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어머니와 딸 (상) - 강경애 -

하얀모자 1 2023. 3. 8.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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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와 딸 (상)

                                                                     - 강경애 -

 

 1. 번민
 
부엌 뒷대문을 활짝 열고 나오는 옥의 얼굴은 푸석푸석하니 부었다.
그는 사면으로 기웃기웃하여 호미를 찾아들고 울바자 뒤로 돌아가며
기적거린 후 박, 호박, 강냉이 씨를 심는다. 그리고 가볍게 밟는다.
눈동이 따끈따끈하자 콧잔등에 땀이 방울방울 맺힌다. 누구인지
옆구리를 톡톡 친다. 휘끈 돌아보니 복술이가 꼬리를 치면 그에게로
달려든다. 까만눈을 껌벅이면서……
옥은 호미를 던지고,
 
“복술이 왔니!”
 
복술의 잔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멍하니 뒷산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과 마주 띄는 이끼 돋은 바위 틈에는 파래진 이름 모를
풀포기가 따뜻한 볕과 맑은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다.
그 옆으로 돌아가며 봄맞이 아이들의 손에 다 꺾인 나뭇가지에는
노랑꽃, 빨강꽃이 송이송이 피었다.
나비 한 마리가 펄펄 날아든다. 그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높았다
낮아지는 나비를 따라 시선은 달음질쳤다. 눈 깜빡일 사이에 나비는
벌써 산비탈을 넘어 까뭇거린다.
그의 눈은 스스로 감겨지며 볼 위로 눈물 흔적이 보인다.
 
“무엇 하셔요.”
 
사립문 밖에서 건너집 애기 어머니가 자루 같은 젖을 흔들며 발발 기어
달아나는 애기를 잡아 안고 일어선다. 옥은 빙긋 웃으며,
 
“호박씨 심으러 나왔어요.”
 
그는 손톱 사이에 낀 흙을 파내고 보니 애기 어머니는
어디로 가버리었다.
그는 방문턱 위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두 다리를 내려다볼 때
저켠 산너머로 작은 새소리가 그의 가슴을 한두 번 두드리고
잠잠하여진다. 순간에 떠오른 것은 엊저녁에 받은 남편의 편지다.
그는 한숨을 길게 쉬며 
 
‘그가 그렇다니…… 인골(人骨)을 쓰고야
  차마…… 그렇게…… 하는 수야 있나! 어머님의 말씀이 오죽이나
  잘 알으시고 하신 말씀이랴! “믿지 마라! 남자를 믿지 말아라!”’
 
몇 번인지 되뇌이고 난 그는 눈물이 그득해졌다.
 
‘어머니, 나는 이 일을 어찌 해야 좋아요?’
 
향하여 정면 위에 걸린 약간 미소를 띤 남편의 사진을 쳐다보았다.
언제나 틈만 있으면 이렇게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일어나는 그의 과거. 시어머니 생전에 자기와 남편이
천진스럽게 놀던 꼴, 그리고 시어머님이 임종시까지도 
 
“봉준을 잘 길러라. 둘이서 싸우지 말고 잘살아야 한다. 옥아!”
 
어린 옥은 곤한 잠에 들기 전까지는 입 속으로 외우건마는…… 
사정없이 잡아뗀 남편의 지독한 편지. 이것이 자기의 정성이
부족함일까, 혹은 남편이 철없는 탓일까를 탓하기 전에 먼저 돌아가신
시어머니에게 대하여는 죄스러웠다. 어쨌든 싸움이었던 것이었다.
그의 시어머니는 옥에게 무슨 말이든지 부탁할 때에는 두 손을 꼭 잡고
들여다보며,
 
“옥아, 너는 내 딸이지, 내 말 잘 듣지?”
 
이렇게 묻고 나서야 뒷말을 계속하시는 것이었다.
옥은 펄썩 주저앉는다. 방바닥은 산뜻한 맛이 있다.
뒤를 이어 보름달 같이 선연히 떠오르는 시어머니의 그 눈, 코, 입모습,
부지런하기로 댈 데 없는 그의 손발,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것이다.
책상 앞으로 다가앉아 그는 책을 펼쳐들었다 놓았다.
연필을 쥐고 무엇을 쓰다가 박박 뜯어 두 손으로 꼬깃꼬깃하여
뒷문 밖으로 내쳤다.
말쑥하니 치워놓은 책상 위를 다시 들어내어 먼지를 떤다.
이렇게 뒤질 때 남편이 어려서 읽던 뚜껑 없는 책 몇 권이 나왔다.
책장 떨어진 것, 연필로 죽죽 내려그은 것, 먹점이 뚝뚝 박힌 것들이다.
따라 남편의 두둑한 손이 보였다. 언제나 흙장난하는 탓으로
손거스러미는 항상 일고 있었다.
어린 남편은 학교서 돌아오면 문턱에서 책보를 방안으로 팽개치고
선길로 나가는 것이었다. 옥은 뒤로 따라서며,
 
“어디 가?”
 
그는 휘끈 돌아보고 두말없이 나가고, 혹간,
 
“저기.”
 
하고는 도망질치는 것이었다.
옥은 저녁을 퍼놓고 기다리다 못해 사립문까지 나와서 머리를 배움하고
가고 오는 사람들을 남몰래 살펴보았다.
아득아득할 때 남편은 사립문으로 뛰어들자,
 
“오마이!”
 
냅다 치고는 팍 고꾸라지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요리조리 궁리하던 옥은, 이 소리에 가슴이 찌르르 울리며
시어머님이 죽게 보고 싶었다. 자기네들을 남기고 먼저 간 시어머님이
원망스러워졌다. 그러나 꾹 참고 남편을 껴안고 방으로 들어가며,
 
“왜 그래!”
 
남편은 한층 더 느껴 울며 옥의 무릎 위에 탁 실린다.
 
“누가 때려?”
 
“장손이가 여기를 때리지……”
 
볼을 가리켰다. 옥은 바투 들여다보고 어루만지며,
 
“정 나쁜 놈들! 울지 말라오 후일 내 보면 대신 때려주고 욕해줄게.
  어서 밥 먹자오, 응?”
 
이렇게 말하여 겨우 울음을 그치게 한 그는 상 옆에 마주 앉아 밥을
물에 말아주고 반찬에 가시를 뽑아가며 불룩이는 그의 두 볼을 바라볼때
 대견한 끝에 두 줄기 눈물이 앞을 캄캄케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과거를 돌아볼 때 그나마 옛날이 다시 오지 못할 행복한
날이었음에 그의 가슴은 뻐근하여졌다. 따라서 어머니를 잃은
자기네들의 외로운 신세가 눈앞에 선하니 보인다.
그의 볼은 능금빛으로 타오르고 골치가 들썩들썩 아프기 시작하였다.
그는 횃대에 걸린 수건으로 힘껏 머리를 동인 후 책상 위에 푹
엎드렸다가 벌떡 일어나 아래윗목으로 왔다갔다하며 자기의 장래를
어림하여 보았다.
남편은 언제나 자기를 버리고 어떤 말쑥한 여학생과 함께 살 때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나는 어쩔까?’ 이혼을 해주어야 옳을까?
  이대로 견뎌 배겨야 할까?’
 
그는 한참이나 바람벽을 노려보다가 입술을 꼭 다물고, ‘망설이는
것부터도 벌써 어머니의 유언을 잊은 나다! 견디자! 어머님의 둘도
없는 아들이 아니냐? 그러고 나의 남편인 것이다!’
이렇게 부르짖으며 책상서랍을 열었다.
그는 봉투 속으로부터 편지를 꺼내어 몇 번이든지 되읽어 본 후 그의
가슴에 꼭 갖다대었다. 그리고 조심성스러이 남편의 사진을 쳐다보았다.
밖에서 신발소리가 났다. 그는 손 재게 편지를 서랍 속에 밀어넣고
얼른 일어났다.
앞문이 열리자 영철 선생이 들어선다.
 
“어디 아픈가!”
 
옥은 그제야 머리에 동인 수건을 슬그머니 벗어서 뒤로 감추며,
 
“아뇨, 언제 오셨나요?”
 
“지금 오는 길일세. 어디 아픈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며 묻는다.
 
“아니야요.”
 
“그새 동경서 편지 왔겠지?”
 
“네, 어제 왔습니다.”
 
“음, 잘 있다던가?”
 
“네.”
 
“다른 말 없어?”
 
옥은 머리를 숙였다. 갑자기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
 
“왜? 무어랬던가?”
 
“저…… 아니요.”
 
그의 입은 굳이 다물어졌다. 그리고 그의 흰 목덜미에 새파란 힘줄이
불끈 일어나는 것이었다. 선생은 그의 입술을 바라보며 무거운 침묵
속에서 그의 속을 어림하여 보았을 때 가엾음보다도 감복됨이
 앞서는 것이었다.
 
“공부에 재미 많지, 어디 얼마나 배웠나 보세.”
 
선생은 이렇게 화제를 돌려서 그의 긴장된 마음을 풀어주려 하였다.
그는 책보를 당겨서 풀어놓았다. 선생은 다가앉아 그의 가리키는
페이지를 들여다보며,
 
“그새 많이 배웠지.”
 
선생은 빙긋이 웃어 보였다.
 
“열심으로 공부나 하고 모든 괴로움은 하느님께 바치게나.
 세상 사람 치고 근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 줄 아나. 원체 괴로운
 세상이니까. 먼저 깨닫고 달게 받아야 하네.”
 
옥은 잠잠하여 고름 끈을 만지작거렸다.
 
“이번 공부시키러 가서 자네 어머님 뵈었지.”
 
“네? 어머님!”
 
“요새는 영업도 그만두시고 무던한 영감님 얻으셔서 평안히 계시는
 모양이야. 장차로는 교회 안으로 들어오시겠다고 하시데.
 어머님 위하여 많은 기도 올리게.”
 
“한 번 오시겠다는 말씀 없어요?”
 
“오시겠다대.”
 
시계는 네 시를 땅땅 친다.
선생은 시계를 바라보며 모자를 들고 일어섰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열심으로 공부하게. 그러고 자조자조 기도해.
  내일 예배당에 꼭 가지?”
 
하고 옥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옥은 발부리를 굽어보며,
 
“네.”
 
선생은 댓돌로 내려서며 저편 구석에 석유초롱이 반만큼 눈에 띄었다.
 
“무엇 떨어진 것 없나?”
 
“아뇨.”
 
선생은 햇빛을 안고 집 모퉁이로 돌아갔다.
옥은 앞이 허전해지며 머리를 갈래갈래 풀어헤친 어머님의 환영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친정어머니에게 대한 인상이란 남자들의
무릎과 무릎 사이로 옮아다니며 갖은 아양을 다 피우다가도
그들의 발길에 툭툭 채여 질질 울고 다니는 꼴이었다.
그러나 오늘에 생각키운 어머니 ── 그의 과거를 짐작해볼 때
한번도 보지 못한 자기 아버지란 사나이가 어딘지 모르게 그리우면서도
안타깝게 미워졌다 ── 어머니의 타락된 원인이 아버지의 소위(所爲)인
것을 깊이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는 사립문 안으로 들어서자 맨땅에 펄썩 주저앉으며,
 
“어머니! 당신도 깨끗한 처녀였겠지요.
 아부지를 만나기 전에는…… 아 얼마나 쓰림을 당하시다 못해서
 곱고 고운 어머니의 그 깨끗한 마음이 흐리어졌습니까? 이제야 비로소
 어머님의 쓰라렸던 가슴을 알겠습니다. 괴로움을 잊기 위하여 술을
마시고 울지 않았습니까! 오 그 쓰림은 나에게도 왔습니다! 왔습니다.”
 
그는 일어났다. 해는 산 밭을 타서 뉘엿뉘엿 넘어가고 멀리 들리는
버들피리 소리는 차츰차츰 가늘어진다.
 
 2. 추억
지루하나마 옥의 친정어머니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자.
옥의 어머니는 송화읍에서 은율목으로 빠지는 막바지에 사는
김창문의 맏딸이었다.
아버지의 부지런한 탓으로 조밥이나마 배불리 먹고 갈나무라도 미루어
가면서 뜨뜻이 땠다.
금년 열일곱에 난 창문의 딸은 동네의 자랑거리였다.
바느질 잘하고 얌전하다는 것, 더구나 우선우선 웃는 듯한 그의 얼굴은
동네의 인기를 끌고도 지나친 것이었다. 그러므로 누구나 그를
대할 때에는 ‘예쁜이’ 이렇게 불러서 그의 이름은 예쁜이로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아침만 되면 그의 부모들은 네 살 된 세인이를 맡기고 들로 나간다.
예쁜이는 집에 남아 있어 물 길어 밥 짓기,
진흙투성이 된 옷 빨고 바늘질하기였다.
그의 동무들은 김 매기를 뽑혀다니었건만 그는 텃밭을 매는 외에
벌김이라고는 매어 보지 못하였다. 그만큼 그의 부모들이
그를 아끼었던 것이다.
어느 날 저녁 때 그는 세인을 데리고 물을 길러 갔다.
앞으로 뿔뿔 달아나는 세인이를 보고,
 
“아가, 세인아” 하고 불렀다.
 
세인은 말똥말똥 누이를 쳐다보며 달아난다.
 
“놀며 가자우, 넘어져, 응.”
 
몇 걸음 천천히 걷던 세인은 금시로 달음질쳤다. 예쁜이는 따라가서
붙잡고 흘겨보며,
 
“넘어진대도?”
 
세인은 몸을 빼치려고 어깨를 흔들며,
 
“고기고기나!”
 
조그만 손을 쏙 내밀었다.
 
“무엇?”
 
손길을 통하여 바라다보니 샛노란 망망꽃이 풀포기에 숨어 반만큼
배움하고 있다.
 
“꺾어 주랴?”
 
“응.”
 
그는 가만가만히 풀숲을 헤치고 꺾어다 주었다. 세인의 얼굴은 한층
 더 둥그래 보였다.
파란 풀포기에 숨어 흐르는 흰 물줄기는 쭉 둘러싼 차돌 틈으로 졸졸
흐르고 있었다.
예쁜이는 그의 그림자를 물 속에 던지며 바가지를 들여밀었다.
퐁, 소리가 나자 눈달치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동이에 물을 채우고 나서 예쁜이는 한 모금 마신 후 돌아보며,
 
“물 안 먹어?”
 
바가지를 들어 뵈었다. 세인은 그에게로 다가서며,
 
“감구감구” 한다.
 
휘끈 돌아보다가 번개같이 웬 사람의 시선은 마주쳤다.
그는 머리를 폭 숙이고 얼른 동이를 이었다.
 
“어서 가!”
 
겨우 한 마디를 입 속으로 중얼거리고 세인의 손을 잡아끌었다.
저편 사나이로부터,
 
“아기 싱아 줄까?”
 
세인이는 예쁜에게로 칵 달려매며 망망꽃을 공중에 내던지고
울멍울멍하였다. 옥의 두 귀밑은 빨개지며 세인의 손을 홱 잡아뿌리치고
잦은 걸음으로 달아났다.
세인은 “으아”소리를 치고 두 발을 동동 굴렀다.
이 꼴을 본 사나이는 이편으로 달려와서 그의 손에 싱아를 들려주었다.
 
“애기 울지 마라.”
 
세인이는 싱아를 집어내치고 예쁜이를 따라 허방지방 따라오다가
팍 고꾸라졌다. 사나이는 뒤로 와서 그를 부동켜안고
예쁜네 집 사립문까지 왔다.
 
“아가, 잘 들어가라. 또 넘어지지 말고, 응?”
 
세인이는 눈물을 좌우로 씻으며 봉당 대문 사이로 갸웃이 내다보고는
쑥 들어가 버렸다.
사나이는 돌아서서 머리를 푹 숙이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었다.
부엌에 숨었던 예쁜이는 세인이를 꽉 쓸어안고 문 사이로 사나이의
뒷맵시를 보았다.
커다란 사나이가 산비탈을 넘어서자 힐끗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 후로는 세인이는 밖에만 갔다오면 싱앗단이나 과자봉지를 들고
달려 들어오며,
 
“이거 봐, 사탕이야 씨, 너 안 줘.”
 
