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인간문제 (4 중 4) - 강경애 -

하얀모자 1 2023. 7. 1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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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문제 ( 4 중 4 )
                                                                                  - 강경애 -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난 신철이는 철수 동무가 갖다 준 잠방이 적삼을 입고
각반을 치고 지카다비(작업화)를 신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인천 시가는 뿌연 분위기 속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전등불만이
여기저기서 껌벅이고 있다. 신철이는 어젯밤 동무가 세세히 말해 준 대로
다시 한번 되풀이하며 거리로 나왔다. 인천의 이 새벽만은 노동자의 인천
같다!. 각반을 치고 목에 타월을 건 노동자들이 제각기 일터를 찾아가느라
분주하였다. 그리고 타월을 귀밑까지 눌러 쓴 부인들은 벤또를 
전등불 아래로 희미하게 꼬리를 물고 나타나고 또 나타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부인들은 정미소에 다니는 부인들이라고 하였다.
신철이는 우선 조반을 먹기 위하여 길가에 늘어앉은 국밥집을 찾아
들어갔다. 흡사히 서울에선 선술집 모양이다. 벌써 노동자들은 밥에다 김이
펄펄 나는 국을 부어 가지고 먹는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부어 놓은 탁배기를 선 채로 들이마시고 있다.

일변 저편에서는 끓는 국을 사발에 떠서 날라 준다.
노동자들은 문에 불이 나게 드나든다.
신철이는 나무판자에 걸어앉았다. 어떤 노동자는 날라 주는 것이 성이 차지
않아서 자작 그릇을 가지고 국솥 앞에까지 가서 국을 받아 왔다.
신철이는 국을 훌훌 마시며 곁눈으로 보니 그의 곁에 앉은 노동자 하나는
그와 같이 들어와서 앉았는데 벌써 밥을 거의 다 먹어 간다.
그의 밥술을 보니 끔찍하였다. 원 저렇게 먹고야 소화가 될 수 있나?
신철이는 이렇게 생각하며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술을 놓고 나서 부어 놓은
막걸리를 쭉 들이마신다. 그러고는 주먹으로 두어 번 입가를 씻더니
신철이를 흘금 바라보며 벌떡 일어나 나간다. 신철이는 그 밥을 못다 먹고
그만 일어나 나왔다. 막걸리 뒷맛이 씁쓸하였다.
그는 천석정을 향하고 걸었다. 천석정에는 대동방적공장을 새로 건축하므로
하루에 노동자를 사오백 명을부린다고 하였다.
 
차츰 밝아 오는 인천의 시가를 걸으면서, 그리고 저 영종섬 뒤로 부옇게
보이는 하늘에 닿는 듯한 수평선을 바라볼 때, 용기가 부쩍 나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전날 전차 속에서 바라본 뜻하지 않은 인력거 위에
어색하게 앉은 선비의 그 모양이 다시금 떠오른다.
따라서 그가 미친 듯이 전차에서 뛰어내려 인력거의 행방을 찾아 한 결이나
헤매던, 무책임하고도 미련이 많은, 그렇게도 의지가 연약한 자신을 얼굴이
뜨겁도록 깨달았다. 다음 순간 나는 이젠 노동자다! 입으로만 떠드는 그러한
인텔리는 아니다. 더구나 여자 꽁무니를 따라 헤맬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있는 용기를 다하여 부인하여 보았다.
그가 천석정까지 오니 벌써 수백 명의 노동자는 시루시반텡을 입은 일인
감독을 둘러싸고 제제히 일표를 타느라고 법석하였다.
신철이도 그 틈에 섞여 한참이나 돌아가다가 겨우 일표를 얻었다.
일표라는 조그만 나무쪽을 들여다보니 60번이라는 번호가 씌어 있었다.
 
“어서 빠리빠리 하라.”
 
감독의 고함치는 소리를 따라 일표를 얻은 노동자들은 흥이 나서 감독의
지정하는 대로 일을 붙잡았다. 그나마 일표를 얻지 못한 노동자들은 실망을
하고 그들을 부럽게 바라보면서 머리를 빠트리고 돌아선다.
 
“이리 와서 이것들 저리로 가져가.”
 
여러 사람이 밀려가는 틈에 섞여 신철이도 따라갔다.
시멘트 포대를 시멘트 가루 개는 곳으로 나르라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황지 포대에 넣은 시멘트를 어깨 위에 올려놓고 펄펄 뛰어
달아난다. 신철이 차례가 오므로 그는 메어 주는 시멘트 포대를 어깨에
메었다. 그 순간 그는 어깨에서 우쩍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그리고 다음에는 가슴을 내리눌러 숨을 통할 수가 없었다. 그가 노동자들이
메는 것을 바라볼 때에는 이렇게까지 무겁지 않으리라 하였는데, 그리고
시멘트 포대가 밀가루 포대보다 조금 클까말까 하므로 가볍거니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메고 보니 이것이 돌가루가 되어서 이렇게 무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철이는 메기는 겨우 멨으나 발길을 잘 떼놓는 수가 없었다.
 
“이 자식아! 빨리 가거라!”
 
십장의 호통소리에 신철이는 앞으로 나갔다.
숨이 가빠 오고 가슴이 죄어 오고 어깨 위가 부서지는 것 같다.
신철이는 죽을 힘을 다하여 시멘트 포대에 볼을 꽉 붙이고 비틀걸음으로
오십 간 가량이나 와서 쾅 하고 내려놨다.
신철이는 시멘트 포대와 함께 넘어졌다가 일어났다.
곁에서 삽을 가지고 물을 쳐가며 시멘트 가루를 벅벅 벅벅 벌뻘 갈기듯이
개는 노동자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들은 일하기가 조금도 힘들어 하는것
같지 않았다. 눈 깜박할 새에 시멘트 가루를 개곤 하였다.
신철이는 그들을 부럽게 바라보며 돌아설 때, 다시는 그 시멘트 포대를
멜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일표는 탔으니 하루만 참자,
설마한들 죽겠냐, 해보자! 이렇게 생각하며 천근이나 만근이나 한 다리를
옮겨 놨다.
이번에는 벽돌을 나르라고 하였다. 노동자들은 철사를 두 겹으로 길게 굽혀
가지고 그 새에다 벽돌을 두 겹으로, 한 겹에 열셋, 잘 지는 노동자는
열다섯, 열여섯까지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그 철사 끝에는 마대를 베어서 달아 가지고 한 번 동인 후에 낑
하고 졌다. 물론 등에는 섬피를 대고 벽돌을 지는 것이다.
신철이는 지는 데 혼이 나서 이 벽돌은 손으로 나르리라 하고, 열 장을
 포개 들고 날랐다. 몇 번 나르고 나니 손이 마치 가시로 찌르는 듯이
따가우므로 들여다보니, 열 손가락에 피가 배어 빨개졌다.
그리고 다시 벽돌을 옮기려고 쌓아 놓을 때 전신에 소름이 오싹 끼치며
온몸에 벽돌이 안 가 닿는 곳이 없는 듯하였다.
그리고 그 벽돌에 돌가시가 무섭게 돋아 있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여부슈, 손으로 나르면 손이 아파서 못 합니다.
   당신 일 처음 해보는구리.”
 
신철이는 얼핏 바라보니 아까 국밥집에서 한자리에 앉아 먹던
그 노동자였다. 외눈만이 쌍까풀진 그의 눈에 약간 웃음을 띠었다.
그리고 이리로 와서 신철의 등에 섬피를 대어 주었다.
 
“이렇게 대구서 벽돌을 지시우. 그러면 손으로 나르는 것보담 낫지유.
  자 지시우.”
 
신철이는 지다가 다리가 휘청하며 푹 꺼꾸러졌다. 그의 다리는 사시나무
떨리듯 부들부들 떨렸다. 그리고 경련이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일어났다.
그는 아픈 손을 입에 물고 어린애같이 울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흐트러진
벽돌을 다시 쌓아 놓고 그가 지워 주는 대로 졌다.
 
“저 이거 보슈. 이거 이렇게 지면 힘듭니다. 이것을 이 섬피에 꾹
  달라붙게 지며 몸을 이렇게 허시유.”
 
외눈까풀이는 허리를 구부려 보인다. 그때 뒤에서,
 
“이놈의 자식들, 빨리 날라라!”
 
“흥! 저놈 또 야단이군.”
 
외눈까풀이는 입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자기도 벽돌을 지고
신철이와 가지런히 걸었다.
 
“당신도 미두에 손해봤구려.”
 
미두에 손해본 사람들이 가분작이 객리에서 어쩔 수는 없고,
또는 가산을 탕진하여 놓고 먹을 것 없으니 하는 수 없이 노동시장으로
나오곤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여직 해보지 않던 일을 하려니,
물론 노동자들과 같이 일이 손에 익지 못하고 서툴러서 애쓰는 것을 많이
보았던 것이다.
신철이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숨이 차서 대답도 못 하였다.
그리고 자꾸 꺼꾸러지려고만 하였다. 외눈까풀이는 뒤에서 벽돌을 받들어
주었다. 신철이는 그만 이 짐을 벗어던지고 달아나고 싶었다.
점심 먹는 시간 사십 분 동안을 내놓고 아침 여섯시부터 저녁 여덟시까지
일을 마친 신철이는 전신에 맥이라고는 다 끊어진 듯하였다.
신철이는 외눈까풀이의 뒤를 따라 이번에는 돈표를 타러 갔다. 바라크식으로
지은 임시 사무소 앞에는 노동자들이 들이몰리어 저마다 돈표를 타려고
덤볐다. 사무실에서는 몇 번호, 몇 번호 하고 번호를 불렀다.
거의 한 시간이나 기다려서, 신철이는 돈표라는 종잇조각을 타가지고
이번에는 돈과 바꾸는 사무실로 달아갔다.
거기에서 비로소 돈 사십육 전을 쥔 신철이는, 하루의 품값이 오십 전임을
알았다. 그리고 사 전은 돈 바꿔 주는 중간 착취배가 또 하나 나타나서
오십 전에 사 전을 벗겨 먹는 것임을 알았다. 그는 한숨을 후유 내쉬고
돌아보니, 인천 시가는 또다시 전등불로 장식되었다.
외상값을 받으러 온 국밥 장수들이며, 남편을 찾아서 이 저녁거리를 사려는
노동자의 아내들까지 몰리어 뒤끓었다.
 
신철이는 외눈까풀이를 잃어버리고 한참이나 찾다가 그만 나와 버렸다.
그는 수없이 깜박이는 저 전등을 바라보며 잉여노동의 착취! 하고
생각하였다. 그가 책상에서 <자본론>을 통하여 읽던 잉여노동의 착취보다,
오늘의 직접 당하는 잉여노동의 착취가 얼마나 무섭고 또 근중이 있는가를
깨달았다.
집까지 온 신철이는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때 노동시장으로부터
돌아온 철수가 들어왔다.
 
“동무, 몹시 힘들지유?”
 
신철이는 머리를 들며,
 
“동무 왔소? 난 어려워서 일어나지 못하우.”
 
“예 좋습니다. 저 코피가 흐릅니다!”
 
“내가요?”
 
신철이는 그제야 자기 코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철수는 냉수와 걸레를 가지고 들어왔다. 신철이는 일어나려니 전신이
무거워서 깜작하는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치 벽돌 질 때와 같이 힘이
쥐어지고 전신에서 경련이 무섭게 일었다.
그는 철수가 손질해 주는 대로 맡겨 버리고 말았다.
 
“동무, 노동 못 하겠수.”
 
신철이는 이렇게 전신이 녹아 오는 듯하면서도 철수의 이 말에는 자기를
모욕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눈을 꾹 감고 으흠 하고 신음을 하였다.
눈을 감으면 감을수록 무겁게 벽돌 지던 광경이 그치지 않고 보인다.
그리고 긴장이 되고 어깨가 무거워지며 금방 자신이 벽돌을 지고
걸어가는 듯하였다.
 
“뭐 좀 자셔 봤수?”
 
“예, 국밥을…….”
 
“좌우간 동무는 노동은 그만두고 그저…….”
 
중도에 말을 그치며 신철이를 바라보았다. 신철이는 눈을 뜨고 철수를
올려보다가 벽으로 시선을 옮긴다. 철수는 일어났다.
 
“난 아직 저녁을 못 먹었는데 가서 먹구 오리다.”
 
“예, 뭐 오실 것 없지요. 곤하신데 지무셔야지요.”
 
철수는 부두에 나가서 하루 종일 노동했을 것만은 틀림없는데 별로
곤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신철이는 누워서 철수를 보내고 벽을
향하여 돌아누웠다. 아! 소리를 지르도록 전신의 뼈가 저마다
노는 듯하였다. 잉여노동의 착취! 그는 벽을 바라보며 입 속으로
되풀이하였다. 그의 입 속에서 돌아가는 잉여노동이란 그것은, 그 얼마나
무게가 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속에는 노동자의 피와 땀이 섞여 있는 까닭에, 아니 그들의 피와
땀의 결정물인 까닭에 그렇게도 무게가 있다는 것을 오늘에야
절실히 느꼈다.
이렇게 무게가 있고 깊이가 있는 잉여노동을, 말하기 좋아하는 자칭
논객들과 자칭 민중의 지도자들은, 아무 무게 없이 아무 생각 없이,
한 행세거리로 한 술어로밖에 부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두 번 부르기가 어려운 무게가 있음을 알았다. 동시에 수없는 벽돌이
잉여노동의 착취란 문구를 싸고, 그의 가슴을 압박하여 그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눈을 똑바로 뜨며 
내가 무슨 환영을 보는 셈인가…… 하였다.
 
