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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전(萬歲前) - 상 -
- 염상섭 -
1
조선에 ‘만세’가 일어나던 전해 겨울이다.
세계대전이 막 끝나고 휴전조약이 성립되어서 세상은 비로소
번해진 듯싶고, 세계개조의 소리가 동양 천지에도 떠들썩한 때이다.
일본은 참전국이라 하여도 이번 전쟁 덕에 단단히 한밑천 잡아서,
소위 나리킨(成金), 나리킨 하고 졸부가 된 터이라, 전쟁이 끝났다고
별로 어깻바람이 날 일도 없지마는, 그래도 또 한몫 보겠다고
발버둥질을 치는 판이다.
동경 W대학 문과에 재학 중인 나는 때마침 반쯤이나 보던
연종시험(年終試驗)을 중도에 내던지고 급작스레 귀국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생겼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해 가을부터
해산 후더침으로 시름시름 앓던 아내가 위독하다는 급전(急電)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동경에서 떠나오던 날은 마침 시험을 시작한 지 둘째 날이었다.
그날 나는 네 시간 동안이나 시험장에서 추운 데 휘달리다가
새로 한시가 지나서 겨우 하숙으로 허덕지덕 나아오려니까,
시퍼렇게 언 찬밥덩이(생기기도 그렇게 생겼지마는, 밤낮 찬밥덩이만
갖다가 주는 하녀이기에 내가 지어 준 별명이다)가 두 손을
겨드랑이에다 찌르고 뛰어나오는 것하고,
동구 모퉁이에서 딱 마주쳤다.
“앗! 리상, 지금 오세요? 막 금방 댁에서 전보환(電報換)이
왔던데요. 한턱 내셔야 합넨다, 하하하.”
하고 지나쳐 간다.
그러지 않아도 사오 일 전에 김천(金泉)의 큰형님이 부친 편지가
생각나서, 어쩌면 오늘 내일쯤 전보나 오지 않을까? 하는, 근심인지
기대인지 자기도 알 수 없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오던 차에
그런 소리를 듣고 보니, 가슴이 뜨끔하면서도 잘 되었든 못 되었든
하여간 일이 탁방이 난 것 같아서
실없이 마음이 턱 가라앉는 듯도 싶었다.
‘흥, 찬밥뎅이를 만났으니 무에 되겠니? 그예 나오라는 게로구나!’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을 하며, 그래도 총총걸음으로 들어갔다.
채 문지방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주인 여편네가 곁방에서 앉은 채
미닫이를 열고 생글 웃어 보이며,
“인제 오십니까? 춥지요? 댁에서 전보가 왔는데요…….”
하고 전보환 봉투와 함께 하얀 종잇조각을 내민다.
일전에 김천 형님이 서울 올라가서 편지를 부치시며, 집에서
시급하다는 통기가 왔기로 자기 집 동리의 명의(名醫)라는 자를
데리고 어제 올라왔는데, 아직은 그만하거니와 수일간 차도를 보아서
정 급한 경우면 전보를 놓겠노라고 한 세세한 사연을 볼 때에는,
전보는 쳐서 무얼 하누? 하던 나도 전보를 받고 보니 암만해도
죽으려나? 하는 생각이 나서 손에 든 책보를 내려놓을 새도 없이
당황히 펴보았다. 그러나 일전에 온 편지의 말대로 위독하다는 말은
없고, 다만 어서 나오라는 명령과 전보환을 보낸다는 통지뿐인 것을
보면, 언제라고 그리 걱정을 해본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마는,
‘아직 죽지는 않은 게로군!’
하고 안심이 되면서도 도리어 좀 의아한 생각도 떠올랐다.
‘그리 시급히 턱을 까부는 것은 아니라도 죽기 전에 한번 대면이라도
시키려구 그러는 것인지? 죽었다고 하기가 안되어서 이러니저러니
잔사설 할 것 없이 그저 나오라고만 한 것인지……?’
나는 구두를 벗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는, 죽었으면 나 안 가기로
장사 지낼 사람이 없어서 시험 보는 사람더러 나오라는 것인가?
하고, 공연히 불뚝하는 심사가 일어나는 것이었다.
돈은 그 달 학비까지 얼러서 백 원이나 보내 왔다.
병인은 죽었든 살았든 하여간에, 돈 백 원은 반가웠다.
시험 때는 당하여 오고 미구에 과세(過歲)를 하려면 돈 쓸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닌데, 우환이 있는 집에다 대고 철없이 돈 청구만
할 수도 없어 걱정인 판에 마침 생광스럽다.
사실 돈 아쉰 생각을 하면, 시험 본다는 핑계로 귀국은 그만두고
노자를 잘라 써버리고도 싶으나, 아버님 꾸지람이나 집안의 시비도
시비려니와, 실상 묵은 돈을 얻어 오려면 나가는 것이 상책이기도
한 것이다.
시험도 성이 가신 판에 두 번에 질러 보는 것이 유리하였다.
“아주 일어나실 가망이 없으신 게로군요?
얼마나 걱정이 되시구 그립겠습니까?”
내 내자가 앓는 것을 전부터 아는 주부는, 정중한 인사가 아니라
방 안에서 농인지 인사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며 해해 웃는다.
“걱정이나마나 요새 밥맛이 다 제쳐졌는데!”
나는 코대답을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책보퉁이를 내어던지고,
서랍에서 도장을 꺼내 넣고 다시 나왔다. 주부는 내가 문간으로
나오는 기척에 다시 내다보며 역시 농담 진담 반으로,
“아, 점심도 아니 잡숫구 왜 이리 급하슈? 돌아가시기두 전에
진지를 못 잡숫도록 그렇게 설으셔야 몸이 축가지 않나요?”
하며 점심을 먹고 나가라고 권한다.
천생 밥장수란 돈푼 생긴 것을 보면 까닭 없이 금시로 대접이
다른 것이 배냇병 같은 제 버릇이다.
“암, 실상은 그래야 할 거요. 좀 그래 봤으면 좋겠는데, 주머니
밑천이 든든해지면 계집애한테 문안 갈 생각부터 드니 걱정이지!”
“왜 안 그렇겠에요! 다다미〔疊〕하구 계집은 새롤수록 좋다고,
벌써부터 장가가실 궁리부터 바쁘신 게로군?”
주부는 심심파적으로 이런 실없는 소리도 하고 새새 웃는다.
“세상 남자가 다 그렇대도 나만은 예외니까!”
나는 구두끈을 매고 일어서며 혼자 웃었다.
“하아, 서방님이 그러실 제야, 돌아가는 아씨 마음은 어떨라구!”
주부는 또다시 이렇게 감탄도 한다.
나는 거리로 나오면서, 주부의 지금 말이 딴은 옳은 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보았다. 자식이나 주줄이 달린 중년 상처꾼이면
모르겠지마는, 그렇지 않은 젊은 놈이면 계집이 죽어 간대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제물 이혼이라고 은근히 잘 된 듯싶이 장가들
궁리부터나 하는 것이 십상팔구일지 모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부터도 어려서 정이 들지 않기 때문이지마는,
아무 통양(痛痒)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직 젊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큰길로 빠져나와서 우편국으로 향하였다.
십 원짜리 지폐 열 장을 양복 주머니에 든든히 집어넣고, 우편국에서
나온 나는 우선 W대학 정문을 향하여 총총걸음을 걸었다.
교수실에는 마침 H주임교수가 서류가방을 만적거리면서 나오려고
머뭇거리며 있었다. 나는 H교수가 모자까지 쓰고 나오기를 기다려서
쫓아 나오면서 전보를 내보이고 급자기 귀국하여야 할 사정을
말하였다. H교수는,
“응, 응, 옳지! 그래서?”
하며 듣고 나서 고개를 한참 기울이고 섰더니,
“사정이 정 그렇다면 하는 수 없겠지. 그러나 추후 시험은 좀
귀찮을걸! 삼사 일간쯤 어떻게 연기할 수 없을까?”
“글쎄요…… 그러나 사정도 딱하고, 기위 이렇게 되고 보니 좀처럼
착심이 될 것 같지도 않고 해서 갔다가 곧 오려는데요…….”
“응! 그도 그래! 그러면 정식으로 수속을 하게 그려.”
H교수는 이같이 허가를 하여 준 후에 몇 가지 주의와
인사를 남겨 놓고, 교무실로 분별을 하여 주러 들어간다.
나도 뒤따라 섰다.
의외에 얼른 승낙을 하여 주기 때문에, 나는 할인권까지 얻어 가지고
나오기는 나왔으나 시험 치르기가 귀찮아서 하는 공연한 구실이라고
오해나 하지 아니할까 하는 자곡지심이 처음부터 앞을 서서,
좀 쭈뼛쭈뼛한 것이 암만하여도 불유쾌하였다.
전차 종점으로 나와서 K정으로 향하는 전차에 올라앉아서도,
아까 H선생더러 얼떨결에 한다는 소리가,
‘어머님 병환이……’라고 한 것을 다시 생각하여 보고,
혼자 더욱이 찌뿌드드한 생각을 이기지 못하였었다.
‘왜 하필 왈 어머님의 병환이라 했누?
내 계집이 죽게 되어서 가겠다면 어디가 어때서 어머니를 팔았더람?’
이같이 뇌고 뇌었으나 공연한 신경질로 그러는 것이었었다.
그럭저럭 시간은 벌써 세시가 넘었었다. 어차피에 네시 차로는
떠날 꿈도 아니 꾸었었지마는, 인젠 열한시의 야행으로나
출발할 수밖에 없다고 결심을 하고,
나는 K정에서 전차를 내리는 길로 쓰카다니야(塚谷屋)로 들어갔다.
반시간 남짓하게나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뒤적거리다가,
우선 급한 자켓 한 벌을 사가지고 그 자리에서 양복저고리 밑에
두둑이 입고 나서 몇 가지 여행제구를 사들고 거리로 나왔다.
그러나 그 외에는 또 별로 긴급히 갈 데는 없었다. 인제는 그 카페로
가서 점심이나 먹을까 하다가, 돈푼 가진 바람에 그랬던지
아직 그리 급하지도 않건마는 머리치장이 하고 싶은 생각이 나서
근처의 이발소로 찾아 들어갔다.
“다 깎으세요? 아직 괜찮은데요. 면도나 하시지요?”
한 손에 가위를 든 이발장이는
왼손으로 머리 뒤를 살금살금 빗기면서 이렇게 묻는다.
“그럼 면도나 할까!”
나는 이같이 대답을 하고 나서 깎지 않아도 좋을 머리까지 깎으려는
지금의 자기가 별안간 야비하게 생각되는 것을 깨닫고, 앞에 붙은
체경 속을 멀거니 들여다보다가, 혼자 픽 웃어 버렸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자빠져서도 이처럼 여유 있고 늘어진 자기의 심리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싫든 좋든 하여간 근 육칠 년간이나, 소위 부부란 이름을 띠고
지내 왔는데…… 당장 숨을 몬다는 지급전보를 받고 나서도,
아무 생각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고 무사태평인 것은 마음이 악독해
그러하단 말인가. 속담의 상말로, 기가 하두 막혀서 맥힌 둥
만 둥해서 그런가……? 아니, 그러면 누구에게 반해서나
그런다 할까? 그럼 누구에게……?’
그러나 ‘그러면 누구에게……?’냐고 물을 제, 나는 감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만 뱃속 저 뒤에서는 정자! 정자! 하는 것 같았으나 죽을힘을
다 들여서 ‘정자’라고 대답하여 본 뒤에는, 또다시 질색을 하며
머리를 내둘렀다. 실상 말하면 정자가 아니라는 것도 정자라고
대답하려니만치 본심에서 나온 대답이었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지금 머리를 깎으려고 들어온 동기가 애초에 어디 있었더냐는 것은
분명히 의식도 하고 부인하지도 않았다.
‘과연 지금 나는 정자를, 내 아내에게 대하는 것처럼 냉연히
내버려둘 수는 없으나, 내 아내를 사랑하지 않으니만치 또 다른
의미로 정자를 사랑할 수는 없다.
결국 나는 한 여자도 사랑하지 못할 위인이다.’
이 같은 생각을 할 제 나는 급작스레 고독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생활의 목표가 스러져 버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저러나 지금 이다지 시급히 떠나려는 것은 무슨 때문인가.
내가 가기로 죽을 사람이 살아날 리도 없고,
기위 죽었다 할 지경이면 내가 아니 간다고 감장할 사람이야
없을까? 육칠 년이나 같이 살아온 정으로? 참 정말 정이 들었다
할까? 입에 붙은 말이다. 그러면 의리로나 인사치레로?
그렇지 않으면 일가에게 대한 체면에 그럴 수가 없다거나,
남편 된 책임상 피할 수 없어서 나가 봐야 한다는 말인가. 흥!
그런 생각은 염두에도 없거니와 그런 마음에도 없는 것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는 어디 있는가?’
여기까지 와서는 더 생각을 이어 할 용기가 없었다.
만일에 어디까지든지 캐물을 것 같으면 자기 자신의 명답을 얻었을지
모르나 그것은 잇몸이 근질근질하는 것 같아서 다시 건드리지도 않고
자기 마음을 살짝 덮어 두었다.
면도를 하고 세수를 하고 치장을 차린 뒤에, 어디로 가리라는 결심도
채 하지 못하고 이발소에서 뛰어나왔다.
‘바로 하숙으로 돌아갈까? 정자에게로 가보나?’
혼자 이렇게 또 망설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떼치지 못할 어떠한
그림자를 쫓으면서 길 밖에서 머뭇거리다가 잡지권이나 살까 하고
동경당을 들여다보았다. 공연히 이 책 저책을 한참 뒤적거리다가 손에
잡히는 대로 잡지 한 권을 사들고 나와서도 우두커니 길거리를
내다보며 섰다가 아래로 향하고 발길을 떼어 놓았다.
어느덧 ×정 삼거리로 나와 발끝은 M헌(軒) 문전에 와서 뚝 섰다.
아직 손님이 듬성긋한 홀 속은 길거리보다도 음산하게 우중충하고,
한가운데 놓인 난로에도 불기가 스러져 가는 모양이었다.
“에그,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그려! 왜 그리 한 번도 안 오셨에요.”
밖에서 들어온 사람의 눈에는 그림자만 얼쑹덜쑹하는 컴컴스레한
주방문 곁에 서서 탁자를 훔치던 손을 쉬고, 하얀 둥근 상(相)만
이리로 돌리며 인사를 하는 것은 P자이었다.
나는 난로 앞으로 의자를 끌어당겨 놓고 앉으면서,
“그럼 시험 안 보고 술 먹으러 다닐까? 그러나 오늘은 P자가
보구 싶어 책이 어디 눈에 들어가던가! 허허허.”
“왜 안 그러시겠어요, 흥! 하지만 시험 문제를 내건 칠판 위에는
시즈코상(靜子樣)의 얼굴이 왔다 갔다 했겠죠? 하하하.”
하고 P자는 걸레를 내던지고 이리로 오며 웃는다.
“응, 잘 알았어! 그리구 그 뒤에서는
P코상의 이런 눈이 반짝이구…….”
하며 나는 눈을 흘기는 흉내를 지어 보였다.
“그런 애매한 소린 마세요. 두 분이 보따리를 싸시거나,
정사를 하시거나 내게 무슨 상관이나 있게요? 시즈코상!”
P자는 반쯤 웃으면서도 호젓한 표정으로
정자를 목청을 돋워 길게 빼며 부른다.
아직까지도 조선 유학생이라면 돈 있는 집 자질이요,
인물 좋다고 동경바닥서 평판이 좋은데, 문과대학생이 이런 데에서는
장을 치는 ‘태평시대’다. 나는 동창생들에게 끌려 우연히 와본 뒤로
벌써 반년 가까이 드나드는 동안에 이만큼 친숙하여졌다.
이런 자유의 세계에서만도 얼마쯤 무차별이요 노골적 멸시를
안 받는 데에, 감정이 눅어지고 마음이 솔깃하여 내 발길은
자연 잦았던 것이다.
여우(女優) 머리를 어푸수수하게 쪽찌고, 새로 빨아 다린 에이프런을
뒤로 매며 살금살금 나오는 정자는 우선 시선을 P자에다가 보내며,
“이거 웬 야단야?”
이렇게 한마디 하고 나서, 그 신경질적인 똥그란 눈을 이리로 향하고
공손히 인사를 한다. 나는 고개만 끄덕 하고 잠자코 말았다.
“시즈코상! 이번에 ‘이상’이 성적이 좋지 못하시다면
그 죄는 시즈코상에 있습넨다.”
둘의 거동을 한참 건너다보던 P자는 이같이 한마디를 내던지듯이 하고
저리로 다시 가서 탁자를 정돈하고 섰다.
정자는 거기에는 대꾸도 아니 하고,
“참 요새 시험중예요?”
하며 나에게 묻는다. 얼마쯤 반가운 기색이나,
언제나 그러한 자기의 감정을 감추는 정자다.
“그럼, 시험 보다가 말구 보러 왔길래 정성이 놀랍다구 P자상이
놀리는 게 아닌가? 그러나 P자상을 찾아왔는지 시즈코상을 보러
왔는지, 술이 그리워서 왔는지, 그것은 내 염통이나 쪼개 보기
전에야 알 수 없는 일이지. P자! 일이 끝나건 올라와요.”
나는 P자에게 일러 놓고 정자를 따라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맘때쯤은 제일 한산한 개시머리지마는 이층은 아무도 없다.
난로 앞에 자리를 만들어 나를 앉혀 놓고, 정자는 저편에 가 서서
영채가 도는 똥그란 눈으로 무슨 기미를 찾아내려는 듯이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치니까 생긋 웃는다.
이 계집의 정기가 모두 그 눈에 모였다고도 할 만하지마는
항상 모든 것을 경계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혹간은 무심코 고개를
돌릴 만치 차디차고 매정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어느 때든지
생긋 웃는 그 입술에는 젊은 생명이 욕구하는 모든 것을
아무리 하여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결코 소리를 내지 않고
웃는 호젓한 미소에서, 침정(沈靜)과 애수(哀愁)의 그림자를
어느 때든지 볼 수 있었다. 남성이란 남성을 못 믿고 저주하면서도
그래도 내버리고 단념할 수 없는 인간다운 애착이며 성적 요구에서
일어나는 답답한 심정을 그대로 상징한 것이
이 계집애의 그 시선과 미소이었다.
