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한 생활
- 김애란 -
학원에서 처음 배운 것은 도를 짚는 법이었다.
첫 번째 음이니까,
첫 번째 손가락으로 도.
내가 건반을 누르자 , 도는 겨우 도- 하고 울었다.
나는 조금 전의 도를 기억하려 한 번 더 건반을 눌러 보았다.
도는 다시 당황한 듯 다시 도- 하고 소리 낸 뒤
제 이름이 지나가는 동선을 바라봤다.
나는 음하나가 깨끗하게 사라진 자리에 앉아,
새끼손가락을 세운 채 굳어 있었다.
녹색 코팅지가 발린 유리 벽 사이론 오후의 볕이 탁하게 들어왔고.
피아노와, 그것을 처음 만진 나 사이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신중하게 고른 단어를 내뱉듯 작게, 중얼거렸다. 도.......
건반에 손을 얹는 법은 단순한 듯 어려웠다.
손에 힘을 풀고 뭔가 부드럽게 감아쥐는 모양을 만들어보라는
것이었는데, 그때 나는 힘을 주지 않고도 뭔가를 움켜쥘 수 있다는 게,
또 세상에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나는 두 개의 손가락을 이용해 온종일 ‘도레 도레’를 연습했다.
낮은 음과 높은 음을 함께 눌렀을 때
낮은 음이 더 오래 간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피아노 건반의 모양은 똑같았다. 그것은 희거나 검었고,
동일한 크기와 질감을 갖고 있었다. 나는 도의 위치를 자주 잊었다.
그것이 레가 아니라 도라는 것을,
미가 아니라 파라는 것을 만져보기 전에는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찾는 도는 왼쪽 가장자리 건반으로부터
스물네 손가락 떨어진 곳에 있었다.
건반 위에서 길을 잃을 때마다 1에서 24까지의 숫자를
일일이 세어봐야 했다. 그렇게 도를 찾아낸 뒤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도를 다시 치는 일일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덩치 크고 내성적인 악기가 처음으로 낸 소리,
완고하고 편안한 그 도-의 울림을 좋아했다.
다행히 도를 찾고 나면 레를 짚기가 수월했다.
레는 도 바로 옆에 있었다. 미는 레 옆이고, 파는 미 다음이니까,
일단 도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연습실 문에는 죽은 음악가의 이름이 씌어 있었다.
나는 베토벤 실에 앉아 ‘도레 도레’를 연습했다.
리스트 방에서는 ‘도레미’를,
헨델 방에서는 ‘도레미파솔’을 연주했다.
두 손가락만 사용했을 땐 ‘이만하면 할 만하네’ 싶었고,
세 손가락을 움직였을 땐 ‘시시하다’ 자만했고,
다섯 손가락을 써야 했을 땐 ‘이거 어려워서 못해먹겠다’ 소리 쳤다.
내가 살던 시골마을엔 음악학원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곳에선 어설프게 바이올린도 가르치고, 플루트도 가르치고,
웅변까지 지도했다.
다행히 바이올린이나 플루트를 신청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만일 배우고자 했다면 학원에서 먼저 말렸으리라.
동네에서 바이올린을 켤 줄 아는 아이는
음악 학원 원장의 딸 한 명뿐이었다.
그 애는 학예회에 날개 달린 원피스를 입고 나와,
초등학생이 듣기에도 참을 수 없는 연주를 했다.
그 애의 형편없는 연주를 들으며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때리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음악학원에서 왜 웅변을 가르쳤는지는 모르겠다.
웅변은 음악이 아닌데. 그래도 수강생은 있는 듯했다.
교내 웅변대회를 앞둔 학생이나, 소극적인 성격 탓에
부모 손에 끌려온 아이들이었다.
연습실에서 내가 친 음이 정갈하게 사라지는 느낌을 즐기고 있을 때면,
어디선가 찢어질 듯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는
외침이 들려오곤 했다.
베토벤은 귀가 먹어 그 소리를 못 들었겠지만.
나는 두 번째로 누군가를 때리고 싶다는 욕구에 시달렸다.
어쨌든 헨델이 없는 헨델 방이었고, 리스트가 없는 리스트 방이었다.
나는 그들이 누군지도 몰랐다.
연습이 지루할 때면 각 소리의 표정을 그려봤다.
레는 곁눈질하는 느낌이고, 솔은 까치발 선 인상을 줬다.
미는 시치미를 잘 떼고, 파는 솔보다 낮지만 쾌활할 것 같았다.
나는 다섯 음에 적응해갔다.
피아노는 건반자체가 아닌 자기 내부의 어떤 것을 ‘때려서’
음을 만든다는 것도 이해했다.
높은 음일수록 빨리 사라진다는 것도,
음마다 자기 시간을 따로 갖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그러니 각 음이 모여 음악이 된다는 건,
여러 개의 시간이 만나 벌어지는 어떤 일일지도 몰랐다.
문제는 ‘라’에서부터 시작됐다.
라를 만나기 전 나는 근심에 싸여 있었다.
다섯 손가락으로 다섯 음을 연주하는 건 무난하고 상식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다섯 손가락으로 여섯 음 이상을 칠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오진법밖에 쓸 줄 모르는 문명인이 만난 십이진법 같은 거였다.
나는 라를 알고 싶었다.
하지만 라를 알게 되는 즉시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아 두려웠다.
어려운 건 싫은데. 오음계로 된 노래도 많으니까,
평생 오음계만 연주해도 되지 않을까. 라를 배우던 날,
나는 선생님의 손동작을 숨죽여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내 옆에서 도를 쳤다. 내가 치는 방식대로였다.
선생님은 레를 쳤다. 그것도 같은 방법이었다.
선생님은 예상대로 미를 짚었다. 나는 초조함을 느꼈다.
이윽고 선생님이 파를 치는 순간,
눈앞으로 뭔가 휙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약지로 파를 치지 않고,
파 자리에 재빨리 엄지를 옮겨 놓은 뒤,
두 번째 손가락으로 솔을 짚은 것이었다.
나머지 손가락들이 자연스럽게 라와 시를 건드렸다.
도레미파솔라시도. 완전한 칠음계였다.
나는 선생님의 손놀림을 보며 감탄한 듯 중얼거렸다.
이제, 음악이 뭔지 알 것 같다고.
