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태평천하 (太平天下) 하 3/3 - 채만식 -

하얀모자 1 2023. 2. 15.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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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평천하 (太平天下) " -- 하 --
                                                                               - 채만식 -
 
 11. 人間滯貨[인간체화]와 동시에 品不足[품부족] 問題[문제], 기타
 
시방 사랑에서는 일흔두 살 먹은(가칭 예순다섯 살 먹은)
증조할아버지가, 열다섯 살 먹은 애인과 더불어 그러처럼 구수우하니
연애 흥정이 얼려가고 있겠다요. 그리고 안에서는……
경손이는 아까 안방에서 열다섯 살 동갑짜리 대부 태식이와 같이 싸우며
놀리며 저녁을 먹고 나서는 아랫목에 가 버얼떡 드러누워
딩굴고 있었읍니다.
다른 식구는 죄다 물러가고, 야속히 배짱 안 맞는 대고모 서울아씨와
지지리 보기 싫은 대부 태식이와, 그 둘이만 본전꾼으로 달랑 남아 있는
안방에, 가뜩이나 서울아씨는 추월색으로 아닌 이를 앓고,
태식은 조선어독본 권지일로 귀신이 씨나락을 까먹고,
이런 부동조(不同調)의 소음 속에서 그애 경손이가 고 소갈찌에
천연스레 섭쓸려 있다니 매우 희귀한 현상입니다.
고양이와 개와 원숭이가, 싸우지 않고 같은 울안에서 노는 격이랄까요.
경손이는 실상 어떤 궁리에 골몰해서 깜빡 잊어버리고
그대로 처져 있는 것입니다.
골몰한 궁리란 건 다른 게 아닙니다. ⎡모로코⎦의 재상연이 있고,
또 중일전쟁의 뉴스 영화가 좋은 게 오고 해서 꼭 구경은 가야만
하겠는데, 정작 군자금이 한푼도 없어, 일왈 누구를, 이왈 어떻게 엎어
삶았으면 돈을 좀 발라낼 수가 있을까, 이 궁리를 하던 것입니다.
 
뚱뚱보 영감님?…… 안돼!
 
건넌방 겡까도리?…… 안돼!
 
제 조모 고씨가 집안사람 아무하고나 싸움을 하자고 대든대서 진
 별명입니다.
 
서울아씨?…… 안돼!
 
숙모?…… 안돼!
 
대복이?…… 글쎄? 에이, 고 재리 깍쟁이! 제가 왜 제 돈도 아니면서
 그렇게 치를 떨까!
 
어머니?…… 글쎄……
 
하니 그중에 가능성이 있자면 아무래도 대복이와 제 모친입니다.
대복이는 대장대신이요, 제 모친은 모친이니까요.
종차 30년이나 40년 후에 가서야 백만 원을 상속받을 장손일값에 시방은
단돈 20전이나 30전이 없어, 이다지 머리를,
그 연한 머리를 썩힙니다그려.
경손이는 두루 두통을 앓는데, 서울아씨는 이를 생으로 앓느라,
퇴침을 돋우 베고 청을 높여
 
“각설이라 이때에……”
 
하고 양금채 같은 목에다가 멋이 시큰둥하게
 
“……하징 아니헤야……”
 
하면서, 콧소리를 양념쳐 흥을 냅니다.
그건 바로 음악입니다. 얼마큼이나 음악적이냐 하는 것은
보장키 어려워도, 음악은 분명 음악입니다.
인간은 번뇌가 있으면 노래를 하고 싶어진다고요. 번뇌까지 안 가고라도
마음이 싱숭생숭하게 되면 콧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물론 슬퍼도 노래를 부르고 기뻐도 노래를 부르고, 또 춤을 추기도 하고
하기는 하지만, 그중의 한 가지 마음 싱숭거릴 때에 부르는 노래는
새짐승이 자웅을 찾느라고 묘한 소리로 우는 것과 가장 공통된,
동물의 한 본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나 인간은 그 동물적인 본능을 보다 맹목적(盲目的)으로
이용을 하는 제이의 본능이 있답니다.
철 들어가기 시작한 총각이 봄날 산나무를 하러 가면서
 지겟목발을 장단삼아
 
“저 건너 갈미봉에 비가 묻어 들어를 온다……”
 
하고 멋등그러지게 넘깁니다.
또 궂은비 축축히 내리는 가을날, 노랫장이나 부를 줄 아는 기생이,
제방 아랫목에 오도카니 꼬부리고 누워 손가락장단을 토옥톡
 
“약사 몽혼으로 향유적이면……”
 
하면서, 다뿍 시름 겨워 콧노래를 흥얼흥얼 흥얼거립니다.
무릇 그 총각이면 총각, 기생이면 기생이 깊숙한 산중이나 또는 아무도
없는 제 집의 제 방구석에서, 대체 누구더러 들으라고 노래를
부르겠읍니까. 그게 가로되, 흥이라구요. 새짐승이 자웅을 후리려고
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총각은 거기 어디 촌처녀색시더러
들으란 노래고, 기생은 또 저대로 제정랑(情郞)더러 들으란 노래고.
이렇듯 본능에서 우러나서 노래를 부르기는 짐승이나 인간이나
매일반이지만, 그 다음이 다르답니다.
인간은 제가 부르는 제 노래에, 남은 상관 않고 우선 제가 먼저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촌계집애가 들어를 주는지 않는지, 어느 놈팽이가 들어를 주는지
않는지, 그런 것은 생각도 않는답니다.
그런 타산은 도시에 의식 가운데 떠오르지도 않고, 괜히 그저 마음이
싱숭생숭하길래 아무렇게나 아무거나 괜히, 그저 불러지는 대로 한마디
부르고 보니까는 어떻게 속이 더 이상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기뻐지는 것 같기도 하고, 후련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일언이폐지하면 소위 흥이라는게 나는 거랍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시방 서울아씨와 이야기책 추월색도 꼬옥 그렇습니다.
공자님은 가죽 책가위가 세 벌이나 해지도록 책 한 권을 가지고 오래
읽었다더니만, 서울아씨는 추월색 한 권을 무려 천독(千讀)은 했읍니다.
그러고서도 아직도 놓지를 않는 터이니까 앞으로 만독을 할 작정인지
십만독 백만독을 할 작정인지 아마도 무작정이기 쉽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아씨는 책 없이, 눈 따악 감고 누워서도 추월색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르르 내리 외울 수가 있읍니다.
그러니 그게 천하 명작의 시집(詩集)도 아니요, 성경책이나 논어 맹자나
육법전서도 아닌걸, 글쎄 어쩌자고 그리 야속스럽게 파고들고,
잡고 늘고 할까마는, 실상인즉 서울아씨는 추월색이라는 이야기책 그것
한 권을 죄다 외우는만큼, 술술 읽기가 수나롭다는 것 이외에는 달리
취하는 점이 없읍니다.
그는 무시로 마음이 싱숭생숭할라치면 얼른 추월색을 들고 눕습니다.
누워서는 처억 청을 높여 읽는데
 
“각설이라 이때에……”
 
하고 양금채 같은 목으로 휘청휘청 멋들어지게 고저와 장단을
맞춰가면서 (다리와 몸을 틀기도 하면서) 가끔 시큰둥한
 
“……하징 아니헤야……”
 
조의 콧소리로 양념까지 치곤 합니다. 이렇게 멋지게 청을 돋워 읽고
있노라면, 싱숭거리던 속이 어떻게 더 이상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기뻐지는 것같기도 하고, 후련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일언이폐지하면 그 소위 흥 이라는 게 나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건 촌 나무꾼 총각이 육자배기를 부른다든가, 또는 기생이
궂은비 오는 날 제 방 아랫목에 누워 콧노래로 수심가를 흥얼거린다든가
하는 근경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지 않다구요.
그러므로 노래가 아무것이라도 제게 익은 것이면 익을수록 좋듯이,
서울아씨의 추월색도 휑하니 외우게시리 눈과 입에 익어, 서슴지 않고
내려 읽을 수가 있으니까, 그래 좋다는 것입니다. 결단코 추월색이라는
이야기책의 이야기 내용에 탐탁하는 게 아닙니다.
 
그럴 바이면 차라리 책을 걷어치우고 맨으로 누워서 외우는 게 좋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건 또 재미가 없는 것이, 인력거꾼이 인력거를
안 끌고는 뛰기가 싱겁고, 광대가 동지섣달이라도 부채를 들지 않고는
노래가 헤먹고 하듯이, 서울아씨도 다 외우기야 할망정 그래도 그 손때
묻고 낯익은 추월색을 펴들어야만 제대로 옳게 노래하는 흥이 납니다.
진실로 곡절이 그러하고,
그렇기 때문에 남이야 이를 앓는다고 흉을 보거나 말거나?
또 오뉴월에도 이야기책을 차고 누웠다고 비웃음을 하거나 말거나
아무것도 상관할 바 없고 사시장철 밤낮없이 손에서 추월색을 놓지 않는
서울아씨요, 그래 오늘 저녁에도 일찌감치 시작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헤야 드디여 돌아오징 아니……”
 
이렇듯 서울아씨의 추월색 오페라가 저으기 가경에 들어가고 있는데,
이짝 한편으로부터서는 도무지 발성학상 계통을 알 수 없는
바스 음악 하나가 대단히 왁살스럽게 진행이 되고 있읍니다.
 
“비 ⎯, 비 ⎯ 가, 오 ⎯ 오…… 모 ⎯, 모 ⎯ 가, 모 ⎯ 가, 모 ⎯
    가……”
 
태식이가 방 한가운데 배를 깔고 엎디어, 조선어독본 권지일,
비가 오오,모가 자라오를 읽던 것입니다.
좀 민망한 비유겠지만 발음이 분명치 못한 것까지도 흡사
왕머구리(큰개구리) 우는 소리 같습니다.
그러나 열심은 무서운 열심입니다. 재작년 봄에 산 조선어독본 권지일
그것을 오로지 2년하고도 반년 동안 배워온 것이 이 대문인데,
물론 그 전엣치는 다 잊어버렸읍니다. 한편으로 잊어버려 가면서도
끄은히 읽기는 읽으니까 그게 열심이던 것입니다.
 
“비 ⎯, 비 ⎯ 가, 오 ⎯ 오. 비 ⎯ 가 오 ⎯ 오. 모 ⎯, 모 ⎯ 가, 모
    ⎯ 가…… 이잉, 잊어버렸저! …… 경손아.”
 
“왜 그래?”
 
“잊어버렸저!”
 
“잊어버렸으니 어쩌란 말야?”
 
“………”
 
“고만 둬요! 제 ⎯ 발…… 그거 한 권 가지구 도통할 텐가?
   대학까지 졸업할 작정인가!……”
 
“누 ⎯ 나?”
 
“………”
 
“누 ⎯ 나?”
 
“………”
 
“누 ⎯ 나 ⎯?”
 
“왜 그래?”
 
“잊어버렸저!”
 
“비가오오모가자라오.”
 
“잉?”
 
“참 너두 딱하다! …… 비가 오오 ⎯, 모가 자라오 ⎯, 그래두 몰라?”
 
“히히…… 비 ⎯ 가 오 ⎯ 오, 모 ⎯ 가 자 ⎯ 자 ⎯ 라 자 ⎯ 라오, 히
    히…… 비 ⎯ 가 오 ⎯ 오, 모 ⎯ 가 자 ⎯ 라 자 ⎯ 라오.”
 
“에이 귀따가워!”
 
경손이는 비로소 제가 어디 와서 있던 줄을 깨닫고는 벌떡 일어나더니,
마루의 뒷문에 연한 툇마루를 타고, 뒤채의 큰방인 제 모친의 방으로
들어갑니다.
그 방에는 경손의 숙모 조씨까지 건너와서 동서가 바느질을 하고 앉아
소곤소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경손이가 달려드는 설레에 뚝 그칩니다.
 
“넌 네 방에서 공부나 하던 않구, 무엇하느라구 앞뒤루 드나들구
   이래?” 경손의 모친 박씨가 지날말로 나무람 겸 하는 소립니다.
 
“놀구 싶을 땐 책 덮어놓구서 맘대루 유쾌하게 놀아야 합니다요!”
 
경손이는 떠벌거리면서 바느질판 한가운데로 펄씬 주저앉습니다.
바느질감이 모두 날리고 밀리고 야단이 납니다.
 
“아, 이애가 웬 수선을 이리 피워……
  공분 밤낮 꽃찌만 하는 녀석이, 놀속은 남보담 더 바치구……”
 
“어머니두! ……내가 공부 못한다구 우리 집 재산이 딴데루 갈까? ……
  태식이 천치는, 비가 오오 모가 자라오 그거 두 줄 가지구 한 달을
  배워두 천석꾼인데……
  아 그런데 이 경손씨가 만석 상속을 못받어요?”
 
“넌 어디서 주둥이만 생겼나보더라! ……
   쓸데없는 소리 말구, 공부 잘해!”
 
“낙제만 않구 올라가믄 돼요…… 학교 성적 좋은 녀석 죄다 바보야……
  아 참, 우리 작은아버진 말구서…… 그렇죠? 아즈머니……”
 
무슨 일인지, 경손이는 이 집안의 그 많은 인간 가운데 유독 그의 숙부
 종학 하나만은 존경을 합니다.
 
“말두 말아! ……”
 
조씨가 그러잖아도 뚜 나온 입술을, 좀더 내밀고
 쭝긋거리면서 경손의 말을 탓을 하던 것입니다.
 
“……세상, 그런 못난 사람두 있다더냐?”
 
“우리 작은아버지가 못나요? 난 보니깐, 우리 집에선 제일 잘나구
  똑똑합디다. 단, 경손이대감만 빼놓구서, 하하하…… 나두 우리
  작은아버지 닮아서 이렇게 똑똑해! …… 그렇죠 어머니?
  내가 똑똑하죠?”
 
“옜다, 이녀석! 까불기만 하는 녀석이, 어디서……”
 
“하하하하……”
 
“사내가 오즉 못나믄 첩 하날 못 얻어 살구서……”
 
조씨는 혼자 말하듯 구누름을 내다가, 바늘귀를 꿰느라고 고개를
쳐듭니다. 새초옴한 게 벌써 새서방 종학이한테 귀먹은 푸념깨나
쏟아져나올 상입니다.
 
“첩 얻으믄 못써요!
   태식이 같은 오징어(軟體動物[연체동물]) 생겨나요,
   시들부들…… 그렇죠? 아즈머니!”
 
“말두 말래두! …… 첩을 백은 못 얻어서, 새장가 든다구 조강지처
  이혼하려 들어? 그게 못난 사내 아니구 무어라더냐? …… 그리구서두
  머? 경찰서장? …… 흥 경찰서장 똥이나 빨아먹지!”
 
“흥! 작은 아버지가 경찰서장 할 사람인 줄 아시우? 참 어림없수!”
 
“그래두 그럴 양으루 법률 공부 배운다믄서?”
 
“말두 마시우. 큰사랑 뚱뚱할아버지, 헷다방이지! …… 아주,
  작은손자가 경찰서장 될라치믄 영감님이 척 뽐낼 양으루! 흥!”
 
“너 이녀석, 어디 가서 그런 소리 지망지망해라?”
 
경손의 모친은 경계하는 소립니다. 그 소리가 시할아버지 귀에라도
들어가고 보면 생벼락이 내릴 테요, 따라서 말을 낸 경손이도 한바탕
무슨 거조든지 당할 터이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조씨는 연방 더 전접스럽게……
 
“워너니 재갸가 진작 맘 돌리기 잘했지야……
   주제에 무슨 경찰서장은……”
 
“아즈머니두! …… 아즈머니두 경찰서장 등 대구 있었수?
   그랬거덜랑 얼른 이혼하시우. 경찰서장 5백리 갔수!”
 
“아, 저놈이 못할 소리가 없어!”
 
경손의 모친이 눈을 흘기면서 나무랍니다.
 
“어머니두! 이혼하는 게 왜 나뿐가? 내가 여자라믄 백번만 결혼하구
  백번만 이혼해 보겠던걸…… 헤헤…… 그런데 참, 어머니!”
 
“듣기 싫여!”
 
“아냐, 저 거시키…… 서울아씨 시집 안 보내우!……”
 
“매친 녀석!”
 
“뭘 그래! 시집보내예지. 난 꼴 보기 싫여! ……”
 
“이 녀석이 시방 맞구 싶어서……”
 
“내버려 두시요! 그애야 다아 옳은 말만 하는걸……
  난 그리잖어두 맘 없는 집살이에, 덮친 디 엎친다구,
  시고모 등쌀에 생병이 나겠읍디다…… 난 그 아씨 꼴 아니 봤으면
  살이 담박 지겠어! ……”
 
“오라잇! 우리 아즈머니 부라보! …… 아 그렇구말구요.
  서울아씬 시집 보내구,
  아즈머니두 이혼하구서 새루 결혼하구, 응? 아즈머니! ……”
 
“네 요놈, 경손아!”
 
“네에?”
 
“너, 정녕 그렇게 까불구 그럴 테냐?”
 
“하하하…… 그럼 다신 안 그리께요…… 그 대신 50전만……”
 
“망할 녀석?”
 
경손의 모친은 일껏 정색을 했던 것이,
 경손이가 더펄대는 바람에 그만 실소를 해버립니다.
 
“응? 어머니…… 50전만……”
 
“돈은 무엇에 쓸 양으루 그래?”
 
“하, 사내대장부가 돈 쓸 데 없어요? 당당한 백만장자 윤직원
  윤두섭씨의 맏증손자 윤경손씨가!”
 
“난 돈 없으니, 그렇거들랑 큰사랑 할아버지께 가서 타쓰려무나?”
 
“피, 무척 내가 이뻐서 돈 주겠우…… 어머니 히잉, 50전마아안……”
 
“없어!”
 
“이애야 그럴라 말구……”
  
조씨가 옆에서 꼬드기는 소립니다.
 
“……서울아씨더러 좀 달래려무나?……
  넌 그 아씨 시집 보내줄 걱정까지 해주는데, 그까짓 돈 50전 아니
  주겠니? 50전은 말구 5원, 50원두 주겠다!”
 
물론 서울아씨가 미워라고 시방 그 쑥 나온 입술로 비꼬는 솜씨지요.
그런데 경손이는 거기 귀가 반짝하는지 눈을 깜작깜작 고개를 깨웃깨웃
 
“서울아씰? …… 시집 보내준다구? …… 하하 오옳지 옳아!”
 
하면서 무릎을 탁 치고 일어서더니
 
“됐어, 됐어! ……
  왜 아까 그때 바루 그 생각을 못했을까? …… 어쩐 말이냐!”
 
하고 거드럭거리고 나갑니다.
박씨는 아들놈 등뒤를 걱정스럽게 바라다보면서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하다가 그만둡니다.
분배를 놓던 경손이가 나가고 방안이 갑자기 조용하자,
두 동서는 제각기 제 생각에 잠겨, 한동안 바느질손만 바쁩니다.
 
“때그르르.”
 
마침 박씨가 굴리는 실패 소리에 정신이 들어,
 조씨는 자지러지듯 한숨을 내쉽니다.
 
“형님은 그래도 좋시겠우……”
 
“………”
 
“아즈바님이 따루 계시긴 하세두, 다아 마음은 아니 변허시구……
  다아 저렇게 똑똑한 아들두 두시구…… 난 전생에 무슨 업원이
  그대지두 중했는지, 팔자가 이 지경이니! …… 차라리 죽은 목숨만두
  못한 인생! …… 그래두 우리 어머니 아버진, 날 이 집으루 시집
  보내믄서, 만석꾼이집 지차 손주며느리래서, 호강에 팔자에,
  모두 늘어질 줄 알았을 테지! ……”
 
“그런 소리 하지 말소! ……”
 
박씨가 위로의 말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박씨는 이 동서를 위로해 줄 말이 딱합니다.
번번이 마주 앉으면 노래부르듯 육장 두고서 하는 꼭같은 푸념이요,
팔자 탄식인걸. 그러니 인제는 듣기도 헤먹거니와 이편의 위로엣 말도
밤낮 되풀이하던 그 소리라, 말하는 나부터가 헤먹습니다.
 