“왜 그리 풀이 죽으셨에요.
너무 공부를 하시느라고 얼이 빠지셨습니다 그려?”
정자는 남자가 잠자코 있으니까 좀 어색한 듯이 체경 있는 쪽으로
잠깐 고개를 돌리고 머리를 만적거리며 입을 벌렸다.
이 계집애의 나직나직한 목소리에도 좀더 크게 하였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날 만치 절제하고 압축된 탄력이 있었다.
이 계집은 자기의 목소리에서까지
자기를 억제하고 숨기려 하는가 싶었다.
“왜 누가 얼이 빠져? 어서 가서 술이나 갖다 주구려.
벌써 거진 네시나 되었을걸?”
나는 시계를 꺼내 보며 재촉을 하였다. 정자는 나가려다가 돌쳐서며,
“왜 어딜 가세요?”
하고 물으며 가까이 온다. 내가 앉았는 안락의자의 등덜미에 한 손을
걸쳐 놓으며 무릎이 맞닿도록 다가서며 생글 하는 것은
언제나와 같은 애무를 바라는 표정이다.
“가긴 어딜 가!”
“뭘, 인제 시험을 마쳐 놓고 어디든지 조용한 데루
여행을 하시는 게지! 어디 두고 보면 알겠지!”
하며 저쪽 체경 탁자로 가서 그 위에 놓은, 내가 들고 들어온 봉지를
두 손으로 만적거리며 건너다보고 서 있다.
그 속에는 내가 아까 쓰카다니야에서 사가지고 온 풍침과
여행용 물잔이며, 부친을 위한 여송연상자, 과자상자,
비단 여편네 목도리를 넣은 종잇갑…… 이것저것이 들어 있었다.
장난꾸러기처럼 먼산을 쳐다보며 한참 만적만적하던 정자는,
“웬 선사품이 이렇게 많은구? 댁에 가시나 보군요?”
하며 체경 속을 들여다보고 생글 웃으며,
“어디 좀 펴봐야! 뭘 이렇게 많이 무역을 해 가시나?”
하고 제멋대로 풀기를 시작한다. 나는 웃으며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풍침, 컵, 왜비누, 담뱃갑, 과자상자……
탁자 위에다가 진열대처럼 벌여놓더니, 맨 밑에 있는 숄갑을 펴들고
생글생글 웃다가 난로 앞으로 와서 서며,
“이건 아가씨 것이군요?”
하며 내민다. 그때의 그의 눈과 그 입술에는 시기에 가까운 막연한
감정을 감추려고 애를 써 웃는 빛이 살짝 지나갔다.
“잘 알았소!”
하며 나는 홱 뺏으며 정자를 껴안듯이 부둥켜안다가
목도리를 다시 개킨다.
“잘못했습니다. 누가 줄 사람을 주지 말라고 했습니까, 하하하.”
하고 정자는 좀 어색한 듯이 웃고 섰다. 그러나 기회가 마침 좋다고
생각한 나는 벌떡 일어나는 길로, 손에 든 자주 바탕에 흰 안을 받친
목도리를 눈깜짝 새에 둘둘 말아 가지고 정자의 앞으로 덤벼들며,
목을 껴안으면서 소매 속에 쑥 넣으면서 술취한 사람처럼
장난 비슷이…… 하였다. 불의에 난폭한 습격을 받은 정자는
어쩔 줄을 모르면서도 생글 웃는 낯을 본 법하였다.
일 분쯤 지났을까, 정자는 나의 팔을 뿌리치고 얼굴이 발개서
내려가 버렸다.
뒷모양을 가만히 노려보고 섰던 나는 두세 걸음 쫓아 나가며,
“노하지 말아요. 그리구 어서 가져와!”
하고 곱게 일렀다.
나의 한 일은 점잔치는 못하였으나, 다른 손이 올라오기 전에
주고 싶고, P자에게 알리기 싫으니 그 외의 수단을 모르는 나는
그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멀거니 섰다가 여기저기 흐트려 놓은 물건을
빈 갑까지 싸서 놓고 자기 자리로 와서 앉았다.
위스키병을 들고 올라온 정자는 한 잔 따라 놓고 뾰로통하여 섰다가,
체경 앞으로 가서 머리를 고치고 다시 와서는 멈칫멈칫하며
바로 앉지를 않았다. 나의 눈에는 부끄러워하는 그 기색이 도리어
기뻤다. 더구나 노기가 있는 것은 인격적 자각의 반영(反映)이라고
생각할 때, 미안하기도 하고 위로하여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왜 그래? 오늘 밤에 어딜 갈 텐데 섭섭하기에 변변치는 않은
것이나마 사가지고 온 것이야. 조금이라도 어떻게 생각지는 않겠지?
남의 눈에 띄는 것이 재미 없겠기에 그런 거야.”
그것도 객기로 산 것이지마는 참답게 주지 못한 것을 나는 후회하였다.
“천만에요! 되레 미안합니다. 그러나 댁에를 가세요?
지금 떠나실 테에요?”
정자는 될 수 있는 대로 냉연히 물었으나 흥분한 마음을
무리로 억제하는 양이 역력히 보이었다.
“글쎄, 집엘 좀 가야 할 일이 있는데 밤에 떠날지?
아직 시험이 끝나지 않아서…….”
나는 어느 틈에 정숙한 말씨로 변하였다.
“무슨 볼일이 계시기에 시험을 보시다가 말구 가세요?”
하며 정자는 비로소 고개를 들고 쳐다본다.
그때에 마침 요리가 승강기로 올라오기 때문에 정자는 일어섰다.
나는 그 길에 P자를 부르라고 일렀다. 정자는,
“예에?”
하고 한참 나를 돌아다보고 섰다가 다시 돌쳐서서 P자를 소리쳐 부른
뒤에 요리 접시를 들어다 놓는다. P자도 뒤따라 들어왔다.
“재미있게 노시는데, 쓸데없이 폐올시다그려, 하하하.”
하며 P자는 내가 가리키는 교의에 털썩 앉으며 식탁에 놓였던 잡지를
들어서 뒤적거리기 시작한다.
P자의 푸근푸근한 얼굴은 언제 보아도 반가웠다.
명상적(暝想的)이요 신경질일 뿐 아니라 아직 순결한 맛이 남아 있는
정자에게 비하면, P자는 이러한 생애에 닳고 닳아서, 되지 않게
약은 체를 하면서도 상스럽고 천한 구석이 있지마는
그래도 나는 이러한 여자에게 흥미를 느꼈다.
“올라오라니까 왜 그리 우자스러운 거야? 꼭 모시러 가야만 하나?”
나는 잡지를 뺏어서 손을 내미는 정자에게 넘겨 주고
P자의 포동포동한 손을 잡아서 만적거리며 시비를 걸었다.
“우자하긴 누가 우자해요? 이런 문학가 양반네들만 노시는 데에는
감히 올 수가 없으니까 그렇지요.”
하며 P자는 손을 슬며시 빼고 정자를 살짝 건너다보고는
나를 다시 향하여 방긋 웃었다.
P자에게 대한 정자는, 어떠한 때든지 눈엣가시이었다.
비단 나뿐 아니라 어떠한 손님이든지 P자와 친숙한 사람도 내종에는
정자에게로 빼앗기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정자가 고등여학교를
졸업하였을 뿐 아니라 문학서적과 소설을 탐독한다는 것이 P자로서는
경앙(景仰)하는 동시에 한손 접히는 것이다.
그러나저러나 나는 어느 때든지 두 계집애를 다 데리고 이야기하지
않는 때가 없었다. P자나 정자가 다른 손님을 맡은 때에라도
밤이 늦도록 기다려서 만나 보고야 나왔다.
더욱이 P자가 없을 때에 그리하였다.
이것이 정자에게는 눈치를 채이면서도 의문인 모양이었다.
“참 그런데 언제 떠나세요?”
정자는 보던 책을 식탁 위에다가 놓으며 나를 쳐다보고 물었다.
“글쎄…….”
나는 어정쩡한 대답을 하며
정자의 기색을 유쾌한 듯이 건너다보고 앉았었다.
“왜 어딜 가세요?”
P자는 일어나서 정자가 앉은 교의 뒤로 가며 물었다.
“오늘 밤에 떠나세요?”
또다시 잼처 정자가 묻는다.
나는 지금 막 들어온 전등불을 쳐다보며 앉았다가,
“실상은 내 마누라가 앓는 모양인데,
턱을 까부니 어서 오라고 야단은 야단이지만 아직도 갈까말까다.”
“네, 그래요? 그럼 어서 가보셔야죠.
그 동안에 돌아가셨으면 어떡하나요!”
P자는 나를 책망하듯이,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본다.
“죽으면 죽었지, 어떡하긴 무얼 어떡해.”
나는 잠자코 앉았는 정자를 건너다보며 웃었다.
“사내는 다 저래! 저런 남편을 믿고 어떻게 사누?”
P자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혼자 탄식을 하며, 정자의 교의 뒤에
매달려서 정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동의를 구한다.
“누가 믿구 살라는 것을 사나……?”
하고 나는 실없이 한마디 하다가 다시 정색으로 말을 이었다.
“부부간에 서로 믿는다는 것은 결국 사랑한다는 말이지만,
사랑한다는 것도 극단에 가서는 남이 나를 사랑하거나 말거나
저 혼자의 일이다. 저 사람이 받지 않더라도 자기가 사랑하고
싶으면, 자기가 만족할 데까지 사랑할 것이다.
외기러기 짝사랑이라고 흉을 본다기로 그거야 알 배 아니거든.
그와 반대로 사랑치 않는 것도 자유다. 사람에게는 사랑할 자유도
있거니와 사랑을 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 부부간이라고 반드시
사랑하여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을까.
없는 사랑을 의무적으로 짜낼 수야 있나? 하하하…….”
나는 문학청년의 버릇으로 이런 논리를 캐고 깔깔 웃었다.
정자와 P자는 나의 입을 똑바로 노려보고 앉아서 들으며,
정자는 무엇을 생각하는 것처럼 가끔가끔 고개를 끄떡거리고 있었다.
나는 따라 놓았던 술 한 잔을 들어 마시고 나서 또다시 말을 꺼냈다.
“그러나 문제는 선도 아니요 악도 아닌 그 어름에다가 발을 걸치고
있는 것이다. 죽거나 살거나 눈 하나 깜짝거리지도 않으면서
하는 공부를 내던지고 보러 간다는 것이 위선이다. 더구나
여기 술 먹으러 오는 것을 무슨 큰 죄나 짓는 것같이 망설이는
것부터 큰 모순이다. 목숨 하나가 없어진다는 것과
내가 술 먹는다는 것과는 별개 문제다. 그러면서도 ‘내 처’가 죽어
가는데 술을 먹다니? 하는 오죽잖은 ‘양심’이 머리를 들지만,
그것이 진정한 양심이라기보다도 관념이란 가면이 목을 매서
끄는 것이다. 사람은 관념의 노예가 되는 수가 많다.
가식의 도덕적 관념에서 해방되는 거기에서 참된 생명을 찾는
것이다. 사랑치 않으면 눈도 떠보지 않을 것이요,
사랑하고 싶으면 이렇게 해도 상관이 없는 것이란다!”
하며 나는 벌떡 일어나서, 정자의 어깨를 짚고 꾸부리고 섰는 P자를
껴안으며 키스를 하려는 흉내를 내었다.
무심코 섰던 P자는 질겁을 하며,
“에구머니, 사람을 죽이네!”
하고 깔깔대며 뛰어 달아나서 저만치 가서 앉는다. 그 사품에 나는,
웃으면서 일어나는 정자와 맞장구를 쳤다. 그대로 얼싸안았다.
술이 얼쩍하게 취하여 문간으로 나오는 나를 앞질러서 따라 나오며
정자는 거진 입이 닿도록 내 귀에다 대고,
“정말 밤차로 가세요?”
하며 소곤거린다.
“생각나는 대로 하지…… 그런데 왜?”
“글쎄요…….”
하고 나서 정자는 무슨 말을 할 듯하다가,
P자가 쫓아 나오는 것을 보고 한걸음 물러섰다.
“하여간 갈 길이니까 어서 가야지.
그럼, 한 달쯤 있다가 올 테니까 그때 또 만납시다.”
나는 이같이 한마디 남겨 놓고 길거리로 나왔다.
거리는 아직 초저녁이지마는 첫추위인데다가, 낮부터 음산하였던
일기는 마치 눈이나 오려는 듯이 밤이 들어 갈수록 쌀쌀하여졌다.
사람 자취도 점점 성기어 가고 길바닥에 부딪는 나막신 소리는
한층더 요란히 들린다. 점두에 매달린 전등불빛까지 졸리운 듯
살얼음이 잡히어 가는 듯 보유스름하게 비치는 것이
더욱 쓸쓸하여 보였다.
나는 곧 차에 뛰어오르려다가, 사람이 붐비는 갑갑한 차 속으로
기어들어갈 생각을 하니, 얼근한 김에 차마 올라설 용기가 나지를
않아서 그대로 돌쳐서서 O교 방향으로 꼽들었다.
화끈화끈 다는 뺨을 살금살금 핥고 달아나는 저녁 바람에 정신이
반짝 날 듯하면서도, 마음은 어찌하여 그렇다고 꼭 집어
말할 수 없이, 조 비비듯 조바심이 나서 못 견딜 지경이다.
자기 자신에게 대한 반항인지, 자기 이외의 무엇에 대한 반항인지
그것조차 뚜렷이 알 수 없으면서, 덮어놓고 앞에 닥치는 대로
무엇이든지 해내려는 듯한 터무니없는 울분이 가슴속에서 용심지같이
치밀어 올라왔다. 컴컴한 속에서 열병에나 띄운 놈 모양으로 포켓에
찔렀던 두 손을 꺼내 가지고 뿌리쳐 보기도 하고,
입었던 외투나 윗저고리를 벗어서 O교 다리 밑으로 보기 좋게
던져 버렸으면 하는 객기도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발은 기계적으로
움직이어 O교 정거장을 지나 S교를 향하고 돌쳐서서
여전히 컴컴한 천변가로 헤매며 내려갔다.
이러한 공상이 한참 계속된 뒤에는 별안간에 눈물이 비집어 나올 만치
지향할 수 없는 애처로운 생각이 물밀듯 하고 참을 수 없이 허전하고
외로운 생각에 긴 한숨을 뿜어 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에는,
‘무슨 때문에 눈물이 필요하단 말이냐.
실상 완전한 자유는 고독에 있고 공허에 있지 않은가?’
나는 속으로 이같이 변명하여 보았다.
그것은 마치 종로에서 뺨맞은 놈이, 행랑 뒷골에서 눈을 흘기다가,
자기의 약한 것을 분개하여 보기도 하고 혼자 변명하기도 하여 보는
셈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겁겁증이 나서 몸부림을 하는 일종의 발작적
상태는 자기의 내면에 깊게 파고들어 앉은 ‘결박된 자기’를
해방하려는 욕구가 맹렬하면 맹렬할수록,
그 발작의 정도가 한층 더하였다. 말하자면 유형무형한 모든 기반,
모든 모순, 모든 계루에서 자기를 구원하여 내지 않으면 질식하겠다는
자각이 분명하면서도, 그것을 실행할 수 없는 자기의 약점에 대한
분만(憤懣)과 연민과 변명이었다.
나는 참을 수 없어서 포병공창 앞으로 달아나는 전차에 뛰어올랐다.
이러한 때에 미인의 얼굴이라도 쳐다보면 캠퍼 주사만한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었으나 나의 이지(理智)는
그것조차 조소하였다.
그러나저러나, 노역과 기한에 오그라진 피부가 뒤틀린 얼굴밖에
내 눈에는 비치지 않았다. 그들은 시든 얼굴을 서로 쳐들고
물끄럼말끄럼 마주 건너다보기도 하고, 곁의 사람을 기웃이
들여다보기도 하고 앉았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이사람 저사람 쳐다보다가,
‘여러분, 장히 점잖구 무섭소이다그려!’
이렇게 한마디 하고 일부러 허허허 하며 웃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 나 혼자 제풀에 빙긋 하여 버렸다.
이렇게 안 나오는 거드름을 빼고, 될 수 있는 대로 우자한 태도로
좌우를 돌려다보는 것은 비단 일본 사람이 조선 사람에게만 한한
무의식한 습관이 아니라 사람의 공통한 성질인 동시에
사람이란 동물이 얼마나 약한가를 유감없이 말하는 것이다.
약하기 때문에 조그만 승리와 조그만 자랑을 얻으려 애쓰고,
약하기 때문에 성세(聲勢)를 허장(虛張)하며, 약하기 때문에 자기의
주위에 경계망을 쳐놓고 다른 사람을 주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상대자의 용모나 옷 입은 것, 행동거지, 말씨…… 이런 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음미함으로써, 자기의 비열한 호기심을 만족시키려는
본능적 요구가 있는 것도 물론이겠지마는,
저편을 엿보는 데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우선은 자기 방어상 저편의 강약과 빈부의 정도를 감정할 필요를
느끼고, 그 다음에는 의복과 말씨와 행동거지가 남에 빠지면
도회생활에 있어서는 큰 고통이요 수치이기 때문에 신경이 여기에
집중된다. 또한 그들에게는 피차에 구하는 것이 있으니 아첨하고
농락하려는 한편에 농락되지 않으려는 우월감(優越感)과
경계와 추세(趨勢)라는 등 잡념으로 말미암아 자연히 저편의 표정이나
비식(鼻息)을 엿보는 데 명민한 것을 서로 자랑한다.
또 여자는 여자대로 자기의 목숨인 사랑을 얻기에 목이 말라서
그 불순의 도가 한층 더하다. 이런 점으로 보면 제일 순진하고
아름다운 것은 전차 속에서나 거리에서 청춘남녀가 본능적으로 이성의
미(美)를 부산히 찾으면서도 담담히 지나치는 것일지 모른다.
이성(異性)을 꿈꾸는 순진한 청춘남녀에게는 불순한 욕심이 없다.
