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무녀도 -김동리-

하얀모자 1 2024. 6. 25. 01:00

 

  

                                             무녀도
                                                                                  - 김동리 -
 

1
뒤에 물러 누운 어둑어둑한 산, 앞으로 폭이 널따랗게 흐르는 검은 강물,
산마루로 들판으로 검은 강물 위로 모두 쏟아져 내릴 듯한 파아란 별들,
바야흐로 숨이 고비에 찬 이슥한 밤중이다.
강가 모랫벌엔 큰 차일을 치고, 차일 속엔 마을 여인들이 자욱이 앉아
무당의 시나위 가락에 취해있다.
그녀들의 얼굴 얼굴들은 분명히 슬픈 흥분과 새벽이 가까워 온 듯한
피곤에 젖어 있다. 무당 은 바야흐로 청승에 자지러져 뼈도 살도 없는
혼령으로 화한 듯 가벼이 쾌자자락을 날리며 돌아간다.
 
.. 이 그림이 그려진 것은 아버지가 장가를 들던 해라 하니
나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기도 이전의 일 이다.
우리집은 옛날의 소위 유서있는 가문으로, 재산과 세도로도 떨쳤지만,
글하는 선비란 것도 우글거렸고, 특히 진기한 서화와 골동품으로써는
나라 안에서 손꼽힐 만큼 높이 일컬어 졌었다.
그리고 이 서 화와 골동품을 즐기는 취미는 아버지에게 아들로.
아들에서 다시 손자 로, 대대 가산과 함께 물려받아 내려오는 가풍이기도
했다.
우리집 살림이 탁방난 것은 아버지 때였으나.
그 즈음만 해도 아직 옛날과 다름없이. 할아버지께서는
사랑에서 나그네를 겪으셨고, 그러 자니 시인묵객들이 끊일 새 없이
찾아들곤 하였다. 그 무렵 이라 한다. 온종일 흙바람이 불며,
뜰 앞엔 살구꽃이 터져 나오는 어느 봄날, 어스 름 때였다.
색다른 나그네가 대문 앞에 닿았다, 동저고리 바 람에 꽤랭이를 쓰고,
그 위에 명주 수건을 잘라맨. 나이 한 쉰 가량이 나 되어뵈는
체구도 조그만 사내가, 나귀 고삐를 잡고 서고,
나귀에는 열 예닐곱 쯤 나 뵈는 낯빛이 몹시 파리한 소녀 하나가
안장 위에 앉아 있었다. 남자 하인과 그 상전의 따님 같아도 보였다.

그러나 이튿날 그 사내는,
이 여아는 소인의 여식이옵는데 그림 솜씨가 놀랍다 하기에
대감의 문전을 찾았삽네다." 했다.
소녀는 횐 옷을 입었었고, 옷빛보다 더 새하얀 그녀의 얼굴엔
깊이 모를 슬픔이 서리어 있었다.
 
 "아기의 이름은 ?"
 
 " 나이는 ?"
 
주인이 소녀에게 말을 건네보았으나, 소녀는 굵은 두 눈으로 한 번
그를 바라보았을 뿐 입을 떼 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비가 대신 입을 열 어,
 
 "여식의 이름은 낭이, 나이는 열 일곱 살이옵고...... "
 
하더니, 목소리를 더 낮추며
 
 "여식은 귀가 먹었습니다." 했다.
 
주인도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내를 보고.
며칠이든지 묵으며 소녀의 그림솜씨를 보 여달라고 했다.
그들 아비 딸은 달포 동안이나 머물러 있으며 그림도 그리고,
자기네의 지난 이야기도 자세히 하소연했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그들이 떠나는 날에. 이 불행한 아비 딸을 위하여
값진 비단과 충분한 노자를 아끼지 않았으나,
나귀 위에 앉은 가련한 소녀의 얼굴에는 올 때나 조금도 다름없는
처절한 슬픔이 서려 있었을 뿐이라고 한다.
 
소녀가 남기고 간 그림 - 이것을 할아버지께서는 "무녀도"라 불렀지만
---과 함께 내가 할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2
 
경주 읍에서 성 밖으로 십여리 나가서 조그만 마을이 있었다.
여민 촌 혹은 잡성촌이라 불리워지는 마을이었다.
이 마을 한 구석에 모화(毛火)라는 무당이 살고 있었다.
모화서 들어 온 사람이라 하여 모화라 부르는 것이었다.
그것은 한 머리 찌그러져 가는 묵은 기와집으로,
지붕 위에는 기와 버섯이 퍼렇게 뻗어 올라 역한 흙 냄새를 풍기고,
집 주위는 앙상한 돌담이 군데군데 헐리인 채 옛성처럼 꼬불꼬불
에워싸고 있었다. 이 돌 담이 에워싼 안의 공지같이 넓은 마당에는,
수채가 막힌 채 빗물이 고이는대로 일 년 내 시퍼런 물이끼가 뒤덮어,
늘쟁이, 명아주, 강아지풀, 그리고 이름도 모를 여러가지 잡풀들이
사람의 키도 묻힐만큼 거멓게 엉키어 있었다.
그 아래로 뱀같이 길게 늘어진 지렁이와 두꺼비같이 늙은 개구리들이
구물거리고 움칠거리며 항시 밤이 들기만 기다릴 뿐으로,
이미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전에 벌써 사람의 자취와는 인연이 끊어진
도깨비굴 같기만 했다.
이 도깨비굴 같이 낡고 헐린 집 속에
무녀 모화와 그 딸 낭이는 살고 있었다.
낭이의 아버지 되는 사람은 경주 읍에서 칠십 리 가량 떨어져 있는
동해변 어느 길목에서 해물 가게를 보고 있는데, 풍문에 의하면
그는 낭이를 세상에 없이 끔직히 생각하는 터이므로,
봄 가을 철이면 분 잘 핀 다시마와, 조촐한 꼭지 미역같은 것을 가지고
다녀가곤 한다는 것이었다.
나중 욱이(昱伊)가 돌연히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 도깨비굴 속에 그녀들을 찾는 사람이래야,
모화에게 굿을 청하러 오는 사람들과 봄 가을에 한 번씩 낭이를 찾아 주는
그녀의 아버지 정도로, 세상 사람들과는 별로 교섭도 없이
살아야 할 쓸쓸한 어미 딸이었던 것이다.
 
간혹 먼 곳에서 모화에게 굿을 청하러 오는 사람이 있어도,
아주 방문 앞까지 들어서며,
 
 “여보게 모화네 있는가?” 
 
 “여보게 모화네.”
 
