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혈의누(血─淚, 하) - 이인직 -

하얀모자 1 2023. 4. 7. 10:43

 

 

                                   혈의누(血─淚, 하)
                                                                                               - 이인직 -
  
"아씨 아씨, 작은아씨가 어디 갔읍니까?"

"응 무엇이야, 나는 한잠에 내쳐 자고 이제야 깨었네.
  옥련이가 어디로 가. 뒷간에 갔는지 불러 보게."

"내가 지금 뒷간에 다녀오는 길이올시다.
  안으로 걸었던 대문이 열렸으니, 밖으로 나간 것이올시다."

하는 소리에 옥련이가 들어갈 수 없어서
   도로 돌쳐서서 갈 곳이 없는지라.

정한 마음 없이 정거장으로 나가니, 그때 일번(一番) 기차에
떠나려 하는 행인들이 정거장으로 모여드는지라. 옥련의 마음에
동경이나 가고 싶으나 동경까지 갈 기차표 살 돈은 없고
다만 이십 전이 있는지라. 옥련이가 대판만 떠나서 어디든지 가면
남의 집에 봉공(奉公)하고 있을 터이라 결심하고
자목 정거장까지 가는 기차표를 사서 일번 기차를 타니,
삼등차에 사람이 너무 많이 들어서 옥련이가 앉을 곳을 얻지 못하고
섰는데 등뒤에서 웬 서생이 조선말로 혼자 중얼중얼하는 말이,

"웬 계집아이가 남의 앞에 와 섰다."

하는 소리에 옥련이가 돌아다보니 나이 열칠팔 세 되고
얼굴은 볕에 그을려 익은 복숭아 같고 코는 우뚝 서고
눈은 만판 정신기 있는데, 입기는 양복을 입었으나 양복은 처음 입은
사람같이 서툴러 보이는지라.
옥련이가 돌아다보는 것을 보더니 또 조선말로 혼자 하는 말이,

"그 계집아이 똑똑하다. 재주 있겠다. 우리나라 계집아이 같으면
  저러한 것들이 판판이 놀겠지. 여기서는 저런 것들도 모두 공부를
  한다 하니 저것은 무엇하는 계집아이인지."

그러한 소리를 곁의 사람이 아무도 못 알아들으나 옥련의 귀는
알아들을 뿐이 아니라, 대판 온 지 몇 해 만에 고국 말소리를
처음 듣는지라. 반갑기가 측량 없으나, 계집아이 마음이라
먼저 말하기도 부끄러운 생각이 있어서 말을 못 하고,
옥련이도 혼자말로 서생의 귀에 들리도록 하는 말이,

"어디 가 좀 앉을 곳이 있어야지, 서서 갈 수가 있나."

하는 소리에, 뒤에 있던 서생이 이상히 여겨서 하는 말이,

"그 아이가 조선 사람인가, 나는 일본 계집아이로 보았더니
  조선말을 하네."

하더니 서슴지 아니하고 말을 묻는다.

"이애, 네가 조선 사람이 아니냐?"

"네, 조선 사람이오."

"그러면 몇 살에 와서 몇 해가 되었느냐?"

"일곱 살에 와서 지금 열한 살이 되었소."

"와서 무엇하였느냐?"

"심상 소학교에서 공부하고 어제가 졸업식하던 날이오."

"너는 나보다 낫구나. 나는 이제 공부하러 미국으로 가려 하는데,
 말도 다르고 글도 다른 미국을 가면 글자 한 자 모르고
 말 한 마디 모르는 사람이 어찌 고생을 할는지,
 너는 일본에 온 지가 사오 년이 되었다 하니 이제는 고생을 다
 면하였겠구나. 어린아이가 공부하러 여기까지 왔으니
 참 갸륵한 노릇이다."

"당초에 여기 올 때에 공부할 마음으로 왔으면 칭찬을 들어도
 부끄럽지 아니하겠으나, 운수 불행하여 고생길로 여기까지 왔으니
 칭찬을 들어도……."

하면서 목이 메는 소리로 눈에 눈물이 가랑가랑하여
고개를 살짝 수그린다.

서생이 물끄러미 보고 서로 아무 말이 없는데,
정거장 호각 한 소리에 기차 화통에서 흑운(黑雲)같은 연기를 훅훅
내뿜으면서 기차가 달아난다.

옥련의 마음에 자목 정거장에 가면 내려야 할 터인데,
어떠한 집에 가서 어떠한 고생을 할지 앞의 길이 망연한지라.

옥련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갈 지경이면 자목 가는 동안이 대단히
더딘 듯하련마는, 기차표대로 자목 외에는 더 갈 수 없는고로
싫어도 내릴 곳이라. 형세 좋게 달아나는 기차의 서슬은 오늘 해 전에
하늘 밑까지 갈 듯한데, 자목 정거장이 멀지 아니하다.

"이애, 네가 어디까지 가는지 서서 가면 다리가 아파 가겠느냐?"

"자목까지 가서 내릴 터이오."

"자목에 아는 사람이 있느냐."

"없어요."

"그러면 자목은 왜 가느냐?"

옥련이가 수건으로 눈을 씻고 대답을 아니하는데,
서생이 말을 더 묻고 싶으나 곁의 사람들이 옥련이와 서생을 유심히
보는지라, 서생이 새로이 시치미를 떼고 창밖으로 머리를 두르고
먼산을 바라보나 정신은 옥련의 눈물 나는 눈에만 있더라.

빠르던 기차가 천천히 가다가 딱 멈추면서 반동되어 뒤로 물러나니
섰던 옥련이가 넘어지며 손으로 서생의 다리를 잡으니,
공교히 서생 다리의 신경맥을 짚은지라.
그때 서생은 창밖만 보고 앉았다가 입을 딱 벌리면서 깜짝 놀라
돌아다보니 옥련이가 무심중에 일본말로 실례라 하나,
그 서생은 일본말을 모르는고로 알아듣지 못하나 외양으로
가엾어하는 줄로 알고 그 대답은 없이 좋은 얼굴빛으로 딴말을 한다.

"네 오는 곳이 이 정거장이냐?"

하던 차에 장거수가 돌아다니면서 자목 자목, 자목 자목, 자목이라
소리를 지르며 문을 여니, 옥련이는 어린 몸에 일본 풍속에 젖은
아이라 서생에게 향하여 허리를 굽히며 또 일본말로 작별 인사 하면서
기차에 내려가니, 구름같이 내려가는 행인중에 나막신 소리뿐이라.
서생은 정신이 얼떨한데, 옥련이 가는 모양을 보고자 하여
창밖으로 내다보니 사람에 섞이어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서생이 가방을 들고 옥련이를 쫓아나가다가 정거장 나가는 어귀에서
만난지라. 옥련이가 이상히 보면서 말없이 나가니
 서생도 또한 아무 말 없이 따라나가더라.

옥련이가 정거장 밖으로 나가더니 갈 바를 알지 못하여
우두커니 섰거늘, 벌어먹기에 눈에 돈 동록이 앉은 인력거군은
옥련의 뒤를 따라가며 인력거를 타라 하니,
돈 없고 갈 곳 모르는 옥련이는 거들떠보지도 아니하고 섰다.

"이애, 내가 네게 청할 일이 있다.
 나는 일본에 처음으로 오는 사람이라 네게 물어 볼 일이 있으니,
 주막으로 잠깐 들어갔으면 좋겠으니 네 생각에 어떠하냐."

"그러면 저기 여인숙이 있으니 잠깐 들어가서 할 말을 하시오."

하면서 앞서 가니, 자목에 처음 오기는 서생이나 옥련이나
일반이건마는, 옥련이는 자목에 몇 번이나 와서 본 사람과 같이
익달한 모양으로 여인숙으로 들어가더라.

여인숙 하인이 삼층집 제일 높은 방으로 인도하고 내려가니,
서생은 모두 처음 보는 것이라.
정신이 황홀하여 옥련이 만난 것을 다행히 여긴다.

"이애, 내가 여기만 와도 이렇듯 답답하니 미국에 가면 오죽하겠느냐.
 너는 타국에 와서 오래 있었으니 별물정 다 알겠구나.
 우선 네게 좀 배울 것도 많거니와, 만리타국에서 뜻밖에 만났으니
 서로 있는 곳이나 알고 헤지자. 나는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부모도 모르게 미국에 갈 차로 나섰더니, 불과 여기를 와서
 이렇듯 답답한 생각만 나니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하는 소리에 옥련이는 심상한 고국 사람을 만난 것 같지 아니하고
 친부모나 친형제나 만난 것 같다.

모란봉 아래서 발을 구르고 울던 일부터
 대판 항구에서 물에 빠져 죽으려던 일까지 낱낱이 말한다.

"그러면 우리 둘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공부나 하고 있다가
 너의 부모 소식을 듣거든 네 먼저 고국으로 가게 하여 주마."

"……"

"오냐, 학비는 염려 말아라. 우리들이 나라의 백성 되었다가 공부도
 못 하고 야만을 면치 못하면 살아서 쓸데 있느냐.
 너는 일청전쟁을 너 혼자 당한 듯이 알고 있나 보다마는,
 우리나라 사람이 누가 당하지 아니한 일이냐. 제 곳에 아니 나고
 제 눈에 못 보았다고 태평성세로 아는 사람들은 밥벌레라.
 사람이 밥벌레가 되어 세상을 모르고 지내면 몇 해 후에는
 우리나라에서 일청전쟁 같은 난리를 또 당할 것이라.
 하루바삐 공부하여 우리나라의 부인 교육은 네가 맡아
 문명길을 열어 주어라."

