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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천하 (太平天下) " - 상 - - 채만식 -
1. 尹直員[윤직원] 영감 歸宅之圖[귀택지도]
추석을 지나 이윽고 짙어가는 가을해가 저물기 쉬운 어느날 석양.
저 계동(桂洞)의 이름난 장자(富者[부자]) 윤직원(尹直員) 영감이
마침 어디 출입을 했다가 방금 인력거를 처억 잡숫고 돌아와 마악 댁의
대문 앞에서 내리는 참입니다.
간밤에 꿈을 잘못 꾸었던지, 오늘 아침에 마누라하고 다툼질을 하고
나왔던지, 아뭏든 엔간히 일수 좋지 못한 인력거꾼입니다.
여느 평탄한 길로 끌고오기도 무던히 힘이 들었는데 골목쟁이로
들어서서는 빗밋이 경사가 진 20여 칸을 끌어올리기야,
엄살이 아니라 정말 혀가 나올 뻔했읍니다.
28관, 하고도 6백 몸메!……
윤직원 영감의 이 체중은, 그저께 춘심이년을 데리고 진고개로
산보를 갔다가 경성우편국 바로 뒷문 맞은편, 아따 무어라더냐
그 양약국 앞에 놓아 둔 앉은뱅이저울에 올라서본 결과,
춘심이년이 발견을 했던 것입니다.
이 28관 6백 몸메를, 그런데, 좁쌀계급인 인력거꾼은 그래도
직업적 단련이란 위대한 것이어서, 젖먹던 힘까지 아끼잖고 겨우겨우
끌어올려 마침내 남대문보다 조금만 작은 솟을대문 앞에
채장을 내려놓곤, 무릎에 들였던 담요를 걷기까지에 성공을 했읍니다.
윤직원 영감은 옹색한 좌판에서 가까스로 뒤를 쳐들고,
자칫하면 넘어 박힐 듯싶게 휘뚝휘뚝하는 인력거에서 내려오자니
여간만 옹색하고 조심이 되는 게 아닙니다.
“야, 이 사람아……!”
윤직원 영감은 혼자서 내리다 못해 필경 인력거꾼더러 걱정을 합니다.
“……좀 부축을 하여 줄 것이지.
그냥 그러구 뻐언하니 섰어야 옳담말잉가?”
실상인즉 뻔히 섰던 것이 아니라, 가쁜 숨을 돌리면서 땀을 씻고 있었던
것이나, 인력거꾼은 책망을 듣고 보니 미상불 일이 좀 죄송하게 되어,
그래 얼핏 팔을 붙들어 부축을 해 드립니다.
내려선 것을 보니, 진실로 거판진 체집입니다.
허리를 안아본다면, 아마 모르면 몰라도 한아름하고도 반은
실히 될까 봅니다. 그런데다가 키도 알맞게 다섯 자 아홉 치는
넉넉합니다. 얼핏 알아듣기 쉽게 빗대면, 지금 그가 타고 온 인력거가
장난감 같고, 그 큰 대문간이 들어서기도 전에 사뭇 그들먹합니다.
얼굴도 좋습니다.
거금 30여 년 전에, 몇해를 두고 부안(扶安)ㆍ변산(邊山)을 드나들면서
많이 먹은 용(茸)이며 저혈(猪血)ㆍ장혈(獐血)이며, 또 요새도 장복을
하는 인삼 등속의 약효로 해서 얼굴은 불콰하니 동안(童顔)이요,
게다가 많지도 적지도 않게 꼬옥 알맞은 수염은 눈같이 희어,
과시 홍안백발의 좋은 풍신입니다.
초리가 길게 째져 올라간 봉의 눈, 준수하니 복이 들어보이는 코,
뿌리가 추욱 처진 귀와 큼직한 입모,
다아 수부귀다남자(壽富貴多男子)의 상입니다.
나이?…… 올해 일흔두 살입니다. 그러나 시삐 여기진 마시오.
심장 비대증으로 천식(喘息)기가 좀 있어망정이지, 정정한 품이
서른 살 먹은 장정 여대친답니다. 무얼 가지고 겨루든지 말이지요.
그 차림새가 또한 혼란스럽습니다. 옷은 안팎으로 윤이 지르르 흐르는
모시 진솔 것이요, 머리에는 탕건에 받쳐 죽영(竹纓) 달린
통영갓(統營笠[통영립])이 날아갈 듯 올라앉았읍니다.
발에는 크막하니 솜을 한 근씩은 두었음직한 흰 버선에,
운두 새까만 마른 신을 조그맣게 신고, 바른손에는 은으로 개대가리를
만들어 붙인 화류 개화장이요, 왼손에는 서른네살박이 묵직한
합죽선입니다.
이 풍신이야말로 아까울사, 옛날 세상이었더면 일도의 방백(一道方伯)
일시 분명합니다. 그런 것을 간혹 입이 비뚤어진 친구는 광대로 인식
착오를 일으키고, 동경ㆍ대판의 사탕장수들은 캬라멜 대장 감으로
침을 삼키니 통탄할 일입니다.
인력거에서 내려선 윤직원 영감은, 저절로 떠억 벌어지는 두루마기
앞섶을 여미려고 하다가 도로 걷어 젖히고서, 간드러지게 허리띠에 가
매달린 새파란 염낭끈을 풉니다.
“인력거 쌕이(삯이) 멫푼이당가?”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당자 역시 전라도 태생이기는 하지만,
그 전라도 말이라는게 좀 경망스럽습니다.
“그저 처분해 줍사요!”
인력거꾼은 담요로 팔짱 낀 허리를 굽신합니다. 좀 점잖다는 손님한테는
항투로 쓰는 말이지만, 이 풍신 좋은 어른께는 진심으로 하는 소립니다.
후히 생각해 달란 뜻이지요.
“으응! 그리여잉? 그럼, 그냥 가소!”
윤직원 영감은, 인력거꾼을 짯짯이 바라다보다가 고개를 돌리더니,
풀었던 염낭끈을 도로 비끄러맵니다.
인력거꾼은 어쩐 영문인지를 몰라, 두릿두릿하다가 혹시 외상인가 하고
뒤통수를 긁적긁적하면서……
“그럼, 내일 오랍쇼니까?”
“내일? 내일 무엇허러 올랑가?”
윤직원 영감은 지금 심정이 약간 좋지 못한 일이 있는데,
가뜩이나 긴찮이 잔말을 씹힌대서 저으기 안색이 변합니다.
그러나 이편 인력거꾼으로 당하고 보면, 무엇하러 오다니, 외상 준
인력거삯 받으러 오지요라는 것이지만, 어디 무엄스럽게 그런 말을
똑바로 대고 하는 수야 있나요. 그러니 말은 바른 대로 하지 못하고,
그래 자못 난처한 판인데, 남의 그런 속도 몰라주고, 윤직원 영감은
인제는 내 할 말 다아 했다는 듯이 천천히 돌아서 버리자고 합니다.
인력거꾼은, 이러다가는 여느때도 아니요, 허파가 터질 뻔한
오늘 벌이가, 눈 멀뚱멀뚱 뜨고 그만 허사가 되지 싶어,
대체 이 어른이 어째서 이러는지는 모르겠어도, 그건 어찌 되었든지간에
좌우간 이렇게 병신스럽게 우물쭈물하고만 있을 일이 아니라고
크게 과단을 내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저어, 삯 말씀이올습니다. 헤……”
크게 과단을 낸다는 게 결국은 크게 조심을 하는 것뿐입니다.
“싹?”
“네에!”
“아니 여보소, 이 사람……”
윤직원 영감은 더러 역정을 내어, 하마 삿대질이라도 할 듯이
한 걸음 나섭니다.
“……자네가 아까 날더러, 처분대루 허라구 허잖있넝가?”
“네에!”
“그렇지?…… 그런디 거,
처분대루 허람 말은 맘대루 허람 말이 아닝가?”
인력거꾼은 비로소 속을 알았읍니다.
알고 보니 참 기가 막힙니다. 농도 할 사람이 따로 있지요.
웬만하면, 허허! 하고 한바탕 웃어젖힐 노릇이겠지만,
점잖은 어른 앞에서 그럴 수는 없고 그래 히죽이 웃기만 합니다.
“……그리서 나넌 그렇기 처분대루, 응?…… 맘대루 말이네.
맘대루 허라구 허길래, 아 인력거삯 안 주어도 갱기찮언 종 알구서,
그냥 가라구 히였지!”
인력거꾼은 이 어른이 끝끝내 농을 하느라고 이러는가 했지만, 윤직원
영감의 안색이며 말씨며 조금도 그런 내색이 보이지 않습니다.
“……거참!…… 나는 벨 신통헌 인력거꾼도 다아 있다구,
퍽 얌전허게 부았지! 늙은 사람이 욕본다구, 공으루 인력거 태다 주구
허넝 게 쟁히 기특허다구. 이 사람아, 사내대장부가 그렇기 그짓말을
식은 죽 먹듯 헌담 말잉가? 일구이언은 이부지자(一口二言二父之子)
라네. 암만히여두 자네 어매(어머니)가 행실이 좀 궂었덩개비네!”
인력거꾼쯤이니 일구이언은 이부지자라는 공자님식(孔子式[공자식])이
욕이야 알아듣지 못했겠지만, '자네 어매가 행실이 궂었덩개비네'
하는 데는 슬며시 비위가 상하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실상 그렇지 않아도 인력거삯을 주지 않으려고 농인지 진상인지는
모르겠으되, 쓸데없는 승강을 하려 드는게 심정이 좋지 않은 참인데,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이건 한다는 소리가 거짓말을 한다는 둥,
또 죽은 부모를 편삿놈이 널(棺[관])머리 들먹거리듯 들먹거리는 데야
누군들 좋아할 이치가 있다구요.
사실 웬만한 내기가 인력거를 타고 와설랑, 납작한 초가집 앞에서
그 따위 수작을 했다가는 인력거꾼한테 되잡혀 가지곤 뺨따구니나
한대 넙죽하니 얻어맞기가 십상이지요.
“점잖은 어른께서 괜히 쇤네 같은 걸 데리구 그리십니다!……
어서 돈장이나 주어 보냅사요! 헤……”
인력거꾼은 상하는 심정을 눅이고 종시 공순합니다. 그러나 그 돈장이란
말이 윤직원 영감한테는 저 히틀러라든지 하는 덕국 파락호(破落戶)의
폭탄선언이라는 것만큼이나 놀라운 말입니다.
“머어? 돈장?…… 돈장이 무어당가? 대체……”
“일환 한 장 말씀입죠! 헤……”
남은 기가 막혀서 하는 말을, 속없는 인력거꾼은 고지식하게
언해(諺解)를 달고 있읍니다.
“헤헤, 나 참, 세상으 났다가 벨 일 다아 보겄네!…… 아니 글씨,
안받어두 졸 드키 처분대루 허라던 사람이, 인제넌 마구 그냥 일 원을
달래여? 참 기가 맥히서 죽겠네…… 그만두소. 용천배기 콧구녕으서
마널씨를 뽑아먹구 말지,
내가 칙살시럽게 인력거 공짜루 타겄넝가!…… 을매(얼마) 받을랑가?
바른 대루 말허소!"
인력거꾼은 괜히 돈 몇십전 더 얻어먹으려다가 짜장 얻어먹지도 못하고
다른 데 벌이까지 놓치지 싶어, 할 수 없이 50전을 불렀읍니다.
그러나, 윤직원 영감은 여전합니다.
“아니, 이 사람이 시방 나허구 실갱이(승강이)를 허자구 이러넝가?
권연시리(괜시리) 자꾸 쓸디읎넌 소리를 허구 있어!……
아 이 사람아, 돈 50전이 뉘 애기 이름인 종 아넝가?”
“많이 여쭙잖읍니다. 부민관서 예꺼정 모시구 왔는뎁쇼!”
“그러닝개 말이네. 고까짓것 엎어지먼 코 달 년의 디를 태다주구서
50전씩이나 달라구 허닝개 말이여!”
“과하게 여쭙잖었읍니다. 그리구 점잖은 어른께서 막걸리값이나
나우주서야 허잖겠사와요?”
윤직원 영감은 못 들은 체하고, 모로 비스듬히 돌아서서, 아까 풀렀다가
도로 비끄러맨 염낭끈을 다시 풀더니, 이윽고 십전박이 두푼을
꺼내가지고, 그것을 손톱으로 싸악싹 갓을 긁어봅니다.
노상 사람이란 실수를 하지 말란 법이 없는 법이라, 좀 일은 되더라도
이렇게 다시 한번 손질을 해보면, 가사 10전짜린 줄 알고 50전짜리를
잘못 꺼냈더라도, 톱날이 있고 없는 것으로, 아주 적실하게 분별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니까요.
“옜네…… 꼭 15전만 줄 것이지만, 자네가 하두 그리싸닝개
20전을 주넝것이니, 5전을랑 자네 말대루 막걸리를 받어먹든지,
탁배기를 사먹든지 맘대루 허소. 나넌 모르네!”
“건 너무 적습니다!”
“즉다니? 돈 20전이 즉담 말인가? 이 사람아 촌으 가먼 땅이
열 평이네, 땅이 열 평이여!”
인력거꾼은, 그렇거들랑 그거 20전 가지고 촌으로 가서 땅 열 평
사놓고서 3대 4대 빌어먹으라고 쏘아 던지고서 홱 돌아서고 싶은 것을,
그러나 겨우 참습니다.
“10전 한푼만 더 줍사요.
그리구 체두 퍽 무거우시구 허셨으니깐, 헤……”
“아니, 이 사람이 인재넌 벨 트집을 다아 잡을라구 허네! 이 사람아,
그럴 티먼 나넌 이 큰 몸집으루 자네 그 쬐외깐헌 인력거 타니라구
더 욕을 부았다네.
자동차나 기차나, 몸 무겁다구 돈 더 받넌 디 부았넝가?”
“헤헤, 그렇지만……”
“어쩔 티여? 이것 받어갈랑가? 안 받어갈랑가? 안 받어간다먼
나 이놈으루 괴기 사다가 야긋야긋 다져서
저녁 반찬이나 히여 먹을라네.”
“거저 10전 한푼만 더 쓰시면 허실걸, 점잖어신 터에 그리십니다!"
“즘잔? 이 사람아 그렇기 즘잖을라다가넌 논 팔어 먹겄네!…… 에잉
그거 참!
그런 인력거꾼 두 번만 만났다가넌 마구 감수(減壽)허겄다!……”
이 말에 인력거꾼이 바른 대로 대답을 하자면,
그런 손님 두 번만 만났다가는 기절하겠다고 하겠지요.
윤직원 영감은 맸던 염낭끈을 또 도로 풀더니, 5전박이 한푼을
더 꺼냅니다. 이 5전은 무단스레 더 주는 것이거니 생각하면 다시금
역정이 나고 돈이 아까왔지만, 인력거꾼이 부둥부둥 떼를 쓰는 데는
배겨낼 수가 없다고, 진실로 단념을 한 것입니다.
“……거참!…… 옜네! 도통 25전이네. 이제넌 자네가 내 허리띠에다가
목을 매달어두, 쇠천 한푼 막무가낼세!”
인려거꾼은 윤직원 영감이 말도 다 하기 전에 딸그랑하는 대소
백통화 서푼을 그 육중한 손바닥에다가 받아 쥐고는, 고맙다고 하는지
무어라고 하는지 분명찮게 입안의 소리로 두런거리면서,
놓았던 인력거 채장을 집어들고 씽하니 가버립니다.
“에잉! 권연시리 그년의 디를 갔다가 그놈의 인력거꾼을 잘못 만나서
실갱이를 허구, 애맨 돈 5전을 더 쓰구 히였구나!
