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빈처 (貧妻) - 현진건 -

하얀모자 1 2023. 8. 1.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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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처 (貧妻)
 
                                                                                 - 현진건 -
1
 
“그것이 어째 없을까?”
 
아내가 장문을 열고 무엇을 찾더니 입안말로 중얼거린다.
 
“무엇이 없어?”
 
나는 우두커니 책상머리에 앉아서 책장만 뒤적뒤적하다가 물어 보았다.
 
“모본단 저고리가 하나 남았는데…….”
 
“……”
 
나는 그만 묵묵하였다.
아내가 그것을 찾아 무엇 하려는 것을 앎이라. 오늘 밤에 옆집 할멈을
시켜 잡히려 하는 것이다. 이 2년 동안에 돈 한 푼 나는 데는 없고
그대로 주리면 시장할 줄 알아, 기구(器具)와 의복을 전당국
창고(典當局倉庫)에 들이밀거나 고물상 한구석에 세워 두고 돈을 얻어
오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아내가 하나 남은 모본단 저고리를
찾는 것도 아침거리를 장만하려 함이라.
나는 입맛을 쩍쩍 다시고 폈던 책을 덮으며 후 - 한숨을 내쉬었다.
봄은 벌써 반이나 지났건마는 이슬을 실은 듯한 밤기운이
방구석으로부터 슬금슬금 기어나와 사람에게 안기고
비가 오는 까닭인지 밤은 아직 깊지 않건만 인적조차 끊어지고
온 천지가 빈 듯이 고요한데 투닥투닥 떨어지는 빗소리가 한없는
 구슬픈 생각을 자아낸다.
 
“빌어먹을 것 되는 대로 되어라.”
 
나는 점점 견딜 수 없어 두 손으로 흩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올리며 중얼거려 보았다.
 이 말이 더욱 처량한 생각을 일으킨다. 나는 또 한번,
 
“후 -” 한숨을 내쉬며 왼팔을 베고 책상에 쓰러지며 눈을 감았다.
 
이 순간에 오늘 지낸 일이 불현듯 생각이 난다.
늦게야 점심을 마치고 내가 막 궐련[卷煙] 한 개를 피워 물 적에
한성은행(漢城銀行) 다니는 T가 공일이라고 놀러 왔었다.
친척은 다 멀지 않게 살아도 가난한 꼴을 보이기도 싫고
찾아갈 적마다 무엇을 뀌어 내라고 조르지도 아니하였건만 행여나
무슨 구차한 소리를 할까 봐서 미리 방패막이를 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듯하여 나는 발을 끊고 따라서 찾아오는 이도 없었다.
다만 이 T는 촌수가 가까운 까닭인지 자주 우리를 방문하였다.
그는 성실하고 공순하며 소소한 소사(小事)에 슬퍼하고 기뻐하는
인물이었다. 동년배(同年輩)인 우리 둘은 늘 친척간에
비교(比較) 거리가 되었었다. 그리고 나의 평판이 항상 좋지 못했다.
 
“T는 돈을 알고 위인이 진실해서 그 애는 돈푼이나 모을 것이야!
  그러나 K(내 이름)는 아무짝에도 못 쓸 놈이야. 그 잘난 언문(諺文)
  섞어서 무어라고 끄적거려 놓고 제 주제에
  무슨 조선에 유명한 문학가가 된다니! 시러베아들놈!”
 
이것이 그네들의 평판이었다. 내가 문학인지 무엇인지 하는 소리가
까닭없이 그네들의 비위에 틀린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그네들의
생일이나 혹은 대사(大事) 때에 돈 한푼 이렇다는 일이 없고
T는 소위 착실히 돈벌이를 하여 가지고 국수밥소래나
 보조를 하는 까닭이다.
 
“얼마 아니 되어 T는 잘살 것이고 K는 거지가 될 것이니 두고 보아!”

오촌 당숙은 이런 말씀까지 하였다 한다.
입 밖에는 아니 내어도 친부모 친형제까지라도 심중(心中)으로는
다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도 부모는 달라서 화가 나시면,
 
“네가 그리하다가는 말경(末境)에 비렁뱅이가 되고 말 것이야”
 
라고 꾸중은 하셔도, 
 
 “사람이란 늦복 모르느리라”
 “그런 사람은 또 그렇게 되느니라”
 
하시는 것이 스스로 위로하는 말씀이고 또 며느리를 위로하는
말씀이었다. 이것을 보아도 하는 수 없는 놈이라고 단념(斷念)을
하시면서 그래도 잘되기를 바라시고 축원하시는 것을 알겠더라.
여하간 이만하면 T의 사람됨을 가히 알 수가 있다.
그러고 그가 우리집에 올 것 같으면 지어서 쾌활하게 웃으며 힘써
자미스러운 이야기를 하였다.
단둘이 고적(孤寂)하게 그날그날을 보내는 우리에게는
더할 수 없이 반가웠었다.
오늘도 그가 활발하게 집에 쑥 들어오더니 신문지에 싼 기름한 것을
 
‘이것 봐라’
 
 하는 듯이 마루 위에 올려놓고 분주히 구두끈을 끄른다.
 
