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어 둠 - 강경애 -

하얀모자 1 2022. 11. 14.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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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 둠 "
                                                                          - 강경애 -

   
툭 솟은 광대뼈 위에 검은빛이 돌도록 움쑥 패인 눈이 슬그머니
외과실을 살피다가 환자가 없음을 알았던지 얼굴을 푹 숙이고 지팡이에
힘을 주어 붕대한 다리를 철철 끌고 문안으로 들어선다.
오래 깎지 못한 머리카락은 남바위나 쓴 듯이 이마를 덮어 꺼칠꺼칠하게
귀밑까지 흘러내렸으며 땀에 어룽진 옷은 유지같이 싯누래서 몸에
착 달라붙어 뼈마디를 환히 드러내이고 있다. 소매로 나타난 수숫대
같은 팔에 갑자기 뭉퉁하게 달린 손이 지팡이를 힘껏 다궈쥐었다.
금방 뼈마디가 허옇게 나올 것 같다.
의사는 회전의자에 앉아 의서를 보다가 흘끔 돌아보았으나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얼른 머리를 돌리고 검실검실한 긴 눈썹에 싫은 빛을 푸르르
깃들이고서 여전히 책에 열중한 체한다.
저편 침대 곁에서 소곤소곤 지껄이던 간호부들은 입을 다물고 우두커니
서 있다. 그 중에 제일 나이 들어 보이는
간호부가 환자를 바라보자 얼굴이 해쓱해서 ‘오빠!’하고 부르렸으나
다시 보니 오빠는 아니었다. 가시로 버티는 듯한 눈을 억지로
내려 떴다. 마룻바닥은 캄캄하였다. 귀가 울고 가슴이 달막거린다.
꼭 오빠였다. 조금도 틀림없는 오빠이었다. 한데 눈 한 번 깜박일 새
그가 제일 싫어하는 무료과의 입원한 환자가 아니었던가. 내가 미쳤나,
소리를 쳤더라면 어쩔 뻔했어, 하고 다시 환자를 바라보았다.
오빠는 저러한 불쌍한 사람을 위하여 목숨까지 바친 셈인가! 이러한
생각이 불쑥 일어나자 그의 조그만 가슴이 화끈 뜨거워진다.
그는 얼른 알코올 십뿌(濕布[습포]:찜질수건)를 가지고 환자의 곁으로
가서 붕대에 손을 대었다. 오빠는 참으로 이런 사람을 위했음인가?
머리가 어찔해지고 손끝이 포들포들 떨린다.
풀리는 붕대에서는 살 썩은 내가 뭉클뭉클 일어난다.
참말 오빠는 사형을 당하였어, 거짓 소리가 아닐까.
손은 환부를 꾹 눌러 누런 고름을 뽑으면서 맘으로는 이리 분주하였다.
뻘건 피가 고름에 섞여 주루루 흘러내린다. 그는 손에 힘을 주었다.
퉁퉁부은 환부에 손이 옴쑥 들어가며 다리뼈 마디에 맞질리운다.
발그레한 손끝에 피와 고름이 선뜻 묻혀진다.
오빠의 얼굴이 선히 떠오른다. 오빠는 목숨까지 바쳤거든 나는 요만
병자를 대하기도 싫어했구나. 눈이 캄캄해지며 형용할 수 없는 감격이
토실히 부은 그의 눈등에까지 흔흔히 올라오고 있다.
고름은 멈춰지고 피만 흐르매 알콜 십뿌로 환부를 박박 문지르고
핀셋으로 니바노루 가제를 집어 어웅한 환부 속을 헤치고 깊이
밀어넣은 담에 소독한 가제에다 부로시 십뿌를 싸서 환부에 덮고
노란 유지를 놓아 붕대해 주었다. 환자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부비치고 나서 지팡이를 집고 일어나 나간다.
땀내에 머리카락 쉰 내인 듯한 내가 후끈 끼친다.
그는 물러났다. 적삼깃을 쓰적이는 환자의 머리털이며 고름을 이겨붙여
말린 듯한 잠방이 밑, 저는 필시 부모도 처자도 없는 게로구나,
하고 돌아서서 스팀 곁에 있는 세면기에 손을 넣었다.
나도 단지 어머님뿐만이 아닌가, 크레졸 물이 그의 손에 가볍게
부딪칠 때 이리 생각되었다. 귀밑에 땀이 뽀르르 흘러 내린다.
그는 보느라 없이 의사를 보았다. 양미간을 찌푸린 채 책을 보고 있다.
기분이 좋지 못할 때 언제나 저 모양을 한다.
그런 험한 환자가 다녀간 뒤라 그런지 의서 가운데 난해의 문구가 있어
그런지 딱히 집어댈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뜻하지 않은 옛일을 문득 회상하고 코웃음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십년 전 의사가 이 병원에 갓 부임했을 때는 모든 일에 열과 피가
움직였다. 특히 빈한한 환자에게 한하여는 수술료 같은 것은
반감하였고 또는 사정만 하면 한푼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원장과도
말다툼이 잦았으며, 한때는 사직한다는 말까지 있어 시민들까지
우려하였던 것이다.
때는 흘렀다. 거기에 따라 인심도 흐른 것인가, 십년 전 의사와
오늘의 그는 딴 사람인 것처럼 변하여진 것이다. 하필 의사뿐이랴,
오빠가 떠난 후에 영실의 맘과 몸까지도 엄청나게 달라졌다는 것을
비로소 지금 느끼는 것이다.
 
