정이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내 아들놈인데 다, 당신네는 누, 누구요?”
 
기세에 눌려 내 목소리가 더 더듬거렸다.
 
“그렇담 마빡 새파란 놈이겠군. 그 새끼 좀 봅시다!”
 
다른 장정이 윽박질렀다.
 
“아들은 집에 없소. 무, 무슨 일인데 이러오?”
 
“그 자식 당장 작살낼 테야. 암모니아 가스가 아니라
 진짜 똥물을 아가리에 퍼넣어야 정신 차릴 개새끼!”
 
또 다른 장정이 방문 열린 큰방과 건넌방을 기웃거렸다.
 
“소란 피워 죄송합니다만, 병국이란 자제분을 만날 수 없겠습니까?”
 
마흔쯤 된 노무과장이란 자가 내게 정중하게 말했다.
 
“마루에라도 앉아요.”
 
노무과장을 상대로 내가 말했다.
 
“병국이를 차, 찾자면 힘들겠네요. 늘 자정쯤 돌아오니,
 난들 그놈 행선지를 모르오.”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노무과장이 병국이를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선생 자제분이 우리 회사를 상대로 관계 요로에 진성설 냈습니다.
 여기 시 보건과에서 접수한 진정서 사본을 보십시오.”
 
마루에 걸터앉은 노무과장이 복사판 서류를 꺼냈다.
방으로 들어가 돋보기안경을 찾아 낄 틈도 없이 어릿어릿한 글자를
대충 훑어보았다.
 
 ―……성창비료 석교공장은 연간 40억 원 규모의 흑자를 내면서도
 폐기 처리 과정에 근본적 개선책이 전무함이 입증되었다.
 8월 4일 새벽 2시 20분, 당 공장은 야음을 틈타 암모니아 가스를
 다량으로 배출해, 가스가 폐수천(석교천)을 따라 안개처럼 덮쳐
 동진강 하류로 확산된 바 있다.
 이로 인해 새벽 4시 10분 동진강 하류에서 오징어잡이 나가던
 어민 18명이 심한 두통과 구토증으로 실신한 사건이 있었다.
 당사는 기계의 밸브가 고장 나서 가스가 샜다고 변명하지만
 이런 일이 일주일을 주기로 수십 차례 반복되었음을
 입증하며(관계 자료 별첨), 이로 미루어 당사는 고의로 밸브를 틀어
 야밤에 가스를 배출함이 객관적으로 입증됨으로써……
 
“정신병자 놈이 쓴 낙서는 더 읽을 필요가 없소.”
 
장정이 진정서를 낚아챘다. 
 
“아, 아들놈이 낸 진정서가 틀림없습니까?”
 
노무과장에게 물었다.
 
“분명합니다. 뒷조사해보니 자제분은 이 방면에 상습범이더군요.
 유월에는 풍천화학을 상대로 진정서를 낸 바 있었습니다.
 풍천화학도 야음에 카드뮴과 수은 등 중금속 물질을 배출시켜
 동진강 하류 삼각주 지대에 서식하는 각종 새 삼백여 마리와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나요. 사람이 아닌,
 한갓 새나 물고기가 말입니다.”
 
노무과장이 ‘새나 물고기’란 말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국민소득 일천 달러 달성에, 오늘날 조국 근대화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선생도 잘 알지요?” 했다.
 
“사람이 아닌, 한갓 새와 물고기가 죽었다구 진정을 내?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겠다는 미친놈 짓거리를 이번에는
 아예 뿌릴 뽑아야 해!”
 
한 장정이 주먹을 내두르며 소리쳤다.
장정들이 병국이 소재를 대라고 이구동성으로 삿대질했고,
병국이 돌아올 자정까지 기다리겠다며 우르르 마루로 올라왔다.
 
“ 선생, 진정도 진정 나름입니다. 이번 문제는 명예훼손으로밖에
 볼 수 없어요. 더러 기계 고장으로 가스가 새는 수가 있긴 합니다.
 그러나 이를 고의로 몰아붙이는 이런 진정에는 우리가 명예훼손으로
 자제분을 고발할 수 있어요.
 선생도 지난번 반상회엘 나갔다면 우리 B공단에서 돌린 공문을
 보셨을 겝니다.
 공단 측에서도 공해 문제에 관심을 가지구 아황산가스 · 일산화탄소
 폐수 · 풍속 측정기 등, 팔대 공해 검증기구를 사들이려
 예산을 책정했다는 사실 말입니다.
 또 오염 가능 지역을 삼 단계로 분류해 오백여 가구 이주 계획을
 세워놓았다는 점도 읽으셨겠죠.”
 
노무과장은 잠시 숨을 돌리더니 담배를 꺼내어 물고
한 개비는 내게 권했다. 그로부터 그들은 한 시간 남짓 집에 머물렀다.
그동안 노무과장은 이론을 앞세운 설득으로,
세 장정은 힘을 과시한 위협으로 나를 곤비케 했다.
그동안 병국은 용케 귀가하지 않았다.
그 때도 그는 이틀째 집을 비운 참이었다.
동진강 하류에서 텐트 치고 야영을 하거나, 아니면 야밤에
공단 하수구를 감시하느라 해주집 토방 구석에서 새우잠을 잤음이
틀림없었다.
 
 
“선생이 김병국의 부친 되십니까?”
 
중위가 정중하게 물었다.
 
“그, 그렇습니다만……”
 
“보호자로서 저희 부대까지 동행 좀 해주셔야겠어요.”
 