“……난들 무슨 팔자가 그리 우나게 좋다던가? …… 남편이 저럭허구
  다닐 테믄 맘 변하나 안 변하나 매일반이지…… 자식은 하나 두었다는
  게 벌써 에미 품안에서 빠져나간걸…… 그러니 동세나 내나 고단하긴
  매양 같지 별수 있는가? …… 다같이 부자집 이름 좋은
  종이요 하인이지…… 대체 이집은……”
 
안존하던 박씨의 음성은 더럭 보풀스러지면서, 아직 고운때가 안 가신
 눈이 샐룩 까라집니다.
 
“……무얼루, 무엇이 만석꾼이 부잔고? …… 이 옷 주제 허며
  손이 이게 만석꾼이 집 며누리들이람? …… 끌끌……”
 
미상불 동서가 다 영양이 좋지 못한 얼굴입니다. 손은 작년 겨울에 터진
자국이 여름내 원상 회복이 못된 채 북두갈고리 같습니다.
박씨는 여태도 인조항라 고의를 입고 있고, 조씨는 역시 배 사먹으러
가게 썰렁한 검정 목 보이루 치마를 휘감고 있읍니다.
박씨는 제네들의 주제를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방안 짐을 둘러봅니다.
화류 의걸이에 이불장에 삼층장에 머릿장에 베갯장에 양복장에,
 이칸장방이 그득, 모두 으리으리합니다.
 
“…… 저런 게 다아 무슨 소용인구! …… 넣어두구 입을 옷이 있어야
  저런 것두 생색이 나지…… 저런 걸 백 개 들여놓니,
  얼명주 단속곳 한벌 만한가! 아무짝에두 쓸디없는 치레뻔……
  난 여름부터 고기가 좀 먹구 싶은 걸 못 얻어먹었더니……”
 
동서의 위로가 아니고 어쩌다가 제 자신의 구누름이 쏟아져나와서,
 마악 거기까지 말이 갔는데, 헴 하는 연한 밭은기침 소리에 연달아
 미닫이가 사르르 열립니다.
옥화가 왔던 것입니다. 창식이 윤주사가 올봄에 새로 얻은 기생첩,
 그 옥화랍니다.
기생으론 그다지 세월도 없었으나 어느 여학교를 2년인가 다녔고,
그런데 어디서 배웠는지 묵화를 좀 칠 줄 아는 것으로,
그 소위 아담한 교양이 윤주사의 눈에 들었던 것입니다.
하나 생김새는 도저히 아담함과는 간격이 뜹니다.
도렴직한 얼굴이면서 어딘지 새침한 바람이 돌고,
그런가 하고 보면 생긋 웃는데 눈초리가 먼저 웃습니다.

이 새침새가 남의 조강지처로는 아무래도 팔자가 세겠는데,
마침 고놈 눈 웃음이 화류계 계집으로 꼭 맞았읍니다.
다시 그의 흐뭇하니 육감적으로 두터운 입술은 그 이상의 것을
암시하구요. 옥화는 이 큰댁엘 자주 드나들어, 시아버지 윤직원 영감의
귀염을 일쑤 받고, 외동서 조씨의 성미를 맞추기에 노력을 하고,
서울아씨나 이 두(남편의) 며느리와도 사이가 좋습니다.
능한 외교수완을 지니고 있는 게 분명한데, 그러고서도 기생으로 세월이
없었다니 좀 이상은 합니다마는, 실상인즉 그러니까 윤주사 같은 봉을
잡았지요. 옥화는 언제고 여학생 차림을 합니다.
 
기생의 여학생 차림이란 어딘지 좀빤지르르한 게 암만해도
프로 취(職業臭)가 흐르기는 하는 것이지만, 당자들은 그걸 교정할
용기가 없어, 옥화도 그 본에 그 본입니다.
그래도 옥화 저더러 말하라면 기생은 일시 액운이었었고,
 인제 다시 예대로 여학생 저를찾은 것이랍니다.
 
“두 동세분이 바누질을 하시는군? ……”
 
옥화는 영락없이 눈으로 웃으면서, 깍듯이 며느리들더러 허우를 하여,
 어서 오시라고 일어서는 인사를 맞대답합니다.
 
“……그새 다아 안녕허시구?”
 
옥화는 손에 사들고 온 과자 꾸러미를 내놓으면서 주객 셋이
 둘러앉읍니다.
 
“무얼 오실 때마다 늘 이렇게…… 허긴 잘 먹습니다마는! ……”
 
박씨가 치하를 합니다.
 미상불 옥화는 언제고 빈손으로 오는 법은 없읍니다.
 
“잘 자시니 좋잖우? 호호…… 그런데 저어, 새서방 소식이나 들었수?”
 
이건 조씨더러 가엾어하는 기색으로 묻는 말……
 
“내가 그이 소식을 알다간 서쪽에서 해가 뜨라구요?”
 
“원 저를 어째! …… 부부간에 의초가 그렇게 아니 좋아서 어떡허우!”
 
“어떡허긴 무얼 어떡해요! …… 날, 잡아먹기밖에 더허까! ……”
 
“아이, 숭헌 소릴……”
 
옥화는 박씨가 풀어놓는 비스켓을 저도 하나 집어넣으면서……
 
“……그 얌전한 서방님이, 어째 색신 마댄담?…… 그 아우 형제가 둘이
    다아 얌전하기야 조옴 얌전한가! …… 아이 참, 어디 나갔수?”
 
“누가요?”
 
박씨는 무슨 소린지 몰라 두릿두릿합니다.
 
“누구라니 새서방…… 경손아버지 말이지……”
 
“그이가 오기나 했나요?”
 
“오기나 하다께? …… 아, 온 줄 몰루?”
 
“내애.”
  
“어쩌나!”
 
“왔어요?”
 
“오기만! …… 아까 저어, 아따 우미관 앞에서 만난걸……
  그리구 언제 왔느냐니깐 아침차루 왔다구, 그 말꺼정 했는데! ……”
 
“그래두 집엔 아니 왔어요!”
 
“어쩌나!…… 저거 야단났군! 호호.”
 
“야단날 일이나 있나요! ……
   아마 볼일이 바빠서 미처 집엔 들를 틈이 아니 난 게죠.”
 
속은 어떠했던지 박씨는 그래도 이만큼 사람이 둥글고 덕이 있읍니다.
세 여자는 잠깐 말이 없이 잠잠합니다. 시방 박씨는 남편 종수가 분명
어디 가서 난봉을 피우고 있으려니, 그래도 올라는 왔으니까
얼굴이라도 뵈기는 하겠지. 이런 생각을 혼자 하고 있고,
옥화는 옥화대로 긴한 사무가 있어, 인제는 이만해도 마을 나온 증거는
만들어놓았으니까, 조금만 더 있다가 정작 가볼 데를 가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그리고 조씨는, 옥화의 백금반지야 금반지야 다이야반지가 요란한,
고운 손길이며 진짜 비단으로 휘감은 옷이며를 골고루 여새겨 보면서,
논다니 요 첩데기란 아무래도 이렇게 제 티를 내는 법이니라고,
에에 더럽다고 속으로 비웃고 있읍니다.
그러나 진실로 그 속의 속을 캐고 볼 양이면 조씨는,
옥화가 그렇듯 좋은 패물이며 값진 옷을 입고 이쁘게 단장을 하고서
한가로이 마음 편히 놀러다니는 팔자가 부러워 못견딥니다.
부러웠고, 부러우니까는 오기가 나고, 그래 앙앙한 오기가 바싹 마른
교만을 부리던 것입니다.
이편, 경손이는 다뿍 불평스런 얼굴을 우정 만들어가지고
안방으로 들어옵니다.
서울아씨와 태식이의 두 가수(歌手)는 여전히
 
“……헤야, 하징아니 하고오! ……”
 
의 추월색 오페라와
 
“비 ⎯, 비 ⎯ 가 오 ⎯ 오. 모 ⎯ 모 ⎯ 가 모 ⎯ 가 자 ⎯ 자 ⎯ 라 자
    ⎯ 라오.”
 
의 맹꽁이 음악을 끈기있게 쌍주하고 있읍니다.
경손이는 심상찮이 불평스런 얼굴은 얼굴이라도, 일변 매우 조심성 있게
서울아씨가 누웠는 옆에 가 앉습니다.
 
“그게 무슨 책이죠?”
 
“추월색이란다.”
 
서울아씨는 긴치 않다고 이맛살을 약간 찌푸립니다.
그러나 경손이는 더욱 은근합니다.
 
“퍽 재밌죠?”
 
“그렇단다!”
 
“그럼 나두 한번 봐예지!”
 
경손이는 혼자 중얼거리고는 한참 있다가 또! ……
 
“……전서방, 저녁 다아 먹었나? ……
   대고모가 아까 차려 내보낸 게 전서방 밥상이죠?”
 
서울아씨는 속이 뜨끔했으나,
겉만은 아무렇지도 않게 경손을 바라봅니다.
 
“그렇단다…… 왜 그러니?”
 
“아뇨. 밥 다 먹었으믄 나가서 돈 좀 달라구 하게요.”
 
“………”
 
서울아씨는 아까 대복이의 저녁 밥상을 차리러 나서느라고 저도
모르게 일으킨 이변을 비로소 깨달았으나, 그래서 속이 뜨끔했던
것이나, 경손이가 막상 눈치를 채지는 못한 것 같아서
저으기 마음이 놓였읍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안심은 할 수가 없어,
좀더 속을 떠보아야 하겠어서, 슬며시 오페라를 중지하고,
짐짓 제 말 나오는 거동을 살피려 드는데, 경손이는 연해 혼잣말로
 두런두런……
 
“에이! 고 재리, 깍쟁이!”
 
“………”
 
“고거, 죽어버렸으믄 좋겠어!”
 
“………”
 
“그중에 그따위가 병신이 지랄하더라구, 내 참!”
 
“………”
 
“아 글쎄 대고모!”
 
“왜?”
 
“아, 대복이 녀석이, 말이우……”
 
“그래서?”
 
“내 참! …… 내 인제, 마구 죽여놀 테야!……”
 
“아니, 왜 그래? 무어라구 욕을 하든?”
 
“욕은 아니라두, 욕보다 더한 소리지 머! ……”
 
“무어랬길래 그래?”
 
“아, 고 병신이, 밤낮 절더러, 대고모 말을 하겠지!
   망할자식 같으니라고!”
 
서울아씨는 얼굴이 화끈 달은 것을 어찌하지 못했읍니다.
 
“무어라구 내 말을 한단 말이냐?”
 
“머, 별소리가 많아요? 느이 대고모님은 참 얌전한 부인네라구,
  그런 소리두 하구…… 또오……”
 
“또오?”
 
“퍽 불쌍하다구…… 소생이 무언지, 소생이라두 하나 있었더라믄
  그래두 맘이나 고난치 않았을걸, 어쩌구 그런 소리두 하구……”
 
“주제넘은 사람두 다아 보겠다!
  제가 무엇이 대껴서 날 가지구 그러네저러네 해?”
 
말의 뜻에 비해서는 악센트가 그다지 강경하진 않습니다.
 대복이를 꾸짖자기보다, 경손이한테 발명이기가 쉽지요.
 
“그리게 말이예요……
  내 인제 다시 그따위 소릴 하거던 마구 그냥 죽여놀 테예요!”
 
“………”
 
“큰사랑 할아버지께 고해서,
  아주 밥통을 떼어놓던지…… 망할자식! 상놈의 자식이!”
 
“경손아?”
 
서울아씨는 긴장한 태를 아니 보이느라고 내려놓았던 추월색을 도로
집어들면서 경손이를 부르는 음성도 대고모답게 상냥하고도 위의가
있읍니다. 경손이의 대답 소리도 거기 알맞게 대단히 삼가롭습니다.
 
“너, 애여 남허구 시비할세라?”
 
“내애.”
 
“대복이가 했단 소리가, 다아 주저넘구 하긴 하지만,
  넌 아직 어린애니깐 남하구 시빌 하구 그래선 못써요! ……
  좀 귀에 거실리는 소릴 하더래두 거저 들은 숭 만 숭하는 것이지,
  응?”
 
“내애.”
 
“그리구, 그런 되잖은 소리 들었다구,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옮기지두 말구……
  그따위 소린 한귀루 듣구 한귀루 흘려버릴 소리 아냐?”
 
“내애, 아무더러두 얘기 아니허께요!”
 
경손이는 푸시시 일어서고,
서울아씨는 도로 오페라를 계속하려고 합니다.
 
“밥이나 다아 먹었나? 작자가! ……”
 
경손이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미닫이를 열다가
 짐짓 머뭇머뭇하는 체하더니
 
“대고모?”
 
하고 어렵사리 부릅니다.
 
“왜?”
 
“저어, 저녁이라 말하기가 안돼서 그리는데요! ……”
 
“그래?”
 
“내일 대복이한테 타서 도루 가져다 드리께, 저어, 돈 2원만! ……”
  
“돈은 2원씩이나 무엇에 쓰니?”
 
“좀 살 게 있어서 그래요!”
 
서울아씨는 더 묻지도 않고 일어서더니,
의걸이를 열쇠로 열고는 속서랍에서 1원짜리 두 장을 꺼내다가 줍니다.
대체 서울아씨가 다른 사람도 아니요, 경손이한테
돈을 2원씩이나 주다니, 그것 또한 이변이 아닐 수 없읍니다.
오늘 저녁처럼 경손이가 서울아씨를 존경(?)하고 서울아씨는
경손이한테 상냥하게 굴고 한 적도 물론 전고에 없는 일이고요.
 
“내일 대복이한테 타서 드리께요?”
 
경손이는 두 손 받쳐 돈을 받고,
 서울아씨는 그 소리를 도리어 나무람하되! ……
 
“내가 네게다가 돈 취해 줄 사람이더냐? ……
   그런 소리 말구, 가지구 가서 써요!”
 
다 이렇습니다.
가령 받고 싶더라도 아니 받을 생각을 해야지요.
삵괭이가 닭 물어다 먹고서 갚는 법 있나요.
경손이는, 네에 그러겠읍니다고 더욱 공손히 대고모 안녕히 주무세요란
인사까지 한 후에 마루로 나오더니, 안방에다 대고 혓바닥을 날름
코를 실룩, 눈을 깨끗, 오만 양냥이짓을 다 합니다.
구두를 신노라니까 등 뒤에서 마루의 괘종이 아홉시를 칩니다.
아홉시면 지금 가더라도 ⌈모로코⌋밖에 못 볼 텐에 어쩔까 싶어 작정을
못한 대로 나가기는 나갑니다. 아뭏든 나가 보아서 영화를 보든지,
영화는 내일 밤으로 미루고 동무를 불러내어
그 돈 2원을 유흥을 하든지 하자는 것입니다.
 
안대문은 잠겼고, 그래 사랑 중문으로 가는데 큰사랑에 춘심이가 와서
있는 것이 미닫이의 유리쪽으로 얼핏 들여다보였읍니다.
경손이는 잠깐 서서 무엇을 생각하다가 잠자코 대문밖으로 나가더니,
조금만에 되짚어 들어오면서
 
“삼남아?”
 
하고 커다랗게 부릅니다. 삼남이는 벌써 15분 전에 잠이 들었으니까
대답이 없고, 대복이가 건넌방 앞문을 열고 내다봅니다.
 
“여기 춘심이라구 왔수? 어떤 여편네가 대문 밖에서 좀 불러달래우!”
 
경손이는 대단히 성가신 심부름을 하는 듯이 볼멘 소리로
투덜거려 놓고는, 이내 돌아서서 씽씽 나가버립니다.
대복이가 전갈을 하기 전에 춘심이는 제 귀로 알아듣고 뛰어나와서
납작구두를 신는 둥 마는 둥 대문 밖으로 달려나옵니다.
대복이나 윤직원 영감은, 경손이가 하던 소리를 곧이를 들은 건
물론이요, 춘심이도 깜빡 속아 제 집에서 누가 부르러 온 줄만
알았읍니다.
춘심이는 대문 밖으로 나가서 문등이 환히 비치는 골목을 둘레둘레,
왔으면 어머니가 왔을 텐데, 어디로 갔는가 하고 밟아나옵니다.
마침 옆으로 빠진 실골목 앞까지 오느라니까,
경손이가 그 안에서 기침을 합니다.
춘심이는 비로소 경손한테 속은 줄을 알고는, 골딱지가 나려다가
생각하니 반가와, 해뜩해뜩 웃으면서 쫓아갑니다.
 경손이도 말없이 웃고 섰읍니다.
 
“울어머니 어딨어?”
 
“느이 집에 있지, 어딨어?”
 
“난 몰라! …… 들어가서 영감님더러 일를걸?”
 
“머야? …… 흥! 연앨 톡톡이 하시는 모양이군? ……
  오래잖아 우리 큰사랑 할머니 한분 생길 모양이지?”
 
“몰라이! 깍쟁이……”
 
춘심이는 마구 보풀을 내떱니다. 속이 저린 탓으로,
경손이가 혹시 아까 윤직원 영감과 반지 조건을 가지고 연애 계약을
하던 경과를 죄다 듣고서 저러는 게 아닌가 싶어,
젖내야 날값에 그래도 계집애라고 그런 연극을 할줄 알던 것입니다.
게나 가재는, 나면서부터 꼬집을 줄 알듯이요.
 
“……머, 내가 누구 때문에 밤낮 여길 오는데 그래……
  늙어빠지구 귀인성 없는 영감님이 그리 좋아서? ……
  남 괜히 속두 몰라 주구, 머……”
 
춘심이는 제가 지금 푸념을 해대는 말대로, 늙어빠지고 귀인성 없는
윤직원 영감이 결단코 좋아서 오는 게 아니라, 윤직원 영감한테
오는 체하고서 실상은 경손이를 만나러 온다는 게,
그게 정말인지 아닌지는 춘심이 저도 모르는 소립니다.
아마 보나 안 보나 윤직원 영감과 경손이를 다같이 만나러 오는 것이기
십상일 테지요. 그러나 시방 이 경우 이 자리에서는
단연코 경손이 때문에 온다는 것으로, 팔팔 뛰지 않지 못할 만큼,
춘심이도 본시, 그리고 벌써 계집이던 것입니다. 천하의 계집치고서,
멍텅구리 외에는 남자를 속이지 않는 계집은 아마 없나보지요?
춘심이는 윤직원 영감한테 다니기 시작한 지 세번째 만에
경손이를 알았읍니다.
 
석양쯤 해선데, 춘심이가 윤직원 영감이 있으려니만 여겨 무심코 방으로
쑥 들어서니까, 커다란 윤직원 영감은 간데없고,
웬 까까중이의 죄꼬만 도련님이 연상 앞에서 라디오를 만지고
있었읍니다. 좀 무색했으나, 고 도련님 이쁘게도 생겼다고,
함께 동무해서 놀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읍니다.
 
경손이는 뚱뚱보 영감한테 들켰나 해서 깜짝 놀랐으나, 이어 아닌 걸
알고, 한데 요건 또 웬 계집앤고 싶어, 춘심이를 마주 짯짯이
치어다보았읍니다.
전에 이 큰사랑에 오던 계집애는 이 계집애가 아닌데……
그것들은 모두 빌어먹게 보기 싫었는데…… 요건 어디서 깜찍하니
고거 이쁘게는 생겼다…… 동무해서 놀았으면 좋겠다……
경손이 역시 이렇게 생각했읍니다.
연애에는 소위 퍼스트 임프레션이라는 게 제일이라구요.
과연 둘이 다같이 첫인상이 만점이었읍니다.
그래, 하나는 문지방을 잡고 서서,
하나는 라디오의 스위치를 잡고 앉은 채 한참이나 서로 치어다
보았읍니다. 그러다가 경손이가 먼저
 
“너, 누구냐?”
 
하면서 눈에 나타난 호의와는 다르게 텃세하듯 따지고 일어섭니다.
 
“넌, 누구냐?”
 
