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달 이야기 - 김동리 -

하얀모자 1 2026. 5. 16. 13:43

 

      달 이야기
                  - 김동리 -
 
노(櫓)를 저을 때마다 배는 삐거걱 소리를 내며 검은 물 위로
미끄러져 내렸다. 하늘에는 별들이 유난히 빛나고 있었으나
동쪽 언덕의 울울한 숲 그늘은 칠야같이 강면(江面)을 뒤덮고 있었다.
배에는 무당 모랭이〔毛良〕와 그 친정 조카뻘인 숙희(淑姬)가 타고 있었다.
숙희는 노를 맡고 있었고, 무당은 긴 갈퀴를 잡고 있었다.
그녀들은 그날 밤중이라기보다 새벽녘이 호수에 몸을 던진
달득(達得)의 시체를 건지려는 것이었다.

“바로 요기라요, 득이 오빠 빠진 자리.”

숙희는 노를 멈춘 채 무당에게 말했다.
무당은 대꾸도 없이 갈퀴로 물 밑을 더듬고 있었다.
물론 지금이 처음도 아니다. 달득이 물에 빠졌다는 소문을 듣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든 것은 오늘 이른 아침이었는데 그때부터 이 배는
계속 이 근방에서 맴을 돌고 있을 뿐 아니라,
이곳을 중심하여 이 강변 일대에 갈퀴를 넣어보지 않은 데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도 웬일인지 달득의 시체는 갈퀴 끝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것이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무당과 숙희를 에워싼
온 동네 사람들의 한결같은 의문이었다.
이 강물은 저수지 구실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쪽으로 조그맣게 개울이
나 있었지만, 강물 바닥이 깊어서 시체가 아래로 흘러내릴 수는
없게 되어 있고, 설령 흘러내렸대도
옅은 개울에서 보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결국 강물 밑바닥에 가라앉았다고 보아야 하겠는데
그것이 이른 아침부터 지금까지 갈퀴에 걸리지 않으니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무당은 갈퀴질을 쉬고 숙희를 돌아다보았다.
숙희가 혹시나 잘못 본 게 아닌가 해서였다. 그러나 이것도,
무당뿐 아니라 거의 온 동네 사람들에 의하여 온종일 몇 차례인지도 모르게
되풀이되었던 일이다.
 “혹시나 잘못 본 게 아니냐”, “똑똑히 보았느냐” 하는 따위 의문의
얼굴들에 대하여 숙희는 한결같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틀림이 없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사실 그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고는 그녀밖에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무당은 평소로 아들을 몹시 사랑했지만 일절 간섭이 없는 채,
모든 것을 저의 ‘하는 대로’ 에 맡겨왔던 만큼,
일이 터지자 갑자기 정신 나간 사람처럼 이 사람 저 사람 닥치는 대로
붙잡고 “우리 달이 봤소?” “우리 달이 어딨소?” 하고 돌아다녔다.

“그래, 니가 맨 끝에 만났던 게 언제락 했노?”

무당은 또 숙희에게 같은 말을 물었다.

“…….”

숙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미 여러 차례 되풀이되는 물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당은 혼자서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대담을 들은 모양이었다.
무당은 물을 때마다 스스로 새로운 대답을 듣는 듯한 표정이었다.
숙희가 뭐라고 대답을 하든지, 또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짐자코 있든지
무당은 자기 나름대로의 대답을 혼자서 얻는 듯한 얼굴이었다.

“고모.”

숙희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그리하여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득이 오빤…… 아입니꺼…….”

