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안 해 (아내)
- 김유정 -
우리 마누라는 누가 보던지 뭐 이쁘다고는 안할 것이다.
바루 게집에 환장된 놈이 있다면 모르거니와. 나도 일상 같이
지내긴하나 아무리 잘 고처보아도 요만치도 이쁘지 않다. 허지만
게집이 낯짝이 이뻐 맛이냐. 제기할 황소같은 아들만 줄대 잘 빠처
놓으면 고만이지. 사실 우리 같은 놈은 늙어서 자식까지 없다면 꼭
굶어죽을 밖에 별도리 없다. 가진 땅 없어, 몸 못써 일 못하여,
이걸 누가 열첫다고 그냥 먹여줄테냐. 하니까 내 말이 이왕 젊어서
되는 대로 자꾸 자식이나 쌓두자 하는 것이지.
그리고 에미가 낯짝 글럿다고 그 자식까지 더러운 법은 없으렸다.
아 바루 우리 똘똘이를 보아도 알겟지만 즈 에미년은 쥐였다
논 개떡 같에도 좀 똑똑하고 낄끗이 생겼느냐. 비록 먹고도 대구 또
달나고 불아귀처럼 덤비기는 할망정. 참 이놈이야말로 나에게는
아버지보담도 할아버지보담도 아주 말할 수 없이 끔찍한 보물이다.
년이 나에게 되지 않은 큰체를 하게 된 것도 결국 이자식을 낳앗기
때문이다. 전에야 그 상판대길 가지고 어딜 끽소리나 제법 했으랴.
흔이 말하길 게집의 얼골이란 눈의 안경이라 한다.
마는 게 아무리 물커진 눈깔이라도 이 얼골만은 어째볼 도리 없을 게다.
이마가 훌떡 까지고 양미간이 벌면 소견이 탁 티었다지 않냐.
그럼 좋기는 하다마는 아기자기한 맛이 없고 이조로 둥글넓적이 나려온
하관에 멋없이 쑥내민 것이 입이다. 두툼은 하나 건순입술,
말좀 하랴면 그리 정하지못한 운이가 분질없이 뻔찔 드러난다.
설혹 그렇다 치고 한복판에 달린 코나 좀 똑똑이 생겼다면 얼마 나겠다.
첫대 눈에 띠는 것이 그 코인데, 이렇게 말하면 년의 숭을 보는 것
같지만, 썩 잘보자 해도
먼 산 바라보는 도야지의 코가 자꾸만 생각이 난다.
꼴이 이러니까 밤이면 내 눈치만 스을슬 살피는 것이 아니냐.
오늘은 구박이나 안할까, 하고 은근히 애를 태우는 맥이렸다.
이게 가여워서 피곤한 몸을 무릅쓰고 대개 내가 먼저 말을 걸게된다.
온종일 뭘 했느냐는둥, 싸리문을 좀 고처 놓으라 했더니 어떻게
했느냐둥, 혹은 오늘 밤에는 웬일인지 코가 훨씬좋아보인다는둥,
하고. 그러면 년이 금세 헤에 벌어지고 힝하게 내 곁에 와 앉어서는
어깨를 비겨대고 슬근슬근 부빈다. 그리고 코가 좋아보인다니 정말
그러냐고 몸이 닳아서 묻고 또 묻고한다. 저로도 밋지못할 그 사실을
한때의 위안이나마 또 한 번 드러보자는 심정이렷다.
그 속을 알고 짜정 코ㅅ날이 스나부다고 하면 년의 대답이 뒷간엘
갈적마다 잡아댕기고 햇드니 혹 나왔을지 모른다나
그리고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어느 때에는 한나절 밭고랑에서 시달린 몸이 고만 축
느러지는구나. 물론 말 한마디 붙일새없이 방바닥에 그대로 누어버리지.
허면 년이 제 얼굴 때문에 그런줄 알고 한구석에 가 시무룩해서 앉었다.
얼굴을 모로 돌리어 턱을 뻐쭉 처들고 있는걸 보면 필연 제깐엔
옆얼굴이나 한번 봐달라는 속이겟지. 경필 년.
옆얼굴이라고 뭐 깨묵셍이나 좀 난 줄 알구-
이러든 년이 똘똘이를 내놓고는 갑작이 세도가 댕댕해젓다.
