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 봄 봄 " - 김유정 -

하얀모자 1 2022. 10. 2.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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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 봄 "

                                                                                   - 김 유 정 -

"장인님! 인제 저……."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시켜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대답이 늘,
 
"이 자식아! 성례구 뭐구 미처 자라야지!"
 
하고 만다.
 
이 자라야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아내가 될 점순이의 키 말이다.
내가 여기에 와서 돈 한 푼 안 받고 일하기를 삼 년 하고 꼬바기 일곱 달 동안을 했다.
그런데도 미처 못 자랐다니까 이 키는 언제야 자라는 겐지 짜장 영문 모른다.
일을 좀 더 잘해야 한다든지, 혹은 밥을 (많이 먹는다고 노상 걱정이니까) 좀 덜 먹어야 한다든지 하면 나도 얼마든지 할 말이 많다. 허지만 점순이가 아직 어리니까 더 자라야 한다는 여기에는 어째 볼 수 없이 고만 벙벙하고 만다.
이래서 나는 애최 계약이 잘못된 걸 알았다. 이태면 이태, 삼 년이면 삼 년,
기한을 딱 작정하고 일을 해야 원 할 것이다. 덮어놓고 딸이 자라는 대로 성례를 시켜 주마,
했으니 누가 늘 지키고 섰는 것도 아니고, 그 키가 언제 자라는지 알 수 있는가.
그리고 난 사람의 키가 무럭무럭 자라는 줄만 알았지 붙배기 키에 모로만 벌어지는 몸도
있는 것을 누가 알았으랴. 때가 되면 장인님이 어련하랴 싶어서 군소리 없이 꾸벅꾸벅 일만 해왔다. 그럼 말이다. 장인님이 제가 다 알아채서,
 
 "어참, 너 일 많이 했다. 고만 장가 들어라."
 
하고 살림도 내주고 해야 나도 좋을 것이 아니냐.
시치미를 딱 떼고 도리어 그런 소리가 나올까 봐서 지레 펄펄 뛰고 이 야단이다.
명색이 좋아 데릴사위지 일하기에 싱겁기도 할뿐더러 이건 참 아무것도 아니다.
 
숙맥이 그걸 모르고 점순이의 키 자라기만 까맣게 기다리지 않았나.
언젠가는 하도 갑갑해서 자를 가지고 덤벼들어서 그 키를 한번 재볼까 했다마는,
우리는 장인님이 내외를 해야 한다고 해서 마주 서 이야기도 한마디 하는 법 없다.
우물길에서 언제나 마주칠 적이면 겨우 눈어림으로 재보고 하는 것인데 그럴 적마다 나는 저만침 가서
 
 '제에미 키두!'
 
하고 논둑에다 침을 퉤, 뱉는다. 아무리 잘 봐야 내 겨드랑(다른 사람보다 좀 크긴 하지만)
밑에서 넘을락 말락 밤낮 요 모양이다.
개 돼지는 푹푹 크는데 왜 이리도 사람은 안 크는지,
한동안 머리가 아프도록 궁리도 해보았다.
아하, 물동이를 자꾸 이니까 뼉다귀가 움츠라드나보다, 하고 내가 넌즛넌즈시 그 물을 대신
길어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나무를 하러 가면 서낭당에 돌을 올려 놓고
 
'점순이의 키 좀 크게 해줍소사. 그러면 담엔 떡 갖다 놓고 고사드립죠니까.'
 
하고 치성도 한두 번 드린 것이 아니다. 어떻게 되먹은 킨지 이래도 막무가내니…….
그래 내 어저께 싸운 것이지 결코 장인님이 밉다든가 해서가 아니다.
모를 붓다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또 싱겁다. 이 벼가 자라서 점순이가 먹고 좀 큰다면
모르지만 그렇지도 못한 걸 내 심어서 뭘하는 거냐. 해마다 앞으로 축 불거지는 장인님의
아랫배(가 너무 먹는 걸 모르고 냇병이라나, 그 배)를 불리기 위하여 심곤 조금도 싶지 않다.
 