“병국이는 지금 어, 어디 있습니까?”
 
“부대에서 보호 중입니다.”
 
“녀석이 무, 무슨 사건을 저질렀나요?”
 
“아드님이 통금시간에 군 통제구역 안으로 무단출입했어요.
 선생도 아시겠지만, 그 시간에 무단출입한 자에게는
 군이 발포할 권한까지 있습니다.”
 
“그, 그럼 발포해서 병국이가 다쳤나요?”
 
“그런 정도는 아닙니다만, 하여간 잠시 시간을 내셔야겠어요.”
 
“부대가 어딘데요?”
 
“동남만 일대의 경비를 담당하는 ○○부댑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해석을 달리하면 까다로운 사건일 수도 있으나 병국의 경우를
따져볼 때 그리 큰 걱정은 안해도 좋을 듯했다.
병국이 해안선 따라 남파된 간첩이 아니요,
부대 경계 배치 상황을 탐지하겠다는 첩자도 아닌 이상
무사히 풀려 나올 게 틀림없었다. 녀석은 새에 관한 무슨 조사를
목적으로, 아니면 공해와 관련해서 경계지구 안으로 잠입했음이
틀림없었다. 대문 밖으로 나오니 군용 지프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뒷좌석 중위 옆자리에 탔다. 차가 시내로 빠져나올 동안
중위가 입을 다물어 나는 무료한 시간을 쪼개느라 내 소개를 했다.
 
나는 스물여섯 해 전에 전역한 육군 대위 출신이다.
1952년 정월, 철원 전투에서 중상을 입어 현재도 상이장교로
연금 혜택을 받고 있다. 현역 시절 무공훈장 세 개를 받은 바 있다.
이런 말을 더듬더듬 엮자 중위가 동지적 친근감을 보이며,
그럼 상관님 되시는군요 했다.
 
“파견대장님 소관이라 저는 용건을 전하러 왔습니다만……”
 
하고 중위는 서두를 뗀 뒤,
 
“아드님이 성인이라 굳이 보호자를 대동할 필요는 없으나
 그 언행의 진부와 가족관계를 파악하려 부르는 것 같아요”
 
하고 말했다.
 
“제 아들놈이 철새의 수, 수면 장소나 은신처를 찾으러
 통제구역 안으로 들어간 게 아닌가요? 
 아니면 공진강 하류의 폐, 폐수 오염도를 조사할 목적으로?”
 
“둘 중의 하나겠죠.”
 
중위는 알만하다는 얼굴로 나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겨, 경찰서로 이첩될 건가요?”
 
“가보면 만나겠지만, 파견대장님은 인간적이십니다.”
 
나는 더 물을 말이 없었다.
중위의 어투로 보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스스로에게 
안심을 심었다. 담배를 피워 물었다.
차는 시내를 빠져나와 석교천을 끼고 사방이 트인 해안지대를 달렸다.
지프 차창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황량한 공한지 멀리로 B공단 공장 굴뚝들이 보였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밀려 연기가 시내 쪽으로 꼬리를 늘였다.
그중 삼영정유공장으로 짐작되는 굴뚝에는 중동의 유전지대처럼
가스를 태우는 붉은 불꽃이 혀를 날름거렸다.
불꽃을 휩싼 검은 연기가 분진을 날리며 서쪽 하늘로 흩어졌다.
삼각주 갈대밭과 해안 구릉 사이로 바다가 보이자,
지프는 휘어진 길을 따라 남으로 꺾어 들었다.
나는 차창을 열어 소금내 섞인 바닷바람을 마셨다.
가을 햇살 아래 바다의 잔물결이 반짝거렸다.
 
“어릴 적부터 병국이 그, 그놈은 바다를 좋아했더랬지요.”
 
중위에게 내가 말했다.
 
“저도 고향이 인천입니다만, 소년에게 바다는 꿈을 키워주지요.”
 
그랬다, 병국이는 어릴 적부터 바다를 보며 꿈을 키웠다.
두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일요일이면 자전거 뒤에는 병국이를, 앞에는 병식이를 태워
동진강 삼각주나 동남만 남쪽 돌기에 자리한 장진포까지
바다 구경을 나갔다. 병식은 어려서인지 별 반응이 없었지만,
병국은 바다로 나오면 큰 배를 보고 싶어했다.
동남만이 공업화의 물살을 타자 어촌이었던 장진포가 항만 준설 공사를
마쳐 몇 만 톤급 배가 입항하게 되었는데,
병국은 외국 깃발을 단 큰 배에 열광했다.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거룻배나, 통통배라 부르던 발동선은
안중에 없었다.
 
지프가 부대 정문으로 들어섰다. 본부 막사 앞에 차가 멎었다.
중위는 나를 본부 막사 파견대장실로 안내했다.
파견대장은 서류철을 뒤적이다 우리를 맞았다.
 
“김병국 군 부친입니다.”
 
중위가 소령에게 말했다. 덧붙여, 예편한 대위 출신으로 육이오전쟁에
참전한 상이용사라고 나를 소개했다.
 
“앉으십시오.”
 
소령은 나를 회의용 의자들 쪽으로 안내했다.
 
“부, 불비한 자식을 둬서 죄송합니다. 얘기를 해보셨다면
 아, 알겠지만 천성은 착한 놈입니다.”
 
접개 철제의자에 앉으며 내가 말했다.
 
“어젯밤에 제가 부대서 숙실할 일이 있어 젊은 친구와 얘기를
 나눠봤지요. 별난 데는 있지만 똑똑한 학생이더군요.”
 
