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태평천하 (太平天下) 중 - 채만식 -

하얀모자 1 2023. 2. 8.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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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천하 (太平天下)    -  중  -
                                                                                         - 채만식 -
 6. 觀 戰 記[관전기]
 
고씨는 그리하여 그처럼 오랫동안 생수절을 하고 살아오다가
마침내 단산(斷産)할 나이에 이르렀읍니다.
여자 아닌 여자로 변하는 때지요.
이때를 당하면 항용 의좋은 부부생활을 해오던 여자라도 히스테리라든지
하는 이상야릇한 병증이 생기는 수가 많답니다.
그런 걸 고씨로 말하면, 25년 청춘을 호올로 늙히다가, 이제 바야흐로
여자로서의 인생을 오늘내일이면 작별하게 되었은즉, 가령 히스테리를
젖혀놓고 보더라도 마음이 안존할리가 없을 건 당연한 노릇이겠지요.
윤직원 영감의 걸찍한 입잣대로 하면, 오두가 나는 것도 그러므로
무리가 아닐 겝니다.
그러한데다가, 자 집안 살림을 맡아서 하니 그 재미를 봅니까.
자식들이라야 다 장성해서 뿔뿔이 흩어져 살고 어미는 생각도 않지요.
손자 경손이놈은 귀엽기는 커녕 까불고 앙똥해서 얄밉지요.
남편이라야 남이 아니면 원수지요. 시아버지라는 영감은 괜히 못먹어서
으르렁으르렁 하고, 걸핏하면 짝 찢을 년이네, 오두가 나서 그러네 하고
군욕질이지요. 그러니 고씨로 앉아서 당하고 보면,
심술에다가 악밖에 날 게 더 있겠읍니까.
 
그래도 작년 정월 시어머니 오씨가 살아 있을 때까지는 30년 눌려서
살아 온 타성으로, 고양이 앞에 쥐같이 찍소리도 못하고 마음으로만
앓고 살았지만, 이제는 그 폭군이 하루 아침에 없고 보매
기는 탁 펴지는데,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뜻과 같지 않으니, 불평은
할 수 없이 악으로 변해버리게만 되었던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죽고 없은 뒤로는 집안에서 어른이라면 시아버지 윤직원
영감하나뿐이요, 그 밖에는 죄다 재하자들입니다.
한데, 그는 윤직원 영감쯤 망령난 동네 영감태기 푼수로나 보이지,
결단코 시아버지요, 위하고 어려워 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읍니다.
그러니까 그는 집안의 어른이고 아이고 간에 트집거리만 있으면
상관없이 들이대고 싸웁니다.
 
시방 오늘 저녁만 하더라도, 아까 쪽대문을 열어놓았다고 윤직원 영감이
군욕질을 했대서 그 원혐으로다가 기어코 한바탕 화룡도를 내고라야 말
작정으로 그렇게 벼르고 있는 참입니다.
하기야 쪽대문을 열어놓은 것도 실상 알고 보면, 우정 그런 것이지요.
윤직원 영감이 보고서 속 좀 상하라고. 그리고 그 끝에 무어라고 욕이나
하게되면 싸움거리나 장만할 양으로…… 용 못된 이무기 심술만
남더라고, 앉아서 심술이나 부려야 속이나 시원하지요.
어쨌든, 그러니 속이 후련하도록 싸움을 대판거리로 한바탕 해대야만
할텐데, 이건 암만 도사리고 앉아 들어야 영감태기가 음충맞게시리
어린 손자며느리들더러 보리밥을 먹으면 애기 밴다는 소리나 하고 있지,
종시 이리로대고는 무어라고 그 더러운 구습(口習)을 놀리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참고 말잔즉 더 부아가 나기도 할 뿐더러,
대체 무엇이 대끼며 뉘 코 무서운 사람이 있다고, 그 부아를 참거나
조심을 할 며리도 없는 것이고 해서, 시방 두 볼이 아뭏든 상말로
오뉴월 무엇처럼 추욱 처져가지고는 숨길이 씨근버근, 코가 벌씸벌씸,
입이 삐쭉삐쭉, 깍지손으로 무르팍을 안았다 놓았다,
담배를 비벼 껐다 도로 붙였다 사뭇 부지를 못합니다.
 
미상불 사람이란 건 싸우고 싶은 때 못 싸우면 더 부아가 나는
법이니까요. 집안은 안방에서 윤직원 영감이 태식을 데리고 앉아서
저녁을 먹으면서, 잔소리를 씹느라고 웅얼거리는 소리,
태식이 딸그락딸그락 째금째금하는 소리, 그 외에는 누구 하나
기침 한번 크게 하는 사람 없고, 모두 조심을 하느라 죽은 듯
조용합니다.
바깥은 황혼이 또한 소리없이 짙어가고, 으슴푸레하던 방안에는 깜박
생각이 난 듯이 전등이 반짝 켜집니다.
마침 이 전등불을 신호 삼듯, 집안의 조심스런 침정을 깨뜨리고,
별안간 투덕투덕 구둣발 소리가 안중문께서 요란하더니, 경손이가
안마당으로 들어섭니다.
교복 정모에 책가방을 걸멘 것이, 학교로부터 지금이야 돌아오는 길인가
본데, 이애가 섬뻑 그렇게 들어서다 말고, 대뜰에 저의 증조부의 신발이
놓인 걸 힐끔 넘겨다보더니, 고개를 움칠 혓바닥을 날름하면서 발길을
돌려 살금살금 뒤채께로 피해 가고 있읍니다.
눈에 띄었자 상 탈 일 없고, 잘못하면 사날 전에 태식을 골탕먹여
울린 죄상으로 욕이나 먹기 십상일 테라, 아예 몸조심을 하던 것입니다.
저는 아무도 안 보거니 했는데, 그러나 조모 고씨가 빤히 내다보고
있었읍니다. 실상 고씨가 본댔자 영감태기한테야 혓바닥을 내미는 건
말고 그보다 더한 주먹질을 해도 상관할 바 아니지만, 그러니까 그걸
가려 어쩌자는 게 아닙니다. 그애를 통해 생트집을 잡자는 모양이지요.
 
“네 이놈, 경손아!”
 
유리쪽으로 내다보고 있던 미닫이를 냅다 벼락치듯 와르르 따악
열어젖히면서, 집안이 온통 떠나가게 왜장을 칩니다.
온 집안이 모두 놀란 건 물론이지만, 경손은 고만 잘겁을 했읍니다.
그애는 증조부 윤직원 영감이 아니고 아무 상관도 없는 조모가 그렇게
내닫는 게 뜻밖이어서 더욱 놀랐읍니다.
그러나 놀란 것은 순간이요, 이내 침착하여 천천히 돌아서면서
 
“네에?”
 
하고 의젓이 마주 올려다봅니다.
이편은 살기가 사뭇 뚝뚝 떴는데,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시침을
뚜욱 따고 서서 도무지 눈도 한번 깜짝 않는 양이라니,
앙똥하기 아닐말로 까죽이고 싶게 밉살머리스럽습니다.
고씨는 영영 시아버지와 싸움거리가 생기지를 않으니까, 아무고 걸리는
대로 붙잡고 큰소리를 내서 시아버지의 비위를 건드려서, 그래서 욕이
나오면 언덕이야 트집을 잡아 가지고 싸움을 하쟀던 것인데,
고놈 경손이놈이 하는양이 우선 비위에 거슬리고 본즉, 가뜩이나 부아가
더 치밀고, 그렇지만 이판에 부아를 돋구어주는 거리면 차라리 해롭잖을
판속입니다. 이편, 경손더러 그러나 바른 대로 말을 하라면,
집안이 제한테는 모두 어른이건만 하나도 사람 같은 건 없고,
그래서 누가 무어라고 하건 죄꼼도 무섭지가 않습니다.
 
증조부 윤직원 영감이 그렇고, 대고모 서울아씨가 그렇고,
대부 태식이는 문제도 안되고, 제 부친 종수나 숙모 조씨가 그렇고,
조부 윤주사의 첩들이 그렇고, 해서 열이면 아홉은
다 시쁘고 깔보이기만 합니다. 그래 시방도 속으로는
 
‘흥! 누구 말마따나, 오두가 났나? 왜 저 모양인구?……
  암만 그래보지? 내가 애먼 화풀이를 받아주나……’
 
하면서, 제 염량 다 수습하고 있읍니다.
고씨는 당장 무슨 거조를 낼 듯이 연하여 높은 소리로
 
“네 이놈!”
 
하고, 한번 더 을러댑니다. 그러나, 이놈 이놈, 두번이나 고함만 쳤지,
그다음은 무어라고 나무랄 건덕지가 없읍니다.
하기야 시아버지가 진지상을 받고 계신데, 며느리 된 자 어디라고
무엄스럽게 문소리 목소리를 크게 내서 어른을 불안케 했은즉,
응당 영감태기로부터, 어허 그 며느리 대단 괘씸쿠나! 하여 필연
응전포고가 올 것이고, 그 응전포고만 오고 보면 목적한 바는 올바로
들어맞는 켯속이니 고만일 텁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저기 저놈 경손이놈이 사람 여남은 집어삼킨
능청맞은 얼굴을 얄밉살스럽게시리 되들고 서서, 그래 무엇이 어쨌다고
소리나 꽥꽥 지르고 저 모양인고! 할 말 있거든 해보아요?
내 참 별꼴 다 보겠네!…… 이렇게 속으로 빈정대는 게 아주 번연하니,
썩 발칙스럽기도 하려니와 일변 어째 그랬든 한번 개두를 한 이상
뒷갈무리를 못해서야 어른의 위신과 체모가 아니던 것입니다.
 
“이놈, 너넌 어디 가서 무얼 허니라구 인자사 이러구 오냐?”
 
고씨는 겨우 꾸짖는다는 게 이겝니다.
거상에 손자놈이 학교를 잘 다니건 말건 공부를 착실히 하건 말건, 통히
알은체도 안 해오던 터에, 오늘밤이야 말고서 갑작스레 그런 소리를
하는게, 다 속 앗일 짓이기는 하지만, 다급한 판이니 옹색한 대로
둘러댈 수밖에 없던 것입니다.
 
“전람회 준비했어요! 그러느라구 학교서 늦었어요!”
 
경손은 고씨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뿍 시뻐하는 소리로 대답을
해줍니다. 그때 마침 그애의 모친 박씨가 당황히 안방에서 나오더니
조용조용 
 
“너는 학교서 파하거던 일찍 일찍 오지는 않구서, 무슨 해망을
  허느라구 이렇게 저물구…… 할머니 걱정허시게 허구, 그래!”
 
하고, 며느리답게 시어머니를 대접하느라 아들놈을 나무랍니다.
 
“어머닌 또 무얼 안다구 그래요?……”
 
경손은 버럭, 미어다 부듲듯 제 모친을 지천을 하는데,
 그야 물론 조모 고씨더러 배채우란 속이지요.
 
“……전람회 준비 때문에 학교서 늦었단밖에 어쩌라구 그래요?
   왜 속두 몰라가지구들 그래요?”
 
“아, 저놈이!”
 
“가만 있어요, 어머닐랑…… 대체 집에 들앉은 부인네들이 무얼 안다구
   그래요?…… 내가 이 집에선 제일 어리니깐 만만헌 줄 알구,
   그저 속상헌 일만 있으면 내게다가 화풀일 허려 들어! 왜 그래요?
   왜?…… 괜히 나인 어려두 인제 이 집안에선 매앤 어룬 될
   사람이라우, 나두…… 왜 걸핏하면 날 잡두리우? 잡두리가……
   어림없이!……”
 
한마디 거칠 것 없이, 굽힐 것 없이, 퀄퀄히 멋스려댑니다.
 
“아, 이 녀석이!……”
 
저의 모친 박씨가 목소리를 짓눌러 가면서 나무라다 못해 때려라도
주려고 달려 내려올 듯이 벼르는 것을, 그러나 경손은 본체만체,
쾅당쾅당 요란스럽게 발을 구르면서 뒤꼍으로 들어갑니다.
 
“흥! 잘은 되야먹는다, 이놈의 집구석……”
 
고씨는 차라리 어처구니가 없다고 혀를 끌끄을 차다가,
미닫이를 도로 타악 닫으면서 구누름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잘 되야먹어! 이마빡으 피두 안 마른 것두 으런이 무어라구
  나무래먼 천장만장 떠받구 나서기버텀 허구!…… 흥! 뉘놈의 집구석
  씨알머리라구, 워너니 사람 같은 종자가 생길라더냐!”
 
이 쓸어넣고 들먹거려 하는 욕이 고씨의 입으로부터 떨어지자마자,
마침내 농성(籠城)코 나지 않던 적(敵)은 드디어 성문을 좌우로 크게
열고,(가 아니라) 안방 미닫이를 벼락치듯 열어젖히고, 일원 대장이
투구철갑에 장창을 비껴 들고(가 아니라) 성이 치달은 윤직원 영감이,
필경 싸움을 걷어 맡고 나서는 것입니다.
실상 윤직원 영감은 저편이 싸움을 돋는 줄을 몰랐던 건 아닙니다.
다 알고서도 어디 얼마나 하나 보자고 넌지시 늦추 잡도리를 하느라,
고씨가 처음 꽥 소리를 칠 때도 손자며느리와 딸을 건너다보면서
 
“저, 짝 찢을 년은, 왜 또 지랄이 나서 저런다냐!”
 
하고 입만 삐죽거렸읍니다.
서울아씨는 친정아버지를 따라 입을 삐죽거리고, 두 손자며느리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박씨만 조심조심 경손을 나무라느라고 마루로
나오고, 경손이가 온 줄 안 태식은 미닫이의 유리로 밖을 내다보다가
도로 오더니
 
“아빠 아빠, 저 경존이 잉? 깍쟁이 자직야, 잉?
   아주 옘병헐 자직이야!”
 
하고 떠듬떠듬 말재주를 부리고 했읍니다.
 
“아서라! 어디서 그런……”
 
“잉? 아빠. 경존이 깍쟁이 자직야. 도족놈의 자직야, 잉? 아빠, 그치?”
 
“아서어! 그런 욕 허면 못쓴다!”
 
윤직원 영감은 이 육중한 막내동이를 나무란다고 하기보다도,
말재주가 늘어가는 게 신통하대서 빙그레 웃고 있었읍니다.
두번째 건넌방에서 고씨의 큰소리가 들렸을 때도 윤직원 영감은
딸과 작은 손자며느리를 번갈아 건너다보면서 혼잣말을 하듯이,
저년이 또 오두가 나서 저러느니, 서방한테 소박을 맞고 지랄이 나서
저러느니, 원체 쌍놈 아전의 자식이요, 보고 배운 데가 없어 저러느니
하고, 고씨더러 노상 두고 하는 욕을 강하듯 내씹고 있었읍니다.
하다가 필경 전기(戰機)는 익어, 마침내 고씨의 입으로부터 집안이
어떻다는 둥, 뉘 놈의 씨알머리가 어떻다는 둥, 가로로는 온 집안을,
세로로는 신주 밑구멍까지 들먹거리면서 군욕질이 쏟아져 나왔고,
그리하여 윤직원 영감은 기왕 받아주는 싸움에 이런 고패를 그대로 넘길
며리가 없는 것이라, 드디어 결전을 각오했던 것입니다.
 
“아니, 야야?……”
 
미닫이를 타앙 열어젖히고 다가앉는 윤직원 영감은 그러기 전에 벌써
밥먹던 숟갈은 밥상 귀퉁이에다가 내동댕이를 쳤고요.
 
“……너, 잘 허넝 건 무엇이냐? 너, 잘 허넝 건 대체 무엇이여?
  어디 입이 꽝지리(꽝우리) 구녁 같거던 말 좀 히여 부아라? 말 좀
  히여 부아?”
 
집안이 떠나가게 소리가 큽니다. 몸집이 크니까 소리도 클 거야
당연하지요.
이렇게 되고 보면 고씨야 기다리고 있던 판이니 어련하겠읍니까.
 
“나넌 아무껏두 잘못헌 것 읎어라우! 파리 족통만치두 잘못헌 것
  읎어라우! 팔자가 기구히여서 이런 징글징글헌 집으루 시집온
  죄밲으넌 아무 죄두 읎어라우! 왜, 걸신허먼 날 못잡어 먹어서
  응을거리여? 30년 두구 종질히여 준 보갚음으루 그런대여? 머 내가
  살이 이렇게 쪘으닝개루, 소징(素症[소증])이 나서 괴기라두 뜯어
  먹을라구? 에이! 지긋지긋히라! 에이 숭악히라.”
 
신사(또는 숙녀)적으로 하는 파인 플레이라 그런지 어쩐지 몰라도,
하나가 말을 하는 동안 하나가 나서서 가로막는 법이 없고, 한바탕 끝이
난 뒤라야 하나가 나서곤 합니다.
 
“옳다! 참 잘 헌다! 참 잘 히여. 워너니 그게 명색 며누리 체껏이
  시애비더러 허넌 소리구만? 저두 그래, 메누리 자식을 둘썩이나
  읃어다 놓고, 손자자식이 쉬옘이 나게 생깄으먼서, 그래 그게
  잘 허넌 짓이여?”
 
“그러닝개루 징손주까지 본 이가 그래, 손자까지 본 메누리년더러 육장
  짝 찢을 년이네, 오두가 나서 싸돌아댕기네 허구, 구십을 놀리너만?
  그건 잘 허넌 짓이구만? 똥 묻은 개가 저(겨) 묻은 개 나무래지!”
 
“쌍년이라 헐 수 읎어! 천하 쌍놈, 우리게 판백이 아전 고준평이
  딸 자식이, 워너니 그렇지 별수 있겄냐!”
 
“아이구! 그, 드럽구 칙살스런 양반! 그런 알량헌 양반허구넌
  안 바꾸어…… 양반, 흥!…… 양반이 어디 가서 모다 급살맞어 죽구
  읎덩갑만…… 대체 은제적버텀 그렇게 도도헌 양반인고?
  읍내 아전덜한티 잽혀가서 볼기 맞이먼서 소인 살려줍시사 허던 건
  누군고? 그게 양반이여? 그 밑구녁 들칠수룩 구린내만 나너만?”
 
아무리 아귓심이 세다 해도 본시 남자란 여자의 입심을 못 당하는
법인데, 가뜩이나 이렇게 맹렬한 육탄(아닌 언탄)을 맞고 보니,
윤직원 영감으로는 총퇴각이 아니면, 달리 기습(奇襲)이나 게릴라전술을
쓸 수밖엔 별 도리가 없읍니다.
사실 오늘의 이 싸움에 있어선, 자기딴은 입이 광주리 구멍 같아도
고씨가 그쯤들이 폭로를 시키는데야 꼼짝 못하고 되잡히게만 경우가
되어먹었읍니다.
그러니 가장 좋은 도리는, 전자에 그의 부인 오씨가 하던 법식으로 냅다
달려들어 며느리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엎지르고,
방치 같은 걸로 능장질을 했으면야 효과가 훌륭하겠지요.
그러나 그 시어머니라는 머자와 시아버지라는 버자와 획 하나 덜하고
더하고 한 걸로, 시아버지는 시어머니처럼 며느리를 때려주지는 못하게
마련이니, 그 법을 그다지 야속스럽게 구별해 논 자, 삼대를
빌어먹을지라고, 윤직원 영감으로는 저주하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야, 이놈 경손아!”
 