적어도 물질적 욕심이 없다. 아첨할 필요도 없고 우월감이나
농락하려는 야심도 없고 방어하고 반발하려는 적대심이란 손톱만큼도
없다. 다만 미를 동경하고 감상하며 이에 도취하고 감격한다.
더구나 그러한 생명의 연소가 영원히 흐르는 물결에 뿌려지는
월광의 은박(銀箔)같이 아무 더러운 집착 없이 순간순간에 반짝이며
스러져 버리는 것이 더욱이 향기롭고 깨끗하다.
그러나 위선 없이 살지 못하리라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운명이다.
그리하여 인생의 움〔芽〕같은 그들도 미인의 얼굴을 똑바로 보는 법이
없다. 도적질을 해서 본다. 그것이 무엇보다도 고약한 버릇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순박하고 순진한 것은 소위 하층사회의 기습(氣習)일
것이다. 노동자에 이르러서는, 자랑할 것도 없고 숨길 것도 없고
부끄러울 것도 없는 대신에 적나라한 자기와, 이웃에 대한 동정과,
방위적 단결이 있을 따름이다. 생활의 실질이나 양식이나
제일 진실되고 본질적이다. 그들은 사람과 사람끼리 만날 때에 결코
노려보거나 음미하거나 탐색하지는 않는다. 가식도 필요 없고
자기네끼리 아유구용(阿諛苟容)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들의 병은 무지일 따름이다. 무질서일 따름이다.
하고 보면 결국 사람은 제 소위 영리하고 교양이 있으면 있을수록
(정도의 차는 있을지 모르나) 허위를 되풀이하여 가면서 비굴한
타협이 아니면 옆사람을 자기에게 동화시키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이기적 동물이다. 구구한 타협도, 남의 동화도 강요하려 들지 않는
전아(全我)의 생활, 자유로운 생활을 꿈꾼다면 우선 세속적으로는
낙오자에 자적(自適)하겠다는 각오를 필요조건으로 한다…….
나는 어느덧 이러한 난데없는 생각에 팔려, 역시 이사람 저사람
쳐다보고 앉았다가, 정자의 지금의 생활을 생각하여 보았다.
정자는 저의 집에서 뛰어나왔다 한다.
사정을 들어 보면 그도 그럴 것이다.
나는 그 애가 반역자라는 점은 찬성이다. 그러나 자기의 생활을
자율하여 나갈 길이 있을까 의문이다. 자기 생활의 중류(中流)에
뛰어들어갈 용기가 있을까? 자각도 있고 영리는 하지만……
그러나 허영심이 앞을 서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전차는 종일 노역에 기진하여, 허덕허덕 다리를 끌면서 잠이 들어가는
집집의 적막을 깨뜨리려는 듯이, 빽빽 기를 쓰는 듯한 외마디 소리를
치며, 에도가와 가도의 컴컴한 길을 겨우 기어나와서 대낮같이
전등이 환한 차고 앞에 와서 한숨을 휘 쉬며 우뚝 선다.
졸음 졸듯이 고요하던 찻간 안은 급작스레 왁자하여지면서
우중우중 내린다.
나도 검은 양복바지에 푸른 저고리를 입고 벤또갑을 든 사오 인의
직공 뒤를 따라 내려왔다. 쌀쌀한 바람이 확 끼치었다.
“아, 요새도 밤일을 하슈? 오늘은 제법 춥지요?”
“예, 인제 참 겨울인데요.”
“이리 들어와 좀 녹여 가시구려.”
차고 문간에 섰던 차장과 이런 수작을 하며, 따뜻하여 보이는
차장 휴게실로 끌려 들어가는 직공들의 뒤를 부러운 듯이 건너다보며
나는 그 사잇골짜기로 들어섰다.
하숙으로 휘돌아 들어가는 길에 뒷집에 있는 ×군을 들여다볼까 하며
망설이다가, 결국 들어가 보았다. 알리면 정거장에를 나와 주고 하여
폐가 되겠기 때문에 망설인 것이다. ×군은 내가 이 밤으로 귀국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당자인 나보다도 놀라며 진정으로 가엾어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사람 좋은 ×군을 도리어 웃으면서
하숙으로 함께 돌아왔다.
×군과 같이 짐을 수습하여 주인에게 맡긴 뒤에 인사받을 새도 없이
총총히 가방을 들고 우리 둘이서 동경역으로 향한 것은 그럭저럭
열시 가까워서였다. ×군이 재촉을 하는 대로 나는,
“늦으면 내일 떠났지, 하는 수 있나!”
하면서도 허둥허둥 동경역에 나와 보니까, 내 시계가 틀리었던지
그래도 십 분 가량이나 여유가 있었다.
가방을 뒤에 섰는 ×군에게 맡겨 놓고 차표를 사려고 출찰구 앞에
가서 섰으려니까, 곁에서 누가 살짝 건드리며,
“리상!”
하는 귀에 익은 소리가 들린다. 나는 깜짝 놀라서 돌아다보았다.
역시 정자다. 노르끄레한 곱다란 보자에다가 네모진 것을 싸서 들고,
옆에 선 ×군의 시선을 꺼리는 듯이 힐끔힐끔 흘겨보고 섰다.
“웬일이야? 이 춘 밤에.”
나는 의외인 데에 놀라며, 나무라듯 위무하는 듯이 한마디 하였다.
“난 안 가시는 줄 알았지!”
“한참 기다렸어?”
“아뇨, 난 늦을까 봐 허둥지둥 나왔더니…….”
“미안하구려, 어서 들어가지. 그럼…….”
정자는 거기에는 대답도 아니 하고,
맞은편 출찰구로 입장권을 사러 총총걸음으로 걸어갔다…….
×군이 자리를 잡으려고 앞서 들어간 뒤에
정자와 맨 끝으로 둘이 나란히 서서 걸으며 입을 벌렸다.
“오래 되실 모양이에요?”
“뭘, 고작해야 이 주일쯤이지.”
“오래 되시건 편지라도 해주세요.
그 동안에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왜, 어딜 가겠기에?”
“글쎄 봐야 하겠지마는……
밤낮 이 모양으로만 하고 있을 수도 없으니까…….”
정자는 말을 끊고 잠깐 고개를 기울이고 걷다가
가까이 와서 매달리듯이 몸을 살짝 실리며,
“이렇게 급하지만 않았더면 나도 같이 경도(京都)까지라도
가는 것을…….”
하며 나를 쳐다보고 호젓이 웃는다. 나는 잼처 무엇을 물으려다가
×군이 황망히 손짓을 하며 부르는 바람에,
정자와는 총총히 인사를 하고 차에 올라서 ×군과 바꾸어 앉았다.
친구에게 전송을 받거나 물건을 받는 일은 별로 없었기도 하려니와
도리어 귀찮은 일이지만, 정자가 무엇인지 보자에 싼 채 창으로
디밀며 지금 펴볼 것 없다 하기에, 나는 그대로 받아서
선반에 얹을 새도 없이 차는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반 간통쯤 떨어져서, 오도카니 섰던 정자의 똑바로 뜬 방울 같은
두 눈이 힐끗하더니 몰려 나가는 전송인 틈에 사라져 버렸다.
2
반찬 찬합같이 각다구니를 여기저기 함부로 벌여놓고
꼭꼭 끼여 앉았는 틈에서 겨우 잠이랍시고 눈을 붙였다가 깨니까,
아직 동이 트려면 한두 시간이나 있어야 할 모양. 찻간은 야기에
선선하면서도 입김과 담배연기에 흐렸다. 다시 눈을 감아 보았으나
좀처럼 잠이 들 것 같지도 않고, 외툿자락을 걸친 어깨가 으스스하여,
일어나 앉으며 담배를 피워 물고 나서 선반에 얹힌 정자가 준 보자를
끌어내렸다. 아까 받아 얹을 때에 잠깐 보니까 과자상자 위에
술병 같은 것이 두두룩이 얹혀 있는 것 같아서 긴하게 생각이
든 것이다. 네 귀를 살짝 접어서 싼 보자의 귀를 들치고 보니까
과연 갑에 넣은 위스키병이 얹히어 있다. 어한으로 한잔 할 작정으로
병을 쑥 빼려니까 갸름한 연보랏빛 양봉투가 끌리어 나왔다.
‘별안간에 편지는 무슨 편지인구…….’
그래서 나중에 펴보라고 한 것이라고 나는 혼자 속으로 생각하며
그래도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편지는 포켓에 집어넣고 술부터 따라서 한숨에 켰다.
영리한 계집애요 동정할 만한, 카페의 웨이트리스로는 아까운
계집애다라고 생각은 하였어도 그 이상으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정열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같은 값이면 정자를 찾아가서
술을 먹는 것이요, 만나면 귀여워해 줄 뿐이다.
원래가 이지적, 타산적(打算的)으로 생긴 나는, 일시 손을 대었다가
옴칠 수도 없고 내칠 수도 없게 되는 때에는 그 머릿살 아픈 것을
어떻게 조처를 하나? 하는 생각이 앞을 서는 동시에,
무슨 민족적 감정의 구덩이가 사이에 가로놓인 것은 아니라도,
이왕 외국 계집애를 얻어 가지고 아깝게 스러져 가려는 청춘을
향락하려면 자기에게 맞는 타입을 구하겠다는 몽롱한 생각도
없지 않아서 그리하였다. 그러나 오늘은 무슨 생기가 났다느니보다도
세찬 삼아서 사다 준 숄 한 개가 인연이 되어
편지까지 받게 되고 보니, 막연히 반갑다는 정도를 지나서 좀 실답게
자기 태도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는 책임감 비슷한 것을 느끼는
것이다. 귀엽다고는 생각하였지마는 연애를 해보려는 열정이
있는 것도 아니요, 물론 목도리 한 개로 환심을 사려는 더러운 야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진정한 애욕이 타오르면 그런 것을 사주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여간 젊은 여자와 어울려 노는 것은 좋으나
그 이상 깊게 끌려 들어갔다가 자기 생활에 파탄을 일으키고 공연한
고생을 사서 할까 보아 경계를 하는 자기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두어 잔 술을 마신 뒤에 비로소 편지를 꺼내서
피봉을 들여다보았다. 침착하고도 생기 있는 정돈된 필적은 그 애의
모습과 같이 재기가 발리어 보였다. 나는, 앞사람은 졸고 앉았지만
누가 보지나 않을까 하고 좌우를 돌려다보며
그래도 궁금증이 나서 쭉 뜯어보았다.
지금은 이런 편지를 올릴 기회가 아닌지도 모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아무리 이 지경이기로 물질로 좌우되는 천착한 계집이라고
생각하실 것이 너무도 창피하고 원통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러할수록에…….
이렇게 허두를 내놓고 나의 실답지 않은 태도에 대한 불만과 공격이
있은 다음에, 자기의 지금 처지와 장래에 대한 희망 등을 요령만
간단히 쓴 뒤에, 형편 따라서는 세말쯤, 혹은 경도의 고모 집으로
갈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나는 한번 쭉 보고 나서 혼자 웃었다. 그러나 그것은 조소거나 나에게
대한 이 여자의 신뢰에 대하여 만족한 미소는 아니었다.
애를 써 설명하자면, 그 계집애의 조리가 정연한 이론과 이지적이요
명민한 그 애의 머리에 만족을 느꼈다 할까?
나는 곧 답장을 써볼까 하다가, 하나 둘씩 일어나 앉는 사람들의
시선이 귀찮아서 그만두어 버렸다.
……왜 우롱을 하세요? 무슨 까닭에 농락을 하세요? P자와 저를 놓고
희롱하시는 것은 유쾌하시겠지요. 그러나 너무 참혹하지 않습니까.
물론 당신 말씀과 같이, 사랑은 유희가 아니라는 것은 아시겠지요.
……누가 당신께서 손톱만큼이라도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입니다. 혹시는 모욕입니다.
당신의 태도가 그밖에는 어떻게 할 수 없으시면 우리는
이 이상 교제를 끊는 것이 옳은 일이겠지요…….
이것이 정자의 제일 큰 불평이었다. 정자는 자기의 과거를 한만히
이야기하지는 않으나, 흔히 있는 계모시하의 불화와 부친의
몰이해에다가 실연이 한꺼번에 왔던 모양이다.
그러나 좀체 거기에 휘어 넘어가지 않고, 앙버티고 현재의 경우에서
제 손으로 헤어나려고 허비적대는 그 심보가 취할 점이요 동정이 가는
것이다. 지금도 책을 보는 모양이지마는 문학에 대한 감상력이
호락호락히 볼 것이 아닌 데에 나는 귀엽고 경애를 느끼는 것이다.
될 수 있으면 어떻게 붙들어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 공상이다.
‘계집애하고 키스를 하면서도 침맛을 아는 놈에게
사랑이 있다는 것부터 틀린 수작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아까 M헌 이층의 광경을 머리에 그려 보았다.
모욕이란 의식부터 머리에 떠올랐다는 말이나, 제 말마따나 이때껏
한 남자의 입밖에는 몰랐었다는 말이 정말이라면 정자는 그래도
아직은 행복하다. 침맛을 알아내지 않는 것만도 행복하다.
이런 생각을 할 제 사람의 행복은 사람다운 정조를
잃지 않는 데 있는가도 싶다.
‘그러나 자기는 이때껏 연애다운 연애를 하여 본 일도 없으면서
청춘의 자랑이요 왕일한 생명력인 정열이 말라 버린 것은 웬 까닭인가.
하여간 성격이 기형적으로 성장하였다는 것은 사실일지 모른다.
이것은 정열을 식히는 첫째 원인이지만 동시에 인간성의 타락이다.
하지만 자기를 살리기 위하여 어떠한 경우에는 정열을 억제하여야 할
필요도 있으니까, 반드시 성격이 뒤틀렸다거나 인간성이 타락하여
그렇다고만도 할 수 없지…….’
그러나 자기를 살린다는 것이 자기의 비열한 쾌락을 만족시킨다는 것이
아닌 이상, 사람을 우롱한다는 것은 죄악이다.
정열이 없으면 없을 뿐이지, 그렇다고 사람을 우롱하라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우롱한다는 것은 몰염치한 이야기다. 사람을 우롱하는 것은
인생을 유희함이라는 의미로서
결국에 자기 자신을 우롱하고 유희함이다.
무슨 까닭에, 자기는 굳세고 높게 살리겠다면서 가련한, 저 갈 길을
찾겠다고 발버둥질치는 불쌍한 여성을 농락하려는가? 사실 말하자면
오늘까지 나의 정자에게 대한 태도는 실없었다. 저편이 나를 범연히
생각지 않았다면 더욱이 불쾌하고 모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책망일 것이다. 그러나 정자 자신이 얼마나 실답고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가는 누가 알 일인가? 사랑이니 무어니 머릿살
아픈 노릇이다마는 세상이 경멸하는 조선 청년에게 그런 호소를 하고
오는 것은 실연을 한 일본 남성에게 대한 반항이라는 것인가?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누웠다가 숨이 괴로워서 벌떡 일어나서
데크로 나왔다.
차 안의 전등은 아직 아니 나갔으나, 젖빛 같은 하늘이 허예져 가며,
인기척 없이 꼭꼭 닫은 촌가가 가끔가끔 눈앞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면,
동은 벌써 튼 모양이었다. 아침 바람이 너무도 세어서, 나는 무심코
외투깃을 올리며 머리를 식히고 섰다가, 그래도 견딜 수가 없어서
다시 들어와 자기 자리에 드러누웠다.
한 두어 시간이나 잤을지, 사람이 너무 붐비는 바람에 잠이 깨어서
눈을 뜨고 내다보니, 기차는 플랫폼에서 어슬렁어슬렁 기어나가는
모양. 나는 일어나기가 싫기에 지금 바꾸어 들어와 앉은 앞자리의
사람더러 예가 어디냐고 물어 보니까, 명고옥(名古屋)이라 한다.
“에? 인제야 나고야?”
나는 이같이 놀란 듯이 반문을 하고, 암만하여도 중도에서 하루 묵어
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채 결심도 못 하고 또 잠이 들어 버렸다.
한잠 늘어지게 자고 나서 보니, 기차는 아직도 기내지방(畿內地方)
어귀에서 헤매는 모양. 시간표를 들쳐 보니 경도에서 내리려면 아직도
세 시간, 신호(神戶)에서 묵어 간다면
다섯 시간 가량이나 있어야 할 터이다.
‘을라(乙羅)나 가서 볼까?’
내년 신학기에는 동경 음학 학교로 전학을 하겠다고 규칙서를 얻어
보내라고 한 을라의 부탁을 이때껏 월여나 되도록 답장도 아니 한 것을
생각하여 보았다. 그것은 나의 태만도 태만이거니와 만 일 년간이나
음신이 끊였었던 오늘날에 불쑥 편지를 하는 것도 이상하고,
또다시 서신을 왕복하는 것은 피차에 머릿살 아픈 일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만나면 어떤 얼굴로 볼꾸?’
창턱에 기대어 앉아서 방울방울 방울을 지어 올라가는 담배연기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가장 정숙한 듯이, 가장 부끄러운 듯이 꾸미는
을라의 팔초한 하얀 얼굴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요샌 히스테리가 좀 낫나? 병화하고는 어떻게 되었누?
그러나 내게 또 불쑥 규칙서를 얻어 보내란 핑계로 편지를 한 것을
보면, 어떠면 별일은 없이 흐지부지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별안간에, 이왕 고단해서 내릴 바에는
신호에서 내려서 을라를 찾아보려는 객기가 와락 나서, 또다시
시간표를 뒤적거리며 누웠었다.
도지개를 틀면서 그럭저럭 또 네 시간 동안을 멀미를 내고,
겨우 감방에서 풀려 나오듯이 삼등 찻간에서 해방이 되어 신호역두에
내려선 것은, 은빛같이 비치는 저녁해가 육갑산(六甲山) 산등성이에
걸리었을 때이었다. 큰 가방은 역에다가 맡겨 두고,
오글오글 끓는 정거장에서 빠져나와 한숨을 돌리니
사람이 살 것 같았다.
동무의 반연으로 중학교를 이 지방에서 마친 나는
을라를 만나는 것보다도 이 지방이 반갑기도 한 것이다.