-- 우리는 없는 놈이니까 같은 없는 놈을 동정하여야 하고 보다도
  이러한 생지옥을 벗어나기 위하여는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누이야.─
 
어떤 날 밤중에 길 떠나면서 매어달리는 그 누이에게 이르던 오빠의 말,
결국 오빠는 그 길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다.
 
 “오빠 너무 해,
  너무해, 어머니는 어쩌구 저 모양이 되어, 온 세상이 우리 모녀를
  업수이 보고 해치려는데……”
 
그는 커튼으로 눈을 옮겼다. 정낮 햇볕에 주홍빛으로 물들여진 커튼은
눈물에 어리어 뿌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캄캄도 하였다.
열두 시를 땅땅 친다. 뒤이어 웅 하고 일어나는 저 사이렌 소리.
병원을 즈르릉 울려 준다. “너의 오빠는 사형당하였단다. 우웅우웅.”
외치는 듯 호소하는 듯 땅을 울리고 하늘에 솟았다 툭 끊어져버렸다.
의사는 책을 덮어놓고 일변 수건을 내어 얼굴을 씻으면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가죽 슬리퍼 끄는 저 소리, 그는 문득 신발소리를 따라 귀를
세웠음을 발견하고 스스로 조소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젠 의사는 그를 잊은 지 오래였고 이미 딴 여자와 약혼까지 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자신은 그를 잊지 못하고 입때까지 생각하나.
호! 나오는 한숨을 언제나처럼 꿈쩍 삼키였다가 한참만에야 가만히
내뿜었다. 믿던 사나이도 변하였고, 행여나 나오면 나오게 되면,
하고 주야로 기다리던 오빠마저 영원히 가버리었다. 오빠가 나오면
어머님께도 숨긴 이 비밀을 이야기하여 이 억울함을 설치하고자 했건만
그 희망조차 툭 끊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번득이는 카제관(罐)을
바라보자 눈에 핏줄이 따갑게 일어나는 듯해서 눈을 감고 침대에
걸어앉았다. 소매에서 크레졸 내가 솔솔 풍기고 있다.
 
 “아이 언니, 오빠를 생각하지? 그러지 말아요,
  이젠 그리된 것을 아끼라 메(체념) 해야지 어쩐다나.”
 
효숙이가 깨울하여 본다. 눈에 동정의 빛이 짜르르하다. 통통한 볼에
윤기가 돌고 엷은 입술 사이로 담은담은한 이가 구슬같이 동글다.
 
 “어서 소지나 해요.”
 
효숙의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까가와[中川[중천]]를 보았다.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이상.”
 
머리를 끄떡해 보인다. 그는 한숨을 후 쉬었다. 말로나마 동무들은 이리
위로하여 주건만 정작 위로하여 줄 의사만은 입을 다문 채 오히려
모르는 체한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괘씸하고 분하여서 그 앞에서는
조금도 슬픈 빛을 띠지 않으려 적심을 다 기울이는 것이다.
효숙이는 영실의 눈이 까스스해지는 것을 보고 돌아서서
바께쓰를 가지고 수도 곁으로 가서 솨르르 수도를 틀어 놓았다.
머리에 꽂힌 모자는 깨울하였고, 그 밑으로 토실한 목덜미가 나부룩한
머리에 덮이었다.
나까가와는 눈을 껌벅이면서 주사기, 핀셋, 존데 같은 기계를
한 줌 쥐고 소독가마[消毒釜] 곁으로 와서 나사를 틀어 놓으니 물이
쏼쏼 끓고 더운 김이 팡팡 기어오른다. 거기에 기계들을 집어넣고
물러난다. 금시코 밑에 땀이 송알송알 맺히었다.
 
영실이는 힘없는 다리를 옮겨서 그의 사무상으로 왔다.
손은 벌써 흐뜨러진 책상 위를 정돈하는 것이다.
누런 뚜껑을 한 의서에서 호르르 오르는 담뱃내와
가오루(薰[훈]:향기) 내, 그는 의사의 숨결을 문득 볼에 느낀다.
일변 눈을 찌푸리고 생각을 돌리려 효숙의 분주한 양을 바라보았다.
약간 푸른기를 띤 새하얀 간호부복에서 또한 의사의 옷갈피를 홀연히
발견하는 것이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오빠는 사형당하였다. 천장에 시커멓게 쓰여지는 것을 또한 보게 된다.
 