"아이구 배야!"
 
난 몰 붓다 말고 배를 쓰다듬으면서도 그대루 논둑으로 기어올랐다.
그리고 겨드랑에 꼈던 벼 담긴 키를 그냥 땅바닥에 털썩 떨어치며 나도 털썩 주저앉았다.
일이 암만 바빠도 나 배 아프면 고만이니까. 아픈 사람이 누가 일을 하느냐.
파릇파릇 돋아오른 풀 한숲을 뜯어 들고 다리의 거머리를 쑥쑥 문대며
장인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논 가운데서 장인님도 이상한 눈을 해가지고 한참 날 노려보더니,
 
"넌 이자식, 왜 또 이래 응?"
 
"배가 좀 아파서유!"
 
하고 풀 위에 슬며시 쓰러지니까 장인님은 약이 올랐다. 저도 논에서 철벙철벙 둑으로
올라오더니 잡은참 내 멱살을 움켜잡고 뺨을 치는 것이 아닌가……
 
"이자식아. 일 허다 말면 누굴 망해놀 속셈이냐. 이 대가릴 까놀자식?"
 
우리 장인님은 약이 오르면 이렇게 손버릇이 아주 못됐다. 또 사위에게 이자식 저자식 하는
이놈의 장인님은 어디 있느냐. 오죽해야 우리 동리에서 누굴 물론하고 그에게 욕을 안 먹는
사람은 명이 짜르다 한다. 조그만 아이들까지도 그를 돌아세놓고
욕필이(본 이름이 봉필이니까) 욕필이, 하고 손가락질을 할 만치 두루 인심을 잃었다.
허나 인심을 정말 잃었다면 욕보다 읍의 배참봉댁 마름으로 더 잃었다.
번히 마름이란 욕 잘하고, 사람 잘 치고, 그리고 생김생기길 호박개 같애야 쓰는 거지만
장인님은 외양이 똑 됐다. 장인에게 닭마리나 좀 보내지 않는다든가 애벌논 때 품을
좀 안 준다든가 하면 그해 가을에는 영락없이 땅이 뚝뚝 떨어진다.
그러면 미리부터 돈도 먹고 술도 먹이고 안달재신으로 돌아치던 놈이 그 땅을 슬쩍
돌아 앉는다. 이바람에 장인님집 외양간에는 눈깔 커다란 황소 한놈이 절로 엉금엉금 기어들고, 동리 사람들은 그 욕을 다 먹어가면서도 그래도 굽실굽실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내겐 장인님이 감히 큰소리할 계제가 못된다.
뒷생각은 못하고 뺨 한 개를 딱 때려놓고는 장인님은 무색해서 덤덤히 쓴 침만 삼킨다.
난 그속을 퍽 잘 안다.
조금 있으면 갈도 꺾어야 하고 모도 내야 하고, 한참 바쁜 때인데 나 일 안하고 우리집으로 그냥 가면 고만이니까.
작년 이맘때도 트집을 좀 하니까 늦잠잔다구 돌멩이를 집어던져서 자는 놈의 발목을 삐게
 해놨다. 사날씩이나 건숭 끙끙, 앓았더니 종당에는 거반 울상이 되지 않았는가……
 
"예, 그만 일어나 일 좀 해라. 그래야 올 갈에 벼 잘되면 너 장가 들지 않니."
 
그래 귀가 번쩍 띄어서 그날로 일어나서 남이 이틀 품들일 논을 혼자 삶아 놓으니까 장인님도 눈깔이 커다랗게 놀랐다. 그럼 정말로 가을에 와서 혼인을 시켜 줘야 온 경우가 옳지 않겠나, 볏섬을 척척 들여쌓아도 다른 소리는 없고 물동이를 이고 들어오는
점순이를 담배통으로 가리키며,
 
 "이 자식아, 미처 커야지 조걸 무슨 혼인을 한다구 그러니 원!"
 