하고, 두 세 번 부르도록 대답이 없다가
아주 사람이 없는 모양이라고 툇마루에 손을 짚고 방문을 열려고 하면,
그 때에야 안에서 방문을 먼저 열고 말없이 내다보는 계집애 하나,
 ―― 그녀의 이름이 낭이였다.
그럴때마다 낭이는 대개 혼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가 놀라 붓을 던지며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와들와들 떨곤 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모화는 어느 하루를 집구석에서 살림이라고 살고 있는 날이
없었다. 날이 새기가 무섭게 성안으로 들어가면
언제나 해가 서쪽 산마루에 걸릴 무렵에야 돌아오곤 했다.
술이 얼근해서, 수건엔 복숭아를 싸 들고 춤을 추며,
 
 “따님아, 따님아, 김씨 따님아,
 수국 꽃님 낭이 따님아,
 용궁이라 들어가니,
 열 두 대문이 다 잠겼다,
 문 열으소, 문 열으소,
 열 두 대문 열어 주소.” 
 
청승가락을 뽑으며 동구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모화네 오늘도 한 잔 했구나.”
 
마을 사람들이 인사를 하면, 모화는 수줍은 듯이 어깨를 비틀며, 
 
 “예예, 장에 갔다가요.”
 
하고, 공손스레 절을 하곤 하였다.
모화는 굿을 할 때 이외에는 대개 주막에 가 있었다.
그만큼 모화는 술을 즐기었고, 낭이는 또한 복숭아를 좋아하여,
어미가 술이 취해 돌아올 때마다, 여름 한 철은 언제나 그녀의 손에
복숭아가 들려 있었다.
 
 “따님 따님 우리 따님”
 
모화는 집안에 들어서면서도 이러한 조로 낭이를 불렀다. 
낭이는 어릴 때, 나들이에서 돌아오는 어미의 품에 뛰어들어 젖을 빨듯,
어미의 수건에 싸인 복숭아를 받아먹는 것이었다.
모화의 말을 들으면 낭이는 수국 꽃님의 화신(化身)으로,
그녀(모화)가 꿈에 용신(龍神 )님을 만나 복숭아 하나를 얻어먹고 꿈꾼지
이렛 만에 낭이를 낳은 것이라 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수국 용신님은 따님이 열두 형제였다.
첫째는 달님이요, 둘째는 물님이요, 셋째는 구름님이요…… 
이렇게 열 둘째는 꽃님이었는데,
산신님의 열두 아드님과 혼인을 시키게 되어, 달님은 햇님에게,
물님은 나무님에게, 구름님은 바람님에게 각각 차례대로
배혼을 정해 가려니까 막내따님인 꽃님은 본래 연애를 좋아하시는 성미라,
자기 차례가 돌아오기를 미처 기다릴 수 없어,
열 한째 형인 열매님의 낭군님이 되실 새님을 가로 채어버렸더니,
배필을 잃은 열매님과 나비님은 슬피 울며 제각기 용신님과 산신님께
호소한 결과, 용신님이 먼저 크게 노하사 벌을 내려
꽃님은 귀를 먹게 하시고 수국을 추방하시니 꽃님에서 그만 복사꽃이 되어,
봄마다 강 가로 산기슭으로 붉게 피지만,
새님이 가지에 와 아무리 재잘거려도 지금까지 귀가 먹은 채
말 없는 벙어리가 되어 있는 것이라 한다.
 
모화는 주막에서 술을 먹다 말고, 화랑이들과 어울려서 춤을 추다 말고
별안간 미친 것처럼 일어나 달아나곤 했다.
물으면 집에서 <따님>이 자기를 부르노라고 했다.
그녀는 수국 용신님께서 낭이 따님을 잠깐 자기에게 맡겼으므로
자기는 그 동안 맡아 있는 것뿐이라 했다.
그러므로 자기가 만약 이 따님을 정성껏 섬기지 않으면
큰 어머님 되는 용신님의 노염을 살까 두려웁노라 하였다. 
낭이 뿐 아니라, 모화는 보는 사람마다 너는 나무 귀신의 화신이다,
너는 돌 귀신의 화신이다 하여, 걸핏하면 칠성에 가 빌라는 둥
용왕에 가 빌라는 둥 했다.
 
모화는 사람을 볼 때마다 늘 수줍은 듯 어깨를 비틀며 절을 했다.
어린애를 보고도 부들부들 떨며 두려워했다.
때로는 개나 돼지에게도 아양을 부렸다.
 
그녀의 눈에는 때때로 모든 것이 귀신으로만 비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람 뿐 아니라, 돼지, 고양이, 개구리, 지렁이, 고기, 나비,
감나무, 살구나무, 부지깽이, 항아리, 섬돌, 짚세기, 대추나무가시,
제비, 구름, 바람, 불, 밥, 연, 바가지, 다래끼, 솥, 숟가락, 호롱불……
이러한 모든 것이 그녀와 서로 보고, 부르고, 말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성내고 할 수 있는 이웃 사람같이 생각되곤 했다.
그리하여 그 모든 것을 <님>이라 불렀다.
 
 
 3
 
욱이가 돌아온 뒤부터 이 도깨비굴 속에는 조금씩 사람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부엌에 들어서기를 그렇게 싫어하던 낭이도
욱이를 위하여는 가끔 밥을 짓는 것이었다. 그리고 밤이면
오직 컴컴한 어둠과 별빛만이 차 있던 이 헐려가는 기와집 처마 끝에도
희부연 종이 등불이 고요히 걸리는 것이었다.
욱이는 모화가 아직 모화마을에 살 때, 귀신이 지피기 전,
어떤 남자와의 사이에 생긴 사생아였다.
그는 어릴 적부터 무척 총명하여 신동이란 소문까지 났으나
근본이 워낙 미천하여, 마을에서는 순조롭게 공부를 시킬 수가 없어서
그가 아홉 살 되었을 때 아는 사람의 주선으로 어느 절간으로 보낸 뒤
그동안 한 십 년간 까맣게 소식조차 묘연하다가
얼마 전 표연히 이 집에 나타난 것이었다.
낭이와는 말하자면 어미를 같이 하는 오뉫 뻘이었다.
낭이가 대여섯 살 되었을 때 그 때만 해도 아직 병으로 귀가 먹기 전이라
“욱이” “욱이”하고 몹시 그를 따르곤 했었다.
그러던 것이 욱이가 절간으로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낭이는 자리에 눕게 되어 꼭 삼 년 동안을 시름시름 앓고 나더니
그 길로 귀가 먹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귀가 어느 정도로 먹은 지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두 번 그의 어미를 향해 어눌하나마,
 
 “우, 욱이 어디 가아서?”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절에 공부하러 갔다.”
 
 “어어디, 절에?”
 
 “지림사, 큰 절에…”
 
그러나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모화 자신도 사실인 즉
욱이가 어느 절에 가 있는지 통이 모르고 있었고,
다만 모른다고 하기가 싫어서 이렇게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대답했을 뿐이었다.
모화는 장에서 돌아와 처음 욱이를 보았을 때
그 푸른 얼굴에 난데없는 공포의 빛이 서리며 곧 어디로 달아날 것같이
한참 동안 어깨를 뒤틀고 허둥거리다 말고
별안간 그 후리후리한 키에 긴 팔을 벌려 흡사 무슨 큰 새가 저희 새끼를
품듯 뛰어들어 욱이를 안았다.
 