육집이 큰 보람도 없이 뾰족하니 몰린 윤직원 영감은 마침내 마루로
쿵하고 나서면서 뒤채로 대고 소리를 지릅니다.
경손은 제 방에서 감감하게 대답을 하나,
윤직원 영감은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연해 소리소리 외칩니다.
한참만에야 경손이가 양복고의 바람으로 가만가만 나와서
 한옆으로 비껴섭니다.
 
“너 이놈, 시방 당장 가서 네 할애비 불러오니라. 당장 불러와!”
 
“네에.”
 
“요새 시체넌 거, 이혼이란 것 잘덜 헌다더라, 이혼…… 이놈,
  오널 저녁으루 담박 제 지집을 이혼을 안히였다 부아라!
  이놈을 내가……”
 
과부댁 종놈은 왕방울로 행세한다더니, 윤직원 영감은 며느리 고씨와
싸우다가 몰리면 이혼하라고 할 테라고, 아들 창식을 불러오라는 게
유세통입니다.
그러나 부르러 간 놈한테 미리 소식 다 듣는 윤주사는, 따고 안 오기가
일쑤요, 몇번 만에 한번 불려와선, 네에 내일 수속하지요 하고 시원히
대답은 해도, 그 자리만 일어서면 죄다 잊어버려 버립니다.
그래도 좋게시리 윤직원 영감은 그 이튿날이고 이혼수속 재촉을
 하는 법이 없으니까요.
 
“아 이놈, 넹금 가서 불러오던 않구, 무얼 뻐언허구 섰어?”
 
윤직원 영감은 추춤거리고 섰는 경손이더러 호통을 합니다.
경손은 그제서야 대답을 하고 옷을 입으러 가는 체 뒤꼍으로
들어갑니다. 눈치 보아 가면서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든지, 무엇하면
그냥 잠자코 있다가 넌지시 입을 씻고 말든지, 없어서 못 데리고 왔다고
하든지 할 요량만대고 있으니까 별로 힘들잘 것도 없는 노릇입니다.
 
“두구 보자!……”
 
윤직원 영감은 마루가 꺼져라고 굴러 디디면서 대뜰로 내려섭니다.
 
“……두구 부아, 어디…… 내가 그새까지넌 말루만 그맀지만,
  인지 두구 부아라. 저허구 나허구 애비자식 천륜을 끊던지, 지집을
  이혼을 허던지 좌우양단간 오널 저녁 안으루 요정을 내구래야
  말 티닝개루…… 두구부아!”
 
윤직원 영감은 으르면서 구르면서 사랑으로 나가고,
고씨는 그 뒤꼭지에다 대고 제발 좀 그럽시사고, 이혼을 한다면 누가
무서워서 서얼설 기고, 어엉엉 울 줄 아느냐고 퀄퀄스럽게
받아넘깁니다. 이래서 시초 없는 싸움은 또한 끝도 없이 휴전이 되고,
각기 장수가 진지(陣地)로부터 퇴각을 하자, 집안은 다시 평화가
회복되었읍니다. 모두들 태평합니다.
계집종인 삼월이는 부엌에서 행랑어멈과 같이서 얼추 설겆이를
하고 있고, 행랑아범은 안팎 아궁이를 찾아다니면서 군불을 조금씩
지피고, 그 나머지 식구들은 고씨만 빼놓고 다 안방으로 모여 저녁밥을
시작합니다.
서울아씨, 두 동서, 경손이, 태식이, 전주댁 이렇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방금 일어났던 풍파를 심려한다든가 윤직원 영감이 저녁밥을
중판멘것을 걱정한다든가, 고씨가 밥상을 도로 쫓은 걸 민망히
여긴다든가 할 사람은 하나도 없고, 따라서 아무도 입맛이 없어
밥 생각이 안 날 사람도 없읍니다.
다만,
먼저의 싸움의 입가심같이 그 다음엔 조그마한 싸움 하나가 벌어집니다.
태식이가 구경에 세마리가 팔렸다가 싸움이 끝이 나니까 다시 밥 시작을
하는데, 마침 경손이가 툭 튀어들더니, 윤직원 영감이 앉았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는, 두말 않고 그 숟갈로 그 밥을 퍼먹습니다.
태식은, 이 깍쟁이요 도적놈인 경손이가 아빠의 숟갈로 아빠의 밥을
먹어대는 게 밉기도 하려니와, 또 맛있는 반찬을 뺏길 테니,
그래저래 심술이 나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히잉, 우리 아빠 밥야!”
 
태식은 밥숟갈을 둘러메는 것이나, 경손은 거듭떠보지도 않고서
 
“왜 이 모양야! 밥그릇에다가 문패 써붙였나?”
 
하고 놀려줍니다.
 
“히잉, 깍쟁이!”
 
“무어 어째?…… 잠자꾸 있어, 괜히……”
 
“히잉, 도족놈!”
 
“아, 요게! 병신이 지랄해요! 대갈쟁이가……”
 
“깍쟁이! 도족놈!”
 
“가만 둬 두니깐!…… 저거 봐요! 숟갈을 둘러메믄,
  제가 누굴 때릴텐가? 요것 하나 먹구퍼? 요것……”
 
“저애가!…… 경손아!……”
 
경손이가 주먹을 쥐어 밥상 너머로 을러대는 걸, 마침 저의 모친 박씨가
들어서다가 보고 깜짝 놀라던 것입니다.
 
“병신이 괜히 지랄허니깐, 나두 그리지!……
   내 이름이 깍쟁이구 도독놈이구, 그런가? 머……”
 
“아따, 그런 소리 좀 들으믄 어떠냐? 잠자꾸 밥이나 먹으려무나.”
 
“이 병신, 다시 그따위 소릴 해봐? 죽여놀 테니깐……”
 
“저 녀석이 말래두, 아니 듣구서!…… 너 그리다간 큰사랑 할아버지께
   또 꾸중 듣는다?”
 
“피이! 무섭잖아.”
 
“허는 소리마다. 너 그렇게 버릇없이 굴믄 귀양 간다! 귀양……”
 
“곤충 채집허구, 수영허구, 등산허구 실컨 놀다가 도루 오지,
   무슨 걱정이우?”
 
서울아씨가 손을 씻으면서 방으로 들어오다가 태식이가 여태 밥상을
차고 앉아, 그러나마 먹지도 않고 이짐이 나서 엿가래 같은 코를
훌쩍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상을 잔뜩 찌푸립니다.
 
“누나!”
 
“왜 그래?”
 
역성이나 들어줄 줄 알고 불러본 것이, 대고 쏘아버리니,
이제는 울기라도해서 아빠를 불러대는 수밖에 없읍니다.
과연 태식은 입이 비죽비죽, 얼굴이 움질움질하는 게 방금 아앙하고
울음이 터질 시초를 잡습니다.
만약 태식을 울려놓고 보면 큰일입니다. 약간 아까, 고씨와 싸우던
그따위 풍파가 아니고, 온통 집이 한귀퉁이 무너나게시리 벼락이
내릴 판이니까요.
윤직원 영감은 다른 잘못도 잘 용서를 않지만, 그중에도 누구든지
태식을 울린다든가 하는 죄는 단연 용서를 하지 않던 것입니다.
 
“어서 밥 먹어라. 밥 먹다가 이짐 쓰구 그러면 못써요!”
 
서울아씨가 할 수 없이 목소리를 눅여 살살 달랩니다. 박씨도 코를
씻어주면서 경손더이러 눈을 끔적끔적합니다.
 
“대부 할아버지?……”
 
경손은 눈치를 채고서, 빈들빈들, 버엉떼엥 엎어 삶느라고……
 
“……어서 진지 잡수! 그리구 대부 덕분에 손자두 이런 존 반찬 좀
   얻어 먹어예지, 응? 할아버지…… 우리 대부가 참 착해,
   그렇지 대부……”
 
파계를 따지자면, 열다섯 살 먹은 경손은 같은 열다섯 살 먹은 태식의
손자요, 태식은 경손의 할아버지가 갈데없읍니다. 일가 망한 건 항렬만
높단말로 눙치고 넘기자니, 차라리 이 조손관계(祖孫關係)는
비극이라 함이 옳겠습니다.
 
 
 7. 쇠가 쇠를 낳고
 
사랑방에는 언제 왔는지 올챙이 석서방이, 과시 올챙이같이 토옹통한
 배를 안고 웃목께로 오도카니 앉아 있읍니다.
시체말로는 브로커요, 윤직원 영감 밑에서 거간을 해먹는 사람입니다.
돈도 잡기 전에 배 먼저 나왔으니, 갈데없이 근천스런 ×배요,
납작한 체격에 형적도 없는 모가지에, 다 올챙이 별명 타자고
 나온 배지 별게 아닐겝니다.
 
“진지 잡수셨읍니까?”
 
올챙이는 오꼼 일어서면서 공순히, 그러나 친숙히 인사를 합니다.
윤직원 영감은 속으로야, 이 사람이 저녁에 다시 온 것이
반가울 일이 있어서, 느긋하기는 해도 짐짓
 
“안 먹었으면 자네가 설넝탱이라두 한 뚝배기 사줄라간디,
  밥 먹었냐구 묻넝가?”
 
하면서 탐탁찮아하는 낯꽃으로 전접스런 소리를 합니다.
 
“아, 잡수시기만 하신다면야, 사 드리다뿐이겠읍니까?……”
 
생김새야 아무리 못생겼다 하기로서니, 남의 그런 낯꽃 하나 여새겨
볼 줄 모르며, 그런 보비위 하나 할 줄 모르고서, 몇천 원 더러는
몇만 원 거간을 서 먹노라 할 위인은 아닙니다.
옳지, 방금 큰소리가 들리더니, 정녕 안에서 무슨 일로 역정이 난 끝에
밥도 안 먹고 나오다가, 그 화풀이를 걸리는 대로 나한테 하는
속이로구나,이렇게 단박 눈치를 채고는 선뜻 흠선을 피우면서,
마침 윤직원 영감이 발이나 넘는 장죽에 담배를 재어 무니까,
냉큼 성냥을 그어댑니다.
 
“……그렇지만 어디 지가 설마한들 설렁탕이야 사 드리겠어요!
  참 하다못해 식교자라두 한상……”
 
“체에! 시에미가 오래 살먼 구정물통으(개수물통에) 빠져 죽넌다더니,
   내가 오래 사닝개루 벨 일 다아 많얼랑개비네! 인재넌 오래간만으
   목구녁의 때 좀 벳기넝개비다!”
 
윤직원 영감 입에서는 담배연기가 피어올라 자옥하니 연막을 치고,
올챙이는 팽팽한 양복가랑이를 펴면서, 도사렸던 다리를 퍼근히하고
저도 마코를 꺼내서 붙입니다.
 
“온 영감두!…… 지가 영감 식교자 한상 채려 드리기루서니 그게 그리
  대단하다구, 그런 말씀을……”
 
“글씨 이 사람아, 말만 그렇기, 어따 저어 상말루, 줄 듯 줄 듯허먼서
  안 주더라구, 말만 그렇기 허지 말구서 한상 처억 좀 시기다
  주어 보소? 늙은이 괄세넌 히여두 아덜 괄세넌 않넌다데마넌,
  늙은이 대접두 더러 히여야 젊은 사람이 복을 받고 허넌 벱이네.
  그렇잖엉가? 이 사람……”
 
윤직원 영감은 히죽이 웃기까지 하는 것이, 방금 그다지 등등하던
기승은 그새 죄다 잊어버린 모양으로 아주 태평입니다.
워너니 그도 그래야 할 것이, 만약 그 숱해 많은 싸움을, 싸움하는 족족
오래 두고 화가 풀리지 않을래서야, 사람이 지레 늙을 노릇이지요.
 
“아니 머, 빈말씀이 아니라……”
 
올챙이는, 금세 일어서서 밖으로 나갈 듯이 뒤를 들먹들먹합니다.
 
“……시방이라두 나가서, 무어 약주 안주나 될 걸루 좀 시켜가지구
  오지요. 전화루 시키면 곧 될 테니깐두루…… 정녕 저녁진질 아니
  잡수셨어요? 그러시다면 그 요량을 해서……”
 
“헤헤엣다! 참, 엎질러 절받기라더니, 야 이 사람, 그런 허넌 첼랑
  구만 히여두소. 자네가 암만 히여두 딴 요량장이 있어 각구서 시방
  그러넌 속 나두 다아 알구 있네!”
 
“네? 딴 요량요? 원, 천만에!”
 
“아까 아참나잘으 와서 이얘기허던 그 조간 때미 그러지? 응?”
 
“아니올시다, 원!…… 그건 그거구 이건 이거지, 어쩌면 절 그런
  놈으루만 치질 하십니까! 허허허.”
 
“그러구저러구 간으, 그건 아침에 말헌 대루 이화리(二割引[이할인])
  아니구넌 안되니 그렇게 알소잉?”
 
윤직원 영감은 정색을 하느라고 담뱃대를 입에서 뽑고,
 올챙이도 다가 앉을 듯이 앉음매를 도사립니다.
 
“그리잖어두 허긴 그 사람 강씰 방금 또 만나구 오는 길인데요……
 그래 그 말씀두 요정을 내구 허기는 해야겠읍니다마는……”
 
“그럼, 이화리 히여서라두 쓴다구 그러덩가?”
 
“그런데 거, 이번 일은 제 얼굴을 보시구서라두 좀 생각해 주서야
 하겠읍니다!”
 
“생각이라께 별것 있넝가? 돈 취히여 주넝 것이지.”
 
“물론 주시긴 주시는데, 일할(一割)만 해주세요!”
 
“건, 안될 말이래두!”
 
“원, 자꾸만 그리십니다. 7천 원짜리 30일수형에 1할이라두 자아,
  보십시요, 선변을 제하시니깐 6천 3백 원 주시구서 한 달 만에
  7백 원을 얹어서 7천 원으루 받으시니 그만 해두 그게 어딥니까?……
  아무리 급한 돈이래두, 쓰는 사람이 생각하면 하늘이 내려볼까
  무섭잖겠어요?…… 그런 걸 글쎄, 
  이할이나 허자시니!”
 
“허! 사람두!…… 이 사람아, 돈이 급허면 급헐수룩 다아 요긴허구,
  그만침 갭이 나갈께 아닝가? 그러닝개루 변두 더 내구서 써야지?”
 
“그렇더래두 영감 말씀대루 허자면 7천 원 액면에 5천 6백 원을 쓰구서
  한 달 만에 1천 4백 원 이자를 갚게 되니,
  돈 쓰는 사람이 억울하잖겠읍니까?”
 
“억울허거던 안쓰먼 구만이지?…… 머, 내가 쓰시요오 쓰시요 허구
  쫓아 댕김서 억지루 처맽긴다덩가? 그 사람 참!”
 
윤직원 영감은 이렇게 배부른 흥정으로 비스듬히 드러누우려고는
하지만, 올챙이의 말이 아니라도 6천 3백 원에 한 달 이자 7백 원이
 어디라고, 이 거리를 놓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에누리를 하는 셈이지요. 해서 2할을 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고,
눈치보아서 1할 5부로 해주어도 괜찮고, 또 저엉 무엇하면 1할이라도
그리 해롭지는 않고…… 그게 그러나마 달리 융통을 시켜야 할
자본일세 말이지, 은행의 예금장에서 녹이 슬고 있는 돈인걸,
두고 놀리느니 보다야 이문이 아니냔 말입니다.
 
“영감이 무가내루 2할만 떼신다면, 아마 그 사람두 안쓰기 쉽습니다
   ……”
 
올챙이는 역시 윤직원 영감의 배짱을 아는 터라, 마침내 이렇게
 슬그머니 한번 덜미를 눌러놓습니다. 그리고는 한참 있다가 다시……
 
“……그러니 자아 영감, 그러구저러구 하실 것 없이, 1할 5부만
  하시지요…… 1할 5부라두 1 7은 7, 5 7 35허구, 1천 50원입니다!”
 
“아니 이 사람, 자네넌 내 밑으서 거간 서구, 내 덕으 사넌 사람이,
   육장 그저 내게다가 해만 뵐라구 드넝가?”
 
“원 참! 그게 손해 끼쳐 디리는 게 아닙니다! 일을 다아 되두룩
  마련하자니깐 그리지요. 상말루, 싸움은 말리구 흥정은 붙이라구
  않습니까? 그런데 그게 남의 일이라두 모를 텐데
  항차 영감의 일인걸……”
 
“아따, 시방 허넌 소리가!…… 야 이 사람아, 구문이 안 생겨두
   자네가 시방 이러구 댕길 팅가?”
 
“허허, 그야…… 허허허허. 그런데 참 구문이라니 말씀이지,
 저두 구문만 많이 먹기루 들자면 할이가 많은 게 좋답니다. 그렇지만
 세상 일을 어디 그렇게 제 욕심대루만 할래서야 됩니까?”
 
“이 사람아, 그런 소리 말소. 욕심 읎이 세상 살라다가넌
  제 창사구(창자) 뽑아서 남 주어야 허네!”
 
“것두 옳은 말씀은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자아, 어떡허실렵니까?
   제 말씀대루 1할 5부만 해서 주시지요? 네?”
 
“아이, 모르겄네! 자네 쇠견대루 허소!”
 
“허허허허. 진즉 그리실 걸 가지구…… 그럼 내일 당자 강씰 데리구
  올텐데, 어느만 때가 좋을는지?…… 내일 은행 시간까진 돈을 써야
  할 테니깐요.”
 
“글씨…… 대복이가 와야 헐 틴디. 오늘 저녁으 온댔으닝개 오기넌
  올 것이구, 오머넌 내일 아무 때라두 돈이사 주겄지만……
  자리넌 실수 읎을 자리겄다?”
 