만두집을 하던 엄마가 어떻게 피아노를 가르칠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욕심이거나 뭔가 강요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배움이 짧았고, 자신의 교육적 선택에 늘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
다만 그때 엄마는 어떤 ‘보통’ 의 기준들을 따라가고 있었으리라.
놀이공원에 가고, 엑스포에 가는 거처럼,
어느 시기에는 어떠어떠한 것들을 해야 한다는 풍문들을 말이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 엑스포에 가고 박물관에 간 것이
그렇게 재밌었던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나를 엑스포에 보내주고, 놀이공원에 함께 가준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누구나 겪는, 평범한 유년의 프로그램 중 하나였을 뿐이지만,
무지한 눈으로 시대의 풍문에 고개 끄덕였을,
김밥을 싸고 관광버스에 올랐을 엄마의 피로한 얼굴이
떠오르는 까닭이다.
이따금 내가 회전목마 위에서 비명을 지르는 동안,
한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벤치에 누워 있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신을 벗고 짧은 잠을 청하던 엄마의 얼굴은 도-처럼 낮고 고요했던가
그렇지 않았던가. 엄마를 따라 하느라,
피아노 의자 위에 누워있던 나를 보고,
선생님은 라-처럼 놀랐던가 그러지 않았던가.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
‘엄마 100원만’ 인 줄 알았던 때이긴 했지만.
나는 헨델이 없는 헨델의 방에서 음악을 했고,
엄마는 베토벤같이 풀린 파마머리를 한 채 귀머거리처럼 만두를 빚었다.
마침 동네에 음악학원이 생겼고,
엄마의 만두가 불티나게 팔리던 시절이라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른다.
엄마는 내게 피아노를 사줬다.
읍내서부터 먼짓길을 달려온 파란 트럭이 집 앞에 섰을 때,
엄마가 무척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세탁기도 냉장고도 아닌 피아노라니.
어쩐지 우리 삶의 질이 한 뼘쯤 세련돼진 것 같았다.
피아노는 노릇한 원목으로 돼, 학원에 있는 어떤 것보다 좋아보였다.
원목 위에 양각된 우아한 넝쿨무늬, 은은한 광택의 금속 페달,
건반 위에 깔린 레드 카펫은 또 얼마나 선정적인 빛깔이던지.
그것은 우리 집에 있는 가재들과 때깔부터 달랐다.
다만 좀 멋쩍은 것은 피아노가 가정집 ‘거실’이 아닌,
만두가게 안에 놓인다는 사실이었다.
우리 가족은 생계와 주거를 한 건물 안에서 해결하고 있었다.
낮에는 방에 손님을 들이고,
밤에는 식구들이 이불을 펴고 자는 식으로 말이다.
피아노는 나와 언니가 쓰는 작은 방에 놓였다.
안방은 주방을, 작은 방은 홀을 마주 보고 있었다.
나는 오후 내 가게에 붙어 피아노를 연주했다.
울림 폭을 크게 해주는 오른쪽 페달을 밟고 멋을 부려
‘소녀의 기도’나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와 같은 곡들을 말이다.
찜통에선 수증기가 푹푹 나고,
홀에서는 장사꾼과 농부들이 흙 묻은 장화를 신은 채
우적우적 만두를 씹고 있는 공간에서,
누구라도 만두를 삼키다 말고, 울고 가게 만들었을 그런 연주를.
쉽고 아름답지만 촌스러워서 누구라도 가게 앞을 지나가다
얼굴을 붉히게 만들었을,
그러나 좀 더 정직한 사람이라면 만두접시를 집어던지며
‘다 때려치우라 그래!’ 소리쳤을 그런 연주를 말이다.
한번은 연주가 끝난 뒤 박수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린 적이 있다.
홀에서 웬 백인남자가 손뼉을 치며 “원더풀”이라 외치고 있었다.
외국인과 나 사이에 어정쩡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부끄러웠지만 수줍게 한 마디 했다. 땡큐.......
집안에선 밀가루 입자가 햇빛을 받으며 분분히 날렸고,
건반을 짚은 손가락 아래론 지문이 하얗게 묻어났다.
학원은 2년 정도 다녔다. 그 사이 나는 바이엘 두 권을 떼고,
체르니와 하농에 입문했다.
체르니란 말은 이국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같아서,
돼지비계나 단무지란 말과는 다른 울림을 주었다.
나는 체르니를 배우고 싶기보단 체르니란 말이 갖고 싶었다.
엄마는 장사를 끝낸 뒤 작은 방에 누워 피아노를 청했다.
나는 엄마의 발 박자에 맞춰 ‘따오기’나 ‘오빠 생각’을 연주했다.
허공에서 발 박자를 맞추던 엄마의 양말 앞 코는
설거지물에 진하게 젖어있었다.
그 발은 허공을 날아다니는 엄마의 젖은 마음 한 조각 같았다.
노래는 아빠가 잘했는데 연주를 청한 건 늘 엄마였다.
아빠는 배달 일을 하고 있었다.
아빠는 동네 곳곳에 군만두와 찐만두와 물만두를 배달하며
이런저런 참견과 재미없는 농담을 하고 다녔다.
가게가 한 장 바쁠 때 사라지는 일도 적지 않았는데,
그때마다 아빠는 배달 간 곳의 노름판에 끼어 있거나,
구멍가게 앞에서 인형 뽑기를 하고 있었다.
한번은 아빠가 온종일 가게에 나타나지 않아
엄마가 화를 냈던 적이 있다. 배달은 모두 취소됐고,
엄마는 정신없이 찜통과 전화 사이를 오갔다.
아빠는 해질 무렵, 슬그머니 가게 문을 열었다.
아빠는 홀 안까지 와놓고, 안방 문을 열지 못해 왔다 갔다 했다.
그러고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작은 방에서 놀고 있던 우리를 불러내 노래를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모처럼 다정하게 구는 아빠가 좋아
작은 방서 꼬물꼬물 기어 나왔다.
아빠는 미닫이로 된 가게 문을 반쯤 열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빠가 한 소절을 부르면 우리가 따라하는 식이었다.
아빠의 낮은 목소리가 저녁의 한적한 소읍 위로 울려 퍼졌다.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저 하늘 여기가 거긴가......” 이상했다.
아빠의 고향은 여긴데, 마치 다른 고향이라도 있는 듯
아빠의 얼굴이 쓸쓸해보였다.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면.......”