 “이게 누고, 이게 누고? 아이고……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모화는 갑자기 목을 놓고 울었다.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뉘가 왔나, 뉘가 왔나?”
 
모화는 앞 뒤도 살피지 않고 온 얼굴을 눈물로 씻었다.
 
 “오마니, 오마니.”
 
욱이도 어미의 한 쪽 어깨에 왼쪽 볼을 대이고 오래도록 울었다.
어미를 닮아 허리가 날씬하고 목이 가는 이 열 아홉 살 난 청년은
그 동안 절간으로 어디로 외롭게 유랑해 다닌 사람 같지도 않게
품위가 있고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낭이도 그때야 이 청년이 욱이인 것을 진정으로 깨닫는 모양이었다.
처음 혼자 방에 있는데 어떤 낯선 청년이 와서 방문을 열기에,
너무도 놀라고 간이 뛰어 말――표정으로라도――한 마디도 못하고
방구석에 박혀앉아 오들오들 떨고만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낭이는 그 어머니가 욱이를 얼싸안고「내 아들아 내 아들아」하며
우는 것을 보고 어쩌면 저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낭이는 그 어머니에게도 이렇게 인정이 있다는 것을 보자
형언할 수 없는 즐거움을 깨달았다.)
 
그러나 욱이는 며칠을 가지 않아 모화와 낭이에게는 알 수 없는 수수께끼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는 음식을 받아 놓고나,
밤에 잠을 자려고 할 때나 또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면
반드시 한참 동안씩 눈을 감고 입술이 달삭달삭하며
무슨 주문(呪文)같은 것을 외우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틈틈이 품속에서 조그만 책 한 권을 꺼내 읽곤 하는 것이었다.
낭이가 그것을 수상스레 보고 있으려니까
욱이는 그 아름다운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너도 이 책을 읽어라.”
 
하고 그 조그만 책을 낭이 앞에 펴보이곤 했다.
낭이는 지금까지 <심청전>이란 책을 여러 차례 두고 읽어서 국문 쯤은
간신히 읽을 수 있었으므로 욱이가 내놓은 그 조그만 책을 들여다보니,
맨처음 껍데기에 큰 글자로 <신약전서>란 넉 자가 똑똑히 쓰여져 있었다.
<신약전서>란, 생전 처음 보는 이름이다. 낭이가 알수 없다는 듯이
욱이를 바라보자, 욱이는 또 만면에 미소를 띠우며,
 
 “너 사람을 누가 만들어 낸지 아니?”
 
하였다. 그러나 낭이에게는 이 말이 들리지도 않았을 뿐더러,
욱이의 손짓과 얼굴 표정을 통해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이건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 못한 어려운 말이었다.
 
 “그럼 너 사람이 죽어서 어드케 되는 줄은 아니?”
 
 “……”
 
 “이 책에는 그런 것들이 모두 쓰여져 있다.”
 
그리고는 손으로 몇 번이나 하늘을 가리켰다.
그리하여 낭이가 알아들은 말이라고는 겨우 한 마디 <하느님>이었다. 
 
 “우리 사람을 만든 것은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우리 사람 뿐 아니라 천지만물을 다 만들어 내셨다.
   우리가 죽어서 돌아가는 곳도 하느님 전이다.”
 
이러한 욱이의 <하느님>은 며칠 지나지 않아 곧 모화의 의혹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욱이가 온 지 사흘째 되던 날,
아침밥을 받아 놓고 그가 기도를 드리려니까, 모화는,
 
 “너 불도에도 그런 법이 있나?”
 
이렇게 물었다. 모화는 욱이가 그동안 절간에 가 있다 온 줄만 믿고
있으므로 그가 하는 짓은 모두 불도(佛道 )에 관한 일인 줄로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니오, 오마니, 난 불도가 아님내다.”
 
 “불도가 아니고 그럼 무슨 도가 있어?”
 
 “오마니 난 절간에서 불도가 보기 싫어 달아났댔쇠다.”
 
 “불도가 보기 싫다니, 불도야 큰 도지…… 그럼 넌 뭐 신선도야?”
 
 “아니오, 오마니, 난 예수도올시다.”
 
 “예수도?”
 
 “북선 지방에서는 예수교라고 합데다. 새로 난 교지요.”
 
 “그럼 너 동학당이로군!”
 
 “아니오, 오마니, 나는 동학당이 아닙내다. 나는 예수도올시다.”
 
 “그래, 예수도온가 하는 데서는 밥 먹을 때마다
   눈을 감고 주문을 외이나?”
 
 “오마니, 그건 주문이 아니외다, 하느님 앞에 기도드리는 것이외다.”
 
 “하느님 앞에?”
 
모화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네, 하느님께서 우리 사람을 내셨으니깐요.”
 
 “야아, 너 잡귀가 들렸구나!”
 
모화의 얼굴 빛은 순간 퍼렇게 질리었다. 그리고는 더 묻지 않았다.
 
다음 날 모화가 그 마을에 객귀 들린 사람이 있어 <물밥>을 내주고
돌아오려니까, 욱이가
 
 “오마내, 어디갔다 오시나요?”
 
하고 물었다.
 
 “저 박급창 댁에 객귀를 물려주고 온다.”
 
욱이는 한참 동안 무엇을 생각하는 모양이더니,
 
 “그럼 오마니가 물리면 귀신이 물러 나갑데까?”
 
한다.
 
“물러나갔지 사람이 살아났지.”
 
모화는 별 소리를 다 듣는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는 지금까지 이 경주 고을 일원을 중심으로
수 백번의 푸닥거리와 굿을 하고, 수백 수천 명의 병을 고쳐 왔지만
아직 한번도 자기의 하는 굿이나 푸닥거리에 <신령님>의 감응을
의심한다던가 걱정해 본 적은 없었다.
더구나 누구의 객귀에 물밥을 내주는 것 쯤은 목 마른 사람에게
물 한 그릇을 떠주는 것 만큼이나 당연하고 손쉬운 일로만 여겨왔다.
모화 자신만이 그렇게 생각할 뿐 아니라, 굿을 청하는 사람,
객귀가 들린 사람 쪽에서도 그와 같이 믿고 있는 편이기도 했다.
그들은 무슨 병이 나면 먼저 의원에게 보이려는 생각보다
으레 모화에게 찾아 갈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생각에는 모화의 푸닥거리나 푸념이 의원의 침이나 약보다
훨씬 반응이 빠르고, 효험이 확실하고, 준비가 손쉬웠던 것이다.
 