“그야 지가 범연하겠읍니까? 아따, 만창상점이라구, 바루 저 철물교
  다리옆입니다. 머 그 사람이 부량자루 주색잡기하느라구 쓰는 돈이
  아니구, 내일 해전으루다가 은행에 입금을 시켜야만 부도가 아니
  나게 됬다는군요!…… 글쎄 은행에서들 돈을 딱 가두어놓군,
  돌려주질 않기 때문에, 너나 할것없이 모두 죽는 소립니다!……
  그러나저러나 간에 이 사람 강씬 아무 염려 없구요.
  다 조사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내가 무얼 알겄넝가마는……”
 
윤직원 영감은 담뱃대를 놓고 일어서더니, 벽장 속에서 조선 백지로
 맨 술두꺼운 장부(?) 한 권을 찾아냅니다.
이것이 대복이의 주변으로, 종로 일대와 창안 배오개 등지와,
그 밖에 서울 장안의 들뭇들뭇한 상고들을 뽑아 신용 정도를 조사해둔
블랙리스트입니다.
신용이라도 우리네가 보통 말하는 신용이 아니라, 가산은 통 얼마나
되는데, 갚을 빚은 얼마나 되느냐는 그 신용입니다.
이걸 만들어놓고, 대복이는 날마다 신문이며 흥신내보(興信內報)며 또는
소식 같은 걸 참고해가면서, 그들의 신용의 변동에 잔주(註解[주해])를
달아 놓습니다.
그러니까 생기기는 아무렇게나 백지로 맨 한 권의 문서책이지만,
척 한번 떠들어만 보면, 어디서 무슨 장사를 하는 아무개는 암만까지는
돈을 주어도 좋다는 것을 휑하니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시골 사람, 그중에도 부랑자가 돈을 쓴다면,
으례껏 매도계약까지 첨부한 부동산을 저당잡고라야 돈을 주지만,
시내에서 장사하는 사람들한테는 대개 수형을 받고서 거래를 합니다.
그는 수형의 효험과 위력을 잘 알고 있으니까 안심을 합니다.
세상에 수형처럼 빚 쓴 사람한테는 무섭고, 빚 준 사람한테는 편리한
것이 없답니다. 기한이 지나기만 하면 거저 불문곡직하고 수형 액면에
쓰인 만큼 차압을 해서 집행딱지를 붙여놓고는 경매를 한다나요.
가령 그게 사기에 걸린 돈이라고 하더라도, 수형이고 보면 안 갚고는
못 배긴다니, 무섭지 않고 어쩌겠읍니까.
윤직원 영감은 이 편리하고도 만능한 수형장사를 해서 매삭 2, 3만 원씩
융통을 시키고, 그 이문이 적어도 3천 원으로부터 4천 원은 됩니다.
1할 이상 2할까지나 새끼를 치는 셈이지요.
송도 말년(松都末年)에는 쇠가 쇠를 먹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게 지금은 다 세태가 바뀌고, 을축 갑자(乙丑甲子)로 되는
세상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겠지만, 쇠가 쇠를 낳기로 마련이니,
그건 무슨 징조일는지요.
아뭏든 그놈 돈이란 물건이 저희끼리 목족(睦族)은 무섭게 잘 하는 놈인
모양입니다. 그렇길래 자꾸만 있는 데로만 모이지요?
윤직원 영감은 허리에 찬 풍안집에서 풍안을 꺼내더니, 그걸
코허리에다가 처억 걸치고는, 그 육중한 자가용 흥신록을 뒤적거립니다.
올챙이는 이제 일이 거진 성사가 되었대서, 엔간히 마음이 뇌는지,
담배를 피워물고 앉아서는 하회를 기다립니다.
윤직원 영감은 만창상회의 강무엇이를 찾아내어, 대강 입구구를 따져본
결과, 빚이 더러 있기는 해도, 아직 7, 8천 원은 말고 2, 3만 원쯤은
돌려주어도 한 달 기간에 낭패가 생기지는 않을 만큼
저엉정한 걸 알았읍니다.
 
“거 원, 우선 내가 뵈기는 괜찮얼 상부르네마는……”
 
윤직원 영감은 이쯤 반승낙을 하고는, 장부를 도로 벽장에다가
건사하고, 풍안을 코끝에서 떼어내고, 그러고서 담뱃대를 집어 물면서
자리에 앉습니다. 아까 먼젓번에 한 승낙은, 말은 없어도 신용조사에
낙방이 안돼야만 돈을 준다는 얼승낙이요,
이번 것이 진짜 승낙한 보람이 날 승낙이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이러하네마는 하고, 그 마는이 붙었으니 온 승낙이 아니고
반승낙인 것입니다. 대복이가 없으니까 그와 다시 한번 상의를 할
요량이지요. 그래서 혹시 대복이가 불가하다고 한다든지 하면, 말로만
반승낙을 했지 무슨 계약서라도 쓴 게 아니고 한즉,
이편 마음대로 자빠져버리면 고만일 테니까요.
 
“그러면……”
 
올챙이는 윤직원 영감의 그 마는이라는 말끝을 덮어씌우노라고
 다시금 다지려 듭니다.
 
“……내일 은행시간 안으루는 실수 없겠죠?”
 
“글씨, 우선은 그러기루 히여 두지.”
 
“그래서야 어디 저편이 안심을 하나요? 영감이 주장이시니깐,
  영감이 아주 귀정을 지어서 말씀을 해주셔야,
  저 사람두 맘놓구 있지요!”
 
“그렇기두 허지만, 실상 이 사람아, 자네두 늘 두구 보지만,
  내사 무얼 아넝가?…… 대복이가 다아 알어서 이러라구 허먼 이러구,
  저러라구 허먼 저러구 허지. 괜시리 속두 잘 모르구서 돈 그까짓것
  1천 50원 읃어 먹을라다가, 웬걸 1천 50원이나마 나 혼자 죄다
  먹간디? 자네 구문 105원 주구 나먼, 천 원두 채 못되넝 것,
  그것 먹자구, 잘못허다가 내 생돈 6천 원 업어다 난장맞히게?”
 
“글쎄 영감! 자리가 부실한 자리면, 지가 애초에 새에 들질
  않는답니다. 그새 4, 5년지간이나 두구 보시구서두 그리십니까?
  언제 머 지가 천거한 자리루 동전 한푼 허실한 일이 있읍니까?”
 
“아는 질두 물어서 가랬다네.
  눈 뜨구서 남의 눈 빼먹넌 세상인 종 자네두 알먼서 그러넝가?”
 
“허허허허. 영감은 참 만년 가두 실수라구는 없으시겠읍니다!
  다아 그렇게 전후를 꼭꼭 재가면서 일을 하셔야
  실수가 없긴 하지요…… 그럼 아뭏든지 대복이가 오늘루 오긴 오죠?”
 
“늦더래두 올 것이네.”
 
“그럼, 대복이만 가한 양으루 말씀하면, 돈은 내일루 실수 없으시죠?”
 
“그럴 티지.”
 
“그러면 아무려나 내일 오정 때쯤 해서 당자 강씰 데리구 오지요……
  좌우간 그만해두 한시름 놓았읍니다. 허허……”
 
“자네넌 시언헌가 부네마넌,
  나넌 돈천이나 더 먹을 걸 못 먹은 것 같이서 섭섭허네!”
 
“허허허허. 그럼 이댐에나 들무읏한 걸 한 자리 해오지요……
  가만히 계십시요. 수두룩합니다. 은행에서 돈을 아니 내주기 때문에
  거얼걸들합니다. 제일 죽어나는 게 은행돈 빚 얻어다가는 땅장수니
  집장수니 하던 치들인데, 머 일보 4, 50전이라두 못써서 쩔맵니다!”
 
“이판으 누가 일보 50전 받구 빚을 준다덩가?
  소불하 일원은 받어야지…… 주넌 놈이 아순가? 쓰넌 놈이 아수닝개로
  그거라두 걷어 쓰지……”
 
윤직원 영감은 요새 새로 발령된 폭리 취체 속을 도무지 모릅니다.
그러나, 안다고 하더라도 이미 10년 전부터 벌써 법이 금하는 고패를
넘어서 해먹는 돈 장사니까, 시방 새삼스럽게 폭리 취체쯤 무서울 것도
없으려니와, 좀 까다롭겠으면 다 달리 이러쿵저러쿵 하는 수가 얼마든지
있은 즉, 만날 떵그렁입니다.
 
“그러면 그 일은 그렇게 허기루 허구……”
 
올챙이는 볼일 다 보았으니 선뜻 일어설 것이로되,
그러나 두고두고 뒷일을 좋도록 하자면, 이런 기회에 듬씬 보비위를
해야 하는 것인 줄을 자알 알고 있읍니다.
 
“……그런데, 정녕 저녁진질 아니 잡수셨읍니까?”
 
“먹다가 말었네! 속상히여서……”
 
윤직원 영감은 그새 잊었던 화가 그 시장기로 해서 새 채비로 비어지던
것이고, 그래 재털이에 담배 터는 소리도 절로 모집니다.
 
“거 원, 그래서 어떡허십니까! 더구나 연만하신 노인이!”
 
“그러닝개 그게 다아 팔자라네!”
 
또 역정을 낼 줄 알았더니, 그런 게 아니고 방금 아무 근심기 없던
얼굴이 졸지에 해질 무렵같이 흐려들면서 음성은
 풀기없이 가라앉습니다.
 
“……내가 이 사람아, 나락으루 해마닥 만 석을 추수를 받구,
  돈으루두 멫만 원씩을 차구 앉었넌 사람인디, 아 그런 부자루 앉어서
  글씨, 가끔 이렇기 끄니를 굶네그려! 으응?”
 
과연 1년 추수하는 쌀만 가지고도 밥을 해먹자면 백년 천년을 배불리
먹고도 남을 테면서, 그러나 이렇게 배고픈 때가 있으니,
곰곰이 생각을 하면 한심하여 팔자 탄식이 나오기도 할 겝니다.
 
“……여보게 이 사람아!…… 아 자네버텀두 날더러 팔자 좋다구
   그러지? 그렇지만 이 사람아, 팔자가 존 게 다아 무엇잉가!
   속 모르구서 괜시리 허넌 소리지…… 그저 날 같언 사람은 말이네,
   그저 도둑놈이 노적(露積)가리 짊어져 가까버서, 밤새두룩 짖구
   댕기는 개, 개 신세여! 허릴없이 개 신세여!……”
 
윤직원 영감은 잠잠히 말을 그치고, 담배연기째 후루루 한숨을
 내쉬면서, 어디라 없이 한눈을 팝니다.
거상에 짜증난 얼굴이 아니면, 불콰하니 마음 편안한 얼굴,
호리를 다투는 뜩뜩한 얼굴이 아니면, 남을 꼬집어 뜯는 전접스런 얼굴,
그러한 낯꽃만 하고 지내는 이 영감한테 이렇듯 추레하니 침통한 기색이
드러날 적이 있다는 것은 자못 심외라 않을 수 없읍니다.
 
돈을 흥정하는 저자에서 오고가고 하는 속한일 뿐이지, 올챙이로야 어디
그러한 방면으로 들어서야 제법 깊은 인정의 기미를 통찰할 재목이
되나요. 그저 백만금의 재물을 쌓아놓고 자손 번창하겠다, 수명장수,
아직도 젊은놈 여대치게 저엉정하겠다, 이런 천하에 드문 호팔자를
누리면서도, 근천이 질질 흐르게시리 밥을 굶네, 속이 상하네,
개 신세네 하고 풀 죽은 기색으로 탄식을 하는 게, 이놈의 영감이
그만큼 살고 쉬이 죽으려고 청승을 떠는가 싶어 얼굴이 다시금
치어다보일 따름이었습니다.
 
 
 8. 常平通寶[상평통보] 서푼과
 
올챙이는, 윤직원 영감이 자기가 자청해서 자기 입으로 개라고 하니,
차라리 그렇거들랑 어디 컹컹 한바탕 짖어보라고 놀리기나 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버릇없는 농담을 할 법이야 있읍니까.
속은 어디로 갔던 좋은 말로다 자손이 번창하고 가운이 융성하게 되면,
집안 어른된 이로는 그런 근심 저런 걱정 노상 아니할 수도 없는
것인즉, 그걸 가지고 과히 상심할 게 없느니라고 위로를 해줍니다.
 
“아, 여보소?……”
 
윤직원 영감은 남이 애써 위로해주는 소리는 귀로 듣는지 코로 맡는지,
종시 우두커니 한눈을 팔고 앉았다가, 갑자기 긴한 낯으로 고개를
내밀면서
 
“……자네, 사람 죽었을 때 염(殮)허넝 것 더러 부았넝가?”
 
하고 묻습니다. 자기딴에는 따로이 속내평이 있어서 하는 소리겠지만,
이건 느닷없이 송장 일곱 매 묶는 이야기가 불쑥 나오는 데는,
등이 서늘하고, 그다지 긴치 않기도 했을 것입니다.
 
“더러 부았으리…… 그런디 말이네……”
 
윤직원 영감은 올챙이가 이렇다저렇다 얼른 대답을 못하고 우물우물하는
것을 상관 않고 자기가 그 뒤를 잇습니다.
 
“……아, 우리 마니래(마누라)가 작년 정월이 죽잖있넝가?”
 
“네에! 아 참, 벌써 그게 작년 정월입니다그려! 세월이 빠르긴 허군!
      ……”
 
“게, 그때, 수험을 헌다구, 날더러두 들오라구 허기에,
  시쳇방으를 들어 가잖있덩가. 들어가서 가만히 보구 섰으닝개,
  수의를 죄다 갈어 입히구 나서넌 일곱 매를 묶기 전에,
  어따 그놈의 것을 무어라구 허데마는…… 쌀 한 숟가락을 떠서 맹인
  입으다가 놓는 체허면서 천 석이요오 허구, 두 숟가락 떠느먼서
  2천 석이요오 허구, 세 숟가락 떠느먼서 3천 석이요오 허구,
  아 이런담 말이네!…… 그러구 또, 시방은 쓰지두 않넌 옛날 돈
  생평통보(常平通寶) 한푼을 느주먼서 천 냥이요오, 두푼 느주먼서
  2천 냥이요오, 스푼 느주먼서 3천 냥이요오, 이러데그려!”
 
“그렇지요! 그게 다아……”
 
올챙이는 비로소 윤직원 영감의 말하고자 하는 속을 알아차렸대서,
 고개를 까댁까댁 맞장구를 칩니다.
 
“……그게 맹인이 저승길 가면서 노수두 쓰구,
  또 저승에 가서두 부자루 잘 지내라구 그리잖습니까?”
 
“응 그리여. 글씨 그런 줄 나두 알기넌 알어.
  또, 우리 어머니 아버지 때두 다아 보구 그리서, 츰으루 보덩 건
  아니지. 그러닝개 츰 귀경히였다넝게 아니라, 내 말은 그런 말이
  아니구…… 아니 글씨 여보소, 우리 마니래만 히여두 명색이 만석꾼이
  집 여편네가 아닝가? 만석꾼이…… 그런디 필경 두 다리 쭈욱 뻗구
  죽으닝개넌 저승으루 갈라먼서, 쌀 게우 세 숟가락허구,
  돈 엽전 스푼허구, 게우 고걸 각구 간담 말이네그려. 응?
  만석꾼이가 죽어 저승으루 가먼서넌 쌀 세 숟가락에, 엽전 스푼을
  달랑 얻어각구 간담 말이여!……”
 
올챙이는 자못 엄숙해하는 낯으로 고즈너기 앉아 듣고 있고,
윤직원 영감은 뻐금뻐금 한참이나 담배를 빨더니, 후유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말끝을 다시 잇댑니다.
 
“게, 그걸 보구서 고옴곰 생각을 허닝개루,
  나두 한번 눈을 감구 죽어지먼 벨수읎이 저렇기 쌀 세 숟가락허구
  엽전 스 픈허구, 달랑 고걸 읃어각구 저승으루 가겄거니!……
  그럴 것 아닝가? 머, 나라구 무덤을 죄선만허게 파구서, 그 속으다가
  나락을 수천 석 쟁여주며, 돈을 수만냥 딜이띠려 주겄넝가? 또오,
  그런대두 아무 소용 읎넌 짓이구…… 그렇잖엉가?”
 
“허허, 다아 그런 게지요!”
 
“그렇지? 그러니 말이네. 아, 내 손으루 만석을 받구,
 수만 원을 주물르던 나두, 죽어만지먼 별수 읎이 쌀 세 숟가락허구,
 엽전 달랑 스푼 얻어각구 저승으루 갈 테먼서 말이네……
 글씨 그럴라먼서 왜 내가 시방 이 재산을 지키니라구 이대두룩 악을
 쓰구, 남안티 실인심허구, 자식 손자놈덜안티 미움 받구,
 나 쓰구 싶은 대루, 나 지내구 싶은 대루 못 지내구 이러넝고!
 응? 그 말뜻 알어들어?”
 
“네네…… 허허, 참 거……”
 
“그러나마, 그러나마 말이네…… 내가 앞으루 백년을 더 살 것잉가?
  50년을 더 살 것잉가? 잘 히여야 한 10년 더 살다가,
  두다리 뻗을 티먼서. 그러니, 나 한번 급살맞어 죽어뻬리먼 아무것두
  모르구 다아 잊어뻬릴 년의 세상…… 그런디 글씨, 어쩌자구 내가
  이렇기 아그려쥐구 앉어서, 돈 한푼에 버얼벌 떨구, 뭇 놈년덜 눈치
  코치 다아 먹구, 늙발에 호의호식, 평안히 못지내구…… 그것뿐잉가?
  게다가 한푼이라두 더 못 뫼야서 아등아등허구…… 허니,
  원 내가 이게 무슨 놈의 청승이며, 무슨 놈의 지랄짓잉고오?
  이런 생객이 가끔, 그 뒤버틈은 들더람 말이네그려!”
 
윤직원 영감으로 앉아, 그런 마음을 먹고 이런 소리를 함부로 하다께,
올챙이의 소견이 아니라도, 이건 정말 죽으려고 마음이 변했나 봅니다.
주객이 잠시 말이 없고 잠잠합니다. 올챙이는 무어라고 위로를
해야겠어서 말긋말긋 윤직원 영감의 눈치를 살핍니다.
아무래도 노망이 아니면 환장한 소린 것 같은데, 혹시 그게 정말이어서,
이놈의 영감태기가, 자아 여보소, 나는 인제는 재산이고 무엇이고 죄다
소용없네…… 없으니, 자아 이걸 가지고 자네나 족히 평생을 하소……
이렇게 선뜻 몇만 원 집어주지 말랄 법도 노상 없진 않으려니
싶어(싶다기보다도) 그렇게 횡재를 했으면 좋겠다고 다뿍 허욕이
받쳐서, 올챙이는 시방 궁상으로 부른 헛배가 가뜩이나 더 부르려고
하는 판입니다. 눈에 답신 고이도록
보비위를 해줄 필요가 그래서 더욱 간절했던 것입니다.
 
“영감님?”
 
“어이?”
 
부르는 소리도 은근했거니와 대답소리도 다정합니다.
 
“지가 꼬옥 영감님께 한가지 권면해 드릴 게 있읍니다!”
 
“권면?”
 
“네에, 다름이 아니라……”
 
“아니, 자네가 시방 또, 은제치름 날더러 저 무엇이냐, 핵교허넌디다가
  돈 기부허라구, 그런 권면헐라구 그러잖넝가? 그런 소리거덜랑,
  이 사람아 애여 말두 내지두 말소!”
 
이렇게 황망히 방색을 하는 것이, 윤직원 영감은 어느덧 꿈이 깨고,
생시의 옳은 정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미상불 여태까지 그 가라앉은 침통한 목소리나 암담한 안색은 씻은 듯이
어디로 가고 없고, 활기 있는 여느때의 그의 얼굴을
도로 지니고 앉았읍니다.
 
“아니올시다! 원……”
 
올챙이는 고만 속으로 떡심이 풀리고 입이 헤먹으나, 그럴수록이 더욱
잘 건사를 물어야 할 판이어서, 흔감스럽게 말을 받아넘깁니다.
 
