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성황당 - 정비석 -

하얀모자 1 2022. 9. 25. 04:53

2022,09,26

 

 

                                                             

            " 성 황 당 "
                                         -- 정 비 석 --
 
"제에길 뭘 허구 송구(아직) 안 와!"
순이는 저녁밥 짓는 불을 다 때고 나서, 부지깽이로 닫힌
부엌문을 탕 열어젖히며, 눈 아래 언덕길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아래로 뻗은 길에는 사람은 커녕 개새끼 하나 얼씬
하는 것 없었다.
한참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던 순이는 다시 아까와 같이
중얼거리면서 부엌 바닥을 대강대강 쓸어,
검부러기를 아궁에 지펴 넣는다. 그리고 나서 이번에는
빗자루를 든 채 뜰 아래로 나서더니, 천마령(天摩嶺) 위에
걸린 해를 쳐다본다.
산골의 해는 저물기 쉬웠다. 아침해가 앞산 위에 떴나 보다 하면, 벌써 뒷산에서는
 해가 저물기 시작하였다.
그러기로 신새벽에 집을 나갈 때에 그렇게나 신신당부를 했으니,
여느 장날보다는 좀 일찍 돌아와야 할 것이고, 그러니까 이맘때에는 으레 돌아왔어야
 할 텐데-하여간 순이는 기다리다가 몹시도 안타까웠다.

하긴 여느 때 마련하면 아직도 돌아올 무렵이 멀긴 했지마는, 순이는 공연히 마음이 초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붉은 고사댕기 한 감과 흰 고무신 한 켤레를 가져 볼 생각을 하면
 금방도 어깨춤이 덩실덩실 나왔고, 이제 보름만 있으면 붉은 댕기에 흰 고무신을 신고 5리 밖에
 있는 큰 마을에 그네 뛰러 갈 것을 생각하면 금시로 엉덩이가 절로 들썩거려졌다.

어느덧 밥이 바지직바지직 잦는다. 순이는 솥뚜껑을 열어 보고 나서는
또 밖으로 나와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순이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순이는 아까 집을 나갈 때의 남편의 말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올 수리(단오)날이 송구 보름이 남았는데, 벌써부터 댕긴 사다 뭘해? 
그럴 돈이 있으문 술이나 사 먹지! 참, 
오늘은 강냉이 한 말 사구 남은 돈은 술이나 한잔 사 먹어야겠군!"

하던 현보의 말에 순이는,

"흥! 그래만 보갔디! 난 아예 달아나고 말걸!"

하고 대꾸를 하며 남편을 따라 웃고 말았지마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면 
그때 현보의 말이 노상 농담만도 아니었던 것 같다.
정말 현보는 남은 돈으로 술을 사 먹는 것이나 아닐까? 술을 그렇게 좋아하는 현보의 일이니, 
사실 그럴는지도 모른다고 순이는 점점 불안스러워서 이제는 집 뒤 언덕으로 기어올라 
더 멀리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 순이는 집 앞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 성황당에 돌을 던져서, 
제발 남편이 신발과 댕기를 사오기를 축수하고 나서 짜장 댕기와 고무신을 사오지 않으면 
사생결단으로 싸워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래도 마음은 놓이지 않았다. 가만 있자, 현보가 술먹어 본 지가 한달......
아니 허 좌상네 제사 때 먹은 것이 마지막이었으나, 
 장근(때가 가깝게 됨을 표시하는 말. 거의 가깝게.) 두 달이나 되었다. 
정말 오늘은 댕기 살 돈으로 술을 사 먹을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아직도 안 오는 게지. 
숯 두 섬 팔아서 강냉이 한 말하고 댕기 한 감에 신 한 켤레 사기는 잠깐일 것이 아니냐? 
술만 안 먹는다면 벌써 돌아온 지 오래였을 것이다.
저녁해가 천마령 너머로 잠기고 말았다. 산골짜기에는 산들바람이 불었다. 
나뭇잎이 설렁설렁 갈리고, 그런 저녁이면 으레 뒷산 숲에서는 부엉이가 운다. 
순이는 차차 불안스러웠다.
밥을 담아 놓기까지 부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건마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밥을 담아 놓고는 가만히 서 기다릴 수가 없어, 힝하니 언덕길을 내려갔다. 
언덕길을 다 내려가면 다시 이번에는 맞은편 언덕길을 추어 올라야 한다. 
이 언덕이라는 것이 이른바 삼 천마-귀성 천마(龜城天摩). 삭주(朔州) 천마. 의주(義州) 천마라는 
큰 재(嶺)였다. 이 재를 경계로 하고 귀성. 삭주. 의주의 세 고을로 나누어진 것이다. 
이 재의 꼭대기까지 오르자면 시오리는 넉넉히 되었다.

순이는 가쁜 숨을 쉬일 새도 없이 두 활개를 치면서 올랐고, 
꾸부러진 굽이를 돌 때마다 고개를 들어 머리 위에 보이는 길을 쳐다보곤 한다. 
장꾼도 이제는 거근해서 간혹 한두 사람씩 보일 뿐이었고, 
멀리서 두런거리며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행여 현보가 아닌가 하고 가슴을 졸였으나, 
막상 마주치고 보면 생면 부지의 남들이었다. 그런 때면 순이는 가만히 한숨을 쉬면서 
맥 풀리는 다리를 거누며 언덕을 올랐다. 
언덕을 오르기만 하면 내림길 시오리는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순이는 점점 골이 났다. 
제길! 만나기만 하면 댓바람에 멱살을 부여잡고 악다구니를 치리라 하였다.

어느덧 황혼이 짙었다. 깊은 산골짜기에서 피어나기 시작한 황혼은 나무를 에워싸고 
개울을 덮고 산허리로 해서 야금야금 산마루로 뻗기 시작하였다. 
바람이 어느 때보다 차갑게 불었다. 
갓 나온 떡갈나무 잎이 바람을 맞아 사르륵사르륵 소리를 내고 있었다. 
길 옆 숲 속에서는 금방 범이나 산돼지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싶게 굴 속같이 캄캄하였다.
그러나 순이는 그런 것은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산에서 나서 산에서 자란 순이었다. 
순이는 현보가 붉은 고사 댕기와 흰 고무신을 사 가지고 올 것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그는 다시 발을 빨리 놀렸다.

순이가 시오리 고개를 다 올랐을 때, 저편에서 흥어리 타령을 하며 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 음성을 틀림없는 현보였다. 그것이 현보인 것을 알자, 
대뜸 순이의 가슴은 덜컥 내려앉았다.

산골에 귀물은 머루나 다래,
인간의 귀물은 우리 임 허리......

이것은 현보가 아는 단 하나의 노래였고, 그리고 현보는 으레 술이 얼근히 취해야만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었던가?
순이는 그 노래를 듣자, 댕기도 고무신도 '허양낭창'이로구나 생각하니,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 길가에 딱 버티고 서며 주먹을 불끈 쥐고 
어둠 속에서 가까이 오는 현보를 노려보았다. 
현보는 등에 짐을 걸머진 채 흥얼거리며 그대로 지나가려다가 다시 한번 쳐다보더니, 
그제야 순이를 알아보고 깜짝 놀라며,

"순인가? 너 어떻게 여기까지 왔네? 옳지, 내 마중 왔구나, 응?"

하고 얼근히 취한 혀를 굴리며 순이의 어깨를 붙잡으려 하였다.

"그래 신은 사오는 거요?"

순이는 현보의 팔을 뿌리치며 독기 있는 말로 톡 쏘았다.

"뭐? 그럼 날 마중 나온 게 아니구, 신 사오는가 해서 여기꺼정 왔구나, 응? 허허, 신 사오구 말구!
쌔헌 고무신, 순이 신을 고무신, 말쑥헌 하이칼라(서양식 유행을 따르는 일. 또는 그런 사람. 멋쟁이.) 신, 사오구 말구!"
 