 “……”
 
한참 동안 고개를 수그리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던 욱이는,
고개를 들어 그 어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오마니, 그런 것은 하느님께 죄가 됩내다. 오마니 이것 보시오.
   마태복음 제 구장 삼십 오절이올시다.
   저희가 나갈 때에 사귀 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다려 오매,
   사귀가 쫓겨나니 벙어리가 말하거늘……”
 
그러나 이때 벌써 모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구석에 언제나 차려 놓은
<신주상> 앞에 가서,
 
 “신령님네, 신령님네, 동서남북 상하천지,
   날 것은 날아가고, 길 것은 기어가고,
   머리검하 초로인생 실낱 같안 이 목숨이,
   신령님네 품이길래 품 속에 품았길래,
   대로 같이 가옵내다 대로 같이 가옵내다.
   부정한 손 물리치고, 조촐한 손 받으실새,
   터주님이 터 주시고 조왕님이 요 주시고,
   삼신님이 명 주시고 칠성님이 둘르시고,
   미륵님이 돌보셔서 실날 같안 이 목숨이,
   대로 같이 가옵내다.
   탄탄 대로 같이 가옵내다.”
 
모화의 두 눈은 보석같이 빛나고,
강렬한 발작과도 같이 등허리를 떨며 두 손을 비벼댔다.
푸념이 끝나자 <신주상> 위의 냉수 그릇을 들어 물을 먹음더니
욱이의 낯과 온 몸에 확 뿜으며,
 
 “엇쇠, 귀신아 물러서라,
   여기는 영주 비루봉 상상봉헤,
   깎아 질린 돌 베랑헤, 쉰길 청수헤,
   너희 올 곳이 아아니다.
   바른 손헤 칼을 들고 왼 손헤 불을 들고,
   엇쇠, 잡 귀신아, 썩 물러서라. 툇 툇!”
 
이렇게 외쳤다. 욱이는 처음 어리둥절해서 모화의 푸념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고개를 수그려 잠깐 기도를 올리고 나서 일어나
잠자코 밖으로 나가 버렸다.
 
모화는 욱이가 나간 뒤에도 한참 동안 푸념을 계속하며,
방구석마다 물을 뿜고 주문을 외었다.
 
 
 4
 
욱이는 그 길로 이 지방의 예수교인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날 곧 돌아올 줄 알았던 욱이는 해가 지고 밤이 깊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모화와 낭이, 어미 딸은 방구석에 음울하게 웅크리고 앉아
욱이가 돌아오기만 기다리는 것이었다.
 
“예수 귀신 책 거 없나?”
 
모화는 얼마 뒤에 낭이더러 이렇게 물었다. 낭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갑자기 낭이도 욱이의 그 <신약전서>란 책을 제가 맡아두지 않았음을
후회했다. 모화는 욱이의 <신약전서>를 「예수 귀신 책」이라 불렀다.
모화는 분명히 욱이가 무슨 몹쓸 잡귀에 들린 것으로만 간주하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마치 욱이가 모화와 낭이를 으레 사귀 들린 사람들로
생각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는 모화뿐만 아니라 낭이까지도 어미의 사귀가 들어가서
벙어리가 된 것이라고 믿는 것이었다.
 
 「예수 당시에도 사귀 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서 몇 번이나
   고쳐 주시지 않았나.」
 
욱이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힘으로,
자기가 하느님께 열심으로 기도를 드림으로써 그 어미와 누이동생의 병을
고쳐야 한다고 마음 속으로 굳게 결심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무리들이 달려와서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와 귀머거리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마라 하시니
  사귀가 소리 지르며 아이를 심히 오그러뜨리고 나가니
  이 아이가 죽은 것같이 되매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거늘
  오직 예수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드디어 일어서더라.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와 가라사대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예수 가라사대 기도 아니하여서는 이런 따위를 나가게 할 수 없나니라.
 “(마가복음 제 구장 제 이십 오절――제 이십 구절)
 
그리하여 욱이는 자기도 하느님께 기도만 간절히 드리면
그 어미와 누이동생에게 들어있는 사귀도 내어 쫒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일방 그는 그가 지금까지 배우고 있던 평양 현 목사와 이 장로에게도
편지를 띄었다.
 
 “목사님 저는 하느님의 은혜로 무사히 오마니를 찾아 왔삽내다.
  그러하오나 이 지방에는 아직 우리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지 않아서
  사귀 들린 자와 우상 섬기는 자가 매우 많은 것을 볼 때
  하루바삐 주님의 복음을 이 지방에 전파하도록 교회를 지어야 하겠습니다.
  목사님게 말씀 드리기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나
  저의 오마니는 무당사귀가 들려 있고, 저의 누이동생은 귀머거리와 벙어리
  귀신이 들려있습내다. 저는 마가복음 제 구장 제 이십구절에 있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이 사귀들을 내어쫓기 위하여
  열심으로 기도를 드립니다마는 교회가 없으므로 기도 드릴 장소가
  매우 힘드옵내다. 하루바삐 이 지방에 교회 되기를
  하느님께 기도 올려 주소서.”
 
이 현 목사는 미국 선교사로서 욱이가 지금까지 먹고 입고
공부를 하게 된 것이 모두 전혀 그의 도움이었다.
욱이는 열 다섯 살까지 절간에서 중의 상좌 노릇을 하고 있다가,
그 해 여름에 혼자서 서울 구경을 간다고 나선 것이,
이리저리 유랑하여 열 여섯 되던 해 가을엔 평양까지 가게 되었고
거기서 그 해 겨울 이 장로의 소개로 현 목사의 도움을 받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번에 욱이가 평양서 어머니를 보러 간다고 하니까
현 목사는 욱이를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삼 년 안에 이 사람 고국 갈 것이오.
  그때 만일 욱이가 함께 가기 원하면 이 사람 같이 미국 가게 될 것이오.”
 
 “목사님 고맙습니다. 저는 목사님을 따라 미국 가기가 원입니다.”
 
 “그러면 속히 모친 만나보고 오시오.”
 
그러나 욱이가 어머니의 집이라고 찾아 온 곳은 지금까지 그가 살고 있던
현 목사나 이 장로의 집 보다 너무나 딴 세상이었다.
그 명랑한 찬송가 소리와, 풍금소리와, 성경 읽은 소리와,
모여앉아 기도를 올리고, 빛난 음식을 향해 즐겁게 웃음 웃는 얼굴들 대신에
군데군데 헐려져 가는 쓸쓸한 돌담과, 기와 버섯이 퍼렇게 뻗어 오른
묵은 기와집과, 엉킨 잡초 속에 꾸물거리는 개구리 지렁이들과,
그 속에서 무당 귀신과 귀머거리 귀신이 각각 들린 어미 딸 두 여인을
보았을 때 그는 흡사 자기 자신이 무서운 도깨비굴에 홀려 든 것이나 아닌가
하고 새삼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욱이가 이 지방 예수교인들을 두루 만나보고 집으로 돌아온 뒤부터
야릇하게 변해진 것은 낭이의 태도였다.
그 호리호리한 몸매와 종잇장 같이 희고 매끄러운 얼굴에 빛나는 굵은
두 눈으로 온종일 말 한 마디, 웃음 한번 웃는 일이 없이
방구석에 들어 박혀 앉은 채 욱이의 하는 양만 바라보고 있다가,
밤이 되어 처마끝에 희부연 종이 등불이 걸리고 하면,
피에 주린 모기들이 미친 듯이 떼를 지어 울고 날아드는 마당 구석에서
낭이는 그 얼음같이 싸늘한 손과 입술로 욱이의 목덜미나 가슴팍으로
뛰어들곤 했다. 욱이는 깜짝깜짝 놀라곤 하였으나 그녀가 까무러칠 듯이
사지를 떨며 다시 뛰어들제면 그도 당황이 낭이의 손을 쥐어 주며,
그 희부연 종이 등불이 걸려 있는 처마밑으로 이끌곤 했다.
 