내가 들어가도 네 놈 은제 봤냔듯이 좀체 들떠보는 법없지.
눈을 스르르 나려깔고는 잠잣코 아이에게 젖만 먹이겟다.
내가 좀 아이에 머리라도 씨담으며
"이자식, 밤낮 잠만 자나?"
"가만 둬, 웨 깨놓고 싶은감"
하고 사정없이 내 손등을 주먹으로 갈긴다.
나는 처음에 어떻게 되는 셈인지 몰라서 멀거니 천장만 한참
처다보았다. 내 자식 내가 만지는데 주먹으로 때리는 건 무슨 경오야.
허지만 잘 따저보니까 조금도 내가 어굴할 것은 없다. 년이 나에게
큰체를 해야 될 권리가 있는것을 차차 알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내가 이년, 하면 저는 이놈, 하고 대들기로 무언중 게약되었지.
동리에서는 남의 속은 모르고 우리를 깍따귀들이라고 별명을 지었지.
훅하면 서루 대들랴고 노리고만 있으니까 말이지.
하긴 요즘에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있을가바서 만나기만 하면
이놈, 저년, 하고 먼저 대들기로 위주다. 다른 사람들은 밤에 만나면
"마누라 밥 먹었수?"
"아니요, 당신오면 가치 먹을랴구-"
하고 일어나 반색을 하겠지만 우리는 안 그러기다.
누가 그렇게 괭이 소리로 달라붙느냐. 방에 떡 들어스는 길로
우선 넓적한 년의 궁뎅이를 발길로 퍽 드려질른다.
"이년아! 일어나서 밥차려-"
"이눔이 웨 이래, 대릴 꺾어놀라"
하고 년이 고개를 겨우 돌리면
"나무 판 돈 뭐했어, 또 술 처먹었지?"
이렇게 제법 탕탕 호령하였다. 사실이지 우리는 이래야 정이 보째
쏟아지고 또한 계집을 데리고 사는 멋이 있다. 손자새끼 낯을 해가지고
마누라 어쩌구 하고 어리광으로 덤비는 건 보기만 해도 눈허리가
시질 않겟니. 게집 좋다는 건 욕하고 치고 차고, 다 이러는 멋에
그렇게 치고보면 혹 궁한 살림에 쪼들리어 악에 받인 놈의 말일지는
모른다. 마는 누구나 다 일반이겟지, 가다가 속이 맥맥하고 부하가
끓어오를 적이 있지 않냐.
농사는 지어도 남는 것이 없고 빚에는 몰리고, 게다가 집에 들어스면
자식놈 킹킹거려, 년은 옷이 없으니 떨고 있어 이러한 때
그냥 백일 수야 있느냐. 트죽태죽 꼬집어 가지고 년의 비녀쪽을
턱 잡고는 한바탕 훌두들겨대는구나. 한참 그 지랄을 하고나면 등줄기에
땀이 뿍 흐르고 한숨까지 후, 돈다면 웬만치 속이 가라앉을 때였다.
담에는 년을 도로 밀처버리고 담배 한 대만 피어물면 된다.
이멋에 게집이 고마운 물건이라 하는 것이고 내가 또 년을 못잊어하는
까닭이 거기 있지않냐. 그렇지 않다면이야 저를 게집이라고 등을
뚜덕여주고 그 못난 코를 좋아보인다고 가끔 추어줄 맛이 뭐야.
허지만 년이 훌쩍어리고 앉어서 우는 걸 보면 이건 좀 재미적다.
제가 주먹심으로든 입심으로든 나에게 덤빌랴면 어림도 없다.
쌈의 시초는 누가 먹저 걸어던간 은제던지 경을 팟다발같이 치고
나앉는 것은 년의 차지렸다.
"이리와 자빠저 자-"
"곤두어 너나 자빠저 자렴-"
하고 년이 독이 올라서 돌아다도 안보고 비쌘다. 마는
한 서너 번 나려오라고 권하면 나종에는 저절로 내 옆으로 스르르
기어들게 된다. 그리고 눈물 흐르는 장반을 벙긋이 흘겨보이는 것이
아니냐. 하니까 년으로 보면 두들겨맞고 비쌔는 멋에 나하고
사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우리가 원수같이 늘 싸운다고 정이 없느냐 하면 그건 잘못이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정분치고 우리 것만치 찰떡처럼 끈끈한 놈은 다시
없으리라. 미우면 미울수록 싸울수록 잠시를 떨어지기가 아깝도록
정이 착착 붙는다.