전차에 올라탈까 하다가 저녁이나 먹고 나서 을라에게 찾아가리라
하고 원정통으로 향하였다. 작년 방학에 들렀을 때 놀던 생각을 하고,
A카페의 아래층으로 들어가서, 여기저기 옹기종기 앉았는 다른 손들을
피하여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두세 접시나 다 먹도록 작년에 보던,
두 팔을 옥여쥐고 아기족아기족 돌아다니던 그때의 그 계집애는
보이지 않았다. 차를 가지고 온 계집애더러 물어 보니까,
“왜요?”
하고 의미 있는 듯이 웃을 뿐이다.
“왜, 어딜 갔나? 그저 여기 있긴 있겠지?”
“흥! 언제 만나 보셨에요? 아세요?”
“글쎄 말이야!”
“벌써 극락 갔답니다!”
나는 다소 실망이라느니보다도 놀랐다. 작년 여름방학에, 올 적 갈 적
두 번이나 들른 것은 을라 때문도 있고, 고등상업에 있는 중학 동창과
노는 맛에 그랬지마는, 그 계집애가 끄는 힘이 더 많았던 것이다.
별일 있었던 것은 아니요, 그저 만나고 마시고 먹고 노닥거리는
재미로이었지마는 퍽 인상에 남았던 것이다.
“응? 무슨 병으로?”
“폭발탄 정사라는 파천황의 죽음을 하였답니다.”
하며 계집애는 깔깔 웃다가, 다른 손이 부르니까 뛰어 달아난다.
폭발탄 정사라는 말에 귀가 번쩍해서, 그 계집애가 다시 오기만
어느 때까지 기다려도 돌아본 체도 아니 하고 분주히 돌아다닌다.
기다리다 못하여 불러 가지고 셈을 하면서,
“어쩌다가 그랬어?”
하며 물어 보았으나, 내 얼굴만 말끄러미 쳐다보다가 알아보는 점이
있었던지 생글 웃으며,
“사람이 너무 좋아 그랬죠! 또 오세요. 이야기를 할게요.”
하고 바쁜 듯이 팔딱팔딱 신 소리를 내며 가버렸다.
‘사실, 그것은 알아 무얼 하나!’
나는 이렇게 혼자 웃으면서도 그 상냥하고 원만한 성격에
홀딱 반한 놈이, 사업에 실패나 하고 자살하려는 길에, 무리 정사를
하는 것은 일본에 얼마든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나는 정자 생각이 났다. 그러나 정자는 현대여성이다.
그런 어리보기는 아니다.
레스토랑에서 나온 나는 하여간 갈 데가 없으니 C음악학교로 향하였다.
실상은 완행이 하도 지리해서 내렸을 뿐이지 을라를 꼭 찾아보고
싶은 생각은 그다지 없었다.
시간은 아직 늦지 않았으나 밤은 들어 가는 것 같았다.
저녁 뒤의 연습인지 아래층 저 구석에서 은근하고도 화려하게 울리어
나오는 피아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기숙사 문간에 섰으려니까,
을라는 기별하러 들어간 여하인의 앞을 서서,
발을 벗은 채 통통거리며 이층에서 내려왔다.
“이게 웬일예요, 소식두 없이! 어서 올라오세요.”
인사할 말을 미리 생각하였던 사람처럼 이렇게 한마디 한 을라는
미소가 어린 그 옴폭한 눈으로 힐끗 나를 쳐다보고는 부끄럽다는 듯이
눈을 내리깔며 태연히 문설주에 기대어 섰다.
나는 빨간 끈이 달린 발 째진 짚신 위에 가벼이 얹어 놓은 하얀
조그만 발을 들여다보며,
구두끈을 풀고 올라서서 을라의 뒤를 따라 섰다.
“응접실은 추우니까 내 방으로 가시지요.”
을라는 이렇게 한마디 하고 아까 내려오던 층계를 지나서 끌고
들어가다가, 잠깐 섰으라고 하고 사감의 방인지 들어갔다.
방문을 열어 놓은 채 꿇어앉아서 무어라고 한참 재깔재깔하더니,
생글생글 웃으며 나와서 이층으로 나를 데리고 올라갔다.
“사내를 함부루 끌어들여도 상관없나요?”
나는 자리를 한구석으로 뚤뚤 말아서 밀어 놓은 것을 돌려다보며
이렇게 말을 붙였다.
“걱정 마세요. 그렇지만, 혹시 이따가 사감이 들어오더라도
서울서 오는 오빠라구 하세요.”
“그런 꾸어다박은 오빠 노릇은 어려운데…….”
이런 실없는 소리를 정색으로 하며,
을라가 권하는 대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래, 지금 조선 나가시는 길예요? 방학 때두 되긴 했지만.”
을라는 방 안에 늘어놓인 것을 부산히 치운다.
“송장을 치러 나가는지?
또 한번 사모 쓸 일이 있어 좋아서 나가는 셈인지……?”
하고 나는 코웃음을 쳐보였다.
“왜? 아씨가 앓으시는군? 그 안됐군요.”
하고 을라는 놀라는 소리로 인사를 하고 나서,
그 윤광 있는 쌍꺼풀진 눈귀를 처뜨리며,
“그래 그런 급한 길에 여기를 왜 내리셨에요?”
하며 좀 나무라는 어조다.
“당신두 만날 겸, 후보자두 선을 볼 겸…… 허허허.”
만나면 어떠한 태도로 대하게 될지 작년 일을 생각하면 어금니에\
무에 끼인 것같이 거북하고 근질근질한 것 같더니, 마주 앉고 보니
의외로 소탈하게 이런 실없는 소리도 나왔다.
“기가 막혀! 아씨가 운명도 하기 전에 선보러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예요? 그래 선을 보셨에요?”
“선을 보러 왔더니, 폭발탄 정사를 했다니 기가 막히지 않소!”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이 양반이 일년 동안에 이렇게두 변했을까!”
작년 여름 일을 생각하면 그렇게 수줍던 내가 이런 실없는 소리를
탕탕 하는 것이 을라의 눈에는 이상히 보였을 것이다.
“나두 이번 방학에는 나갔다가 들어오려는데, 같이 가셨더면!”
“심심한데 그거 좋지! 그러나 이 밤으루 준비되시겠소?”
“이 밤으룬 좀 어려운데…….”
을라는 곧 따라 나서고 싶은 듯이 눈에 영채가 돌며 생긋 웃다가,
“정말 병환이 급하지 않거든 내일 하루만 더 묵어 주시구려?”
하고 아양스럽고 의논성스럽게 조른다.
“무어 할 일이 있어야지. 모처럼 만나려던 사람은 정사를 해버렸구!
나도 정사라도 하겠다는 사람이나 있으면 묵을지 모르겠지만,
허허허…….”
“참 변한다 변한다 하니 인화 씨같이 변하신 양반이 어디 계세요.
아아, 참…….”
을라는 급작스레 무엇에 충격을 받은 듯이 얕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인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것을 직각한 나는,
얄밉기도 하고 일종의 모욕 같은 생각도 나서,
“왜 실연한 남자의 타락한 꼴을 보는 듯싶소?”
하고 나는 커다랗게 웃다가,
“나보다는 을라 씨야말로 참 변했구려.”
하며 비꼬아 보았다.
“무엇 땜에? 어디가 어때요?”
“세상물이 들어가느라구!
혹은 예술가로 대성하느라구 그런지는 모르지마는.”
“세속물도 들겠지만,
그렇다면 예술가로 대성하는 것과는 정반대 아닌가요?”
“그러게 말씀이죠!
연애도 예술적으로 청고(淸高)하게는 안 되는 것인지?”
“매우 로맨틱하시군!”
하고 을라는 냉소를 하다가,
“어쨌든 참 정말 모레쯤 나하구 같이 가세요. 같이 못 가시더래두
내일 오후부터는 자유니까 이야기할 것도 있고,
구경도 시켜 드릴게…….”
외로운 객지에서 단조하고 이성이 그립던 그때의 을라에게는,
나의 불시의 방문이 의외일 뿐 아니라 마음으로 반가웠던 모양이다.
“글쎄 그래두 좋지만,
작년과도 달라서 여기에는 인제는 친구가 없으니…….”
나는 을라를 위하여 이틀씩 묵기는 싫었다.
“아, 참, 내일은 어차피 대판 공회당 음악회에도 갈까 하는데요.
거기에라도 가시지.
내일은 학생들이 죄다 제 집에 가버릴 텐데…….”
을라가 왜 이렇게 지성껏 붙들려는지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언젠가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에 어떤 절간에 있을 제
일본 중놈하고라던지, 향기롭지 못한 소문이 퍼졌다는 말이
머리에 떠올라 와서 불쾌한 연상이 일어났다.
“그럼 내일 함께 떠나십시다그려……
한데 요새 병화군 소식 들으슈?”
나는 을라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다가 이렇게 말을 돌렸다.
“별루 소식 없에요. 내가 그 언니한테 편지를 하면 답장이 올 뿐이지.
사실은 이번에두 그 언니 답장을 기대리구 있는 판인데…….”
조금도 거리낌없는 이런 대답을 을라에게서 듣는 것은 좀 의외였다.
“왜? 학비라두 대어 오는 거요?”
저편이 노골적으로 수작을 붙이기에 나도 직통 대고 쏘아 보았다.
작년 여름에 만났을 때 그런 말눈치를 귓결에 들었기에 말이다.
“학비는 무슨 학비! 하두 꿀릴 때면 몇십 원씩 올 일년내 두세 번
꾸어다 쓴 일두 있구, 방학에 나갔다가 들어올 제 노잣냥 언니가
보태 주기에 받아 가지고 왔을 뿐이지! 인화 씨부터두 그런 데에
무슨 오해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 밖에야 오해받을 일이라군 손톱만큼도 없에요!”
이 말을 하는 을라는 분연한 어조이었다. 내가 오해하는 듯한 것이
불쾌하여 이 사품에 변명을 하려는 말눈치거니와, 이번도 나갈 노자를
변통해 달라고 편지를 해놓고 기다리는 모양 같다.
그 말을 듣고 보니 혹은 그럴지 모르겠고, 내일이면 방학이라는데
하루를 더 기다려서 같이 가자고 애걸을 하는 것도
노자 때문인 듯싶다. 그렇다면 조금 절약을 해서 서울까지
데려다주고도 싶으나, 병화와의 교제가 그뿐이거나 말거나, 이제는
그런 친절까지 보여 주고 싶지는 않다고 돌려 생각하고 말았다.
을라가 신호로 온 것이, 내가 신호에서 중학을 졸업하고 동경으로
간 뒤이기 때문에 작년 여름방학에 들렀을 때 만난 것이 처음이지마는,
을라의 이야기는 전부터 병화댁에게 들었던 것이다.
을라가 병화댁과의 한반 아래인 동창생이요, 둘이 여학교에서부터
친한 사이인 관계로 병화 집을 제 집같이 드나들고,
학비가 부족한 때면 편지질을 해서 취해 쓰는지도 모르겠으나,
작년 여름방학에 신호에서 만나서 놀다가 함께 서울로 나가서는
의외로 설면하여졌던 것이다. 그래도 처음에는 퍽 재미있게 지냈었다.
실상은 내가 너무 솔직했던 때문인지도 모르지마는 차차 눈치가
다른 것을 보고는 나는 일체 교제를 끊기로 결심하였던 것이다.
생각하면 내가 지나치게 신경과민한 지레짐작을 하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튼 오해이었거나 말거나, 지금 새삼스럽게 구의(舊誼)를
이어 보고자 여기 내린 것은 아니다. 다만 어째 내렸든지 간에
내린 바에는 을라를 안 만나고 간다는 것도 인사가 아니었다.
“어, 고단해서 어서 가서 누워야 하겠습니다.”
병화 이야기가 나오니까 피차에 흥이 빠지는 것 같아서
나는 일어서 버렸다.
“애써 내리셨다가 이렇게 섭섭하게 가셔서 어떻게 해요.
내일 아침에 못 떠나시거든 오정때까지 기다릴 테니 들러 주세요.”
을라는 문간까지 나오면서도, 나를 이대로 놓치는 것을 섭섭해하였다.
“무얼! 서울 가서 만나 뵙죠.”
구두를 신고 난 나는 정자나 카페 여자들에게 하던 버릇으로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을라는 얼굴이 살짝 발개지며
생긋 웃으며 주저주저하는 눈치더니 손을 내밀어 꼭 붙든다.
장난이 아니라 을라를 이성으로 생각한다느니보다도 보통 친구나 같은
뜻으로 악수를 청해 본 것이나, 그래도 컴컴한 거리로 나오도록
내 손바닥에는 여자의 따뜻한 살 김이 남아 있는 것을 깨달았다.
3
그날 밤은 역 앞의 조고만 여관에서 노독을 풀고,
이튿날 아침차로 떠나서 저녁에는 연락선을 타게 되었다.
하관(下關)에 도착하니, 방죽이 터져 나오듯 일시에 꾸역꾸역 쏟아져
나오는 시꺼먼 사람떼에 섞이어서 나는 연락선 대합실 앞까지 왔다.
어디를 가나, 그 머릿살 아픈 형사떼의 승강이를 받기가 싫어서
배로 바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배에는 아직 들이지 않기에,
나는 하는 수 없이 대합실로 들어갔다. 벤또나 살까 하고 매점 앞에
가서 섰으려니까 어느 틈에 벌써 알아차렸는지 인버네스를 입은
낯 서툰 친구가 와서 모자를 벗으며 끄덕 하고 국적이 어디냐고
묻는다. 나는 암말 아니 하고 한참 쳐다보다가,
명함을 꺼내서 주고 훌쩍 가게로 돌아서 버렸다.
“본적은?”
내 명함을 받아 들고 내가 흥정을 다 하기까지 기다리고 있던
인버네스는 또 괴롭게 군다. 나는 그래도 역시 잠자코 그 명함을 도로
빼앗아서 주소를 써서 주고는, 사놓았던 물건을 들고 짐 놓는 자리로
와서 앉았다. 그러나 궐자는 또 쫓아와서,
“나이는? 학교는? 무슨 일로? 어디까지…….”
하며 짓궂이 승강이를 부린다. 나는 실없이 화가 나서 그까짓 건 물어
무엇에 쓰려느냐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으나 꾹 참고 간단간단히
응대를 하여 주고 부리나케 짐을 들고 대합실 밖으로 나와 버렸다.
“미안합니다그려.”
하며 좀 비웃는 듯이 인사를 하는 궐자의 흘겨뜨는 눈은 부리부리하고
험상궂었으나, 내 뱃속에서도 제게 지지 않게 바지랑대 같은 것이
치밀어오르는 것을 참는 판이었다.
승객들은 북적거리며 배에 걸쳐 놓은 층층다리 앞에 일렬로 늘어섰다.
나도 틈을 비집고 그 속에 끼였다.
아스팔트 칠(漆)을 담았던 통에 썩은 생선을 담고 석탄산수를 뿌려서
절이는 듯한 고약한 악취에 구역질이 날 듯한 것을 참으며,
제각기 앞을 서려고 우당퉁탕대는 틈을 빠져서 겨우 삼등실로
들어갔다. 참외 원두막으로서는 너무도 몰풍경하고 더러운 침대
위에다가 짐을 얹어 놓고 옷을 갈아입은 뒤에 나는 우선 목욕탕으로
재빨리 뛰어갔다.
내가 제일착이려니 하였더니 벌써 사오 인의 욕객이
목욕탕 속에 들어앉아서 떠들어 댄다.
“오늘은 제법 까불릴걸!”
“뭘, 이게 해변가니까 그렇지, 그리 세찬 바람은 아니야.”
시골서 갓 잡아 올라오는 농군인 듯한 자가 온유하여 보이는
커다란 눈이 쉴새없이 디굴디굴하는 검고 우악한 상을
이사람 저사람에게로 돌리면서 말을 꺼내니까,
상인인지 회사원 같은 앞의 사람이 이렇게 대꾸를 하는 것이었다.
“조선은 지금쯤 꽤 출걸?”
“그렇지만 온돌이 있으니까, 방 안에만 들어엎디었으면 십상이지.”
조선 사정에 익은 듯한 상인 비슷한 위인이 받는다.
“응, 참 온돌이란 게 있다지.”
촌뜨기가 이렇게 말을 하니까, 나하고 마주 앉았는 자가
암상스러운 눈으로 그자를 말끔히 쳐다보더니,
“당신 처음이슈?”
하며 말참례를 하기 시작한다. 남을 멸시하고 위압하려는 듯한 어투며
뾰족한 조동아리가 물어 보지 않아도 빚놀이쟁이의 거간이거나
그 따위 종류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이 추위에 어째 나섰소? 어딜 가슈?”
“대구에 형님이 계신데 어머님이 편치 않으셔서 가는 길이죠.”
“마침 잘 되었소그려. 나도 대구까지 가는 길인데.
그래 백씨께서는 무얼 하슈?”
“헌병대에 계시죠.”
“네? 바로 대구분대에 계신가요? 네…… 그러면 실례입니다만,
백씨께서는 누구신지? 뭘로 계셔요?”
시골자의 형이 헌병대에 있다는 말에, 나하고 마주 앉은 자는 반색을
하면서 금시로 말씨가 달라진다. 나는 그자의 대추씨 같은 얼굴을
또 한번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네, 우리 형님은 아직 군조(軍曹)예요. 니시무라(西村) 군조,
혹 형공도 아시는지? 그런데 형공은 조선에 오래 계신가요?”
“녜, 난 십여 년래로 그저 내 집같이 드나드니까요.”
하고 궐자는 시골자를 한참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암, 대구 헌병대의 그 양반이야 알구말구요.
그 양반은 나를 모르실지 모르지만…….”
어째 그 말눈치가 안다는 것보다도 모른다는 말 같다.
“어쨌든 십 년이라면 한밑천 잡으셨겠구려.”
이번에는 상인 비슷한 자가 입을 벌렸다.
“웬걸요, 이젠 조선도 밝아져서 좀처럼 한밑천 잡기는 어렵지만.”
“그러나 조선 사람들은 어때요?”
“요보 말씀요? 젊은 놈들은 그래도 제법들이지마는,
촌에 들어가면 대만(臺灣)의 생번(生蕃)보다는 낫다면 나을까.
