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이상한 선생님 - 채만식 -

하얀모자 1 2022. 11. 10. 10:11

 

 

                   " 이상한 선생님 "
                                                                 - 채 만 식 -

 
 1
 
우리 박선생님은 참 이상한 선생님이었다.
박선생님은 생긴 것부터가 무척 이상하게 생긴 선생님이었다.
키가 한 뼘밖에 안 되는 박선생님이라서, 뼘생 또는 뼘박이라는 별명이
있는 것처럼, 박선생님의 키는, 키 작은 사람 가운데서도 유난히 작은
키였다. 일본 정치 때, 혈서로 지원병을 지원했다 체격검사에,
키가 제 척수에 차지 못해 낙방이 되었다면,
그래서 땅을 치고 울었다면, 얼마나 작은 키인것은 알 일이다.
 
그런 작은 키에, 몸집은 그저 한 줌만 하고.
이 한 줌만한 몸집의, 한 뼘만한 키 위에 가서, 그런데, 이건 깜짝놀랄
만큼 큰 머리통이, 보매 위태위태하게 올라앉아 있다.
그래서 박선생님의 또 하나의 변명을 대갈장군이라고도 하였다.
머리통이 그렇게 큰 박선생님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느냐 하면,
또한 여느 사람과는 많이 달랐다.
 
뒤통수와 앞이마가 툭 내솟고 내솟은 좁은 이마 밑으로 눈썹이
시꺼멓고, 왕방울 같은 두 눈은, 부리부리하니 정기가 있고도 사납고,
코는 매부리코요, 입은 메기입으로 귀밑까지 넓죽 째지고 그리고
목소리는 쇠꼬챙이로 찌르는 것처럼 쨍쨍하고. 이런 대갈장군의
뼘생 박선생님과 아주 정반대로 생긴 이가 강선생님이었다.
 
강선생님은 키가 크고, 몸집도 크고, 얼굴이 너부릇하고, 얼굴이 검기는
하여도 순하지, 사남이 든 데가 없고, 눈은 더 순하고, 허허 웃기를
잘 하고, 별로 성을 내는 일이 없고, 아무하고나 장난을 잘 하고……
강선생님은 이런 선생님이었다.
 
뼘박 박선생님과 강선생님은 만나면 싸움이었다.
하학을 하고 나서, 우리들이 소제를 한 교실을 둘러보다가든지,
또는 운동장에서든지(그러니까 우리들이 여럿이는 보지 않는 곳에서
말이다) 두 선생님이 만난다치면, 강선생님은 괜히 장난이 하고 싶어,
박선생님을 먼저 건드리곤 하였다.
 
“뼘박아, 담배 한대 붙여 올려라.”
 
강선생님이 그 생긴 것처럼 느릿느릿한 말로 이렇게 장난을 청하고,
그런다치면 박선생님은 벌써 성이 발끈 나가지고
 
“까불지 말아, 죽여놀 테니.”
 
“얘야, 까불다니, 이 덕집엔 좀 억울하구나……
  아무튼 담배나 한 개 빌  리자꾸나.”
 
“나두 뻐젓한 돈 주구 담배 샀어.”
 
“아따 이 사람, 누가 자네더러, 담배 도둑질했대나?”
 
“너두 돈 내구 담배 사 피우란 말야.”
 
“에구 요 재리야! 체가 요렇게 용잔하게 생겼거들랑,
  속이나 좀 너그럽게 써요.”
 
“몸 크구서 속 못 차리는 건, 볼 수 없더라.”
 
하나는 커다란 몸집을 해가지고 싱글싱글 웃으면서,
하나는 한 뼘만한 키에, 그 무섭게 큰 머리통을 한 얼굴을 바싹
대들고는 사남이 졸졸 흐르면서, 그렇게 마주서서 싸우는 모양은,
마치 큰 수캐와 조그만 고양이가 마주 만난 형국이었다.
 