하고 남 낯짝만 붉혀 주고 고만이다.
골김에 그저 이놈의 장인님, 하고 댓돌에다 메꼰코 우리 고향으로 내뺄까 하다가
꾹꾹 참고 말았다.
 
참말이지 난 이꼴하고는 집으로 차마 못 간다. 장가를 들러갔다가 오죽 못났어야 그대로 쫓겨왔느냐고 손가락질을 받을 테니까…….
 
논둑에서 벌떡 일어나 한풀 죽은 장인님 앞으로 다가서며,
 
"난 갈 테야유. 그동안 사경 쳐내슈."
 
"너 사위로 왔지 어디 머슴살러 왔니?"
 
"그러면 얼찐 성례를 해줘야 안하지유. 밤낮 부려만 먹구 해준다, 해준다……"
 
"글쎄, 내가 안하는 거냐, 그년이 안 크니까."
 
하고 어름어름 담배만 담으면서 늘 하는 소리를 또 늘어놓는다.
이렇게 따져나가면 언제든지 늘 나만 밑지고 만다. 이번엔 안 된다, 하고 대뜸 구장님한테로 판단 가자고 소맷자락을 내끌었다.
 
"아, 이자식이 왜 이래 어른을."
 
안 간다구 뻗디디구 이렇게 호령은 제맘대로 하지만 장인님 제가 내 기운은 못 당한다.
막 부려먹고 딸은 안 주고, 게다 땅땅 치는 건 다 뭐야…….
그러나 내 사실 참 장인님이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전날, 왜 내가 새고 개 맞은 봉우리 화전밭을 혼자 갈고 있지 않았느냐.
밭가생이로 돌 적마다 야릇한 꽃내가 물컥물컥 코를 찌르고, 머리 위에서 벌들은 가끔 붕, 붕, 소리를 친다. 바위 틈에서 샘물 소리밖에 안 들리는 산골짜기니까,
맑은 하늘의 봄볕은 이불 속같이 따스하고 꼭 꿈꾸는 것 같다.
나는 몸이 나른하고 몸살(병을 아직 모르지만)이 날려구 그러는지
가슴이 울렁울렁하고 이랬다.
 
"어러이! 말이! 맘 마 마……"
 
이렇게 노래를 하며 소를 부리면 여느때 같으면 어깨가 으쓱으쓱한다.
웬일인지 밭을 반도 갈지 않아서 온몸이 맥이 풀리고 대구 짜증만 난다.
공연히 소만 들입다 두들기며……
 
"안야! 안야! 이 망할 자식의 소(장인님의 소니까) 대리를 꺾어들라."
 
그러나 내 속은 정말 안야 때문이 아니라 점심을 이고 온 점순이의 키를 보고
울화가 났던 것이다.
점순이는 뭐 그리 썩 예쁜 계집애는 못된다. 그렇다구 또 개떡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꼭 내 아내가 돼야 할 만치 그저 툽툽하게 생긴 얼굴이다. 나보다 십년이 아래니까
올해 열여섯인데 몸은 남보다 두 살이나 덜 자랐다. 남은 잘도 훤칠히들 크건만,
이건 위아래가 뭉툭한 것이 내 눈에는 헐없이 감참외 같다. 참외 중에는 감참외가 제일 맛좋고 예쁘니까 말이다. 둥글고 커다란 눈은 서글서글하니 좋고 좀 지쳐 찢어졌지만 입은 밥술이나 톡톡히 먹음직하니 좋다. 아따, 밥만 많이 먹게 되면 팔자는 고만 아니냐. 헌데 한 가지 파가 있다면 가끔가다 몸이(장인님이 이걸 채신이 없이 들까분다고 하지만) 너무 빨리빨리 논다.
그래서 밥을 나르다가 때없이 풀밭에서 깨빡을 쳐서 흙투성이 밥을 곧잘 먹인다. 안 먹으면 무안해 할까봐서 이걸 씹고 앉았느라면 으적으적 소리만 나고
돌을 먹는 겐지 밥을 먹는 겐지…….
 