숙희는 새삼스러이 이렇게 말머리를 떼었다.
온종일 수없이 그에 대하여 이야기했건만 그러고도 또 다 못한 사연이
남은 모양이었다.
무당은 검게 빛나는 두 눈으로 숙희를 쏘아보았다.
무당이 온종일 모든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에다 숙희가 마지막으로
털어놓은 사연을 무당이 마음속으로 나름대로 엮어놓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달득은 달, 또는 달이(達伊)라고도 불렀다.
그 어머니 모랭이〔毛良〕 무당이 달을 품고 낳은 아이라 하여
그의 나이 여남은 살 될 때까지 보통 “달아”, “달아” 하다가
열 살이 넘어, 간신히 글방에 넣을 수 있었을 때부터 그의 외삼촌 경보가
달득이란 이름을 그에게 붙여주었던 것이다.
‘달득’ 이 역시 달님으로부터 얻은 아이란 뜻이었다.
무당 모랭이가 달득이를 배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열여덟 해 전,
과부된 지 오 년 만인데 그때까지 시름시름 까닭 없이 앓고 있던 병 끝에
우연히 무당 귀신이 들리어, 새 무당이 났다고, 영검이 대단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그 무렵이었다.
다경리(동네 이름) 동네에서 굿을 마치고 물을 건너 숲 속을 지나올 때였다.
같이 굿을 마치고 돌아오던 화랑(박수)
 - 그의 집은 모랭이가 사는 봇마을을 지나서 또 십 리나 더 가야만 했다 ―
과, 그 어두운 숲 속에서 지금의 달이를 배게 되었던 것이었다.
풀밭에는 너무 이슬이 자욱하여 보드라운 모랫바닥을 찾아
그들은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고목이 울창한 숲을 휘돌아, 봇도랑의 밝은 물은 흘러내리고,
쉴 사이 없이 물레방아 바퀴는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여자의 몸에 그 여름 밤의 강물이 흘러들기 시작했다.
보름 지난 둥근 달이, 시작도 끝도 없는 긴 강물을 담긴 채,
달빛 그대로의 맑고 시원한 강물이 자꾸 흘러들어 나중엔 달이 실낱같이
가늘어지고 있었다.
그 실낱 같은 달이 마저 흘러내리고 강물이 다하였을 때
여자의 배와 가슴 속엔 이미 그 달고 시원한 강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었다. 여자의 몸엔 손끝까지 그 희고 싸늘한 달빛이
흘러내려, 마침내 달 속에 혼곤히 잠기고 말았고,
그리하여 마침내 잠이 들었던 것이었다.

‘아아, 신령님께서 나에게 달님을 점지하셨다.’

모랭이는 혼자 속으로 굳게 믿었다.
이리하여 낳은 아이의 얼굴은 희고 둥글고 과연 보름달과 같이 아름다웠다.
모랭이는 여러 사람이 보는 데서 자랑삼아 아기를 안고 달아, 달아 불렀다.
그러나 이 달이는 열다섯 살 먹던 해 늦은 봄에 그만 글방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글방의 사장(師丈)님에게는 그해 열일곱 살 나던 정국(貞菊)이란
딸이 있었다. 그해 설에 달이가 흰 두루마기를 입고 사장님께 세배를 마치고
나오려니까, 뜰 앞의 짚둥우리 사이에 숨어 있던 그녀가
그의 두루막 소매를 잡아당겼다. 놀라서 돌아다보니
정국은 부끄러운 듯이 두 눈을 반쯤 내리감으며 웃는 얼굴로,
새하얀 창호지로 조그맣게 싼 것을 달이의 손에 쥐어주었다.

“가져 가서 펴 봐라.”

달이는 가슴이 와들와들 떨리어 얼른 집으로 돌아와 그 종이에 싸인 것을
펴보았다. 종이 속에는 조그만 꽃주머니 하나가 나오고,
꽃주머니 속에는 다시 첩첩이 접은 종이쪽지가 나왔다.
종이쪽지에는 다음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仙桃山月 半車侖秋, 影入兄山江水流, 日夕貞兒向書冊. 思君不見使人愁

(선도산에 걸린 달은 반만 둥근데, 그림자는 형산강 물에 들어 흐른다.
 정국은 아침저녁 책을 펴놓고 앉아 있지만 머릿속엔 그대 생각만 가득하여
 애닯을 뿐이다).’

이백(李白)의 〈아미산월 峨嵋山月歌〉를 딴 것이면서
완연히 다른 시가 되어 있었다. 놀라운 재주가 아닐 수 없었다.
달이는 별안간 정국이 왈칵 그리워졌다. 그는 기쁨에 못 이겨
그 꽃주머니를 허리끈에 차고 밖으로 나갔다.

“꽃주머니 그거 어디서 났노.”