그는 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피하기 위하여 일부러
옛날을 회상해 보았다. 따라서 인력거에 앉아 서울의 번잡한 도시를 향하여
달려오던 선비를 눈앞에 그려 보았다. 그가 뭘 하러 서울에 오는가?
혹은 남편을 얻어 오는가? 남편을 얻어 오면 그래 마중 나간 사람들이
있겠지? 혹 어떤 몹쓸 놈에게 유인이나 받지 않았는지? 덕호가 선비를
공부시키기는 만무할 터인데…… 필경 옥점이가 중매를 해서 서울로 시집온
것이겠지? 옥점이! 옥점이, 옥점이! 신철이는 웬일인지 옥점의 그 손!
그 눈이 생각되었다.
여직 선비를 어느 구석엔가 잊지 못하고 생각해 온 것을 미루어,
더구나 전날 아침 길거리에서 선비가 지나친 것을 봤으니 당연하게 선비를
그리워하여야 할 터인데, 그저 몽롱하게 온갖 의문만 선비를 싸고돌 뿐이지
호기심은 언제 어디서 새어 빠졌는지 몰랐다.
그리고 도리어 옥점의 그 활발하게 뵈던 그 눈! 그 손! 그 얼굴이 금방
눈앞에 보이듯 하였다.
옥점이, 그는 시집을 갔을까? 그렇게 나를 못 잊어하더니……
내가 너무 과했어! 그의 눈에는 요령부득의 눈물이 괴었다.
그리고 옥점이가 초콜릿을 벗겨 가지고 자기를 바라보면서 입을 벌리라고
하며 빨개지던 그 얼굴이 지금 와서는 귀엽게 나타나 보인다.
만일 지금 이 자리에 있으면…… 할 때 그는 눈을 크게 뜨며,
 
“에이 비굴한 놈!”
 
하고 자신을 향하여 소리쳤다.
그때 멀리 들리는 택시의 경적소리가 뿡빵 하고 들려 왔다.
그리고 안방 시계가 열한시를 땅! 땅! 쳤다.
그는 잠을 들려고 눈을 꾹 감아버렸다. 벽돌, 벽돌이 보인다.
며칠 후에 신철이는 철수를 만나 또다시 노동시장에 나가 보겠노라고
하였다. 철수는 빙긋이 웃었다.
 
“동무 이번에 나가면 곱질러 십여 일이나 앓으리다. 그만두시오.”
 
애써 노동을 해보겠다는 신철의 생각만은 좋으나, 그러나 노동에 세련되지
못한 그의 육체가 난처해 보였던 것이다. 신철이는 철수를 따라 웃으면서도
맘속으로는 불쾌하였다. 그리고 철수와 자신을 비교해 본다면 우선 신체의
장대함이라든지 어느 모로 보나 철수에게서 떨어질 것은 없다고 생각되었다.
오직 자신이 노동에 단련되지 못한 까닭이니 어느 정도의 고개만 넘으면
별로 힘들 것이 아니리라고 생각하였다. 오냐! 철수가 하는 일을,
아니 인간이 하는 노동을 나라고 못 할 까닭이 있느냐? 하자!
죽도록 해보자! 요즘 동무들이 노동을하여 벌어다 주는 밥을 앉아 먹고
있기는 무엇보다도 더 고통이었던 것이다.
철수는 신철의 기색을 살폈다.
 
“그럼 하루만 또 고생해 보시우, 허허…… 내일 아침 나와 부두로
  나가 봅시다. 그런데 임금이 낮아서 그렇지 실은 벽돌 나르는 것이 제일
  헐하리다.”
 
신철이는 약간 눈살을 찌푸렸다가 웃었다.
그리고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니, 벽돌은 싫어.”
 
벽돌 말만 들어도 전신이 오싹해지며 손끝이 따가워짐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무리 벽돌 나르는 것보다 힘든 노동이라 하여도 지금 같아서는
힘든 그 일을 하지, 벽돌은 나르지 못할것 같았다. 보다도
벽돌은 두 번 바라보기도 싫었다.
그 밤이 오래도록 부두노동의 몇 가지 종류를 철수에게서 자세히 들은
신철이는 그 이튿날 새벽에 철수를 따라 부두로 나오게 되었다.
그들이 세관 앞을 지나 섰을 때, 벌써 몇십 명의 노동자가 백통테 안경을
둘러싸고 십장님! 십장님! 하고 덤볐다. 철수는 둘러선 사람을
뻐개며 들어섰다.
 
“십장님! 저 하나 주시우.”
 
백통테 안경은 안경 너머로 철수를 보더니 손에 들었던 붉은 끈을 봐라
하듯이 내쳐 준다. 철수는 얼른 받아 가지고 돌아보았다.
 
“이 끈이 일표입니다. 이걸 손목에다 꼭 동이시오.”
 
철수가 동여 주는 붉은 끈을 들여다보는 신철이는 벌써 속이 두근두근함을
 느꼈다.
 
“난 정거장으로 짐 메러 가니…… 하루 또 고생하시우.”
 
철수는 말 마치기가 무섭게 뛰어간다. 신철이는 어제 철수에게 붉은 끈들이
하는 노동을 자세히 들었으나 철수가 저렇게 자기 앞을 떠나가는 것을 보니
도무지 두서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손목에 붉은 끈 동인 사람들만
주의해 보고 그들의 뒤를 슬금슬금 따라 섰다.
조선의 심장지대인 인천의 이 축항은 전 조선에서 첫손가락에 꼽힐 만큼
그 규모가 크고 또 볼 만한 것이었다. 축항에는 몇천 톤이나 되어 보이는
큰 기선이 뱃전을 부두에 가로 대고 열을 지어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검은 연기는 뭉실뭉실 굵은 연돌 위로 피어 올라온다.
월미도 저편에 컴컴하게 솟은 섬에는 등대가 허옇게 바라보이고 그 뒤로
수평선이 멀리 그어 있었다.
노동자들이 무리를 지어 쓸어 나온다. 잠깐 동안에 수천 명이나 되어 보이는
노동자들이 축항을 둘러싸고 벌떼같이 와와 하며 떠들었다.
그들은 지게꾼이 절반이나 넘고 그 외에 손구루마를 끄는 사람, 창고로
쌀가마니를 메고 뛰어가는 사람, 몇 명씩 짝을 지어 목도로 짐을 나르는
사람, 늙은이, 젊은이, 어린애 할 것 없이 한 뭉치가 되어 서로 비비며
돌아가고 있다. 백통테 안경은 기선 갑판 위에 올라섰다.
 
“이 자식들아! 여기 어서 다리를 놓아!”
 
호통소리를 따라 붉은 끈들은 달려가서 시멘트 콘크리트로 된 부두와
기선 새에 나무를 건너지르고 그 위에 넓은 나무판자를 척척 올려놔서
다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기중기(起重機) 옆에 붉은 끈이 하나가 서서
손잡이를 놀리니 기중기가 왈랑왈랑 소리를 지르며 쇠줄이 기선 밑의
화물창고를 향하여 내려간다. 갑판 위에는 감독이라는 일인이 서서 들어가는
쇠줄을 들여다보며 손짓을 하다가 뚝 멈추니 기중기 운전수도 역시
그 군호를 따라 손잡이를 눌러 멈추었다. 한참 후에 감독이 손을 젖혀
가지고 손짓을 하니 운전수가 또다시 손잡이를 제끼었다.
기중기는 다시 왈랑왈랑 소리를 지르고, 올라오는 쇠줄에는 집채 같은
짐짝이 달려 있었다. 이편 부두에 빠듯이 둘러선 노동자는 짐짝을 쳐다보며
한층더 아우성을 쳤다.
기중기에 달린 몇백 관이나 되는 짐은 마침내 와르르 하고 부두에 쏟아졌다.
서로 밀거니 하며 섰던 노동자들은 일시에 달려들어 저마다 짐을 붙들고
붉은 끈들에게로 대어들었다.
붉은 끈들은 분주히 돌아가며 짐짝을 쇠갈고리로 대어서 지게 위에 실어
주었다. 신철이는 철수가 준 갈고리를 사용하려니 쓸 줄을 몰라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할 수 없이 갈고리를 꽁무니에 차고 붉은 끈과
마주서서 쉴새없이 손으로 짐짝을 올려놓곤 하였다.
짐은 뒤를 이어 와르르 하고 부두에 쏟아졌다. 신철이는 차츰 숨이 차오고
팔이 떨어져 오는 듯하였다.
짐은 큰 상자며 철판이며 대두박이며…… 이런 종류였다.
 
“이놈들아, 빨리 짐을 메어 줘라!”
 
백통테 안경은 눈알을 구루마 바퀴 굴리듯 하며 호통을 하였다.
신철이는 언제 손끝이 상 하였는지 피가 출출 흐른다.
그는 흐르는 피를 어쩌는 수가 없어서 그의 잠방이에 북 씻고나서 연달아
오는 노동자들에게 짐을 메어 준다.
 
“여보! 갈쿠리를 써야지, 손 아파 못 하우!”
 
마주선 붉은 끈은 웃으며 소리쳤다. 신철이는 꽁무니에 찼던 갈고리를 빼어
가지고 짐을 끼워 들다가 잘못하여 짐꾼의 얼굴을 냅다 쳤다.
짐꾼은 얼른 머리를 돌렸다.
 
“이 자식아! 미쳤니? 남의 얼굴은 왜 후려……
  하마트면 눈이 꿰질 뻔혔다. 이 자식! 정신채려!”
 
눈을 부릅뜨고 대든다. 신철이는 참았던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머리를 돌리어 저 퍼런 물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에 신철이는 저 퍼런 물에라도 뛰어들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들의 무뚝뚝한 말과 행동은 마치 그의 상한 손에 사정없이
맞찔리는 철판과 상자 귀에 박힌 못과 무엇이 다르랴!
 
“여보! 어서 들어유.”
 
신철이는 풀풀 떨리는 팔로 큰 상자를 들려니 자꾸 내려만 오고 올라가지는
않았다. 마침내 그는 상자에 푹 거꾸러졌다.
 
“이그…… 왜 이래 바뿐데. 넘어질랴거든 저리 가!”
 
마주선 붉은 끈은 차라리 신철이가 물러났으면 좋을 것 같았다.
신철이가 도리어 맞들어 주기는 고사하고 그의 짐이 되었던 것이다.
신철이는 겨우 정신을 차려 일어났다. 차라리 넘어질 바에는 아주 어디가
콱 상하였으면 그것을 핑계로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돌아보니 아무 데도 상한 곳은 없는 듯하였다.
짐에서 떨어지는 먼지며 바람결에 불려오는 먼지가 수천 명의 노동자의
몸부림치는 바람에 가라앉지를 못하고 공중에 뿌옇게 떠돌았다.
그리고 사람을 달달 볶아 죽이고야 말려는 듯한 지독한 볕은, 신철의 피부를
벗기는 듯하였다. 그는 숨이 콱콱 막히며 입 안에 침기라는 것은 조금도
없이 먼지만 들이쌓이는 듯하였다. 물, 물, 물이 먹고 싶다!
그러나 잠시라도 몸을 빼어낼 수가 없었다. 따라서 그는 그의 주위를
싸고도는 수없는 사람들 중 어린애까지도 자기와 같이 무능하고 연약한
육체를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멀리 재목공장에서는 기계로 재목 가르는 소리가 짜아짜아 하고 유달리
새어 들려 온다.
그리고 마주 건너다보이는 부두에는 산더미 같은 석탄이 여기저기
쌓인 것을 보아 그편에 댄 기선에서는 석탄을 푸는 모양이다.
 
“이애 이놈들아, 저게 가서 실컨 싸우라!”
 
신철이와 마주선 붉은 끈이 이렇게 소리치며 바라보므로 신철이도 흘금
돌아보았다. 저마다 짐을 잡아당기다가 마침내 서로 주먹으로 쥐어박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짐짝은 버리고 두 놈이 데뭉데뭉 굴렀다.
그 틈에 그 짐짝은 딴놈이 메고 달아난다. 그때 싸우던 놈들은 부시시
일어나서 짐짝을 다우쳐 가서는 또 쌈이 벌어진다. 그러고는 세 덩이,
네 덩이가 되어 싸우는 것이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외눈까풀임을 알자 신철이는 달려가서 말리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맘 뿐이지 그의 몸 하나도 건사하기가 큰일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곳에서는 싸우면 싸웠지, 누가 눈 한번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었다.
저희들끼리 실컨 싸우다가 진하면 툭툭 털고 일어나는 것이다.
전깃불이 와서도 한참이나 되어 신철이는 임금을 타려고 붉은 끈들과 함께
백통테 안경을 따라 섰다. 그때 뒤에서 휘파람소리가 나므로 돌아보니,
외눈까풀이가 지게를 지고 맥빠진 걸음새로 천천히 이리로 온다.
 그도 무던히 피로한 모양이다.
 
“이동무!”
 
외눈까풀이가 신철의 앞을 지나칠 때 이렇게 불렀다.
 외눈까풀이는 우뚝 서서 누가 불렀는지 몰라 두리번두리번하였다.
 
“내가 찾었수.”
 
외눈까풀이는 그제야 신철이를 흘금 쳐다보더니,
 
“여기 또 왔구레.”
 
그의 곁으로 다가온다. 신철이는 그가 낮에 싸우던 생각을 하며,
 
“오늘 돈 얼마나 벌었소?”
 
“돈이 다 뭐유, 쌈만 했수.”
 
“왜 쌈은 했수?”
 
“괜히 싸우지우.”
 
외눈까풀이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우리집에 놀러 오시우.”
 
“집이 어데유?”
 
“사정으로 올라가노라면 천주교회당이 있지요.”
 
“천주…… 뭐유? 생각 안 난다. 천주 담엔 뭐라고 했는지요?”
 
신철이는 손으로 십자가를 그어 보였다.
 
“이렇게 된 것이 지붕 위에 삐죽하니 솟아 있는 집이오.”
 
