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마약(痲藥) - 강경애 -

하얀모자 1 2022. 10. 26. 10:13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 마약(痲藥) "
 
                                                                        -- 강경애 --
 
불이 번쩍 난다.
대뜸 지게막대기를 메고 달려들어 점순네 닭을 후려칠까 하다가 
 
“나는 등록 하였수!”
 
보득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무슨 딴 수작야 계집을 죽인 놈이.
   가자 너 같은 놈은 법이 용서를 못해.”
 
순사는 달려들어 보득 아버지의 멱살을 쥐어 내몰았다.
 
“네? 계집을 계집을……”

보득 아버지는 정신이 버쩍 들어 순사를 쳐다보았으나,
나는 듯이 달려드는 매손에 머리를 푹 숙여 버렸다.
불을 움켜 쥔 그는 기막히게 순사의 입술을 바라볼 때,
불이 붙는 듯 우는 보득이가 눈에 콱 부딪친다.
 
“엄마 엄마.”
 
어디선가 아내가 꼭 뛰어들 듯한 저 음성, 널쩍한 미간 좌우에
근심에 젖은 꺼무스름한 아내의 눈이 툭 튀어 오른다.
 
 여보, 보득일 울지 않게 허우.
 
가슴에서 울컥 내달리는 말, 돌아보니 아내는 없고 풀어진 고름끈을
밟고 쓰러질 듯이 서서 우는 저 어린것뿐이다. 발딱거리는 저 가슴,
아내의 손때에 까맣게 누웠던 저 머리털, 밤새에 포르르 일어섰다.
 
“이놈아, 가.”
 
구두발에 채여 보득 아버지는 뜰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어둠이 호수 속처럼 퐁그릉 차 있는 여기, 촉촉히 부딪치는 풀잎이슬
쳐다보니 수림이 꽉 엉키었고, 소복히 드리우는 별빛,
갑자기 뒤따르는 남편의 신발소리가 이상해 돌아보는 찰나,
무서워 어쓸해진다.
 
 ‘대체 이 산골로 뭘하러 들어올까,
  왜 그리 보득일 재워 눕히라 성화였나,
 이리 멀리 올 줄을 짐작했다면 꼭 업고 올 것을. 또 한 번 물어봐.’
 
목이 화끈 달아오른다. 급한 때면 언제나처럼 열리지 않는 입술,
두 번 묻기가 어렵게 성내는 남편의 성질, 오물거리는 혀끝을 지긋이
눌렀다. 발끝이 거칫하고 잠깐 다녀올 데가 있다던 남편의 말이
거짓말인 양 눈물이 핑 돈다. 조르르 소르르 어깨 위를 스쳐가는 것이
솔잎인 듯, 송진내 솔그러미 피어 흐르고 깜박깜박 나타나는 별빛이
보득의 그 눈 같아 문득 서게 된다. 남편의 호통에 안 일어나고는
못배길 것이니 이렇게 따라  나섰고 또한 멀리 올 것을 모르고 보득일
재워 눕히고 온 것을 생각하니  남편의 말이라면 너무나 믿고
어려워하는 자신이 새삼스럽게 미워진다.
꼭 보득의 숨소리 같은 벌레소리가 치맛길에 가득히 스친다.
 
‘날 죽이고 그가 죽으려고 이리 오나.’
 
거미줄 같은 별빛에서 뛰어오는 생각,
이년 전 뒷뜰 살구나무에 목매어 늘어졌던 남편의 꼴이 검실검실
나타난다. 소름이 오싹 끼처진다.
 
‘그래도 죽으려는 것을 못 죽게 하니까 이번엔 날부텀 죽이고
  죽으렴인가, 보득일 어쩔꼬.’
 
팔싹 주저앉고 싶은 것을 간신히 걷는다. 허리를 도는 바람결에
놓지 않으려던 보득의 혀끝이 젖꼭지에 오물오물 기어간다.
그는 돌아섰다. 솔잎이 뺨을 찰싹 후려친다.
 
“보 보득이가 깨었겠는데 이젠 돌아가요.”
 