하며 현보는 다시 순이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순이는 천만 뜻밖에도 신을 사온다는 바람에, 
담박 감정이 풀리며 반갑기만 해서 아무 반항도 하지 않았다.

"정말 사오우?"

"그럼 안 사올까, 원! 순이 고무신을 내래 안 사다 주문 누구래 사다 준다구!"

"어디 좀 봅수다."

순이가 채근하기 전에 현보는 진작 부스럭부스럭하더니, 
고무신 한 켤레를 등짐에서 끄집어 내어 순이에게 주면서,

"여기서 한번 신어 보련?"

하는 현보의 말에,

"글쎄, 좀 쉬어갑수다."

둘은 길 저문 줄도 모르고 길섶 풀밭 위에 나란히 주저앉았다. 
순이는 얼른 종이를 풀고 어둠 속에서도 눈처럼 흰 고무신을 보자, 
입이 헤작해지며 다 해어진 짚신을 벗고 새 고무신을 신어 본다.

"맞디?"

"응,! 아니, 좀 크우다래! 겨냥보다 큰 것 사왔수다래."

"좀 큰 편이 날 것 같아서......"

"그래두 과히 큰가 봐."

"좀 큰 편이 낫대두 그래! 올 한 해만 신을 것두 아니구...... 발은 크지 않나 원!"

"크문 돈두 더 허지 않갔소?"

"돈은 같애! 아따 같은 값이면 처녀라구, 돈이 같기에 큰 걸 사왔디."

"돈은 같아요? 그름 큰 거 낫디 뭐...... 참 댕긴?"

순이는 그제야 생각난 듯이 댕기 독촉을 하였다.

"댕기 생각두 났지만, 댕긴 시집올 때 디리구 온 거 있잖은가?"

"아구만나! 시집올 때 웬 댕기래 있었나, 뭐? 시집오던 날 디리구 온 건 놈해래 돼서 
사흘 만에 도루 돌려 주디 않았소!"

"아, 그랬던가? 난 또 시집올 때 디리구 온 댕기 생각이 나기에 옳다 잘됐다,
오늘은 댕기값이 남았으니, 술먹을 돈이 생겼다구 막걸리 몇 잔 걸티구 왔디!
 난 참 그런 줄은 깜빡 잊었드랬구먼, 
 허어 그러니 헐 수 있나, 다음 당(장)에는 꼭 사다 주디."

"여보, 그렇게야 놈으 생각을 못 해 주갔소?"

"아니! 생각을 못 헌 게 아니라, 있는 댕기야 또 사올 거 없갔기 그랬디. 
내가 님자 댕기 사오는 거 아까워 그랬간디? 그렇지 않어? 응 순이!"

하며 현보는 순이의 허리를 껴안았다. 순간 술 냄새가 물씬 얼굴에 끼쳐졌다.

"아이구 망칙해라!"

"망칙은 무슨 망칙, 아무도 보는 사람 없는데!"

하고 현보는 성난 범처럼 덤벼들었다. 순이는 고무신 사다 준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 
아무 반항도 하지 않았다.
 
어느덧 열여드렛달이 천마재 위에 비죽이 솟았다. 산 속은 괴괴하다. 
나무 사이로 세차게 흐르는 달빛이 더욱 적막을 돋우었다. 숲 위에서 반짝이는 별들만이 
순이와 현보를 지키고 있었다. 어디선가 간혹 접동새 울음이 들려왔고, 
그것이 그치면 알지 못할 산짐승이 짝을 찾는 듯, 슬프게 우는 소리뿐이었다.

순이는 밤새도록 자지 않고 신만 신었다 벗었다 하였다. 신코가 뾰족한 것도 신기롭거니와 
휘어잡으면 한 움큼 되었다가도 손을 놓으면 팔딱 제 모양대로 돌아지는 것이 퍽은 재미스럽다. 
순이는 버선 위에도 신어 보고 맨발에도 신어 보았다. 
그는 참말 별안간에 하늘에 올라간 것만큼이나 기뻤다. 
이런 신은 아무리 돈 많은 사람이라도 함부로 신을 것이 못 되어 보였다.
아랫마을에도 흰 고무신 신은 여편네라고는 구장댁 한 사람 뿐인 것만 보아도 알 것이라고, 
순이는 등잔을 끄고 그만 자리라고 자리에 누웠다가도 다시 불을 켜고는 고무신을 어루만져 본다. 
그리고 이런 모든 것이 성황님의 은덕이라고 믿는 것이었다. 
순이는 시집올 때에 성황당 앞에서 배례하고 배필이 되기로 맹세한 것을 새삼스러이 행복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순이는 이 세상 모든 재앙과 영광은 성황님께서 주장하는 줄로만 믿는다.
순이가 처음 시집왔을 때 시어머니는,

"우리집 일은 무엇이나, 앞에 계신 성황님께 빌면 순순히 되는 줄만 알아라."

하고 타이르던 것과, 시증조 부모 때에 한번 성황님께 불공 안 했다가, 
집이 도깨비불에 타고 말았다는 말까지도 잊혀지지 않았다.

순이는 지금 고무신을 신게 된 것도 틀림없는 성황님의 은덕이라고 믿는다.
이튿날 아침 순이는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서, 신을 또 한 번 신어 보고는 
밖으로 나와 이리저리 돌아가며, 돌을 주워 들고 성황당 앞으로 가 공손히 던졌다.
순이는 성황당에 돌을 던질 때가 가장 행복스러웠다. 돌을 여남은 개 던지고 나서는, 
고개를 수그려 합장 배례하고 잠깐 섰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현보도 잠이 깨어 옷을 걸치며 마당으로 나왔다. 숯가마에 일하러 가는 것이었다.
 
"곤허갔는데, 좀더 자구 가구래."
 
순이는 고무신 사다 준 것이 생각할수록 고마워서 현보를 보고 발쭉 웃었다.
 
"괜찮어! 어서 가 보야디."
 
현보도 순이를 보고 히쭉 마주 웃고 나서, 눈을 비비며 집 뒤 등마루로 올라간다. 
숯가마는 고개 너머 산골짜기에 있었다. 
현보가 한창 고개를 올라가노라니까 순이는 생각난 듯이 큰 소리로,
 
"여보! 여보!"
 
하고 급히 쫓아오며 현보를 불렀다.
 
"와 그래?"
"좀 왔다 가우! 왔다 가라구요!"
 
하고 순이는 소리를 질렀다. 이윽고 현보는,

"와 그루? 와 그래?"

하며 순이에게로 되돌아왔다.

"임자 갈 때 성황님께 비는 것 잊어버렸디요?"
"난 또 큰 변 났다구!"
"그럼, 큰 변 아니구요! 성황님께 불공 안했다간 큰 변 나는 줄 모르우?"

하면서 순이는 벌써 돌을 열 개나 남짓 모아다가 현보에게 주면서 던지라고 하였다.
현보는 돌을 받아서 공손히 던졌다. 그러고 나서 합장하였다. 
현보는 다시 순이를 쳐다보며 웃고 나서 집을 떠날 때에 퍽 행복스러웠다. 
나이 스물 여덟이 되어서야 겨우 색시랍시고 코를 질질 흘리는 열 네 살짜리 순이를 데려온 것이, 
어제 일 같은데, 순이는 벌써 열 여덟이 되어서, 이제는 제법 아내 꼴이 박혔고, 
게다가 기특하게도 남편에게 재앙이 없도록 성황님께 축수하기를 잊어버리지 않는 것을 보고는, 
현보는 그지없이 마음이 흐뭇하였다. 현보에게는 이 천마령과 순이만이 온 천하의 모든 것이었다. 
순이만 있으면 현보는 조금도 외로울 것이 없었다. 그리고 또 이 천마령에 있는 동안에는 
잡나무(雜木)도 끝이 없을 것이요, 그러고 보면 숯구이도 끝이 없을 것이니, 
먹기 걱정은 영 없었다. 세상이야 어떻게 변동되건, 어떤 풍파가 일어나건,
그런 것은 현보에게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세상 일로서 현보와 관계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숯값 내리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제길! 제 아무리 멋하기로니 제놈들이 숯이야 안 쓰구 배겨날 수 있나 원!'
 