“요즘 제 딴에는 조류와 공해 문제를 여, 연구한답시고……
 모르긴 하지만 그 일 때문에 시, 심려를 끼치지 않았나……”
 
“자제분은 군 통제구역 출입이 어떤 처벌을 받는지
 알만한 식견이 있음에도 무모한 행동을 했어요.
 설령 그 일이 정당해두 사전에 부대의 양해를 구해야지요.”
 
“야영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워, 월경했겠죠.
 부대장님의 선처를 바랍니다. 내보내주시면 아비 된 제가
 단단히 주의를 주겠습니다.”
 
윤소령이 당번병을 불러 차를 내오라고 일렀다.
그리고 1968년 11월 울진 · 삼척 지구의 무장공비 출현과
그들이 저지른 만행을 예로 들었다.
 
“……야음을 틈타 쾌속정을 이용해서 동해안 따라 남하했던 겁니다.”
 
아울러 국내 유수의 공업단지 보안과 경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는 실전이 없달 뿐 지금도 전쟁 중입니다. 국민이
 평안을 원한다면, 그 평안을 확보하기 위해 한시도 경각심을
 늦출 수 없어요. 국민복지의 향상과 제반 산업의 발전도
 안보의 확립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차를 마시고 나자 소령은 당번병에게,
김병국 군을 데려오라고 말했다. 한참 뒤, 아들이 중위와 함께
파견대장실로 왔다. 쑥대머리에 땟국 앉은 꾀죄죄한 아들놈 몰골이
중병 든 환자 꼴이었다. 점퍼와 검정 바지도 뻘투성이여서
하수도 공사라도 하다 나온 듯 했다.
꺼진 눈자위에 번들거리는 눈만이 살아, 나를 보았다.
 
“넌 도대체 어, 어떻게 돼먹은 놈인가! 통금시간에 허가증 없이는
 해안 일대에 모, 못 다니는 줄 알면서.”
 
내가 노기를 띠며 말했다.
 
“본의는 아니었어요. 사나흘 사이에 동진강 하구 삼각주에서
 갑자기 새들이 집단으로 죽기에, 이유를 좀 캐내보려던 게……”
 
병국이 머리를 떨구었다.
 
“그래도 변명은!”
 
“그만 하십시오. 자제분 의도나 진심은 파악했으니깐요.”
 
소령이 말했다. 병국이는 간밤에 쓴 진술서에 손도장을 찍고,
각서를 썼다. 내가 각서에 연대보증을 섬으로써 부자가 파견대 정문을
나오기는 정오가 가까울 무렵이었다.
부대를 나올 때 집으로 찾아왔던 중위가 병국이 물건을 인계했다.
닭털침낭이 묶인 배낭 한 개, 이인용 천막, 손전등, 죽은 바다오리와
꼬마물떼새 한 마리씩이었다.
 
“죽은 새는 뭘 하게?”
 
웅포리로 걸으며 내가 물었다.
 
“해부해서 사인을 캐보려구요.”
 
“폐, 폐수 탓일까?”
 
아들 녀석은 대답이 없었다.
 
“시장할 테니 해주집에 가서 저, 점심 요기나 하자.”
 
“아무래도 새를 밀살하는 치가 따로 있는 거 같아요.”
 
병국은 밥에는 관심이 없는지 딴소리를 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
 
“갑자기 떼죽음 당한 게 이상하잖아요? 물론 전에도 새나 물고기가
 떼죽음 당한 경우가 있었지만 이번은 뭔가 다른 것 같아요.”
 
“오염된 수, 수질 탓이야. 이제 동진강은 강물이 아니고
 도, 독극물이야. 조만간 이곳에서 새떼가 자, 자취를 감추고 말게야.”
 
“새 깃털이나 뼈가 갈대밭에 흩어진 걸 봤지만 이번은
 그게 아니래두요.”
 
병국이 말했다.
 
“간밤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병식이 그들과 한 패인 듯해요.”
 
“병식이가 새를 죽여?”
 
“전 밥 생각이 없으니 시내로 들어갈 게요.
 독서실을 찾아 녀석을 만나야겠어요. 독살 이유를 캐내야 해요.”
 
병국의 말이 단호했다. 지난여름 해주집에서 본 물고기가 생각났다.
중금속에 오염된 이른바 꼽추붕어였다.
저런 물고기가 잡히다니, 세상도 희한해졌다고 해주댁이 말했다.
그걸 끓여 먹었다간 내 등뼈도 휘어지겠다며 당장 버리라고
강회장이 말했다. 해주댁이 등이 휘어진 꼽추붕어 꼬리를 쥐며,
이걸 먹었다구 죽기야 하겠냐며 아쉬워했다.
강회장이 해주댁한테서 꼽추붕어를 빼앗아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4
생명을 가진 것이 죽어버린 상태,
사람이든 짐승이든 시체는 추하다.
그러나 꼬마물떼새는 죽어 있어도 추해 보이지 않았다.
이십 센티 못 되는 늘어진 작은 몸매가 안쓰럽고 귀여웠다.
등은 성긴 갈색 털로 덮였고 배 쪽 흰 털은 융단 같았다.
검은색 굵은 줄이 목을 감았고, 눈가에도 검은 무늬가 있었다.
살풋 감은 눈꼬리로 노란 둘레 테가 엿보였다.
이씨는 꼬마물떼새 시체를 집어 도마에 놓았다.
칼자국 흠마다 피가 밴 두꺼운 도마였다.
 
