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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7일 용추계곡 답사 3

2024년 3월 27일 용추계곡 답사 3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지난주에 갓 올라온 깽깽이풀이 눈에 선해서 다시 찾은 용추계곡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어떤 아주머니가 쪼그리고 앉아서 무언가를 찍고 있다. "으~응 연복초 군요" " 연복초를 아시네요 " 삿갓나물은 얼마나 컷는지 비탈을 올라가 본다. 지난주와 별 차이가 없다. 털고 일어서려는데 눈에 익은 모습이 보인다. 시집갈 때 머리에 쓰고가는 그 고운 족두리. 족두리풀이다. 한약명은 "세신" 이라고 해서 훌륭한 약재로 쓰인다. 꽃은 땅바닥에 붙어서 피는데, 위에서는 보이지 않고 큰절을 해야 볼수있다. 그래서 족두리풀의 수정은, 날아다니는 곤충이 아니고 기어 다니는 곤충들에 의해서 이루어 진다 한다. 한 두장 예쁘게 담고는 일어선다. 계곡을 따라 오..

금수회의록 - 안국선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 - 안국선 - 목 차 1. 서언(序言) 2. 개회 취지(開會趣旨) 3. 제1석, 반포의 효(反哺之孝 : 까마귀) 4. 제2석, 호가호위(狐假虎威 : 여우) 5. 제3석, 정와어해(井蛙語海 : 개구리) 6. 제4석, 구밀복검(口蜜腹劒 : 벌) 7. 제5석, 무장공자(無腸公子 : 게) 8. 제6석, 영영지극(營營之極 : 파리) 9. 제7석,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 호랑이) 10. 제8석, 쌍거쌍래(雙去雙來 : 원앙) 11. 폐 회 1. 서언(序言) 머리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니 일월과 성신이 천추의 빛을 잃지 아니하고, 눈을 떠서 땅을 굽어보니 강해와 산악이 만고의 형상을 변치 아니하도다. 어느 봄에 꽃이 피지 아니하며, 어느 가을에 잎이 떨어지지 아니..

한국단편문학 2024.04.16

금당벽화 - 정한숙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금 당 벽 화 - 정한숙 - 목탁(木鐸)소리가 비늘진 금빛 낙조(落照) 속에 여운(餘韻)을 끌며 울창한 수림을 헤치고 기복(起伏)진 구릉(丘陵) 밑으로 흐르고 있다. 무성한 숲과 숲 사이에 스며드는 습기에 오늘도 돌바위의 이끼는 어제련 듯 푸르고, 암과 수가 짝지어 어르는 사슴의 울음은, 남국적인 정서로 이국의 향수를 돕는 듯하다. 담징(曇徵)은 바위에 앉은 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서녘 하늘은 젖빛 구름 속에 붉은 빛을 금긋는가 하면, 자줏빛 구름이 솟구쳐 흐르고, 그것이 퍼져, 다시 푸른 바탕으로 변하면 하늘은 자기 재주에 겨워 회색 빛으로 아련히 어두워 간다. 돌바위에 기대앉은 담징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서녘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그의 동광(瞳光)은 하늘빛을 닮은 ..

한국단편문학 2024.04.09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 박완서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 박완서 - 가끔 별난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치고 싶은 충동 같은 것 말이다. 마음속 깊이 잠재한 환호에의 갈망 같은 게 이런 충동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요샌 좀처럼 이런 갈망을 풀 기회가 없다. 환호가 아니라도 좋으니 속이 후련하게 박장 대소라도 할 기회나마 거의 없다. 의례적인 미소 아니면 조소·냉소·고소가 고작이다. 이러다가 얼굴 모양까지 얄궂게 일그러질 것 같아 겁이 난다. 환호하고픈 갈망을 가장 속 시원하게 풀 수 있는 기회는 뭐니뭐니 해도 잘 싸우는 운동 경기를 볼 때가 아닌가 싶다. 특히 국제 경기에서 우리편이 이기는 걸 텔레비전을 통해서나마 볼 때면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다. 그러나 곰곰이..