아무 말 없이 그의 등을 미는 남편, 한층 더 무섭고 고함을 쳐 누구를
부르고 싶은 맘, 타박타박 비탈길을 올라간다. 이 고개를 넘으면,
무릎이 툭 꺾이려 하고 남편이 그를 끌고 저 산 속으로 들어갈 듯,
부들부들 떨면서 산마루에 올라서니 확 울고 싶게
마을의 등불이 날아온다.
 
“여긴 험하네. 내 앞서리.”
 
돌연히 남편은 이런 말을 하고 그의 앞을 서서 걸었다.
악 하고 소리치고 싶은 무서움이 머리끝을 스치고 지난 뒤,
오히려 저 등불에서 무서움이 떨리기 시작한다.
 
‘저기 누구를 찾아가는 게지, 그래서 쌀 말이나 얻어 오려고
  날 데리고 오는 게지.’
 
하자,
아편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공연히 남편을 의심하고 무서워하는
버릇이 생겼음을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실직 후에 고민을 이기다 못해
자살하려던 남편, 재일이와 밀려다니다가 아편을 입에 대고 고함쳐
울던 그 모양,
엊그제 동네 여편네들이 비웃던 말이 격지격지 일어나는 것이다.
어떤 상점에서 무엇인가 도적하다가 들키어 몹시 매를 맞더라는 남편,
 
‘미친년들 아무려면 그가 그런 짓을 했을까.’
 
그러나 남편의 얼굴에 퍼렇게 멍이 진 자욱을 생각하니 목이
콱 메인다. 비탈길을 내리니 보득일 업고 뛰고 싶게 길이 평탄하다.
수수 하는 바람소리에 머리를 돌리니 앵 하는 내 애기의 울음소리가,
밀려 나가는 저 바람에 따르는 듯,
 
‘보득이가 울 텐데 어쩌까.’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였다.
시가에 온 그들은 어떤 포목상점 앞에 섰다.
간혹 지나가고 오는 사람은 있으나마, 거리는 조용하였다.
남편이 상점 안으로 들어가니 주인인 듯한 중국인이 반색을 하여
맞아 준다.
 
“이제 왔어, 우리 기다렸어.”
 
이렇게 말하고 웃으면서 밖을 살피는 툭 불거진 눈,
얼른 발발이 눈을 연상시키고 이마에 흉터가 별나게 번질거린다.
빛 잃은 맥고모를 푹 눌러 쓴채 금방 쓰러질 듯이 서 있는 남편,
 혈색이 좋은 중국인에게 비하여 너무나 창백한지,
 어느 때는 되놈 같은 것은 사람으로 인정치 않았건만……
 푸르고 붉은 주단 빛이 안개가 되어 상점 방을 폭 덮어주는 것이다.
 남편이 머리를 돌려 끄덕끄덕할 제,
그는 아편인이 몰려와 저러는가하여 화닥닥 놀라는 순간,
다음에 어서 들어오라는 뜻임을 어렴풋이 깨달았지만 허둥지둥
들어가면서 얼굴이 화짝 달아오른다.
뚫어져라 하고 그를 살핀 중국인은 앞을 서서 비죽비죽 걸었다.
그도 남편의 뒤를 따라 섰다.
사뿐히 스치는 주단 냄새에 보득의 저고리 감이라도 얻으면 싶고 문득
남편의 후줄근한 아랫도리를 살피면서 타분한 냄새를 피우는
뜰로 내려섰다.
 
먼길을 걸었음일까 아편인이 몰려옴일까 남편은 비칠비칠 하였다.
불행히 이 거동을 중국인이 눈치 챌까 그의 가슴은 달막거리고
몇 번이나 손을 내밀어 붙들까 하였다.
 빨간문 앞에서 남편과 중국인은 무어라고 수근거리더니,
 
“이 방에 들어가 있소. 나 잠깐 볼일 보고 올 테니.”
 
문을 열고 그의 등을 밀어 넣다시피 한다.
 
‘필경 아편인이 몰려온 것이다.’
 