“이것은 무엇인가!”
 
나는 물어 보았다.
 
“저 - 제 처의 양산(洋傘)이야요. 쓰던 것이 벌써 다 낡았고
    또 살이 부러졌다나요.”
 
그는 구두를 벗고 마루에 올라서며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여
벙글벙글 하면서 대답을 한다. 그는 나의 아내를 보며 돌연히,
 
“아주머니 좀 구경하시렵니까?”
 
하더니 싼 종이와 집을 벗기고 양산을 펴 보인다.
흰 비단 바탕에 두어 가지 매화를 수놓은 양산이었다.
 
“검정이는 좋은 것이 많아도 너무 칙칙해 보이고……
   회색이나 누렁이는 하나도 그것이야 싶은 것이 없어서
   이것을 산걸요.”
 
그는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을 살 수가 있나’
 하는 뜻을 보이려고 애를 쓰며 이런 발명까지 한다.
 
“이것도 퍽 좋은데요.”
 
이런 칭찬을 하면서 양산을 펴 들고 이리저리 홀린 듯이 들여다보고
있는 아내의 눈에는, 
 
‘나도 이런 것을 하나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 역력(歷歷)히 보인다.
나는 갑자기 불쾌한 생각이 와락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오며 아내의
양산 보는 양을 빙그레 웃고 바라보고 있는 T에게,
 
“여보게, 방에 들어오게그려, 우리 이야기나 하세.”
 
T는 따라 들어와 물가폭등에 대한 이야기며 자기의 월급이
오른 이야기며 주권(株券)을 몇 주 사두었더니 꽤 이익이 남았다든가
이번 각 은행 사무원 경기회(競技會)에서 자기가 우월한 성적을
얻었다든가 이런 것 저런 것 한참 이야기하다가 돌아갔었다.
T를 보내고 책상을 향하여 짓던 소설의 결미(結尾)를 생각하고
 있을 즈음에,
 
“여보!”
 
아내의 떠는 목소리가 바로 내 귀 곁에서 들린다.
핏기 없는 얼굴에 살짝 붉은빛이 돌며 어느결에 내 곁에 바싹
 다가 앉았더라.
 
“당신도 살 도리를 좀 하셔요.”
 
“……”
 
나는 또 ‘시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머리에 번쩍이며
불쾌한 생각이 벌컥 일어난다.
그러나 무어라고 대답 할 말이 없이 묵묵히 있었다.
 
“우리도 남과 같이 살아 보아야지요!”
 
아내가 T의 양산에 단단히 자극(刺戟)을 받은 것이다.
예술가의 처 노릇을 하려는 독특(獨特)한 결심이 있는 그는
좀처럼 이런 소리를 입 밖에 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무엇에 상당한 자극만 받으면 참고 참았던 이런 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나도 이런 소리를 들을 적마다 ‘그럴 만도 하다’는
동정심이 없지 아니하나 심사가 어쩐지 좋지 못하였다.
이번에도 ‘그럴 만도 하다’는 동정심이 없지 아니하되 또한 불쾌한
생각을 억제키 어려웠다. 잠깐 있다가 불쾌한 빛을 드러내며,
 
“급작스럽게 살 도리를 하라면 어찌할 수가 있소.
   차차 될 때가 있겠지!”
 
“아이구, 차차란 말씀 그만두구려, 어느 천년에…….”
 
아내의 얼굴에 붉은빛이 짙어지며 전에 없던 흥분한 어조로
이런 말까지 하였다. 자세히 보니 두 눈에 은은히 눈물이 괴었더라.
나는 잠시 멍멍하게 있었다. 성낸 불길이 치받쳐 올라온다.
나는 참을 수없다.
 
“막벌이꾼한테 시집을 갈 것이지 누가 내게 시집을 오랬어!
  저 따위가 예술가의 처가 다 뭐야!”
 
사나운 어조로 몰풍스럽게 소리를 꽥 질렀다.
 
“에그……!”
 