효숙이는 걸레로 마루를 닦고 책상, 의자, 도다나(戶棚[호붕]: 찬장)를
닦으면서 열심으로 조잘거리고 있다. 머리 까딱이는 몸짓하는 게
나까가와를 보니 훨씬 능란한 것 같다. 나까가와는 푸시시한 머리를
소독가마에서 오르는 김에 뽀얗게 적시우고 서서 기계를 꺼내어
하나하나 탈지면으로 닦으며
 
 “그래” “참말”
 
하고 효숙의 말을 받고 있다. 그들은 아무 걱정도 없어 보인다.
소제가 끝나자 둘이는 머리를 까딱해 보이고 밖으로 통통 뛰어나간다.
이어 점심 종소리가 댕그릉 댕그릉 울려온다. 그는 엊저녁부터 굶었건만
밥 먹고 싶지 않았다. 이십여 일 전 의사가 약혼할 당시부터 굶기
시작한 것이 그 후로 한두 끼니는 예사로 굶게 되는 것이다.
보다도 그때로부터 밥맛을 잃어버렸다.
그는 복도로 통한 문을 닫고 포켓에 손을 넣었다.
신문이 바스락 만져진다. 몸이 흠칫해지고 솜치가 오스스해진다.
손을 빼어 볼에 대었다. 잘 못 본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혹시 알 수가 있나, 손은 다시 포켓 속으로 들어간다.
땀이 뿌찐뿌찐 나고 팔이 후루루 떨린다. 신문을 쥐었다. 놓았다.
망설였다. 살금살금 끌어내었다. 눈에 칼날이 스치는 듯 산득산득해서
바로 볼 수가 없다. 절반 머그러진 사형수들의 사진 틈에 목이 상큼하게
패인 오빠가 툭 뛰어들었다. 그는 머리를 돌리고 같은 사람도 있지,
이름으로 눈을 옮기자 신문을 와락 접어 던졌다. 순간 철사로 그를
숨쉴 수 없어 꽁꽁 동였음을 느낀다. 아무리 벗어날래야 날 수 없는
그런 철망에 감긴 것을……
오빠! 어머님께 뭐라고 하라우! 이때까지는 속여왔지만
이제는 뭐라고……
 
어제 이맘때 의사의 손을 거쳐 떨어지던 이 신문 호외!
얼마나 기막힌 소식이었던가. 그는 당장에 기색하였던 것이다.
그때 아주 피어나지 말았던들 이 아픈 양은 당하지 않을 것을,
그는 부지중에 손등을 꽉 물어 떼었다. 피가 봉긋이 솟아오른다.
 
 “오빠는 나쁜 사람이야. 그 어머님께 죽음을 뵈어.
   너무 해, 너무 해. 어머님께 뭐라고 여쭐까.” 
 
그는 벌떡 일어나 빙빙 돌았다. 어머니만 아니면 약이라도 먹고
금방 이 괴롬을 잊고 싶다. 한데 칠순이 다 된 어머니가 있지 않나.
아들이 나오면 만나보겠다고 눈이 깜해서 기다리는 어머니가 있지 않나.
 
  ─ 영실아, 우리가 사형 언도를 받은 것은 신문지상으로 벌써
  알았겠구나, 하지만 봐라, 결코 우리는 죽지 않는다. 언제든지
  나가서 어머니와 너를 대할 날이 있을 터이니 그때를 기다려라.
  어머니께는 당분간 숨겨다오, 누이야 ─
 
최후심에서 사형 언도를 받는 오빠에게서는 이러한 편지가 왔던 것이다.
온 세상이 뭐라고 떠들든지 그는 오빠의 이 말을 믿고 싶었으며
또 한 믿어지던 것이다. 하나 결국은 사형을 당하고야 말지 않았나,
그는 신문을 와락 당기어 올올이 찢어 창 밖으로 던졌다.
 
저편 정원엔 한창인 화단이 눈이 시릴 만큼 번거로왔고,
정원을 둘러싼 비수리나무 울타리는 요새 가지깎음을 받아 가지런하게
돌아갔다. 거기엔 이제야 봄이 툭툭 쥐어발렸다.
 
  참일까, 거짓이지, 오늘이라도 오빠에게서 편지가 올지 모르지.
 
그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물소리가 났다. 누가 편지를 들고 들어오는 것 같아 왁 울음이
나오는 것을 참고 머리를 돌렸다. 의사가 무심히 들어오다가
흠칫 하였으나 태연히 들어와서 의자에 걸어앉는다.
그의 손엔 아무것도 없었다. 일변 담배를 피어 문다.
 
코끝에까지 울음이 빼듯이 내어민 것을 억지로 삼키려니 자꾸만 입이
비죽 거려지고 숨이 가쁘다. 그러나 눈엔 독이 파랗게 서리고 있다.
혀를 꼭 깨물고 책상을 힘껏 붙들었다. 혀끝에서 피가 나는지
간간한 맛이 머리에까지 따끔따끔 느껴지고 있다.
의사는 성큼 일어나더니 도나다 곁으로 가서 담숙담숙 쌓아논 알코올
십뿌를 집어 손을 닦고 있다.
 
  “점심 먹었어?”
 
이 물음에 영실의 보풀락한 눈등은 찢어질 듯이 팽팽하여졌다.
 
  “왜 대답이 없어?”
 
