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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본실의 청개구리 - 염상섭 -

표본실의 청개구리 - 염상섭 - 1 무거운 기분의 침체와 한없이 늘어진 생의 권태는 나가지 않는 나의 발길을 남포까지 끌어 왔다. 귀성한 후 칠팔개 삭간의 불규칙한 생활은 나의 전신을 해면같이 짓두들겨 놓았을 뿐 아니라 나의 혼백가지 두식하였다. 나의 몸의 어디를 두드리든지 알코올과 니코틴의 독취를 내뿜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피로하였다. 더구나 육칠월 성하를 지내고 겹옷 입을 때가 되어서는 절기가 급변하여 갈수록 몸을 추스리기가 겨워서 동네 산보에도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친구와 이야기하면 두세 마디째부터는 목침을 찾았다. 그러면서도 무섭게 앙분한 신경만은 잠자리에도 눈을 뜨고 있었다. 두 홰, 세 홰 울 때까지 엎치락뒤치락거리다가 동이 번히 트는 것을 보고 겨우 눈을 붙이는 것이 일 주일 간이나 넘은 ..

한국단편문학 2023.08.22

숙영낭자전(淑英娘子傳) - 고전소설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숙영낭자전 (淑英娘子傳) - 고전소설 - 조선 세종대왕 때, 경상도 땅에 한 선비가 살고 있었으니 성은 백(白)이요 이름은 상군(尙君)이라 하였다. 부인 정씨(鄭氏)와 이십년을 함께 살아왔으나 슬하에 자식이 없어서 걱정하고, 늘 천지신명께 아들 하나 점지해 주시기를 지성으로 축원하였다. 그 간곡한 정성으로 아들 하나를 점지 받았는데, 점점 자라는 동안에 용모가 수려하고 성품이 온유하며 문재(文才)가 넘쳐흘렀다. 백상군 부부는 하늘이 내려주신 이 외아들을 금지옥엽 애중하여 이름을 선군(仙郡)이라 하고 자를 현중(賢仲)이라고 지었다. 백선군은 자라서 어느덧 장가들 나이에 이르렀다. 부모는 자식에게 적당한 짝을 얻어서 슬하에 두고 살아가는 재미를 보고자 널리 구혼하였으나 알맞은 ..

한국단편문학 2023.08.11

빈처 (貧妻) - 현진건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빈처 (貧妻) - 현진건 - 1 “그것이 어째 없을까?” 아내가 장문을 열고 무엇을 찾더니 입안말로 중얼거린다. “무엇이 없어?” 나는 우두커니 책상머리에 앉아서 책장만 뒤적뒤적하다가 물어 보았다. “모본단 저고리가 하나 남았는데…….” “……” 나는 그만 묵묵하였다. 아내가 그것을 찾아 무엇 하려는 것을 앎이라. 오늘 밤에 옆집 할멈을 시켜 잡히려 하는 것이다. 이 2년 동안에 돈 한 푼 나는 데는 없고 그대로 주리면 시장할 줄 알아, 기구(器具)와 의복을 전당국 창고(典當局倉庫)에 들이밀거나 고물상 한구석에 세워 두고 돈을 얻어 오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아내가 하나 남은 모본단 저고리를 찾는 것도 아침거리를 장만하려 함이라. 나는 입맛을 쩍쩍 다시고 폈던 책을 덮으며 ..

한국단편문학 2023.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