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돼지꿈 - 황석영 -

하얀모자 1 2026. 2. 26. 22:28

 

    돼지꿈
              - 황석영 -

1
 
벌거숭이 붉은 언덕과 주택부지들이 펼쳐져 있고,
언덕 한가운데에 굴뜩만 흉물스레 높이 솟은 기와공장이 홀로 서 있었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기와공장의 굴뚝에서 솟은 불티가
어두운 하늘 속에서 차츰 선명하게 반짝였다.
언덕 아래로 빈터의 곳곳에 간이주택과 낮은 움막집들이 모여 있었다.

강씨는 리어카를 끌면서 화학공장의 뒷담 옆으로 해서 회색빛 폐수가
늘 괴어 있는 저지대를 지나갔다.
폐수 속에 높다란 쓰레깃더미가 군데군데 비춰 보였다.
그는 낡은 코르덴 당꼬바지에 러닝셔츠만 입고 뚫어진 밀짚모를 늘러썼다.
옷차림이야 넝마에서 골라 입은 탓이겠지만,
표정마저 가믐에 탄 시냇가의 돌 꼬락서니로 낡게 퇴색된 것 같았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오십 대였으나 걸음걸이는 당당했고,
왕년의 목도꾼답게 어깨가 딱 벌어졌다.
강씨는 누렇게 변색한 옛날 사진 속에서 튀어나온 사람 같았다.
그는 녹슨 양철로 얼기설기 움막을 지은 재건대 지부의 작업장 가운데로
리어카를 끌고 지나갔다.
쓰레깃더미 속에서 대여섯 사람이 분주하게 쓰레기들을 분류하고 있었다.
종이, 빈병, 깨어진 유리, 나무상자, 깡통 같은 잡동사니들이
저희들끼리 나뉘어 쌓여 있었다.
넝마줍기에서 돌아오는 자가 대바구니를 어깨에서 끌러내고,
우선 쓰레깃더미에다 쏟아놓고 있었다.
강씨는 작업을 시키고 섰는 나이든 양아치에게 말을 건넸다.

“어이, 뭣 좀 잡았나?”

“이제 오슈.”

좋은 말로는 재건대장이며 예전 같으면 왕초인 사내가
건성 인사를 받았고, 옆에 있던 양아치가 농을 쳤다.

“잡기는 젠장…… 앗씨 가운넷다리나 잡으까.”

예비군 모자를 코허리에까지 눌러쓰고 양쪽에 귀 같은 호주머니가 달린
야전복을 입은 왕이 눈살을 찌푸렸다.

“니 애비한테 그래라, 인마.”

하면서 그는 면장갑 낀 손으로 코밑을 쓱 훔쳤다.
강씨는 대꾸하지 않고 마른기침을 뱉었을 뿐이다. 왕이 말했다.

“뚜룩이나 치면 모를까, 노상 줏어오는 게 고작 요런 것들이우.”

왕도 강씨가 어쩐지 느긋해 보이고, 인사까지 건네오는 푼수로 보아
일진이 별로 나쁘진 않았겠다고 느끼면서 말했다.

“그나저나 수입 잡은 모양인데, 한잔 사슈.”

“다리 품앗이 값두 못되네.”

했다가 강씨는 참지 못하고 말을 해버렸다.

“오늘은 줄을 좀 잡았지.”

“줄? 몇 관이나요.”

“두어 자.”

강씨의 하루 벌이란 고작해야 삼사백 원 꼴이었다.
어떤 때에는 아이 녀석들이 제법 쓸 만한 물건들을 어른들 몰래 들고
나올 적이 있었고, 장물아비를 놓친 좀도둑들이 뚜룩친
물건들을 파는 날도 있었다.
그러면 강씨는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재빨리 엿이나 현금을 바꿔주고는
뺑소니를 치는 것이었다. 잘못 걸렸다간 닭장으로 직행하기
십상이었으니까. 오늘은 웬 수상스런 놈팡이에게서 전선을 싸구려로
사다가 팔았던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이 사람 요 밑엘 좀 들여다보게.”

강씨가 엿목판을 밀어내고 튀긴 강냉이를 담은 비닐자루를 옆으로 치웠다.
왕이 거 무슨 보물이라도 있는가 싶어 고개를 삐죽이 들이밀다가
기겁을 했다.

“이게 뭐요, 네발짐승 아뇨?”

그는 자루 아래로 삐죽이 내밀어진 회색 털의 개 다리를 보았던 것이다.
강씨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왜 아냐, 송아지 만한 놈인데.”

“셰퍼드로군. 크긴 제법 큽니다그려. 어서 났수,
 꼬여다 때려잡은 것두 아닐 테구.”

“예끼, 떳떳하게 임자한테서 얻었다구.”

그는 탐스러운 털을 가진 셰퍼드의 꼬리를 잡아 약간 쳐들어 보였다.
어찌나 무거운지 달싹도 하지 않는다.
왕이 개의 귀를 만지려 하자, 강씨는 슬그머니 엿목판으로
그의 손을 밀어냈다.
왕은 손을 빼기가 못내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것 참 안성맞춤이네요. 지난 복날에두 허탕을 쳤는데.”

“빈손은 안 붙이네.”

“아따, 그 양반! 술 받는 건 문제가 아니구,
  잘못 먹구 골루 가는 건 아뇨?”

강씨는 얘기할 흥미조차 잃었다는 시늉으로 왕의 아래위를 훑고 나서
리어카를 밀어냈다. 왕은 안달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시다, 생명에 지장은 없는 거구. 끄슬리는 건 내가 할 테니
  꼭 부르쇼.”

“탁주 한 바께쓰 낼 텐가?”

“글쎄 염려 놓으시라니까.”

“조오치.”

강씨는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든지 동네로 들어서는 강씨의 거동을 보면
대개 그날의 일진에 관해서 알아맞힐 수가 있었다.
그의 결음걸이가 당당하고 고개를 치켜들었다든가,
또는 리어카가 가뿐하게 굴러들어온다든지, 모자가 비뚜름하다든가,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하루 재수를 먼저 묻는다든가 하는 짓들이 나오면
틀림없이 최상의 날이었다.
강씨는 엿목판 아래로 신경을 쓸 때마다 첫선 본 큰애기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었다. 잡아먹기가 아깝도록 잘생긴데다,
한창때의 장정만큼이나 무게가 나가도록 실하게 살찐 개였다.
왕이 아직도 미심쩍어 하면서 말했다.

“용케 구하셨어. 복철에 개 보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그게 궁금한가. 리어카 끌구 강남학교 앞으루다 내려오는데,
 웬 아주머니가 날 부른단 말야.
 뭐 고철이라두 있는가 해서 따라갔더니……”

가축병원이었다. 개가 차에 갈린 모양인데 쉽게 죽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뒷다리가 모두 부러져서 병신이 될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래서 주인은 개가 편안히 죽을 수 있도록 주사를 놓아주기를 부탁했고,
개는 잠깐 동안에 사지를 뻗고 죽어버렸다.
문제는 이 덩치 큰 짐승을 어떻게 처치하느냐였는데,
가축병원에서는 빨리 치워주기를 원하고 있었으며,
개 임자는 어디엔가 양지바른 곳에 묻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집의 화단에다 묻기는 뭣하고, 그냥 쓰레기통에다 버릴 수도
없다는 얘기였다. 또한 거기서 개를 묻을 만한 빈터나 산을 찾으려면
먼데까지 가야 했다.
아주머니의 따님께서는 죽은 개 때문에 징징 울고 있었다.
그들이 강씨의 가위 치는 소리를 들은 것은
바로 그러한 망설임중에서였다. 아주머니는 숫제 사정조로
개를 강씨가 가져 다가 꼭 묻어주기를 부탁하는 한편,
따님을 달래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이 사람아, 혀를 길게 빼구 널브러진 놈이 꼭 호랑이더라 그 말야.
 침이 연방 넘어가지만서두, 그쪽에서는 아예 그런 끔찍상스런 생각은
 않는 모양이지.”

강씨는 못 이기는 체하고 개를 리어카에 싣는데, 아주머니가 수고비라며
삼백원 돈이나 얹어주었다. 호박이 덩굴 뿌리째 굴러떨어진 것이다.
따님은 울었고, 아주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며,
강씨는 하도 신이 나서 콧날개가 벌름대는 것을 참느라고
어금니를 꽉 물고 있어야 했다. 그들이 안 보이는 곳에 이르자,
강씨는 개의 크기를 다시 한번 확인하느라고 리어카 속을 들여다보았다.

“요새 기름길 못 먹어서 버짐꽃이 핀단 말일세.
 아침마다 살가루가 싸라기마냥 쏟아진다구. 그렇잖아두 가출한 똥개라두
 한마리 때려잡아 보신하려던 참인데……”

강씨의 얘기를 찬사와 감탄의 빛으로 듣고 있던 왕이 맞받아서,

“듣구 보니 아씨가 아니라 그 운짱 양반께 인살 드려야겠네.”

강씨도 물론 반대할 마음이 아니다.

“실은 그렇지. 쥐약을 먹은 것두 아니요, 지랄병두 아니구·……
 살이 디룩디룩 찐 멍멍일 생으루 때려잡았으니까.
 운전수 양반이 남 존 일 했지.”

두 사람은 이제 완전히 기분이 통해서 기꺼이 웃었다.
하루 수입도 만만찮게 올렸겠다, 수고비도 받았겠다,
강씨는 눈에 걸리는 대로 어느 선술집에 들어가 쐬주 두어 잔 걸쳐,
이 감격을 달래고 오는 길이었다.

“자아, 이따 보세.”

강씨는 의기양양하게 리어카를 밀어 냈다.
폐수가 흘러나가고 있는 하천변에 반 미터쯤의 낮은 둑이 있고,
둑가에 쓰레기더미와 분간할 수 없이 늘어선 팔십 번지 동네로
그는 들어섰다. 강씨는 염소우리가 있던 변소 옆을 지나다가
거기서 나오는 일수쟁이 영감과 부딪쳤다.
작년까지도 이 동네 반장이 흑염소를 기르다가 손해만 봐서,
지금은 동네 공중변소로 쓰이는 헛간이다.
영감이 활짝 편 얼굴로 말했다.

“손자 보게 됐습디다.”

일수 영감은 더러운 파자마 속에다 양손을 찔러넣고 서 있었다.
강씨는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얘기요?”