“네, 성당 말이구리. 알았슈.”
 
“그 집을 지나 공동변소가 있지유.”
 
“네, 네.”
 
“그 우에는 장작 패어 파는 집이 있습니다.
    바루 그 우에 조그만 초가집이 있지우.”
 
“네, 알았수.”
 
“그 집 뒷방이 바루 나 있는 방이오.”
 
“네, 네, 그렇쉬까! 가지유.”
 
“꼭 오시우.”
 
“예.”
 
외눈까풀이는 인사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간다.
신철이는 그의 뒤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저러한 놈이 의식이 제대로만
들었으면 훌륭한데…… 하였다.
백통테 안경은 어떤 여관으로 쑥 들어갔다. 뒤따르던 붉은 끈들은 멈칫
서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신철이를 돌아보며 킥킥 웃었다.
신철이는 그들이 낮에 자기가 노동하던 것을 흉내내며 웃는 것임을
알았을 때 불쾌하고도 무어라고 형용 못 할 쓸쓸함을 느끼며 으흠 하고
나오는 줄 모르게 신음을 하였다. 그리고 땅에 펄썩 주저앉아 붉은 끈들이
서 있는 반대 방향을 바라보았다. 못 견디게 전신이 무거웠던 것이다.
저편으로 보이는 시멘트로 바른 벽에는 ‘깅 바아(キンパ―)’라고 쓴
금자가 전등불에 빛났다. 그는 웬일인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자기의 초라한 모양을 굽어보았다. 순간에 그는 세상에서 버림을
받은 듯한 고적함을 깨달았다. 자기는 노동자의 동무가 되려고 필사의 힘을
다하여 노동시장에 나왔거늘 그들은 저렇게 자신을 비웃고 조그만 동정을
기울이지 않는다.
아니다! 내 뒤에는 수많은 동지가 있지 않으냐! 그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러나 자기를 싸고도는 환경만은 이렇게 쓸쓸하고 고적만 하였다.
그때 저리로부터는 모던 걸, 모던 보이가 어깨를 나란히하여, 마치
댄스하는 듯이 발걸음을 맞춰 이리로 온다. 그는 벌떡 일어나 벽에 몸을
기대었다. 남녀는 오루지날의 향내를 후끈 던지고 지나친다.
그는 얼핏 옥점이를 생각하였다. 그리고 옥점이와 자기가 바닷가에서
낙조를 바라볼 때 펄펄 일어나는 불길을 향하여 선 것처럼 그불과 그 옷이
빛나던 광경이 떠오른다. 그는 얼결에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못 견디게 옥점이가 그리워졌다.
혹시 월미도에나 놀러 오지 않았나? 아직도 나를 생각해서 그 조그만 가슴이
아프지나 않나? 내가 왜 그리했나!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반면에 무슨 더러운 생각이냐 하고 무엇이 뒷덜미를 툭 치는 듯하였다.
그는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는 여전히 쓸쓸하게 벽을 기대고 선 것을
발견하였다. 동시에 잠깐 잊었던 아픔이 그의 전신을 못 견디게 습격하였다.
그는 또다시 주저앉았다. 저들이 아니면 잠깐이라도 여기에 눕고 싶었다.
그는 벽을 기대고 으흠 하고 신음을 하며 오늘 신문에나 무슨 특별한 소식이
실렸는가? 하였다.
그가 재학 당시만 하여도 신문을 대할 때마다 목전에 정세가 흔들릴 것
같고, 무슨 일이 곧 되는 것 같아 가슴이 조마조마하더니 막상 이렇게
뛰어나오고 보니 일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별한 이상이 없었다.
이 현상대로 몇십 년을 지날지, 혹은 몇백 년을 지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
아는 듯 모르는 듯 그의 가슴 한편에서 떠나지 않았다.
 
백통테 안경이 나왔다.
여기저기 벌려 있던 붉은 끈들은 백통테 안경을 중심으로 둘러앉았다.
그리고 손목에 동였던 붉은 끈과 점심값 오 전을 제한 구십오 전과
바꾸었다.
신철이는 구십오 전을 타가지고 일어섰다. 헤어지는 그들은 신철이를
흘금흘금 돌아보며 킥킥 웃었다. 신철이는 그나마 하루 종일 같이 일을
했으니 작별의 인사라도 건네고 싶었으나, 그들이 이렇게 픽픽 웃는 데는
그만 입이 꽉 붙고 말았다. 그는 어정어정 발길을 옮겨 놨다.
그리고 웬일인지 노동자와 자기 사이에는 언제부터인가 짐작할 수 없는
그때부터 어떤 보이지 않는 간격이 꽉 가로막혀 서 있음을 그는 절실히
느꼈다. 동시에 자신은 좌우편을 가까이할 수 없는, 그러한 입장에
서 있는 듯하여 그는 불쾌하였다.
마침 어떤 노동자가 지게에 한 되나 들어 보이는 쌀자루와 소나무 한 단을
올려놓고 그 위에 약간의 찬거리까지 곁들여 가지고 그의 앞을 총총히
걸어간다. 그도 역시 부두에서 돌아오는 모양이다. 오늘 일을 미루어
보건대 하루 종일 그 먼지판에서 쌈을 해가며 짐을 져야 겨우 오륙십 전이나
벌까말까 하였다. 그나마 부두노동에 있어서는 신철이가 맡았던 붉은 끈이
제일 임금이 많은 듯하였다.
그는 길가 국밥집에서 국밥을 한 그릇 사먹은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부터 신철이는 노동시장에 나갈 생각을 단념하고 말았다.
그리고 철수가 벌어다 주는 것으로 그날그날을 겨우 살아갔다.
어떤 날, 밤이 퍽으나 오랜 후였다.
 
“있수?”
 
굵은 음성과 함께 외눈까풀이가 성큼 들어왔다. 신철이는 밤송이 동무에게
편지 쓰던 것을 얼른 뒤로 밀어 놓고 손을 내밀었다.
 
“아 이거! 반갑소. 그 동안 난 동무를 기다리다 안 오기에
  아마 나를 잊은 것으로 알았구려…… 자, 앉으시오.”
 
신철이는 진심으로 반가워서 그의 꿋꿋한 손을 잡아 흔들었다.
외눈까풀이는 빙긋이 웃으며 신철이가 주저앉히는 대로 앉아서 방 안을
휘 돌아보았다.
 
“어데 앓았수?”
 
뚫어지도록 들여다본 신철이는 외눈까풀이가 기색이 전만 못한 것 같아서
이렇게 물었다.
 
“아니유.”
 
외눈까풀이는 그의 머리를 내려쓸며 약간 머리를 숙였다.
그의 오래 깎지 않은 듯한 좋은 머리카락에 먼지가 뿌옇게 앉았다.
그리고 그의 턱밑으로는 굵단 수염이 삐죽삐죽 나와 있었다.
신철이는 그가 말하지 않아도 오늘 노동시장에서 얼마나 피로해진 몸임을
직각하는 동시에 자신이 쇠철판을 들려고 애쓰던 생각이 들며 금방 팔이
쩔쩔해 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신철이는 머리맡에 놓인 몇 권의 책을
척척 덧놓아서 밀어 놓았다.
 
“여기 좀 누. 동무 대단히 곤하지우?”
 
외눈까풀이는 신철이를 흘금 바라보더니 조금 물러앉았다.
 
“아니유…….”
 
“누시오, 어서 누시오.”
 
신철이는 바짝 다가앉았다. 땀내와 함께 고리타분한 냄새가 훅 끼친다.
그는 무의식간에 약간 눈살을 찌푸리다가 얼른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옷이 땀에 배어 어룽어룽하니 말라진 것을 보았다.
외눈까풀이는 신철이가 그의 곁으로 다가올수록 어려운 빛을 얼굴에 띠고
점점 더 물러앉는다. 그리고 머리만 벅적벅적 긁었다.
 
“왜, 올라가시우, 좀 누라니까…… 오늘도 일하러 가셨지요?”
 
“네.”
 
“어데로 가셨소, 또 부두로……?”
 
“아니유. 왜 월미도 앞 개천 메우는 데 있지우. 거기로 갔댔슈.”
 
“그것은 하루의 임금이 얼마입니까.”
 
외눈까풀이는 머리를 들며 머뭇머뭇하였다. 신철이는 그가 임금이란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였나? 하며 동시에 자신이 이후부터 노동자들이
쓰는 말부터 배워야 하겠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저…… 품값 말입니다.”
 
“예, 예…… 그거 잘하면 칠팔십 전, 못하면 사오십 전 되지우.”
 
“예…… 평안히 앉아서 우리 맘놓고 이야기합시다. 왜 그리 힘들게 앉아
  계시우. 그런데 참 우리 사귄 지는 오래되 피차에 이름만은 모르지
  않소…… 난 유신철이라 하오. 동무는?”
 
신철이는 외눈까풀이를 똑바로 보았다.
 
“나유?…… 첫째유.”
 
“첫째…… 그 이름 좋습니다. 고향은?”
 
첫째는 속으로 고향을 말할까말까 망설였다. 그러나 고향을 말하는 것이
재미없을 듯하여 눈을 내려떴다.
 
“나 고향 없어유.”
 
“고향이 없어요…….”
 
신철이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고향 없다는 그 말이 이상하게도 그의 가슴을
찡하니 울려 주었다. 그리고 첫째와 같은 그런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말이
진심에서 나오는 말일지 몰랐다.
고향 말이 나니 첫째는 이서방과 어머니가 머리에 떠오른다.
지금쯤은 죽었는지? 혹은 살아서 자기가 돈 벌어 가지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지? 할 때, 이때껏 무심하던 가슴이 갑자기 어수선해졌다.
그가 집을 떠날 때는 돈을 벌어 가지고 이서방과 어머니를 데려오려고
생각했지만, 그가 생각했던 바와 같이 돈을 벌 수도 없지만 그의 몸이 항상
분주한 가운데 이렁저렁 지나니 어머니와 이서방도 그의 머리에서 차츰
 희미하게 사라졌던 것이다.
 
“좀 누시오. 일하기 힘들지유?”
 
신철이는 첫째의 손을 물끄러미 보며 자기의 손과 비교해 보았다.
그때 그는 부끄러운 생각과 함께 무쇠 같은 팔뚝을 가진 첫째가 얼마나
부러워 보였는지 몰랐다. 동시에 자기가 이때까지 배웠다는 것은 자기로
하여금 이렇게 연약한 몸과 맘을 가지게 한 것밖에 더 없는 것 같았다.
 
“동무는 일하기 힘들지 않소?”
 
“아침에는 괜찮유. 그래두 해질 때쯤 가서는 좀 어려워유.”
 
“네, 그래요? 동무는 어려서부터 노동일 하셨소?”
 
“아니유. 김매다가 노동을 했수…….”
 
신철이는 꾸밈없는 그의 말과 굵은 음성이 퍽으나 좋았다.
동시에 어딘가 모르게 믿는 맘이 차츰 강해짐을 느꼈다.
 
“동무, 난 일하는 데는 도무지 모르니,
   이후부터 종종 와서 나에게 일하는 것 가르쳐 주.”
 
“일두 뭐 가르쳐 주나유. 그저 하면 되지유, 허허.”
 
첫째는 가르쳐 달라는 말이 우스웠다. 더구나 전날 벽돌 나르면서 애쓰던
신철의 모양을 생각하였던 것이다. 신철이는 그가 웃는 것을 보니 한층더
그에게 맘이 쏠리었다.
 
“그런데 거…… 부두에서 말이오,
  짐짝이나 쌀가마니 나르는 것은 어떻게 품값을 회계하오.”
 
“그거유, 무게에 따라 다르지우. 쌀 한 가마니에는 오 리 아니면
  육 리 하고, 대두박은 사리, 기타 짐짝은 오 리지유.”
 
“그럼! 쌀 백 가마니를 날라야 오십 전 아니면 육십 전이구려!”
 
신철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쌀 백 가마니를 나를 생각을 해보았다.
따라서 부두에서 그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하던 몇천 명의 노동자를
생각하였다. 동시에 그는 뜻하지 않았던 한숨이 푹 나왔다.
 그리고 자기의 사명을 강하게 느꼈다.
 
“동무, 전날 돈 얼마나 벌었수? 그날 말이유.”
 
“몰라유. 잊었지유.”
 
“아 그 쌈하던 날 말이오. 왜 짐짝을 서루 뺏으랴고 쌈하지 않었수?”
 
“글쎄 몰라유.”
 
“그런데 동무 이후부터 쌈하지 마시오. 쌈해야 서로 손해만 나지 않우.
  쌈할 곳에 가서는 끝까지 싸워야겠지만 서로 동무들끼리 싸워서야
  피차에 손해가 나지 않소…….”
 
“그래두 그놈이 남이 맡아 논 짐을 제가 지고 가랴니께 싸우지우……
  그런데 왜 노동일을 하시우?”
 
“나요? 노동을 해야 벌어먹지유…….”
 
“당신 같으신 어룬은 면서기나 순사도 꽤 허시겠지유.”
 
아까 이 방에 들어설 때 신철이가 글을 쓰는 것을 보았고,
그리고 벽에 걸린 그의 옷이라든지 등 아래로 놓인 약간의 책권을 보니
신철이가 노동일이나 할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신철이는 웃음을 참으며,
 
“면서기나 순사가 좋아 보이시우?”
 
“그럼 좋지유.”
 
“난 당신들이 하는 노동일이 부럽소.”
 
첫째는 허허 웃었다. 그리고 순사와 면서기를 부르고 나니 고향서 보던
면서기와 순사들이 그의 앞에 나타나 보였다. 그리고 가슴이 뜨거워지며
신철이를 대하여 무엇인지 모르게 묻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저…… 순사는 말유…….”
 
첫째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끝을 잊었다. 신철이는 그를 똑바로 보았다.
 