하고 생각하면, 그것조차 걱정할 것이 없었다. 현보는 그저 행복스러웠다.
전나무, 잣나무, 박달나무, 물푸레나무, 떡갈나무, 소용나무 …… 아름드리 나무, 
나무들이 기운차게 활기를 쭉쭉 뻗고 별 겯듯(별이 총총 박히듯.) 서 있는 숲속을 거닐면서 현보는 다시 빙그레 웃었다.
무성한 나무 나무! 그것은 얼마나 친근한 현보의 벗이었으리요!
순이도 떼어 버리고는 살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럽다. 그러나 현보에게는 
이 나무들도 순이보다 조금도 못하지 않게 사랑스러웠다.

봄이 오면 나뭇잎이 싱싱하게 생겨나고, 그래야만 현보의 마음에도 봄이 오는 것이었다. 
친근하기로 말하자면 산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온갖 나무를 키워 주고 온갖 풀을 키워주는 것이 
산이 아니더냐? 현보를 낳아 준 것도 산이었고, 현보를 먹여 살리는 것도 산이었고, 
현보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돌아간 곳도 역시 산이 아니더냐? 
현보는 산 없는 곳에서는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어느 덧 현보는 숯가마에 다다랐다.

숯가마 속에는 그저께 차곡차곡 모아 놓은 나무들이 그대로 있었다. 
현보는 옆에 쌓여 있는 불나무(火木)를 도끼로 패기 시작했다. 도끼를 번쩍 들어 뒤로 견줄 때마다
턱 버그러진 구리쇠빛 앞가슴의 근육이 불끈 내솟았다가는, 도끼를 탁 내리갈기면 어깻죽지가 불쑥
부풀어오르고, 그와 동시에 장작이 팡 하고 두 갈래로 갈라지는 것이었다. 
이렇게 한 번 한 번 내리갈길 때마다 도끼 소리는 쩌르렁 산에 울리고, 조금 있으면 또 쩌르렁 하고
맞은 편 산에서 메아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현보는 혼자이면서도 장단 맞추어 둘이 
일하는 때와 꼭 같이 조금도 힘이 들지 않았다.
한참 패고 나서는 하늘을 우러러본다. 해는 조반때가 훨씬 겨웠다. 
아침해는 벌써 천마령 꼭대기를 벗어났다. 현보는 이번에는 언덕길을 올려다보았다. 
아직도 순이가 조반을 가져오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패던 장작을 마저 패고 허리를 펴며 일어서니,
이제껏 안 보이던 순이가 어느 틈에 눈앞에 나타났다.
 
"아아니, 금방 안 보이더니 어느 틈에 왔어?"
"쳐다보기에 나무 그늘에 숨었드랬어. 히히!"
"요 앙큼한 것이 ……."
 
하고 현보는 때려갈길 듯이 을러메며 싱글 웃는다.
 
"힝."
 
순이는 입술을 배죽 내밀어 보이고 나서, 현보를 따라 풀밭에 주저앉더니 바구니를 연다. 
바구니 속에서는 강냉이밥 두 그릇과 산나물이 나왔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삶은 감자 다섯 개가 나왔다.
 
"응! 웬 감잔구?"
"궐("그 사람 ". "그"를 홀하게 쓰는 말.) 자시라구 삶아 왔디, 히히힝!"
 
하고 순이는 연방 싱글싱글하였다.
 
"감자가 송구 남아 있었던가?"
"요것뿐야! 궐 생일날 쓰려던 걸 오늘 삶아 왔어!"
 
하고 순이는 수줍은 듯이 고개를 비꼰다.
현보는 눈물이 핑 돌도록 고마웠다.

조반을 마치자, 현보는 지게를 지고 나무하러 산 속으로 들어가고, 
순이는 숯가마에 불을 때기 시작하였다. 
순이는 불나무를 한 아궁이 그득히 지펴 넣고는 바구니를 끼고 나물하러 나섰다.
겨울이 어제 같더니 어느 덧 산에는 맏나물이 두 치나 자랐다. 
이윽고 고사리도 돋아나리라고 생각하면서, 순이는 눈에 띄는 대로 맏나물, 알바꾸기, 소리채, 
민들레 …… 이런 것을 캐어서는 바구니에 넣곤 한다. 그러다가는 다시 숯가마에 와서 
불이 스러지지 않도록 나무를 지펴 넣었다.
해는 중낮이 되었다. 별 겯듯 빽빽이 서 있는 나무 숲 속도 훤히 밝았다. 
겹겹이 쌓인 숲 속에서는 졸졸졸 얼음 녹은 물이 흐르고 있다.
온 산은 적막 속에 잠겼다. 산새도 울지 않았다. 다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종달새 소리가 들려 올 뿐이었고, 그것마저 구름 속에 잠겨지자, 
생각난 듯이 미라부리가 한 곡조 부르면서 멀리로 날아갈 뿐이었다. 순이는 나물을 캐다 말고, 
미라부리가 사라진 먼 하늘을 고요히 우러러보고 있었다. 
그런 때에는 순이도 자연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산 속의 봄은 유난히 짧다. 뻐꾸기가 울어서 봄이 왔나보다 하고 한겨울의 칩거(蟄居)에서 해방되어 
산으로 오르기 시작하면, 벌써 두견새와 꾀꼬리가 노래를 부르고, 
뒤이어 매미가 맴맴맴 맴맴맴하고 한가로운 산 속의 여름 날을 돕는다. 
그러기에 산사람들에게는 봄보다도 여름이 더욱 친근하였다. 
하루하루 산은 무성하는 나뭇잎으로 무거워가고, 
각색 새들의 노래노래에 산사람의 마음은 흐들져간다.

할미꽃, 앉은뱅이, 진달래가 한물 지나고, 도라지꽃, 제비꽃, 학이꽃, 범부채, 물구지, 
소리채 …… 가 먼저 다투어 필 무렵이면, 스러졌던 잔디밭에서도 새싹이 머리를 들고, 
그러노라면 풀밭에서는 밈총이, 식세리, 귀뛰라미가 노래를 부른다.
토끼가 춤을 추고, 여우, 노루가 양지 쪽에서 낮잠을 자는 것도 그런 때이다.
한나절이 되자 날은 점점 무더워 왔다. 사방이 병풍으로 휘두른 듯 산으로 감싸여 있었고, 
게다가 나무가 들어차서, 바람 한 점 얻을 수 없었다. 순이는 아궁이 속을 한참 휘저어 
불을 되살리고 나니, 얼굴이 활활 달아오르고 전신에 땀이 물 흐르듯 하였다.
벌거벗은 윗통에서도 젖가슴 사이로 땀방울이 줄줄 흘렀다.
순이는 나무를 듬뿍 지피고 나서는 저고리를 벗어든 채 개울가로 내려왔다. 
그래서 그는 치마와 베바지마저 훨훨 벗어 바위 위에 내던지고 첨벙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산골 물은 옥구슬처럼 맑고 얼음처럼 차가웠다. 순이는 젖통까지 물 속에 잠겨서, 
두 손으로 물을 앙구어 세수를 하고 나서는 어깨와 목덜미에 물을 끼얹고 그리고는 앞가슴을 씻었다. 
한참 미역을 감고 나니 몸은 날 듯이 가벼워졌다.
 