하는 소리에 옥련의 첩첩한 근심이 씻은 듯이 다 없어졌는지라.
그 길로 횡빈(橫濱)까지 가서 배를 타니, 태평양 넓은 물에 마름같이
떠서 화살같이 밤낮없이 달아나는 화륜선(火輪船)이 삼 주일 만에
상항에 이르러 닻을 주니 이곳부터 미국이라.
조선서 낮이 되면 미국에는 밤이 되고 미국에서 밤이 되면
조선서는 낮이 되어 주야가 상반되는 별천지라.
산도 설고 물도 설고 사람도 처음 보는 인물이라.
키 크고 코 높고 노랑머리 흰 살빛에, 그 사람들이 도덕심이
배가 툭 처지도록 들었더라도 옥련의 눈에는 무섭게만 보인다.

서생과 옥련이가 육지에 내려서 갈 바를 알지 못하여 공론이 부산하다.

"이애 옥련아, 네가 영어를 할 줄 아느냐. 조금도 모르느냐.
  한마디도…… 그러면 참 딱한 일이로구나.
  어디인지 물어 볼 수가 없구나."

사오 층 되는 높은 집은 구름 속 하늘 밑에 닿은 듯한데,
물끓듯 하는 사람들이 돌아들고 돌아나는 모양은 주막집 같은 곳도
많이 보이나 언어를 통치 못하는고로 어린 서생들이 어찌하면 좋을지
알지 못하여 옥련이가 지향 없이 사람을 대하여 일어로
무슨 말을 물으니 서생의 마음에는 옥련이가 영어를 조금 알면서
겸사로 모른다 한 줄로 알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소리를 바싹 들어서서
듣는다. 옥련의 키로 둘을 포개 세워도 치어다볼 듯한 키 큰 부인이
얼굴에는 새그물 같은 것을 쓰고 무 밑둥같이 깨끗한 어린아이를
앞세우고 지나가다가 옥련의 말하는 소리 듣고 무엇이라 대답하는지,
서생과 옥련의 귀에는 바바…… 하는 소리 같고
말하는 소리 같지는 아니한지라.

그 부인이 뒤의 프록코우트 입은 남자를 돌아보면서 또 바바바……
하니, 그 남자는 청국말을 하는 양인이라.
청국말로 무슨 말을 하는데,
서생과 옥련의 귀에는 <또바> 하는 소리 같고 말소리 같지 아니하다.

서생은 옥련이가 그 말을 알아들은 줄로 알고,

"이애, 그것이 무슨 말이냐?"

"……"

"그 남자의 말도 못 알아들었느냐……."

그렇듯 곤란하던 차에 청인 노동자 한패가 지나거늘 서생이 쫓아가서
필담하기를 청하니, 그 노동자 중에는 한문자 아는 사람이 없는지
손으로 눈을 가리더니 그 손을 다시 들어 홰홰 내젓는 모양이
무식하여 글자를 못 알아본다 하는 눈치다.

그때 마침 어떠한 청년이 햇빛에 윤이 질 흐르고 비단옷을 입고
마차를 타고 풍우같이 달려가는데, 서생이 그 청인을 가리키며
옥련이더러 하는 말이, 저러한 청인은 무식할 리가 만무하다 하면서
소리를 버럭 지르니, 마차 탄 사람은 그 소리를 들었으나
차메고 달아나는 말은 그 소리를 듣고 아니 듣고 간에
네 굽을 모아 달아나는데 서생의 소리가 다시 마차에 들릴 수 없는지라. 

마차 탄 청인이 차부더러 마차를 멈추라 하더니 선뜻 뛰어내려서
서생의 앞으로 향하여 오니 서생이 연필을 가지고 무엇을 쓰려 하는데,

 청인이 옥련이 옷을 본즉 일복이라, 일본 사람으로 알고
옥련에게 향하여 일어로 말을 물으니, 옥련이가 기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청인 앞으로 와서 말대답을 하는데
서생은 연필을 멈추고 섰더라.

원래 그 청인은 일본에 잠시 유람한 사람이라, 일본말을 한두 마디
알아들으나 장황한 수작은 못 하는지라. 옥련이가 첩첩한 말이
나올수록 그 청인의 귀에는 점점 알아들을 수 없고
다만 조선 사람이라 하는 소리만 알아들은지라.

청인이 다시 서생을 향하여 필담으로 대강 사정을 듣고 명함 한 장을
내더니 어떠한 청인에게 부탁하는 말 몇 마디를 써서 주는데,
그 명함을 본즉 청국 개혁당의 유명한 강유위(康有爲)라.
그 명함을 전할 곳은 일어도 잘하는 청인인데,
다년 상항에 있던 사람이라. 그 사람의 주선으로 서생과 옥련이가
미국 화성돈에 가서 청인 학도들과 같이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있더라.

옥련이가 미국 화성돈에 다섯 해를 있어서
하루도 학교에 아니 가는 날이 없이 다니며 공부를 하는데,
재주 있고 부지런한 사람으로, 그 학교 여학생 중에는
제일 칭찬을 듣는지라.

그때 옥련이가 고등소학교에서 졸업 우등생으로 옥련의 이름과 옥련의
사적이 화성돈 신문에 났는데, 그 신문을 보고 이상히 기뻐하는 사람
하나이 있는데, 어찌 그렇게 기쁘든지 부지중 눈물이 쏟아진다.
기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도리어 의심을 낸다.
의심중에 혼자말로 중얼중얼한다.

"조선 사람의 일을 영서로 번역한 것이라 혹 번역이 잘못되었나.
  내가 미국에 온 지가 십 년이나 되었으나 영문에 서툴러서
  보기를 잘못 보았나."

그렇게 다심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성명은 김관일인데,
그 딸의 이름이 옥련이라. 일청전쟁 났을 때에 그 딸의 사생을 모르고
미국에 왔는데, 그때 화성돈 신문에는, 말은 옥련의 학교 성적과,
평양 사람으로 일곱 살에 일본 대판 가서 심상소학교 졸업하고
그 길로 미국 화성돈에 와서 고등 소학교에서 졸업하였다 한
간단한 말이라. 김씨가 분명히 자기의 딸이라고는 질언할 수 없으나,
옥련이라 하는 이름과 평양 사람이라는 말과 일곱 살에 집 떠났다
하는 말은 김관일의 마음에 정녕 내 딸이라고 생각 아니할 수도
없는지라. 김씨가 그 학교에 찾아가니, 그때는 그 학교에서
학도 졸업식 후의 서중휴학이라, 학교에 아무도 없는고로
물을 곳이 없는지라, 김씨가 옥련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더라.

옥련이가 졸업하던 날에 학교 졸업장을 가지고 호텔로 돌아가니,
주인은 치하하면서 옥련의 얼굴빛을 이상히 보더라.

옥련이가 수심이 첩첩한 모양으로 저녁 요리도 먹지 아니하고
 서산에 떨어지는 해를 치어다보며 탄식하더라.

그때 마침 밖에 손이 와서 찾는다 하는데, 명함을 받아 보더니
옥련이가 얼굴빛을 천연히 고치고 손을 들어오라 하니,
그 손이 보이를 따라 들어오거늘 옥련이가 선뜻 일어나며
그 사람의 손을 잡아 인사하고 테이블 앞에서 마주 향하여
의자에 걸터앉으니,
그 손은 옥련이와 일본 대판서 동행하던 서생인데 그 이름은 구완서라.

"네 졸업은 감축하다. 허허, 계집의 재주가 사나이보다
 나은 것이로구나. 너는 미국 온 지 일 년 만에 영어를 대강 알아듣고
 학교에까지 들어가서 금년에 졸업을 하였는데,
 나는 미국 온 지 두 해 만에 중학교에 들어가서 내년에 졸업이라.
 네게는 백기를 들고 항복 아니할 수가 없다."

옥련이가 대답을 하는데,
일본에서 자라난 사람이라 말을 하여도 일본 말투가 많더라.

"내가 그대의 은혜를 받아서 오늘 이렇게 공부를 하였으니
   심히 고맙소."

하니 일본 풍속에 젖은 옥련이는 제 습관으로 말하거니와,
  구씨는 조선서 자란 사람이라 조선 풍속으로 옥련이가 아이인고로
  해라를 하다가 생각한즉 저도 또한 아이이라.

"허허허, 우리들이 조선 사람인즉 조선 풍속대로만 수작하자.
 우리 처음 볼 때에 네가 나이 어린고로 내가 해라를 하였더니
 지금은 나이 열여섯 살이 되어 저렇게 체대(體大)하니
 해라 하기가 서먹서먹하구나."

"조선 풍속대로 말하자 하시면서 아이를 보고 해라 하시기가
  서먹서먹하셔요?"

"허허허, 요절할 일도 많다. 나도 지금까지 장가를 아니 든 아이라,
 아이는 일반이니 너도 나보고 해라 하는 것이 좋은 일이니
 숫접게(숫-접다=순박하고 진실하다) 너도 나더러 해라 하여라.
 그러하면 내가 너더러 해라 하더라도 불안한 마음이 없겠다."

"그대는 부인이 계신 줄로 알았더니…… 미국에 오실 때 십칠 세라
 하셨으니, 조선같이 혼인을 일찍 하는 나라에서 어찌하여 그때까지
 장가를 아니 들으셨소."

"너는 나더러 종시 해라 소리를 아니 하니 나도 마주 하오를
 할 일이로구, 허허허. 그러나 말대답은 아니하고 딴소리만 하여서
 대단히 실례하였다. 내가 우리나라에 있을 때에 우리 부모가
 내 나이 열 두서너 살부터 장가를 들이려 하는 것을 내가 마다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혼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니라. 나는 언제든지
 공부하여 학문지식이 넉넉한 후에 아내도 학문 있는 사람을 구하여
 장가들겠다, 학문도 없고 지식도 없고 입에서 젖내가 모랑모랑
 나는 것을 장가들이면 짐승의 자웅같이 아무것도 모르고 음양배합의
 낙만 알 것이라. 그런고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짐승같이
 제 몸이나 알고 제 계집 제 새끼나 알고 나라를 위하기는 고사하고
 나라 재물을 도둑질하여 먹으려고 눈이 벌겋게 뒤집혀서
 돌아다니는 것이 다 어려서 학문을 배우지 못한 연고라.
 우리가 이 같은 문명한 세상에 나서 나라에 유익하고 사회에
 명예 있는 큰 사업을 하자 하는 목적으로 만리타국에 와서 쇠공이를
 갈아 바늘 만드는 성력(誠力)을 가지고 공부하여
 남과 같은 학문과 남과 같은 지식이 나날이 달라 가는 이때에
 장가를 들어서 색계상에 정신을 허비하면 유지한 대장부가 아니라.
 이애 옥련아, 그렇지 아니하냐."