살짝 얼굴빛이 변해지며 어이없이 나를 보더니 고개가 점점 수그러지며
한 방울 두 방울 방울방울 눈물이 장판 위에 떨어진다.
나는 이런 일을 가슴에 그리며 그래도 내일 아침거리를 장만하려고
옷을 찾는 아내의 심중을 생각해 보니, 말할 수 없는 슬픈 생각이
가을 바람과 같이 설렁설렁 심골(心骨)을 분지르는 것 같다.
쓸쓸한 빗소리는 굵었다 가늘었다 의연(依然)히 적적한 밤공기에
더욱 처량히 들리고 그을음 앉은 등피(燈皮) 속에서 비추는 불빛은
구름에 가린 달빛처럼 우는 듯 조는 듯 구차(苟且)히 얻어 산
몇 권 양책(洋冊)의 표제(表題) 금자가 번쩍거린다.
 
 2
장 앞에 초연히 서 있던 아내가 무엇이 생각났는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들릴 듯 말 듯 목 안의 소리로,
 
“으흐…… 옳지 참 그날…….”
 
“찾었소!”
 
“아니야요, 벌써…… 저 인천(仁川) 사시는 형님이 오셨던 날…….”
 
“……”
 
아내가 애써 찾던 그것도 벌써 전당포의 고운 먼지가 앉았구나!
종지 하나라도 차근차근 아랑곳하는 아내가 그것을 잡혔는지
아니 잡혔는지 모르는 것을 보면 빈곤(貧困)이 얼마나 그의 정신을
물어뜯었는지 가히 알겠다.
 
“……”
 
“……”
 
한참 동안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가슴이 어째 답답해지며 누구하고
싸움이나 좀 해보았으면 소리껏 고함이나 질러 보았으면
실컷 울어 보았으면 하는 일종 이상한 감정이 부글부글 피어 오르며,
전신에 이가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듯 옷이 어째 몸에 끼여
견딜 수가 없다. 나는 이런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점점 구차한 살림에 싫증이 나서 못 견디겠지?”
 
아내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르게 정신을 잃고 섰다가
 그 게슴츠레한 눈이 둥그래지며,
 
“네에? 어째서요?”
 
“무얼 그렇지!”
 
“싫은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이렇게 말이 오락가락함을 따라 나는 흥분의 도(度)가 점점 짙어 간다.
그래서 아내가 떨리는 소리로,
 
“어째 그런 줄 아셔요?”
 
하고 반문할 적에,
 
“나를 숙맥(菽麥)으로 알우?”
 
라고, 격렬(激烈)하게 소리를 높였다.
아내는 살짝 분한 빛이 눈에 비치어 물끄러미 나를 들여다본다.
나는 괘씸하다는 듯이 흘겨보며,
 
“그러면 그걸 모를까! 오늘날까지 잘 참아 오더니 인제는 점점
  기색이 달라지는걸 뭐! 물론 그럴 만도 하지마는!”
 
이런 말을 하는 내 가슴에는 지난 일이 활동사진 모양으로
얼른얼른 나타난다.
육 년 전에(그때 나는 십육세이고 저는 십팔 세였다)
우리가 결혼한 지 얼마 아니 되어 지식에 목마른 나는 지식의
바닷물을 얻어 마시려고 표연히 집을 떠났었다.
광풍(狂風)에 나부끼는 버들잎 모양으로 오늘은 지나(支那)
내일은 일본으로 굴러다니다가 금전의 탓으로 지식의 바닷물도 흠씬
마셔 보지도 못하고 반거들충이가 되어 집에 돌아오고 말았다.
내게 시집 올 때에는 방글방글 피려는 꽃봉오리 같던 아내가 어느결에
기울어 가는 꽃처럼 두 뺨에 선연(鮮姸)한 빛이 스러지고 이마에는
벌써 두어 금 가는 줄이 그리어졌다.
처가덕으로 집간도 장만하고 세간도 얻어 우리는 소위 살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지내었지마는 한푼 나는 데 없는
살림이라 한 달 가고 두 달 갈수록 점점 곤란해질 따름이었다.
나는 보수(報酬) 없는 독서와 가치 없는 창작으로 해가 지고 날이
새며 쌀이 있는지 나무가 있는지 망연케 몰랐다.
그래도 때때로 맛있는 반찬이 상에 오르고 입은 옷이 과히 추하지
아니함은 전혀 아내의 힘이었다. 전들 무슨 벌이가 있으리요,
부끄럼을 무릅쓰고 친가에 가서 눈치를 보아 가며 구차한 소리를 하여
가지고 얻어 온 것이었다. 그것도 한번 두번 말이지 장구한 세월에
어찌 늘 그럴수가 있으랴! 말경에는 아내가 가져온 세간과 의복에
손을 대는 수밖에 없었다.
잡히고 파는 것도 나는 알은체도 아니 하였다.
그가 애를 쓰며 퉁명스러운 옆집 할멈에게 돈푼을 주고 시켰었다.
이런 고생을 하면서도 그는 나의 성공만 마음속으로 깊이깊이 믿고
빌었었다.
어느 때에는 내가 무엇을 짓다가 마음에 맞지 아니하여 쓰던 것을
집어던지고 화를 낼 적에,
 
“왜 마음을 조급하게 잡수셔요! 저는 꼭 당신의 이름이
  세상에 빛날 날이 있을 줄 믿어요. 우리가 이렇게 고생을 하는 것이
  장래에 잘 될 근본이야요.”
 