직각한 그는 암말도 못하고 방으로 들어왔으나, 어둠 속에서 사라지는
남편의 신발소리를 놓치지 않으려 문을 홱 열어 잡았다.
상점 문이 드르륵 닫겨 버린다.
 
‘곧 오라고 할걸.’
 
하며 문에 몸을 기대섰으려니 홀연 그의 집 방문턱에 기어오르는
보득의 얼굴이 불쑥 나타나고, 어느 날 보득이가 문턱을 넘어 굴러
떨어지던 것이 가슴에 철썩 부딪친다.
 
‘어쩔까, 어쩔까.’
 
그는 빙빙 돌았다.
한참 후에 이리 오는 신발소리가 있으므로 달려나왔다.
 
“보득이가 깨었어요”
 
목이 메어 중얼거리고 보니 뜻밖에 중국인만이 아니냐.
 겁결에 발을 세우고,
 
“여보!”
 
진서방 뒤를 살피니 있으려니 한 남편은 없고 어둠이 충충할 뿐이다.
머리끝이 쭈뼛해진다. 단박에 진서방은 그의 손을 덥석 쥐고,
 
“변서방 말야, 그 사람 집에 갔어.”
 
날쌔게 손을 뿌리치고 난 그는, 이 말에 확 울음이 솟구치려는 것을
겨우 참으면서 나는 듯이 몸을 빼치려 하였다. 치마폭이 후둑 따진다.
 
“보득 아버지!”
 
막아서는 진서방의 가슴을 냅다 받았다. 진서방은 씨근거리면서
달려들어 그를 안아 가지고 방으로 들어와서 이어 문을 절거럭
 걸어버린다.
 
“여보, 이놈 봐요. 여보!”
 
마치 단 가마 속에 든 것 같고 어쩐 일인가 아뜩 생각되지 않는다.
그저 이 방을 뛰쳐나가려는 것으로 미칠 것 같았다.
몇 번 소리는 치지 않았건만 목이 탁 갈라지고 목에서 겻불 내가 훅훅
뿜긴다. 진서방은 차차 그 눈에 독을 피우고 함부로 그를 쥐어박아
쓸어안고 넘어지려고 한다.
 
“사람 살려요, 살려요.”
 
그는 벽을 쿵쿵 받으며 고함쳤으나 음성은 찢기어 잘 나가지지
않는다. 이 방안은 도무지 울리지 않고 입술에까지 화기만 번쩍
올라타고 있다. 진서방은 그의 입술을 막아 소리를 치지 못하게 한다.
땀이 쯔르르 흐르는 손에서 누린내가 숨을 통하지 못하게 쓸어오므로
 깍 물어 흔들었다. 벼락같이 쥐어박는 주먹이 우지끈 소리를 내고
 피가 쭈르르 흘러 목을 적신다.
 진서방은 눈이 등잔통 같아져서 무어라고 중국말로 투덜거리더니
 시커먼 걸레로 입을 깍 막아 버린다. 온 입 안은 가시를 문 듯,
 그 끝이 코에까지 꿰어 올라온듯, 흑! 흑! 턱을 채었다.
 진서방은 허리띠를 끌러 미친 듯이 돌아가는 손과 발을 동인 뒤
 이마 땀을 씻으며 빙그레 웃었다. 핏줄이 섞인 저 개눈깔 같은 눈엔
 야수성이 득실거리고 씩씩거리는 숨결에 개 비린내가 훅훅 뿜긴다.
 퍼런 바지는 미끄러져 뱃살이 징글스레 드러났고 누런 침을 똑똑
 흘리고 있다. 그는 이 꼴을 보지 않으려 눈을 감으니,
 들썩 높은 남편의 콧등이 까프름 지나가고, 비칠거리는 그 걸음발이
 방금 보이면서, 이제야 어디서 아편을 하고  이리로 달려오는 모양이
 가물가물 하였다.
 
“여보! 여보!”
 
문을 바라보고 힘껏 소리쳤으나 그 음성은 신음소리로 변하여질
뿐이었다. 이튿날도 진서방은 깜짝 아니하고 그의 곁에 앉아
활활 다는 그의 머리에 수건을 대어 주었다.
 