“천만에 말씀이지, 그때 한번 영감이 안되겠다구 하신 걸,
  또 말을 낼 리가 있읍니까? 그게 무슨 그대지 유익하신 일이라구……
  실상 그때 그 말씀을 한 것두 달리 그런 게 아니랍니다.
  다아 학교라두 하나 만드시면 신문에두 추앙이 자자할 것이구,
  또오 동상두 서구 할 테니깐, 영감님 송덕이 후세에 남을 게
  아니겠다구요? 그래서 저두 머, 지낼말루다가 한번 말씀을 비쳐 본
  거지요…… 사실 또 생각하면, 괜히 돈 낭비나 되지,
  그게 그리 신통한 소일두 아니구말구요!”
 
“신통이구 지랄이구 이 사람아, 왜 글씨 제 돈 디려가먼서 학교를
  설시허네 무얼 허네, 모두 남 존 일을 헌담 말잉가? 천하 시러베
  개아덜 놈덜이지…… 인제 보소마넌, 그런 놈덜은 손복을 히여서,
  오래잔히여 박적을 차구 빌어먹으러 댕길 티닝개루, 두구 보소!”
 
과연 윤직원 영감은 환장한 것도 아니요, 노망이 난 것도 아니요,
정신이 초랑초랑합니다. 아마 아까 하던 소리는 잠꼬댈시 분명합니다.
따라서 올챙이에게는 미안하나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올챙이는 윤직원 영감의 비위를 맞추자던 것이 되레 건드려 논 셈이
되었고 본즉, 땀이 빠지도록 언변을 부려가면서, 공공사업에 돈을
내는게 불가한 소치를 한바탕 늘어놓습니다. 그러고 나서 비로소 처음
초를 잡다가 만 이야기를 다시금 꺼내던 것입니다.
 
“참 지가, 하루 이틀 영감님을 뫼시구 지내는 배가 아니구,
  그래 참 저렇게 상심이나 하시구, 그런 끝에 노인이 궐식이나 하시구,
  그리시는 걸 뵙기가 여간만 민망스런 게 아니예요.
  저두 늙은 부모가 있는 놈인데, 남의 댁 어룬이라구 그런 근경
  못 살피겠읍니까?…… 그래 제깐에는 두루 유념을 하구 지내지요.
  이건 참 입에 붙은 말씀이 아니올시다!”
 
“그렁개루 설렁탕 사준다구 허넝가?”
 
“원! 영감두!…… 이거 보세요, 영감님?”
 
“왜 그러넝가?”
 
“지가 꼬옥 맘을 두구서 권면하는 말씀이니,
   저어 마나님 한분 얻으시는게 어떠세요?”
 
윤직원 영감은 대답 대신 히물쭉 웃으면서 눈을 흘깁니다. 네 이놈
괘씸은 하다마는 그럴 듯하기는 그럴 듯하구나…… 이 뜻이지요.
올챙이도 히죽히죽 웃으면서, 없는 모가지를 늘여가지고 조촘 한 무릎
다가앉습니다.
 
“거, 아직 기운두 좋시구 허니, 불편허신 때 조석 마련이며,
  몸시중이며, 살뜰히 들어주실 여인네루, 나이나 좀 진득헌 이를 하나
  구허셔서, 이 근처 가까운데다가 치가나 시키시구 허시면,
  아 조옴 좋아요? 허기야 따님까지 와서 기시구 허니깐,
  머어 범연하겠읍니까마는, 그래두 잘하나 못하나 마나님이라구
  이름지어 두구 지내시면, 시중드는 것두 훨씬 맘에 드실 것이구,
  또오 아직 저엉정하시겠다 밤저녁으루 적적하시면 내려가서 위로두
  더러 받으시구, 헤헤!……”
 
“네라끼 사람!”
 
올챙이의 말조가 매우 근경속이 있고, 더우기 그 끝엣 한 대문은 썩
실감적이고 보매, 윤직원 영감은 눈을 흘기고 히물쭉 웃는 것만으로는
못견디겠던지, 담뱃대를 뽑는 입에서 지르르 침이 흘러내립니다.
 
“헤헤…… 거, 좋잖습니까?…… 그러니 여러 말씀 마시구,
  마나님 구허실 도리를 하십시요, 네?”
 
“허기사 이 사람아!……”
 
윤직원 영감은 마침내 까놓고 흉중을 설파합니다.
 
“……자네가 다아 참, 내 근경을 알어채구서, 기왕 말을 냈으니
  말이지, 낸들 왜 그 데시기에 서캐 실은 예편네라두 하나 있으먼
  졸 생각이 읎겄넝가?…… 아, 그렇지만, 그렇다구 내가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즘잔찮게 여편네 읃어 달라구 말을 낼 수야 없잖넝가?
  그렇잖엉가?”
 
“아, 그야 그러시다뿐이겠읍니까! 그러신 줄 저두 아니깐……”
 
“글씨, 그러니 말이네…… 그런 것두 다아 내가 인복이 읎어서
  그럴 티지만, 거 창식이허며 또 종수허며 그놈덜이 천하에 불효
  막심헌 놈덜이니! 마구 잡어뽑을 놈덜이여. 웨 그렁고 허먼,
  아 글씨, 즈덜은 네기, 첩년을 모두 둘씩 셋씩 읃어서 데리구 살먼서,
  나넌 그냥 그저 모르쇠이네그려!……
  아, 그놈덜이 작히나 사람 된 놈덜이머넌 허다못히서 눈 찌그러진
  예편네라두…… 흔헌 게 예편네 아닝가? 허니 눈 찌그러지구,
  코 삐틀어진 예편네라두 하나 줏어다가 날 주었으먼, 자네 말대루
  내가 몸 시중두 들게 허구, 심심파적두 허구 그럴 게 아닝가?
  그런디 그놈덜이, 내가 뫼야 준 돈은 각구서 즈덜만 밤낮 그 지랄을
  허지, 나넌 통히 모른체를 허네그려! 그러니 그놈덜이 잡아뽑을 놈덜
  아니구 무엇이람 말잉가?”
 
속이 본시 의뭉하고, 또 전접스런 소리를 하느라고 그러지,
 실상 알고 보면 혼자 지내는 게 작년 가을 이짝 일년지간이고,
 그전까지야 첩이 끊일 새가 없었더랍니다.
시골서 살 때에 첩을 둘씩 얻어 치가를 시키고, 동네 술에미가 은근하게
있으면 붙박이로 상관을 하고 지내고, 또 촌에서 계집애가 북슬북슬한
놈이 눈에 뜨이면 다리 치인다는 핑계로 데려다가 두고서 재미를 보고,
두루 이러던 것은 고만두고라도, 서울로 올라와서 지난 10년 동안 첩을
갈아센 것만 해도 무려 10여 명은 될 것입니다.
기생첩이야, 가짜 여학생첩이야, 명색 숫처녀첩이야, 가지각색이었지요.
모두 1년 아니면 두서너 달씩 살다가 갈아세우고 하던 것들입니다.
그래오던 끝에, 재작년인가는 좀 그럴 듯한 과부 하나를 얻어
바로 집 옆집을 사가지고 치가를 시키면서 쑬쑬이 탈없이 1년 넘겨
이태 가까이 재미를 본 일이 있었읍니다.
 
나이는 서른댓이나 되었고, 인물도 그리 추물은 아니고,
신식 계집들처럼 되바라지지도 않고, 그리고 근경속 있고 솜씨 얌전하고
해서, 참 마침감이었읍니다.
윤직원 영감은 제가 그대로 병통없이 말치없이, 자기 종신토록
자알 살아만 주면 마지막 임종에 가서,
그 집하고 또 땅이나 벼 백석거리하고 떼어주어, 뒷고생 않게시리
해주려니, 이쯤 속치부를 잘 해두었었읍니다.
아 그랬는데 글쎄, 그 여편네만은 결코 그러지 않으려니 했던 게, 웬걸,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남의 첩데기짓을 하느라고,
끝내는 요게 샛밥을 날름날름 집어먹다가, 필경은 이웃집에 기식하고
있는 젊은 보험 회사 외교원 양반과 찰떡같이 배가 맞아가지고는
어느날 밤엔가 패물이야 옷 나부랑이를 말끔 쓸어가지고 야간도주를
해버렸었읍니다.
 
늙은 영감한테 매달려, 얼마 아니 남은 인생을 멋없이 흐지부지 늙혀야
하느냐, 혹은 내일은 삼수갑산을 갈값에 세파트 같은 젊은 놈과 붙어서
지내야 하느냐 하는 그 우열과 이해의 타산은 제각기 제나름이겠지만,
윤직원영감은 그걸 보고서, 그년이 제 복을 제가 털어버렸다고,
그년이 인제 논두덕 죽음 하지야고, 두고두고 욕을 했읍니다.
그 여편네의 신세를 가긍히 여겨 그랬다느니보다, 보물은 아니라도
썩 마음에 들던 손그릇이나 하나 잃어버린 것같이 신변이 허전하고,
그래 오기가 나서 욕으로 화풀이를 했던 것이지요.
 
아뭏든 한번 그렇게, 알뜰한 첩에 맛을 들인 뒤로는 여느 기생첩이나
가짜 여학생첩이나 그런 것은 다시 얻을 생각이 없고, 꼭 고런 놈만
마침 골라서 전대로 재미를 보고 싶습니다. 그렇잖았으면야 그게
작년 가을인데 버얼써 그동안 둘은 들고 나고 했지,
그대로 지냈을 리가 있나요.
첩을 얻어들이는 소임으로, 몇해 단골 된 곰보딱지 방물장수가,
그 운덤에 허파에서 바람이 날 지경이지요. 일껏 골라다가는 선을
뵐라치면 트집을 잡아가지골랑 탁탁 퇴짜를 놓고, 그러면서 속히 서둘지
않는다고 성화를 대곤해서요.
윤직원 영감으로야 1년짝이나 혼자 지내고 보니, 급한 성미에 중매가
더디다고 야단을 치는 게 무리도 아니요, 그러니 자연 늙은이다운
농엄이나 심술로다가 첩 아니 얻어주는 맏아들 창식이 윤주사나
큰손자 종수가 밉고, 미우니까 전접스런 소리며 욕이 나올밖에요.
저희들은 마음대로 골라잡아 마음대로 데리고 살면서,
그러니까 마음만 있게 되면 썩 좋은 놈을 뽑아다가 부친(또는 조부의)
봉친거리로 바칠 수가 있을 테련만, 잡아 뽑을 놈들이라 범연하여 그래
주지를 않는대서요.
윤직원 영감은 혹시 무슨 다른 일로라도, 아들 윤주사나 큰손자 종수를
잡아다가 앉혀놓고 욕을 하던 끝이면 으례껏
 
“야, 이 수언 불효막심헌 놈덜아! 그래, 느놈덜은 이놈덜, 밤낮 지집
  둘셋 읃어놓구…… 그러먼서 이 늙은 나넌 이렇기…… 죽으라구
  내뻬려 두어야 옳담 말이냐. 이 수언 잡아뽑을 놈덜아!”
 
이렇게 충분히 노골적으로 공박을 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시방 올챙이를
데리고 앉아서 그쯤 꼬집어 뜯는 것은, 오히려 점잖은 편이라
하겠읍니다. 올챙이는 보비위삼아 생색을 내자던 노릇이라,
구하다 못하면 썩은 나무토막이라도 짊어져다 들이 안길값에,
기왕 낸 말이니 입맛 당기게시리 뒷갈무리를 해두어야만 할 판입니다.
 
“지가 불일성지루, 썩 그럴듯한 놈 아니 참 저, 마나님 하나를 방구어
  보지요…… 실상은 말씀이야 오늘 저녁에 첨으루 냈지만,
  그새두 늘 그런 유념을 하구설랑, 눈여겨 보기두 허구, 그럴 만한
  자리에 연통두 해보구 그래 왔더랍니다!”
 
“뜻이나마 고맙네만, 구만두소, 원……”
 
말은 그렇게 나왔어도, 실눈으로 갠소롬하니 웃는 눈웃음하며,
헤벌어지는 입하며, 다뿍 느긋해하는 게 갈데없읍니다.
너 같으면 발이 넓어, 먹는 골도 여러 갈래고, 또 게다가 주변도 있고
하니까, 쉽사리 성사를 하리라, 이렇게 미더운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괜히 그리십니다! 저 하는 대루 가만 두고 보십시요, 인제……”
 
“더군다나 거 지상(기생)이니 여학생이니, 그런 것이나 어디 가서
  줏어 올라구? 돈이나 뜯어낼라구 허구, 검방지기나 허구,
  밤낮 샛밥이나 처먹구…… 그것덜은 쓰겄덩가, 어디……”
 
“못쓰구말구요! 전 그런 것들은 애여 천거두 않습니다.
  인제 보십시요마는, 나이 어쨌든 진드윽허니 한 오십 먹은
  과부루다가……”
 
“네라끼 사람! 쉰살 먹은 늙은이를 데리다가 무엇이다 쓴다덩가!”
 
“허허허허…… 네네,
  그건 지가 영감님 속을 떠보느라구 짐짓 그랬답니다. 허허허허……”
 
“허! 그 사람 참……”
 
“허허허허…… 헌데, 그러면 한 서른댓살이나,
  그렇잖으면 사십이 갓 넘었던지……”
 
“허기사 너머 젊어두 못쓰겄데마는……”
 
“네에, 알겠읍니다. 다아 제게 맽겨두구 보십시요. 나이두 듬지익허구,
  생김새두 숫두루움허구, 다아 얌전스럽구 까리적구 살림 잘허구
  근경속 있구…… 어쨌든지……”
 
마침 골목 밖에서 신문배달부의 요란스런 방울소리가 울려와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막고, 문득 긴장을 시켜 놓습니다.
호외가 돌던 것입니다.
사변(中日戰爭[중일전쟁])은 국지 해결이 와해가 되고 북지사변으로부터
전단이 차차 중남지로 퍼지면서 지나사변에로 확대가 되어가고,
그에 따라 신문의 호외도 잦은 판입니다.
물론 호외 그것의 방울소리가 아무리 잦더라도,
여느 수재나 그런 것이라면 흥미가 오히려 무디어지는 수가 있지만,
이건 전쟁이라는 커다란 사변인지라, 호외가 잦으면 잦을수록 사건의
확대와 진전을 의미하는 게 되어서, 사람의 신경은 더욱더욱 날이 서던
것입니다. 호외 방울소리에 말은 끊기고 주객은 다 잠잠합니다.
제가끔 사변 현실에 대한 제네의 인식능력을 토대삼아, 그 발전을 호외
방울소리에 의해서 제 마음대로 상상을 하고 있던 것입니다.
 
“어디 또 한군디 함락시킸넝개비네, 잉?”
 
이윽고 방울소리가 멀리 사라지자 윤직원 영감이 비로소
침묵을 깨뜨리던 것입니다.
 
“글쎄요…… 아마 그랬는 게지요.”
 
“거 머, 청국이 여지읎넝개비데? 워너니 즈까짓 놈덜이 어디라구,
  세계서두 첫찌 간다넌 일본허구 쌈을 헐라구 들 것잉가?”
 
“그렇구말구요!…… 지나병정이라껀 허잘것없읍니다.
  앞에서 총소리가 나면 총칼 내던지구서 도망뺄 궁리버텀 하구요……
  그래서 지나는 병정이 두가지가 있답니다. 앞에서 전쟁하는 병정이
  있구, 또 그놈들이 못 도망가게 하느라구 뒤에서 총을 대구 지키는
  병정이 있구…… 도망을 가는 놈이 있으면 그대루 대구 쏘아
  죽인다니깐요!”
 
“원, 저런 놈덜이!…… 아니 그 지랄을 히여가먼서 무슨 짓이라구 쌈은
  헌다넝가? 응? 들으닝개루, 이번으두 즈가 먼점 찝적거리서
  쌈이 되얐다네 그려?”
 
“그렇죠. 그놈들이 다아 어리석어서 그래요!”
 
“아니 글씨, 좋게 호떡 장수나 히여먹구, 인죄견 장수나 히여먹을
  일이지, 어디라구 글씨 덤비냔 말이여!”
 
“즈이는 별조 없어두, 따루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랬다나바요?”
 
“믿다니?”
 
“아라사를 찜믿구서 그랬다구요!”
 
“아라사를?”
 
“네에…… 그것두 달리 그랬으꼬마는, 아라사가 쏘삭쏘삭해서,
  지나의 장개석일 충동일 시켰대요. 이애 너 일본하구 싸움 않니?
  아니 해? 이 병신 바보녀석아, 그래 그렇게 꿈쩍 못해?……
  싸움해라, 싸움해. 하기만 하면 내가 뒤에서 한몫 거달아 줄 테니,
  응? 아무 걱정 말구서 덤벼들어라. 덤벼서 싸움만 하란 말이다.
  하면 다아 좋은 수가 있으니…… 이렇게 충동일 놀았대요!”
 
“오옳지, 아라사가 그랬다!…… 그런디 아라사가 왜?……  저 거시기
  그때 일아전쟁(日俄戰爭)에 진 그 원혐으루? 그 분풀이루……”
 
“아니지요. 그런 게 아니구,
  아라사가 지나를 집어삼킬 뱃심으루 그랬지요!”
 
“청국을 집어먹을 뱃심이라?…… 아니, 그거야 집어먹자구 들라면,
  차라리 청국허구 맞붙어서 헌다넝 건 몰라두……”
 
“그건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아라사루 말허면 아따 저 무엇이냐,
  사회주의를 하는 종족이거든요!”
 
“거참 아라사놈덜은 그렇다데그려……
  그놈의 나라으서넌 부자사람의 것을 말끔 뺏어다가 멋이냐
  농군놈덜허구 노동꾼놈덜허구 나눠주었다지?”
 
“그렇지요!”
 
“허! 세상 참……”
 
“그런데, 아라사는 즈이만 그걸 할 뿐 아니라,
  지나두 즈이허구 한판속을 만들려구 들거든요!”
 
“청국을?…… 청국두 그놈의 사회주의라냐, 그 부랑당 속을 맨들어?…
  그게 무어니 무어니 하여두 이 사람아, 알구 보닝개루 바루 부랑당
  속이지 별것이 아니데그려?…… 자네는 모르리마넌 옛날 죄선두
  활빈당(活貧黨)이라넝 게 있었너니.
  그런디 그게 시체 그놈의 것 무엇이냐 사회주의허구 한속이더니……”
 
“저두 더러 이야긴 들었읍니다.”
 
“거 보소 그런디 활빈당이라께 별것 아니구, 그냥 부랑당이더니, 부랑
  당…… 그러닝개루 그놈의 것두 부랑당 속이지 무어여? 그렇잖엉가?”
 
“그렇죠! 가난헌 놈들이,
  있는 사람의 것을 뜯어먹자는 속으루 들어선 일반이니까요!”
 
