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탑 아래에서 - 윤흥길 -1. “대미를 장식헐 만헌 순애보라고 내 입으로 말허기는 약간 거시기헌 구석이 있지마는…….” 인테리어 전문점을 운영하는 최건호였다. 묵비권이라도 행사하듯 내내 잠자코 앉아 남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그가 뜻밖에도 자진해서 마지막 이야기 순번을 떠맡고 나서자 그에게도 입이 달려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좌중은 깜짝 반가워했다. “반세기가 지나가드락 영 잊혀지지 않는 소녀가 있다면 혹시 순애보 계열에 턱걸이로라도 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묵적보살처럼 입이 천근이기로 소문난 최건호가 절대로 허튼소리를 할 리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