순이는 물에서 나와 몸을 말리고 나서 옷을 입으려고 바위에 앉으려니, 
바위가 몹시도 따가워 찬물을 두어 번 끼얹고 앉았다.
이제껏 맑던 하늘에 어느새 검은 구름이 한 두 점 나타났다. 소나기가 오려는가 하고 고개를 드니, 
천마령 위에서는 먹장 갈아 부은 듯한 구름이 자꾸 솟아 올랐다. 
순이는 어서 소나기 내리기 전에 숯가마에 나무를 듬뿍 지펴 넣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부산히 옷 둔 곳으로 달려와 보니, 분명히 돌 위에 놓아 둔 옷이 없어졌다. 
혹시 딴 데 놓지 않았나 하고 벌거숭이 채로 이리저리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숯가마에 벗어 놓구 왔나?'
 
하면서도 분명히 숯가마에는 벗어 두지 않아서 아래위로 샅샅이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순이는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라고 혼자 안타까워 돌아가노라니까 저편 숲 속에서,
 
"하하하하하!"
 
별안간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순이는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아래를 가리며 
맞은편 언덕을 쳐다보니, 숲 속에서 당꼬바지 입은 산림간수 김 주사가 자지러지게 웃으면서 
순이의 옷을 쳐들어 보이고 있었다.
 
'제길! 망할 쌍놈의 새끼!'
 
순이는 속으로 이렇게 욕하며,

"입성(옷) 갖다 달라요 거!"

하고 커다란 소리로 고함쳤다.
 
"이거 입성 아니가! 갯다 입갔디! 누구래 입딜 말래나?"
 
하고 김 주사는 여전히 빙글빙글 웃었다.
 
"놈으 입성은 와 개갔소, 와 개가시오?"
"내래 개왔나, 뭐"
"고름 누구래 개가구? 날래 갖다 달라구요, 여보!"
"개다 입갔디, 누구래 갯다꺼정 줄꼬글?"
"글디 말구 갯다 주구래, 여보!"
"자, 이놈의 송화(성화)야 받어 주나?"
 
하고 김 주사는 순이의 옷을 들고 개울가로 내려온다.
 
"싫어요! 오디 말라요! 아이고 망칙해 죽갔다!"
 
김 주사가 가까이 오자 순이는 돌아서며 발을 동동 굴렀다.
 
"자, 이런 성화가 있나! 입성 갯다 달라기 개져가문 또 오디 말라구 그럼, 난 몰루?"
 
하고 김 주사는 풀밭에 옷을 던진다.
 
"거기 놔두구, 더어기 멀리루 가라구요!"
"가구 안 가구야 내 맘이디 머!"
"글디 말구, 어서 더어기 가라구요. 점단은 양반이 거 뭘 그루."
"허, 이거 참!"
 
하며 김 주사는 숯가마 쪽으로 몇 걸음 걸어간다. 김 주사가 옷 있는 곳에서 멀리 간 다음에 
순이는 얼른 옷을 입으려고 뛰어갔다. 그러자 그와 동시에 김 주사는 순이에게로 달려오면서,
 
"둬어 둬어 이놈어 멧돼지 봐라! 둬어 둬!"
 
하고 무슨 산짐승이라도 몰라 쫓듯이 두 팔로 휘얼훨 활개를 치며 달려왔다.
순이가 재빠르게 바지를 주워 입자, 달려온 김 주사는 순이의 저고리를 빼앗아 들었다.
 
"글디 말라요, 여보! 점단은 량반이 거 뭘 그루!"
"난 점단티 못해!"
"조고리 날래 달래요, 여보!"
"멀 줘! 길에서 얻은 조고릴 내래 와 줄꼬?"
"어서 달라구요!"
 
하고 순이는 짜증을 내면서 웃퉁을 벗은 채 김 주사에게 덤벼들었다.
 
"글쎄 못 준대두."
 
하고 김 주사는 저고리를 등뒤로 돌리면서 연적처럼 토실토실하고 고무공처럼 탄력있는 
순이의 젖통을 *검칙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검칙스러운 : 속마음이 욕심이 많아 컴컴하다.

"어서 달래는데 그래요!"
"그럼 줄 테니, 내 말 듣가서?"
"말은 무슨 말이라고 그루 …… 어서 달라요!"
"글쎄, 내 말 듣가서?"
"응! 들을 거니 조고린 주구래!"
"정말 듣디?"
"응! 들어."
"거짓부리 아니디?"
"정말 들을 거니 조고린 달라요!"
 
김 주사는 그제야 만족한 듯이 빙그레 웃으면서 순이에게 저고리를 건네주었다. 
순이는 저고리를 다 입고 나서,
 
"흥! 개떡 겉다. 누구래 말을 들을 줄 알구!"
 
하고 홱 돌아서더니 숯가마께로 힝하니 달아난다.
 
"순이! 정말 이러기야?"
 
하고 김 주사는 잠깐 멍하니 선 채 순이의 뒷모양을 바라보다가 별안간 순이 뒤를 따라 온다. 
순이는 숯가마에 다 닿자 씁쓸하니 시치미를 떼고 아궁이에 장작을 몰아 넣는다.
아까부터 퍼지기 시작한 검은 구름이 이제는 하늘을 휘덮고, 써늘한 바람이 홱 지나간다. 
굵은 빗방울이 드문드문 떨어진다. 산에서는 별안간 나뭇잎 갈리는 소리가 소란하였다.
덮눌러온 김 주사는 순이에게로 와락 달려들더니 가쁜 숨으로,
 
"순이! 정말 말 안 들을 테야?"
"누구래 말을 듣갔다기 추근추근 이래?"
"분홍 갑사 저고리 사줄테니 말 들어. 응!"
"싫어, 글쎄! 분홍 갑사 저고리 누구래 입갔대기! 흥!"
 
하면서도 아닌 게 아니라, 순이는 분홍 갑사 저고리가 입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순이는 김 주사의 행실머리가 아니꼬웠다.
현보네 집에 늘 놀러 오는 사람 중에 순이를 눈에 걸고 있는 사람이 둘이 있었다. 
하나는 김 주사이고, 또 한 사람은 산너머 광산에서 일하는 칠성이였다.
칠성이는 돈벌이는 김 주사만 못해도 생긴 품은 김 주사 열 갑절 잘생겼다. 
그러기에 순이는 마음을 허하자면 김 주사보다는 오리려 칠성이 편이었다. 
칠성이에게 오늘처럼 이런 곳에서 시달린다면 ……하고 생각하다가, 
순이는 속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칠성인 다 뭐레. 현보가 있는데.'
 
김 주사는 잠깐 궁리하다가,
 
"정말 싫으니?"
"정말 싫어요!"
 
소나기는 내리붓기 시작하였다. 거기 따라 순이의 마음도 점점 굳세어 갔다. 
순이와 김 주사는 숲 속으로 들어가서 비를 그었다.
 
"너 나허구 틀렸다가는 큰일날 줄 모르니?"
"흥! 난 그까짓 큰 일 무섭디 않아!"
"정말? 너의 현보가 오늘두 소나무 찍는 것을 내 눈으루 보구왔는데두?"
"그래, 소나무 찍었으문 와 어때?"
"너, 올 봄부터 허가 없이 소나무를 찍었다가는 징역 가는 법이 생긴 줄 모르니?"
"알문 어때? 빌어먹을! 다 성황님이면 고만이지 뭘 그래!"
 
순이는 순이대로 김 주사가 엄포할수록 저도 뻗대였다. 
법이라는 것이 은근히 무섭지 않은 것도 아니지마는, 그렇다고 김 주사 따위에게 슬슬 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까짓 것 성황당에 축수만 하면 그만이 아니냐 싶었던 것이다.
 
"순이! 그러지 말어! 내가 모르는 체하고 눈 감아 줄 테니 내 말 한 번 만 들어!"
"난 싫대두 그래!"
"그럼, 현보 징역 가두 좋은가?"
"징역을 와 가? 뭣 때문에? 힝!"
 