 하고 빙빙 돌아가며 과자봉지를 들었다 놓았다 하였다.
예쁜이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웬 거냐? 누가 사주디?”
 
세인은 밖을 흘끔흘끔 돌아보며,
 
“감구, 감구가 사줘.”
 
예쁜이는 문밖을 바라보며 어디 숨어서 엿보지나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때 전신이 오싹해지며 눈앞에 전날 본 사나이의 그 눈매가 무섭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는 가는 소리로,
 
“세인아, 얻어먹으면 거렁뱅이 되어서 못 쓴다.
 후댐에 또 사주거든 우리 집엔 사탕 많아요 하고 받지 말아라 응?
 그러면 내가 아부지더러 하얀 돈 많이 달라고 해서
 사탕 이만큼 사주마 응?”
 
그는 손을 벌려 뵈었다. 세인이는 들은 체도 안 하고 사탕만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그는 세인이를 꼭 잡고 들여다보며,
 
“아가, 남한테 사탕 받아먹으면 곱다저고리 해서 너 안 줘.”
 
그는 사탕을 입에 넣고 예쁜이를 쳐다보았다.
 
“후일에 감구가 사주면 받아 가지고 올 테냐?
  후일에는 안 그렇게 하지?  응, 대답해.”
 
세인이는 두리번두리번하며 덮어놓고,
 
“응” 하였다.
 
예쁜이는 세인이를 꼭 껴안으며
 
“우리 세인이 용치, 정말 용해.”
 
볼과 볼을 마주댈 때 달콤한 냄새가 구미를 스르르 돌리게 하였다.
예쁜이의 집 문앞을 감도는 그 사나이는
송화읍서 한 등너머 사는 최용문의 일꾼으로 있는 둘째였다.
그가 예쁜이를 먼 빛으로 보기는 벌써 여러 번이었으나
이렇게 마주당해 보기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 후로부터는 일하다 중턱에도 나뭇짐이나 걸머지고 뻔질나게 읍으로
오는 수가 잦았다. 그리하여 지고 온 나뭇짐을 되는대로 팔아버리고
예쁜네집 주위를 몇 바퀴든지 돌아서 세인이라도 만나보고 나오면
한결 마음이 나았다.
둘째는 어젯밤 비에 와짝 달라진 조밭머리에 앉아 호미를 움직였다.
침묵 속에 몇 이랑을 매고 난 그는 긴 한숨을 후,
쉰 끝에 김내기를 내쳤다. 굽이쳐 올라가는 멜로디는 스러져가는 듯
꺼져가는 듯 삼아삼아하였다. 곁에 동무는,
 
“좋다!”
 
제 엉덩이를 툭툭 치고 벙글벙글 웃었다. 소리가 끝나자,
 
“웬일인가? 자네도 소리 할 줄 알아?”
 
두리번두리번 쳐다보았다. 그는 픽 웃어 보이고 잠잠하였다.
 
“한 마디 또 하게.”
 
밭머리에서는 왁자지껄하였다.
 
“어서 들어들 가세.”
 
이편을 향하여 한 사람이 고함친다. 곁에 동무는 일어섰다.
 
“가세.”
 
“먼저 가게나.”
 
동무는 꾸역꾸역 그들의 뒤를 따랐다.
둘째는 매던 이랑을 마치고 나서 밭머리로 나왔다.
이밭 저밭에서 꾸역꾸역 사람들이 밀려나왔다.
그는 사람들의 지껄이는 소리가 귀찮아서 맨 꽁무니에 떨어져서
산비탈 지름길에 들어섰다.
딱 막아선 다방솔포기 옆에 붙어 앉아 그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읍등새만 바라보고 있었다.
뒤에서는 잦은 발소리가 차츰차츰 가까워졌다.
그는 무심코 힐끗 돌아보니 새하얀 손수건으로 귀밑까지 폭 눌러쓴
색시가 노란 바구니를 옆에 끼고 이 편을 향하여 오다가 인기척 있음을
알고 피하여 가만가만 저편으로 가는 것이었다.
둘째의 눈은 차차로 둥그래지며 멀어가는 색시의 뒷맵시를 살피는 순간
 
‘예쁜이다!’
 
이렇게 속으로 부르짖고 벌떡 일어났다. 그의 가슴은 점점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던 그는 최후의 용기를 내어 색시의 뒤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열 눈이 자기 한 몸으로만 쏠린 듯하여 뒷잔등이
오싹오싹해지며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었다.
이 눈치를 챈 색시는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재게 걸었다.
뒤에 발소리가 가까워짐을 알자 그는 바구니까지 내치고 달아난다.
일삼아 다듬어가며 뜯어 넣은 풋나물은 길가에 좍 헤지고 바구니는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둘째는 구르는 바구니를 붙잡고 헤어진 나물을 주섬주섬 주웠다.
솔밭 속으로 지나치는 색시는 뒤를 돌아보자 수건이 공중 벗겨지며 삼단
같은 머리채가 어깨 위로 미끄러져 빨간 댕기가 나풀거렸다.
둘째는 색시의 눈과 마주치자 머리를 푹 숙일 때.
 
“아이고 어마이!”
 
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침묵은 계속되었다. 둘째는 겨우 머리를 들어 폭 숙인 그의 얼굴을
옆으로 자세히 보니 틀림없는 예쁜이다. 그리던 예쁜이를 꿈 밖에도,
생각지 않은 곳에서 이렇게 만났으나 무엇이라고 말할는지 감감하였다.
빽빽이 들어선 소나무 새로 그윽한 송진 냄새와 함께
새 속잎에 짙은 뭇냄새가 그들의 코를 스칠 뿐이었다.
둘째는 예쁜이가 숨도 크게 못 내쉬고 바들바들 떠는 것을 내려다보고는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만 갈까 하고 발길을 돌렸으나
깍 붙고 떨어지지 않았다. 자기로서도 생각지 못한 어떠한
큰 힘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떻게 할까?”
 
가는 바람만 불어와도 사람인 듯, 이상한 소나무라도 눈에 띄면 사람이
숨었는가? 이리하여 전 신경이 긴장되었을 때 까치 한 마리가 그들을
굽어보며 깍깍하였다.
그는 얼결에 바구니를 예쁜이 앞으로 놓았다.
 
“예쁜아! 너 집에 가고 싶지?”
 
떨리는 소리다. 힘을 들여 해놓고 보니 그의 생각한 바가 아니고
딴청을 끌어내었다. 
 
‘한 마디만 물어보고 보내야 할 텐데 어떻게 하나?’
 
이렇게 속으로 궁리하면서도 역시 같은 말을 뇌이는 데서
 지나지 않았다.
 
“예쁜아, 어서 가라.”
 
누가 이런 말을 시켜주는지 안타까웠다.
둘째는 있는 힘을 다하여 옆으로 비켜섰다.
예쁜이는 죽나 보다 하고 두 눈을 꼭 감고 엎드렸다가 ‘가라’는
둘째의 말이 그의 귀에 어렴풋이 들리자 공포와 의문이 그의 전신을
억눌렀다. 그는 한층 더 떨었다.
이 꼴을 본 둘째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서 노송나무 뒤로 숨어버렸다.
그제야 예쁜이는 겨우 일어나 바구니를 들고 달음질을 쳤다.
 
“예쁜아, 나를 잊지 마라!”
 
그의 전신은 화끈함을 느끼자 앞이 캄캄해졌다.
그는 소나무를 칵 쓸어안고,
 
“예쁜아, 예쁜아!”
 
주먹으로 눈물을 씻고 바라다보니 한길가 나뭇가지 사이로 숨바꼭질하는
그의 댕기꼬리는 햇빛을 받아 피같이 붉어 뵈었다.
어젯밤 늦게까지 순희네 벼 마당질을 마치고 오늘부터는
예쁜네 차례였다.
창살이 푸릇푸릇하자 예쁜 아버지는 부시럭부시럭 일어났다.
 
“여보게, 일어나 밥 하게.”
 
그는 아내를 깨우고 밖으로 나갔다.
예쁜 어머니는 예쁜이를 깨워 가지고 부엌으로 나와 등에 불을 켜놓고
아궁이에 불을 피우며 한편으로 햇팥을 일어 안쳤다.
예쁜이는 아궁이 앞에 앉아 무럭무럭 일어나는 불을 들여다볼 때
두 무릎이 따끈따끈해지며 졸음이 포로로 왔다.
눈이 감길수록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는 선히 들려왔다.
어머니는 쌀을 안치며,
 
“불 때려마!”
 
깜짝 놀라 깬 예쁜이는 나무를 끌어다 넣고 벼 태질 소리에
머리가 뒤숭숭 하여졌다.
어느덧 밥이 우구구 끓어오르자 예쁜이는 불을 멈추고 일어나서
소매를 척척 걷고 설거지를 하며 한편으로 상을 놓았다.
어머니는 등에 불을 훅 끄고 널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차츰차츰 새어오는 회색빛 하늘에는 별들이 까뭇거렸다.
어머니는 예쁜이가 주는 주걱을 받아들고 그릇을 포개 담은 양푼을
부뚜막 위에 놓은 후 솥깨를 열었다.
무역무역 올라오는 훈훈한 김이 그의 볼을 스치고 올라간다.
 
“진지들 잡수시오.”
 
뒤이어 예쁜 아버지는,
 
“밥들 먹고 하지.”
 
그들은 우중우중 사립문으로 들어서 방안으로 들어앉았다.
 
“상 들여라.”
 
방 문턱에 비껴서서 딸이 가져오는 상을 받아
차례로 그들 앞에 갖다 놓았다.
예쁜이는 통통 걸음을 쳐서 잔심부름을 다하고 숭늉까지 퍼들인 후
뒷대문 옆에 가만히 붙어 서서 안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분간하여
들으며 읍등새 좌우로 총총 들어선 솔밭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눈결에라도 이 솔밭이 띄게 되면 지난 일이 번개같이
그의 머리에 떠 오르는 것이었다. 무섭고도 어딘가 모르게 귀염성스러운
둘째의 얼굴은 항상 솔밭 속에 숨어 있는 듯이 생각되었다.
컴컴하던 솔밭도 새어온다. 옆으로 돌아가며 간 당추밭에는
빨간 당추고추가 하나씩 둘씩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우수수 하는 바람결에 ‘툭’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놀라 굽어보니 밤 한 알이 앞으로 굴러왔다.
깜빡 잊었음을 느끼고 그는 치마 앞을 벌리고 울바자 밑에 서 있는
밤나무 아래로 달려갔다.
주먹 같은 밤알이 여기저기 흩어져 보암직스러웠다.
밤알을 다 줍고 난 그는 치마 앞을 연해 들여다보며
밤나무를 쳐다보았다.
예쁜이는 가을철이 들자 눈만 뜨면 밤나무 아래로 달려가서 살펴보다가
밤아람이 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옹골차고 그중 큰 알로 따로 골라서
어머니도 세인이도 모르게 뚜란독 속에 깊이깊이 간직해 두었다가
마가을에 가는 어머님께 부탁하여 팔아오게 하였다.
그리하여 가지고 싶던 것을 사서 가지곤 했다.
그는 가만가만히 허청간으로 달려가서 방석을 열고 독 속으로부터
커다란 시승 배아지를 꺼내자 치마 앞에 밤을 골라 옮겨 놓고 보니
배아지 전과 비슷하였다. 그는 쫑깃 웃고 배아지를 독 속에 넣은 후
허튼 짚으로 덮고 부엌으로 나왔다.
방안에서는 담뱃대 터는 소리가 나자 웃음소리가 왁 쓸어나왔다.
 뒤미처,
 
“상 받아라.”
 
그들은 밖으로 밀려나갔다. 예쁜이는 짐짓 섰다가 어머니가 주는 상을
받아 부엌으로 날랐다.
어머니는 세인에게 젖을 빨리며 밥을 먹었다.
세인은 예쁜에게로 손을 내밀며,
 
“나, 밤.”
 
예쁜은 부엌으로 나가서 밤 담은 종다래끼를 갖다 세인의 앞에 놓았다.
그는 종다래끼를 잔뜩 껴앉고 갸웃갸웃 들여다보며 어머니의 떠넣어
주는 밥을 먹었다.
세인의 보기 좋게 볼록이는 두 볼에는 오목오목 우물이 잡히었다.
밖에서는 벼알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났다.
저녁때가 되어 말 되는 소리가 들렸다. 예쁜이는 밥을 잦혀놓고 밥상을
보아 놓은 후 사립문 뒤에 붙어 서서 졸이는 가슴으로 엿보았다.
아버지는 그 커다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말 수를 세고 있었다.
옆으로 농장지기, 낯설은 양복쟁이, 돈 장사하는 김만수,
그 밖에 마당질한 일꾼들이 쭉 둘러섰다. 벌써 엿 섬째 묶는 것이었다.
그들의 눈은 호기심이 빛났다.
 
“열한 섬 반!”
 
여러 사람 입에서 똑같이 굴러 떨어졌다. 만수는 데리고 온 일꾼에게
눈짓하여 닷 섬을 구루마 위에 탕탕 실어 놓았다.
예쁜 아버지는 하도 어이가 없어 멍하니 바라보자 구루마는
털털 구르기 시작하였다.
뒤이어 처신이도 볏섬을 구루마 위에 실어 놓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굴러갔다.
예쁜 아버지는 벼씌움을 한 먼지머리를 뒤집어쓴 채 짚북데기를
손에 들고 금방 울 듯 울 듯한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멀리 들리는 구루마 바퀴소리는 마치 그들의 가슴 한복판을
굴러가는 듯 요란스럽게 울리는 것이었다.
예쁜네 모녀는 설거지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왔다.
일꾼들은 벌써 가버리고 담뱃내만 자욱한 방에 예쁜 아버지는 시름없이
째한 앞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밖에서 기침소리가 났다.
 
“진지들 잡수셨나요?”
 
“어, 그 누구이?”
 
예쁜이는 윗방으로 올라갔다.
 
“처신이오.”
 
그는 의외라는 듯 벌컥 일어나며,
 
“무엇이 잘못된 것이 있습니까?”
 
처신은 방안으로 들어앉았다. 예쁜 어머니는 등불을 헤어 놓았다.
 
“아뇨, 오늘 퍽 섭섭하셨겠지요.”
 
이 말에 그는 너무 황공하여 눈물까지 글썽글썽해졌다.
 
“오늘 나와 같이 오셨던 어룬이 바로 우리 농장 주인이십니다.”
 
“뭐?”
 
예쁜 아버지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전에는 늘 대리로 보내시더니 올해는 친히 오셨습니다.”
 
한층을 낮추어서,
 
“마침 참한 소실을 구하신다는 말을 하기에 내가 집에 따님 이야기를
   하였더니 영감님께 말씀해보라고 하시기에 왔습니다.”
 
예쁜 아버지는 너무나 생각 밖인 까닭에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이
칵 막히었다. 영감이 잠잠함에 예쁜 어머니는 답답하여,
 
“그런 어룬이 우리 딸 같은 것을 어떻게……..”
 
이제야 예쁜 아버지도,
 
“글쎄, 그런 돈 많으신 어룬이……”
 
“원 별 말씀도 다 하십니다. 전에 세월 같으면야 어림이나
  있습니까마는 요새 세월은 그렇지 않다오. 그런 걱정은 말으시고
  얼른 작정하시오.”
 
부부는 잠잠하였다. 그들에게는 무엇보담 처신의 말이 미덥지 않았다.
한참 후에 영감은,
 
“글쎄, 원…… 그럴 리가……”
 
처신이는 눈을 슴벅슴벅하며,
 
“어서 작정하시오. 이런 때를 놓치지 말아야지.
  그런 부자를 사위로 맞이하는 판인데 설마한들 
  영감님네를 굶으라 하겠수?
 