고년 춘심이년이 방정맞게 와서넌 명창대횐(名唱大會)지 급살인지
헌다구, 쏘사악쏘삭허기때미 그년의 디를 갔다가……”
윤직원 영감은 역정 끝에 춘심이더러 귀먹은 욕을 하던 것이나,
그렇지만 그건 애먼 탓입니다. 왜, 부민관의 명창대회를 무슨 춘심이가
가자고 해서 갔나요? 춘심이는 그저 부민관에서 명창대회를 하는데,
제 형 운심이도 연주에 나간다고 자랑삼아 재잘거리는 것을,
윤직원 영감 자기가 깜짝 반겨선, 되레 춘심이더러 가자가자 해서
꾀어가지고 갔으면서……
사실 말이지, 춘심이가 그런 귀띔을 안 해주었으면 윤직원 영감은 오늘
명창대회는 영영 못 가고 말았을 것이고, 그래서 다음날이라도 그걸
알았으면 냅다 발을 굴렀을 것입니다.
2. 無賃乘車 奇術[무임승차 기술]
윤직원 영감은 명창대회를 무척 좋아합니다.
아마 이 세상에 돈만 빼놓고는 둘째 가게 그 명창대회란 것을 좋아할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본이 전라도 태생인 관계도 있겠지만,
그는 워낙 남도 소리며 음률 같은 것을 이만저만찮게 좋아합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깐으로는, 일년 삼백예순날을 밤낮으로라도 기생이며
광대며를 사랑으로 불러다가 듣고 놀고 하고는 싶지만, 그렇게 하자면
일왈 돈이 여간만 많이 드나요!
아마 일 년을 붙박이로 그렇게 하기로 하고, 어느 권번이나
조선음악연구회 같은 데 교섭을 해서 특별할인을 한다더라도 하루에
소불하 10원쯤은 쳐 주어야 할 테니, 하루에 십 원이면 한 달이면
삼백 원이라, 그리고 일 년이면 3천…… 아유! 그건 윤직원 영감으로,
앉아서는 도무지 생각할 수도 없게시리 큰 돈입니다.
천문학적 숫자란 건 아마 이런 경우에 써야 할 문잘걸요.
한즉, 도저히 그건 아주 생심도 못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거야말로 사람 살 곳은 골골마다 있다든지, 윤직원 영감의
그다지도 뜻 두고 이루지 못하는 대원을
저으기나마 풀어주는 게 있으니, 라디오와 명창대회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완(李浣)이 대장으로 치면 군산(群山)을 죄꼼은 깎고, 계수를 몇 가지
벤 만큼이나 하다 할는지요. 윤직원 영감은 그래서 바로 머리맡
연상(硯床) 위에 삼구(三球)짜리 라디오 한 세트를 매두고,
그걸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방송국의 마이크를 통해 오는 남도소리며,
음률 가사 같은 것을 듣고는 합니다.
장죽을 기다랗게 물고는 보료 위에 편안히 드러누워 좋다! 소리를 연해
쳐 가면서 즐거운 그 음악소리를 듣노라면, 고년들의 이쁘게 생긴
얼굴이나 광대들의 거동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 유감은 유감이지만,
그래도 좋기야 참좋습니다.
라디오를 프로그램대로 음악을 조종하는 소임은 윤직원 영감의 차인 겸
비서 겸 무엇 겸 직함이 수두룩한 대복(大福)이가 맡아 합니다.
혹시 남도소리나 음률 가사 같은 것이 없는 날일라치면 대복이가 생으로
벼락을 맞아야 합니다.
“게, 밥은 남같이 하루에 시 그릇썩 먹으먼서, 그래, 어떻기 사람이
멍청허먼, 날마당 나오던 소리를 느닷읎이 못 나오게 헌담 말잉가?”
이러한 무정지책에 대복이는 유구무언, 머리만 긁적긁적합니다.
하기야 대복이도 처음 몇번은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그렇게
정했으니까, 집에 앉아서야 라디오를 아무리 주물러도 남도소리는
나오지 않는 법이라고 변명을했더랍니다.
한다치면, 윤직원 영감은 더럭……
“법이라께? 그런 개× 같은 놈의 법이 어딨당가?……
권연시리 시방 멍청허다구 그러닝개, 그 말은 그리두 고까워서
남한티다가 둘러씨니라구?……
글씨 어떤 놈의 소리가 금방 엊저녁까지 들리던 소리가 오널사말구
시급스럽게 안 들리넝고? 지상(妓生[기생])이랑 재인광대가 다아
급살맞어 죽었다덩가?”
이렇게 반찬 먹은 고양이 잡도리하듯 지청구를 하니, 실로 죽어나는 건
대복입니다. 방송국에서 한동안, 꼭같은 글씨로, 남도소리를 매일 빼지
말고 방송해 달라는 투서를 수십 장 받은 일이 있읍니다.
그게 뉘 짓인고 하니, 대복이가 윤직원네 영감한테 지청구를 먹고는
홧김에 써보고, 핀잔을 듣고는 폭폭하여 써보내고 하던,
그야말로 눈물의 투서였던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의 불평은 그러나 비단 그뿐이 아닙니다.
소리를 기왕 할테거든 두어 시간이고 서너 시간이고 붙박이로 하지를
않고서, 고까짓 것 30분,
눈 깜짝할 새 감질만 내다가 그만둔다고, 그래서 또 성홥니다.
물론 투정이요, 실상인즉 혼자 속으로는 그놈의 것 돈 17원 들여서
사놓고 한 달에 1원씩 내면서 그 재미를 다 보니,
미상불 헐키는 헐타고 은근히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또 막상 청취료 1원야라를 현금으로 내주는 마당에 당해서는
라디오에 대한 불평 겸 돈 1원이 못내 아까와서
“그까짓 놈의 것이 무엇이라구 다달이 돈을 1원썩이나 또박또박
받어 간다냐?” 그럴 티거든 새달버텀은 그만두래라!”
이렇게 끙짜를 하기를 마지않습니다.
라디오는 그리하여 아뭏든 그러하고, 그 다음이 명창대횝니다.
기생이며 광대가 가지각색이요, 그래서 노래도 여러가지려니와 직접
눈으로 보면서 오래오래 들을 수가 있기 때문에, 감질나는 라디오보다는
그것이 늘 있는 게 아니어서 흠은 흠이지만, 그때그때만은 퍽
생광스럽습니다. 딱이 윤직원 영감의 소원 같아서는,
그런즉슨 명창대회를 일년 두고 삼백예순날 날마다 했으면
좋을 판입니다. 이렇듯 천하에 달가운 명창대횐지라,
서울 장안에서 언제고 명창대회를 하게 되면 윤직원 영감은 세상없어도
참례를 합니다. 만일 어느 명창 대회에 윤직원 영감이 참례를 못한
적이 있다면 그것은 대복이의 태만입니다.
대복이는 멀리 타관에를 심부름 가고 있지 않는 이상
매일같이 골목 밖 이발소에 나가서 라디오의 프로그램과 명창대회나
조선음악연구회 주최의 공연이 있는지를 신문에서 찾아내야 합니다.
대복이가 만일 실수를 해서 윤직원 연감한테 그것을 알으켜 드리지 못한
결과 혹시 한번이라도, 그 끔직한 굿(구경)에 참례를 못하고서
궐을 했다는 사실을 윤직원 영감이 추후라도 알게 되는 날이면,
그때에는 대복이가 집안 가용을 지출하는 데 있어서
(가령 두 모만 사야 할 두부를 세 모를 사기 때문에) 돈을 5전 가량
요외로 더 지출했을 때만큼이나 벼락같은 꾸중을 듣게 됩니다.
아뭏든 그만큼이나 좋아하는 명창대회요, 그래 오늘만 하더라도 낮에는
한시부터 시작을 한다는 걸 윤직원 영감이 춘심이를 앞세우고 댁에서
나선 것이 열한시반이 채 못되어섭니다.
“글쎄 이렇게 일찍 가서 무얼 해요?
구경터에 일찍 가서 우두커니 앉었는것도 꼴불견인데……”
앞서 가던 춘심이가 일껏 잘 가다가 말고 히뜩 돌아서더니,
한참 까부느라고 이렇게 쫑알거리던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허연 수염을 한번 쓰다듬으면서 헤벌쭉 웃습니다.
“저년이 또 초라니치름 까분다!…… 그러지 말구, 어서 가자, 가아!”
윤직원 영감이 살살 달래니까 춘심이는 다시 돌아서서 아장아장
걸어갑니다.
아이가 얼굴이 남방 태생답잖게 갸로옴한 게, 또 토끼화상이 아니라도
두눈은 또렷, 코는 오똑, 입술은 오뭇, 다 이렇게 생겨 놔서 대단히
야무집니다. 그렇게 야무지게 생긴 제값을 하느라고 아이가 착실히
좀 까불구요.
나이가 아직 열다섯 살이라, 얼굴이 피지는 않았어도 보고 듣는 게 그런
탓으로 몸매하며 제법 계집애 꼴이 박였읍니다.
머리를 늘쩡늘쩡 땋아내려, 자주댕기를 들인 머리채가
방둥이에서 유난히 치렁치렁합니다. 그러나 이 머리는 알고 보면 중동을
몽땅 자른 단발머리에다가 다래를 들인 거랍니다.
앞머리는 좀 자르기도 하고 지져서 오그려붙이기도 하고 군데군데 핀을
꽂았읍니다.
빨아서 분홍물을 들인 흘게 빠진 생수 깨끼적삼에 얼쑹덜쑹한 주릿대
치마를 휘걷어 넥타이로 질끈 동인 게 또한 제격입니다.
살결보다는 버짐이 더 많이 피고, 배내털이 숭얼숭얼해서
분을 발랐다는게 고루 먹지를 않고, 어루러기가 진 것 같습니다.
이만하면 어디다가 내놓아도 대광교 천변가로 숱해 많이 지나다니는
그런 모습의 동기(童妓)지, 갈데없읍니다.(그러나 그렇다고 깔보지는
마십시오. 그래 보여도 그애가 요새 그 연애를 한답니다,)
춘심이는 윤직원 영감이 달래는 대로 한동안 앞을 서서 찰래찰래 가고
있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또 히뜩 돌려다보면서
“영감님!”
하고 뱅글뱅글 웃습니다. 이 애는 잠시라도 까불지 못하면 정말 좀이
쑤십니다.
“무어라구 또 촐랑거리구 싶어서 그러냐?”
“이렇게 일찍 가는 대신 자동차나 타고 갑시다, 네?”
“자동차?”
“내애.”
“그리라, 젠장맞일……”
춘심이는 윤직원 영감이 섬뻑 그러라고 하는 게 되레 못 미더워서
짯짯이 얼굴을 올려다봅니다. 아닌게아니라, 히물히물 웃는 게
장히 미심쩍습니다.
“정말 타구 가세요?”
“그리어! 이년아.”
“그럼, 전화 빌려서, 자동차 불러예죠?”
“일부러 안 불러두, 죄꼼만 더 가먼, 저기 있단다.”
“어디가 있어요! 안국동 네거리까지 가야 있는걸.”
“제까지 안 가두 있어!”
“없어요!”
“있다!……뻔쩍뻔쩍허게 은칠헌 놈, 크다란 자동차……”
“어이구 참! 누가 빠쓰 말인가, 뭐……”
춘심이는 고만 속은 것이 분해서 뾰롱해가지고 쫑알댑니다.
“빠쓸 가지구, 아주 자동차래요!”
“자동차라두 그놈이 여니 자동차보담 더 비싸다, 이년아!”
“5전씩인데 비싸요!”
“타는 차값 말이간디? 그놈 사올 때 값 말이지……”
윤직원 영감은 재동 네거리 뻐스 정류장에서 춘심이와 같이 뻐스를
기다립니다. 때가 아침저녁의 러시아워도 아닌데 웬일인지 만원 된
차가 두 대나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그러더니 세 대째만에,
그것도 여간 붐비지 않는걸, 들이 떼밀고 올라타니까 뻐스걸이 마구
울상을 합니다.
윤직원 영감은 자기 혼자서 탔으면 꼬옥 알맞을 뻐스 한 채를 만원
이상의 승객과 같이 탔으니 남이야 어찌 되었던간에 윤직원 영감 당자도
무척 고생입니다. 그럴 뿐 아니라, 갓을 뻐스 천장에다가 치받치지
않으려고 허리를 꾸부정하고 섰자니, 공간을 더 많이 차지해야 됩니다.
그 대신 춘심이는 윤직원 영감의 겨드랑 밑에 가 박혀 있어 만약
두루마기 자락으로 가리기만 하면 차삯은 안 물어도 될 성싶습니다.
겨우겨우 총독부 앞 종점에 당도하여 다들 내리는 데 섞여 윤직원
영감도 춘심이로 더불어 내리는데, 뻐스에 탔던 사람들은 기념이라도
하고 싶은 듯이 제가끔 한번씩 치어다보고 갑니다.
윤직원 영감은 뻐스에서 내려서 대견하게 숨을 돌린 뒤에,
비로소 염낭끈을 풀어 천천히 돈을 꺼낸다는 것이 10원짜리 지전입니다.
“그걸 어떡허라구 내놓으세요? 거스를 돈 없어요!”
여차장은 고만 소갈머리가 나서 보풀떨이를 합니다.
“그럼 어떡허넝가? 이것두 돈은 돈인디……”
“누가 돈 아니래요? 잔돈 내세요!”
“잔돈 읎어!”
“지끔 주머니 속에서 잘랑잘랑 소리가 나든데 그리세요? 괜히……”
“으응, 이거?”
윤직원 영감은 염낭을 흔들어 그 잘랑잘랑 소리를 들려주면서
“……이건 못쓰넌 돈이여, 사전이여……
정, 그렇다먼 못쓰넌 돈이라두 그냥 받을 티여?”
하고 방금 끈을 풀려고 하는 것을, 여차장은 오만상을 찡그리고는
“몰라요! 속상해 죽겠네!…… 어디꺼정 가세요?”
하면서 참으로 구박이 자심합니다.
“정거장.”
“그럼, 전차에 가서 바꾸세요!”
“그러까?”
잔돈을 두어두고도 10원짜리를 낸 것이며, 부청 앞에서 내릴 테면서
정거장까지 간다고 한 것이며가 모두 요량이 있어서 한 짓입니다.
무사히 공차를 탄 윤직원 영감은 총독부 앞에서부터는 춘심이를
앞세우고 부민관까지 천천히 걸어서 갑니다.
“좁은 뽀수 타니라구 고생헌 값을 이렇기 도루 찾는 법이다.”
그는 이윽고 공차 타는 기술을 춘심이한테도 깨우쳐 주던 것인데,
그런 걸 보면 아마 청기와장수는 아닌 모양입니다.
3. 西洋國 名唱大會[서양국 명창대회]
중로에서 그렇듯 많이 충그리고 길이 터지고 했어도,
회장에 당도했을 때에는 부민관 꼭대기의 큰 시계가 열두시밖에는
더 되지 않았읍니다.
입장권을 사기 전에 윤직원 영감과 춘심이 사이에는 또 한바탕
상지가 생겼읍니다.
윤직원 영감은 춘심이더러, 네 형이 출연을 한다면서 무대 뒷문으로
제 형을 찾아 들어가 공짜로 구경을 하라고 시키던 것입니다.
그러나 춘심이는, 암만 그렇더라도 저도 윤직원 영감을 따라왔고,
그래서 버젓한 손님이니까
버젓하게 표를 사가지고 들어가야 말이지,
누가 치사하게 공구경을 하느냐 고 우깁니다.
그래 한참이나 서로 고집을 세우고 양보를 않던 끝에,
윤직원 영감은 슬며시 10전박이 두 푼을 꺼내서 춘심이 손에 쥐어주면서
살살 달랩니다.
“옜다. 이놈으루 군밤이나 사먹구, 귀경(구경)은 공으루 들여 달라구
히여, 응?…… 그렇게 허먼 너두 좋구 나두 좋구 허지?”
한여름에도 아이들한테 돈을 주려면 군밤값이라는 게 윤직원 영감의
보캐블러리입니다.
춘심이는 군밤값 20전에 할 수 없이 매수가 되어 마침내 타협을 하고,
먼저 무대 뒤로 해서 들어갔읍니다.
윤직원 영감은 넌지시 50전을 내고 하등표를 달라고 해서 홍권(紅券)을
한장 샀읍니다. 그래가지고는 아래층 맨 앞자리의 맨 앞줄에 가서 처억
앉으니까, 미상불 아무도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갈데없이 첫쨉니다.