춘심이 역시 말소리는 강경합니다. 적어도 이댁에서 제일 어른이요
제일 크고 뚱뚱한 영감님 그 어른한테 다니는 낸데,
제까짓 것 까까중이 도련님이면 소용 있느냔 속이겠다요.
경손이는 장히 시쁘다고, 바짝 다가와 춘심이를 들여다봅니다.
 
“그래, 난 이댁 되련님이다! ……”
 
“피이…… 되련님이 아니구 영감님이믄 사람 하나 궂힐 뻔했네!”
 
“요 계집애 검방지다!”
 
“아니믄? …… 병아리새끼처럼 텃셀 해요!”
 
“요것 보게…… 너 요것, 주먹 하나 먹구퍼?”
 
“때리믄 제법이게?”
 
“정말?”
 
“그래!”
 
“요걸! ……”
 
경손이가 번쩍 들이대는 주먹이 코끝으로 육발을 해도 춘심이는
꼼짝 않고 서서 웃습니다.
웃음도 나름이지만, 이건 호의가 가득한 웃음입니다.
 
“하하, 고거 야!”
 
경손이는 주먹을 도로 내리면서 좋게 웃습니다.
역시 춘심이처럼 호의가 가득한 웃음입니다.
 
“왜 안 때려?”
 
“울리믄 쓰나!”
 
“내가 울어?”
 
“네 이름이 무어지?”
 
“알면서 물어요!”
 
“내가, 알아?”
 
“그럼!”
 
“내가?”
 
“너 ⎯ 너 ⎯ 하는 건 무언데?”
 
“오옳지! 너라구 했다구! 하하하…… 그럼, 아가씨 존함이 누구시요?”
 
“누가 아가씨랬나? 해해해……”
 
“하하하…… 무어냐? 이름이……”
 
“춘, 심……”
 
“응, 춘심이…… 그리구, 나인?”
 
“열다섯 살……”
 
“하! 나허구 동갑이다!”
 
“정말?”
 
“응!”
 
“이름은?”
 
“경손씨?”
 
“경손씨? …… 활동사진 배우 이름매니야……”
 
“안됏! 되련님 이름을 그런데다가 빗대다니……”
 
“피이!”
 
“그래두!”
 
“어쩔 테야?”
 
“한대 먹구 싶어?”
 
경손이는 또 주먹을 들이댑니다. 그러나 그게 아까 먼저보다는 도리어
무름하건만, 무름할뿐더러 정말 때릴 의사가 아닌 줄을
빠안히 알면서도, 춘심이는 허겁스럽게 엄살 엄살, 다시 안 그런다고
 항복을 합니다.
 
“다신 안 그러기다?”
 
“응!”
 
“응…… 그리구……”
 
“무어?”
 
“아니…… 참, 너두 기생이냐?”
 
“응!”
 
“요리집이두 댕기구? 응 인력거 타구?”
 
“응!”
 
“그리구서?”
 
“무얼?”
 
“인력서 타구, 요리집이 가서?”
 
“손님 앞에서 소리두 하구, 술두 치구……”
 
“그리구?”
 
“다 놀믄 인력거 타구 집으로 오구……”
 
“그거뿐?”
 
“뿐! ……”
 
“돈은? 아니 받구?”
 
“왜 안 받아!”
 
“얼마?”
 
“한 시간에 1원 50전……”
 
“꽤다! …… 몇 시간이나?”
 
“대중없어……”
 
“갈 땐 이렇게 입구 가니?”
 
“야단나게? …… 쪽찌구 긴치마에 보선 신구 그리구……”
 
“하하하.”
 
“해해해.”
 
이때 마침 대문간에서 윤직원 영감의 기침소리가 들려,
이 장면은 그대로 커트가 됩니다. 그러나 경손이가 총총히
 
“저기, 뒤채 내 방으루 놀러오너라, 응? 꼭……”
 
하고, 부탁하기를 잊지 않았읍니다.
그 뒤로부터 두 아이의 연애는 급속도로 발전을 해갔읍니다.
무대는 이 집의 뒤채 경손이의 방과, 영화 상설관과 안국동에 묘한
뒷문이 있는 청요리집과 등이구요.
그 사이에 경손이는 춘심이한테 코티의 콤팩트와 향수 같은 것을
선사했고, 춘심이는 하부다이 손수건에다가 그다지 출 수는 없으나
제 솜씨로 경손이와 제 이름을 수놓아서 선사했읍니다.
두 아이의 대강 이야기가 그러했읍니다. 그리고 다시,
오늘 밤으로 돌아와서 실골목의 장면인데……
경손이는 춘심이가 너무 억울해하니까,
그를 믿고(믿고 안 믿고가 아니라 도시에 의심을 했던 게
아니었으니까요) 아무려나 농담이 과했음을 속으로 뉘우쳤읍니다.
아마 인간이라고 생긴 것이면,
사내 치고서 계집한테 속지 않는 녀석은 없나 보지요.
 
“극장 가자……”
 
경손이는 이내 잠자코 섰다가 불쑥 하는 소립니다.
이 기교 없는 기교에, 정말 아닌 노염이 났던 춘심이는 단박
해해합니다.  가령 정말로 성이 났었더라도 그러했겠지마는요.
 
“늦었는데?”
 
“괜찮아.”
 
“영감님?”
 
“그걸 핑곌 못해?”
 
춘심이는 좋아라고 연신 생글뱅글, 사랑으로 들어가더니,
 대뜰에 올라서서
 
“영감님? 나, 집이 가봐야겠어요!”
 
합니다.
 
“오냐! ……”
 
윤직원 영감의 허연 수염이
 미닫이의 유리쪽을 방안에 가리며 내다봅니다.
 
“……누가 불르러 왔더냐?”
 
“내…… 우리 아버지가 아푸다구, 어머니가 왔어요!”
 
“그렇거들랑 어서 가보아라…… 거, 무슨 병이 났단 말이냐?”
 
“모르겠어요. 갑자기, 그냥……”
 
“그럼 무엇 먹은 게 체히여서 곽란이 났넝가 부구나?”
 
“글쎄, 잘 모르겠어요!”
 
“어서 가부아라…… 그러구, 곽란이거던 와서 약 가져가거라……
  사향 소합환 주께.”
 
“내.”
 
“어서 가부아라…… 그러구 내일 낮에 올라냐? 반지 사러 가게……
 
“내.”
 
“꼭 올 티여?”
 
“내, 꼭 와요!”
 
“지대리마? …… 반지 꼭 사주마?”
 
“내…… 안녕히 주무세요?”
 
“오냐…… 너 혼자 가겄냐?”
 
“아이! 괜찮아요!”
 
“무섭거던 삼남이 데리구 가구!”
 
“무섭긴 무엇이 무서요!”
 
“그럼 어서 가보구, 내일 오정 때쯤 히여서 꼭 오니랭?
  반지 사러 진고개 가게, 응?”
 
“내.”
 
“잘 가거라응!”
 
“내, 안녕히 주무세요!”
 
“오냐, 어서 가거라…… 그러구, 내일 반지 사러 가자?”
 
반지 소리가 드리 수없이 나오나 봅니다.
걱정도 되겠지요. 제 아범이 병이 났다니, 그게 중해서 내일 혹시
오기가 어렵게 되면 또다시 연애를 연기해야 할 테니까요.
그 육중스런 임시 첩장인을 위해, 중값 나가는 사향소합환을 주마는
것도 과연 근경속이 그럴 듯하기는 합니다.
아무려나 이래서 조손 간에 계집애 하나를 가지고 동락을 하니 노소동락
(老少同樂)일시 분명하고, 겸하여 규모 집안다운 계집 소비절약
이랄 수도 있겠읍니다.
 
그렇지만, 소비절약은 좋을지 어떨지 몰라도, 안에서는 여자의 인구가
남아 돌아가고(그래 한숨과 불평인데) 밖에서는 계집이 모자라서
소비 절약을 하고(그래 칠십 노옹이 예순다섯 살로 나이를 야바위도
치고, 열다섯 살 먹은 애가 강짜도 하려고 하고) 아무래도
시체의 용어를 빌어오면, 통제가 서지를 않아 물자배급(物資配給)에
체화(滯貨)와 품부족(品不足)이라는 슬픈 정상을 나타낸 게
 아니랄 수 없겠습니다.
 
 
 12. 世界事業[세계사업] 半折記[반절기]
 
역시 같은 날 밤이요, 아홉시가 한 5분 가량 지나섭니다.
그러니까 방금 창식이 윤주사의 둘째첩 옥화가 계동 큰댁에 들렀다가
며느리뻘 되는 뒤채의 두 새댁과 말말 끝에, 집에는 얼굴도 들여놓지
않은 종수를, 아까 낮에 우미관 앞에서 만났다는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 시각과 거진 같은 시각입니다.
 
과연, 그리고 공굘시, 그 시각에 종수는 그의 병정인 키다리
병호의 인도로 동관 어떤 뚜쟁이 집을 찾아왔읍니다.
종수는 새삼스럽게 소개할 것도 없이, 만석꾼 윤직원 영감의 맏손자요,
창식이 윤주사의 맏아들이요, 경손이의 아범이요,
윤씨네 가문(家門) 빛내는 큰 사업의 제일선 용사 중 한 사람으로서
군수 운동을 하느라고 고향에 내려가 군 고원을 다니는 사람이요,
 
그리고 장차 경찰서장이 될 동경 어느 대학 법학과 학생 종학의 형이요,
이러한 그 종숩니다. 주욱 꿰어놓구 보니 기구가 대단하군요. 뭐, 옛날
지나땅의 주공(周公)이라든지 하는 사람은,
문왕의 아들(文王之子[문왕지자])이요,
무왕의 동생(武王之弟[무왕지제])이요,
시방 임금의 삼촌(今王之叔父[금왕지숙부])이요, 이렇대서 근본 좋고
팔자 좋고 권세 좋고 하기로 세상 우두머리를 쳤다지만,
종수의 기구도 그 양반 주공을 능멸하기에 족할지언정
못하지는 않겠읍니다. 이렇듯 몸 지중한 종수가 어디를 가서
오입을 하면 못해, 하필 구접스레한 동관의 뚜쟁이집을 찾아 왔을까마는
거기에는 사소한 내력과 곡절이 있던 것입니다.
 
종수는 시방 나이 스물아홉, 생김생김은 이 집안의 혈통인만큼
헤멀끔하니, 어디 한 군데 야무지게 맺힌 데가 없고,
좋게 보아야 포류의질(蒲柳之質)입니다. 혹시 눈먼 관상쟁이한테나
보인다면, 널찍한 그의 얼굴과 훤하니 트인 이마에 만석이 들었다고
할는지 모르지요. 하기야 또 시체는 상학(相學)도 노망이 나서,
꼭 빌어먹게 생긴 얼굴만 돈이 붙곤 하니까 종작 할수가 없지마는요.
열일곱에 서울로 공부를 올라와서, 입학시험을 친다는 것이 단박 낙제를
했읍니다. 그대로 주저앉아 강습소 나부랑이를 다니면서 준비를
하는 체 하다가 이듬해 다시 시험을 치렀으나 또 낙제……
열아홉 살에 세번째 낙제, 그리고 다시 그 이듬해 스무 살에는
스무 살이나 먹어가지고 열서너 살짜리 조무래기들과 섭쓸려 입학시험을
칠 비위도 없거니와 치자고 해도 지원부터 받아주질 않았읍니다.
 
그해 그러니까 기사년(己巳年)에 종수의 아우 종학이 3년 동안
줄곧 낙제를 한 형의 분풀이나 하는 듯이 우등성적이요 겸하여
첫째로 ××고보에 입학이 되었읍니다.
이때는 벌써 온 집안이 서울로 반이를 해왔고,
한데 종수는 일이 그 지경이고 보니, 어디로 얼굴을 두르나 부끄러운
것뿐 일변 또 공부 따위는 애초에 하기가 싫던 것이라 아주 작파를
해버렸읍니다.
 
명색이나마 공부를 작파하고 나서는 돈냥이나 있는 집 자식이겠다,
할 노릇이란 빠안한 것, 그동안 조금씩 익혀온 술먹기와 계집질에
아주 털어놓고 투신을 했읍니다.
윤직원 영감은 어린 손자자식이, 그야말로 이마빡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주색에 빠졌으니, 사람 버릴 것이 걱정도 걱정이려니와,
그보다는 소중한 돈을 물쓰듯 해서 더욱 심화요,
그런데 그보다도 또 속이 상한 건, 크게 바라던 군수가 장마의 개울물에
맹꽁이 떠내려가듯 동동 떠내려가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윤직원 영감은 한번 실패로 큰 목적을 단념할 사람이
아니었읍니다. 그는 두루두루 남의 의견도 듣고 궁리도 해보고
한 끝에, 공부를 잘 시켜 고등관으로 군수가 되는 길은 글렀은즉,
이번에는 군 고원으로부터 시작하여 본관을 거쳐 서무주임으로
서무주임에서 군수로, 이렇게 밟아 올라가는 길을 취하기로 했읍니다.
고향의 군수와는 매우 임의로운 사이요, 또 도지사와도 자별히 가깝고
하니까, 종수를 군 고원으로 우선 앉혀놓고서,
운동만 뒷줄로 잘 하게 되면,
자아 본관이요, 네에 서무주임이요, 옜소 군수요,
이렇게 수울술 올라가 진다는 것입니다.
 
과연 고향의 군수는 윤직원 영감의 청대로 선뜻 고원 자리 하나를
 종수에게 제공했을 뿐 아니라, 뒷일도 보장을 했읍니다.
종수는 제가 군수가 되고 싶다기보다도,
일일이 감독이 엄한 조부 윤직원 영감 밑에서 조심스럽게 노느니,
고향으로 내려가서 마음 탁 놓고 지낼 것이 좋아, 매삭 2백 원씩 가용을
타쓰기로 하고, 월급 26원짜리 군 고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꼬박 3년 전……
그 3년 동안 윤직원 영감이 자기 손으로 쓴 운동비가 꽁꽁 1만 원하고
3천원입니다. 그리고 종수가 운동비라는 명목으로 가져간 것이
2만 원돈이 가깝습니다. 해서 도합 3만 원이 넘습니다.
하기야 종수가 가져간 2만 원돈은 그것이 옳게 제 구멍으로 들어갔는지
딴 구멍으로 샜는지, 알 사람이 드물지요마는……
 
그러나 실상은 돈이 3만여 원만 든 건 아닙니다.
종수가 가용으로 매삭 2백 원씩 가져갔으니 그것이 3년 동안 7천여 원.
종수가 윤직원 영감의 도장을 새겨 가지고 토지를 잡혀 쓴 것이 두 번에
2만여 원이요, 그것을 윤직원 영감이 일보(日步) 8전씩 쳐서
도로 찾느라고 2만 5천여 원.
윤직원 영감의 명의로(도장은 물론 가짜지요) 수형 뒷보증(우라가끼)를
해 쓴 것을 여섯 번에 4만 원을 물어주고.
이 두 가지만 해도 7만 원돈인데, 그 7만 원 가운데 종수가 제 손에
넣고 쓴 것은 다 쳐야 단돈 만 원도 못 됩니다. 윤직원 영감으로 보면
결국 손자 종수에게 사기를 당한 셈인데, 그러므로 물어주지 않고 버틸
수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버티고 볼 양이면 종수가 징역을 가야 하니,
이면상 차마 못할 노릇일 뿐만 아니라, 더우기 바라고 바라던 군수가
영영 떠내려가겠은 즉, 목 마른 놈이 우물 파더라고,
짜나따나 그 뒤치다꺼리를 다 하곤 했던 것입니다.
 
그래, 이것저것을 모두 합치면 돈이 10만 원하고도 훨씬 넘습니다.
윤직원 영감은 하도 화가 나고 기가 막혀서, 이 잡아뽑을 놈아 이놈아,
돈은 무엇에다가 그렇게 물쓰듯 하느냐고,
번번이 불러올려다가는 도둑놈 닦달하듯 조져댑니다.
그럴라치면 종수는 군수 운동비와 교제비로 쓴다고 합니다.
그렇거들랑 왜 나더러 달래다가 쓸 것이지, 비싼 고리대금업자의 변전을
내느냐고 한다치면,
할아버지가 언제 돈 달래는 족족 주었느냐고 되레 떠받고 일어섭니다.
물론 윤직원 영감은 곧이를 듣지는 않지만,
종수의 구실거리는 그만큼 유리했읍니다.
 
해서 윤직원 영감의 무서운 규모로, 3년 동안에 10여만 원을
그 밑구멍에다가 들이민 것으로 보아, 군수 즉 양반이라는 것의 매력이
위대함을 알겠는데, 그러나 종수는 아직도 한낱 고원으로 있지,
그 이상 더 올라가지는 못했읍니다. 월급만은 한 차례 3원이 승급되어,
29원을 받지만요.
하니, 일이 매우 장황스러, 성미 급한 윤직원 영감으로는 조바심이
나리라 하겠지만, 실상은 고원에서 본관까지 4년,
본관에서 서무주임까지 3년, 서무주임에서 군수까지 다시 3년, 도합
10개년 계획이었기 때문에, 아직 유유히 운동을 계속하는 중입니다.
 
그 덕에 거드럭거리는 건 종숩니다. 군에 다니는 건 명색뿐이요,
매일 술타령에 계집질, 게다가 한 달이면 4, 5차씩 서울로 올라와서는
뚜드려 먹고 놉니다. 돈은 물론 제 집엣돈을 사기해 먹고,
또 그 밖에 중이 망건 사러가는 돈이라도 걸리기만 하면 잡아 써놓고
봅니다. 그랬다가 다급하면 그 짓, 제 집 돈 사기를 해서 물어주든지,
직접 윤직원 영감한테 운동비랍시고 뻐젓이 돈을 타든지 합니다.
이번에 올라온 것도 그러한 일 소간입니다.
얼마 전에 군의 같은 동료가 맡아보는 돈 천 원을 둘러 쓴 일이 있는데,
그 돈 채워놓아야 할 날짜가 2, 3일로 박두했고,
일변 술도, 날씨 선선해진판에 한바탕 먹어제끼고 싶고,
이참저참 올라왔던 것인데, 방위가 나빴던지 일수가 사나왔던지,
첫새벽 정거장에서 내리던 길로 일이 모두 꿀리기만 했읍니다.
 
첫째, 어제 시골서 떠나기 전에 전보를 쳐두었는데 키다리 병호가
마중을 나오지 않았읍니다. 돈을 얻재도, 술을 먹재도, 오입을 하재도,
종수는 그의 병정인 키다리 병호가 아니고는 꼼짝을 못합니다.
수형을 현금으로 바꾸어오고, 요리집과 기생을 분변을 시키고,
더러는 외상 요리의 교섭을 하고, 계집을 중매서고, 이래서 종수가
서울서 노는 데는 돈보다도 더,
그리고 먼저 필요한 게 병호 그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서 전보까지 쳐두었던 것인데, 정거장으로 나오지를
않았읍니다. 이건 병이 났거나 타관에를 갔거나 한 것이라고 낙심을 한
종수는, 그래도 막상 몰라 애오개 산비탈에 박혀 있는 병호의 집까지
찾아갔읍니다.
역시 병호는 집에 없고, 그의 아낙의 말이, 어제 낮에 잠깐 다녀온다고
나간 채 여태 안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먼 타관에는 가지 않은 듯 싶고, 그것이 저으기 다행해서,
들어오는 대로 곧 만나게 하라는 말을 이른뒤에,
언제고 서울을 올라오면 집보다도 먼저 찾아드는 ××여관에다가
우선 자리를 잡았읍니다.
 
××여관에서 종수는 조반을 먹고 드러누워 늘어지게 한잠을 잤읍니다.
간밤에 침대차가 만원이 되어 잠을 못잔 것이 피곤도 하거니와,
이따가 저녁에 한바탕 놀자면 정력을 길러두는 것도 해롭진 않았읍니다.
또, 그러한 필요가 아니라도 병호가 없는 이상, 막대를 잃어버린 장님
같아, 저 혼자서는 옴나위를 못하니까, 낮잠이 제일 만만합니다.
한잠을 푹신 자고 나니까 오정이 지났는데,
병호는 그때까지도 오지 않았읍니다. 종수는 또 한번 애오개를
나갔다가 그만 허탕을 치고는 답답한 나머지 여기저기 그를 찾아다녀
보았읍니다. 그러다가 우미관 앞에서 재수없이 옥화를 만났던 것입니다.
 