부부의 정이란 이런겐지 모르나 하여튼 영문모를 찰그머리 정이다.
나뿐 아니라 년도 매를 한참 뚜들겨맞고 나서 가치 자리에 누으면
"내 얼굴이 그래두 그렇게 숭업진 않지?"
하고 정말 잘난듯이 바짝바짝 대든다. 그러면 나는 이때 뭐라고
대답해야 옳겟느냐. 하 기가 막혀서 천정을 처다보고 피익 내어버린다.
"이년아! 그게 얼굴이야?"
"얼굴 아니면 가주다닐까-"
"내니깐 이년아! 데리구 살지 누가 근디리니 그 낯짝을?"
"뭐, 네 얼굴은 얼굴인줄 아니? 불밤송이 같은 거,
참, 내니깐 데리구 살지-"
이러면 또 일어나서 땀을 한번 흘리고 다시 들어눌 수 밖에 없다.
내 얼굴이 불밤송이 같다니 이래도 우리 어머니가 나를 낳고서 낭종
땅마지기나 만저볼 놈이라고 좋아하던 이 얼굴인데 하지만
다시 일어나고 손짓 발짓을 하고하는 게
성이 가서서 대개는 그대로 눙처둔다.
"그래, 내 너 이뻐할게 자식이나 대구 내놔라."
"먹이지도 못할걸 자꾸 나 뭘하게, 굶겨죽일랴구?"
"아 이년아! 꿔다 먹이진 못하니?"
하고 소리는 뻑 지르나 따는 뒤는 켱긴다. 더끔더끔 모아 두었다가
먹이지나 못하면 그걸 어떻게 하냐 줴다 버리지도 못하고 죽이지도
못하고 떼송장이 난다면, 연히 이런 걸 보면 년이 나보담 훨신 소견이
된 것을 알 수 있겟다. 물론 십 리 만큼 벌어진 양미간을 보아도 나와는
턱이 다르지만-.
우리가 요즘 먹는것은 내가 나무장사를 해서 벌어드린다.
여름 같으면 품이나 판다 하지만 눈이 척척 쌓였으니 어름을 꺼먹느냐.
하기야 산골에서 어느 놈 치고 별 수 있겟냐 마는
하루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해들이고 그 담날엔 읍에 갔다가 판다.
나니깐 참 쌍지개질도 할 글력이 되겟지만. 잔득 나무 두 지개를 혼자서
번 차레로 이놈 저다 놓고 쉬고 저놈 저다 놓고 쉬고 이렇게 해서
장찬 삼십 리 길을 한나절에 들어가는 구나.
그렇지 않으면 은제 한 지개 한 지개식 팔어서 목구녕을 추길 수
있겟느냐. 잘 받으면 두 지개에 팔십 전 운이 나쁘면 육십 전 육십오 전
그걸로 좁쌀, 콩, 멱, 무엇 사들고 찾아오겠다.
죽을 쑤었으면 좀 느루 가겟지만 우리는 더럽게 그런 짓은 안한다.
먹다 못먹어서 배ㅅ가죽을 웅켜쥐고 나슬지언정 으레 밥이지.
똘똘이는 네 살짜리 어린애니깐 한 보시기. 나는 즈 아버지니까
한 사발에다 또 반 사발을 더먹고 그런데 년은 유독히
두 사발을 처먹지 않나. 그리고도 나보다 먼저 홀딱 집어 세고는
내 사발의 밥을 한 구텡이 더 떠먹는 버릇이 있다. 게집이 좋다 했더니
이게 밥버러지가 아닌가하고 한때는 가슴이 선듯할만치 겁이 났다.
없는 놈이 양이나 좀 적어야지 이렇게 대구 처먹으면
너 웬밥을 이렇게 처먹니 하고 눈을 크게 뜨니까 년의 대답이
애난 배가 그렇지 그럼, 저도 앨 나보지 하고 샐쭉이 토라진다.