“도마에 관록이 불었습니다.”
 
족제비가 이씨에게 말했다.
 
“수백 마리는 참살한 형틀이지.”
 
이씨가 말했다. 이씨는 메스를 들었다.
오후 네시경의 기운 햇살이 칼날 끝에서 튀었다.
이씨는 메스로 간단히 꼬마물떼새의 목을 잘랐다.
작은 새라 이씨 손놀림이 경쾌했다.
병식이와 족제비는 이씨 뒤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떨어져 나간 새의 목과 몸통에서 피가 흘러 도마 바닥에 응고되었다.
이씨가 다리와 날개에 이어 꽁지를 자르자 새는 몸통만 남았다.
꼴을 갖추지 못한 몸통이라 병식이 찡그리며 개수구에 침을 뱉었다.
이씨는 메스를 놓고 탁구공만한 꼬마물떼새 대가리를 쥐었다.
잘라낸 목에서 기관과 식도의 심줄을 빼내고,
거기에다 핀셋을 쑤셔 뇌를 뽑아냈다.
뇌는 붉은 실핏줄로 싸발린 둥근 핏덩이였다.
 
“새대가리란 말이 있듯이, 새들은 뇌가 작지.”
 
이씨가 말했다.
 
“새도 새 나름이죠. 그놈은 고향이 시베리아 맞잖아요?”
 
족제비가 말했다.
 
“그 먼 데서 예까지 날아와 죽게 될 줄이야.”
 
“죽어도 박제품을 남기니 호랑이가 가죽 남기듯,
 쓸모 있는 죽음이죠.”
 
병식이 말했다.
 
“모든 생명은 혼이 가버리면 끝장이야. 껍데기만 남겨선 뭘 해.”
 
이씨가 말했다.
 
“우리 주위에 혼 없이 나댕기는 놈이 어디 한둘인가요.”
 
병식은 형을 떠올렸다.
 
“세상엔 새만도 못한 인간이 많긴 하지.”
 
이씨가 말했다.
 
“물떼새는 대단한 놈이야요.”
 
족제비가 그 말을 받았다.
 
“『조류도감』을 보니깐 미국 보스턴 근방에서 다리에 표지(標識)를
 붙여 날려 보냈더니 엿새 뒤에 삼천 킬로 떨어진 서인도제도 
 한 섬에서 포획됐대요. 하루 평균 오백 킬로를 난 셈이지.”
 
“자네도 이젠 전문가가 다 됐군.”
 
“돈벌이도 주제 정도는 파악해야죠.”
 
“중병아리만한 놈이 하루 오백 킬로를 날아?”
 
병식이가 감탄했다.
 
“고속버스지 뭐, 아침 먹고 서울 뜨면 저녁에 부산이지.”
 
족제비가 말했다. 이씨는 아비산 용액이 묻은 솜을 새의 잘린 목구멍을
통해 빈 기관에 쑤셔 박았다. 핀셋에 집힌 솜 한 뭉치가 다 들어갔다.
이어 이씨는 새의 몸통을 왼손바닥에 뒤집어놓고 메스로 목에서부터
배를 거쳐 항문까지 갈랐다.
 
“이제 박피를 시작하는 거야.”
 
족제비가 병식이에게 말했다.
 
“박피라니?”
 
이씨의 손놀림을 보면 병식이 족제비에게 물었다.
 
“껍질을 홀랑 벗기는 거지.”
 
이씨가 새의 항문에서부터 껍질을 벗겨냈다.
병식은 지난겨울, 대학 입시원서를 낼 때가 생각났다.
명함판 사진을 찍어 입시원서에 붙일 때,
사진 뒷면 한 겹을 벗겨내기가 쉽지 않았다. 
면상이 찢길까봐 침칠하며 한 겹을 두 쪽으로 나눌 때에 비해,
이씨는 콘돔을 까발길 때처럼 껍질을 익숙하게 벗겨나갔다.
껍질을 벗길 때 얇은 막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새란 날짐승은 원래 필요 없는 살점을 붙이고 있지 않지만,
꼬마물떼새의 경우는 얇게 싸발린 대흉근 안쪽에
용골돌기가 불거져 있었다.
박피를 끝내자 껍질 벗긴 새의 몸통은 무슨 살덩이인지
알아볼 수 없는 형체로 변했다.
이씨는 새 몸통을 도마 옆으로 던지고 껍질 안면을 도마에 펴놓았다.
 
“몸통은 내버리나요?”
 
병식이가 이씨에게 물었다.
 
“내장을 추려내서 볶아 먹자는 거로군.”
 
“참새구이 정돈 안 될까요?”
 
“마음대로 해. 먹어도 죽진 않을 테니.”
 
이씨는 솜에 아비산 액을 묻혀 껍질 안면을 닦았다.
부패 방지 처리였다.
그 일이 끝나자 새 대가리를 쥐고 박피에 들어갔다.
 
“대가리 박피는 눈 · 귀 · 주둥이 부분을 조심해야 돼.”
 
“사자같이 덩치 큰 짐승을 박피한담 모를까,
 작은 새는 스릴이 없군.”
 
병식이 말했다.
 
“그래도 고니나 오리 종류는 낫지.”
 
족제비가 말했다.
 
“박제도 한물갔어. 야생 조류가 자꾸 귀해지니깐.”
 
이씨가 말했다.
 
“그러니 값이 천장 모르고 뛰잖아요.”
 
족제비가 말했다.
 
“이삼 년 전만 해도 이런 물떼새는 어디 박제감으로 쳤나.
 죽은 병아리와 다를 바 없었지.” 
 
