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월사금(月謝金) - 강경애 -

하얀모자 1 2023. 3. 22. 00:10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월사금(月謝金)

                                                                           - 강경애 -
어느 날 아침.
이천여 호나 되는 C읍에 다만 하나의 교육기관인 C보통학교 운동장에는

 언제나 어린 학생들이 귀엽게 뛰놀고 있었다.
금년 열 살 나는 셋째는 아직 커텐도 걷지 않은
컴컴한 교실에 남아 있어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난로에 불은 이글이글 타오른다.
그리고 난로 위에 놓인 주전자에서는 물 끓는 소리가 설설한다.
밖에서는 여전히 애들의 떠드는 소리 싸움하는 소리가 뚜렷이 들려온다.
마침 손뼉 치는 소리와 함께 
“하하” 웃는 소리에 셋째는 얼핏 창문 켠으로 가서 커튼을 들쳤다.
눈허리가 시큼해졌다.
밖에는 함박꽃 같은 눈이 소리없이 푹푹 쏟아진다.
그리고 저켠 울타리로 돌아가며 심은 다방솔 포기며
아카시아 나무엔 꽃이 하얗게 송이송이 피었다.
 
운동장 가운데는 눈사람이 눈을 부릅뜨고 한일 자 입을
멋있게 다물고 섰는 주위로 학생들이 죽 늘어서서 손뼉을 치며 웃는다, 

그들의 입김과 입김……
 
어떤 학생이 제 모자를 벗어 씌우며 나뭇가지로 수염을 꽂아 놓는다.
그들은 발까지 구르며 웃는다.
셋째도 빙긋이 웃으며 나도 나가 보겠다는 충동에
머리를 휘끈 돌렸을 때 저켠 복도로 선생님의
그 무서운 얼굴이 천천히 지나친다.
 
그는 꿈칠 놀라 몸을 소스라치며 잠깐 잊었던 월사금 생각이
또 다시 그의 가슴을 보챈다.
 
‘오늘은 꼭 가져오랬는데 안 가져오면
   저 밖으로 쫒아낸다고 했는데……’
 
이런 생각과 함께 어떠하다고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목구멍이 빼듯하도록 치밀어 얼핏 두 손으로 눈을 꼭 가렸다.
 
유리창을 통하여 뚜렷이 나타나 보이는 눈사람의
그 눈! 그 입! 그 수염!
셋째는 손으로 두 눈을 폭 가리고서도 새끼손가락을 배움하니 열고
억지로 흥흥 하고 몰아 웃었다.
 
“깅산사이[김셋째]!”
 
부르는 소리에 그는 선생님이 월사금 달라고 찾는구나 하고
그만 얼굴을 푹 숙이며 눈물이 거뜩해졌다.
그러나 셋째는 그것이 봉호인 줄을 알 때 풀끼없이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이 돈 봅구. 우리 아부지가 저금하랬어야.
   그러구 외투두 해준다구 했단다.
  우리 아부지 입고 다니는 것 따위로……”
 
그는 자랑 겸 은전을 들어보이고 나서 책상 속에다 돈소리가 나도록
집어 넣고 벼락치듯 밖으로 뛰어나간다.
그 씩씩히 놀리는 팔과 다리. 셋째는 그가 보이지 않도록 멍하니
바라보다가 무심히 손끝을 입에 물며,
 
“엄마는 왜 돈이 없나?”
 
이렇게 중얼거리자 눈등이 따가와지며 눈물이 주루루 흘러내렸다.
그는 주먹으로 눈물을 좌우로 씻으며
 
 “우리 엄마두 내일은 꼭 준댔어야.
      호감자 팔아서 월사금 준댔어야!”
 
이렇게 허공을 향하여 중얼거리고도
어제 선생님께 꾸지람받던 일을 생각하면 그 선생님으로서
내일까지 참아줄 것 같지 않았다. 이제 종만 치면 그리고 선생님이
저 교단 위에 올라서 호령하고 나면,
자신은 저 눈 오는 밖으로 쫓겨나서 엉엉 울고 있을 것만 같았다.
국어도 못 배우고 조선어도 못배우고……
 
순간에 그의 눈에는 아까 본 은전이 뚜렷이 보였다.
따라서 그것만 있으면 여기서 쫓겨나지 않고
다른 애들과 함께 글을 배우겠거니 하는 생각이
눈썹 끝에서 번개같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셋째는 한숨을 가볍게 쉬며 봉호의 책상을 바라보았다.
이제까지 캄캄하던 그의 눈에는 일종의 이상한 빛! 환희의 빛!
돌진의 빛이 번쩍이는 것을 볼수가 있었다.
 
상학종은 뎅그렁뎅그렁 울리기 시작하였다.
셋째는 종소리를 따라 봉호의 책상을 향하여
 미친 듯이 달음질치고 있었다.
 
 
            < 1933년  강경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