“미순이가 왔데요.”

“그년이……!”

“몰라보겠두만. 홀몸이 아니든데.”

강씨는 별수없이 혀만 끌끌 찼다.
그는 며칠 전에 마누라가 미순이의 편지를 들고 훌쩍이던 것이 생각났다.
돈놀이를 해처먹어서, 사람의 속을 뻔히 알아,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려는 영감쟁이의 구렁이 같은 취미를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오장육부가 꽤나 쓰라렸다.
강씨는, 그게 어디 내 딸년이오…… 하려다가 너무 야박스럽고
낯이 간지러워져서 말을 돌렸다.

“골치 아파서 원. 그년이 죽든지 살든지……
 돈일랑 제 에미한테 받으슈.”

영감은 오늘따라 시원시원했다.
영 안 낼 배짱인가보다고 포기했던 터인데,
이번만큼은 가망이 있어 보이는 모양이었다.

“이제 장본인이 왔으니까, 수월히 되었소.”

“그러믄요. 순전히 영감님 책임이죠.”

“본인 말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틀림없는 일이오.
 부모들이 어느 정도 책임져야지.”

“좌우간에 난 모른다 그겁니다.”

영감은 마땅찮게 강씨의 리어카와 그 행색을 훑어보면서 이죽거렸다.

“허허, 걔 배가 꼭 북통 같데. 배 꼴이 아들 쌍둥이는 될걸.”

“망할 년 같으니.”

강씨는 리어카를 왈칵 밀고 낮은 블록 벽들이 늘어선 골목으로 들어갔다.
콜타르의 종이지붕 위에 늘러놓은 돌들이 보이고,
환기구멍 겸 창문 대신 뚫어놓은 연두색 플라스틱 슬레이트가
위를 향해 치켜져 있는 게 보일 만큼 집들이 주저앉아 있었다.
골목을 빠져나가면 동네의 유일한 펌프가 있었고,
옛날 버릇대로 유휴지의 이곳저곳에 제각기 일구어놓은 채소밭이 있었다.
파, 옥수수, 배추 등속이 자라나 있었다.
벌이를 나갔던 사람들이 대부분 돌아와서 이미 세수를 하고
발도 씻고서는 파자마 반바지 차림으로 빈터의 곳곳에서
바람을 쐬는 중이었다.
이제 오나, 어 그래, 하는 것으로 대충 인사말을 건넸다.
아이놈이 강씨를 먼저 보고 제 동무들을 버려두고 이내 달려왔다.

“아부지, 삼춘 왔다. 삼춘이 미순이 데려왔어.”

강씨는 리어카에서 엿목판과 강냉이 자루를 꺼내고, 개를 들어냈다.
아이들이 제일 먼저 모여들었고, 제각기 흩어져 앉았던 어른들 사이에
가벼운 동요가 일어났다. 그는 엿목판에 극성으로 달라붙는
아이놈의 등줄기를 호되게 내리 쳤다.

“이눔 새끼.”

하면서 그는 진작에 어두워진 집 안쪽을 살폈다.
보통때 같으면 뭔가 반응이 있을 법도 한데 고요했다.
아이놈이 발버둥질하면서 강씨의 뒤통수에다 욕을 퍼부었다.

“아부지 개새끼야. 아부지 씨비씨비.”

강씨는 못 들은 척하며 힘들여 개를 붙안고
부엌 시렁 위에 날라다 얹었다. 나무선반이 휘청, 구부러진다.
동네 사람들 중에서 뽑혀 왔는지 한 사내가 머리만 디밀고 말했다.

“오늘 할 테면, 불 피우까?”

강씨는 선선히 대답했다.

“어, 그래그래.”

불꺼진 방안에 들어섰을 때, 강씨는 하마터면 처의 허리께를 밟을 뻔했다.
그 여자는 아예 홑이불을 머리 꼭대기까지 둘러쓰고 누워 있었던 것이다.
강씨가 불을 켜고 선 채로 한참이나 아내의 흰 몸뚱어리를 쏘아보았다.

“초저녁부터 무슨 청승야. 진종일 헤매구 돌아오는 사람 심정두
 쬐끔은 알아줘 얄 말이지.”

“듣기 싫어. 나한테 말시키지 말아요.”

"얼씨구. 지랄하구 자빠졌다.”

강씨는 고함이라도 꽥 지르고 싶은 심사를 억눌렀다.
공연히 덧들이기가 싫어서다. 마침 아이놈이 방 문턱에 와 걸터앉아
칭얼대기 시작했으므로 강씨는 기세 좋게 소리쳤다.

“이런 상년에 자식, 죽구 싶어!”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고, 강씨 처는 흩이불을 쓴 채로 중얼거렸다.

“잘헌다. 참말 부자지간에 육갑 떨구 있네, 저 팔푼이 같은 새끼는
 뭘 또 처먹지 못해서 칭얼대, 칭얼대길.”

“그래, 네년의 새끼들은 다 잘났더라.”

여자가 홑이불을 까내리고 발딱 일어나 앉았다.

“입이 천개라두 할 말이 없을걸.
 걔들한테 언제는 애비노릇 해본 적 있어? 아, 있느냐구.
 참 남부끄러워 못살아, 그 나이에 밝히기는……
 안할 말이지마는 날 요 꼴루 수절도 못하게 해논 게 누구 짓야.
 내가 저 새낄 멫살에 난 거냐구. 또 멫을 지웠구. 말 좀 해봐.”

“정말 이 여편네가. 모녀간에 잘 논다. 미순이 왔다지?”

“아이구 원통해, 이년이 미친년이지.”

맞은편에 붙은 골방의 미닫이가 달각거리는 것으로 미루어
거기에 누군가 있는 게 분명했다.

“에이 망할 집구석, 불을 확 싸지르든지…… 니미.”

드디어 문이 열렸다. 역시 말끔한 양복 차림에 넥타이까지 단정하게 맨
처남이 엉거주춤하게 서서 말을 건넸다.

“매부, 안녕 하세요. 고정들 하십시오. 남들이 듣겠습니다.”

“아 왼 동네가 다 아는데 무슨…….” !

강씨는 제 심사에 못 이겨서 자꾸 무르팍만 쥐어박았다.

“속을 썩여두 곱게 썩여야지. 나가는 년이 뭣 땜에 거짓말루 꾸며서
 일숫돈을 빼갖구 나가느냐 이거야. 우리가 단련을 얼마나 받았냐구.
 그래, 그 꼴을 해갖구 왔다길래, 한마디 하는게 그렇게 고깝단 말인가.
 나두 체면이 애비라구, 애비.”

“어유, 그러셔? 대견하셔. 벌이두 못하는 애비,
 우거지면 삶아서 국이라두 끓여 먹지.”

“누님두 그만두세요. 성경에두 나와 있지만……”

또 나오는구나 싶어진 강씨는 분연히 일어났다.
질려서 지레 달아나려는 아이놈의 손목을 잡으며 강씨는
지나치게 처량한 어조로 말했다.

“밖에 나가자. 아부지가 엿 주께.”

강씨의 처가 길게 한숨을 쉬었는데,
호흡이 꼬리 근처에서 떨리며 흐느꼈다. 그 여자는 다시 드러누웠고,
삼촌은 단정한 자세로 앉아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믿음직한 바리톤이었다.

“전지 전능하신 여호와 아버지 기도하옵는 것은,
 이 가정에 깃든 불안과 고통을 씻어주옵시며, 저희가 더이상
 아버지 앞에 죄를 짓지 않도록 하심을 바라나이다.
 이제 나갔던 식구가 돌아오고 온 가족이 모이게 되었사오나
 저들은 감사할 줄 모르고 오히려 불화하여 아버지 은혜를 잊고 있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비록 지상에서는 가난과 괴로움 속에 허덕이며
 천국을 잊고 있지마는,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길을 인도하여 주옵시고
 심판의 날에는 주의 반열에 들게 하소서.
 우리에게 천국이 임하게 될 때에 저희 죄인들은…….”

“집어치워! 그 죄인, 죄인 하는 소리 기분 나쁘니까.
 요즘 세상에 옥황상제라두 귀찮아.”

강씨 처가 고함을 쳤지만, 삼촌의 기도는 잠깐 멈칫했을 뿐
그치지 않았다.

"저희 죄인들은…… 모두 회개하여 참사람이 되어서 주의 영광을
 찬송할 겁니다. 우리가 불행함은 죄인이기 때문임을 잘 아나이다.
 지금 공장에 나가 야근을 하고 있는 근호와, 이 집 가장에게
 은총이 늘 함께 하시고, 미순이가 잉 태한 생명에게도 복을 주셔서…….”

할 때에 미닫이 너머에서 끅, 하는 소리가 들렸고, 강씨 처도 잠잠해졌다.
기도가 계속되었다.

“모두 하나님 자녀 되게 해주소서. 거듭 바라옵건대
 우리가 유황불이 타는 지옥에 들어가지 말게 하시고 주의 은혜로써
 진리와 소망에 살기를 바라나이다. 부족한 죄인 아무 공로 없사오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기도가 그쳤다. 방안에는 죄인, 천국, 지옥 하는 말들로 인해서
갑자기 나른하고 달착지근한 슬픔과 기대가 가득 차는 것만 같았다.
미닫이 뒤에서 가슴을 죄고 있던 미순이는 가슴이 후련했고,
강씨 처는 어쩐지 억울한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삼촌은 아직 경건한 자세를 풀지 않은 채, 페이지마다 색연필로
가득히 줄쳐놓은 성경을 이장 저장 뒤적이며 속으로 읽었다.
벽에서 낡은 괘종이 여덟시를 쳤다.
그 옆에 퇴색한 옛날 사진들이 끼워진 액자가 붙어 있고,
근호가 갖다붙인 화장품회사의 선전용 달력에는 비치는 속옷 바람의
여자가 가랑이를 벌리고 있는 사진이 들어 있었다.
낮은 책상 위에 일본어 교본, 네 귀퉁이가 다 닳은 경제원론이라는 책,
그리고 무협소설, 카네기 자서전, 성공의 비결 등이 꽂혀 있었다.
야외용 전축과 겸한 라디오가 낡은 구식 장롱 위에 있는데,
강씨 처는 기분이 날 때마다 전축의 볼륨을 있는 대로 틀어놓는 것이었다.
오르간으로 연주되는 흘러간 옛노래가 냄비에서 죽이 끓는 듯한
소리를 내며 흘러나왔다. 이 물건은 장씨가 고물상에 넘기지 않고
그의 처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강씨 처는 도무지 음악에 신명을 올릴 기분이 들질 않았다.
미순이가 죽이고 싶도록 밉고 불쌍했으며,
자라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잘못은 모두 어머니인 자기에게
있는 것 같았다. 밤 바람이 차갑다고 느낀 강씨 처는 천장 쪽으로 트인
창문의 줄을 요란하게 닫고는 또 한번 한숨을 내리쉬었다.
아까보다도 훨씬 가라앉은 표정이었는데,
워낙 성질이 대장간 쇠토막 같아놔서 잘 달고 쉽게 식었다.
그 여자는 오십이 가까웠어도 얼굴 피부가 팽팽하고 아직 몸매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강씨 처가 혼잣소리로 탄식했다.