한국단편문학 2024.04.03

2024년 3월 20일 용추계곡 답사 2

2024,03,20 맑음 용추계곡 며칠전 톡으로 만주바람이 피었다고 소식을 들었다. 오늘 가면 작년같이 늦는것 아닌가? 의구심이 들었지만 어쩌랴 ! 시간이 그렇게 된 걸. 계곡에 들어서며 이곳저곳을 훝어본다. 현호색이 보름전보다 좀더 풍성할 뿐 뭐 ! 별다르게 큰 차이는 없는것 같다. 오늘 대상화는 깽깽이풀 이지만 계곡을 오르면서 만난 아이들을 순서없이 올려본다. 사진을 클릭하여 큰사진으로 보세요. 생강나무 산수유. 생강나무와 비슷해서 혼동이 많다. 남산제비꽃은 아침에 만났을 땐 이른시간인지 꽃대를 접었는데 오후시간에는 활짝 웃는 얼굴을 볼수가 있었다. 꽃빛깔이 노랑색이라 보통 노랑병아리 라고 부르는 노랑제비꽃. 꿩의바람꽃도 제딴에는 추운 모습이다. 만주바람꽃은 잘 있는지 비탈을 올라가 본다. 시간이 늦..

사냥 - 이효석 -

사진을 클릭하여 큰사진으로 보세요. 사 냥 - 이효석 - 연해 두어 번 총소리가 산속에 울렸다. 몰이꾼의 행렬은 산등을 넘고 골짝을 향하여 차차 옴츠러들었다. 발밑에 요란히 울리는 떡갈잎 가랑잎의 어지러운 소리에 산을 싸고 도는 동무들의 고함도 귀 밖에 멀다. 상기된 눈앞에 민출한 자작나무의 허리가 유난스럽게도 희끔희끔 거린다. 수백 명 학생들이 외줄로 늘어서 멀리 산을 둘러싸고 골짝으로 노루를 모조리 내리모는 것이다. 골짝 어귀에는 오륙 명의 포수가 등대하고 섰다. 노루를 빼울 위험은 포수 편에 보다 늘 포위선에 있다. 시끄러운 책임을 모면하기 위하여 몰이꾼들은 빽빽한 주의와 담력으로 포위선을 한결같이 경계하여야 된다. 적어도 눈앞에서 짐승을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학년 사이의 연락은 긴밀히! ×학..

한국단편문학 2024.03.27

흰광대나물

사진을 클릭하여 큰사진으로 보세요. 오늘도 하루를 마감하며 산을 내려 온다. 해는 서산에 뉘엿뉘엿 하는데 산 밑 아파트 공사장에 들어선다. 빨간 광대나물이 지천이다. "흰색은 못 보았는데 여기 어디 쯤 있으려나 ?" 그 넓은 공터를 광대나물을 기준으로 한 바퀴 돌아본다. "재는 뭔데 하얗지? " 궁금하면 가 봐야 한다. 빨간광대는 무리지어 함께 있는데 이 아이는 하얗다고 따를 당했는지? 아님 자기는 별나다고 따로 노는건지? 외따로 멀찍이 떨어져서 혼자 피어 있다. 그 것도 한송이 만 ! 아무튼 마음은 흐뭇하다. 여지 껏 그림으로만 보던 아이인데 이렇게 보았으니... 카메라를 다시 꺼내서 흰광대와 눈을 맞추며 예쁜얼굴 찾아가며 셔터를 누른다. 오신 손님, 모두 즐겁고 건강하세요 !!!