인제 가서 보슈…… 하하하.”
‘대만의 생번’이란 말에, 그 욕탕 속에 들어앉았던 사람들은
나만 빼놓고는 모두 껄껄 웃었다. 그러나 나는 기가 막혀 입술을
악물고 쳐다보았으나, 더운 김이 서리어서 궐자들에게는 분명히
보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욕객은 차차 꾸역꾸역 쏟아져 들어온다.
사실 말이지, 나는 그 소위 우국지사(憂國志士)는 아니나
자기가 망국(亡國) 백성이라는 것은 어느 때나 잊지 않고
있기는 하다. 학교나 하숙에서 지내는 데는 일본 사람과 오히려
서로 통사정을 하느니만치 좀 낫다. 그러나 그 외의 경우의 고통은
참을 수 없는 때가 많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망국 백성이 된 지 벌써 근 십 년 동안,
인제는 무관심하도록 주위가 관대하게 내버려두었었다.
도리어 소학교시대에는 일본 교사와 충돌을 하여 퇴학을 하고
조선 역사를 가르치는 사립학교로 전학을 한다는 둥, 솔직한
어린 마음에 애국심이 비교적 열렬하였지마는, 차차 지각이 나자마자
일본으로 건너간 뒤에는 간혹 심사 틀리는 일을 당하거나
일년에 한 번씩 귀국하는 길에 하관에서나 부산․경성에서
조사를 당하고, 성이 가시게 할 때에는 귀찮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지마는, 그때뿐이요, 그리 적개심이나 반항심을 일으킬 기회가
적었었다. 적개심이나 반항심이란 것은
압박과 학대에 정비례하는 것이나, 기실 그것은 민족적으로 활로를
얻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러나 칠 년이나 가까이 일본에 있는 동안에,
경찰관 이외에는 나에게 그다지 민족관념을 굳게 의식게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원래 정치 문제에 흥미가 없는 나는 그런 문제로
머리를 썩여 본 일이 거의 없었다 하여도 가할 만큼
정신이 마비되었었다. 그러나 요새로 와서 나의 신경은 점점 흥분하여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을 보면 적개심이라든지 반항심이라는 것은
보통 경우에 자동적, 이지적이라는 것보다는 피동적, 감정적으로
유발되는 것인 듯하다. 다시 말하면 일본 사람은 지나치는 말 한마디나
그 태도로 말미암아 조선 사람의 억제할 수 없는 반감을 끓어오르게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에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민족적
타락에서 스스로를 구하여야 하겠다는 자각을 주는
가장 긴요한 원동력이 될 뿐이다.
지금도 목욕탕 속에서 듣는 말마다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것이 없지마는,
그것은 될 수 있으면 많은 조선 사람이 듣고, 오랜 몽유병에서 깨어날
기회를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자아낼 뿐이다.
그들은 여전히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래 촌에 들어가면 위험하진 않은가요?”
조선에 처음 간다는 시골자가 또다시 입을 벌렸다.
“뭘요, 어딜 가든지 조금도 염려 없쇠다.
생번이라 하여도 요보는 온순한데다가 가는 곳마다 순사요 헌병인데
손 하나 꼼짝할 수 있나요. 그걸 보면 데라우치(寺內)상이
참 손아귀 힘도 세지만 인물은 인물이야!”
매우 감격한 모양이다.
“그래 촌에 들어가서 할 게 뭐예요?”
“할 것이야 많지요. 어딜 가기로 굶어죽을 염려는 없지만,
요새 돈 몰 것이 똑 하나 있지요.
자본 없이 힘 안 들고…… 하하하.”
표독한 위인이 충동이는 수작이다.
“그런 벌이가 어디 있어요?”
촌뜨기 선생은 그 큰 눈을 더 둥그렇게 뜨고
큰 기대와 호기심을 가지고 마주 쳐다보는 모양이다.
“왜요, 한번 해보시려우?”
그는 이렇게 한마디 충동이며, 무슨 의미나 있는 듯이 그 악독하여
보이는 얼굴에 교활한 웃음을 띠고 한참 마주 보다가,
“시골서 죽도록 땅이나 파먹다가 거꾸러지는 것보다는 편하고
재미있습넨다. 게다가 돈은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고.”
여전히 뱅글뱅글 웃으면서 이 순실한,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그대로 있는 듯한 촌뜨기를 꾄다.
“그런 선반에서 떨어지는 떡 같은 장사가 있으면 하다뿐이겠나요.”
촌뜨기는 차차 침이 괴어 오는 수작이다.
“그러나 밑천이 아주 안 드는 것은 아니지요.
우선 얼마 안 되지만 보증금을 들여놓아야 하고, 양복이나 한 벌
장만하여야 할 터이니까. 그러나 당신이야 형님이 헌병대에
계시다니까 신분은 염려 없을 테니 보증금은 없어도 좋겠지.”
제딴은 누구를 큰 직업이나 얻어 주는 듯싶이, 더구나 보증금은
특별히 면제하여 주겠다는 듯이 오만한 태도로 어깨를 뒤틀며
호기만장이다. 일편 촌뜨기는 양복신사가 돼야 하는 직업이라는 데에
속으로 헤에 하는 기색이다. 그러나 정작 그 직업의 종류가
무엇인가는 좀처럼 가르쳐 주지 않는다. 실상 곁에서 엿듣고 앉았는
나 역시 궁금하지만, 이러한 소리를 듣는 시골 궐자는 더한층 호기의
눈을 번쩍이며 앉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을 토설치 않는 것은
나와 그 외의 두세 사람이 들을까 꺼리어서 그리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는 그 시골뜨기가 좀더 몸이 달아 덤비며 자기의 부하가 되겠다는
다짐까지 받고서야 이야기하려는 수단 같기도 하다.
“그래 그런 훌륭한 직업이 무엇인데, 어디 있단 말요?”
이번에는 그 시골자의 동행인 듯한 사람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욕탕에서 시뻘겋게 단 몸뚱어리를 무거운 듯이 끌어내며 물었다.
그자도 물 속에서 불쑥 일어서서 수건을 등뒤로 넘겨서 가로잡고
문지르며 한번 목욕탕 속을 휘 돌아다보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네의
이야기에는 무심히 이구석 저구석에서 멱을 감는 것을 살펴본 뒤에,
안심한 듯이 비로소 목소리를 낮추며 입을 벌린다.
“실상은 누워 떡먹기지. 나두 이번에 가서 해오면 세 번째나
되오마는, 내지의 각 회사와 연락해 가지고 요보들을 붙들어
오는 것인데, 즉 조선 쿨리(苦力) 말씀요. 농촌 노동자를 빼내
오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은 대개 경상남북도나, 그렇지 않으면
함경, 강원, 그 다음에는 평안도에서 모집을 해오는 것인데,
그 중에도 경상남도가 제일 쉽습넨다, 하하하.”
그자는 여기 와서 말을 끊고 교활한 웃음을 웃어 버렸다.
나는 여기까지 듣고 깜짝 놀랐다. 그 불쌍한 조선 노동자들이 속아서
지상의 지옥 같은 일본 각지의 공장과 광산으로 몸이 팔리어
가는 것이, 모두 이런 도적놈 같은 협잡 부랑배의 술중(術中)에
빠져서 속아넘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다시 한번 그자의 상판때기를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옳지! 그래서 이자의 형이 헌병 군조라는 것을 듣고
이용할 작정으로 반색을 한 게로군!’
나는 이런 생각도 하여 보며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앉았었다.
궐자는 벙벙히 듣고 앉았는 그 두 사람의 얼굴을 이리저리 바라보고
빙긋 웃으며 또다시 말을 잇는다.
“왜 남선 지방에 응모자가 많고 북으로 갈수록 적은고 하니,
이 남쪽은 내지인이 제일 많이 들어가서 모든 세력을 잡았기 때문에,
북으로 쫓겨서 만주로 기어들어가거나 남으로 현해탄(玄海灘)을
건너서거나 두 가지 중에 한 가지 길밖에 없는데, 누구나
그늘보다는 양지가 좋으니까, 요보들 생각에도 일년 열두 달 죽도록
농사를 지어야 주린 배를 채우기는 고사하고 보릿고개〔麥嶺〕에는
시래기죽으로 부증이 나서 뒈질 지경인 바에야, 번화한 동경,
대판에 가서 흥청망청 살아 보겠다는 요량이거든.
그러니 촌의 젊은 애들은 말할 것도 없고 계집애들까지
나두 나두 하고 나서거든. 뭐 모집이야 쉽지!”
“흥…… 그럴 거야!”
“아직 북선 지방은 우리 내지인이 덜 들어갔기 때문에 비교적 편안히
사니까 응모자가 적지만,
그것도 미구불원에 쪽박을 차고 나설 거라, 허허허.”
이자는 자기 설명에 만족한 듯이 대단히 득의만면이다.
“그래 그렇게 모집을 해가면 얼마나 생기나요?”
촌뜨기는 구수하다는 듯이 침을 흘리며 듣는다.
“얼마가 뭐요. 여비가 있지, 일당이 또 있지, 게다가 한 사람
모집하는 데에 일 원서부터 이 원이니까―---그건 회사와
일의 종류에 따라서 다르지만, 가령 방적회사의 여직공 같은 것은
임금도 싼데다가 모집원의 수수료도 헐하고, 광부 같은 것은
지금 시세로도 일 원 오십 전으로 이 원 오십 전까지라우.
가령 천 명만 맡아 가지고 와서 보구려. 이삼 삭 동안 여비나
일당에서 남는 것은 그까짓 건 다 그만두고라도 일천오륙백 원,
근 이천 원은 간데없는 것일 게니, 그런 벌이가 이판에 어디 있소?
하하하. 나도 맨 처음에―---그건 제주도에서 모집하여 갔지만―---
그때에 오백 명 모아다 주고 실살고로 남긴 것이 천 원이었고,
둘째 번에는 올 가을 팔백 명이나 북해도 족미(足尾)탄광에 보내고
이천 원 돈이 들어왔다우.”
노동자 모집원이라는 자는 입의 침이 없이 천 원, 이천 원을
신이 나서 뇌며 목욕탕 속에서 나왔다.
“예에, 예에, 그럴 거예요!”
하며, 일평생에 들어 보지도 못하던 천(千)자가 붙은 돈액수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귀를 기울이고 앉았던 시골자는, 때를 다 밀었는지
그 장대한 구릿빛 나는 유착한 몸집을 벌떡 일으키어 다시 욕탕 속에
출렁 집어넣으면서 만족한 듯이 또다시 말을 붙이었다.
“그래 조선 농군들이 가서 그런 공사일을 잘들 하나요?”
“잘 하구 못 하는 것은 내가 아랑곳 있겠소마는, 하여간 요보는
말을 잘 듣고 쿨리만은 못해도 힘드는 일을 잘 하는데다가 삯전이
헐하니까 안성맞춤이지. 그야 처음 데려갈 때에는 품삯도 많고
일은 드러누워서 떡먹기라고 푹 삶아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갈
노자며 처자까지 데리고 가게 하고, 게다가 빚까지 갚아 주는데야
제아무런 놈이기로 아니 따라 나설 놈이 있겠소.
한번 따라 나서기만 하면야 전차(前借)가 있는데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지. 일이 고되거나 품이 헐하긴 고사하고 굶어 뒈진다기루
하는 수 있나, 하하하.”
벌써 부하가 되었다는 듯이 득의만면하여 모집방법의 비책까지 도도히
설명을 하여 주고 앉았다.
나는 좀더 들으려고 일부러 머뭇머뭇하며 앉았으려니까,
승객이 다 올라탔는지, 별안간에 욕객의 한 떼가 또 왁자하고
들이 밀려오기에 나는 그만 듣고 몸을 훔치기 시작하였다.
스물두셋쯤 된 책상도련님인 나로서는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생이 어떠하니, 인간성이 어떠하니,
사회가 어떠하니 하여야 다만 심심파적으로 하는 탁상의 공론에
불과한 것은 물론이다. 아버지나 조상의 덕택으로 글자나 얻어
배웠거나 소설권이나 들춰 보았다고, 인생이니 자연이니 시니 소설이니
한대야 결국은 배가 불러서 투정질하는 수작이요, 실인생, 실사회의
이면의 이면, 진상의 진상과는 얼마만한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
하고 보면 내가 지금 하는 것, 이로부터 하려는 일이 결국 무엇인가
하는 의문과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년 열두 달 죽도록
농사를 지어야 반년짝은 시래기로 목숨을 이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으니까…… 하는 말을 들을 제, 그것이 과연 사실일까 하는
의심이 날 만치 나의 귀가 번쩍하리만치 조선의 현실을 몰랐다.
나도 열 살 전까지는 부모의 고향인 충청도 촌 속에서 자라났고,
그 후에도 일년에 한두 번씩은 촌락에 발을 들여놓아 보았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소작인의 생활이 참혹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시를 짓는 것보다는 밭을 갈라고 한다. 그러나 밭을 가〔耕〕는
그것이 벌써 시가 아니냐. 사람은 흙에서 나와서 흙에 돌아간다.
흙의 향기로운 냄새에 취할 수 있는 자의 행복이여!
흙의 북돋아오르는 생기야말로 너 인간의 끊임없는 새 생명이니라.’
언젠가 이 따위의 산문시줄이나 쓰던, 자기의 공상과
값싼 로맨티시즘이 도리어 부끄러웠다. 흙의 냄새가 향기롭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그 향기에 취할 수 있는 자가 행복스럽지 않다는
것도 아니다. 조반 후의 낮잠은 위약(胃弱)이라는 고등 유민의
유행병에나 걸릴까 보아서 대팻밥 모자에 연경이나 쓰고,
아침저녁으로 호미자루를 잡는 것이 행복스럽지 않고 시적(詩的)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저러나, 일년 열두 달, 소나 말보다도
죽을 고역을 다 하고도 시래기죽에 얼굴이 붓는 것도 시일까?
그들이 삼복의 끓는 햇볕에 손등을 데면서 호미자루를 놀릴 때,
그들은 행복을 느끼는가? 그들은 흙의 노예다. 자기 자신의 생명의
노예다. 그들에게 있는 것은 다만 땀과 피뿐이다. 그리고 주림뿐이다.
그들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뛰어나오기 전에, 벌써 확정된 단 하나의
사실은 그들의 모공이 막히고 혈청이 마르기까지, 흙에 그 땀과 피를
쏟으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열 방울의 땀과 백 방울의 피는 한 톨의
나락을 기른다. 그러나 그 한 톨의 나락은 누구의 입으로 들어가는가?
그에게 지불되는 보수는 무엇인가―---주림만이 무엇보다도 확실한
그의 받을 품삯이다.
나는 몸을 다 훔치고 옷 입는 터전으로 나왔다.
나는 사람, 드는 사람, 한참 복작대는 틈에서 부리나케 양복바지를
꿰며 섰으려니까, 어떤 보지 못하던 친구가 문을 반쯤 열고
중절모자를 쓴 대가리를 불쑥 디밀며, 황당한 안색으로 방 안을 휘휘
둘러보더니,
“실례올시다만, 여기 이인화란 이가 계십니까?”
하고 묻는다.
“네에, 나요. 왜 그러우?”
나는 궐자의 앞으로 두어 발짝 나서며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궐자는 한참 찾아다니다가 겨우 만난 것이 반갑다는 듯이 빙글빙글
웃으며, 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서서 이리 좀 나오라고 명령하듯이
소리를 친다. 학생복에 망토를 두른 체격이며, 제딴은 유창하게
한답시는 일어의 어조가 묻지 않아도 조선 사람이 분명하다.
그래도 짓궂이 일어를 사용하고 도리어 자기의 본색이 탄로될까 보아
염려하는 듯한, 침착지 못한 행색이 나의 눈에는 더욱 수상쩍기도 하고
마음이 근질근질하기도 하였다. 나의 성명과 그 사람의 어조를 듣고,
우리가 조선 사람인 것을 짐작한 여러 일인의 시선은, 나에게서
그자에게, 그자에게서 나에게로 올지 갈지 하는 모양이었다.
말하자면 우리 두 사람은 일본 사람 앞에서 희극을 연작하는
앵무새 모양이었다.
“무슨 이야긴지 할 말 있건 예서 하구려.”
그래도 나는 기연가미연가하여 역시 일어로 대답하였다.
“하여간 이리 좀 나오슈.”
말씨가 벌써 그러한 종류의 위인인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
나는, 그 언사의 교만한 것이 첫째 귀에 거슬리어서
다소 불쾌한 어조로,
“그럼 문을 닫고 나가서 기다류.”
하며 소리를 지르고, 다시 내 자리로 와서 주섬주섬 옷을 마저 입기
시작하였다. 여러 사람의 경멸하는 듯한 시선은 여전히 내 얼굴에
어리는 것을 깨달았다. 더구나 아까 노동자를 모집할 의논을 하던
세 사람은, 힐끔힐끔 곁눈질을 하는 것이 분명하였으나, 나는 도리어
그 시선을 피하였다. 불쾌한 생각이 목구멍 밑까지 치밀어오는 것
같을 뿐 아니라, 어쩐지 기운이 줄고 어깨가 처지는 것 같았다.
옷을 다 입고 문 밖으로 나오니까, 궐자는 맞은편에 기대어 웅숭그리고
서서 기다리는 모양이다.
“미안합니다만, 나하고 짐을 가지고 저리 좀 나갑시다.”
뒤를 쫓아오면서 애원하듯이 말을 붙이는 양이,
아까와는 태도가 일변하였다.
“댁이 누구길래, 어딜 가잔 말요?”
“녜에, 참 나는 서(署)에서 왔는데 잠깐 파출소로 가십시다.”
자기의 직무도 명언하지 아니하고 덮어놓고 가자고 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듯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기가 일인 행세를 하는 것이
내심으로 부끄럽고, 또한 나에게
‘노형이 조선 사람이 아니오?’
하고, 탄로나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어서 앞이 굽는다는 듯이,
언사와 태도는 점점 풀이 죽고 공손하여졌다. 이것을 본 나는 도리어
불쌍하고 가엾은 생각이 나서, 층계를 느런히 서서 내려가다가,
궐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무 의미 없이 빙글빙글 웃는 그 얼굴에는
어색하여 하는 빛이 역력히 보였다.