종수가 도로 여관으로 돌아와서 네시까지 기다리다가 고만 질증이 나서,
다 작파하고 조부 윤직원 영감한테 급한 돈 천 원이나 옭아내어 가지고
내려가 버릴까, 내일 하루 더 기다려 볼까 망설이는 판에
키다리 병호가 터덜터덜 달려들었읍니다.
 
“허! 미안허이!”
 
병호는 말처럼 긴 얼굴을 소처럼 웃으면서 방으로 들어섭니다.
 
“무얼 핥어먹느라구 밤새두룩 주둥일 끌구 다녔수?”
 
종수는 일어나지도 않고 버얼떡 누운 채, 전봇대 꼭대기같이 한참이나
올려다보이는 병호의 얼굴을 눈흘겨 주다가, 한마디 비꼬던 것입니다.
남더러 전접스런 소리를 잘하는 것도 아마 윤직원 영감의 대부터
내림인가 봅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종수는 갈데없는 후레자식입니다.
한 것이, 병호와는 같은 고향인데, 나이 15년이나 층이 집니다.
15년이면 부집(父執)이 아닙니까. 종수 제 부친 창식이 윤주사가
마흔여섯이요 해서, 사실로 병호와는 네롱내롱하는 사이니까요.
그런 것을 글쎄, 절하고 뵙진 못할망정 버얼떡 자빠져서는 한단 소리가
무얼 핥아먹느라고 주둥이를 끌고 다녔느냐는 게 첫인사니,
놈이 후레자식이 아니라구요.
하나 병호는 아주 이상입니다.
 
“머, 그저 모처럼 봉을 하나 잡았더니, 그놈을 뚜디려 먹느라구.”
 
“그래서?…… 문밖 별장으루 나갔던 속이구면?”
 
“응.”
 
“각시 맛두 봤수?”
 
“미친 녀석! 늙은 사람두 그런 것 바친다드냐?”
 
“아무렴! 개가 똥을 마대지?”
 
둘이는 걸찍하게 농지거리로 주거니받거니 합니다.
그러니 결국 종수로 하여금 버르장머리가 없게 하는 것은 이편 병호가
속이 없고 농판스런 탓이요, 그걸 받아주는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의 병정을 잘 서먹자면 그만큼이나 구수하지 않고는 붙일성이
없겠으니 또한 직업인지라 어쩔 수 없다는 게 병호의 변명입니다.
 
“돈을 좀 마련해야 할 텐데?……”
 
종수는 그제서야 일어나더니, 잔뜩 쪼글트리고 앉으면서
담배를 붙여 뭅니다.
 
“해보지…… 얼마나?”
 
병호의 대답은 언제나 선선합니다.
 
“꼭 천 원허구 또, 한 오백 원……”
 
“오늘루 써야 허나?”
 
“천 원은 내일 해전으루 되면 좋구, 오늘은 오백 원 가량만……”
 
“해보지!…… 그렇지만 은행 시간이 지나서, 좀……”
 
“그러니까 진작 오정때만 왔어두 좋았지!
   핥어먹으러 싸아다니느라구……”
 
“허! 참, 잡놈이네! 비올 줄 알면 어느 개잡년이 빨래질 간다냐?
  네가 몇시간만 더 일찍 전볼 치지?”
 
“긴소리 잔소리 인전 고만 해두구, 어서 어떻게 서둘러 봐요!”
 
“날더러만 재촉을 하지 말구, 어서 한장 쓰게그려!”
 
“그런데 이번은 말이죠……”
 
종수는 손가방에서 수형 용지를 꺼내가지고, 일변 쓰면서 이야깁니다.
 
“……이번은 와리를 좀더 주더래두 내 도장만 찍어야 할 텐데?”
 
“건 어려울걸!…… 그런데 왜?”
 
“아, 지난번에 논을 그렇게 해쓴 거 1만 5천 원이 새달 그믐 아니요?”
 
“참, 그렇지…… 그런데?”
 
“그런데, 그거가 뒤집어지기 전에 이거가 퉁겨서 나오구,
  그리구서 얼마 아니 있다가 또 그거가 나오구, 그래 노면 글쎄
  한 가지씩 졸경을 치루기두 땀이 나는데, 거퍼 두 가지씩!”
 
종수는 쓰던 만년필을 멈추고 혀를 날름날름하면서 고개를 내두릅니다.
졸경을 치른다는 것은 빗쟁이한테 직접 단련이 아니라,
 조부 윤직원 영감한테 말입니다.
 
“그렇잖우? 드뿍 큰목아치는 크게 해먹은 맛으루나 당한다구,
  요것 2천원짜리 때문에 경은 곱쟁일 치긴 억울해!”
 
“그두 그렇긴 허이마는……”
 
병호는 깜작깜작 생각을 하다가는 종수가 도장까지 찍어 내놓는 2천 원
액면의 수형을 집어듭니다. 아무리 가짜 도장일값에 윤두섭이의
뒷보증(우라가끼)이 없는, 단부랑지자 윤종수의 수형을 가지고
돈을 얻다께 하늘서 별 따깁니다.
 
“좀 어렵겠는데에……”
 
병호는 수형을 만지작만지작,
그 기다란 윗도리를 앞뒤로 끄덕끄덕 연신 입맛을 다십니다.
 
“쉬울 테면 왜 온종일 당신 기대리구 있겠소?
   잔소리 말구 어여 갔다가 와요!”
 
“글쎄, 가보긴 가보지만……”
 
병호는 수형을, 빛 낡은 회색 포라 양복 속주머니에다가
 건사하고 일어섭니다.
 
“……가보아서 되면 좋구,
  안되면 달리 또 무슨 방도를 채리더래두…… 아무려나 기대리게……”
 
“꼭 돼야 해요! 더구나 한 4, 5백 원은 오늘 우선……”
 
“흥, 이거 말이지?”
 
병호는 씨익 웃으며, 손으로 술잔 기울이는 흉내를 냅니다.
 종수도 따라 웃습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대루 지내우?”
 
“염려 말게…… 돈이 못되면 외상은 못 먹나?”
 
“싫소, 외상은…… 그리고, 요리집 간죠뿐이우?”
 
“각시두 외상 얻어줌세, 끙……”
 
“어느놈이 치사하게 외상 오입을 하구 다니우?”
 
“난 없어 못하겠더라?”
 
“양반허구 상놈허구 같은가?”
 
“양반은 별수 있다더냐?”
 
한 시간 안에 다녀오마고 나간 병호는, 두 시간 세 시간 눈이 빠지게
기다려 놓고서 입곱시 반에야 휘적휘적, 그나마 맨손으로 돌아왔읍니다.
윤직원 영감의 뒷보증(우라가끼)이 없어도 종수의 도장만 보고서
돈을 줄 사람이 꼭 한 사람 있기는 있고, 또 그 사람이면 소절수를
받아다가 현금과 진배없이 풀어 쓸 수가 있는 자린데,\
세상 기고 매고 아무리 찾아다녀야 만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따로이 슬그머니 욕심이 생겨가지고는,
짐짓 꾸며대는 농간인 것을 종수는 알 턱이 없읍니다.
윤종수의 도장 하나를 보고서 수형을 바꾸어 줄 실없은 돈장사라고는
이 천지에 생겨나지도 않았읍니다. 병호는 그것을 잘 알고 있고,
그러면서도 어쩌면 될 듯한 눈치를 보이는 것은, 우선 수형을
쓰게 하자는 제일단의 공작이었읍니다.
그 세 시간 동안 병호는 누구를 찾아다니기는커녕, 제 집으로 가서
편안히 누웠다가 온 것도, 그러니까 종수는 알 턱이 또한 없읍니다.
 
“빌어먹을!…… 에이 속상해!”
 
종수는 슬며시 짜증이 나서 피우던 담배를 재털이에 북북 비벼 던지고는
나가 드러누우면서 두런거립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아까 저물기 전에 집으루나 가서,
  할아버지께라두 말씀을 했지! 에이, 빌어먹을……”
 
은연중 병호가 늦게 온 칭원까지 하는 소립니다.
그러나 병호는 그 소리가 귀에 거슬리기보다는
일이 묘하게 얼려간대서 속으로 기뻐합니다.
 
“여보게?”
 
“………”
 
“여기다가 자네 조부님 도장 찍어서 우라가끼하게.”
 
“싫소!…… 다아 고만두고,
  내일 할아버지께 돈 천 원이나 타서 쓰구 말겠소!”
 
“웬걸 주실라구?”
 
“안 주시면 고만두, 머…… 에잇, 속상해!”
 
“그렇게 있어두 고만, 없어두 고만일 돈이면 애여 왜 쓸려구를 들어?”
 
“남 속상하는 소리 말아요!
  시방 돈 천 원에 여러 집 초상나게 된 걸 가지구……”
 
“허어! 그 장단에 어디 춤추겠나!”
 
“아니, 할아버지 도장 찍구 우라가끼할 테니,
   당장 돈 만들어 올 테요?”
 
“열에 일곱은 될 듯하네마는…… 그러구저러구 간에 여보게?”
 
“말 던지우!”
 
“만일 자네 조부님께 말씀을 해서 돈이 안 되며는
  낭패가 생길 돈이라면서? 응?”
 
“낭패뿐이 아니우…… 내 원,
  돈 고까짓 천 원 때문에 이렇게 속상하기라군 생전 츰이요!”
 
“그러니 말일세. 여그다가 우라가낄 해주면,
  시방 나가서 주선을 해보구…… 하다가 안되면 내일 해보구
  할 테니깐, 자넬라커던 이놈은 꼭일랑 믿지 말구서, 내일 자네
  조부님을 조르구. 그렇게 해서 두 군데 중에 되며는 좋잖은가?”
 
“아, 글쎄 이 당신아!……”
 
종수는 답답하다고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삿대질을 합니다.
 
“맨츰에 내가 하던 소린, 한귀루 듣구 한귀루 흘렸단 말이요?”
 
“원 참!…… 저놈 논 잽혀 쓴 놈 1만 5천원짜리허구
  연거퍼 튕겨질 테니 안됐단 말이지?”
 
“이번치가 먼점 뒤집어질 테니깐 더 걱정이란 말이랍니다요!”
 
“그러니깐 말이야. 이번칠랑 이자나 주구서 두어 번 가끼가엘
   하면 될 게 아닌가?”
 
“가끼가에? 누가 가끼가엘 해준대나?”
 
“아니 해줄 게 어딨나? 이자를 주는데 왜 아니 해주나?”
 
“그럼 그래 보까? 히히.”
 
종수는 별안간 싱겁게 웃으면서, 언제고 준비해 가지고 다니는
윤직원 영감의 도장으로 아까 그 수형에다가
뒷보증(우라가끼)을 해놓습니다.
 
“되두룩 단돈 백원이라두 현금을 좀 가지구 오시우?”
 
구두를 신고 있는 병호더러 부탁을 합니다.
 
“글쎄, 그렇게 해보지만……”
 
병호는 돌아서려다가 싱글싱글 웃습니다.
 
“……자네 거 기생 고만 두고서 오늘 저녁일라컨
   여학생 오입 하나 해 볼려나?”
 
“여학생?…… 그 희떠운 소리 작작 허슈!”
 
“아냐! 내 장담허구 대령시킬 테니……”
 
“진짤?”
 
“아무렴!”
 
“정말?
 
“허어!”
 
“아니면 어쩔 테요?”
 
“내 목을 비어 바치지!”
 
“그럼, 내기요?”
 
“내기하세!…… 그런데 진짜가 아니면 나는 목을 비여놓구……
   또오, 진짜면?”
 
“백 원 상급 주지!”
 
“그래. 내 오는 길에 다아 주문해놓구 오문세.”
 
한 시간이 좀 못되어서 돌아온 병호는 이번도 허탕이었읍니다.
단골로 그새 거래를 하던 세 군데를 찾아갔는데,
하나는 타관에 가고 없고, 하나는 놀러 나갔고, 또 하나는 은행에
예금한 게 없어서 내일이나 입금시키는 형편을 보아야만 소절수라도
발행하겠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물론 꾸며대는 소리요, 동관의 뚜쟁이 집에 가서 노닥거리다가
오는 길입니다.
 
“그러면 내일 될 상두 부르군요?”
 
종수는 생각하던 바와 달라, 소갈찌도 내지 않습니다.
 
“글쎄?……”
 
“안될 것 같아?”
 
“그럴 게 아니라, 이 수형일랑 내게 두었다가,
  내가 한번 더 돌아다녀 볼테니, 그렇지만 꼭 믿진 말구서,
  자넨 조부님한테 타내두룩 하게…… 그래야만 망정이지, 꼭 되려니
  했다가 아니 되는 날이면 낭패가 아닌가? 지금두 오면서두 고옴곰
  생각했지만, 그 남의 수중에 있는 돈을 얻어 쓴다는 게 무척
  힘이 들구, 자칫하면 큰일을 잡치기가 쉬운 걸세그려!
  아 오늘 저녁 일만 두구 생각해 보게? 남의 돈을 믿었다가
  이렇게 누차 낭패가 아닌가?”
 
근경 있이 타이르듯 하는 말에,
종수는 그렇겠다고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종수가 다소곳하니 곧이 듣는 것을 보고 병호는 일이 열에 아홉은
성사라서 속으로 좋아 못견딥니다.
병호는 그 2천원짜리 수형을 제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내놓지 않을 참입니다.
종수가 저의 조부 윤직원 영감한테 돈을 타서 쓰면 이 수형은
소용이 없으니까, 대개는 잊어버리고 시골로 내려가기가 십상입니다.
또, 혹시 생각이 나서 찾더라도 포켓을 부스럭부스럭하다가
 
“아뿔싸! 간밤에 변소에 가서 휴지가 없어서 고만!……”
 
이렇게 둘러댑니다.
만일 윤직원 영감한테 돈을 타지 못하고, 불가불 수형을 이용해야
할 경우라도 역시 뒤지를 해 없앤 줄로 둘러대고서,
새로 수형을 쓰게 합니다.
그래 좌우간 그 수형은 제가 훌트려 쥐고 있다가,
1할 5부 할이를 뗀 1천7백 원을 찾아서 집어삼킵니다.
삼켜도 아무 뒤탈이 없읍니다. 우선 법적으로 따져서,
하나도 죄가 될 것이 없읍니다.
그러나 도시 문제가 그렇게 커지질 않습니다.
그 수형이 나중에 윤직원 영감의 수중으로 들어가서 필경 종수가 닦달을
당하기는 당하는데, 종수는 그것이 병호의 야바윈 줄 단박 알아내기야
하겠지만, 그의 사람 된 품이 저만 알고서 제가 일을 뒤집어쓰지,
결코 그 속을 들춰내도록 박절하진 못한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의붓자식 옷 해입힌 셈만 대지야고 버릇없는 소리나
해가면서, 역시 전과 다름없이 병호를 심복의 병정으로 부릴 것이요,
그것은 사람이 뒤가 없는 소치도 있겠지만,\
일변 아쉽기도 한 때문입니다.
더구나 일이 뒤집어지기 전에 병호가 미리서, 아 이 사람 종수,
다른게 아니라 내가 목이 달아나게 급한 사정이 있어서
약시 이만저만하고 이만저만 했네. 그러니 어떡허려나? 날 죽여주게.
이렇게 빌기라도 한다면 종수는 그것을 순정인 줄 여겨 오히려
양복이라도 한벌 해입힐 것입니다. (옛날의 주공(周公)도 사람이
종수처럼 이렇게 어질었다구요?)
 
“자아, 어서 옷 입구 나서게!……”
 
병호는 1천 7백 원을 먹어둔 바람에 속이 달떠서는
연신 싱글벙글 종수를 재촉합니다.
 
“……내일 일은 내일 일이구…… 자아, 오늘 저녁일라컨
  위선 산뜻한 여학생 오입을 속짜루 한바탕 한 뒤에 어디 별장으루
   나가서 밤새두룩, 응?”
 
“돈두 없으면서 무얼!”
 
“걱정 말래두! 요리집은 내가 다아 그읏두룩 할 테니깐
  염려 없구, 여학생 오입은 10원이면 썼다 벗었다 하네!”
 
“십 원?”
 
“아무렴!…… 잔돈 얼마나 있나?”
 
“한 삼십 원 있지만!”
 
“됐어! 십 원은 여학생 오입채루 쓰구 이십 원은 요리집 뽀이
  행하루 쓰구, 머어 넉넉허이!”
 
“그 여학생이라는 게 밀가루나 아니우?”
 
“천만에!…… 글쎄, 목을 비여 바친대두 그리나?”
 
“더구나, 십 원이면 된다니, 유곽만두 못하잖아?”
 
“글쎄, 예서 우길 게 아니라, 좌우간 가보면 알 걸 가지구!”
 
“어디, 한번 속는 셈 대구!”
 
사맥이 다 이렇게쯤 되어서,
당대의 주공(周公) 종수가 이 동관의 뚜쟁이 집엘 온 것입니다.
폐병 앓는 갈빗대 여대치게 툭툭 불거진 연목을 반자지도 아니요
거무퉤퉤한 신문지로 처덕처덕 처바른 얕디얕은 천장 한가운데 가서,
13와트 전등이 목을 잔뜩 매고 높다랗게 달려 있읍니다.
도배는 몇해나 되었는지, 하얐을 양지가 노랗게 퇴색이 된 바람벽인데,
그나마 이리저리 쓸려서 제멋대로 울퉁불퉁 떠 이고 있읍니다.
거기다가 빈대피로 댓잎(竹葉)을 쳐놓았어야 제격일 텐데,
그 자국이 없는 것을 보면 사람이 붙박이로 거처를 않고,\
임시 임시 그 소용에만 쓰는 게 분명합니다.
 
웃목으로 몇해를 뜯이 맛을 못 보았는지, 차악 눌린 이부자리가
달랑 한채, 소용이 소용인지라 잇만은 깨끗해 보입니다.
방안에서는 눅눅한 습기와 곰팡냄새가
금시로 몸이 끈끈하게시리 가득 풍깁니다.
이지러진 사기재털이 하나가 방안의 유일한 가구요, 그것을 사이에 놓고
병호와 종수는 위아랫목으로 갈라앉아 입맛 없이 담배를 피웁니다.
 
“멀쩡한 뚜쟁이집이구면, 무엇이 달라요? 까치 뱃바닥 같은 소릴……”
 
종수는 이윽고 방안을 한 바퀴, 아까 처음 들어설 때처럼 콧등을
찡그리며 둘러보면서, 목소리 소곤소곤 병호를 구박을 주던 것입니다.
 
“글쎄 뚜쟁이집은 뚜쟁이집이라두, 시방은 다르다니깐 그래!”
 
“다를 게 무어람!……
  여보 나두 열여덟 살부터 다녀본 다아 구로오도야!”
 
“그땐 말끔 은근짜들뿐이지만, 시방은 이 사람아 오는 기집들이
  모두 상당허네!…… 여학생을 주문하면 꼭꼭 여학생을 대령시키구,
  과불 찾으면 과불 내놓구, 남의 첩, 옘집 여편네, 빠쓰껄, 여배우,
  백화점 기집애, 머어 무어든지 처억척 잡아오지!”
 
“또 희떠운 소리를!…… 아니 그래, 과부면 과부라는 걸 무얼루다가
  증명허우? 민적등본을 짊어지구 오우? 여학생은 재학증명설
  넣구 오구, 빠쓰껄은 가방을 차구 오우?”
 
“허허허…… 그거야 그렇잖지만…… 아냐, 대개 맞긴 맞느니……
  그렇게 널리 한대서 요샌 뚜쟁이집이라구 아녀구,
  세계사업사라구 하잖나?”
 
“당찮은 소릴! 여보, 세계사업사란 내력이나 알구서 그러우?”
 
