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 5

술 권하는 사회 - 현진건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술 권하는 사회 - 현진건 - "아이그, 아야” 홀로 바느질을 하고 있던 아내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가늘고 날카로운 소리로 부르짖었다. 바늘 끝이 왼손 엄지손가락 손톱 밑을 찔렀음이다. 그 손가락은 가늘게 떨고 하얀 손톱 밑으로 앵두빛 같은 피가 비친다. 그것을 볼 사이도 없이 아내는 얼른 바늘을 빼고 다른 손 엄지손가락으로 그 상처를 누르고 있다. 그러면서 하던 일가지를 팔꿈치로 고이고이 밀어 내려놓았다. 이윽고 눌렀던 손을 떼어보았다. 그 언저리는 인제 다시 피가 아니 나려는 것처럼 혈색이 없다 하더니, 그 희던 꺼풀 밑에 다시금 꽃물이 차츰차츰 밀려온다. 보일 듯 말 듯한 그 상처로부터 좁쌀 낟 같은 핏방울이 송송 솟는다. 또 아니 누를 수 없다. 이만하면 그 구멍이..

한국단편문학 2024.01.08

고 향 - 현진건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고 향 - 현진건 -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중에서 생긴 일이다. 나는 나와 마주앉은 그를 매우 흥미있게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두루마기격으로 기모노를 둘렀고, 그 안에서 옥양목 저고리가 내어 보이며, 아랫도리엔 중국식 바지를 입었다. 그것은 그네들이 흔히 입는 유지 모양으로 번질번질한 암갈색 피륙으로 지은 것이었다. 그리고 발은 감발을 하였는데 짚신을 신었고, 고부가리로 깎은 머리엔 모자도 쓰지 않았다. 우연히 이따금 기묘한 모임을 꾸미는 것이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찻간에는 공교롭게 세 나라 사람이 다 모였으니, 내 옆에는 중국 사람이 기대었다. 그의 옆에는 일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동양 삼국 옷을 한 몸에 감은 보람이 있어 일본 말로 곧잘 철철대이거니와 중..

한국단편문학 2023.10.05

빈처 (貧妻) - 현진건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빈처 (貧妻) - 현진건 - 1 “그것이 어째 없을까?” 아내가 장문을 열고 무엇을 찾더니 입안말로 중얼거린다. “무엇이 없어?” 나는 우두커니 책상머리에 앉아서 책장만 뒤적뒤적하다가 물어 보았다. “모본단 저고리가 하나 남았는데…….” “……” 나는 그만 묵묵하였다. 아내가 그것을 찾아 무엇 하려는 것을 앎이라. 오늘 밤에 옆집 할멈을 시켜 잡히려 하는 것이다. 이 2년 동안에 돈 한 푼 나는 데는 없고 그대로 주리면 시장할 줄 알아, 기구(器具)와 의복을 전당국 창고(典當局倉庫)에 들이밀거나 고물상 한구석에 세워 두고 돈을 얻어 오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아내가 하나 남은 모본단 저고리를 찾는 것도 아침거리를 장만하려 함이라. 나는 입맛을 쩍쩍 다시고 폈던 책을 덮으며 ..

한국단편문학 2023.08.01

그리운 흘긴 눈 - 현진건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 그리운 흘긴 눈 " - 현진건 - 그이와 살림을 하기는, 내가 열 아홉 살 먹던 봄이었습니다. 시방은 이래로 ─ 삼십도 못 된 년이 이런 소리를 한다고 웃지 말아요. 기생이란 스무살이 환갑이라니, 삼십이면 이를테면 백세 상수한 할미쟁이가 아니야요? ─ 그 때는 괜찮았답니다. 이 푸르족족한 입술도 발그스름하였고 토실한 뺨볼이라든지, 시방은 촉루(髑髏)란 별명조차 듣지마는 오동통한 몸피라든지, 살성도 희고, 옷을 입으면 맵시도 나고, 걸음걸이도 멋이 있었답니다. 소리도 그만저만히 하고 춤도 남의 흉내는 내었답니다. 화류계에서는 그래도 누구 하고 이름이 있었는지라, 호강도 우연만히 해 보고 귀염도 남불잖이 받았습네다. 망할 것, 우스워 죽겠네.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 하고 제 ..

한국단편문학 2022.10.29

B 사감과 러브레터 - 현진건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B 사감과 러브레터 -- 현 진 건 -- C 여학교에서 교원 겸 기숙사 사감 노릇을 하는 B 여사라면 딱장대요 독신주의자요, 찰진 야소꾼으로 유명하다. 사십에 가까운 노처녀인 그는 주근깨 투성이 얼굴이, 처녀다운 맛이란 약에 쓰려도 찾을 수 없을 뿐인가, 시들고 거칠고 마르고 누렇게 뜬 품이 곰팡 슬은 굴비를 생각나게 한다. 여러 겹 주름이 잡힌 훨렁 벗겨진 이마라든지 숱이 적어서 법대로 쪽 찌거나 틀어 올리지를 못하고 엉성하게 그냥 빗겨 넘긴 머리, 꼬리가 뒤통수에 염소 똥만하게 붙은 것이라든지, 벌써 늙어 가는 자최를 감출 길이 없었다. 뾰족한 입을 앙다물고 돋보기 너머로 쌀쌀한 눈이 노릴 때엔 기숙생들이 오싹하고 몸서리를 치리만큼 그는 엄격하고 매서웠다. 이 B 여사가..

한국단편문학 2022.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