“모두 내 잘못이다. 잠깐 눈이 뒤집혀서 저 팔푼이 같은 두상한테
 개가했지.”

그 여자가 강씨를 만난 것은 천안에서였다.
그 여자는 대부섬 마을에서 풍랑으로 남편을 잃고 나서
천안에 정착했었다. 혼잣몸으로 근호와 미순이 남매를 데리고
살아가기 힘겹던 그 여자는 열차에서 개피떡 장사를 했다.
강씨 쪽도 아직 근력이 좋던 때라 역전 수화물부에 있었다.
공안원들을 피하느라고 개구멍을 드나들던 떡장수 여자와 수화물 창고
인부가 어느 결에 눈이 맞았었다.
강씨는 원래 오쟁이를 졌던 남자여서 여자에 주눅이 많이 들어 있었다.
보통 홀아비라도 모르는데, 그런 지경이었으니 아직 교태가 남아 있던
과수댁에게 홀딱 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서울에 올라온 것은 막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이었다.
워낙 생활력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빈손이었는데도 강씨네 식구는
재빨리 서울생활에 적응해왔던 것이다.
멍청히 앉아 여러가지 생각에 잠겼던 강씨 처는 되도록 온건하게
딸을 불렀다.

“미순아, 좀 건너와라.”

“니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한 미순이가 머리를 가슴팍에
푹 처박고 골방 문턱에 엉거주춤 앉았다.

“너 어쩔 작정야, 애를 그냥 낳을 거냐?”

미순이는 치마 끝을 쥐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릴 뿐 대답이 없다.
강씨 처가 재차 물으면서 미순이의 턱을 치켰지만,
미순이는 다시 고개를 떨어뜨린다.

“안되겠다. 이따 네 오빠하구 상의해서 낼 같이 병원에 가자.”

강씨 처는 아직 어리기만 한 딸의 가냘프게 여윈 얼굴과 누가 보더라도
쉽게 알아챌 정도로 볼록이 불러오른 아랫배를 내려다보며
눈물을 손가락으로 찍어냈다.

“육개월이 채 못되었다니 손을 쓸 수 있을 거다.”

미순이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싫어요.”

“애비 없는 새낄 낳아서 어쩌겠다는 거야.”

“있어요.”

“있으면 내 앞에 나타나얄 거 아냐. 사실이 이러저러 됐으니
 성혼을 시켜달라든가, 형편이 안되면 얼마를 기다리라든가,
 무슨 기별이 있어야지. 벌써 그 꼴루 비루먹은 암캐처럼
 기어들어올 때부텀 싹이 노랗더라.
 근호가 보면 널 죽이겠다고 길길이 뛸걸.”

성경을 들여다보던 삼촌이 곁에서 참견했다.

“누님, 어떻게 멀쩡하게 산 애기를 죽입니까?”

“넌 참견 마라, 그것두 나오면 입이라구……
 살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래.”

“미순이가 찾아왔길래 전 놀랐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물어봐야 말을 해야죠. 울기만 하니 말예요.
 아마 둘이서 살다가 헤어진 모양입니다.”

강씨 처가 미순이에게 다그쳤다.

“그 녀석하구 헤어진 거냐, 어떻게 됐어?”

“군대 갔어요. 운전기술 배워갖구 제대하면 결혼하재요.”

“너 그놈 아니면 안되겠니?”

미순이가 어머니의 기분은 염두에도 두지 않고 염치좋게 말했다.

“잘 몰라요. 성깔은 착하지만, 건달이에요.”

강씨 처는 미순이의 머리를 쥐어박고서는 한숨만 내리쉴 뿐이었다.

“하는 수 없다. 서둘러서 결판을 내야지. 애를 떼든가,
 아니면 그놈에게 편지를 보내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책임질 위인이 못돼요.”

“우선 이 몸으룬 안되구.”

“애를 길러줄 사람한테 시집가야겠어요.”

삼촌이 무릎을 쳤다.

“잘됐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아 시끄러워요. 남은 지금 복창이 터져 죽겠는데.”

미순이는 이제 완전히 달관해서 아무래도 좋다는 몰골이었다.
그 여자는 눈물만을 몇 방울 찔끔거리다가 말았을 뿐,
사실상은 제 어머니보다는 덜 상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키는 대루 할래요.”

“어이구 장하셔라. 미친년!”

강씨 처는 속으로 어림 계산을 해본다.
아무리 애를 써서 형식으로 치른다 할지라도 삼사만원은 들 것 같았다.
더군다나 미순이가 도망갈 때 일수를 이만원이나 얻어갔으니
그 돈 갚고 혼사 치르려면 오만 원은 족히 들 것이었다.
또한 몸을 풀 때까지는 전에 나가던 가발공장에도 못 나갈 테니
먹여줘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이걸 데려가는가 하는 것이었다.
근심이 가시는가 하자 새로운 걱정거리가 무더기로 밀려들었다.

“이래저래 큰일이로구나. 일수 얻어다 뭐에 썼어?”

“사글세 방 하나 얻었어요. 다 까구 만원 남았든 거……
 그이 군대간 뒤 한달 동안 내가 먹어버렸구요.”

“차라리 뒈어지기나 했으믄, 내 속이 편하잖아.”

강씨 처는 다시 근호가 이달 안에 얼마를 들여올까를 계산했다.
이번 달에는 야근이 많았으니까,
못 받아도 일만사천 원쯤은 받을 것이었다.
강씨가 매일 들고 들어오는 돈으로 먹는 건 이럭저럭 밀가루와 보리로
적당히 때우기로 하고 골방에 자취 손님이라도 들여야겠다고
작정을 해보았다. 그러나 제 마음대로의 작정뿐이었지
막상 돈이 필요한데 살아가는 일들이 틀림없이 맞아떨어지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었다. 이런 때, 친정붙이라고 하나 있는 삼촌이라도
조카 혼사에 보태라며 돈 만 원쯤 내놓으면 얼마나 자랑스러우랴 싶었다.
강씨 처가 삼촌의 성경책을 집어서 그의 코앞에다 들고 흔들었다.

“먹고 나서 예수고 뭐고지, 허구헌 날 산속 기도원에나 백혀 있으믄
 세상이 뒤집어지는 줄 알아. 이거 빨리 청산해야 너두 돈 좀 만질 거다.”

“누님두…… 뭐 내가 못할 짓 하는 겁니까.
 내 실성기가 나은 게 모두 하나님 탓입니다. 내달부터는 기도원 운영을
 내가 맡기루 되어서 생활비가 월 삼만원씩 나오게 됩니다.”

“말은 좋다. 내 땅변이라두 낼 테니, 너 이번 혼사에 만원 보태줄래?”

“전도사 어른께 미리 말씀드려보지요.”

“얘, 행여나 돈이 나오겠다. 거기 가서 엎드려 비는 이들이
 전부 속 답답하거나 못살아서 죄진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 갖다바치는 걸루 네게 줄 돈이 차례나 오겠다.”

“아녜요. 요샌 오히려 그런 쪽이 경제가 낫습니다.”

어쨌든 강씨 처는 마음을 정하자마자 한결 근심이 덜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날마다 죽을 둥 살 둥 하면서 그래도 가난 때문에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야 할 위기를 몇 번이나 넘기면서도
용케 살아나왔던 것이다.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으니까 ……
어떻게든 되겠지. 강씨 처는 막연하게나마 딸의 혼사를 치르기로
작정은 했으나, 뱃속의 아이가 무엇보다도 큰 걱정이었다.
그렇지만, 애비 없는 자식이니 낳게 할 수는 없었다.
그 여자는 부엌으로 내려서며 혼자 중얼거렸다.

“언제는 돈 있어서 살았냐, 속아서 살았지.”
 
2
 
하천 건너편 빈터에서 모닥불이 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사과상자를 패어 살려놓은 불이었다.
이미 캄캄해진 공장부지의 들판 가운데서 불길이 기세 좋게 타올랐다.
쓰레기더미와 이곳저곳에 어른 키 만큼 자란 잡초가 불빛에 드러났고,
불 주위에 모인 마을 남자들의 법석 대는 소리와 낄낄거리는
웃음, 콧노래들이 들려왔다.
연기가 그치고 고운 화염이 솟아오르자 그들은 개를 불 위에 얹고
그슬리기 시작했다. 불이 있고, 술과 고기가 있으니,
그 주변은 자연히 싱싱한 활기가 돌게 마련이었다.
모여선 어른들은 서리를 끝내고 돌아온 짓궂은 시골 소년들처럼
킬킬 대며 농지거리들을 주고받았다.
아낙네들도 이런 저녁마다 시큰둥해서 풀이 죽어 있던 동네 남자들
사이에 쾌활한 모임이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대견스레 구경했다.
여자들은 하천 건너편에 남아 있었지만 극성스런 아이놈들이
벌써부터 건너와 어른들 뒷전에 살살거리며 모여 있었다.
개털이 타는 노린내가 불가에 가득 찼고,
붉은 불빛이 그들의 벗은 몸과 얼굴에서 일렁였다.
모인 사람들은 대략 칠팔 명쯤 되었는데,
강씨의 공로에 대해서 한 마디씩 치사를 잊지 않았다.
막걸리도 한 바께쓰 갖다놓았는데, 모두들 술값을 추렴들을 했기 때문에
고기를 기다리는 일이 떳떳했다.
왕이 가져온 쇠솥에서는 더운물이 펄펄 끓고 있었다.
마른 나무가 타는 소리가 들리고, 까맣게 그슬려진 개의 피부에서
기름이 번졌다. 사람들은 기와공장 아랫동네에 관한 얘기를 했다.
오늘은 한 점의 불빛도 보이지 않는 그쪽의 허허벌판을
그들은 가끔 두려운 듯이 바라보았다.
안경을 쓰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반장이 말했다.