구씨의 활발한 말 한마디에 옥련의 근심하던 마음이 풀어져서 웃으며,

"저러한 의논을 들으면 내 속이 시원하오. 혼자 있을 때는 참……."

말을 멈추고 구씨를 치어다보는데, 구씨가 옥련의 근심 있는 기색을
언뜻 짐작하였으나 구씨는 본래 활발한 사람이라.
시계를 내어 보더니 선뜻 일어나며 작별인사하고 저벅저벅 내려가는데,

옥련이는 의구히 의자에 걸어앉아서 먼산을 보며 잊었던 근심을
다시 한다. 한숨을 쉬고 혼자 신세타령을 하며
옛일도 생각하고 앞일도 걱정하는데 뜻을 정치 못한다.

"어― 세월도 쉽구나. 일본서 미국으로 건너오던 날이 어제 같구나.
 내가 일본 대판 있을 때에 심상소학교 졸업하던 날은
 하룻밤에 두 번을 죽으려고 하였더니 오늘 또 어떠한 팔자 사나운
 일이나 없을는지. 내가 죽기가 싫어서 죽지 아니한 것도 아니요,
 공부하고자 하여 이곳에 온 것도 아니라. 

대판항에서 죽기로 결심하고  물에 떨어지려 할 때에,

 한 되는 마음으로 꿈이 되어 그랬던지,
 우리 어머니가 나더러 죽지 말라 하시던 소리가 아무리 꿈일지라도
 역력하기가 생시 같은고로 슬픈 마음을 진정하고 이 목숨이 다시
 살아나서 넓은 천지에 붙일 곳이 없는지라.
 지향없이 동경가는 기차를 타고 가다가 천우신조하여 고국 사람을
 만나서 일동일정(一動一靜)을 남에게 신세를 지고 오늘까지 있었으니
 허구한 세월을 남의 덕만 바랄 수는 없고, 만일 그 신세를
 아니 지을 지경이면 하루 한시라도 여비를 어찌 써서 있을 수도
 없으니 어찌하여야 좋을는지…… 우리 부모는 세상에 살아 있는지,
 부모의 사생도 모르니 헐헐한 이 한 몸이 살아 있은들 무엇하리오.
 차라리 대판서 죽었더면 이 근심을 몰랐을 것인데 어찌하여 살았던가. 

 사람의 일평생이 이렇듯 근심만 할진대 죽어 모르는 것이 제일이라.
 그러나 지금 여기서는 죽으려도 죽을 수도 없구나.
 내가 죽으면 구씨는 나를 대단히 그르게 여길 터이라.
 구씨의 태산 같은 은혜를 입고 그 은혜를 갚지 못하고 죽으면
 남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라. 어찌하면 좋을고."

그렇듯 탄식하고 그 밤을 의자에 앉은 채로 새우다가
 정신이 혼혼하여 잠이 들며 꿈을 꾸었더라.

꿈에는 팔월 추석인데,
평양성중에서 일년 제일가는 명절이라고 와글와글하는 중이라.
아이들은 추석빔으로 새옷을 입고 떡조각 실과개를 배가 톡 터지도록
먹고 어깨로 숨을 쉬는 것들이 가로도 뛰고 세로도 뛴다.

어른들은 이 세상이 웬 세상이냐 하도록 술 먹고 주정을 하면서
한길을 쓸어 지나가고, 거문고 줄 양금채는 꾀꼬리 소리 같은
여청 시조를 어울려서 이 골목 저 골목, 이 사랑 저 사랑에서

 어디든지 그 소리 없는 곳이 없다. 성중이 그렇게 흥치로 지내는데,

옥련이는 꿈에도 흥치가 없고 비창한 마음으로

 부모 산소에 다니러 간다.

북문 밖에 나가서 모란봉에 올라가니 고려장(高麗葬)같이 큰 쌍분이
있는데, 옥련이가 묘 앞으로 가서 앉으며 허리춤에서
 능금 두 개를 집어내며 하는 말이,

"여보 어머니, 이렇게 큰 능금 구경하셨소? 내가 미국서 나올 때에
 사가지고 왔소. 한 개는 아버지 드리고 한 개는 어머니 잡수시오."

하면서 묘 앞에 하나씩 놓으니, 홀연히 쌍분은 간 곳 없고 송장 둘이
일어앉아서 그 능금을 먹는데,
본래 살은 다 썩고 뼈만 앙상한 송장이라. 능금을 먹다가 위아랫니가
모짝 빠져서 앞에 떨어지는데, 박씨 말려 늘어놓은 것 같은지라.
옥련이가 무서운 생각이 더럭 나서 소리를 지르다가 가위를 눌렸더라.

그때 날이 새어서 다 밝은 후이라.
이웃방에 있는 여학생이 일어나서 뒷간으로 내려가는 길에
옥련의 방앞으로 지나다가 옥련의 가위눌리는 소리를 들었으나
남의 방으로 함부로 들어갈 수는 없고 망단한 마음에 급히
전기 초인종을 누르니 보이가 오는지라. 여학생이 보이를 보고
옥련의 방을 가리키며, 이 방문서 괴상한 소리가 난다 하니
보이가 옥련의 방문을 여는데
 문소리에 옥련이가 잠을 깨어 본즉 남가일몽이라.

무서운 꿈을 깰 때는 시원한 생각이 있더니, 다시 생각하니
 비창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탄식하는 소리가 무심중에 나온다.

"꿈이란 것은 무엇인고. 꿈을 믿어야 옳은가. 믿을 지경이면
 어젯밤 꿈은 우리 부모가 다 이 세상에는 아니 계신 꿈이로구나.
 꿈을 아니 믿어야 옳은가. 아니 믿을진댄 대판서 꿈을 꾸고 부모가
 생존하신 줄로 알고 있던 일이 허사로구나. 꿈이 맞아도
 내게는 불행한 일이요, 꿈이 맞치지 아니하여도 내게는 불행한
 일이라. 그러나 다시 생각하여 보니 꿈은 정녕 허사라.
 우리 아버지는 난리중에 돌아가셨으니, 가령 친척이 있더라도
 송장 찾을 수가 없는 터이라. 더구나 사고무친한 우리집에 목숨이
 붙어 살아 있는 것은 그때 일곱 살 먹은 불효의 딸 옥련이뿐이라.
 우리 아버지 송장 찾을 사람이 누가 있으리요. 모란봉 저녁볕에
 훌훌 날아드는 까마귀가 긴 창자를 물어다가 고목나무 높은 가지에
 척척 걸어 놓은 것은 전쟁에 죽은 송장의 창자이라.
 세상에 어떠한 고마운 사람이 있어서 우리 아버지 송장을 찾아다가
 고려장같이 기구 있게 장사를 지낼 수가 있으리요. 우리 어머니는
 대동강 물에 빠져 죽으려고 벽상에 영결서를 써서 붙인 것을
 평양 야전병원(野戰病院)의 통변이 낙루를 하며 그 글을 읽어서
 내 귀에 들려주던 일이 어제같이 생각이 나면서,
 대판항에서 꿈을 꾸고 우리 어머니가 혹 살아서 이 세상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다 쓸데없는 생각이라.
 우리 어머니는 정녕히 물에 빠져 돌아가신 것이라.
 대동강 흐르는 물에 고기밥이 되었을 것이니,
 어찌 모란봉에 그처럼 기구 있게 장사를 지냈으리요."

옥련이가 부모 생각은 아주 단념하기로 작정하고 제 신세는 운수 되어
가는 대로 두고 보리라 하고 정신을 가다듬어서 공부하던 책을
내어놓고 마음을 붙이니, 이삼 일 지낸 후에는
다시 서책에 착미(着味)가 되었더라.

하루는 보이가 신문지 한 장을 가지고 옥련의 방으로 오더니

그 신문을 옥련의 앞에 펼쳐 놓고 보이의 손가락이 신문지 광고를 가리킨다.

옥련이가 그 광고를 보다가 깜짝 놀라서 눈물이 펑펑 쏟아지면서
얼굴은 발개지고 웃음 반 눈물 반이라.

옥련이가 좋은 마음에 띄어서 광고를 끝까지 다 보지 못하고
우두커니 앉았다가 또 광고를 본다. 옥련의 마음에 다시 의심이 난다.
일전 꿈에 모란봉에 가서 우리 부모 산소에 갔던 일이 그것이 꿈인가.
오늘 신문지의 광고를 보는 것이 꿈인가. 한 번은 영어로 보고
한 번은 조선말로 보다가 필경은 한문과 조선 언문을 섞어
번역하여 놓고 보더라.
 
 
광고

지나간 열사흗날 황색신문 잡보에 한국 여학생 김옥련이가
아무 학교 졸업 우등생이라는 기사가 있기로 그 유하는 호텔을
알고자 하여 이에 광고하오니, 누구시든지 옥련의 유하는 호텔을
이 고백인에게 알려 주시면 상당한 금으로
 십 류(10留=미국 돈 십 원)를 앙정할사.

한국 평안도 평양인 김관일 고백

헌수……
 

의심 없는 옥련의 부친이 한 광고다.