나는 잠자코 자기 자리로 가서 순탄한 말로,
“나는 나갈 새도 없고 짐이라곤 이것밖에 없으니,
혼자 가지고 가서 조사할 게 있건 조사하고 갖다 주슈.”
하고 가방 두 개를 들어 내어 주었다.
“안 돼요, 그건. 입회를 해줘야 이걸 열죠.
그러지 마시고 잠깐만 나가 주세요. 이건 내가 들고 갈 테니.”
선실 안의 수백의 눈은 모두 나에게로 모여들었다.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리었다. 나는 얼굴이 화끈화끈하여
더 섰을 수가 없었다.
“내가 도적질이나 한 혐의가 있단 말이오? 가지고 가서 마음대로
하라는 데야 또 어쩌란 말이오. 정 그럴 테면 이리로 들어와서
조사를 하라고 하구려. 배는 떠나게 되었는데 나가자는 사람도
염치가 있지.”
나는 분이 치밀어 올라와서 이렇게 볼멘 소리를 질렀다.
“그러지 마시고 오늘 이 배로 꼭 떠나시게 할 테니, 제발 잠깐만
나가 주세요. 자꾸 시간만 갑니다. 여기선 창피하실까 봐
그러는 것 아닙니까?”
“창피하다? 흥, 창피? 얼마나 창피하면 예서 더 창피할꾸.
그런 사패 볼 것 없이 마음대로 하슈!”
홧김에 이렇게 소리는 질렀으나, 그 애걸하는 양이 밉살스런 중에도
가엾어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요, 어느 때까지 승강이만 하다가는
궐자 말마따나 이로울 것도 없고 시간만 바락바락 가겠기에 나가기로
결심하고 웃저고리를 집어 입고서, 어떻게 될지 사람의 일을 몰라서
아까 사가지고 들어온 벤또그릇까지 가지고, 가방을 들고 앞서 나가는
형사의 뒤를 따라 섰다. 형사가 큰 성공이나 한 듯이 득의만면하여,
“진작 그러시지요. 별일은 없을 거예요.”
하며 웃는 그 얼굴에는 달래는 듯하기도 하고 빈정대는 듯한 빛이
보였다. 나는 무심중에 주먹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깨달았다.
갑판으로 나와서 승강구까지 불러다가 조사를 하게 하라 하여
보았으나, 그것도 들어주지 않아서 화가 나는 것을 참고 결국
잔교(棧橋)로 내려섰다.
대합실 앞까지 오니까, 아까 내 명함을 빼앗아간 인버네스가 양복에
외투를 입은 또 한 사람과 무시무시하게 경계를 하고 섰다가,
우리를 보더니 아무 말 아니 하고 기선 화물을 집더미같이 쌓아 놓은
뒤로 앞서 들어갔다. 가방을 가진 자도 아무 말 아니 하고 따라 섰다.
나는 가슴이 선뜩하는 것을 참고, 아무 반항할 힘도 없이,
관에 들어가는 소처럼 뒤를 대어 섰다. 네 사람이 예정한 행동을
취하는 것처럼, 묵묵하고 침중한 가운데에 모든 행동을 경쾌하게
하는 것이, 마치 활동사진에서 보는 강도단이나 그것을 추격하는 탐정
같았다. 네 사람은 화물에 가리어 행인에게 보이지 않을 만한 곳에
와서 우뚝우뚝 섰다. 대합실의 유리창에서 흘러나오는 전광만은,
양복쟁이의 안경테에 소리 없이 반짝 비치었다.
“오늘 하루 예서 묵지 못하겠소.”
양복쟁이가 우선 입을 벌리며 가방을 빼앗아 든다. 좁은 골짜기에서
나직하게 내는 거세고도 굵은 목소리는 이 세상에서 들어 본 목소리
같지 않았다. 나는 얼빠진 놈 모양으로 아무 생각 없이 안경알이
하얗게 어룽어룽하는 그자의 두툼하고 둥근 상을 쳐다보며 섰었다.
그자도 나의 표정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입술을 악물고
위협하는 태도로 노려보다가 별안간에 은근한 어조로,
“하루 쉬어서 가시구려.”
하는 양이, 마치 정다운 진객을 만류하는 것 같았다.
무슨 죄가 있는 것은 아니나, 이같이 으슥한 골짜기에서 을러 보았다
달래 보았다 하는 것을 당하는 것은 나의 수명이 줄어들어 가는 것
같았다. 만일 내가 부호로서 이런 꼴을 당하였더면, 위불위없이
강도나 맞았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대답을
하려 하였으나, 참 정말 귓구멍이 막혀서 입을 벌릴 기운이 없었다.
“묵긴 어디서 묵으란 말이오? 유치장에나 가잔 말씀요?
이 배에 떠나게 한다는 약조를 하였기 때문에 나왔으니까
약조대로 합시다.”
이렇게 강경히 주장은 하면서도, 마음은 차차 두근거려지고 신경은
극도로 긴장하여졌다. 대체 나 같은 위인은 경찰서의 신세를 지기에는
너무도 평범하지만, 그래도 이 배만 놓치면 참 정말 유치장에서 욕을
볼 것은 뻔한 일, 하늘이 두 쪽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 배를
놓쳐서는 큰일이라고 결심을 단단히 하고서도 웬일인지 가슴은 여전히
두근두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 예서 잠깐 할까?”
양복쟁이가, 나와 인버네스를 반반씩 보며 저희끼리 의논을 한다.
나는 우선 마음을 놓았다.
“네, 그러지요.”
인버네스가 찬성을 하니까, 양복쟁이는 나에게로 향하여,
“이것 좀 열어 보아도 상관없겠소?”
하고 열쇠를 내라고 한다. 나는 급히 열쇠를 내어 주었다.
가방은 양복쟁이의 손에서 덜컥 열리었다.
어린아이 관(棺) 같은 긴 모양의 트렁크를 유리창 그림자가 환히
비치는 화물 쌓인 밑에다가 열어 놓고 들쑤시는 동안에, 그 옆에서
인버네스는 조그만 손가방을 조사하고 앉았다. 나는 이편에 느런히
섰는 학생복 입은 자와 함께 두 사람의 네 손길만 내려다보고 섰었다.
큰 트렁크를 맡은 자는 잠깐 쑤석쑤석하여 보더니, 그 위에 얹어 놓은
양복이며 화복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휙휙 집어서 내 옆에 선 형사에게
주섬주섬 던져 주고 나서, 그 밑에 깔리었던 서류뭉텅이와 서적
몇 권을 분주히 들척거리고 앉았다. 조그만 트렁크 속에서 소득이
없었던지 그대로 뚜껑을 닫아서 옆에 놓고 인버네스도 다시
큰 가방으로 달려들어서 들여다보고 앉았다가 양복쟁이의 분부대로
서적을 한 권씩 들어 보아 가며 일일이 책명을 수첩에 기입하며
앉았다. 가방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형사의 네 손은 일분 이분 시간이
갈수록 가속도로 움직인다. 나는 이놈들이 또 무슨 망령이나 부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의혹을 가지고 전광에 벌겋게 번쩍이는
양복쟁이의 곁뺨을 노려보고 섰었다.
여덟 눈과 네 손길은 앞에 뉘어 놓은 트렁크 한 개에 모든 정력을
집중하고, 일 분의 빈틈 없이 극도로 긴장하였으면서도 여덟 입술은
풀로 붙인 듯이, 아무도 입을 벌리려는 사람이 없었다.
절대 침묵이 한 간통쯤 되는 컴컴한 골짜기에 숨이 막힐 듯이 가득히
찼다. 비릿한 해기(海氣)를 품은 차디찬 저녁 바람이 귓가로 솔솔
지날 때마다 바삭바삭하는 종잇장 구기는 소리밖에 나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보다 큰 배에 짐 싣는 인부의 소리도, 잔교 밑에 와서
부딪는 출렁출렁하는 파도 소리도, 아마 이 네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무겁고 찌뿌드드한 침묵 속에 흐릿한 불빛에 싸여서
서고 앉고 하여 꾸물꾸물하는 양이, 마치 바다에 빠진 시체를
건져 놓고 검시(檢屍)나 하는 것같이 처량하고 비장하며 엄숙히
보였다. 그러나 일 분, 이 분, 삼 분, 오 분, 십 분……
시간이 갈수록 나의 머릿속은 귀와 반비례로 욱신욱신하여졌다.
그 세 사람들이 일부러 느럭느럭하는 것은 아니건마는 뺏어 가지고
내 손으로 하고 싶으리만치 초초하였다.
나는 참다못하여 시계를 꺼내 들고,
“이제 이 분밖에 안 남았소. 난 갈 테요.”
하고 재촉을 하였다. 그제야 양복쟁이는 눈에 불이 나게 놀리던 손을
쉬고 서류뭉텅이를 들어 뵈면서,
“이것만은 잠깐 내가 갖다가 보고,
댁으로 보내 드려도 관계없겠지요?”
하고 일어선다. 서두른 분수 보아서는 아무 소득이 없어 섭섭하고
열적으니, 서류뭉치나 뺏어 두자는 눈치 같다. 나는 두말없이
쾌락하였다. 사실 그 속에는 집에서 온 최근의 편지 몇 장과
소설 초고와 몇 가지 원고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애를 써서 기록한
서적이라야 원래 나에게는 사회주의라는 사자나 레닌이라는 레자는
물론이려니와, 독립이라는 독자도 없을 것은 나의 전공하는 학과만
보아도 알 것이었다. 아니, 설령 내가 볼셰비키에 관한 서적을 몇백 권
가졌거나 사회주의를 연구하거나, 그것은 학문의 연구라 물론
자유일 것이요, 비록 독립사상을 가진 나의 뇌 속을 X광선 같은
것으로나 심사법(心寫法)으로 알았다 할지라도, 행동이 없는 다음에야
조사하기로 소용이 무엇인가―---이러한 생각은 나중에 한 것이지만
그 당장에는 하여간 무사히 방면되어 배에 오르게 된 것만 다행히
여겨 궐자들과 같이 허둥지둥 행구를 수습하여 가지고 나섰다.
짐을 가볍게 하여 준 트렁크를 두 손에 들고, 어서 올라오라는 선원의
꾸지람을 들어 가며 겨우 갑판 위에 올라서자, 기를 쓰는 듯한 경적과
말울음〔馬嘶〕소리 같은 기적 소리가 나며 신경이 자릿자릿한
징〔鉦〕소리가 교향적으로 호젓이 암흑에 싸인 부두 일판에
처량하고도 요란하게 울리었다. 배는 소리 없이 미끄러져 벌써 두어
간통이나 잔교에서 떨어졌다. 전송하러 온 여관 하인들이며 인부들의
그림자가 쓸쓸한 벌판에 성기성기 차차 조그맣게 눈에 띄고
선창 위에서 휘두르며 가는 등불이 쓸쓸한 바람에 불리어
길어졌다 짧아졌다 한다.
나는 선실로 들어갈 생각도 없이 으스름한 갑판 위에 찬바람을 쐬어
가며 웅숭그리고 섰었다. 격심한 노역과 추위에 피곤하여 깊은 잠에
들어가는 항구는, 소리 없이 암흑 속에 누웠을 뿐이요, 전시의 안식을
지키는 야광주는 벌써부터 졸린 듯이 점점 불빛이 적어 가고
수효가 줄어 가면서 깜박깜박 졸고 있다. 나는 인간계를 떠나서
방랑의 몸이 된 자와 같이, 그 불빛의 낱낱이 어떠한 평화로운 가정의
대문을 지키고 있으려니 하는 생각을 할 제, 선뜩선뜩하게
반짝이는 별보다도 점점 멀리 흐려 가는 불빛이 따뜻이 보였다.
나의 머릿속은 단지 혼돈하였을 뿐이요, 눈은 화끈화끈 단다.
외투 포켓에다가 두 손을 찌르고 어느 때까지 우두커니 섰는 내 눈에는
어느덧 뜨끈뜨끈한 눈물이 비어져 나와서, 상기가 된 좌우 뺨으로
흘러내렸다. 찬바람에 산뜩산뜩 스며들어 가는 것을
나는 씻으려고도 아니 하고 여전히 섰었다.
4
사람이란 자기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한 사람에게 대할 때처럼,
자기의 지위나 처지라는 것을 명료히 의식할 때가 없는 모양이다.
동위동격자끼리는 경우가 같기 때문에 서로 공명(共鳴)하는 점도 많고
서로 동정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누가 잘난 체를 하고 누가 굽힐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우열이 현격하면 공명이나 동정이라는 것보다는
먼저 자기의 지위나 처지에 대한 의식이 앞을 서서, 한편에서는
거드름을 빼면 한편에서는 고개가 수그러지고, 저편이 등을 두드리는
수작을 하면 이편은 마음이 여린 사람일 지경 같으면 황송무지해서
긴한 체를 하여 보이기도 하고, 자존심이 굳센 자면 굴욕을 느끼어서
반감을 품을 것이요, 또 저편이 위압을 하려는 태도로 나오면 이편은
꿈질하여 납청장이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반항적 태도로
나오는 것이다. 사회조직이라든지 교육이라든지, 한층더 들어가서
사람의 심리가 근본적으로 잘 되어 그렇든지 못 되어 그렇든지
하여간 사람이란 그리하여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저편보다는 낫다, 한 손 접는다고 생각할 때에
느끼는 자랑과 기쁨이 자기를 행복게 하고 향상케 함보다는
저편보다 못하다, 감잡힌다고 생각할 제에 일어나는 굴욕과 분개가
주는 불행과 고통과 저상(沮喪)이 곱이나 큰 것이다.
더구나 자존심이 강한 사람에게 대하여는 보통사람보다도 열 곱, 스무
곱, 백 곱이나 큰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 우열감이 단순한 개인과
개인과의 관계를 벗어나서 집단적 배경이 있을 때에는 순전한
적대심으로 변하는 동시에, 좁고 깊게 사람의 마음속에 파고들어
앉아서 혹은 노골적으로 폭발되기도 하고
혹은 은근히 일종의 세력을 기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도 다행한 일은 자존심이 많고 의지가 강한 사람일수록
그 굴욕과 비분으로 말미암아 받는 바 불행과 고통과 저상이, 도리어
반동적으로 새로운 광명의 길로 향하여 용약게 하는 활력소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란 얼마나 강한지 의문이다.
약하기 때문에 잘난 체도 하여 보고, 약한 죄로 남을 미워도 하여
보고, 웃지 않을 때에 웃어도 보며, 울지 않아도 좋을 것을 울고야
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나 자신까지를 믿을 수가 없다.
되지 않게 감상적으로 생긴 나는 점점 바람이 세차 가는 갑판 위에서,
나오는 눈물을 억제하여 가며 가만히 섰다가, 목욕한 뒤의 몸이
발끝부터 차차 얼어 올라오는 것을 견디다 못하여 가방을 좌우쪽에
들고 다시 선실로 기어들어갔다. 아까 잡아 놓았던 자리는 물론
남에게 빼앗기고 들어가서 끼일 자리가 없었다. 나는 실없이 화가
나서 선원을 붙들어 가지고 겨우 한구석에 끼였으나, 어쩐지 좌우에
늘어 앉은 일본 사람이 경멸하는 눈으로 괴이쩍게 바라보는 것 같아서
불쾌하기 짝이 없다. 사가지고 다니던 벤또를 먹을까 하여 보았으나
신산하기도 하고 어쩐지 어깨가 처지는 것 같아서
외투를 뒤집어쓰고 누워 버렸다.
동경서 하관까지 올 동안을 일부러 일본 사람 행세를 하려는 것은
아니라도 또 애를 써서 조선 사람 행세를 할 필요도 없는 고로
그럭저럭 마음을 놓고 지낼 수가 있었지마는,
연락선에 들어오기만 하면 웬셈인지 공기가 험악하여지는 것 같고
어떠한 압력이 덜미를 잡는 것 같은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번처럼 휴대품까지 수색을 당하고 나니 불쾌한 기분이 한층
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을 감고 드러누워서도 분한 생각이
목줄띠까지 치밀어 올라와서 무심코 입살을 악물어 보았다.
그러나 사면을 돌아다보아야 분풀이를 할 데라고는 없다.
설혹 처지가 같고 경우가 같은 동행자를 만난다 하더라도 하소연을
할 수는 없다. 왜 그러냐 하면 여기는 배 속이니까 그렇다는 말이다.
나를 한손 접고 내려다보는 나보다 훨씬 나은 양반들이
타신 배 속이기 때문이다.
날이 새었다. 밝기가 무섭게 하나둘씩 부스스부스스 일어나 쿵쾅거리며
오르락내리락하는 바람에 나도 일어나서 소세를 하였다.
수백 명이나 되는 식구가 송사리 새끼 끼우듯이 끼여서 자고 난
판도방 같은 속이 지저분하기도 하고 고약한 냄새에 머릿골이 아파서
나는 치장을 차리고 갑판으로 나갔다. 훨씬 해가 돋지는 못하여서
물은 꺼멓게 보일 뿐이요 훤한 하늘에는 뽀얀 구름이 처져 있는 것이
희미하게 보이나, 아직도 컴컴스레하였다. 춥기는 하지만 그래도
상쾌하다. 선실 속에서는 벌써 아침밥이 시작되었는지 연해 밥통을
날라 들여가고,
갑판에 나왔던 사람들도 허둥지둥 뒤쫓아 들어가는 모양이다.
이 삼등실에 모인 인종들은 어디서 잡아온 것들인지 내남직할 것 없이
매사에 경쟁이다. 들어가는 것도 경쟁, 나오는 것도 경쟁,
자는 것도 경쟁, 먹는 것에 이르러서는 한층 더한 것이 예사다.