야생화-단일 2024.03.25

홍염(紅焰)- 최서해 -

사진을 클릭하여 큰사진으로 보세요. 홍염(紅焰) - 최서해 - 1 겨울은 이 가난한---백두산 서북편 서간도 한귀퉁이에 있는 이 가난한 촌락 빼허[白河]에도 찾아들었다. 겨울이 찾아들면 조그만 강을 앞에 끼고 큰 산을 등진 빼허는 쓸쓸히 눈 속에 묻히어서 차디찬 좁은 하늘을 치어다보게 된다. 눈보라는 북국의 특색이다. 빼허의 겨울에도 그러한 특색이 있다. 이것이 빼허의 생령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오늘도 눈보라가 친다. 북극의 얼음 세계나 거쳐오는 듯한 차디찬 바람이 우하고 몰려오는 때면 산봉우리와 엉성한 가지 끝에 쌓였던 눈들이 한꺼번에 휘날려서 이 좁은 산골은 뿌연 눈안개 속에 들게 된다. 어떤 때는 강골 바람에 빙판에 덮였던 눈이 산봉우리로 불리게 된다. 이렇게 교대적으로 산봉우리의 눈이 들로 내..

한국단편문학 2024.03.19

탈출기(脫出記)- 최서해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탈출기(脫出記) - 최서해 - 1 김군! 수삼차 편지는 반갑게 받았다. 그러나 한번도 회답치 못하였다. 물론 군의 충정에는 나도 감사를 드리지만 그 충정을 나는 받을 수 없다. ―박군! 나는 군의 탈가(脫家)를 찬성할 수 없다. 음험한 이역에 늙은 어머니와 어린 처자를 버리고 나선 군의 행동을 나는 찬성할 수 없다. 박군! 돌아가라.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 군의 보모와 처자가 이역 노두에서 방황하는 것을 나는 눈앞에 보는 듯싶다. 그네들의 의지할 곳은 오직 군의 품밖에 없다. 군은 그네들을 구하여야 할 것이다. 군은 군의 가정에서 동량(棟梁)이다. 동량이 없는 집이 어디 있으랴? 조그마한 고통으로 집을 버리고 나선다는 것이 의지가 굳다는 박군으로서는 너무도 박약한 소위이다...

한국단편문학 2024.03.12

2024년 3월 6일 용추계곡 답사

2024년 3월 6일 용추계곡 답사 노루귀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일기예보에 오후내내 흐림으로 되어 있어 갈까 말까 작은 고민이 생긴다. 생각에 잠기다가, 산행길을 결정하고 일어선다. 고산마을에서 출발. 길가 양지쪽에 파란 큰개불알풀꽃과 빨간 광대나물이 제얼굴을 보여주며 봄이 왔음을 알린다. 고산 쉼터에 도착. 전에 옮겨 심은 백양꽃이 잘 있는가 살펴보니 지금쯤 씩식한 초록 잎이 힘차게 나와 있어야 하는데 하나도 보이지를 않는다. 다시 산을 오르며 누군가 "캐 갔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언짢다. 산능선을 넘어 아래로 내려와 용추계곡 포곡정에 이른다. 산을 오를때는 다른 곳에서의 꽃소식이 있어서 좀 늦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 이다. 보여야 할 꽃들이 보이지를 않는다. 날도 흐..

화수분- 전영택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화수분 - 전영택 - 1925년 1. 1 첫겨울 추운 밤은 고요히 깊어 간다. 뒤뜰 창 바깥에 지나가는 사람 소리도 끊어지고, 이따금 찬바람 부는 소리가 ‘휙― 우수수’ 하고 바깥의 춥고 쓸쓸한 것을 알리면서 사람을 위협하는 듯하다. “만주노 호야 호오야.” 길게 그리고도 힘없이 외치는 소리가 보지 않아도 추워서 수그리고 웅크리고 가는 듯한 사람이 몹시 처량하고 가엾어 보인다. 어린애들은 모두 잠들고 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눈에 졸음이 잔뜩 몰려서 입으로만 소리를 내어 글을 읽는다. 나는 누워서 손만 내놓아 신문을 들고 소설을 보고, 아내는 이불을 들쓰고 어린애 저고리를 짓고 있다. “누가 우나?” 일하던 아내가 말하였다. “아니야요. 그 절름발이가 지나가며 무슨 소리를 지껄..