그러나 이날은 웬일인지 성한 밥채루 밭머리에 곱게 내려 놓았다. 그리고 또 내외를
해야 하니까 저만큼 떨어져 이쪽으로 등을 향하고 웅크리고 앉아서 그릇나기를 기다린다.
내가 다 먹고 물러섰을 때, 그릇을 챙기는데 난 깜짝 놀라지 않았느냐.
고개를 푹 숙이고 밥함지에 그릇을 포개면서 날더러 들으라는지, 혹은 제 소린지,
 
"밤낮 일만 하다 말 텐가!"
 
하고 혼자서 쫑알거린다. 고대 잘 내외하다가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난 정신이 얼떨떨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무슨 좋은 수가 있나 없는가 싶어서 나도 공중을 대고 혼잣말로,
 
"그럼 어떡해?"
 
하니까,
 
"성례시켜 달라지 뭘 어떡해."
 
하고 되알지게 쏘아붙이고 얼굴이 빨개져서 산으로 그저 도망친다.
나는 잠시 동안 어떻게 되는 심판인지 맥을 몰라서 그 뒷모양만 덤덤히 바라보았다.
 
봄이 되면 온갖 초목이 물이 오르고 싹이 트고 한다. 사람도 아마 그런가 보다,
하고 며칠내에 부쩍 (속으로) 자란 듯싶은 점순이가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이런 걸 멀쩡하게 아직 어리다구 하니까…….
우리가 구장님을 찾아갔을 때 그는 싸리문 밖에 있는 돼지우리에서 죽을 퍼주고 있었다.
서울엘 좀 갔다오더니 사람은 점잖아야 한다구 웃쇰이(얼른 보면 지붕 위에 앉은 제비꼬랑지 같다) 양쪽으로 뾰죽히 삐치고 그걸 애헴, 하고 늘 쓰담는 손버릇이 있다.
우리를 멀뚱히 쳐다보고 미리 알아챘는지,
 
"왜 일들 허다 말구 그래?"
 
하더니 손을 올려서 그 애헴을 한번 후딱 했다.
 
"구장님! 우리 장인님과 츰에 계약하기를……"
 
먼저 덤비는 장인님을 뒤로 떠다밀고 내가 허둥지둥 달려들다가 가만히 생각하고,
 
 '아니 우리 빙장님과 츰에.'
 
하고 첫번부터 다시 말을 고쳤다. 장인님은 빙장님, 해야 좋아하고 밖에 나와서 장인님, 하면 괜스리 골을 내려고 든다. 뱀두 뱀이래야 좋으냐구 창피스러우니 남 듣는 데는 제발 빙장님, 빙모님, 하라구 일상 당조심을 받아오면서 난 그것두 자꾸 잊는다.
당장두 장인님, 하나 옆에서 내 발등을 꾹 밟고 곁눈질을 흘기는 바람에야 겨우 알았지만……
구장님도 내 이야기를 자세히 듣더니 퍽 딱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구장님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다 그럴 게다.
길게 길러둔 새끼손톱으로 코를 후벼서 저리 탁 튀기며,
 
"그럼 봉필씨! 얼른 성례를 시켜 주구려, 그렇게까지 제가 하구싶다는 걸……"
 
하고 내 짐작대로 말했다. 그러나 이말에 장인님이 삿대질로 눈을 부라리고,
 
"아 성례구 뭐구 계집애년이 미처 자라야 할 게 아닌가?"
 
하니까 고만 멀쑤룩해져서 입맛만 쩍쩍 다실 뿐이 아닌가.
 
"그것두 그래!"
 
"그래, 거진 사년 동안에도 안 자랐더니 그 킨 은제 자라지유"다 그만두구 사경 내슈……"
 
"글쎄, 이자식아! 내가 크질 말라구 그랬니. 왜 날 보구 떼냐?"
 