이미 몸을 더럽힌지라 진정하고자 하나
 그만큼 열이 오르고 부러진 이가 쑤시는 것이다.
 곁에 보득이만 있다면 되는대로 지내리란 생각도 때로는 든다.
 새벽부터 남편이 자기를 이 되놈에게 팔았는가 하고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하나 그것은 잠깐이고 어젯밤에 남편이 정녕 집에
갔는지, 여기 어디서 죽지나 않았는지, 만일 갔더라도 보득일 데리고
 얼마나 애를 태울까 하는 걱정이 다투어 일어난다.
 주르르 수건 짜는 소리에 놀라 그는 머리를 들었다.
 진서방이 누런 이를 내놓고 웃는다.
 
‘보득의 오줌소리 같았건만!’
 
 흑, 하고 뱃속에서 치달아 오는 울음 때문에 눈을 꼭 감아 버렸다.
 
“생각이 잘이 해. 우리 금가락지, 비단 옷 해줬어, 히.”
 
진서방은 웃는다. 그는 수건을 제치고 돌아 누우니 성났던 젖에서
대살과 같이 뻗치는 젖, 젖을 꼭 쥐는 손가락은 바르르 떨리었다.
이어 보득의 촐촐 마른 젖내 몰크름 나는 입김이 볼에 후끈 타오르고,
엄마를 부르고 온 방안 헤매이다가, 갈자리 가시에 그 조그만
발과 무릎이 상하여 피가 뚝뚝 흐르는 것이 눈에 또렷하였다.
 
“보득 아버지 어제 집에 갔어?”
 
그는 불쑥 물었다. 진서방은 반가워서,
 
“갔어. 돈을 가지고 갔어.”
 
돈이란 말에 그는 울음이 왕 터져 나왔다.
이렇듯 하루 해를 넘기고 밤을 맞는 보득 어머니는 이 밤에 모든
희망을 붙이고 축 늘어져 있었다. 될 수 있으면 진서방으로 하여
안심하게 하도록 눈치를 돌리곤 하였다. 여간 좋은 기색을 그 눈에
지질히 띠운 진서방은 엉덩이를 들썩들썩 추키면서 상점방에도
나갔다 오고, 먹을 것을 사들이고, 약을 사다 이에 바르라는 둥
부산하였다. 그러나 밖에 나가서 단 십분을 있지 않고 들어와서는
힐끗힐끗 그의 눈치를 보았다.
 그 눈에 흰자위가 몸서리 나도록 싫었다.
 왜 이리 불은 때었을까, 방안은 절절 끓었다. 누런 손으로 과일을
 벗기는 저 진서방, 이마에 콩기름 같은 땀이 흘러 양 볼에 번지르르
 하다. 제딴은 온갖 성의를 다 보이느라고 한다. 하도 여러 번째에
 못 이기는 체, 그 속을 눙쳐주려는 꾀에서 한쪽 받아 입에 무니
 이가 딱 맞질리고,
 
‘내 애기는 지금 뭘 먹노!’
 
잇새에 남은 과일 쪽은 보득의 살인 듯 그는 투 뱉아버렸다.
피가 쭈르르 흘러내린다.
자정이 훨씬 지나 그는 머리를 넘석하렸다.
다행히 진서방이 잠이 든 까닭이다.
그는 숨을 죽이고 몸을 조금씩 일으키면서 연방 진서방을 주의한다.
혹 잠이 안 들고서 저러나 하는 불안이 방안을 가득 싸고 돌고,
시계소리, 어디서 우는 벌레소리, 희끄므레하게 보이는 문,
뭉클 스치는 과일내까지도 사람의 숨결일까 놀라게 된다.
바시시 이불에서 몸을 빼칠제 후끈 일어나는 땀내에 보득의 기저귀
한 끝이 너풀 코끝에 스치는 듯. 이제 가서 보득일 꼭 껴안을 것이
가슴에 번듯거린다. 그는 용기를 얻어 곁의 옷을 집어들고 사뿐사뿐
뒷문으로 왔다.
가만히 문을 열고 나오니 다리 팔이 소리를 낼 듯이 떨리고
 가슴이 씽씽 뛰어 어쩔 수가 없다.
 