 2
 
다른 학교에서도 다 그랬을 테지만, 우리 학교에서도, 그때 말로
‘국어’라던 일본말, 그 일본말로만 말을 하게 하고,
엄마 아빠 할 적부터 배운 조선말은,
아주 한 마디도 쓰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주재소의 순사, 면의 면서기, 도 평의원을 한 송주사,
또 군이나 도에서 연설하러 온 사람, 이런 사람들이나 조선 사람끼리
만나도 척척 일본말로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하고 하였지,
다른 사람들이야 일본 사람과 만났을 때 말고는 다들 조선말로
말을 하고, 그래서 학교 문 밖에만 나가면 만판 조선말로 말을 하는
사람들이요, 더구나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 아버지, 언니, 누나, 애기,
모두들 조선말로 말을 하고 하였다.
그러니까 우리들도 학교에 가서도,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나와
운동장에서 우리끼리 놀고 할 때에는 암만해도 일본말보다 조선말이
더 많이, 그리고 잘 나와지고 하였다.
 
학교에서고, 학교 밖에서고 조선말로 말을 하다 선생님한테 들키는
날이면 경을 치는 판이었다.
선생님들 중에서도 제일 심하게 밝히는 선생님이 뼘박 박선생님이었다.
교장선생님이나 다른 일본 선생님은 나무라기만 하고 마는 수가 있어도,
뼘박 박선생님은 절대로 용서가 없었다.
나도 여러 번 혼이 나 보았다.
 
한번은 상준이 녀석과 어떡하다 쌈이 붙어서, 둘이 서로 부둥겨 안고
구르면서, 이 자식아, 저 자식아, 죽어봐, 때려봐 하면서 한참
시방 때리고 제기고 하는 참이었다.
그러는 참인데, 느닷없이
 
“고랏! 조셍고데 겡까 스루야쓰가 이루까,”
  (이놈아! 조선말로 쌈하는 녀석이 어딨어.)
 
하면서, 구둣발길로 넓적다리를 걷어차는 건,
정신 없는 중에도 뼘박 박선생님이었다.
 
우리 둘이는 그 자리에서 뺨이 붓도록 따귀를 맞았고,
공부 시간에 들어가 지도 못하고서 그 시간 동안 변소 소제를 하였고,
그리고 조행에 점수를 듬뿍 깎이고 하였다.
 
이렇게, 뼘박 박선생님한테 제일 중한 벌을 받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조선말로 지껄이다 들키는 때였다.
 
강선생님은 그와 반대로 아무 시비가 없었다.
교실에서 공부를 할 때 외에는 그리고 다른 선생님 ──
그중에서도 교장이하 일본 선생님들과 뼘박 박선생님이 보지 않는
데서는, 강선생님은 우리들한테, 일본말로 말을 하지 아니하였다.
우리들이 일본말로 하여도 강선생님은 조선말로 하곤 하였다.
우리들이 어쩌다, 선생님은 왜 ‘국어’(일본말)로 아니 하세요?
하고 물으면, 강선생님은 웃으면서, 나는 ‘국어’(일본말)가 서툴러서
그런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렇지만,
우리가 보기에도 강선생님은 일본말이 서투른 선생님이 아니었다.
 
 3
 
해방이 되던 바로 그 이튿날이었다. 여름 방학으로 놀던 때라,
나는 궁금하여서 학교엘 가보았다.
다른 아이들도 한 오십 명이나 와서 있었다.
우리는 해방이라는 말은 아직 몰랐고, 일본이 전쟁에 지고,
항복을 한 것만 알았었다.
 
선생님들이 그중에서도 뼘박 박선생님이,
그렇게도 일본(우리 대일본 제국)은 결단코 전쟁에 지지 않는다고,
기어코 전쟁을 이기고, 천하에 못된 미국 영국을 거꾸러뜨려 천황폐하의
위엄을 이 전세계에 드날릴 날이 멀지 않았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말을 해쌓던 그 일본이,
도리어 지고 항복을 하다니, 도무지 모를 일이었었다.
 