하고 그는 스스로 흥분되어 눈물을 흘리며 나를 위로한 적도 있었다.
내가 외국으로 돌아다닐 때에 소위 신풍조(新風潮)에 띄어 까닭 없이
구식 여자가 싫어졌다.
그래서 나의 일찍이 장가 든 것을 매우 후회하였다.
어떤 남학생과 어떤 여학생이 서로 연애를 주고받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적마다 공연히 가슴이 뛰놀며 부럽기도 하고 비감(悲感)스럽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낫살이 들어갈수록 그런 생각도 없어지고 집에 돌아와 아내를
겪어 보니 의외에 그에게 따뜻한 맛과 순결한 맛을 발견하였다.
그의 사랑이야말로 이기적 사랑이 아니고 헌신적(獻身的) 사랑이었다.
이런 줄을 점점 깨닫게 될 때에 내 마음이 얼마나 행복스러웠으랴!
밤이 깊도록 다듬이를 하다가 그만 옷 입은 채로 쓰러져 곤하게 자는
그의 파리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아아, 나에게 위안을 주고 원조를 주는 천사여!”
 
하고 감격이 극하여 눈물을 흘린 일도 있었다.
내가 알다시피 내가 별로 천품은 없으나 어쨌든 무슨 저작가(著作家)로
몸을 세워 보았으면 하여 나날이 창작과 독서에 전심력을 바쳤다.
물론 아직 남에게 인정(認定)될 가치는 없는 것이다.
그 영향으로 자연 일상생활이 말유(末由)하게 되었다.
이런 곤란에 그는 근 이 년 견디어 왔건마는 나의 하는 일은
오히려 아무 보람이 없고 방 안에 놓였던 세간이 줄어 가고 장농에
찼던 옷이 거의 다 없어졌을 뿐이다.
그 결과 그다지 견딜성 있던 저도 요사이 와서는 때때로 쓸데없는
탄식을 하게 되었다. 손잡이를 잡고 마루 끝에 우두커니 서서
하염없이 먼산만 바라보기도 하며 바느질을 하다 말고 실심(失心)한
사람 모양으로 멍멍히 앉았기도 하였다.
창경(窓鏡)으로 비치는 어스름한 햇빛에 나는 흔히 그의 눈물 머금은
근심 있는 눈을 발견하였다. 이럴 때에는 말할 수 없는
쓸쓸한 생각이 들며 일없이,
 
“마누라!”
 
하고 부르면 그는 몸을 흠칫 하고 고개를 저리로 돌리어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씻으며,
 
“네에?”
 
하고 울음에 떨리는 가는 대답을 한다.
나는 등에 찬물을 끼얹는 듯 몸이 으쓱해지며 처량한 생각이 싸늘하게
가슴에 흘렀었다. 그렇지 않아도 자비(自卑)하기 쉬운 마음이
 더욱 심해지며,
 
‘내가 무자격한 탓이다.’
 
하고 스스로 멸시를 하고 나니 더욱 견딜 수 없다.
 
‘그럴 만도 하다.’
 
는 동정심이 없지 아니하되 그래도 그만 불쾌한 생각이 일어나며,
 
‘계집이란 할 수 없어.’
 
혼자 이런 불평을 중얼거리었다.
환등(幻燈) 모양으로 하나씩 둘씩 이런 일이 가슴에 나타나니
무어라고 말할 용기조차 없어졌다. 나의 유일의 신앙자(信仰者)이고
위로자이던 저 까지 인제는 나를 아니 믿게 되고 말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네가 육 년 동안 내 살을 깎고 저미었구나! 이 원수야!’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매 그의 불 같던 사랑까지 엷어져 가는 것
같았다. 아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 것 같았다.
나는 감상적으로 허둥허둥하며,
 
“낸들 마누라를 고생시키고 싶어 시켰겠소!
   비단옷도 해주고 싶고 좋은 양산도 사주고 싶어요!
   그러길래 왼종일 쉬지 않고 공부를 아니 하우. 남 보기에는 편편히
   노는 것 같아도 실상은 그렇지 안해! 본들 모른단 말이요.”
 
나는 점점 강한 가면(假面)을 벗고 약한 진상(眞相)을 드러내며
이와 같은 가소로운 변명까지 하였다.
 