연전에 관훈동에 있는 어떤 뚜쟁이의 구혈을 경찰서에서 엄습한 일이
있었읍니다. 연루자가 수십 명 잡혔는데, 차차 취조를 해 들어가니까,
그 조직이 맹랄할 뿐 아니라, 이름을 세계사업사라고 지은 데는
모두 깜짝 놀랐읍니다. 물론 별 의미는 없고, 아마 취체를 기이느라고
그런 엉뚱한 명칭을 붙였던 것이겠지요.
아뭏든 그때부터 뚜쟁이집을 어디고 세계사업사라고 불렀고,
시방은 한 개의 공공연한 은어(隱語)가 되어버렸읍니다.
종수가 그러한 내력을 설명하는 것을 듣고 앉았던 병호는
 
“허허, 날보담 선생이군!……”
 
하면서 웃고 일어섭니다.
 
“……자아, 난 먼점 가서……”
 
“어디루?”
 
“××원 별장으루 먼점 나가서 이것저것 모두 분별을 해놓구
   기대릴 테니, 자넬라컨 처억 재미 볼 대루 보구……”
 
“그럴 것 무엇 있소? 이왕이니 하나 더 불러 오래서,
   둘이 같이 응? 하하하하?”
 
“허허허허…… 늙은 사람 놀리지 말구…… 그리구 참 돈은 음식값
  무엇 할것없이 10원 한 장만 노파 손에다가 쥐여주구 나오게!”
 
“그리구저러구 간에, 진짜 여학생이 아니면 당신 죽을 줄 알아요!
  괜히!……”
 
“염려 말래두!”
 
병호는 마루로 나가더니 안방의 노파를 불러내어 무어라고 두어 마디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고 나서 밖으로 나갑니다.
종수가 시계를 꺼내어 마침 아홉시 이십분이 된 것을 보고 있노라니까,
샛문을 배깃이 열고 노파가 담뱃대 문 곰보딱지 얼굴을 들이밉니다.
 
“한 분이 먼점 가세서 심심하시겠군!”
 
노파는 병호가 앉았던 자리로 가서 팔짱을 끼고 도사려 앉읍니다.
 
“……아이! 그 새서방님 얼굴두 좋게두 생겼다!
  오래잖아 색시가 올테지만, 보구서 색시가 더 반하겠수 호호호……”
 
언변이 벌써 뚜쟁이로 되어먹었고,
게다가 겉목을 질러 웃는 소리가 징그러울 만큼 능청스럽습니다.
 
“시방 온다는 게 정말 여학생은 여학생입니까?”
 
종수는 하는 양을 보느라고 말을 시켜놓습니다.
 
“원! 정말 아니구요! 아주 버젓한 고등학교 다니는 색시랍니다. 머,
  밀가룰 가져다가 복색만 여학생으루 채려서 들여밀 줄 알구들
  그리시지만, 아 시방이 어느 세상이라구 그렇게 속힐래서야 되나요!
  정말 여학생이구말구요, 원!”
 
“버젓한 여학생이 어째 하라는 공분 아니허구서……”
 
“원! 여학생은 멋 모르나요? 다아, 응? 멋이 들어서,
  다아 심심소일루 다니는 색시두 있구, 또오 더러는 돈맛을 알구서
  다니기두 허구…… 그렇지만 지금 오는 색신 노상히 돈만 바라거나,
  또 심심소일루 다니는 이가 아니랍니다! 그건 참, 잘 알아두시구,
  너무 함부로 다루질라컨 마시우! 괜히……”
 
“그럼 무엇하러 다니는데요?”
 
“신랑! 신랑을 고르느라구 그래요. 꼬옥 맘에 드는 신랑을!”
 
“네에! 그래요오! 으응, 신랑을 고른다!”
 
“참, 인물인들 오죽 잘났어요. 머, 똑떨어졌죠.”
 
“네에! 그렇게 잘났어요?”
 
“말두 마시우! 괜히, 담박 반해가지굴랑,
  내일이래두 신식결혼하자구 치마끈에 매달리리다! 호호호……”
 
“피차에 맘에 들면야 그래두 좋죠.
   마침 장가두 좀 가구푸구 하던 참이니깐……”
 
“그렇게 뒷심을 보실 테거들랑 돈을 애끼지 말구서,
   우선 오늘 저녁버틈 이라두 척 돈을 좀 몇십환 듬뿍 쓰세야죠!
   그래야 다아 색시두!”
 
“지끔 오는 인 돈을 바라구 오는 게 아니라면서요?”
 
“원! 시방야 돈을 아니 바라지만서두, 신랑 양반이 다아 돈이 많구
  호협허신 그런 인 줄은 알아야, 다아 맘이 당기죠?”
 
“옳아! 그두 그렇겠군요!…… 나인 몇이라죠?”
 
“원 어쩌나! 아, 말탄 서방이 그리 급하랴구, 시방 곧 올 텐데,
  호호, 미리서 반하섰구료! 호호호…… 올해 갓스물이랍니다.
  나이두 꼬옥 좋죠!”
 
마침 대문소리가 삐그덕 나더니 자박자박
 
“기세요?”
 
하고 삼가로운 목소리가 들립니다.
 
“왔군!”
 
어느결에 일어서서 샛문으로 나가려던 노파가,
종수를 돌려다보고 눈을 찌긋째긋합니다.
종수는 저도 모르게 약간 긴장이 되어, 바깥의 동정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는 아까부터 노파의 하는 수작이 속이 빠안히 들여다보여,
역시 여학생이란 공연한 소리요, 탈을 쓴 밀가루기 십상이려니 하는
속치부는 하고 있으면서도, 급기야 긴장이 되는 것은 화류계 계집은
많이 다뤘어도 명색이 여학생은 접해 보지 못한 그인지라,
얼마간 최면에 걸리지 않질 못한 탓이겠읍니다.
노파는 밖으로 나가서 한참 소곤소곤하다가, 이윽고 샛문이 열립니다.
 
“자아, 내가 정말을 했는지, 거짓말을 했는지 보십시요!
  이렇게 뻐젓한 여학생을 모셔왔으니, 자아.”
 
노파가 가려 서서 한바탕 장담을 치고 나더니
 
“…… 자아…… 어여 들어와요! 원 부꾸럽긴 무에 그리 부꾸럽담!
   다아 신식 물 자신 양반들이, 자아……”
 
하고, 또 한바탕 너스레를 떨면서 모로 비껴 섭니다.
십여 년 화류계에서 놀며 치어난 종수도, 어쩐지 압기가 되는 듯,
이 장면에서만은 단박 얼굴을 들고 치어다볼 담이 나질 않고,
마침 문턱 안으로 한발 들여놓는 비단 양말을 신은 다리로부터 천천히
씻어 올라갑니다.
놀면한 비단 양말 속으로 통통하니 살진 두 다리,
그 중간께를 치렁거리는 엷은 보이루의 검정 통치마, 연하게 물결치는
치마 주름을 사풋 누른 손길, 곱게 그친 흰저고리의 앞섶끝,
볼록한 젖가슴에 맺어진 단정한 고름, 이렇게 보아 올라가는 종수는
어느덧 저를 잊어버리고, 과연 시방 순결을 의미하는 여학생을 맞느니라
싶은 일종의 엄숙한 기분에 잠겨갑니다.
필경 종수의 시선이, 여자의 동그스름한 턱으로부터 얼굴 전체로
퍼지려고 하는데, 마침 저편에서도 외면했던 고개를 이편으로 돌리고,
돌려서 얼굴과 얼굴이 딱 마주치는 순간! 그 순간입니다.
 
“어엇!”
 
“아이머닛!”
 
소리는 실상 지르지도 못하고, 남녀는 동시에 숨이 막히게 놀랍니다.
종수는 앉은 자리에서 뒤로 벌떡 자빠질 뻔하다가 겨우 몸을 가누어
고개를 푹 숙이고, 계집은 홱 몸을 날려 마루를 쿵쿵,
구두는 신었는지 어쨌는지 대문을 왈카닥 삐그덕,
그 다음에는 이내 조용하고 맙니다.
계집이 달아나자 종수는 정신을 차려 쫓기듯 세계사업사를
도망해 나왔읍니다.
계집은 바로 창식이 윤주사의(그러니까 즉 종수의 부친의)
둘째첩 옥화였읍니다.
종수는 사람이 밤에 불(光線)을 가진 것이 참으로 고맙고
다행스럽다는 것을 절절히 느끼면서, 자동차를 몰아 동소문 밖
 ××원 별장으로 나왔읍니다.
병호는 아직 기생도 나오기 전이라 혼자 달랑하니 앉았다가,
종수가 뜻밖에 일찍 온 것을 의아해 자꾸만 캐고 묻습니다.
종수는 부르댈 데 없는 울화가 나는 깐으로는,
아뭏든 여학생은 아니었으니, 목을 베어내라고 병호나마 잡도리를
해주고 싶었으나, 그것도 객쩍은 짓이라서, 그저 온다는 그 여학생이
갑자기 병이 나서 못 온다는 기별이 왔기에, 또 마침 내키지도
않던 참이라, 차라리 다행스러 얼핏 일어섰노라고,
역시 종수 그 사람답게 쓸어 덮고 말았습니다.
 
 
 13 도끼자루는 썩어도……
   (即 當世 神仙[즉 당세 신선]놀음의 一齣[일척])
 
동대문 밖 창식이 윤주사의 큰첩네 집 사랑,
여기도 역시 같은 그날밤 같은 시각, 아홉시 가량 해섭니다.
큰대문, 안대문, 사랑 중문을 모조리 닫아 걸고는 감대 사납게 생긴
권투 할 줄 안다는 행랑아범의 조카놈이 행랑방에 버티고 앉아
드나드는 사람을 일일이 단속합니다.
큼직하게 내기 마작판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벌어진 게 아니라
어젯밤 부터 시작한 것을 시방까지 계속하고 있읍니다.
10전 내기로 5백원 짱이니 큰 노름판이요, 대문을 단속하는 것도
괴이 찮습니다. 그러나 암만해도 괄세할 수 없는 개평꾼은 역시 괄세를
못하는 법이라, 한 육칠 인이나 그중 서넛은
판 뒤에서 넘겨다 보고 있고, 서넛은 밤새도록 온종일 지키느라
지쳤는지, 머릿방인 서사의 방에 가서 곯아떨어졌읍니다.
 
삼간마루에는 빙 둘린 선반 위에 낡은 한서(漢書)가 길길이 쌓였읍니다.
한편 구석으로 고려자기를 넣어둔 유리장에다가는
가야금을 기대 세운 게 더욱 운치가 있읍니다.
추사(秋史)의 글씨를 검정 판자에다가 각해서 흰 페인트로 획을 낸
주련이 군데군데 걸리고, 기둥에는 전통(箭筒)과 활(弓)……
다시 그 한편 구석으로 지저분한 청요리 접시와 정종병들이 섭쓸려 놓인
것은 이 집 차인꾼이 좀 게으른 풍경이겠읍니다.
방은 양지 위에 백지를 덮어발라 분을 먹인, 그야말로 분벽(粉壁),
벽에는 미산(美山)의 사군자와 ××의 주련이 알맞게 벌려 붙어 있고,
눈에 뜨이는 것은 연상(硯床) 머리로 걸려 있는 소치(小痴)의
모란 족자, 그리고 연상위에는 한서가 서너 권.
소치의 모란을 걸어놓고 볼 만하니, 이 방 주인의 교양이 그다지
상스럽지 않을 것 같으면서, 방금 노름에 골몰을 해 있으니
속한(俗漢)이라 하겠으나, 이 짓도 하고 저 짓도 하고, 맘 내키는 대로
무엇이든지 하는게 이 사람 창식이 윤주사의 취미랍니다.
심심한 세상살이의 취미 ……
 
마작판에는 주인 윤주사와, 그의 손위에 가서 부자요 마작 잘하기로
이름난 박뚱뚱이, 그리고 손아래에는 노름꾼 째보 이렇게 세마작입니다.
모두들 얼굴에 개기름이 번질번질하고 눈곱 낀 눈이
벌겋게 충혈이 되었읍니다.
윤주사는 남풍 말에 시방 장가인데, 춘자 쓰거훠를 떠놓고,
통스(筒字[통자])청일색입니다.
8통이 마작두요 1 2 3 6 7 8해서 두 패가 맞고, 4 5와 7 8
두 멘스(面字[면자])에 9만이 딴짝입니다. 하니 통스는 웬만한 것이면
무얼 뜨든지 방이요, 만일 6통을 뜨면 3 6 9통 석자 방인데,
게다가 9통으로 올라가면 일기통관까지 해서 만지만관입니다.
윤주사는 불가불 만관을 해야 할 형편인 것이, 5천을 다 잃고 백짜리가
한개피 달랑 남았는데, 요행 이 패로 올라가면 4천이 들어와서
거진 본을 추겠지만, 만약 딴 집에서 예순 일백 스물로만 올라가도
바가지를 쓸 판입니다.
 
하기야 윤주사는 그새 많이 져서 3천 원 넘겨 펐고 하니,
한 바가지 더 쓴 댔자 5백 원이요, 그게 아까운 게 아니라,
청일색으로 만관, 고놈이 놓치기가 싫어 이 패를 기어코 올리고
싶은 것입니다.
패는 모두 익었나본데, 손 위에서 박뚱뚱이가 씨근씨근 쓰모를 하더니
 
“헤헤 뱀짝이루구나! 창식이 요거 먹으면 방이지?”
 
하면서 쓰모한 6통을 보여주고 놀립니다.
내려오기만 하면 단박 4 5 6으로 치를 하고서 6 9통 방인데,
귀신이 다 된 박뚱뚱이는 그 6통을 가져다가 꽂고 5 8만으로
방이 선 패를 헐어 7만을 던집니다.
 
“안 주면 쓰모하지!……”
 
윤주사가 쓰모를 해다가 훑으니까 8만입니다.
이게 어떨까 하고 만지작만지작하는데, 뒤에서 넘겨다보고 있던
개평꾼이 꾹꾹 찌릅니다. 그것은 6 7 8통을 헐어 4 5 6으로 맞추고
7통 두 장으로 작두를 세우고 8통 넉 장을 앙깡으로 몰고,
8 9만에 7만변짱 방을 달고서 8통 앙깡을 개깡 하라는 뜻인줄 윤주사도
모르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가령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청일색도 아니요
핑호도 아니요, 겨우 멘젱 한판, 쓰거훠 한판, 장가 한판
도합 세판이니, 물론 백짜리 한 개피밖에 안 남은 터에 급한 화망은
면하겠지만, 윤주사의 성미로 볼 때엔 그것은 치사한 짓이요
마작의 도도 취미도 아니던 것입니다.
윤주사가 8만을 아낌없이 내치니까, 손위의 박뚱뚱이가 펄쩍 뜁니다.
6 7만을 헐지 않았으면 그 8만으로 올라갔을 테니까요.
 
“내가 먹지!”
 
손아래서 노름꾼 째보가 6 7 8로 8만을 치하는 걸,
등 뒤에서 감독을 하는 그의 전주(錢主)가, 아무렴 먹고 어서
올라가야지 하고 맞장구를 칩니다.
째보는 윤주사가 만관을 겯는 줄 알기 때문에 부리나케 예순일백스물로
가고 있던 것입니다.
박뚱뚱이가 넉 장째 나오는 녹팔을 쓰모해 던지면서
 
“옜네, 창식이 ……”
 
“그걸 아까워선 어떻게 내나?”
 
윤주사는 그러면서, 쓰모를 해다가 쓰윽 훑는데,
이번이야말로! 하고 벼른 보람이든지, 과연 똥그라미 세 개가 비스듬히
나간 3통입니다. 3 4 5통이 맞고, 인제는 6 9통 방입니다.
윤주사는 느긋해서 9만을 마악 내치려고 하는데,
마침 머릿방에 있던 서사 민서방이 당황한 얼굴로 전보 한 장을 접어
들고 건너옵니다. 마작판에서는 들 몰랐지만 조금 아까 대문지기가
들여온 것을 민서방이 받아 펴보고서,
일변 놀라, 한문자를 섞어 번역을 해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전보 왔읍니다!”
 
“………”
 
윤주사는 시방 아무 정신도 없어 알아듣지 못하고, 9만을 타패합니다.
노름꾼 째보가 날쌔게
 
“펑!”
 
서사 민서방이 연거푸
 
“전보 왔어요!”
 
그러나 창식은 그저 겨우
 
“응? 전보?…… 9만 평허구 무슨 자야? 어디 어디?……”
 
“동경서 전보 왔어요!”
 
“동경서? 으응!”
 
윤주사는 손만 내밀어서 전보를 받아 아무렇게나 조끼 호주머니에 넣고,
박뚱뚱이의 타패가 더디다는 듯이 쓰모를 하려고 합니다.
 
“전보 보세요!”
 
“응, 보지. 번역했나?”
 
“네에.”
 
윤주사는 쓰모를 해다가 만지면서 전보는 또 잊어버립니다.
4만인데 어려운 짝입니다. 손위의 박뚱뚱이는 패를 헐었지만 손아래
째보는 분명 1 4만 인 듯합니다.
 
“전보 긴한 전본데요!”
 
민서방이 초조히 재촉을 하는 것이나, 창식은 여전히
 
“응?…… 응…… 이게 못 내는 짝이야 !…… 전보 무어라구 왔지?”
 
“펴보세요, 저어.”
 
“응, 보지 …… 이걸 내면은 아랫집이 오르는데 …… 왜?
   종학이가 앓는다구?”
 
“아녜요!”
 
“그럼?…… 가마안 있자, 요놈의 짝을 어떡헌다 ?……
   나, 전보 좀 보구서!…… 이게 뱀짝이야! 뱀짝 ……”
 
전보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모해 온 4만을 타패하면 손아랫집이
올라가고, 올라가면 이 좋은 만관이 허사요,
그러니까 4만을 낼 수가 없고, 그래 전보라도 보는 동안에 좀더 생각을
하자는 것입니다.
윤주사는 종시 정신은 마작판의 바닥에다가 두고, 손만 꿈지럭꿈지럭,
조끼 호주머니에서 전보를 꺼냅니다.
 
“…… 이거 4만이 분명 일을 낼 테란 말이야, 으응!”
 
“이 사람아, 마작판에 몬지 앉겠네!”
 
“가만 있자 …… 내, 이 전보 좀 보구우 ……”
 
윤주사는 왼손에 든 전보를 손가락으로 만지작만지작,
접은 것을 펴가지고는 또 한참이나 딴전을 하다가 겨우 눈을 돌립니다.
번역해논 열석자를 읽기에 그다지 시간과 수고가 들 건 없었읍니다.
 
“빌어먹을 놈……”
 
잔뜩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전보를 아무렇게나 도로 우그려 넣고는
 
“…… 에라, 모른다!”
 
하고 여태 어려워하던 4만을 집어 따악 소리가 나게 내쳐 버립니다.
 
“옳아 ! 바루 고자야!”
 
아니나다를까, 손아래 째보가 1 4만 방이던 것입니다.
 끝수래야 일흔 일백서른 !
 
“빌어먹을 놈!”
 
윤주사는 아들 종학이더러, 전보 조건으로 또 한번 욕을 합니다.
그러나 먼저치는 옳게 그 전보 내용에다가 욕을 한 것이지만,
이번치는 만관을 놓친 화풀이로다가 절로 나와진 욕입니다.
 
“큰댁에 기별을 해야지요?”
 
드디어 바가지를 쓰고, 그래서 필경 오백 원 하나가 또 날아갔고,
다시 새판을 시작하느라 마작을 쌓고 있는 윤주사더러,
민서방이 걱정삼아 묻는 소립니다.
 
“큰댁에? 글쎄……”
 
윤주사는 주사위를 쳐놓고 들여다보느라고 건성입니다.
 
“제가 가까요?”
 
“자네가?…… 몇이야? 넷이면 내가 장이군 …… 자네가 가본다?”
 
“네에.”
 
“7 잣구 …… 그래두 괜찮지 …… 아홉이라, 7 9 열여섯 ……”
 
윤주사는 패를 뚜욱뚝 떼어다가 골라 세웁니다.
 
“그럼, 다녀오까요?”
 