“네, 순사가 뭘……?”
 
“저, 저…… 어떻게 해야 법에 안 걸리우?
   법에 안 걸리게 좀 가르쳐 주…….”
 
밤늦게 돌아온 간난이는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선비를 보며 생긋 웃었다.
 
“빈대 물지 않니?”
 
“왜 안 물어, 물지…… 어데를 갔었니?”
 
“나, 저게…… 누가 좀 만나자고 해서.”
 
간난이는 나들이옷을 훌훌 벗어 벽에 걸고 나서 선비 곁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이애, 지금 인천서는 말이야, 아조 큰 방적공장이 낙성되었는데
  그곳에는 지금 내가 다니는 방적공장과 달리 여직공을 많이 쓴다누나……
  근 천여 명의 여직공을 쓴대…….”
 
선비는 눈졸음이 홀랑 달아났다. 그리고 빛나는 눈에 이상한 광채를 띠었다.
 
“난 그런 곳에 못 들어갈까?”
 
“들어갈 수 있지…… 나두 그리로 갈 생각이다!
  우리 둘이서 그리로 가자…… 응 선비야.”
 
간난이는 생긋 웃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매만지며 빠져나오려는 핀을
다시 꽂는다. 멍하니 바라보는 선비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간난이에게서 들었던 방적공장의 온갖 기계들이 얼씬얼씬 나타나
보이었다.
 
“내가 그런 것을 할지 몰라…… 그러다 잘못하면 내쫓나?”
 
간난이는 선비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가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무섭고 부끄럽기만 하던 생각을 하였다.
 
“왜 네가 그런 것을 못 하겠니, 배우면 잘 할 터이지……
  너만 못한 애들도 많이 들어와서 배워나면 곧잘 하더라야. 걱정 마라.”
 
선비는 한숨을 가볍게 쉬었다. 그리고 웃었다.
 
“그래서 선비야! 난 오늘 방적공장을 나오기로 했단다…….”
 
“그럼 언제 가니?”
 
“곧 가지…… 그런데 볼일이 있어 아무래도 한 이틀은 지체될 듯하다.”
 
간난이는 아까 태수가 전해 주던 밀령을 다시금 생각하며,
유신철이…… 인천부 사정 오번지 하고 외워 보았다.
 
“인천이라는 데는 이 서울 안에 있니?”
 
간난이는 얼른 선비를 보며 호호 웃었다.
 
“아니야, 여기서 한 백여 리 차 타고 가야 한다더라.”
 
선비는 한층더 얼굴이 화끈 달며, 간난이는 언제 누구한테 배워서 말도
자기가 알아듣지 못할 유식한 말만 하고 또 모르는 곳이 없이 저렇게 잘
아는가…… 하였다. 그리고 자기는 언제나 저애처럼 되나…… 하였다.
그때 맞은편 방에서는 웃음소리가 하하 하고 흘러나왔다.
그들은 말을 그치고 흘금 문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굶지들은 않았나 봐…… 저렇게 웃음이 터질 때에는…….”
 
선비는 일어나서 자리를 펴놓으면서,
 
“그 사람들은 뭘 하는 사람들이어?”
 
선비는 방문을 맘놓고 열어 놓을 수가 없이 거북한 것을 느낄 때마다
뭘 하는 사내들이 해종일 어디도 가지 않고 저렇게 방구석에만 들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곤 하였던 것이었다.
그리고 간난이가 공장에 간 후에는 무서워서 앞문을 닫아걸고 있었다.
 
“그 사람들, 그저 실업자지…… 뭐겠니.”
 
실업이란 말은 또 무슨 말인가?
하며 선비는 묻고 싶은 것을 그만 눌러 버렸다.
 
“얼굴들이야 좀 잘생겼디…… 그래도 이 사회에서는 그들에게 직업을
   안 주니…… 어떻게 하니…….”
 
간난이는 등불을 멍하니 바라보며 사정 오번지 유신철……
이 번지와 이름을 잊을까 하여 그는 이렇게 되풀이하였다.
그리고 태수가 하던 말을 곰곰이 생각하였다. 선비는 간난이가 저렇게 늦게
돌아올 때마다 무엇을 깊이 생각하는 것이 수상스러웠다.
그리고 자기가 시골 있을 때, 밤마다 덕호에게 당하던 것을 생각하며
무의식간에 그는 진저리를 쳤다. 따라서 간난이 역시 그러한 일을 저지르지
않는가? 하는 불안과 의문에 슬금슬금 그의 눈치를 살폈다.
 
“선비야! 네가 서울 올라온 지가 오래두 내가 바빠서 너를 구경도 못 시켜
  주었지. 내일 우리 남산공원에 가볼까?”
 
“남산공원? 그게는 뭘 하는 데야.”
 
“우리 동네 왜 원소 위에 잿등이라고 있지 않니? 그런 산이지…… 뭐야,
  거게 우리들이 밤낮 올라가서 싱아를 캐먹었지……
  참 우리 어머님 보고 싶다!”
 
그때 선비의 머리에는 그의 눈등을 아프게 찌르던 첫째의 시커먼 손이 문득
떠오른다. 그리고 간난이에게 너 첫째를 혹시 만나 본 일이 있니 하고 묻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그러나 선비는 간난이 모르게 가슴을 쥐며,
첫째가 이 서울에 있는지 몰라…… 선비는 머리를 숙였다.
이튿날 그들은 창경원을 둘러서 남산까지 왔다.
 
“저기 조선신궁이라는 게다.”
 
간난이가 들여다보이는 조선신궁을 가리켰다. 선비는 머리만 끄덕일 뿐,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제 올라온 돌층계가 무섭게
 그의 앞에 아찔아찔하게 나타난다.
 
“이따 갈 때도 저리 가니?”
 
선비는 돌아서서 돌층계를 가리켰다.
 
“왜?”
 
“딴 길 없나?”
 
그제야 그가 선비의 눈치를 살피고 생긋 웃었다.
 
“에이 시굴뚜기년 같으니, 거기서 떨어져 죽을까 겁나니?
  그럼 다른 길로 가자꾸나.”
 
그들은 호호 웃으며 조선신궁 앞을 지나 솔밭으로 내려와서 가지런히
앉았다. 우수수 하는 바람결에 나뭇잎이 그들의 치맛가를 가볍게 스치고
천천히 떨어진다. 선비는 무심히 나뭇잎을 쥐었다.
 
“벌써 가을이야! 세월두 어지간히 빠르지.”
 
간난이는 선비의 손에 쥐어진 나뭇잎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선비는 휙 머리를 돌려 간난이를 바라보다가 빙긋이 웃었다. 간난이가
자기의 생각한 말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저 앞을 바라보았다. 붉고도 흰 벽돌집은 저마다 높음을 자랑하느라
우뚝우뚝 솟았고 북악산 밑 백악관은 몇천만 년의 튼튼함을 보여 주는 듯이
앉아 있다. 그 뒤로 게딱지같은 집들이 오글오글 쫓겨서 몰려들어 간다.
윙 달아오는 전차 소리, 택시 소리…… 그들이 시선을 옮기니,
옛날의 비밀을 혼자 말하는 듯한 남대문이 컴컴하게 솟아 있다. 그곳을
중심으로 수없이 얽혀 나간 거미줄 같은 전선이며
 각 상점 간판이 어지럽게 빛나고 있다.
 
“저 집이 다 사람 사는 집일까?”
 
간난이는 옆에 선비가 있는 것을 느끼며 돌아보았다.
 
“그럼 사람이 살지, 뭐가 살겠니…… 호호.”
 
그가 처음 돌연히 선비를 만났을 때에도 선비의 미모에 놀랐지마는,
몇 달을 지난 오늘에 보니 그때는 오히려 파리해졌던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비록 반찬 없는 밥을 먹으나 서울 온 후로부터 그가 저렇게 살이
오르는 것을 보니 간난이는 기뻤다. 그리고 저애를 어서 가르쳐서
계급의식에 눈을 띄워 주어야겠는데…… 하였다.
 
“선비야, 너 덕호가 밉지?”
 
선비는 얼굴이 빨개진다. 자기가 덕호와의 관계를 말하지 않았어도
간난이는 벌써 짐작한 듯하였다. 그러므로 선비는 고향 말만 간난의 입에서
떨어지면 불쾌하고도 겁이 나서 가슴이 울울하곤 하였다.
 
“내가 조용한 때 널 보고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아직까지 널 보고 조용히
  말할 짬도 없었지마는…… 우선…… 너 덕호라는 놈을 어떻게 생각하니?
  그것부터 내게 말해라.”
 
선비는 귀밑까지 빨개지며 머리를 숙인다. 그리고 손에 쥔 나뭇잎만
바삭바삭 소리가 나도록 손끝으로 누른다. 간난이는 선비를 바라보며
선비가 아직도 덕호를 못 잊어하는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것은 자기의
과거를 미루어서 그렇게 짐작되었던 것이다. 간난이가 태수를 만나 지도받기
전에는 그나마 덕호를 잊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꿈에도 덕호를 만나
영감님! 나는 월경을 건넜에요! 아마 애기가 있지요……
하고 목이 메어 울다가는 깨곤 하였다. 그뿐이랴! 그가 상경하기 전에
덕호가 선비에게 사랑을 옮기는 것을 샘하여 밤중에 돌아다니다가
어떤 놈이 다그치는 바람에 질겁을 해서 달아나다 개똥이네 집으로 들어갔던
어리석은 자신을 다시금 그는 굽어보았다. 따라서 선비가 더 불쌍하게
보였다. 선비는 머리가 눌리는 듯한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덕호의 그 얼굴이 무섭고도 느글느글하게 떠올라서 어서 간난이가
화제를 돌렸으면 좋을 것 같았다.
간난이 역시 덕호의 얼굴이 떠올라서 불쾌하였다.

그래서 그는 선비에게서 시선을 옮겨 저 앞을 바라보았다.

저 번화한 도시에도 얼마나 많은 덕호가 들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그때 요란스러운 소리에 그들은 머리를 돌렸다. 소나무 아래로
작은 게다 큰 게다가 뒤섞여서 비탈길을 올라가고 있다. 게다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푸른 솔밭 위로 화강석으로 깎아 세운 도리이(鳥居)가
반공중에 뚜렷하였다.
이틀 후에 인천으로 내려온 간난이와 선비는 우선 간난이가 공장에서 사귄
어떤 동무 집에서 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동무의 주선으로
대동방적공장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경찰서에서 신원보증까지 헐하게 맡게
되었다. 동시에 대동방적공장에서는 사숙을 허하지 않고 전 여공을 기숙사에
수용한다는 것이 한 철칙이 되어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내일은 세 동무가 일시에 기숙사로 들어가기로 생각을 하고 월미도로,
만국공원으로 해가 질 때까지 돌아 다녔다.
저녁을 맛있게 먹은 그들은 상을 물리고 앉아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간난이는 일어났다.
 
“인숙아, 나 잠깐 저기 다녀올게.”
 
인숙이를 바라보고 선비를 보았다.
 
“어데를…… 응 너 아까 묻던 그 사람 찾아갈래?”
 
아까 만국공원에 갈 때 서울서 어떤 동무의 부탁으로 그의 오빠를
찾아 봐야겠다고 말하여 사정을 돌아다니며 신철이가 있는 번지를 간난이는
알아 놓고도 찾지 못한 체하고 밤에 찾아본다고 하며 말았던 것이다.
 
“너 혼자 가서…… 번지도 똑똑히 모른다면서 찾겠니?”
 
“글쎄…… 뭘, 가서 좀 찾아보다가 오겠다야. 그애의 말값으로 찾아나
  봤으면 되는 것 아니냐. 난 정신없어서 큰일났다니! 번지를……
  아이 몇 번지라던가…….”
 
“아이구! 이 바보야, 번지도 모르면서 찾겠대…… 어디 찾아봐라.”
 
“좌우간 내 나가서 오래 있으면 찾아간 줄로 알려무나.
   그리고 곧 들어오면 말할 것 없고.”
 
간난이는 빙긋이 웃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사면을 휘휘 둘러본 후에
사정으로 향하였다.
사정 오번지까지 온 간난이는 좌우를 또다시 살펴본 후에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신철이가 어느 방에 있을까 하고 돌아보았으나 안방
이외는 방이 없는 듯하였다. 그래서 그는 잘못 찾아왔는가 하여
 도로 나와서 주저하다가 다시 들어갔다.
 
“말 좀 물읍시다.”
 
뒤미처 안방문이 열리며 부인이 내다본다. 간난이는 잠깐 망설이다가,
 
“저 여기 하숙하는 손님 방…….”
 
말이 끝나기 전에 부인은 마루로 나왔다.
 
“이리로 들어가 물어 보시오.”
 
부엌 뒷골목을 가리킨다. 간난이는 컴컴한 골목을 빠져서 조그만 문 앞에
섰다. 차츰 가슴이 두근거리며 숨이 가빴다. 안에는 누가 혼자 있는
모양이다. 문에 그림자가 얼씬하며 신문 뒤적이는 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간난이는 이렇게 찾아보았다. 그때 방문이 열리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나이가 나타난다.
 
“유신철 동무입니까?”
 
신철이는 누군가? 하여 방문을 열었다가, 어떤 젊은 여자가 이 밤에 문 앞에
서서 자기 이름을 부르는 데는 놀랐다. 그러나 다음 순간 철수한테서
통지받은 생각이 얼핏 들자,
 
“예! 그렇습니다. 들어오시지요…….”
 
간난이는 방으로 들어가서야 신철이가 자기가 있던 앞방에서 자취를 해가며
고생하던 청년임을 알았다. 신철이 역시 간난이를 보자 곧 알았다.
 
“경성서 늘 뵈우시던 동무 아닙니까,
   바루 우리 자취하던 앞방에 계셨지요?”
 