말 끝에 씩 웃는다.
그의 말버릇이 그렇게만 지금에 있어서는 자신의 처지를 비웃는 웃음
같아 더 참을 수 없는 분이 왈칵 내밀치므로 눈을 쏘아 보았다.
포마드를 발라 넘긴 머리카락은 보기 싫게 흔들거리고 거무틱틱한 눈에
거만함이 숭글숭글 얽히었다. 의사는 그의 시선을 피하여 열심으로
손끝만 보고 부비친다. 전날에 고상해 보이던 그의 인격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찾을 수 없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야비함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저런 사나이에게 귀한 처녀를 빼앗기었나,
 보다도 오빠만을 고이 생각던 누이의 맑은 맘은 송두리째 빼앗기었나,
 
하니 자신의 어리석음이 기막히게 분하여진다.
그만 달려가서 저 사나이를 푹푹 찔러죽이고 싶다.
의사는 그의 눈치를 채었음인지 슬금슬금 나가버린다.
그는 의사가 보이지 않도록 쏘아보다가 일어나
위층 쯔메쇼(詰所[힐소]: 대기실)로 올라왔다.
 
활짝 열어제친 창으로 오빠를 잃은 저 하늘이 찰찰 넘쳐 흐르고
책상 위의 두어 송이의 백합이 그 하늘을 갸웃이 바라보고 있다.
그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노라니 층대를
올라오는 신발소리가 아득히 들린다. 의사인가 싶어 휙 돌아보니
소사인 김서방이 바쁘게 올라온다. 울어서 부은 눈을 아무에게도
보이기 싫어서 머리를 돌렸다. 한참 후에 무심히 머리를 돌리니
그의 옆에 김서방이 우뚝 섰지 않느냐. 그는 와락 반가운 맘이 들어
벌떡 일어났다.
 
 “편지 왔소?”
 
김서방은 뭣이 들어앉아 쪽 펴지 못하는 그의 굵단 손으로 반백이나
되는 머리를 어색하게 슬슬 어루만지며 차마 영실이를
바라보지 못하고 섰다.
 
 “아니유.”
 
 “오늘은 꼭 편지가 와얄 텐데 어쩌나!”
 
그는 애처로이 김서방을 보았다. 입을 중긋중긋 하던 김서방은
눈을 번쩍 떠서 마주 본다. 항상 벙글거리던 그 눈에 웃음이 간 곳 없고
슬픈 빛이 뚝뚝 흘러내린다. 저도 알았구나, 하자 눈물이 핑그르르
돌아 떨어진다. 그는 흐르는 눈물을 씻으려고도 아니하고 눈을 점점 더
크게 떠서 김서방을 보았다. 얼굴은 캄캄하게 어리우나
왼편으로 깨울히 내려온 흰수염 끝이 영실의 눈에 가득히 어리운다.
 
 “너무 너무 그렁마슈.”
 
김서방은 발끝을 굽어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김서방! 하고 힘껏 부르려 했으나 목이 메어 나가지 않았다.
이 병원에서 가장 오랜 연조를 가진 김서방과 자신, 가장 가난한
처지에서 헤매이는 김서방과 자기, 그래서 의사와 자기 사이도 아는 것
같고 역시 오빠의 죽음에 대하여도 누구보다도 이해가 깊은 것을
깨달은 것이다.
 
밤 아홉시.
효숙이와 나까가와는 목욕탕에 들어가고 영실만이 쯔메쇼에 남아 있어
체온표에다 입원환자들의 체온과 맥박을 푸르고 붉은 연필로
그리고 있다. 손은 종이 위에서 넘노나 맘은 자꾸만 구숭숭해 오고
초초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오늘쯤은 어디서 이 소식을 듣고 나한테
쫓아오다가 길에서라도 졸도를 하지 않았는지 하는 불안이 시시각각으로
커가는 때문이다.
마침내 그는 체온표를 철썩 덮어놓았다. 연필이 따르르 떨어진다.
숙직 의사에게 말하고 잠깐 다녀오려니 일일이 사정을 늘어놓아야
할 테고 이해 없는 그들 앞에서 구구한 사정이란 기막히는 노릇이다.
이것들이 웬 목욕을 이리 오래하누, 하고 층대쪽을 바라보았다.
아래층 당구장에서는 한참 신이 나서 떠들고 있다.
어쩐지 저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곳에 있는 자신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면서 두 손을 볼에 대고 한숨을 푹 쉬었다.
 
 오빠가 사형을…… 거짓말이지. 그럼, 아직 감옥 안에 계시어?
 숨이 답답해지고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내일까지 아무 소식이 없으면
 휴가를 맡아 가지고 경성 가봐야지, 그래야지 아무러면 오빠가 그리
 되었을까, 신문에 난 것은 무어야! 그럼
 
그는 가슴이 오짝해서 일어나 빙빙 돌았다. 시커먼 사형수들의
사진이 얼씬얼씬 나타나고 있다. 참말일까? 그는 주위를 두리두리
살피다가 창 앞으로 왔다. 무의식간에 창문을 와르르 열고,
 
 “참말일까요?”
 
허공을 향하여 소리쳤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따귀나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하여 우두커니 섰다.
싸늘한 바람이 그의 머리털에 비웃는 듯 조소하는 듯 팔팔 감기고 있다.
어둠을 뚫고 빛나는 전등불이 여기저기 흩어졌고 거기로부터 달려 오는
긴 빛이 그의 눈가에 수없이 꽂히어 눈물을 가득히 어리우게 한다.
원장의 집 곁에 간호부 기숙사가 있고 그 옆에 부원장인 외과의사의
저택이 유난히도 빛나는 전등을 문전에 달고 어둠 속에 뚜렷이 앉아
있다. 필시 지금쯤은 약혼한 계집이 찾아왔겠군, 불시에 이런 생각이
들자 불뚝 치달아 올라오는 질투심에 얼굴이 화끈 달았다.
그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러고 창을 등지고 서 버렸다.
 