“그렇구말구. 그게 모다 환장속이여. 그런 놈덜이, 즈가 못사닝게루
  환장속으루 오기가 나서 그런거던…… 그런디 무엇이냐,
  그 아라사놈덜이 청국두 즈치름,
  그런 부랑당 속을 뀌미러 들었담 말이지?”
 
“그렇죠…… 허기야 지나뿐이 아니라,
    온 세계를 그리자구 든다니까요!”
 
“뭐이? 그러먼, 우리 죄선두?…… 아니, 죄선서야 그놈덜이
  사회주의허다가 말끔 잽히가서 전중이 살구서,
  시방은 다아 너끔허잖덩가?”
 
“그렇지만, 만약 지나가 그 속이 되구 보면 재미가 없죠. 머,
  죄선뿐이 아니라 동양천지가 모두 재미 없읍니다!”
 
“참 그렇기두 허겄네! 청국지어죄선이라, 바루 가까우닝개루……
  거참 그렇겄네! 그렇다먼 못쓰지! 못쓰구말구…… 아, 이 사람아,
  다런 사람두 다런 사람이지만, 나버텀두 어떻게 헌담 말잉가?
  큰일나지, 큰일나…… 재전에 그놈의 부랑당패를 디리읎이
  치루던 일을 생각허먼 시방두 몸서리가 치이구, 머어 치가 떨리구
  허넌디, 아니 그 경난을 날더러 또 저끄람 말이여?…… 안될 말이지!
  천하 읎어두 안될 말이지…… 어디를! 이놈덜…… 죽일 놈덜!”
 
눈앞에, 실지로 원수를 대하는 듯,
 윤직원 영감은 마구 흥분하여 냅다 호통을 하던 것입니다.
 
“아니 그러니깐……”
 
“아 글씨, 누가 즈더러 부자루 못살래서 그리여? 누가 즈것을 뺏었길래
  그리여? 어찌서 그놈덜이 그 지랄이여?……
  아, 사람사람이 다아 제가끔 지가 타구난 복대루, 부자루두 살구,
  가난허게두 살구, 그러기루 다아 하눌이 마련헌 노릇이구,
  타구난 팔잔디…… 그래, 남은 잘살구 즈덜은 못산다구,
  생판 남의 것을 뺏어다가 즈덜 창사구(창자)를 채러 들어? 응?……
  그게 될 말이여?…… 그런 놈덜은 말끔 잡어다가 목을 숭덩숭덩 쓸어
  죽여야지!……
  아 이 사람아, 만약에 세상이 도루 그 지경이 되구 보먼 그 노릇을
  어쩐담 말잉가? 응?”
 
“허허, 그런 걱정은 아니허셔두 좋습니다!”
 
“안히여두 좋다?”
 
“그럼요!”
 
“그렇다면 다행이네마넌……”
 
“시방 지나를 치는 것두 다아 그것 때문이랍니다. 장개석이가,
  즈이 망할 장본인 줄은 모르구서, 사회주의하는 아라사의 꼬임수에
  넘어가지굴랑…… 꼭 망할 장본이지요……
  영감님 말씀대루 온통 부랑당 속이 될테니깐두루……”
 
“그렇지! 망허다뿐잉가?…… 허릴읎이 옛날으 부랑당패 한참 드세던
   죄선뽄새가 되구 말 티닝개루……”
 
“그러니깐 말하자면, 시방 지나가 아라사의 꼬임에 빠져서 정신을
  못 채리구는 함부루 납뛰는 셈이죠. 그래서 그걸 가만 둬 둬선
  청국 즈이두 망하려니와 동양이 통으루 불안하겠으니깐,
  이건 이래서 안되겠다구 말씀이지요, 안되겠다구, 일본이 따들구
  나서가지굴랑 지나를 정신을 채리게 하느라구, 이를테면 따구깨나
  붙여가면서 훈계를 하는 게 이번 전쟁이랍니다!”
 
“하하하! 오옳지, 옳여! 인제 보닝개루 사맥이 그렇게 된
  사맥이네그려!  거참 그럴 듯허구만! 거, 잘허넌 노릇이여! 아무렴,
  그리야 허구말구…… 여부가 있을 것잉가!…… 그렇거들랑
  그 녀석들을 머, 약간 뺌사대기(따귀)만 때릴 게 아니라, 반주검을
  시켜서, 다실랑 그런 못된 본을 못 보게시리 늑신 두들겨 주어야지,
  늑신…… 다리뻑다구를 하나 부질러 주어두 한무내하지, 머…… 어,
  거 참 장헌 노릇이다…… 그러닝개루 이번 일은 여늬, 치구 뺏구
  허넌 그런 전쟁허구두 내평이 달르네그려?”
 
“그야 다르죠!”
 
“참 장헌 노릇이여!…… 아 이 사람아 글씨, 시방 세상으 누가 무엇이
  그리 답답히여서 그 노릇을 허구 있겄넝가?…… 자아 보소.
  관리허며 순사를 우리 죄선으루 많이 내보내서,
  그 숭악헌 부랑당놈들을 말끔 소탕시켜 주구, 그리서 양민덜이
  그 덕에 편히 살지를 않넝가! 그러구 또, 이번에 그런 전쟁을 히여서
  그 못된 놈의 사회주의를 막어내주니.
  원 그렇게 고맙구 그렇게 장헐 디가 어디 있담 말잉가…… 어 참,
  끔찍이두 고맙구 장헌 노릇이네!…… 게 여보소, 이번 쌈에 일본은
  갈디읎이 이기기넌 이기렷대잉?”
 
“그야 여부 없죠! 일본이 이기구말구요!”
 
“그럴 것이네. 워너니, 일본이 부국갱병허기루 천하 제일이라넌디……
  어참, 속이 다 후련허다.”
 
이야기에 세마리가 팔렸던 올챙이가 정신이 들어, 시계를 꺼내 보더니,
볼일이 더디었다고 총총히 물러갔읍니다. 그는 물러가면서,
잘 유념을 하여 쉬이 그 마나님감을 골라다가 현신시키겠다고,
자청 다짐을 두기를 잊지 않았습니다.
 
 
 9. 節約[절약]의 道樂精神[도락정신]
 
올챙이를 보내고 나서 윤직원 영감은 퇴침을 돋우 베고,
보료 위에 가 편안히 드러눕습니다.
침침한 13와트 전등불에 담배연기만 자욱하니, 텅 빈 삼칸 장방
아랫목에 가서 허연 영감 하나만 그들먹하게 달랑 드러눈 것이,
어떻게 보면 징그럽기도 하고, 다시 어떻게 보면 폐허(廢墟)같이
호젓하기도 합니다.
윤직원 영감은 멀거니 드러누웠자매 심심해서 못견디겠읍니다.
춘심이 년이나 어서 왔으면 하겠는데, 저녁 먹고 곧 오마고 했으니까,
오기는 올 테지만, 고년이 이내 뽀로로 오는 게 아니라,
까불고 초라니짓을 하느라고, 이렇게 더디거니 싶어 얄밉습니다.
 
대복이도 까맣게 기다려집니다. 간 일이 궁금도 하거니와, 여덟신데
오래잖아 라디오를 들어야 하겠으니, 그 안으로 돌아와야 하겠읍니다.
저녁을 몇술 뜨다가 말아서 속도 출출합니다.
이런 때에 딸이고 손자며느리고 누가 하나 밥상이라도 들려 가지고
나와서, 진지 잡수시라고 권을 했으면, 못이기는 체하고
달게 먹을 텐데, 그런 재치 하나 부릴 줄 모르는 것들이거니 하면
다시금 화가 나기도 합니다.
시장한 깐으로는 삼남이라도 내보내서 우동이라도 한 그릇 불러다가
후루룩쭉쭉 먹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니까는 어금니 밑에서
사뭇 신침이 괴어 나오고 가슴이 쓰리기는 하지만,
집안 애들이 볼까 보아 체수에 차마 못합니다.
 
누가 먼저 오나 했더니 대복이가 첫찌(?)를 했읍니다.
운동화에 국방색 당꾸바지에, 검정 저고리에, 오그라붙은 칼라에,
배애배 꼬인 검정 넥타이에, 사년 된 맥고자에, 볕에 탄 얼굴에,
툭 불거진 광대뼈에, 근천스럽게 말라붙은 안면 근육에,
깡마른 눈정기에…… 이 행색과 모습은 백만장자의 지배인 겸 서기 겸
비서 겸, 이러한 인물이라기는 매우 섭섭해 보입니다.
차라리 살림살이에 노상 시달리는 촌의 면서기가, 그날 출장을 나갔다가
다뿍 시장해가지고 허위단심 집엘 마침 당도한 포우즈랬으면
꼬옥 맞겠읍니다. 실상 또 면서기 출신이 아닌 것도 아니구요.
대복이가 방으로 들어만 섰지 미처 무어라고 인사도 하기 전에
 윤직원 영감은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히였넝가?”
 
하고 묻습니다. 가차압을 나가는 집달리를 따라갔으니 물어보나마나
알 일이지마는 성미가 급해 놔서 진득이 저편의 보고를 기다리고
있지를 못합니다.
 
“얘애, 다아 잘……”
 
대복이는 늘 치어난 훈련으로, 제가 복명을 하기보다 주인이 묻는 대로
대답을 하기 위하여 넌지시 꿇어앉아 다음을 기다립니다.
 
“무엇으다가 붙있넝가?”
 
“마침 광으가 나락이 한 오십 석이나 있어서요……”
 
“나락? 거 참 마침이구만!…… 그리서 그놈으다가 붙있넝가?”
 
“얘애.”
 
“잘힜네! 인제 경매헐 때 그놈을 우리가 사머넌 거 갠찮얼 것이네!
   나락 이닝개루……”
 
“그렇잔히여두 그럴라구 다아 그렇게 저렇게 마련을……”
 
워너니 대복이가 누구라고, 그걸 범연히 했을 리가 없던 것입니다.
꿩먹고 알먹고 하는 속인데, 윤직원 영감은 채무자의 재산을 가차압을
해놓고, 기한이 지난 뒤에 경매를 하게 되면, 속살로 그것을 사가지고,
그것에서 다시 이문을 봅니다.
그 맛이 하도 고소해서 언제든지 기회만 있으면 놓치지를 않습니다.
 
“에 거, 일 십상 잘되얐네!……
  그리서, 그분네, 술대접이나 좀 힜넝가?”
 
“돈 10원어치나 술을 멕있더니, 아마 그 값이 넉넉 빠질라넝개비라우!”
 
“것두 잘힜네! 무엇이구, 멕이먼 되는 세상잉개루……
  그럼 어서 건너가서 저녁 먹소. 시장겄네…… 저 거시기……
  아니 그만두구, 어서 건너가서 저녁 먹소. 이따가 이얘기허지!”
 
윤직원 영감은 아까 올챙이와 말이 얼린 만창상점의 수형조건을
상의하려다가, 그거야 이따고 내일이고 천천히 해도 급하지 않대서,
대복이의 시장하고 피곤할 것을 여겨 그만두던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으로는 이문 속으로 탈이나 없고 할 경우면, 실상은 탈을
내는 일도 없기는 하지만, 더러 대복이를 위해 줄 만도 합니다.
대복이는 참으로 보뱁니다. 차라리 윤직원 영감의 한쪽이라고 하는 게
옳겠지요. 
성명은 전대복(全大福)인데, 장차에는 어떻게 될는지 기약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반평생을 넘겨 산 오늘날까지,
이름대로 복이 온전코 크고 하지는 못했읍니다. 오히려 박복했지요.
윤직원 영감과 한고향입니다. 면서기를 5년 다녔고 
그중 4년이나 회계원으로 있었읍니다.
 
꼼꼼하고 착실하고 고정하고 그러고도 사람이 재치가 있고,
이래서 윤직원영감의 눈에 들었읍니다. 그런 결과 윤직원 영감네가
서울로 이사해 올 때에, 자가용 회계원 겸 서무서기 겸 심부름꾼 겸
만능잡이로다가 이사짐과 한가지로 묻혀가지고 왔읍니다.
 
이래 10년, 대복이는 까딱없이 지내왔읍니다.
참말로 윤직원 영감한테는 깎아 마췄어도 그렇게 손에 맞기는
어려울 만큼 성능(性能)이 두루딱딱이로 만점이었읍니다.
약삭빠르고 고정하고 민첩하고, 잇속이라면 휑하니 밝고……
이러니 무슨여부가 있을 리가 있나요.
가령 두부를 오늘 저녁에는 세 모만 사들여 보낼 예정이라면,
사는 마당에서는 두 모하고 반만 사고 싶습니다. 그러나 두부 반 모는
서울 장안을 온통 매고 다녀야 파는 데가 없으니까, 더 줄여서 두 모를
삽니다. 결국 2전5리를 아끼려던 것이, 그 갑절 5전을 득했으니,
치부꾼으로 그런 규모가 어디 있겠읍니까. 대복이라는 사람이 돈을
아끼는 그 솜씨가 무릇 이렇다는 일롑니다. 진실로 얼마나 충실한
사람입니까. 그러나 그렇대서 사람이 잘다고만 하면,
그건 무릇 인간성을 몰각한 혐의가 없지 않습니다.
 
대복이가 가령 주인네 반찬거리로 세 모를 사들여 보낼 두부를
두 모하고 반 모만 사고 싶다가, 반 모는 팔질 아니하니까 두 모를 사는
그 조화가 단지 돈 그것을 아끼자는, 즉 순전한 목적의식만으로만
그러던 건 아닙니다.
그는 돈이야 뉘 돈이 되었던, 살림이야 뉘 살림이 되었던, 그 돈을
졸략히 쓰는 방법, 거기에 우선 깊은 취미를 가지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때문에, 두부를 세 모를 살 텐데 두 모 반을 못사서
두 모만 산 때라든지, 윤직원 영감의 심부름으로 동대문밖을 나가는데
갈 제는 걸어서 가고 올 제만 타고 와서 전차삯 5전을 덜 쓴 때라든지,
이러한 날은 아껴 쓰고 남긴 그 돈 5전을 연신 들여다보고 들여다보고
하면서 무한히 유쾌해합니다. 그 돈 5전을 그렇다고 제 낭탁에다가
넌지시 집어넣느냐하면, 물론 절대로 없읍니다.
 
대복이는 그러므로, 가령 한 사람의 훌륭한 도락가(道樂家)로
천거하더라도 결단코 자격에 손색이 없을 겝니다.
어떤 사람은, 가지각색 고서(古書)를 모으기에 재미를 붙입니다.
별 얄망궂은 책들을 다 모으지요.
어떤 사람은 화분 가꾸기에 재미를 들입니다. 올망졸망 화초들을
분에다가 심어놓고 그것을 가축하느라, 심지어 모필로다가 잎사귀에
앉은 먼지를 털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도락이 남이 보기에는 곰상스럽기나 했지 아무 소용도 없는 것
같지만, 그걸 하고 있는 당자들은 천하에도 없이 끔직스레 재미가
있읍니다. 마찬가지로, 돈을 쓰는데 요모조모로 아끼고 졸이고 깎고
해가면서 군것은, 먼저 한낱도 안 붙게시리 씻고 털고 한 새말간
알맹이돈을 만들어 쓰곤 하는 대복이의 그 극치에 다다른 규모도,
그러니까 뻐젓한 도락이 아닐 수가 없읍니다.
윤직원 영감과 대복이 사이에는 네 것 내 것이 없읍니다.
죄다 윤직원 영감의 것이요 대복이 것은 하나도 없어서 말입니다.
하기야 윤직원 영감은 대복이를 탁 믿고 월급이니 그런 것은 작정도
없이, 네 용돈은 네가 알아서 쓰라고 내맡겼은즉, 한 백만 원 집어
쓸 수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대복이에게 매삭 든다는 것이란 게 극히 적고도 겸하여,
일정한 것이어서, 담배 단풍표 서른 곽과(만약 큰달일라치면 31일날
하루는 모아둔 꽁초를 피웁니다) 박박 깎는 이발삯 25전과,
목간삯 7전과 이런 것이 경상비요, 임시비로는 가장 하길의 피복대와
10전 미만의 통신비가 있을 따름입니다.
그는 그러한 중에서도 주인 윤직원 영감의 살림이나 사업에 드는 비용은
물론이거니와, 그대도록 바닥이 맑아, 빠안히 들여다보이는 제 비용도,
가다간 용하게 재주를 부려서 뻐젓하니 절약을 해내곤 합니다.
 
가령 쉬운 예를 들자면, 이런 것도 있읍니다.
대복이는 한 달에 한번씩 반드시(!) 목간을 하는데,
그 비용은 물론 7전입니다. 비누를 쓰지 않으니까 꼭 7전 외에는
수건이나 해지면 해졌지, 다른 것은 더 들 게 없읍니다.
그런데 언젠가는 그 한 달에 한 번씩 하던 그 목간을 약간 늦추어,
한 달하고 닷새 즉 35일 만에 한번씩 해보았읍니다. 그렇게 하기를
여섯 번을 한 결과로는 매번 닷새씩 아낀 것으로 해서 일곱 달 동안에
여섯 번의 목간을 했고, 동시에 한 달 목간삯 7전을 절약하는 데 성공을
했읍니다.
이 성과를 거둔 날의 대복이는 대단히 유쾌했읍니다.
진실로 입신(入神)의 묘기(妙技)로 추앙해도 아깝지 않습니다.
고향에서는 그의 과히 늙지는 않은 양친이
윤직원 영감네 땅을 부쳐먹고 지내면서 그다지 고생은 않습니다.
아내가 고향에서 시부모를 섬기고 있었는데, 연전에 죽었고,
그래 대복이는 시방 홀애빕니다.
죽은 아내가 불쌍하고, 시골 살림이 각다분하고,
홀애비 신세가 초라하고 하기는 하지만, 그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과연 복이 될는지 무엇이 될는지 아직은 몰라도, 복이려니 하는 대망을
아뭏든 홀애비가 된 그걸로 해서 품을 수만은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대복이 그가 임자 없는 사내인 것과 일반으로 안에는 시방 임자 없는
여편네 서울아씨가 있어서, 우선 임자 없는 기집 사내가 주객이
되었다는 것이 가히 원칙적으로는 그 둘은 합쳐줄 조건이 되던
것입니다. 물론 실제란 놈은 언제고 원칙을 생색내주려 들지 않으니까,
그래서 대복이의 대망도 장차 어떻게 될는지 모르기는 합니다.
 
첫째, 둘이서(아니 저쪽에서) 뜻이 있어야 하고,
윤직원 영감이 죽어버리거나, 그렇잖으면 묵인을 해주거나 해야
하겠으니, 그것이 모두 미지수가 아니면 억지로다가 뛰어넘을 수는 없는
난관입니다.
가령 윤직원 영감이 막고 못하게 하는 것을 저희 둘이서만 배가 맞아서
살잔즉 서울아씨의 분재받은 5백석거리가 따라오지 않을 테니,
그건 대복이로 앉아서 보면 목적을 전연 무시한 결과라, 아무 의의도
없을 노릇입니다. 대복이라는 사람이 본시 계집에게 반하고 어쩌고
할 활량도 아니요, 반할 필요도 없기는 하지만, 그러니 더구나
목 움츠리에, 주근깨 바탕에, 납작코에, 그런 빈대 상호의 서울아씨가
계집으로 하 그리 탐탁하다고 욕심이 날 이치는 없읍니다.
다만 홀애비라는 밑천이 있으니까, 5백석거리로 도금(鍍金)한 과부라는
데에 오직 친화성(親和性)이 발견될 따름이고, 그게 대망의 촛점이지요.
 