부부의 머리는 지끈해지며 나오려던 말이 한층 더 막혔다.
처신이는 부부를 번갈아 보았다.
 
“어찌 하겠수…… 좀 좋소? 딸은 호사여 치여 죽을 지경이겠구려.
  동자도 바누질고 안 하고 오도카니 앉어 손톱에 물만 튕기구
  앉았겠구려. 수 생겼소”
 
영감은 예쁜 어머니를 보았다.
 
“어쩔까?”
 
“글쎄요…… 어찌했던 한 번 가셔서 손수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다시 생각해 봅시다. 갑자기 되니 내니 알겠소.”
 
처신은 벌컥 일어났다.
 
“가십시다.”
 
영감은 왜자자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일어났다.
 
“뭐 그러고 가시럅니까?”
 
“그럼”
 
아래를 굽어보았다. 처신은 문밖으로 나가며,
 
“원, 어서 가십시다. 농사꾼이 아모려면 상관 있습니까.”
 
영감은 두말없이 뒤를 따랐다.
예쁜 어머니는 그들의 말소리가 멀어질수록 아까 일이
활동사진 모양으로 나타났다 없어졌다 하였다.
어느덧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다. 무엇보다도 나이 많은 자기 남편이
여름내 그 달디단 잠도 못 자고 밤새워 가며 봇등의 물을 논에 대느라고
애쓰던 것이 아까웠다. 벼이삭이 보암직스러이 패어 올때 영감의
좋아하던 꼴, 그는 폭 엎드려서 흑흑 느껴 울었다. 한참 울고 나니
이번에는 예쁜이 일, 아까 본 그 양복쟁이가 새삼스럽게 뚜렷해 보였다.
 
“참이라면 어쩔까?”
 
이렇게 부르짖으며 웃방을 향하여,
 
“예쁜아!”
 
몇 번이나 불렀으나 잠잠하였다.
그도 세인의 옆에 입은 채로 누워서 하던 생각을 되풀이하였다.
밤이 적이 깊어서 남편은 돌아왔다.
곁에 펄썩 주저앉자 술내가 훅 끼쳤다.
 
“무어랍디까?”
 
그는 아무 말 없이 일어서서 비틀걸음으로 윗방 문을 열었다.
 
“예쁜아!”
 
텁텁한 소리였다. 뒤로 따라 선 예쁜 어머니는,
 
“자요, 자요. 할 말 있으면 내일 하구려.”
 
“응, 취한다. 내 딸 자니?”
 
눈을 지리쳐 감고 예쁜 어머니께로 탁 실린다.
 
“우리는 살았네. 내 딸 때문이지.
  에이! 고얀놈! 이놈아! 만수란 놈아! 날도적놈아!”
 
시뻘건 눈을 부릅뜨고 부들부들 떤다. 그는 겨우 남편을 끌어다
 옷을 벗기고 자리 위에 뉘었다. 눕자마자 코를 골아넘긴다.
그는 한층 더 눈이 똑똑해졌다. 고요한 방안에 숨소리만이 가득하고
이때마다 들리느니 가을 벌레 울음이다.
 훅 불을 끄고 나니 뒷문에 달이 비쳤다.
남편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의하여 딸의 혼인은 이미 결정된 듯싶었다.
무엇보다도 섭섭한 것은 소실이라는 것이었다.
자기의 귀한 딸을 남의 눈에 가시로 보내는 것이 아무래도 못할 짓으로
생각되었다. 그는 남편 곁에 누워 어느덧 잠이 들고 말았다.
이튿날 새벽…… 남편에게 흔들리어 깨어난 그는 남편을 쳐다보았다.
 
“혼인은 다 되었네.”
 
“뭐야요. 좀 생각해보고 하지.”
 
“공연한 소리를 또 하네그려. 그런 자리가 쉽겠나.
  그러고 며칠 있다가는 가겠다니까 예쁜이를 따라 보내야 하겠네.”
 
예쁜 어머니는 기가 막혔다. 이어서 눈물이 좌우로 흘러내렸다.
 
“이 사람은 쩍 하면 울기는…… 그럼 시집도 안 주고 끼고 있을 텐가?”
 
마누라는 돌아누우며 세인이를 꼭 껴안았다.
훤히 밝자 예쁜이는 일어났다. 가만히 샛문을 열자 그의 어머니는.
 
“왜 벌써 일어나니? 곤할 텐데.”
 
그는 아무 대답없이 부엌으로 나가서 앞뒤 대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산뜻한 바람이 그의 정신을 깨끗하게 하였다.
그는 우두커니 차츰 새어오는 하늘을 쳐다볼 때 컴컴한 솔밭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제 새벽만 하여도 무섭던 솔밭이 이 순간에
있어서는 눈물이 날 만치 정들어 보였다.
그도 모르는 사이에 긴 한숨을 내쉬고 저적저적 밤나무 아래로
가 보았다. 어제보다도 더 많이 떨어졌다. 그는 맥없이 치마 앞을 벌려
한 알씩 두 알씩 줍기 시작할 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는 밤을 채 줍지도 않고 부엌으로 들어왔다.
방문 소리가 나자 어머니가나왔다.
 
“아부지가 너 들어오란다.”
 
그의 가슴은 지끈하였다. 예쁜이는 머리를 푹 숙이고 나무 꼬챙이로
부엌 바닥만 이리저리 긋고 있었다. 이 꼴을 본 그의 어머니도
저 애가 벌써 다 들었구나 하였다.
 
“어서 들어가라, 왜 그리고 있니, 아모러면……”
 
발이 떨어지기도 전에 훌쩍훌쩍 울음이 터졌다.
방안에서는 아버지의 소리가 들렸다.
 
“예쁜아, 들어오너라.”
 
어머니의 딸의 우는 양을 보니 가슴이 뻐근해지며 
 
‘저런 것이 어찌 남의 첩노릇을 할까, 아무것도 모르고
  아비 어미밖에는 모르는 저것이……’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저절로 눈물이 앞을 가렸다.
예쁜 아버지도 부엌으로 나왔다.
 
“내, 내 딸 왜 우니, 너무 좋아서? 허허허……”
 
그는 너털웃음을 내치고,
 
“어서 들어가자. 밥을랑 네 어미더라 하라자, 응.”
 
그는 예쁜의 곁으로 바싹 대들었다.
 
“그만둬요. 저도 다 들은 모양인데.”
 
“어디서 들었어?”
 
아내를 쳐다보았다 그는 영감을 밀치며,
 
“그만둬요. 새벽부터 말 안 하기로서니 틈이 없을까.”
 
그는 하는 수 없이 중얼중얼하며 방으로 들어간다.
 
“야! 울지 말라구, 누구나 한번씩은 겪는 일인데 무얼.
  내가 열네 살에 너의 아부지한테 왔겠니.”
 
예쁜이는 가만히 일어서서 뒤 안으로 나갔다.
그리하여 밤나무 옆에 착 가리어 앉아 치마폭으로 얼굴을 폭 가리고
흑흑 느껴 울었다.
조반을 퍼놓은 예쁜 어머니는 뒤 안으로 나와서 밤나무 옆으로 왔다.
 
“들어가서 밥 먹자. 야, 말 들어, 속 태이지 말고”
 
예쁜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내 딸 왜 그래! 공연히 그리누나.
  이제 서울 가면 좋은 구경하고 좀 좋으냐?”
 
예쁜 어머니는
 
“그만둬요. 자꼬만 우는 애를 가지고 여러 말 하시우……
  괜히 밥도 못 먹게스리.”
 
어머니의 들려주는 숟갈을 들고 밥을 퍼먹으려니 기가 꽉 찼다.
며칠만 있으면 아버지의 말대로 가야 하니 그러면 다시는
어머니 아버지 세인이도 못 보겠지. 이런 생각에 슬그머니 숟갈을 놓고
윗방으로 올라갔다. 그의 어머니도 따라 밥술을 놓고 말았다.
세인이가 기지개를 켜며 벌떡 일어나 앉는다.
 
“오마이!”
 
영감은 세인이를 껴안았다.
 
“아가, 밥 먹자.”
 
세인은 도리를 치고 어머니께로 가서 젖가슴을 헤치고 팠다.
아버지는 샛문을 열고,
 
“밥 먹어라, 울기는 와! 어서 나려와!”
 
세인은 토닥토닥 아버지 곁으로 와서 갸웃하고 보았다.
 
“오마이, 누나 울어. 이렇게 울지.”
 
조그만 손으로 눈을 부비치며 어머니 앉은 곳으로 달려온다.
그는 본체 만체하고 한숨만 후후 쉬었다.
조반상을 물리자 이춘식이와 처신이가 들어선다.
영감은 황망히 일어나며,
 
“이리 오시오. 집이 누추해서……”
 
아랫목을 가리키고 방안을 휘휘 둘러보며 윗목으로 앉았다.
춘식은 들어서자마자 어떤 토굴 속에 들어온 듯하였다. 한참 후에야
방안 속이 어림해 보였다. 도배하지 않은 바람벽이며
불그죽죽한 장롱짝, 엉성그려 물은 갈자리입, 어느 것 하나 원시시대를
상상케 아니할 것이 없었다. 더구나 먼지내가 코를 벗튀우는 것 같았다.
그는 수건을 내어 코를 가리고 있었다.
영감은 샛문을 열고 보니 딸이 없었다. 그는 부엌으로 나갔다.
 
“이애 어디 갔노?”
 
세인이를 업고 왔다갔다 하는 아내를 쳐다보았다.
 
“글쎄요, 이제 곧 나갔는데……”
 
영감은 얼굴을 찡그리며
 
“어서 데려오게.”
 
그는 새침하고 밖으로 나갔다.
영감은 방으로 들어오며,
 
“촌년이 돼서 몹시 부끄러워합니다.”
 
얼마 후에 발소리가 들렸다. 영감은 밖으로 나갔다.
 
“왜 혼자 오누?”
 
“어디 있습디까?”
 
“에잇……”
 
춘식은 부부의 이야기를 듣자 처신이를 찔러가지고 일어났다.
영감은 돌아보자 얼굴이 벌개지며,
 
“어째서 가시럅니까, 곧 올 터인데요.”
 
그들은 웃으며,
 
“보나 다름 있겠습니까? 내일 가겠습니다. 옷은 다 맡기었습니다.”
 
그들은 가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여덟 점 차로 예쁜이는 그리운,
그리운 고향을 등지고 떠나게 되었다.
가을이 깊었다. 창문의 딸 예쁜이는 부자 이춘식의 호강첩으로
팔려갔다는 소문이 읍촌간에 자자하게 퍼졌다.
둘째는 처음에는 곧이듣지 아니하였다. 보다도 자기 귀를 의심하였다.
그러나 새록새록이 들어오는 소문은 그로 하여금 괴로우나마
믿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였다.
가슴을 졸이며 알아본 결과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의 다만 하나인 과부의 외아들 같은 희망은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 그의 짤막한 과거를 돌아본다면
그나마 희망에 넘친 행복한 날이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본 그 순간에 다만 한번만이라도
시원한 말을 나누고 떠났다면 차라리 나을 것같이 생각되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잊어보려 하였다. 자기로서도 알지 못할 쓰림과 질투의
불길이 날이 갈수록 무섭게 타올랐던 것이다. 그는 자기의 생사를
헤아리지 않을 만큼 되었었다. 그리하여 그의 얼굴은 파리해 가고
가뜩이나 무거운 입이 철문같이 굳게 닫혀버렸다.
그는 밤마다 발길 가는 대로 맡겨두며 번번이 읍등새 솔밭을
찾게 되는 것이었다.
그는 소나무 밑에 펄썩 주저앉아서 노송나무를 힘껏 껴안고
차츰차츰 깊어가는 가을밤에 고즈넉히 잠든 송화읍을 내려다보았다.
전에 볼 수 없던 함석집들이 가운데 들어앉아, 둘러앉은 초가집들을
노려보는 듯 비웃는 듯이 달빛에 빛나고 있었다.
찰나에 떠오른 눈, 비웃는 그 눈, 천진한 어린 자기를 속인
말끔한 거짓말이 그의 전 신경을 비상히 흥분시킴을 따라 쓰라렸던
과거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하였다.
젊어서 남편을 잃은 그의 홀어머니는 어린 그를 하늘같이 믿고 여름이면
김품 팔고 겨울이면 삯바느질 같은 것으로 그날그날 겨우 살아갔다.
둘째가 열두 살 나던 해 가을이었다. 여름철이 들면서부터
그의 어머니는 소화불량증을 얻어 노상 굶다시피 하면서도
삯김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철이 바뀐 어느 날 그는 견디지 못하여 하던 일을 겨우 대강대강
마쳐버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정신없이 자리에 눕고 말았다.
어린 둘째는 솔가리를 긁어다 놓고 방으로 들어왔다.
 
“오마이!”
 
언제나 그는 방문을 열어잡고 이렇게 부르는 것이었다.
여러 날 신고(辛苦)에 두 눈등이 푹 꺼진 그의 어머니는,
 
“왜?”
 
겨우 눈을 뜨고 아들을 보았다. 군데군데 해진 잠방 적삼이라든지
발꿈치가 쑥 나온 목달이가 새삼스럽게 그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였다.
곁에 앉은 아들의 손을 어루만지며,
 
“배고프겠구나. 아파서 나는 밥 못하겠으니
  식은 밥이라도 갖다 먹어라, 아이고!”
 
그는 긴 한숨을 푹 내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응.”
 
둘째는 부엌으로 나가서 들그렁들그렁하더니 조밥 바리와 된장 그릇을
안고 들어왔다. 그는 씩씩하며 나뭇단 끌어들이듯이 밥술은
큼직큼직하였다. 부리나케 푹푹 퍼먹은 그는 숟갈을 공중 던지고,
 
“오마이, 나 배 불러.”
 
“오냐.”
 
어머니 대답을 들은 그는 그릇을 버려둔 채 어머니 곁으로 달려와서
눕자마자 코를 골아넘긴다.
그의 어머니는 똑부러지게 아픈 곳은 없다 하더라도 전신의 맥을
출수가 없으며 따라서 호흡이 곤란해졌다. 나중에는 가래까지 올랐다.
방안은 찬바람이 실실 돌았다. 새어드는 달빛은 아들의 얼굴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그는 젖먹던 힘을 다하여 이불을 끌어다 아들에게
덮어주었다. 자기의 병이 위중할수록 막연하게 어린 아들의 신세가
불쌍해 보일 뿐이었다.
따라서 저 어린것을 놓고 내가 아주 죽나 보다 하는 끔찍한 생각은
하늘이 무서워서 못하여 보았던 것이다.
밤이 깊어갈수록 점점 가래가 성해지고 바람에 밀려다니는 나뭇잎의
와삭이는 소리와 요란스럽게 들리던 벌레 울음소리가,
차츰차츰 가늘어지며 주위가 암흑으로 변해지는 것을 느낄 때,
그의 가슴은 죽음이란 것 앞에서 마지막으로 울렁거리기 시작하였다.
잠든 아들을 깨워보렸으나 태산준령이 콱 내려앉은 듯하여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수가 없었다. 그의 눈은 점점 흰자위만이 남기 시작하였다.
별안간 둘째는 왈칵 일어났다.
 
“오마이, 오줌 눠.”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는 어머니를 흔들었다.
 
“요강 달라오!”
 
오줌은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는 두 분을 딱 감고 시원하게 누고 나서
그 자리에 되는 대로 누어버렸다. 그러나 눈 오줌은 사정없이
그의 해진 옷 속으로 푹 젖어 먹었다.
그는 잠결에 괴로움을 느끼고 벌떡 일어났다.
 
“오마이!”
 
갑자기 추움과 무서움이 휘딱 들어 두 눈이 올랑해졌다.
둘째는 어머니 곁으로 바싹 다가앉아 흔들었다.
 
