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 3

돌다리 - 이태준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돌다리 - 이태준 - 정거장에서 샘말 십 리 길을 내려오노라면 반이 될락말락한 데서부터 샘말 동네보다는 그 건너편 산기슭에 놓인 공동묘지가 먼저 눈에 뜨인다. 창섭은 잠깐 걸음을 멈추고까지 바라보았다. 봄에 올 때 보면, 진달래가 불붙듯 피어 올라가는 야산이다. 지금은 단풍철도 지나고 누르테테한 가닥나무들만 묘지를 둘러, 듣지 않아도 적막한 버스럭 소리만 울릴 것 같았다. 어느 것이라고 집어 낼 수는 없어도, 창옥의 무덤이 어디쯤이라고는 짐작이 된다. 창섭은 마음으로 ‘창옥아’ 불러 보며 묵례를 보냈다. 다만 오뉘뿐으로 나이가 훨씬 떨어진 누이였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자기가 마침 방학으로 와 있던 여름이었다. 창옥은 저녁 먹다 말고 갑자기 복통으로 뒹굴었다. 읍으로 ..

한국단편문학 2023.09.26

금 따는 콩밭 - 김유정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금 따는 콩밭 - 김유정 - 땅속 저 밑은 늘 음침하다. 고달픈 간드렛불, 맥없이 푸르끼하다. 밤과 달라서 낮엔 되우 흐릿하였다. 겉으로 황토 장벽으로 앞뒤좌우가 콕 막힌 좁직한 구뎅이. 흡사히 무덤 속같이 귀중중하다. 싸늘한 침묵, 쿠더브레한 흙내와 징그러운 냉기만이 그 속에 자욱하다. 곡괭이는 뻔질 흙을 이르집는다. 암팡스러이 내려쪼며, 퍽 퍽 퍼억. 이렇게 메떨어진 소리뿐. 그러나 간간 우수수 하고 벽이 헐린다. 영식이는 일손을 놓고 소맷자락을 끌어당기어 얼굴의 땀을 훑는다. 이놈의 줄이 언제나 잡힐는지 기가 찼다. 흙 한줌을 집어 코밑에 바짝 들여대고 손가락으로 샅샅이 뒤져본다. 완연히 버력은 좀 변한 듯싶다. 그러나 불통버력이 아주 다 풀린 것도 아니었다. 밀똥버력..

한국단편문학 2023.09.15

광화사(狂畵師) - 김동인 -

광화사(狂畵師) - 김동인 - 인왕(仁王). 바위 위에 잔솔이 서고 잔솔 아래는 이끼가 빛을 자랑한다. 굽어보니 바위 아래는 몇 포기 난초가 노란 꽃을 벌리고 있다. 바위에 부딪치는 잔 바람에 너울거리는 난초잎. 여(余)는 허리를 굽히고 스틱으로 아래를 휘저어 보았다. 그러나 아직 난초에서는 사오 척의 거리가 있다. 눈을 옮기면 계곡(溪谷). 전면이 소나무의 잎으로 덮인 계곡이다, 틈틈이는 철색(鐵色)의 바위도 보이기는 하나, 나무 밑의 땅은 볼 길이 없다. 만약 여로서 그 자리에 한 번 넘어지면 소나무의 잎 위로 굴러서 저편 어디인지 모를 골짜기까지 떨어질 듯하다. 여의 등뒤에도 이삼 장(丈)이 넘는 바위다. 그 바위에 올라서면 무학(舞鶴)재로 통한 커다란 골짜기가 나타날 것이다. 여의 발 아래도 장여..

한국단편문학 2023.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