문 밖으로 빠끔 나온 세 개의 머리통이 같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안방에선 아무 기척도 나지 않았다.
엄마는 자신의 불운이 오래전,
노래 잘 하는 남자를 좋아하게 된, 바로 그때서부터 시작됐다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다.
어쨌든 나는 아홉 살이었고,
내겐 연주를 할 시간보다 말썽을 피울 시간이 많았다.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나거나 언니의 비명이 들릴 때마다,
엄마는 만두피를 빚다말고 잽싸게 달려와 우리를 두들겨 팬 뒤,
다시 쏜살같이 달려가 만두를 쪘다. 엄마는 늘 바빴다.
애들은 빨리 때려서 빨리 키워야 했고,
만두는 그보다 더 빨리 쪄내야 했다.
엄마의 만두 방망이가 내 몸을 때릴 때마다
사방에선 풀썩풀썩 밀가루 먼지가 피어났다.
나는 음악을 좀 알았지만, 매 앞에선 여전히 입을 벌린 채
으앙- 하고 울었다.
한번은 피아노 악보 받침대가 부러져,
방망이 대신 그걸로 맞은 적도 있다.
나는 좀 컸다고 ‘으앙’ 하고 울지 않고 ‘훌쩍훌쩍’ 울어댔다.
악기가 무섭게 보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학원에는 피아노를 잘 치는 애들이 많았고 못 치는 애들은
그보다 더 많았다.
조율 안 된 중고 피아노는 모두 축농증에 걸려있었다.
액자 속 베토벤과 모차르트는 초등학생들이 만들어내는 소음 속에서
지루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산만했고 선생들의 태도는 형식적이었지만,
나는 피아노를 배우는 게 재미있었다.
손가락 관절 아래서 돋아나는 음의 운동도 즐거웠고,
내 속의 어떤 것이 출렁여 그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좋았다.
이상한 것은, 그런데도 ‘잘’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는 거다.
나는 피아노를 적당히 치고 싶었다.
그리고 꼭 그때문은 아니지만 엄마가 피아노할부금을 다 부었을 즈음,
음악학원을 그만두었다.
싫증이 난 것이 아니라 그만하면 족했던 것이다.
만족의 수위가 낮았던 걸 보니 분명 재능도 없었던 것 같다.
만두소를 먹고 자란 내 젖멍울은 어여쁘게 부풀어 올라
온몸에 이상한 메시지를 송신했다.
나는 75A 브래지어를 차고 중학교에 올라갔다.
피아노는 예전만큼 자주 치지 않았다.
나는 더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수준 안에서
고만고만한 악보를 사다 유행가를 연주했다.
드라마 주제곡이나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던 노래들이었다.
피아노를 칠 때면, 페달을 밟고 음을 과장하는 법을 잊지 않았다.
그 왕왕거림 안에는 뭔가 환상적인 느낌이 주는 슬픔,
더 이상 가볼 수 없는 체르니 너머 세계에 대한 미련과 향수가
어려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사교육을 받지 않은 채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내가 진로에 대해 물으면, 엄마와 아빠는 서로 빤히 쳐다보다,
뭔가 잘못한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곤 했다.
우리는 그저 당시의 ‘소문’들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과가 취직이 잘 된다더라, 여자 직업으로는 선생님이 좋다더라,
서울 삼류에 가느니 지방 국립이 낫다더라와 같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정말 중요한 정보인 듯
심각한 표정을 짓다가 금세 잊어버리곤 했다.
불규칙한 내신 등급과 달리,
내 브래지어 후크는 꾸준히 한 칸씩 늘어갔다.
피아노는 가게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잊혀져 갔고,
나는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이불을 이고 집을 떠나온 이후.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복작이는 사람들 사이를 걷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방에서, 이 거리에서,
이 시장과 저 공장에서, 이 골목과 저 복도에서,
그늘에서 창 안에서, 세상 사람들은 가끔 아무도 모르게
도-도-하고 우는 것은 아닐까 하고.
사람들 저마다 자기도 모르게 까닭없이 낼 수 있는 음 하나 정도는
갖고 태어나는 게 아닐까 하고.
어쩌다 어릴 때 음악 따윌 배워 그 울음의 이름을 알게 됐으니,
조금은 나도 시대의 풍문에 빚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만두소에는 무말랭이가 들어갔다.
엄마는 그걸 물에 불린 뒤 광목으로 싸 ‘짤순이’에 넣고 돌렸다.
짤순이는 탈수 기능만 되는 날씬한 금성 세탁기였다.
탈수기 호스는 광에서 주방하수구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엄마는 2, 3일에 한 번씩 광으로 들어가 탈수기를 돌렸다.
엄마가 광에만 들어갔다 하면 탈수기 호스에선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나는 그곳이 울음 방인 줄만 알았다.
철이 든 뒤, 그것이 오해였다는 걸 깨달았지만.
몇 년 후 엄마는 정말 그 안에서 무릎에 고개를 묻고 있었다.
내가 서울로 올라가기 전인 고 3 겨울 방학 때였다.
여느 때와 같이 무말랭이를 짜고 있던 엄마는 전화벨이 울리자
주방으로 나왔다.
엄마는 수화기에 대고 뭔가 해명하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나는 화장실에 가다 그 모습을 보았다.
한바탕 점심 장사가 끝난 뒤라,
가게에는 탈수기 진동음만 미세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엄마는 다시 광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탈수기 옆에 쪼그리고 앉아 ‘탈탈탈탈’ 울었다.
단풍놀이에 간 아빠는 설악산에 있었고, 언니는 휴학계를 썼고,
나는 저쪽 어둑함과 연결된 호스에서
물이 졸졸 새어나오는 모습을 보며,
문득 우리 집이 망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즈음, 나는 서울권대학에 합격했다.
4년제 대학의 컴퓨터 학과였다. 컴퓨터에 관해서라면
고작 자판 치는 것밖에 몰랐지만,
졸업하면 취직이 잘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에서였다.
그즈음 내 친구들은 대부분 그렇게 대학에 갔다.
막연하게 국문과를 가고, 막연하게 사대를 가고,
막연한 열패감이나 우월감을 갖고 졸업을 하고 진학을 했다.
