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가난의 설움 -연성흠-

하얀모자 1 2023. 11. 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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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의 설움
 
                                                                             - 연성흠 -

사직골 막바지 솟을대문 달린 큰 기와집 행랑방에서는
큰 야단이 일어났습니다.
땟국이 꾀죄죄 흐르는 행주치마를 앞에 두른 채 뒤축 달아빠진 고무신을
짝짝 끌면서 행랑어멈인 듯한 여인이 대문을 벼락 치듯 열고 뛰어 나오더니
 
 “아이구 이를 어쩌나, 아이구 이를 어쩌나.”
 
하면서 어쩔 줄을 모르는 듯이 길 아래위로 허둥지둥
오르내리기만 할 뿐 입니다.
 
 “여보, 동선 어머니! 이게 웬일이요?”
 
그 아랫집 행랑방 들창문이 열리며 두 눈이 휘둥그레서 이같이 묻는 여인도
그 옷맵시로 보아 그 집 행랑어멈 같아 보였습니다.
 
 “개똥 어머니, 이 일을 어쩌면 좋소.
  우리 동선이 녀석이 양잿물을 들이마셨구려.”
 
하고 동선 어머니라는 이는 눈물이 글썽글썽하는 눈으로
개똥 어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양잿물을 마시다니? 그걸 어떻게 두었기에 그 어린 게 마셨더란 말요.
  그럼 얼른 의원을 불러다 보이든지 해야지 저러구만 있으면
   어쩐단 말이요. 그 어린 게 어쩌다가 그것을 먹었담.
   가엾은 일도 많지……”
 
하고 개똥 어머니는 혀를 낄낄 차면서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동선 어머니는 개똥 어머니의 말대로 의원을 부르러 달음질하여
길 아래편으로 뛰어 내려갔습니다.
대체 열두 살밖에 되지 않은 소년이 무엇 때문에 양잿물을 마시었겠습니까?
동선 아버지 어머니는 살림살이가 구차한 탓으로 올해에 열두 살 먹은
동선이까지 모두 세 식구가 몸담을 만한 셋방 하나 얻어 들 힘이 없어서,
돈푼있고 행세 한다는 지금 주인집의 행랑방 하나를 거저 얻어든 탓으로,
행랑아범이니 행랑어멈이니 행랑것이니 하는 말을 들으면서
주인집의 궂은일이란 궂은일은 도맡아서 해주면서도, 그네들 맘에
조금이라도 맞지 않거나 비위에 틀리면, 그네들에게 갖은 천대를
다 받으면서 없는 것이 원수로 그저 억울한 것 분한 것을 꿀꺽꿀꺽
참아가는 처지였습니다.
주인집의 아들 용환이는 나이 아직 열한 살이건만 집안에서 보고 듣느니
어른들의 말과 행동뿐이라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제 비위에 틀리기만 하면
주먹으로 동선이의 볼을 후려갈기면서
 
 “이런 행랑자식이 무얼 안다고 이리 덤벙대어!”
 
하고 욕지거리를 퍼부었습니다.
 