압따 그래, 대구 처먹어라. 낭종 밥값은 그 배, 따기에 다 게 있고
게 있는 거니가. 어떤 때에는 내가 좀 들 먹고라도
그대로 내주고 말겟다. 경을 칠 년, 하지만 참 너머 처먹는다.
그러나 년이 떡꾹이 농간을 해서 나보담 항결 의뭉스럽다.
이깐 농사를 지어 뭘 하느냐, 우리 들병이로 나가자, 고.
따는 내 주변으로 생각도 못했던 일이지만 참 훌륭한 생각이다.
미찌는 농사보다는 이밥에, 고기에, 옷 마음대로 입고 좀 호강이냐.
마는 년의 얼굴을 이윽히 뜯어보다간 고만 풀이 죽는구나.
들병이에게 술 먹으러 오는 건 게집의 얼굴 보자하는걸 어떤 밸없는
놈이 저 낯짝엔 몸살 날 것 같지 않다. 알고 보니 참 분하다.
년이 좀만 똑똑이 나왔더면 수가 나는걸. 멀뚱이 처다보고 쓴입맛만
다시니까 년이 그 눈치를 채었는지
"들병이가 얼굴만 이뻐서 되는 게 아니라던데,
얼굴은 박색이라도 수단이 있어야지-"
"그래 너는 그거 할 수단 있겟니?"
"그럼 하면 하지 못할 게 뭐야"
년이 이렇게 아주 번죽좋게 장담을 하는 것이 아니냐.
들병이로 나가서 식성대로 밥 좀 한바탕 먹어 보자는 속이겟지.
몇 번 다저 물어도 제가 꼭 될 수 있다니까 압따
그러면 한번 해보자구나 미천이 뭐 드는 것도 아니고 소리나 몇 마디
반반히 가르켜서 데리고 나스면 고만이니까.
내가 밤에 집에 돌아오면 년을 앞에 앉히고 소리를 가르키겟다.
우선 내가 무릎장단을 치며 아리랑타령을 한 번 부르는 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춘천아 봉의산아 잘있거라,
신연강 배타면 하직이라.
산골의 계집이면 강원도 아리랑쯤은 곧 잘 하련만
년은 그것도 못배웠다. 그러니 쉬운 아리랑부터 시작 할밖에.
그러면 년은 도사리고 앉어서 두 손으로 응뎅이를 치며 숭내를 낸다.
목구녕에서 질그릇 물러앉는 소리가 나니까 낭종에 목이 티이면 노래는
잘 하겠다 마는 가락이 딱딱 들어맞어야 한턴데
이게 세상에 되먹어야지.
나는 노래를 가르키는데 이 망할 년은 소설책을 읽고 앉었으니
어떻거냐. 이걸 데리고 앉으면 흔이 닭이 울고 때로는 날도 밝는다.
년이 하도 못하니까 본보기로 나만 하고 또하고 또하고 그러니 저를
들병이를 아르킨다는 게 결국 내가 배우는 폭이 되지 않나.
망할년 저도 손으로 가리고 하품을 줄대하며 졸려워 죽겟지. 하지만
내가 먼저 자자하기 전에는 제가 참아 졸렵다진 못할라.
애최 들병이로 나가자, 말을 낸 것이 누군데 그래.
이렇게 생각하면 울화가 불컥 올라서 주먹이 가끔 들어간다.
"이년아? 정신을 좀 채려, 나만 밤낫 하레니?"
"이놈이- 팔때길 꺾어놀라"
"이거 잘 배면 너 잘되지 이년아! 날 주는 거냐 큰체게?"
이번엔 손가락으로 이맛배길을 꾹 찍어서 뒤로 떠넘긴다.
여느 때 같으면 년이 독살이 나서 저리로 내뺄게다. 제가 한 죄가
있으니까 다시 일어나서 소리 아르켜주기만 기다리는 게 아니냐.
하니 딱한 일이다. 될지 안될지도 의문이거니와 서루 하품은 뻔질
터지고 이왕 내친 걸음이니 그렇다고 안할 수도 없고
예라 빌어먹을 거, 너나 내나 얼른 팔자를 고처야지 늘 이러다 말테냐.