낭이의 태도가 미묘해진 뒤부터 욱이의 얼굴빛은 날로 창백해 갔다.
그렇게 한 보름 지난 뒤 그는 또 한번 표연히 집을 나가고 말았다.
 
모화는 욱이가 집을 나간 지 이틀째 되던 날 밤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긴 한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는 곁에 누워 있는 낭이를 흔들어 깨우더니
듣기에도 음울한 목소리로,
 
 “욱이가 언제 온다더누?”
 
물었다. 나이가 잠자코 있으려니까,
 
 “왜 욱이 저녁 밥상은 보아 두라고 했는데 없노.”
 
하고 낭이더러 화를 내었다.
모화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초조한 빛으로 밤중마다 부엌에다
들기름 불을 켜고 부뚜막 위에 욱이의 밥상을 차려 놓고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다.
 
 “성주는 우리 성주, 칠성은 우리 칠성, 조왕은 우리 조왕,
  비나이다 비나이다 신주님께 비나이다.
  하늘에는 별, 바다에는 진주,
  금은 같안 이내 장손, 관옥 같안 이내 방성,
  산신헤 명을 빌하 심신헤 수를 빌하,
  칠성헤 복을 빌하 쌈신헤 덕을 빌하,
  종왕님전 요오를 타고 터주님전 재주 타니
  하늘에는 별, 바다에는 진주,
  삼신조왕 마다하고 아니 오지 못하리라.
  예수 귀신하, 서역 십만 리 굶주리던 불귀신하
  탄다 훨훨 불이 탄다 불귀신 훨훨 탄다.
  타고 나니 이내 방성 금은 같이 앉았다가,
  삼신 찾아 오는구나, 조왕 찾아 오는구나.”
 
모화는 혼자서 손을 비비고 절을 하고 일어나 춤을 추고 갖은 교태를
다 부리며 완연히 미친 것같이 날뛰었다.
낭이는 방에서 부엌으로 난 봉창 구멍에 눈을 대고 숨소리를 죽여
오랫동안 어미의 날뛰는 양을 지켜보고 있다가 별안간 몸에 한기가 들며
아랫턱이 달달달 떨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미친 것처럼 뛰어 일어나며 저고리를 벗었다. 치마를 벗었다.
그리하여 어미는 부엌에서, 딸은 방안에서 한 장단, 한 가락에 놀듯
어우러져 춤을 추곤 했다. 그러한 어느 새벽,
낭이는(정신을 차리고 보니) 발가벗은 알몸뚱이로 방바닥에 쓰러져 있는
그녀 자신을 발견한 일도 있었다.
 
두번 째 집을 나갔던 욱이는 다시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그녀들
어미 딸 앞에 나타났다. 모화는 그 때 마침 굿 나갈 때 신을
새 신발을 신어보고 있었는데 욱이가 오는 것을 보자,
그 후리후리한 허리에 긴 팔을 벌려, 흡사 큰 새가 알을 품듯,
그의 상반신을 얼싸안고 울기 시작했다.
이번엔 아무런 푸념도 없이 오랫동안 욱이의 목을 안은 채
잠자코 울기만 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퍼런 그 얼굴에도
이때만은 붉은 기운이 돌며,
그 천연스런 몸짓은 조금도 귀신들린 사람 같지 않았다.
 
 “오마니, 나 방에 들어가 좀 쉬겠쇠다.”
 
욱이는 어미의 포옹을 끌르고 일어나 방에 들어가 누웠다.
모화는 웬일인지 욱이가 방에 들어간 뒤에도 혼자 툇마루에 앉아
고개를 수그린 채 몹시 쓸쓸한 얼굴이었다.
그러더니 무슨 생각인지 일어나 방에 들어가 낭이의 그림을 이것 저것
뒤져 보는 것이었다.
 
그날 밤이었다. 밤중이나 되어 욱이가 잠결에 그의 품속에 언제나 품고 있는
성경책을 더듬어 보았을 때 품속이 허전함을 느꼈다.
그와 동시 웅얼웅얼 하며 주문(呪文 )을 외이는 소리도 들려 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보았으나 품속에서 성경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낭이와 욱이 사이에 누워 있을 그의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어떤 불길하고 무서운 예감에 몸이 부르르 떨리었다.
바로 그 때였다. 그의 귀에는 땅 속에서 귀신이 우는 듯한,
웅얼웅얼 하는(주문을 외이는 듯한) 소리가 좀 더 또렷이 들려 왔다.
다음 순간 그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방에서 부엌으로 난 봉창 구멍에
눈을 갖다 대었다.
 
 “서역 십만 리 굶주리던 불귀신하,
  한 쪽 손에 불을 들고 한 쪽 손에 칼을 들고,
  리 가니 산신님이 예 기신다,
  저리 가니 용신님이 제 기신다,
  칠성이라 돌아 가니 칠성님이 예 기신다,
  구름 속에 쌔여 간다 바람결에 묻혀 간다,
  구름님이 예 기신다, 바람님이 제 기신다,
  용궁이라 당도하니 열두 대문 잠겨 있다,
  첫째 대문 두드리니 사천왕 뛰어 나와,
  종발눈 부릅뜨고, 주석 철퇴 높이 든다,
  둘째 대문 두드리니 불개 두 쌍이 뛰어 나와,
  꽃불은 숫놈이 낼룽, 불씨는 암놈이 낼룽,
  세째 대문 두드리니 물개 두 쌍 뛰어 나와,
  숫놈이 공공 꽃불이 죽고
  암놈이 공공 불씨가 죽고…….”
 
모화는 소복 단장에 쾌자까지 두르고, 온갖 몸짓 갖은 교태를 다부려가며
손을 비비다, 절을 하다, 덩싯거리며 춤을 추다 하고 있다.
부뚜막 위에는 깨끗한 접시불(들기름불)이 켜져 있고,
접시불 아래 놓인 소반위에는 냉수 한 그릇과 흰 소금 한 접시가 놓여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지금 막 그 마지막 불꽃이 나불거리고 난
새빨간 불에서 파란 연기 한 오리가 오르는<신약전서>의 두터운 표지는
한 머리 이미 파리한 재가 되어가도 있었다.
 
모화는 무엇에 도전이나 하는 것처럼 입가에 야릇한 냉소까지 띄우며,
소반에 얹힌 접시의 소금을 집어,
인제 연기마저 사라진 새까만 재 위에 뿌렸다.
 