‘적성’이 아닌 ‘성적’에 맞춰 원서를 쓰는 일도 잦았지만,
대부분 잘 기획된 삶에 대해 무지했고,
자신이 뭘 하고 싶어 하는지 몰랐다.
나보다 두 살 많은 언니는 서울에 있는 전문대학에서
‘치기공’을 배우고 있었다. 언니는 원서를 쓰기 바로 전날까지도,
자신이 평생 누군가의 이(齒) 모형을 만들며 살게 되리라
상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한동안 대학에 붙었다는 말도 못한 채,
신입생환영회 때 부를 노래만 연습하고 있었다.
엄마는 차압 딱지가 붙기 전, 값나가는 물건을 팔아버리자고 했다.
아빠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고가품을 찾아 움직였다.
그러나 10분도 지나지 않아, 우리는 우리 집서 값나가는 물건이
피아노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도 팔면 80만원이 안 되는 물건이었다.
엄마는 고민하더니, 다시 피아노를 팔지 말자고 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 나 때문이면 괜찮다’고 했다.
피아노를 치지 않은 지 한참 됐고, 진심으로 미련도 없었다.
피아노 위에 올려진 인형들은 말똥말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두 아빠가 뽑아온 것이었다.
엄마는 고민하다 피아노는 일단 갖고 있자고 했다.
“어떻게?”
엄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서울로 갖고 가주었으면 좋겠다고.
“.......”
나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말했다.
“거기 반지하야, 엄마.”
엄마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나는 계속 피아노를 팔자고 설득했다.
사실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 쓸모도 없었다.
엄마는 그게 무슨 기념비라도 되는 양,
“사정이 좋아질지도 모르니까......”
하고 말끝을 흐렸다. 결국 나는 피아노를 이고 상경해야 했다.
내가 집을 떠나던 날, 아빠는 오토바이 ‘쇼바’를 잔뜩 올린 채
도로 위를 달리며 울고 있었다.
아빠는 오토바이 속도가 최절정에 다다랐을 때,
앞바퀴를 들며 “얘들아, 너흰 절대 보증 서지 마!”라고 오열했고,
비닐하우스 옆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속도위반 딱지를 뗐다고 했다.
벌금은 고스란히 만두가게서 일하는 엄마 앞으로 전가됐다.
언니의 표정은 뜨악했다.
외삼촌이 담배를 피우는 사이,
나는 사정을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엄마가 다 얘기한 줄 알았는데,
언니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언니가 답답한 듯 말했다.
“여기, 반지하야.”
나는 조그맣게 대꾸했다.
“나도 알아.”
우리는 트럭 앞에 모여 피아노를 올려다봤다.
그것은 몰락한 러시아 귀족처럼 끝까지 체면을 차리며
우아하고 담담하게 서있었다.
외삼촌의 트럭은 길 한 가운데를 막고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목장갑을 꼈다. 외삼촌이 피아노의 한쪽 끝을,
언니와 내가 반대쪽을 잡았다.
외삼촌이 신호를 보냈다.
나는 깊은 숨을 쉰 뒤 피아노를 번쩍 들어올렸다.
1980년대 산(産) 피아노가 잠시 세기말의 도시의 하늘 위로 비상했다.
그 모습이 꽤 아름다워 하마터면 탄성을 지를 뻔했다.
우리는 한걸음씩 이동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진땀이 났다.
사람들이 우리를 흘깃거렸다.
뒤에서 승용차 한 대가 비켜달라는 듯 경적을 울려댔다.
곧 건물 2층에 사는 집주인이 체육복 차림으로 내려왔다.
동글동글한 체구에, 아침 운동을 빼먹지 않을 것 같이 생긴
50대 중반의 사내였다.
그는 집 앞에서 벌어진 풍경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아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나는 피아노를 든 채 어색하게 웃으며 목례했다.
언니 역시 눈치껏 사내에게 인사했다.
좁고 가파른 계단 아래로 피아노가 천천히 머리를 디밀고 있었다.
세탁기도, 냉장고도 아닌, 피아노라니.
우리 삶이 세 뼘쯤 민망해지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났다. 외삼촌이 피아노를 놓친 모양이었다.
우다탕탕- 피아노가 계단을 미끄러져 나갔다.
언니와 나는 다급하게 피아노 다리를 붙잡았다.
윙- 하는 공명감 사이로,
악기 속 여러 개의 시간이 뭉개지는 소리가 났다.
피아노 넝쿨무늬가 고장 난 스프링처럼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충격 때문에 몸에서 떨어져 나간 모양이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오랫동안 양각된 거라 믿어온 문양이
사실은 본드로 붙여져 있던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외삼촌의 안색을 살폈다.
외삼촌은 괜찮다는 신호를 보낸 뒤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외삼촌의 부상이나 피아노의 상태가 걱정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쿵- 소리,
내가 처음 도착한 도시에 울려 퍼지는 그 사실적이고, 커다랗고,
노골적인 소리에 얼굴이 붉어졌다.
집주인은 어이없고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언니와, 나와, 피아노와, 외삼촌과, 다시 피아노를 번갈아 쳐다봤다.
“학생.”
주인 남자가 언니를 불렀다. 언니는 재빨리 계단을 올라갔다.
출구 쪽, 네모난 햇살 아래 뭔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언니의 모습이 보였다. 언니는 승용차 운전자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우리는 결국 관리비를 더 내고,
피아노를 절대 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집주인을 돌려보냈다.
집주인은 돌아서며 한 마디 했는데,
치지도 않을 피아노를 왜 갖고 있느냐는 거였다.
그날, 저녁으로 만두를 먹었다.
엄마가 아이스박스에 넣어 보내준 거였다.
김이 무럭 나는 만두를 식도로 밀어 넘기며 언니는 새삼
‘몸이 진정되는 기분’ 이라고 말했다.
언니는 만두를 삼킬 때마다 엄마를 삼키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나는 두 손으로 왕만두를 갈랐다.
당면과 부추, 주부, 돼지고기로 채워진 속살이 폭죽처럼 튀어나오며
뿌연 김을 내뿜었다.
문득, 스무 해를 넘긴 언니와 나의 육체는 엄마가 팔아온
수천 개의 만두로 빚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빠, 왜 그랬대?”
언니가 사이다를 들이켜며 물었다. 나는 대충 아는 대로 설명했다.
아빠의 친구가 고기 뷔페를 차린다고 대출을 받으면서 보증을 부탁했다.