이렇게 기를 한번 쓰는 구나. 그리고 밤의 산천이 울리도록 소리를
뻑뻑 질러가며 년하고 흥타령을 부르겟다.
그래도 하나 기특한 것은 년이 성의는 있단 말이지.
하기는 그나마도 없다면이야 들병이커녕 깨묵도 그르지만.
날이라도 틈만 있으면 저 혼자서 노래를 연습하는 구나. 빨내를
할적이면 빨내방추로 가락을 맞후어 가며 이팔청춘을 부른다.
혹은 방 한구석에 죽치고 앉어서 어깨짓으로 버선을 꼬여매며
노래ㅅ가락도 부른다. 노래 한 장단에 바눌 한 뀌엄식이니 버선 한 짝
길랴면 열 나절은 걸리지. 하지만 압따 버선으로 먹고 사느냐,
노래만 잘 배워라. 년도 나만치나 이밥에 고기가 얼뜬 먹고 싶어서
몸살도 나는지 어떤 때에는 밖앝 밭둑을 지날랴면 뒤ㅅ간 속에서
코ㅅ노래가 흥이거릴 적도 있겟다.
그러나 인제 노래ㅅ가락에 흥타령쯤 겨우 배웠으니 그 담건 어느 하가에
배우느냐, 망할 년두 참.
게다가 년이 시큰둥해서 날더러 신식 창가를 아르켜 달라구.
들병이는 구식 소리도 잘 해야 하겟지만 첫대 시체창가를 알어야
불려먹는다, 한다. 말은 그럴 법하나 내가 어디 시체창가를 알 수 있냐,
땅이나 파먹던 놈이. 나는 그런거 모른다, 하고 좀 무색했더니
몇 일 후에는 년이 시체창가 하나를 배가주 왔다. 화루를 끼고 앉어서
그 전을 두드려대며 네보란 듯이 자랑스럽게 하는 것이 아닌가.
피였네 피였네 연꽃이 피였네 피였다구 하였더니 볼 동안에 옴쳤네.
대체 이걸 어서 배웠을가, 얘 이년 참 나보담 수단이 좋구나, 하고
나는 퍽 감탄하였다. 그래ㅅ더니 낭종 알고보니까 년이 어느 틈에
야학에 가서 배우질 않었겠니. 야학이란 요 산 뒤에 있는 조고만
움인데 농군아이에게 한겨울 동안 국문을 아르킨다.
창가를 할 때쯤해서 년이 춘 줄도 모르고 거길 찾아간다.
아이를 업고 문밖에 서서 귀를 기우리고 엿듣다가 저도 가만가만히
숭내를 내보고 내보고 하는 것이다. 그래가지고 집에 와서는 히짜를
뽑고 야단이지. 신식 창가는 몇 일만 좀 더 배우면 아주 능통하겟다나.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년의 낯짝만은 걱정이다.
소리는 차차 어지간히 되 들어가는데 이놈의 얼굴이 암만 봐도,
봐도 영 글넛구나. 경칠 년, 좀만 얌전히 나왔더면 이판에 돈 한 몫
크게 잡는 걸. 간혹 가다 제물에 화가 뻗히면 아무 소리않고
년의 뱃기를 한 두어 번 안 줴박을 수 없다. 웬 영문인지 몰라서 년도
눈깔을 크게 굴리고 벙벙히 처다보지. 땀을 낼 년.
그 낯짝을 하고 나한테로 시집을 온담 뻔뻔하게.
하나 년도 말은 안하지만 제 얼굴때문에 가끔 성화이지 쪽 떨어진
손거울을 들고 앉어서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보고
하지만 눈깔이야 일반이겟지 저라고 나뵐리가 있겟니.
하니까 오장 썩는 한숨이 연방 터지고 한풀 죽는구나.
그러나 요행히 내가 방에 있으면 돌아다보고
"이봐! 내 얼굴이 요즘 좀 나가지않어?"
"그래, 좀 난 것 같다."
"아니 정말해봐-"
하고 이년이 팔때기를 꼬집고 바싹바싹 들어덤빈다. 년이 능글차서
나쯤은 좋도록 대답해 주려니, 하고 아주 탁 밋고 묻는 게렸다.
정말 본대로 말할 사람이면 제가 겁이 나서 감히 묻지도 못한다.