“왼 세상 사람이 다 나를 비소(誹笑)하고 모욕하여도 상관이 없지만
  마누라까지 나를 아니 믿어 주면 어찌한단 말이요.”
 
내 말에 스스로 자극이 되어 마침내,
 
“아아.”
 
길이 탄식을 하고 그만 쓰러졌다. 이 순간에 고개를 숙이고
아마 하염없이 입술만 물어뜯고 있던 아내가 홀연,
 
“여보!”
 
울음 소리를 떨면서 무너지는 듯이 내 얼굴에 쓰러진다.
 
“용서…….”
 
하고는 북받쳐 나오는 울음에 말이 막히고 불덩이 같은 두 뺨이
내 얼굴을 누르며 흑흑 느끼어 운다. 그의 두 눈으로 부터 샘솟듯
하는 눈물이 제 뺨과 내 뺨 사이를 따뜻하게 젖어 퍼진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린다.
뒤숭숭하던 생각이 다 이 뜨거운 눈물에 봄눈 슬듯 스러지고 말았다.
한참 있다가 우리는 눈물을 씼었다. 내 속이 얼마큼 시원한 듯하였다.
 
“용서하여 주셔요! 그렇게 생각하실 줄은 몰랐어요.”
 
이런 말을 하는 아내는 눈물에 불어오른 눈꺼풀을 아픈 듯이
꿈적거린다.
 
“암만 구차하기로니 싫증이야 날까요!
   나는 한번 먹은 마음이 있는데…….”
 
가만가만히 변명을 하는 아내의 눈물 흔적이 어룽어룽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겨우 심신이 가뜬하였다.
 
 3
어제 일로 심신이 피곤하였던지 그 이튿날 늦게야 잠을 깨니
간밤에 오던 비는 어느결에 그치었고 명랑한 햇발이 미닫이에
높았더라. 아내가 다시금 장문을 열고 잡힐 것을 찾을 즈음에 누가
중문을 열고 들어온다. 우리는 누군가 하고 귀를 기울일 적에 밖에서,
 
“아씨!”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는 급히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는 처가에서 부리는 할멈이었다.
 
오늘이 장인 생신이라고 어서 오라는 말을 전한다.
 
“오늘이야! 참 옳지, 오늘이 이월 열엿샛날이지,
    나는 깜빡 잊었어!”
 
“원 아씨는 딱도 하십니다. 어쩌면 아버님 생신을 잊으신단 말씀이요.
  아무리 살림이 자미가나시더래도…….”
 
시큰둥한 할멈은 선웃음을 쳐가며 이런 소리를 한다.
가난한 살림에 골몰하느라고 자기 친부의 생신까지 잊었는가 하매
아내의 정지(情地)가 더욱 측은하였다.
 
“오늘이 본가 아버님 생신이라요. 어서 오시라는데…….”
 
“어서 가구려…….”
 
“당신도 가셔야지요. 우리 같이 가셔요.”
 
하고 아내는 하염없이 얼굴을 붉힌다.
나는 처가에 가기가 매우 싫었었다.
그러나 아니 가는 것도 내 도리가 아닐 듯하여 하는 수 없이
두루마기를 입었다.
아내는 머뭇머뭇하며 양미간을 보일 듯 말 듯 찡그리다가 곁눈으로
살짝 나를 엿보더니 돌아서서 급히 장문을 연다.
 
‘흥, 입을 옷이 없어서 망설거리는구나’
 
나도 슬쩍 돌아서며 생각하였다. 우리는 서로 등지고 섰건만
그래도 아내가 거의 다 빈 장 안을 들여다 보며 입을 만한 옷이 없어
눈살을 찌푸린 양이 눈앞에 선연함을 어찌할 수 가 없었다.
 
“자아, 가셔요.”
 
무엇을 생각는지 모르게 정신을 잃고 섰다가 아내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나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돌리었다.
아내는 당목옷을 갈아입고 내 마음을 알았던지 나를 위로하는 듯이
방그레 웃는다. 나는 더욱 쓸쓸하였다.
우리집은 천변 배다리 곁에 있고 처가는 안국동에 있어 그 거리가
꽤 멀었다. 나는 천천히 가느라고 가고 아내는 속히 오느라고 오건마는
그는 늘 뒤떨어졌었다. 내가 한참 가다가 뒤를 돌아보면 그는 늘 멀리
떨어져 나를 따라오려고 애를 쓰며 주춤주춤 걸어온다.
길가에 다니는 어느 여자를 보아도 거의 다 비단옷을 입고 고운 신을
신었는데 아내만 당목옷을 허술하게 차리고 청목당혜로 타박타박
걸어오는 양이 나에게 얼마나 애연(哀然)한 생각을 일으켰는지!
한참 만에 나는 넓고 높은 처가 대문에 다다랐다.
내가 안으로 들어갈 적에 낯선 사람들이 나를 흘끔흘끔 본다.
 그들의 눈에,
 
‘이 사람이 누구인가. 아마 이 집 하인인가 보다.’
 