“네! 참 우습습니다. 호호…….”
 
“허허, 곁에다 동무를 두고도 몰랐습니다그려. 언제 나려오셨습니까?”
 
신철이는 간난이가 이렇게 속히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경성 있을 때에는 한낱의 방적여공으로밖에 그의 눈에 비치지
않던 그가 오늘 이렇게 마주앉고 보니 새삼스럽게 용감하고도 씩씩해
보였다. 더구나 화장하지 않은 그의 얼굴이 전등불빛에 불그레하니
 타오른다.
 
“어제 낮차로 왔습니다. 동무는 얼마나 고생을 하셨습니까?”
 
간난이는 말끄러미 신철의 눈치를 살피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무슨 말
나오기를 기다렸다.
 
“네, 뭐…… 고생이 무슨 고생이겠습니까.
  여기 무슨 볼일이 계십니까, 혹은 아주 사시랴고 오셨습니까?”
 
신철이 역시 간난이가 먼저 말하기 전에는 아무러한 눈치도 간난이에게
보이지 않을 모양이다. 간난이는 한참이나 무엇을 생각하다가,
 
“저는 여기 방적공장에 취직하러 왔습니다. 혹 먼저 아셨는지요?”
 
그 밤을 자고 난 세 동무는 드디어 대동방적공장 안에 있는 기숙사로
들어오게 되었다. 새로 회벽을 한 한 간이나 되는 방에 역시 세 동무가 함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백여 간이나 넘는 듯한 기숙사를 둘러보고 공장 안을
살펴보았다. 서울 T문 밖에 있는 제사공장은 여기에 대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선 기숙사며 공장은 내놓고라도 그 안에 설비된 온갖 기계가
서울서는 보지도 못하던 것이었다. 대개 발전기라든가 제사기라든가 흡사한
것이 일부에 없지는 않으나 서울의 것보다는 아주 대규모적이었다.
고치를 삶는 가마도 서울서는 대개 세숫대야만하고 와꾸(자새)도
하나였는데, 여기 것은 가마가 장방형으로 길게 되었으며,
서울 가마의 십 배는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와꾸도 한사람 앞에
십여 개내지 이십 개까지 쓰게 된다고 하였다. 선비는 처음이니 아무것도
모르나 간난이와 인숙이는 입을 쩍쩍 벌렸다.
한 결부터 간난이와 인숙이는 제 오백 번, 제 오백일 번이라는 번호를
타가지고 공장으로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선비만은 아주
처음이라고 해서 간난이가 맡은 오백 번호에 곁들여서 실 켜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저편 발전소에서 일어나는 소음과 돌아가는 와꾸의 소음이 합치어서,
공장 안은 정신 차릴 수가 없이 소란하였다. 선비는 멍하니 서서,
간난이가 실 켜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간난이는 늘 해보던 것이 되어서
모든 것을 손익게 하였다.
우선 남직공이 갖다 주는 초벌 삶은 고치를 펄펄 끓는 가마 속에 들이붓고
조그만 비로 돌아가며 꾹꾹 누른다. 그러니 실끝이 모두 비에 묻어 나왔다.

처음에 나쁜 실끝은 비로 끌어내어 가마 좌우에 꽂힌 못에 걸어 놓고 나서
다시 비를 넣어 실끝을 끌어올리었다. 이번에는 약간 누런색을 띤 정한
실끝이었다. 간난이는 실끝을 왼손에 걸어 쥐고 나서 바른손으로 실끝을
하나씩 끌어 사기바늘에 붙였다. 그러니 실이 술술 풀려 올라간다.
서울 공장에서는 이 사기바늘이 한 개 아니면 혹 두 개까지는 있었으나
이렇게 수십 개씩 되지는 않았다. 간난이는 세 개의 사기바늘에 실을
붙였다. 우선 능해지기까지 세 개를 사용하다가 차차로 늘릴 모양이다.
공장 남쪽 벽은 전부가 유리로 되었으며, 천장까지도 유리를 달았다.
그리고 제사기도 두줄씩 마주 놓고 그 가운데는 길을 내었으며, 그리로는
감독들이 왔다갔다하고 있다. 서울서는 감독이 다섯 사람이었는데 이곳은
감독이 삼십 명은 되는 모양이다.
오백 번호나 나왔건만 여기서도 아직도 수백 번호가 나가리만큼 아득해
보였다. 선비는 얼굴이 뻘개서 가마에서 뽑혀 나오는 실끝을 들여다보았다.
벌써 간난의 손은 끓는 물에 익어서 빨갛게 타오른다. 그리고 손끝은 물에
부풀어서 허옇게 되었다.
 
“간난아, 내 좀 하리!”
 
선비가 그의 귀에다 입을 대고 말하였다. 간난의 귀밑으로는 땀이
빗방울같이 흘러내린다.
간난이는 생긋 웃어 보이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실을 골라
사기바늘에 붙인다.
 
“처음 와서도 아주 잘 해.”
 
바라보니, 감독이란 자가 마주서서 들여다본다. 그리고 선비를 바라보며,
 
“어서 잘 배워야 해…… 그래서 빨리 일을 해야 돈을 벌지.”
 
선비는 가만히 섰는 자신이 끝없이 부끄럽게 생각되었는데, 또 이런 말을
들으니 기가 막혔다. 감독은 선비의 숙인 볼을 곁눈질해 보며 그들의 앞을
떠나지 않았다.
그때 전깃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선비는 놀라 전등불을 바라보며, 그리고
그의 눈앞에 벌여 있는 온갖 기계며 여직공들을 볼 때, 자기는 어떤
 딴 세계에 들어왔는가? 하리만큼 그의 주위가 변한 것을 느꼈다.
 
“선비야, 너 좀 해봐.”
 
간난이가 물러난다. 선비는 실끝을 쥐니 손이 떨리며 손발이 후들후들
떨려서 맘대로 손을 놀리는 수가 없었다.
 
“가마이! 실이 끊어졌구나!”
 
간난이가 발판을 꾹 눌렀다 놓으니 기계가 정지되었다. 간난이는 실끝을
사기바늘 속으로 넣어서 저편 끝과 꼭 부비치며,
 
“실이 끊어지면 이렇게 실끝을 맺는다. 봐라, 선비야! 그리고
  정지시키랴면 이렇게 하면 돌던 기계가 멎는다.”
 
그때 사이렌 소리가 우렁차게 일어난다. 선비는 눈이 둥그래서 둘러본다.
 
“선비야! 저 사이렌이 울면 우리는 나가고 야근할 동무들이 들어와서
  다시 일을 계속 한단다.”
 
말도 채 마치지 못하여 야근할 여공들이 우르르 밀려들어 온다.
간난이는 얼른 기계를 정지시킨 후, 실 감긴 와꾸를 뽑아 들고 공장 밖을
나와 감정실 앞에 늘어선 여공들 뒤에 가섰다.
 
“선비야, 넌 먼저 가거라.”
 
선비는 공장문 밖에 나와 서 있었다. 공장 안에서는 여전히 기계 소리가
요란스러운 소리를 발하고 있다. 간난이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선비는
걸었다. 벌써 식당에서는 종소리가 울려 나왔다.
 
“어서 가자! 저게 밥 먹으라는 종인가 부다, 아마…….”
 
간난이도 기숙사생활을 하느니만큼 모든 것이 분명하지를 않았다.
그들이 식당까지 왔을 때는 몇백 명의 여공들이 가뜩 들어앉았다.
식당은 기숙사의 왼 하층으로 지하실이었다.
장방형으로 된 방 안에 밥김이 어리어 훈훈하였다. 그리고 기단 나무판자를
네 줄로 이편 끝에서부터 저편 끝까지 이어 놨으며 그 위에는 밥통이며
공기가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들은 밥을 보자 식욕이 버쩍 당기어
술을 들고 한참이나 퍼먹다가 보니 쌀밥은 틀림없는 쌀밥인데 식은 밥
쪄놓은 것같이 밥에 풀기가 없고 석유내 같은 그런 내가 후끈후끈 끼쳤다.
간난이는 술을 들고 멍하니 선비와 인숙이를 번갈아 보았다.
 그들도 역시 그랬다.
 
“이게 무슨 밥일까?”
 
저편 모퉁이에서는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그나마 반찬이나 맛이 있으면
먹겠지만 반찬 역시 금방 저린 듯이 소금덩이가 와그르르한 새우젓인데
비린내가 나서 영 먹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식욕이 일어 배에서는 꼬록꼬록
소리가 났다. 그러나 입에서는 당기지를 않아서 술을 들고 저마다 멍하니
바라보다가는 마침 몇 술 떠보는 체하다가 눈물이 글썽글썽해서 술을 내치고
식당을 나가는 여공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때 먼저 이 공장에 들어와서
이밥에 낯익힌 여공들은,
 
“너희들이 배고픈 맛을 못 봐서 그러누나! 여기 들어와서는
  이 안남미 밥을 먹어야 한단다! 백날 굶어 보렴! 안남미가
  없어질까? 흥!”
 
그들도 처음 며칠은 이 밥에 배탈을 얻어 십여 일이나 설사까지 하고도
할 수 없이 이 밥을 먹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먹어나니 이젠 배를 앓거나
또는 처음 먹을 때처럼 석유내가 몹시는 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이 배고픈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고…… 하였다.
시재 못 먹을 것이라도 배만 고프면 먹지 못할 것이 없으리라…… 하였다.
 
식당에서 올라온 지 한 시간이 되었을까말까 한데 기숙사 종이
 댕그렁댕그렁 울렸다.
 
“이게 뭐 하란 종이우?”
 
간난이가 놀러 온 여공에게 물었다.
 
“아이 모루우? 이게 야학종이라우…… 어서들 준비하우.”
 
“안 가면 안 되우?”
 
“그럼 안 되구말구. 별일 있수. 어찌나 배우는 게야 좋지 않우?
    어서들 가요.”
 
그는 종종걸음을 쳐 나간다. 간난이는 입모습에 어느덧 비웃음을 띠고
인숙이와 선비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배가 고파서 창문에 맥없이 기대어
저 밖을 내다보고 있다.
 
“간난아! 우리가 오늘 아침 집에서 너무 잘 먹어서
    그 밥이 맛이 없나 봐.”
 
“글쎄…… 그 쌀이 안남미라고 하지?”
 
“안남미?”
 
“그래…….”
 
“응, 그러니 석유내 같은 내가 나누나! 야! 그게야 어디 먹을 것이더니?”
 
“흥, 그래두 먹으라고 삶아 놓는 데야 어쩌란 말이야!
   자 여러 말 할 것 없이 야학에나 가보자! 무엇을 가르치나…….”
 
선비는 배가 좀 고프나 야학이라는 말에 귀가 띄어서 부시시 일어났다.
그때 그는 덕호가 공부시켜 주겠다는 것을 미끼삼아 그의 정조를 유린하던
장면이 휙 떠오른다. 그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것을 진정하며 그들을
따라 강당으로 들어앉았다.
단상에는 낮에 간난이를 칭찬하던 감독이 대모테 안경을 시커멓게 쓰고
서서, 들어오는 여공들을 흘금흘금 바라보았다. 눈 가장자리가 퍼릇퍼릇한
감독에 있어서는 그 안경이 유일한 미안제가 되었다. 여공들이 다 모인 후에
감독은 이렇게 말하였다. 오늘은 신입 여공들이 많으니 공부는 그만두고
공장 내의 온갖 규칙에 대하여 말하겠다고 하였다.
그는 기침을 하고 휘 돌아본 후에 말을 꺼냈다.
 
“이 공장은 다른 작은 공장과 달리 직공들의 장래와 편의를 생각해
  주는 점이 많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눈앞에 보는 바와 같이
  이 기숙사라든지, 또 야학이라든지 기타 여러분이 소비하기 위한
  일용품까지 배급하는 설비라든지 다대한 경비를 들여
  맨들어 놓지 않았소…….”
 
감독은 장한 듯이 상반신을 뒤로 젖히고 배를 내밀며
 장내를 한 번 돌아본다.
 
“여러분이 늘 쓰는 화장품이나 양말이나 기타 일용품을 시가에 나가
  산다고 합시다. 값이 비쌀 뿐 아니라 속기도 쉽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필요한 경우에는 이 공장에서 원가대로 배급해 주는 시설이 있습니다.
  이 시설은 전혀 여러분을 위함이니 공장측에서는 도리어
  손해를 봅니다.”
 
이때 긴장하였던 여공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에…… 이 공장에는 여러분의 장래를 생각하여 저금제도를
  맨들었소. 저금은 인생의 광명이오! 그러니 여러분들은 노동만 하면
  공장에서 밥을 먹여 주고 일용품을 대주고 나머지는 저금을 시켜 주니
  여러분의 맘에 따라 얼마든지 벌 수가 있지 않소? 여러분은 그저
  저금통장만 가지고 있다가 삼 년 후 나갈 때 그것으로 결혼 비용에
  쓸 수도 있지 않소? 허허…….”
 
감독은 입 모습에 야비한 웃음을 띠었다. 여공들도 따라 웃는다.
 
“그러니 삼 년만 꾹 참고 일하면 그때는 이 공장을 나가 안락한 가정도
  이루어 아들딸 낳고 잘살 수가 있소. 여러분이 여게 들어올 때 삼 년을
  계약 맺고 들어왔으나 그 삼 년이 절대로 긴 세월이 아닙니다. 그때 가면
  더 있겠다고 할 것이오. 이 공장은 이같이 우대를 하느니만큼 들어올 때
  경찰서에서 일일이 보증까지 받아 가지고 들어온 것이 아니오? 그래서
  여러분들은 많은 사람들 중에서 뽑혀 들어온 것이니 큰 행복이 아닙니까.
  어데 또 이렇게 좋은 곳을 본 일이 있소? 밖에서는 일할 데가 없어서
  돌아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오?”
 