직원실에는, 교장선생님과 두 일본 선생님과, 그리고 뼘박 박선생님과
이렇게가 모여 앉아서 초상난 집처럼
모두는 코가 쑤욱 빠져가지고 있었다.
우리들은 운동장 구석으로, 혹은 직원실 앞뒤로 패패로 모여 서서,
제가끔 아는 대로, 일본이 항복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에 육학년에 다니던 우리 사촌언니 대석이가,
뒤늦게야 몇몇 동무와 함께 떨떨거리고 달려들었다.
 
똘똘하고, 기운 세고, 싸움 잘하고, 그러느라고 선생님들한테
꾸지람과 매는 도맡아 맞고,
반에서 성적은 제일 꼴찌요 한 천하 말썽꾼이었다.
대석언니네 집은, 읍에서 십리나 되는 곳이었고,
그래서 오늘 아침에야 소문을 들었노라고 하였다.
 
대석언니는 직원실을 넘싯이 넘겨다보더니, 싱긋 웃으면서,
처억 직원실안으로 들어섰다.
직원실 안에 있던 교장선생님이랑, 다른 두 일본 선생님이랑은
못 본체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뼘박 박선생님이 눈을 흘기면서,
영락없이 일본말로
 
“난다?”(왜 그래?)
 
하고 책망을 하였다.
대석언니는 그러나 무서워하지 않고 한다는 소리가
 
“선생님, 덴노헤이까가 고오상(천황폐하가 항복)했대죠?”
 
하고 묻는 것이었었다.
 
뼘박 박선생님은, 성을 버럭 내어 그 큰 눈방울을 부라리면서,
여전히 일본말로
 
“잠자쿠 있어 잘 알지두 못하면서…… 건방지게시니.”
 
하고 쫓아와서 곧 한 대 갈길 듯이 을러대었다.
대석언니는 되돌아서서 나오면서 커다랗게
 
“덴노헤이까 바가!”(천황폐하 망할 자식!)
 
“………”
 
만일 다른 때 누구든지 그런 소리를 했단 당장 큰일이 나는 판이었다.
그러나 교장선생님이랑 두 일본 선생님은 그대로 못 들은 척
코만 빠치고 앉았고, 뼘박 박선생님도 잔뜩 눈만 흘기고 있을 뿐이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 걸 보면 정녕 일본이 지고, 덴노헤이까가 항복을 하였고,
그리고 그래서 인제는 들 기승을 떨지를 못하는 모양인 것 같았다.
마침 강선생님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헐떡거리고 뛰어왔다.
강선생님은 본 집이 이웃 고을이었다.
 
“오오, 느이들두 왔구나. 잘들 왔다. 느이들두 다들 알았지?
 조선이, 우리 조선이 해방이 된 줄 알았지? 얘들아,
 우리 조선이 독립이 됐단다, 독립이! 일본은 쫓겨가구……
 그 지질히 우리 조선 사람을 못살게 굴구, 하시하구, 필 빨아먹구
 하던 일본이, 그 왜놈들이, 죄다 쫓겨가구, 우리 조선은 독립이 돼서,
 우리끼리 잘살게 됐어, 잘살게.”
 
의젓하고 점잖던 강선생님이 그렇게도 들이 납뛰고 덤비고 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자아, 만세 불러야지, 만세. 독립만세, 독립만세 불러야지.
  태극기 없니? 태극기. 아무두 아니 가졌구나! 느인 참 태극기가
  어떻게   생긴 지 구경두 못했을 게다. 가만 있자.
  내, 태극기 맨들어 가지구 나오께.”
 
그러면서 강선생님은 직원실로 들어갔다.
강선생님이 직원실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교장선생님이랑 두 일본 선생님은 인사를 하려고, 풀기 없이 일어섰다.
강선생님은 교장선생님더러 말을 하였다.
 
“당신들은 인제는 일 없어. 어서, 집으루 가 있다.
  당신네 나라루 돌아갈 도리나 허우.”
 