조금만 웬만하면 이등을 탔겠지마는 씀씀이가 과한 나로는 어느 때든지
지갑이 얄팍얄팍하여서도 못 타게 되고, 그 돈으로 차 한 잔이라도
사먹겠다는 타산도 없지 않아서, 대개는 이 무료숙박소 같은 데에서
밤을 새는 것이다. 하여간 차림차림으로 보든지 하는 짓으로 보든지
말씨로 보든지 하층사회의 아귀당들이 채를 잡았고, 간혹 하층관리
부스러기가 끼여 있을 따름이다. 나는 그들을 볼 제 누구에게든지
극단으로 경원주의를 표하고 근접을 안 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나 자신보다는 몇 층 우월하다는 일본 사람이라는 의식으로만이
아니다. 단순한 노동자라거나 무산자라고만 생각할 때에도 잇샅을
어우르기가 싫다. 덕의적(德義的) 이론으로나 서적으로는
무산계급이라는 것처럼 우리 친구가 되고 우리 편이 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에 그들과 마주 딱 대하면 어쩐지 얼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다. 혹은 그들에게 대한 혐오가 심하여지면 심하여질수록,
그 원인이 그들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논법으로,
더욱더욱 그들을 위하여 일을 하여야 하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지는
모르나, 감정상으로 그들과 융합할 길이 없다는 것은
아마 엄연한 사실일 것 같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어제 저녁도 궐하였기 때문에 시장한 증이
나서 선실로 기어들어갔다. 한차례 치르고 난 식탁 앞에 우글우글하는
사람떼가 꺼멓게 모여 서서 무엇인지 말다툼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 갖다 놓기 전에 와서 앉으면 어떻단 말이야?”
신경질로 생긴 바짝 마른 상에 독기를 품고 빽빽 소리를 지르는 것은,
윗수염이 까무잡잡하게 난 키가 조그만 사람이다.
그리 상스럽지 않은 얼굴로 보아서
어쩌면 외동다리 금테(판임관)쯤은 되어 보인다.
“글쎄 그래두 아니 되어요. 차례가 있으니까,
지금부터 앉았어도 안 드려요.”
검정 학생복을 입은 선원은 골을 올리려는 듯이 순탄한 어조로
번죽번죽 대꾸를 하고 섰다.
“우리로 말하면 이 배의 손님이지?
그래 손님을 그 따위로 대접하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이야……?
대관절 우리를 요보루 알고 하는 수작이란 말야?”
애꿎은 요보를 들추어 낸다.
“누가 대접을 어떻게 했단 말예요.
밥상은 차려 놓거든 와서 자시라는 게 무에 틀렸단 말씀유?”
“급하니까 얼른 가져오라는 게 어째서 잘못이란 말이야?
조선에서만 볼 일이지마는, 그래 자네들은 어쨌다구
호기를 부리는 거야?”
까만 수염을 가진 자의 어기가 차차 줄어 가는 것을 보고 섰던
구경꾼 속에서는 불길을 돋우려는 듯이,
“뚜들겨 주어라. 되지 않게 관리 행세를 하려구, 건방지게!”
“참 건방진 놈이다!”
“되지 않은 놈이 하급 선원쯤 되어 가지고 관리 행세는,
마뜩지 않게! 흥!”
이런 소리가 여기저기서 떠들썩한다. 관리면 으레히 그렇게 하여도
관계없고 또 자기네들도 불복이 없겠다는 말눈치다.
“도시 조선의 철도가 관영(官營)이기 때문에 저런 것까지 제가 젠척을
하는 거야. 사영(私營) 같으면야 꿈쩍이나 할 텐가.”
누구인지 일리 있는 듯한 이런 소리를 분연히 하는 강개가도 있다.
여러 사람이 왁자히 떠드는 바람에 선원도 입을 답치고 슬슬 빠져
달아나가니 싸움은 실미지근히 흐지부지되고, 그 자리에 모였던
사람은 그대로 식탁에 부산히들 들어앉았다.
나는 그 싸우는 양이 다라워 보이기도 하고 마음에 께름하여 다시
바깥으로 나가려다가 그래도 고픈 배를 참을 수가 없어서
누가 권하는 것은 아니지마는 마지못해 먹는 것처럼 제출물에
쭈뼛쭈뼛하여 한구석에 끼여 앉아 먹기를 시작하였다.
‘먹는 데 더러우니 구구하니 아귀들이니 하여도
배가 고프면 하는 수 없는 거다.’
젓가락을 짓고 물을 마시며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고
혼자 뱃속으로 웃었다.
선실 속에서는 쌈싸우듯 하여 가며 겨우 아침밥들을 먹고 와서는
이구석 저구석에서 짐들을 꾸리는 빛에, 악다구니를 하여 가며 간신히
얻어먹은 밥을 다시 꿱꿱 하며 도르는 빛에, 또 한참 야단이다.
나도 밥을 먹고 나니까 어쩐지 메슥메슥한 증이 나서
자기 자리로 가서 누웠었다.
육지가 차차 가까워 오는지 배가 그리 흔들리지도 않고 선객의
절반쯤은 벌써부터 갑판으로 나갔다. 나도 짐을 꾸려 가지고 나갔다.
의외에 퍽 가까워진 모양이다. 선원들은 오르락내리락 갈팡질팡하며
상륙할 준비에 분주하고, 경적은 쉴새없이 처량하고 우렁찬 소리를
아침 바람에 날린다. 삼등 승객들은 일, 이등과 격리를 시키려고
인줄같이 막아 맨 밑에 우글우글 모여 서서 제각기 앞장을 서려고
또 한참 법석이다.
그래야 일, 이등의 귀객들이 다 나간 뒤라야 풀릴 것을.
배는 부산 선창에 와서 닿았다.
“영치기 영차, 영치기 영차…….”
닻줄을 낚는 인부들 틈에서 누렇게 더러운 흰 바지저고리를 입은 조선
노동자가 눈에 띌 제, 나는 그래도 반가운 것 같기도 하고 인제는
제 집에 돌아왔다는 안심으로 마음이 턱 놓이는 것 같기도 하였다.
배에서 끌어내린 층층다리가 선창 위에 걸리니까, 앞장을 서서
올라오는 것은 흰 테를 두른 벙거지를 쓰고 외투를 입은 순사보와
육혈포 줄을 어깨에 늘인 일본 순사하고, 누런 복장에 역시 육혈포의
검은 줄을 늘인 헌병들이다. 그리고 올라오는 길로 배에서 내려서는
어귀에 좌우로 지키고 서고, 그 다음에는 이쪽저쪽으로 승객이 지나쳐
나가는 길의 중간에도 지키고 섰다. 이렇게 경관과 헌병이 소정한
자리에 서니까, 그제서야 일, 이등 승객이 하나둘씩 풀리기
시작하였다. 교통차단을 당한 우리들 삼등객은 배 속에 갇힌
포로 모양으로 매우 부러운 듯이 모든 광경을 바라만 보고 섰었다.
“삼 원이로군! 삼 원만 더 냈더면 한번 호강해 보는 걸!”
이런 소리가 복작대는 속에서 들린다. 삼 원만 더 내면 이등을
타는 것이다. 이번에는 우리들의 차례가 되었다.
나는 한중턱에서 천천히 걸어나갔다. 무슨 죄나 진 듯이 층계에서
한 발을 내려 디딜 때에는 뒤에서 외투자락을 잡아다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열 발자국을 못 떼어 놓아서 층계의 맨 끝에는 골독히 위만
쳐다보고 섰는 네 눈이 있다. 그것은 육혈포도 차례에 못 간 순사보와
헌병보조원의 눈이다. 그 사람들은 물론 조선 사람이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태연히 그들에게는 눈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확실한 발자취로 최후의 층계를 내려섰다. 될 수 있으면 일본 사람으로
보아 달라고 속으로 빌면서. 유학생으로, 조선 사람으로 알면 붙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그 태연한 태도라는 것은 도수장에 들어가는
소의 발자취와 같은 태연이었다.
“여보, 여보!”
물론 일본말로다.
나는 나의 귀를 의심하였다.
으레 한번은 시달리려니 하는 겁을 집어먹었기 때문에 헛소리를
들은 듯싶었다. 나는 모르는 체하고 두서너 발자국 떼어 놓았다.
하니까 이번에는 좌우편에 쭉 늘어섰던 사람 틈에서, 일복(日服)에
인버네스를 입은 친구가 우그려 쓴 방한모 밑에서 이상하게 번쩍이는
눈을 무섭게 뜨고 앞을 탁 막는다.
나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쭈르륵 흘렀다.
“저리 잠깐 갑시다.”
인버네스는 위협하듯이 한마디 하고 파출소가 있는 방향으로
나를 끈다. 나는 잠자코 따라 섰다. 멋도 모르는 지게꾼은 발에
채이도록 성화가 나서 ‘나리, 나리’ 하며 쫓아온다.
그 소리에는 추위에 떠는 듯도 하고, 돈 한푼 달라고 애걸하는 것같이
스러져 가는 애조가 섞여 있었다.
나는 고개만 흔들면서 가다가 파출소로 끌려 들어갔다.
파출소에 들어선 나는 하관에서 조사를 당할 때와는 다른 일종의
막연한 공포와 불안에 말이 어눌하여졌다. 더구나 일본서 그런 종류의
사람들에게 대하듯이 퉁명을 부릴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라
와서 제풀에 자기를 위압하는 자기의 비겁을 속으로 웃으면서도,
어쩐지 말씨도 자연 곱살스러워지고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지는 것을
깨달았다.
형사의 심문은 판에 박은 듯이 의외에 간단하였다.
나중에 가방에는 무엇이 들어 있느냐 하기에, 나는 하관에서
빼앗길 것은 다 빼앗겼으니까 볼 만한 것은 없겠지만,
그래도 미심쩍거든 열어 보라고 열쇠를 꺼내서 주려고 하였다.
아무리 형사라도 사람이란 우스운 것이다. 열쇠까지 내어 주니까
웃으면서 그만두라고 하며, 생색이나 내는 듯이 어서 나가라고 쾌쾌히
내쫓는다. 아마 하관서 온 형사에게 벌써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양 같았다. 나는 겨우 마음이 놓여서 한숨을 휘 쉬고 나와서,
우선 짐을 지게꾼에게 들려 가지고,
정거장으로 가서 급히 맡겨 놓고 혼자 나섰다.
5
현대적 생활을 영위할 수단 방도도 없고 생산화식(生産貨殖)에
어둡거든,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생활철학에나 철저하다든지,
이도 저도 아닌 비승비속으로 엉거주춤하고 살아온 가난뱅이의
이 민족이, 그 알뜰한 살림이나마 다 내놓고 협포로 물러앉고 나니
열 손가락을 늘이고 앉아서 팔아라, 먹자! 하고 있는 대로
깝살리는 것이 능사라, 그러나 팔고 깝살리는 것도 한이 있지
화수분으로 무작정하고 나올 듯싶은가! 그렇거나 말거나 이 따위
백성을 휘둘러 내고 휩쓸어 내기야 누워서 떡먹기다. 그래도 속임수에
빠진 노름꾼은 깝살릴 대로 깝살리고 두 손 털고 나서면서도
몸은 달건마는,
이 백성은 다 털리고 나서도 몸이 달긴커녕 고작 한다는 소리가,
“그저 굶어죽으라는 세상야.”
하는 한마디에 지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이 구차한 놈이 책상물림으로
세상물정은 모르고, 게다가 유혹은 많은데 안고수비(眼高手卑)하니
씀씀이는 남에 지지 않것다, 뒤주 밑이 긁히면 밥맛이 더 난다는
셈으로 없는 놈이 대돈변을 내서라도 돈푼 만져 보면 조상대부터
걸려 보지 못하던 것이나 얻은 듯이 전후 불각하고 쓸 데 안 쓸 데
함부로 써버려야지, 한푼이라도 까불리지를 못하고 몸에 지녀 두면
병이 되는 것이 구차한 놈의 버릇이다. 구차하기 때문에 이러한
얌전한 버릇이 생긴 것인지, 이 따위로 버릇이 얌전하여 구차한
것인지는 별문제로 치고라도, 어떻든 자기도 모르는 중에 흐지부지
까불리고 나서 안타까워하는 것이
구차한 놈의 갸륵한 팔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팔자가 좋고 그른 것은 제이 문제로 하고,
하여간 조선 사람의 팔자를 아무리 비싸게 따져 본대야 이보다
더 나을 것도 없고 더 신기할 것도 없다.
우선 부산이란 데로만 보아도, 부산이라 하면 조선의 항구로는
첫손 꼽을 데요 조선의 중요한 첫 문호라는 것은 소학교에 한 달만
다녀도 알 것이다. 그러니만치 부산만 와봐도 조선을 알 만하다.
조선을 축사(縮寫)한 것, 조선을 상징한 것이 부산이다.
외국의 유람객이 조선을 보고자거든 우선 부산에만 끌고 가서 구경을
시켜 주면 그만일 것이다. 나는 이번에 비로소 부산의 거리를 들어가
보고 새삼스럽게 놀랐고 조선의 현실을 본 듯싶었다.
나는 배 속에서 아침을 먹었건마는, 출출한 듯하기도 하고,
차 시간까지는 서너 시간 남았고, 늘 지나다니는 데건마는 이때껏
시가에 들어가서 구경하여 본 일이 없기에,
조선 거리로 들어가 보기로 하고 나섰다.
부두를 뒤에 두고 서편으로 꼽들어서 전찻길을 끼고 큰길을 암만 가야
좌우편에 이층집이 쭉 늘어섰을 뿐이요, 조선 사람의 집이라고는
하나도 눈에 띄는 것이 없다. 얼마도 채 못 가서 전찻길은 북으로
꼽들이게 되고 맞은편에는 극장인지 활동사진인지 울그데불그데한
그림 조각이며 깃발이 보일 뿐이다. 삼거리에 서서 한참 사면팔방을
돌아다보다 못하여 지나가는 지게꾼더러 조선 사람의 동리를 물어
보았다. 지게꾼은 한참 망설이며 생각을 하더니 남쪽으로 뚫린
해변으로 나가는 길을 가리키면서 그리 들어가면 몇 집 있다 한다.
나는 가리키는 대로 발길을 돌렸다. 비릿하기도 하고 고릿하기도 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해산물 창고가 드문드문 늘어선 샛골짜기를 빠져서
이리저리 휘더듬어 들어가니까, 바닷가로 빠지는 지저분하고 좁다란
골목이 나타났다. 함부로 세운 허술한 일본식 이층집이 좌우로
오륙 채씩 늘어섰는 것이 조선 사람의 집 같지는 않으나 이문 저문에서
들락날락하는 사람은 조선 사람이다. 이집 저집 기웃기웃하며
빠져나가려니까, 어떤 이층에는 장고를 세워 놓은 것이 유리창으로
비치어 보인다. 그러나 문간에는 대개 여인숙이라는 패를 붙였다.
잠깐 보기에도 이런 항구에 흔히 있는 그러한 너저분한 영업을
하는 데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침결이 돼서 그런지 계집이라고는
씨알머리도 눈에 아니 띈다.
쓸쓸한 거리를 이리저리 돌다가 그 여인숙이란 데를 한 집 들어가 보고
싶은 호기심이 불쑥 났으나, 찻시간이 무서워서 발길을 돌렸다.
다시 큰길로 빠져나와서 정거장으로 향하다가, 그래도
상밥 파는 데라도 있으려니 하고 이골목 저골목 닥치는 대로 들어가
보았다. 서울 음식같이 간도 맞지 않을 것이요 먹음직할 것도
없겠지마는, 무엇보다도 김치가 먹고 싶고 숟가락질이 하여 보고
싶어서 찾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 사람 집 같은 것은 그림자도
보이지를 않는다. 간혹 납작한 조선 가옥이 눈에 띄기에
가까이 가서 보면 화방을 헐고 일본식 창틀을 박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우스운 것은 얼마 되지도 않는 좁다란 시가이지마는
큰 길이고 좁은 길이고 거리에 나다니는 사람의 수효로 보면
확실히 조선 사람이 반수 이상인 것이다.
‘대체 이 사람들이 밤이 되면 어디로 기어들어가누?’
하는 생각을 할 제, 큰 의문이 생기는 동시에 그 불쌍한 흰옷 입은
백성의 운명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몇백천 년 동안 그들의 조상이 근기 있는 노력으로 조금씩 조금씩
다져 놓은 이 땅을 다른 사람의 손에 내던지고 시외로 쫓겨 나가거나
촌으로 기어들어갈 제, 자기 혼자만 떠나가는 것 같고,
자기 혼자만 촌으로 기어가는 것 같았을 것이다.
땅마지기나 있던 것을 까불려 버리고, 집 한 채 지녔던 것이나마
문서가 이사람 저사람의 손으로 넘어 다니다가 변리에 변리를 쳐서
내놓고 나가게 될 때라도 사람이 살려면 이런 꼴도 보고 저런 꼴도
보는 것이지 하며, 이것도 내 팔자소관이라는 값싼 낙천주의나
단념으로 대대로 지켜 내려오던 제 고향의 제 집, 제 땅을 버리고
문 밖으로 나가고 산으로 기어들 뿐이요, 이것이 어떠한 세력에 밀리기
때문이거나 혹은 자기가 착실치 못하거나 자제력과 인내력이 없어서
깝살리고 만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천 가구면 천 가구에서 한 집쯤 줄었어야, 다만
‘아무개네는 이번에 아무 데로 이사를 간다네’ 하고 그야말로
동릿집 이야기삼아 저녁밥 후의 인사 대신으로 주고받을 뿐이요,
어떠한 사정이 어떻게 되어서 한 가구가 주는지 그 내막이야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천 가구에서 한 가구쯤 줄어진대야
남은 구백구십구 가구에게는 별로 영향이 없을 것이요,
또 한 가구가 줄었는지 늘었는지조차 전연 모르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한 집 줄고 두 집 줄며,
열 집이 바뀌고 백 집이 바뀌어 쓰러져 가는 집은 헐리고 어느 틈에
새 집이 서고, 단층집은 이층으로 변하며,
온돌이 다다미〔疊〕가 되고 석유불이 전등불이 된 것이었다.
“아무개 집이 이번에 도로로 들어간다데.”
하며 곰방담뱃대에 엽초를 다져 넣고 뻑뻑 빨아 가며 소견삼아
숙덕거리다가, 자고 나면 벌써 곡괭이질 부삽질에 며칠 동안
어수선하다가 전차가 놓이고, 자동차가 진흙덩어리를 튀기며
뿡뿡거리고 달아나가고, 딸꾹 나막신 소리가 날마다 늘어 가고,
우편국이 들어와 앉고, 군아가 헐리고 헌병주재소가 들어와 앉는다.