이씨가 메스로 꼬마물떼새 주둥이 기부를 도려냈다.
 
“얘기 하나 해줄까. 물떼새나 도요새는 
 생김새도 닮은 한 종류지만, 이놈들은 꾀가 많지.”
 
“꾀가 많다니요?”
 
병식이 물었다.
 
“어미새가 냇가 자갈밭에서 부화될 알을 품고 있을 때
 갑자기 뱀이 나타났다 이거야. 그러면 어미새가 어떻게 알을
 보호하느냐 하면, 갑자기 절름발이 시늉을 내며 비적비적 걷거든.
 그러면 뱀이, 옳다구나 저놈은 날지 못하는 병신이니
 저놈을 잡아먹자고 어미새 뒤를 쫓지. 그러면 어미새는 곧 잡힐 듯
 절뚝거리며 달아나. 알을 둔 곳에서 멀찌감치 도망가서
 뱀이 되돌아 가도 찾지 못할 지점까지 가서야
 화들짝 하늘로 날아올라.”
 
“거짓말.”
 
병식이는 절름발이 아버지를 생각했다.
 
“비싼 밥 먹고 왜 거짓말을 해.”
 
“그럴듯한 얘긴데요.”
 
족제비가 머리를 주억거렸다.
 
“이제 전시장으로 가볼까.”
 
이씨가 말했다. 전시실은 안채 지하실로, 부엌을 통해 들어갔다.
족제비가 지하실 문을 열자 병식은 쿰쿰한 악취에 순간적으로
숨을 끊었다.
 
“뭘 쭈뼛거려. 들어오잖구.”
 
족제비가 말했다. 병식이 코를 싸쥐고 뒤따라 들어갔다.
지하실은 건조했고, 화덕처럼 후끈거렸다.
연탄난로가 설치되어 열을 내고 있었다.
병식은 잠시 멈추었던 숨을 내쉬었다.
고깃덩어리가 썩은 역한 내음과 노린내가 코로 스며들었다.
그 냄새만이 아니었다. 지하실은 유황을 태운 듯 매캐한 화기와
텁텁한 구린내, 병원의 소독수 냄새까지 합친,
야릇한 냄새로 차 있었다.
 
“으스스한데?”
 
병식이 말했다.
 
“심령영화 보듯 짜릿한 무엇이 있지?”
 
족제비가 배시시 웃었다. 맞은편 벽은 삼층으로 선반이 있었다.
선반에는 여러 종류의 완성된 조류 박제품과, 철사에 석고를 발라
머리와 몸통이 새와 흡사한 모양틀이 진열되어 있었다.
병식은 조류 박제품 중에 매를 보았다.
매는 큰 날개를 벌린 채 먹이를 덮칠 듯한 자세로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다. 매의 날개가 벽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의안임에도 전등빛에 반사된 눈매가 매서웠다.
 
“저 매한테 혼만 불어넣는다면?”
 
족제비가 병식에게 말했다.
 
“불가능해. 하느님은 물론, 그 어떤 신도.”
 
“저 고니를 봐?”
 
“얌전한 폼이 해수욕을 즐기는 것 같군.”
 
“인간도 박제해서 여기다 보관하면 좋을걸.”
 
“미라가 있잖아.”
 
“모든 인간 종자를 말야. 세종대왕이나 나폴레옹보다
 마릴린 먼로나 히틀러 같은 치가 보고 싶군.”
 
“저기 흰목물떼새도 있네?”
 
“죽이긴 내가 죽이고, 이씨는 저렇게 살려내.”
 
“예술가셔.”
 
“이씬 죽어도 천당 갈 거야. 지옥으로 떨어질 찰나
 새들이 답삭 물어 올려 하늘나라로 모셔갈테니.”
 
족제비가 책상에 엉덩이를 걸쳤다.
책상에는 가위 · 바늘 · 핀셋 · 철사 · 핀 · 솔 · 코르크판
따위가 널려 있었다.
 
“이씨의 손에 잡히면 중치의 새 정돈 삼십 분 만에 저렇게 완성돼.”
 
“판매 루트는?”
 
“직업적인 세일즈맨이 있어.”
 
족제비는 담배를 꺼냈다.
 
“피울래?”
 
“여긴 숨이 막혀.”
 
“습기가 끼면 박제품은 썩기 마련이야. 그래서 난로를 피워.”
 
“냄새가 지독해.”
 
“바깥도 매연투성이잖아. 썩긴 그쪽이 더할는지 모르지.
 여긴 저놈들의 혼이라도 떠도니 엄숙한 셈이야.”
 
“나가.”
 
병식이 입구로 등을 돌렸다.
 
“나흘 치 셈을 받으면?”
 
족제비가 따라오며 물었다.
 
“한 번 더 올나이트로 흔들지 뭐.”
 
“너도 철들어 제법이야. 일곱시에 끝나지? 내가 학관으로 가마.”
 
“오늘도 윤희를 만날 수 있을까?”
 
“순정파셔. 어디 까이가 한둘이니. 대일밴드(임시 애인)야
 바겐세일 아냐.”
 