순이는 입술을 비쭉 내밀어 보였다. 그러자 김 주사는 하도 예뻐 못참겠다는 듯이 순이에게로
달려들어 허리를 휘어 감으려 하였다. 순이는 그 순간 날쌔게 몸을 비끼었다.
비는 체굽(체)으로 받듯 내려쏟았다. 숲 속에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김 주사는 또 잠깐 겸연쩍은 듯이 가만히 서 있다가,
 
"정말 안 들을 테냐? 똑똑히 말해 봐!"
 
그렇게 다지는 두 눈은 쌍심지를 낀 듯 몹시 충혈되었다. 음성은 왁살스럽고도 거칠었다. 
그러나 순이는 범을 보고도 놀라지 않고 자라난 탓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글세 백 번 그래야 소용없대두."
 
하고 도리질을 하였다. 그 말을 듣자, 김 주사는 성난 표범처럼 순이에게로 덤벼들어 
순이를 휘어넘기려 하였다. 순이는 휘끈 뒤로 자빠지려던 다리에 힘을 주어 떡 버티고 서며, 
붙잡힌 저고리 소매를 낚아채려 하는 순간에, 벌써 사내의 뜨거운 입술이 이마로 와 닿았다. 
순이는 더 참을 수 없어,
 
"쌍 개 같은 놈이 ……."
 
하면서 눈알이 빠져라고 사내의 면판을 휘갈리고, 제비같이 날쌔게 숲 속으로 뛰어나와 
체굽받듯하는 비를 맞으며 언덕길을 홱홱 달리어 집으로 돌아온다. 
숲 속에서는 빰 맞은 사내가 달아나는 순이의 뒷모양을 노려보면서,
 
"이년, 두고 보자!" 

할 뿐이었다.
비는 좍좍 내리쏟았다. 비안개에 싸여, 산도 하늘도 보이지 않았다. 
만산이 한참 흐드러지게 웃는 것처럼 나뭇잎 와슬렁거리는 소리뿐이었다. 한참 언덕을 오르던 순이는
 사내가 따라오지 않는 것을 알자, 발을 멈추고 코로 입으로 흐르는 빗물을 씻었다. 
그리고 나서 상그레 웃으며 뒤를 돌아보고는 다시 언덕을 추어 오른다.
순이는 비가 좀더 퍼부었으면 싶었다. 비가 퍼부면 퍼 불수록 마음이 튼튼해질 것 같았다. 
고개를 다 올랐을 때에는 순이는 모든 것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집에 가면 흰 고무신 신어 볼 생각에 마음은 날뛰었다. 
발부리에서 메추리가 포드드드 날아갔다. 비는 자꾸만 자꾸만 퍼부었다.
 
이틀이 지나, 산림간수 김 주사가 읍내 순경과 함께 현보를 잡으러 왔다. 
현보는 아무 말도 못하고 얼빠진 사람처럼 한참을 발부리만 내려보고 있었고, 
따라온 김 주사만이 뜻있는 웃음을 벙글벙글 순이에게 건네고 있었다. 순이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날래 가! 빨리 빨리!'
 
하는 순경의 재촉에 마지못하여 현보는 무거운 발길을 옮겨 놓으면서, 
글썽글썽 눈물 괸 눈으로 순이를 돌아다본다. 순이는 현보와 눈이 마주치자 울음이 복받쳐 올랐다. 
그럴 줄 알았더면 김 주사 말을 들어주었던 편이 더 좋았을 걸 하고 후회하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후회는 그저께 그 길로 돌아오면서 성황님께 빌기를 잊어 버린 것이었다.
그때 성황님께 한 번만이라도 빌었더면 오늘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 아니냐?
현보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늙은 소 모양으로 고개를 수그리고 앞서서 읍으로 걸어 간다. 
순이는 참다 못해서,
 
"언제쯤 돌아올까요?"
 
하고 순경에게 간신히 물었다.
 
"한 십년 있다 올 줄 알아!"
 
하고 순경은 혼자 싹 웃는다. 순이는 순경이 웃을 적에는 대단한 죄는 아니라고 짐작은 하면서도, 
십 년이라는 말에 눈앞이 아뜩하였다.
 
"너 이젠 또 시집가야갔구나!"
 
김 주사는 몹시 비꼬는 웃음을 보내며 지껄인다. 순이는 아무 대꾸도 않고 입 속으로,
 
'이놈, 두고 보아라! 내래 성황당님께 빌어서 네 놈을 망덕(패가망신할 못된 짓)으로 허게 헐 적을……'
 
하고 중얼거렸다.
 
순이는 현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집 앞에 서 있었다. 마침내 현보의 뒷모양이 안개에서 사라지자, 
순이는 참았던 울음보가 탁 터져서 목을 놓아 통곡하였다.
단둘이 살던 살림에 현보가 잡혀갔으니 누구를 믿고 살 것이랴. 순이는 맘껏맘껏 울었다. 
이런 때에는 아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니, 새삼스러이 현보 잡혀간 것이 슬펐다. 
그러나 잡혀간 것은 하는 수 없는 일이고, 이제부터는 몇 해 만에 나오든지 나오는 날까지 
혼자서 벌어 먹어야 할 것을 생각하고, 순이는 한낮이 겹자 숯가마로 갔다. 
순이는 전에 현보가 하던 모양대로 도끼를 들어 장작을 패고, 틈틈이 겨울 준비로 
도라지, 고사리 같은 산나물도 캐 모았다. 순이는 다른 날보다 퍽 늦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집에 와 보니 김 주사가 능청맞게 아랫목에 자빠져서 기다리고 있었다.
 
"순이 인제 오는 게야? 오늘은 늦었구먼!"
 
하고 사내는 현보를 잡아갈 때와는 딴판으로 다정한 태도를 보인다. 순이는 속으로,
 
'이자식이 왜 왔어?'
 
하면서도 행여 현보의 소식을 알 수 있을까 싶어서,
 
"벌써 읍내까지 갔던 거요?"
 
하고 공손히 물었다.
 
"아니, 난 읍엔 안 갔어!"
"그럼, 우리 쥔은 어떻게 됐소?"
"경찰서까지 가게 되었디."
"언제쯤 나오게 될까요?"
"그야 내 말에 달렸디!"
 
하고 김주사는 순이를 빤히 쳐다본다.
순이는 속말로 '네까짓거!'하고 아니꼽게 생각하면서도 잠자코 있었다. 
김 주사는 몇 날 전에 산에서 한 짓을 사죄하라는 것과, 그리고 이제라도 제 말을 들으라는 것쯤은 
순이로서도 눈치챌 수 있었지마는, 행차 뒤에 나팔 격으로, 이제는 일이 글러지고 말았으므로, 
순이는 자꾸 엇나가고 싶었다.
 
"정말 순이가 안타깝다면 현보를 내일이래두 내보내 줄까?"
 
김 주사는 순이가 저만 보면 슬슬 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쓴 도라지 보듯 하니까, 
적지않이 실망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저편에서 먼저 수작을 붙이는 것이었다.
 
"난 괜찮아요. 근심 말구, 거저 십 년이구 이십 년이구 맘대로 둬둬 주."
"허! 말룬 그래두 속에서는 불이 날 터이지?"
"불커녕 화두 안 나우다."
"순이! 그래디 말어 응! 내가 말 잘해서 니어 내보게 주게 하디."
 
"……."
 
그 말엔 순이도 대꾸를 않았다.
한참 침묵이 계속되었다. 바깥은 차차 캄캄해 왔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 떠서 열어 놓은 문으로 
북두칠성이 마주 보였다. 바로 집뒤에서는 접동새가,
 
"접동 접동 해오라비 접동!"  하고 처량히 울었다.
 