그러니까 시방 대복이는 제일단의 문제로,
서울아씨가 저에게 뜻이 있으면 하고 바랍니다. 만약 그렇기만 하다면
일이 한 조각은 성공이니까, 매우 기뻐할 현상이겠읍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가령 서울아씨가 쫓아나와서, 제 허리띠에
목을 매고 늘어지더라도, 제이단의 난관인 윤직원 영감의 묵인이나
승낙이 없고 볼 것 같으면 알짜 5백석거리의 도금이 벗어져버린
서울아씨일 터인즉, 그는 단연코 그 정을 물리칠 것입니다.
몽글게 먹고 가늘게 싸더라도, 윤직원 영감이 인제 죽을 때는
단돈 몇 천원이라도 끼쳐줄 눈치요, 그것만은 외수가 없는 구멍인 것을,
잘못하다가 그 구멍마저 놓쳐서는 큰 낭패이겠으니 말입니다.
 
“전서방님 오싰넌디 저녁진지상 주어기라우……”
 
삼남이가 안방 대뜰로 올라서면서 떼어놓고 하는 소립니다.
 
“전서방 오섰니?”
 
안방에서 경손이와 태식이를 데리고, 무슨 이야긴지 이야기를 하고 있던
서울아씨가, 와락 반가운 소리로 대답을 하면서 마루로 나오더니
이어 부엌으로 내려갑니다.
전서방이고 반서방이고 간에, 그의 밥상을 알은체할 며리도 없고,
또 계제가 그렇게 되었더라도 삼월이를 불러대서 시키든지
조카며느리들한테 밀든지 할 것이지, 여느때는 부엌이라고 들여다보지도
않는 서울아씨로, 느닷없이 이리 서두는 것은 적실코 한 개의 이변이
아닐 수가 없읍니다.
경손이가 그 이변을 직각하고서 서울아씨가 나간 뒤에다 대고 고개를
끄덕끄덕, 혓바닥을 날름날름합니다.
서울아씨는 물론 그런 눈치를 보인 줄은 모를 뿐 아니라,
자신의 그러한 행동이 이변스러운 것조차 미처 깨닫지를 못합니다.
 
하나, 그렇다고 또 서울아씨가 대복이한테 깊수룸한 향의가 있는 것이냐
하면, 실상인즉 그게 매우 모호해서 섬뻑 이렇다고 장담코 대답하기는
난감 합니다. 혓바닥은 짧아도 침은 멀리 뱉는다고 합니다.
서울아씨는, 다 참, 양반의집 자녀요, 양반의 집 며느리였고,
친정이 만석꾼이요, 내 몫으로 5백석거리가 돌아올 테고,
이러한 신분을 가져다가 사랑방 서사 대복이와 견줄 생각은 일찌기
해본 적이 없읍니다.
그러니까 가령 어떻게 어떻게 되어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얼려가지고
대복이한테로 팔자를 고친다 치더라도, 그거나마 마다고 물리치지는
않을지언정, 대복이라는 인물이 하 그리 솔깃하거나 그래서 그러는 것은
아닐 텝니다. 하고, 오로지 그가 치마를 두른 계집이 아니고
남자라는 것, 단연 그것 하나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기로 들면, 같은 남자일 바에야 대복이보다는 어느 모로 따지든지
취함직한 남자가 허구 많을 텐데, 하필 그처럼 눈에도 안 차는
대복이냐고 하겠지요.
 
그러나 서울아씨는 시집을 갈 수 있는 숫처녀인 것도 아니요,
신풍조를 마신 새로운 여인도 아닙니다.
그는 단지 하나의 낡은 세상의 과부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이 있는 줄은
알아도, 남자가 있는 줄은 의식적으로 모릅니다.
그것은 또, 결단코 절개가 송죽 같아서가 아니라,
눈 가린 마차말(馬車馬)이 마차를 메고 달리는 것과 일반으로,
훈련된 본능일 따름입니다. 과부라는 것은 그 이유는 몰라도,
그냥 그저 두번째 남편을 맞지 않는 것 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서울아씨도 장차 어떠한 고패에 딱 다들려서는,
그 훈련된 본능을 과연 보존할지가 의문이나, 아직까지는 털고 나서서
개가를 하겠다는 의사는 감히 없고, 역시 재혼이라는 것은 못하는 걸로
여기고만 있읍니다.
하기야 더러 그 문제를 가지고,
빈약한 소견으로 두루두루 생각을 해보지 않는 것은 아니나,
아무리 둘러대 보아야 그것은 힘에 벅찬 거역이어서, 도저히 가망수가
없으리라 싶기만 하던 것입니다.
그러하다면서 대복이한테 그가 심상찮은 마음의 포즈를 보인다고
 한 것은 역시 공연한 데마가 아니냐?’
 
그러나 그것은 막상 그렇지 않은 소치가 있읍니다.
과부라고, 중성(中性)이 아닌 바에야 생리적으로 꼼짝 못할 명령자가
있는것을, 그러니 이성이 그립지 않을 이치가 없읍니다.
서울아씨도 이성이 그립습니다. 지금 스물아홉인데 12년 전에 1년 동안
겨우 남편과 지내고서 이내 홀몸입니다.
삼십이 되어오니 그 이성 그리움이 차차로 더합니다.
그가 성자(聖者)다운 수련을 쌓지 않은 이상, 단지 과부라는 형식만이
있어 가지고는 호르몬 분비의 명령인, 한 개의 커다란 필연을 도저히
막아낼 수는 없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극히 자연스러운, 그러나 일종 근육적인 반사작용으로써
이성을 그리워하고, 무의식한 가운데 이성을 반겨하지 않을 수가 없는
여자 서울아씨던 것이요, 그런데 일변 그의 세계란 것은
겨우 일백 마흔 평이라는 이 집 울안으로 제한이 되어 있고,
그 제한된 세계에는 오직 대복이가 남자로 존재해 있을
따름이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울아씨는, 대복이라면 그와 같이 의식보다도 제풀 근육이
반사적으로 날뛰어, 몸이 먼저 반가와하고,
그것이 날이 갈수록 남의 눈에 뜨이게 차차로 현저해 가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서울아씨의 근육이 풍겨 내놓은 이변은, 그러나 저 혼자서는
도저히 발전을 할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아직은 한낱 재료일 따름이요, 겸하여 의사의 판단과 상량을 치르지
않은 것인즉, 미리서 대복이를 위하여 축배를 들 거리는
못 되는 것입니다.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삼남이가 웬만큼 눈치가 있었더라면,
밥상을 들고 나가서 대복이더러 넌지시,
아 서울아씨가 펄쩍 뛰어나오더니 평생 않던 짓을, 밥상을 차린다
이것저것 반찬을 골라 놓는다, 또 숭늉을 데운다 머 야단이더라고,
이쯤 귀뜀이라도 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야 대복이도 속이 대단 굴저했을 것이고, 어떻게 적극적으로
무슨 모션을 건네보려고 궁리도 할 것이고 그랬을 텐데,
삼남이란 본시 제 눈치도 모르는 아인걸 남의 눈치를 알아챌
한인(閒人)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 대복이는 전에 없던 밥상인 것만 이상히 여기고 말았읍니다.
그러나 경손이 그애가 능청맞은 애라, 제 대고모의 그러한 이변을
발견했은즉, 혹시 무슨 장난이라도 할 듯싶고, 그 끝엔 어떤 일이
생길 듯도 하고 하기는 합니다마는 물론 꼭이 그러리라고 단언은
할 수 없는 일이고요.
 
 
 10. 失 題 錄[실제록]
 
대복이가 윤직원 영감의 머리맡 연상(硯床)에 놓인 세트의 스위치를
누르는 대로 JODK의 풍류(風流)가 마침 기다렸던 듯 좌악 흘러져
나옵니다.
 
“따앙 찌찌, 즈응 증지 따앙 증응 다앙……”
 
잔영산입니다.
청승스런 단소의 동근 청과, 의뭉한 거문고의 콧소리가 서로 얽혔다
풀렸다 하는 사이를, 가냘퍼도 양금이 야물치게 멕이고 나갑니다.
 
“다앙당동, 다앙동 다앙당, 증찌, 다앙 당동당, 다앙 따앙.”
 
이윽고 초장이, 끝을 흥있이 몰아치는 바람에 담뱃대를 물고 모로 따악
드러누워 듣고 있던 윤직원 영감은
 
“좋다아!”
 
하면서 큼직한 엉덩판을 한번 칩니다.
무릇 풍류란 건 점잖대서, 잡가나 그런 것과 달라 그 좋다!를
않는 법이랍니다. 그러나 그까짓 법이 무슨 상관이 있나요.
윤직원 영감은 좋으니까 좋다고 하면 고만이지요.
이렇게 무식은 해도, 그거나마 음악적 취미의 교양이 윤직원 영감한테
지녀져 있다는 것이 일변 거짓말 같기는 하지만, 돌이켜 직원 구실을
지낼 무렵에 선비들과 주축한 그 덕이라 하면, 그리 이상튼 않겠읍니다.
라디오를 만져놓고 마악 제 방으로 물러가는 대복이와 엇갈려,
춘심이년이 배시시 웃으면서 들어섭니다.
 
“어서 오니라. 이년 왜 이렇게 늦게 오냐?”
 
윤직원 영감은 반가와하면서 욕을 하고,
춘심이는 욕을 먹어도 타지는 않습니다.
 
“일찍 올 일은 또 무엇 있나요? 오구 싶으믄 오구,
   말구 싶으믄 말구 하지요. 시방 세상은 자유세상인데!……”
 
춘심이가 단숨에 이렇게 쌔와리면서, 얼굴 앞에 바투 주저앉는 것을,
윤직원 영감은 멀거니 웃고 바라다봅니다.
 
“대체, 네년 주둥아리다가넌 도롱태를 달었넝개비다?
  어찌 그리 말허넌 주둥이가 때르르허니 방정맞냐?”
 
“도롱태가 무어예요?”
 
“떠들지 말구, 이년아…… 나 풍류소리 들을라닝게 발치루 가서
  다리나 좀 쳐라, 응?”
 
“싫여요! 밤낮 다리만 치라구 허구……”
 
불평을 댈 만도 하지요. 비록 반푤값에 영업장을 가졌고,
 세납을 물고 하는 기생더러 육장 다리를 치라니요.
춘심이는 금년 봄부터 시작하여 윤직원 영감의 다섯 번이나 내리
 실연을 한 여섯 번째의 애인입니다.
작년 가을, 그 살뜰한 첩이 도망을 간 뒤로 윤직원 영감은 객회(?)가
대단히 심했고, 그뿐 아니라 밤저녁으로 말동무가 없게 되어
여간만 심심치가 않았읍니다.
사랑은 쓰고 있되, 놀러 올 영감 친구 하나 없읍니다.
저엉 무엇하면 객초(客草) 몇 대씩 허실하면서라도 바둑 친구나 청해
오겠지만, 윤직원 영감은 바둑이니 장기니 그런 것은 자고 이후로 통히
손을 대본 적이 없읍니다.
웬만한 노인들은 대개 만질 줄은 아는 골패도 모르고 이날 이때까지
살아왔읍니다. 그런 기국이나 잡기에 손을 대지 않은 것은,
소시적에 남들이 노름꾼 말대가리 자식놈이라고, 뒷손가락질과 귀먹은
욕을 하는 데 절치부심을 한 소치라고 합니다.
말동무 하나 없이 밤이나 낮이나 텅 빈 삼칸 장방에 담뱃대를 물고 혼자
달랑 누웠다 앉았다 하자니, 어떤 때에는 마구 다리가 비비 꼬이게시리
심심해 살 수가 없읍니다.
그러자 마침 올 3월인데, 윤직원 영감이 작년 추석에 성묘 겸 고향을
내려 갔을 제 술자리에서 수삼차 불러 논 기생 하나가, 그 뒤 서울로
올라왔다고 그래 고향 어른을 뵈러 온다고, 우정 이 계동 구석까지
찾아온 일이 있었읍니다.
 
그때에 그 기생이 제 동생이라고, 머리 딴 동기아이 하나를
데리고 와서 같이 인사를 드렸고,
윤직원 영감은 고놈 동기아이가 매우 귀여웠읍니다.
 
“너, 가끔 놀러오니라. 와서 날 이얘기책두 읽어 주구,
   더러 다리두 쳐주구 허머넌, 내 군밤 사먹으라구 돈 주지……”
 
덜머리진 총각녀석이 꼬마동이더러, 엿 사주께시니…… 달라는 법수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행티겠지요. 깊이 캐고 보면 말입니다.
설마 그런 눈치야 몰랐겠지만, 동기아이는 웃기만 하지
대답을 않는 것을, 형 되는 큰기생이 제 동생더러, 그래라 올라와서
모시고 놀아 드려라. 노인은 애들이 동무란다고 타이르던 것입니다.
역시 무슨 딴 의사가 있을 줄은 몰랐을 것이고, 다만 제 생색을 내어
놀음발이라도 틀까 하는 요랑이던 게지요.
윤직원 영감은 하기야 큰기생이 종종 와주었으면 해롭진 않을 판입니다.
더러 와서는 조용히 시조장이나 부르고, 콧노래 섞어 잡가토막도
부르고, 이런 이얘기 저런 이얘기 이얘기나 하고……
 
물론 그것뿐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큰기생 그한테 뜻이 있을 필요는
전연 없읍니다. 털어놓고 오입을 한다든지 하자면야,
서울 장안의 기생만하더라도 얼굴이 천하 일색이 수두룩하고,
또 가령 얼굴은 안 본다 칠값에 노래가 명창으로 멋이 쿡 든 기생이
또한 허구 많은데, 그런 놈 죄다 젖혀놓고 하필 인물도 노래도
다 시원찮은 이 기생을, 같은 돈 들여가면서
그러잘 며리가 없는 게니까요.
그러나 일변, 기생으로 보면, 새파란 젊은 년이 무슨 그리 살뜰한
정분이며 알뜰한 정성이 있다고, 제 벌이 제 볼일 젖혀놓고서,
육장 이 구석을 찾아와서는 놀음채 못받는 개평 놀음을 논다,
아무 멋대가리도 없는 늙은이 시중을 든다 하고 싶을 이치가 없을 게
아니겠읍니까.
경위가 이러하고 본즉 윤직원 영감은 단지 눈앞의 화초로만 데리고
놀재도 이편에서 오라고 일러야 할 것이요, 오라고 해서 오고 보면
그게 한두 번일세 말이지, 세 번에 한번쯤은 소불하 10원 한 장은
집어주어야 인사가 아니겠다구요.
 
그러나 돈이 10원, 파랑딱지 한 장이면 1원짜리로 열 장이요,
10전짜리로 1백 닢이요, 1전짜리로 1천 닢이요, 옛날 세상이라면
엽전으로는 5천 닢이요,
5천 닢이면 만석꾼이 부자라도 무려 1천 7백 번이나 저승을 갈 수 있는
노수요, 한걸 생판 어디라고 윤직원 영감이 그렇게 함부로 쓸 법은
없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옹근 기생이 아니요 동기고 볼 양이면,
이런 체면 저런 대접 여부 없이 가끔가다가 돈 장이나 집어주곤 하면,
제야 군밤을 사먹거나 봉지쌀을 사들고 가거나 이편의 아랑곳이 아니요,
내가 할 도리는 넉넉 차리게 될 테니까, 두루 좋습니다.
그런 고로 해서, 동기를 데리고 노는 것이 돈 덜 드는 규모 있는
소일 일뿐만 아니라, 또 윤직원 영감은 기왕 소일거리로 데리고
놀 바에야 기집애가 더 귀엽고 재미가 있읍니다. 오히려 그 소일거리
이상의 경우를 고려해서, 역시 돈은 적게 들고 비공식이요,
그러고도 취미는 더 있을 게 기집애입니다.
사람이 나이 늙으면 늙을수록 어린 기집애가 귀여운 법이라구요.
그거야 귀여워하는 법식 나름이겠지만, 윤직원 영감의 방법은
의미심장합니다.
그리하여, 계제가 마침 좋은지라, 윤직원 영감은 기생 형제가
하직 인사를하고 일어설 때에 큰기생더러
 
“그럼 자네가 더러 좀 올려보내소. 내가 거 원, 이렇게 혼자 있으닝개
   제일 말동무가 읎어서 심심히여 못허겄네……
   그러니 부디 가끔가끔……”
 
하고, 근천스런 부탁을 했읍니다.
큰기생은 종시 선선히 응답을 하고 돌아갔고, 그런지 사흘 만인가
윤직원 영감이 혼자 누워서 심심하다 못해, 고년이 어쩌면 올 성도
부른데 이런 때 좀 왔으면 작히나 좋아! 몰라 또, 말은 그렇게 흔연히
하고 갔어도 보내기는 웬걸 보낼라구? 아니 그래도 혹시 어쩌면……
이리 궁금해하면서 기다리노라니까, 아닌게아니라, 훨씬 낮이 겨운 뒤에
그애 동기아이가 찰래찰래 오지를 않겠읍니까.
젊은것들끼리 제 애인을 고대고대하다가 겨우 와주어서 만날 때도
아마 그렇게 반갑겠지요.
윤직원 영감도 대단 반갑고 일변 신통스럽습니다.
윤직원 영감은 그 살뜰한 애기 손님을 옆에 중소히 앉히고는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종알종알 이얘기하는 입도 들여다보고,
꼬챙이로 찌르듯 빼악뼉하는 노래도 시켜보고 하면서 끔찍한 재미를
보았읍니다.
 
그럭저럭 날이 저무니까 간다고 일어서는 것을 달래서,
전에 없이 맞상을 내다가 같이 저녁을 먹었고, 저녁을 마친 뒤에는
시급히 춘향전을 사들여 그애더러 읽으라고 하고는 자기는 버얼떡
드러누워서 이야기책 읽는 입을 바라다보고 하느라고 그야말로
천금 같은 봄밤의 한식경을 또한 즐겁게 보낼 수가 있었읍니다.
초저녁부터 몇번 붙잡아 앉힌 것은 물론이고, 마침내 열시가 되자
할 수없이 놓아 보내는데 윤직원 영감은 크게 생색을 내어,
인력거를 불러다가 선금을 주어서 태워 보내는 외에, 1원 한 장을 따로
손에 쥐어주기까지 했읍니다. 대단한 적공이지요.
보내면서, 내일도 오너라 했더니, 과연 이튿날 저녁에, 저녁을 일찌감치
먹곤 올라왔읍니다.
윤직원 영감은 어제 저녁처럼 옆에다가 앉혀놓고는, 이야기도 시키고
이야책도 읽히고, 내시가 이 앓는 소리 같은 노래도 듣고,
오늘 저녁 개시로 다리도 치라 하고, 그러면서 삼남이를 시켜
말눈깔사탕 10전어치도 사다가 먹이고, 머리는 물론 여러 번 쓰다듬어
주었고, 그러구러 밤이 이슥한 뒤에 돌려보냈읍니다.
대접상으로는 역시 인력거를 태워주었어야 할 것이지만,
인제 앞으로 자주 다닐 텐데 그렇게 번번이 탈 수야 있느냐고,
그러니 오늘 저녁부터는 이애더러 바라다 달래라고,
그 알뜰한 삼남이를 안동해 보냈읍니다.
 