“글세 …… 이건 첨부터 패가 엉망이루구나!……
  인제는 일곱 바가지나 쓴 본전 생각이 간절한걸 ……
  가긴 내가 가보아야겠네마는 …… 자네가 가더래두 내가 뒤미처
  불려가구 말 테니깐 …… 녹발 나가거라 ……
  그 놈이 어쩐지 눈치가 다르더라니!…… 빌어먹을 놈!”
 
“차 부르까요?”
 
“응!”
 
“마작 시작해놓구 어딜 가?”
 
박뚱뚱이가 핀잔을 줍니다.
 
“참, 그렇군 …… 그럼 어떡헌다 ? 남풍 나갑니다!”
 
“네에, 여기 동풍 나가니, 펑 하십시오!”
 
“없읍니다!”
 
윤주사는 또다시 마작에 정신이 푹 파묻히고 맙니다.
민서방은 질증이 나서 제 방으로 가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윤직원 영감한테나, 그 며느리 고씨한테나, 서울아씨며
태식이한테나, 창식이 윤주사며 옥화한테나, 누구한테나 제각기 크고
작은 생활을 준 이 정축년(丁丑年) 구월 열 ××날인 오늘 하루는
마침내 깊은 밤으로 더불어 물러갑니다.
오래지 않아, 새로운 날이 밝고, 밝은 그 새날은 그네들에게 다시
어떠한 생환을 주려는지, 더우기 윤주사가 조끼 호주머니 속에 우그려
넣고 만 동경서 온 전보가 매우 궁금합니다.
하나 밝는 날이면 그것도 자연 속을 알게 되겠지요.
 
 
 14 해 저무는 萬里長城[만리장성]
  
만일 오늘이 우리한테 새것을 가져다 주지 않고 어제와 꼬옥 같은 것만
되풀이를 한다면, 참으로 우리는 숨이 막히고 모두 불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어제와 같으면서도(어제치면서도 더 자라난) 한 다른
오늘치를 우리한테 가져다 주고, 그러하기 때문에 그리하는 동안 인간은
늙어 백발로, 백발은 마침내 무덤으로…… 이렇게 하염없어도 인류는
하루하루 더 재미있어 간답니다.
그렇듯 반가운 새날이 시방 시작되느라고 먼동이 휘엿이 밝아옵니다.
날이 밝으면서 뚜우 여섯점 고동이 웁니다. 이 여섯점 고동에 맞추어
우리 낡은 윤직원 영감도 새날을 맞느라고 기침을 했읍니다.
대단 부지런하고, 이 첫새벽(여섯점)에 일어나는 부지런은 춘하추동
구별이 없이, 50년 이짝 지켜오는 절대의 습관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잠이 깨자, 맨 먼저 머리맡의 놋요강을 집어 들고,
밤사이에 피에서 걸러놓은 독소를 뽑습니다. 신진대사라니, 새날이
새것을 들여다가 새생명을 떨치기 위하여 묵은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묵은 것의 배설 ! 그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절절 절절, 쏟아져나오는 액체를 윤직원 영감은 연방 손바닥으로 받아
올려다가는 눈을 씻고, 받아 올려다가는 눈을 씻고 합니다.
매일 아침 소변으로 눈을 씻으면 안력이 쇠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부터
일러오던 말인데, 윤직원 영감은 시방 그 보안법(保眼法)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삼십 년을 두고 해내려오는 것인데, 만일 꼬노리야라도 앓았다면 장님이
되었기 십상이겠지만, 요행 그렇진 않았고, 소변보안법의 덕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미상불 안력이 아직도 좋아서, 원체 잔글씨만
아니면 그대로 처억척 보는 건 사실입니다.
누구, 의학박사의 학위논문거리에 궁한 이가 있거들랑 이걸 연구해서
[뇨(尿)에 의(依)한 시신경(視神經)의 노쇠방지(老衰防止)와 및
그 원리(原理)에 관(關)하여]라는 것을 한번 완성시킨다면
박사 하나는 받아논 밥상일겝니다.
 
윤직원 영감은 이윽고 안약장사를 울릴 그 보안법을 행하고 나서는,
자리옷을 여느 옷으로 갈아 입은 뒤에, 담뱃대에 담배를 붙여 뭅니다.
푸욱푹 피어오르는 담배연기가 아직도 한밤중인 듯 전등불이 환히 켜져
있는 방안으로 자욱이 찹니다. 말도 없고 소리도 없고,
인간이란 단 하나뿐, 사람이 심심하기보다도 전등과 방안의 정물(靜物)
들이 도리어 무료할 지경입니다.
담배가 반 대나 탔음직해서는 삼남이가 부룩송아지 같은 대가리를 모로
둘러, 사팔눈의 시점(視點)을 맞추면서 방으로 들어섭니다.
손에는 빨병을 조심조심 들고……
아침마다 하는 일과라, 삼남이는 들고 들어온 빨병을 말없이 내바치고,
윤직원 영감 또한 말없이 그걸 받아놓더니, 물었던 담뱃대를 뽑고,
연상 서랍에서 소라껍데기로 만든 잔을 꺼냅니다.
 
졸졸 졸졸, 놀면한 게, 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게,
어쩌면 마침 데운 정종 비슷한 것을 잔에다가 그득 따릅니다.
이것이 역시 오줌입니다. 하나, 여느 오줌은 아니고 동변(童便)이라고,
음양을 알기 전의 어린애들의 오줌입니다.
동변을 받아 먹으면 몸에 좋다는 것도, 오줌으로 보안을 하는 것과
한가지로 옛날부터 일러 내려오던 말입니다. 그걸 보면 요새
그 오줌에서 호르몬이라든지 무어라든지 하는 약을 뽑는다는 것도 노상
허황한 소리는 아닌 듯 싶고, 만일 그게 사실이라고 하면, 오줌에 들어
있는 호르몬을 발견해낸 명예는 아무리 해도 우리네 조선 사람의 조상이
차지를 해야 하겠읍니다.
윤직원 영감은 오줌을 그처럼 두루 이용하는데, 일찌기 삼십 년 전
오줌보안법으로 더불어 이 오줌 장복(長服)도 시작했던 것입니다.
시골서는 동변쯤 받아 먹기가 매우 편리했지만, 서울로 오니까는 그것도
대처(大處 : 都市[도시])의 인심이라, 윤직원 영감 말따나,
오줌도 사먹어야 하게 되었읍니다.
 
이웃의 가난한 집으로 어린애가 있는 데를 물색해서 그 어린애들의
아침 자고 일어난 오줌을 받아오기로 특약을 해두었읍니다.
그 대금이 매삭 20전…… 저편에서는 30전은 주어야 한다는 것을,
대복이가 10전만 받으라고 낙가(落價)를 시키다 못해, 20전에 절충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오줌 특약을 해두고는, 새벽이면 삼남이가
빨병을 둘러메고서, 오줌을 걷어오는 것이고,
시방도 바로 그 오줌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빨병에서 오줌을 따르는 동안,
삼남이는 마침 생을 한뿌리 껍질을 벗깁니다.
이건 바로 쩍쩍 들러붙는 약주술로 해장이나 하는 듯이 쪽 소리가 나게
오줌 한 잔을 마시고, 이어서 두 잔, 다시 석 잔, 석 잔을 마시자
삼남이가 생 벗긴 것을 두 손으로 가져다 바칩니다.
 
“그년의 자식이 엊저녁으 짜게 처먹었넝개비다 !
   오줌이 이렇게 짠 걸 보닝개……”
 
윤직원 영감은 상을 찌푸리면서 생을 씹습니다.
오줌이란 본시 찝질한 것이지만 사람의 신경의 세련이란 무서운
것이어서, 삼십 년이나 두고 매일 아침 먹어온 윤직원 영감은 그것이
조금 더 짜고, 덜 짜고 한 것까지도 알아맞힙니다.
 
“……빌어먹을 년의 자식이 아마 간장을 한 종재기나 처먹었넝가부다!”
 
“오늘버텀은 간장 한 종재기씩 멕이지 말라구 가서 말히라우?”
 
과연 간장을 한 종지씩 먹어서 오줌이 짜고, 그래서 영감님으로 하여금
더 짠 오줌을 자시게 한다는 것은, 삼남이로 앉아 볼 때에,
그대로 묵인할 수가 없는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야야, 구성읎넌 소리 내지두 마라 ! 누가 너더러 그런 참견 허라냐?”
 
“그럼, 구성읎넌 소리 안 히라우 !”
 
“참, 너두 딱허다 !”
 
“얘.”
삼남이는 물에 헹구어다 두려고 빨병과 소라잔을 집어듭니다.
 
“약 대리냐 !”
 
“얘.”
 
“약, 잘 부아서 대려 ! 어제 아침치는 약이 너머 졸았더라 !”
 
“얘.”
 
삼남이가 나간 뒤에 윤직원 영감은, 이번에는 보건체조(保健體操)를
시작합니다.
두 다리를 쭈욱 뻗고, 두 팔을 위로 꼿꼿 뻗쳐올리는 게
준비동작(準備動作).
그 다음에 발부리를 목표로, 그것을 붙잡으려는 듯이 허리 이상의
상체와 뻗쳐 올린 두 팔을 앞으로 와락 숙입니다.
그러나 이내 도로 폅니다. 그리고는 또 숙였다가 도로 또 펴고……
이렇게 계속해 숙였다가는 펴고 폈다가는 숙이고, 몸이 비대한데 배가
또한 커서 좀 힘이 드는 노릇이긴 하나, 하나, 둘, 셋 연해 세어가면서
쉰 번을 채웁니다. 쉰 번을 채우니까, 아니나다를까,
맨 처음에는 어림도 없던 것이, 뻗은 발부리와 숙이는 손끝이 마침내
맞닿고라야 맙니다.
 
간단한 ××강장술(××强壯術) 비슷하다고 할는지. 하니 그럴 바이면
라디오 체조를 하는 게 좋지 않으냐고 하겠지만, 그거야 젊은애들이나
할 것이지, 노인이 어디 점잖지 않게시리……
후줄근하게 땀이 배고 약간 숨이 가쁜 것을,
앞 미닫이를 열어놓고 앉아서 서늑서늑한 아침 바람을 쏘입니다.
날은 훨씬 밝았고, 바람 끝이 소스라치게 싸늘합니다.
 
“허 날이 이렇기 !”
 
혼자 걱정을 하는데, 마침 대복이가 아침 문안삼아, 오늘 하루의 일을
협의할 겸 건너왔읍니다.
 
“이, 날이 이렇기 냉히여서 큰일 안 났넝가 !”
 
“글씨올시다 !……”
 
대복이는 문안인사도 할 사이가 없고, 공순히 꿇어앉습니다.
 
“……이러다가 되내기(된서리)나 오는 날이면 큰일나겄는디요.”
 
“나두 허느니 말이네 !…… 하누님두 원, 무슨 심청이람 말이여.
  서리두 서리지만, 우선 늦베(晩種稻[만종도])가 영글(結實[결실])이
  들 수가 있어야지 ! 그러잖이두 그놈의 수핸지 급살인지 때민에
  도지(賭租[도조])를 감히여 달라고 생지랄덜을 허넌디 !"
 
가을로 접어들면서, 윤직원 영감과 대복이가 노상 걱정을 하게 된 것이
금년 추숩니다. 농형(農形)이 대체로 풍년은 풍년이지만,
전라도에 수해가 약간 있었고, 윤직원 영감네 논도 얼마간 해를
입었읍니다. 어느 것은 겨우 반타작이나 되겠고, 어는 것은 사태와 물에
말끔하게 씻겨 내려가서, 벼 한톨 추수는커녕 그 논을 다시
파 일구는 데 되레 물역이 먹게 생겼읍니다.
이것은 지난 백중 무렵에 대복이가 실지로 내려가서 보고 온 것이니까,
노상 소작인들의 엄살로만 돌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기야 그렇다고 해도 윤직원 영감은 내밀 배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논으로 말하면 죄다 도조를 선세(先稅)로
   정했으니까 상관이 없다.
 
소작계약에도 씌어 있지만,
흉년이 들어서 추수가 더얼 났다거나 또 아주 없다거나 하더라도,
선세인만큼 소작인은 정한 대로 도조를 물어야 경우가 옳지 않으냐.
만약 흉년이라고 도조를 감해주기로 든다면, 그러면 그 반대로 풍년이
들어서 벼가 월등 많이 나는 해는 도조를 처음 정한 석수(石數)보다
더 받아도 된단 말이냐? 그때에 가서 도조를 더 물라면 물 테냐?
물론 싫다고 할 것이다. 거 보아라. 그러니까 흉년 핑계를 대고서
도조를 감해 달라고 하는것은 공연한 떼다.’
매우 지당한 주장입니다. 그러나 경위는 빠질 게 없는데,
윤직원 영감의 말대로 하면
 
‘세상이 다 개명을 해서 좋기는 좋아도, 그놈 개명이 지나치니까는
  되레 나쁘다. 무언고 하니, 그 소위 농지령이야 소작조정령이야 하는
  천하에 긴찮은 법이 마련되어 가지고서, 소작인놈들이 건방지게 굴게
  하기, 그래 흉년이 들든지 하면 도조를 감해내라 어째라 하기,
  도조를 올리지 못하게 하기, 소작을 떼어옮기지 못하게 하기……’
 
이래서 모두가 성가지고 뇌꼴스러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 땅 가지고 내 맘대로 도조를 받고, 내 맘대로 소작을 옮기고
   하는데, 어째서 도며 군이며 경찰이 간섭을 하느냐?’
이게 도무지 속을 알 수 없고, 해서 불평도 불평이려니와
윤직원 영감한테는 커다란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던 것입니다.
아뭏든 싹수가 줄잡아야 천 석은 두웅둥 뜨게 되었고
(물론 배짱대로야 버티어는 보겠지만 도나 군이나 경찰의 권유며
간섭에는 항거를 해서는 못쓰니까 말입니다.) 그러자니 생으로 배가
아파 요새 며칠 대복이와 주종이 맞대고 앉으면 걱정이 그 걱정이요,
공론이 어떻게 하면 묘한 꾀를 써서 소작인들을 꼼짝 못하게 하여 옹근
도조를 받을까 하는 그 공론입니다.
 
그런데 우환 중에 날이 이렇게 조냉(早冷)을 해서, 벼의 결실(結實)을
부실하게까지 하려 드니 더욱 걱정이 안될 수가 없읍니다.
대복이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는 참에, 삼남이가 약을 달여
짜가지고 들여다놓습니다. 삼과 용을 주재로 한 보약입니다.
오줌도 먹고 보건체조도 하고, 좋은 보약도 먹고 해서 어떻게든지 몸을
충실히 하여 오래오래 살고 싶은 게 윤직원 영감의 크고 큰 소원입니다.
만석의 부를 그대로 누리면서(아니, 자꾸자꾸 더 늘려가면서) 오래오래
백살 이백 살, 백 살 이백 살이라니 천살 만 살(아니 천지가
무궁할테니, 그천지로 더불어 무궁토록) 영원히 살고 싶습니다.
이 가산을 남겨두고, 이 좋은 세상을 백 살을 못 살고서 죽어버리다니,
그건 도저히 원통하고 섭섭해 못할 노릇입니다.
옛날의 진시황(秦始皇)은 영생불사를 하고 싶어, 동남․ 동녀 5천 명을
동해의 선경으로 보내어 불사약을 구하려고 했다지만,
우리 윤직원 영감도 진실로 그만 못지 않게 영생의 수명을 누리고
싶습니다. 
하기야 걸핏하면, 머 내가 앞으로 50년을 더 살겠느냐,
백 년을 더 살겠느냐, 다직 한 십 년 더 살다가 죽을걸……
어쩌구 육장 이런 소리를 하곤 하기는 합니다.
 
물론 그것이 천지의 공도(公道)요 하니까 사실도 사실이겠지만,
윤직원 영감은 비록 말은 그렇게 할값에, 마음은 결단코 앞으로 한 10년
고거나 더 살고서 죽고 싶진 않습니다.
절대로 영생불사…… 진시황과 같이 간절하게 영생불사를 하고
싶습니다. 윤직원 영감이 재산을 고이고이 지키면서 더욱더욱 늘리고,
일변 양반을 만들어내고자 군수와 경찰서장을 양성하고 하는 것은,
진시황으로 치면 오랑캐를 막아 진나라를 보전하기 위해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던 역사적이요 세계적인 그 토목사업과
다름없는 역사적인 정신적 토목사업입니다.
만리의 장성을 높이 쌓아, 나라를 천지로 더불어 길이길이 지키고,
나는 불사약을 먹어 이 나라의 주재자로 이 영광을 무궁토록 누리고……
하자던 진시황과, 만석꾼의 가산을 더욱 늘려가면서 천지로 더불어
길이길이 지키고, 양반을 만들어 가문을 빛내되, 나는 오줌을 먹고
보건체조를 하고 보약을 먹고 하여, 이 집안의 가장(家長)으로
이 영광을 무궁토록 누리고 하자는 윤직원 영감과,
그 둘은 조금도 서로 다를 바다 없는 것입니다.
 
그럭저럭 여덟시가 되자, 윤직원 영감은 안으로 들어가서 조반을 자시고
나와, 다시 그럭저럭 아홉시가 되었읍니다.
하늘은 씻은 듯이 맑고 햇볕은 양기롭습니다. 정히 좋은 날이요,
윤직원 영감한테는 그새와 마찬가지나, 새로이 행복된 오늘입니다.
오후쯤 해서는 올챙이와 말이 얼린 수형조건으로 5천 9백 50원을 주고서
7천 원짜리 수형을 받아, 1천 50원의 이익을 볼 테니, 그중 105원은
구문으로 올챙이를 주더라도 9백 45원이고 본즉, 오늘도 벌이가
쑬쑬하여 기쁘고. 그런데 오늘은 또 춘심이와 다 이러쿵저러쿵하게
될 날이어서, 이를테면 특집호화판(特輯豪華版)입니다.
행복과 만족까지는 모르겠어도, 윤직원 영감 이외의 다른 식구들도 죄다
평온무사한 것만은 적실합니다.
 
태식이는 골목 구멍가게에 나가서 맘껏 오마께를 뽑고 사먹고 하니,
무사태평을 지나 오히려 행복이고. 경손이는 간밤에 춘심이로 더불어
랑데부를 하면서, 2원돈을 유흥하던 추억에 싸여 시방 학과에도 여념이
없는 중이고. 서울아씨는 추월색을 일찌감치 들고 누웠으니,
오만 시름 다 잊었고……
뒤채의 두 동서는 바느질에 여념이 없는 중, 박씨는 남편 종수가 오늘은
집에를 들어오겠지야고 안심코 기다리고……
고씨는 새벽 세시가 지나 술이 얼큰해 들어오더니 여태 태평몽이고……
동소문 밖 ××원 별장에서는 종수가 배반이 낭자한 요리상 앞에
기생들과 병호로 더불어 역시 태평몽이고……
옥화는 간밤의 일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뭘 집 한 채와 패물과
또 현금으로 2, 3천 원 몽똥그렸으니, 발설이 되어 윤주사와 떨어져도
그다지 섭섭할건 없다고 안심이고.
 
윤주사도 도합 4천 5백 원을 마작으로 펐으나 5천 원도 채 못되는 것,
술 사먹은 폭만 대면 고만이라고 새벽녘에야 든 잠이 시방 한밤중이요,
자고 있으니까 동경서 온 그 전보의 사단도 걱정을 잊었고……
다 이렇습니다. 그렇고 다시 윤직원 영감은……
윤직원 영감은 오정때에 오라고 한 춘심이를 어재 다뿍 늘어지게
오정 때에 오라고 했던고. 또 제 아범이 앓는다고 불려갔으니 혹시
못 오기나 하면 어찌 하노 해서, 바야흐로 등이 단 참인데,
웬걸 아홉시 치는 소리가 때앵땡 나자 고년이 씨근버근 해뜩반뜩
달려들지를 않는다구요!
어떻게도 반가운지! 윤직원 영감은 앞미닫이를 더럭 열면서
뛰어나오기라도 할 듯이 엉덩이를 떠들써억, 커다란 얼굴에다가
하나 가득 웃음을 흐트립니다.
 