진짖 이뻐젓다, 하고 나도 능청을 좀 부리면 년이 좋아서 요새 분때를
자루 밀었으니까 좀 나젓다지, 하고 들병이는 뭐 그렇게까지 이쁘지
않어도 된다고 또 구구히 설명을 느러 놓는다. 경을 칠 년.
계집은 얼굴 밉다는 말이 칼로 찌르는 것 보다도 더 무서운 모양같다.
별욕을 다 하고 개잡 듯 막 뚜드려도 조금 뒤에는 헤, 하고 앞으로
겨드는 이년이다. 마는 어쩌나. 제 얼굴의 숭이나 좀 본다면 사흘이고
나흘이고 년이 나를 스을슬 피하며 은근히 골릴랴고 든다.
망할 년. 밉다는 게 그렇게 진저리가 나면 아주 면삿보를 쓰고 다니지
그래. 년이 능청스러워서 조금만 이뻐ㅅ더라면
나는 얼렁얼렁해 내버리고 돈 있는 놈 군서방 해갔으렸다.
게집이 얼굴이 이쁘면 제값 다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년의 낯짝
더러운 것이 나에게는 불행중 다행이라 안할 수 없으리라.
게집은 아마 남편을 소겨먹는 맛에 깨가 쏟아지 나부다.
년이 들병이 노릇을 할 수단이 있다고 괜히 장담한 것도 저의 이 행실을
믿고 그래ㅅ는지도 모른다. 새벽 일즉이 뒤를 보려니까
어디서 창가를 부른다. 거적 틈으로 내다보니 년이 밥을 끄리면서
연습을 하지 않나. 눈보래는 생생 소리를 치는데 보강지에 쪽그리고
앉어서 부지깽이로 솟뚜껑을 톡톡 두드리겟다.
그리고 거기 맞후어 신식 창가를 청승맞게 부르는 구나.
그러나 밥이 우루루 끓으니까 뙤를 빗겨 놓고 다시 시작한다.
젊어서도 할미꽃 늙어서도 할미꽁 아하하하 우습다 꼬부라진 할미꽃.
망할년. 창가는 경치게도 좋아하지, 방아타령 좀 부지런히 공부해
두라니까 그건 안하구. 압따 아무거라두 많이하니 좋다. 마는
이번엔 저고리 섭이 들먹들먹 하더니 아 웬 곰방대가 나오지 않냐.
사방을 흘끔흘끔 다시 살피다 아무도 없으니까 보강지에다 드러대고
한 먹음 뿌욱 빠는구나. 그리고 냅다 재채기를 줄대 뽑고
코를 풀고 이지랄이다. 그적게도 들켜서 경을 첬드니 년이 또 내 담배를
훔처가지고 나온 것이다.
돈 안드는 소리나 배웠겟지 망한 년 아까운 담배를. 곧 뛰어나갈려다
뒤로 급하거니와 요즘 똘똘이가 감기로 알는다.
년이 밤낮 들처업고 야학으로 돌아치더니 그예 그꼴을 만들었다.
오랄질 년, 남의 아들을 중한 줄을 모르고. 들병이 하다가
이것 행실 버리겟다. 망할 년이 하는 소리가 들병이가 될랴면 소리도
소리려니와 담배도 먹을 줄 알고 술도 마실 줄 알고 사람도 주무를 줄
알고 이래야 쓴다나. 이게 다 요전에 동리에 들어왔던 들병이에게
들은 풍월이렷다. 그래서 저도 연습겸 골고루 다 한번식 해보고 싶어서
아주 안달이 났다.
방아타령 하나 변변히 못하는 년이 소리는 고걸로 될 듯싶은지!
이런 기맥을 알고 년을 농낙해 먹은 놈이 요아래 사는 뭉태놈이다.
놈도 더러운 놈이다. 우리 마누라의 이 낯짝에 몸이 닳엇다면 그만함
다 얼짜지. 어디 계집이 없어서 그걸 손을 대구, 망할 자식두.
놈이 와서 섯 달 대목이니 술 어더 먹으러 가자고 년을 꼬였구나.