여공들은 자기들이 시골에서 조밥도 잘 못 먹고 김매던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도록 행복을 느꼈다. 감독의 안경은 불빛에 번쩍하였다.
그는 수염을 꼬고 나서,
 
“이 공장에서는 여공의 장래를 그르칠까 봐 풍기를 엄밀히 감독하는
  까닭에 개인의 외출을 불허하느니만큼 여러분은 퍽 밖이 그리울 것이오.
  그러나 매해 춘추로 좋은 음식을 맨들어 가지고 산보를 가오.
  오는 봄에는 여러분에게 구두를 원가로 배급하야 신기고 월미도에 가서
  원유회를 할 계획을 지금 사무실에서 하고 있는 중이오…….”
 
여공들의 눈에는 희망과 환희의 빛이 떠올랐다.
이때 간난이는 벌떡 일어나서 감독의 말을 일일이 반박하고 싶은 흥분을
 가슴이 뜨겁도록 느끼었다.
 
“또 이 공장에서는 삼 주일에 한 일요일은 휴일로 정하고 그날은 앞의
  운동장에서 운동과 유희를 시키우. 이것은 여러분의 건강을 위하여
  하는 일이니, 참 이 공장의 특전이오. 마주막으로 이 공장을 내 공장으로
  생각하고 소제를 깨끗이 하며 또 일의 능률을 내어서 임금외에 상금도
  많이 타도록 하오. 그러나 게으른 사람에게는 도리어 벌금이 있을 터이니
  특별히 주의하여야 하오.”
 
그들은 일시에 일어나 감독에게 경례를 하고 강당에서 몰려나왔다.
또다시 종이 울렸다. 이 종은 자라는 종이라고 그들은 소변 대변을 보고
나서 방 안의 전깃불을 껐다.
간난이는 곤하던 차라 한잠 푹 자고 나서 벌떡 일어났다. 사방은 고요하다.
다만 공장에서 들려 오는 기계 소리만이 요란스레 들릴 뿐이다.
그는 창문 곁으로 와서 우두커니 밖을 내다보았다. 어젯밤 신철의 앞에
있을 때에는 기운이 버쩍버쩍 나더니 오늘 이렇게 혼자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다. 물론 밖에서 동지들의 끊임없는 조력이 있을 것은
아나 시커먼 저 담 안에 갇힌 자신은 몹시도 고적해 보였다.
유리문 밖에 운동장을 거쳐 높이 솟은 저 담! 간난이는 아까 이 기숙사에
들어오면서부터 저 담이 몹시 걱정이 되었다.
행여나 그 담 밑으로 어떤 구멍이라도 발견할까 함이었다. 그러나 벽돌로
까맣게 올려 쌓고 그 밑으로 몇 길이나 시멘트 콘크리트를 한 그 철벽 같은
담에서는 바늘구멍만한 것도 하나 얻어 볼 수가 없었다.
그는 가만히 일어나서 문을 열고 나왔다. 복도 저편 끝에 달빛이 길게
떨어져 흡사히 사람이 섰는 듯하였다. 그가 멈칫 서서 좌우를 휘휘
돌아보았을 때 어디서 문소리가 나는 듯하여 벽에 붙어 섰다.
간난이는 숨을 죽이고 문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여공 하나가
신발 소리를 죽이고 감독 숙직실 편으로 가는 듯하여 간난이는 뜻밖에
호기심이 당기어 그의 뒤를 살금살금 따라섰다.
숙직실 앞에서 그는 발길을 멈추고 머뭇머뭇하더니 문을 열고 들어간다.
간난이는 거 누굴까? 하고 생각해 보았으나 짐작하는 수가 없었다.
어쨌든 여공이 감독과 밀회하러 들어간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때 간난이는
어젯밤 신철이가 하던 말을 다시금 되풀이하며 이대로 두면 이 공장 내에서
일하는 수많은 순진한 처녀들이 감독의 농락을 어느 때나 면하지 못할 것
같았다. 따라서 어리석은 저들의 눈을 어서 띄워 주어야 하겠다는 것을
깨닫는 동시에 하루라도 속히 천여 명의 여공들이 한몸이 되어 우선 경제적
이익과 인격적 대우를 목표로 항쟁하도록 인도하여야 하겠다는 책임을
절실히 느꼈다. 옛날에 덕호에게 인격적 모욕을 감수하던 그 자신이
등허리에서 땀이 나도록 떠오른다. 그는 한참이나 서서 이런 생각을 하다가
숙직실 문 앞에까지 와서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중대한 그의 사명이 없다면 당장에 이 문을 두드리고 이 공장 안이
벌컥 뒤집히도록 떠들어 이 사실을 여공들 앞에 폭로시키고 싶었다.
그때 유리문이 우르릉 소리를 내며 나뭇잎 떨어지는 그림자가 얼씬얼씬
비친다. 그는 얼른 뒷문 편으로 몸을 피하였다.
 
공장에서 기계 소리는 요란스레 울려 나온다. 그는 이 순간에 비창한 결심이
그의 조그만 가슴을 벅차게 하였다. 그는 단숨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담 밑으로 돌아가며 구멍을 찾았다. 아무리 둘러봐도 차디찬 벽돌만
그의 손에 만져질 뿐이고 조그만 구멍도 발견치 못하였다. 다만 담 밑에
수챗구멍으로 낸 구멍만이 몇 개 있을 뿐이다. 이 구멍은 겨우 손이나
들어갈는지 물론 사람은 나들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이 구멍은 누구의 눈에나
띄는 구멍이니 이리로 연락을 취하다가는 위험천만이다. 그러나 다시 돌려
생각하면 오히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 구멍이 어떤 점으로 보아서는
그들로 하여금 무관심하게 보일는지 모른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우선
며칠 더 적당한 구멍을 찾아보다가 결정하리라 하고 들어오고 말았다.
강당의 시계가 세시를 땅땅 친다. 그가 자리에 누울 때 선비가 돌아누웠다.
 
“어데 갔었니?”
 
“응, 너 안 잤니?”
 
“아니 잤어…… 이제 깨보니 네가 없기에.”
 
“변소에 갔댔지.”
 
“응.”
 
“그런데 선비야, 너 아까 감독이 한 말을 다 곧이들었니?”
 
그는 이 경우에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그건 왜 물어? 갑자기.”
 
“아니 글쎄…… 감독의 한 말이 참말일까.”
 
“난 몰라, 그런 것…….”
 
“선비야! 그런 것을 몰라서는 안 된다. 저 봐라, 지금 야근까지
  시키면서도 우리들에게 안남미 밥만 먹이고, 저금이니 저축이니 하는
  그럴듯한 수작을 하야 우리들을 속여서 돈 한푼 우리 손에 쥐어 보지
  못하게 하고 죽도록 우리들을 일만 시키자는 것이란다. 여공의 장래를
  잘 지도하기 위하야 외출을 불허한다는 둥, 일용품을 공장에서 저가로
  배급한다는둥, 전혀 자기들의 이익을 표준으로 하고 세운 규칙이란다.
  원유회를 한다느니, 야학을 한다느니, 또 몸을 튼튼케 하기 위하야
  운동을 시킨다는 것도, 그 이상 무엇을 더 빼앗기 위하야 눈가리고
  아웅하는 수작이란다…….”
 
선비는 간난이가 어째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런 줄을 아는 바에는 첨부터 공장에 들어오지 말 것이지
왜 서울서 그만두고 이리로 오고서는 하루도 지나기 전에
이런 불평을 토하는가? 하였다.
 
“선비야! 우리들을 부리는 감독들과 그들 뒤에 있는 인간들은 덕호보담도
  몇천 배 몇만 배 더 무서운 인간이란다.”
 
간난이는 여공이 들어가던 말까지 하려다가 이런 말은 좀더 기다려서
해주리라 하였다. 선비는 그렇지 않아도 수염을 올려 붙인 호랑이 감독이
자기게로만 눈꼬리를 돌리고 웃는 모양이 무섭고도 보기가 싫었는데 간난의
말을 듣고 나니 그 눈매가 곧 눈앞에 나타나 보였다. 그리고 그 감독이
덕호로 변하여지는 것을 그는 가슴이 울울하도록 느꼈다.
 
“선비야! 너 지금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분명하지 않지?
   좀 지나면 다 안다.”
 
간난이는 선비의 허리를 껴안으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감독의 방으로 들어가던 여공을 다시 한번 생각하였다.
며칠 후에 간난이는 공장 뒷담 밑에 뚫린 수챗구멍으로 긴 나무쪽 끝에
새끼를 매어 밖으로 밀어 내놓았다.
그 후로는 여공들이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자리 밑에서나 방 한구석에서
이상한 종잇조각을 발견하곤 하였다. 그 종이에는 전날 밤 야학에서 감독이
연설한 것을 한 조목 한 조목씩 띄어 쓰고는 그에 대한 해설이 알기 쉽게
써 있었다.
그들은 이 종잇조각을 발견할 때마다 머리를 맞대고 재미나게 읽어 보았다.
 
“이애, 이 종이를 누가 들여보내 주는지는 모르겠으나 여기 써 있는 글이
  꼭 맞는다야! 감독이 왜 그때 하루에 이십 전씩 상금을 준다고 하더니
  어디 상금 주디? 말만 상금이야!”
 
기숙사 상층 사호실에서 여공들이 자리에 누우며 이런 말을 하였다.
 
“그래 혜영이는 그렇게 일을 잘해두 말이어, 상금 타보지 못했대……
  아이 참 어쩌면 그런 그짓말을 하는지 몰라!”
 
“그래두야, 아이 인물 고운 저 칠호실에 있는 신입생은 벌써 상금을
  탔다더라…….”
 
“상금을 탔대? 거 누구여.”
 
웃기 잘하는 여공이 이렇게 물었다.
 
“이애는 누구 듣겠구나! 좀 가만히 말하렴.”
 
웃기 잘하는 여공은 킥킥 웃으며 이불 속으로 손을 넣어 꾹 찔렀다.
 
“누가 듣기는 누가 듣니? 이 밤에.”
 
“이애 봐라! 너 감독이 밤마다 순시 돈다. 너 그런 줄 모르니?”
 
“순시 돌면 어때! 이불 속에서 하는 소리가 밖에 나갈까.
  좌우간 누구여…… 아, 요새 갓 들어온 예뿐이 말이구나.”
 
기숙사에서는 선비를 예쁜이라고 별명을 지었다.
 
“이애 말 마라. 혜영이가 그러는데 말이야, 바루 혜영이 앞에 신입 여공이
  있지 않니? 그런데 그 앞에서 감독이 떠나지를 않고 자꾸만 싱글싱글
  웃더래! 아이 참 죽겠어! 그 꼴 보기 싫어! 왜 그때는 용녀를 그렇게
  허지 않았니?…… 네…….”
 
“흥! 용녀보다 신입 여공이 더 고우니 그렇지. 사실 곱기는 고와요!
  내가 남자라도 반하겠더라. 그 눈이며 코를 봐라네.”
 
“곱기는 뭣이 고와. 그 손이 왜 그러니. 난 손을 보니 무섭더라.”
 
가는귀 어두운 여공이 이렇게 말하였다.
 
“아따, 이 귀머거리! 뭘 좀 들었나 베…… 히히 후후…… 이 손,
   이 손 히히.”
 
가는귀 어두운 여공이 귀에다 손을 대고 듣는 것을, 웃기 잘하는 여공이
손으로 더듬어 보고 이렇게 웃었다.
 
“이애 웃지 마라. 어따! 잘 웃는다, 얼씨구 쟤가 왜 저래?”
 
가운데에 누운 여공이 웃기 잘하는 여공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런데 이애 효순아, 이 종이가 어서 누가 이 방에 갖다 줄까?
  다른 방에도 오는지 몰라…… 아무래도 그렇지 않으면, 이 기숙사 내에
  있는 여공이 그렇게 허는 게야, 필시. 어쨌든 이 종이에 써 있는 것과
  같이, 이 공장 내에 있는 여공들이 합심해서…….”
 
여기까지 말한 가는귀 어두운 여공은 가슴이 벅차는 듯하여, 이불을 조금
벗으며 숨을 돌리었다.
 
“이애 말 마라. 나두 서울서 미루꾸 공장에 있을 때, 글쎄 감독놈이
  하도 밉꼴스레 굴고, 품값도 잘 안 주어서, 우리들이 동맹파업인지를
  일쿠려 안 했니. 그랬더니 그 중에 몇 계집애가 싹 돌아서서 글쎄
  감독에게 고해 바쳤구나. 그래서 모두 쫓기어났단다. 그때 나는 다행히
  쫓기어나지는 안했으나, 감독놈이 미워해서 견딜 수가 없어야,
  그래 나오고 말았다. 뭘 그래 다 그런데…….”
 
“그런 계집애들은 모두 죽여 버려! 흥! 그런 것들은 말이다,
  감독놈과 연애하는 계집애들이 어…….”
 
“이거 봐라. 일은 죽도록 하구서는 손에 돈도 쥐어 보지 못하구 우리는
  그래 이게 무슨 꼴이냐. 어머니 아버지 앞에서 고이 자라 가지고
  이 모양을 해! 난 오늘 이 손이 하마트면 와꾸에 끼여 잘라질 뻔하였다.
  들어올 때는 누가 이런 줄 알았니?”
 
그는 손을 볼에 대며 진저리를 쳤다.
핑핑 돌아가는 와꾸를 금방 보는 듯하였다.
 
“이 종이 갖다 주는 사람을 만나 봤으면 좋겠어! 어디 우리 지켜 볼까?”
 
“그러다가 아지 못할 남자면 어떡허니?”
 
그들은 갑자기 부끄러움과 함께 무시무시한 생각이 그들의 젖가슴을 사르르
스쳐가는 것을 느끼었다.
 