인력거를 안 태웠으니 돈이라도 1원을 다 주기가 아깝거든 50전이나마
주었어야 할 것이지마는 그것 역시 자꾸만 그래쌓다가는
아주 버릇이 되어서, 오기만 오면 으례껏 돈을 탈 것으로 알게시리
길을 들여서는 안되겠다 하여, 짐짓 입을 씻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러고서 그저 세 번이나 네 번에 한번씩 1원 한 장이고 쥐어줄
요량을 했읍니다.
그 뒤로부터 그애는 윤직원 영감의 뜻을 곧잘 받아, 이틀에 한 번,
또 어느 때는 매일같이 올라와선 놀곤 했고,
그렇게 하기를 한 이십여 일 해오던 어느날 밤이었읍니다.
 
밤은 아직 초저녁이었고, 그들먹하게 뻗고 누웠는 다리를 조막만한
기집애가 밤만한 주먹으로 토닥토닥 무심히 치고 있는데,
문득 윤직원 영감이
 
“너 멫살 먹었지?”
 
하고 새삼스럽게 나이를 묻던 것입니다.
 
“열늬 살이라우.”
 
동기아이는 아직도 고향 사투리가 가시지 않았읍니다.
하기야 윤직원 영감같은 사람은 십 년이 되었어도 종시 그러닝개루를
 못 놓지만요.
 
“으응! 열늬 살이여!……”
 
윤직원 영감은 또 한참 있다가
 
“다리 구만 치구, 이리 온?”
 
하면서 턱을 까붑니다.
아이는 발딱 일어서더니 발치께로 돌아, 윤직원 영감의 가슴 앞에
바투 앉고, 윤직원 영감은 물었던 담뱃대를 비껴놓고는 아이의 머리를
싸악싹 쓸어줍니다.
 
“응…… 열늬 살이먼 퍽 숙성히여!”
 
“………”
 
“야?”
 
“얘?”
 
“으음…… 저어 거기서, 저어……”
 
“………”
 
“야?”
 
“얘?”
 
“저어, 너……”
 
“얘애.”
 
“너 내 말 들을래?”
 
“얘?”
 
아이는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듣고는 눈을 깜작깜작합니다.
윤직원 영감은, 히죽 웃으면서 머리 쓸던 팔로 슬며시
 아이의 목을 끌어안습니다.
 
“내 말 들어라, 응?”
 
“아이구머니!”
 
아이는, 마치 불에 덴 것처럼 화닥닥 놀라면서, 뛰쳐 일어나더니,
그냥 문을 박차고 그냥 꽁무니가 빠지게 달아나버립니다.
가뜩이나 덩지 큰 영감이 좀 모양 창피했지요. 그러나 뭘,
아무도 본 사람은 없었고, 또 보았기로서니,
게, 양반이 파립(破笠) 쓰고 한번 대변보기가 예사지, 그걸 그다지
문벌 깎일 망신으로 칠 것은 없읍니다.
윤직원 영감은, 에 거 애여 어린 기집애년들 이뻐하고,
데리고 놀고 할게 아니라고, 얼마 동안을 다시 전대로 소일거리 없이
심심한 밤과 낮을 보냈읍니다.
그러나 한번 걸음을 내친 게 불찰이지, 일 당하던 당장에 창피하던
기억은 차차로 잊혀지고, 일변 심심찮이 놀던 일만 아쉬워집니다.
뿐 아니라, 맛을 보려다가 회만 동해 논, 그놈 식욕이 아예 가시지를
않습니다.
 
윤직원 영감의 이 기집애에 대한 흥미는 일찌기 고향에 있을 때부터
촌 기집애들을 주무른 솜씨라, 오늘날에 비로소 시작된 것이 아니라면
아니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그때의 기집애들은 열칠팔세가 아니면 기껏
어려야 열 육칠세이었었지, 열네살박이의 정말 젖비린내 나는
기집애에까지는 이르질 않았읍니다.
그러니까 만약 그 식욕을 엄밀히 구별한다면 시골 있을 무렵에
기집애(어리기는 해도 기집으로서의 기능을 갖춘) 그놈을 잡아먹던
식성(食性)과 시방 열네살 고 또래의 기집 이전인 기집애에게 대해서
우러나는 구미(口味)와는 계통이 다르다 할 것입니다.
더우기 방물장수아씨더러, 첩 더디 얻어 들인다고 성화를 대는 그런
순수한 생리와도 파계가 다릅니다.
윤직원 영감의 이 새로운 식욕은 그런데 매우 강렬하기까지 해서 도저히
그대로 참지를 못할 지경이었읍니다.
드디어 대복이가 나섰읍니다.
경지영지하시니 불일성지라더니, 뉘 일일새 범연했겠읍니까.
대복이는 골목 밖 이발소의 긴상한테 청을 지르고, 긴상은 계제 좋게
안국동 저의 이웃에 사는 동기아이 하나가 있어,
쉽사리 지수를 했읍니다. 사실 별반 힘들게 없는 것이,
그런 조무래기야 장안에 푹 쌨고, 그런데 이편으로 말하면
이러저러한 곳에 사는 재산 있고, 칠십 먹은 점잖은 아무댁 영감님인바,
노인이 심심소일삼아 옆에 앉혀놓고서 말동무도 하고 이야기책도 읽히고
노래도 시키고 다리도 치이고, 이렇게 데리고 논다는 조건이고 본즉,
만약에 춘향이가 인도환생을 한 에미애비라 하더라도
감히 거기에 어떠한 위험을 느끼진 안할 게니까요.
 
하물며 기집애자식을 논다니판에다 내놓아 목구멍을 도모하자는
에미애비들이어던 딱이 그 흉헌 속내를 알았기로서니, 오히려 반가와할
것이지 조금치나 저어를 할 며리는 없는 것입니다.
이발소 긴상의 서두리로, 사흘 만에 한 놈이 대비가 되었는데,
나이는 이편에서 15세 이내로 절대 지정한 소치도 있겠지만
마침 열네 살이요, 생긴 거란 역시 별수 없고 까칠한 게
갓에 나논 고양이새끼 여대치게 어설펐읍니다.
그러나 윤직원 영감은 기집애면 만족이니까 별 여부 없었고,
흔연히 맞아들여 노래도 우선 시켜보고, 머리도 쓸어주고,
이야기책도 읽히고, 다리도 치게 하고, 눈깔사탕도 사먹이고,
이렇게 며칠 두고서 적공을 들였읍니다.
그러다가 이윽고 낯을 안 가릴 만하니까 비로소, 너 몇 살이냐?…… 응,
숙성하구나! 너 내 말 들을늬? 하면서 머리 쓸던 팔로
허리를 그러안았읍니다.
그랬더니, 이번 아이는 서울 태생이라 그런지 좀더 영악스럽게
 
“이 영감이 왜 이 모양야? 미쳤나!”
 
하면서 욕을 냅다 갈기고 통통 나가버렸읍니다.
이래서 두번째의 무렴을 보았읍니다. 그러나 암만 무렴은 보았어도
윤직원 영감은 본시 얼굴이 붉으니까 새 채비로 홍안은 당하지 않았지만
 
“헤에! 그거 참!”
 
하면서, 헤벌씸 웃지 않진 못했읍니다.
윤직원 영감은 그 뒤로도 처음 뜻을 굽히지 않았읍니다.
그리하여 세번 네번 다섯번 이렇게 대거리를 구해들였고, 그러나 그러는
족족 실연의 쓴 술잔이 아니라, 핀잔을 거듭거듭 마셔왔읍니다.
대단히 비참한 노릇입니다. 고, 아무렇게나 생긴 동기 기집애년 하나를
뜻대로 다루지 못하고서, 늦은봄부터 초가을까지 무려 다섯 차례나
낭패를 보다니, 윤직원 영감으로는 일대의 치욕이 아닐 수가 없읍니다.
사실이지, 백만의 거부를 누리는데도 그대도록 힘이 들지는 않았고,
평생을 돌아보아야 한 개의 목적을 놓고 앉아, 내내 다섯 번씩 실패를
해본 적이라고는 찾고 싶어도 일찌기 없었읍니다.
하기야 전연 딴 방도가 없던 건 아닙니다. 시골 있는 사음한테로 기별만
할 양이면, 더는 몰라도 조그마한 소녀 유치원 하나는 꾸밈직하게
열서너살짜리 기집애를 한떼 쓸어올 수가 있으니까요.
작인들이야 제네가 싫고 싫지 않고는 문제가 아니요, 어린 딸은 말고서
아닐말로 늙어 쪼그라진 어미라도 가져다가 바치라는 영이고 보면,
여일히 거행하기는 해야 하게크름 다 되질 않았읍니까.
진실로 그네는 큰 기쁨으로든지, 혹은 그 반대로 땅이 꺼지는 한숨을
쉬면서든지 어느 편이 되었던든지 간에, 표면은 씨암탉 한 마리쯤
설이나 추석에 선사삼아 안고 오는 것과 진배없이 간단하게,
그네의 어린 딸 혹은 누이를 산(生) 제수로 바치지 않질 못합니다.
 
윤직원 영감은 그러므로, 가령 세 번째의 허탕을 치고 나서부터는 시골
기집애를 잡아올까 하는 궁리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읍니다.
과연, 당장 편지를 해서 그 머리 검은 병아리를 구해 보내라고
할 생각을 몇 번이고 했었읍니다.
그러나 생각을 그렇게 하기는 했어도,
한편으로는 보는 데가 없지 않아 아직 주저를 했던 것입니다.
만약 시골서 계집애를 데려오고 보면, 그때는 동기를 불러다가 말동무를
삼는다는 형식이 아니요, 단박 첩을 얻어들인 게 되겠으니,
원 아무리 멋한 들 칠십먹은 늙은이가 열세살이나 네살박이
첩을 얻다니, 체면도 아닐 뿐아니라, 또 체면 문제보다는 시골 계집애는
노래를 못하니까 서울 동기보다 쓸모는 적으면서, 오며가며 차삯이야
몸수발이야 뒷갈무리야 해서 돈은 훨씬 더 듭니다.
이러한 불편이 있는 고로 해서, 그래 시골 계집애를 섬뻑 데려오지
못하던 것인데, 그러나 이번 춘심이한테까지 낭패를 보고서도 종시 그런
주저를 하겠느냐 하면, 그건 도저히 보장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일변 생각하면 춘심이의 소임이 매우 중대하고도 미묘한 의의를
가졌다고 할 수 있겠읍니다.
 
이렇듯 조건이 붙었다면 붙었달 수 있는 춘심이요,
한데 다니기 시작한 지도 벌써 보름이 넘었읍니다.
이제는 그만하면 낯가림은 안할 만큼 되었고, 또 공력도 그새
다른 아이들 한테보다는 특별히 더 들이느라고 들였읍니다.
윤직원 영감은 시방, 그런 것 저런 것 속으로 가늠을 해보면서,
손치에 퍼근히 주저앉아 다리를 안 치겠다고 대가리를 쌀쌀 흔들며
암상떨이를 하는 춘심이를 히죽히죽 올려다보고 누웠읍니다.
옆으로 앉아서 고개를 내두르는 대로, 뒤통수의 몽창한 단발이
까불까불합니다. 치렁치렁하던 머리채가 다래를 뽑아버리면 이렇게
여학생이 됩니다.
흰저고리 통치마에 양말이 모두 여학생 차림입니다.
춘심이는 이런 여학생 차림새를 좋아해서, 권번에 갈 제와 또 권번
사람의 눈에 뜨일 자리 말고는, 대개 긴치마에 긴머리를 늘이고 가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윤직원 영감한테 오는 때도
권번에서 바로 가는 길이 아니면 언제고 여학생 차림입니다.
그 주제를 하고 앉아서
 
“사안이이로구나 아 헤.”
 
하는 꼴이, 대체 무어라고 빗댔으면 좋을지 모르겠어도, 저는 이상이요,
간혹 윤직원 영감이, 야 이년아! 여학생이 잡가도 한다더냐고 더러
조롱을 하지만, 역시 그만한 입살은 탈 아이가 아닙니다.
마침 라디오는 풍류가 끝나고, 조금 있더니 지랄 같은
깡깽이 소리(洋樂[양악])가 들려나옵니다. 윤직원 영감은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스위치를 젖혀버립니다.
 
“너 이년, 다리넌 안 치기루 힜냐?”
 
“싫여요! 누가 암마야상인가 머!”
 
“허! 그년 참!…… 그럼 다리 안 치넌 대신 노래나 한마디 불러라!”
 
“노랜 하죠! 풍류 끝엔 텁텁한 걸루다 잡가를 들어야 하신다죠?”
 
“그런 걸 다아 알구, 제법이다!”
 
“어이구, 참! 나구는 샌님만 업신여긴다구!……
  자아, 노래하께 영감님 장단치시요?”
 
“장단은 이년아, 장구가 있어야 치지?”
 
“애개개! 장구가 있으믄 영감님이 장단을 칠 줄은 아시구요?”
 
“헤헤, 그년이. 이년아 늬가 꼭 여수 같다!”
 
“내애. 난 여우 같구요, 영감님은 하마(河馬) 같구요? 해해해!”
 
“네라끼년! 허허허허…… 그년이 꼭 어디서 초라니같이 까분당개루?”
 
“초라니? 초라니가 무어예요?”
 
“초라니패라구 있더니라. 홍동지 박첨지가 탈바가지 쓴 대가리를
  내놓구서, 서루 찧구 까불구, 꼭 너치름 방정맞게 촐랑거리구,
  지랄을 허구 그러더니라…… 떼루 떼루 박첨지야,
  이런 노래를 불러가먼서……”
 
“해해해해. 어디 그 소리 또 한번 해보세요? 아이 참,
  혼자 보기 아깝네!  해해해……”
 
“허! 그년이!”
 
이렇게, 그야말로 찧고 까불고 하는 소리를, 누가 속은 모르고 밖에서
듣기만 한다면 꼬옥 손맞은 애들이 지껄이고 노는 줄 알 겝니다.
방안을 들여다보면?…… 그런다면 제네들 말따나,
동물원의 하마와 여우가 한 울안에서 재미있게 노는 양으로 보이겠지요.
 
“춘심아?”
 
“내애?”
 
“너어……”
 
“내애!”
 
“저어, 무어냐……”
 
윤직원 영감은 다리를 비비 꼬면서 말끝을 어름어름합니다.
못견디겠어서 인제 웬만큼, 너 몇 살이지? 응, 숙성하다.
너 내 말 들을늬…… 이, 이를테면 사랑의 고백을 해야만 하겠는데,
그놈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는 도로 넘어가곤 하던 것입니다.
역시 다섯 번이나 창피를 본 나머지라,
어쩔까 싶어 뒤를 내는 것도 그럴 듯한 근경입니다.
그게 젊은것들 사이라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소릴 텐데,
그 소리한마디 나오기가 어렵기란, 아마도 만고를 두고 노소없이,
또 사정과 예외를 통틀어 넣고 일반인가 봅니다.
 
“인제 구만 까불구, 어서 노래나 시작히여라.”
 
윤직원 영감은 드디어 망설이다 못해 기회를 뒤로 미뤘읍니다.
 
“내 내. 무얼 하까요? 아까 낮에 명창대회서 영감님이 연신
  조오타! 조오타! 하시던 적벽가 새타령 하까요?”
 
“하아따! 고년이 서빠닥은 짤뤄두 침은 멀리 비얕넌다더니,
  이년아 늬가 적벽가 새타령을 허머넌 나는 하눌서 빌을 따오겄다!”
 
“애개개! 아니 내 그럼 내일이라두 권번에 가서 그거 한마디만
  배워가지구, 영감님 듣는 데 할 테니깐
  정말 하눌 가서 별 따오실 테야요?”
 
“누가 인자사 배각구 말이냐? 시방 이 당장으서 말이지……”
 
“피, 아무렇게 해두 하기만 하면 고만이지, 머……”
 
“그년이 노래허라닝개루 또 잔사살을 내놓너만!”
 
“내 내햄…… 자아 합니다. 햄…… 망구강사안 유람헐 제……”
 
단가로는 맹자 견 양혜왕짜리요, 한데 망구강산의 망구는
오식(誤植)이 아닙니다.
고저가 옳게 맞을 리도 없고, 장단이 제대로 갈 리도 없는데다가,
소리 선생 앞에서 배울 때에 쓰던 그 목을 그대로, 고래고래 내시처럼
되게 지르고 앉았으니. 윤직원 영감의 취미(臭味) 아니고는 듣기에
장히 고생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음악입니다. 게다가 윤직원 영감의,
역시 장단을 유린하는, 좋다! 소리가 오히려 제격이요,
겨우 노래가 끝나니까는, 에 수고했네! 에,
이르러서는 진실로 근천의 절창이라 하겠읍니다.
 
“너, 배 안 고푸냐?”
 
윤직원 영감은 쿨럭 갈앉은 큰 배를 슬슬 만집니다.
춘심이는 그 속을 모르니까 두릿두릿합니다.
 
“아뇨. 왜요?”
 
“배 고푸다머넌 우동 한 그릇 사줄라구 그런다.”
 
“아이구머니! 영감 죽구서 무엇 맛보기 첨이라더니!”
 
“저런 년 주둥아리 좀 부아!”
 
“아니, 이를테믄 말이에요!…… 사주신다믄야 밴 불러두 달게 먹죠!”
 
“그리라. 두 그릇만 시키다가 너허구 한 그릇씩 먹자!”
 
“우동만, 요?”
 
“그러먼?”
 
“나, 탕수육 하나만……”
 
“저 배때기루 우동 한 그릇허구, 또 무엇이 더 들어가?”
 
“들어가구말구요! 없어 못 먹는답니다!”
 
“허! 그년이 생부랑당이네! 탕수육인지 그건 한 그릇에 을매씩 허냐?”
 
“아마 25전인가, 그렇죠?”
 