조금 앉았노라니까, 아마 윤직원 영감의 다음은
가게 날쌘 사람이었든지, 한 사십이나 되어 보이는 양복신사 하나가
비로소 들어오더니, 역시 맨 앞줄을 골라 앉습니다.
그 양복신사는 웬일인지 처음 들어오면서부터 윤직원 영감을 연해
흥미있게 보고 또 보고 해쌓더니, 차차로 호기심이 더하는 모양,
필경은 자리를 옮아 옆으로 바싹 와서 앉습니다. 그러고는 잠시 앉아서
윤직원 영감에게 말없는 경의를 표한다고 할까,
아뭏든 몹시 이야기를 붙여보고 싶어하는 눈치더니 마침내
“이번에 인기가 굉장헌 모양이지요?”
하고 은근공손히 말을 청합니다. 그러나 윤직원 영감으로 보면 인기란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거니와, 또 낯모를 사람과 쓰잘데없이
이야기를 할 맛도 또한 없는 것이라 거저
“예에!”
하고 건성으로 대답을 할 뿐입니다.
양복신사씨는 좀 싱거웠던지, 잠깐 덤덤하더니 한참만에 또
“거 소릴 얼마나 공불 허면 그렇게 명창이 되시나요?”
하고 묻는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별 쑥스런 사람도 다 보겠다고,
귀찮게 여기며 아무렇게나……
“글씨…… 나두 몰루.”
“헤헤엣다, 괜히 그리십니다!”
“무얼 궈녀언이 그런다구 그러우?…… 나넌 소리를 좋아넌 히여두
소리를 헐 종은 모르넌 사램이요!”
“괘애니 그리세요! 명창 이동백(李東伯)씨가
노래헐 줄 모르신다면 누가 압니까?”
원 이럴 데가 있읍니까! 어쩌면 윤직원 영감더러 광대 이동백이라고
하다니요!
윤직원 영감은 단박 분하고 괘씸하고 창피하고 뭐, 도무지 어떻다고
형언할 수가 없읍니다. 아무리 예법이 없어진 오늘이라 하더라도,
만일 그 자리가, 그 자리가 아니고 계동 자기네 댁만 같았어도,
이놈 당장 잡아 내리라고 호령을 한바탕 했을 겝니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고 칼날 밑에서와 총부리 앞에서 목숨을 내걸어
보기 수없던 윤직원 영감입니다. 또 시속이 어떻다는 것이며,
그래 아무데서고 함부로 잘못 호령깨나 하는 체하다가는 괜히 되잡혀서
망신을 하는 수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읍니다.
윤직원 영감은 속을 폭신 삭혀 가지고 자기 손에 쥔 표를 내보이면서,
나도 이렇게 구경을 왔노라고 점잖이 깨우쳐 주었읍니다.
그랬더니 양복신사씨는 윤직원 영감이 생각한 바와는 딴판으로 백배
사죄도 않고 그저, 아 그러냐고 실례했다고 고개만 한번 까댁합니다.
윤직원 영감은 그게 다시 괘씸했으나 참은 길이라 그냥 눌러
참았읍니다.
그럴 때에 마침 또다른 양복장이 하나가 나타났읍니다.
윤직원 영감한테는 갖추 불길한 날입니다.
그 양복장이는 옷깃에다가, 가화(假花)를 꽂은 양이, 오늘 여기서
일 서두리를 하는 사람인가 본데, 우연히 지나가다가 윤직원 영감이
홍권을 사가지고 어엿하게 백권석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는 그 붉은 입장권을 보지 못했었다면 설마 이 풍신 좋은 양반이
홍권을 가지고 백권석에 들어앉았으랴는 의심이야 내지도 않았겠지요.
“저어, 여긴 백권석입니다. 저 위칭으로 가시지요!”
양복장이는 좋은 말로 이렇게 간섭을 합니다.
그러나 윤직원 영감은 백권석이란 신식 문자는 모르되 이층으로
가라는 데는 자뭇 의외였읍니다.
“왜 날더러 그리 가라구 허우?”
“여긴 백권석인데요, 노인은 홍권을 사셨으니깐
저 위칭 홍권석으루 가셔야 합니다.”
“아니…… 이건 하등표요!
나넌 돈 50전 주구 하등표 이놈 샀어! 자, 보시요!”
“그러니깐 말씀입니다. 노인 말씀대루 하면 여긴 상등이거든요.
그런데 노인께선 하등표 사가지구 이 상등에 앉었으니깐,
저 하등석으루 올라가시란 말씀입니다.”
“예가 상등이라? 그러구 저 높은디 이칭이 하등이라?”
“네에.”
“아니, 여보? 그래, 그런 법이 어디가 있담 말이요? 높은 디가
하등이구 나찬 디가 상등이라니!
나넌 칠십평생으 그런 말은 츰 듣겄소!”
“그래두 그렇잖습니다. 여기선 예가 상등이구,
저 이칭이 하등입니다.”
“거참! 그럼, 예는 우리 죄선(朝鮮) 아니구 저어 서양국(西洋國)이요?
그렇길래 이렇기 모다 꺼꾸로 되지?”
“허허허허. 그렇지만 신식은 다아 그렇답니다.
그러니 정녕 이 자리에서 구경을 허시겠거던 돈을 일 원 더 내시구
백권을 사시지요?”
“나넌 그럴 수 없소! 암만 그리두, 나넌 예가 하등이닝개루,
예서 귀경헐라우!”
우람스러운 몸집과 신선 같은 차림을 하고서, 애기처럼 응석을 부리는
데는 서두리꾼도 어리광을 받아주는 양 짐짓 지고 말아,
윤직원 영감은 마침내 홍권으로 백권석에서 구경을 했읍니다.
실상 윤직원 영감은 위정 그런 어거지를 쓴 것은 아닙니다.
꼭 극장만 여겨서 아래층이 하등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의 처음 몇번의 경험에 의하면, 명창대회는 아래층
(그러니까 하등이지요) 맨 앞자리의 맨 앞줄이 제일 좋은 자리였읍니다.
기생과 광대들의 일동일정이 바로 앞에서 잘 보이고,
노래가 가까이 들리고, 그리고 하등이라 값이 헐하고.
이러한 묘리를 터득한 윤직원 영감이라, 오늘도 하등표를 산다고
사가지고 하등을 간다고 간 것이 삼곱이나 더하는 백권석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뱃심이라고 할지 생억지라고 할지, 아뭏든
서두리꾼을 이겨내고, 필경은 그대로 백권석에서 구경을 했읍니다.
더욱 좋은 것은 여느 극장 같으면 하등인 맨 앞자리는 고놈 깍정이
같은 조무래기패가 옴닥옴닥 들어박혀 윤직원 영감의 육중한 체구가
처억 그 틈에 끼여 있을라치면, 들이 놀림감이 되고,
그래 좀 창피했는데, 오늘은 이 상등스러운 하등이 모두 점잖은
어른들이나 이쁜 기생들뿐이요, 그따위 조무래기 떼가 없어서
실로 금상첨화라 할 수 있었읍니다.
구경을 아주 원만히 마치고 난 윤직원 영감은 춘심이는 제 집이
청진동이니까 걸어가라고 보내고, 자기 혼자만 전차 정류장까지
나왔읍니다. 그러나 숱해 몰려나온 구경꾼들과 같이서 전차를 탈
일이며, 또 뻐스를 탈 일이며, 그뿐 아니라 재동서 내려 경사진
계동길을 걸어올라가자면 숨이 찰 일이며
모두 생각만 해도 대견했읍니다. 10원짜리를 가지고 하면 또 공차를 탈
수도 있을 테지만, 에라 내가 돈을 아껴서는 무얼 하겠느냐고 실로
하늘이 알까 무서운 변심을 먹고, 마침 지나가는 인력거를 불러 탔던
것이고, 결과는 돈 5전을 가외에 더 뺏겼고, 해서 정히 역정이 났었고,
그리고 또 대문이 말입니다.
대문은 언제든지 꽉 잠가 두거니와, 옆으로 난 쪽문도 안으로 잠겼어야
할것이거늘 그것이 훤하게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큰대문을 열어놓고 있노라면, 어쩐지 집안엣 것이
형적없이 자꾸만 대문으로 해서 빠져나가는 것만 같고, 그 대신
상서롭지 못한 것이 자꾸만 술술 들어오는 것만 같고 하여,
간혹 장작바리나 큰 짐이 들어올 때가 아니면 큰대문은 결단코
열어놓는 법이 없읍니다. 이것은 아주 이 집의 엄한 가헌(?)입니다.
큰대문은 그래서 항상 봉해 두고, 출입은 어른 아이 상전 하인 할것없이
한옆으로 뚫어놓은 쪽문으로 드나듭니다. 그거나마 꼭꼭 지쳐두어야지,
만일 오늘처럼 이렇게 열어놓군 하면 거지 등속의 반갑잖은 손님이
들어올 위험이 다분히 있읍니다.
물론 아무리 밑질긴 거지가 들어와서 목을 매고 늘어진댔자 동전 한푼
동냥을 주는 법은 없지만, 그러자니 졸리고 악다구니를 하고 하기가
성가신 노릇이니까요. 그러므로 만일 쪽문을 열어놓는 것이 윤직원
영감의 눈에 뜨이고 보면, 그여코 한바탕 성화가 나고라야 마는데,
대체 식구 중에 누가 갈충머리 없이 이런 해망을 부렸는지 참말 딱한
노릇입니다. 역정이 난 윤직원 영감이,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나가는
만큼이나 애를 써서 좁다란 그 쪽문으로 겨우겨우 비비 뚫고
들어서면서 꽝 소리가 나게 문을 닫는데, 마침 상노 아이놈 삼남이가
그제야 뽀르르 달려나옵니다.
이놈이 썩 묘하게 생겼읍니다. 우선 부룩송아지 대가리같이 머리가
곱슬곱슬하고 노랗기까지 한 게 장관이요, 그런 대가리가 어쩌면
그렇게도 큰지 남의 것 같읍니다. 눈은 사팔이어서 얼굴을 모로 돌려야
똑바로 보이고, 코는 비가 오면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나이는 스무 살인데 그것은 이애한테만 세월이 특별히 빨리 갔는지,
열 살은 에누리없이 모자랍니다.
그러나 이애야말로 윤직원 영감한테는 대단히 보배스러운
도구(道具)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상노아이놈을 똑똑한 놈을 두는 법이
없읍니다. 똑똑한 놈이면 으례껏 훔치훔치 즉 태을도(太乙道:도적질)를
한대서 그러는 것입니다.
실상 전에 시골서 살 때에는 똑똑한 상노놈을 더러 두어본 적도
있었으나,
했다가 번번이 그 태을도를 하는 바람에 뜨거운 영금을 보았었읍니다.
이 삼남이는 시골 있는 산지기 자식으로 못난 이름이 근동에 널리
떨친 것을 시험삼아 데려다가 두고 보았더니 미상불 천하일품
이었읍니다.
너무 멍청해서 데리고 부리기가 매우 갑갑한 때도 있기는 하지만,
그 대신 일년 삼백예순날을 가도 동전 한푼은커녕 성냥 한 개피 몰래
축내는 법이 없읍니다. 또 산지기의 자식이니, 시속 아이놈들처럼
월급이니 무엇이니 하는 그런 아니꼬운 것도 달라고 않습니다. 해서
참말 둘도 구하기 어려운 보물인 것입니다.
그런지라 윤직원 영감은 여느때 같으면 삼남이가 나와서 그렇게 허리를
굽신하면 그저 오냐 하고 좋게 대답을 했을 것이지만, 오늘은 그래저래
역정이 난 판이라 누구든지 맨 처음에 눈에 띄는 대로 소리를 우선
버럭 질러주어야 할 판입니다.
“야 이놈아! 어떤 손모가지가 문은 그렇기 휘어언하게
열어누왔냐? 응?”
“저는 안 그맀어라우! 아마 중마내님이 금방 들어오싰넌디,
그렇게 열어 누왔넝개비라우?”
중마내님이라는 건 윤직원 영감의 며느리로 지금 이 집의 형식상
주부(主婦)입니다.
“그맀으리라! 짝 찢을 년!……”
윤직원 영감은 며느리더러 이렇게 욕을 하던 것입니다. 그는 며느리뿐만
아니라 딸이고 손자며느리고, 또 지금은 죽고 없지만 자기 부인이고,
전에 데리고 살던 첩이고, 누구한테든지 욕을 하려면 우선 그
‘짝 찢을 년’이라는 서양말의 관사(冠詞) 같은 것을 붙입니다.
남잘 것 같으면 ‘잡어 뽑을 놈’을 붙이고……
“짝 찢을 년!……
아, 그년은 글씨 무엇하러 밤낮 그렇기 싸댕긴다냐?”
“모올라우!”
“옳다. 내가 모르넌디 늬가 알 것이냐!…… 짝 찢을 년! 그년이 서방이
안 돌아부아 주닝개 오두가 나서 그러지, 오두가 나서 그리여!”
“아마 그렁개비라우!”
관중이 없어서 웃어주질 않으니 좀 섭섭한 장면입니다.
윤직원 영감이 그렇게 쌍소리로 며느리며 누구 할 것 없이 아무한테고
욕을 하는 것은, 그의 입이 험한 탓도 있겠지만, 그의 근지가
인조견이나 도금비녀처럼 허울뿐이라 그렇다고도 하겠읍니다.
윤직원 영감의 근지(根地)야 참 보잘게 별양 없습니다.
4. 우리만 빼놓고 어서 亡[망]해라
얼굴이 말(馬面[마면])처럼 길대서 말대가리라는 별명을 듣던 윤직원
영감의 선친 윤용규는 본이 시골 토반(土班)이더냐 하면
그렇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아전(衙前)이더냐 하면, 실상은 아전질도
제법 해먹지 못했읍니다.
아전질을 못 해먹은 것이 시방 와서는 되레 자랑거리가 되었지만,
그때 당년에야 흔한 도서원(都書員)이나마 한 자리 얻어 하고 싶은
생각이 꿀안 같았어도, 도시에 그만한 밑천이며 문필이며가
없었더랍니다.
말대가리 윤용규 그는 삼십이 넘도록 탈망바람으로 삿갓 하나를
의관삼아 촌 노름방으로 으실으실 돌아다니면서 개평푼이나 뜯으면
그걸로 되돌아 앉아 투전장이나 뽑기, 방퉁이질이나 하기,
또 그도 저도 못하면 가난한 아내가 주린 배를 틀어쥐고서 바느질품을
팔아 어린 자식과(이 어린 자식이라는게 그러니까 지금의 윤직원
영감입니다) 입에 풀칠을 하는 것을 얻어먹고는, 밤이나 낮이나 질펀히
드러누워, 소대성(蘇大成)이 여대치게 낮잠이나 자기……
이 지경으로 반생을 살았읍니다. 좀 호협한 구석이 있고 담보가
클 뿐 물론 판무식꾼이구요.
그런데, 그런 게 다 운수라고 하는 건지 어느 해 연분인가는 난데없는
돈 2백 냥이 생겼더랍니다. 시골돈 2백 냥이면 서울돈으로 2천 냥이요,
그때만해도 웬만한 새끼부자 하나가 왔다갔다할 큰 돈입니다.
노름을 해서 딴 돈이라고 하기도 하고, 혹은 그 아내가 친정의 머언
일가집 백부한테 분재를 타온 돈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누구는
도깨비가 져다준 돈이라고 하기도 하고 하여 자못 출처가 모호했읍니다.
시방이야 가난하던 사람이 불시로 큰 돈이 생기면 경찰서 양반들이 우선
그 내력을 밝히려 들지만, 그때만 해도 60년 저짝 일이니 누가 지날
말로라도 시비 한마딘들 하나요. 그저 그야말로 도깨비가 져다
주었나보다 하고 한갓 부러워하기나 했지요.
아뭏든 그래 말대가리 윤용규는 그날부터 칼로 벤 듯 노름방 발을 끊고,
그 돈 2백 냥을 들여 논을 산다, 대푼변 돈놀이를 한다,
곱장리를 놓는다 해가면서 일조에 착실한 살림꾼이 되었읍니다.