 ─ 영실이, 나는 그대를 떠나서는 한시도 살수가 없소.
   내 손이 가기전에 그 부드러운 흰 손이 더러운 환부를 깨끗이
   씻어주었고, 그래서만이 내 손은 환부를 꼭 집어 알 수가 있소.
   그 손! 그 이쁜 손은 영원히 내 것이요─
 
이러한 한 구절의 편지가 서늘한 바람을 타고 흘러 들어온다.
 
 “악마!”
 
그는 부지중에 중얼거렸다. 그리고 창문을 요란스레 닫아버렸다.
이번엔 도다나 속의 수없는 기계들이 의사의 손! 영실의 손! 하고
속삭이는 듯하다.
그는 머리를 푹 숙이었다. 의사의 손과 그의 손이 합하면 어떠한
대수술도 무난히 돌파하지 않았던가. 나부죽한 손톱을 가진 약간
여윈 듯한 의사의 손! 까딱하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알았고 또한 무슨
기계와 무슨 약을 들려 줄 것을 이 손이 알지 않았던가.
그는 얼른 손등을 입에 대었다. 그만 탁 찍어 버리고 싶다.
 
  내가 미쳤나?
 
그는 당구장에서 일어나는 환성에 깜짝 놀라 머리를 들었다.
지금 어머니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면서.
 
 “영식아! 영식아!”
 
오빠를 부르는 어머니의 음성이 금방 들리는 듯하다.
 
 “언니 목욕해요.”
 
효숙이와 나까가와는 층계를 올라오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들의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었고 하얀 손끝에서는
크림 냄새가 솔솔 풍기었다.
 
 “저 나 잠깐만 집에 다녀올께. 병실에서 오거든 엠직만하면 선생님께
   알리지 말고 둘이서 처리해요.
   저기 주사기랑 약이랑 준비 다 했으니, 응.”
 
영신이는 도다나를 가리키고 나서 황황히 탈의소로 와서 옷을 갈아입고
층계를 내려뛰었다. 긴 복도를 지나 병원을 나왔다.
밖은 새까맣다. 하늘엔 별들이 싸늘해 있고 이따금 가로등만이
뽀얀 빛을 땅에 던지고 있다. 웬일인지 발길이 풍풍 빠지는 듯하고
다리 마디가 자꾸만 꺾이려고 하였다. 신발소리만 나면 어머닌가 하여
살피게 되고, 늘 다니던 이 길이건만 어쩐지 처음 가는 골목 같아
한참이나 돌아보곤 하였다.
너무 숨이 차서 가슴을 쥐고, 후 하고 숨을 길게 내쉬면 어둠이 새하얀
연기로 변하여 그의 갈한 목에 휘어감기고 있다.
집에 오니 대문은 걸렸다.
얼른 문 사이로 방문을 살피니 불이 희미하다.
어머니가 계시구나…… 맘이 다소 놓여서 대문을 가만히 붙들고 호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아직까지는 어머니가 모르시는 모양이나 내일이라도
  누구에게서 듣고 묻는다면 무어라고 대답할까.
 
 “어머님께서는 당분간 숨겨다오 누이야!”
 
그는 부지중에 털썩 주저앉았다.
 
  비록 오빠가 감옥에 있다 할지라도
  모든 일을 이리 가르쳐 주었는데, 이제부터는 누구의 지시를 받나!
  우선 어머님께는 뭐라구 하나, 오빠 나는 어찌라우.
 
그는 발버둥쳤다.
어젯밤에도 이리 와서 어머니는 차마 만나지 못하고 간 것이다.
어머니만 뵈오면 울음이 탁 나가서 아무리 숨길래야 숨길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어머님을 만나지 않을 수는 도저히
없는 일이고 내가 좀 대담해야지,
좀더 침착해야지 하고 가만히 일어났다.
대문을 붙들고 어머니! 하고 부르려니 벌써 눈등이 무거워지고 목이 꽉
메어 음성이 나가지 않는다.
그는 눈등을 한번 부비고 얼결에 대문을 쿵 받았다.
 
  “누구냐!”
 
어머니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그는 얼른 몸을 피하렸으나 울음이
왁 나오면서 픽 쓰러졌다. 아득히 들리는 신발소리.
그는 혀를 꼭 물고 발딱 일어났다. 이제야말로 정신을 차려서 어머니를
대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하였다.
대문이 삐꺽 열리면서 어머니의 흰옷이 새하얗게 보인다.
그는 아뜩하였으나 두 손에 힘을 주어 울타리를 꼭 붙들고
 
 “나! 나야 흑!”
 
말 끝에 흑 소리가 턱을 차고 내달린다.
얼른 목을 꼭 쥐어 비틀고 섰노라니,
 
 “서울서 소식 없니!”
 
하고 어머니는 딸의 곁으로 다가선다. 소르르 건너오는 잎담배 내에
그는 주춤 물러서며 얼굴을 울타리에 돌려대고 힘껏 부비쳤다.
나무판자 울타리에서 뜨끔 찔리는 볼, 그는 볼에 무엇이 들어박히는
것을 느끼면서도 울음은 자꾸만 쓸어나오려고 한다.
 
