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 허생전(許生傳) " - 채 만 식 - 1 허생(許生)은 오늘도 아침부터 그 초라한 의관을 단정히 갖추고 단정히 서안 앞에 앉아 일심으로 글을 읽고 있다. 어제 아침을 멀건 죽 한 보시기로 때우고, 점심은 늘 없어왔거니와 저녁과 오늘 아침을 끓이지 못하였으니, 하루낫 하룻밤이요 꼬바기 세 끼를 굶은 참이었다. 그러니, 시장하긴들 조옴 시장하련마는, 굶기에 단련이 되어 그런지 글에 정신이 쏠리어 그런지, 혹은 참으며 내색을 아니하여 그러는지, 아뭏든 허생은 별로 시장하여 하는 빛이 없고, 글 읽는 소리도 한결같이 낭랑하다. 서울 남산 밑 묵적골이라고 하면, 가난하고 명색 없는 양반 나부랑이와 궁하고 불우한 선비와 이런 사람들만 모여 살기로 예로부터 이름난 동네였다. 집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