"빙모님은 참새만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앨 낳지유?(사실 빙모님은 점순이보다도 귓배기가  작다)"
 
장인님은 이말을 듣고 껄껄 웃더니(그러나 암만 해두 돌 씹은 상이다) 코를 푸는 척하고
날 은근히 곯리려고 팔꿈치로 옆 갈비께를 퍽 치는 것이다.
더럽다. 나두 종아리의 파리를 쫓는 척하고 허리를 구부리며 그 궁둥이를 콱 떼밀었다.
장인님은 앞으로 우찔근하고 싸리문께로 쓰러질 듯하다 몸을 바로 고치더니
눈총을 몹시 쏘았다. 이런 쌍년의 자식, 하곤 싶으나 남의 앞이라니 차마 못하고 섰는 그 꼴이 보기에 퍽 쟁그러웠다.
 
그러나 이밖에는 별반 신통한 귀정을 얻지 못하고 도로 논으로 돌아와서 모를 부었다.
왜냐면 장인님이 뭐라구 귓속말로 수군수군하고 간 뒤다. 구장님이 날 위해서 조용히 데리고 아래와 같이 일러주었기 때문이다(뭉태의 말은 구장님이 장인님에게 땅 두 마지기 얻어부치니까 그래 꾀엿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않는다)
 
"자네 말두 하기야 옳지, 암 나이 찼으니 아들이 급하다는 게 잘못된 말은 아니야. 허지만 농사가 한층 바쁜 때 일을 안한다든가 집으로 달아 난다든가 하면 손해죄루 그것두 징역을 가거든!(여기에 그만 정신이 번쩍 났다) 왜 요전에 삼포말서 산에 불좀 놓았다구 징역간 거 못 봤나. 제 산에 불을 놓아도 징역을 가는 이땐데 남의 농사를 버려두니 죄가 얼마나 더 중한가. 그리고 자넨 정장을(사경 받으러 정장 가겠다 했다) 간대지만 그러면 괜스리 죄를 들쓰고 들어가는 걸세. 또 결혼두 그렇지. 법률에 성년이란 게 있는데 스물하나가 돼야지 비로소 결혼을 할 수가 있는걸세. 자넨 물론 아들이 늦을 걸 염려하지만 점순이루 말하면 이제 겨우 열여섯이 아닌가. 그렇지만 아까 빙장님의 말씀이 올 갈에는 열일을 제치고라두 성례를 시켜주겠다 하시니 좀 고마울겐가. 빨리 가서 모 붓든 거나 마저 붓게, 군소리 말구 어서 가."
 
그래서 오늘 아침까지 끽소리 없이 왔다.
장인님과 내가 싸운 것은 지금 생각하면 전혀 뜻밖의 일이라 안할 수 없다.
장인님으로 말하면 요즈막 작인들에게 행세를 좀 하고 싶다고 해서,
 
"돈 있으면 양반이지 별게 있느냐!"
 
하고 일부러 아랫배를 쑥 내밀고 걸음도 뒤틀리게 걷고 하는 이판이다. 이까짓 나쯤 두들기다 남의 땅을 가지고 모처럼 닦아놓았던 가문을 망친다든가 할 어른이 아니다. 또 나로 논지면
아무쪼록 잘 봬서 점순이에게 얼른 장가를 들어야 하지 않느냐…….
 
이렇게 말하자면 결국 어젯밤 뭉태네 집에 마슬간 것이 썩 나빴다. 낮에 구장님 앞에서 장인님과 내가 싸운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대구 빈정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 맞구두 그걸 가만 둬?"
 
"그럼 어떡허니?"
 
"임마, 봉필일 모판에다 거꾸로 박아놓지 뭘 어떡해?"
 
하고 괜히 내 대신 화를 내가지고 주먹질을 하다 등잔까지 쳤다. 놈이 번히 괄괄은 하지만
그래놓고 날더러 석유값을 물라구 막 찌다우를 붙는다. 난 어안이 벙벙해서 잠자코 앉았으니까 저만 연신 지껄이는 소리가,
 
"밤낮 일만 해주구 있을 테냐?
 