족제비는 이씨로부터 만칠천 원을 받았다.
그중 칠천 원을 병식에게 주었다. 둘은 이씨 집을 나와 버스를 탔다.
중앙공원 로터리에서 둘은 헤어졌다. 병식은 시계를 보았다.
네시 반이었다. 다섯시부터 수업이 시작되니 삼십 분 여유가 있었다.
그는 학관이 있는 역 쪽으로 걸었다.
담배를 피워 물고 맞은편에서 오는 계집애들 얼굴과 몸매를 눈요기했다.
학관 입구는 여느 날처럼 붐볐다.
대부분이 재수생이었고 간간이 교복 입은 학생도 섞여 있었다.
병식이 정문 앞 돌계단까지 갔을 때였다.
열두 개의 계단 맨 위에 병국이 쭈그려 앉아 있었다.
퀭한 눈으로 계단을 오르는 학관생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점퍼와 바지에는 뻘이 묻은 채였다.
병국이 계단을 오르는 아우를 보자 일어섰다. 병식도 형을 알아보았다.
 
“웬일이야?”
 
병식이 피우던 담배를 구둣발로 비벼 끄며 말했다.
 
“우리 학관에 선생 자리라도 뚫었나. 그럼 난 무료 패스하겠군.”
 
“너한테 할 말이 있어.”
 
“무슨 얘긴데?”
 
“어제 오후부터 널 찾아다녔어. 독서실에서 잠 안 잤더군.”
 
“입시까진 바쁜 몸인 줄 알잖아?”
 
“조용한 데로 가서 얘기 좀 해.”
 
형제는 학관 앞을 떠났다.
 
“형, 술 할래?” 병식이 물었다.
 
“놀래긴. 나도 성년식 마친 몸이야.”
 
“저기로 가.”
 
병국이 다방 간판을 보고 그곳으로 걸었다.
 
“내가 한잔 산다는데 그래.”
 
병식이 형 점퍼 허리춤을 잡았다.
형제는 뒷골목 간이주점으로 들어갔다.
해가 지기 전이라 손님은 없었다. 병식이 주모를 불러 막걸리를 시켰다.
 
“형, 내 친구 종호 알아? 종호 형이 형과 고등학교 동창이라며?
 근데 말야. 죽동 사창가 골목에서 형제가 마주쳤다는 거야.”
 
“입 닫아.”
 
병국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괜히 엄숙 떨지 마.”
 
“너 그날 석교천 방죽에서 새를 독살하고 오던 길이지?”
 
“그게 뭘 어쨌다는 거야?”
 
병식의 표정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뻔뻔스런 자식. 언제부터 그 짓 시작했어? 왜 새를 죽여,
 죽인 새로 뭘 해?”
 
병국이 언성을 높였다.
 
“별 말코 같은 소릴 다 듣는군. 날아다니는 새도 임자 있나?
 지구의 새를 형이 몽땅 사들였어?”
 
병식이가 주모가 놓고 간 주전자의 막걸리를 두 잔에 쳤다.
 
“우선 한 잔 꺾지. 형제의 우애를 위해서.”
 
“누가 네게 그 일을 시켜? 그 사람을 대.”
 
병국이 잔을 밀치며 소리쳤다.
 
“형이 고발할 테야? 날아다니는 새 잡아 박제한다구?
 그건 죄가 되구, 허가 낸 사냥총으로 새 잡는 치들은
 죄가 안 된다 말이지?”
 
병식이 코웃음 쳤다.
 
“희귀조가 멸종되고 있다는 건 너도 알지?
  인간이 새를 창조할 순 없어.”
 
“개떡 같은 이론은 집어치워. 지구상에는 삼십억 넘는 새가 살아.
 그중 내가 몇 마리를 죽였다 치자, 형은 그게 그렇게 안타까워?”
 
“박제하는 놈을 못 대겠어?”
 
병국이가 의자에서 일어나 아우 멱살을 틀어쥐었다.
주모가 달려와 둘 사이에 끼었다.
개시도 안 한 술집에서 웬 행패냐고 주모가 소리쳤다.
 
“못 불겠다면? 형이 고발해 봐. 형 손에 아우가 쇠고랑 차지!”
 
병식이 형 손목을 잡고 비틀어 꺾었다.
 
“형도 구치소 출입해 봤으니 나만 볕 보고 살란 법 있어?”
 
“말이면 다야!”
 
병국의 주먹이 아우 턱을 갈겼다.
병식의 머리가 뒷벽에 부딪히자 입술에서 피가 터졌다.
 
“형이 날 쳤어!”
 
병식이 형의 허리를 조여선 번쩍 안아 들었다.
그는 마른 장작개비 같은 형을 바닥에 내동댕이 치곤 의자를 치켜들었다.
형 면상에다 의자를 찍으려다 그 짓은 차마 못 하겠다는 듯
손을 내렸다.
 
“오늘은 내가 참아. 몰매 맞을 짓을 했담 형한테 맞아 주겠어.
 그러나 내가 새를 독살한 것도 아니구, 심심풀이로 족제비 따라
 개펄로 나갔는데, 치사하게 동생을 고발해!”
 
병식은 백 원짜리 동전을 술상에 놓곤 입술의 피를 닦았다.
가방을 챙겨 들더니 출입문을 열어젖혔다.
 
“병식아, 학관 끝나면 집으로 와!”
 
모잽이로 쓰러졌던 병국이 일어나며 외쳤다.
병식은 주점을 나서 버린 뒤였다.
 
“봐요, 젊은이 안경알이 깨어졌어.”
 
