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 7

비극은 그 아픔을 정직한 진실로 이끌어 줍니다 - 신영복 -

비극은 그 아픔을 정직한 진실로 이끌어 줍니다 - 신영복 -그 어디에도 회한의 흔적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애일당 옛터에서 마음에 고이는 것은 도리어 그의 누님인 허난설헌의 정한(情恨)이었습니다. 조선에서 태어난 것을 한하고 여자로 태어난 것을 한하던 그녀의 아픔이었습니다. 그러나 허난설헌의 무덤을 찾을 결심을 한 것은 오죽헌을 돌아나오면서였습니다. 오죽헌은 당신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율곡과 그 어머니인 사임당 신씨를 모신 곳입니다. 사임당은 마침 은은한 국화향기속에 앉아 돌층계위 드높은 문성사(文成祠)에 그 아들인 율곡을 거두어 두고 있었습니다. 율곡..

한국단편문학 2025.10.25

" 괜찮은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 " 77

괜찮은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 / 권혜진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람도 아닌 괜찮은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 깊이의 잣대가 필요 없는 가슴 넓이의 헤아림이 필요 없는 마음 자신을 투영시킬 맑은 눈을 가진 그런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 삶이 버거워 휘청거릴 땐 조용히 어깨를 내어주고 사심 없는 마음으로 손잡아 줄 수 있는 괜찮은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 마음이 우울할 때 마주앉아 나누는 차 한 잔 만으로도 부자가 될 수 있고 하늘빛이 우울하여 몹시도 허탈한 날 조용한 음악 한 곡 마주 들으며 눈처럼 하..

카톡 꽃편지 2025.10.19

산촌 여정 - 이상 -

산촌 여정 - 이상 - 향기로운 MJB(커피의상표)의 미각을 잊어버린 지도 20여 일이나 됩니다. 이 곳에는 신문도 잘 아니 오고 체전부(遞傳夫)는 이따금 하드롱 빛 소식을 가져옵니다. 거기는 누에고치와 옥수수의 사연이 적혀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 사는 일가 때문에 수심이 생겼나 봅니다. 나도 도회에 남기고 온 일이 걱정이 됩니다. 건너편 팔봉산에는 노루와 멧돼지가 있답니다. 그리고 기우제 지내던 개골창까지 내려와서 가재를 잡아먹는 곰을 본 사람도 있습니다. 동물원에서밖에 볼 수 없는 짐승, 산에 있는 짐승들을 사로잡아다가 동물원에 갖다 가둔 것이 아니라, 동물원에 있는 짐승들을 이..

한국단편문학 2025.10.18

파라칸사스 127

파라칸사스 10월15일 길가에 빨간열매를 주렁주렁 달았습니다. 5-6월에 작은꽃이 하얗게 피고 가지에는 가시가 나 있습니다. 요즘철에는 빨갛게 열매를 맺는데 이열매를 까마귀가 잘 먹는다고 합니다. 파라칸사스는 중국이 원산지라 합니다. 오며 가며 만난꽃입니다. 혼자 보기 아까워서 이렇게 띄웁니다. 오늘 여기 오신 손님 !!! 복 받으시고 늘 건강하세요.

야생화-단일 2025.10.17

금목서 126

금목서 10월15일 요즘 걷기운동 다니는 길에 빛깔도 곱고 향기도 좋은 금목서가 한창입니다. 비슷한 종류로 금목서,은목서,구골나무,호랑가시나무 등이 생각나는데 모두다 향이 좋고 금목서를 빼고, 은목서,구골나무,호랑가시나무는 흰색의 꽃을, 요즘부터 차례차례로 꽃을 피웁니다. 중국이 원산지이고 꽃은 암수딴그루이며 지름 5mm정도로서 잎겨드랑이에서 나와 그림과 같이 핍니다. 오늘 여기 오신 손님 !!! 복 받으시고 늘 건강하세요.

야생화-단일 2025.10.15

무너진 극장 - 박태순 -

무너진 극장 - 박태순 - 1960년대에 접어들자마자 일어났던 4·19사태에 대하여 우리가 갖는 정직한 느낌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때는 바야흐로 비상시국이었으며, 일차 모든 기성의 질서들이 무시되는 혼란의 시기였다. 오도(誤導)된 질서에 대한 반발이 극심하게 표현되었던 시기였다. 기성 질서의 테두리 속에서 비겁한 안정을 꾀하던 지배자층의 총알에 맞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붙잡힌 학생들은 고문을 당했다. 계엄령이 선포되었으며 통금위반에 걸린 사람들은 얻어터졌다. 경찰은 여관과 가택을 수색했다. 병원마다 젊은이들은 빵꾸가 난 육체를 가누지 못해 죽음과 고통을 함께 느끼며 신음하였다. 때는 비상시국이었으므로, 무슨 일이든 발생할 수 있는..

한국단편문학 2025.10.11

강(江) - 서정인 -

강(江) - 서정인 - "눈이 내리는 군요." 버스 안. 창쪽으로 앉은 사나이는 얼굴빛이 창백하다. 실팍한 검정외투 속에 고개를 웅크리고 있다. 긴 머리칼은 귀 뒤로 고개 위에 덩굴 줄기처럼 달라붙었는데 가마 부근에서는 몇 낱이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섰다. "예. 진눈깨빈데요." 그의 머리칼 위에 얹힌 큼직큼직한 비듬들을 바라보고 있던 옆엣 사람이 역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목소리가 굵다. 그는 멋내는 것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하얀 목도리가 밤색 잠바 속으로 그의 목을 감싸 넣어 주고 있다. 귀앞머리 끝에는 면도 자국이 신선하다. 그는 눈발 빗발 섞여 내리는 창밖에 차츰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다. 버스는 이미 떠날 시간이 지났는데도 태연하기만 하다. "뭐?..

한국단편문학 2025.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