하는 경멸히 여기는 빛이 있는 것 같았다. 안 대청 가까이 들어오니
모두 내게 분분히 인사를 한다. 그 인사하는 소리가 내 귀에는
어째 비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모욕하는 것 같기도 하여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후끈거리었다.
그 중에 제일 내게 친숙하게 인사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아내보다 삼 년 맏이인 처형이었다.
내가 어려서 장가를 들었으므로 그때 그는 나를 못 견디게 시달렸다.
그때는 그가 싫기도 하고 밉기도 하더니 지금 와서는 그때
그러한 것이 도리어 우리를 무관하고 정답게 만들었다.
그는 인천 사는데 자기 남편이 기미(期米)를 하여 가지고 이번에
돈 십만원이나 착실히 땄다한다.
그는 자기의 잘사는 것을 자랑하고자 함인지 비단을 내리감고 치감고
얼굴에 부유한 태(態)가 질질 흐른다.
그러나 분으로 숨기려고 애쓴 보람도 없이 눈 위에 퍼렇게 멍든 것이
내 눈에 띄었다.
 
“왜 마누라는 어쩌고 혼자 오셔요!”
 
그는 웃으며 이런 말을 하다가 중문편을 바라보더니,
 
“그러면 그렇지! 동부인 아니하고 오실라구!”
 
혼자 주고받고 한다.
나도 이 말을 듣고 슬쩍 돌아다보니
아내가 벌써 중문 안에 들어섰더라.
그 수척한 얼굴이 더욱 수척해 보이며 눈물 괸 듯한 눈이 하염없이
웃는다. 나는 유심히 그와 아내를 번갈아 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은 분간을 못 하리만큼 그들의 얼굴은 혹사(酷似)하다.
그런데 얼굴빛은 어쩌면 저렇게 틀리는지! 하나는 이글이글 만발한
꽃 같고 하나는 시들시들 마른 낙엽 같다.
아내를 형이라 하고, 처형을 아우라 하였으면 아무라도 속을 것이다.
또 한번 아내를 보며 말할 수 없는 쓸쓸한 생각이 다시금
가슴을 누른다.
딴 음식은 별로 먹지도 아니하고 못 먹는 술을 넉 잔이나 마시었다.
그래도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앉아 견딜 수가 없다.
집에 가려고 나는 몸을 일으켰다. 골치가 띵 하며 내가 선 방바닥이
마치 폭풍에 도도(滔滔)하는 파도같이 높았다 낮았다 어질어질해서
곧 쓰러질 것 같다. 이 거동을 보고 장모가 황망(惶忙)히 일어서며,
 
“술이 저렇게 취해 가지고 어데로 갈라구.
    여기서 한잠 자고 가게.”
 
나는 손을 내저으며,
 
“아니에요. 집에 가겠어요.”
 
취한 소리로 중얼거리었다.
 
“저를 어쩌나!”
 
장모는 걱정을 하시더니,
 
“할멈! 어서 인력거 한 채 불러오게.”
 
한다.
취중에도 인력거를 태우지 말고 그 인력거 삯을 나를 주었으면
책 한 권을 사보련만 하는 생각이 있었다.
인력거를 타고 얼마 아니 가서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한참 자다가 잠을 깨어 보니 방 안에 벌써 남폿불이 키었는데
아내는 어느결에 왔는지 외로이 앉아 바느질을 하고 화로에서는
무엇이 끓는 소리가 보글보글하였다.
아내가 나의 잠 깬 것을 보더니 급히 화로에 얹은 것을 만져 보며,
 
“인제 그만 일어나 진지를 잡수셔요.”
 
하고 부리나케 일어나 아랫목에 파묻어 둔 밥그릇을 꺼내어 미리
차려 둔 상에 얹어서 내 앞에 갖다 놓고 일변 화로를 당기어
 더운 반찬을 집어 얹으며,
 
“자아 어서 일어나셔요.”
 
나는 마지못하여 하는 듯이 부시시 일어났다.
머리가 오히려 아프며 목이 몹시 말라서 국과 물을 연해 들이켰다.
 
“물만 잡수셔서 어째요. 진지를 좀 잡수셔야지.”
 