“저쪽 동네는 오늘 낮에 모두 뜯겼는데 우린 참, 운이 좋았지요.
 구청 직원 말이 우리 동네는 생겨난 지가 십년이 넘으니까,
 권리금이 나올 거라 그겁니다. 내년까지는 아무 탈이 없을 거요.”

“이 동네가 어떻게 생겨난 동네라구. 공장 질 때, 거기 나가
 기초공사를 했던 사람이 전부란 말야.”

“뜯겨난대두 가구당 오만 원 씩은 나온다 그겁니다.”

“젠장, 뜯겨두 좋겠구먼 뭘.”

“이 친구 정신없는 소리 하네. 돈 오만원하고 저 궁궐 같은 집을
 바꾸잔 말야?”

“딴은 그래. 우리 네한테는 궁궐이지.”

그들의 등 뒤에서 자전거 벨 울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키가 크고 허우대가 건장한 남자가 뒤에다 함지 등속을
서너 개 포개어 싣고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나는 빼놀 셈인가, 이 작자들아.”

“덕배 잘 왔네. 술 장사가 술을 내얄 거 아닌가.”

“오늘은 그 포장마찰랑 때려치우구 여기서 보신이나 하게그려.”

덕배라고 불리는 사내는 자전거를 세우지 않고, 허벅지로 받친 채
반장에게 물었다.

“어찌 됐습니까? 얼핏 들으니 가구당 오만 원으루 책정되었다든데……”

“언제 뜯길진 모르지만, 올해 안으론 별일 없을 걸세.
 이게 모두 내 덕인 줄이나 알게.”

반장이 자기 가슴을 툭툭 두드려 보였고,
덕배는 이마에 흘러내린 땀을 손등으로 걷어서 뿌리며 잠깐 생각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됩니까. 우리 집에 세를 놀까 하는데,
 나갈 때 그 사람들두 오만 원을 받는 겁니까?”

“그러니까, 미리 타협해서 계약을 해야지.”

“계약 좀 같이 해주쇼. 내일 사람이 온댔는데.”

“입회해달라 그 얘기로군. 한턱 내게나. 해줄 테니.”

“예, 저는 반장님만 믿구 있겠습니다.”

“여보게 덕배, 우리 집에두 방이 하나 비는데 말이지…….”

강씨는 일숫돈을 아무래도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났으므로 말을 꺼냈다.
아내와 다투고 나오긴 했지만 내심으로는 미순이의 그런 꼬락서니에
약간의 가책 이 느껴졌던 것이다.
실상 그들 남매에게 정을 보여줬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덕배에게 말했다.

“자네는 길가에서 사람 상대가 많으니 하는 말이네.
 우리두 좀 구해주게.”

“가만있으슈. 그 사람이 오면 연줄이 닿을 테니까.”

“뭣하는 작자들일까…….”

“뭣하긴…… 예서 방 구하는 게 전수 촌에서 올라온 공원 지원자들
 아닌가.”

“어 그렇겠구먼.”

“집이야 저 정도면 촌놈들께 이만 원은 받아야겠지?”

“이 녀석아, 너는 촌놈 아냐?”

“말 말어. 내 수돗물 먹은 지가 벌써 육년째야.”

“저건, 시내 지리두 아직 잘 모르면서·…‥
 인석아, 여긴 촌 아닌 줄 알어? 보리 깡촌이라구.”

덕배는 동네 사람들의 법석대는 농담을 뒤에 두고,
자전거를 밀면서 빈터를 지나갔다.
아직 밭고랑의 흔적이 남아 있는 길이라서 몹시 울퉁불퉁했다.
자전거 바퀴가 걸려 주춤거릴 때마다 덕배는 혼자 씨부렸다.

“옘병할, 병신 같은 년!”

오밤중에 모자라는 국수를 삶아오라니 짜증이 안 날 수가 없었다.
하긴 요즘 들어서 장사가 잘된다는 얘기이기도 했지만,
무슨 놈의 여편네가 준비성도 없느냐는 것이었다.
해삼도 그냥 상해버릴 것을 함지 가득히 받아다가 손해만 봤고,
순대도 반나마 버렸는데 국수는 야근자들이 부쩍 찾는 걸 알면서도
적게 준비했던 것이다. 그는 둑에 걸쳐놓은 나무판자의 다리를 건너서
한길로 올라섰다. 널따란 아스팔트가 좌우로 뻗어나간 길이었다.
양쪽에 가로등이 휘황했고, 공장들이 줄지어 있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빈 길 위에 가득 차 있었다.
덕배네 포장마차는 공장 건물들이 그치고 상가가 나오는
짧따란 번화가의 끝에 있었다.
복개되지 않은 개천 위에 통나무와 널판자로 자리를 만들어
그 위에 터를 잡아놓은 것이었다.

“뭣허다가 인제 나타나는 거유.”

자전거를 포장 뒤에 세워놓은 덕배의 등덜미에서 그의 처가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방금도 두어 패나 놓쳤단 말예요. 근데 큰놈 안 갔습디까?”

“못 봤는데.”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또 만화가게서 텔레비에 눈을 박구 있는 가봐.
 이놈 새끼 나타나기만 했다봐라.”

덕배는 끌끌, 혀를 차고는 홧김에 국수 함지를 쿵 소리나게 내려놓고
포장 안으로 들어갔다. 막걸리를 들이켜고 있던 사내가
술잔을 들어 보이며 아는 체를 했다.
트랜지스터 행상인 그 사내는 날마다 덕배네 포장마차에서
저녁 술을 걸치고 갔다. 덕배도 맞받아 끄덕이며 멋쩍게 말했다.

“네 네 오셨군. 마누라쟁이가 극성이라서……”

“먹구사는 게 다 그렇지요.”

“암, 말 잘했수. 먹구산다는 게 시끌법석하죠. 오늘은 좀 늦으셨어.”

“어유, 정말 한 백리는 걸었을걸.”

행상은 성근 수염이 자라난 턱을 내리쓸었다.
그의 얼굴은 언제나 침울해 보였다.
몇 달 전보다는 덜 심각해 보였으나, 아직도 표정이 어두운 편이었다.
덕배는 남자들의 얼굴에 깃들이는 실업의 무기력하고 불안한 표정을
잘 알고 있었다. 행상은 지난봄에 출감한 사람이었다.
그의 말로는 별게 아니라지만 하천 건너편 동네 사람들의
뒷소문에 의하면 실성기가 있는 여편네를 칼로 찔렀다는 것이었다.
덕배는 되도록 그가 술을 많이 마시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는 어쩌다 신이 나면 예전의 서기 시절을 떠올려
허풍을 떠는 적이 있었다.
덕배는 지금쯤 그의 동네가 허허벌판이 되었음을 알고 있었으며
그래서 도무지 불안하기만 했다. 덕배는 오늘따라,
그의 안주 접시 위에 튀김 두어 개가 얹혀 있는 것을 보고는,
꼴뚜기를 썰어서 얹어주며 말했다.

“피곤할 텐데 얼른 집에나 가보슈.”

“가봤자…… 지긋지긋하게 찌는데, 여기서 쉴랍니다.”

“오늘 동네서 난리 안 났습디까? 당신은…….”

하는 아내의 옆구리를 쿡 찔러놓고
덕배는 공연히 신탄진 한 개비를 권했다.

“무슨 난리요?”

행상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덕배가 말했다.

“아니…… 거, 저 뭣인가…… 물난리겠지. 날이 가물어서 원.”

덕배의 처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연방 투덜대면서 들어와
둘렀던 앞치마를 풀었다.

“내 요놈의 새끼를…… 가게 좀 봐요.”

“내비둬.”

“허라는 공분 않구, 맨날 텔레비에다 만화에다…… 어이구, 지겨워.
 어디 그뿐야, 툭하면 돈 통에 손을 넣는단 말여요.”

덕배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식 가르치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내 어떻게든 큰놈은 갈켜서
 펜대 잡게 만들려구 허오만…‥ 나두 중학교까지 나왔는데 요 꼴이니.”

월부 통장의 입금란을 따져보고 있던 행상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덕배의 아내가 부리나케 나가면서 외쳤다.

“공장 애들 오면 장부 보구선, 지난 달치 떡값 받아놔요.
 내 빨리 댕겨 오께.”

“어, 저 여편네가…… 어이, 야!”

“국수 하나 말아주오.”

쫓아나가려는 덕배 앞으로 어느 노인이 들어서자,
덕배는 하는 수없이 도로 들어왔다. 노인은 손잡이가 달린 숫돌대와
접는 의자를 메고 있었다. 칼이나 가위를 갈아주는 업인 모양이었다.
덕배가 국수를 마는 동안 노인은 한참이나 찹쌀떡이며 인절미 등속을
바라보다가 동전을 꺼냈다.
그러곤 여러 번 동전을 헤아려보고 나서 말했다.

“저 인절미 한개 얼마요?”

“예, 십원인데요. 두어 개 잡수시면 밥보다두 든든합죠.
 끼니 때우긴 찹쌀이 젤이니까.”

“꼭 하나만 주.”

“앗씨, 죄송함다.”

하는 걸쭉하게 쉰 음성과 함께, 더벅머리에 요란한 무늬의 셔츠를 입은
스물 남짓한 청년이 들어섰다. 덕배가 건성으로 받았다.

“어이, 근호가 웬일야.”

“네에, 그렇게 됐음다. 한잔 걸쳤음다. 앗씨, 나 술 좀 주슈.”

“많이 걸친 거 같네.”

탐탁치 않게 말하면서 덕배는 그제야 근호가 왼손을
온통 붕대로 싸감은 것을 발견했다.

"왜 또 손은 그래? 싸웠구만.”

"예? 아, 이거·…… 한판 벌렸수.”

“귀한 자식이 엄닐 생각해서락두 피해야지…… 이 사람아,
 자네 누이가 왔는 모양이야.”