 “어젯밤 꿈에 네 오빠가 왔기에 오늘은 무슨 소식이 있는가 해서
   아까 기숙사에 갔더니 오늘 네가 당번이 되어 몹시 바쁘다고
   장 간호부가 그냥 가라고 하기에 왔다마는, 소식 없니.”
 
딸의 몸을 어루만지려는 어머니. 비틀 하고 어머니에게로 쏠리려는 것을
그는 울타리를 꼭 붙들고 섰으나 자꾸만 쓸어나오는 울음 땜에
견딜 수 없다. 그래서 그는 휙 돌아서 울타리를 붙들고 걸었다.
 
 “이애야, 너 선생님헌테 무슨 꾸지람을 들었니, 왜 그러니.”
 
쫓아오는 어머니에게 그는 아무 말이라도 하여서 안심시켜야 할 것을
느끼었으나 좀처럼 입을 벌릴 수가 없었다.
어머니와 거리가 좀 멀어지자 목을 비틀었던 손을 놓고 입을 벌리고
속을 울었다.
 
  “이애야, 말이나 시원히 하여.”
 
어둠을 뚫고 들리는 어머니의 음성은 애처로웠다. 휘끈 머리를 돌리고,
 
  “어머니 들어가라우.”
 
하고 말을 내놓았으나 그 말은 어머니의 귀에까지 들린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숨을 몰아쉬고 크게 말을 하였으나 울음이 왁 쓸어나온다.
그는 입을 꼭 다물고 섰다. 귀찮게 흐르는 눈물을 씻고 바라보니
대문 앞에 어머니가 그냥 서 있듯 어머니의 흰 옷이 잡힐 것 같다.
 
 “어머니, 어쩔까!”
 
그는 울음 섞어 이렇게 부르자 와락 어머니에게로 달려가는 발길을
억지로 멈추고 걷다가 돌아보면 어머니는 아직도 섰는 듯,
그만 우두커니 섰다. 그러다 어머니가 그를 쫓아 병원으로 오든지
그렇지 않으면 마을이라도 가려나 하는 맘이 자꾸만 들었던 것이다.
그는 살금살금 그의 집을 바라보고 걸었다.
대문 앞에 오니 어머니는 들어가신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대문을 더듬더듬 쓸어보고야 다소 안심을 하고 돌아서 걸었다.
한참 오다가 보니 또 어머닌 듯 흰 그림자 어둠 속에 뚜렷하였다.
눈을 아프게 쥐어당기고 다시 한번 와 보리라 하고 뛰어온다.
구두가 자꾸만 엎어지려고 해서 구두를 벗어 들고 그의 대문 앞에 와서
문틈에 눈을 대니 방에는 아까보다 불빛이 환하다.
들어가서 어머니를 안심시킬까 하니 벌써 울음이 다투어 기어나오므로
그는 눈에 손을 대고 엎으러질듯 돌아섰다.
그가 보통학교 앞에 오니 숨이 차 견딜 수가 없다. 그래 잠깐 멍하니
섰노라니, 어둠 속에 시꺼멓게 솟아 있는 중앙학교가 맘에까지 소복히
스며드는 것 같았다. 또다시 가슴이 화끈해지며 오빠와 그가 손을
맞잡고 이 길로 학교 드나들던 것이 어제인 듯 톡 튀어오른다.
 
노닥노닥 기운 옷에 가방 한 개도 못 가지고 목수건 하나도 없이
어머니가 일본 집에서 얻어온 구멍이 송송 난 메린스 책보를 들고
그 몇 번이나 오르내렸던고.
 
어머니는 눈만 뜨면 일터로 가기 때문에
그는 언제나 오빠 옆에 붙어있었다. 오빠에게서 하나 둘을 배웠고
또한 오빠의 등에서 오줌 똥을 싼 것이다.
그러다 자라서 이 학교에 다니게 되니 오빠는 언제나 그의 손을 꼭 잡고
교실에까지 바래다 주고 그의 교실로 들어가던 것이다.
몸이 아파도 오빠에게 하소하였고 동무들과 쌈을 하고도
오빠에게 고하였고 장난하다 손끝이 상하여도 오빠의 입술에 호 함을
받았고. 그렇던 오빠! 오빠! 난 어쩌라우,
그는 어린애같이 발을 동동 굴렀다.
어느 날 하학을 하고 나오니 눈이 와서 성 같이 쌓였다.
오빠는 그를 둘러업고 눈 속을 빠져 집으로 온다.
 
  “눈 꼭 감어.”
 
눈 속을 헤엄치는 오빠는 이렇게 말하고 뛰었다.
눈이 얼굴에 부딪치어서는 녹아 얼굴을 쓰라리게 하고 목덜미에
스며들어 꼭꼭 찌른다. 그는 마침내 앙앙 울었다. 집에 오니 어머니는
아직도 안 돌아왔고 눈 바람에 문풍지가 다 뜯긴 방안은, 밖에보다 더
추운 것 같았다. 오빠는 그의 몸에 눈을 떨어주고
얼굴을 소매로 닦아주면서,
 
  “이제 어머니가 과자 얻어온다. 울지 말아야.”
 