순이는 김 주사가 현보를 고자질한 것을 생각하면 이에 신물이 돌아서 공알 주먹으로 목덜미를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마는, 열도깨비 복은 못 주어도 화는 준다고, 
그러다가 또 어떤 작폐를 부릴는지 몰라 어름어름해 두었다. 
그랬더니 사내는 좀처럼 돌아갈 생각을 아니하고 진기를 쓰고 있어 순이는 점점 울화가 치밀었다. 
그까짓 김 주사 같은 사내 하나쯤 덤벼든대야 조금도 겁날 것은 없지마는, 
저편에서 덤벼드는 판이면 순이도 가만 있을 수 없으니 그것이 성가시였다.
 
"현보가 나오구 못 나오구는 내 말 한 마디면 그만인데, 순인 와 그리 고집을 부리누?"
 
김 주사는 다시 수작을 붙였으나 순이는 건으로 잠자코 있었다.
 
"순이! 현볼 내일 놔주도록 해줄까?"
 
하며 김 주사는 순이의 치마폭을 슬며시 잡아 당겼다.
 
"인 놔요!"
 
순이는 치마를 낚아 채었다.
 
"흥! 내말 안 들어야 순이에게 손해 될 것 밖에 있나?"
 
사내는 멋쩍게 싱글 웃고 나서 담배를 피워 문다. 순이는 덤덤히 앉아 있었다. 
여름밤은 덧없이 깊어갔다. 순이는 사내가 어서 가 주었으면 싶었다. 현보가 없기 때문에 
이런 작자가 염치없게도 밤중에 와서 지근덕대는구나 생각하니, 
새삼스러이 현보가 그리워지며 울화가 치밀었다.
 
"인전 잘래요! 어서 가라우요?"
 
순이는 사내에게 톡 쏘아 붙였다.
 
"이 오밤중에 가긴 어딜 가란 말여?"
"못 가면 어쩔 테요?"
"여기서 순이허구 자구 가야갔는걸!"
"흥, 비위탁이 삼백은 살겠다. 어서 가우!"
"이 캄캄한 밤에 어딜 가란 말야, 글쎄?"
"궐네네 집으루 가라요!"
"그럼, 순이 데려다 주겠나?"
"흥! 별꼴 다 보갔다."
 
순이는 사내에게 눈을 흘겨 보이고는 밖으로 달아나왔다.
순이는 어둠 속에서 돌을 주워 가지고 또 성황당 앞으로 가, 
성황님께 현보가 속히 나오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는 몇 번이고 허리를 굽신거리며 큰절을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나더니, 문득 '에헴!'하는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칠성이가 현보 잡혀갔다는 소리를 듣고 산너머에서 찾아온 것이었다. 순이는 김 주사의 농락을 
받고 있는 지금에, 칠성이가 찾아와준 것을 퍽 다행하게 여겨서, 이내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김 주사는 순이가 이제나 들어올까 저제나 들어올까 하고 눈이 감도록 기다리던 판에 웬 낯선 사내를 
데리고 들어오니까, 일변 실망하고 일변 겁을 집어먹으며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혹깨(퍽) 어둡디요?"
 
하고 순이는 김 주사 보란 듯이 칠성이에게 상냥히 말을 걸었다. 그러나 칠성이는 칠성이대로 
알지 못하는 사내가 방에 혼자 앉아 있는데 놀래어, 얼른 대답을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허나 다음 순간 칠성이는 직각적으로 눈치를 채자 모진 눈으로 김 주사를 노려보았다. 
칠성이가 들어오자, 김 주사가 침 먹은 지네가 되는 것을 보고, 순이는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산 속의 밤은 접동새의 울음 속에 깊어 갔다. 무한한 적막이 깃들어 있는 깊은 산이건마는, 
그러나 순이를 에워싸고 희미한 등잔 밑에 마주앉아 있는 두 사내 사이에 오고가는 시선은 
각일각으로 일촉즉발의 위기를 띠어갔다. 아연같이 무거운 공기 속에서 칠성이와 김 주사는 
제각기 눈앞에 폭풍을 깨달으면서 호흡까지 죽이고 있었다.
 
"웬 사람이오?"
 
드디어 김 주사는 질식할 긴장을 이겨낼 수가 없어 혼잣말 비슷이 중얼거리며, 
순이와 칠성이를 번갈아 보았다.
 
"산 너머 있는 칠성이네야요."
 
하고 순이는 칠성이를 쳐다보면서 대답을 가로막았다. 김 주사는 칠성이가 쭈그리고 겁먹은 듯이 
앉아 있는 것을 보자 한층 깔보았는지.
 
"무슨 일이 있어 왔나? 이 밤중에 ……?"
 
하고 제법 위엄있게 반말로 대들었다.
                                                                    
"일은 무슨 일이 갔소? 거저 마을돌이 왔디요!"
 
이번에도 순이가 가로맡아 대답해 주었다.
 
"일두 없이 밤중에 남으 여편에 혼자 있는데는 와?"
 
하고 김 주사 어조는 더 한층 높았다.
 
"대관절 당신은 어떤 사람인데?"
 
마침내 잠자코 있던 칠성이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침착히 반문하였다. 싸움을 사려는 말투였다. 
칠성의 주먹은 어느 덧 굳게 쥐어져 있었다. 칠성이가 별안간 큰소리를 치고 나서는 바람에, 
김 주사는 잠시 찔끔해 있다가.
 
"나? 난 산림간수야! 현보가 산림법칙을 위반해서, 조사할 것이 있어 왔어."
"산림간수는 남으 여편네 혼자 있는 밤중에 조사를 해야 맛인가?"
 
칠성이는 가슴을 약간 앞으로 솟구며 따지고 들었다.
 
"그야 조사할 필요만 있으면 언제든지 조사하는 것이 규칙이지 ……."
"세상에 그런 빌어먹을 규칙이 어디 있단 말이냐?"
 
이번에는 칠성이가 정면으로 김 주사를 노려본다. 순이는 꼼짝않고 앉아 있었다.
 
"에끼, 고약한 놈! 그런 말버르장머리가 어딨늬? 아무리 불학무식한 놈이기로니!"
"이 자식아! 뭐 어때? 유식헌 놈은 똥이 관을 쓰구 나오니?"
 
칠성이는 상반신을 일으켜 김 주사 앞으로 다가갔다.
 
"이놈아!"
 
김 주사는 고함을 치며 칠성의 따귀를 번개같이 때려갈겼다. 그와 동시에,
 
"이 간나새끼 어디 보자!"
 
하기가 무섭게 칠성이도 김 주사 멱살을 추켜 잡았다. 김 주사도 칠성이를 맞잡았다. 
다음 순간 둘은 서로 엎치락뒤치락 뒤채었다. 그 바람에 등잔불이 홱 꺼졌다. 
별안간에 방안은 수라장이 되었다.
 
"아이구머니!"
 
순이는 외마디 소리를 부르짖으면서 밖으로 뛰어나왔다.
 
"아코!"
"에이, 쌍!"
"아코, 아고고……."
 
하는 비명이 방안에서 연방 들려 나왔지마는, 순이는 그 목소리가 누구인지도 분간하지 못하였다. 
순이는 어쩔 줄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며,
 
"아이구테나! 아니구테나!"
 
하다가, 문득 성황당 생각이 나서 느티나무 밑으로 부리나케 달려오더니,
 
"성황님! 성황님! 데 쌈을 좀 말려 주십사! 데 쌈을 좀 말려 주십사!"
 
하고 두 손을 싹싹 비비었다.
방안에서는 아직도
 
"이이 쌍, 에이 쌍!"
 
하는 소리가 연방 들려 나왔다.
 