숙희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집이 바로 달이네와 앞뒤였고 나이도 같은 또래라 외사촌간이라 해도
친누이동생처럼 그녀는 어릴 적부터 달이를 따랐다.
(정국은 달이보다 한 살이 더하여 그해 열일곱이었던 것이다.)

“저기, 누구한테 얻었어.”

달이는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어물거렸다.

“저기, 어디서?”

숙희는 갑자기 두 눈에 광채를 띠며 바싹 대들었다.

“저기 누구누구한테……”

달이는 숙희의 손을 뿌리치고 달아나버렸다.
  
글방 앞 우물가에 살구꽃이 허옇게 핀 봄날 밤이었다.
선도산 마루에는 파란 초승달이 걸려 있었다.
달이는 정국과의 약속을 좇아 남몰래 혼자 글방에 나와 있었다.
조금 있으니 정국이 사뿐히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장 어른 계시나?”

달이는 숨을 죽여가며 들릴 듯 말 듯한 낮은 목소리로 먼저 이렇게 물었다.
정국은 고개를 끄덕하였다.

“사모님도?”

“…….”

정국은 고개를 돌렸다.

“어디 가셨노?”

“저어기 양산 좀 가셨다.”

“그럼 꽤 오래 되겠구나.”

“…….”

정국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 지금 뭘 하고 계시노?”

달이는 한참 뒤에 숨을 쌔근거리며 또 이렇게 물었다.

“주무신다.”

정국은 의외로 침착한 목소리였다. 정국의 이 침착한 목소리에
용기를 얻은 달이는 그때에야 비로소 정국의 얼굴을 바로 건너다보았다.
다음 순간, 그들은 어떻게 해서 입술이 닿게 되었는지도 깨닫지 못했다.
다만 간이 얼어붙는 것같이 시리기만 했다.
정국은 눈을 사르르 내리감으며 반듯하게 드러누워 버렸다.
달이는 정국의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그는 숨이 차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달의 손이 들썩들썩하도록 정국의 가슴도 뛰고 있었다.

‘아아, 이것이 무서운 꿈속이 아닐까.’

달이는 괴로움에 못 이겨 문득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앞골목에서 개가 멍멍 짖었다. 개 짖는 소리가 잠잠해지자
구름이 지나가는 듯 방문 창호지에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달이는 잠이 든 것처럼 눈을 감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정국의 가슴 위에 얹고 있던 손끝을 부르르 떨며
비실비실 방문 앞까지 와서는 뿌시시 방문을 열었다.
잠이 든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던 정국이
방문 소리에 눈을 떴다. 그러나 그때 이미 달이는 무슨 도망질이나 치듯이
어두운 골목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이튿날 밤도 그들은 또 그 자리에서 그렇게 만났다.
정국의 연꽃같이 슬프고 아름다운 얼굴에는 어젯밤보다도 더 황홀한
미소가 떠돌고 있었다.

“니 울 아부지가 그렇게 무섭나.”

정국이 어젯밤보다는 훨씬 대담한 태도로 이렇게 물었다.

“니는 괜찮나?”

“울 아부진 저녁에 내가 술상만 보아 들여놓으면 혼자서 부어 잡숫고
 새벽까지는 아무 말씀도 없이 주무신다.”

또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니 어젯밤에 개 짖는 소리 들었나?”

“…….”

정국은 대답 대신 달이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었다.

봇머리 숲 속에서는 밤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문에 또 어젯밤과 같은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구름이 지나가는지도 몰랐다. 달이는 그만 돌아가리라 생각했다.
그러자, 정국이 갑자기

“난 물에 빠져 죽어버릴 게다.”

했다. 정국은 속삭이듯한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결연히 이렇게 말하며 달이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달이는 정국의 난데없는 선언엔 거의 무심한 얼굴로,

“니는 글재주가 좋으니까.”

엉뚱스럽게도 이런 말을 불쑥 했다.

“니는 내가 죽으면 좋지?”

정국은 또 이렇게 물었다.

“니는 느이 엄마가 시키는 대로 시집 가서 아이 낳고 살겠지?”

“니는?”

정국이 되묻는 말에 달이는 고개를 천천히 옆으로 저어보인 뒤

“나는 아마 아무것도 못할 거다. 장가 같은 거도…….”