그러노라니까, 정말 인도깨비를 사귄 것처럼 살림이 불 일듯 늘어서,
마침내 그의 당대에 3천 석을 넘겨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그때 당시는 두꺼비같이 생겼대서, 윤두꺼비로 불리어지던
윤두섭) 그는 어려서부터 취리에 눈이 밝았고, 약관에는 벌써
그의 선친을 도와가며 그 큰 살림을 곧잘 휘어나갔읍니다.
그리고 1903년 계묘년(癸卯年)부터는 고스란히 물려받은 3천석거리를
가지고, 이래 30여년 동안 착실히 가산을 늘려왔읍니다.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가권을 거느리고 서울로 이사를
해오던 그때의 집계(集計)를 보면, 벼를 실 만 석을 받았고,
요즘 와서는 현금이 10만 원 가까이 은행에 예금되어 있었읍니다.
이런 걸 미루어 보면, 그는 과시 승어부(勝於父)라 할 것입니다.
하기야 그 양대(兩代)가 그 어둔 시절에 그처럼 치산을 하느라고(시절이
어두우니까 체계변이며 장리변의 이문이 숫지고,
또 공문서(空文書 : 空土地[공토지])가 수두룩해서 가산 늘리기가
좋았던 한편으로 말입니다) 욕심사나운 수령(守令)한테 걸려들어
명색없이 잡혀 갇혀서는, 형장(刑杖)을 맞아가며 토색질을 당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요, 화적(火賊)의 총부리 앞에 목숨을 내걸고 서서
재물을 약탈당하기도 부지기수요, 그러다가 말대가리 윤용규는 마침내
한패의 화적의 손에 비명의 죽음까지 한것인즉은, 일변 생각하면 피로
낙관(落款)을 친 치산이지, 녹록한 재물이라고 할 수는 없을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그때 일을 생각하면, 시방도 가슴이 뭉클하고,
그의 선친이 무참히 죽어 넘어진 시체 하며, 곡식이 들이쌓인 노적과
곡간이 불에 활활타던 광경이 눈앞에 선연히 밟히곤 합니다.
잊히지도 않는 계묘년 3월 보름날입니다. 이 3월 보름날이
말대가리 윤용규의 바로 제사날이니까요.
온종일 체계돈 받고 내주고 하기야,
춘궁에 모여드는 작인(小作人[소작인])들한테 장리벼 내주기야,
몸져 누운 부친 윤용규의 병시중 들기야 하느라고 큰살림을 맡아
처리하는 사람의 일례로, 두꺼비 윤두섭, 즉 젊은날의 윤직원 영감은
밤늦게야 혼곤히 들었던 잠이, 옆에서 아내의 흔들며 깨우는
촉급한 속삭임 소리에 놀라 후닥닥 몸을 일으켰읍니다.
한두 번도 아니요, 화적을 치르기 이미 수십 차라, 그는 잠결에도
정신이 들기 전에 육체가 먼저 위급함을 직각했던 것입니다.
장수가 전장에 나가면, 진중에서는 정신은 잠을 자도 몸은 깨서 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치라고 할는지요.
실로 그때 당시 윤씨네 집안은 자나깨나 전전긍긍 불안과 긴장과 경계
속에서 일시라도 몸과 마음을 늦추지 못하고, 마치 살얼음을 건너가는
것처럼 위태위태 지내던 판입니다.
젊은 윤두꺼비는 깜깜 어둔 방안이라도, 바깥의 달빛이 희유끄름한
옆문을 향해 뛰쳐나갈 자세로 고의춤을 걷어 잡으면서 몸을 엉거주춤
일으켰읍니다. 보이지는 않으나 아내의 황급한 숨길이 바투 들리고,
더듬어 들어오는 손끝이 바르르 떨리면서 팔에 닿습니다.
“어서! 얼른!”
아내의 쥐어짜는 재촉 소리는, 마침 대문을 총개머린지 몽둥인지로
들이 쾅쾅 찧는 소리에 삼켜져 버립니다.
“아버님은!”
윤두꺼비는 뛰쳐나가려고 꼬느었던 자세와 호흡을 잠깐 멈추고서
아내더러 물어보던 것입니다.
“몰라요…… 그렇지만…… 아이구 어서, 얼른!”
아내가 기색할 듯이 초초한 소리로 팔을 잡아 훑는 힘이 아니라도,
윤두꺼비는 벌써 몸을 날려 옆문을 박차고 나갑니다.
신발 여부도 없고 버선도 없는 맨발로, 과녁 반 바탕은 될 타작마당을
단숨에 달려 두 길이나 높은 울타리를 문턱 넘듯 뛰어넘어, 길같이 솟은
보리밭 고랑으로 몸을 착 엎드리고 꿩 기듯 기기 시작하는 그동안이,
아내가 흔들어 깨울 때부터 쳐서 겨우 5분도 못되는 순간입니다.
이렇게 윤두꺼비가 울타리를 넘어, 그러느라고 허리띠를 매지 않은
고의를 건사하지 못해서 홀라당 벗어 떨어뜨린 알몸뚱이로 보리밭
고랑에서 엎드려 기기 시작을 하자, 그제서야 방금 저편 모퉁이로부터
두 그림자가 하나는 담총을 하고 하나는 몽둥이를 끌고 마침
돌아나왔읍니다.
뒤 울타리로 해서 도망가는 사람을 잡으려는 파순데,
윤두꺼비한테는 아슬아슬한 순간의 찰나라 하겠읍니다.
그들도 도망가는 윤두꺼비를 못 보았거니와 윤두꺼비도 물론 그러한
위경이던 줄은 모르고 기기만 하던 것입니다.
만약 그들의 눈에 띄기만 했더라면 처음에는 쫓아갈 것이고,
그러다가 못 잡으면 대고 불질을 했을 겝니다. 부지깽이 같은
그 화승총을 가지고, 더구나 호미와 쇠스랑을 다루던 솜씨로,
으심치무레한 달밤에 보리밭 사이로 죽자살자 내빼는 사람을 쏜다고
쏘았댔자 제법 똑바로 가서 맞을 이치도 없기도 하지만.
그래 아뭏든, 발가벗은 윤두꺼비는 무사히 보리밭을 서넛이나 지나,
다시 솔숲을 빠져나와 나직한 비탈에 왜송이 둘러선 산허리에까지
단숨에 달려와서야 비로소 안심과 숨찬 걸 못견디어 펄씬
주저앉았읍니다.
화적이 드는 눈치를 채면, 여느 일 젖혀놓고 집안 돌아볼 것 없이 몸을
빼쳐 피하는 게 제일 상책입니다.
화적이 인가를 쳐들어와서 잡아 족치는 건 그 집 대주(戶主)와 셈든
남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손에 붙잡히기만 하고 보면 우선
[이 부분 1행 반삭제〕 반죽음은 되게 매를 맞아야 합니다.
그렇게 얻어맞고도, 마침내는 재물은 재물대로 뺏겨야 하고, 그 서슬에
자칫 잘못하면 목숨이 왔다갔다합니다. 둘이 잡히면 둘이 다, 셋이
잡히면 셋이 다 그 지경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제각기 먼저 기수를 채는 당장으로, 아비를 염려해서
주춤거리거나 자식을 생각하여 머뭇거리거나 할 것이 없이, 그저 먼저
몸을 피해 놓고 보는 게 당연한 일로 되어 있었읍니다. 그럴 것이,
가령 자식이 아비의 위태로움을 알고 그냥 버틴다거나 덤벼든다거나
했자, 저편은 수효가 많은데다가 병장기를 가진, 그리고 사람의 목숨쯤
파리 한 마리만큼도 여기잖는패들이니까요.
이날 밤 윤두꺼비도 그리하여 일변 몸져 누운 부친이 마음에 걸려,
선뜻 망설이기는 하면서도 사리가 그러했기 때문에, 이내 제 몸을 우선
피해 놓고 보던 것입니다.
말대가리 윤용규는 나이 이미 60에 또 어제까지 등이며 볼기며에 모진
매를 맞다가 겨우 옥에서 놓여나온 몸이라, 도저히 피할 생각은 내지도
못하고 그 대신 침착하게 일어나 앉아 등잔에 불까지 켰읍니다.
기위 당하는 일이라서, 또 있는 담보겠다, 악으로 한바탕 싸워보자는
것입니다. 화적패들은 이윽고 하나가 울타리를 넘어들어와 빗장을
벗기는 대문으로 우 몰려들었읍니다.
“개미새끼 하나라도 놓치지 말렷다!”
그중 두목이, 대문 지키는 두 자와
옆으로 비어져 가는 파수 둘더러 호령을 하는 것입니다.
“영 놓치겠거던 대구 쏘아라!”
재우쳐 이른 뒤에 두목이 앞장을 서서 사랑채로 가고,
한 패는 안으로 갈려 들어갑니다. 그렇게도 사납고, 짖기를 극성으로
하는 이 집 개들이 처음부터 끽소리도 못 내고 낑낑거리면서 도리어
주인네의 보호를 청하는 걸 보면, 당시 화적들의 기세가 얼마나
기승스러웠음을 족히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집이나 어린것들은 손대지 말렷다!”
두목이 잠깐 돌아다보면서 신칙을 하는 데 응하여
안으로 들어가던 패가 몇이
“예이!”
하고 한꺼번에 대답을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스러운 그네들의 엄한 풍도입니다. 이 밤에 이 집을
쳐 들어온 이 패들만 보아도 패랭이 쓴 놈, 테머리한 놈,
머리 땋은 총각, 늙은이 해서 차림새나 생김새가 가지각색이듯이,
모두 무질서하고 무지한 잡색 인물들이기는 하나, 일반으로 그들은
어느때 어디를 쳐서 갖은 참상을다 저지르곤 할값에, 좀체로 부녀와
어린아이들한테만은 손을 대는 법이 없읍니다.
만일 그걸 범했다가는 그는 당장에 두목 앞에서 목이 달아나고라야
맙니다.
사랑채로 들어간 두목이, 한 수하를 시켜 웃미닫이를 열어젖히고서,
성큼 마루로 올라설 때에, 그는 뜻밖에도 이편을 앙연히 노려보고 있는
말대가리 윤용규와 눈이 딱 마주쳤읍니다.
두목은 주춤하지 않지 못했읍니다. 그는 윤용규가 이 위급한 판에
한발짝이라도 도망질을 치려고 서둘렀지, 이다지도 대담하게,
오냐 어서 오란 듯이 버티고 있을 줄은 천만 생각 밖이었던 것입니다.
더욱 핏기없이 수척한 얼굴에 병색을 띠고서도, 일변 악이 잔뜩 올라
이편을 무섭게 노려보는 그 머리 센 늙은이의 살기스런 양자가 희미한
쇠기름 불에 어른거리는 양이라니, 무슨 원귀와도 같았읍니다.
두목은 만약 제 등 뒤에 수하들이 겨누고 있는 10여 대의 총부리와,
녹슬었으나마 칼들과 몽둥이들과 도끼들이 없었으면,
그는 가슴이 서늘한 대로 물씸물씸 뒤로 물러섰을는지도 모릅니다.
“으응, 너 잘 기대리구 있다!”
두목은 하마 꺾이려던 기운을 돋구어 한마디 으릅니다.
실상 이 두목(그러니까 오늘 밤의 이 패들)과 말대가리 윤용규와는 처음
만나는 게 아니고 바로 구면입니다.
달포 전에 쳐들어와서 돈 3백 냥을 빼앗고, 그밖에 소 한바리와 패물과
어음 몇 쪽을 털어간 그 패들입니다. 그래서 화적패들도, 주인을 잘
알려니와 주인 되는 윤용규도 두목의 얼굴만은 익히 알고 있고,
그러고도 또 달리, 뼈에 사무치는 원혐이 한 가지 있는 터라, 윤용규는
무서운 것보다도(이미 피치 못할 살판인지라) 차차로 옳게 뱃속으로부터
분노와 악이 치받쳐올랐읍니다.
“이놈 윤가야, 네 들어보아라!”
두목은 종시 말이 없이 앙연히 앉아 있는 윤용규를 마주 노려보면서,
그 역시 분이 찬 음성으로 꾸짖는 것입니다.
“…… 네가 이놈 관가에다가 찔러서 내 수하를 잡히게 했단
말이지?…… 이놈, 그러구두 네가 성할 줄 알었드냐?……
이놈 네가 분명코 찔렀지? ……”
“오냐, 내가 관가에 들어가서 내 입으루 찔렀다. 그래?……”
퀄퀄하게 대답을 하면서,
도사리고 앉은 윤용규의 눈에서는 불이 이는 듯 합니다.
“내가 찔렀으니 어쩔 테란 말이냐?…… 흥! 이놈들,
멀쩡하게 도당 모아각구 댕기먼서 양민들 노략질이나 히여먹구,
네가 그러구두 성할 줄 알았더냐? 이놈아!……”
치받치는 악에, 소리를 버럭 높이면서 다시
“……괴수놈, 너두 오래 안가서 잽힐 테니 두구 보아라! 네 모가지에
작두날이 내릴 때가 머잖었느니라, 이노옴!”
하고는 부드득 이를 갈아붙입니다.
목전의 절박한 사실에 대한 일종의 발악임은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변 깊이 생각을 하면, 하나의 웅장한 선언일 것입니다.
핍박하는 자에게 대한,
일후의 보복과 승리를 보류하는 자신 있는 선언……
사실로 윤용규는 무식하고 소박하나마 시대가 차차로 금권(金權)이
유세해 감을 막연히 인식을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러므로, 비단 화적패들에게만 대한 선언인 것이 아니라,
그 야속하고 토색질을 방자히 하는 수령(守令)까지도 넣어,
전 압박자에게 대고 부르짖는 선전의 포고이었을 것입니다.
가령 그 자신이 그것을 의식하고 못하고는 고만두고라도…… 말입니다.
“……이놈들! 밤이 어둡다구, 백년 가두 날이 안 샐 줄 아느냐?
두구 보자, 이놈들!”
윤용규는 연하여 이렇게 살기등등하니 악을 쓰는 것입니다.
“하, 이놈, 희떠운 소리 헌다! 허!”
두목은 서글퍼서 이렇게 헛웃음을 치는데, 마침 웃목에서 이제껏 자고
있던 차인꾼이, 그제서야 잠이 깨어 푸스스 일어나다가
한참 두릿거리더니, 겨우 정신이 나는지 별안간 버얼벌 떨면서
방구석으로 꽁무니걸음을 해 들어갑니다.
그러자 또 안으로 들어갔던 패 중에 하나가 총끝에 흰 무명고의 하나를
꿰들고 두목 앞으로 나옵니다.
“두령, 자식놈은 풍겼읍니다!”
“풍겼다? 그럼, 그건 무어란 말이냐?”
“그놈이 울타리를 뛰어넘어가다가 벗어버린 껍데기올시다.
자다가 허리띠두 못 매구서 달아나느라구,
울타리 밑에서 홀라당 벗어졌나 봅니다.”
발가벗고 도망질을 치는 광경을 연상함인지,
몇이 킥킥하고 소리를 죽여 웃습니다.
“으젓잖은 놈들! 어쩌다가 놓친단 말이냐!……”
두목은 혀를 차다가,
방 웃목에서 떨고 있는 차인꾼을 턱으로 가리킵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혹시 저놈이 자식놈이 아니냐?”
윤두꺼비는 전번에도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두목은 그의 얼굴을 몰랐던
것입니다. 두목의 말을 받아 수하 하나가 기웃이 들여다보더니……
“아니올시다. 저놈은 차인꾼이올시다.”
“쯧! 그렇다면 헐 수 없고…… 잘 지키기나 해라. 그리고,
아직 몽당숟갈 한 매라도 손대지 말렷다!”
“에이…… 그런데 술이 좋은 놈 한 독 있읍니다, 두목……
닭허구 돼지두 마침 먹을 감이구요……”
전전해 신축(辛丑)년의 큰 흉년이 아니라도, 화적 된 자 치고 민가를
털 제, 술이며 고기를 눈여겨보지 않는 법은 없는 법입니다.