"여보 뽀이, 이 신문을 가지고 날 따라가면 우리 부친이 

십 류의 상금을 줄 것이니 지금으로 갑시다."

"내가 상금 탈 공은 없으니 상금은 원치 아니하나 귀양(貴孃)을
  배행하여 가서 부녀 서로 만나 기뻐하시는 모양 보았으면
  나도 이 호텔에서 몇 해간 귀양을 모시고 있던 정분에
  귀양을 따라 기뻐하고자 합니다."

옥련이가 그 말을 듣고 더욱 기뻐하여 보이를 데리고 그 부친 있는
처소를 찾아가니 십 년 풍상에서 서로 환형(換形)이 된지라,
서로 보고 서로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라. 옥련이가 신문 광고와
명함 한 장을 가지고 그 부친 앞으로 가서 남에게 처음 인사하듯
대단히 서어한 인사를 하다가 서로 분명한 말을 듣더니,
옥련이가 일곱 살에 응석하던 마음이 새로이 나서 부친의 무릎 위에
얼굴을 푹 숙이고 소리 없이 우는데, 김관일의 눈물은
옥련의 머리 뒤에 떨어지고, 옥련의 눈물은 그 부친의 무릎이 젖는다.

"이애 옥련아, 그만 일어나서 너의 어머니 편지나 보아라."

"응, 어머니 편지라니, 어머니가 살았소."

무슨 변이나 난 듯이 깜짝 놀라는 모양으로 고개를 번쩍 드는데,
그 부친은 제 눈물 씻을 생각은 아니하고 수건을 가지고
옥련의 눈물을 씻으니, 옥련이가 그리 어려졌던지 부친이
눈물 씻어 주는 데 고개를 디밀고 있더라. 김관일이가 가방을 열더니
휴지 뭉치를 내어놓고 뒤적뒤적하다가
 편지 한 장을 집어주며 하는 말이,

"이애, 이 편지를 자세히 보아라. 이 편지가 제일 먼저 온 편지다."

옥련이가 그 편지를 받아 보니, 옥련이가 그 모친의 글씨를
모르는지라. 가령 옥련이가 정신이 좋으면 그 모친의 얼굴은
생각할는지 모르거니와, 옥련이 일곱 살에 언문도 모를 때에
모친을 떠났는지라. 지금 그 편지를 보며 하는 말이,

"나는 우리 어머니 글씨도 모르지. 어머니 글씨가 이렇던가."

하면서 부친의 앞에 펼쳐 놓고 본다.
 
 
상장

떠나신 지 삼 삭이 못 되었으나 평양에 계시던 일은 전생 일 같삽.
만리타국에서 수토불복(水土不服)이나 되시지 아니하고
기운 평안하시온지 궁금하옵기 측량 없삽나이다.
이곳의 지낸 풍상은 말씀하기 신신치 아니하오나 대강 소식이나
알으시도록 말씀하옵나이다. 옥련이는 어디 가서 죽었는지 

다시 소식이 묘연하고, 이곳은 죽기로 결심하여 대동강 물에 빠졌더니 

뱃사공과 고장팔에게 건진 바 되어 살았다가

 부산서 이곳 친정 아버님이 평양에
오셔서 사랑에서 미국 가셨다는 말씀을 전하여 주시니,
그 후로부터 마음을 붙여 살아 있삽.
 세월이 어서 가서 고국에 돌아오시기만 기다리옵나이다.
 
 *수토불복(水土不服) = 명사 물이나 풍토가 몸에 맞지 않아
                       위장이 나빠짐.
 
그러나 사랑에서는 몇십 년을 아니 오시더라도 이 세상에 계신 줄을
알고 있사오니 위로가 되오나, 옥련이는 만나보려 하면 황천에
가기 전에는 못 볼 터이오니 그것이 한 되는 일이압.
 말씀 무궁하오나 이만 그치옵나이다.
 
옥련이가 그 편지를 보고 뼈가 녹는 듯하고 몸이 스러지는 듯하여
 가만히 앉았다가,

"아버지, 나는 내일이라도 우리집으로 보내 주시오. 날개가 돋쳤으면
  지금이라도 날아가서 우리 어머니 얼굴을 보고 우리 어머니 한을
  풀어 드리고 싶소."

"네가 고국에 가기가 그리 바쁠 것이 아니라 우선 네가 고생하던
  이야기나 어서 좀 하여라.
  네가 어떻게 살아났으며 어찌 여기를 왔느냐?"

옥련이가 얼굴빛을 천연히 하고 고쳐 앉더니, 모란봉에서 총 맞고
야전병원으로 가던 일과, 정상 군의의 집에 가던 일과,
대판서 학교에서 졸업하던 일과, 불행한 사기로 대판을 떠나던 일과,
동경가는 기차를 타고 구완서를 만나서 절처봉생(絶處逢生)하던 일을
낱낱이 말하고, 그 말을 마치더니 다시 얼굴빛이 변하며 눈물이 도니,
그 눈물은 부모의 정에 관계한 눈물도 아니요, 제 신세 생각하는
 눈물도 아니요, 구완서의 은혜를 생각하는 눈물이라.
 
 절처봉생(絶處逢生)= 명사. 오지도 가지도 못할 막다른 판에
                           요행히 살길이 생김.

"아버지, 아버지께서 나 같은 불효의 딸을 만나 보시고
  기쁘신 마음이 있거든 구씨를 찾아보시고
  치사의 말씀을 하여 주시면 좋겠읍니다."

김관일이가 그 말을 듣더니, 그 길로 옥련이를 데리고 구씨의 유하는
처소로 찾아가니, 구씨는 김관일을 만나 보매
옥련의 부친을 본 것 같지 아니하고 제 부친이나 만난 듯이
반가운 마음이 있으니, 그 마음은 옥련의 기뻐하는 마음이
내 마음 기쁜 것이나 다름없는 데서 나오는 마음이요,
김씨는 구씨를 보고 내 딸 옥련을 만나 본 것이나 다름없이 반가우니,
그 두 사람의 마음이 그러할 일이라.
김씨가 구씨를 대하여 하는 말이 간단한 두 마디뿐이라.

한마디는 옥련이가 신세지은 치사요, 한마디는 구씨가 고국에
돌아간 뒤에 옥련으로 하여금 구씨의 기치를 받들고
백년가약 맺기를 원하는지라.

구씨는 본래 활발하고 거칠 것 없이 수작하는 사람이라
옥련이를 물끄러미 보더니,

"이애 옥련아, 어― 실체(失體)하였구.
  남의 집 처녀더러 또 해라 하였구나. 우리가 입으로 조선말은
  하더라도 마음에는 서양문명한 풍속이 젖었으니, 우리는 혼인을
  하여도 서양 사람과 같이 부모의 명령을 좇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 부부될 마음이 있으면 서로 직접하여 말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그러나 우선 말부터 영어로 수작하자.
  조선말로 하면 입에 익은 말로 외짝해라 하기 불안하다."

하면서 구씨가 영어로 말을 하는데, 구씨의 학문은 옥련이보다
대단히 높으나 영어는 옥련이가 구씨의 선생 노릇이라도 할 만한
터이라. 그러나 구씨는 서투른 영어로 수작을 하는데,
 옥련이는 조선말로 단정히 대답하더라.

김관일은 딸의 혼인 언론을 하다가 구씨가 서양 풍속으로 직접
언론하자 하는 서슬에
옥련의 혼인 언약에 좌지우지할 권리가 없이 가만히 앉았더라.
 
옥련이는 아무리 조선 계집아이이나 학문도 있고 개명한 생각도 있고,
동서양으로 다니면서 문견(聞見)이 높은지라.
서슴지 아니하고 혼인 언론 대답을 하는데, 구씨의 소청이 있으니,
그 소청인즉 옥련이가 구씨와 같이 몇 해든지 공부를 더 힘써 하여
학문이 유여한 후에 고국에 돌아가서 결혼하고, 옥련이는 조선부인
교육을 맡아 하기를 청하는 유지(有志)한 말이라.
옥련이가 구씨의 권하는 말을 듣고, 조선부인 교육할 마음이 간절하여
구씨와 혼인 언약을 맺으니, 구씨의 목적은 공부를 힘써 하여
귀국한 뒤에 우리나라를 독일국(獨逸國)같이 연방도를 삼되,
일본과 만주를 한데 합하여 문명한 강국을 만들고자 하는 비사맥 같은
마음이요, 옥련이는 공부를 힘써 하여 귀국한 뒤에 우리나라 부인의
지식을 넓혀서 남자에게 압제받지 말고 남자와 동등권리를 찾게 하며,
또 부인도 나라에 유익한 백성이 되고 사회상에 명예 있는
 사람이 되도록 교육할 마음이라.

세상에 제 목적을 제가 자기하는 것같이 즐거운 일은 다시 없는지라.
구완서와 옥련이가 나이 어려서 외국에 간 사람들이라.
조선 사람이 이렇게 야만되고 이렇게 용렬한 줄을 모르고,
구씨든지 옥련이든지 조선에 돌아오는 날은 조선도 유지한 사람이
많이 있어서 학문 있고 지식 있는 사람의 말을 듣고, 이를 찬성하여
구씨도 목적대로 되고 옥련이도 제 목적대로 조선 부인이 일제히
내 교육을 받아서 낱낱이 나와 같은 학문 있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려니

생각하고, 일변으로 기쁜 마음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제 나라 형편
 모르고 외국에 유학한 소년 학생 의기에서 나오는 마음이라.

구씨와 옥련이가 그 목적대로 되든지 못되든지
그것은 후의 일이거니와, 그 날은 두 사람의 마음에는 혼인 언약의
좋은 마음은 오히려 둘째가 되니,
옥련 낙지(落地)이후에는 이러한 즐거운 마음이 처음이라.

김관일은 옥련을 만나보고 구완서를 사윗감으로 정하고,
구씨와 옥련의 목적이 그렇듯 기이한 말을 들으니,
 김씨의 좋은 마음도 측량할 수 없는지라.

