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한 강 (국문.4) - '편지' 92년 연세문화상(윤동주 문학상: )

하얀모자 1 2025. 6. 2. 13:29

 

 92년  연세문화상   (윤동주 문학상 : 한 강 (국문.4)  '편지'  )
 
              편지 
 
                                            한강  (국문과 4학년)

그동안 아픈 데 없이 잘 지내셨는지 
궁금했습니다 
꽃 피고 지는 길 
그 길을 떠나 
겨울 한번 보내기가 이리 힘들어 
때 아닌 삼월 봄눈 퍼붓습니다 
겨우내내 지나온 열 끓는 세월 
얼어붙은 밤과 낮을 지나며 
한 평 아랫목의 눈물겨움 
잊지 못할 겁니다 

누가 감히 말하는 거야 무슨 근거로 무슨 근거로 이 눈이 멈춘 다고
멈추고 만다고… 천지에, 

퍼붓는 이… 폭설이, 

보이지 않아?
휘어져 부러지는 솔가지들,

… 퇴색한 저 암록빛이, 

이, 이, 바람 가운데,
기댈 벽 하나 없는 가운데, 

아아… 나아갈 길조차 묻혀버린 곳,
이곳 말이야…

그래 지낼 만하신지 아직도 삶은 
또아리튼 협곡인지 당신의 노래는 
아직도 허물리는 곤두박질인지 
당신을 보고난 밤이면 새도록 등이 시려워 

가슴 타는 꿈 속에
어둠은 빛이 되고
부셔 눈 못 뜰 빛이 되고
흉몽처럼 눈 멀어 서리치던 새벽
동 트는 창문빛까지 아팠었지요.

………어째서… 마지막 희망은 잘리지 않는 건가
 지리멸렬한 믿음 지리멸렬한 희망 계속되는 호홉 무기력한,
 무기력한 구토와 삶, 오오 젠장할 삶 

악물린 입술 
푸른 인광 뿜던 눈에 지금쯤은 
달디 단 물들이 고였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한번쯤은 
세상 더 산 사람들처럼 마주 보고 
웃어보고 싶었습니다. 

사랑이었을까… 잃을 사랑조차 없었던 날들을 지나 여기까지,
 눈물도 눈물겨움도 없는 날들 파도와 함께 쓸려가지 못한 목숨,
 목숨들 뻘밭에 됭굴고 

당신 없이도 천지에 봄이 왔습니다 
눈 그친 이곳에 바람이 붑니다 
더운 바람이, 
몰아쳐도 이제는 춥지 않은 바람이 분말같은 햇살을 몰고 옵니다 
이 길을 기억하십니까
꽃 피고 지는 길
다시 그 길입니다
바로 그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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