“이놈 윤가야, 말 들어라…… 오늘 저녁에 우리가 네 집에를 온 것은
……”
두목은 다시 윤용규에게로 얼굴을 돌리고 을러댑니다.
“……네놈의 재물보담두, 너를 쓸 디가 있어서 온 것이다…… 허니,
어쩔테냐? 내 말을 순순히 들을 테냐? 안 들을 테냐?”
윤용규는 두목을 마주 거듭떠보고 있다가,
말이 끝나자 고개를 홱 돌려버립니다.
“어쩔 테냐? 말을 못 듣겠단 말이지?”
“불한당놈의 말 들을 수 없다!…… 내가, 생각허먼 네놈들을 갈아먹구
싶은디, 게다가 청을 들어? 흥!”
윤용규는 그새 여러 해 두고 화적을 치러내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들 앞에서 서얼설 기고 네네 살려줍시사고 굽신거리나 마주 대고
네놈 내놈하면서 악다구니를 하거나, 필경 매를 맞고 재물을 뺏기기는
일반이던 것을 잘알고 있읍니다.
그러니 어차피 당하는 마당에, 그처럼 굽실거릴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을 뿐 아니라, 일변 그, 이 패에게 대하여 그야말로 갈아먹고
싶은 원혐이 또한 없지 못합니다.
달포 전인데 이 패에게 노략질을 당하던 날 밤, 그중에 한 놈,
잘 알 수있는 자가 섞여 있는 것을 윤용규는 보아 두었었읍니다.
그자는 박가라고, 멀지 않은 근동에서 사는 바로 그의
작인(小作人[소작인])이었읍니다.
“오! 이놈 네가!”
윤용규는 제자신, 작인에게 어떠한 원한 받을 짓을 해왔다는 것은
경위에 칠 줄은 모릅니다. 다만 내 땅을 부쳐먹고 사는 놈이,
이 도당에 참예를 하여 내 집을 털러 들어오다니, 눈에서 불이 나고
가슴이 터질 듯 분한 노릇이었읍니다.
이튿날 새벽같이 윤용규는 몸소 읍으로 달려들어가서, 당시 그 고을
원(守令[수령])이요, 수차 토색질을 당한 덕에 안면(!)은 있는
백영규(白永圭)더러, 사분이 이만저만하고 이러저러한데,
그중에 박아무개라는 놈도 섞여 있었다고, 그러니 그놈만 잡아다가
족치거드면 그 일당을 다 잡을 수가 있으리라고 아뢰어 바쳤읍니다.
백영규는 그러나 말대가리 윤용규보다 수가 한길 윗수였읍니다.
그는 자초지종 이야기를 다 듣더니, 아 그러냐고, 그러면 박가라는지
그놈을 잡아오기는 올 것이로되, 그러나 화적패에 투신한 놈을 그처럼
잘 알진댄, 윤용규 너도 미심쩍어 그러니 같이 문초를 해야 하겠은즉
그리 알라고 우선 윤용규부터 때려 가두었읍니다.
약은 수령이 백성의 재물을 먹자고 트집을 잡는 데 무슨 사리와 경우가
있나요? 루이 14센지 하는 서양 임금은 짐이 바로
국가(朕即國家[짐즉국가])라고 호통을 했고, 조선서도
어느 종실세도(宗室勢道) 한 분은 반대파의 죄수를 국문하는데,
참새가 찍한다고 해도 죽이고, 짹한다고 해도 죽이고, 필경은
찍짹합니다 해도 죽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당시 일읍(一邑)의 수령이면 그 고장에서는 왕이요, 그의 덮어놓고
하는 공사는 바로 법과 다를 바 없던 것입니다. 항차 그는 화적을
잡기보다는 부자를 토색하기가 더 긴하고 재미가 있는데야.
말대가리 윤용규는 혹을 또 한 개 덜렁 붙이고서 옥에 갇히고, 박가도
그 날로 잡혀 들어왔읍니다.
문초는 그러나 각각 달랐읍니다. 박가더러는 그들 일당의 성명과 구혈과
두목을 대라고 족쳤읍니다.
박가는 제가 그 도당에 참예한 것은 불었어도, 그욋 것은 입을 꽉
다물고서 실토를 안했읍니다. 주리를 틀려 앞정강이의 살이 문드러지고
허연 뼈가 비어져도 그는 불지를 않았읍니다.
일변 윤용규더러는, 네가 그 도당과 기맥을 통하고 있고, 그 패들에게
재물과 주식을 대접했다는 걸 자백하라고 문초를 합니다. 박가의 실토를
들으면 과시 네가 적당과 연맥이 있다고 하니, 정 자백을 안하면
않는대로 그냥 감영으로 넘겨 목을 베게 하겠다는 것이었읍니다.
이것이 좀 먹자는 트집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속이었고,
그래 누가 이러라저러라 시킬 것도 없이 벌써 줄 맞은 병정이 되어서,
젊은 윤두꺼비는 뒷줄로 뇌물을 쓰느라고 침식을 잊고 분주했읍니다.
5백 냥씩 두번 해서 천 냥은 수령 백영규가 고스란히 먹고, 또 천 냥은
가지고 이방 이하 호장이야 형방이야 옥사정이야 사령이야 심지어 통인
급창이까지 고루 풀어 먹였읍니다.
2천 냥 돈을 그렇게 들이고서야 어제 아침 달포 만에 말대가리 윤용규는
장독(杖毒)으로 꼼짝 못하는 몸을 보교에 실려 옥으로부터 집으로
놓여나왔던 것입니다.
사맥이 이쯤 되었으니, 윤용규로 앉아서 본다면 수령 백영규한테와
화적패에게 원한이 자못 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원한이 깊었자,
저편은 감히 건드리지도 못할 수령이라, 그 만만하달까, 화적패에게
잔뜩 보복을 벼르고 있었고, 그런 참인데, 마침 그 도당이 또다시
달려들어서는 이러니저러니하니 그야말로 갈아먹고 싶을 것은 인간의
옹색한 속이 아니라도 당연한 근경이라 하겠지요.
일은 그런데 피장파장이어서 화적패도 또한 말대가리 윤용규에게 원한이
있읍니다. 동료 박가를 찔러서 잡히게 했다는 것입니다.
박가가 잡혀가서 그 모진 혹형을 당하면서도 구혈이나 두목이나 도당의
성명을 불지 않는 것은 불행중 다행입니다. 그러니 그런만큼 의리가
가슴에 사무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윤용규한테 대한 원한은 우선 접어놓고, 어디 일을 좀 무사히 피게
하도록 해볼까 하는 것이 그들의 첫 꾀였읍니다.
만약 그런 꾀가 아니라면야 들어서던 길로 지딱지딱 해버리고 돌아섰을
것이지요. 두목은 윤용규가 전번과는 달라 악이 바싹 올라가지고
처음부터 발딱거리면서 뻣뻣이 말을 못 듣겠노라고 버티는 데는,
물론 화가 치밀어오르지 않을수가 없었읍니다.
“진정이냐?”
그는 눈을 부라리면서 딱 을러댑니다. 그러나 윤용규는 종시 까딱 않고
대답입니다.
“다시 더 물을 것 읎너니라!”
“너, 그리 고집 세지 말아!……”
두목은 잠깐 식식거리면서 윤용규를 노리고 보다가,
이윽고 음성을 눅여 타이르듯 합니다.
“……그러다가는 네게 이로울 게 없다. 잔말 말구, 네가 뒤로 나서서
3천냥만 뇌물을 써라. 너두 뇌물을 쓰구서 뇌어 나왔지?
그럴 테면 네가 옭아넣은 내 수하도 풀어놓아 주어야 옳을 게
아니야?…… 허기야 너를 시키느니 내가 내 손으로 함직한 일이기는
하지만, 나는 당장 3천 냥이 없고, 그걸 장만하자면 너 같은 놈
열 놈의 집은 더 털어야 하니 시급스럽게 안될 말이고, 또 내가 나서서
뇌물을 쓰다가는, 됩다 위태할 것이고 허니 불가불일은 네가 할 수밖에
없다. 허되 급히 서둘러야지 며칠 안 있으면 감영으로 넹긴다드구나?”
두목은 끝에 가서는 거진 사정하듯 목마른 소리로 말을 맺고서,
윤용규의 대답을 기다립니다.
윤용규는 그러나 싸늘하게 외면을 하고 앉아서, 두목이 하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 체합니다.
“……어쩔 테냐? 한다든 못 한다든 대답을……”
두목은 맥이 풀리는 대신, 다시 울화가 치받쳐 버럭 소리를 지르다 말고
입술을 부르르 떱니다.
“못한다!……”
윤용규도 지지 않고 소리를 지릅니다.
“……네놈들이 죄다 잽혀 가서 목이 쓸리기를 축원허구 있는 내가,
됩다한 놈이라두 뇌어 나오라구, 내 재물을 들여서 뇌물을 써? 흥!
하늘이 무너져두 못헌다!”
“진정이냐?”
“오냐!”
윤용규는 아주 각오를 했읍니다. 행악은 어차피 당해 둔 것, 또 재물도
약간 뺏겨는 둔 것, 그렇다고 저희가 내 땅에다가 네귀퉁이에 말뚝을
박고 전답을 떠가지는 못할 것, 그러니 저희의 청을 들어 3천 냥을
들여서 박가를 빼놓아 주느니보다는 월등 낫겠다고, 이렇게 이해까지
따진 끝의 각오이던 것입니다.
“진정?”
두목은 한번 더 힘을 주어 다집니다.
“오냐. 날 죽이기밖으 더 헐 테야?”
“저놈 잡아내랏!”
윤용규의 말이 미처 떨어지기 전에 두목이 뒤를 돌려다보면서 호령을
합니다. 등 뒤에 모여 섰던 수하 중에 서넛이 나가 우르르 방으로
몰려들어가더니, 왁진왁진 윤용규를 잡아 끕니다. 그러자 마침 안채로
난 뒷문이 와락 열리더니, 흰 머리채를 풀어 헤뜨린 윤용규의 노처가,
아이구머니 이 일을 어쩌느냐고 울어 외치면서 달려들어 뒤엎으러져
매달립니다.
화적패들은 윤용규를 앞뒤에서 끌고 떠밀고 하고,
윤용규는 안 나가려고 버둥대면서도 그래도 할 수 없이 문께로
밀려나옵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부스대는 윤용규의 손에 총대 하나가
잡혔읍니다.
총을 훌트려 쥔 그는 장독으로 고롱거리는 60객 답지않게 불끈 기운을
내어, 총대를 가로, 빗장 대듯 문지방에다가 밀어대면서 발로 문턱을
디디고는 꽉 버팅깁니다. 그러고 나니까는 아무리 상투를 잡아 끌고
몽둥이로 직신거리고 해도 으응 소리만 치지, 꿈쩍 않고 그대로
버팁니다. 수령이 그걸보다 못해 옆에 섰는 수하의 몽둥이를 채어가지고
윤용규가 총대에다가 버틴 바른편 팔을 겨누어 으끄러지라고 한번
내리칩니다. 한 것이 상거는 밭고 또 문지방이며 수하의 어깨 하며
걸리적거리는 것이 많아 겨냥은 삐뚜로 나가고 말았읍니다.
“따악!”
빗나간 겨냥이 옆으로 비껴, 이마를 바스러지게 얻어맞은 윤용규는
“어이쿠우!”
소리와 한가지로 피를 좌르르 흘리며 털씬 주저앉았읍니다.
동시에 윤용규의 노처가 고만 눈이 뒤집혀
“아이구우! 인제는 사람까지 죽이는구나아!
나두 죽여라아! 이놈들아!”
하고 외치면서 죽을동 살동 어느 겨를에 달려들었는지 두목의 팔을 덥씬
물고 늘어집니다. 윤용규는 주저앉은 채 정신이 아찔하다가 번쩍
깨났읍니다. 그는 화적패들이 무슨 내평으로 밖으로 끌어내려고 하는지
그건 몰라도, 아무려나 이롭지 못할 것 같아 되나 안되나 버팅켜 보았던
것인데, 한번 얻어맞고 정신이 오리소리한 판에 마침
그의 아내가 별안간
“……인제는 사람까지 죽이는구나!”
하고 왜장치는 이 소리에, 정말로 죽음이 박두한 줄로만 알았읍니다.
그러면 인제는 옳게 이놈들의 손에 죽는구나, 그렇다면 죽어도 그냥은
안 죽는다. 이렇게 악이 복받치자, 그는 벌떡 일어서면서 눈앞에 보이는
대로 칼 하나를 채어가지고는 마구 대고 휘저었읍니다.
더우기 눈이 뒤집히기는, 아무리 화적이라도 결단코 하지 않던 짓인데,
여인을, 하물며 늙은 여인을 치는 걸 본 것입니다. 그는 그의 아내가
두목의 팔을 물고 늘어진 줄은 몰랐고, 다만 두목이 아내의 머리끄덩을
잡아 동댕이를 쳐서, 물린 팔을 놓치게 하는 그 광경만 보았던
것입니다.
아무리 죽자살자 악이 받쳐 칼을 휘두른다지만 죽어가는 늙은인걸,
십여개나 덤비는 총개머리야 몽둥이야 칼이야 도끼야를 당해낼 수가
없던 것입니다.
윤용규가 마지막 목덜미에 도끼를 맞고 엎드러지자,
피를 본 두목은 두 눈이 불덩이같이 벌컥 뒤집혀졌읍니다.
그는 실상 윤용규를 죽일 생각은 없었읍니다.
그렇다고 윤용규 하나쯤 죽이기를 차마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제구혈로 잡아가쟀던 것입니다. 한때 만주에서 마적들이 하던
그 짓이지요. 볼모로 잡아다 두고서 가족들로 하여금 이편의 요구를
듣게 하쟀던 것입니다.
“노적(露積)허구 곡간에다가 불질러랏!”
두목은 뒤집힌 눈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윤용규를 노려보다가
수하를 사납게 호통하던 것입니다.
이윽고 노적과 곡간에서 하늘을 찌를 듯 불길이 솟아오르고,
동네 사람들이 그제서야 여남은 모여들어 부질없이 물을 끼얹고 하는
판에, 발가벗은 윤두꺼비가 비로소 돌아왔읍니다.
화적은 물론 벌써 물러갔고요.
윤두꺼비는 피에 물들어 참혹히 죽어넘어진 부친의 시체를 안고
땅을 치면서
“이놈의 세상이 어느 날에 망하려느냐!”
고 통곡을 했읍니다.
그리고 울음을 진정하고도, 불끈 일어서 이를 부드득 갈면서
“오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
고 부르짖었읍니다. 이 또한 웅장한 절규이었읍니다.
아울러 위대한 선언이었고요.
윤직원 영감이 젊은 윤두꺼비 적에 겪던 경난의 한 토막이
대개 그러했읍니다.
그러니, 그러한 고난과 풍파 속에서 모아 마침내는 피까지 적신
재물이니, 그런 일을 생각해서라도 오늘날 윤직원 영감이 단 한푼을
쓰재도 벌벌 떠는 것도 일변 무리가 아닐 것입니다.
돈을 모으는 데 무얼 어떻게 해서 모았다는 거야 윤직원 영감으로는
상관 할 바 아닙니다. 사실 착취라는 문자를 가져다가 붙이려고 하면,
윤직원 영감은 거 웬 소리냐고 훌훌 뛸 겝니다.
다 참, 내가 부지런하고 또 시운이 뻗쳐서 부자가 되었지, 작인이며
체계 돈 쓴 사람이며, 장리벼 얻어다 먹은 사람이며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서 말입니다.
바스티유 함락과는 항렬이 스스로 다르기는 하지만, 아뭏든 윤직원
영감은 그처럼 육친의 피로써 물들인 재산더미 위에 올라앉아 옛날
그다지도 수난 많던 시절과는 딴판이요, 도무지 태평한 이 시절을
생각하면 안심되고 만족한 웃음이 절로 솟아날 때가 많습니다.