미국 화성돈의 어떠한 호텔에서는
옥련의 부녀와 구씨가 솥발같이 늘어앉아서 그렇듯 희희낙락한데,
세상이 고르지 못하여 조선 평양성 북문 안에 게딱지같이 낮은 집에서
삼십 전부터 남편 없고 자녀간에 혈육 없고 재물 없이 지내는
부인이 있으되, 십 년 풍상에 남보다 많은 것 한 가지가 있으니,
 그 많은 것은 근심이라.

그 부인이 남편이 죽고 없느냐 할 지경이면 죽지도 아니한 터이라.
죽고 없는 터이면 단념하고 생각이나 아니하련마는,
육만 리를 이별하여 망부석이 될 듯한 정경이요,
자녀간에 혈육이 없는 것은 생산을 못하였느냐 물을진대
딸 하나를 두고 아들 겸 딸 겸하여 금옥같이 귀애하다가
 일곱 살 되던 해에 잃었더라.

눈앞에 참척을 보았느냐 물을진대 그 부인은 말없이 눈물만 흘리더라.
눈앞에 보이는 데서나 죽었으면 한이나 없으련마는,
 어디서 죽었는지 알지도 못하니 그것이 한이더라.

마침 까마귀 한 마리가 지붕 위에 내려앉더니
까막까막 깍깍 짖는 소리가 흉측하게 들리거늘,
 부인이 감았던 눈을 떠서 장팔 어미를 보며 하는 말이,

"여보게, 저 까마귀 소리 좀 들어 보게.
 또 무슨 흉한 일이 생기려나베. 까마귀는 영물이라는데 무슨 일이
 또 있을는지 모르겠네. 팔자 기박한 여편네가 오래 살았다가
 험한 일을 더 보지 말고 오늘이라도 죽었으면 좋겠네.
 요사이는 미국서 편지도 아니 오고 웬일인고."

기운 없는 목소리로 설움없이 탄식하는 모양은 아무가 보든지
좋은 마음은 아니 날 터인데, 늙고 청승스러운 장팔 어미가
부인의 그 모양을 보고 부인이 죽으면 따라 죽을 듯한 마음도 있고
까마귀를 쳐죽이고 싶은 마음도 생겨서 마당으로 펄펄 뛰어 내려가서
 지붕 위를 쳐다보면서 까마귀에게 헛팔매질을 하며 욕을 한다.

"수여― 이 경칠 놈의 까마귀, 포수들은 다 어디로 갔노.
  소금장사― 네 어미."

조선 풍속에 까마귀 보고 하는 욕은 장팔 어미가 모르는 것 없이
주워섬기며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니, 그 까마귀가 펄쩍 날아 공중에
높이 뜨더니 깍깍 지르며 모란봉으로 향하거늘,
부인의 눈은 까마귀를 따라서 모란봉으로 가고,
 노파의 욕하는 소리는 까마귀 소리를 따라간다.
 
*** 자주독립이나 신교육과 신결혼관을 주제로
    신소설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우자 쓴 벙거지 쓰고 감장 홀태바지 저고리 입고 가죽 주머니 메고
문밖에 와서 안중문을 기웃기웃하며
편지 받아 들여가오, 편지 받아 들여가오, 두세 번 소리하는 것은
우편군사라. 장팔의 어미가 까마귀에게 열이 잔뜩 났던 차에
어떠한 사람인지 자세히 듣지도 아니하고 질부등가리 깨어지는 소리
같은 목소리로 우편 군사에게 까닭 없는 화풀이를 한다.

"웬 사람이 남의 집 안마당을 함부로 들여다보아.
  이 댁에는 사랑양반도 아니 계신 댁인데,
  웬 젊은 녀석이 양반의 댁 안마당을 들여다보아."

"여보, 누구더러 이 녀석 저 녀석 하오. 체전부는 그리 만만한 줄로
  아오. 어디 말 좀 하여 봅시다. 이리 좀 나오시오.
  나는 편지 전하러 온 것 외에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 없소."

"여보게 할멈, 자네가 누구와 그렇게 싸우나.
  우체 사령이 편지를 가지고 왔다 하니 미국서 서방님이 편지를
  부치셨나베. 어서 받아 들여오게."

"옳지, 우체 사령이로구. 늙은 사람이 눈 어두워서……
   어서 편지나 이리 주오. 아씨께 갖다 드리게."

우체사령이 처음에 노파가 소리를 지를 때는 늙은 사람 망령으로 알고
말을 예사로 하더니, 노파가 잘못한 줄을 깨닫고
말하는 눈치를 보더니 그때는 우체사령이 목을 쓰고 대어든다.

"이런 제어미…… 내가 체전부 다니다가 이런 꼴은 처음 보았네.
  남더러 무슨 턱으로 욕을 하오. 내가 아무리 바빠도
  말 좀 물어 보고 갈 터이오."

하면서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대어들며, 편지 달라 하는 말은
대답도 아니하니, 평양 사람의 싸움하러 대드는 서슬은
금방 죽어도 몸을 아끼지 아니하는 성정이다.

노파가 까마귀에게 화풀이할 때 같으면 우체사령에게 몸부림을 하고
죽어도 그 화가 풀어지지 아니할 터이나, 미국서 편지 왔다
하는 소리에 그 화가 다 풀어졌더라. 그 화만 풀어질 뿐이 아니라,
우체사령의 떼거리까지 받고 있는데,
부인은 어서 바삐 편지 볼 마음이 있어서 내외하기도 잊었던지
중문간에로 뛰어나가서 노파를 꾸짖고 우체사령을 달래고,
 옥련의 묘에 가지고 가려 하던 술과 실과를 내어다 먹인다.

우체사령이 금방 살인할 듯 하던 위인이 노파더러 할머니 할머니 하며
 풀어지는데, 그 집에서 부리던 하인과 같이 친숙하더라.

노파가 편지를 받아서 부인에게 드리니, 부인이 그 편지를 들고
 겉봉 쓴 것을 보더니 깜짝 놀라서 의심을 한다.

"아씨, 무엇을 그리하십니까?"

"응, 가만히 있게."

"서방님께서 부치신 편지오니까?"

"아닐세."

"그러면 부산서 주사나리께서 하신 편지오니까?"

"아니."

"에그, 어서 말씀 좀 시원히 하여 주십시오."

"글씨는 처음 보는 글씨일세."

본래 옥련이가 일곱 살에 부모를 떠났는데,
그때는 언문 한 자 모를 때라.

그 후에 일본 가서 심상소학교 졸업까지 하였으나 조선 언문은

구경도 못 하였더니, 그 후에 구완서와 같이
미국 갈 때에 태평양을 건너가는 동안에 구완서가 가르친 언문이라,
옥련의 모친이 어찌 옥련의 글씨를 알아보리오.
부인이 편지를 받아 보니 겉면에는,

<한국 평안남도 평양부 북문내 김관일 실내 친전>

한편에는,

<미국 화성돈 ○○○호텔 옥련 상사리>
 
진서 글자는 부인이 한 자도 알아보지 못하고 다만 <옥련 상사리>라
한 글자만 알아보았으나, 글씨도 모르는 글씨요,
 옥련이라 한 것은 볼수록 의심만 난다.

"여보게 할멈, 이 편지 가지고 왔던 우체사령이 벌써 갔나.
  이 편지가 정녕 우리집에 오는 것인지 자세히 물어 보았더면
  좋을 뻔하였네."

"왜 거기 쓰이지 아니하였읍니까?"

"한 편은 진서요 한 편에는 진서도 있고 언문도 있는데,
  진서는 무엇인지 모르겠고, 언문에는 옥련 상사리라 썼으니,
  이상한 일도 있네. 세상에 옥련이라 하는 이름이 또 있는지,
  옥련이라 하는 이름이 또 있더라도
  내게 편지할 만한 사람도 없는데……."

"그러면 작은아씨의 편지인가보이다."

"에그, 꿈같은 소리도 하네.
    죽은 옥련이가 내게 편지를 어찌하여……."

하면서 또 한숨을 쉬더니 얼굴에 처량한 빛이 다시 난다.

"아씨 아씨, 두 말씀 말고 그 편지를 뜯어 보십시오."

부인이 홧김에 편지를 박박 뜯어 보니 옥련의 편지라.

모란봉에서 지낸 일부터 미국 화성돈 호텔에서 옥련의 부녀가
상봉하여 그 모친의 편지 보던 모양까지 그린 듯이 자세히 한 편지라.

그 편지 부쳤던 날은 광무 육년(음력) 칠월 십일일인데,
부인이 그 편지 받아 보던 날은 임인년 음력 팔월 십오일이러라.
 
부산 절영도 밖에 하늘 밑까지 툭 터진 듯한 망망대해에
시커먼 연기를 무럭무럭 일으키며 부산항을 향하고
살같이 들어닫는 것은 화륜선이다.

오륙도, 절영도 두 틈으로 두 좁은 어구로 들어오는데
반속력 배질을 하며, 화통에는 소리가 하늘 당나귀가 내려와 우는지,
웅장한 그 소리 한마디에 부산 초량이 들썩들썩한다.
물건을 들이고 내는 운수 회사도 그 화통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람을 보내고 맞아들이는 여인숙에서도 그 화통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데, 화륜선 닻이 뚝 떨어지며 삼판 배가 벌떼같이 드러난다.
부산 객주에 첫째나 둘째 집에는 최주사 집 서기 보는 소년이
 큰사랑 미닫이를 열며,

"여보시오, 주사장. 진남포에서 배 들어왔읍니다.
  우리 짐도 이 배편에 왔을 터이니 사람을 보내 보아야 하겠읍니다."