“어서 오니라…… 아범은 앓넌다더니 인재 갱기찮어냐?”
 
“내애, 인저 다 나았어요……”
 
춘심이는(속으로 요옹용 하면서) 토방에 가 선 채 방으로 들어가려고도
않습니다.
 
“……어서 나오세요, 반지 사러 가게요……”
 
“헤헤헤! 그년이 이저빼리지두 안힜네 !……
  그리라, 가자! 제엔장 맞일……”
 
“내가 그걸 잊어버려요 ? 밤새두룩 잠두 아니 잔걸 !
  아, 오정때 오라구 허신 걸 아홉점에 왔다면 고만이지 머어……
  어서 옷 입으세요 !”
 
“오냐. 끙……”
 
윤직원 영감은 뒤뚱거리고 일어서서 의관을 차립니다.
 
“……반지 파넌 가게서
   쬐깐헌 여학생이 반지 찐다구 숭보면 어쩔래 ?”
 
“남이 숭보는 게 무슨 상관 있나요 ? 나만 좋았으면 고만이지……”
 
“으응 그리여잉 ! 그렇다먼 갱기찮지 !”
 
“갠찮기만 해요 ? 머……”
 
“오냐 오냐 !……”
 
괜히 속이 굴져서, 말이 하고 싶으니까 입을 놀리겠다요.
어제 오후 부민관의 명창대회에 가던 때처럼, 탕건 받쳐 통영갓에, 윤이
치르르 흐르는 안팎 모시 진솔것에 하얀 큰 버선에다가 운두 새까마니
간드러진 가죽신에, 은으로 개대가리를 한 개화장에,
합죽선에 이렇게 차리고 처억 나섭니다.
덜씬 큰 윤선 옆에 거룻배 하나가 붙어서 가는 격이라고나 할는지,
아뭏든 이 애인네 한쌍은 이윽고 진고개 어귀에 나타났읍니다.
사람마다 모두들 윤직원 영감을 한번씩 짯짯이 보면서 지나갑니다.
더구나 때묻은 무명 고의적삼에 지게를 짊어지고, 붉은 다리를 추어
올린 요보가 아니면, 뒷짐 지고 흰 두루마기에, 어둔 얼굴에 힘없이
벌린 입에, 어릿거리는 눈으로 가게를 끼웃끼웃, 가만히 들어와서는
물건마다 한참씩 뒤적뒤적하다가 슬며시 나가버리는 센징들만이
조선 사람인 줄 알기를 십상으로 하던 본정통 주민들은,
시방 이 윤직원 영감의 진고개 좁은 골목이 뿌드읏하게시리 우람스런
몸집이며, 위의 있고 점잖은 얼굴이며 신선 같은 차림새하며가 풍기는
얌반상의 위풍에, 그만 압기라도 되는 듯 제각기 눈을 홉뜨고서
하 입을 벌립니다.
 
좀 심한 천착인 것 같으나, 윤직원 영감으로 해서 조선 사람에도 요보나
센징 말고 조센노 얌반상이 있다는 것을 그야말로 재인식했다고 할 수가
있겠고, 따라서 윤직원 영감 자신은 그 필요는커녕 도리어 긴찮은 일로
여기는 것이지만(그렇기 때문에 애꿎이) 조선 사람을 위해 무언의
만장 기염을 토한 셈이 되어버렸읍니다.
앞을 서서 가던 춘심이가 초입을 조금 지나 어떤 귀금속상점 앞에
머무르더니, 진열창 속을 파고 들여다봅니다. 제가 눈익혀 두었던
그 7원 50전짜리 반지를 찾는 속인데, 그러나 아무리 들여다보아야
보이질 않습니다.
낙심이 되어, 어쩔까 하다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윤직원 영감을 데리고
그대로 가게 안으로 들어섭니다.
 
“이랏샤이마세.”
 
구경도 할 겸,
점원들이 있는 대로 대여섯 일제히 합창을 하고 나섭니다.
춘심이는 점원 하나를 상대로, 권번에서 배운 토막일어를 이용하여,
문제의 7월 50전짜리 반지를 찾습니다.
 
“네에 ! 그건입쇼 !……”
 
답답히 듣고 있던 점원은 척 조선말로 대응을 합니다.
 
“……그건 마침 다 팔렸읍니다마는 그거 비슷하구두……”
 
점원은 부지런히 진열장을 안에서 열고, 빨갱이 파랭이 노랭이 깜쟁이,
모두 올망졸망 알룽달룽, 반지가 들이박힌 곽을 꺼내다 놓더니,
그중 빨갱이한 놈을 뽑아 춘심이를 줍니다.
 
“이것이 썩 좋습니다. 아까 말씀하시던 거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뽄두 이뿌구, 돌두 빛깔이 곱구…… 네헤.”
 
춘심이가 받아 들고 보니, 아닌게아니라 요전치보다 더 이쁘고 좋아
보입니다. 다시 왼쪽 무명지에다가 끼어 보니까는,
아주 마춤으로 꼭 맞습니다.
 
“이거 사주세요.”
 
춘심이는 정가표가 실 끝에서 아른거리는 반지를 손에 낀 채,
윤직원 영감의 코밑에다가 들이댑니다.
 
“그게 7월 50전이라냐? 체 참, 손복허겄다 !……”
 
윤직원 영감은 두루마기 자락을 젖히고 염낭끈을 풀려다가,
점원을 돌아봅니다.
 
“……이게 7원 50전이라먼 너머 과허니 조깨 깎읍시다 ?”
 
“아니올시다 ! 이건 10원입니다, 네헤.”
 
“엉 ? 이게 10원이여 ?…… 아니, 머시냐, 7원 50전짜리 산다더니,
  10원짜리를 골르냐 ?”
 
“그래두 그건 죄다 팔리구 없다는걸요, 머……”
 
“그럼 못 사겄다 ! 다런 디루 가던지, 이담날 오던지 그러자 !”
 
“난 싫어요 ! 이거가 꼬옥 맘에 드니깐 이거 사주세야지, 머……”
 
“에이 ! 안될 말 !”
 
윤직원 영감은 조그마한 걸상에서 커다란 엉덩이를 쳐듭니다.
 
“머, 2원 50전 상관이올시다 ! 네헤……”
 
점원이 알심 있게 만류를 하던 것입니다.
 
“……앉으십쇼. 이게 10원이라두 7원 50전짜리보다
   갑절이나 물건이 낫습니다. 몸두 훨씬 더 굵구요, 네헤.”
 
“그리두 여보, 원……”
 
“아 그리구, 할아버지께서 손녀애기 반질 사주시자면
   좀 쓸 만한 걸루, 네헤.”
 
죽일 놈입니다. 아무리 모르고 한 소리라지만,
글쎄 애인끼리를 할아버지요 손녀애기라고 해놓았으니,
욕치고는 이런 욕이 어디 있겠읍니까 ?
윤직원 영감은 그렇다고, 너 이놈 ! 그건 무슨 고연 소린고 !
이렇게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 속으로만 창피해 죽겠는데,
그러나 춘심이는 되레 재미가 있다고 생글생글 웃습니다.
 
“난 머, 이거 꼭 사주어예지 머, 난 싫여요 !”
 
싫다고 하니 다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허 ! 거참…… 으음 ! 거참 !”
 
윤직원 영감은 마지 못해 도로 앉습니다.
그 두 마디의 탄성이 역시 의미가 심장합니다.
첫마디는 춘심이의 위협에 대한 항복이요, 다음치는 할아버지와
손녀애기가 다시금 창피하다는 소리구요.
 
“그리서 ? 꼭 그놈만 사야 헌담 말이냐 ?”
 
“내애, 해해……”
 
“여보, 쥔양반 ?”
 
“네에, 헤.”
 
“사기넌 삽시다. 헌디, 즘 과허니 조깨만 드을 냅시다.”
 
“에누린 없읍니다 네헤. 머, 10원이라두 비싼 값이 아니올시다. 네.”
 
“머얼 안 비싸다구 그리여 ! 잔말 말구서 8원만 받우 !”
 
“하아, 건 안되겠읍니다. 이건 꼭 정가대루 받아두 이문이 별루
  없읍니다, 네…… 에또 저어 기왕 점잖어신 어른께서 말씀하신 거니,
  20전만 덜해서 9원 80전에 드리지요, 네헤.”
 
“귀년시리 시방 우넌 소리 허니라구 ! 8원만 받어요 8원.”
 
“아, 이런 데 와선 그렇게 에누릴 않는 법이에요 !
    생선장순 줄 아시나봐!”
 
춘심이가 핀잔을 주는 소립니다. 그러고 보니 윤직원 영감도,
이년아 너는 잠자코 있지 않고서 무얼 초라니처럼 나서느냐고,
한바탕 욕을 해야 할텐데, 억지춘향이가 아니라 애먼 할아버지가
되었으니, 어떻게 손녀 애기더러 쌍스런 입잣을 놀립니까.
 
“야야, 그런 소리 마라 ! 세상으 에누리 읎넌 흥정이 어디 있다데야 ?
  나넌 나라에 바치넌 세전(納稅[납세])두 에누리를 허넌 사람이다 !”
 
점원은,
농담을 잘하는 재미있는 할아버지라고 빈들빈들 웃고만 있읍니다.
윤직원 영감은 꿈싯꿈싯, 염낭에서 돈을 암만큼 꺼내어 조심해서
세어 보고 만져보고 또 들여다보고 하더니 별안간, 남 깜짝 놀라게시리
 
“옜소 ! 8원 50전이요. 나넌 인재넌 몰루……”
 
하고, 말과 돈을 한꺼번에 내던지고는 몸집까지 벌떡 일어섭니다.
 
“……가자, 인재넌 다아 되얐다. 어서 가자 !”
 
점원은 기가 막혀서 엉거주춤, 사뭇 붙들 듯 안된다고 날뜁니다.
다시 한 시간은 넘겨 승각을 했을 겝니다. 마구 싸우다시피 9원 10전에
그 반지를 뺏어가지고 가게를 나오니까 열한시가 훨씬 넘었읍니다.
진고개를 빠져나와 전차정류장으로 광장을 건너가면서,
춘심이는 손에 낀 반지를 깨웃깨웃 못견디게 좋아합니다.
 
“춘심아 ?”
 
“내애 ?”
 
해뜩 돌려다보고 웃으면서, 또 반지를 들여다봅니다.
 
“반지 사서 찌닝개 좋 냐 ?”
 
“거저 그렇죠, 머……”
 
“저런 년 부았넝가 ! 이년아, 나넌 네 때민에 돈 쓰구,
   망신당허구 그맀다 !”
 
“망신은 왜요 ?”
 
“아, 그 녀석이 할아버지가 머 ? 손녀애기를 어쩌구 않더냐 ?”
 
“해해, 해해해해.”
 
“아무턴지 인재넌 내 말 들지 ?”
 
“내애.”
 
“흐음, 아무렴 그리야지. 저어 이따가 저녁에 에……”
 
“내애.”
 
“일찌감치 오니라, 응 ?”
 
“내애.”
 
“날 돌르먼 안되야 ?”
 
“내애.”
 
“꼬윽 ?”
 
“글쎄, 걱정 마세요 !”
 
“으음.”
 
“저어 참, 영감님 ?”
 
“왜야 ?”
 
“우리 저기 미쓰꼬시 가서, 난찌 먹구 가요 ?”
 
“난찌 ? 난찌란 건 또 무어다냐.”
 
“난찌라구, 서양 즘심 말이예요.”
 
“서양 즘심 ?”
 
“내에, 퍽 맛이 있어요 !”
 
“아서라 ! 그놈의 서양밥, 말두 내지 마라 !”
 
“왜요 ?”
 
“내가 그년의 것이 좋다구 히여서, 그놈의 디 무어라더냐 허넌 디를
   가서, 한번 사먹다가 돈만 내버리구 죽을 뻔히였다 !”
 
“하하하, 어떡허다가 ?”
 
“아, 그놈의 것 꼭 소시랑을 피여 논 것치름 생긴 것을 주먼서
   밥을 먹으라넌구나 ! 허 참……”
 
윤직원 영감이 만약 전감이 없었다면 춘심이한테 끌려가서
그 서양점심을 먹느라고 한바탕 진고개에 있어서의 조선 정조를 착실히
나타냈을 것이지만, 요행 그 소위 쇠스랑 펴놓은 것 ─ 포크에 대한
반감의 덕으로 작파가 되었읍니다.
종로 네거리에서 춘심이를 일단 작별하면서,
또다시 두번 세번 다진 뒤에 계동 자택으로 돌아오니까,
마침 뒤를 쫓듯 올챙이가 수형할인을 해 쓴다는 철물교다리의 강씨를
데리고 왔읍니다. 대복이도 가타고 했고, 당장 7천 원 수형을 받고
5천 9백 50원 소절수를 떼어주었읍니다. 따로 105원짜리를 구문으로
올챙이한테 떼어준 것은 물론이구요. 강씨와 올챙이를 돌려보내고
나니까, 드디어 오늘도 945원을 벌었다는 만족에 배는 불룩 일어섭니다.
 
간밤에 창식이 윤주사가 마작으로 4천 5백 원을 펐고,
종수가 2천 원짜리 수형을 병호한테 야바위당했고, 2백여 원어치 요리를
먹었고, 그리고도 오래잖아 돈 2천 원을 뺏으려 올 테고 하니,
윤직원 영감이 벌었다고 좋아하는 9백여 원의 열 갑절 가까운
9천여 원이 날아갔고, 한즉 그것은 결국 옴팡장사요,
이를테면 만리장성의 한귀퉁이가 좀이 먹는 것이겠는데, 그러나
윤직원 영감이야 시방 그것을 알 턱이 없던 것입니다.
다시 그리고, 이따가 저녁에 춘심이를 사랑하게 될 행복에 이르러서는
침이 흥건히 괴어 방금 뚜우 오정소리를 듣고도 이어 점심을 먹으러
들어갈 여념이 없이 술에 취하듯 푹신 취해버렸읍니다.
마침 그땝니다. 마당에서 별안간 뚜벅뚜벅 들리는 구두 소리에 무심코
미닫이의 유리쪽으로 내다보노라니까, 웬 양복가랭이가 펄쩍거리고
달려들지를 않는다구요 !
어떻게도 놀랐는지, 벌떡 일어서서 안으로 피해 들어갈 체세를
가집니다. 요마적 양복장이라고는 좀처럼 찾아오는 법이 없지만,
어찌하다가 더러 찾아온다치면 세상 그거같이 싫고 겁나는 것은
없읍니다.
 
사람은 누구 없이 뱀을 섬뻑 만나면 대개는 깜짝 놀라 몸이 오싹해지고,
반사적으로 적의(敵意)와 경계의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오랜오랜 조상, 즉 사전인류(史前人類)가 파충류의
전성시대에 그들의 위협 밑에서 수백만 년을, 항상 공포와 투쟁과
경계를 하고 살아오는 동안, 그것이 어언간 한 개의 본능이 되어졌고,
그러한 조상의 피가 시방도 우리 인류의 몸에 흐르고 있는 때문이라고
말하는 학자가 있읍니다. 그럴 듯한 해석이고,
한데 윤직원 영감이 양복장이가 찾아오게 되면 우선 먼저 놀라
우선 먼저 피하려 드는 것도 그와 비슷한 것이라고 하겠읍니다.
기미년 이후 한동안, 소위 양복청년이라는 별명을 듣는 사람들한테
그놈 새애까만 육혈포 부리 앞에 가슴패기를 겨냥대고 앉아 혼비백산,
돈을 뺏기던 일…… 그렇게 돈 뺏기고 혼이 나고 하고서도,
다시 경찰서의 사람들한테 이실고실 참고 심문을 당하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던 일……
지방의 유수한 명망가라고 해서 그네들과 무슨 연락이 있을 혐의는
아니었고, 범인 수사에 필요한 심문을 하던 것인데,
일 당하던 당장 혼백이 나갔던 윤직원 영감이라, 대답이 자꾸만 외착이
나곤 해서 피차에 수고로왔읍니다. 치가 떨리고 이가 갈리는 게,
언제고 섬뻑 찾아드는 양복장이던 것입니다.
그러한 위험객 말고도, 다시 생명보험회사의 외교원……
누구나 돈냥 있는 사람은 다 겪어본 시달림이지만,
윤직원 영감도 많이 당했읍니다.
 
하기야 윤직원 영감 당자는 나이 많으니까 가입할 자격이 없기 때문에,
가로되 자제 몫으로, 가로되 손자 몫으로, 가로되 무슨 몫으로,
이렇게 조릅니다.
윤직원 영감의 대답은 매우 신랄해서
 
“게 여보 ! 원 아무런들 날더러 자식 손자 보험 걸어놓구서,
   그것 타 돈 먹자구 그것덜 죽기 배래구 앉었으람 말이요 ?”
 
이렇습니다. 그러나 그만 소리에 퇴각할 사람들이 아니요, 찰거머리처럼
붙어앉아서는 쫀드윽쫀득 졸라댑니다.
이처럼 파깃증을 생으로 내주는 게 역시 불쑥 찾아오는 양복장이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기부를 받으러 오는 패……
대개 민간의 교육사업이나 또는 임시 임시의 빈민 혹은 이재민의
구제사업인데, 그들이 찾아와서는 사연을 주욱 이야기한 후,
그러니 영감께서도…… 이렇게 청을 합니다.
윤직원 영감은 다 듣고 나서는, 시침 뚜욱 따고 대답입니다.
 
“예에 ! 거 다아 존 일이지요. 히여야 허구말구요……
   그런디 나넌 시방 나대루 수십년지간 해마닥 수수백 명을 구제허구
   있으닝개루, 그런 기부나 구제애넌 참예를 안 히여두 죄루 가던
   안헐 티닝개루 구만둘라우 !”
 
“네에 ! 거 참 매우 장하십니다 ! 사업은 무슨 사업이신지요 ?”
 
객은 듣던 바와는 다르다고 탄복해서,
아뭏든 그 사업 내용을 수인사로라도 물어볼 밖에요.
 
“예에…… 내가 시방 한 만 석 가량 추수를 허우. 그러구 작인이
  천명 가까이 되지요. 그러닝개 천 명 가까운 작인덜한티다가
  논을 주어서, 농사를 히여먹구 살게 허넝게 구제허구넌
  큰 구제 아니요 ?”
 
이 말에 웬만한 사람은 속으로 웃고 진작 말머리를 돌리겠지만, 좀 귀가
무딘 패는 더욱 탄복을 하여 묻습니다.
 
“네에 ! 그러면 근 천 명 되는 소작인들한테 소작료를 받지 않으시구,
   논을 무료루 내주시는군요 ? 네에 ! 허어 !”
 
“아니, 안 받으먼 나넌 어떻게 허구 ?…… 원 참…… 여보 글씨,
  제 논 각구 앉어서 도지(小作料[소작료])두 안 받구,
  그냥 지여먹으라구 내주넌 그런 빙신천치두 있다우 ?”
 