 “서역 십만 리 예수 귀신이 돌아간다,
  당산에 가 노자 얻고, 관묘에 가 신발 신고,
  두 귀에 방울 달고 방울 소리 발맞추어
  재 넘고 개 건너 잘도 간다.
  인제 가면 언제 볼꼬, 발이 아파 못 오겠다.
  춘 삼월에 다시 오랴, 배가 고파 못 오겠다…….”
 
모화의 음성은 마주(魔酒) 같은 향기를 풍기며 온 피부에 스며들었다.
그 보석같은 두 눈의 교태와 쾌자자락과 함께 나부끼는 손짓은
이제 차마 더 엿볼 수 없게 욱이의 심장을 쥐어짜는 것이었다.
욱이는 가위눌린 사람처럼 간신히 긴 숨을 내쉬며 뛰어 일어났다.
다음 순간, 자기 자신도 모르게 방문을 뛰어 나온 그는,
부엌문을 박차고 들어가 소반 위에 차려 놓은 냉수 그릇을 들려 하였다.
그러나 그가 냉수 그릇을 집어 들기 전에 모화의 손에는
식칼이 번득이고 있었고, 모화는 욱이와 물 그릇 사이에 식칼을 두르며
조용히 춤을 추는 것이었다. 
 
 “엇쇠, 귀신하 물러서라
  너 이제 보아하니 서역 십만 리 굶주리던 잡귀신하,
  여기는 영주 비루봉 상상봉헤
  깎아 질린 돌 벼랑헤, 쉰길 청수헤, 엄나무발에
  너희 올 곳이 아니다,
  바른 손헤 칼을 들고 왼 손헤 불을 들고,
  엇쇠 서역에 잡귀신하 썩 물러서라.”
 
이때, 모화는 분명히 식칼로 욱이의 면상을 겨누어 치려하였다. 순간,
욱이는 모화의 칼날을 왼 쪽 귓전에 느끼며 그의 겨드랑이 밑을 돌아
소반 위에 차려놓은 냉수 그릇을 들어서 모화의 낯에다 그릇 채 끼얹었다.
이 서슬에 접시의 불이 기울어져 봉창에 붙었다.
욱이는 봉창에서 방안으로 붙어 들어가는 불길을 잡으려고
부뚜막 위로 뛰어 올랐다.
그러자 물그릇을 뒤집어쓰고 분노에 타는 모화는 욱이의 뒤를 쫓아
칼을 두르며 부뚜막으로 뛰어 올랐다.
봉창에서 방안으로 붙어 들어가는 불길을 덮쳐 끄는 순간,
뒷등허리가 찌르르 하여 휙 몸을 돌이키려 할 때 이미 피투성이가 된
그의 몸은 허옇게 이를 악물고 웃음 웃는 모화의 품속에 안겨져 있었다.
 
 
 5
 
욱이의 몸은 머리와 목덜미와 등허리와 세 군데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욱이의 병은 이 세 군데 칼로 맞은 상처만이 아니었다.
그는 날이 갈수록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고
두 눈자위가 패어 들기 시작했다.

모화는 욱이의 병간호에 남은 힘을 다 하여 그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낮과 밤을 헤아리지 않고 뛰어갔다. 가끔 욱이를 일으켜 앉히어서
자기의 품에 안아도 주었다. 물론 약도 쓰고 굿도 하고 방문도 외웠다.
그러나 욱이의 병은 낫지 않았다.
 
모화는 욱이의 병간호에 열중한 뒤부터 굿에는 그만큼 신명이 풀린 듯하였다.
누가 굿을 청하러 와도 아들의 병을 핑계로 대개 거절을 했다.
그러자 모화의 굿이나 푸념의 반응이 이전과 같이 신령치 않다고들
하는 사람이 하나 둘씩 생기기도 했다.
 
이러한 즈음 이 고을에도 조그만 교회당이 서고 선교사가 들어왔다.
그리하여 그것은 바람에 불처럼 온 고을에 뻗쳤다.
읍내의 교회에서는 마을마다 전도대를 내보냈다.
그리하여 이 모화의 마을에까지 <복음>이 전파되었다.
 
 “여러 부모 형제 자매 우리 서로 보게 된 것 하느님 앞에
   감사드릴 것이요.
   하느님, 우리 만들었소. 매우 사랑했소. 우리 모두 죄인올시다.
   우리 마음 속 매우 흉악한 것 뿐이오.
   그러나 예수 우리 위해 십자가에 못박혔소.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 우리 구원받을 것이오.
   우리 매우 반가운 뜻으로 찬송할 것이오. 하느님 앞에 기도드릴 것이오.”
 
두 눈이 파랗고 콧대가 칼날같은 미국 선교사를 보는 것은
 <원숭이 구경>보다도 더 재미난다고들 하였다.
 
 “돈은 한 푼도 안 받는다. 가자.”
 
마을 사람들은 떼를 지어 모여 들었다.
이 마을 방 영감네 이종사촌 손자사위요 선교사와 함께 온
양조사(楊助事)부인은 집집마다 심방하여 가로되,
 
 “무당과 판수를 믿는 것은 거룩거룩 하시고 절대적 하나 밖에 없는
  우리 하느님 아부지께 죄가 됩니다. 무당이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보십시오, 무당은 썩어빠진 고목나무나, 듣도 보도 못하는 돌미륵한테도
  빌고 절을 하지 않습니까. 판수가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보십시오,
  제 앞도 못보아 지팽이로 더듬거리는 그가 어떻게 눈 밝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인생을 만든 것은 절대적 하나 밖에 없는
  하느님 아버지올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이리하여 하느님 아버지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온갖 사귀 들린 사람,
문둥병 든 사람, 앉은뱅이, 벙어리, 귀머거리 고친 이야기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한정 없이
쏟아진다.
 
모화는 픽 웃곤 했다.
 
“그까짓 잡귀신들.”
 
했다. 그러나 그들의 비방과 저주는 뼛골에 사무치는 듯
그녀는 징을 울리고 꽹과리를 치며 외쳤다.
 
 “엇쇠 귀신아 물러서라, 당대 고축년에 얻어먹던 잡귀신아,
  늬 어이 모화를 모르나냐, 아니 가고 봐하면 쉰길 청수에,
  엄나무 발에, 무쇠 가마에, 백말 가죽에 늬 자자손손을 가두어
  못 얻어먹게 하고 다시는 세상 밖을 내주지 아니하여 햇빛도
  못 보게 할란다, 엇쇠 귀신아 썩 물러 가거라,
  서역 십만 리로 꽁무니에 불을 달고 두 귀에 방울 달고
  왈강달강 왈강달강 벼락같이 떠나거라.”
 
그러나 <예수 귀신>들은 결코 물러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점점 늘어만 갔다.
게다가 옛날 모화에게 굿과 푸념을 빌러 다니던 사람들까지 하나 둘씩
모두 예수 귀신이 들기 시작하였다.
 