몇 해 전부터 동네 외곽에 크고 작은 공장이 들어서는데,
아빠 친구는‘그 사람들이 여기서 한두 번만 회식해도 흑자는 문제없다’
고 자신했다. 그 즈음, 아빠의 선배도 노래방을 개업했다.
사람들이 회식을 하면 고기만 먹고 헤어지겠냐는 거였다.
아빠는 이중으로 보증을 섰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공장들이 하나 둘 문을 닫았고,
고기 뷔페가 망하자 노래방도 간판을 내렸다.
말하자면 보증의, 보증의, 보증이 도미노처럼 꼬리를 물고 무너져
만두가게 앞에서 멈춰선 것이었다.
소읍 전체가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는데,
그 빚은 누구도 만져본 적 없는 유령 같은 거였다.
언니가 젓가락을 빨며 물었다.
“그럼 누구 잘못이야?”
나는 모른다고 했다. 다만 그것이 아주 투명한 불행처럼 느껴진다고,
실감이 안 난다고 덧붙였다.
그것은 당장 내가 내일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고, 어마어마한 피로감을
느낀다고 해도, 저 너머 도미노의 끝을 상상할 수 없고,
원망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언니, 학교는 왜 쉰 거야?”
언니는 거품이 사그라져가는 사이다를 보며 말했다.
“집 사정도 그렇고, 이걸 계속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나는 이 상황에‘적성’을 생각하고 있는 언니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누군가 빨리 자리를 잡아 짐을 덜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언니는 취업이 잘 된다는 말에 서둘러 원서를 쓴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자질이나 작업환경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못했다고.
학습실서 가스폭발 사고가 난 후로는 두려움이 들고
허리 디스크와 기침 때문에 고생을 한다고도 했다.
나는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학교 선배가 그러는데, 요즘 계급을 나누는 건
집이나 자동차 이런 게 아니라 피부하고 치아라더라.”
나는“정말?”하고 반문한 뒤,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좀 징그럽지 않니? 이빨이 계급을 표시한다는 게.”
나는 멍하니, 상품(上品)의 소가 입을 벌리고 있는 우시장을 떠올렸다.
“근데 그 말을 들은 뒤부터 나도 모르게 자꾸 사람들
이를 보게 되는 거야. 전공 탓도 있지만,
연예인들 치아는 모두 하얗고 가지런해서
그게 보통의 기준인 것처럼 착각하게 돼.”
나는 ‘온전히 고른’ 치아란 게 사실은 없지 않나 갸웃거렸다.
언니는 남자친구 얘길 꺼냈다. 나이 차가 많이 나.
연애가 끝날 때까지도 엄마는 몰랐던 사람이다.
며칠 전 그가 만취해 집에 찾아왔었다고 한다.
서로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 힘들었을 땐데,
언니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바닥으로 고꾸라졌다고.
“그래서?”
“신을 벗기고 방으로 옮기려는데 꼼짝도 안 해.
그래서 한참 그 앞에 웅크리고 있었어.
그런데 갑자기 나도 모르게 그 사람 얼굴 위로 손을 뻗더라.
그런 뒤 입술을 벌려, 내가 그 사람 이를 살펴보고 있는 거야.”
“이를?”
“응. 내가 그런 짓을 하는 게 싫고 미안하면서도,
그 사람 이가 꼭 보고 싶은 거야. 나, 그 사람 이 년 넘게 만났는데,
그렇게 자세하게 들여다본 건 처음이었어.
벌어진 입술 사이로 열 개 넘는 조그마한 치아가 보였어.
누르스름하고 고르지 않은, 작고 오래된 이들이.”
나는 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쪼그려 앉아, 삼십 년간 밥 씸어온
그 사람 이를 보는 순간, 이상하게 서글픈 생각이 들더라.”
“실망했어?”
“그런 게 아니야.”
언니는 말을 고르듯 머뭇거렸다.
“학교에서 치아 틀을 뜨다 보면 사람이 참 짐승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날은 뭐랄까,
애인이 아니라 나와 가장 가까운 짐승을 안고 있는 기분이 들었어.”
“.......”
이불을 펴고 자리에 누웠다.
방바닥엔 두 사람이 겨우 몸을 뉠 만한 자리밖에 없었다.
피아노 위로는 헤어드라이어와 라디오,
다리미 등 잡동사니가 올려졌다. 방안은 무슨 중고 가게 같았다.
창밖으로 지상의 길들이 전신주처럼 길게 드리워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길은 행인들의 발굽이 닿을 때마다,
새가 앉았다 날아간 자리처럼 가볍게 출렁였다.
문득 나의 하늘은 당신의 천장보다 낮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돌아누우며 언니에게 속삭였다.
“어쩐지 여기, 서울 같지 않아.”
언니가 잠 묻은 말투로 대꾸했다.
“서울 다 이래. 네가 아는 서울이 몇 곳 안 되는 것뿐이야.”
언니는 금세 곯아 떨어졌다.
나는 도시의 지하에 반듯이 누워 있었다.
창 사이론 자동차 불빛이 아른거리고,
피아노 그림자가 내 얼굴 위로 드리워졌다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나는 이따금 내 이를 만져보다 잠이 들었다.
언니의 컴퓨터는 엄마가 대학 입학 선물로 사준 거였다.
언니는 같은 과 친구를 따라 용산에서 조립식 컴퓨터를 샀다.
친구는 전자 상가 직원과 암호 같은 말을 주고받은 뒤,
마지막으로 언니에게 본체 케이스를 골라보라고 했다.
상가 한 쪽에는 여러 종류의 케이스가 궤짝처럼 쌓여 있었다.
언니는 그 중 하나를 수줍게 가리켰다.
갑옷처럼 투박하게 생긴 거였다.
친구가 놀란 표정으로
“여자애가 왜 그런 걸 고르냐?”고 묻자,
언니는 얼굴을 붉히며
“저게 가장 21세기 적인 느낌 같아서......”라고 답했다고 한다.
언니는 가장 21세기적인 컴퓨터와 함께 반지하에 살게 되었다.
21세기가 얼마나 슬림한 것인지 알게 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겠지만.
그것은 방 한쪽에 불룩하게 자리 잡았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인쇄소와 연결돼 학원 교재나 시험지를 만드는 일이었다.