"영득이는 일년을 살구두 장갈 들었는데 넌 사년이나 살구두 더살아야 해?"
 
"네가 세번째 사윈줄이나 아니? 세번째 사위"
 
"남의 일이라두 분하다. 이자식아, 우물에 가 빠져 죽어."
 
나중에는 겨우 손톱으로 목을 따라고까지 하고, 제 아들같이 함부로 훅닥이었다.
별의별 소리를 다해서 그대로 옮길 수는 없으나 그 줄거리는 이렇다…….
 
우리 장인님 딸이 셋이 있는데 맏딸은 재작년 가을에 시집을 갔다.
정말은 시집을 간 것이 아니라 그 딸도 데릴사위를 해가지고 있다가 내보냈다.
그런데 딸이 열 살 때부터 열아홉 즉 십년 동안에 데릴사위를 갈아들이기를,
동리에선 사위부자라고 이름이 났지마는 열네 놈이란 참 너무 많다. 장인님이 아들은 없고 딸만 있는 고로 그담 딸을 데릴사위를 해올 때까지는 부려먹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머슴을 두면 좋지만 그건 돈이 드니까, 일 잘하는 놈을 고르느라고 연방 바꿔들였다. 또 한편 놈들이 욕만 줄창 퍼붓고 심히도 부려먹으니까 밸이 상해서 달아나기도 했겠지, 점순이는 둘째딸인데 내가 일테면 그 세번째 데릴사위로 들어온 셈이다. 내 담으로 네번째 놈이 들어올 것을 내가 일도 잘하고 그리고 사람이 좀 어수록하니까 장인님이 잔뜩 붙들고 놓질 않는다. 셋째딸이 인제 여섯살, 적어두 열 살은 돼야 데릴사위를 할 테므로 그 동안은 죽도록 부려먹어야 된다. 그러니 인제는 속 좀 채리고 장가를 들여달라구 떼를 쓰고 나자빠져라, 이것이다.

나는 겉으로 엉, 엉, 하며 귓등으로 들었다. 뭉태는 땅을 얻어부치다가 떨어진 뒤로는
장인님만 보면 공연히 못 먹어서 으릉거린다. 그것도 장인님이 저 달라고 할 적에 제 집에서 위한다는 그 감투(예전에 원님이 쓰던 것이라나, 옆구리에 뽕뽕 좀 먹은 걸레)를
선뜻 주었더면 그럴 리도 없었던 걸…….
 
그러나 나는 뭉태란 놈의 말을 전수히 곧이듣지 않았다.
꼭 곧이들었다면 간밤에 와서 장인님과 싸웠지 무사히 있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면 딸에게까지 인심을 잃은 장인님이 혼자 나빴다.
 
실토이지 나는 점순이가 아침상을 가지고 나올 때까지는 오늘은 또 얼마나 밥을 담았나, 하고 이것만 생각했다. 상에는 된장찌개하고 간장 한 종지, 조밥 한 그릇, 그리고 밥보다 더 수부룩하게 담은 산나물이 한 대접, 이렇다. 나물은 점순이가 틈틈이 해오니까 두 대접이고 네 대접이고 멋대로 먹어도 좋으나 밥은 장인님이 한 사발 외엔 더 주지 말라고 해서 안된다. 그런데 점순이가 그 상을 내 앞에 내려 놓으며 제 말로 지껄이는 소리가,
 
"구장님한테 갔다 그냥 온담 그래!"
 
하고 엊그제 산에서와 같이 되우 쫑알거린다.
딴은 내가 더 단단히 덤비지 않고 만 것이 좀 어리석었다, 속으로 그랬다.
나도 저쪽 벽을 향하여 외면하면서 내 말로,
 
"안된다는 걸 그럼 어떡헌담!"하니까,
 
"쇰을 잡아채지 그냥 둬, 이 바보야!"
 