이렇게 얼리면서도 오빠도 쿨쩍쿨쩍 울고 문만 바라본다.
바람에 문풍지만 울려도 어머닌가, 옆집에서 무슨 소리만 나도,
 오누이는 달려 일어나,
 
  “어머니.”
 
하고 문을 열어 잡으면 밖에는 눈만 내리고 그는 발악을 하고
어머니를 부르면 오빠는 그를 업고 방안을 빙빙 돌면서 훌적훌쩍
울던 일…… 그는 미친 듯이 일어나 걸었다. 목이 찢어지는 듯 가슴이
막혀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발길이 느려지면서 이 길 위에 오빠의
신발자국이 어딘가 남아 있을 것 같아 펄썩 주저앉는다.
휘끈 돌아보니 저편에서 사람이 오므로 화닥닥 일어났다.
꼭 어머니인 듯한 여인이 이리로 온다. 그는 서슴지 않고,
 
  “어머니야.”
 
하고 울면서 쫓아가니 어떤 낯모를 여인이 저즘저즘 하다가 지나친다.
그 여인이 보이지 않도록 바라보면서, 어머니가 지금쯤은 주무실까,
한 번 더 가보고 싶어서 발길을 돌리니 몸이 비틀하고 꼬이면서
집에까지 갔다가 돌아올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는 구두를 신었다.
높이 솟은 병원 창문으로 빨갛게 흘러나오는 불빛을 보고 얼른 손에
든 구두 생각이 났고 맨발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기미년 토벌난에 아버지를 잃어, 또 오빠를 이 모양으로 잃어,
우리집안은 무슨 못된 운수인가, 그는 돌연 이러한 생각을 하며
병원 현관에 들어서니 병원 안이 떠들썩하였다.
수술 환자가 왔는가 하는 불안이 머리를 아프게 후려치자 두루두루
살피니 저편 수술실에는 전등불이 환하고 수술복을 입은 의사며 조수들
간호부들까지 한참 분주한 가운데 있다. 어쩌나, 그는 잠깐 망설였으나
급히 위층 쯔메쇼로 올라왔다.
 
  “언니! 어서 어서 내려가요, 맹장염 환자가 왔다우, 빨리.
   선생님이 자꾸만 부르시어. 우리는 혼났어. 그래서 사실대로
   여쭈었더니 아주 성이 났어요, 얼른.”
 
효숙이는 공중 뛰어와서 영실이를 탈의소로 잡아 끌고 일변 옷을 바꾸어
입히느라 색색거린다. 크림내가 숨결에 따라 몽클몽클
그의 볼에 부딪치고 있다. 그는 맘은 급하지만
몸은 딴 사람의 것같이 임의로 움직여지지를 않는다.
그래서 효숙의 하는 대로 내맡기었다.
효숙이는 그를 끌고 내려와서 수술실 문을 조용히 열고 등을 밀었다.
방안은 화끈하고 더운 김이 그의 머리털까지 훈훈히 서리고 있다.
갑자기 그는 현기증이 칵 일어 앞이 아득해지므로 벽을 붙들고
멍하니 섰다.
벌써 환자는 수술대에 높이 뉘어놨고 호히[包被[포피]]로 푹 덮어
놨으며, 오직 오른편 배만은 장방형으로 나타나게 하였고
그 옆에 의사가 서서 주사를 놓고 있다.
 
두 사람의 조수가 좌우 옆에 갈라섰고 아래 위로 간호부가 서서 병자를
붙들고 있다. 의사의 바로 옆에 수술복에 새하얀 수건을 쓴 나까가와가
수갑 낀 손에 핀셋을 쥐고 테이블에 늘어 놓은 온갖 기계들을 차례로
섬기고 있다. 그 나머지의 간호부들은 세면기에 물을 떠 가지고 간혹
들어온 불나비를 잡느라 쫓아다니고, 혹 의사의 이마에 흐르는 땀이며
조수들의 땀을 씻어 주고, 발이 시원해지라 냉수를 시멘트바닥에
주르르하고 붓기도 한다.
저편 구석에 환자의 친족인 듯한 사십 가까와 보이는 중년 부인이
눈이 뒤집히어 입을 헤 벌리고 서 있다.
의사는 영실이를 힐끗 보자 눈이 희뜩 올라가고 푸른 입술에 비웃음을
삐죽히 흘린다. 영실이는 이것을 보자 미안하던 맘이 홀랑 달아나고
어디선지 악이 바짝 치달아 온다. 그래서 얼른 세면기 앞으로 와서
브러시로 손을 닦기 시작하였다. 따끔 부딪치는 브러시를 따라 휭휭
돌던 머리가 딱 멈추어 지고 맘이 꽁꽁 얼어 붙는 것 같았다.
 
  “아구! 아구!”
 
환자는 외마디 소리를 냅다 지르고 다리를 함부로 내젓는다.
간호부들은 머리와 다리를 꼭 누르니 환자는 더 죽는 소리를 내었다.
힐끗 돌아보니 의사는 방금 칼로 피부를 갈라 놓았고 흐르는 피 속에
지방이 희뜩희뜩 나타났으며,
혈관을 집은 고히루[止血緘子[지혈함자]]가 두어 개 꽂히어 영실의 눈을
꼭 찌르는 듯하였다. 눈송이 같은 가제가 나까가와의 손에서 의사의
피묻은 손에 쥐어 있는 핀셋으로 옮아와서 수술처에 들어가자마자
빨갛게 핏덩이가 된다.
영실이는 손을 다 씻고 나서 나까가와의 곁으로 갔다.
 