“오마이!”
 
어머니는 정신이 뻔하였다. 그러나 마치 가위눌린 사람 모양으로
말도 할수 없으며 움직일 수도 없었다. 하도 대답이 없음에 안타까워서
둘째는 머리맡으로 가서 그의 어머니의 눈을 보았다.
 그는 갑자기 무서움을 느꼈다.
 
“오마이, 왜 그래, 응야!”
 
그는 어머니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아들의 우는 것을 번연히 아는 어머니는 어떻다고 말할 수 없이 슬펐다.
그러나 그는 역시 순간이고 아무것도 분간치 못하는 의혹으로
변해지는 것이었다.
둘째는 어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볼 때 밤마다 켜지던 등불이 없었다.
그는 한 손으로 눈물을 씻으며 또 한 손으로 성냥을 더듬어 불을 켰다.
 
“오마이! 나 보라우, 어서야!”
 
어머니의 감겨지는 눈을 뻐기고 들여다보았다.
어머니는 무엇이라고 중얼거렸다. 음성은 들리지 않고 입만 놀렸다.
 
“무어! 에 그 정 크게 하려마.”
 
어머니의 입술을 똑똑히 들여다보며 그대로 입술을 놀려 보았다.
 
“주부. 응, 주부!”
 
얼핏 작년 여름에 엉덩이의 종기로 인하여
 어머니와 주부[의원]네 집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응, 주부, 주부. 내 갔다 와!”
 
그는 우뚝 일어섰다. 문밖으로 뛰어나오자 무서운 김에,
 
“오마이! 난 가! 응.”
 
이런 말을 남기고 앞으로 뛰었다.
오불꼬불한 논두덩을 지나고 밭머리를 지나 읍등새 솔밭 사이로
들어섰다. 바람에 솔포기 흔들리는 소리가, 동무들에게서 들은
옛날이야기에서 나오는 무서운 범이 나오는 듯, 그리고 자기의 발자취
소리에 놀라 휘끈 돌아보면 둥그런 달이 자기를 따르는 것이었다.
그 무서운 솔밭도 지나고 외나무도 건너지른 쪽다리를 기어 건너서
새로 닦은 큰 길 위로 들어서 줄달음질쳤다.
의원집까지 다 온 그는 팍 고꾸라지자 두 걸음을 쳐서 일어났다.
단숨에 돌층계를 올라서 차디찬 대문짝에 착 달라붙었다.
 
“오마이, 문 열어!”
 
얼결에 빽 소리치고 숨을 죽이고 엿들었다.
여기저기서 짖는 개소리만이 점점 요란스럽게 들렸다.
 
“문 열어요!”
 
전신에 땀이 훈훈히 흐르며 눈물이 그렁그렁 떨어졌다.
눈을 딱 감고 대문짝을 쳐다리고 나니 안으로부터 인기척이 나며
문이 방싯 열리자 뚱뚱한 주부가 나타났다.
 
“웬 아이냐?”
 
자다 나온 텁텁한 소리였다. 둘째는 반가움에 와락 달려들어가
칵 매어 달렸으나 한참 동안은 말을 못하고 애만 썼다.
그는 달빛에 둘째의 얼굴을 비춰보니 한 번 본 아이 같았다.
그는 머리를 돌려 생각해보더니,
 
“너 종기로 앓던 애지?”
 
“네, 울 오마이, 저 울 오마……”
 
숨이 찼다.
 
“그래 너의 오마니가 어떻단 말이냐?”
 
“저 죽어가요, 아파서……”
 
“어디가 아프다든?”
 
“겨워요, 그러고 말 못해요.”
 
“음.”
 
의사는 둘째를 물리쳤다.
 
“앓다가 낫지. 울지 마라. 내일 아침 내 갈 것이니 어서 가거라.”
 
“나 혼자요?”
 
안타까운 듯이 의사를 쳐다보았다.
 
“그럼.”
 
의사의 머리에 아직 새로운 것은
작년 약값도 절반도 받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밤도 오래고 더구나 촌이 되어 가고 싶지 않았다.
 
“올 때도 너 혼자 왔니?”
 
“네, 갑시다, 우리집에. 네?”
 
바투 대들어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내일 가겠으니 어서 가거라!”
 
자기 어머님 같은 사람인 줄 알고 대들었으나 사정없이 그를 몰아낸다.
 
“내일 간다. 잘 가거라!”
 
말을 마치지도 전에 문빗장을 걸고 들어가버렸다. 둘째는 멍하니 섰다가
문 사이로 들어가는 의사의 뒷덜미를 바라보았다.
 
“정말 오겠수우?”
 
아무 대답없이 안대문까지 쾅 닫겨 버렸다.
둘째는 대문 밖에 우두커니 서서 누가 또 나올까 하고 기다리다 못해
두 주먹을 부르쥐고 앞으로 뛰었다. 나무도 산도 얼씬얼씬 움직였다.
집까지 달려온 둘째는 방문을 벼락같이 열고,
 
“오마이!”
 
뛰어들어 어머니 가슴에 팍 엎어졌다. 문바람에 등불마저 꺼져 버렸다.
둘째는 어머니 얼굴 위에다 얼굴을 마주 대고,
 
“주부가 안 오지, 내일 오겠대, 응.”
 
뜨거운 눈물이 차디찬 송장 위에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때마침 곁집 닭은 홰를 치고 꼬끼요 하고 울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둘째는 깊이깊이 가라앉았던 분까지 왈카닥 치몰려
하늘을 뚫을 듯하였다. 그는 두 주먹을 다져 쥐고 벌떡 일어났다.
 
예쁜이는 예쁘장한 계집애를 낳게 되었다. 두 눈이 분명하고
얼굴 판장은 어머니 비슷하면서도 어머니보다 생김생김이 뚜렷하였다.
우리의 여주인공이 될 옥이였었다.
외롭던 끝에 계집앨망정 생기고 보니 몇 달 동안 갖은 수고와 입으로
담지 못할 악형당한 것도 꿈속으로 사라지고 더할 나위 없이
위안이 되었다. 그리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그 어린것에다가 혼자서
중얼중얼 주고 받고 하는 것이었다.
주옥이 어머니가 혹간 지나가다 귓결에 들으면 벼락같이 문이 열렸다.
 
“그 잘난 계집애만 가지고 빈둥빈둥 놀 테야!”
 
평생 말할 때에도 달싹도 못하는 판에 긁어닥치는 듯한 큰 소리에
금방 무슨 변이라도 나는 듯싶었다. 그리하여 머리를 푹 숙이고
가슴은 울렁거리기 시작하였다.
 
“반편, 반편 하니, 저런 반편이 어디 있다가
  내 속을 요다지도 태워주니! 이 야이 못난 년아!”
 
하고 달려들어 어린애를 뺏아가지고 안방으로 홱 들어가버렸다.
어린애는 발악을 하고 운다. 뒤이어 어떻게나 하는지 죽는 소리가 난다.
울음 마디마디가 예쁜이의 뼈끝마다 새어드는 듯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였다.
그는 더 참을 수 없어 벌컥 일어나서 방안으로 빙빙 쏘다니다가
두 눈이 벌개져서 안방으로 건너가는 것이었다.
눈치를 챈 주옥 어머니는 앞질러 딱 막아서서 노려보았다.
 
“잘못했습니다…… 네. 애기 주시오. 참말이야요.”
 
그의 눈은 애처롭게 타올랐다.
주옥 어머니는 일종의 통괘감을 느끼며.
 
“무엇을 그래 잘못했단 말이냐?”
 
그는 무엇이라 대답할 것이 난처하여 마지막에는 울음으로 대하였다.
 
“아씨, 저 입 보시우.”
 
둘러선 행랑어멈 침모는 눈짓을 하여 입을 막고 웃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의 잔인한 흥미도 다해지면 사정없이
어린애를 내쳐주었다.
그는 어린애를 안고 비실비실 자기 방으로 건너가서 맞은 자리를
어루만지며 볼과 볼을 남몰래 마주 대었다.
어린애는 눈을 맞추자 방싯방싯 웃었다.
어슬막에 대문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뒤이어 흐트러진 신발소리가 들리자
 
“나리 오신다!”
 
하는 소리가 거푸 들렸다.
예쁜이는 애기를 멀찍이 눕히고 밀장문 사이로 바라보았다.
얼근히 취하여 비칠비칠 들어오는 남편의 탁 트인 얼굴,
안방에서 마주 나오는 다닥다닥 붙은 주옥 어머니.
첫눈에 벌써 외모만은 기운 짝이었다.
주옥 어머니는 생글생글 눈웃음치며,
 
“아빠 오신다, 주옥아.”
 
주옥이는 빠르르 나와서 아버지에게 안겼다. 부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여 방으로 들어가자 밀장문이 스르르 쾅쾅 닫히고 만다.
멍하니 바라보던 예쁜이는 어쩐지 허전함을 느꼈다. 역시 순간이었다.
그는 어린애를 꼭 끼어안고 전등불 아래 빛나는 조그만 눈을
말없이 언제까지나 들여다보았다.
방으로 들어간 주옥 어머니는 남편의 기분이 좋을 때를 이용하여
예쁜이의 말을 꺼내리라 하고 눈치만 슬슬 보며 갖은 아양을
다 떨고 있었다. 저녁상이 들어온다.
 
“난 먹었어.”
 
춘식은 벌렁 누웠다. 어멈은 도로 부엌으로 나갔다.
주옥이는 아버지 팔에서 잠들었는지 색색 하는 숨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할테요? 저 반편은.”
 
“왜 또, 갑자기?”
 
“정말 반편부려 못 보겠소, 여보.”
 
“마음대로 하지.”
 
이 말에 생긋 웃었다.
 
“내야 어찌 알겠소. 당신 마누라를…… 집으로 보내면 어떠우?”
 
“보내지, 그럼.”
 
순간에 그는 아찔하도록 좋았다.
 
“애는 떼어서 젖유모 주지요.”
 
벌써 예쁜이의 안타까워하는 꼴이 눈에 보였다.
 
“글쎄.”
 
“노비는 얼마나 줄까?”
 
“한 십원 주게나.”
 
춘식은 귀찮다는 듯이 가만히 팔을 빼고 모로 누웠다.
 
“내일 보내겠소.”
 
“마음대로 해.”
 
그는 주옥의 베개를 내려 베어준 후
가만히 밖으로 나와서 한 바퀴 돌았다.
아침이 되자 주옥 어머니는 전에 없이 일찍 일어나서
안팎으로 나다니며 새살랑하였다.
문밖까지 나와서 남편을 보낸 주옥 어머니는 상노를 데리고 건넌방으로
와서 그는 담박 달려들어 어린애를 잡아안고 일어섰다.
 
“가라! 네 집으로! 엣다 이것 가지고……”
 
포갠 일원짜리 지폐를 예쁜이의 앞으로 던졌다.
 
예쁜이는 가슴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숱하게 많은 돈을 보기가 처음이나 ‘가라’는 째는 듯한 소리는
그의 귀를 아프도록 울리었던 것이다.
상노는 돈을 집어 그의 손에 들려주었다.
 
“어서 갑시다.”
 
얼결에 예쁜이는 따라 일어섰다.
방문턱까지 나온 그는 앞이 허전하였다.
 
“아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부르짖고 돌아보았다.
주옥 어머니는 품에 안긴 어린애는 그와 눈을 맞추고
방싯방싯 웃고 있었다.
남편 춘식이는 낮에는 어느 회사 사장으로 출근하고
밤이 되면 기생아씨들에게 둘러싸여서 밤새우는 것이 거의 일과
되다시피 하였다.
예쁜이를 같이 데려다 놓고는 마누라의 새우는 것도 돌아보지 않고
도리어 욕질까지 하면서 밤이 되면 끈히 건너오더니 며칠 지나서
역시 싫증이 났는지 발길을 뚝 끊어버리고 혹시 어찌다 마주치는 때가
있어도 본둥만둥하여 두는 것이었다.
따라서 안방 아씨는 나날이 기승스러워 가는 것이었다.
별로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달려들어 머리채를 휘어쥐는 것이
매일 되다시피 하였다.
그리하여 온갖 일을 다 시키는 것이었다. 마루걸레, 방걸레, 빨래질,
동자…… 손대지 않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괴로우라고 시키는 것이
그에게는 갑갑하지 않고 십상 좋게 생각되었다.
어느 날, 그는 밥을 퍼들이고 밥 한 그릇 국 한 사발을 가지고
건넌방으로 건너가려니까,
 
“여기저기 벌리지 말고 어멈과 같이 먹지!”
 
안방에서 나오는 표독스러운 소리였다. 그는 놀라 꿈칠하여 하마터면
국그릇을 짓몰 뻔하고 겨우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무엇보다도 그릇 깨뜨리지 않은 것이 적이 안심되었다.
어멈은 안방으로부터 빈그릇을 가지고 나왔다.
 
“개밥 주었수?”
 
“아니오.”
 
“아이구 입때 무얼 했수, 그래?
  촌 양반이 왜 개밥 주는 것도 몰우? 기차라!”
 
부뚜막에 긁어 놓은 솔치에다 식은 밥을 뒤섞고 찌개국물을 타서
 개밥통에 들썩 부어주는 것이었다.
 
“에스, 에스!”
 
부르니 새카만 강아지가 꼬리를 저으며 달려들어 처럭처럭
 먹기 시작하였다.
 
그는 속으로, 
 
‘에스는 무엇일까? 우리 곳에서 검둥이, 복술이란 개 이름을
   그렇게 부르나?’
 
어쩐지 에스라는 이름이 서먹서먹하여 다정한 맛이 없었다.
그는 멍하니 서서 개 주둥이 속으로 차츰차츰 없어져 가는
 허리가 길쭉길쭉한 흰 밥알을 보았다.
사명절 때나 아버지 생일이라야만 먹는 줄 알았던 흰 이밥을
이 집에서는 개에게까지 먹인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문득 떠오르는 것은 아버지의 피나던 손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벼를 베시다가 엄지손이 벤 것이었다. 빨간 피가 죽죽
흐르는 것을 예쁜이가 달려가서 제 고름 끝을 잘라 처매어드렸다.
피는 점점 더 흘러 옷에 묻고 벼이삭에까지 발려도 아버지는 탐스러운
벼이삭에 끌려 아픈 것도 아무것도 모르시는 모양이었다.
육칠월 된 햇빛 속에도 구슬땀을 흘리시며 만지고 또 만져서
키워놓은 쌀알! 비가 안 오면 안 온다고 걱정, 너무 오면 온다고 걱정,
한시 한초를 마음놓지 못하고 키운 눈물, 땀, 피로써의 결정인
이 쌀알을 아버지는 만져도 못 보고 지주와 빚장이에게 홀랑 빼앗기고
마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다 늙으신 아버지는 장 위도 성하지 못하시건만 파슬파슬한
호좁쌀밥을 잡수시며 잘 넘어가지 않는 탓으로 이따금 물 한 모금씩
마시던 것이 방금 보이는 듯했다.
어느 사이에 그는 눈물이 흘렀다. 그는 남몰래 눈물을 씻고 나서 다시
개밥을 보았다. 어김없는, 아버지가 애써 지어 놓은 쌀밥이었다.
만일 아버지가 저 쌀밥을 보시게 되면 얼마나 아끼실 쌀알이랴!
얼마나 대견할 쌀알이랴! 그러나 이 집에서는 아까운 것도 귀한 것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는 이 집안 사람들은 자기와는 딴 나라 사람들과 같이 생각되었다.
그런 사람들과 한솥에 밥을 먹고 한집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은
기막혀 죽을 것 같았다.
어멈은 말똥히 쳐다보다가,
 
“밥 먹우…… 개 먹는 것이 아깝소, 그래?”
 
그는 어멈을 돌아보며 밥상을 보자 가슴이 멍청해지며 먹고 싶은 생각이
없고 도리어 끔찍해 보였다.
주옥이는 토닥토닥 나왔다.
 