한국단편문학 2024.03.05

오발탄 - 이범선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오발탄 - 이범선 - 계리사(計理士) 사무실 서기 송철호(宋哲浩)는 여섯 시가 넘도록 사무실 한구석 자기 자리에 멍청하니 앉아 있었다. 무슨 미진한 사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장부는 벌써 집어치운지 오래고 그야말로 멍청하니 그저 앉아 있는 것이었다. 딴 친구들은 눈으로 시계바늘을 밀어 올리다시피 다섯 시를 기다려 후다닥 나가 버렸다. 그런데 점심도 못 먹은 철호는 허기가 나서만이 아니라 갈 데도 없었다. "송 선생은 안 나가세요?" 이제 청소를 해야 할테니 그만 나가달라는 투의 사환애의 말에, 철호는 다 낡아빠진 해군 작업복 저고리 호주머니에 깊숙이 찌르고 있던 두 손을 빼내어서 무겁게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나가야지." 하품 같은 대답이었다. 사환애는 저쪽 구석에서부터..

한국단편문학 2024.02.27

노루귀 3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 노 루 귀 3 " 이른 봄부터 진사님 꽃쟁이들의 가슴을 헤집어 놓고 청,백,홍 삼색으로 뽀얀 얼굴을 보이는 너는 특별 할것도, 대단 할것도 없지만 그 이름이 "노루귀" 라 했지. 복수초 다음으로 이 땅에 2.3번째로 모습을 보이기에 귀한 대접을 받는가 보다. 이후로는 현호색,바람꽃,제비꽃,얼레지,괴불,참꽃...... 꽃쟁이들의 바쁜 일정이 시작되니까. 네 이름은 고운 네 얼굴의 이름이 아니라 뒤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잎사귀의 이름 이란다. 3개의 잎은 삼각형으로 보기에도 아주 멋진 모습이지. " 노루귀 " 새봄이 오면 너 찾느라고 진사님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그건 그거고 한가지 바램 이라면 많이 많이 더 많이 번성하여 이 강산을 아름답게 수 놓아 주기를 바랄..

야생화-단일 2024.02.25

2024년 첫출사 (변산바람꽃,복수초,노루귀)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2024,02,17 첫출사 입니다. 올해는 날도 푸근하고 비도 적당히 내려서 보름정도 이르게 꽃이 핀것 같습니다. 창원 내서읍 소노골의 봄소식 입니다. 소식이 빠르고 결과가 알차며 교통도 편리해서 해마다 빼놓지 않고 다니는 장소 입니다. 산행도 짧아 쉽게 오를 수 있어 편한 곳 입니다. 아쉽다면, 위치가 알려지면서 해마다 바람꽃 자생지 면적이 점점 줄어 드는것 같아 그게 좀 아쉽습니다. 촬영은 순광보다 역광이 많습니다만, 그래도 차분하게 꼼꼼히 보시면 알차게 다 보실수 있습니다. 하얀얼굴은 "변산바람꽃" (변산아씨)이고 노란얼굴은 "복수초" 입니다. 복수초는 손님이 어찌나 급하게 왔다 가는지 붙잡는데 한참이나 애를 먹었습니다. 분홍빛의 수줍은듯한 얼굴은 노루귀 입니다. 오늘..

어떤 醫師의 手記(붉은산)- 김동인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어떤 醫師의 手記(붉은산) - 김동인 - 그것은 여(余)가 만주를 여행할 때 일이었다. 만주의 풍속도 좀 살필 겸 아직껏 문명의 세례를 받지 못한 그들의 사이에 퍼져 있는 병(病)을 조사할 겸해서 일년의 기한을 예산하여 가지고 만주를 시시콜콜이 다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에 ××촌이라 하는 조그만 촌에서 본 일을 여기에 적고자 한다. ××촌은 조선사람 소작인만 사는 한 이십여 호 되는 작은 촌이었다. 사면을 둘러보아도 한개의 산도 볼 수가 없는 광막한 만주의 벌판 가운데 놓여 있는 이름도 없는 작은 촌이었다. 몽고사람 종자(從者)를 하나 데리고 노새를 타고 만주의 촌촌을 돌아다니던 여가 그 ××촌에 이른 때는 가을도 다 가고 어느덧 광포한 북극의 겨울이 만주를 찾아온 때였..