주모가 병국에게 말했다. 안경의 왼쪽 알이 방사선 금을 그었다.
넘어질 때 술상 모서리에 부딪힌 모양이었다.
병국은 주점을 나섰다. 가로의 건물들이 길 가운데로 그림자를 늘이고
있었다. 병국은 학관을 뒤져 족제비라는 병식의 친구를 찾아낼까 하다
그만두기로 했다. 턱이 뾰조록한 녀석의 생김새는 떠올랐지만
그가 학관에 다니는지, 지금 시간에 나왔을지 알 수 없었다.
저녁에 병식이 귀가하면 박제사 집을 알아내는 일이 더 쉬울 것 같았다.
병국은 경찰을 앞세워 박제사 집을 덮치거나 고발할 의향은 없었다.
박제품이 보호조가 아닌 이상 처벌 대상인지 어떤지도 모호했다.
동진강 하구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조개를 채취하는 일과
새를 잡는 일이 무엇이 다르냐고 따질 때 반론을 제시할
근거가 없기도 했다.
나무 한 그루를 베어도 처벌받는 산림법 벌칙이 조류에는
해당이 되지 않았다. 수렵 금지 기간이 따로 있지만,
총포류를 사용하지 않은 이상 그 벌칙에서도 빠져나갔다.
짐승이나 조류의 박제품은 연구용 내지 관상용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자연 보호 명목을 원용한다면,
야생 조류의 남획이 경범죄 정도에는 해당될 것 같았다.
병국이 박제사를 만나면 그를 설득해 조류 중에
나그네새나 철새의 박제만은 하지 말라고 말할 작정이었다.
새의 독살은 자기 살점을 뜯어내는 고통과 같았기에
그 목적은 관철시키고 싶었다.
박제사가, 남의 생업까지 왜 막느냐고 벋서면 야생 동물 보호 협회
경남 지부와 협의해서 강구책을 세우기로 했다.
병국은 중앙 공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이 무거웠고 마음도 편치 않았다. 귀가하기도 싫었다.
역시 그가 찾을 곳은 바닷가 개펄밖에 없었다.
황혼 무렵, 바다로 향해 자맥질하는 새떼를 구경하기로 결정했다.
석교 아파트나 웅포리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으로 걷던 병국은
길가의 석탑서점을 보자 걸음을 멈추었다.
신간과 헌책을 함께 취급하는 서점으로, 자주 들르는 곳이었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주인 민씨가 안경 낀 친구와 담소하고 있었다.
 
“동진시도 애들 키울 데가 못 돼.
 성범죄가 사흘 평균 한 번이라잖아.”
 
민씨 친구가 말했다.
 
“주로 공단 주변이라며?”
 
민씨가 물었다.
 
“A공단 삼환합섬 있지, 어제도 뒷골목에서 칼부림이 났다더군.
 여공원을 두고 두 놈이 붙은 거지.”
 
“어디 그뿐인가, 수삼 년 사이 중심가에 비어홀과 살롱 늘어난 것 봐.
 밤 열한시만 되면 거기서 쏟아져 나오는 여급이 수백 명이래.
 여관은 꽉꽉 차구.”
 
“B공단 플라스틱 공장 있잖은가.”
 
“수출용 완구 만드는 공장?”
 
“거기 여공들이 스트라이크를 일으켰대.
 사장은 외제차 타는데 여공들 야근수당이 석 달이나 밀렸다잖아.
 그것까지는 참았는데 나흘 전에 완제품 납품 숫자가 모자란다고
 검사과 여공원들 알몸 수색을 했다더군.
 여공원들이 울며불며 야단이 났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납품 숫자를 채울 때까지 검사과 종업원은
 퇴근시키지 말라는 지시가 내렸대.”
 
“굼벵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아무리 돈 주고 부려먹는 공원이지만
 그럴 수가 있나. 제 놈은 그만한 딸애 안 키우는가.”
 
“검사과의 여공들이 결백이 밝혀질 때까지 맞서자고 농성을
 시작한 게지. 일이 커지자 회사측은 밤 열한시에 모두
 귀가시킨 모양인데, 이튿날 농성을 주도했던 여공 셋이 일방적으로
 해고됐다잖아. 근무 태만에 품행이 방정치 못했다나?
 그렇게 되자 밀린 노임으로 불만이 많던 참에 농성이 전 종업원으로
 확대됐어.”
 
“노조 조직이 있었던 모양이지?”
 
“어용노조가 있었다더군. 그런데 말야,
 사장이 타는 외제 승용차가 마침 사무실 앞에 주차해 있었는데,
 공원 몇이 돌팔매를 던져 차에 흠집을 냈어.”
 
“경찰이 출동했겠군?”
 
“여부가 있겠나.
 가까스로 수습은 됐는데 아직 술렁술렁하는 모양이야.”
 
“아저씨.”
 
화제가 매듭지어지자, 병국이가 민씨에게 말을 붙였다.
 
“자네 왔군. 요즘도 새와 함께 사는가?”
 
민씨가 병국의 깨진 안경을 보았다.
 
“새와 함께 살다니?”
 
민씨 친구가 물었다.
 
“공장 폐수로 동진강 오염되자 철새가 날아오지 않는다잖아.”
 
“나도 신문에서 그 기사는 읽었어.”
 
“저 친구가 신문사에 자료를 제공한 걸세.”
 
“제가 부탁한 책 왔어요?”
 
병국이 민씨에게 물었다.
 
“주문서를 냈는데 아직 안 왔어. 책이름이 뭐랬지?”
 
“마거릿 미드 여사가 지은 『조용한 봄』요.”
 
“아직 도착 안했어. 일주일쯤 후에 들를게.”
 
“『조용한 봄』이라, 사춘기 애들이 읽는 연애소설인가?”
 
민씨 친구가 물었다.
 