막걸리 주전자에 손을 뻗치던 근호가 잠깐 주춤했다.

“누가요? 앗씨, 누가 왔다구?”

“누구긴…… 미순이 말야.”

근호는 상을 잔뜩 찌푸렸다가, 다시 고개를 좌우로 거세게 흔들었다.
잠시 멍하니 제 발밑을 내려보다가 아까보다는 가라앉은 태도로
술잔을 기울였다. 노인에게 국수를 내주고 나서 덕배는 행상에게 물었다.

“하루에 얼마나 올리쇼.”

“뭐…… 돈 천원 나올까요.”

“야, 그거 괜찮은데.”

“괜찮은 날은 그렇지요. 장마가 낀데다 날씨가 더워서 어디…….”

“나두 왕년에 해봐서 잘 아는데, 이런 때 양산이나 해보지 그러쇼.
 외상 주면 부인네들 시샘해가며 산단 말야.”

“양산 같은 건 호랑이 담배 먹을 적 얘기요. 유행이 다른데.”

“세월이 그렇게 됐군. 내 한 이백 올려봤수.”

“한참 좋았구먼요.”

덕배는 자기도 술을 따라 한잔 들이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참 씨팔…… 드러워서, 요 꼴이 될 줄 누가 알았나.”

하면서 덕배는 아직도 고개를 숙인 채 뭔가 궁리중인 듯한
근호의 머리통께에다 대고 말했다.

“나 허풍이 아니야. 이백…… 정말 돈 벌리기 시작하니까
 정신이 없더구만.”

행상이 건성조로 감탄하며 맞장구를 쳤다.

“찬스지, 찬스. 그것만 잡았다 하면 돈 버는 거야 무섭죠.”

하는 쪼가 자기도 왕년에는 수천금 잡았었다눈 태도였다.
노인도 그들의 얘기 에 솔깃해졌는가 보았다.

“현금으로?”

“빠다라시 은행권이죠.”

“그래 얼마 동안에 잡었소?”

덕배가 신이 오르기 시작했다.

“한철, 여름 한철이라니까. 좌우간에 첨에 나 혼자 뛰다가 밑천은
 내가 대구 종형에다 처남까지 손잡구 했었다 그 말요.
 딱 벌어서 그걸루다 안전한 장사를 하는 건데 말이지…….”

덕배가 자기의 이마를 때리고 나서,

“내가 서울 요리를 알았어야지. 서울 와서 뭘 했겠소.
 내 곰곰이 생각을 해봤단 말야. 장사에는 머리다, 머리를 쓰는 거다.
 자본 있겄다, 기운 팔팔하겄다, 가만 생각해보니,
 서울에 노인네 없는 집이 없겄어. 이 양반들 출타하려면 지팽이가
 있어얄 거란 말요. 그 왜 절간이나 놀이터 앞에서 팔잖습디까.
 자본을 몽땅 들였지. 매일 지팽이를 백여 개씩 깎아다가
 애들까지 고용해서 보냈다 그거요. 원 이런 병신에…… 우라질,
 서울이 묘하더구만. 노인네가 어딜 보여야지.
 그러니 요놈 지팽이가 불쏘시개보다두 못하게 되어버렸다 그 얘기요.”

국수 국물을 마시던 칼갈이 노인이 말했다.

“듣구 보니, 머리 한번 잘못 쓰셨어. 한꺼번에 벼락금을 만지려면
 도적놈 심보를 가져야지. 그러게 촌놈은 땅이 제일이오.
 지팽이란 게 촌사람 생각이지. 나두 자식이 둘 있소만,
 내 모가치 벌지 않곤 이런 대처선 못 살아요.”

덕배는 이왕 얘기로 기분도 냈겄다, 발동이 걸렸으니
술이나 푸짐히 먹고픈 생각이 들었다.
그는 거의 반 되 넘어 마셔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에, 포장 사이로
소녀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힐끗 들어왔다가 나갔고
밖에서 재깔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들이 많어 얘.”

“어떠니 뭐 ……먹는 게 숭이니?”

덕배가 재빨리 쫓아나갔다. 철야에 들어가는 여공들이
요기를 하러 와 있었다. 고만고만한 또래들이었다.
요런…… 새끼조개를 보게, 하면서 덕배는 그중 반반하고 얌전하게 뵈는
쌍갈래머리의 등을 밀었다.

“아가씨들 들어오쇼. 내 푸짐하게 국수 말아줄 테니.”

“떡두 있죠?”

“떡이란 떡은 다 있지. 내 솜씨가 제법 맛을 낸다구.”

“아이 더러워라.”

“예끼, 노상 물에다 담근 손인데.”

“아저씨 언제 소변 봤어요?”

“나는 뒷짐지고 일 보는 사람이라구.”

어쩌고 하면서, 덕배는 벌겋게 된 얼굴에 흡족한 웃음이 가득해서
소녀들을 앞세워 들어왔다. 그들이 들어서자,
갑자기 비좁은 포장마차가 탱탱한 공처럼 터져나갈 것 같았다.
그들은 우선 국수부터 한 그릇씩 먹어대고 나서,
떡을 집어먹으며 지껄이기 시작했다.

“나 이번 달두 적자야. 큰일났어, 얘.”

“공장 관둘까봐. 언제나 견습 면하구 사원 돼보나.”

“고향엔 이젠 못 간다. 늬들 갈 수 있다고 생각해?”

“앞으로 몇 년만 참으면, 기술이라두 배우잖어?”

“기술 좋아하네. 그런 게 기술이면 밥짓는 것두 기술이구
 연애하는 것두 기술이겠다, 얘.”

“그러엄, 기술이지……잘만 물어봐.”

“홀에나 나갈까, 아니면 놈씨나 하나 잡을까.”

“공돌이?”

“걔들은 안돼. 십년 지나야…… 겨우 반장쯤인걸.”

그때, 도구를 챙겨 메고 밖으로 나가던 노인이 투덜거렸다.

“온·…‥ 천하에 못돼먹은 년들 같으니. 내외할 줄두 모르구,
 버젓이 밤중에 쏘다니면서 상소리나 해? 그저 내 딸년 같으면
 다리몽갱이를……

“어머나아!”

여공들이 일시에 소리쳤다. 덕배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
한손은 저으면서 노인이 나가는 걸 지켜보고 나서 말했다.

“영감네들야 모두 저렇지. 그저 옛날 생각이나, 아니면 촌에서
 마실 댕기던 대루 여긴단 말야.”

술 마시기를 그치고 생각에 잠겼던 근호가 말했다.

“노인네 말씀이 맞을지두 모르겠는데.”

“뭐예요?”

“아니, 댁들이 꼭 그렇대는 건, 아니지만…… 이놈의 동네,
 어딜가나 다 그렇지. 댁에들 솔직히…… 말만 잘하믄 주는 거 아니냐
 이거지. 내 얘기는……”

“여보세요, 댁이 시방 누굴……

“히야까시 하느냐구.”

“주긴 뭘 줘.”

“아저씨, 애인 하나 소개해줘요.”

점점 들까불기 시작하는 여공들을 둘러보며
덕배는 게슴츠레해진 눈으로 말했다.

“내가 어때?”

주로 되바라진 말만 내뱉던 여공이 계획적으로 보이도록 아양을 부렸다.

“너무 늙어서 안되겠어요.”

“누가 우리 방세 좀 안 내주나?”

“그보담 오늘 먹은 거 짜악, 빈대 잡을 수 없으까요?”

근호가 취기가 적당히 오른 목소리로 참견했다.

“씨팔, 나두 돈 있다 이거야. 나하구 데이트합시다.
 오늘 쑈 들어왔든데.”

여공들은 뭔가 ‘프라이드’가 상했다는 얼굴로 새침해졌다.
제일 나이가 많은 듯한 얌전한 쌍갈래머리가 물었다.

“지금 몇시나 됐어요?”

“쌍년들 통빡 죽이구 있네.”

근호가 씨부렸고, 덕배는 시계를 보느라고
팔을 크게 휘두른 다음에 말했다.

“아홉시 십분 전.”

“나훈아 쑈가 들어왔든데, 내일 비번인 사람 같이 갑시다.”

근호의 말에 여공들이 일시에 샐쭉해졌다가,
되바라져 보이는 여공이 내쏘았다.

“딴데 가서 알아봐요.”

밖에서 누군가 덕배를 불러냈는데, 경관의 모자와 유니폼이 힐끗 보였다.
덕배는 갑자기 얼굴이 굳어져서 밖으로 나갔다.
여공들이 다시 지껄이기 시작했다.

“얘, 우리 날마다 몸 뒤지는 키 작은 경비 녀석 있지?
 엊저녁에 나더러 배드민턴 치러 가자구 꼬시더라.
 밤에 뭐가 보이니 글쎄.”

“너 지지난달에 제품부에 들어온 명자 알지? 걔는 요새 생활비가 딸려서
 여관에 출장나간대. 고게 공장 와서는 혼자 얌전을 다 떤다구.
 누가 봤다면서 슬쩍 찔렀더니,
 화장실루 데려가서 울면서 사정을 하더래, 얘.”

“김 기사 있지? 얼마 있으면 일본에 기술 배우러 간대.”

“그치 꼬시는 수법이 그래, 얘. 반반한 여직원들한테는
 꼭 그 얘기부터 한대.”

“나두 일본말이나 배웠다가, 본사에 가봤으면.”

“우리 같은 건 본사 직원 근처엔 얼씬두 못해. 검사과에 있는
 미쓰 박이라구 홀쭉한 애 있잖아. 와다나베인가, 와리바신가 하는
 꼰대하구 살림 차렸대.”

“와다구시노 공순이노 도오꾜노 사요나라.”

깔깔대는 여자들 틈에 시큰둥해서 앉아 있던 근호가 갑자기
요란하게 노래를 시작했다.

“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절씨구 씨구씨구 들어간다.
 서울 못 보고 죽은 귀신 어디에다 묻어줄까.
 서울 못 보고 죽은 귀신 역전 앞에다 묻어주지.
 공돌이 각설이 들어간다.”

여공들이 귀를 막았지만, 근호는 붕대 감은 손을 휘저으며
진짜 알깡패처럼 악을 썼다.