아내는 이런 근심을 하며 밥상머리에 앉아서 고기도 뜯어 주고
생선 뼈도 추려 주었다. 이것은 다 오늘 처가에서 가져 온 것이다.
나는 맛나게 밥 한 그릇을 다 먹었다.
내 밥상이 나매 아내가 밥을 먹기 시작한다.
그러면 지금껏 내 잠 깨기를 기다리고 밥을 먹지 아니하였구나
하고 오늘 처가에서 본 일을 생각하였다.
어제 일이 있은 후로 우리 사이에 무슨 벽이 생긴듯 하던 것이
그 벽이 점점 엷어져 가는 듯하며 가엾고 사랑스러운 생각이
일어났었다.
그래서 우리는 정답게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오늘 장인 생신 잔치로부터 처형 눈 위에 멍든 것에
옮겨 갔다.
처형의 남편이 이번 그 돈을 딴 뒤로는 주야 요리점과 기생집에
돌아다니더니 일전에 어떤 기생을 얻어 가지고 미쳐 날뛰며 집에만
들면 집안 사람을 들볶고 걸핏하면 처형을 친다 한다.
이번에도 별로 대단치 않은 일에 처형에게 밥상으로 냅다 갈겨 바로
눈 위에 그렇게 멍이 들었다 한다.
 
“그것 보아 돈푼이나 있으면 다 그런 것이야.”
 
“정말 그래요.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도 의좋게 지내는 것이
  행복이야요.”
 
아내는 충심(衷心)으로 공명(共鳴)해 주었다.
이 말을 들으매 내 마음은 말할 수 없이 만족해지며
무슨 승리자나 된 듯이 득의양양하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옳다, 그렇다. 이렇게 지내는 것이 행복이다.’
 
하였다.
 
 4
이틀 뒤 해 어스름에 처형은 우리집에 놀러 왔었다.
마침 내가 정신없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 즈음에 쓸쓸하게 닫혀 있는
중문이 찌긋둥 하며 비단옷 소리가 사으락사으락 들리더니
아랫목은 내게 빼앗기고 웃목에 바느질을 하고 있던 아내가
 문을 열고 나간다.
 
“아이고 형님 오셔요.”
 
아내의 인사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처형이
계집 하인에게 무엇을 들리고 들어온다. 나도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그날 매우 욕을 보셨지요.
  못 잡숫는 술을 무슨 짝에 그렇게 잡수셔요.”
 
그는 이런 인사를 하다가 급작스럽게 계집 하인이 든 것을 빼앗더니
그 속에서 신문지로 싼 것을 끄집어내어 아내를 주며,
 
“내 신 사는데 네 신도 한 켤레 샀다. 그날 청목당혜를……”
 
말을 하려다가 나를 곁눈으로 흘끗 보고 그만 입을 닫친다.
 
“그것을 왜 또 사셨어요.”
 
해쓱한 얼굴에 꽃물을 들이며 아내가 치사하는 것도
들은 체 만 체하고 처형은 또 이야기를 시작한다.
 
“올 적에 사랑양반을 졸라서 돈 백 원을 얻었겠지.
  그래서 오늘 종로에 나와서 옷감도 바꾸고 신도 사고…….”
 
그는 자랑과 기쁨의 빛이 얼굴에 퍼지며 싼 보를 끌러,
 
“이런 것이야!”
 
하고 우리 앞에 펼쳐 놓는다.
자세히는 모르나 여하간 값 많은 품 좋은 비단일 듯하다.
무늬 없는 것, 무늬 있는 것, 회색 옥색 초록색 분홍색이 갖가지로
윤이 흐르며 색색이 빛이 나서 나는 한참 황홀하였다.
 무슨 칭찬을 해야 되겠다 싶어서,
 
“참 좋은 것인데요.”
 
이런 말을 하다가 나는 또 쓸쓸한 생각이 일어난다.
저것을 보는 아내의 심중이 어떠할까? 하는 의문이 문득 일어남이라.
 
“모다 좋은 것만 골라 샀습니다그려.”
 
아내는 인사를 차리느라고 이런 칭찬은 하나마 별로 부러워하는
기색이 없다. 나는 적이 의외의 감이 있었다.
처형은 자기 남편의 흉을 보기 시작하였다. 그 밉살스럽다는 둥
그 추근추근하다는 둥 말끝마다 자기 남편의 불미한 점을
들다가 문득 이야기를 끊고 일어선다.
 
“왜 벌써 가시려고 하셔요. 모처럼 오셨다가 반찬은 없어도
  저녁이나 잡수셔요.”
 
하고 아내가 만류를 하니,
 
“아니 곧 가야지. 오늘 저녁 차로 떠날 것이니까 가서 짐을
  매어야지. 아직 차 시간이 멀었어? 아니 그래도 정거장에 일찍이
  나가야지 만일 기차를 놓치면 오죽 기다리실라구.
  벌써 오늘 저녁 차로 간다고 편지까지 했는데…….”
 