 
 
이틀이 지나도, 사흘이 지나도 현보는 돌아오지 않았다.
칠성이는 저번날 김 주사와 싸우고 가서는 나흘째 오지 않았다. 떠도는 말에 의하면 칠성이는 
김 주사의 머리에 상처를 입혔기 때문에 그날 밤으로 어디론지 도망을 치고 말았다 한다.
순이는 낮이면 산나물을 하였고, 밤이면 성황당에서 치성을 드리면서 그날그날을 보내었다. 
현보가 잡혀간 뒤로는 숯은 한 가마를 구웠을 뿐이었다. 순이는 저녁에 집에 돌아올 때처럼 
쓸쓸한 적이 없었다. 다른 때 같으면 현보와 함께 돌아와서 저녁도 마주앉아 먹을 터인데, 이제는 
혼자 오도카니 앉아 먹자니 밥이 목구멍을 넘어가지 않았다. 순이는 나물을 하다가도 숲 속에서 
장끼와 까투리가 서로 꾸둑거리며 희롱하는 것을 보고는, 문득 현보 생각이 머리에 떠올라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지나간 일을 회고해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숲 속에서 꾀꼬리가 울고, 뻐꾸기가 울고, 마라부리가 울고 할 때에는 
순이의 마음은 평화스러웠고, 도끼를 드는 팔에도 힘이 넘쳤다.
산에만 오면 순이는 어머니 품속에 안긴 것처럼 마음이 듬뿍하여, 
온갖 새들과 함께 노래 부르고 싶었다. 새들의 노래를 들을 때에는 순이의 마음에는 슬픔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었다. 나무가 무성히 자라고 새들이 노래부르는데, 순이의 가슴에 검은 구름이 
있을 턱 없었다. 그런 때에는 순이는 현보도 성황님 덕택에 이내 나올 것을 굳게 믿는 것이었다.
그러나 해가 저물고 산골짜기가 어둠에 잠기면 순이의 마음도 어두워졌다. 제 둥지로 돌아가는 
까마귀가 어쩌다가 순이네 집 위에서,
 
"까우! 까우!"
 
하고 울 때면, 순이의 마음은 납덩이같이 무서워졌다. 옛날부터 저녁 까마귀가 울면 
집안이 불길하다는 것을 순이도 알기 때문이었다. 순이는 현보가 내일도 돌아오지 못하려는가, 
정말 십 년씩이나 갇혀 있게 될 것인가 하고,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하다가, 
마침내는 벌떡 일어나서 성황당으로 달려간다.
그런 때면 순이는 성황당 앞에 엎드려 오래오래 치성을 드리는 것이었다. 
순이는 모제기(샛별)가 서편 하늘에 퍽 기울어진 때에야 잠자리에 누웠다. 
허나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노라니 현보와 칠성이와 김 주사의 얼굴이 
제각기 나타났다. 순이는 아까 산에서 장끼와 까투리가 장난치던 것을 생각하고, 
이내 언젠가 현보가 장에서 고무신 사 오던 날, 저녁 일이 기억에 떠올랐다. 그래서,
 
'이번에 나오면, 현보허구 둘이서 성황님께 아들 낳게 해달라구 빌어야지.'
 
하고 혼자 궁리하다가 씩 웃었다.
괴괴한 밤이었다. 순이는 낑 하고 돌아눕다가 문득 귓결에,
 
"응응응응응……."
 
하는 소리를 듣고 머리를 번쩍 들었다.
 
'여우가 울어?'
 
순이는 가슴이 또 철렁 내려앉았다. 여우가 울 때에, 그 입을 향한 곳에는 반드시 흉사가 있다기에,  
순이는 벌떡 일어나서 문 밖으로 뛰어나와 어딜 향해 우는지 알아보려 하였다. 
그러나 토방에 서서 귀를 기울였지마는, 울음소리만 듣고는 어딜 향하고 우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꼭 순이네를 향하고 우는 것만 같았다.
 
'현보가 영 못 나오려나?'
 
순이의 가슴은 점점 미어져 왔다. 순이는 성황님께 무슨 죄를 지었던가 스스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역시 성황님께 정성이 부족한 탓에 까마귀가 울고, 여우가 방정을 떠는 것이라고 믿었다. 
까마귀나 여우나 모두가 성황님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라고 순이는 믿었던 것이다. 
그래 순이는 다시 성황님으로 모신 느티나무 아래에 와서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비비었다. 
순이는 참된 마음으로 성황님께 사죄를 하였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 세 시간이 지났건만 
순이의 마음에는 오히려 부족하여, 그는 하룻밤을 치성으로 꼬박이 밝혔다. 그랬더니, 
이튿날 아침 순이의 마음은 도로 명랑하여졌다.
아침 볕에 무르녹은 녹음을 보면, 순이의 마음은 옥구슬같이 맑아진다. 
순이가 막 집을 나서 숯가마로 가려는데, 난데없이 까치 두 마리가 순이네 지붕 위에 날아와 앉더니,
 
"까까까까까……."
 
하고 열성스럽게 짖었다.
 
"옳다, 됐다!"
 
순이의 눈은 기쁨에 이글이글 빛났다. 아침 까치가 짖으면 손님이 온다는데, 
아마 오늘은 현보가 돌아오려나 보다 싶었다. 현보가 오면 무엇부터 이야기할까? 김 주사 이야기, 
까마귀 이야기, 여우 이야기, 장끼와 까투리가 놀던 이야기 …… 모두 신기로운 이야기 재료 같았다. 
아니 그보다도 성황님이 얼마나 신령하시다는 것을 말해서 둘이서 아이를 점지해 주도록 
축수를 하리라 하였다.
순이는 기쁨에 일이 손에 붙지 않았다. 개금아리가 갈갈갈갈 하기만 하여도 고개를 들고 멍하니 
섰곤 한다. 그러다가는 현보가 오지 않나 하고 언덕길을 내려다보곤 한다.
한낮이 겹자 더위는 찌는 듯하였다. 순이는 웃통을 벗은 채 나물을 하다 말고, 
그늘진 풀밭에 펄썩 주저앉았다. 바로 머리 위에서 산 비둘기가 '구우구우'하고 울었다. 
순이는 고개를 들어 비둘기를 찾았다.
소나무 가지에서는 두 마리의 비둘기가 서로 주둥이를 맞대 보기도 하고, 머리를 비비기도 한다. 
순이는 멀거니 그것을 쳐다보고 있노라니, 가슴은 공연히 쓸쓸하였다. 
오늘도 현보가 돌아오지 않으려는가 싶어 한숨을 쉬면서 먼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바로 그때,
 
"순이!"
 
하고 어디선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순이는 꿈인가 놀라며 성큼 일어서니, 
맞은편 숲 속에 칠성이가 서 있었다.
 
"아! 칠성이네! 어디로 도망을 갔다더니?"
 
순이는 반가웠다. 그렇지 않아도 저희 때문에 칠성이가 죄를 짓고 도망을 갔대서 
미안히 여기던 판이었는데, 뜻밖에 만나니 참말 반가웠던 것이다.
 
"나 말이야, 순이! 그동안 한 삼백 리 되는 곳에 도망을 갔드랬어! 그 자식 대가리를 깨뜨려 
주었거든! 그래서 도망을 가기는 갔지만, 암만해도 순이 생각을 잊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 순이를 데리러 왔어!"
 
하고 사내는 순이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순이는 저고리를 입으면서,
 
"아이구 망칙해라! 내래 와 칠성이넬 따라갈꼬!"
 
말은 그러나, 저를 생각해 주는 마음씨가 노상 싫지는 않았다.
 
"안 가믄 어쩌누? 현보는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걸 ……."
"와 몰라! 오늘은 나올 텐데!"
"오늘? …… 흥! 적어두 삼 년은 있어야 해!"
"삼 년?"
 
이번에는 순이가 놀랐다.
 
"그러티! 삼 년은! 그러나 그동안 순이 혼자 어떻게 사누? 
 그러기 현보 나올 동안 나허구 같이 가 있자구."
 "……."
"그뿐인가. 인제 현보가 나온대두 다른 벌이를 해야지, 숯구이는 못하거든!"
"와 어드래서요?"
"숯두 말야, 이제부터는 검사를 하거든, 법에 가서 검사를 하지 않고는 못 팔아먹는데, 
그 검사가 오줄기 어렵다구!"
"누구래 그릅더까?"
"누군 누구야! 다 그러는데! 발쎄 신문에두 났다는걸"
 
순이는 점점 안타까워서,
 
"그까짓 법이 뭐기! 성황님께 빌면 그만이지."
 