“………”
 
아무도 대꾸를 못하는데, 뼘박 박선생님이, 주저주저하다가
 
“아니, 자상히 알아보기나 하구서……”
 
하는 것을, 강선생님이 버럭 큰 소리로
 
“무엇이 어째? 자넨 그래, 무어가 미련이 남은 게 있어, 왜놈들허구
  대가리 맞대구 앉어서 수군덕거리나? 혈서(血書)루 지원병 지원 한번
  더해보구퍼 그리나? 아따 그다지 애닯거들랑, 왜놈들 쫓겨가는 꽁무니
  따라, 일본으루 가 살게 그려나.
  자네 같은 충신이면 일본서두 괄신 아니하리.”
 
“………”
 
뼘박 박선생님은 그만 두말도 못하고 얼굴이 벌개서,
 어쩔 줄을 몰라하였다.
 뼘박 박선생님이 남한테 이렇게 꼼짝을 못하는 것을 보기는,
 우리는 처음이었다.
강선생님은 반지를 여러 장 꺼내어놓고, 붉은 잉크와 푸른 잉크로,
 태극기를 몇 장이고 그렸다.
그려 내놓고는 또 그리고, 그려 내놓고 또 그리고, 얼마를 그리면서,
 그러다 아주 부드럽고 조용한 목소리로
 
“여보게 박선생?”
 
하고 불렀다. 그러고는,
 잠자코 담배만 피우고 앉았는 뼘박 박선생을 한번 돌려다보고 나서
 
“내가 좀 흥분해서, 말이 너무 박절했나 보이. 어찌 생각하지 말게……
 그리구, 인제는 자네나 나나, 그동안 진 죌,
 우리 조선 동포 앞에 속죄해야 할 때가 아닌가? 물론 이담에,
 민족이 우리를 심판하구, 죄에 따라 벌을 줄 날이 오겠지.
 그러나 장차에 받을 민족의 심판과 벌은, 장차에 받을 민족의
  심판과 벌이고, 시방 당장, 조선 민족의 한 분자루, 할 일이
 조옴 많은가? 우리, 같이 손목 잡구, 건국에 도움될 일을 하세.
 자아, 이리 와서 태극기 그리게. 독립만세부터 한바탕 부르세.”
 
“………”
 
뼘박 박선생님은 아무 소리도 않고,
 강선생님의 옆으로 와서 태극기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 뒤로 강선생님과, 뼘박 박선생님은 사이가 매우 좋아졌다.
뼘박 박선생님은, 학과 시간마다 여러 가지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여
우리한테 들려주었다. 일본이 우리 조선을 뺏어,
 저의 나라에 속국(屬國)을 삼던 이야기도 하여 주었다.
 
왜놈들은 천하의 불측한 인종이어서,
 남의 나라와 전쟁하기를 좋아하는 백성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임진왜란 때에도 우리 조선에 쳐들어왔고, 그랬다가
 이순신(李舜臣) 장군이랑 권율(權慄) 도원수한테 아주 혼이 나고
 쫓기어 간 이야기도 하여주었다.
 
우리 조선은 역사가 사천 년이나 오래고,
그리고 세계의 어떤 나라보다 못하지 않게 훌륭한 문화가
발달된 나라라고, 이야기도 하여 주었다.
 
뼘박 박선생님은 한편으로 열심히 미국말을 공부하였다.
그러면서 우리들더러도 졸업을 하고 중학교에 가거들랑,
 미국말을 제일 무엇보다도 많이 공부하라고,
 시방은 미국말을 모르고는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뼘박 박선생님은, 한 일 년 그렇게 미국말 공부를 하더니,
그 다음부터는 미국 병정이 오든지 하면, 일쑤 통역을 하고 하였다.
 
중학교에 다닐 때에 조금 배운 것이 있어서,
그렇게 쉽게 체득을 하였다고 하였다.
 
미국 병정은, 벼 공출을 감독하러 와서, 우리 뼘박 박선생님을
그 꼬마자동차에 태워가지고, 동네동네 돌아다녔다.
뼘박 박선생님은 미국 양복을 얻어 입고, 미국 담배를 얻어 피우고,
미국통조림이랑 과자를 얻어먹고 하였다.
 
해방 뒤에 새로 온 김교장 선생님이 갈려가고,
강선생님이 교장이 되었다.
강선생님이 교장이 된 다음부터는,
뼘박 박선생님은 강선생님과 도로 사이가 나빠졌다.
 