  “미안하게 되었소.”
 
  “이상!”
 
나까가와는 머리를 돌린다. 이마엔 구슬땀이 방울방울 맺히었고 얼굴이
빨갛게 되어 영실이를 보자 시원하다는 듯이 핀셋을 내주고 머리를
설렁설렁 들어 땀을 떨구면서 물러났다. 수갑 낀 손에 쥐어지는
이 핀셋! 매끈하고도 듬직한 감을 주며 무엇이나 집고 싶어지는
이 감촉. 손에 기운이 버쩍 나고 흩어진 맘이 바짝 모인다.
눈감고라도 이 핀셋만 쥐면
어떠한 기계라도 능란히 섬길 수가 있는 것이다.
 
  “후꾸마꾸간즈[腹膜緘子[복막함자]]!”
 
의사는 이렇게 부르고 피묻은 수갑 낀 손을 내밀다가
힐끈 영실이를 보고 눈이 꺼칠해서 나까가와를 돌아보았다.
 
  “왜 물러났어. 누가 시키는 게야.”
 
소리를 냅다 지르고 영실이가 들어주는 기계를 홱 뿌리치고 나서 손수
테이블에서 기계를 집어 간다. 나까가와는 울상을 하고 영실의 손에서
핀셋을 빼앗다시피 하여 가지고 그를 밀고 테이블 앞에 다가선다.
영원히 그의 손에서 핀셋을 빼앗는 듯한 이 아픔,
손끝에서 짜르르 울리고 뜨끔 찔리어 온 전신에 따깝게 퍼지고 있다.
그는 멍하니 섰다.
의사는 말할 것도 없고 평소에 그를 존경하는 간호부들이며 조수들까지
경멸히 여기는 듯 누구 한 사람 눈여겨 보는 이 없다.
그만 울음이 탁 나오려는 것을 혀를 깨물어 참고 의사를 바라보았다.
한참 수술에 열중한 저 의사, 한손에 칼을 들고 또 한 손에 핀셋을 쥐고
가제를 굴려가며 칼을 움직이는 저 의사, 누구보다도 저를 믿었고
그래서 일생의 의탁코자 아니했던가.
 
  “아쿠! 아쿠!”
 
살을 지나 뼈를 할퀴는 듯한 환자의 비명에 그는 얼른 머리를 돌렸다.
환자에게서 툭 튀어오르는 오빠! 순간 그 비명이 오빠의 음성 같아,
온 몸이 화딱 달았다. 다음 순간에 착각임을 알았으나 가슴이 뛰고
부르르 떨린다. 그는 얼른 이 방을 나가리라 하고
한 발걸음 옮기었을 때 구역질이 욱하고 내달린다. 입술을 꼭 물었다.
목이 찢어지는 듯하더니 코로 주먹 같은 무엇이 칵 내달리며
아뜩하여진다. 그 순간 의사가 쥔 칼이 다음에 번득 빛났다.
그 칼이 오빠를 향하여 살대같이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아이머니! 저놈이 사람을 죽여!”
 
영실이는 눈을 뒤집고 나는 듯이 의사에게로 달려드니 의사는 얼결에
주춤 물러서다가 발길로 탁 차버렸다. 영실이는 시멘트 바닥에
자빠졌으니 단숨에 일어나 달려든다. 입술과 코가 터져 온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이놈 이놈! 오빠를 죽여. 아구 오빠 오빠, 호호호, 저놈.”
 
간담이 서늘하게 부르짖는다. 방안은 그제서야 영실이가 미친 것을
알았다. 조수는 달려들어 영실의 손을 낚아챘다.
 
  “김서방! 이 미친년 끌어내!”
 
의사는 발을 구르며 호통하였다.
밖에서 수술자를 담아내려고 들것을 준비하던 김서방은
너무나 큰 소리에 놀라 들것을 든 채 황황히 달려오다가 조수들에게
끌리어 나오는 영실이를 보고 그만 딱 서버렸다.
 
  “미쳤어, 저리 내가, 내가.”
 
조수 하나가 급급히 소리치고 나서 영실이를 김서방에게 맡겨버리고
수술실 문을 쾅 닫아 버린다. 벽이 쿵쿵 울린다.
김서방은 어쩔 줄을 몰라 영실이를 뒤집어 업었다. 영실이,
그는 김서방을 쥐어 뜯고 몸부림친다.
 
  “이놈, 오빠, 아구 아구 어머니, 양말만 깁지 말고 빨리 나와요,
    하하하
 
    저놈이!”
 
김서방은 격리 병실로 뛰다가 몇 호실로 가란 말인고 아뜩하여
생각나지 않았다.
이번엔 위층 병실로 뛰어오며 생각하니 역시 아뜩하였다.
그만 다시 수술실 문 앞으로 오다가 그도 모르게 욱 치밀어 오는 감정에
층층 밖으로 뛰어나왔다.
 
 어둡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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