하나, 말을 타면 견마도 잡히고 싶은 게 인정이라고 합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소란한 세상이 지나가고 재산과 몸이 안전한 세태를
당하자, 윤두꺼비는 돈으로는 남부러울 게 없어도, 문벌이 변변찮은 게
섭섭한 걸 비로소 느끼게 되었읍니다.
하기야 중년에 또다시 양복청년, 혹은 권총청년이라는 것 때문에 가끔
혼띔이 나곤 하지 않은 것은 아니더랍니다.
이런 일이 있었읍니다.
기미(己未) 경신(庚申), 바로 경신년 섣달입니다.
논이 마침 욕심나는 게 한 5천 평 수중에 들어오게 되어서, 그 땅값을
치르려고 4천 원을 집에다가 두어두고 땅 팔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던
날입니다. 그런데 그게 귀신이 곡을 할 일이라고, 윤두꺼비는 두고두고
기막혀 하였었지마는, 그걸 어떻게 염탐했는지 벌건 대낮에 쏙 빠진
양복장이 둘이 들이덤벼 가지고는 그 돈 4천 원을 몽땅 뺏어가던
것입니다. 머, 꿀꺽 소리 못하고 고스란히 내다가 내바쳤지요.
고 싸늘한 쇠끝에 새까만 구멍이 똑바로 가슴패기를 겨누고서
코앞에다가 들이댄 걸, 그러니 염라대왕이 지켜선 맥이었지요.
옛날 화적들은 밤중에나 들어와서 대문이나 짓부수고 하지요.
그 덕에 잘 하면 도망이나 할 수 있지요.
한데 이건, 바로 대낮에 귀한 손님 행차하듯이 어엿이 찾아와서는,
한다는 짓이 그 짓이니 꼼짝인들 할 수가 있었나요.
그래, 4천 원을 도무지 허망하게 내주고는, 윤두꺼비는 망연자실해서
우두커니 한식경이나 앉았다가, 비로소 방바닥에 떨어진 종이장으로
눈이 갔읍니다. 돈을 받았다는 영수증을 써놓고 갔던 것입니다.
“허! 세상이 개명을 허닝개루, 불한당놈들두 개명을 히여서, 영수징
써주구 돈 뺏어간다?”
윤두꺼비는 빼앗긴 돈 4천 원이 아까와서 꼬박 이틀 동안,
그리고 세상이 또다시 옛날 화적이 횡행하던 그런 시절이나 되고 보면,
그 일을 장차 어찌 하나 하는 걱정으로 꼬박 나흘 동안, 도합 엿새를
두고 밥맛과 단잠을 잃었읍니다.
그런 뒤로도 다시 두어 번이나 그런 긴찮은 손님네를 치렀읍니다.
돈은 그러나 한푼도 뺏기지 않았읍니다. 처음 겪은 일로 미루어
그 뒤로는 단돈 10원도 집에다가 두어두지를 않았으니까요.
시골서 돈을 많이 가지고 살면, 여러가지 공과금이야, 기부금이야,
또 가난한 일가 푸네기들한테 뜯기는 것이야, 그런 것 때문에
성가시기도 하고, 또 제일 왈, 그 양복 입은 그런 나그네가 종시 마음
놓이지 않기도 하고 해서, 윤두꺼비는 마침내 가권을 거느리고 서울로
이사를 했던 것입니다.
윤두꺼비가 이윽고 세상이 평안한 뒤엔, 집안의 문벌 없음을 섭섭히
여겨, 가문을 빛나게 할 필생의 사업으로 네 가지 방책을 추렸읍니다.
맨 처음은 족보에다가 도금(鍍金)을 했읍니다. 그럼직한 일가들을
추겨가지고 보소(譜所)를 내놓고는, 윤두섭의 제 몇대 윤아무개는 무슨
정승이요, 제 몇대 윤아무개는 무슨 판서요, 제 몇대 아무는 효자요,
제 몇대 아무 부인은 열녀요, 이렇게 그럴싸하니 족보(族譜)를 새로
꾸몄읍니다. 땅 짚고 헤엄치기지요.
그러노라고 한 2천 원 돈이 들었읍니다. 그렇지만 일이 수나로운 만큼,
그러한 족보 도금이야 조상 치레나 되었지, 그리 신통할 건 없었읍니다.
아무데 내놓아도, 말대가리 윤용규 자식 윤두꺼비요, 노름꾼 윤용규의
자식 윤두섭인걸요. 자연, 허천들린 뱃속처럼 항상 뒤가 헛헛하던
것입니다.
신씨(申氏) 성 가진 친구들 잔나비라고 육장 놀려주면, 그래 그러던
끝에 그 신씨가 동물원엘 가서 잔나비를 보면 어찌 생각이 이상하고,
내가 정말 잔나비거니 여겨지는 수가 있답니다.
그 푼수로, 누구 사음이나 한 자리 얻어 할 양으로 보비위나 해주려는
사람이, 윤두꺼비네의 그 신편족보(新編族譜)를 외어가지고 다니면서
매일 몇번씩 윤정승 아무개씨의 제 몇대손 윤두섭씨, 윤판서 아무개씨의
제 몇대손 윤두섭씨, 이렇게 대고 불러주었으면, 가족보(假族譜)나마
저으기 실감이 나서 듣는 당자도 좋아하고 하겠지만,
어디 그런 영리하고도 실없은 사람이야 있나요. 혹은 작곡(作曲)을 해
가지고 그것을 시체 유행 가수를 시켜 소리판에다가 넣어서 육장
틀어놓고 듣는다면 모르지요마는,
족보는 아뭏든 그래서 득실이 상반이었고, 그 다음은 윤두꺼비 자신이
처억 벼슬을 한 자리 했읍니다.
시골은 향교(鄕校)라는 게 있어서, 공자님 맹자님을 비롯하여 옛날 여러
성현을 모시는 공청이 있읍니다.
춘추로 소를 잡고 돼지를 잡고 해서 제사를 지내고 하지요.
들이껴서는 그게 바로 학교더랍니다.
이 향교의 맨 우두머리 가는 어른을 직원(直員)이라고 합니다.
직원을, 옛날에는 그 골에서 학문과 덕망이 높은 선비가, 여러 사람의
촉망으로 뽑혀서 지내곤 했는데, 근년 향교의 재정이며 모든 범백을
군청에서 맡아보게 된 뒤로부터는 전과는 기맥이 좀 달라졌는지,
장의(掌議)라고 바로 직원의 아랫길 가는 역원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한테 사음이며 농토 같은 것을 줄 수 있는 다액납세자
(多額納稅者)라면 직원 하나쯤 수월한 모양입니다.
윤두꺼비로서야 과거를 보아 벼슬을 해서 양반이 되겠읍니까?
능참봉을 하겠읍니까. 아쉰 대로 향교의 직원이 만만했겠지요.
그래 그는 직원이 되었읍니다. 그래서 윤두섭이란 석자 위에 무어나
직함이 붙기를 자타가 갈망하던 끝이라 윤두꺼비는 넙죽 뛰어 윤직원
영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뒤로 3년 동안 윤두꺼비(가 아니라) 윤직원 영감은 직원으로
지내면서 춘추 두 차례씩 향교에 올라가
“흥 ─”
“바이 ─”
소리에 맞추어, 누가 기운이 더 세었던지 모르는 공자님과 맹자님을
비롯하여, 여러 성현께 절을 하는 양반이요 선비 노릇을 착실히
했읍니다. 공자님과 맹자님이 누가 기운이 더 세었던지 모르겠다는
말은, 윤직원 영감이 창조해낸 억만고의 수수께끼랍니다.
다른 게 아니라, 어느 해 여름인데 윤직원 영감이 향교엘
처억 올라오더니, 마침 풍월(風月)을 하느라고 흥얼흥얼하고 앉았는
여러 장의와 선비들더러 밑도 끝도 없이
“대체 거, 공자님허구 맹자님허구 팔씨름을 히였으면 누가 이겼으꼬?”
하고 물었더랍니다.
장의와 선비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분간 못해서 입만 떠억
벌렸고, 아무도 윤직원 영감의 궁금증은 풀어주지는 못했답니다.
3년 동안 직원을 지내다가, 서울로 이사를 해오는 계제에 그 직책을
내놓았읍니다. 그러나 직원이라는 영광스런 직함은, 공자님과 맹자님이
팔씨름을 했으면 누가 이겼을까? 하는 수수께끼로 더불어 영원히
처졌던 것입니다.
그 다음, 윤직원 영감이 집안 문벌을 닦는 데 또 한 가지의 방책은
무어냐 하면, 양반 혼인이라는 좀더 빛나는 사업이었읍니다.
외아들(서자 하나가 있기는 하니까 외아들이랄 수는 없지만 아뭏든)
창식은 나이 근 50세요, 벌써 옛날에 시골서 아전집과 혼인을 했던
터이라 치지 도외하고, 딸은 서울 어느 양반집으로 시집을 보냈읍니다.
오막살이에 가랭이가 찢어지게 가난한 집인데, 그나마 방정맞게시리
혼인한 지 일년 만에 사위가 전차에 치어죽고, 딸은 새파란 과부가
되어 지금은 친정살이를 하지만,
아무려나 양반혼인은 양반혼인이었읍니다.
또 맏손자며느리는 충청도의 박씨네 문중에서 얻어왔읍니다.
역시 친정이 가난은 해도 패를 찬 양반의 씹니다.
둘째손자며느리는 서울 태생인데, 시구문 밖 조씨네 집안이나, 그렇다고
배추장수네 딸은 아니고, 파계를 따지면 조대비(趙大妃)와
서른일곱촌인지 아홉촌인지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버젓하게 양반 사돈을 세 집이나 두게 된 것은
윤직원 영감으로 가히 한바탕 큰기침을 할 만도 합니다.
그 다음 마지막 또 한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이게 가장 요긴하고 값나가는 품목(品目)입니다.
집안에서 정말 권세 있고 실속 있는 양반을 내놓자는 것입니다.
군수 하나와 경찰서장 하나……
게다가 마침맞게 손자가 둘이지요.
하기야 군수보다도 도장관(道知事)이 좋겠고, 경찰서장보다는
경찰부장이 좋기는 하겠지만, 그건 너무 첫술에 배불러지라는 욕심이라
해서, 알맞게우선 군수와 경찰서장을 양성하던 것입니다.
5. 마음의 貧民窟[빈민굴]
윤직원 영감은 그처럼 부민관의 명창대회로부터 돌아와서,
대문 안에 들어서던 길로 이 분풀이, 저 화풀이를 한데 얹어 그 알뜰한
삼남이 녀석을 데리고, 며느리 고씨더러, 짝 찢을 년이니 오두가 나서
그러느니, 한바탕 귀먹은 욕을 걸찍하게 해주고 나서야 저으기 직성이
풀려, 마침 또 시장도 한판이라 의관을 벗고 안방으로 들어갔읍니다.
아랫목으로 펴놓은 돗자리 위에 방안이 온통 그들먹하게시리 발을
개키고 앉아 있는 윤직원 영감 앞에다가, 올망졸망 사기 반상기가
그득 박힌 저녁상을 조심스레 가져다놓는 게 둘째손자며느리 조씹니다.
방금 경찰서장감으로 동경 가서 어느 사립대학의 법과에 다니는
종학(鍾學)의 아낙입니다.
서울 태생이요 조대비의 서른일곱촌인지 아홉촌인지 되는
양반집 규수요, 시구문 밖이 친정이기는 하지만 배추장수 딸은 아니라도
학교라곤 근처에도 못 가보았고 얼굴은 얇디얇은 납작바탕에 주근깨가
다닥다닥 박혀서, 그닥출 수는 없는 인물입니다.
그런 중에도 더욱 안된 건 잡아 뽑아놓은 듯이 뚜하니 나온
위아랫 입술입니다. 이 쑤욱 나온 입술로, 그 값을 하느라고 그러는지
새수빠진 소리를 그는 퍽도 잘 합니다. 새서방 종학이한테 눈의 밖에
나서 소박을 맞는 것도 죄의 절반은 그 입술과 새수빠진 소리 잘 하는
것일 겝니다.
종학은 동경으로 유학을 가면서부터는 아주 털어 내놓고서 이혼을
해달라고 줄창치듯 편지로 집안 어른들을 졸라대지만,
윤직원 영감으로 앉아서 본다면 천하 불측한 놈의 소리지요.
아뭏든 그래서 생과부가 하나……
밥상 뒤를 따라 쟁반에다가 양은주전자에 술잔을 받쳐들고 들어서는 게
맏손자며느리 박씹니다.
이 집안의 업덩어립니다. 얌전하고 바지런해서, 그 크나큰 안살림을
곧잘 휘어나가고, 게다가 시할아버지의 보비위까지 잘하니 더할 나위
없읍니다.
인물도 얼굴이 동그름하고 눈이 시원스럽게 생겨서, 올해 나이
서른이로되 도리어 스물다섯 살 먹은 동서보다도 젊어 보입니다.
다만 한가지, 맏아들 경손(慶孫)이가 금년 열다섯 살인 걸, 아직도
아우를 못 보는 게 흠이라면 흠이라고 하겠지만, 하기야 손(孫)이
귀한 건 이 집안의 내림이니까요.
한데, 이 여인 역시 신세가 고단한 편입니다. 무슨 소박이니 공방이니
하는 문자까지 가져다 붙일 것은 없어도, 남편이요 이 집안의 장손인
종수(鍾秀)가 시골로 내려가서 첩살림을 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생과부 축에 끼지 않을 수가 없던 것입니다.
종수는 윤직원 영감의 가문(家門) 빛내기 위한 네 가지 사업 가운데,
군수와 경찰서장을 만들어내려는 품목 중에 편입된 그 군수 재목입니다.
그래 5, 6년 전부터 고향의 군(郡)에서 군서기(郡雇員) 노릇을
하느라고, 서울서 따들인 기생첩을 데리고 치가를 하는 참이랍니다.
이래서 생과부가 둘……
맏손자며느리 박씨가 들고 들어오는 술반을 받아가지고, 웃목 화로
옆으로 다가앉아 술을 데우는 게 윤직원 영감의 딸 서울아씨라는,
진짜 과붑니다.
양반혼인을 하느라고, 서울 어느 가랭이가 찢어지게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갔다가, 새서방이 일 년 만에 전차에 치어죽어서 과부가 된
그 여인입니다.
이마가 좁고 양미간이 넓고 콧잔등은 푹신 가라앉고, 온 얼굴에 검은
깨를 끼얹어 놓았고 목이 옴츠라지고, 이런 생김새가 아닌게아니라
청승맞게는 생겼읍니다.
“네가 소갈머리가 고따우루 생깄으닝개루,
저 나이에 서방을 잡어먹었지!”
윤직원 영감은 딸더러 이렇게 미운 소리를 곧잘 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할 때면, 소갈머리뿐 아니라, 생김새도 그렇게
생겨먹었느니라고 으례껏 생각을 합니다.
젊은 과부다운 오뇌는 없지 않지만, 자라기를 호강으로 자랐고, 또 이내
포태(胞胎)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스물여덟이라는 제 나이보다 훨씬
애띠기는 합니다.
이래서, 생과부 통과부 등 합하여 과부가 셋……
그러나 과부가 셋뿐인 건 아닙니다.
시방 건넌방에서 잔뜩 도사리고 앉아, 무어라고 트집거리가 생기기만
하면 시아버지 되는 윤직원 영감과 한바탕 맞다대기를 할 양으로 벼르고
있는 이집의 맏며느리 고씨, 이 여인 또한 생과붑니다.
그리고 또 아까 안중문께로 나갔다가, 마침 윤직원 영감이 삼남이
녀석을 데리고 서서 며느리 고씨더러 군욕질을 하는 걸 듣고 들어 와서는, 그 말을 댓 발이나 더 잡아늘려 고씨한테 일러바친 침모
전주댁, 이 여인이 또 진짜 과붑니다.
이래서 이 집안에 과부가 도합 다섯입니다.
도합이고 무엇이고 명색 여인네 치고는 행랑어멈과 시비 사월이만
빼놓고는 죄다 과부니 계산이야 순편합니다.