“나, 물!”
 
그는 주옥이를 볼 때마다 세인이가 그리워졌다.
따라서 귀여운 마음으로 주옥이를 보았다.
그는 떠놓은 물을 입에 대어 주었다.
 
“싫어!”
 
안에서는,
 
“찬물 주어라.”
 
그는 수돗물을 뽑아서 주옥의 입에다 대었다.
꿀꺽꿀꺽 마시고 나서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예쁜이는 빙긋이 웃었다.
별안간 찰싹하고 예쁜의 따귀를 갈겼다.
 
“반편! 가야! 네 집으로 가야!”
 
하고 침을 탁 뱉고 나서 방으로 들어가자 무엇이라고 종알종알하는
소리가 들렸다. 따라 하하 웃는 소리가 들렸다.
어멈도 
 
‘너무 한다. 어린 계집애가!’
 
 이런 생각을 하며 숟갈을 놓고 일어났다.
 
“살아 무얼 해요, 어린애한테 그런 모욕을 받고……”
 
귀엣말로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예쁜이는 골치가 우썩하며 전신의 열이 머리로 치떠밀어 올리는 것
같았다. 그는 눈을 푹 내려감고 찬물을 벌떡벌떡 들이키고 있었다.
행랑어멈은 발 빠르게 안방으로 냉큼 들어갔다.
예쁜이는 어멈의 사라지는 뒤꼴을 바라보자 펄썩 주저앉았다.
 
“못 가요! 난 못가요!”
 
처음으로 내는 요란스러운 목소리였다. 모두가 눈이 둥그래질 뿐이었다.
주옥 어머니는 오목한 눈이 한층 더 옴쑥해졌다.
 
“이년, 이 오라질 년, 어디 못 가나 보자.
  염치없이 왜 우리 딸 가져가겠다니? 흥, 이년아 글쎄.”
 
침을 탁 뱉으며 암팡지게 노려보았다.
 
“끌어내게!”
 
집안이 쩌렁쩌렁 울었다. 상노는 또다시 달려들어 예쁜의 두 손을
사정없이 나꿔챘다. 그는 푹 고꾸라지며 두 팔을 마음껏 뿌리쳤다.
 
“애기 주어요! 내가 낳았지 누가 낳았단 말이야!”
 
예쁜이의 입술에서는 빨간 피가 흘렀다.
상노는 예쁜이의 허리를 깍지끼었다.
별안간 대문이 활짝 열렸다.
뒤이어 나타나는 키가 들어꽂은 듯한 험상스럽게 생긴 한 사나이가
번개같이 달려들어 상노를 잡아나꿔채 팽개쳤다.
둘러섰던 계집들은 “악!”하고 뿔뿔이 도망질쳤다.
사나이는 예쁜이의 앞에 딱 막아섰다.
예쁜이는 어리둥절하여 고개를 푹 숙였다가 상노를 밟아치운 데
눈이 뜨였다. 예쁜이는 최후 용기를 다하여 그를 쳐다보았다.
점점 뚜렷이 나타나는 이 사나이.
예쁜이의 눈은 찢어질듯이 둥그래졌다.
 
“둘째야!”
 
나는 듯이 일어나 그의 가슴속에 자기의 흐트러진 머리를 푹 파묻었다.
 
“예쁜아!”
 
두멍깨 같은 그의 시커먼 손이 그의 어깨로 돌아가자 꽉 껴안았다.
 
“잊지 않았구나!”
 
따르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예쁜이는 머리를 번쩍 들고
 
“애기! 가지고 어서 갑시다. 네. 누가 올 테야요!”
 
그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무슨 소리인지 잘 아는 까닭이었다.
둘째는 담박 안방으로 뛰어들자 잡히는 대로 잡아나꿔챘다.
주옥 어머니는 어디로 숨은 꼴이었다.
어린애는 “악”하고 울었다.
둘째는 어린애를 껴안고 밖으로 나왔다.
예쁜이는 어린애를 받아 안고 죽어 넘어진 상노놈을 건너서
 허방지방 나왔다.
 
“어디 가냐?”
 
벼락 같은 소리와 함께 우중우중 들어서는 경관들은 달려들어
항쇄 족새, 들째를 얽어 놓았다.
예쁜이는 기절해 넘어지고 말았다.
며칠 후 예쁜이는 경관들에게 호위되어 남대문 정거장까지 나왔다.
눈 딱 불거진 형사가 차표를 사서 예쁜이의 손에 들려주었다.
그는 차표를 내던지고,
 
“난 못해요, 둘째를 놔주어요. 아모 죄 없는 사람이야요.
  내가 상노를 죽였어요! 이년이 죽였어요!”
 
“가만히 있어, 둘째도 곧 보낼 테야.”
 
예쁜이는 순사에게 대어 들었다.
 
“참말이야요? 거짓말 말으세요. 나는 혼자는 안 가겠어요!”
 
그는 팔싹 주저앉았다. 순사는 달려들어 일으켰다.
이 꼴을 본 모든 사람들은 예쁜이에게로 눈이 쏠렸다.
차는 미끄러져 들어왔다.
꾸리묵거시듯한 사람의 물결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예쁜이는 차안으로 끌려왔다. 차는 움직였다.
순간에 예쁜이의 정신은 펄쩍들었다. 그는 아기를 마루바닥에 팽개치고
미친 듯이 창 앞으로 달려갔다.
 
“둘째야! 둘째!”
 
소리를 치고 뛰어내리려 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꼭 붙잡았다.
 
예쁜이가 내려온 그 해 봄에 창문네 생명줄은 떼이고 말았다.
몇 식구의 살아갈 길은 하루 아침 가볍게 떨어지는 말 한 마디로
캄캄하게 되었다.
창문이는 딸이 내려온 것, 더구나 준 이태 동안에 갖은 고생
당한 이야기를 듣고 치밀어오르는 분을 억제하기가 힘들었으나 그러나
밥줄이 무서워서 꼼짝 못하고 꿀떡꿀떡 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양과같이 순하던 그는 며칠 밤새운 끝에 맹호 같은 기세로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눈앞에는 아들, 딸, 늙은 마누라도 보이지 않고
다만 원수인 이춘식이만이 딱 막아섰다.
그리하여 그는 어떤 날 새벽에 아내를 가만히 흔들어 깨웠다.
 
“어디 잠깐 다녀오겠네.”
 
“어디를 가셔요?”
 
예쁜이 어머니는 선뜻함을 느꼈다. 남편의 성질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어디요, 말씀하고 가시오.”
 
그는 아내를 꾹 찔렀다.
 
“애들 깨겠구만.”
 
세인의 옆으로 가서 얼굴을 맞대보고 예쁜이를 어루만지며 한참이나
우두커니 앉았다가 벌컥 일어났다.
 
“혹시 이번 갔다 며칠 걸릴지 모르니까 세인이 울리지 말고
  예쁜이에게도 잘 위로하여 주게.”
 
여기까지 말한 그는 앞이 캄캄함을 느꼈다.
그러나 꾹 참고 어둠 속으로 달음질쳤다.
신발소리가 멀어질수록 그의 가슴은 터지는 듯하였다.
남편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다음날부터 세 식구는 날마다 아버지를 기다리나 날이 가고
철이 바뀌어도 점점 막연하였다.
세인이는 눈만 뜨면 아버지를 부른다.
 
“오마이, 오늘은 아부지 과자 사 가지고, 응?”
 
하도 여러 번 거짓말을 하다 나니 입이 썼다.
 그러나 세인의 안타까워하는 꼴을 보고는 번번이,
 
“그래.”
 
어머니는 한숨을 푹 쉬었다.
나중에는 세인이도 곧이듣지 않고
덮어놓고 어머니 손목을 잡아끌고 나섰다.
 
“아부지한테 가자! 아부지한테.”
 
어머니는 모든 것을 단념하고 다음날 세인의 손목을 잡고 나섰다.
 
“야, 난 가겠다.”
 
예쁜이는 부엌으로부터 나왔다.
 
“어디?”
 
“견디겠니? 야 때문에.”
 
모녀의 눈에는 약조나 한 듯이 일겁에 눈물이 핑 돌았다.
 
“오마이, 나도 가!”
 
따라 나선다.
 
“너까지 그러지 마라. 하도 조르니 바람이나 쐬이랴고 촌으로 슬슬
  돌아 다니다가 올 테다. 어서 어린 것 데리고 집이나 잘 보아라.”
 
등에 업힌 애를 들여다본다.
 
“엄마, 엄마!”
 
“오, 다녀오마 아가.”
 
이렇게 어르고 나서 영감이 떠난 길로 정처없이 나섰다.
예쁜이는 하는 수 없이 신작로까지 따라나섰다.
 
“그럼 이내 와. 오마이 안 오면 나도 곧 갈 테야.”
 
머리를 푹 숙이고 울었다.
 
“오냐”
 
차마 뒤를 돌아보지 못하였다. 무 밑둥 같은 딸 하나를 남겨놓고
다시 오게 될지 말지한 길을 떠나는 어머니의 가슴은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었다.
어머니와 세인은 산모롱이로 돌아갔다.
그는 펄썩 주저앉아 어린애를 집어 동댕이쳤다.
 
“이년의 계집애! 네 아비 때문에 우리 어머니, 동생은 떠나누다.
  죽어라!”
 
어린애는 “악”하고 어머니게로 달려들었다.
한참 성풀이를 하고 나니 도리어 후회가 났다.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나, 내 팔자 사나워 그렇지.’
 
 이렇게 위로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떠난 지 며칠 몇 달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거의 일년이 지난 후에 이러한 풍문이 돌았다. 예쁜 아버지가 춘식이를
죽이려다 못 죽이고 도리어 잡혀서
몇 달 후에 애통이 터져 죽었다는 것,
어머니와 세인이도 이 소식을 듣고 한강에서 자살했다는 것이었다.
예쁜이는 그만 실신상태에 빠졌다. 먹을 것 없고 입을 것 없는 데다
하늘같이 믿고 바라던 어머니, 세인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희망조차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었다.
그는 담배를 배우고 술을 입에 대었다. 그리고 난봉가를 불렀다.
냄새를 맡은 사내놈들은 수캐처럼 밤낮을 헤아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여보세요 이리 와 앉으세요.”
 
처음 보는 사내에게도 탁탁 매어 달려 손을 잡아끌었다.
 
“술, 술 사주어요 술 아니면 난 못 살아요!”
 
그의 눈은 가느다랗게 되는 것이었다.
그는 사내를 얻게 되었다.
그 통에 몇 놈이 저마다 주먹담판을 하는 바람에 게딱지같은 집이
몇 번이나 무너질 뻔하였다.
그러나 그 중 힘센 매질꾼으로 호난 김명구가 이기고 말았다.
어머니를 빼앗긴 이제 네 살 된 어린 아기는 윗방 구석에서
해종일 혼자서 놀다가는 안타깝게 어머니가 그리워서 샛문 사이로
고개를 갸웃하고,
 
“엄마!”
 
어머니는 사내놈의 무릎 위에 올라앉아 갖은 아양을 다 피우다가,
 
“이 계집애, 가만 있어라.”
 
소리를 냅다 치는 바람에 어린애는 눈을 꼭 감고 숨어 버리고 말았다.
예쁜이가 사내 얻으면서부터 아기는 윗목 구석에서 혼자 자게 하였다.
밤중에 한 번씩이라도 깨보면 고양이 나드는 윗방이 무서웠다.
그리하여 눈을 꼭 감고 이불을 치덮을수록 여전히 무서워졌다.
그러다 혹시 오줌이 마려우면,
 
“엄마!”
 
가만히 불렀다. 이마 끝에 땀이 쪽 흐른다. 대답을 기다리던 그는
차마 또 다시는 불러보지 못하고 자리에 그냥 싸 버리고 만다.
아침이 되면 예쁜이는 아기를 차고 던지고 하며 때렸다.
 
“다시 또 오줌 싸겠니?”
 
망치를 둘러메면,
 
“안 그래……”
 
조그만 손을 눈에 꼭 붙였다.
끼니때가 되면 사내는 번번이 아기를 미워하였다.
 
“밥을 작작 쳐먹어야지.”
 
그 커단 눈을 흘깃흘깃 하였다. 예쁜이는 자기가 욕하고 때릴 때에는
모르다가도 사내가 무어라면 화가 바짝 치밀었다.
 
“여보, 먹는 건 죄 아니랍데다. 밥 먹는 것까지 그렇게 밉소.”
 
밥숟갈을 뎅그렁 내치고 새침하여졌다. 사내는 눈을 부라리며,
 
“그래, 밉다! 꼴 못 보겠다. 모두 나가!”
 
발길로 예쁜이를 내밀쳤다. 예쁜이는 얼굴이 발갛게 되어
사내놈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꼴을 본 아기는 나분 술을 놓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뽕나무 옆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지나가고 오던 사람들은 어린것이 하도 괴망스럽게 무엇을 생각하는
듯한 것이 귀엽고도 불쌍하였다.
 
“아가, 엄마가 무어라든?”
 
손을 잡고 들여다보면 잠자코 머리를 흔들어 보였다.
 
“그럼 아빠가?”
 
뒤를 돌아보며 가만히 있었다.
그는 아기를 덤썩 안고 자기 집으로 갔다.
한참 후에 예쁜이는 아기를 찾아와서 그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그리하여 사내의 골을 풀어주려고,
 
“아가, 아빠라고 해보아라.”
 
웃으면서 아기를 들여다보았다. 그는 눈이 둥그래서 가만히 있었다.
 
“아빠다! 그래야 과자도 사오고 명절빔도 해준다.”
 
예쁜이는 성이 와락 나서,
 
“아빠라고 불러 봐!”
 
아기는 눈을 꼭 감고,
 
“아니야, 아빠는 없어……”
 
사내는 골이 한층 더 났다. 예쁜이는 눈을 부릅뜨고,
 
“나가라, 이 계집애. 너 같은 것 길러서 소용 없다!”
 
사내 할 말을 미리 앞질러서 그의 입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사내는 흥 하고 머리를 외어 꼰다. 예쁜이는 아기를 내밀쳤다.
 
“나가라, 이 계집애!”
 
그는 문턱을 꼭 잡고,
 
“아빠!”
 
소리없이 눈물이 샘솟듯 하였다.
 
“아비라는 소리 듣기 힘들다.”
 
씩 돌아앉았다. 예쁜이는 웃으며,
 
“아직 철없으니까 그렇지요.”
 
변명하였다.
이렇게 사내와 딸 사이로 다리를 놓다가, 놓다가도
결국은 명구와 예쁜이는 갈라지고야 말았다.
예쁜이는 밥 먹을 턱은 없고 하여 하는 수 없이 읍으로부터
몇 고개 넘어가 무초리라는 곳에서 술장사를 시작하였다.
이러는 사이에 아기는 열 살이 되었다.
지금은 제법 물 길어 밥을 곧 잘하였다. 그리하여 예쁜이는 술상이나
차리는 외에 양 끼니 때는 내다보지도 않았다.
인물 고운 새 술장수 났다더라, 소문이 나니 어딧놈이 다 안 불려오는지
몰랐다. 그리하여 밤낮으로 장구소리 그칠 사이가 없고
싸움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예쁜이는 술만 취하면 둘러앉은 사내놈들에게 헛욕질을 대고 퍼부으며
보기 싫게 입을 벌리고 우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휘몰이 장단을 쳐서
사내놈들을 쫓아버린 후 앞마당 풀바탕에 털썩 주저앉아
고함을 치며 울었다. 옛날 둘째를 생각하였던 것이다.
딸은 어머니 팔을 부여잡고,
 
“오마니, 들어가자우. 남들 욕해.”
 
그는 목에 핏대줄을 올리며,
 
“욕하면 어떠냐, 개 같은 놈들. 내가 저희 덕에 산다더냐!”
 