처음엔 커피숍이나 호프집에서 서빙을 할 생각이었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내 상식으로는 아르바이트란 무릇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구인광고란에 적인
‘준수한 외모’ 라는 말의 진정한 뜻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준수할까 말까 한
‘귀여운’ 외모로, 다른 일을 찾아 벼룩시장을 훑어나갔다.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준다는 곳과,
믿을 수 없이 적은 돈을 준다는 곳 사이에,
A4 지 한 장당 1,500원을 주는 곳이 있었다.
그 돈이 많은 건지 적은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워드 작업 정도면 나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어깨도 결리고, 눈이 아픈데다,
타자 치랴, 오·탈자 확인하랴, 도표 갖다 붙이랴,
한자 표기까지 정신이 없었다.
인쇄소에서는 오·탈자가 날 경우 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그곳에선 정해진 시간에 결코 소화할 수 없는 양의 일을 주고,
아무렇지 않게 3일 안에 해달라고 했다.
나는 ‘당장 저만큼이면 얼마 벌 수 있겠다'란 생각에
덥석 일을 안고 와 시뻘게진 눈으로 밤을 새웠다.
언니의 컴퓨터는 디귿 키가 잘 먹지 않아 작업속도를 떨어트리곤 했다.
나는 신나게 손가락을 놀리다 번번이 디귿 키 앞에서 멈춰 섰다.
나는 도로 위에 뛰어든 사슴이라도 본 양 디귿만 보면 긴장했고,
그제야 세상에 디귿이 들어가는 글자가 얼마나 많은지 깨달으며
한탄해야 했다. 나는 목을 길게 뺀 채 모니터 앞에 붙박여 있었다.
언니는
“흑백은 눈에 가장 피로를 많이 주는 색이라던데”라며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100년 전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진보적인 기계 앞에서,
내 등은 네안데르탈인처럼 점점 굽어갔다.
언니는 편입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언니는 4년제 영문과에 들어가 어학연수도 가고,
취직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재수’나‘전학’이라는 말과 달리‘편입’이란 말은
묘한 빈곤감을 준다고 생각했다.
언니는
“세상에 영어 하나만 돼도 주어지는 기회가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며
훈수를 뒀다. 나는 언니가
‘영어 하나만 돼도 주어지는 기회가 많다’는 걸,
어째서 20대 초반이 다 지나서야 깨달은 것일까 의아했다.
언니는 문제집을 잔뜩 안고 와, 단어를 외우고 테이프를 청취했다.
내가 미친 듯이 타이핑을 하는 동안,
언니는 피아노 위에 문법책을 펼쳐 놓고 외국어를 웅얼거렸다.
밤마다, 조그마한 불빛들이 새어 나오는 이곳 반지하에는
타자 소리와, 영어 단어 외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어느 날 언니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볼펜을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야, ‘미래’가 어떻게 ‘완료’되냐?”
나는 지층 단면도를 따다 붙이다 말고,
키보드에 머리를 박으며 외쳤다.
“아! 과학이 제일 싫어!”
초여름이었다. 이따금 비가 오다 그쳤고, 다시 내렸다.
창 밖, 보도 위의 빗방울들이 수많은 원을 그리며
내 머리 위에 아름답게 떠 있었다. 비는,
하늘이 아닌 지상에서 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입 안에 건포도를 털어 넣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건포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그걸 먹으면 왠지 까맣게 졸아붙은 캘리포니아 햇빛을
씹어 먹는 기분이었다.
언니는 번화가에 있는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계산대 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언니는 새벽마다 어깨에 쌀 포대만한 졸음을 이고 학원에 갔고,
주말이면 다리 사이에 그 포대를 끼고 한없이 깊은 잠을 잤다.
언니는 종종 옛 애인과 통화했다.
그는 훌쩍이며 집 앞에 찾아오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이따금 비가 오다 그쳤고, 다시 내렸다.
나는 티브이 앞에 앉아 ‘오늘의 날씨’를 경청했다.
언니가 집을 비우면, 청소를 하고 손쉬운 반찬을 만들고
햇빛 알갱이가 들어있다는 합성세제로 빨래를 했다.
티브이에선 곧 장마가 시작될 거라는 소식을 전해 왔다.
나는 플라스틱 통에 든 습기 제거제를 사다 싱크대 안쪽과 옷장,
신발장에 넣어 두었다.
저축한 돈이 있으니 사소한 재해쯤이야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이었다.
나는 어서 학교에 가고 싶었다. 얼추 한 학기 등록금을 모았고,
무엇보다도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피로’나‘긴장’을 느끼고 싶었다.
긴장되는 옷을 입고, 긴장된 표정을 짓고, 평판을 의식하며,
사랑하고, 아첨하고, 농담하고, 험담하고,
계산적이거나 정치적인 인간도 한번 돼보고 싶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일 수도 있고 나쁜 사람일 수도 있지만,
사실 아무것도 될 수 없었다.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가전제품뿐이었다.
나는 냉장고에게 잘 보이거나, 전기밥통을 헐뜯고 싶지 않았다.
첫 월급을 탔을 때 누구를 만나,
어떻게 돈을 써야 할지 몰라 당황했었다.
이대로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는 일만 하다 죽을 수는 없다고,
매일 어깨에 의자를 이고 등교하는 아이처럼
평생 아르바이트만 하고 살 순 없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손가락이 나뭇가지처럼 기다랗게 자라나는 꿈을 꾸기도 했다.
나는 손가락만 진화한 인간 타자수가 되어
‘다음 중 맞는 답을 고르시오’라는 문장을 끊임없이 치고 있었다.
그리고 산더미만한 문제지를 들고 인쇄소에 찾아가면,
그걸 전부 나더러 풀라는 것이었다.
나는 건포도를 오물거리며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하고 안도했다.
‘8월에는 동대문에 옷을 사러 가야지.
화장은 언니에게 배우고, 아르바이트는 반드시 집밖에서 하는 걸로
해야겠다.’
도 다음에 레가 오는 것처럼 여름이 끝난 후
반드시 가을이 올 것 같았지만, 계절은 느릿느릿 지나가고,
우리의 청춘은 너무 환해서 창백해져 있었다.
방안은 눅눅했다. 자판을 치다 주위를 둘러보면,
습기 때문에 자글자글 운 공기가 미역처럼 나풀대며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벽지 위론 하나 둘 곰팡이 꽃이 피었다.