“공부 못 하고 죽은 귀신 대학교 앞에다 묻어주고,
 돈 못 쓰고 죽은 귀신 명동 입구에다 묻어주고,
 춤 못 추고 죽은 귀신 호텔 앞에다 묻어주고,
 책 못 보고 죽은 귀신 만화방 앞에다 묻어주고,
 등산 못 가 죽은 귀신 야호 앞에다 묻어주고,
 장가 못 가고 죽은 귀신 종삼에다 묻어주고,
 술 못 먹고 죽은 귀신 무교동에 묻어주고,
 휴일 없이 죽은 귀신 예배당 앞에 묻어주고,
 자가용 못 타고 죽은 귀신 양옥집 앞에다 묻어주고,
 쪼꼬레또 못 먹고 죽은 귀신 월남에다 묻어주고.
 밥 못 먹고 죽은 귀신 밥솥에다 묻어라.
 공돌이 각설이 들어간다. 어, 시끄럽다 각설아, 한푼 줄게 꺼져라!”

근호가 처음부터 되풀이하기 시작했을 때, 덕배의 머리가 포장 안으로
쓱 들어오며 고함을 쳤다.

“야, 거 조용하지 못해? 철딱서니없는 자식.”

여공들이 우르르 몰려나갔다. 밖에서 덕배는 한손을 뒷덜미께에 얹고
연방 고개를 끄덕이며 섰고,
경관이 낮은 목소리로 뭔지 훈계하는 참이었다.
덕배의 처가 볼이 퉁퉁 부어오른 아이놈을 몰고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경관은 사람 눈이 많아져서 재미가 적다고 느꼈는지 덕배의 등을
툭툭 두들겨주고는 아주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한길을 건너갔다.
덕배 처가 그의 등에 매서운 시선을 보내면서 말했다.

“얼마 뜯겼수?”

어깨가 축 처져버린 덕배가 시무룩해서 말했다.

“이천 원.”

“아이구, 사흘 장사 망쳤네.”

경관이 온 것과 장사 망친 게 아이의 탓이기나 한 것처럼,
덕배 처가 아들의 볼따구니를 쥐어질렀다.
아이가 죽어가는 소리로 악을 썼고, 덕배는 앞치마를 벗어서
땅에다 내동댕이쳤다.

“쥐약들을 멕여서 다 몰살을 시키든지……
 아니면, 예미랄 거 어디 왕서방한테 팔아뻐리든지.
 이년아, 사내가 지키는 걸 알구 와선 손을 내밀잖어.”

그들이 정신없는 틈을 타서 여공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고 있었다.
한참을 떠들다가 그제야 정신이 든 덕배가 마차 안팎을 휘둘러보고 나서
공장 가로를 뛰어 쫓아갔다.
네거리에 이르러 그들이 어디로 뛰었는지를 종잡을 수 없게 되자,
덕배는 방향을 잃고 헐떡이는 숨을 가라앉히며 서 있었다.

“좆겉은 날이네. 여편네가 짱알대니 되는 일이 있어야지.”

그런데 외등의 불빛으로 드러난 어두운 골목 저편의 전봇대 아래로
붉은색이 후딱 지나치는 게 보였다. 잡았구나 싶어져서
덕배는 열이 올라서 그쪽으로 냅다 뛰었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까 작은 발짝 소리가 앞에서 들려왔다.
차츰 가까워지자 덕배는 고함을 꽥 질렀다.

“야, 저엉 달아날래?”

뛰던 여공이 발을 천천히 놀리더니 오뚝 섰고,
질린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그가 옆으로 다가서자
여공이 목을 잔뜩 움츠렸다. 쌍갈래머리의 얌전이였다.
덕배는 다짜고짜로 여공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요놈의 기집 애들아, 돈을 안 낼 테면 이노꼬리라두 잡혀야지……
 당장 파출소루 가자!”

쌍갈래머리가 주저앉으려고 궁둥이를 빼면서 사정했다.

“아저씨, 그런 게 아녀요. 한 애가 산다구 그러구선
 우릴 골탕 멕이느라구 달아났어요.”

“여러 말 할 거 없다구, 돈을 내.”

“정말예요. 내 월급날에 꼭 갚아드릴 테니까 한번만 봐주세요.
 야근 들어가야 해요.”

덕배는 여공의 손을 우악스럽게 잡아끌다가―까짓 거 기백원 되는 걸,
놓아 보내줄까―하는 약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 동네 초창기 시절의 얘기이고,
그래봤자 병신 되는 건 순전히 선의를 보인 쪽일 뿐이었다.

“돈이 없으면 아무거라두 잡혀. 시계 있지?”

“없어요. 벌써 몇 달 전에 전당포에 맡겼는데 찾지 못했어요.”

“집이 어디야?”

“요 너머 간이주택 삼동 쪽에서 자취해요.”

“거기 가자.”

여공이 사정조의 몸짓과 목소리를 멈췄다.
얌전이는 덕배의 손을 탁 뿌리치더니 앞장서서 걸어갔다.
덕배는 머쓱해져서 얌전이의 뒤를 따라갔다.
공장 가로가 끝나고 시장을 통과했지만,
덕배는 이미 마음을 푹 놓고 뒤를 쫓아갔다.
여공의 빨간 티셔츠가 십미터 밖에서도 보일 정도였고,
사실 여공도 치사하게 달아나는 일은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얌전이는 한번도 뒤편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들은 덕배네 동네보다는 겉보기로 한결 나은 간이주택 동네의
비좁고 질척한 골목을 이리 꼬불 저리 돌아서 한지붕 아래 스무 가구는
사는 걸로 뵈는 여공의 숙소로 들어갔다.
긴 복도가 있고 양쪽에 줄지은 미닫이 방안에서 주정하는 소리,
남녀가 떠들며 노래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여공이 열쇠를 따고 안에 들어가서 불을 켰다.
덕배는 공연히 따라왔다고 후회가 되었으며,
어쩐지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들어오시죠. 이거 뿐이니깐.”

얌전이가 헝클어진 캐시밀론 이불을 발로 밀어젖히면서 말했다.
라면상자 위에 냄비 두 개와 그릇들, 세면도구가 놓여 있었다.
벽에 남자와 여자의 허술한 옷가지들이며 앞가슴을 풀어헤치고
노래하는 남진의 사진과 거울이 걸려 있고 방바닥에 재떨이도 있었다.
덕배는 약간 난처했으므로 문턱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실은 나두 이럴 작정이 아녔는데, 하는 짓들이 괘씸해서 말이지.”

여공이 입을 뻐죽하더니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덕배의 코끝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오늘은 앗씨 땜에 야근두 못 들어갔으니까요. 이불 가져가라구요.”

“뭘…… 그럴 거까지야 없구우.”

하다가 덕배는 벽에 압정으로 눌러놓은 작은 종잇조각에 눈이 갔다.

‘삶―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멀지 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현재는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살고 모든 것은 순간이다.
 그리고 지난 것은 그리운 것.’

글씨 끝에 갈매기와 구름을 그려넣은 취미가 제법 그럴듯해서
딴에 뭘 아는 거 같아 보였다. 어쩐지 혼자 떠돌아다니던 때가 생각나서
덕배는 자기도 모르게 문턱에서 방안으로 깊숙이 들어앉았다.

“내…… 그냥…… 얘기나 하다가 가지.”

얌전이는 벽에 등을 기대고 심란하게 앉아서 과거는 흘러갔다,
그러니 어쩌겠냐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덕배가 말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두 한단 말이 있지만, 기술이나 배우구
 슬슬 시집가믄 되는 거지 뭘 그래.”

“시집요? 참 나…….”

얌전이가 곱게 눈을 흘겼다. 여자는 편하게 다리를 주욱 뻗고는
깡총한 치마를 사타구니 쪽에 몰아다 들뜨지 않도록
주먹으로 내리누르고 있었다. 덕배는 허옇게 드러난 허벅지 쪽으로
눈이 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만 했다.

“아 그럼 혼자 늙어 죽을 건가. 한참 좋은 때에·…‥”

“앗씨, 이왕 좋은 일 하려면 한가지만 더 해보세요.”

“무슨 일.”

“우리 방세 좀 내주실래요? 내달에 꼭 갚아드릴게.
 이번 달에는 아파서 꼭 일주일 결근했는데 이렇게 차질이 나잖아요.”

“내가 골이 비었나?”

덕배는 완전히 방안에 들어와 여자와 마주보고 앉았다.
여자는 갈래머리를 풀고 손가락을 펴서는 뒤로 자꾸만 쓸어넘겼다.
훨씬 여자답고 나이들어 보였다.
덕배는 손바닥에 밴 땀을 무릎에 닦으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처녀 방에 웬놈의 사내 냄새가 이렇게 심할까, 원.”

얌전이가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남자 옷들을 힐끗 보고 나서 말했다.

“친구들이랑 넷이서 같이 합숙해요.”

“요 관만한 방에 넷이 누우면 그냥 포개지겠는데.”

“영원히 친구로만 되자구 약속했어요.”

얌전이가 자기 손목에 바늘로 따넣은 잉크의 반점 두 개를 쳐들어보였다.
덕배는 고개를 저었다.

“서루 바꿔 자기두 하는 모양인가. 남자 여자 남자 여자 눕다보면.”

“이 아저씨 인제 보니 우동값 받으러 온 게 아니구……”

여자가 두 팔을 위로 쳐들어 기지개를 켜면서,

“어쨌든 보통 아니셔.”

덕배가 조금씩 다가앉았다.

“나두 가정적으루다…… 불운한…… 사람인데 말이지.”

“아유, 몸살 나시겠네. 이불 갖구 빨리 가세요.”

얌전이가 한쪽 다리를 넌지시 올리고 머리를 갸웃하게 얹었다.

덕배는 깨어가던 술이 한꺼번에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좌우간 오늘 장사 망했다. 젠장할!”

덕배는 발끝으로 거칠게 미닫이를 닫아버렸다. '
 
3
 
악, 악, 악, 뷰티풀 썬데이.

악, 악, 악, 뷰티풀 썬데이.

근호는 행상 사내와 엇비슷하게 비틀대면서 요새 귀에 익은 양곡의
같은 소절만을 연거푸 불러댔다. 그 구절 이상은 모르고,
또한 몰라도 상관이 없었다. 악, 하고 박력있게 끊을 때마다
신이 저절로 돋우어지는 것이었다.

“안 그렇습니까? 형님, 기부운…… 기분으루 산다 이겁니다.”

