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다시 읽는 명수필 - 인연,두부장수 -

하얀모자 1 2023. 1. 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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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읽는 명수필>
 
                                  '인연'
                                                                     - 피천득 -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여자대학에 가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가을 학기, 매주 한 번씩 출강한 일이 있다.
 힘드는 출강을 하게 된 것은,
 주 수녀님과 김 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수십 년 전에 내가 열 일곱 되던 봄,
 나는 처음 동경에 간 일이 있다.
 어떤 분의 소개로 사회 교육가 미우라 선생댁에 유숙을 하게 되었다.
 시바쿠 시로가네에 있는 그 집에는 주인 내외와 어린 딸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하녀도 서생도 없었다.
 눈이 예쁘고 웃는 얼굴을 하는 아사코는
 처음부터 나를 오빠같이 따랐다. 

 아침에 낳았다고 아사코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하였다.
 그 집 뜰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고, 일년초 꽃도 많았다.
 내가 간 이튿날 이침,
 아사코는 '스위트피'를 따다가 화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주었다.
 '스위트피'는 아사코같이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성심여학원 소학교 일 학년인 아사코는 어느 토요일 오후
 나와 같이 저희 학교까지 산보를 갔었다.
 유치원부터 학부까지 있는 카톨릭 교육기관으로 유명한 이 여학원은
 시내에 있으면서 큰 목장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사코는 자기 신발장을 열고 교실에서 신는
 하얀 운동화를 보여주었다.

 내가 동경을 떠나던 날 아침,
 아사코는 내 목을 안고 내 뺨에 입을 맞추고,
 제가 쓰던 작은 손수건과 제가 끼던 작은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선생 부인은 웃으면서
 " 한 십 년 지나면 좋은 상대가 될 거예요." 하였다.
 나의 얼굴이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사코에게 안데르센의 동화책을 주었다.

 그 후 십 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국민학교 일 학년 같은 예쁜 여자아이를 보면
 아사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두번째 동경에 갔던 것도 사월이었다.
 동경 역 가까운 데 여관을 정하고 즉시 미우라 댁을 찾아갔다.
 아사코는 어느덧 청순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영양(남의 집 딸에 대한 높임말)이 되어 있었다. 

 그 집 마당에 피어 있는 목련꽃과도 같이.
 그때 그는 성심여학원 영문과 삼학년이었다.
나는 좀 서먹서먹했으나, 아사코는 나와의 재회를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가끔 내 말을 해서 나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그 날도 토요일이었다. 저녁 먹기 전에 같이 산보를 나갔다.
 그리고 계획하지 않은 발걸음은 성심 여학원쪽으로 옮겨져 갔다.
 캠퍼스를 두루 거닐다가 돌아올 무렵 나는
 아사코 신발장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무슨 말인가 하고 나를 쳐다보다가,
 교실에는 구두를 벗지 않고 그냥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뛰어가서 그 날 잊어버리고 교실에 두고 온
 우산을 가지고 왔다.

지금도 나는 여자 우산을 볼 때면 연두색이 고왔던 그 우산을 연상한다.
 <셀 부르의 우산>이라는 영화를 내가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사코의 우산 때문인가 한다.
 아사코와 나는 밤늦게까지 문학 이야기를 하다가
 가벼운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새로 출판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것 같다.

 그 후 또 십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제2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고
 또 한국 전쟁이 있었다.
 나는 어쩌다 아사코 생각을 하곤 했다. 결혼은 하였을 것이요,
 전쟁통에 어찌 되지나 않았나, 
 남편이 전사하지나 않았나 하고 별별 생각을 다하였다.
 1954년 처음 미국 가던 길에 나는 동경에 들러 미우라 댁을 찾아갔다.
 뜻밖에 그 동네가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선생 내외분은 흥분된 얼굴로 나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한국이 독립이 돼서 무엇보다도 잘됐다고 치하를 하였다.
 아사코는 전쟁이 끝난 후 맥아더 사령부에서 번역 일을 하고 있다가,
 거기서 만난 일본인 이세와 결혼을 하고 따로 나서 산다는 것이었다.
 아사코가 전쟁미망인이 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2세와 결혼하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만나고 싶다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아사코의 집으로 안내해주셨다.

 뾰죽 지붕에 뾰죽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이십여 년 전 내가 아사코에게 준 동화책 겉장에 있는 집도
 이런 집이었다.
 