피아노 뒤에 벽은 상태가 더 심했다.
건반 하나라도 누르면 꼭 그 음의 파동만큼 날아올라,
곳곳에 포자를 흩날릴 것 같은 모양이었다.
나는 피아노가 썩을까 봐 걱정이었다.
몇 번 마른 걸레로 닦아봤지만 소용없었다.
우선 달력 몇 장을 찢어 피아노 뒷면에 덧대놓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곧 피아노 건반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시골에서부터 이고 온 것인데,
이대로 망가지면 억울할 것 같았다.
한날 마음을 먹고 피아노 의자 위에 앉았다.
그런 뒤 두 손으로 건반 뚜껑을 들어 올렸다.
손안에 익숙한 무게감이 전해져 왔다. 내가 알고 있는 무게감이었다.
곧 88개의 깨끗한 건반이 눈에 들어왔다.
악기는 악기답게 고요했다.
나는 건반 위에 손가락을 얹어보았다.
손목에 힘을 푼 채 뭔가 부드럽게 감아쥐는 모양을 하고.
서늘하고 매끄러운 감촉이 전해졌다.
조금만 힘을 주면 원하는 소리가 날 터였다.
밖에선 공사음이 들렸다.
며칠 전부터 주인집을 보수하는 소리였다.
문득 피아노를 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사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일단 그런 마음이 들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다.
한 음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소리는 금방 사라져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나는 용기 내어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도-”
도 는 방안에 갇힌 나방처럼 긴 선을 그리며 오래오래 날아다녔다.
나는 그 소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가슴 속 어떤 것이 엷게 출렁여 사그라지는 기분이었다.
도는 생각보다 오래 도- 하고 울었다.
나는 한 음이 완전하게 사라지는 느낌을 즐기려 눈을 감았다.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쿵쿵쿵쿵. 주먹으로 네 번이었다.
나는 얼른 피아노 뚜껑을 덮었다. 다시 쿵쿵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주인집 식구들이었다.
체육복을 입은 남자와 그의 아내, 두 아이가 나란히 서있었다.
사내아이는 아빠와 계집아이는 엄마와 똑 닮아있었다.
외식이라도 갔다 오는지 그들 모두 입에 이쑤시개를 물고 있었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학생, 혹시 좀 전에 피아노 쳤어?”
나는 천진하게 말했다.
“아닌데요.”
주인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친 거 같은데......”
나는 다시 아니라고 했다. 주인 남자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내가 곰팡이 얘길 꺼내자 “지하는 원래 그렇다.”고 말한 뒤,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방으로 돌아와 피아노 옆에 기대어 앉았다.
그런 뒤 무심코 휴대전화 폴더를 열었다.
휴대전화는 번호마다 고유한 음이 있어 단순한 연주가 가능했다.
1번은 도, 2번은 레,
높은 음은 별표나 영을 함께 누르면 되는 식이었다.
더듬더듬 버튼을 눌렀다.
미 솔미 레도시도 파, 미 솔미 레도시도 레레레 미.......
‘원래 그렇다’는 말 같은 거,
왠지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부터 폭우가 내렸다. 언니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늦는다고 했다.
벌써 퇴근했어야 하는 시간인데 정산을 잘못한 모양이었다.
언니는 계산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본 뒤,
안 맞을 경우 다시 계산기를 두드리고,
같은 일을 반복하며 밤을 새울 터였다.
나는 만두라면을 먹으며 연속극을 보고 있었다.
볼륨을 한껏 높였는데도 배우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리모컨을 잡으니 뭔가 축축한 게 만져졌다.
한참 손바닥을 들여다 본 후에야 그것이 빗물이란 걸 깨달았다.
나는 화들짝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관에서부터 물이 새고 있었다.
이물질이 잔뜩 섞인 새까만 빗물이었다.
그것은 벽지를 더럽히며 창틀 아래로 흘러내렸다.
벽면은 검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누군가의 얼굴 같았다.
허둥지둥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한참 만에 전화를 받았다.
언니는 의외로 담담했다. 그런 적이 몇 번 있다고,
걸레로 닦아내면 괜찮을 거라고 말한 뒤 바쁜 듯 전화를 끊었다.
언니가 그렇게 말해주니, 섭섭하면서도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멍하니 서있다,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렸다.
현관 앞 신발들을 모두 신발장 안에 넣고,
컴퓨터와 티브이 등 가전제품의 콘센트를 뽑았다.
피아노 주위엔 마른 수건 몇 장을 단단히 둘러놓았다.
방바닥에 고인 물은 걸레로 훔쳐내면 될 일이었다.
나는 걸레로 바닥을 닦은 뒤 세숫대야에 물을 짜내고
훔쳐내는 일을 반복했다. 구정물은 화장실에 버리고,
마른 수건으로 한 번 더 물기를 없앴다.
순서대로 일을 처리하다 보니 언니 말대로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쯤 내가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한바탕 집안을 정리하고 숨을 돌리며 허리를 폈다.
그리고 상쾌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조금 전 물기를 닦아낸 곳에 다시 빗물이 고여 있었다.
아까보다 더 많은 양이었다. 나는 하얗게 질려 언니에게 전화했다.
“ 언니.”
언니가 주위 눈치를 보는 듯 조그맣게 대꾸했다.
“왜?”
나는 울먹이며 말했다.
“비 와.”
언니가 한숨을 쉬며 답했다.
“그래, 아까도 말했잖아.”
나는 아이처럼 훌쩍였다.
“응, 근데 자꾸 와.”
언니는 조용히 나를 타이르며 집으로 갈 테니,
그때까지만 참으라고 했다.
“언제 올 건데?”
언니는 모르겠다고, 하지만 곧 가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물은 발등까지 차올랐다.
빗물에서 매캐하고 비릿한 도시 냄새가 났다.
주인집에 도움을 청할까 싶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어쨌든 다시 일을 시작해야 했다.
우선 컴퓨터 전선을 한데 묶어 서랍장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쓰레받기를 이용해 빗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물은 계단과 창문을 타고 자꾸자꾸 들어왔다.
안되겠다 싶어 쓰레받기 대신 바가지를 이용했다.
내 손은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온몸에 땀인지 빗물인지 모를 것이 흘러내렸다.