“조오치! 내 우리집 가서 한잔 더 내지.”

행상이 어깨에다 멘 라디오 짐의 멜빵을 척 치키면서 주먹 을 쥐어
허공에다 결연히 흔들어 보였고, 근호는 손을 홰홰 내젓고
자기 가슴께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아니, 나두 오늘 돈 좀 받았다 이거요. 돈…… 얼마든지.
 우리 시장골목 청주옥에 가서 주물렁탕이나 하다 갑시다.
 악, 악, 악, 뷰티풀……”

그들은 전자제품 조립공장의 창고가 늘어선 철조망 옆으로
비틀대며 걸어갔다. 여러 대의 화물자동차가 서 있고,
반바지만 걸친 몸집 좋은 남자들이 포장된 상자를 나르고 있었다.
철야에 들어가는 여공들이 줄을 지어 서서 작업카드에 확인을 받고
있는 게 보였다. 공장에서 싸이렌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자매로 보이는 두 소녀가 서로 손을 꼭 잡은 채
그들을 앞질러서 뛰어갔다. 창고 앞길을 지나자, 
거기서부터는 외등이 없어서 발끝이 잘 안 보일 만큼 캄캄했다.
행상이 근호에게 물었다.

“그런데 자넨 한달에 얼마나 버나?”

“나요? 칫…… 일당 삼백이십 원 받죠.”

“고걸 가지고 큰소리야. 난 또…….”

근호가 우뚝 섰다. 그는 셔츠 윗주머니에서 두툼해 보이는 봉투를 꺼내어
행상의 코앞에다 대고 흔들었다.

“월급이 아니라구요. 내 손을 좀 보슈.”

근호는 권투선수같이 커다랗게 붕대가 감긴 손을 자랑스럽게 치켜들었다.

“요 꼴 덕택으루 한땡 잡았다 그겁니다.”

“뭐야…… 싸운 건가?”

“씨팔, 사람이나 치구 댕기는 놈으루 아슈? 다첬어요.
 홧김에 술은 마셨지만, 지금은 기분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나두 잘 모르겠수.”

행상이 말했다.

“치료비 받았군.”

“비싼 건지, 싼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손가락 세 개가 짝 나갔습니다.”

“손가락 세 개?”

“그래요. 엄지, 검지, 가운데…… 일렬루 사그리 나갔다구요.
 술을 내가 살 만하잖아요.”

“난 그런 술 못 먹네. 우리집에나 가자구.”

행상이 근호의 겨드랑이에 팔을 넣으면서 낯게 말했다.
근호가 잠깐 뻗대었다.

“우리집 갑시다. 나 혼자 쓰는 방이 있으니까.”

“가출했던 누이동생이 왔대며?”

“아 가진 년, 때려 죽여두 시원찮은 판인데, 내쫓아버리면 되지요.
 두고 보슈. 지금 당장 만나는 즉시루다 머리끄뎅이를 잡아
 태질을 칠 테니까.”

격해서 떠들던 근호가 갑자기 울컥 하더니
허리를 구부리고 발밑에 토했다. 행상은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고,
근호는 쭈그려앉아 자기 입속에 성한 손을 넣고 토악질을 계속했다.

“이 사람아, 여자란 서방 잘못 만나면 신세 조지는 거야.”

근호는 들은숭 만숭 거센 소리로 가래침을 돋우어 뱉었다.
근호가 머리를 흔들고 나서 한숨을 푹 쉬며 일어섰다.

“형님, 지금 뭐라구 그랬소?”

“여자가 불쌍하다구.”

“나두 들어서 압니다. 빵에 갔다가 오셨다지?”

“싸움에 말려들었지. 사실 나는 기업주 쪽에 붙어먹었던 놈이야.”

“이쪽 저쪽·……그런 데 휩쓸리면 저만 손해입디다.”

“가운데서 화해시킨다는 명목이었지만, 진짜는 쇼부쳐서
 얼마 잡아갖구 자립하려구 그랬었지.”

행상이 입맛을 쩍쩍 다셨다.
그의 목소리가 차츰 안으로 기어들어가듯 작아졌다.

“몹쓸 짓이지.”

“돈 벌자는 게 뭐가 나쁩니까?”

“살아보면…… 알게 되네. 자넨 손 다쳐 목돈을 만지니 기분이 좋은가?”

근호는 그제야 붕대 감은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렇다, 운이 약간 나빴을 뿐이다. 그리고 돈이 안 생긴 것보다는 낫다.

“기분이 안 좋으면 어쩝니까, 내 실순걸.”

“얼마 받았는데·…‥”

“한개에 만원씩, 삼만원요.”

삼만원에다, 공장 병원의 치료비 무료, 한달 동안의 노임도
공짜로 나온다고 했다. 그렇게 친다면 높은 사람 쪽도
성의가 없는 건 아니라고 근호는 생각하고 있었다.
근호는 자기가 별로 기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표시하고 싶었다.

“의사는 술 마시면 금방 뒈질 것처럼 엄포를 놓데요.
 치만, 이 묘한 기분에 술두 안 먹구 넘길 재간이 있습니까.”

두 사람은 둑 아래 이르렀다. 행상이 고개를 숙이고 묵묵하게
앞서서 걸었다. 근호가 모처럼 은하수 두 갑을 사서 행상과 자기 것을
나눠 가졌다. 둑을 올라가며 행상이 말했다.

“술은 그만하구 집에 가서 푹 자는 게 좋겠구만.”

“아니, 이제 와서 오리발 내밀기요?”

“그게 아니야.”

그는 걸음을 빨리하면서 말했다.

“가서 쉬라구. 오늘만 날인가 뭐.”

“섭섭한데요.”

근호가 트림을 길게 내뽑았다.
행상은 짐을 바꿔 메고 나서 자기네 동네 쪽인 개천 건너편의
넓은 빈터를 바라보았다. 행상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상한데, 정전인가?”

“형님, 노골적이지 알게 돼서 정말 반갑습니다.
 종종 만나서 한잔씩…… 악, 악, 악, 뷰티풀 썬데이…….”

“덕배씨네 포장서 만나자구. 자넨 얼루 가나?” ¨

“우리 집은 요 둑 아랩니다.”

“거긴 불이 들어왔는데……”

“섭섭함다, 진짜.”

“자아, 또 만나세.”

행상은 개천을 건넜고, 근호는 둑을 따라서 걸었다.
그의 뷰티풀 썬데이 소리에 벌레들이 잠잠해지곤 했다.
근호는 일본의 본사에 텔레비전과 라디오의 박스를 납품하는
하청공장의 목공부에서 공원으로 일을 했다.
그가 하루종일 하는 일이란 합판이나 베니어나 합성수지를
똑같은 규격으로 전기톱에다 자르는 일이었다.
오늘도 언제나 그랬듯이 작업은 여섯시부터였다.
기계를 가동하고 나서 합판을 가로 십오센티 세로 삼십센티로
한 이백여장 잘랐을 때였다. 검사과에서 규격이 틀린다는 전갈이 왔다.
약 일센티 정도의 차이가 난다는 것이었다.
근호는 줄자로 원단에 표시를 한 다음 모범품을 한장 빼내기 위해
톱날 위에 견주어보고 있었다. 평상시의 기계적인 습관대로 근호는
가동 스위치를 밟아버렸다. 앗 뜨거! 하자마자
핏방울이 작업복 위로 뻗쳐왔다. 뒤에서 동료가 그를 잡아당겼다.
아픔보다는 왼쪽 팔뚝 전체에 엄청나게 큰 쇠뭉치의 타격을 맞은 것처럼
저리고 시거운 게 견딜 수가 없었다.

“근호 인제 오냐?”

근호의 어머니였다. 강씨댁은 둑에다 가마니를 깔고,
삼촌과 나란히 앉아 밤 바람을 쐬고 있었던 것이다.
근호는 선 채로 무뚝뚝하게,

“삼춘 왔수?”

하고 나서 강씨 댁에게 대어들듯이 물었다.

“미순이 들어 왔다면서요?”

강씨댁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삼촌이 옆에서 참견했다.

“아뭇소리 말아라.”

“이년을 그냥…….”

강씨댁이 그들을 지나쳐서 둑 아래로 내려가는 근호의 팔뚝을 잡고
매달렸다.

“너는 모른 척하면 된다. 잘돼가는 중인데……너 또 술 먹었구나.”

“잘되긴 뭐가 돼가요?”

“방금 미순이 신랑감이 와서 얘기하다 갔단다.
 미순이한테 말해보겠다구 내려갔어.”

“아야야, 아퍼요. 이쪽 손은 잡지 마세요.”

강씨 댁은 그제야 근호의 손에 감긴 붕대를 발견했다.

“잘헌다. 술 먹구 쌈박질이나 하구 와선…….”

“미순이 신랑이 언 놈이오?”

삼촌이 궁둥이를 털고 일어났다.
그는 항상 조카가 자기를 못마땅해하는 줄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약간 주눅이 든 음성으로 말했다.

“뭐 라든가…… 저 재건대 대장이라나……”

“그럼 왕초노릇 하는 왕씬가 하는 노총각 말이죠?”

강씨 댁이 말했다.

“얘, 그래봬두 고물수입이 엄청나대드라.”

“엄청나봐야 양아치 새끼지 뭐. 어머니, 우린 어엿한 농사꾼 집안요.
 고작, 거지 발싸개 같은 새끼헌테 주려고 미순일 길렀어요?
 어머니하구 걔하군 달라요. 걔는 처녀예요, 처녀.”

근호는 취한 김에 강씨댁의 재혼에 관해서도 빗대놓고 비난을 해 버렸다.
강씨 댁이 말했다.

“처녀? 얘, 말두 마라. 그렇다면 오죽이나 좋아. 홀몸이 아네요,
 홀몸이……”

근호는 팔뚝을 움켜쥐고 둑에 주저앉았다.

“아휴, 쑤셔서 미치겠네.”

“많이 다쳤냐?”

근호는 은하수를 껴내어 한개비 붙여물고 한참이나 멍청히 앉아 있었다.
지금 와서 누이를 패봤자 기분만 나빴지 섭섭함이 가실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수록 어머니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뭐래요, 미순이는…….”

“낸들 아니? 지금 아마 저희끼리 얘기하구 있을 거다.”

근호가 머리통을 흔들어 진저리를 치면서 내뱉었다.