“아, 무서워!”
 
무의식간에 그들은 꼭 부둥켜안았다.
인부들은 철사 주머니에 돌멩이를 쓸어 넣어서 해면에 동을 쌓으며
한편으로는 흙을 날라다가 감탕밭에 쏟았다. 첫째도 그들 틈에 섞여 흙을
날랐다. 그는 흙을 나르면서도 어젯밤 밤새도록 신철이와 자유노동자의
조직에 대하여 토의하던 것을 생각하였다.
그가 신철이를 만나 본 후로는 세상에 모를 것이 없는 듯하였다.
그가 반생을 살아오면서 막히고 얽혔던 수수께끼는 바라보이는
저 신작로같이 그렇게 뚫려 보였다. 그리고 그가 걸어갈 장차의 앞길까지도
저 길가같이 훤하게 내다보였다. 동시에 칼칼하던 그의 가슴은 햇빛에
빛나는 저 바다같이 그렇게 희망에 들떴다.
 
“여보게, 저거 보게나. 오늘이 무슨 날이기에 학생들이 통 떨어났는가?”
 
첫째는 얼른 돌아보았다. 수백 명의 여학생들이 행렬을 지어 이리로 왔다.
그때 첫째의 머리에는 어제 대동방적공장에서 나온 보고서를 신철이가 보고
그에게 이야기해 주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들이 아닌가? 신궁에 참배인가를
하러 가느라 구두까지 새로들 지어 신었다지…… 하며 어정어정 걸었다.
 
“이놈들아, 어서 일들이나 해라. 뭘 보느냐.”
 
벌떡벌떡 일어나던 인부들은 감독의 소리에 놀라 도로 허리를 굽히며,
 
“사람 죽인다! 저게 모두 계집이구먼.”
 
“이애 이 자식아, 하나 데리고 도망가라, 하하…….”
 
그들은 이렇게 농을 하며 흘금흘금 곁눈질을 하여 지나치는 행렬을 보았다.
그들은 일제히 검정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었으며 검정 구두까지 신었다.
첫째는 흙을 지고 낑낑하며 오다가 참말 여공들이나 아닌가? 하는 의문과
무어라고 형용 못 할 반가움에 흘금 바라보았다. 그때 첫째는 마주치는
시선과 함께 깜짝 놀랐다. 그리고 무의식간에,
 
“선비?”
 
하고 중얼거렸다. 상대 여자도 비상히 놀라는 빛을 띠고 멈칫 섰다가 거의
끌리어가는 듯이 차츰차츰 앞으로 나간다. 그 순간 첫째는 흙짐을
벗어던지고 따라가서 그가 참말 선비인가 아닌가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의 발길은 무의식간에 몇 발걸음 나아갔다.
 
“이놈의 자식아, 어서 일해라!”
 
첫째는 말할 수 없는 섭섭함을 꾹 누르며 감독을 돌아볼 때
가슴이 뛰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거운 발길을 옮겨 놓으며 선비?
선비가 여기를 올 수가 있나? 혹은 덕호가 공부를시켜? 아니 덕호가 공부를
시켜 줄 수가 있나? 그래도 알 수 없어. 선비가 고우니까,
혹시는 야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공부를 시키는지 아나?
아니어 내가 잘못 본 게지, 선비가 여기를 뭘 하러 온담. 벌써 시집가서
살 터이지…… 하고 다시 한번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저들이 방적 여공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어젯밤 신철의 말을
다시금 생각하며 불쑥 일어난다. 그러면 선비가 방적공장에 다니는가?
그는 여러 가지 생각이 뒤범벅이 되어 일어난다. 그는 감탕밭까지 와서
흙을 쏟으며 다시 바라보니 벌써 그들의 행렬은 월미도 어귀에서
까뭇까뭇하게 사라져 간다. 선비? 여공들? 참말 저들이 여공들인가?
하여간 기다려 보자! 이 뒤로 여공들이 또 지나칠는지 모르니까…… 하였다.
첫째는 그들의 옷차림이 암만해도 여공들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빤히 건너다보이는 월미도 조랑의 붉은 지붕을 바라보는 첫째는,
여공들이냐? 선비냐? 이 두 문제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였다.
그리고 뒤로 그런 행렬이 또 오는가 하여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따, 이 사람아, 뭘 그리 생각하나? 이제 여직공들을 보니 맘이
  싱숭생숭…….”
 
“여직공! 자네 여직공인 줄 꼭 아는가?”
 
“에이! 미친놈아! 여직공이지 그게 뭣들이냐.”
 
“공부하는 학생들이 아니어?”
 
“아따, 이놈아? 꿈을 꾸나 베…… 인천에서 몹쓸기로 이름난,
  수염이 빠딱한 호랭이 감독 지나가는 것도 못 봤구나…….”
 
첫째는 그의 말을 들으며 또 월미도를 바라보았다. 여공들……
과연 그가 선비인가 하였다. 그들을 여공들이라고 단정하고 나니,
역시 아까 본 선비같이 보이던 그 여자도 확실한 선비 같았다.
 
“이놈? 단단히…… 하하…… 그러니 이게 있어야지, 이놈아.”
 
동무는 손가락을 동그랗게 굽히었다. 첫째는 흙짐을 지고 낑 하고 일어나며
멀리 대동방적 공장의 연돌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검은 연기가 풀풀
흘러나온다.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간 저 연돌! 그는 바라보기만 하여도 아뜩하였다.
그가 대동방적공장이 낙성할 때까지 거의 매일 인부로 채용이 되었다.
그때 그는 그 공장 건축만은 아무러한 위험을 느끼지 않았으나 저 연돌을
쌓아 올라갈 때 벽돌 나르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앞이 아찔아찔하고 핑핑
도는 듯하였다.
 
벽돌 삼십 장씩 지고 휘청휘청하는 나무판자 다리로 올라갈 때 나무판자가
금방 부러지는 듯하여 굽어보면 몇십 장이나 되어 보이는 아득아득한
지하가 마치 깊은 호수를 들여다 보는 듯이 핑핑 돌았다. 동시에 그의
다리가 풀풀 떨리며 머리털끝이 전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앞이 캄캄하여 한참씩이나 정신을 가다듬어 올라가노라면 그 연돌이
움실움실 확실히 움직이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그만큼 위험을 느끼는 데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연돌의 높이가 높아 갈수록 명확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때마다 그는 이 연돌이 금방 쓰러지는 듯하고 그가 연돌과 함께
저 지하에 떨어져 죽을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렇게 위험을 느끼면서도 그는 아침이면 번번이 그 나뭇길을 다시
올라가곤 하였다. 그 때 마다 에크! 내가 여기를 또 왔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깨닫곤 하였던 것이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할 때, 그가 지금 연돌 위에 올라선 듯하여 무의식간에
우뚝 섰다. 그리고 등에 진 흙짐이 흡사히 벽돌 같아 등허리에서 땀이 버쩍
났다. 따라서 손발이 가늘게 떨리므로 그는 사면을 휘 돌아보고 눈을 감아
겨우 정신을 진정하였다. 그는 그의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 연돌만은
그의 머리에서 빼낼 수가 없음을 이 자리에서 발견하였다.
보다도 요즘 꿈속에 그 연돌을 보는 것이 아주 질색이다.
그리고 어떤 때는 그 연돌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는 것이다. 저 연돌!
바라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저 연돌! 그때! 저 연돌에서 떨어져 죽은
동무도 몇몇이었던가? 하루의 임금에 몸뚱이와 내지 생명까지 그들에게
맡기어 버리지 않을 수 없는 우리들……!
 
첫째는 또다시 여공들과 선비를 생각하였다. 이렇게 해종일 선비를 머리에
그리며, 아까 본 것이 선비냐? 선비가 아니냐? 하고 다투며 일을 끝내고
그는 늦어서야 인천 시가로 돌아왔다. 그가 국밥집까지 왔을 때 그들의
동무들은 벌써 노동시장으로부터 돌아와서 국밥을 먹으며 혹은 막걸리를
들이마시며 농을 주고받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위안을 얻는 곳이란
이 국밥집이며, 동시에 막걸리나마 얼근히 먹고 나서 농지거리나
하는 것이다.
첫째는 우선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나서, 펄펄 끓는 국밥을 단숨에 먹었다.
그리고 슬금슬금 돌아보았다. 그는 신철이를 알면서부터 웬일인지 이렇게
사람 많이 모인 곳에 오게 되면, 벌써 저들 중에 스파이가 섞여 있지나
않나? 하는 불안이 들곤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거리로 나오게 되면
양복이나 말쑥하니 입은 사람을 보면 또한 이러한 생각이 들곤 하였다.
어쨌든 신철이와 자기와 함께 노동시장에서 노동하는 동무 약간을 제하고는
모두가 그의 눈에 그러하게 비쳐졌던 것이다.
한참이나 둘러본 그는 비로소 안심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뜨뜻한
이 방에서 한잠 자고 그의 숙박소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방 안은 쩔쩔 끓었다. 그리고 술내가 가는 연기처럼 떠돌았다.
그는 아랫목으로 가서 목침을 얻어 베고 누우니, 아까 낮에 본 여공들의
긴 행렬이 떠오르며, 선비가 나타난다. 그가 참말 선비인가? 하며 눈을
감았다.
그때 밖으로부터 그의 동무가 무어라고 떠들며 들어오는 것을 알았다.
 
“아따! 이놈 보게, 벌써 자네. 이애 이놈아!”
 
첫째의 궁둥이를 발길로 차는 바람에 첫째는 눈을 번쩍 떴다.
 
“이놈아! 좀 가만히 있어라! 나 좀 자자.”
 
동무는 술이 취하여 비칠비칠하며 첫째를 흘겨보았다.
 
“이놈, 요새 한턱도 안 내구, 오늘 돈 얼마 벌었냐? 술 한잔 사내라.
  이놈 돈 내, 돈.”
 
머리를 기울기울하더니 펄썩 주저앉았다.
그의 옷갈피서는 가는 모래가 부슬부슬 떨어진다.
 
“허허…… 이 자식아! 공장 계집애들! 아 그게 다 계집이어…… 이애,
  사람 죽인다. 허허…….
 
  오동동 추야에
  달이 동동 밝은데
  임의 동동 생각이
  저리 둥둥 나누나.
 
  가을 하니 달이 밝거던 에이 이놈아 임이 없단 말이어! 허허……
  이애 너 장가 가보았니?”
 
첫째는 말없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주기에 불그레한 그의 눈에 이성을
생각하는 빛이 뚜렷이 보였다. 그는 얼핏 선비를 눈앞에 그리며 이상스러운
감정에 가슴이 뒤설레었다.
그래서 그는 일어나고 말았다. 동무는 일어나는 첫째를 바라보았다.
 
“이 자식, 왜 대답이 없니?”
 
첫째는 대답 대신에 픽 웃어 보이고는 부엌으로 나왔다. 국밥집 부인은
부엌에서 분주히 돌아가다가 첫째가 나오는 것을 보고,
 
“아재, 오늘 돈 좀 줘야겠수.”
 
첫째는 멈칫 서서,
 
“얼마유? 모두.”
 
“오십 전이지.”
 
납작한 얼굴을 쳐들고 첫째의 눈치를 살살 본다. 저편 밥상에는 아직도
노동자들이 죽 둘러앉아 훅훅 하고 국밥을 먹고 있다.
 
“옜수, 우선 삼십 전만 받우.”
 
“내일 또 오겠수?”
 
“봐야 알지유. 좌우간 나머지는 곧 드리겠수.”
 
“예…….”
 
국밥집 부인은 이십 전을 마저 주었으면 하는 눈치를 뻔히 보였다.
첫째는 방 안에서 동무가 나오는 것을 보며,
 
“이놈아 취했다, 거게 누워 자라!”
 
“이놈 술 한잔 안 사주겠니?”
 
“훗날 사줄라. 오늘은 돈 없다.”
 
“이 자식 보게, 돈이 없다?”
 
달라붙는 동무를 물리치고 첫째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언제나 저들도
계급의식에 눈이 뜰까? 하였다. 첫째 역시 신철이를 만나기 전에는 돈만
생기면 술만 먹었다. 술 먹지 않고는 맥맥하고 답답해서 못 견딜 지경이다.
남들은 그나마 어려운 살림이나, 계집 있고 어린것들이 있어 일하고
돌아오면 ‘아빠, 아빠’ ‘여보, 돈 내우, 쌀 사오게’ 이런 말에나마
위안을 얻지만 그는 답답하게 벽만 바라보고 앉을 뿐이다.
그러니 화가 나서 술집으로 달아오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신철이를
만나 본 그는 술을 끊고 담배를 끊었다. 그리고는 전같이 실없는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무엇을 깊이 생각하였다. 그래서 동무들은,
 
“이 자식이 웬일이야? 술도 안 먹고, 어데 계집을 얻어 두었나 베.”
 