한참이나 악설을 퍼붓다가는 금시로 아리랑 타령을 스러져가는 듯이
 눈물 섞어 부르는 것이었다.
아침마다 아기는 어뜩 새벽에 일어나서
조그만 동이를 이고 물 길러갔다.
윗집 봉준 어머니는 마당을 쓸다가 어린것이 매일 아침 다니는 것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키워서 자세히 보았다.
 
“아가 춥지 않니?”
 
“아니오.”
 
쳐다보는 그 눈은 별같이 빛났다.
 
“어마이 무얼 하니?”
 
“술 취해서 자고 있어요.”
 
“응.”
 
머리를 끄덕이며,
 
“네가 밥하니?”
 
“네.”
 
“용쿠나. 애기 어서 가 밥해라. 그리고 우리집에 놀러 오너라.”
 
“네.”
 
돌아서 아장아장 걸어가는 그의 뒷맵시를 한없이 바라보던 그는
즉각적으로 범상한 애가 아닌 것을 알았다.
그리고 탐스러운 생각이 났다. 자기는 아들이 있으면서도 항상 알찍은
마음이 한편에 있었던 것이다.
동네에서는 그 부인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다만 소년과수로 유복자를 데리고 유족한 생활 속에서 남부럽지 않게
산다는 그것뿐이었다. 따라서 한낱 부인으로서도 남자 못지않은 수단이
있는 여자라는 밑에 맹목적으로 그를 존경하고 있었다.
그 부인의 과거를 잠깐 애기하고 지나가자.
이 부인의 기억에 아직 새롭게 남아 있는 것은
자기는 사생아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의 손을 빌어
평양 고아원에서 칠 세까지 자란 후에 어떤 사람의 손을 거쳐
기생학교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기생학교를 졸업한 그는 나날이 소문이 높아져서
열칠팔 세에 평양의 유명한 예기 산호주라면
누구나 모를 사람이 없게 되었던 것이었다.
나면서부터 별난스러운 그는 쓰라린 현실 속에서 다소 침착하여졌으나
그러나 여전히 좀 남아 있었다.
그리하여 누구나 그를 초면으로 대하게 되면 다소 환멸을 느끼고
말 한 마디라도 헛놓고 하다가는 번번이 콧방을 맞고 나서,
며칠 몇 달을 지내는 사이에 그의 엄연한 인격에 여지없이
굴복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부호 자제들이 날마다 그의 무릎 앞에 꿇어 돈으로나
기타 무엇으로든지 그의 마음을 사보려고 갖은 모양을 다 피우나
넘어갈 듯 넘어갈 듯하면서도 아주 넘어가지 않는
그만큼 그의 이름을 나날이 올라갔던 것이다.
이러한 독특한 성격을 가진 그는 항상 혼자 있기를 좋아하였다.
그때에 자기의 본성이 발로되는 것이었다. 두 눈을 가만히 뜨고 끝없이
무엇을 생각하는 그는 평상시와는 딴판인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어느 때나 위급할 때를
당하게 되면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혀 가지고 모든 것을 후회없이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듣든지 무심코 듣고 보는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자기에게 대조해 보고 끝없이 자기의
처지를 불만히 생각하였다. 따라서 자기의 장래라는 것은
눈물나리 만큼 불쌍하게 보였던 것이다.
 
‘어쩌면 나도 남과 같이 남편을 얻어 아들 딸 낳고 자미있게 살아볼까.
   에라! 생각하면 무엇하리, 나 같은 년에게.’
 
나이가 한두 살 많아갈수록 그의 가슴은 이러한 생각으로 가득 찼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앞길은 갈수록 태산만이었다.
그에게는 돈, 그것이 악마같이 생각키웠다. 그리고 알뜰한 인정,
그것이 안타깝게 그리웠던 것이다. 세상에는 사내가 많고 많건마는
이년에게는 사내 하나가 태이지 않았담! 이렇게 탄식하고 남몰래
우는 적이 많았다.
그가 스물한 살 잡히던 때,
우연한 기회에 어떤 보기에도 초라한 고학생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 후로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의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남몰래 그의 하숙으로 자주 방문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떤 여름밤 비는 느실느실 오기 시작하였다. 졸이는 가슴으로 손님들을
억지로 쫓다시피 하고 보니 새로 두 시 반이었다.
그는 분주히 옷을 갈아 입고 미리 약조한 곳으로 가보니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에 그는 감격의 치밀리는 기쁨이 진하여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기가 힘들었다.
 
“입때 기다리셨소?”
 
그를 만나면 어쩐지 수줍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슴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앞으로 슬금슬금 걸었다.
 
“그러믄요.”
 
침묵 속에 그들은 걸었다. 이때마다 번개질을 하였다.
잔잔히 흐르는 물소리는 차츰차츰 가까이 들렸다.
 
“공부도 그만둘 테야요.”
 
그는 놀라 어둠 속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이세요?”
 
이렇게 묻는 사이에 돈 때문일까 혹은 나 때문일까
 하는 의문이 일어났다.
 
“공부도 아무것도 귀치 않으니까요.”
 
“특별한 사정이 있습니까? 숨김없이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네.”
 
“별한 사정도 없이 그저 모두가 귀치 않고 당신…….”
 
그는 여기까지 끊고는 잠잠하였다.
 듣던 그는 반가우면서도 한켠으로 겁이 났다.
 
“강수 씨, 당신은 그러한 번민으로 아까운 시간을 허송할 때가
  아닙니다. 만일 당신께서 이 사람으로 인하야 공부도 치워버린다면
  단연코 당신과 가까이하지 않겠습니다. 그것만을 깊이깊이
  알아주시지요. 그러고 앞으로 부족하나마 당신의 학비까지도 저의 힘
  미치는 데까지는…….”
 
머리를 숙였다. 한참이나 말없이 걷던 그는,
 
“고맙습니다!”
 
겨우 이렇게 대답을 하고 부끄럼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고상한 말에 감복 되었다.
그들은 송림 새로 들어섰다. 강수는 어떤 소나무 아래 앉으며,
 
“여기 앉으십시오.”
 
자기 양복 웃저고리를 벗었다. 그는 분주히 도로 입히며,
 
“모두 낡은 옷입니다. 새 옷이라면…… 이까짓 옷 버리면 어떻습니까?”
 
강수 옆에 걸터앉았다.
별안간 강수는 그의 손을 꼭 잡고,
 
“나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십니까?”
 
그는 잠잠히 그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었다. 번갯불이 번쩍했다.
 
이리하여 돌이라도 녹일 듯한 사랑이 계속될수록 반면에 산호주의
격렬한 후원은 강수의 용맹스러운 힘이 되고야 말았다.
하여 무사히 중학을 마치고 일본까지 건너가게 되었다.
애인을 보낸 산호주는 사내놈들의 단련을 받다 못해 어떤 때는 매까지
맞는 때가 종종했지만도 모든 모욕이 남편을 위해 하거니 하여 스스로
위로받으며 오히려 그들을 골라서 한푼이라도 빼앗을 궁량만
하고 있었다. 시간은 빠르다. 어느덧 형설의 공을 쌓아 가지고
그리운 고향으로 나온 강수는 평양 모 중등학교 교편을 잡게 되었다.
중화로부터 그의 부모들은 아들의 뒤를 따라 평양성내에 들어오자마자
아들의 혼사담은 바짝 일게 되었다.
하여 산호주에게는 말 한 마디 전함 없이 그곳 사립 모 여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깨끗한 여학생과 드디어 약혼되어서 문밖
예배당 내에서 목사의 주례하에 성대한 결혼식은 끝나고 말았다.
바로 결혼식 열흘 앞두고 산호주를 찾아온 강수는 아무러한 눈치도
그에게 보이지 않고 간 후 발길을 뚝 끊고 말았다.
소문을 들은 산호주는 새삼스럽게 놀라지는 않으면서도 자기의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을 얼핏 깨달았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이 한 마디로 오륙년간 받은 자기의 상처를 눌러버리려 하였다.
그러나 용이히 매워지지 않는 그 상처는 마침내 그로 하여금 벙어리라는
별명까지 듣게 하였다.
그는 손님맞기를 싫어하고 불러도 가기를 싫어했다.
그저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서 끝없는 침묵 속에 별 신기맹통한 공상도
못하면서 꽁하니 앉아 있었다.
어떤 날 그는 모란봉 위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쐬었다.
잔잔히 흐르는 대동강 물, 다정히 모여 앉은 능라도 수풀도
별한 아름다움과 흥미를 그에게 주지 못하였다.
그저 그렇다 할 뿐이었다. 그는 자기 스스로도 이상히 생각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실연의 쓴맛인가? 무엇 때문에 내가 이럴까? 강수 때문에?
딱히 강수 때문인 것 같지 않았다. 어쩐지 자기 가슴속에 열이란 하나도
없어지고 차디찬 송장같이 생각되었다.
그러면 세상을 버릴까 하는 최후까지 마음 키워 보았으나
그다지 염증나게 세상이 싫지도 않았다. 그저 그만그만 하였다.
몇 사람의 지나치는 신발소리도 들었으나 돌아보지 않았다.
한참 이러한 생각으로 시간을 보낸 그는 발길을 돌렸다.
그의 앞에 딱 막아선 사람이 있었다. 얼른 쳐다보니 강수였다.
한참 동안 강수를 쏘아본 그는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산호주, 잠깐만 기다리오.”
 
그는 우뚝 섰다. 발갛게 상기된 그의 얼굴은 느긋느긋함이 돌았다.
산호주는 머리를 돌렸다. 바짝 다가선 강수는,
 
“한번 집까지 가려는 중에 잘 만났습니다.”
 
“네.”
 
그는 머리를 끄덕이며 주춤 물러났다.
씨근씨근하는 그의 숨소리가 불쾌했던 것이다.
 
“용서하여 주시겠소? 물론 영리한 당신인 것만큼 이번 일에 대하여는
  관서할 것으로 믿습니다마는. 네, 용서하시지요. 환경이 나로 하여금
  그리 맨들었소마는, 그러나 당신만은 내가 잊을 수가 있소?”
 
우두커니 서서 듣고 있던 그는,
 
“그렇겠소.”
 
“용서하시지요? 나는 믿습니다.”
 
“더 할 말 없지요?”
 
그는 다시 돌아섰다. 그리하여 천천히 내려왔다.
 멍하니 바라보던 강수는,
 
“산호주!”
 
빽 질렀다. 그는 돌아보았다.
 
“전과 같이 나를 사랑하겠소? 안 하겠소?”
 
사랑이란 말을 들을 때 그는 웃음이 칵 쓸어 나왔다.
그는 입을 틀어 막고 한참이나 진토록 웃었다.
 강수는 몸이 바짝 달아서,
 
“그새 다른 놈 붙인 것이로구나!”
 
하고 노려보았다. 웃는 것이 무엇보다도 불쾌했던 것이다.
 산호주는 쓸쓸한 코웃음을 던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몇 번이나 지나치는 길가에서, 혹은 요리집에 불리어가서
강수를 만나게 되었다.
여전히 인사를 건네는 것뿐 아무 다른 눈치를 볼 수가 없었다.
그럴수록 강수는 행여나 하여 그의 뒤꽁무니를 따라 본 때도 있으며
오밤중에 산호주 자는 방문을 두드린 적이 많았다.
몇 달이 지나자 산호주는 자기가 홀몸이 아닌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어떤 달 밝은 밤, 소리도 인적도 없이 진절머리나는 평양을
벗어나 이곳으로 오게 되었던 것이다.
우선 얌전한 집을 사고 논밭 합하여 십여 마지기를 샀다.
그리고 대강 한 세간살이를 마련하여 재미를 알아올 만한 때
 해산을 하게 되었다,
그의 원하던 대로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는 처음으로 세상에 대한 애착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린것을 안고 들여다볼수록 신기맹통스러웠다. 따라서 차츰차츰
차디차던 그의 가슴은 따스한 모성애로부터 녹아갔다.
어린 봉준이는 매일 달라 갔다. 몇 달이 지나자
 젖살이 포동포동 오르고 꽃송이 같은 입을 벌려,
 
“엄마, 엄마.”
 
하였다. 빼빼 말라붙었던 그의 눈에서 감격에 넘치는 눈물이
 그의 볼을 적시게 되었던 것이다.
봉준이가 자라날수록 그의 희망은 커졌다. 하여 살림살이를 어쩌는 수가
없이 일감을 만들어 가며 잠시도 놀지 않았다.
일꾼을 데리고 밭 몇 마지기를 손수 부쳤다. 그리하여 여름에는
농사 뒤치기에 눈코 짬이 없이 바쁘게 지냈다. 그러나,
 
“엄마!”
 
하는 소리만 들으면 어려운 줄을 모르고 악하고 일을 하였다.
그러므로 동네에서도 이 부인을 흠모치 않는 사람이 없었다.
비록 농사하는 집일망정 깨끗하여 먼지 있는 것을 볼 수 없으며
심지어 뜰 앞 구석에 박혀 있는 돌 한 개라도 사람의 발부리에 채이지
않도록 자기를 잡아놓는 일이며, 항상 손부리에서 노는 호미, 괭이,
 걸레, 비, 화로, 성냥갑, 바느질 그릇, 암질러 잃어버리지 않도록
급한 때 얼른 찾도록 교묘히 정돈해 두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성냥 한 개비를 무단히 없애지 않고 실 한 바람을 유효하게
썼다. 하여 점점 늘어가는 그의 가세는 매해 달라갔다.
그러는 사이에 봉준의 나이 일곱 살이 되었다.
그는 분주히 그곳 예수교 학교에 아들을 입학시켰다.
그후부터는 아침이 되면 봉준이가 책보를 들고 학교로 달아나는
것이었다.
그는 말없이 아들의 가는 뒤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저것을 사람을 맨들어놔야 할 텐데……’
 
 이렇게 생각할 때 어머니란 책임이 무겁고도 막연함을 깨달았다.
동네 새 술장수집이 생긴 후로 잠잠하던 촌동네가 뒤숭숭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내어쫓자는 사람으로,
덮어놓고 욕질하는 사람으로, 한동안은 그에게로 부산히 문안 겸
노친네 젊은 부인네들이 저녁이 되면 모여들었다.
그는 언제나 말없는 웃음으로 그들을 대해 주면서 밤낮으로 우는
예쁜이의 정형이 불쌍하였다. 따라서 그의 앞으로 매일같이 지나다니는
그의 어린 딸은 연중에 탐스러웠다. 무엇보다도 꼭 다문 입술,
사려 깊은 듯한 그의 눈은 장래가 있다는 것을 그로 하여금
상상케 하였다. 이렇게 생각이 들수록 예쁜이에게서 이 아이를
자기에게로 뺏아올 마음이 들었다. 자기가 예쁜이보다 어머니로서의
모든 책임 이행이 낫다해서 그렇다는 것보다도 영업이 영업인 것만큼
그 어린 천진한 것에게 벌써부터 술냄새와 사내놈들의 꼴을 보이는 것이
자기 경험을 미루어 가엾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가 마당에 나왔다가도 아기만 뵈면 손짓을 하여 손목을
꼭 잡고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밥이든지 무엇이든지 먹여 보내곤
하였다. 아기는 눈만 뜨면 봉준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언제나 고요히 웃는 눈, 항상 쓰다듬어 주는 그의 흰 손,
그리고 가늘고도 부드러운 그의 음성이었다.
더구나 봉준의 고운 옷감을 끊어다 손수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도 아기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아기는 가만히 자기 어머니를 생각해 보았다.
구석구석이 때묻은 옷을 내 버려두는 것, 그리고 술이나 마시고 마시고,
해종일 마시고는 사내놈들의 무릎과 무릎 사이로 옮아다니는 꼴이었다.
그는 울고 싶었다. 아니 남몰래 우는 적이 많았다.
그는 쓰라린 현실로부터 그의 이지(理知)는
엉뚱나게 발달되었던 것이다.
아기는 틈만 있으면 봉준네 집으로 달려갔다.
 