최주사는 낮잠을 자다가 화륜선 화통 소리에 잠이 깨어 일어나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터이라.
서기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하고 앉았다가 긴치 않은 말 대답하듯,

"날더러 물을 것 무엇 있나. 자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소년은 서기 방으로 가고 최주사는 큰사랑에 혼자 앉았더라.

최주사는 몇 해 동안에 재물이 불 일어나는 듯 느는데 그 재물이
늘수록 최주사의 심회가 산란하다. 재물을 모을 때는 욕심에 취하여
두 눈이 빨개서 날뛰더니 재물을 많이 모아 놓고 보니
재물이 그리 귀할 것이 없는 줄로 생각이라.
빈 담뱃대 딱딱 떨어 물고 물뿌리를 두어 번 확확 내불어 보더니
지네발 같은 평양 엽초 한 대를 담아 붙여 물고 담배 연기를 혹혹
내불면서 무슨 생각을 하다가 혼자말로 탄식이라.

"재물. 재물. 재물이 좋기는 좋지만은 제 생전에 먹고 입고
  지낼 만하면 그만이지, 그것은 그리 많아 쓸데 있나.
  몸 괴로운 줄 모르고 마음 괴로운 줄 모르고 재물만 모으려고
  기를 버럭 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흥, 어리석은 것도 아니야. 환장한 사람이지.
  풀 끝에 이슬 같은 이 몸이 죽은 후에 그 재물이 어찌 될지
  누가 알 바 있나. 적막한 북망산에 돈이 와서 일곡이나 하고 갈까.
  흥, 가소로운 일이로고.

내 나이 육십여 세라. 인생 칠십 고래희라 하였으니
내가 칠십을 살더라도 이 앞에 칠팔 년 동안뿐이로구나.

아들은 양자.

딸은 저 모양.

어― 내 팔자도 기박하고.

옥련이나 살았더면 짐짓이 마음을 붙였을 터인데,
그런 불쌍한 일이 있나. 오냐, 그만두어라. 집안일은 잘 되나 못 되나
서기에게 맡겨 두고 평양 가서 딸도 만나보고
 미국 가서 사위나 만나보고 오겠다."

마침 문간이 들석들석하더니 무슨 별일이나 있는 듯이 계집종들이
참새떼 재잘거리듯 지껄이며 사랑 마당으로 올라 들어오는데
최주사는 혼자 중얼거리고 앉아서 귀에 달은 소리는 아니 들어오던지
 내다보지도 아니한다.

마루 위에서 신 벗는 소리가 나더니 사랑지게문을 펄쩍 열며,

"아버지, 나 왔소."

하며 들어오는데 최주사가 정신이 번쩍 나서 쳐다보니 딸이라.

"이애, 이것이 꿈이냐. 네가 어찌 여기를 왔느냐."

"내가 날개 돋쳐 내려왔소."

하며 어린아이 응석하듯, 웃으며 나오는 모습이 얼굴에 화기가 돈다.

최주사는 꿈에라도 그 딸을 만나보면 근심하는 얼굴만 보이더니
 상시에 저러한 얼굴빛을 보고 최주사 얼굴에도 화기가 돈다.

"이애, 참 별일이다. 네가 오기는 뜻밖이로구나.
  여편네가 십 리 길이 어려운 처지인데 일천 오백 리 길에
  네가 어찌 혼자 왔단 말이냐."

"옥련이 같은 어린 계집아이도 육만 리나 되는 미국을 갔는데
  내가 이까짓 데를 못 와요. 진남포로 내려와서 화륜선 타고 왔소.
  아버지, 나는 개화하였소. 이 길로 미국에나 들어가서 옥련이나
  만나보고 옥련의 남편 될 사람도 내 눈으로 좀 자세히 보고 오겠소.
  아버지, 나를 돈이나 좀 많이 주시오.
  옥련이가 좋아하는 것이 있거든 사서 주겠소."

최주사가 옥련이 살았단 말을 듣더니 딸을 만나보고 반가운 마음은
잊었던지 몇 해 만에 보는 딸에게 그동안 잘 있었느냐, 못 있었느냐,
말은 한마디 없고 옥련의 말만 묻고 앉았다가 그날 저녁에는
흥김에 밥을 아니 먹고 술만 먹으며 횡설수설하다가, 주정이 나서
그 후 최부인더러 짐짓 자랄 때에 잘 굴었느니 못 굴었느니 하며
삼십 년 전 일을 말하고 앉았다가 내외간 싸움이 일어나서
마누라는 자식도 없는 늙은 년이 서러워서 죽고 싶으니 살고 싶으니
 하며 울고 청승을 떨고 있고.

딸은 내가 아니 왔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터인데,
하면서 이 밤으로 도로 가느니 마느니 하는 서슬에
 왼 집안이 붙들고 만류하여 야단났네.

최주사가 그 딸이 가느니 마느니 하는 것을 보고 취중에 화가 나서
 혀꼬부라진 소리로 마누라에게 화풀이를 한다.

"응, 마누라가 낳은 딸 같으면 저럴 리가 만무하지.
  모처럼 온 계집을 들어앉기도 전에 도로 쫓으려 드니."

마누라는 애매한 책망을 듣고 청승을 점점 더 떨고 딸은 점점 불리한
마음이 더 나서 친정에 왔던 후회만 하고, 최주사의 주정은 점점
더하는데, 왼 집안이 잠을 못 자고 안마루 안마당에 그득 모였으나
 최주사의 주정을 감히 말릴 사람은 없는지라.

최주사는 아들이 섣부른 소리로 최주사더러 좀 참으시면 좋겠습니다,
 하였더니 최주사가 취중에 진정 말이 나오던지,

"이애, 주제넘게 네가 내 집 일에 참견이 무엇이야."

하며 핀잔을 탁 주더니 최주사의 아들은 양자 들어온 사람의 마음이라.

 야속한 생각이 들어서 캄캄한 바깥마당에 나가서 혼자 우두커니
섰다가 담배 한 대를 붙여물고 나올 작정으로 서기 방으로 들어간다.

서기 방에서는 문서를 닦느라고 두 사람이 마주앉아서 부르고 놓고
하다가 최주사의 아들이 담뱃대 찾는 수선에 주 한 개를 달깍
더 놓았더라. 주 놓던 사람이 아차 하며 쳐다보더니 젊은 주인이라.
다른 사람이 서기 방에 들어가서 수선을 그렇게 피웠으면 생핀잔을
보았을 터인데 주인의 아들인고로 핀잔은 고사하고 담배 한 대 꺼내
주노라고 쌈지 끈 끄르는 사람이 둘이나 된다.
문서책 한 권이 보기에는 대단치 아니한 백지 몇 장이로되
그 속에 있는 것만 하여도 어디를 가든지 부자 득명할 재물 덩어리라.

최주사의 아들이 최주사를 야속하게 여기던 마음이 쑥 들어가고
조심하는 마음이 생겨서 다시 안으로 들어가더니 웃는 낯으로
어머니, 그리 마시오. 누님 그리 마시오 하며 애를 쓰고
돌아다니는데 최주사가 곤드레만드레하며,

"그만 내버려두어라. 그것들 방정 실컷 떨게……."

하더니 사랑으로 비틀비틀 나가서 쓰러지더니
 콧구멍에서 맷돌질하는 소리가 나도록 코를 곤다.

그 이튿날 아침에 최주사가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더니
마누라와 딸과 아들까지 불러 앉히고 재미있는 모양으로
말을 떠드는데 마누라는 어젯밤에 있던 성이
 조금도 아니 풀린 모양으로 아무 소리 없이 돌아앉았더라.

"아버지, 어젯밤에 웬 술을 그렇게 많이 잡수셨습니까?"

최주사는 그 전날 밤에 사랑으로 나가던 생각은 일어나나,
  처음에 주정하던 일은 멀쩡하게 생각하면서 생시치미를 뗀다.

"응, 과히 취하였더냐. 주정이나 아니하더냐. 오냐, 살아생전에
  일배주라니 내가 주정을 하면 몇 해나 하겠느냐, 허허허."

웃음 한마디에 왼 집안이 화기가 돈다.
최주사가 그날은 술 한 잔 아니 먹고 아들과 서기에게 집안일
 분별하더니 딸을 데리고 미국 들어갈 치행을 차리더라.

물 속에 산이 솟고 산 아래는 물만 있는 해협을 끼고 달아나는
화륜선은 어찌 그리 빠르던지. 눈앞에 보이던 산이거늘 하면
뒤에 가 있다. 부산항에서 떠나서 일본 대마도 마관, 신호, 대판을
지내 놓고 횡빈으로 들어가는데 옥련 어머니 마음에는 그만하면
미국 산천이 거의 보이거니 생각하고 하루에도 몇 번인지
 화륜선 갑판 위에 올라서서 배 가는 곳만 바라보고 섰다.

이 배같이 크고 빠른 것은 다시 없으려니 하였더니 그 배는 횡빈에서
닻을 주고 태평양 내왕하는 배를 갈아타니 그 배는 먼저 탔던 배보다
더 크고 빠른 배라. 그러한 배를 타고 더디 간다 한탄하는 사람은
옥련의 부녀를 만나보러 가는 최주사의 부녀뿐이더라.
앉았으나 섰으나, 잠이 들었으나 깨었으나, 타고 앉은 배는
밤낮 쉴새없이 달아나는데, 지낸 곳에 보이던 일본 산천은
자라목 움츠러드는 듯 점점 작아지더니 태평양을 들어서면서
산 명색이라고는 오뚝이만한 것 하나도 보이지 않고
 보이는 것은 물과 하늘뿐이라.

푸르고 푸른 하늘을 턱턱 치는 듯한 바닷물은 하늘을 씻어서
물이 푸르러졌는지, 푸른 물결이 하늘에 들이쳐서 하늘에 물이
 들었는지, 물빛이나 하늘빛이나 그 빛이 그 빛이라.