이렇게 생과부, 통과부, 떼과부로 과부 모를 부어놓았으니 꽃모종이나
같았으면 춘삼월 제철을 기다려 이웃집에 갈라주기나 하지요.
이건 모는 부어놓고도 모종으로 갈라줄 수도 없는 인간 모종이니 딱한
노릇입니다.
밥상을 받은 윤직원 영감은 방안을 한바퀴 휘휘 둘러보더니
“태식이는 어디 갔느냐?”
하고 누구한테라 없이, 띄어놓고 묻습니다.
윤직원 영감이 인간 생긴 것치고 이 세상에서 제일 귀애하는 게 누구냐
하면, 시방 어디 갔느냐고 찾는 태식입니다.
지금 열다섯 살이고, 나이로는 증손자 경손이와 동갑이지만 아들은
아들입니다. 그러나 본실 소생은 아니고, 시골서 술에미(酒女[주녀])를
상관한 것이, 그걸 하나 보았던 것입니다.
배야 뉘 배를 빌려 생겨났던 간에 환갑이 가까와서 본 막내동이니,
아버지로 앉아서야 이뻐할 건 당연한 노릇이겠지요. 하물며 낳은 지
삼칠일 만에 에미한테서 데려다가 유모를 두고 집안의 뭇 눈치 속에서
길러낸 천더꾸러기니, 여느 자식보다 불쌍히 여겨서라도 한결 귀애할 게
아니겠다구요.
윤직원 영감은 밥을 먹어도 꼭 태식이를 데리고 같이 먹곤 하는데,
오늘 저녁에는 마침 눈에 뜨이지 않으니까 숟갈도 들려고 않고서 그애를
먼저 찾던 것입니다.
웃목께로 공순히 서서 있던 두 손자며느리는, 이거 또 걱정을 한바탕
단단히 들어두었나 보다고 송구해하는 기색만 얼굴에 드러내고 있고,
그러나 딸 서울아씨는 친정아버지의 성화쯤 그다지 겁나지 않는 터라
“방금 마당에서 놀았는걸!”
하고 심상히 대답을 하면서, 술주전자를 들고 밥상 옆으로 내려옵니다.
“방금 있었넌디 어디루 갔담 말이냐?
눈에 안 뵈거덜랑 늬가 잘 동촉히여서 찾어보구 좀 그리야지……”
아니나다를까, 윤직원 영감은 딸더러 하는 소리는 소리지만
온 집안식구들 한테다 대고 나무람을 하던 것입니다.
“동촉이구 무엇이구, 제멋대루 나가 돌아다니는 걸 어떻게 일일이
참견허라구 그리시우?…… 인전 나이 열다섯 살이나 먹었으니
아버니두 제발 얼뚱애기 거천허드끼 그리시지 좀 마시우!”
“흥! 내가 그렇게라두 돌아부아 부아라?…… 늬들이 작히 그걸 불쌍히
여겨서 조석이라두 제때 챙겨 멕이구 헐 듯싶으냐?”
“아버니가 너무 역성이나 두시구 떠받아 주시구 그리시니깐
집안 식구는 다아 믿거라구 모른 체헌다우!”
“말은 잘 현다만, 인제 나 하나 발뻗어 부아라?
그것이 박 박적(바가지)들구 고샅담박질헐 티닝개.”
“제몫으루 천석거리나 전장해주실 테믄서 그리시우? 천석꾼이가 거지가
되믄 5백석거리밖엔 못탄 년은 금시루 기절을 해 죽겠수!”
서자요 병신인 태식이한테는 천석거리를 몫지어 놓고,
서울아씨 저한테는 5백석거리밖엔 주지 않았대서, 그걸 물고 뜯는
수작입니다. 서울아씨로는 육장 계제만 있으면 내놓는 불평이지요.
이렇게 부녀가 태격태격하려고 하는 판인데, 방 웃미닫이가 사르르
열리더니, 문제의 장본인 태식이가 가만히 고개를 들이밀고는 방안을
휘휘 둘러봅니다. 그러다가 윤직원 영감이 눈에 띄니까는
들이 천동한 것처럼 우당퉁탕 뛰어들어 윤직원 영감의 커단 무릎 위에
펄씬 주저앉읍니다.
그 서슬에 서울아씨는 손에 들고 있던 술주전자를 채고서 이맛살을
찌푸리고, 윤직원 영감은 턱을 치받쳤으나 헤벌씸 웃으면서
“허허어 이 자식아, 원!”
하고 귀엽다고 정수리를 만져줍니다.
아이가 사랑에 있는 상노아이놈 삼남이와 동기간이랬으면 꼭 맞게
생겼읍니다.
열다섯 살이라면서, 몸뚱이는 네댓살박이만큼도 발육이 안 되고,
그렇게 가냘픈 몸 위에 가서 깜짝 놀라게 큰 머리가 올라앉은 게
하릴없이 콩나물 형국입니다.
“이 자식아, 좀 죄용죄용허지 못허구, 그게 무슨 놈의 수선이냐?
응?…… 이 코! 이 코 좀 보아라……”
엿가래 같은 누런 콧줄기가 들어가지고는 숨을 쉴 때마다 이건 바로
피스톤처럼 바쁘게 들락날락합니다.
“……코가 나오거덜랑 횅 풀던지, 좀 씻어 달라구 하던지 않구서,
이게 무어란 말이냐? 응? 태식아……”
윤직원 영감은 힐끔, 딸과 손자며느리들을 건너다보면서,
손수 두 손가락으로 태식의 콧가래를 잡아 뽑아냅니다. 맏손자며느리가
재치있게 걸레를 집어들고 옆으로 대령을 합니다.
“앱배!”
태식은 코를 풀리고 나서, 고개를 되들고 앱배를 부릅니다.
“오냐?”
“나, 된……”
돈이란 말인데, 어리광으로 입을 가래비쌔고 말을 하니까 된이 됩니다.
“돈? 돈은 또 무엇허게? 아까 즘심때두 주었지? 그놈은 갖다가 무엇
히였간디?”
“아탕 사먹었저.”
“밤낮 그렇게 사탕만 사먹어?”
“나, 된 주엉!”
“그리라…… 그렇지만 이놈은 잘 두었다가 내일 사먹어라? 응?”
“응.”
윤직원 영감이 염낭에서 십전박이 한푼을 꺼내 주니까,
아이는 히히 하고 그의 독특한 기성을 지르면서 무릎으로부터
밥상 앞으로 내려앉습니다.
윤직원 영감은 이렇게 한바탕 막내동이의 재롱을 보고 나서야,
서울아씨가 부어주는 석잔 반주를 받아 마십니다. 그동안에 태식은
씨근버근 넘싯거리면서 밥상에 있는 반찬들을 들이 손가락으로 거덤거덤
집어다 먹느라고 정신이 없읍니다. 집어다 먹고는 옷에다가 손을 쓱쓱
씻고 집어오다가 질질 흘리고 해도 서울아씨는 아버지 앞에서라
지청구는 차마 못하고, 혼자 이맛살만 찌푸립니다.
반주 석잔이 끝난 뒤에 윤직원 영감은 비로소 금으로 봉을 박은
은숟갈을 뽑아들고 마악 밥을 뜨려다가,
문득 고개를 쳐들더니 심상찮게 두 손자며느리를 건너다봅니다.
“아니, 야덜아……”
내는 말조가 과연 졸연찮습니다.
“……늬들, 왜 내가 시키넌 대루 않냐? 응?”
두 손자며느리는 벌써 거니를 채고서 고개를 떨어뜨립니다.
윤직원 영감은 밥이 새하얀 쌀밥인 걸 보고서, 보리를 두지 않았다고
그걸 탄하던 것입니다.
“……보리, 벌써 다아 먹었냐?”
“안직 있어요!”
맏손자며느리가 겨우 대답을 합니다.
“워너니 아직 있을 티지…… 그런디, 그러먼 왜 이렇기 맨쌀만
히여먹냐? 응?”
조져도 아무도 대답이 없읍니다.
“……그래, 내가 허넌 말은 동네 개 짖넌 소리만두 못 예기넝구나?
어찌서 보리넌 조깨씩 누아먹으라닝개 쥑여라구 안 듣구서,
이렇게 허연 쌀만쌂어먹으러 드냐?……”
“그 궁상스런 소리 작작 허시우, 아버니두……”
서울아씨가 듣다 못해 아버지를 핀잔을 주는 것입니다.
“쌀밥 좀 먹기루서니 만석꾼이 집안이 당장 망헐까 바서 그리시우?
마침 보리쌀을 삶은 게 없어서 그랬대요…… 고만두시구,
어여 진지나 잡수시우!”
“아니, 보리쌀은 삶잖구 그냥 누아두먼, 머 제절루 삶어진다더냐?
삶은놈이 읎거던 다아 요량을 히여서, 미리미리 조깨씩 삶어 두구
끄니때먼 누아 먹어야지!…… 그게 늬덜이 모다 호강스러서 보리밥이
멕기 싫으닝개루 핑계대넌 소리다, 핑계대넌 소리여. 공동뫼지를 가
부아라? 핑계 읎넌 무덤 하나나 있데야?……”
윤직원 영감은 아까운 듯이 밥을 한술 떠넣고 씹으면서 씹으면서
생각하니 더욱 아깝든지 또다시 뇌사립니다. 자기 자신이 부연 쌀밥만
먹기가 아깝거든, 이 아까운 쌀밥을 온 집안 식구와, 심지어 종년이며
행랑것들까지 다들 먹을 것이고, 솥글겅이와 밥티가 쌀밥인 채로
수채구멍으로 흘러나갈 일을 생각하면,
그야 소중하고 아깝기도 했을 겝니다.
“……글씨 야덜아, 그 보리밥이랑게 사람으 몸에 무척 좋단다.
또오, 먹기루 말허더래두 볼깡볼깡 씹히넝게 맨쌀밥만 먹기보다는
훨씬 입맛이 나구…… 그런디 늬덜은 왜 그걸 안 먹으러 드냐?……”
태식이가 밥을 먹느라고 째금째금 시근버근 요란을 떨 뿐이지,
아무도 대답이 없고 두 손자며느리는 그저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고
순종하겠다는 빛을 얼굴에 드러내기에 애가 쓰입니다.
“……그러나마 늬덜더러 구찬헌 보리방애를 찌여 먹으랬을세 말이지,
아 시골서 작인덜 시키서 대껴서, 그리서 올려온 것이니,
흔헌 물으다가 북북 씻어서 있는 나무에 푹신 쌂어 두구 조깨씩 누아
먹기가 그리 심이 들 게 무어람 말이냐?……
허어, 참 딱헌 노릇이다!……”
말을 잠깐 멈추더니, 그 다음엔 아주 썩 구수하게 음성도 부드럽게……
“……야덜아, 그러구 말이다. 거, 보리밥이 그런 성불러두, 그걸 노상
먹느라먼 글씨, 애기 못낳던 여인네가 포태를 헌단다!
포태를 헌대여! 응?”
과부나 생과부가 남편이 없이 공규는 지켜도 보리밥만 노상 먹노라면
애기를 밴단 말이겠다요.
그러나, 그 말의 반응은 실로 효과 역력했읍니다.
한 것이, 맏손자며느리는, 그렇다면 내일 아침부터 꼭꼭 보리밥을
먹어야 하겠다고 좋아했고, 둘째손자며느리는 아무려나 나도 먹어는
보겠다고 유념을 했고, 서울아씨는 나도 먹었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을 했으니 말입니다.
다만, 이편 건넌방에서 시방 싸움을 잔뜩 벼르고 앉아 있는 며느리
고씨만은, 저 영감태기가 또 능청맞게 애들을 속여먹는다고 안방으로
대고 눈을흘깁니다.
참말이지, 조금만 무엇 했으면, 우르르 쫓아와서 그 허연 수염을
움켜쥐고 쌀쌀 들이잡아 동댕이를 쳐주고 싶게 하는 짓이,
일일이 밉광머리스럽습니다.
이 고씨는, 말하자면 이 세상 며느리의 썩 좋은 견본이라고 하겠읍니다.
── 암캐 같은 시어머니, 여우나 꽁꽁 물어가면 안방 차지도 내 차지,
곰방조대도 내 차지.
대체 그 시어머니라는 종족이 며느리라는 종족한테 얼마나 야속스러운
생물이거드면, 이다지 박절할 속담까지 생겼읍니다.
열여섯 살에 시집을 온 고씨는 올해 마흔일곱이니, 작년 정월 시어머니
오씨가 죽는 날까지 꼬박 31년 동안 단단히 그 시집살이라는 걸
해왔읍니다. 사납대서 삵괭이라는 별명을 듣고, 인색하대서
진지리꼽재기라는 별명을 듣고, 잔말이 많대서 담배씨라는 별명을 듣고
하던 시어머니 오씨(그러니까, 바로 윤직원 영감의 부인이지요)
그 손 밑에서 31년 동안 설운 눈물 많이 흘리고 고씨는 시집살이를
해오다가, 작년 정월에야 비로소 그 압제 밑에서 해방이 되었읍니다.
남의 집 종으로 치면 속량이나 된 셈이지요. 그러나 막상 이 고씨라는
여인이 하 그리 현부(賢婦)였더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닙니다.
하기야 아무리 흠잡을 데 없이 얌전스럽고 덕이 있고 한 며느리라도,
야속한 시어머니한테 걸리고 보면 반찬 먹은 개요, 고양이 앞에 쥐요
하지 별수가 없는 것이지만,
고씨로 말하면 사람이 몸집 생김새와 같이 둥실둥실한 게 후덕하기는
하나, 대단히 이퉁이 세어 한번 코를 휘어붙이면 지렛대로 떠곤질러도
꿈쩍을 않고, 또 몹시 거만진 성품까지 없지 않습니다.
사상의(四象醫)더러 보라면 태음인(太陰人)이라고 하겠지요.
그래 아뭏든 고씨는,
그 말썽 많은 시집살이 31년을 유난히 큰 가대를 휘어잡아 가면서
그래도 쫓겨난다는 큰 파탈은 없이 오늘날까지 살아왔읍니다.
그러는 동안에 종수와 종학 두 아들을 낳아서 윤직원 영감으로 하여금
군수와 경찰서장을 양성할 동량(棟梁)도 제공했고, 그리고 이제는 나이
마흔일곱에 근 오십이요, 머리가 반백에 손자 경손이가 중학교 2년급을
다니게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계제에, 작년 정월에는 암캐 같은 시어머니었든지 테리야 같은
시어머니었든지 간에 좌우간, 그 시어머니 오씨가 여우가 꽁꽁 물어간
것은 아니나 당뇨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러므로 주부(主婦)의 자리가
비었은즉 제일 첫째로 며느리인 고씨가 곰방조대야 피종을 피우는
터이니 차지를 안해도 상관 없겠지만,
안방 차지는 응당히 했어야 할 게 아니겠다구요?
장모는 사위가 곰보라도 이뻐하고,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뻐드렁이에
애꾸이눈라도 이뻐는 하는 법인데, 윤직원 영감은 어떻게 된 셈인지
며느리 고씨를 미워하기를 그의 부인 오씨 못잖게 미워했읍니다.
노마나님 오씨의 초종범절을 치르고 나서, 서울아씨가 올케 되는
고씨한테 안방을(섭섭하나마) 내줘야 하게 된 차인데 윤직원 영감이
처억 간섭을 한다는 말이……
“야야! 너두 아다시피, 내가 조석을 꼭꼭 안방으 들와서 먹넌디,
아늬가 안방을 네 방이라구 이름지어 각구 있으량이면 내가
편찬히여서 어디 쓰겄냐? 그러니 나 죽넌 날까지나 그냥저냥
웃방(건넌방)을 쓰구 지내라.”
핑계야 물론 그럴 듯합니다. 그래서 안방은 노마나님 오씨의 시체만
나갔을 뿐이지 전대로 서울아씨가 태식을 데리고 거처를 하고,
고씨는 건넌방에 눌러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흥! 만만한 년은 제 서방 굿도 못 본다더니,
나는 두다리 뻗는 날까지 접방살이(곁방살이·행랑살이) 못 면헐걸!”