했다.

“나도.”

정국은 안심한 듯이 달이의 손목을 잡은 채 또 어젯밤과 같이
눈을 사르르 내리감으며 자리에 반반히 드러누워 버렸다.
달이는 자기 자신도 모르게 정국의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순간 가슴은 또 걷잡을 길 없이 뛰기 시작하며, 끙끙 신음소리를 내도록
숨결도 가빠졌다. 문득 앞 골목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고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방문에 또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달 위로 구름이 지나가는지 몰랐다. 달이는 또 어젯밤과 같이
방문 있는 곳으로 비실비실 달아나려 하였다.
그러나 정국은 달이의 손목을 꼭 잡은 채 놓지 않았다.
정국은 자기 손에 힘을 주어서 달의 손으로 자기의 가슴을 누르게 하였다.

“내가 꼭 죽을 걸 니는 모르지?”

정국은 또 이렇게 물었다.

“니는 그걸 어떻게 알어?”

“저절로 알아졌다.”

“언제부터?"

“금년 설에 니가 우리 집에 세배를 하러 왔을 때부터…….”

“그 시를 지어준 땜에?”

“아니 벌써 니가 첨으로 우리 집에 글 배러 왔을 때부터
 난 어쩌면 그런 생각이 들었을 거다.”

순간, 달이는 정국이가 와락 무서워졌다. 그는 힘을 다하여 정국의 손을
뿌리쳐 버리고는 또 어젯밤에와 같이 어두운 골목으로 달아나버렸다.
이튿날 저녁 때 숙희가 와서

“득이 오빠, 너 정국이 즈 엄마 돌아온 거 아나?”

하고 물었다.
그러나 정국이의 어머니가 그 친정집으로 다니러 갔었다는 것을
숙희가 어떻게 알고 있는지 그것부터 이상스러웠다.

“모른다, 왜?”

“아까, 저녁 때 돌아왔다.”

하고, 숙희는 너희들의 비밀은 내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달이의 얼귤을 쳐다보고 있었다.

“너 그럼 모다 엿들었나?”

달이의 약간 떨리는 목소리였다.

숙희는 잠자코 고개를 수그려버렸다. 순간, 그날 밤 방문에 비치던 검은
그림자가 떠올랐다. 그러면 그것은 그때마다 구름이 지나간 것이 아니라
숙희의 그림자였다고 헤아려졌다.

“너 아무한테도 말 내지 마라.”

“저번 때 그 꽃주머니 날 주먼…….”

“그래.”

달이는 정국으로부터 얻은 꽃주머니를 숙희에게 주었다.
그러나 바로 그 이튿날부터 숙희의 입을 통하여 달이와 정국과의 사이가
온 동네에 알려지게 되었고, 그런지 다시 사흘 뒤엔,
정국이 봇머리 깊은 물속에 몸을 던지고 말았던 것이다.
정국이 죽은 뒤 한 해가 가까이 되도록 달이는 집 안에서 시를 짓고만
처박혀 있었다.

“정국이 죽은데 시묘(侍墓)살이를 하나?”

하고, 숙희가 이따금 와서 비꼬아주어도 달이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달이의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라고 숙희는 생각하였다.
허구헌날을 낮이면 온종일 방안에만 드러누워 배기다가 밤이면 밤마다,
특히 달이 있는 밤은 달이 질 때까지 강가에서만 어정거리다
새벽녘에나 돌아오곤 하는 달이 아무래도 온전한 사람 같지 않았던 것이다.
정국이가 죽은 지도 두 해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마을에는 골목마다 살구꽃이 허옇게 피어 있고,
하늘에는 초여드레 새하얀 조각달이 결려있었다.
달이는 하늘의 달이 아주 기울 때까지 혼자서 휘휘 봇둑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솔솔 부는 저녁 바람은 찔레꽃 향기를 풍겨오고
언덕 위 어두운 숲 속에서는 비드득비드득 하고 밤새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물속에 비친 달그림자를 들여다보던 순간,
달이는 우연히 가슴을 찌르르 아픔을 깨닫게 되었다.
이튿날도 사흘째도 마찬가지였다. 상현달이 하현으로 이울 때까지
그는 하늘에 달이 걸린 밤이면 언제나 강가에 나와 있기 마련이었다.
숙희가 어두운 숲 그늘에 숨어서 달이의 동정을 살피며 따라다닌 것은
그가 혹 물에 몸을 던질까 보아 그걸 지키려고 했던 것이라 하였다.