이러는 중에 서울서 또 부흥 목사가 내려 왔다.
그는 기도를 드려서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다하여 온 고을 사람들이
모여 들기 시작하였다. 그가 병자의 머리위에 손을 얹고,
 
 “이 죄인은 저의 죄로 말미암아 심히 괴로워하고 있사옵니다.”
 
하고 기도를 올리면, 여자들의 월숫병 대하증 쯤은
대개 <죄씻음>을 받을 수 있었고, 그 밖에도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걷고, 귀머거리가 듣고, 벙어리가 말하고,
반신불수와 지랄병까지 저희 믿음 여하에 따라
모두 <죄씻음>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자들의 은가락지, 금반지가 나날이 수를 다투어 강단위에 내걸리게 된다.
기부금이 쏟아진다. 이리되면 모화의 굿 구경에 견줄 나위가
아니라고들 하였다.
 
 “양국 놈들이 요술단을 꾸며 왔어.”
 
모화는 픽 웃고, 이렇게 말했다.
굿과 푸념으로 사람 속에 든 사귀 잡귀신을 쫓는 것은 지금까지 신령님께서
자기에게만 허락하신 자기의 특수한 권능이었다.
그리고 그의 신령님은 오늘날 예수꾼들이 그렇게도 미워하고 시기하는
고목이기도 했고, 미륵돌이기도 했고, 산이기도 했고, 물이기도 했다.
 
 “무당과 판수를 믿는 것은 절대적 한 분 밖에 안 계시는
   거룩거룩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죄가 됩니다.”
 
<예수 귀신>들이 나발을 불고 북을 치며 비방을 하면
모화는 혼자서 징을 울리고 꽹과리를 치며,
 
 “꽁무니에 불을 달고, 두 귀에 방울 달고, 왈강달강 왈강달강,
   서역 십만 리로, 물러서라 잡귀신아.”
 
이렇게 응수하곤 했다.
 
 
 6 
 
욱이의 병은 그 해 가을을 지나 겨울철에 들면서부터 표 나게 악화되어
갔다. 모화가 가끔 간장이 녹듯 떨리는 음성으로,
 
 “이것아 이것아, 늬가 이게 웬 일이고?
  머나먼 길에 에미라고 찾아와서 늬가 이게 무슨 꼴고?”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
 
 “오마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죽어서 우리 아바지께로 갈 것이오.”
 
욱이는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무어 생각나는게 없느냐고 물으면 그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의 어미가 밖에 나가고 낭이가 혼자 있을 때엔
이따금 낭이의 손을 잡고,
 
 “나 성경 한 권 가졌으면…….”
 
하는 것이었다.
이듬 해 봄 그가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에 그가 그렇게도 그리워하고
기다리던 현 목사가 평양에서 찾아왔다.
현 목사는 방 영감네 이종사촌 손자사위인 양 조사의 인도로
뜰 안에 들어서자 그 황폐한 광경과 역한 흙 냄새에 미간을 찌푸리며,
 
 “이런 가운데서 욱이가 살고 있소?”
 
양 조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욱이는 양 조사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두 눈에 광채를 띠며,
 
 “목사님 목사님.”
 
이렇게 두번 불렀다.
현 목사는 잠자코 욱이의 여윈 손을 쥐었다.
별안간 그의 온 얼굴은 물든 것처럼 붉어지며 무수한 주름살이
미간과 눈꼬리에 잡혔다. 그는 솟아 오르는 감정을 누르려는 듯이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양 조사는 긴장된 침묵을 깨뜨리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경주에 교회가 이렇게 속히 서게 된 것은 이분의 공로올시다.”
 
그리하여 그의 말을 들으면 욱이는 평생 현 목사에게 진정을 했고
현 목사께서는 욱이의 편지에 의하여 대구 노회에 간청을 했고,
일방, 경주 교인들은 욱이의 힘으로 서로 합심하여
대구 노회와 연락한 결과 의외로 속히 교회 공사가 진척되었던
것이라 하였다.
현 목사가 의사와 함께 다시 오기를 약속하고 일어나려 할 대 욱이는,
 
 “목사님 나 성경 한 권만 사 주시오.”
 
했다.
 
“그럼 그 동안 우선 이것을 가지시오.”
 
현 목사는 손 가방 속에서 자기의 성경책을 내 주었다.
성경책을 받아 쥔 욱이는 그것을 가슴에 안고 눈을 감았다.
그의 감은 눈에서는 이슬 방울이 맺히었다.
 
 
 7
 
모화 집 마당에는 예년과 다름없이 잡풀이 엉기고 늙은 개구리와 지렁이들이
그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 동안 거의 굿을 나가지 않고,
매일, 그 찌그러져 가는 묵은 기와집 잡초 속에서
혼자 징 꽹과리만 울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주 미친 것이라 하였다.
그는 부엌에다 오색 헝겊을 걸고 낭이가 그려둔 그림으로
기를 만들어 달고는 사뭇 먹기를 잊어버린 채 입술은 먹같이 검어지고
두 눈엔 날로 이상한 광채가 짙어갔다.
 
 “서역 십만 리 예수 귀신 돌아간다.
  꽁무니에 불을 달고 두 귀에 방울 달고, 왈강달강 왈강달강,
  엇쇠 귀신아 썩 물러 가거라, 늬 아니 가고 봐하면,
  쉰길 청수에, 엄나무 바알에, 무쇠 가마에, 흰 말 가죽에,
  너의 자자손손을 다 가두어 죽일란다. 엇쇠! 귀신아!”
 
그는 날마다 같은 푸념으로 징 꽹과리를 울렸다.
혹 술잔이나 가지고 이웃 사람이 찾아가,
 
 “모화네 아들 죽고 섭섭해서 어쩌나?”
 
하면, 그녀는 다만, 
 
 “우리 아들은 예수 귀신이 잡아 갔소.”
 
하고, 한숨을 내 쉬곤 했다.
 
 “아까운 모화 굿을 언제 또 볼꼬?”
 
사람들은 모화를 아주 실신한 사람으로 치고 이렇게 아까워하곤 했다.
이러할 즈음에 모화의 마지막 굿이 열린다는 소문이 났다.
읍내 어느 부자집 며느리가 <예기소의>에 몸을 던진 것이었다.
그래 모화는 비단옷 두벌을 받고 특별히 굿을 응낙했다는 말도 났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모화가 이번 굿에서
딸 낭이의 입을 열게 할 계획이라는 소문도 났다.
「흥, 예수귀신이 진짠가 신령님이 진짠가 두고 보지.」
이렇게 장담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대와 호기심에 들끓었다.
그들은 놀라웁고 아쉬운 마음으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모여들었다.
 
굿이 열린 백사장 서북쪽으로는 검푸른 소물이
깊은 비밀과 원한을 품은 채 조용히 구비 돌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명주구리 하나 들어간다는 이 깊은 소에는 해마다 사람이 하나씩
 빠져 죽기 마련이라는 전설이 있다.)
 