 "아, 이쁜 집! 우리 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사코의 어린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십 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이 되었더라면
 아사코의 말대로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뾰죽 지붕에 뾰죽 창문들이 있는 집이 아니라도,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집에 들어서자 마주친 것은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아사코의 얼굴이었다.
 <세월>이란 소설 이야기를 한지 십 년이 더 지났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싱싱하여야 할 젊은 나이다.
 남편은 내가 상상한 것과 같이,
 일본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닌 그리고 진주군 장교라는 것을
 뽐내는것 같은 사나이였다.
 아사코와 나는 절을 몇 번씩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명작수필)             두부 장수
                                        - 외솔 최현배 -

서울의 명물―아니 진경의 하나는 확실히 행상들의 외치는 소리이다.
조석으로, 이 골목 저 골목에는 혹은 곧은 목소리로, 혹은 타목으로,
또 남성으로, 혹은 여성으로
제가끔 제 가진 물건들을 사 달라고 외친다.
이 소리에 귀가 닳은 서울 사람에게는 아무 신기할 것 없겠지만,
처음으로 서울로 올라온 시골 사람의 귀에는 이 행상들의 외는 소리처럼
이상야릇한 서울의 진풍경은 없을 것이다.

오늘에서 돌이켜 생각하면 꼭 13년 전의 일이다.
내가 시골서 백여 리를 걸어 겨우 경부선 물금역에 가서 생전 처음 보는
기차를 타고 공부차로 서울에 와 잡은 주인집은
관훈방 청석골 정 소사의 집이었다.

같이 온 동무도 있거니와 이 주인집에 묵는 학생들은 고향 친척도 있고,
또 영남 학생들이기 때문에 오늘 날 당장에는
그리 설다는 느낌이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하룻밤을 자고 나서 그 이튿날 이른 아침에 들창 밖에서 들려오는
각종 행상들의 외치는 소리는
참으로 어린 시골내기의 귀를 찔러 놀라게 하였다.

  “생선 미웃들 사려!”

  “무 드렁 사려!”

  “맛있는 새우젓 사오!”

어느 소리가 하나 귀에 익은 게 없다. 모두 신기 그것이다.
갓 온 시골내기는 먼저 온 영남 친구더러 그 외침의 뜻을 물으며
서로 보고 웃었다. 이것은 다 지난 옛날 이야기의 한 토막이거니와
서울 거리의 도붓장수의 외치는 소리는 예나 이제나 별로 다름이 없이
아침마다 저녁마다 거리거리의 공기를 울려난다.

나는 서울로 이사 온 뒤로부터 열 해가 넘도록 이 행촌동에 살아온다.
우리 집이 이 동네로 이사 온 때로부터 이 행촌동 거리에는
아침저녁으로 여러 가지 식료품 파는 도붓장수가 가지가지의 음색으로
가지가지의 어법으로 외치고 지나간다.

그 중에도 두부 장수가 있어 남다른 어법으로 또 남다른 어조로
특색 있게 아침저녁으로 외치며 도부 친다 한다. 여느 두부 장수들은,
 
“두부 사려오!” 하거나 그렇잖으면,
 
“두부나 비지 살려오!” 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특색 있는 한 두부 장수는 반드시,
 
“두―부 사이 주오!” 하고 외친다.
 
 듣는 사람마다 이상히 여겨 불러서 사 준다.

우리 집에서 한 번 두 번 사 주다가 나중에는
아주 붙박이 단골이 되었다. 그래서 그 외침이 들리기만 하면 아이들이,
 
“어머니! ‘사 주오’가 가아요!”
 
하고 두부 사기를 묻던 것이 버릇이 되다시피 되었다.

이 ‘사 주오’는 거의 날마다 우리 집 문 앞에 지게를 받치고서
두부 한 모, 두 모를 주고는 분필로 판장에다 한 금 두 금씩
긋고 가는 터이다. 그러므로 만약 그저 지나게 되는 때에는
그 두부 장수 자신도 섭섭하려니와 ‘사 주오’를 부르지 못하고 만
아이들의 마음은 더욱 섭섭한 느낌이 생기는 것이었다. ‘사 주오’까지
하는데, 그것 하나 못 사 주다니!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모양 같았다.