한국단편문학 2024.02.19

다시 읽는 글모음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생일 선물 김태우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묻는다. 생일에는 미역국이지 답했다. 함께 먹는 것은 무엇이든지 좋다는 걸 그녀는 모르는 것 같다. 받고 싶은 게 뭐냐고 묻는다. 백석의 시집이라고 답했다. 이 세상에서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은 당신이라는 걸 그녀는 모르는 것 같다.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묻는다. 손잡고 해변을 걷는것이라고 답했다. 함께라면 뭐든지 좋다는 걸 그녀는 모르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참 바보 같다. 그러나 그렇게 물어주는 당신이 나는 참 좋다. -- % -- % -- % -- 사랑의 물리학 김인육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

한국단편문학 2024.02.12

소낙비 - 김유정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소낙비 - 김유정 - 음산한 검은 구름이 하늘에 뭉게뭉게 모여드는 것이 금시라도 비 한줄기 할 듯하면서도 여전히 짓궂은 햇발은 겹겹 산속에 묻힌 외진 마을을 통째로 자실 듯이 달구고 있었다. 이따금 생각나는 듯 살매들린 바람은 논밭간의 나무들을 뒤흔들며 미쳐 날뛰었다. 뫼 밖으로 농꾼들을 멀리 품앗이로 내보낸 안말의 공기는 쓸쓸하였다. 다만 맷맷한 미루나무숲에서 거칠어가는 농촌을 읊는 듯 매미의 애끓는 노래…. 매움! 매애움! 춘호는 자기 집 - 올봄에 오 원을 주고 사서 들은 묵삭은 오막살이집 - 방문턱에 걸터앉아서 바른 주먹으로 턱을 고이고는 봉당에서 저녁으로 때울 감자를 씻고 있는 아내를 묵묵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사날 밤이나 눈을 안 붙이고 성화를 하는 바람에 농..

한국단편문학 2024.02.05

뫼비우스의 띠 - 조세희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뫼비우스의 띠 - 조세희 - 수학 담당 교사가 교실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그의 손에 책이 들려 있지 않은 것을 보았다. 학생들은 교사를 신뢰했다. 이 학교에서 학생들이 신뢰하는 유일한 교사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제군, 지난 1년 동안 고생 많았다. 정말 모두 열심히들 공부해주었다. 그래서 이 마지막 시간만은 입학 시험과 상관이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는 몇 권의 책을 뒤적여보다가 제군과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을 발견했다. 일단 내가 묻는 형식을 취하겠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학생들은 ..

한국단편문학 2024.01.29

별 - 현경준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별 - 현경준 - 1. 1 달마다 한 번씩은 꼭 어김없이 오고야마는 수업료 납부기. 벌써 완납 기일을 사흘이나 넘은 교실 안은 처처에 빈 자리가 생겨서 횡뎅그레한데 아무 표정도 없이 눈알만 말똥거리는 중대가리들의 멍하니 벌린 괴지지한 입들, 훌쩍거리는 코들. 찌는 듯이 무더운 속에서 파리들이 앵앵거리며 햇볕을 좇아 날아다니고 가담가담 물쿤하고 콧구멍을 쿡쿡 찌르는 땀 냄새 방귀 냄새. 6월의 교실 안 공기는 웅덩이 속에 갇혀 있는 무겁고도 어지러운 흙탕물과도 같아 당장에 질식이라도 할 것 같다. 그러한 속에서 명우는 땀을 발발 흘려가며 거의 싸우다시피 악을 쓰는 것이었다. “이놈들아. 정신을 좀 차려서 선생님 설명을 들어라.” 그래도 아이들은 얼빠진 것처럼 멍하니 입만 벌리..

한국단편문학 2024.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