백사장 위에는 수많은 엿 장수, 떡 장수, 술 가게, 밥 가게들이
포장을 치고 혹은 거적을 두르고 득실거렸고,
그 한복판 큰 차일속에서 굿은 벌어져 있었다.
청사 홍사 녹사 백사 황사의 오색 사초롱이 꽃송이 같이 여기저기
차일 아래 달리고, 그 초롱불 밑에서 떡 시루 탁주 동이 돼지 통새미들이
온 시루 온 동이 온 마리 채 놓인 대감상, 무더기 쌀과 타래실과 곶감 꽂이,
두부를 놓은 제석상과, 삼색 실과에 백설기와 소채 소탕에 자반 유과들을
차려놓은 미륵상과, 열 두 가지 산채로 된 산신상과,
열 두 가지 해물을 차린 용신상과, 음식이란 음식마다
한 접시씩 놓은 골목상과, 냉수 한 그릇만 놓은 모화상과
이 밖에도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전물상들이 쭉 늘어놓아져 있었다.
 
이날 밤 모화의 얼굴에는 평소에 볼 수 없던 정숙하고 침착한 빛이
서려 있었다. 어제같이 아들을 잃고 또 새로 들어 온 예수교도들로부터
가지각색 비방과 구박을 받아오던 그녀로서는 의아스러우리만치 새침하게
가라앉아 있어, 전 날 달밤으로 산에 기도를 다닐 적의 얼굴을 연상케 했다.
그녀는 전 날과 같이 여러 사람 앞에서 아양을 부리거나
수선을 떨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 호화스러운 전물상들을 둘러보고도
만족한 빛 한번 띠우지 않고 도리어 비웃듯이 입을 비쭉 거렸다.
 
 “더러운 년들 전물상만 잘 차리면 그만인가.”
 
입 밖에 내어 놓고 빈정거리기까지 하였다.
그러자 자리에서는 모화가 오늘 밤 새로운 귀신이 지핀다고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한 여자가 돌연히,
 
 “아, 죽은 김씨 혼신이 덮였군.”
 
하자 다른 여자들도,
 
 “바로 그 김씨가 들렸다.
  저 청승맞도록 정숙하고 새침한 얼굴 좀 봐라,
  그러고 모화네가 본디 어디 저렇게 이뻤나,
  아주 김씨를 덮어 썼구먼.”
 
이렇게들 수군댔다. 이와 동시, 한쪽에서는 오늘밤 굿으로
어쩌면 정말 낭이가 말을 하게 될게라는 얘기도 퍼졌고,
또 한 쪽에서는 낭이가 누구 아인지는 모르지만 배가 불러 있다는
풍설도 돌았다. …… 하여간 이 여러 가지 소문들이 오늘 밤 굿으로
해결이 날 것이라고 막연히 그녀들은 믿고 있는 것이었다.
 
모화는 김씨 부인이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물에 빠져 죽을 때까지의
사연을 한참씩 넋두리 하다가는 전악들의 젓대 피리 해금에 맞추어
춤을 덩싯거렸다. 그녀의 음성은 언제 보다도 더 구슬펐고,
몸뚱어리는 뼈도 살도 없는 율동(律動 )으로 화한 듯 너울거렸고,
 …… 취한 양, 얼이 빠진 양 구경하는 여인들의 숨결은
모화의 쾌자자락만 따라 오르내렸다.
모화의 쾌자자락은 모화의 숨결을 따라 나부끼는 듯했고
모화의 숨결은 한 많은 김씨부인의 혼령을 받아 청승에 자지러진 채,
비밀을 품고 조용히 구비 돌아 흐르는 강물(예기소의)과 함께
자리를 옮겨가는 하늘의 별들을 삼킨 듯 했다.
밤중이나 되어서였다. 
혼백이 건져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화랑이들과 작은 무당들이 몇 번이나 초망자(招亡者) 줄에
밥 그릇을 달아 물속에 던져도 밥그릇 속에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이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김씨가 초혼에 응하질 않는 모양이라 하였다.
 
작은 무당 하나가 초조한 낯빛으로 모화의 귀에 입을 바짝 대며,
 
 “여태 혼백을 못 건져서 어떡해?”
 
하였다.
모화는 조금도 서둘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넋대를 잡고
물가로 들어섰다. 초망자 줄을 잡은 화랑이는 넋대가 가리키는 방향을
이리저리 초혼 그릇을 물 속에 굴렸다.
 
 “일어나소 일어나소, 서른 세 살 월성 김씨 대주 부인,
  방성으로 태어날 때 칠성에 복을 빌어.”
 
모화는 넋대로 물을 휘저으며 진정 목이 메인 소리로 혼백을 불렀다.
 
 “꽃같이 피난 몸이 옥같이 자란 몸이, 양친 부모도 생존이요,
  어린 자식 누여 두고, 치마폭이 봉긋 떠서 연화대를 타단 말가,
  삼단머리 흐트려져 물귀신이 되단 말까.”
 
모화는 넋대를 따라 점점 깊은 물속으로 들어갔다.
옷이 물에 젖어 한 자락 몸에 휘감기고, 한 자락 물에 떠서 나부꼈다.
검은 물은 그녀의 허리를 잠그고 가슴을 잠그고 점점 부풀어 오른다 …….
 
그녀는 차츰 목소리가 멀어지며 넋두리도 휘황해지기 시작했다.
 
 “가자시라 가자시라 이수중분 백노주로, 불러 주소 불러 주소
  우리 성님 불러 주소, 봄철이라 이 강변에 복숭아꽃이 피그덜낭,
  소복단장 낭이 따님 이내 소식 물어 주소,
  첫 가지에 안부 묻고, 둘째 가 …….”
 
할 즈음, 모화의 몸은 그 넋두리와 함께 물속에 아주 잠겨져 버렸다 …….
처음엔 쾌자자락이 보이더니 그것마저 잠겨 버리고,
넋대만 물위에 빙빙 돌다가 흘러 내렸다.
 
열흘쯤 지난 뒤다. 동해변 어느 길목에서 해물 가게를 보고 있다던
체수 조그만 사내가 나귀 한 마리를 몰고 왔을 때,
그때까지 아직 몸이 완쾌하지 못한 낭이는 퀭한 눈으로 자리에 누워 있었다.
 
사내는 낭이에게 흰 죽을 먹이기 시작했다.
 
 “아버으이.”
 
낭이는 그 아버지를 보자 이렇게 소리를 내어 불었다.
모화의 마지막 굿이(떠돌던 예언대로) 영검을 나타냈는지
그녀의 말소리는 전에 없이 알아들을 만도 했다.
 
다시 열흘이 지났다.
 
 “여기 타라.”
 
사내는 손으로 나귀를 가리켰다.
 
 “…….”
 
낭이는 잠자코 그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나귀 위에 올라앉았다.
그들이 떠난 뒤엔 아무도 그 집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고,
밤이면 그 무성한 잡풀 속에서 모기들만이 떼를 지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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