윤직원 영감의 말이 아니라도 계집애가 여우가 다 되어서,
 탕수육 한 접시에 40전인 줄 모르고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우동 두 그릇 탕수육 한 그릇 얼른 빨리…… 우동 두 그릇
 탕수육 한 그릇 얼른 빨리…… 삼남이는 이 소리를 마치
중이 염불하듯 외우면서 나갑니다.
사실 삼남이한테는 그걸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하루 세 끼 중에 한 끼를 잊어버리지 않음과 일반으로 중요한 일이어서,
그만큼 긴장과 노력이 필요하던 것입니다.
무슨 그림자가 지나간 것처럼, 방안이 잠깐 교교했읍니다.
이 침정의 순간이 윤직원 영감에게 선뜻 좋은 의사를 한가지 얻어내게
했읍니다. 전에 아이들한테 하듯, 단박에 왁진왁진 그러지를 말고서,
가만가만 제 눈치를 먼저 떠보아보는 것이 수다……
이런 말하자면 점진안(漸進案)입니다.
동티가 나지 않게 또 창피를 안 당하게 가만히 슬쩍 제 속을 뽑아보고,
그래 보아서 싹수가 있는 성부르면 그 담에는 바싹 다그쳐보고……
미상불 그럴 법하거니 싶어 우선 혼자 만족을 해 싱그레 웃습니다.
 
“춘심아?”
 
머리를 싸악싹 쓸어주면서 부르는 음성도 은근합니다.
 
“내애?”
 
“너, 멫 살이지?”
 
“그건 새삼스럽게 왜 물으세요?”
 
“아니, 그저 말이다!”
 
“열다섯 살이지 머, 그새 먹어서 없어졌을라구요?”
 
“응 참, 그렇지…… 퍽 숙성히여, 우리 춘심이가……”
 
“키는 커두 몸은 이렇게 가늘어요! 아이 참, 영감님은 몇 살이세요?”
 
“나?…… 글씨 원, 하두 많이 먹어서 인재넌 나이 먹은 것두
  다아 잊어뻬맀넝가부다!”
 
“애개개, 암만 나일 많이 잡수셨다구,
  잊어버리는 사람이 어디가 있어요?……
  이렇게 머리랑 수염이랑 시었으니깐 나이두 퍽 많으실 거야!”
 
춘심이는 백마꼬리같이 탐스런 수염을 쓰다듬습니다. 윤직원 영감은
다른 한손으로 춘심이의 나머지 한손을 조물조물 주무릅니다.
 
“춘심아!”
 
“내애?”
 
“너, 내가 나이 많언 게 싫으냐?”
 
“싫은 건 무엇 있나요?…… 몇 살이세요? 정말……”
 
“그렇게 알구 싶으냐?”
 
“몸 달을 건 없지만……”
 
“일러주래?”
 
“내애.”
 
“예순…… 으응…… 다섯 살이다!”
 
“아이구머니!”
 
춘심이는 입이 떡 벌어지고, 윤직원 영감은 윤직원 영감대로 또
속이 있어서, 입이 벌씸 벌어집니다.
윤직원 영감의 나이 꼬박 일흔둘인 줄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것을, 글쎄 애인한테라서 그중 일곱 살만 줄이어 예순다섯으로
대다니, 그것을 단작스럽다고 웃어버리기보다 오히려 옷깃을 바로잡고
엄숙히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일흔두 살 먹은 영감이 열다섯 살 먹은 애인 앞에서 나이를 일곱 살을
줄여 예순다섯 살로 대던 것입니다.
기생들이 손님에게다가 나이를 속이는 것은 예삽니다.
또 젊은 기집애들이 제 나이를 리베씨한테다가 줄여서 대답하는 수도
더러 있읍니다. 속을 알고보면 그야 근경이 그럴 듯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여기, 일흔두 살 먹은 허연 영감태기가 열다섯살박이
동기 계집애를 아탕발림시키느라고, 나이를 일곱 살을 야바위쳐서,
예순다섯 살로 속이던 것이랍니다.
그도, 곧이야 듣건말건, 한 이십 살 꼬아먹고 쉬흔 살쯤 댔다면
또 몰라요. 고작 일곱 살. 늙은이의 나이 예순다섯에서 일흔두 살까지
거리가 그리 육중스럽게 클까마는, 그래도 열다섯살박이 애인한테
고거나마 젊게 보이고 싶어, 그 일곱 살을 덜 불렀더랍니다,
예순다섯 살이다고. 그 우람스런 체집에 어디를 눌렀는데,
그런 간드러진 소리가 나왔을까요.
저어 공자님 말씀에
 
“소인이 한가히 지낼 것 같으면 아름답지 못한 꿍꿍이를 꾸미나니라.”
 
하신 대문이 있겠다요.
그 대문을 윤직원 영감한테 그대로 적용을 말고서 죄꼼 고쳐가지고
 
“소작인이 바쁘게 지낼 것 같으면 지주 영감은 약시약시하느니라.”
 
 이랬으면 어떨까요.
인간이 색의 기능을 타고나는 것은 생물로서 운명적 필연이요,
그러니까 결단코 그걸 나무랄 일은 못됩니다. 또 누가 나무라고
시비를 한다고 그게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해서 비판이나 간섭의 피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윤직원 영감처럼 나이 칠십여 세에, 연령의 한계를
마구 무시하는 그의 야만스러운 정력은, 부질없이 생물로서의 선천적인
운명이라 고만 처분은 안됩니다.
본시 체질을 좋게 타고났다고 주장을 하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신돈이 같은 체질을 타고났다고 하더라도, 윤직원 영감이
윤직원 영감다운 팔자를 얼러서 타고나지 못했으면
그 체질은 성명이 없고 말 것입니다.
몇백 명이나 되는 윤직원 영감의 소작인 중엔 윤직원 영감만한 체질을
타고난 사람이 몇은 없을 리가 있다구요.
그렇건만 그 사람네는 온전히 도조를 해다가 바치기에 정력이 죄다 말라
시들고, 보약 한 첩 구경도 못했기 때문에 자연의 섭리(攝理) 이하로
오히려 떨어지고 만 것이 아니겠읍니까.
 
또 가령 특별한 예외나 기적으로, 윤직원 영감네 소작인 가운데
윤직원 영감처럼 칠십이로되 능히 계집을 다룰 정력을 지탱하고 있는 자
있다 치더라도, 그가 감히 첩질과 계집질을 할 팔자며,
그럴 생심인들 하겠읍니까.
그러니 결국 그것은 늙은이한테는 생물적 필연이라는 관용도
안될 말이요, 타고난 선천이니 체질이니 하는 것도 다 여벌이고,
주장은 한갓 팔자(시체말로는 환경) 그놈이 모두 농간을 부리는
놈입니다. 소작인이 바빠 벼가 만석이 그득 쌓이기 때문에,
그의 생리와 건강과 행동과 이 모든 것이 화합되어
(혼합이 아니라 화합이 되어) 오늘날의 싱싱한 윤직원 영감을 창조한
것이니라…… 이런 해석도 그러므로 고집은 해볼 만합니다.
 
춘심이는 윤직원 영감이 예순다섯 살이란 말에, 계집애가 까부느라고
아이구! 예순다섯 살이라니, 퍽도 많이 자시기는 했네!
그러면 가만있자, 나보다 몇 살 더한고? 응, 가만 있자, 예순다섯이라,
열다섯을 빼면 응…… 쉬흔, 아이구 어찌나! 쉬흔 살이나
더 잡수셨구료! 이러고 허겁떨이를 해쌉니다.
윤직원 영감은, 제가 하는 대로 빙그레 웃으면서 보고만 있읍니다.
춘심이야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제 나이와 빗대보던 것인데,
윤직원 영감은 그게 무슨 뜻을 두기는 두었던 표적이려니 하고 혼자
느긋해하는 판입니다.
뜻은 있는데, 나이 하도 많으니까 놀라는 것이고,
그러나 뜻이 있었던 것만은 불행중 다행인즉,
옳지 그렇다면 어디 좀…… 이런 요량짱입니다.
연애는 환장이니라 (Love is Blind)란다더니 옛말이 미상불 옳아,
이다지도 야속스레 윤직원 영감 같은 노인에게까지 들어맞기를
 하는군요. 그나마 골고루 골고루……
 
“내가 나이 많언개루 싫으냐?”
 
인제는 제이단으로 들어가서, 나이 많은 게 나쁘지 않다는 변명,
혹은 나이 많아도 많지 않다는 주장을 해야 할 차롑니다.
 
“싫긴 뭐어가 싫여요? 나이 많은 이가 좋죠, 허물 없구……”
 
“그렇구말구…… 그러구 나넌 예순다섯 살이라두
   기운은 무척 시단다…… 든든허지!”
 
“참, 영감님은 늙었어두 몸집이 이렇게 크니깐,
  기운두 무척 셀 거야. 그렇죠?”
 
“호랭이라두 잡을라면 잡넌다!”
 
“하하하. 그렇거들랑 인제 동물원에 가서 호랭이허구 씨름을 한번
  해보시죠?…… 아이 참, 하마허구 호랭이허구 씨름을 붙이믄 누가
  이기꼬? 하하하, 아하하하……”
 
“허허, 그년이 또 까불구 있네!”
 
윤직원 영감은 어느결에 다시 집어문 담뱃대 빨부리로 침이 지르르
흘러내리는 것도 모르고, 흐물흐물 춘심이를 올려다봅니다.
 몸이 자꾸만 뒤틀립니다.
 
“춘심아?”
 
“내애?”
 
“너어…… 저어…… 내 말, 들을래?”
 
“무슨 말을, 요?”
 
묻기는 물으면서도 생글생글 웃는 게, 벌써 눈치는 챈 모양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오냐 인제야 옳게 되었느니라고
 일단의 자신이 생겼읍니다.
 
“내 말, 들을 티여?”
 
“아, 무슨 말이세요?”
 
윤직원 영감은 히죽 한번 더 웃고는, 슬며시 팔을 꼬느면서
 
“요녀언! 이루 와!”
 
하고 덥석 허리를 안아들입니다. 마음 터억 놓고서 그러지요,
 시방…… 아, 그랬는데 웬걸, 고년이 별안간
 
“아이 망칙해라!”
 
하고 소리를 빽 지르면서, 고만 빠져 달아나질 않는다구요. 여섯 번!
윤직원 영감은 진실로 기가 막힙니다. 여섯 번이라니,
하마 성미 급한 젊은놈이었다면 그새 목이라도 몇번 매고 늘어졌을
것입니다. 글쎄 요년은, 눈치가 으수하길래 믿은 구석으로 안심을 했던
참인데, 대체 웬일인가 싶어, 무색한 중에도 좀 건너다보려니까,
이게 또 이상합니다.
그동안에 다섯 기집애들은 울기 아니면 욕을 하면서,
영락없이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을 했는데, 요년은 보아야 그렇게 소리를
바락 지르고 미꾸리새끼처럼 빠져나가기는 했어도, 그저 저기만치
물러앉았을 따름이지, 울거나 골딱지를 냈거나 도망을 가거나
하기는커녕, 날 잡아보라는 듯이 밴들밴들 웃고 있지를 않겠읍니까.
마구 간을 녹입니다. 아무려나, 그렇다면 다시 어떻게 사알살 달래볼
 여망이 없지도 않습니다.
 
“저런 년 부았넝가! 헤헤, 그거 참!…… 이년아, 그러지 말구,
  이리 오니라, 이리 와, 응? 춘심아!”
 
“싫여요!”
 
“왜?”
 
“왠 뭘 왜!”
 
“너, 이년 내 말 안 듣기냐?”
 
“인제 보니깐 영감님이 퍽 음충맞어!”
 
“아, 저런 년! 허, 그거 참!…… 너, 그러기냐!”
 
“어때요, 머!”
 
“그러지 말구 이만치 오니라. 내, 이얘기허마.”
 
“여기서두 들려요!”
 
“그리두 이만치, 가까이 와!”
 
“피…… 또 붙잡을 양으루?……”
 
“너, 내 말 들으먼, 내가 좋은 것 사주지?”
 
“존 거, 무엇?”
 
“참, 좋은 것 사줄 티여!”
 
“글쎄, 존 게 무어냐니깐?”
 
용천뱅이가 보리밭에 숨어 앉아서 어린애들이 지나갈라치면,
구슬 줄께 이리 온, 사탕 줄께 이리 온 한답니다. 그와 근리하다 할는지
어떨는지 모르겠군요.
윤직원 영감은 미처 무얼 사주겠다는 생각도 없이,
당장 아쉰 대로 어르느라고 낸다는 게 섬뻑 그 소리가 나와졌읍니다.
그랬기 때문에 자꾸만 물어도 이내 대답을 못하던 것입니다.
 
“늬가 각구 싶다넌 것 사주마!”
 
“내가 가지구 싶다는 걸 사주세요?”
 
“오냐!”
 
“정말?”
 
“그리여!”
 
“가지뿌렁!”
 
“아니다, 참말이다!”
 
“그럼, 나 반지 사주믄?”
 
“반? 지?…… 에라끼년! 누가 그런 비싼 것 말이간디야!”
 
“피. 그게 무어 비싼가?…… 저기 본정 가믄 7원 50전이믄
  빠알간 루비 박은 거 사는데…… 18금으루 가느다랗게 맨든 거……”
 
“을매? 7원 50전?”
 
“내애.”
 
“참말이냐?”
 
“가보시믄 알 걸 뭐!”
 
“그리라, 그럼 사주마…… 사줄 티닝개루, 인제 이리 오니라!”
 
“애개개! 먼점 사주어예지, 머.”
 
“먼점 사주구? 그건 나두 싫다!”
 
“나두 싫다우!”
 
“고년이 똑 어디서 미꾸람지 새끼 같다! 에엥, 고년이……
  그러지 말구, 이년 춘심아!”
 
“내애?”
 
“그러지 말구, 이리 오니라, 응? 그럼 내가 인제 내일이구 모리구,
  진고개 데리구 가서 반지 사주께!”
 
“일 없어요!…… 시방 가서 사주시믄?”
 
“시방이사 밤으 어떻게 갈 수 있냐? 내일 낮에 가서 사주마.
  그러지말구, 이리 오니라!”
 
“싫여요!”
 
윤직원 영감은 7원 50전이면 산다는 그 반지를
 사주기는 사줄 요량입니다.
하기야 돈 7원 50전만 놓고서 생각하면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래도 명색이 동기 체껏인데, 7원 50전짜리 반지 한 개로 아탕발림을
시키다니, 도리어 헐한 셈입니다.
제 법식대로 머리를 얹히자면 2, 3백 원 5, 6백 원이 들곤 할 테니까요.
그래, 잘라먹지 않고 내일이고 모레고 사주기는 사줄 텐데,
춘심이년이 못 미더워서 그러는지 까부느라고 그러는지,
밴들밴들 말을 안 듣고는 애를 태워 줍니다. 생각하면 밉기도 하고
미운 깐으로는 볼퉁이라도 칵 쥐어질러 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괜히 함부로 잡도리를 했다가는, 단박 소갈찌가 나서 뽀르르
달아나 버리고는 다시는 안 올 테니, 그렇게 되고 보면 여섯번 만에
겨우 반성공을 한 것이 도로아미타불이 될 게 아니겠다구요.
에라, 그러면 기왕이니 내일 제 소원대로 반지를 사주고 나서……
이렇게, 할 수 없이 순연(順延)을 하기로 요량을 했읍니다.
 
“그럼, 내일 진고개 데리구 가서 반지 사주께,
  그 담버텀은 내 말 잘 들어야 헌다?”
 
“내애, 듣구말구요!”
 
아까부터 이내, 죄꼼도 부끄러워하는 내색이라고는 없고
그저 처억척입니다. 사실 맨처음에 윤직원 영감이 쓸어안으려고
했을 때도 소리나 지르고 빠져나가기나 하고 했지,
 귀밑때긴들 붉히질 않았으니까요.
 
“꼬옥 그러기다?”
 
“염려 마세요!”
 
“오널치름 까불구, 말 안 들으먼 반지 사준 것 도로 뺏넌다?”
 
“뺏기 전에 얼른 뽑아서 바치죠!”
 
“어디 두구 보자. 그럼 내일 즘심 먹구서 올라오니라.
   같이 가서 사주께.”
 
“더 일찍 와두 좋습니다!”
 
드디어 흥정은 다 되었읍니다. 마침맞게 마당에서 청요리 궤짝이
 딸그락거리더니, 삼남이가 처억
 
“우동 두 그릇 탕수육 한 그릇, 어서 빨리 시켜 왔어라우.”
 
하고 복명을 합니다.
춘심이는 대그르르 웃고, 윤직원 영감은 끙! 저 잡것 좀 부아!
하면서 혀를 찹니다.
연애를 하면 밥이 쉬 삭는다구요. 윤직원 영감은 그런데,
저녁밥을 설치기까지 한 판이라 속이 다뿍 허출해서 우동 한 그릇을
탕수육으로 반찬삼아 걸게 먹었읍니다.
이렇게 성사가 되고 마음이 느긋할 줄을 알았더면, 기왕이니 따끈하게
배갈을 한 병 데워오라고 할 것을…… 하는 후회도 없지 않았읍니다.
춘심이는 또 춘심이대로 반지를 끼고 권번이며 제 동무들한테며
자랑을 할일이 좋아서, 연신 쌔왈대왈, 우동이야 탕수육이야 볼이
미어지게 쓸어넣었읍니다.
 
“너, 그렇지만 춘심아?……”
 
윤직원 영감은 우동 한 그릇을 물린 뒤에, 트림을 끄르르,
새끼손 손톱으로 잇샅을 우벼서 밀창문에다가 토옥,
담뱃대를 땅따앙 치면서 하는 소립니다.
 
“……늬집에 가서 이런 이얘기허머넌 못쓴다! 응?”
 
“무슨 얘기요?”
 
“내가 반지 사주구서 말이다, 저어 거시기, 응? 그 말 말이여?”
 
“내애 내…… 않습니다!”
 
“허머넌 못써!”
 
“글쎄 않는대두 그리세요!”
 
“나, 욕 읃어먹지. 너, 매 읃어맞지. 그리서사 쓰겄냐?……
  그러닝개루 암말두 허지 말어, 응?”
 
“염려 마세요, 글쎄…… 저렇게 커다란 영감님이 겁은 무척 내시네!”
 
“늬가 이년아, 주둥이가 하두 방정맞이닝개루 맴이 안뇐다!”
 
윤직원 영감은 슬며시 뒤가 나던 것입니다.
호사에 마가 붙기 쉬운 법인걸, 만약 제 부모가 알고 보면
약간 7원 50전짜리 반지 한 개 사준 걸로는셈도 안 닿고,
그것들이 마구 언덕이야 비비려 덤빌 테니, 그 성화가 어디며,
필경 돈 백 원이라도 부서지고 말 테니까요.
춘심이는 그런데, 우선 반지 한 개 얻어가질 일이 좋아,
온갖 정신이 거기만 쏠려서, 제 부모한테 발설을 하지 말라는 신칙도
그저 건성으로 대답을 하다가, 윤직원 영감이 뒤를 내는 눈치니까는,
되레 제가 지천을 해준 것이고, 그런 것을 윤직원 영감은 지천이 되었건
코묻은 밥이 되었건, 그런 체모는 잃은 지 오래고,
애인의 맹세를 믿고서 저으기 안심을 했읍니다. 자고로
노소없이 사랑하는 이의 말은 무엇이고 곧이가 들린다구요.
 
                                                         태평천하 이어서     -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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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하 (太平天下) 하 - 채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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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同志社,[동지사] 1948.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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