“아가, 밥 먹었니?”
 
“네.”
 
“더 먹지?”
 
“싫어요.”
 
봉준이는 공부한다고 책을 벌려 놓고 읽기도 하고 쓰기도 한다.
그는 옆구리로 다가앉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봉준이 어머니는,
 
“아기도 공부하고 싶으니?”
 
그는 머리를 폭 숙였다.
 
“학교 가고 싶어?”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애기의 대답이 없음에
 
‘아마도 아직 공부가 무엇인지 모르니까 그러나 보다’
 
 하고 생각하였다.
아기의 눈물이 봉준 어머니 손에 떨어졌다.
 그는 놀라 아기를 들여다보았다.
 
“어째 우니?”
 
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어머니한테 꾸지람 들었니?”
 
봉준 어머니는 너무 안타까움에 그의 목을 얼싸안고 들여다보았다.
봉준이도 멀거니 바라보았다.
 
“아가, 말해라. 웅?”
 
“학교 가고 싶어……”
 
울음 섞어 말하였다. 순간에 봉준 어머니의 가슴은 쾅하고 내려앉음을
느꼈다.
 
“오냐, 너도 물론 배우고 싶었을 테다.
  내가 어리석게 네 마음을 몰랐구나!”
 
그의 눈에도 눈물이 괴었다. 그렇게 알뜰한 것을 공부를 못 시켜 주나,
배우지 못함에 그 어린 가슴이 얼마나 안타까웠으랴,
 이렇게 생각하였다.
 
“아가, 내일부터 학교 가라.
  어머니보고 물어보고 학비는 내가 물어주마. 응?”
 
그는 금시로 눈물 괸 눈에 웃음이 돌았다.
 
“어머니가 못 가게 하면……”
 
애처롭게 그를 쳐다보았다.
 
“오냐, 내 말하마.”
 
그 후부터 아기는 봉준의 집으로 아주 옮아오고 예쁜이는 사내놈을 달고
멀리 뛰어버렸다.
봉준 어머니는 아기의 이름을 옥이라고 지었다.
십여 살이나 먹도록 이름없는 한낱 생명이었던 것이다.
봉준 어머니가 옥이를 데려다 놓고 가지각색 옷을 맵시 있게
꽃다대 처럼 해서는 입히곤 하였다.
따라서 옥이도 나간 어머님 생각은 아주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따금 봉준이가 툭 부러지게,
 
“가아, 너의 엄마한테로 가야.”
 
이런 소리를 듣고 나면 어린 가슴이 찌르르 울리는 것이었다.
 봉준 어머니는,
 
“봉준아, 나는 너의 엄마는 아니고 옥이 엄마다! 네가 나가라.”
 
웃지도 않고 가만히 쳐다보면,
 
“아니야 엄마.”
 
그에게로 와서 안기려면 물리치며,
봉준이는 눈물이 글썽글썽해지면 잠잠하였다.
 
“안 그러지, 봉준아. 옥이도 이리 온.”
 
두 아이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옛날 영웅 이야기 같은 것으로
짤막한 동화같은 것을 하여 들이곤 하였다.
옥이 열네 살 잡히고 봉준이는 열한 살 나던 해 가을,
그의 어머니는 감기에 걸려 십여 일 꼿꼿이 앓은 결과로
아주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봉준과 옥이 손을 붙잡고
차마 눈을 감지 못한 채 가고 말았던 것이다.
바로 임종시에 애들의 선생인 김영철이를 데려다 놓고 불쌍한
두 어린것들의 장래를 부탁하였던 것이다.
피가 흐르는 듯한 어머니의 간절한 부탁으로 무거운 짐을
한 어깨에 짊어진 영철 선생은 그 둘이 아플세라,
혹은 공부를 잘 못할세라 안팎으로 마음을 졸여가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그들을 보고 기뻐하였다.
유언을 따라 옥이 스무 살 잡히던 해에 그곳 예배당 내에서
그들의 혼례식은 끝이 났다.
시어머님은 본을 따라 옥이는 세간살림을 나무랄 여지가 없이 잘하였다.
남편인 봉준이는 곧 평양으로 공부 보내고 혼자서 농사 뒤를 쳐가며
남편의 학비를 보냈다. 이리하여 동네에서는 입 든 이 마다
 
“나 어린것이 용해”
 
이렇게 일컬음을 듣곤 하였다.
봉준이가 평양서 공부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자
영철 선생의 권으로 옥이는 읍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송화읍 내에 예수교 안으로 경영하는 청년학원에 그를
입학시키고자 함이었다.
그가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공부에 재미를 붙여 밤잠을 못 자고서라도
남에게 떨어지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럼으로 인해서 학교 선생들까지
옥이를 사랑하고 학생들한테까지 질투심을 받게 되었다.

3. 남편
남편이 동경으로 간 후부터는 행동이 수상쩍은 일이 한둘이 아니었으나
이러한 편지를 하기 전까지는 차마 그에게 대하여 의심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역시 편지가 온 후에라도 제가 셈이 없어 그러거니,
철만 들면 어머니를 생각하기로서니 설마 그렇게까지 하랴,
이러한 위로로 스스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나 며칠에 한 번씩 온다는 편지는 돈 보내라는 것 외에는
어서 이혼하고 당신도 다른 남편 얻어가라는 충고 비슷한 형식을 취하여
협박을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좋게만 해석하던 옥이도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하여 그 잘하던 공부도 차츰차츰 뒤로 물러가며
따라 밤이면 꼬박 일어 앉아 새우는 밤이 점증하였다.
자기를 생각하여서 그러는 것보다도 나 어린 남편의 장래를 위하여
어쩌면 그로 하여금 편하게 마음대로 해주는 동시에,
일생을 행복스럽게 만들어줄까, 자기의 신세를 망쳐 버리게 된다더라도
남편에게 행복함이 된다면 어떠한 일이라도 감행할 것 같았다.
옥이는 바느질그릇을 앞으로 당겨 놓고 일감을 들었다.
그러나 바늘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움직일 뿐이고 벌써 왔어야 할 남편이
아직 아무런 기별없이 잠잠하니 기막힐 노릇이었다.
하여, 혹은 중로에서 무슨 남다른 일이나 만나지 않았나,
또는 동무집에 중참을 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으로
머리가 뒤숭숭하여졌다.
바라보니 조그만 거미 한 마리가 옥이 앞으로 조루루 내려와서
바느질그릇 위에 떨어지더니 또다시 줄을 거두어 가지고
천장으로 올라간다. 그는 물끄러미 쳐다보며,
 
‘거미가 내려오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일어났다.
뜰앞 포플러나무 가지 위에서는 매미소리가 요란스럽게 난다.
옥이는 가만히 가만히 밖으로 나가서 나뭇가지를 살펴보았다.
매미는 푸르릉 하고 날아갔다. 숨이 답답하도록 햇빛이 내리눌렀다.
옥이는 골방 문 앞으로 왔다.
 
“나무 또 하러 가겠나?”
 
“가지요.”
 
기성이는 일어났다.
 
“그만두게. 그러고 차부에 나가보게.”
 
“오늘은 꼭 오시나요?”
 
매일같이 냄새나는 차부에 우두커니 나가 섰기가 열쩍었던 것이다.
 
“글쎄, 나가 보게나. 늘 나가다가 오늘따라 없이 안 나가는 날
  마침 오늘 오신다면 여지 나가던 보람이 없어지지 않나?”
 
그는 마지못하여 옷을 툭툭 털고 어정어정 걸어나갔다.
 그리 댐치 않은 꼴이었다.
 
“어서 빨리 가보게!”
 
소리치고 나서 안방으로 들어왔다.
밖으로부터 기성이가 가방을 들고 뛰어 들어온다.
순간에 그의 가슴은 쿵, 하는 소리가 자기 귀에도 확실히 들렸다.
 
“주인님 오십니다.”
 
기성이는 아까와는 딴판으로 엉덩춤을 추며 지게를 얻어 지고
 밖으로 나간다.
그는 몸둘 곳을 알지 못하여 두루두루 보다가 부엌으로 나왔다.
어쩐지 가슴이 둘렁둘렁하기 시작하였다.
 
‘행여나 오늘 온다면 어쩔까, 어쩌기는 무엇을 어째?’
 
이렇게 생각하며 픽 웃었다. 그러나 여전히 뒤숭숭하였다.
그의 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똑딱똑딱 시계를 따라 점점
가슴이 답답해 질 뿐이었다. 그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쉰 후
가만히 일어났다.
구둣소리가 나자 남편이 들어왔다. 성큼 올라서서 방안을 들여다보며,
 
“옥씨, 어디 가셨소?”
 
부엌 뒷문에 비껴선 옥이는 두 눈이 캄캄해지면 땅 속으로도
퐁당 들어가면 좋은 것 같았다.
이때처럼 자신이 무겁고 귀찮을 때는 처음이었다.
기성이는 지고 온 고리짝을 내려놓고 땀을 씻으며 부엌으로 들어왔다.
 
“뎜심 어떻게 하나요.”
 
옥이는 머리를 돌렸다.
 
“한 그릇 시켜 오게.”
 
말소리가 들리자 봉준은 부엌 샛문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옥씨, 안녕하시댔소?”
 
그의 얼굴빛은 아주 담홍빛으로 되었다.
기성이는 옥이를 한 번 더 쳐다보고는 빙긋이 웃고 밖으로 나갔다.
 
“어서 이리 들어와요. 왜 그러고만 있소? 반갑지 않아요?”
 
묻는 말에는 그리 탐탁히 굴지 않던 사람이 이번에는 아주 딴판이었다.
그럴수록 옥의 가슴은 점점 더 의문으로 꽉 채워졌다.
국수 그릇이 들어오자 상을 차려 기성이를 주었다.
그는 받아 가지고 안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남편은 나왔다.
 
“여보 옥씨, 들어와요.”
 
옥의 등을 밀었다. 그는 안타깝게 얼굴이 확확 달았다.
 
“어서 들어가세요.”
 
그는 벙글벙글 웃으며,
 
“같이 들어가야 합니다.”
 
하는 수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상을 들어 옥의 앞에 갖다 놓고,
 
“기성이, 공기 들여 오게. 빈 그릇이라야 잘 알아듣겠군.
  여보게, 빈 그릇 들여다주게.”
 
빈 그릇을 받아 놓고 국수를 덜어 자기 앞에 놓았다.
 
“같이 먹읍세다, 우리.”
 
저를 들어주었다.
 
“금방금방 먹었어요.”
 
“먹기는 나도 먹었소. 하 권할 때 못 이기는 것처럼 하고 들구려.”
 
옥이는 그의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입은 꽤꽤 썼다.
 남편은 얼른 먹고 저를 놓았다.
 
“잘 먹었습니다, 옥씨.”
 
그도 따라 저를 놓았다.
 
“요새 방학했지요. 당신네 학교에서도!”
 
“네.”
 
“공부 자미나요?”
 
“그렇지요, 뭐.”
 
“김선생님 늘 오셨소?”
 
“네.”
 
남편은 벌컥 일어나서 양복을 훌훌 벗고,
 
“기성이, 고리 끌르게!”
 
그는 분주히 달려가서 고리짝을 벗기고 가로세로 줄진 하오리를
 내어 입었다.
멍하니 바라보던 옥이는‘저것은 또 무엔고’
 어쨌든 남편이 하는 것은 다 좋아 보였다.
남편은 꺽둑이를 신고 마당으로 나갔다.
 
“여보게 기성이, 자네 다락 지을 줄 아나?”
 
그는 이상하다는 듯이 주인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글쎄요, 지으면 짓겠지요.”
 
“그렇지, 자네쯤 해서 다락 못 짓겠나?”
 
그는 벙글벙글 웃으며 포플러나무 아래로 왔다.
 
“여기다 짓게. 빨리 지어야 하네 정, 울짱 있나?”
 
“좀 있지요.”
 
“잘 되었네. 어디 있나?”
 
복술이는 밖으로부터 들어오자 컹컹 짖었다. 그는 복술이를 어루만졌다.
 
“강아지가 이렇게 컸나?”
 
마루에서 고리를 뒤지고 있는 옥이를 쳐다보았다.
밤낮으로 쓰다듬어 기른 복술이를 어루만질 때
 옥의 가슴은 오싹해짐을 느꼈다.
기성이는 울짱을 한아름 안고 뜰 안목캐로 나왔다.
그리하여 구렁을 파고 기둥 네 개를 세웠다.
기성이가 땀을 씻는 동안 봉준은 괭이를 둘러메고 헛괭이질을 하였다.
 
“것도 못하겠네그려. 자네 용허이.”
 
기성이는 허허 웃었다.
이리하여 봉준은 잔심부름 뻔뜩케 하여
해질녘에 겨우 다락을 지어놓았다.
 
“수고 단단히 했네. 고맙네.”
 
부엌으로 뛰어들자 개숫물에 손을 씻으며,
 
“저봐요, 옥씨!”
 
옥이도 따라 웃었다.
 
“좋지요, 기세는 밥 많이 주.”
 
기성이를 쳐다보고 빙긋이 웃었다.
그들은 어리둥절해졌다. 따라 어림상은 없어지고
 떨리던 옥의 가슴도 적이 가라앉았다.
저녁을 물린 그들은 봉준의 권으로 다락 위에 올라앉았다.
그는 자기 손끝에 노는 기구를 전부 다락으로 옮겼다.
그들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남편은 바이올린을 내어 뜯었다.
무슨 곡조인지는 몰라도 어쩐지 처량하게 들렸다.
그도 시원치 않은지 이번에는 하모니카를 내어 불었다.
어깨까지 들썩들썩 하였다.
모든 것에 능통한 남편을 쳐다보는 옥이는 속으로
 
‘어머님이 계셨더라면 얼마 기뻐하시랴’
 
남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것이었다. 기성이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봉준이의 몸세 놀리는 대로 따라 움직였다.
하모니카도 싫증이 난 봉준은,
 
“자리 올려다 주우.”
 
이제야 기성이는 제정신이 들었던지 후닥닥 일어나 내려왔다.
뒤를 이어 옥이도 내려와서 자리를 올려주었다.
 
“옥씨, 편안히 주무시오 나 위해 오늘 수고 많이 하였소.”
 
늦게 일어난 남편은 다락문을 열고 부시시 나왔다.
미리 떠다 놓은 세숫물에 세수를 하고 다락으로 올라가서 한참 후에
 나오는 그의 얼굴은 한층 더 환해졌다. 그는 밥상을 마주 앉으며,
 
“옥씨도 잡수어야지요?”
 
“먹었습니다.”
 
몇 술을 뜨는 듯하더니 상을 물리었다.
 
“오늘 주일날이지요?”
 
“네.”
 
남편은 양복을 바꾸어 입고 연해 면경 속으로 자기를 비춰보았다.
 
“기성이, 다락에서 솔 들여다 주게.”
 
가져오는 솔을 받아 위에서부터 내려 쓸었다.
 햇빛에 일어나는 먼지는 오색으로 빛났다.
 
“예배당에 갑시다. 당신 예수 잘 믿지요 
  그래서 나 위해 기도 많이 하신댔지요.”
 
옥의 얼굴은 빨개졌다. 오밤중에 일어나 눈물 먹어 쓴 편지 일면이
 그의 앞에 빤히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예수를 진실히 믿게 되었지요그려.”
 
빙긋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남편이 나가는 뒤꼴을 물끄러미 바라본 그는 
 
‘빠른 것은 세월이다!’
 
하고 생각하였다.
재종 소리에 놀란 그는 분주히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와서
부엌 대문을 걸고 사랑문을 들여다보며 기성이에게,
 
“집 잘 보게.”
 
하고 사립문을 지치고 골목 새로 빠졌다. 복술이는 뒤를 따랐다.
예배당 가까이 오자 우렁차게 울려나오는 찬미 소리가 들렸다.
문안을 들어서며 
 
‘참으로 남편이 왔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남자 방을 힐끔 쳐다보았다.
 