주막이니 술집이니 하는 것이 파리채를 날리는 동안에
어느덧 한구석에 유곽이 생기어 사미센 (三味線) 소리가 찌링찌링
난다. 매독이니 임질이니 하는 새 손님을 맞아들인 촌서방님네들이,
병원이 없어 불편하다고 짜증을 내면 너무 늦어 미안하였습니다는 듯이
체면 차릴 줄 아는 사기사가 대령을 한다. 세상이 편리하게 되었다.
“우리 고을엔 전등도 달게 되고 전차도 개통되었네.
구경 오게. 얌전한 요릿집도 두서넛 생겼네.
자네 왜갈보 구경했나? 한번 보여 줌세.”
몇천 년 몇백 년 동안 가문에 없고 족보에 없던 일이 생기었다.
있는 대로 까불릴 시절이 돌아왔다. 편리해 좋아, 놀기가 좋아서
편해하며 한섬지기 파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우리겐 인젠 이층집도 꽤 늘고 양옥도 몇 채 생겼다네.
아닌게아니라 여름엔 다다미가 편리해. 위생에도 매우 좋은 거야.”
하고 두섬지기 깝살릴 수밖에 없게 된다.
누구의 이층이요 누구를 위한 위생이냐.
양복쟁이가 문전 야료를 하고, 요리장수가 고소를 한다고 위협을 하고,
전등값에 졸리고, 신문대금이 두달 석달 밀리고,
담배가 있어야 친구 방문을 하지. 원 찻삯이 있어야 출입을 하지 하며
눈살을 찌푸리는 동안에 집문서는 식산은행의 금고로 돌아 들어가서
새 임자를 만난다. 그리하여 또 백 가구 줄어지고
또 이백 가구 줄었다.
“어디 살 수가 있어야지. 암만해두 촌살림이 좋아!
땅이라두 파먹는 게 안전해.”
하며 쫓겨 나가고 새로 들어오며 시가가 나날이 번화하여 가는 동안에
천 가구의 최후의 한 가구까지 쓸려 나가고야 말지만,
천째 집이 쫓겨 나갈 때에는 벌써 첫째로 나간 사람은 오동잎사귀의
무늬를 박은 목배(木杯)를 고리짝에 넣어 가지고 압록강을 건너가
앉아서 먼 길의 노독을 배갈 한잔에 풀고
얼쩍하여 화푸념만 하고 있는 것이다.
까불리는 백성, 그들은 부지깽이 하나 남기지 않고 들어 내고
집어 낼 때에 자기가 이 거리에서 쫓겨 나갈 줄이야 몰랐으렷다.
구차한 놈이 주머니를 털 적에 내일부터 밥을 굶을지 거리에 나앉을지
저도 모르게 최후의 일 원까지를 말리듯이. 그러나 이 시가의 주인인
주민이 하나씩 둘씩 시름시름 쫓겨 나갈 제,
오늘날 씨알머리도 남지 않고 아주 딴판의 새 주인이 독점을
하리라는 것은 한 사람도 꿈에도 정신을 차리고 생각지는
못하였으렷다. 역시 구차한 놈의 주머니가 털리듯이 부지불식간에
그럭저럭 흐지부지 자취를 감추고 만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여 볼 제, 잗단 세간 나부랭이를 꾸려 가지고 북으로
북으로 기어나가는 ‘패자의 떼’의 쓸쓸한 뒷모양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나는, 그리 늦을 것은 없으나 쓸쓸한 찬바람이 도는 큰길을
헤매기가 싫어서 단념하고 돌아서는 길에, 어떤 일본 국숫집 문간에서
젊은 계집이 아침 소제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별안간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이 나서 우뚝 섰다. 이때까지 혼자 분개하고 혼자 저주하던
생각은 감쪽같이 스러지고, 눈에 보이는 것은 걷어 올린 옷자락 밑에
늘어진 빨간 고시마기(무지기)하고
그 아래로 하얗게 나타난 추울 듯한 토실토실한 종아리다.
“어서 오세요.”
모가지에만 분때가 허옇게 더께가 앉은 감숭한 상을 쳐들며
언제 본 사람이라고 나를 반갑게 맞는다. 뒤를 이어서,
“어서 오십쇼, 들어옵쇼.”
하고 줄레줄레 나와서 맞아들이는 계집애가 서넛은 되었다.
이러한 조그마한 집에 젊은 계집이 네다섯씩이나 있는 것은
물어 보지 않아도 알조다. 나는 걸려드나 보다 하는 불안이 있으면서도
더러운 호기심을 가지고 구경삼아 이층으로 올라가서, 인도하는 대로
너저분한 다다미방에 들어앉았다. 우선 간단한 음식을 시키고
앉았으려니까, 다른 계집애가 부삽에 화롯불을 담아 가지고 바꾸어
들어왔다. 화로에 불을 쏟아 놓고 화젓가락으로 재를 그러모으며
앉았던 계집애는 젓가락을 든 손을 잠깐 쉬며,
“어디까지 가세요.”
하고 나를 쳐다본다. 넓은 양미간이 얼크러져서 음침하기도 하고
이맛전이 유난히 넓기 때문에 여무져 보이지는 않으나,
그래도 해끄무레한 이쁘장스런 상판이다.
“서울까지…… 너는 어디서 왔니?”
“서울까지예요? 참 서울 구경을 좀 했으면…… 여기보다 좋겠죠?”
묻는 말에는 대답을 아니 하고 이런 소리를 한다.
“그리 좋을 것은 없어도 여기보다는 좀 낫지.”
우리의 수작은 음식이 나오는 바람에 허리가 잘리고 말았다.
나는 몸이 녹으라고 술을 몇 잔이나 폭배를 하고 나서,
계집애들에게도 권하였더니 별로 사양들도 아니 하고 돌려 가며 잔을
주고받았다. 이번에는 다른 계집애가 갈아 들어오는 술병을 들고
들어왔다. 이 계집애도 판을 차리고 화로 앞에 앉는다.
이쁘든 밉든 세 계집애를 앞에다가 놓고 앉아서 술을 먹는 것은
그리 싫을 것은 없지만, 너무 염치가 없이 무례하고 뻔뻔하게
구는 데에는 밉살맞고 불유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술 한잔이라도 얻어 걸린다는 것보다는 주인에게 한 병이라도 더
팔게 하여 주는 것이 저의 공로요, 주인의 따뜻한 웃는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니 그도 그럴 것이나, 내가 조선 사람이기 때문에 한층 더
마음을 놓고 더욱이 체면도 아니 차리고 저희 마음대로 휘두르며,
서넛씩 몰켜 들어와서 바가지를 씌우려고 판을 차리는 것이
못마땅하였다. 그래도 그 중에 화롯불을 가져온 계집애만은
저희들 축에서 좀 쫄려 지내는지 한풀이 죽어서 떠드는 꼴만 웃으며
가만히 바라보고 앉았다.
“담바구야, 담바구야,
동래(東萊)나 우루산〔蔚山〕의 담바구야…….”
“잘 하는구먼. 그러나 너희들은 몇 해나 되었니? 여기 온 지가.”
한 년이 담바고타령의 입내를 우습게 내며 콧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으며 물었다. 이것이 조선에 와 있는 일본 사람에게는 남녀를
물론하고 누구더러든지 물어 보는 나의 첫인사다.
그것은 얼마나 조선 사람에게 대하여 오만한 체를 하며 건방지게
구는가 그 정도를 알아보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불량하게
생긴 노가다패(우리 조선 사람은 일본 노동자를 특히 이렇게 부른다)
라도, 처음에는 온순할 뿐 아니라 도리어 이국 풍정에 어두우니만치
처음에는 공포를 품는 것이 보통이지만, 반년 있어 다르고,
일년 있어 달라진다. 오 년, 십 년 내지 이십 년이나 있어서 조선의
이무기가 된 자에 이르러서는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제군이 생각할 것은 어찌하여 일 년, 이 년, 오 년,
십 년…… 해가 갈수록 그들의 경모(輕侮)하는 눈이 나날이 날카로워
가고, 따라서 십 배, 백 배나 오만무례하도록 만들었느냐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도
그 중의 중요한 원인들이 되었을 것이다―---조선 사람은 외국인에게
대해서 아무것도 보여 준 것은 없으나,
다만 날만 새면 자릿속에서부터 담배를 피워 문다는 것,
아침부터 술집이 번창한다는 것, 부모를 쳐들어서 내가 네 애비니
네가 내 손자니 하며 농지거리로 세월을 보낸다는 것,
겨우 입을 떼어 놓은 어린애가 엇먹는 말부터 배운다는 것,
주먹 없는 입씨름에 밤을 새고
이튿날에는 대낮에야 일어난다는 것……
그 대신에 과학지식이라고는 소댕 뚜껑이 무거워야 밥이 잘 무른다는
것조차 모른다는 것을, 외국 사람에게 실물로 교육을 하였다는 것이다.
하기 때문에 그들이 조선에 오래 있다는 것은 그들이 우리를
경멸할 수 있는 사실을 골고루 보고 많이 안다는 의미밖에
아니 되는 것이다.
“담바구야 담바구야…… 노이구곤 오데기루네…….”
입을 이상하게 뾰족이 내밀었다 오므렸다 하고,
젓가락으로 화롯전을 두들겨 가며 장단을 맞춰서 콧노래를 하다가
뚝 그치더니,
“얘가 제일 잘 해요.
우리는 온 지가 삼사 년밖에 아니 되었지만…….”
하며 벙벙히 앉았는 화롯불 가져온 아이를 가리킨다.
“응! 그래? 너는 얼마나 있었길래?”
말담도 별로 없이 조용히 앉았는 것이 어디로 보아도 건너온 지
얼마 안 되는 숫보기로만 생각하였던 것이, 조선 소리를 잘 한다니
조선애가 아닌가도 싶다.
“예서 아주 자라났답니다. 제 어머니가 조선 사람인데요.”
하며 담바고타령을 하던 계집애가 이때까지 하고 싶던 이야기를
겨우 하게 되었다는 듯이 입이 재게 즉시 대답하고 나서,
“그렇지!”
하며 당자에게 얼굴을 들이댄다. 그 소리가 너무도 커닿기 때문에
조소하는 것같이 들리었다. 일인 애비와 조선인 에미를 가졌다는
계집애는 히스테리컬하게 얼굴이 주홍빛이 되고 눈초리가
샐룩하여졌다.
어쩐지 조선 사람 어머니를 가진 것이 앞이 굽는다는 모양이다.
“정말 그래? 그럼 어머니는 어디 있기에?”
나는 호기심이 생겨서 물었다.
“대구에 있에요.”
고개를 숙이고 앉았다가 간신히 쳐들면서 대답을 한다.
“그래 어째 여기 와서 있니? 소식은 듣니?”
왜 여기까지 와서 있느냐고 묻는 것은 우스운 수작이지만
나는 정색으로 이렇게 물었다.
그 계집애는 생글생글하며 나를 쳐다보더니,
“글쎄 그러지 않아두 누가 대구 가시는 이나 있으면 좀 부탁을 해서
알아보고 싶어두 그것도 안 되구……
천생 언문으로 편지를 쓸 줄 알아야죠.”
하며 이번에는 자기 신세를 조소하듯이 마음놓고 커닿게 웃는다.
“그럼 아버지하군 지금 헤져서 사는 모양이구나?”
“그야 벌써 헤졌죠. 내가 열 살 적인가,
아홉 살 적에 장기(長崎)로 갔답니다.”
“그래 그 후에는 소식은 있니?”
“한참 동안은 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하지만 이 설이나 쇠고 나건 찾아가 볼 테에요.”
하며 흑흑 느끼듯이 또 한번 어색하게 웃는다.
그 웃음은 어느 때든지 자기의 기이한 운명을 스스로 조소하면서도
하는 수 없다는 단념에서 나오는, 말하자면 큰일을 저지르고
하도 깃구멍이 막혀서 나오는 웃음 같았다.
“아무리 조선 사람이라두 길러 낸 어머니가 정다울 테지?
너의 아버지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다마는,
지금 찾아간대야 그리 반가워는 아니 할걸?”
조선 사람 어머니에게 길리어 자라면서도 조선말보다는 일본말을 하고,
조선옷보다는 일본옷을 입고, 딸자식으로 태어났으면서도 조선 사람인
어머니보다는 일본 사람인 아버지를 찾아가겠다는 것은,
부모에 대한 자식의 정리를 지나서 어떠한 이해관계나 일종의 추세라는
타산이 앞을 서기 때문에 이별한 지가 벌써 칠팔 년이나 된다는
애비를 정처도 없이 찾아간다는 것이라고 생각할 제,
이 계집애의 팔자가 가엾은 것보다도
그 에미가 한층더 가엾다고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도 불쌍하지만, 아버지두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찾아가면 설마 내쫓기야 할까요?”
하며 아범을 찾아가면 어떻게 맞아 줄까 하는
그 광경이나 그려 보듯이 멀거니 앉았다.
“그래두 어머니가 조선 사람이니까 싫구, 조선이니까 떠나겠다구
하는 게지, 조선이 일본만큼 좋았더면 조선 사람 뱃속에서
나왔다기루서니 불명예 될 것도 없고 아버지를 찾어가려는
생각도 안 났을 테지?”
나는 물어 보지 않아도 좋을 것까지 짓궂이 물었다.
계집애는 잠자코 웃을 뿐이었다.
나는 찻시간을 생각하고 인제야 들어온 밥을 먹기 시작하였다.
“얘, 이 양반께 대구에 데려다달라구 하렴! 너야말로 후레딸년이다.
어머니를 내버리고 뛰어나오는 망할년이 어디 있단 말이냐.”
담바고타령 하던 계집애가 놀리듯 꾸짖듯 찧고 까분다.
“참 그러는 게 좋겠지. 여기 있어야 무슨 신기한 꼴이나 볼 줄 아니?
나 같으면 그런 어머니만 있으면 벌써 쫓아갔겠다!”
이번에는 곁에 앉았던, 커다란 입귀가 처지고 콧등이 얼크러진
계집애가 역시 놀리는 수작으로 말을 받는다. 저희들끼리도
업신여기면서 한편으로는 얼굴이 반반한 것을 시기를 하는 모양이다.
나는 밥을 먹다 말고,
“그럼 너는 왜 이런 데까지 와서 난봉을 피우니?”
하며 실없는 말처럼 역성을 들어 주었다.
“그야 부모도 없구 의지할 데가 없으니까 그렇죠.”
하며 좀 분개한 듯이 한마디 하고 나서,
“그런 소린 고만하구 술이나 좀더 먹자. 또 가져올까요.”
하고 그만두라는 것도 듣지 않고 뛰어내려갔다.
“그러나 너 아버지를 찾어간대야 얼굴이 저렇게 이쁘니까,
그걸 미끼로 팔아먹으려고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아니?
그것보다는 여기서 돈푼 있는 조선 사람이나 하나 얻어 가지고
제 맘대로 사는 게 좋지 않으냐. 너 같은 계집애를 데려가지
못해하는 사람이 조선 사람 중에도 그득하리라.”
나는 타이르듯이 이런 소리를 하고,
계집애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웃었다.
“글쎄요, 하지만 조선 사람은 난 싫여요.
돈 아니라 금을 주어도 싫여요.”
계집애는 진담으로 이런 소리를 한다. 조선이라는 두 글자는
자기의 운명에 검은 그림자를 던져 준 무슨 주문이나 듣는 것같이
이에서 신물이 나는 모양이다.
이때에 나는 동경의 정자를 생각하면서,
“그럼 나도 빠질 차례로구나?”
하며 웃었다. 계집도 웃으며 잠자코 내 얼굴을 익숙히 쳐다본다.
입귀가 처진 밉살맞은 계집이 술병을 들고 올라왔다.
나는 먹고도 싶지 않은 술잔을 받으면서,
“이거 보게, 이 미인을 데려갈까 하고 잔뜩 장을 대고 연해 비위를
맞춰 드렸더니, 나중에 한다는 소리가 조선 사람은 죽어도
싫다는 데야 눈물이 쨀끔하는 수밖에, 하하하.
너는 그러지 않겠지?”
“객지에서 매우 궁하신 모양이군요. 글쎄…… 실컷 한턱 내신다면,
히히히.”
이 계집애는 나의 한 말을 이상스럽게 지레짐작을 하고 딴청을 한다.
“넌 의외에 값이 싼 모양이로구나?”
하며 나는 인력거를 부르라 명하고 일어서 버렸다. 계집아이들이
짓궂이 붙들고 승강이를 하는 것을 간신히 뿌리치고 나섰다.
‘이러기 때문에 시골자들이 빠지는 것이다!’
나는 일종의 불쾌를 느끼면서 인력거 위에서 이런 생각을 하여
보았다. 기차는 하마터면 놓칠 뻔하였다.
짐을 맡기고 간 것까지 잔뜩 눈독을 들여 둔 ‘그쪽 사람들’은
은근히 찾아 보았던지, 내가 허둥지둥 인력거를 몰아 오는 것을
아까 만났던 인버네스짜리가 대합실 문 앞에서 힐끗 보고 빙긋
웃는다. 나는 본체만체하고 맡겼던 짐을 찾아 가지고 허둥허둥
폼에 들어와 찻간으로 뛰어올라왔다. 형사도 차창 밖으로 가까이 와서
고개를 끄덕 하며 무어라고 중얼중얼하기에 나는 창을 열어 주었다.
“바루 서울로 가시죠?”
하며 왜 그러는지 커닿게 소리를 지른다. 나는 웃으면서,
내 처가 죽게 되어서 시험을 보다가 말고 가니까
물론 바로 간다고(나중에 생각하고 혼자 웃었지만) 하지 않아도
좋을 말까지 기다랗게 늘어놓았다.
형사는 또 무엇이라고 중얼중얼하는 모양이었으나, 바람이 휙 불고
기차는 움직이기 때문에 자세히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웬셈인지 나하고 수작을 하면서도 연해 왼편을 바라보는 게
수상스러웠다. 그러나 차가 움직이자 양복쟁이 하나가 저쪽 문으로
들어오는 것은 나 역시 무심코 보았을 뿐이었다.
- (만세전) 이어서 -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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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세전, 수선사, 19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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