하고 또 얼굴이 빨개지면서 성을 내며 안으로 샐죽하니 튀들어가지 않느냐, 이때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게 망정이지 보았다면 내 얼굴이 에미 잃은 황새새끼처럼 가여 웁다 했을 것이다.
 
사실 이때만치 슬펐던 일이 또 있었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은 암만 못생겼다 해두 괜찮지만,
내 아내 될 점순이가 병신으로 본다면 참 신세는 따분하다. 밥을 먹은 뒤 지게를 지고 일터로 갈려 하다 도로 벗어던지고 바깥 마당 공석 위에 드러누워서,
나는 차라리 죽느니만 같지 못하다 생각했다.
내가 일 안하면 장인님 저는 나이가 먹어 못하고 결국 농사 못 짓고 만다.
뒷짐으로 트림을 꿀꺽하고 대문 밖으로 나오다 날 보고서,
 
"이자식아, 왜 또 이러니."
 
"관격이 났어유, 아이구 배야!"
 
"기껀 밥 처먹구 무슨 관격이야, 남의 농사 버려주면 이자식아 징역간다 봐라!"
 
"가두 좋아유, 아이구 배야!"
 
참말 난 일 안해서 징역 가도 좋다 생각했다. 일후 아들을 낳아도 그 앞에서 바보, 바보,
이렇게 별명을 들을 테니까 오늘은 열쪽이 난대도 결정을 내고 싶었다.
 
장인님이 일어나라고 해도 내가 안 일어나니까 눈에 독이 올라서 저편으로 힝하게 가더니
지게막대기를 들고 왔다. 그리고 그걸로 내 허리를 마치 돌 떠넘기듯이 쿡 찍어서 넘기고
넘기고 했다. 밥을 잔뜩 먹어 딱딱한 배가 그럴 적마다 퉁겨지면서 밸창이 꼿꼿한 것이
여간 켕기지 않았다. 그래도 안 일어나니까 이번에는 배를 지게 막대기로 위에서 쿡쿡 찌르고 발길로 옆구리를 차고 했다. 장인님은 원체 심청이 궂어서 그러지만 나도 저만 못하지 않게
배를 채었다. 아픈 것을 눈을 꽉 감고 넌 해라 난 재밌단 듯이 있었으나, 볼기짝을 후려갈길
적에는 나도 모르는 결에 벌떡 일어나서 그 수염을 잡아챘다. 마는
내 골이 난 것이 아니라 정말은 아까부터 벽 뒤 울타리 구멍으로 점순이가 우리들의 꼴을 몰래 엿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말 한마디 톡톡히 못한다고 바라보는데 매까지 잠자코 맞는 걸 보면,
짜장 바보로 알 게 아닌가. 또 점순이도 미워하는 이까짓 놈의 장인님하곤 아무것도 안되니까 막 때려도 좋지만 사정 보아서 수염만 채고(제 원대로 했으니까 이때 점순이는 퍽 기뻤겠지) 저기까지 잘 들리도록
 
 '이걸 까셀라부다!'
 
하고 소리를 쳤다.
장인님은 더 약이 바짝 올라서 잡은 참 지게막대기로 내 어깨를 그냥 내려갈겼다. 정신이 다 아찔하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때엔 나도 온몸에 약이 올랐다. 이녀석의 장인님을, 하고 눈에서 불이 퍽 나서 그 아래 밭 있는 넝알로 그대로 떠밀어 굴려버렸다.
조금 있다가 장인님이 씩,씩, 하고 한번 해보려고 기어오르는 걸, 얼른 또 떠밀어
굴려 버렸다. 기어오르면 굴리고, 굴리면 기어오르고, 이러길 한 너덧번을 하며 그럴 적마다,
 
"부려만 먹구 왜 성례 안하지유!"
 