“오빠 너 요새도 정국이 생각을 하나?”

어두운 강가에서 스무날 달이 뜨기를 기다리고 서 있는 달이에게
숙희가 이렇게 물었다.

“아아니.”

하고, 달득은 뜻밖에도 경쾌한 목소리로 고개를 흔들었다.

“거짓말.”

“아아니.”

달이는 역시 아까와 마찬가지로 도리질을 하였다.

“그럼 왜 밤마다 혼자서 강가에만 나와 어정거리노.”

“달을 볼라고.”

“거짓말.”

“…….”

달이는 잠자코 고개만 돌렸다.

“그렇지만 정국이 살았을 땐 요새처럼 안 그랬지 뭣고?”

숙희의 이 말엔 달이도 별로 아니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달득으로서는 달을 보고 반드시 정국을 생각하는 것만도 아니었다.
그저 달을 보는 것만이 자꾸 즐겁고 못 견디게 그리울 뿐이었다.
열아흐레 스무 날 즈음하여 하늘의 달이 이울기 시작하면
그의 가슴은 그지없이 어둡고 쓸쓸하여졌다. 스무사흘, 나흘 즈음에,
밤도 이슥하여 동쪽 하늘 끝에 떠오르는 그믐달을 바라볼 때엔
자기 자신이 임종이나 하는 것처럼 숨이 가쁘고 가슴이 답답했다.
한 달에도 달을 못 보는 한 사흘 동안 그는 동면하는 파충류처럼
방 한구석에 이불을 뒤쓴 채 낮이고 밤이고 잠으로만
세월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초사흘, 나흘께부터
다시 서쪽 하늘가에 실낱 같은 초승달이 비치기 시작하면,
날로 더 차지는 달의 얼굴과 함께 그의 가슴은 차츰 부풀어 오르며
숨결도 높아지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초아흐레에서 열아흐레까지 한 열흘 동안이 그에게 있어서는
행복의 절정인 듯했다.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입맛도 잃고 정신도 어리뚱해진 듯,
숙희의 얼굴까지 피해 가며 온 밤을 이슬에 함뿍 젖어 다니다
날이 부옇게 새어갈 무렵에야 휘휘한 걸음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오빠 너 달한테 홀린 게지.”

“홀리다니?"

“몰라.”

달이는 숙희를 바로 보지 않으려고 외면하였다,
그러나 숙희는 숙희대로 달이의 얼굴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자꾸 더 보고 싶기만 했다.

‘나도 정국이처럼 달이한테 상사병이 들렸는가 보다.’

숙희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하루라도 속히 잊어야 되겠다고 하면서도
좀처럼 잊혀지지가 않아, 그 많은 사람들의 눈을 피하느라고
캄캄한 숲 속 첩첩이 엉긴 찔레가시를 헤쳐가며
그의 뒤를 밟아 다니곤 하였다.

“오빠 너 정말 그럴래.”

“무얼 그러노.”

“너 사람을 너무 괄시하지 마라.”

“…….”

달이는 말없이 숙희의 손목을 잡았다. 캄캄한 숲 속이었다.
어느 나무에선지 부엉이가 워헝워헝 울었고,
찔레꽃이 만발한 봇도랑가 숲 속에서는 비둘기들이 푸드득푸드득
쉴 새 없이 댓가지를 흔들었다. 아직도 달이 뜨려면 한 시간가량이나
기다려야 하였다. 울울한 나뭇잎 사이사이로 내다뵈는 하늘에는
파란 별들이 비밀이나 엿보려는 듯 반짝이고 있었다.

“한 달에 사흘 밤씩만 내가 이 배를 빌리기로 했다.”

달이는 나무 밑둥에 매어둔 뱃줄을 풀며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어둔데 오빠 너 배를 타나.”

“타면 어때?"

“여기 너 몇 길 서는 줄 아나.”

“두 길.”