재삼 만류함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그는 홀홀히 나간다.
우리는 그를 보내고 방에 들어왔다.
나는 웃으며 아내에게,
 
“그까짓 것이 기다리는데 그다지 급급히 갈 것이 무엇이야.”
 
아내는 하염없이 웃을 뿐이었다.
 
“그래도 옷감 바꿀 돈을 주었으니
    기다리는 것이 애처롭기는 하겠지.”
 
밉살스러우니 추근추근하니 하여도 물질의 만족만 얻으면 그것으로
위로하고 기뻐하는 그의 생활이 참 가련하다 하였다.
 
“참, 그런가 보아요.”
 
아내도 웃으며 내 말을 받는다. 이때에 처형이 사준 신이
그의 눈에 띄었는지 (혹은 나를 꺼려 보고 싶은 것을 참았는지 모르나)
그것을 집어 들고 조심조심 펴보려다가 말고 머뭇머뭇한다.
그 속에 그를 해케 할 무슨 위험품이나 든 것 같이.
 
“어서 펴보구려.”
 
아내는 이 말을 듣더니,
 
‘작히 좋으랴.’
 
하는 듯이 활발하게 싼 신문지를 헤친다.
 
“퍽 이쁜걸요.”
 
그는 근일에 드문 기쁜 소리를 치며 방바닥 위에 사뿐 내려놓고
버선을 당기며 곱게 신어 본다.
 
“어쩌면 이렇게 맞어요!”
 
연해연방 감탄사를 부르짖는 그의 얼굴에 흔연한 희색이 넘쳐흐른다.
 
“……”
 
묵묵히 아내의 기뻐하는 양을 보고 있는 나는 또다시,
 
‘여자란 할 수 없어!’
 
하는 생각이 들며,
 
‘조심하였을 따름이다!’
 
하매 밤빛 같은 검은 그림자가 가슴을 어둡게 하였다.
그러면 아까 처형의 옷감을 볼 적에도 물론 마음속으로는
부러워하였을 것이다. 다만 표면에 드러내지 않았을 따름이다. 겨우,
 
“어서 펴보구려.”
 
하는 한마디에 가슴에 숨겼던 생각을 속임 없이 나타내는구나 하였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저는 모르고
 새신 신은 발을 조금 쳐들며,
 
“신 모양이 어때요.”
 
“매우 이뻐!”
 
겉으로는 좋은 듯이 대답을 하였으나 마음은 쓸쓸하였다.
내가 제게 신 한 켤레를 사주지 못하여 남에게 얻은 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는도다…….
웬일인지 이번에는 그만 불쾌한 생각이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처형이 동서(同壻)를 밉다거니 무엇이니 하면서도 기차를 놓치면
남편이 기다릴까
염려하여 급히 가던 것이 생각난다.
그것을 미루어 아내의 심사도 알 수가 있다.
부득이한 경우라 하릴없이 정신적 행복에만 만족하려고 애를 쓰지마는
기실(其實) 부족한 것이다. 다만 참을 따름이다.
그것은 내가 생각해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하니 전날 아내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이 후회가 난다.
 
‘어느 때라도 제 은공을 갚아 줄 날이 있겠지!’
 
나는 마음을 좀 너그럽게 먹고 이런 생각을 하며 아내를 보았다.
 
“나도 어서 출세를 하여 비단신 한 켤레쯤은
    사주게 되었으면 좋으련만……”
 
아내가 이런 말을 듣기는 참 처음이다.
 
“네에?”
 
아내는 제 귀를 못 미더워하는 듯이 의아(疑訝)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얼굴에 살짝 열기가 오르며,
 
“얼마 안 되어 그렇게 될 것이야요!”
 
라고 힘있게 말하였다.
 
“정말 그럴 것 같소?”
 
나는 약간 흥분하여 반문하였다.
 
“그러문요, 그렇고말고요.”
 
아직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은 무명작가인 나를
다만 저 하나가 깊이깊이 인정해 준다.
그러기에 그 강한 물질에 대한 본능적 욕구도 참아 가며 오늘날까지
몹시 눈살을 찌푸리지 아니하고 나를 도와 준 것이다.
 
‘아아, 나에게 위안을 주고 원조를 주는 천사여!’
 
마음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으며 두 팔로 덤썩 아내의 허리를 잡아
내 가슴에 바싹 안았다. 그 다음 순간에는 뜨거운 두 입술이…….
 
그의 눈에도 나의 눈에도 그렁그렁한 눈물이 물끓듯 넘쳐흐른다.
 
 (1921,12 개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