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 4

2024년 노벨문학상수상 소설가 한강 시(詩) 4편

서울의 겨울 / 시 한강 어느 날 어느 날이 와서 그 어느 날에 네가 온다면 내 가슴 온통 물빛이겠네, 네사랑 내 가슴에 잠겨 차마 숨 못쉬겠네 내가 네 호흡이 되어주지, 네 먹장 입술에 벅찬 숨결이 되어 주지, 네가 온다면 사랑아 올 수만 있다면 살얼음 흐른 내 빰에 너 좋아하던 강물소리 들려주겠네     얼음꽃/ 시 한강 오래 내리어 뻗어간 그들 뿌리의 몫이리라 하여 뿌리 여윈 나는 단 한 시절의 묏등도 오르지 못하였고 허깨비, 허깨비로 뒹굴다 지친 고갯마루에 무분별한 출분의 꿈만 움터놓았다 모든 미어지는 가슴들이 그들 몫의 미어지는 가슴들이 그들 몫의 미어지는 꽃이라면  꽃이라면 아아 세상의 끝까지 가리라 했던 죽어, 죽어서라도 보리라 했던 저 숲 너머의 하늘 무엇이 꿈이냐 무엇이 시간이냐 푸르름이..

한국단편문학 2024.10.15

소음 공해 - 오정희 -

소음 공해                                                           - 오정희 -    집에 돌아오자마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실내복으로 갈아입었다. 목요일, 심신 장애인 시설에서 자원 봉사자로 일하는 날은 몸이 젖은 솜처럼 무겁고 피곤하다. 그래도 뇌성마비나 선천적 기능 장애로 사지가 뒤틀리고 정신마저 온전치 못한 아이들을 씻기고 함께 놀이를 하고 휠체어를 밀어 산책을 시키는 등 시중을 들다 보면, 나를 요구하는 곳에서 시간과 힘을 내어 일한다는 뿌듯함이 있다. 고등학생인 두 아들은 아침에 도시락을 두 개씩 싸 들고 갔으니 밤 11시나 되어야 올 것이고, 남편은 3박4일의 출장 중이니 날이 저물어도 서두를 일이 없다. 더욱이 나는 한나절 심신이 지치게..

한국단편문학 2024.10.13

노새 두 마리 - 최일남 -

노새 두 마리                                                               - 최일남 - 그 골목은 몹시도 가팔랐다. 아버지는 그 골목에 들어서기만 하면 미리 저만치 앞에서부터 마차를 세게 몰아가지고는 그 힘으로 하여 단숨에 올라가곤 했다. 그러나 이 작전이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고, 더러는 마차가 언덕의 중간쯤에서 더 올라가지를 못하고 주춤거릴 때도 있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이마에 심줄을 잔뜩 돋우며, “이랴 이랴!” 하면서 노새의 잔등을 손에 휘감고 있는 긴 고삐줄로 세 번 네 번 후려쳤다. 노새는 그럴 때마다 뒷다리를 바득바득 바둥거리며 안간힘을 쓰는 듯했으나 그쯤 되면 마차가 슬슬 아래쪽으로 미끄러내리기는 할망정 조금씩이라도 올라가는 일은 드물었..

한국단편문학 2024.10.08

젊은 느티나무 - 강신재 -

젊은 느티나무                                                         - 강신재 -  1그에게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 언제나라고는 할 수 없다. 그가 학교에서 돌아와 욕실로 뛰어가서 물을 뒤집어쓰고 나오는 때면 비누 냄새가 난다. 나는 책상 앞에 돌아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더라도 그가 가까이 오는 것을―그의 표정이나 기분까지라도 넉넉히 미리 알아차릴 수 있다. 티이샤쓰로 갈아입은 그는 성큼성큼 내 방으로 걸어 들어와 아무렇게나 안락의자에 주저앉든가, 창가에 팔꿈치를 집고 서면서 나에게 빙긋 웃어 보인다.  "무얼 해?" 대개 이런 소리를 던진다. 그런 때에 그에게서 비누 냄새가 난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가장 슬프고 괴로운 시간..

한국단편문학 2024.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