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누님의 얼굴 - 최병화 -

하얀모자 1 2026. 3. 21. 21:21

 

 

                         누님의 얼굴
                                                       - 최병화 -
 
“영호야! 이제 너는 성공하였다. 얼마나 기쁘냐? 
 그런데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은 대체 무엇이냐?”
 
“ 응! 나는 누님을- 누님을 찾아야 한다. 우리 누님께서는 지금
 어디 계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몇 해 동안을 이렇게
 찾아다니지만 누님께서도 나를 반드시 찾고 계실 것이다.
 누님께서는 나의 그림을 퍽 사랑하여주셨다. 
 그러므로 누님께서 살아만 계시다면 어느 곳에 계시든지 내가 전람회에
 뽑힌 것을 신문을 보시고 아시기만 하면 아시는 그 즉시로
 전람회장으로 뛰어 오실 것이다. 그러면 이곳에서 누님을 만나뵈올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날마다 와서 누님을 찾고
 있는 것이다‧‧‧‧‧‧   연갑아! 이것이 내가 그림을 그린 목적이다.”
 
“그러면 너는 그림을 통해서 누님을 찾고자 하는 것이로구나?”
 
“너! 이제 알았니. 사실 말하면 아닌 게 아니라 그렇다.”
 
영호는 얼굴에 미소를 약간 띄우고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보이지 않는 누님을 모델 삼아서 저 그림을
 그린 것이로구나?”
 
“그렇고말고!”
 
“저 그림이 네 누님이라면 네 누님은 퍽 어여쁘게 생기셨다.”
 
하고 연갑이는 부럽다는 듯이 농담을 건네었습니다.
영호와 연갑이는 동양화만 진열해놓은 제1부 제2부를 지나
서양화가 진열된 제3부로 들어갔습니다.
제 3부 서쪽 벽에 죽- 걸려 있는 인물화 앞에 와서 두 소년은
나란히 어깨를 겨누고 가던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림 이름은 <누님의 얼굴>이란 평범한 이름이 붙어 있는 그림을
몇 번인지 쳐다보고 있습니다. 무르녹고 기름진 녹음을 배경으로 하고
모시 항나 적삼을 입은 처녀의 반신상(半身像)의 유화- 
필치가 좀 앳되면서도 그래도 굳센 힘이 나타나는 것- 
무엇을 만질 듯이 누구를 몹시 그리워하는 듯이 고개를 약간 모로 숙인
처녀의 불그스레한 얼굴이 마치 산 사람같이 그려져 있습니다.
제3부인 인물화 가운데서는 제일 낫다는 이 걸작품이 이제 겨우
열여섯 살 된 소년으로, 그리고 인쇄 직공 견습으로 있는 소년 노동자의
손으로 그려졌다는 것은 세상 사람을 놀라게하여 
각 신문마다 열렬한 칭찬을 가지고 이 천재 소년을 자랑하였습니다.
<누님의 얼굴>이란 영호가 그린 그림 앞에는, 언제든지 열심히 들여다보는
감상자의 한 떼가 다른 것을 볼 것도 잊어버리고 몰려 서 있었습니다.
영호는 전람회가 시작되던 아침부터 이곳에 와서 입장하는 사람을
살펴보았습니다. 더욱이 여학생이나 혹은 처녀가 눈에 띄면
한 사람도 빼지 않고 일일이 다 눈 주어 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혹시 누님이 섞여 있지나 않은가 하고 남몰래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그러나 일주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역시 그곳에는 
찾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영호는
 
“누님이 이 세상에 살아 계시지 않은가보다.”
 
하고 몇 번이나 눈물지으며 낙심하였습니다.
전람회는 이제 앞으로 사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야! 영호야! 빨간 쪽지가 붙었다.”
 
이것을 처음 발견한 연갑이가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영호가 그 소리에 놀라 그림 아래를 본즉 전람회에서 상 받은
금색 쪽지 아래 매약제(⁎賣約濟,팔기로 약속된 것)란 빨간 쪽지가
새로 붙어 있었습니다.
 
“아!”
 
하고 영호는 감격에 떨리는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누가 이 그림을 샀을까? 풀기 어려운 의문이 영호의 가슴을 몹시
뒤흔들어놓았습니다.
영호는 그 그림에다가 값을 아무렇게나 매겨 놓았습니다.
팔려고 한 것도 아니고 또 그리고 누가 살 사람이 있으리라고도
생각지 아니한 까닭입니다. 
자기의 최초의 작품이 뜻밖에 물질로 된 것이 기쁘기도 하면서
슬프기도 하였습니다.
 
“그림을 사신 분은 퍽 잘생긴 여학생입디다. 영호씨의 주소를 물어서
 알려주려고 하였으나 어디인지 자세히 몰라서 못 알려주었습니다.
 아마 당신 댁을 찾아가려나 봅디다.”
 
계원은 불운에 얽매인 천재 소년 화가의 행운을 축복하는 듯이
말하여주었습니다.
 
“영호! 이제도 낙심할 텐가? 누님이야, 영호가 찾는 누님이야‧‧‧‧‧‧.”
 
하고 연갑이가 영호의 손을 흔들며 말했습니다.
자기 그림을 사준 잘생긴 여학생이 자기 누님이라고는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우리 누님은 여학생이 아니다. 우리 누님은 직조회사나 혹은
 담배회사에 다니는 여직공이라야 한다.”
 