“이년 어디 가니?”
 
소리치는 듯 귀는 헛소리로 가득 차버린다.
 허둥허둥 변소로 와서 우선 동정을 살핀다. 앞으로 나가려니
 상점방이 있고 부득이 울타리를 넘어 나가는 수밖에. 울타리 위에는
 쇠줄이 얽혀 있는 것을 낮에부터 유심히 바라본 것이다.
더구나 이 변소에서 넘는 것이 가장 헐하리라 한 것이다.
 귀를 세워 안방을 주의하고 상점방을 조심한다.
 
‘이렇게 망설이다가 진서방이 깨게 되면 어쩔까.’
 
 발딱 일어나 옷을 울 밖으로 던진 후에 껑충, 울타리에 매어달렸다.
 무엇이 발을 꽉 붙잡는 듯 몸은 푸들푸들 떨리고
 마음은 어서 나가려는 조바심으로 미칠 것 같다.
 쭈르르 미끄러지고 얼굴이 쇠줄에 선뜻 찔린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철사를 힘껏 붙든 채 바둥거린다.
 이 줄을 놓으면, 내 애기 내 남편은 못 만나볼 듯,
 어쩐지 그렇게 생각된 때문이다. 쇠줄 소리는 요란스레 난다.
 이번에야말로 진서방이 내달아 오는 듯 발광을 하여 몸을 솟구친다.
 아뜩하여 가만히 살피니 그의 몸이 거꾸로 울 밖에 달려맨 것을
 직각한 그는 쇠줄에 속옷 갈래와 발이 끼어서 있음을 알았다.
 그는 마구 속옷 갈래를 쥐어 당기고 발을 뽑을 때 철썩하고 땅에
 떨어졌다.
 이어 딱하고 무엇이 후려치므로 진서방이구나 하고 힘껏 저항하려다
 만지니, 돌에 머리가 마주친 것을 알았다. 단숨에 뛰어 일어난
 그는 미친 듯이 뛰었다.
으드드 떨리게스리 터져 나오려는 이 환희!
 어둠 속을 뚫고 폭풍우같이 몰아치는 듯, 나는 듯이 시가를 벗어난
 그는 산비탈을 끼고 올라간다.
 주르르 흘러오는 산바람이 그의 몸에 휘어 감기자
 내 애기의 음성이 가까이 들리는듯, 까뭇 그의 집이 나타나고,
 우는 보득이 눈에 고드름같이 매달린 눈물,
 귀엽고도 불쌍한 눈물……
 그의 눈에 함빡 스며 옮아오는 듯 거칫 쓰러진다.
 발끝에서 확 일어나는 불길은 쓰러지려는 그의 몸을 바로 잡아준다.
 그는 뛴다. 보득의 옆에 쓰러진 남편, 아편에 취하여 있을 그,
 이제 가면 붙들고 실컷 울고 싶다. 원망도 아무것도 사라지고
 오직 반갑고 슬픔만이 이락이락 일어나는 것이다.
 응당 남편도 그를 붙들고 사죄할 것 같다. 꼭 아편도 뗄 것 같다.
 조수같이 밀려나오는 감격에 아뜩 쓰러진다.
 
 ‘여보’
 
소리를 지르고 일어나 달린다.
 흑흑 차오는 숨 좀 돌리려고 하면 맥없이 쓰러지게 되고 다시 뛰면
 숨이 꼴깍 넘어가는 듯 기절할 지경이다.
 이마에선 땀인가 무엇인가 쉴 새 없이 흘러 눈을 괴롭히고 목덜미로
 새어 흐른다. 비가오는가 했으나 그것을 살필 여유가 없고
 진가가 따르는가 돌아보게 된다.
씽씽! 철사줄 소리가 머리 위를 달리는 것이다.
 그는 후닥닥 몸을 솓구치다가  맹하고 쓰러진다.
 아직도 그가 철사줄을 붙들고 섰는가 싶었던 것이다.
 다시 정신을 돌리고 나면
 
‘이번에야 떼지, 그래. 우리 보득일 잘 키워야 하지.’
 