“왜 언니 늦게 오시우?”
 
옥의 손을 꼭 잡아 제 곁에 끌어앉히는 학생을 바라보니 상애였다.
따라 학생들은 눈으로 옥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상애는,
 
“숙희라는 여자 왔어.”
 
가만히 말하였다.
 
“어디?”
 
그의 가슴은 호기심에 들떴다.
 
“언니 뒤, 네 사람 건너서.”
 
이번엔 입을 막고 말하였다.
그는 조심히 돌아보았다. 트레머리 한 얌전한 처녀들이
가지런히 앉았다. 순간에 그는 일종의 질투 비슷한 감정이 떠올랐다.
 
“어때?”
 
“곱구나”
 
“곱기는 무어 고와? 그렇게 치장해서 안 고울 년이 어디 있담
  정, 신랑도 왔겠시다리?”
 
“응.”
 
“반가와?”
 
“그렇지.”
 
그는 의미 있는 웃음을 웃고 나서 찬송을 불렀다.
예배 다 마치기까지 옥은 불편함을 느꼈다. 그리고 남편과 숙희가
번갈아 떠올랐다. 따라 점점 자신은 아무것으로도 생각되지 않았다.
 
‘그들은 많이 알고 쓰기도 잘 할 터이지. 나도 배우면 되겠지.’
 
이리하여 겨우 가라앉히는 사이에 벌써 예배는 끝났다.
욱욱 밀려나가는 사람들 틈에 섞여 두 여자의 가는 뒷맵시를
바라보았다.
날씬한 허리, 알맞은 키와 샛노란 구두, 하얀 팔뚝 속으로 비치는
 손시계. 등을 툭 치매 돌아보니 기순이었다.
 
“언니 남편도 왔구려.”
 
저켠을 바라보았다.
남편은 두 여자의 가는 뒷맵시만을 눈이 뚫어지도록 바라보는 것이었다.
순간에 그의 얼굴은 화끈 달았다.
 
‘그렇겠지!’
 
이렇게 속으로 부르짖었다.
남편이 어째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을 잘 알게 되었다.
 따라 그의 전신의 맥은 탁 풀리고 앞이 캄캄하였다.
 
“언니, 오후에 또 오지.”
 
“글쎄.”
 
이렇게 맥없이 대답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벌써 복술이는 앞장섰다.
 
‘나 에게는 복술이밖에 없다.’
 
하고 눈물이 쑥 비어졌다.
 
“얼마나 기쁘나?”
 
남편과 영철 선생이 마주 앉았다.
 
“방학하고 곧 내려오지 무엇하기 여직껏 있었담.
   옥이는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네.”
 
빙긋이 웃어 보였다.
 
“글쎄올시다. 동무 집에서 붙잡아서……”
 
옥이는 윗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은 후 부엌으로 나갔다.
 
“자네 이번 학비는 전보담 많이 썼지.
  될 수 있는 데까지는 절약해 쓰게.”
 
돈 이야기를 꺼내면 언제나 그는 듣기 싫었다.
 
“조선과 달라서……”
 
“음, 그런 줄은 잘 아네마는…… 내장골 논을 또 팔아야겠네.”
 
“팔지요.”
 
선생을 쳐다보았다.
 
“지금 곧 팔게 하지요.”
 
철없이 덤벙대는 봉준이를 물끄러미 바라본 선생은
 난처하게 생각되었다.
 
“아무 때나 팔겠나, 내일 모레 벼를 비게 되었는데……
  늦은 가을쯤 가서 내어놓겠네. 아껴 쓰도록 하게.
 
그는 벌컥 일어나 왔다갔다 하며 마루로 나왔다.
 그의 발 밑은 산뜻한 쾌감을 느끼며,
 
“무얼 하시우?”
 
옥의 이마 끝에는 땀이 방울방울 맺히고 불빛에 두 볼이 빨개졌다.
 첫눈에
 
‘과연 미인이다.’
 
하고 봉준은 속으로 중얼대었다.
옥은 땀을 씻으며,
 
“점심 하지요.”
 
“여보 그만두. 더운데 시원하게 국수나 사다 먹고 말지.
  어서 들어오우.”
 
점심을 먹은 봉준은 방에 앉았기가 어째서 불쾌하였다.
 그는 모자를 들고 일어났다.
 
“참, 지독히 덥군.”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린 후,
 
“저는 놀러 나갑니다.”
 
하고 나가 버렸다.
 
“이번은 좀 나아진 것 같으네. 자네께 구는 것이.”
 
옥이는 잠잠히 머리를 숙였다.
 
“그렇지 않나, 말하는 것이나?”
 
숙인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두 볼은 붉어짐으로 대할 뿐이었다.
 
“논은 팔기로 되었네. 봉준이까지 팔라니까.”
 
“네? 팔라고 합데까?
 
감추었던 설움이 왈 쓸어 나왔다. 선생은 한숨을 쉬며,
 
“돈을 들이면 돈이 나오겠지. 그렇지 않나?
  어쨌든 하던 공부는 마쳐야겠으니까……”
 
언지를 못 얻어 잔뜩 들이켰던 눈물은 좍 쏟아졌다.
 선생도 마음이 언짢아졌다. 한창이나 묵묵하니 앉았던 그는,
 
“우는 것으로 일 치우겠나. 그런데 봉준의 말을 들으니
 오는 봄에는 자네도 서울로 다리고 가겠다대.”
 
그의 귀는 번쩍 띄었다.
 
“내 생각에는 그것만은 잘 생각했다고 하였네.
  이곳에 박혀 앉아 있다가는 결국은 자네만 속을 일일세.”
 
옥이도 그렇다고 생각되었다.
따라서 그가 어떻게 자기까지 공부시킬 마음을 먹었을까?
여기에서 실낱 같은 희망이 붙었다. 그러나 점점 패하여 들어갈
자기네 가세 형편이 무엇보다도 감감하여졌다.
 
“하나 공부하기도 어려운 판에 저까지 올라가면 아주 못살게 되게요.”
 
“하여간 가는 데까지 가보세구만. 몇 해 후에 제가 졸업을 할 터이니
    그때에는 무슨 수가 나겠지.”
 
선생도 이렇게 쓸어치고 말았으나 역시 걱정 아닌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옥이를 이곳에서 살림살이나 맡아 가지고 엄벙덤벙 지나가다
공부 없다고 차던지든지 하면 그 역시 난처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우선두를 다 내세워 가지고 공부를 시킨 후 나중 문제는
자기네들끼리 해결하더라도 우선은 옥이로 하여금 여한이나 없게
 하자는 것이었다.
선생은 일어섰다.
 
“자네의 한 번 생각에 달린 것일세. 몇 달 동안 꾸준히 생각해 두게.”
 
그도 따라 문밖까지 나왔다.
 높았다 낮아지는 잠자리 지처귀 소리가 은은히 들렸다.
밤이 되면 옥이는 한잠도 못 잤다. 전에는 남편이 오면 낫겠거니 하고
기다렸더니, 남편이 막상 오고 보니 말 못할 새 설움이 한 가락
더해졌다. 남편 역시 번민을 하는 모양이었다.
낮이나 밤이나 오래오래 쏘다니다 가는 얼근히 취하여 벼락치듯
다락으로 기어올라가서는 목을 놓고 종종 우는때가 있었다.
그리하여 옥이는 까닭도 모르고 다락 주위로 빙빙 다니다가는,
 
“어째 우시우?”
 
떨리는 손으로 다락문을 열었다.
그는 문을 쿡 닫으며,
 
“당신 참견할 일 아니오!”
 
그는 부끄러움과 노여움이 일시에 폭발이 되어
 가슴을 짓모으는 것 같았다.
그는 몇 번이나 발길을 돌렸다가도,
 
“에라! 아직 철없어 그리는 것이겠지.
  돌아가신 어머님을 생각하고 참자!”
 
이렇게 중얼거리고 방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뒷문 사이로 흐르는 차디찬 달빛은 옥의 얼굴을 한층 더 새하얗게
만들어 주었다. 그는 애꿏은 뒷문을 발길로 차던지고 발을 늘였다.
울바자 울짱과 울짱 사이로 걸린 거미줄은 달빛에 빛났다.
길같이 들어선 감탕나무, 칡넝쿨같이 엉킨 호박줄기,
별같이 빛나는 박꽃, 이 모든 것이 고요히 잠든 듯하였다.
그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리하여 마루 위에
털썩 주저 앉았다. 방보다 훨씬 시원한 맛이 있었다.
몇 시간 후에 다락문이 열리자 남편이 셔츠 바람으로 기어나왔다.
그는 전신에 냉수를 끼얹은 듯한 쾌감을 느끼며
부끄러움이 앞을 칵 막아쳤다.
나막신 끄는 소리가 들렸다. 이리로 향하여 오는 것만 같았다.
한참 후에 또 신발소리는 났다. 뒤이어 다락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최후 용기를 다하여 바라보는 순간 남편의 흰 발목이 천천히
다락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얼결에 우뚝 일어섰다.
미친 듯이 마루 기둥을 얼싸안고 돌아갔다.
한참이나 정신없이 돌아가던 그는 나중에는 기운이 진하여 마룻바닥에
쿵 하고 엎어졌다. 갈갈이 흩어진 삼단 같은 그의 머리카락 속으로
빛나는 그의 흰 볼이 아담스러웠다.
잠꼬대에 낑낑하던 복술이는 쿵 소리에 놀라 툭툭 털고 일어났다.
한참 후에 선뜩선뜩함을 느끼자 가만히 정신을 차려 보니 복술이가 자기
얼굴을 내려핥고 치핥으며 낑낑하였다. 순간에 흰 발이 문득 떠올랐다.
그는 이를 부드득 갈고 일어났다.
그래 복술이를 껴안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달이 포플러나무 가지에 비스듬히 걸려 샐쪽샐쪽 웃는 듯하였다.
그는 머리를 푹 숙이고 복술이를 놓아주었다.
산뜻한 바람이 그의 볼을 스치자 전신이 산뜻함을 느꼈다.
그는 일어서 방으로 들어서자 매시하니 잠이 푹 들었다.
옥이가 며칠 전에 빨래질한 남편의 셔츠, 칼라, 넥타이, 양말들을
차곡차곡 얌전히 꿰맬 것을 꿰매고 하여 고리에 개어 넣었다.
 
“언니, 무얼 하시우?”
 
발을 들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바라보니 기순이었다.
 
“올라오너라. 용히 우리 집에를 오는구나. 어서 올라와.”
 
“아무도 없지?”
 
“그래, 누가 우리집에 있겠니?”
 
“그런데 다락은 언제 지었소?”
 
“요즘 지었다. 좋지?
 
빙긋이 웃었다. 기순이는 마루로 올라앉았다.
 
“언니, 숙제 다 했소?”
 
방으로 들어가자 책상 밑으로 갔다.
 
“야, 숙제가 다 무어냐, 넌 다 했겠구나.”
 
“언니두…… 나 같은 것이 벌써 숙제를 다 했으면……
  정말 공부 잘한다고 하게? 언니 신랑도 쉬이 가겠구려?”
 
“글쎄 가겠지.”
 
옥이는 밖으로 나가더니 바구니를 들고 들어온다.
 
“어제 십 전어치 산 것인데 퍽 달더라.”
 
“이제 점심 먹고 왔어요.”
 
노란 참외를 들고 껍질을 벗긴다. 기순이는 혼자서 상긋상긋 웃더니,
 
“언니, 이번 숙희라는 여자 자세히 보았지?”
 
옥이 주는 참외쪽을 받아든다.
 
“보았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선뜻하였다.
 
“왜?”
 
그를 쳐다보았다.
 
“무슨 말 들은 것 있는데 말할까 말까.”
 
남편에 관한 것임을 직감하자 호기심에 간질간질하였다.
 
“말하렴.”
 
“언니, 골 안 낼 테야?”
 
“왜, 무슨 말이기 그러니?”
 
“그만두겠소.”
 
그리고 참외를 깨물었다. 옥이는 바짝 대어들었다.
 
“어서 하려무나. 조롱만 하고 마니? 내 언제 골내는 것 보았니?”
 
“그래두……”
 
그를 똑똑히 쏘아보았다. 그리고 자주 자주 밖을 내어다보았다.
 
“이따 저녁에나 온다. 마음놓고 놀라우.”
 
“언니야 뭐, 미리 알겠지.”
 
“무슨 말인지 하려무나.”
 
그는 음성을 낮추었다.
 
“숙희라는 여자의 뒤를 늘 따라다니며 매일 편지하다시피 한대.
  그래서 이번도 동경서 오기는 벌써인데 서울서 따라다니느라고
  그렇게 늦게 왔다두만.”
 
말끄러미 옥이를 쳐다보았다. 그의 예측한 바와 비슷이 들어맞았다.
 
“누가 그러던?”
 
“언니두, 누가 그러던 것까지 내가 말할 것 같애?”
 
“말하면 어떠냐?”
 
“그래, 숙희가 이리로 왔더니 분주히 따라왔다지.”
 
이 말에는 그는 불쾌함을 느꼈다.
 그는 약간 미소를 띠워 언짢은 빛을 가리려 하였다.
 
“알 수 없지. 아내인 내가 눈치를 모르는데 다른 사람이 어찌 알꼬.”
 
“그래 어느 날 몰래 떠나겠다는 소리를 들었어.
  너무 따라다니는 게 귀치않아서.”
 
싸고도는 옥이가 미웠다.
 
“숙희란 여자가 얼마나 잘났는지는 몰라도
  우리 그가 그렇게까지는 아니 할 게다. 그건 다 너희들 수작이지.”
 
남편을 깎아누르는 것이 곧 싫어졌다. 기순이는 웃으며,
 
“보아, 저렇게 성을 내니까 내가 얼른 말할 수가 있나.”
 
그도 따라 웃으며,
 
“성이 아니라 글쎄, 들을세 짐작이 아니냐.”
 
“무얼 언니두, 너무 싸고돌지 말아요.”
 
그는 참외꼭지를 바구니에 던지고 나서 수건으로 입을 씻는다.
 
“에, 배불러.”
 
책상을 뒤적거려 과제장을 내어놓고 벌컥벌컥 뒤져본 후 일어섰다.
 
“어째서 일어나니?”
 
“내일 과제장 가지고 와. 어디 가던 길이야.”
 
기순이를 보낸 그는 기운없이 앉아 있었다.
모든 것이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생각하니 남편이 그지없이 불쌍하여졌다.
저녁을 먹고 나간 남편은 아홉시쯤 하여 뛰어들어오자 휘휘 둘러보더니,
 
“기성이!”
 
찾으나 대답이 없었다. 그는 부엌으로 나가더니 새끼를 한 아름
안고 들어와서 구석구석에 놓인 고리를 끌어당겨 꽁꽁 매었다.
물끄러미 바라본 옥이는 내일이나 가려나 부다 하고 생각될 때
 울음이 칵 쓸어나왔다.
다 동인 고리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자 자전거 위에다 실어 놓았다.
 그리고 다락으로 들어가 한참이나 버석버석하더니 얼른 양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옥씨, 난 갑니다.”
 
뒤이어 자전거 소리가 들렸다.
옥이는 전신이 메스근해지며 정신이 까뭇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용기를 다하여 따랐다.
 
“어디, 어디 가셔요?”
 
“동경 가지요.”
 
여름내 참았던 분이 바짝 치밀었다. 하여 남편에게 매달렸다.
 
“여보소, 당신 몸에 해롭습니다.
  당신은 어머님의 외아들이 아닙니까.”
 
봉준이는 사정없이 옥이를 밀쳐버리고 자전거에 올라 바퀴를
 스르르 굴렸다.
옥이는 미친 듯이 그의 뒤를 따르다 기진하여 풀숲에 푹 고꾸라졌다.
 
                                                       어머니와 딸 이어서 -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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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딸 (하) - 강경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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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경애 - 19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