“에이, 쌍놈에 집구석 같으니.”

“너 간죠 탔구나.”

“낼부터 일 안 나가요.”

“혹시 너 해고당한 건 아니겠지. 쌈질한 게 아니냐?”

“손 다쳐서 그래요. 노임은 여전히 나올 테니 염려 마세요.
 그러구요…….”

근호가 윗주머니에서 돈이 든 두툼한 봉투를 껴내어 강씨댁에게 내밀었다.

“돈 받아두슈. 아버지한텐 모른 척하시구요. 알아서 써요, 괜히.”

강씨 댁이 돈을 껴내들고 불안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게·…‥ 웬 돈이 이렇게 많니?”

“삼만원이에요.”

“삼…… 삼만, 어서 났어?”

“손 다쳤다구 회사에서 줬어요.”

“아이구, 고마워라. 이런 때 돈 삼만원! 그러게 도무지
 근심이 안되더라니까. 어쩐지 모두 잘 풀려나갈 것 같더라니.
 잘됐다, 잘됐어.”

“쑤셔서 환장하겠네. 술이 모자란가……”

근호는 부어오르기 시작한 손목께를 주물렀고,
강씨댁은 돈을 코 앞에다 바싹 갖다대고 한 장 두 장 세어넘기고 있었다.
개천 건너 빈터에서 사람들의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고
모닥불 빛이 보였다. 근호가 물었다.

“저기 웬 사람들이야, 뉘 집 제사하나?”

강씨 댁은 돈 세기에 여념이 없고, 삼촌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술 먹느라구 그러지 뭘.”

“얘, 이만팔천 원인데…….”

“아 참, 거기서 내 술값 이천원은 빼구.”

“무슨 술을 이천원어치나 처먹어,
 진작에 왔으면 공술에 개고기루 자알 먹을걸.”

“개고기요? 어서 때려잡았으까.”

“느이 아버지가 황소만한 놈을 얻어왔단다.
 장정들 십여명이 밤새껏 뜯어먹어두 고기가 남을 거다.”

“벌이는 않구, 주책없이…….”

“먹기 싫으면 관두렴.”

근호는 뭐라고 강씨에 대한 불만을 말하려다가 곧 단념해버렸다.
효자보다도 못된 영감이 낫다고 하질 않는가.

“지금 집에 가면, 그 녀석하구 미순이뿐이겠네.”

“그래, 가서 인사나 트구, 분위기 봐서 잘 얘기해줘라.”

강씨댁이 사정조로 타이르자 근호는 한결 성깔이 누그러져서
우물쭈물 말했다.

“쯧, 나야 뭐…… 미순이가 잘되면 좋죠. 허지만 참견 않겠어.
 나갈 때두 제 배 맞아 나간 년인데
 이번에두 자기 배꼽 서는 대루 하겠지.
 한강물 배 지나간 자리라 그건가, 골치 아퍼서 참.
 어머닌 진짜루 혼사 치를 셈이우?”

강씨 댁이 돈을 허리춤에 찔러넣으며 말했다.

“못할 거 뭐 있냐. 그 사람이 달란 말두 먼저 꺼냈으니까,
 내친김에 속히 치를란다. 원한다면 요 삼일 상간에라두 괜찮지.”

“소문나겠수. 애 밴 처녀 팔아치운다구.”

“저 자식이…… 주둥아리루 씨부리면 말인 줄 알어.”

“내 돈 삼만원은 아무래두 결혼 비용으루 나가겠는걸.”

“그래서 억울하냐. 돈 삼만원을 혼사에 보태는 게·…‥
 하나밖에 없는 네 누이동생 아니냐.”

“누님, 근호가 어디 그런 뜻으루 얘기한 겁니까?
 제 스스로가 대견해서 저러지요.”

삼촌이 두 사람의 울컥해진 분위기를 불안해하며 강씨댁을 슬슬 밀어냈다.
근호가 둑 아래로 주춤주춤 내려가며 외쳤다.

“니기미랄, 손가락 세 개 값이란 말예요.”

“저런 동기간에 의리라군 눈곱만큼두 없는 자식.
 까짓 다쳤으면 치료해서 나으면 되잖아. 살림이 이렇게 험악하니깐
 다 때에 맞춰서 이러구러 넘기면서 살아야지.
 야야, 니가 멕여살리면 마부벼슬 얻은 종놈처럼 눈꼴이 시겠다 야.”

근호는 개고기가 있다는 개천 건너 빈터 쪽으로 달아나버렸다.
강씨댁이 한참 욕을 퍼붓다가, 눈물을 찔끔거리며 곧 후회했다.
그러고나서 두 아이를 혼자서 기르던 떡장수 시절의 얘기를 꺼내어
삼촌에게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글쎄 주님만 믿으면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니까요.”

삼촌이 누이의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주며 말했다.

“나두 더 늙기 전에 예수당에라두 나가야 할까부다.”

“잘 생각하셨어요.”

두 사람은 가마니를 말아들고 집 쪽으로 내려갔다.
동네는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아이들과 남자들이 모두 빈터로 가버리고,
아낙네들은 곳곳에서 가마니를 깔고 노숙 잠을 자는 판이었다.
그들은 집의 부엌 앞에 가서 살그머니 안의 동정을 살폈다.
한참 미순이를 설득시키고 있는 왕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그렇습니까? 기러기두 같이 날아가야 한다구,
 우리 외로운 사람들끼리 살아보자 이겁니다.
 나두 안해본 것 없이 갖은 풍파 끝에 서른다섯이 되도록
 마땅한 여자를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허허, 인생이 뭐 중뿔날 거 있겠어요? 아까 돌아오셨단 말을 듣구,
 첨엔 야속하기두 하구 화두 납디다만…… 결심했습니다.
 사랑해선 안될 사랑이지만, 아기야 아무 사람의 애면 어떻습니까?
 내가 애비노릇 하며 같이 키우지요.”

아마도 왕은 자신의 말솜씨에 완전히 취한 것 같았다.

“이래봬두 독수리표 전축에다 흘러간 노래판이 서른 장·…‥
 내 손으루 지은 브로크 집두 있겄다,
 까짓 텔레비에 자개장릉두 들여놉시다.”

강씨 처는 동생을 꾹꾹 찔러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봐, 인제 미순이만 네 하구 대답하면 다 이루어진 혼사라니까.
 내 온…… 세상에 저렇게 번개 같은 청혼은 또 처음 봤네!”

뭔가 낮은 미순이의 목소리가 들리고 껄껄대는 왕의 음성이 들려왔다.

“조옿습니다. 내 아주 동네에다 광을 내구 올 테니깐.”

방문이 떨어져나갈 듯이 요란하게 열리며 벌겋고 흡족하게
웃는 왕의 넓적한 얼굴이 튀어나왔다.
문가에 섰던 강씨 처가 그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이 사람아, 뭐라든가?”

강씨댁은 이젠 마음놓고 하게를 놓기까지 하면서 물었다.

“장모님, 내 이래봬두 왕년엔 팔난봉이었다 그겁니다. 염려 놓으슈.
 내가 아주 오뉴월에 엿가락 녹이듯이 해놨으니까.
 젠장맞을 노총각 장가들기 힘들다.”

그러나 방안에선 기뻐서 그러는지 아니면 이젠 살았다는 안도의 그것인지
궁상맞게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강씨 처가 소리를 꽥 질렀다.

“씨끄러, 복 떨어내지 말구 앉았어.”

“내 그럼 새 기분으루 술 한잔 먹구 오겠습니다.”

왕은 또 껄껄대는 헛웃음을 터뜨리면서 빈터 쪽으로 뛰어갔다.
술판도 이제는 거의 파장에 이르러,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바닥이 드러난 국솥 아래 남은 불티가 까물거렸다.
강씨는 이제 막 두 그릇째의 장국을 비우는 참이었다.
뷰티풀 썬데이를 외치던 근호는 드디어 맨땅에 큰댓자로 떨어져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국솥 주위에는 바께쓰며 양재기들이 나뒹굴어 있고,
제삿집처럼 흥청댔다. 왕이 강씨 앞에 가서 넙죽 절을 하며
호기있게 말했다.

“사위 인사 받으슈.”

춤을 덩실대던 사람들과 소리를 뽑던 사람이 일시에 멈춰 휘둥그레졌다.

“이 사람이 무슨 짓야.”

강씨가 어리둥절하자, 왕은 껄껄 웃어대며 일어나 바께쓰 바닥에
조금 고인 막걸리를 반 양재기쯤 떠서 바치며 말했다.

“아따 놀라시긴, 미순이하구 혼례를 올리기루 되았다 그겁니다.
 장인 술 받으슈.”

“허, 날마다 술 먹게 생겼네그랴.”

누군가 무릎을 치며 말했다.

“좌우지간에, 오늘 우리 동네 경사 만났구먼.”

반장이 앞으로 나섰다.

“경사다뿐인가. 우리가 철거 안된 게 누구 덕인가.
 다 수완 좋아 요로에 진정하구 다닌 내 덕이지.”

“개고기 먹고, 술 먹고, 푸짐하게 놀았고…….”

“차, 미순인 시집 가구 거긴 노총각 면했구려.”

빈터에는 묘한 활기가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불이 모두 꺼져서 쇠솥이 차갑게 식을 때까지
그들은 노래하고 춤을 추고 주정을 했으며 핏대 올려 말다툼도 하였다.
드디어는 하나둘씩 지치고 피곤해져서
야기 때문에 비교적 시원해진 비좁은 방안을 찾아 돌아갔다.
빈터에서 그대로 곯아떨어진 사람들은 식구들이 제각기 찾아와
양쪽 겨드랑이를 받치거나, 질질 끌다시피 해서 데려갔다.
근호는 아직 땅바닥 위에 벌렁 드러누운 채였다.
그의 발치쯤에서 재 속에 남아 있는 불 찌끼가 벌겋게 빛을 내고 있었다.
속치마 바람의 미순이가 개천을 건너서 빈터 쪽으로 걸어왔다.
배가 불렀지만 날렵하게 징검돌을 건너뛰는 모습이 작은 계집아이 같았다.
미순이는 나약하게 신음하며 앓고 있는 근호의 등을 살그머니 흔들었다.
만취한 사내가 노래를 부르며 둑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세대 1973. 9; 객지, 창작과비평사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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