 우리는 한번
 뼘박 박선생님이 미국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을, 교장선생님이
 
 “자넨 그건 무어라구, 주접스럽게 얻어 피우군 하나?”
 
하고, 핀잔을 하는 것을 보았다.
 
강선생님은 교장이 된 지 일 년이 못 되어서 파면을 당하였다.
 
어른들 말이, 강선생님은 빨갱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래서 파면을 당하였느리라고 하였다.
또 누구는, 뼘박 박선생님이, 강선생님을 그렇게 꼬아댄 것이지,
 강선생님은 하나도 빨갱이가 아니라고도 하였다.
 
강선생님이 파면을 당한 뒤를 물려,
 뼘박 박선생님이 교장선생님이 되었다.
교장이 된 뼘박 박선생님은, 그 작은 키가 으쓱하였다.
뼘박 박선생님은 미국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였다.
 
이 세상에, 미국같이 훌륭한 나라가 없고,
 미국 사람같이 훌륭한 백성이 없다고 하였다.
 
우리 조선은, 미국 덕분에 해방이 되었으니까,
 미국을 누구보다도 고맙게 여기고, 미국이 시키는 대로 순종을 하여야
 하느니라고 하였다.
우리가 혹시 말 끝에 ‘미국놈……’이라고 하면,
 뼘박 박선생님은, 단박 붙잡아다 세우고 벌을 키우곤 하였다.
 전에, ‘덴노헤이까 바가’라고 한것 만큼이나 엄한 벌을 주었다.
 
“이놈아, 아무리 미련한 소견이기로, 자아 보아라,
  우리 조선을 독립을 시켜주느라구, 자기 나라 백성을 많이 죽여가면서
 전쟁을 했지. 그래서 그 덕에 우리 조선이 왜놈의 압제에서 벗어나서
 독립이 되질 아니했어? 그뿐인감? 독립을 시켜주구 나서두
 우리 조선 사람들, 배 아니 고프구, 편안히 잘 살라구, 양식이야,
 옷감이야, 기계야, 자동차야, 석유야, 설탕이야, 구두야,
 무어 죄다 골고루 가져다 주지 않어? 그런데 그런 고마운 사람들더러,
 미국놈이 무어야?”
 
벌을 세우면서, 뼘박 박선생님은 이렇게 꾸짖곤 하였다.
 
우리는 뼘박 박선생님더러, 미국에도,
 
‘덴노헤이까’(천황폐하) 있느냐고물었다.
 미국에도 덴노헤이까가 있지 않고서야, 우리 조선 사람을, 그렇게
 일본의 ‘덴노헤이까’처럼 친아들(赤子[적자])과 같이 사랑하고,
 우리 조선 사람들이 잘 살도록 근심을 하며, 온갖 물건을 가져다 주고
 할 이치가 없기 때문이었다.
 (해방 전에, 뼘박 박선생님은, 덴노헤이까는 우리 조선 사람들을
  일본 사람들과 같이 사랑하고, 우리 조선 사람들이 잘 살기를 근
  심하신다고 늘 가르쳐 주고 하였었다.)
 
뼘박 박선생님은 미국에는 덴노헤이까는 없고, 덴노헤이까보다 훌륭한
 
‘돌맹이’라는 양반이 있다고 대답하였다.
 
우리는 그럼, 이번에는 그 ‘돌맹이’라는 훌륭한 어른을 위하여
‘미국신민노세이시’(美國[미국]신민서사)를 부르고,
 기미가요 대신 돌맹이가요 을 부르고 하여야 하나보다고 생각하였다.
 
아뭏든 뼘박 박선생님은 참 이상한 선생님이었다.
 
 
                        --- 끝 --- 

'한국단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등신불 - 김동리 -  (0) 2022.11.19
어 둠 - 강경애 -  (0) 2022.11.14
배따라기 - 김 동 인 -  (0) 2022.11.07
죄(罪)와 벌(罰) - 이무영 -  (0) 2022.11.02
그리운 흘긴 눈 - 현진건 -  (0) 2022.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