하고 혼자 짜증을 내었다.
 
"성황님! ……흥, 어디 잘 빌어 봐. 되나 안되나!"
 
순이는 어찌 할 도리를 몰랐다.
 
"순이! 내래 발쎄 순이 입성 다 해 가지고 왔어. 이것 좀 봐."
 
하고 칠성이는 손에 들었던 보퉁이를 풀기 시작한다.
순이는 잠자코 보퉁이만 쳐다본다. 보퉁이 속에서 분홍 향라적삼과 수박색 목메린스 치마가 
나오는 것을 보고, 순이는 눈이 휘둥그래진다.
 
"이거 다 순이 입을 거야!"
 
하고 칠성이가 순이 앞에 옷을 내미는 순간. 순이는 기쁨을 참을 수 없어 빙그레 웃으면서 
집에 있는 흰 고무신을 생각해 보았다. 그것을 다 갖추어 입고 나서면 
그까짓 장끼 지체쯤 어림도 없어 보였다.
 
"어서 입어 보라구!"
 
그 말에 순이는 치마 저고리를 입었다. 순이는 기쁨에 날뛰었다. 산속이 갑자기 환해지는 것 같았다.
 
"순인 참 절색이야!"
 
하고 감탄하며 칠성이는 순이의 손을 끌어당겼다. 순이는 가만히 생글생글 웃기만 하였다.
 
"구우구우구우!"
 
산비둘기가 또 울었다. 지금 순이에게는 칠성이가 현보와 꼭 같이 정답게 보였다.
 
"구우구우!"
 
산비둘기가 울 때마다 순이의 가슴은 화로 위의 눈덩이처럼 슬슬 녹아 내렸다.
그날 저물녘에 순이는 칠성이를 따라 먼 길을 떠났다. 머리에는 붉은 댕기를 다리고, 
게다가 분홍 항라적삼과 수박색 치마를 떨쳐입고, 흰 고무신까지 받쳐신고 나서니, 
순이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발을 옮겨 놓을 때마다 걸음걸음에 치마폭 너풀거리는 것이 
제가 보기에도 무지개보다도 고왔다.
 
"빨리 가자구! 어둡기 전에 백 리는 내대어야겠는데……."
 
칠성이는 걸음을 재촉하였다. 순이와 칠성이는 저녁때에야 삼백리 길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밤길이 불편은 하지마는, 낮에는 아차 잘못하여 김 주사 눈에 띄면 큰일이기 때문에 
일부러 밤을 택하였다. 순이는 가벼운 걸음으로 삼십 리는 언뜻 걸었다. 
그러나, 천마령 고개를 다 넘고 들길로 접어들자, 순이의 마음은 점점 불안스러워 왔다.
 
"엉야! 좀 쉬어 가자구요!"
 
순이는 애원하듯 말하였다.
 
"다리가 아픈가 머?"
"아니! …… 그래두 ……."
"쉬어 가디! 순인 그래두 풀밭에 마구 앉진 마라! 입성에 풀물 오르믄 안돼!"
"그럼, 어떡하노?"
"그래도 서서 쉬어야디."
 
한참 순이는 말이 없었다.
 
'칠성이를 따라가는 것이 옳을까?'
 
순이는 풀밭에 주저앉고 싶었다. 그러나 풀밭에 주저앉으면 안된다구하여 순이는 불안스러웠다. 
장차 알지도 못하는 지방으로 가는 것이 더더구나 불안스러웠다.
 
"이제 가는 데두 산이 많은가요?"
 
하고 순이는 물었다.
 
"산이 머야! 들판이디! 그까짓 산 댈까!"
"그럼 노루나 꿩 같은 건 없갔구만요?"
"없구말구!"
"부엉이랑 뻐꾸기 같은 것두?"
"그따우두 다 없어! 그래두 사람은 많디! 살기 좋은 곳인 줄만 알갔디!"
"고사리, 도라지 같은 산나물은 있나?"
"산이 없는데 그런 게 어떻게 있누! 글쎄 근심 말아! 썩 좋은 데 데리고 갈 터이니."
 
그러나 순이는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가는 곳이 아무리 좋다 해도 산이 없고 나무가 없다면, 
그 허허벌판에서 무엇에 마음을 의탁하고 살아간단 말인가? 더구나 공연히 사람만 많이 모여서 
 복작복작 들끓는다는 그런 곳에 가서 …….
사람만 많은 곳에 가서 지금처럼 고운 저고리에 고운 치마를 입고 마음대로 주저앉지도 못하고 
새색시처럼 곱다랗게 앉아 있어야만 한다면 무슨 재미로 살아간다는 말인가?
순이는 문득 천마령 안골짜기 자기 집이 그리웠다. 오막살이 일망정 고대광실 부럽지 않게 
정다운 그 집이었다. 지금쯤은 앞산 뒷산에서 부엉이, 접동새가 울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삼십 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여기부터가 싫었다. 순이는 고운 옷 입은 기쁨도 사라졌다.
그는 불현듯 현보가 그리웠다. 성황님께 어젯밤 그만큼이나 치성을 올렸고, 
또 오늘 아침에 까치도 지저귀었으니 지금쯤은 현보가 집에 돌아왔을지도 모르리라 싶었다.
 
"현보가 왔다면 나를 얼마나 기다릴까?'
 
현보와 둘이서 나무하고 숯 굽던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순이는 천마령과 현보를 떠나서는 살아갈 재미도 없거니와 살지도 못할 것 같았다. 
더구나 죄를 지으면 성황님의 벌을 준다는데, 삼백 리가 멀다고 벌 못 주랴 싶어, 
순이는 고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안될 것 같았다.
 
"자아 또 떠나 보자구!"
 
하고 칠성이가 성큼 일어섰다.
 
"나 나, 뒤 좀 보고 갈 거니 슬근슬근 먼저 가라요."
 
순이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뒤? 그럼, 더기서 기다릴 거니, 이내 오라구!"
"응."
순이는 선대답을 하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숲 속으로 들어가자, 순이는 얼른 치마와 저고리를 벗어 나뭇가지에 걸었다. 
그까짓 입고 주저앉지도 못하는 옷이라고 생각하니, 조금도 애착이 없었다. 
고무신은 벗어 들었다. 순이는 옷을 나무에 걸어 놓고, 고무신을 든 채 아까 오던 길을 되돌아 서서 
힝하니 달음질을 치기 시작하였다. 캄캄한 산길이건마는, 순이는 익숙하게 달렸다. 
얼마를 달려오니까 그제야.
 
"접동접동 접접동 ……."
 
하고 접동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순이의 마음은 가벼워졌다. 
이제야 제가 살 곳을 옳게 찾아온 것 같았다. 고개에 올라서서 굽어보니, 
마주 건너다 보이는 순이네 집에 빨간 불이 비치었다.
 
"아, 현보가 왔구나!"
 
순이는 기쁨에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쏜살같이 고개를 달음질쳐 내려왔다. 
다시 언덕을 추어서 집을 향해 올라올 때 
순이는,
 
"성황님! 성황님!"
 
하고 부르짖었다.
모든 것이 성황님의 덕택 같았다.
집 앞에까지 다다랐을 때에 문득,
 
"에헴!"
 
하는 귀에 익은 현보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아! 성황님! 성황님!"
 
순이는 다시 한 번 그렇게 부르짖으며, 느티나무 밑으로 달려왔다.
 
접동새가 울었다.
부엉이도 울었다. 늘 듣던 울음 소리였다.
 
그러나 오늘밤 따라 새소리는 순이의 가슴을 파고드는 듯이 정다웠다.

                       --  끝  --
 

https://www.youtube.com/watch?v=upFw95E7onk&t=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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