밖에선 천둥소리가 났다. 무모한 일을 하는 것 같아 힘이 빠졌지만,
가만히 있을 수만도 없었다. 방에서 휴대전화 벨소리가 났다.
재빨리 달려가 폴더를 열었다.
“언니야?”
전화기 너머,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야.”
나는 당황했다. 아빠가 우리에게 먼저 전화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나는 이마에 땀을 훔치며 대답했다.
“어? 어.......”
아빠는 내게 “잘 지내냐”고 물었다.
잠시 고민하다
“그렇다”고 답했다.
말주변이 없는 아빠는 통화할 때마다 늘 같은 말만 물어왔다.
다음 말은 아마 ‘저녁 먹었냐?’쯤 될 것이다.
“저녁 먹었니?”
나는 그렇다고 했다. 아빠는 뜸을 들이다
“뭘 먹었냐”고 물었다.
나는 시시한 대꾸를 한 뒤 침묵했다.
아빠는 내게 아르바이트는 잘하고 있는지, 언니는 어떻게 지내는지,
집에는 언제 내려올 건지 물었다.
나는 어색한 듯 예의 바르게 말을 이었다. 침묵이 흘렀다.
누군가 서둘러 작별인사를 하거나, 다른 화제를 꺼내야 했다.
아빠가 먼저 입을 열었다. 돈 얘기였다.
도와달란 말은 없었지만, 도와달란 말이었다.
나는 한참동안 아빠 말을 경청했다. 얼추 내 등록금과 맞먹는 돈이었다.
나는 물에 불은 맨발을 방바닥에 비벼댔다. 그러곤
“어떻게 해보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세상은 비 닿는 소리로 가득했다.
바가지를 든 채 우두커니 서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나는 현관으로 달려가 반갑게 소리쳤다.
“언니야?”
웬 그림자 하나가 스윽- 나타났다. 무서운 얼굴을 한 사내였다.
나는 뒤로 자빠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손등 위로 출렁 빗물이 느껴졌다.
사내는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후들후들 떨며
“누구세요? 라고 말했다.
폭우에, 부채에, 겁탈까지 당할 생각을 하니
뭐 이따위 인생이 다 있나 서러워지려는 참이었다.
서내는 나를 노려보다 신발장 옆으로 고꾸라졌다.
그러더니 신발장에 볼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미영아.......”
언니의 이름이었다. 나는 그가 언니의 예전 애인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는 조그마한 체구에 순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조금 귀염성 있는 얼굴이기도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사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끝으로 사내의 어깨를 건드렸다.
사내는 도- 하고 울지 않고, 음냐-하고 뒤척였다.
“저기요.”
사내는 꼼짝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사내를 깨웠다.
“저기요.”
사내는 눈을 크게 뜨더니, 멍청하게 나를 바라봤다.
여기가 어딘지, 내가 누군지 모르는 눈치였다.
“여기 이렇게 계시면 안 돼요. 일어나세요.”
사내는 빗물에 흠뻑 젖어있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눈을 감았다.
사내를 옮기고 싶었지만, 곳곳에 물이 흘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둘까?”
사내가 현관 앞에 있으면 물을 퍼낼 수 없었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까 싶었지만,
눈치를 보며 쉬쉬 말하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곧 온다고 했으니까,
오면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사내를 우선 옮겨 놓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사내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사내는 문어처럼 흐느적거렸다.
어깨에 사내의 팔을 걸치고 한 발 한 발 자리를 옮겼다.
사내는 무너지고, 쓰러지고, 주저앉았다.
“아저씨!”
사내는 고꾸라진 뒤, 차가움에 놀라 부르르 떨다 다시 코를 골았다.
“저기요!”
그는 ‘음냐’ 하고 몸을 뒤척였다.
성질이 났지만 그대로 둘 순 없었다.
물은 정강이까지 올라와 있었다.
책장 아래 칸의 책들은 빗물에 퉁퉁 불어가고 있었다.
그중에는 언니가 아직 풀지 못한 영어 문제집도 있었다.
나는 가까스로 사내를 옮겨 피아노 의자 위에 누일 수 있었다.
사내는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몸통이 기역 자로 꺾여,
발목은 물에 잠긴 채였다. 나는 한숨을 쉰 뒤 사내를 바라봤다.
양 볼이 불그스레한 게 좀 모자라 보였다.
한참 사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언니가 말한 이 얘기가 떠올랐다.
그러자 나도 사내의 이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신속하게, 잠깐만 보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
나는 사내의 입술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는 자세가 불편한지 돌아누웠다.
나는 다급히 손을 거두며 스스로를 책망했다.
셋방이 물에 잠겨 가는데 무슨 짓인가 싶었다.
빗물은 어느새 무릎까지 차있었다.
나는 피아노가 물에 잠겨 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저대로 두다간 못 쓰게 될 게 분명했다.
순간 ‘쇼바’를 잔뜩 올린 오토바이 한 대가 부르릉-
가슴을 긁고 가는 기분이 들었다.
오토바이가 일으키는 흙먼지 사이로
수천 개의 만두가 공기 방울처럼 떠올랐다 사라졌다.
언니의 영어 교재도, 컴퓨터와 활자 디귿도,
아버지의 전화도, 우리의 여름도 모두 하늘 위로 떠올랐다
톡톡 터져버렸다. 나는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깨끗한 건반이 한눈에 들어왔다.
건반 위에 가만히 손가락을 얹어보았다.
엄지는 도, 검지는 레, 중지와 약지는 미 파.
아무 힘도 주지 않았는데 어떤 음 하나가 긴소리로 우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도-”
도는 긴 소리를 내며 방 안을 날아다녔다. 나는 레를 짚었다.
“레-”
사내가 자세를 틀어 기역 자로 눕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편안하게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손끝에서 돋아나는 음표들이 눅눅했다.
“솔 미 도레 미파솔라솔.......”
물에 잠긴 페달에 뭉텅뭉텅 공기 방울이 새어 나왔다.
음은 천천히 날아올라 어우러졌다 사라졌다.
“미미 솔 도라 솔.......”
사내의 몸에서 만두처럼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빗줄기는 거세졌다 잦아지길 반복하고,
검은 비가 출렁이는 반지하에서 나는 피아노를 치고,
발목이 물에 잠긴 채 그는 어떤 꿈을 꾸는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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