고씨는 방 때문에 비위가 상할 때면 으례껏 이런 구누름을
잊지 않곤 합니다. 그러나 고씨의 억울한 건
약간 안방 차지를 못하는 것 따위만이 아닙니다.
시어머니 오씨는 마지막 숨이 지는 그 시각까지도 며느리 고씨를
못먹어 했읍니다.
“오냐, 인재넌 지긋지긋허던 내가 급살맞어 죽으닝개,
시언허구 좋아서 춤출 사람 있을 것이다!”
이건 물론 며느리 고씨를 물고 뜯는 말이요, 이제 자기가 죽고 나면
며느리 고씨가 집안의 안어른이 되어가지고, 마음대로 휘둘러가면서
지낼 테라서, 그 일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밉고 하여, 숨이 넘어가는
마당에서까지 그대도록 야속한 소리를 했던 것입니다.
미상불 고씨는 어머니의 거상을 입으면서부터 기를 탁 폈읍니다.
예를 들자면 드리없지만, 가령 밤 늦게까지 건넌방에서 아무리
성냥 긋는 소리가나도 이튿날 새벽같이
“밤새두룩 댐배질만 허니라구 성냥 열일곱번
그신(그은) 년이 어떤 년이냐?”
하고, 야단을 치는 사람이 없어 잠 못 이루는 밤을
담배로 동무삼아 밝히기도 무척 임의로왔읍니다.
또, 나들이를 한 사이에 건넌방 문에다가 못질을 해서 철갑을 하는 꼴을
안 당하게 된 것도 다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만 조금 펴고 지내게 되었을 뿐이지,
실상 아무 실속도 없고 말았읍니다. 시아버지 윤직원 영감이
처결하기를, 집안의 살림살이 전권(全權)이 마땅히 물려받아야 할 주부
고씨는 젖혀놓고서, 한 대(一代)를 껑충 건너뛰어 손자대(孫子代)로
내려가게 했던 것입니다.
고씨의 며느리 되는 종수의 아낙인 박씨 즉 윤직원 영감의
맏손자며느리가 시할머니의 뒤를 바로 이어서 집안의 안살림을 도맡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묻지 않아도 내가 주부로 들어앉아 며느리를 거느리고 집안
살림을 해가는 어른이 되겠거니 했던 고씨는 고만 개밥의 도토리가 되어
버리고, 도리어 시어머니 오씨 대신에 며느리 박씨한테 또다시
시집살이(?)를 하게쯤 된 셈평이었읍니다. 선왕(先王)의 뒤를 이어
즉위는 했으나 권력은 왕자가 쥐게 된 그런 판국과 같다고 할는지요.
그런데다가 시아버지 윤직원 영감은 죽고 없는 마누라 몫까지 해서,
갈수록 더 못 먹어서 으릉으릉 뜯지요. 시뉘 되는 서울아씨는
내가 주장입네 하는 듯이 안방을 차지하고 누워서 사사이 할퀴려
들지요. 그런데, 또 더 큰 불평과 심화거리가 있으니……
고씨는 시방 동경엘 가서 경찰서장 감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둘째아들
종학을 낳은 뒤로부터 스물네 해 이짝, 남편 윤주사 창식과 금슬이 뚝
끊겨, 생과부로 좋은 청춘을 늙혀버렸읍니다.
윤주사는 시골서부터 첩장가를 들어 딴살림을 했었고,
서울로 올라올 때도 그 첩을 데리고 와서 지금 동대문 밖에다가 치가를
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요새는, 그새까지는 별로 않던 짓인데, 새 채비로 기생첩 하나를
더 얻어서 관철동에다 살림을 차려놓고는 이 집으로 가서 놀다가
저 집으로 가서 누웠다 하며 지냅니다.
그리고는 본집에는 돈이나 쓸 일이 있든지, 또 부친 윤직원 영감이 두번
세번 불러야만 마지 못해 오곤 하는데, 오기는 와도 사랑방에서
부친이나 만나보고 그대로 횡허케 돌아가지, 안에는 도무지 발걸음도
않습니다.
이 윤주사라는 사람은 성미가 그의 부친 윤직원 영감과는 딴판이요,
좀 호협한 푼수로는 그의 조부 말대가리 윤용규를 닮았다고나 할는지,
그리고 삵괭이요 진지리꼽재기요 담배씨라던 그의 모친 오씨와는 더욱
딴세상 사람입니다.
도무지 철을 안 이후로 나이 마흔여섯이 되는 이날 이때까지,
남과 언성을 높여 시비 한번인들 해본 적이 없읍니다.
남이 아무리 낮게 해야, 그저 그런가보다고 모른 체할 따름이지,
마주 대고 궂은 소리라도 하는 법이 없읍니다. 본시 사람이 이렇게
용하기 때문에 그를 낮아하는 사람도 별반 없지만……
가산이고 살림 같은 것은 전혀 남의 일같이 불고하고,
또 거두잡아서 제법 살림살이를 할 줄도 모릅니다.
부친 윤직원 영감의 말대로 하면, 위인이 농판이요, 오십이 되도록 철이
들지를 않아서 세상 일이 죽이 끓는지 밥이 넘는지 통히 모르고
지내는 사람입니다.
미워서 꼬집자면 그렇게 말도 할 수가 없는 건 아니겠지요.
그러나, 또 좋게 보자면 세상 물욕(物慾)을 초탈한 사람이라고도
하겠지요.
누가 어려운 친척이나 친구가 찾아와서 아쉰 소리를 할라치면,
차마 잡아떼지를 못하고서 있는 대로 털어줍니다.
남이 빚 얻어 쓰는데 뒷도장 눌러주고는, 그것이 뒤집혀 집행을 맞기가
일쑵니다.
윤직원 영감은 몇번 그런 억울한 연대채무란 것에 몇만 원 돈,
손을 보던 끝에 이래서는 못쓰겠다고 윤주사를 처억 준금치산선고를
시켜버렸읍니다.
그렇지만, 그랬다고 쓸 돈 못쓸 리는 없는 것이어서,
윤주사는 준금치산선고를 받은 다음부터는 윤두섭이라는 부친의 도장을
새겨서 쓰곤 합니다.
윤두섭의 아들 윤창식이가 찍은 도장이면 그것이 위조 도장인 줄
알고서도 몇천 원 몇만 원의 수형을 받아주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차용증서도 그 도장으로 통용이 되니까요.
나중에 가서 일이 뒤집혀지면 윤직원 영감은 그래도 자식을 인장
위조죄로 징역은 보낼 수가 없으니까, 그런 걸 울며 겨자 먹기라든지,
할 수 없이 그 수형이면 수형, 차용증서면 차용증서를 물어주곤 합니다.
윤주사 창식 그는 아뭏든 그러한 사람으로서, 밤이고 낮이고
하는 일이라고는 쌍스럽지 않은 친구 사귀어 두고 술 먹으러 다니기,
활쏘기, 제철 따라 승지(勝地)로 유람다니기, 옛 한서(漢書) 모아놓고
뒤지기, 한시(漢詩)지어서 신문사에 투고하기, 이 첩의 집에서
술 먹다가 심심하면 저 첩의 집으로 가서 마작하기,
도무지 유유자적한 게 어떻게 보면 신선인 것처럼이나
탈속이 되어 보입니다.
물론 첩질이나 하고, 마작이나 하고, 요정으로 밤을 도와 드나드는 걸
보면 갈데없는 불량자고요.
사람마다 이상한 괴벽은 다 한가지씩 있게 마련인지,
윤주사 창식도 야릇한 편성이 하나 있읍니다.
그가 마음이 그렇듯 활협하고, 남의 청을 거절 못하는 인정 있는 구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 어느 교육계의 명망유지 한 사람이 그의 문을
두드린 일이 있었읍니다.
소간은 그 명망유지씨가 후원을 하고 있는 사학(私學) 하나가 있는데,
근자 재정이 어렵게 되어 계제에 돈을 한 20만 원 내는 특지가가
있으면, 그 나머지는 달리 수합을 해서 재단의 기초를 완성시키겠다는
것이고, 그러니 윤주사더러 다 좋은 사업인즉 10만 원이고 20만 원이고
내는 게 어떠냐고, 참 여러가지 말과 구변을 다해 일장 설파를
했읍니다. 윤주사는 자초지종 그러냐고, 아 그러다뿐이겠느냐고 연해
맞장구를 쳐주어가면서 듣고 있다가 급기야 대답할 차례에 가서는
한단 소리가
“학교가 없어서 공부를 못하기보다는 돈이 없어서 있는 학교도
못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하고 엉뚱한 반문을 하더라나요. 그래 명망유지씨는 신명이 풀려
두어 마디 더 이야기를 하다가 돌아갔읍니다.
아닌게아니라, 윤주사는 남의 사정을 쑬쑬히 보아주는 사람이면서도
공공사업이나 자선사업 같은 데는 죽어라고 일전 한푼 쓰지를 않습니다.
부친 윤직원 영감은 그래도 곧잘 기부는 하는 셈이지요. 시골서 살 때엔
경찰서의 무도장(武道場)을 독담으로 지어놓았고, 소방대에다가
100원씩 50원씩 두어 번이나 기부를 했고, 보통학교 학급 증설 비용으로
200원 내논 일이 있었고, 또 연전 경남 수재 때에는 벙어리를 새로
사다가 동전으로 1원 72전을 넣어서 태식이를 주어서 신문사로 보내서
사진까지 신문에 난 일이 있는걸요. 그 위대한 사진 말입니다.
그러나 윤주사 창식은 도무지 그런 법이 없읍니다.
영 졸리다 졸리다 못하면, 온 사람을 부친 윤직원 영감한테로 슬그머니
따 보내버릴망정 기부 같은 건 막무가내로 하지를 않습니다.
속담에, 부자라는 건 한정이 있다고 합니다.
가령 천석꾼이 부자면 천석까지 멱이 찬 뒤엔, 또 만석꾼이 부자면
만석까지 멱이 찬 뒤엔 그런 뒤에는 항상 그 근처에서 오르고 내리고
하지, 껑충 뛰어넘어서 한정없이 불어나가지는 못한다는 그 뜻입니다.
미상불 그렇습니다. 가령 윤직원 영감만 놓고 보더라도, 1년에 벼로다가
꼭 만 석을 받은 지가 벌써 10년이 넘습니다.
그러니 그게 매년 10만 원씩 아닙니까?
또 현금을 가지고 수형장수(手形割引業[수형할인업])를 해서,
1년이면 2,3만 원씩 새끼를 칩니다.
그래서 매년 수입이 십수만 원이니 그게 어딥니까? 가령,
세납이야 무엇이야 해서 일반 공과금과 가용을 다 쳐도
그 절반 5, 6만 원이 다 못될 겝니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 5, 6만은 해마다 처져서,
10년 전에 만 석을 받은 백만원짜리 부자랄 것 같으면,
10년 후 시방은 150만 원의 1만 5천 석짜리 부자가 되었어야 할 게
아니겠읍니까?
그런데 글쎄, 그다지도 가산 늘리기에 이골이 난 윤직원 영감이건만
10년 전에도 만석 10년 후 시방도 만석…… 그렇습니다그려.
그렇다고 윤직원 영감이 무슨 취리에 범연해서 그랬겠읍니까?
결국 아들 창식이 그런 낭비를 하고, 또 맏손자 종수가 난봉을 부리고,
군수를 목표한 관등의 승차에 관한 운동비를 쓰고 그러는 통에 재산이
그 만석에서 더 붇지를 못하고 답보로 ── 읏을 한 거랍니다.
윤직원 영감은 가끔 창식의 그런 빚을 물어주느라고 사뭇 날뛰면서 단박
물고라도 낼 듯이 호령 호령, 그를 잡으러 보냅니다.
그러나 창식은 부친이 한번쯤 불러서는 냉큼 와보는 법이 없고,
세번 네번 만에야 겨우 대령을 합니다.
“야, 이 수언 잡어 뽑을 놈아, 이놈아!……”
윤직원 영감은 혼자서 실컷 속을 볶다가, 아들이 처억 들어와서 시침을
뚜욱 따고 앉는 양을 보면, 마구 속이 지레 터질 것 같아 냅다 욕이
먼저 쏟아져 나옵니다.
그럴라치면 창식은 아주 점잖게
“아버니두 무슨 말씀을 그렇게 허십니까!……”
하고 되레 부친을 나무랍(?)니다.
“……아, 손자놈들이 다아 장성을 허구, 경손이놈두 전 같으면 벌써
가속을 볼 나인데, 그것들이 번연히 듣구 보구 하는 걸, 아버니는
노오 말씀을 그렇게……”
“아니, 무엇이 어찌여?”
윤직원 영감은 고만 더 말을 못합니다. 노상 아들한테 입 더럽게
놀린다고 핀잔을 먹은 그것을 부끄러워할 윤직원 영감이 아니건만,
어쩐 일인지 그는 아들 창식이한테만은 기를 펴지를 못합니다.
혼자서야, 이놈이 오거든 인제 어쩌구저쩌구 단단히 닦달을 하려니 하고
굉장히 벼르지요. 그렇지만 딱 마주쳐서는 첫마디에 기가 죽어버리고
되레 꼼짝을 못합니다.
“그놈이 호랭이나 화적보담두 더 무선 놈이라닝개!
천하 무선 놈이여!”
윤직원 영감은 늘 이렇게 아들을 무서운 놈으로 칩니다.
그러니 세상에 겁할 것이 없이 지나는 윤직원 영감을 힘으로도 아니요,
아귓심도 아니요, 총으로 아니면서 다만 압기(壓氣)로다가, 그러나마
극히 유순한 것인데, 그것하나로다가 그저 꼼짝 못하게 할 수 있는
창식은 미상불 호랑이나 화적보다 더 무서운 사람일밖에 없는 것입니다.
번번이 그렇게 윤직원 영감은 꼼짝도 못하고서는 할 수 없이,
한단 소리가……
“돈 내누아라, 이놈아!…… 네 빚 물어준 돈 내누아!”
“제게 분재시켜 주실 데서 잡아 까시지요!”
창식은 종시 시치미를 떼고 앉아서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윤직원 영감은 그제는 아주 기가 탁 막혀서 씨근버근하다가
“뵈기 싫다, 이 잡어 뽑을 놈아!”
하고 고함을 치고는 돌아앉아 버립니다.
이래서 결국 윤직원 영감이 지고 마는 싸움은 싸움이라도,
한 달에 많으면 두세 번 적어서 한 번쯤은 으례껏 싸움을 해야 합니다.
이런 빚 조건으로 생긴 싸움이, 아들 창식하고만이 아니라
맏손자 종수하고도 종종 해야 하니, 엔간히 성가실 노릇이긴 합니다.
또 그런 빚을 물어주는 싸움은 아니라도, 윤직원 영감은 가끔 딸
서울아씨와도 싸움을 해야 합니다. 작은손자며느리와도 싸움을 해야
하고, 방학에 돌아오는 작은손자 종학과도 싸움을 해야 합니다.
며느리 고씨하고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랑방에 있는 대복이나
삼남이 와도 싸움을 해야 합니다.
맨 웃어른 되는 윤직원 영감이 그렇게 싸움을 줄창치듯 하는가 하면,
일변 경손이는 태식이와 싸움을 합니다.
서울아씨는 올케 고씨와 싸움을 하고,
친정 조카며느리들과 싸움을 하고, 경손이와 싸움을 하고,
태식이와 싸움을 하고, 친정아버지와 싸움을 합니다.
고씨는 시아버지와 싸움을 하고, 며느리들과 싸움을 하고,
시누이와 싸움을 하고, 다니러 오는 아들과 싸움을 하고,동대문 밖과
관철동의 시앗집엘 가끔 쫓아가서는 들부수고 싸움을 합니다.
그래서, 싸움 싸움 싸움, 사뭇 이 집안은 싸움을 근저당(根抵當)해놓고
씁니다. 그리고 그런 숱한 여러 싸움 가운데 오늘은 시아버지
윤직원 영감과 며느리 고씨와의 싸움이 방금 벌어질 켯속입니다.
태평천하 (太平天下) 이어서 -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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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志社,[동지사] 1948.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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