하고 그림 앞으로 도로 와 섰습니다. 그림이 팔렸다는 것은
기쁘지 아니한 것이 아니지만, 자기가 밥을 굶어가며 자기의 정신과
열정을 모아서 그야말로 피와 땀이 엉켜서 된 이 <누님의 얼굴>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어느 부잣집 응접실이나 혹은 서재에 걸려서 생각없는 그들의 위안물이
될것을 생각하면 영호의 가슴은 몹시 괴로웠습니다.
영호는 팔려고 하지 않던 그림에 값을 매겨둔 것이
다시금 후회가 났습니다. 팔아서 생활을 보태려고 그런 것도 아니고
또는 예술적 정열로 그린 것도 아니고 오직 누님을 만나고 싶다!
어떻게 해서 누님과 만날 기회를 만들어야 하겠다,
하는 목적과 정성으로 이 그림을 그려 놓은 것입니다.
 
영호는 누님이 자기의 입선한 것을 알면
즉시 전람회장으로 뛰어오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이 자기의 있는 곳을 알리고 또 누님이 어디 있는 것을
알려주리라고도 추측하였습니다. 즉 다시말하면
이 그림이 중매가 되어 누님과 자기와 만난다! 그 기회를 만들고자
이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 누님의 소식은 감감하였습니다.
 
“대체 누님은 어떻게 지내시는가? 무슨 어려운 일을 당하여도
 그래도 나는 남자다. 모든 것과 싸워서 이길 수가 있다.
 그러나 누님은 여자다. 이 거치른 세상에서 혼자 몸으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약한 여자이다. 누님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이렇게 생각을 하니까 영호는 한시라도 빨리 누님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누님을 찾아서 자기가 새로 발견한 새 길을 향하여 길동무가
 되어주었으면 오죽 좋을까.”
 
하고 또 누님 생각에 잠겨 있을 바로 그때
 
“걸작이다!”
 
어느 무명 화가 한 사람이 열심히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살았다- 살았다. 눈이라든지 입술이라든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아름다운 눈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속 깊이 무슨 슬픔을
 품은 눈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다른 같이 온 사람들도 일제히 이 말에 같은 뜻을 표시하였습니다.
그날도 영호는 풀기 없이 연갑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영호는 그 이튿날도 전람회장에 가서 일반 관람자와 같이 그림 앞에 서서
있었습니다. 그림 앞에는 사람이 빽빽이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누님의 얼굴>이란 그림 속으로 모였습니다.
여러 사람은 <누님의 얼굴>이란 그림의 작자가
뒤에 섞여 있는 것도 모르고 그 소년 화가의 예술적 성공을
칭찬하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영호는 예술적 성공보다도 누님을 만났으면
얼마나 기쁠까 하였습니다.
 
“누님은 왜? 아니 오실까? 이 그림은 누님을 불러 올만한 힘을
 같지 못하였을까.”
 
하고 영호는 울듯이 고개를 수그리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바로 이때 제2부에서 제3부로 돌아오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한 손에 든 분홍빛 프로그램(순서지)을 보고 나서는
<누님의 얼굴>이란 그림이 붙어 있는 곳으로 사람을 헤치고 뛰어왔습니다.
마음속에 감춰둔 누님의 얼굴 그대로 캔버스로 옮긴 그 재능과
천분(天分)보다도 누님을 생각하는 동생의 애정과 사모를 나타낸
이 그림 뒤에 숨은 이야기를 안다면
누구나 다 한 번은 눈물지을 것입니다.
이때 급히 뛰어온 그 여자는 그 그림을 이윽히 보고 있더니
그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이때 여러 사람의 앞이라는 것도 불구하고 누구인지 그 우는 여자의
어깨에다가 대담스럽게 살며시 손을 얹어놓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의 눈은 일제히 그림을 떠나서 여자와 소년에게로 모였습니다.
 
“아! 누님!”
 
“오! 영호냐?”
 
한동안 두 남매는 서로 붙잡고 울기만 하였습니다.
오래 그립던 정이 일시에 폭발하여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영호는 누님을 모시고 연갑이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사 년간 서로 갈리어 있을 동안에 가지가지 당한 고생과 설움을
이야기하였습니다.
⁎⁎⁎
 
영호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시자 영호는 집 떠나신지 오 년이 넘은
아버지가 간도에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간도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누님은 어느 아는 집으로 가 있게 되었습니다.
한번 집을 떠난 영호는 아버지의 행방을 두루 찾았으나
이내 찾지 못하고 몇 달 동안 고생만 하다가 그곳 동포의 동정을 입어
조선으로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즉시 누님을 찾았으나
영영 누님을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때에 영호 누님은 주인집을 따라 평양으로 갔던 까닭입니다.
영호는 실망에 싸이고 먹고 잘 곳이 없어 한동안은 거리로 방황하다가
어느 소년회 회원인 연갑이의 구원을 받아 그 집에 같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영호는 굳게 결심하고 인쇄소 직공으로 들어갔습니다.
영호는 그림에 취미가 있었으므로 틈틈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누님의 얼굴>이란 걸작품이 미술전람회까지 입선하게 되었으며
그 그림으로 말미암아 누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영호야! 나는 지금 제사공장에 다닌다.
 우리의 힘과 마음을 합하여 새로운 길을 걸어가자!
 이제 나는 너를 꽉 붙들고 놓지 않을 터이다.”
 
“누님! 나는 인쇄소 직공이라우! 내 힘과 내 땀을 믿고
 우리 남매는 앞날을 위하여 싸워나가십시다.
 그리고 누님! 이제는 서로 의지하고 지내십시다.”
 
이렇게 말하고 남매는 서로 얼싸안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그 밤을 새웠습니다.
그 이튿날 신문에는 일제히 소년회원 김영호 군의 그림을 그린 이유와
사 년 전에 잃어버린 누님을 만났다는 애달픈 이야기가 실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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