어린 동선이일망정 이럴 때마다 여간 억울하고 여간 분한 것이 아니지만
한쪽 옆에 비켜선 채 얻어맞은 곳을 손으로 문지르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동선이가 용환이보다 기운이 모자라서 대항해 싸우지 못한 것은
결단코 아니었습니다. 용환이를 마음껏 두들겨주지 못하는 까닭은
그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호령과 매가 무서웠던 까닭입니다.
아무리 자기가 잘하고 자기 경우가 옳더라도 자기의 경우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 어머니는 자기만 나무라고 때려주었습니다.
동선이는 이런 경우를 당할 때마다
어머니 아 버지가 몹시도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동선이 어머니나 아버지도 동선이가 용환이를 때린 것이
옳은 경우일 때 으레 때렸어도 관계없다고 생각되는 그런 경우를
아주 모르는 이들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동선이가 잘하고 경우가 바르게 했다 하더라도
돈 있 고 힘이 있고 배부른 주인아씨나 주인영감 앞에서는
그 옳은 경우와 잘한 것이 다 소용없이 없어져버리는 까닭에
가난한 처지에 있어서 천대받는 동선네 식구들은 잘했거나 못했거나
그저 잘못한 체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잘했고 우리 자식이 잘했는데 왜 우리만 못된 사람을 만들려 하고
우리 자식만 못된 놈을 만들려 하시오? 하고 대어들기만 하는 날에는
좁디 좁은 행랑방 한 칸이나마도 내어놓고 나가야 되겠으므로
그저 옳든 그르든 못난 체 잘못한 체하고 머리를 숙여가면서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를 나이 어린 동선이가 알 까닭이 없습니다.
동선이 어머니나 아버지도 슬하에 하나밖에 없는 귀여운 아들을
억울하게 나무라고 때려줄 생각이야 꿈엔들 있겠습니까마는
뻔히 자기 아들에게는 터럭 끝만한 잘못이 없는 줄 알면서도
눈 딱 감고 욕하고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동선이는 여러 아이들 틈에 섞여서
용환이가 연 날리는 구경을 하 고 있었습니다.
바람에 채여서 높게 떠올랐던 연이 어디에 탈이 생겼는지
빙빙 동다가 거 꾸로 물구나무를 서서 떨어졌습니다.
동선이는 용환이가 연 날리는 것이 몹시 부러워서 날려보고 싶던 차이라
시킨 것도 아니건만 부리나케 뛰어가서 연을 집어 들고
탈이 난 것을 고치려 했습니다. 그러니까 용환이는 화를 버럭 내면서
 
 “이 자식이 왜 이래. 거기 그대로 놔둬!”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동선이는 연을 차마 놓지 못하고
탈이 난 것을 고치고 있었습니다.
 
 “저 망할 행랑자식이 그래도 말을 안 듣고 지랄이야!”
 
하고 용환이는 얼레를 집어던지고 동선이 앞으로 뛰어와서
연을 빼앗는다는 것이 잡아다리는 통에 연이 두 갈래로 찢어져버렸습니다.
용환이는 공연히 동선이를 미워하던 차에 연까지 찢어져서
화가 불같이 일어나는 바람에 발길로 동선이의 앞정강이를 내어 차면서
주먹으로 볼을 눈에 불이 나도록 후려갈겼습니다.
 
그때 동선이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찌도 몹시 얻어맞았는지 두 눈에는눈물까지 고여 가지고 맞대어 들어서
서로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맞붙잡고 다투는 통에
용환이는 동선이의 주먹에 콧등을 얻어맞고
콧구멍에는 코피가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용환이는 코를 두 손으로 붙잡고 엄살을 하면서
 
 “옳지 이놈의 자식! 피가 나도록 이렇게 때렸겠다.
  너 이 자식 집에만 들어와 봐라. 죽도록 경을 쳐 줄 테다.”
 
하고 집으로 뛰어 돌아갔습니다.
 
용환이가 코피를 줄줄 흘리면서 집으로 뛰어 들어갔을 때
집안은 발칵 뒤 집히다시피 야단이 났습니다.
주인아씨라는 이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용환이 때려준 동선이를
잡아들이라고 호령호령 했습니다. 그러나 겁이 나서 어디로 뺑소니를 친
동선이를 붙잡아 들일 길이 없었습니다.
그날 밤에 동선이는 아버지 어머니한테 죽도록 매를 맞고 또 주인아씨에게
꾸지람을 톡톡히 들었습니다.
 
그 밤이 새도록 동선이는 잠 한잠 못자고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자기를 미워서 때리신 것이 아니건만
몹시도 야속했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에
잘못한 것 없이 잘못한 꼴이 되고 억울하게 매 맞고 꾸 지람 듣고
행랑자식 행랑자식 하는 욕먹은 것이 몹시도 분하여,
어머니가 빨래하려고 사발에 타 놓으신 양잿물을 들이마신 것이었습니다.
 
행랑방 속에서 어린 동선이가 입속이 지지리 타다 못해 부어터져가지고
몹시 고통스러워하는 소리를 듣고 주인아씨는 코웃음을 치면서
 
 “흐응, 망할 놈이 세상. 어른한테 매 좀 맞았다고 양잿물을 마셔.
  아비 어미가 그렇게 막 되어먹었으니 무어 배운 게 있을 턱이 있어야지.
  못된 송아지가 엉덩이에 뿔난다는 말과 같이
  못나 떨어진 그따위 짓만 하지.”
 
하고 혼잣말같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 일제강점기.  연성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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