조금 있으면 내가 올테니까 안된다 해도 오기 전에 잠간만, 하고
손을 내끌었다. 들병이로 나갈랴면 우선 술파는 경험도 해봐야 하니까,
하는 바람에 년이 솔깃해서 덜렁덜렁 따라섯겟지. 집안을 망할 년.
남편이 나무를 팔러갔다 늦으면 밥 먹일 준비를 하고 기달려야 옳지
아느냐. 남은 밤길을 삼십 리나 허덕지덕 걸어오는데.
눈이 푹푹 쌓여서 발목아지는 떨어저 나가는 듯이 저리고.
마을에 들어왔을 때에는 짜정 곧 씨러질 듯이 허기가 젓다.
얼른 가서 밥 한 그릇 때려뉘고 년을 데리고 앉어서 또 소리를
아르켜야지. 이런 생각을 하고 술집 옆을 지나다가 뜻밖에 깜짝 놀란
것은 그 밖앞방에서 년의 너털우슴이 들린다. 얼른 다가서서 문틈으로
들여다보니까 아 이 망할 년이 뭉태하고 술을 먹는구나.
입때까지는 하도 웃으워서 꼴들만 보고 있었지만 더는 못 참는다.
지개를 벗어던지고 방문을 홱 열어제치자 우선 놈부터 방바닥에
메다 꼰잤다. 물론 술상은 발길로 찻으니까 벽에 가 부서젓지.
담에는 년의 비녀쪽을 지르르 끌고 밖으로 나왔다.
술 취한 년은 정신이 번쩍 들도록 홈빡 경을 처줘야 할터이니까
눈에다 틀어박었다. 그리고 깔고 올라앉어서 망할 년 등줄기를
주먹으로 대구 우렸다. 때리면 때릴수록 점점 눈 속으로 들어갈 뿐,
발악을 치기에는 너머 취했다. 때리는 것도 년이 대들어야 멋이 있지
이러면 아주 승겁다. 년은 그대로 내버리고 방으로 들어가서
놈을 찾으니까 이 빌어먹을 자식이 생쥐새끼처럼 어디로 벌서 내빼지
않었나. 참말이지 이런 자식 때문에 우리 동리는 망한다.
남의 게집을 보앗으면 마땅히 남편 앞에 나와서 대강이가 깨저야 옳지
그래 다라난담. 못 생긴 자식도 다 많지. 할 수 없이 척 느러진 이년을
등에다 업고 비척비척 집으로 올라오자니까 죽겟구나.
날은 몹시 차지, 배는 쑤시도록 고프지,
좀 노할래야 더 노할 근력이 없다. 게다 우리 집 앞 언덕을 올라가다
엎어저서 무릎악을 크게 깟지. 그리고 집엘 들어가니까
빈방에는 똘똘이가 혼자 에미를 부르고 울고 된통 법석이다.
망할 잡년두. 남의 자식을 그래 이렇게 길러주면 어떻걸 작정이람.
년의 꼴봐하니 행실은 예전에 글럿다. 이년하고 들병이로 나갔다가는
넉넉히 나는 한옆에 재워놓고 딴서방차고 다라날 년이야.
너는 들병이로 돈 벌 생각도 말고 그저 집안에 가만히 앉었는 것이
옳겟다. 구구루 주는 밥이나 얻어 먹고 몸 성히있다가 연해 자식이나
쏟아라. 뭐 많이도 말고 굴때 같은 아들로만 한 열다섯이면 족하지.
가만있자, 한 놈이 일 년에 벼 열 섬씩만 번다면 열다썸 이니까
일백오십 섬. 한 섬에 더도 말고 십 원 한 장식만 받는다면
죄다 일천 오백 원이지. 일천오백 원, 일천오백 원,
사실 일천오백 원이면 어이구 이건 참 너무 많구나.
그런줄 몰랐더니 이년이 배속에 일천오백 원을 지니고 있으니까
아무렇게 따저도 나보담은 낫지 않은가.
- 끝 -
'한국단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시와 유령 - 이효석 - (1) | 2022.12.26 |
---|---|
광염 소나타 - 김동인 - (1) | 2022.12.19 |
물레방아 - 나도향 - (1) | 2022.12.06 |
벙어리 삼룡이 - 나도향 - (0) | 2022.11.29 |
삼포 가는 길 - 황석영 - (1) | 2022.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