배는 가는지 아니 가는지, 밤낮 가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선 것 같은데,
 그 크던 배가 만리창해에 마름 하나 떠다니는 것 같다.

최주사 부녀가 갑판 위로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다가
 최주사의 딸이 응석을 한다.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딸의 덕에 이런 좋은 구경을 하시는구려.
 내가 없었더면 아버지께서 여기 오실 까닭이 있소?"

"허허허. 효성은 딸이 하나 보다. 나도 딸의 덕에 이 구경을 하고
 너도 옥련의 덕에 이 구경을 하는구나. 네가 네 남편이
 미국 있다는 말을 들은 지가 팔구 년이 되었으나 미국 간다는 말도
 없더니, 옥련이가 미국 있다는 말을 듣고 대문 밖에도 못 나가던
 위인이 미국을 가니 자식에게 향하는 마음이 그러한 것이로구나."

하면서 딸을 물끄러미 보는데 최주사의 딸이 그 부친의 말을 듣다가
 무슨 마음인지 눈물이 돌며 눈자위에 붉은빛을 띠었더라.

최주사가 그 딸의 눈물 나는 모양을 보더니 또한 무슨 마음인지
눈에 눈물이 돈다. 딸의 눈물은 아버지가 양자한 아들을 데리고
뜻에 맞지 못하여 아비는 아들의 눈치를 보고 아들은 아비의 눈치를
보던 그 모양이 생각이 나서 딸자식 된 마음에 그 아버지 신세를
생각하고 나오는 눈물이요, 최주사의 눈물은 그 딸이 일청전쟁
난리 겪은 후에, 내외간에 이별하고 모녀간에 소식을 모르고
장팔 어미만 데리고 근심하고 고생하던 일이 불쌍한 생각이 나서
나오는 눈물이라. 서로 눈물을 감추고 서로 위로하다가
 다시 옥련의 이야기가 시작되며 웃음소리가 난다.

"아버지, 우리 오던 곳이 어디며, 우리가 향하여 가는 곳은 어디요.
  해를 쳐다보아도 동서남북을 모르겠소그려.
  이편을 바라보아도 물뿐이요, 저편을 바라보아도 물뿐인데
  물밖에는 하늘 외에 또 무엇이 있소. 아버지 아버지,
  우리가 일본 횡빈에서 떠난 후에 이 물이 넘쳐서 세상 사람
  사는 곳은 다 덮여 싸여서 물 속으로 들어갔나 보오.
  처음부터 아니 보이던 산은 어찌하여 많이 보이는지
  모르겠소마는 우리 눈으로 보던 산까지 아니 보이니
  그 산이 어디로 갔단 말이오."

"글쎄, 나도 모르겠다. 완고로 자라서 완고로 늙은 사람이
  무엇을 알겠느냐. 부산 소학교 아이들이 모여 앉으면 별소리가
  다 많더라마는 무심히 들었더니 지금 생각하니
  좀 자세히 들었으면 좋을 뻔하였다. 어 그 무엇이라던가.
  수박같이 둥그런 땅덩이에서 사람이 산다 하니
  수박같이 둥글 지경이면 이편에서 저편이 보이겠느냐.
  그런 것을 물으려거든 아무것도 모르는 완고의 애비더러
  묻지 말고 신학문 배운 네 딸 옥련이더러 물어 보아라."

하며 최주사의 얼굴에 즐거운 빛을 띠었는데 옥련이 같은 딸 둔
 최주사의 딸도 얼굴에 웃음빛을 띠고 그 부친을 쳐다본다.

최주사의 부녀가 구경을 하다가도 옥련의 이야기요,
음식을 먹다가도 옥련의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천지간에 자식 사랑하는 정은 옥련의 모친 같은 사람은
 다시 없을 것 같다.

태평양에서 미국 화성돈이 멀기는 한량없이 멀건마는 지구상 공기는
한 공기라. 태평양에서 불던 바람이 북아메리카로 들이치면서
화성돈 어느 공원에서 단풍 구경을 하던 한국 여학생 옥련이가
 재채기를 한다.

"누가 내 말을 하나 보다. 웬 재채기가 이렇게 나누.
  에그 내 말 할 사람이야 우리 어머니밖에 누가 있나."

하면서 호텔(주막)로 들어가다 만리타국에서 부녀가 각각 헤어져
있기는 서로 섭섭한 일이나, 김관일이 다니는 학교와
옥련이가 다니는 학교가 다른고로 학교 가까운 곳을 취하여
 옥련이가 있는 호텔과 김관일이 있는 호텔이 각각이라.

옥련이가 저 있는 호텔로 가다가 돌아서서 그 부친 김관일의 호텔로
가더라. 호텔 문안으로 들어서는데 우체군사가 김관일에게
오는 전보를 들이더니, 보이가 손에는 전보를 받아 들고 한편으로
옥련이를 인도하여 김관일의 방으로 들어간다.

옥련이가 그 부친에게 인사하기를 잊었던지, 들어서며 하는 말이,

"아버지, 전보가 어디서 왔습니까?"

김관일도 옥련이더러 말할 새도 없던지,

"글쎄, 보아야 알겠다."

하면서 전보를 뚝 떼어 보더니 발신소는 미국 상항 우편국이요,
 발신인은 최항래라. 전문에 하였으되,

<딸을 데리고 간다. 상항에서 배 내렸다.
    내일 오전 첫차를 타고 가겠다.>

기쁜 마음에 뜨이면 분명한 사람도 병신 같은 일이 혹 있는지,
  김관일이가 전보를 들고,

"응, 무엇이냐, 최항래. 최항래. 최항래가 네 외조부의 이름인데.
  이애, 옥련아, 이 전보 좀 보아라."

옥련이가 선뜻 받아 들고 자세히 보니 그 어머니가 온다는 전보라.
부녀가 돌려 가며 전보를 보는데 옥련의 기뻐하는 모양은 죽었던
 어머니가 살아와도 그 외에 더 기뻐할 수는 없겠더라.

그날 그때부터 옥련이는 그 어머니가 타고 오는 기차를 기다리는데
일각이 여삼추라. 생각으로 해를 보내고 생각으로 밤을 보내다가
잠이 들어 꿈을 꾸었더라. 옥련이가 혼자 기차를 타고
그 어머니 마중을 나간다. 상항에서 화성돈으로 오는 기차는
옥련의 모친이 타고 오는 기차요,
 화성돈에서 상항으로 가는 기차는 옥련이가 타고 가는 기차이라.

원래 그 기차가 쌍선이 아니던지, 단선의 철도에서 오고가는 기차가
시간을 어기었던지, 두 기차가 서로 충돌이 되었더라.
기차가 상하고 사람이 무수히 상하였는데 그 중에
조선 복색한 여편네 송장이 있는 것을 보고 옥련이가
그 어머니 죽은 송장이라고 붙들고 운다.
 흑흑 느껴 울다가 제풀에 잠을 깨니 남가일몽이라.

전기등은 눈이 부시도록 밝고, 자명종은 열두시를 땅땅 친다.
옥련이가 그 어머니를 과히 생각하는 중에서 그런 꿈이 된 줄 알고
 마음을 진정하였더라.

옥련이의 모친이 옥련이를 생각하는 마음과 옥련이가 그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을 비교할 지경이면 누가 우등생이 될는지.
 인간에 그런 사정은 하느님이나 자세히 알으실까.

그렇게 서로 간절하던 옥련의 모녀가 화성돈에서 만나 보는데
그 모녀가 좋아하는 모양을 볼진대 옥련이가 미칠지
 옥련의 어머니가 미칠지, 둘이 다 미칠지 염려할 만도 하더라.

최주사의 부녀가 화성돈에서 삼 주일을 묵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떠나던 전날은 일요일이라. 최주사와 김관일과 구완서와
옥련의 모녀까지 다섯 사람이 모여 앉았는데
 그날은 다른 말은 별로 없고 옥련의 혼인 공론이 부산하다.

최주사 부녀는 조선 풍속이 골수에 꼭 박힌 사람이라.
내 사정만 주장하고, 옥련이와 구완서를 데리고 조선으로 가서
혼인을 지낸 후에 즉시 미국으로 돌려보내겠다 하고,
김관일이는 싱긋싱긋 웃으면서 구완서만 힐끔힐끔 보고 앉았고,
옥련이는 아무 말 없이 술병을 들고 외조부 앞에 술을 따르며 앉았고,
구완서는 최주사 부녀의 말 끝나기를 기다리고 앉았는데,
최주사의 부녀는 말대답하는 사람이 다 될 것같이
 옥련이와 구완서를 데리고 갈 생각으로 말한다.

구완서가 옥련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옥련의 모친을 보며
 자기의 질정하였던 마음을 설명한다.

"옥련같이 학문자질이 있는 따님을 두시고 날같이 용렬한 사람으로
  사위를 삼으려 하시는 것은 감사하기 측량 없읍니다.
  그렇게 감사한 일을 생각하면 오늘이라도 말씀하시는 대로
  좇을 일이오나 아직 어린 서생들이 혼인이 무엇이오니까."

하면서 다시 옥련이를 돌아다보며 허허 웃더니,

"여보게 옥련, 지금은 우리가 동무이지, 귀국하면 내외가 될 터이지.
 우리가 자유로 결혼하자 언약을 맺은 사람이라. 언약을 맺어도 자유,
 언약을 파하여도 자유, 어느 때로 행례할 기약을 정하는 것도
 자유로 할 일이라. 나도 부모 구존한 사람이요,
 그대도 부모 구존한 터이라. 부모가 미성년한 자식에게 명령할 일은
 공부 잘하여라, 나라를 위하여라 하는 것이
 부모 된 이들의 도리요 직분이라.
 지금 우리가 고국에 돌아가면 공부에 방해도 적지 아니할 터이오.
 혈기 미성한 사람들이 일찍 시집가고 장가드는 것은 제 신상에
 그렇게 해로운 것은 없는지라.
 그러나 우리가 제 일신의 이해를 교계하는 것은 오히려 둘째로다.
 여보게 옥련. 우리가 공부를 하여도 나라를 위하여 하고
 살아도 나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나라를 위하여 죽는 것이
 옳은 일이라. 여보게 옥련, 자네 마음 어떠한가.
 어서 시집이나 가서 세간살이나 재미있게 하면 그것이 소원인가.
 자네 소원이 만일 그러할진대 우리 기왕 언약이 아무리 중하더라도
 나는 그 언약보다도 더 중요한 국가를 위한다는 생각이 있으니
 자네는 바삐 귀국하여 어진 남편을 구하여 하루바삐 시집가서
 자네 부모의 소원대로 하게."

