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 4

줄 (줄광대) - 이청준 -

줄 (줄광대) - 이청준 - 1 “여봐.” “…….” “여봐, 자?” “…….” 나는 여자를 버려두고 담배에다 새로 불을 붙였다. 마음이 조금 놓였다. 나는 여자가 먼저 약속을 어겨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밤이 한결 더 조용해진 것 같다. ─빨리 불 끄고 자요. 아까 여자는 슈미즈 바람이 되자마자 재촉을 해댔다. ─이봐, 난 네가 여자기 때문에 돈 주고 사온 게 아니야. 여자는 이불 깃을 턱으로 끌어 올리더니 한참 눈을 껌벅이고 있었다. ─혼자 있기가 뭣해서 부른 것뿐이니까 여기서 밤을 지내주기만 하면 돼. 여자는 그제야 조금 웃었다 ─당신은 좀 이상한 분이군요. ─대신 나보다 먼저 자서는 안 돼. 여자는 입을 반쯤 벌린 ..

한국단편문학 2025.12.27

사자소학(四字小學)

사자소학(四字小學) 1. 父生我身(부생아신)하시고, 母鞠吾身(모국오신)이로다。 아버지는 내 몸을 낳으시고 어머니는 내 몸을 기르셨다. 2. 腹以懷我(복이회아)하시고, 乳以哺我(유이포아)로다。 배로써 나를 품어 주시고 젖으로써 나를 먹여 주셨다. 3. 以衣溫我(이의온아)하시고, 以食飽我(이식포아)로다。 옷으로써 나를 따뜻하게 하시고 밥으로써 나를 배부르게 하셨다. 4. 恩高如天(은고여천)하시고, 德厚似地(덕후사지)하시니。 은혜는 높기가 하늘과 같으시고 덕은 두텁기가 땅과 같으시니 5. 爲人子者(위인자자)가, 曷不爲孝(갈불위효)리오。 사람의 자식된 자가 어찌 효도를 하지 않겠는가? 6. 欲報其德(욕보기덕)인댄, 昊天罔極(호천망극)이로다。 그 은덕을 갚고자 하면 하늘..

한국단편문학 2025.12.20

귀거래사 (歸去來辭)

귀거래사 (歸去來辭) 405년 도연명(陶淵明) 歸去來兮 (귀거래혜)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旣自以心爲形役 (기자이심위형역) 奚惆悵而獨悲 (해추창이독비) 자, 돌아가자.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지금까지는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어찌 슬퍼하여 서러워만 할 것인가. 悟已往之不諫 (오이왕지불간) 知來者之可追 (지래자지가추) 實迷塗其未遠 (실미도기미원) 覺今是而昨非 (각금시이작비)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 없음을 깨달았다. 앞으로 바른 길을 쫓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그리 멀지 않았다. 이제는 깨달아 바른 길을 찾았고, 지난날의 벼슬살이가 그릇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

한국단편문학 2025.12.13

사랑하는 까닭 /한용운

사랑하는 까닭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완화삼(琓花衫)/조지훈 차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 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 하여 달빛 아..

한국단편문학 2025.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