그래서 월말에는 그 판장에 그어 놓은 분필의 흔적을 따라
두붓값을 갚는데, 그 ‘사 주오’는 거저로 두부를 한 모나 두 모를
주는 것은 상례였다. 더구나 세말 같은 때에는 더 많이 거저 두고
가는 것이었다. 그럴 적마다 그 두부 받은 사람은 그만두라 하고
주는 장수를 들여가시라고 서로 세우는 것이 예사였다.

그러다가 어느 새 섣달 대목쯤 해서 그 ‘사 주오’ 두부 장수가 그만
오지 아니하게 되었다. 대목이 다 되어도 종내 두붓값 받으러
오지도 않았다. 그 두붓값을 못 갚은 우리 집에서는 온 식구가 처음에는
이상히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걱정하기 시작하였다.

식구들이 저녁을 먹고 앉으면,

“그 ‘사 주오’가 왜 안 오는가?”

“아마도 그 찬바람 쐬면서 외치고 다니다가 아마도
    감기가 들었는 게지.”

하고 서로 문답하는 것이 종종이었다.
그러면서도 얼마 지나면 설마 오겠지 하고 기다리는 마음을
놓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 ‘사 주오’ 두부 장수는 정월이 가고,
2월이 다 가고, 봄철이 지나 여름이 지나도록 종내 그 특색 있는 외침의
소리는 행촌동 골목에 다시 울리지 않았다.

이렇게 날이 가고 달이 가고 또 드디어 해가 가도,
우리 내외는 그 두붓값 갚지 못한 ‘사 주오’ 두부 장수를 잊어버리지
못하고, 간간이 조용할 때에는 무슨 글티기를 타서 그 '사 주오'
두부 장수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참 그 두부 장수가 그만 죽었는가 봐요?”

“글쎄요. 아마 그렇기에 도무지 오지 않는 게지요.”

이러한 문답이 우리 집의 밥상 물린 자리에 일어나는 것이었다.
두붓값을 못 갚으니 속이 꺼림도 하고 그 두부 장수가
그만 죽었는가 하니 가엾기도 하였다.

어느 날 저녁, 저자였다. 내가 독립문 밖 푸성귀 장에서 배추를 사려고
하니까 어떤 사람이 나를 보고서 그저 머리를 꾸벅하면서
목례를 하고 간다. 나는 머리로 그의 인사를 받았으나 그가 누구인지
확실히 깨치지 못하였다. 나중에야 생각하니 아무래도 그가
바로 죽었다고 생각하던 ‘사 주오’ 두부 장수인 것 같았다.
의복은 깨끗이 입었고 그 누런 얼굴도 훨씬 부(富)해졌지만 그 전형의
‘사 주오’ 두부 장수임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나는 집에 오자 곧 마누라를 보고 그 이야기를 하였다.
마누라는 나의 말을 듣고 그 두부 장수가 살아 있는 것―더구나
우리 집 가까이 살아 있다는 것을 믿으려 하면서도
참 내 믿기 어려워하였다. 그래서 이 ‘사 주오’가 오랜만에 다시
우리 집 식구들의 화제가 되었으며, 나는 그 때에 그에게
 
“당신이 바로 그 두부 장수 하던 이요?”
 
 하고 다져보지 못한 것만을 유감으로 생각하였다.

그 뒤에 여러 달이 지나서 우리 마누라가 관동에 갔다가 오더니
내가 그 두부 장수를 만났다고 반가이 시원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 얘기의 내용인즉 대략 이러하다.

ㅡ 그가 관동에서 그 사람을 만났는데 분명히 그 ‘사 주오’
두부 장수라, 어디 살며 무엇을 하고 사는가를 물으니
그는 옛날부터 살아오던 관동에 여전히 사는데 두부를 쑤어 도매만 하고
거리로 도부치는 일은 바빠서 못한다고 대답하였다 한다.
그래서 마누라가 왜 두붓값은 안 받으러 오는가 하니 그는 다만
 
“예, 인제 받으러 가지요” 하였다 한다.
 
그래서 마누라는 오라고 여러 번 부탁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 주오’는 종내 오지 아니하여
우리도 아직 그 두붓값을 갚지 못하고 지낸다.

◇ 최현배(崔鉉培, 1894~1970)

국어학자ㆍ국어 운동가ㆍ교육자. 호는 외솔.
일본 교토(京都)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1942년에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옥고를 겪었다.
한글 학회 이사장, 연세 대학교 교수ㆍ학장ㆍ부총장을 지냈으며
국어 연구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저서에《우리 말본》,《한글갈》,《나라 사랑의 길》,《글자의 혁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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