그 말 한마디에 옥련의 모친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에그, 천만의 말도 하네.
 내 말 끝에 옥련이더러 그렇게 말할 것 무엇 있나. 말은 내가 하였지, 

 옥련이가 무슨 입이나 떼었나. 나는 지금부터 구완서를
 내 사위로 알고 있어. 에그, 사위라 하면서 이름을 불렀네.
 아무러면 허물 있나. 여보게 이 사람, 자네 옥련이더러
 너의 부모 소원대로 하라 하니 우리 소원이야 하루바삐 구완서를
 내 사위 삼고픈 소원 외에 또 무슨 소원이 있나.
 지금 혼인을 하면 공부에 해로울 터이면 두었다가 아무 때나 하지."

하며 횡설수설하는 것은
옥련의 모친이 구완서가 혼인 언약을 깨뜨릴까 염려하는 말이더라.

최주사는 완고의 늙은이라. 구완서의 하는 말을 들은즉 버릇없는
 후레자식도 같고, 너무 주제넘은 것도 같은지라.
 최주사의 마음에는 옥련이 같은 외손녀를 두고 어디를 가기로
 구완서만한 외손서감을 못 고르랴 싶은 생각뿐이라.
 또 최주사가 일평생에 돈 많고 기 펴고 지내던 사람이라.
 자기 마음대로 하면 옥련이를 곧 데리고 나가서
 극진한 신랑감을 골라서 기구 있게 혼인을 잘 지내고 싶으나
 한 치 건너 두 치라, 외손의 혼인부터는 내 마음대로 하기가
 어려운 생각이 있어서 딸의 눈치도 보다가
 사위의 눈치도 보며 헛기침만 하고 앉았다.

김관일은 본디 구완서의 기개를 아는 사람이라. 말없이 앉았다가
그 부인더러 간단한 말로 옥련의 혼인은 아는 체 말자 하면서
옥련의 얼굴을 거들떠보니 옥련이는 머리 위에 꽃을 꽂고,
눈썹은 나비를 그린 듯한데 눈은 내리깔고 앉았으니 무슨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옥련이를 낳은 옥련의 부모라도 뜻은 알 수 없겠더라.

옥련이와 구완서는 몇 해 동안이든지 공부 성취하도록
고국에 돌아가지 않기로 작정하였고 혼인은 본래 작정대로 귀국하는
이후에 성례하기로 옥련의 모친까지 그 작정을 좇아 허락하고
 그 이튿날 부산으로 떠나간다.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드는 정거장에서 오후 기차 시간을 기다려서
상항 가는 기차표 사는 사람은 최주사 부녀요, 입장권 사서 들고
최주사의 부녀더러 이리 가오, 저리 가오, 시간이 되었소,
기차가 떠나겠소, 하며 가르치는 사람은 최주사의 부녀를 석별하러 온
김관일의 부녀요, 정거장에 잠깐 나왔다가 학교에 동창회가
있다 하면서 기차 떠나는 것을 못 보고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구완서요, 철도 회사 복색을 입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기차를 살펴보는
사람은 장거수라. 시계를 내어 보더니 손을 번쩍 들며 호각을 부는데
 호르륵 소리 한마디에 기차가 꿈쩍거린다.

기차 속에서 눈물을 머금고,
 
 "옥련아, 아버지 모시고 잘 있거라."
 
하는 사람은 옥련의 모친. 기차 밖에서 목메인 소리로,
 
"어머니, 할아버지 모시고 안녕히 가시오."
 
하며 눈물을 씻는 사람은 옥련.
삿보를 벗어 들고 손을 높다랗게 쳐들고 기차 속에 있는
최주사를 바라보며,
 
 "만리고국에 태평히 가시오. 대한민국 만세."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김관일.
싱긋 웃으며 턱만 끄덕 하고 김관일의 부녀 선 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최주사이라.

기차의 연기 뿜는 고동 소리가 점점 잦으며 기차는
구루마같이 달아난다. 기차는 점점 멀어지고 연기만이 남아서 공중에
서렸는데 눈물이 가득한 옥련의 눈이 기차 연기만 바라보고 섰다.

"이애 옥련아, 울지 말고 들어가자. 오래 섰으면 철도회사 사람에게
 핀잔보고 쫓겨난다. 몇 해만 지내면 나도 귀국하고 너도 귀국할
 터인데 그렇게 섭섭하게 여길 게 무엇이냐.
 네가 일본과 미국으로 유리 표박하여 부모의 사생을 모르고
 있을 때를 생각하여 보아라. 지금은 부모를 만나 보았으니
 좀 좋은 일이냐. 이애 옥련아,
 우리 이 길로 공원에 나가서 바람이나 쏘이고 구경이나 하자."

하면서 옥련이를 데리고 공원으로 들어가니
 석양은 만리요, 상항은 보이지 아니하더라.

옥련이가 어머니를 이별하고 섭섭하여 하는 모양이
실성을 할 것 같은지라, 그 부친이 중언부언하여 옥련이를 위로하고
 각기 호텔에 돌아가더라.

옥련이가 난리중에 그 부모를 잃고 타국으로 유리할 때에
 그 부모가 다 죽은 줄로 알고 있던 터이라.

일본 대판 정상 군의 집에 있을 때 지내던 일을 말할지라도
학교에 가면 공부에만 정신이 쓰이고 집에 돌아오면 정상 부인에게
정도 들었고 조심도 극진히 하였고 동무를 대하면 재미있게 놀아도
보았는데 그럭저럭 부모 생각도 다 잊었으니,
미국에 온 지 사오 년 만에 천만의외에 그 부친을 만나보고
그 어머니 생존한 줄을 알았는데,
하루바삐 그 어머니 얼굴을 보고 싶으나 일변으로 생각하면
그 어머니가 살아 있는 것만 기뻐하여 얼굴에 희색이 만면하던
옥련이가 그 어머니를 만나보고 작별하더니 얼굴에 근심 빛뿐이라.

귀에는 어머니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눈에는 어머니 모양이
보이는 듯하다. 평양성 난리 후에 그 어머니가 고생한 이야기
하던 것과 화성돈 정거장에서 그 어머니 떠나던 일은
옥련의 마음속에 사진같이 다 박혀 있다.
 옥련이가 지향없이 혼자말로,

"우리 어머니는 어디쯤이나 가셨누.
 아버지도 여기에 계시고 나도 여기 있는데 어머니 혼자 우리나라로
 가시는구나. 내 몸 둘이 되었으면 하나는 아버지 뫼시고 있고
 하나는 어머니 뫼시고 있고지고.
 우리 어머니가 평양성중에서 십 년 동안을 근심중으로 지내시고
 또 혼자 평양으로 가시는구나.
 나를 생각하시느라고 병환이나 아니 날까."

옥련이가 그렇게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는데 그 어머니 마음은
어떠할꼬. 옥련의 어머니는 남편도 이별하고 그 딸 옥련이도
이별하였으니 그 이별은 겹이별이라.
 그 근심이 오직 대단할 것 아니언마는
 옥련의 모친 마음이 그렇지 아니하고 도리어 기쁜 마음뿐이라.

                                             - 끝 -
  

   
*본 소설 [혈의 누]는 고대소설의 낡은 틀에서 벗어나
   근대소설적인 내용과 형식으로서 문학사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국초 이인직(菊初 李人稙, 1862∼1916).

 장르: 신소설.

 발표: 만세보(1906.7.22 ~ 1906.10.10.)
 
      1906년 7월 22일(연재 시작),
           1906년 10월 10일(연재 종료),
           1907년 3월(간행)

호는 국초(菊初).
 1900년 2월 구한국 정부의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 유학.
 1903년 일본정치학교 졸업 후 일본 육군성 한국어 통역에 임명되어
        노일전쟁(露日戰爭) 당시에 1군사령부에서 종군함.
 1906년<국민신보> 주필을 거쳐 <만세보> 주필로 옮기고, 다시
 1907년 이완용의 도움으로 <대한신문>을 창간하여 사장으로 옮긴 후
        이완용의 비서를 지냄.
        매국노 이완용의 앞잡이가 되어 한일 합방의 숨은 공로자로서, 

       합방 후에는 경학원 사성(經學院 司成)에 취임하여 지내다가
        조선총독부 병원에서 사망.

우리나라 본격적 신소설 작가인 그는 신소설을 쓰는 한편,
 연극 개량에도 관심을 가져
 
 1908년 11월 자신의 소설 [은세계]를 원각사(圓覺社)무대에 올려
        최초의 신극을 공연하기도 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血의淚,피눈물)(상편), [모란봉]
(1913, [혈의누]의 하편), [鬼의聲] (1906), [치악산] (상편,1908),
 [은세계](상편,1908) 등이 있다. 그의 작품들은 대개 장편이 많고
 근대소설의 다소 접근한 면모들을 보여 주는 한편
 작품의 구성과 등장인물들의 성격 묘사, 그리고 현실적 제재에 의한
 사실적 묘사 수법 등에서 개척자적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친일의식(親日意識)과 세태에 대한 작가로서의 안목이
 투철하지 못한 점에서 약점이 지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