“그러지 말고 너 달 뜨거든 타라.”

“그럼 잘 가거라.”

그는 한시라도 바삐 숙희의 곁을 떠나려는 듯이 줄을 끄르자
곧 배에 올라 삐기걱 하고 노를 젓기 시작하였다.
언덕 위로 숲 사이로 허옇게 피어 있던 찔레꽃도 거의 다 지고
밤이면 마을 여자들이 냇물을 찾아 나오게 되는 한여름이었다.
낮에 그 삼촌 경보와 함께 고모(모랭이 무당)네 보리 타작을 해주고
난 숙희는 저녁을 마치자,
곧 동무들과 더불어 냇물에 멱을 감으러 나와 있었던 것이다.
윗머리에는 사내아이들이 모래 위에 모닥불을 놓고 둘러서서 떠들고 있었다.
그들도 낮에 타작을 한 모양으로 옷을 벗어 불 위에 대고 있었다.

“숙희 느이 달득이 오빤 낯에 뭘 하노?”

한 아이가 이렇게 물었다.

“하긴 뭘 해? 온종일 죽은 것같이 늘어져 자기만 하지.”

“밥도 안 먹고?”

“밥이라니, 얘, 저녁 때나 돼서 일어나면 겨우 미음 한 그릇밖에
 못 먹는다.”

“그래도 즈이 작은아부지들이 그대로 보고 두나.”

“그렇지만 어쩌겠노. 제절로 마음이 고쳐질 때까지 그냥 두고 보지,
 그것도 병이라는데.”

숙희는 이런 말을 하며 그녀들과 함께 마을로 들어오는 체하다가
물레방앗간 곁에서 혼자 숲 속으로 빠져 들어와 버렸다.
낮이라도 사람 하나 겨우 지나다닐 만큼 뚫려 있는 숲 속 길이라
나뭇가지와 가시덤불이 낯을 긁고 머리를 찌르곤 하였다.

‘득이가 아직 있을까, 벌써 어디로 배를 저어 가버렸을까.’

숙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늘러가며 달이의 조그만 배가 매어 있는 곳을
찾아갔다.

“철버덩!”

물소리가 들리었다. 그리고는 잠잠하였다.
나무에서 무엇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꺼엇·…·까르르 끼릭!”

하고 까치가 놀란 듯이 두어 소리 지저귀곤 다시 잠잠해졌다.
까치 둥우리가 헐리어지는 소리였는지도 모른다고 숙희는 생각하였다.

“철버덩!”

또 물소리가 났다. 그러자 분명히 그 늙은 감나무에서 풋감이
강물 위로 떨어지는 소리임을 깨달았다.
물 위로 길다랗게 뻗어나가다 반쯤 썩어서 분질러진 늙은 감나무 가지 위엔
새파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풋감이 떨어지는구나.”

숙희는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으나 그 늙은 감나무 둥우리에
매어두었을 달이의 조그만 나무배는 이미 거기 있지 않았다.

‘아이도 그새 배를 끌러 갔구나.’

숙희는 그 먹탕같이 새카만 강물을 바라보며 혼자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날따라 달이가 한결같이 더 야속하기만 했다.
앞숲에서 뻐꾸기가 울었다.

“풀꿀! 풀꿀.”