윤직원 영감은 이렇게 당당히 나무랍니다.
듣는 사람은 분반(噴飯)할 넌센스나 또는 농담으로 돌리겠지만,
윤직원 영감 당자는 절대로 엄숙합니다.
지주가 소작인에게 토지를 소작으로 주는 것은 큰 선심이요,
따라서 그들을 구제하는 적선(積善)이라는 것이 윤직원 영감의 지론이던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의 신경(神經)으로는 결코 무리가 아닙니다.
논이 나의 소유라는 결정적 주장도 크지만, 소작경쟁이 언제고 심하여,
논 한 자리를 두고서 김서방 최서방 이서방 채서방 이렇게 여럿이,
제각기 서로 얻어 부치려고 청을 대다가는 필경 그중의 한 사람에게로
권리가 떨어지고 마는데, 김서방이나 혹은 이서방이나 또는
채서방이나에게로 줄 수 있는 논을 최서방 너를 준 것은 지주 된
내 뜻이니까, 더우기나 내가 네게 적선을 한 것이 아니냐?……
이것이 윤직원 영감의 소작권(小作權)에 의(依)한 자선사업(慈善事業)의
방법론(方法論)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그리하여 자기가 찬미하는, 가려 경찰행정 같은 그런
방면의 사업에다가 자진하여 무도장(武道場) 건축비를 기부한다든지
하는 외에는 소위 민간측의 사업이나 구제에는 절대로 피천 한푼
내놓질 않는 주의요, 안할 사람인데, 번번이들 찾아와서는 졸라대고
성가시게 하고 하는 게 누군고 하면, 역시 양복장이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시골서 이래로 근 20년 각종 양복장이에게 위협과 폐해와
졸경을 치르던 윤직원 영감인지라, 인류의 조상이 수백만 년 동안
파충류와 싸우고 사느라 그들을 대적하고 경계하고 하는 본능이 생겨,
그 피가 시방 우리의 몸에까지 흐르고 있듯이,
윤직원 영감도 양복장이라면 덮어놓고 적의(敵意)가 솟고,
덮어놓고 싫어하는 제이의 본능이 생겨졌읍니다.
윤직원 영감은 그래서 방금 뚜벅거리고 달려드는 양복가래쟁이를
보자마자, 엇뜨거라고 벌떡 일어서서 뒷문을 열고 안으로 피신을
하려는 참인데, 그러나 시기는 이미 늦어, 양복장이가 앞 미닫이를
연 것이 더 빨랐읍니다.
화가 나가 홱 돌려다보니까, 요행으로 낯선 양복장이가 아닌 게 안심은
되었지만, 속아 놀란 것이 그 담에는 속이 상합니다.
 
“야, 이 잡어뽑을 놈아, 지침이나 좀 허구 댕기라 !……”
 
방금 동소문 밖 ××원 별장의, 그야말로 주지육림(酒池肉林)으로부터
돌아오는 종숩니다.
욕은, 담배 한대 피우는 정도로 언제나 먹어두는 것, 아무렇지도 않아
하고 조부에게 절을 한자리 꾸벅, 무릎을 꿇고 앉습니다.
 
“무엇허러 또 올라왔냐 ?”
 
“볼일두 좀 있구, 그래서……”
 
“볼일이랑 게 별것 있간디 ? 매양 돈이나 뺏으러 쫓아왔지 ?……
  궈년시리 돈 소리 헐라거던 아예 내 눈앞으 뵈지두 말구 가삐리라 !”
 
이렇게 발등걸이를 당하고 보니,
종수는 마치 샘고누의 첫구멍을 막힌 격이라 말문이
어디로 열릴 바를 몰라, 잠시 고개만 숙이고 대답이 없읍니다.
 
“대체 너넌 그년의 군순지 막걸린지넌 어떻게 되넌 심이냐 ? 심이 !
   ……”
 
화가 아니 났더라도 짐짓 난 체해야 할 판, 이윽고 재털이에 담뱃대를
땅따앙, 음성도 역정스럽던 그대로 딴 조목을 들어 지천을 합니다.
 
“……응? 그놈의 군수 하나 바래다가 고손자 ✕ 패겄다. 네엔장맞일 !”
 
10년 계획이라 속은 말짱하면서도, 주마가편이라니 재촉을 해, 10년보다
더 속히 되면 속히 될수록 좋은 노릇이니까요. 그러나 이 말에서 종수는
언뜻 돈 발라낼 꾀가 생각이 났읍니다.
 
“그건 염려 없어요.
   그리잖어두 이번에 그 일 때문에 겸사겸사해서……”
 
“응 ? 거 듣너니 반간 소리다 !…… 그리서 ? 다 되얐냐 ?”
 
단박 풀어져서 좋아합니다. 참으로, 애기같이 천진난만한 할아버집니다.
 
“오라잖어서 본관 사령은 나올려나 봐요 !”
 
“그리여 ? 참말이냐 ?”
 
“네에.”
 
“그렇다면 작히나 좋겄냐 ! 그런디 그 담에,
   참말루 군수는 은제 되냐?”
 
“그건 본관이 된 댐엔, 다아 쉬어요 !”
 
“그렇더래두 멫해 있어야 될 것인디 ?”
 
“한 4, 5년이 !…… 그런데 저어……”
 
“응 ?”
 
“이번에 계제에 한 2천 원 좀 들어야 일이 수나롭겠어요 !”
 
“그러먼 그렇지 ! 그러먼 그리여 !……”
 
윤직원 영감은 펄쩍 뜁니다. 마침 옛날의 그 혼란스럽던 판임관, 그리고
그 웃길 주임관, 그들의 금테 두른 양복, 금장식한 칼,
이런 것을 손자 종수에게 입혀놓고 양반의 위풍을 떨치는 장면을
연상하면서, 비록 시방은 그러한 제복이 없어는졌을망정 판임관이면
금테가 한 줄, 다시 주임관으로 군수가 되면 금테가 두 줄,
이렇대서 한참 좋아하는 판인데, 밉살머리스럽게 돈 소리를 내놓고
앉았으니, 고만 정이 떨어지고, 또다시 부아가 버럭 나던 것입니다.
 
“……잡어뽑을 놈 ! 궈년시리 돈이나 협잡질헐라닝개루,
    시방 쫓아올라와서넌, 씩둑꺽둑, 날 돌라먹을라구 그러지야 ?
    누가 네 속 모를 줄 아냐 ?
    글씨 일 다아 되얐다면서 무슨 돈이 2천 원이나 드냐 ? 들기를……”
 
“지가 쓸려구 그리는 게 아니예요 !”
 
“늬가 안 쓰구, 그러먼 여산(廬山) 중놈이 쓴다냐 ?”
 
“선사감으루 금강석반질 하나 살려구 그래요 !”
 
“뭐어 ?…… 아니 세상에 2천 원짜리 반지가 어디 있으며, 또오 있다구
  치더래두, 그 사람은 그걸 손꾸락으다 찌구 베락을 맞이라구,
  2천 원짜리 반지를 사다가 슨사를 헌담 말이냐 ? 죽으머넌 썩을 놈의
  손꾸락으다가, 아무리 귀골이기루서니 2천 원짜리를 찌다께,
  베락맞일 짓이 아니여 ! 나넌 보닝개루 9원 10전짜리두 버젓허니
  좋기만 허더라…… 대체 누가 조작이냐.
  네 소견이냐 ? 누가 시켜서 그러냐 ?”
 
“군수영감이 그리세요. 저 거시키, 요전번 올라왔을 때 마침 지전씰
  만났었는데, 할아버지두 잘 아시잖어요 ? 왜 저 총독부 내무국에 있는
  그 지전씨 !”
 
“그리서 ?”
 
“구경을 나온 길인지, 부인허구 아이들을 모두 데리구
  미쓰꼬시루 들어오는 걸 만났더래요. 퍽 반가워하면서, 제 말두 묻구,
  잊어버리던 아니했노라구…… 그러면서 같이 산볼 하자구 해서
  미쓰꼬시 안을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마침 귀금속부에 갔다가 지전씨
  부인이 2천 원짜리 금강석반지를 내 논것을 보더니, 퍽 가지구퍼
  하더래나요 ? 그러니깐 지전씨가 웃으면서, 나두 사주구는 싶어두
  어디 돈이 있느냐구. 그러니깐 부인이 여간 섭섭해하는 기색이
  아니더래요. 그런 때 군수 영감은 자기가 돈만 있었으면 단박 사서
  선살 했으면, 다른 때 만 원을 들인 것보다두 생색이 더 나겠는데,
  원체 자기한테는 지닌 게 없기두 했지만 큰돈이라 생심을
  못했다구……”
 
“그러닝개루 그걸 너더러 사서 지전씨네 집으다가
  슨사를 허라더람 말이여 ?”
 
“네에. 마침 또 꼭지가 물러가는 눈치구 하니깐,
   이 계제에 그래 뒀으면 유리할 것 같다구요……”
 
윤직원 영감은 말없이 담배만 빽빽 빨고 있읍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정말 같기도 합니다. 또 어떻게 생각하면 종수의 야바위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짓말이 아닌 것을 거짓말로 잘못 넘겨짚고서,
그 벼락맞을 선사를 않고 보면 일을 낭패시키는 것이 될 테니,
차라리 속는 셈 잡고 돈을 내느니만 같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마침내
들고 말았읍니다.
 
“모르겄다 ! 나는 시방 돈이래야 톡톡 털어서 천원밖으 읎으닝개,
  그놈만 갔다가 무얼 사주던지 말던지, 네 소견대루 헐라먼 히여라.
  나는 모른다!”
 
자기 말대로 나라에 바치는 세납도 에누리를 하거든, 종수가 청구하는
운동비를 어찌 깎지 않겠읍니까.
그러나 종수는 조부의 그러한 성미를 잘 알기 때문에 한 자국 더 뛰어
천원 소용을 2천 원으로 불렀으니 종수가 선숩니다.
윤직원 영감은 대복이를 불러, 천 원 소절수를 씌어 도장을 찍어 아주
현금으로 찾아다가 종수를 주라고 시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오늘 945원 번 것이 55원 새끼까지 치어가지고 도로 나가는구나
생각하니, 매우 섭섭하고 허망했습니다.
 
 
 15 亡秦者[망진자]는 胡也[호야]니라
 
일찌기 윤직원 영감은 그의 소시적 윤두꺼비 시절에 자기 부친 말대가리
윤용규가 화적의 손에 무참히 맞아 죽은 시체 옆에 서서,
노적이 불타느라고 화광이 충천한 하늘을 우러러
 
“이놈의 세상, 언제나 망하려느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
 
하고 부르짖은 적이 있겠다요. 이미 반 세기(半世紀) 전,
그리고 그것은 당시의 나한테 불리한 세상에 대한 격분된 저주요
겸하여 웅장한 투쟁의 선언이었읍니다.
해서 윤직원 영감은 과연 승리를 했겠다요. 그런데……
식구들은 시아버지 윤직원 영감이 보기가 싫은 건넌방 고씨만 빼놓고,
서울아씨, 태식이, 뒤채의 두 동서, 모두 안방에 모여 종수를 맞이하는
예를 표하고, 그들의 옹위 아래 윤직원 영감과 종수는 각기 아랫목과
뒷벽 앞으로 갈라앉았읍니다. 방금 점심 밥상을 받을 참입니다.
 
“너 경손애비, 부디 정신채리라!……”
 
윤직원 영감이 종수더러 곰곰이 훈계를 하던 것입니다.
안식구가 있는데라 점잖게 경손애비지요.
 
“…… 정신을 채리야 헐 것이 늬가 암만히여두
  네 아우 종학이만 못히여! 종학이는 그놈이 재주두 있고, 착실히여서,
  너치름 허랑허지두 않고 그럴뿐더러 내년 내후년이머넌 대학교를
  졸업허잖냐 ? 내후년이지?”
 
“네.”
 
“그렇지? 응, 그래, 내후년이먼 대학교 졸업을 허구 나와서,
  3년이나 다직 4년만 찌들어나머넌 그놈은 지가 목적헌,
  요새 그 목적이란 소리 잘 쓰더구나 응? 목적…… 목적헌 경부가
  되야각구서, 경찰서장이 된담 말이다!
  응 ? 알겄어.”
 
“네.”
 
“그러닝개루 너두 정신을 바싹 채리각구서,
  어서어서 군수가 되야야 않겄냐?……
  아, 동생놈은 버젓한 경찰서장인디, 형놈은 게우 군서기를
  댕기구있담! 남부끄러서 어쩔 티여? 응?…… 아 글씨, 군수 되구
  경찰서장 되구 허머넌, 느덜 좋구 느덜 호강이지 머,
  그 호강 날 주냐? 내가 이렇기 아등아등 잔소리를 허넌 것두 다 느덜
  위히여서 그러지, 나는 파리 족통만치두 상관읎어야! 알어듣냐?”
 
“네.”
 
“그놈 종학이는 참말루 쓰겄어! 그놈이 어려서버텀두 워너니 나를
  자별허게 따르구, 재주두 있구 착실허구, 커서두 내 말을 잘 듣구……
  내가 그놈 하나넌 꼭 믿넌다 꼭 믿어. 작년 올루 들어서 그놈이 돈을
  어찌 좀 히피 쓰기는 허넝가부더라마는, 그것두 허기사 네게다 대머는
  안쓰는 심이지. 사내자식이 너처럼 허랑허지만 말구서,
  제 줏대만 실헐 양이면 돈을 좀 써두 괜찮언 법이여 ……
  그리서 지난달에두 5백 원 꼭 쓸 디가 있다구 핀지히였길래
  두말 않고 보내주었다!”
 
마침 이때, 마당에서 헴헴, 점잖은 밭은기침 소리가 납니다.
창식이 윤주사가 조금 아까야 일어나서, 간밤에 동경서 온 전보 때문에
억지로 억지로 큰댁 행보를 하던 것입니다.
윤주사는 토방으로 내려서는 아들 종수더러, 언제 왔느냐고,
심상히 알은 체를 하면서, 역시 토방으로 내려서는 두 며느리의
삼가로운 무언의 인사와, 마루까지만 나선 이복 누이동생 서울아씨의
입인사를 받으면서, 방으로 들어가서는 부친 윤직원 영감한테
절을 한자리 꾸부리고서, 아들 종수한테 한자리 절과,
이복동생 태식이한테 경례를 받은 후, 비로소 한 옆으로 꿇어 앉습니다.
 
“해가 서쪽으로 뜨겄구나?”
 
윤직원 영감은 아들의 이렇듯 부르지도 않은 걸음을,
더우기나 안방에 까지 들어온 것을 이상타고 꼬집는 소립니다.
 
“…… 멋하러 오냐? 돈 달라러 오지?”
 
“동경서 전보가 왔는데요 ……”
 
지체를 바꾸어, 윤주사를 점잖고 너그러운 아버지로,
윤직원 영감을 속사납고 경망스런 어린 아들로 둘러놓았으면
꼬옥 맞겠읍니다.
 
“동경서? 전보?”
 
“종학이놈이 경시청에 붙잽혔다구요!”
 
“으엉?”
 
외치는 소리도 컸거니와 엉덩이를 꿍 찧는 바람에,
하마 방구들이 내려 앉을 뻔했읍니다. 모여선 온 식구가 제가끔 정도에
따라 제각기 놀란 것은 물론이구요.
윤직원 영감은 마치 묵직한 몽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양 정신이 멍해서
입을 벌리고 눈만 휘둥그랬지, 한동안 말을 못하고 꼼짝도 않습니다.
그러다가 이윽고 으르렁거리면서 잔뜩 쪼글트리고 앉습니다.
 
“거, 웬 소리냐? 으응? 으응?…… 거 웬 소리여? 으응? 으응?”
 
“그놈 동무가 친 전본가본데, 전보가 돼서 자세는 모르겠읍니다.”
 
윤주사는 조끼 호주머니에서 간밤의 그 전보를 꺼내어
부친한테 올립니다.
윤직원 영감은 채듯 전보를 받아 쓰윽 들여다보더니 커다랗게 읽습니다.
물론 원문은 일문이니까 몰라보고, 윤주사네 서사 민서방이 번역한
그대로지요.
 
“종학, 사상 관계로, 경시청에 피검!…… 이라니 ?
   이게 무슨 소리다냐?”
 
“종학이가 사상관계로 경시청에 붙잽혔다는 뜻일 테지요!”
 
“사상관계라니?”
 
“그놈이 사회주의에 참예를 ……”
 
“으엉?”
 
아까보다 더 크게 외치면서, 벌떡 뒤로 나동그라질 뻔하다가 겨우 몸을
가눕니다. 윤직원 영감은 먼저에는 몽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같이
멍했지만, 이번에는 앉아 있는 땅이 지함을 해서 수천 길 밑으로 꺼져
내려가는 듯 정신이 아찔했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단코 자기가 믿고 사랑하고 하는 종학이의 신상을
여겨서가 아닙니다.
윤직원 영감은 시방 종학이가 사회주의를 한다는 그 한가지 사실이
진실로 옛날의 드세던 부랑당패가 백길 천길로 침노하는 그것보다도
더 분하고, 물론 무서웠던 것입니다.
진(秦)나라를 망할 자 호(胡 : 오랑캐)라는 예언을 듣고서,
변방을 막으려 만리장성을 쌓던 진시황,
그는 진나라를 망한 자 호(胡 : 오랑캐)가 아니요,
그의 자식 호해(胡亥)임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죽었으니,
오히려 행복이라 하겠읍니다.
 
“사회주의라니? 으응? 으응?……”
 
윤직원 영감은 사뭇 사람을 아무나 하나 잡아 먹을 듯,
집이 떠나게 큰소리로 포효(咆哮)를 합니다.
 
“…… 으응 ? 그놈이 사회주의를 허다니! 으응?
   그게, 참말이냐? 참 말이여?”
 
“허긴 그놈이 작년 여름방학에 나왔을 때버틈
    그런 기미가 좀 뵈긴 했어요!”
 
“그러머넌 참말이구나! 그러머넌 참말이여, 으응!”
 
윤직원 영감은 이마로 얼굴로 땀이 방울방울 배어오릅니다.
 
“…… 그런 쳐죽일 놈이, 깎어죽여두 아깝잖을 놈이! 그놈이
  경찰서장 허라닝개루, 생판 사회주의허다가 뎁다 경찰서에 잽혀 ?
  으응?…… 오사 육시를 헐 놈이, 그놈이 그게 어디 당헌 것이라구
  지가 사회주의를 히여? 부자놈의 자식이 무엇이 대껴서 부랑당패에
  들어?……”
 
아무도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섰기 아니면
앉았을 뿐, 윤직원 영감이 잠깐 말을 그치자 
방안은 물을 친 듯이 조용합니다.
 
“……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오죽이나 ……”
 
윤직원 영감은 팔을 부르걷은 주먹으로 방바닥을 땅 치면서
성난 황소가 영각을 하듯 고함을 지릅니다.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守令)들이 있너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末世)넌
  다 지내가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政事),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 남은 수십만 명
  동병(動兵)을 히여서, 우리 조선놈 보호히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 제것 지니고 앉아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자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지 가 떵떵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놀 부랑당패에 참섭을 헌담 말이여, 으응?”
 
땅 방바닥을 치면서 벌떡 일어섭니다.
그 몸짓이 어떻게도 요란스럽고 괄괄한지,
방금 발광이 되는가 싶습니다. 아닌게아니라 모여선 가권들은 방바닥
치는 소리에도 놀랐지만, 이 어른이 혹시 상성이 되지나 않는가 하는
의구의 빛이 눈에 나타남을 가리지 못합니다.
 
“…… 착착 깎어 죽일 놈!…… 그놈을 내가 핀지히여서,
  백년 지녁을 살리라구 헐걸! 백년 지녁 살리라구 헐 테여 ……
  오냐, 그놈을 3천석거리는 직분(分財)하여 줄라구 히였더니,
  오냐, 그놈 3천석거리를 톡톡 팔어서,
  경찰서으다가 사회주의 허는 놈 잡어 가두는
  경찰서으다가 주어버릴걸! 으응,
  죽일 놈!”
 
마지막의 으응 죽일 놈 소리는 차라리 울음소리에 가깝습니다.
 
“…… 이 태평천하에! 이 태평천하에 ……”
 
쿵쿵 발을 구르면서 마루로 나가고,
꿇어앉았던 윤주사와 종수도 따라 일어섭니다.
 
“…… 그놈이 만석꾼의 집 자식이,
  세상 망쳐놀 사회주의 부랑당패에 참섭을 히여. 으응,
  죽일 놈! 죽일 놈!”
 
연해 부르짖는 죽일 놈 소리가 차차로 사랑께로 멀리 사라집니다.
그러나 몹시 사나운 그 포효가 뒤에 처져 있는 가권들의 귀에는
어쩐지 암담한 여운이 스며들어, 가뜩이나 어둔 얼굴들을 면면상고,
말할 바를 잊고, 몸 둘곳을 둘러보게 합니다.
마치 장수의 주검을 만난 군졸들처럼 ……
 
                                                        -  끝 -  
    〈同志社,[동지사] 1948. 1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