“공해로 멸종되는 새의 관찰기록이라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병국이 서점을 나섰다.
 
“저 젊은 친구, 자네 모르나?”
 
민씨가 친구에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
 
“한때 수재로 소문났잖아. 외양은 저래도 똑똑한 애야.
 대학교 데모로 말일세……”
 
병국은 정배형 학교로 전화를 걸려고 공중전화 부스를 찾았다.
퇴근 시간이라 개펄로 같이 나갈 수 있겠냐고 물어볼 참이었다.
전화 부스를 찾는 사이 버스 정류소에 도착했고,
마침 웅포리행 버스가 와서 승차했다. 뒷좌석에 앉자 그는 눈을 감았다.
피곤에 찌들어 잠을 자듯 늘어졌다. 깜깜한 밤이었다.
멀리로 등대 불빛이 보였다.
감은 눈앞에 도요새 무리가 바다와 하늘사이 무공 천지를 가르며
날고 있었다.
날개를 상하로 쳐 대며 바람에 쫓기듯 남으로 내려갔다.
등대 불빛 쪽으로 날던 새 떼가 어둠에 가린 등대 몸체를 미처 못 피해
등대 벽에 머리를 박고 떨어졌다. 다시 낮이었다.
강 하구와 벼를 벤 논바닥에서 도요새 무리가 쉬고 있었다.
하늘 높이 떠 있던 매 한 마리가 수직으로 낙하했다.
매는 쫓음 걸음을 하는 도요새 한 마리를 포획했다.
사냥꾼이 도요새를 수렵하고, 중금속에 오염된 폐수와 폐수를 터 삼은
물고기가 도요새에게는 오히려 독이었다.
왜 도요새가 당하는 피해만 환상으로 떠올랐는지 몰랐다.
 
“종점이에요. 손님 안 내려요?”
 
병국이 눈을 뜨니 버스 안내원이었다.
그는 쫓기듯 버스에서 내렸다. 웅포리였다.
주차장을 벗어나 바다 쪽으로 걸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지친 그는 모래톱에 주저앉아 
바다 멀리 수평선에 시선을 주었다.
서편으로 기운 햇살을 받아 먼 바다의 물결이 은빛을 띠고 있었다.
그때부터 먼 데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고,
바다가 붉은빛에 반사되어 금빛 어룽으로 번질 때까지
그는 자리를 지켰다.
그동안 갈매기 외에 청둥오리 떼가 동진강 하구로 북상하고,
물떼새들이 암벽이 돌출한 장진포 쪽으로
점점이 날아가는 모양도 보았다. 바닷물이 암청색으로 변하고
바람이 차가워지자 병국은 일어났다.
시내 쪽은 어둠이 내렸고 B공단 굴뚝들도 어둠 속에 잠겨갔다.
그는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유흥가를 지났다.
해주집으로 가는 외진 오솔길로 접어들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허기가 너무 심해 걷기조차 힘에 부쳤다.
해주집 술청은 불이 켜졌고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병국은 안으로 들어서려다 발걸음을 묶었다.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물론 히, 힘든 문제지요.”
 
아버지는 엔간히 취해 있었다.
 
“아무래도 내 평생 통일은 글렀네. 생이별한 처자식은 못 볼 거야.
 삼십 년을 하루같이 기다려오다 백발이 되었잖어.”
 
강회장의 허탈한 목소리였다.
 
“성님, 그렇찮아요. 시국의 돌연한 변혁은 아무도 예, 예측 못해요.”
 
“마른 땅에 물 고이랴. 평화통일은 어렵네,
 서로 강경책만 일삼으니 언제 형, 아우 하고 지내겠어.”
 
“요즘 바, 밤잠이 없어 한밤중에 잠이 깨요.
 그러면 세상이 조용하고 깜깜한 게 영 갑갑증이 나서 못 견딜
 지경입니다. 시간은 왜 그렇게 더, 더디게 가는지.
 이 생각 저 생각 하다보면 날이 영 새, 샐 것 같지 않아요.
 그러나 어김없이 새, 새벽은 오지요. 이 고비만 넘기면
 토, 통일도 그렇게 찾아옵니다. 설령 죽을 때까지
 고향땅 못 밟는다 해도 아들놈은 바, 반드시 애비뼈를
 고향으로 옮겨 묻어줄 겁니다.”
 
“아우, 자넨 새벽같이 통일이 올 거라고 믿어?”
 
“다른 사람은 관두고라도 성님하고 저하고 매, 맺힌 한만 합쳐도
  하늘이 필경 원을 드, 들어 줄겁니다.”
 
안으로 들어가 아버지를 만날까 어쩔까 망설이다
병국은 발걸음을 되돌렸다. 저들 세대의 맺힌 한에
자신의 말이 아무 도움이 못 될 것임을 알았다.
바다와 하늘은 완전히 어둠에 묻혔고 멀리 장진포 쪽 등대만이
불을 켜고 있었다. 그런데 병국의 눈앞에 도요새 한 마리가 홀연히
날아올랐다. 도요새의 유연한 비상은 아래위로 날개 치는 비행이
아니었다. 날개를 펼친 채 기류의 도움으로 날고 있었다.
상승 기류를 타고 공중 높이 올라갔다가 바람을 옆으로 받아
활공으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율동이 눈앞에서 떠올랐다.
도요새야, 너는 동진강 하구를 떠나 어디에 새로운 도래지를 개척했어?
병국이 중얼거리며 도요새를 쫓아갔다.
그러자 도요새의 비행은 눈앞에서 곧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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