 울면서 일어나 닫는다.
마지막 사라지려는 마을의 등불은 불에 단 철산가 싶게 길게 비친다.
뒤따르는 놈이 있다면 어렵지 않게 죽일 맘이 저 불에서 번쩍한다.
 
별빛만이 실실이 드리운 수림 속을 걷는 보득 어머니, 
남편과 보득일 만날 희망으로 미칠 것 같다.
 거짓하면 쓰러지고 쓰러지면 일어나 뛴다.
 입에 먼지가 쓸어 들고 불을 붙인 것처럼 얼굴은 따갑다.
 몸에서 피비린 내가 진동하고 또 젖비린내가 뜨끈뜨끈히 떨어쳐
 머리털 끝에까지 넘쳐 흐른다.
 솨르르 수림을 흔드는 바람, 그 바람이 머리끝에 춤출 때,
 
“이번엔 떼야 해요, 떼야 해요.”
 
부지중 그는 이리 중얼거리고 픽 쓰러진다.
발광을 하며 일어나려고 하나 깜짝할 수가 없다.
문득 이마를 만지니 상처가 짚이고 그리로 피가 흐르는 것을 직각한
그는 속옷 갈래를 찢으려다 기진하여 머리를 땅에 박고 만다.
이번엔 적삼을 어루만지려니 발가벗은 몸이고 아까 울 밖으로
옷을 던진 채 깜박 잊고 온 것을 짐작한다.
 다시 속옷 갈래를 찢으며 애를 쓴다.
 헛 기운만 헙헙 나올 뿐 손은 맥을 잃고 만다.
 떼야! 떼야! 정신이 까무루루해서 이렇게 부르짖다가
 펄쩍 정신이 들 때에 일어나렸으나, 몸이 천근인 듯 무겁다.
 팔을 세우면 다리가 말을 안 듣고, 머리를 들면 헛구역질만 나온다.
 
‘내가 죽어가는 셈일까, 우리 보득일 어쩌고.’
 
 벌떡 일어났으나 그만 쓰러지고 만다.
 
“아가 아가!”
 
먼지를 한입 문 입을 벌려 이렇게 부른다.
 응 하는 대답이 있을 듯 하건만,
 그는 땅에 귀를 부비치고 내 애기의 음성을 들으려 숨을 죽인다.
 이번엔 목을 비끄러 매는 듯이 혀를 힘껏 빼물고
 
 “아가.”
 
 불렀으나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머리를 번쩍 든다.
 보득일 업은 남편이 저기 어디 비칠거리고 그를 찾아올 것만 같다.
 깜짝 일어났으나 그만 쓰러지게 된다. 대체 왜 이리 쓰러지는지,
 그는 아뜩하였다. 손가락을 아짝 씹는다.
 불이 눈에 불끈 일어 감기려던 눈이 환해진다.
 
“아가, 여기 젖 있다, 머.”
 
그는 허공을 향하여 부르짖었다. 숲속에 드리운 저 허공,
 남편의 초라한 옷자락인가 봐 펄쩍 정신이 든다. 허나 아니었다.
 그는 응 하고 울었다.
 그리고 기어라도 볼까, 다리 팔을 움직이다 그만 쓰러진다.
 
 아가 아가…… 
 어쭉 일어나 봐…… 
 흥 제, 남편은 어찌될 줄 알고.
 이제 등록한 아편장이가 될지 어떨지…… 
 
 고요히 숨이 끊어지고 만다.
 
 
                    --- 끝 ---
 

'한국단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죄(罪)와 벌(罰) - 이무영 -  (1) 2022.11.02
그리운 흘긴 눈 - 현진건 -  (0) 2022.10.29
운수 좋은 날 - 현진건 -  (0) 2022.10.23
며 느 리 - 이무영 -  (0) 2022.10.21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 주요섭 -  (0) 2022.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