나는 이렇게 호령했다. 허지만 장인님이 선뜻 오냐 낼이라두 성례시켜 주마, 했으면
나도 성가신 걸 그만두었을지 모른다. 나야 이러면 때린 건 아니니까 나중에 장인 쳤다는
누명도 안 들을 터이고 얼마든지 해도 좋다.
한번은 장인님이 헐떡헐떡 기어서 올라오더니 내 바짓가랭이를 요렇게 노리고서 단박 움켜잡고 매달렸다. 악, 소리를 치고 나는 그만 세상이 다 팽그르 도는 것이,
 
"빙장님! 빙장님! 빙장님!"
 
"이자식! 잡아먹어라, 잡아먹어!"
 
"아! 아! 할아버지! 살려줍쇼, 할아버지!"
 
하고 두팔을 허둥지둥 내절 적에는 이마에 진땀이 쭉 내솟고 인젠 참으로 죽나보다 했다.
그래두 장인님은 놓질 않더니 내가 기어이 땅바닥에 쓰러져서 거진 까무러치게 되니까 놓는다. 더럽다, 더럽다. 이게 장인님인가? 나는 한참을 못 일어나고 쩔쩔맸다. 그러나 얼굴을 드니
(눈엔 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지가 부르르 떨리면서 나도 엉금엉금 기어가 장인님의
바짓가랭이를 꽉 움키고 잡아나꿨다.
 
내가 머리가 터지도록 매를 얻어맞은 것이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가 또한 우리 장인님이 유달리 착한 곳이다.
여느 사람이면 사경을 주어서라도 당장 내어쫓았지, 터진 머리를 볼솜으로 손수 지져 주고,
호주머니에 희연 한 봉을 넣어 주고 그리고,
 
"올 갈엔 꼭 성례를 시켜 주마. 암만 말구 가서 뒷골의 콩밭이나 얼른 갈아라."
 
하고 등을 뚜덕여 줄 사람이 누구냐. 나는 장인님이 너무나 고마워서 어느덧 눈물까지 났다.
점순이를 남기고 인젠 내쫓기려니 하다 뜻밖의 말을 듣고,
 
"빙장님! 인제 다시는 안그러겠어유!"
 
이렇게 맹세를 하며 부랴부랴 지게를 지고 일터로 갔다.
그러나 이때는 그걸 모르고 장인님을 원수로만 여겨서 잔뜩 잡아당겼다.
 
"아! 아! 이놈아! 놔라, 놔."
 
장인님은 헷손질을 하며 솔개미에 챈 닭의 소리를 연해 질렀다. 놓긴 왜, 이왕이면 호되게
혼을 내주리라 생각하고 짖궂이 더 댕겼다마는, 장인님이 땅에 쓰러져서 눈에 눈물이 피잉
도는 것을 알고 좀 겁도 났다.
 
"할아버지! 놔라, 놔, 놔, 놔, 놔라."
 
그래도 안되니까,
 
"애 점순아! 점순아!"
 
이 악장에 안에 있었던 장모님과 점순이가 헐레벌떡하고 단숨에 뛰어 나왔다.
나의 생각에 장모님은 제 남편이니까 역성을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점순이는 내 편을 들어서 속으로 고수해 하겠지─---.
대체 이게 웬 속인지(지금까지도 난 영문을 모른다) 아버질 혼내 주기는 제가 내래 놓고
이제 와서는 달겨들며,
 
"에그머니! 이 망할 게 아버지 죽이네!"
 
하고, 귀를 뒤로 잡아댕기며 마냥 우는 것이 아니냐.
그만 여기에 기운이 탁 꺾이어 나는 얼빠진 등신이 되고 말았다.
장모님도 덤벼들어 한쪽 귀마저 뒤로 잡아채면서 또 우는 것이다.
 
이렇게 꼼짝도 못하게 해놓고 장인님은 지게막대기를 들어서 사뭇 내려조졌다.
그러나 나는 구태여 피하려지도 않고
암만해도 그 속 알 수 없는 점순이의 얼굴만 멀거니 들여다보았다.
 
"이자식!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가 나오도록 해?"
 

                                     ---  끝  --- 

 

https://www.youtube.com/watch?v=7AY6INhsO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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