다람쥐처럼 나무에 오르내릴 수 있으면 하고 숙희는 생각하였다.
그녀는 저 까치 둥우리가 있는 높은 나뭇가지 위에 올라가
달이 돌아올 때까지 숨어서 기다려보았으면 싶었다.
나뭇잎을 한 잎 두 잎 따서 나중 달이 오거든 달이의 머리 위에
떨어뜨려봤으면 싶었다. 달은 놀라서 나무 위를 쳐다보겠지.
그러면 자기는 나뭇가지에 앉아서 내려다보고 있겠지.
아아, 그렇게 달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으면 얼마나 즐거울까,
숙희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다시 강가로 나왔다.
열이레 달이 하늘 한가운데 나와 있을 때였다.
숙희는 어두운 숲 그늘을 타고 강가를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강물 속에는 훤한 달이 담겨 있고,
달이의 작은 배는 물속의 달을 건지기라도 하려는 듯,
강물 한가운데 착 달라붙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달이의 얼굴은 달빛에 반사되어 이날 밤따라 유달리도
거울같이 희고 둥글어 보였다.
그는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물속에 비친 달을 들여다보며
무어라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흡사 세상에 둘도 없을 정다운 친구와
신나는 이야기나 나누는 듯, 그의 얼굴은 그렇게도 황홀과 즐거움에
취해 있는 듯했다. 득이 오빤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게야,
숙희는 혼자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꿈속에서 정국이와 만나 저렇게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거야,
숙희는 이렇게 생각되자 순간, 왠지 가슴이 메어지도록 슬픈 생각이 들었다.
아냐, 득이 오빤 그냥 물속에 담긴 달을 즐기고 있을 뿐이야,
숙희가 다시 이렇게 생각을 돌이키고 고개를 들었을 때
달이는 물속을 들여다보며 무슨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러자 물속에서 무어라고 하는지 달이는 다시 웃는 얼굴로 오냐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듯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달이는 배에서 물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숙희는 마치 꿈속에서와 같이 소리를 지르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왠지 숨통이 콱 막힌 채 틔어지지 않았다.
동쪽 언덕 수풀 쪽에서 횃불이 올라왔다.
횃불은 호수를 끼고 올라오며 둥그러미를 그렸다. 배를 찾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아무도 횃불에 응답을 하지 않았다.
소리를 지를 힘도 없는 듯했다.

“누님― 누님.”,

횃불이 먼저 소리를 질렀다.

“워이.”

무당은 있는 힘을 다하여 소리를 질렀다.
횃불은 무당의 친정 동생 경보(景甫)였다.
재 너머 마을에 사는 그는 저녁 때에야 이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했다.
경보는 배에 오르자 무당의 손에서 갈퀴를 받아들었다.
자기가 한번 찾아보겠다는 생각인 듯했다.
갈퀴 대신 횃불을 바꾸어 든 무당은,

“횃불을 드니 물속이 더 캄캄한데…….”

하더니, 그것을 언덕 밑으로 훌쩍 던져버렸다.
경보는 놀란 듯이 무당을 한번 돌아다보았으나 잠자코 그냥 갈퀴질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숙희가 가리킨 데를 몇 바퀴나 빙빙 돌며 갈퀴질을 하고 난 경보는,

“물속에 무슨 이무기 굴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새로운 의문을 제기시켰다.

“이무기가? 이무기 굴로?”

무당도 그럴싸해 하는 얼굴이었다.

“낮에 자맥질꾼이 들어가 봤는데 이무기 굴도 없답니더.”

숙희가 참견이었다.

“그러지 말고 굿을 한번 해보소.”

경보가 무당에게 제의했다.

“굿을 할락 하면 정국이 굿부터 먼저 해야 된다 아닙니꺼?"

또 숙희의 참견이었다.

무당도 고개를 끄덕이며 ,

“정국이가 데려갔어.”

했다.

“정국이도 굿을 해주먼 달이를 내놓을 거 아닙니꺼?"

경보의 지극히 당연한 듯한 의견에 무당은 웬일인지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조금 전부터 갑자기 무슨 귀신에나 홀린 것처럼 멍청해진 얼굴로
물속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는 이미 열여드레 달이 동쪽 숲 위로 뿌연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고
있었으나 경보와 숙희는 무당의 갑자기 넋 나간 듯 멍청해진 얼굴에
정신이 팔려 그녀의 거동에만 신경을 쏟고 있었다.
이윽고 검은 숲 위로 둥실 떠오른 달이 무당의 넋 나간 듯한 얼굴을
정면으로 환히 비추기 시작했다.
무당은 갑자기 놀란 듯이 배에서 벌컥 일어나며,

“아아, 저기 달이.”

하고, 손을 들어 숲 위의 달을 가리켰다.
다른 둘도 손에서 갈퀴와 노를 놓아버린 채 무당이 가리키는 숲 위의
달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믐밤 같이 깊고 어두운 수풀 위에 떠오른 달은
달득의 희코 환한 얼굴 그대로였다.
셋은 다 같이 물속의 달이를 잊어버린 듯,
어느 때까지나 숲 위의 달만 바라보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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