이렇게 놀리곤 하였다. 그는 어정어정 걸으며 사면을 휘휘 돌아보았다.
그리고 스파이 같은 것이 그의 뒤를 따르지 않나? 하는 불안에 골목골목을
주의하며 주인집까지 왔다.
전등불도 켜지 않은 채 그의 방은 쓸쓸하게 그를 맞아 주었다.
그는 웬일인지 갑갑함을 느끼며 신철이한테라도 가볼까 하였으나 그가
지금 집에 없을 것을 짐작하며 벽을 기대었다.
그는 언제나 전등불을 켜지 않은 채 자고 만다. 그가 어려서부터 캄캄한
방에서 자란 까닭에 이렇게 캄캄한 가운데 앉은 것이 퍽으나 좋았다.
만일 어쩌다 불을 켜면 도리어 답답하고 눈등이 거북해서 못 견디었던
것이다.
선비! 그가 참말 선비인가? 그러면 내가 날마다 전해 주는 그 종이도
보겠지. 그가 글을 아는가? 아마 모르기 쉽지! 참, 공장에는 야학이 있다지.
그러면 국문이나는 배웠을는지 모르겠구먼…… 하였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자기 역시 국문이라도 배워야만 될 것 같았다.
어디서 배울 곳이 있어야지! 신철이보고 가르쳐 달랄까? 그는 빙긋이
웃었다. 삼십에 가까워 오는 그가 이제야 국문을 배우겠다고 신철의 앞에서
가갸거겨 할 생각을 하니 우스웠던 것이다. 보다도 필요와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그는 한잠을 푹 자고 부시시 일어났다. 그는 기운이 버쩍 남을
느꼈다. 그가 방문을 소리없이 열고 나서니 옆집에서는 시계가 새로 두시를
친다. 그는 언제나 저 시계가 두시를 칠때 이 문밖을 나서는 것이다.
번화하던 이 거리도 어느덧 고요하고 전등불만이 이따금 껌벅이고 있다.
그는 한참이나 서서 주위를 살피며 말할 수 없는 흥분과 감격을 느꼈다.
그때 멀리 들리는 기선의 기적 소리가 우웅하고 인천 시가를 은근히 울려
주었다. 그는 슬금슬금 걷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가 신철의 하숙까지 왔을 때 신철이는
반가이 맞아 주었다. 그는 일을 마치고 이제야 돌아온 눈치다.
그의 긴 눈에는 피곤한 빛이 뚜렷이 보였다. 신철이는 눈을 부비치고
첫째를 바라보았다. 첫째의 시커먼 얼굴에는 긴장한 빛과
아울러 어떤 위엄이 씩씩히 빛나고 있었다.
 
신철이가 처음 첫째를 만났을 때는 다만 순직한 노동자로밖에 그의 눈에
비치지 않던 그가…… 보다도 순직함이 도수를 지나 어찌 보면
바보 비슷하게 보이던 그가, 불과 몇 달이 지나지 못한 지금에 보면 아주
딴 사람을 대한 듯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때에 마주보면 신철이는
어떤 위압까지 느껴진다. 신철이는 묵묵히 앉은 첫째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런데 동무, 주의하시오. 지금 경찰서에서는 삐라를 단서로 대활동을
  하는 모양이니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겠소.”
 
첫째는 눈을 번쩍 뜨며 신철이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자기들이 가까운 시일 안에 붙잡힐 것 같았다. 그리고 붙들릴 바에는
자기와 같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무식한 사람들만 그리 되었으면
하였다. 만일에 신철이 같은 중요한 인물이 붙들리게 되면 바야흐로
계급의식에 눈떠 오려던 인천의 수많은 노동자들의 앞길은, 암흑 천지로
변할 것 같았다. 보다도 자기들이 붙들리게 되면 어떠한 무서운 매라도
넉넉히 맞고 견디어 내겠으나 신철이같이 저렇게 부드럽고 희맑은 육체를
가진 그들이 그 매에 견디어 낼까? 그것이 무엇보다도 의문이요 걱정이다.
 
신철이는 첫째와 마주앉아 말할 때마다, 그리고 중요한 심부름을
시킬 때마다 우리들은 이렇게 하여야 하오! 하고 언제나 우리들이라고
노동자를 가리켜 불렀다. 그러나 첫째의 귀에는 신철이만은 자기들과는
무엇으로 보든지 딴사람 같았다. 그래서 신철이가 말할 때마다
저가 우리들을 생각하여 우리들의 눈을 밝혀 주려고 애쓰거니……
하는 일종의 말할 수없는 감격이 치밀곤 하였던 것이다.
 
“이제부터는 일 개월에 한 번으로 정하였으니 오는 달 십오일에 또 오시오.
  하여튼 조심해야 하오. 그리고 동무를 주의하며, 술과 계집 같은 것은
  물론 삼갈 것으로 아니까 더 말하지 않으나…….”
 
신철이는 첫째의 눈치를 살핀다. 첫째는 씩씩 하며 앉아 있다.
마치 말 잘 듣는 소 모양으로 그렇게 충심되는 반면에 움직일 수 없는
그 무엇을 은연중에 발견할 수가 있었다.
 
“자! 그럼 갔다 오시우!”
 
신철이는 일어났다. 첫째는 그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신철이는 손빠르게 격문 뭉텅이를 그의 손에 힘있게 들려 주었다.
 
“조심하시오!”
 
첫째는 얼른 받아 바짓가랑이 속에 쑥 집어넣고 나서 신철의 손을 힘있게
흔들었다. 그리고 도리우치를 푹 눌러 쓴 후에 대문 밖을 나섰다.
이제 신철에게서 그런 말을 들어서 그런지 그의 신경은 날카로워진다.
그리고 그의 정신은 수없는 눈과 귀로만 된 듯하였다. 그는 이렇게 가슴을
졸이며 대동방적공장까지 왔다. 우선 한 바퀴를 돌았다.
그리고 어디서 사람이 숨어 엿보지나 않는가? 하여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공장에서는 발전기 소리가 우렁우렁 하고 흘러나온다. 그리고 까맣게
쳐다보이는 연돌에서 나오는 연기가 달빛에 희게 굽이친다.
그는 다시 이편 골목으로 와서 한참이나 보았다. 그러나 인기척이라고는
발견할 수 없으며 고요하였다. 그는 이번에는 살살 기어서 동북편
담모퉁이를 향하였다. 그는 담 밑에 착 붙어 섰다. 그리고 바짓가랑이
속에서 뭉텅이를 내어 얼른 구멍 속에 쓸어 넣고 돌아섰다.
그는 숨이 가쁘게 이편 집모퉁이로 와서 한참이나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때에 그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낮에 본 여공들의 긴 행렬이었으며,
그 중에 섞여 있던 선비였다. 선비!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선비가…… 참말 그 선비였는가? 그리고 저 안에서 지금 실을 켜고 있는가?
혹은 잠을 자고 있는가? 그도 나를 확실히 본 모양인데……
나를 알아보았을까?
선비도 자기가 넣어 주는 그 종이를 보고 똑똑한 선비가 되었으면……
하였다. 과거와 같이 온순하고 예쁘기만 한 선비가 되지 말고 한 보
나아가서 씩씩하고도 지독한 계집이 되었으면…… 하였다.
그때에야말로 자기가 믿을 수 있고 같이 걸어갈 수가 있는 선비일
것이라…… 하였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걸었다. 인간이란 그가 속하여 있는 계급을 명확히
알아야 하고, 동시에 인간사회의 역사적 발전을 위하여 투쟁하는
인간이야말로 참다운 인간이라는 신철의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하였다.
야학을 마치고 삼호실로 돌아온 선비는 옷을 입은 채로 자리에 누웠다.
칠호실에서 간난이와 같이 있을 때는 야학만 마치고 돌아오면 이불 속에
엎디어 밤 가는 줄을 모르고 이야기를 하였는데, 삼호실로 옮아온 후부터는
아직도 한방에 있는 그들과 친해지지를 않아서 그런지, 마치 남의 집에
나들이로 온 것 같고, 방 안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놈의 감독놈이 무슨 짓이어? 나를 이 방에다 끌어다 두면 제가 어떻게
하겠단 말이어…… 아무래도 수상하지. 간난의 말과 같이 그놈이 간난의
눈치를 챘음인가? 그렇지 않으면 내 생각대로 그놈이 나한테 반한 셈인가?
하였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또다시 첫째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자기들이 월미도를 향하여 가던 그때, 그 해변 돌길에서 눈결에 본,
아니 똑똑히 바라본 첫째, 그가 참말 첫째인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첫째를 눈결에 지나친 후로 선비는 밤마다 첫째를
생각하였다. 그리고 옛날에 그가 나물하러 잿등에 올라갔다가 첫째를 만나
싱아를 빼앗기고 울면서 내려오던 그때 일을 다시금 회상하여 보곤 하였다.
동시에 그의 어머니가 가슴을 앓아 돌아가실 때,
어느 새벽에 갖다 주던 소태나무 뿌리! 지금 생각하면 그때에 자기는
너무나 첫째를 몰라 본 것 같았다. 지금 같으면 그 소태 뿌리가 얼마나
귀한 것이며 얼마나 고마운 것이랴! 첫째의 결백한 순정의 전부가
그 싱싱한, 그리고 아직도 흙이 마르지 않았던 그 소태 뿌리에 은연중에
들어 있던 것을 그는 몰라보았다. 그렇게 고마운 것을…… 밤을 새워 가며
캐온 듯한 그의 정성을 대표한 소태나무 뿌리를 윗방 구석에 팽개친 자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는 자기의 그때 행동에 대하여 분하고도 부끄러웠다.
단 한 번이라도 좋아! 그를 꼭 만나 볼 수가 없을까?
선비는 돌아누우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의 뜨거운 숨결은 그의 볼에 따끈따끈하게 부딪친다.
그때 그는 씩씩 하며 자기를 껴안아 주던 덕호가 떠오른다.
그는 진저리를 쳤다. 그리고 자기는 첫째를 만나 볼 그 무엇을 잃은
듯하였다. 그는 안타까웠다. 분하였다. 이십 년이나 고이 싸두었던
그의 정조를 늙은 호박통같이 생긴 덕호에게 빼앗긴 생각을 하니 그는
생각할수록 분하였던 것이다. 그때에 자기는 반정신은 나가서 분한 것도
아무것도 몰랐으나 지금 이렇게 누워서 눈감고 생각하니 그때에 자기는
덕호에게 일생을 망친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선비는 얼굴이 화끈 달았다.
그리고 첫째의 얼굴을 다시 그려 보았다. 자기를 보고 놀라는 듯한 첫째의
표정을 보아 그도 역시 선비 자신을 알아본 듯하였다.
따라서 잠시간이나마 첫째가 자기를 어느 구석에 잊지 않고 이때까지
생각해 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것은 선비 자신이 흥분이 되어 그를 바라본 까닭에 그렇게 그의 눈에
비치어졌는지 모르나 어쨌든 첫째가 자기를 얼른 알아본 것만은 사실인
듯하였다. 그때 선비의 가슴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감회와 슬픔, 그리고
반가움이 교착이 되어 가지고 그의 조그만 가슴을 잡아 흔들었다.
동시에 언제까지나 그의 앞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뒤에서 밀고 앞에서 재촉하는 무서운 현실! 번개같이 만나자
번개같이 들었던, 일만 가지 감회를 쓸어안은채,
선비는 그 현실에 순응하지 아니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몰라보리만큼 꺽센 첫째의 몸집, 그리고 거칠고 거칠어진 그의 얼굴에
그나마 옛날 싱아를 빼앗아 먹으며 빙긋빙긋 웃던 그 눈만이 아직도 혁혁히
빛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 눈 역시 세고에 부대끼어 전과 같은 순진하고 맑은 기운은 약간
보이고, 반면에 무서우리만큼 강하게 빛나는 그의 눈동자! 그라야만 덕호에
대한 자기의 원을 풀어 줄 것 같았다.
그때 그는 간난이가 일상 하던 말을 얼핏 깨달으며,
세상에는 덕호와 같은 우리들의 적이 많은 것이다. 그것을 대항하려면
우리들은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던 그 말을 그는 다시 생각하였다.
선비는 어떤 힘을 불쑥 느꼈다. 그리고 간난이가 가르쳐 주는 그대로 하는
데서만이 선비는 첫째의 손목을 쥐어 보리라 하였다.
흙짐을 져서 파래진 첫째의 등허리!
실을 켜기에 부르튼 자기의 손끝!
그리고 수많은 그 등허리와 그 손들이 모여서 덕호와 같은 수없는 인간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 하였다. 보다도 선비의 앞에 나타나는 길은
오직 그 길뿐이다. 으흠 하는 기침소리에 그는 흠칫했다.
 
선비는 놀라 숨을 죽이고 들었다. 또다시 기침소리가 들릴 때
그는 그 기침소리가 숙직실에서 나오는 감독의 기침소리인 것을 깨달았다.
벽을 새로 감독과 그가 마주 누운 것이 직각되자 불쾌하였다.
그리고 간난에게서 들은 용녀의 이야기를 다시금 되풀이하며, 이를테면
나도 용녀 모양으로 그렇게 지내자는 심중에 이 방으로 옮기게 하였으나
내가 왜 말을 듣나. 만일 용녀같이 그렇게 농락하려고 그가 덤벼들면 망신을
톡톡히 시켜 놓고 나는 나가지. 이 공장 아니면 딴 공장은 없을까.
이렇게 그는 결심은 하나 그러나 그의 앞에는 불길한 예감만 그의 머리를
자꾸 싸고돌아 어쨌든 불쾌하였다.
이런 때 간난이가 곁에 있으면 어떠한 말을 하여서든지 자기의 맘을
시원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는 간난이를 찾아가서 덤벼드는 감독을 대항할
방침을 문의하고 싶었다. 벌써부터 이런 생각을 가졌으나 용이하게 기회를
타는 수가 없었다.
낮에는 바쁘고, 하루 건너서 야근을 하고, 시간이 좀 있다더라도 그 틈을
타서 옷 해 입기에 눈코 뜰 짬이 없었다.
그러므로 이런 밤에나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 몇 달 내지 몇 해를
간다더라도, 마주앉아 말 한마디 할 틈이란 바늘 끝만치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감독이 기침한 것을 보아 아직도 잠이 안 든 모양인데 문소리를
내면 필시 쫓아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에라 후일 간난이를 만나지! 오늘만 날인가? 하였다.
그때 문소리가 난다. 선비는 얼른 문 편을 바라보았다. 그의 방문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숙직실 감독의 방문이 열리는 듯하였다. 뒤미처 신발 소리가
가늘게 났다. 선비는 몸이 한줌만해지며, 참말 자기의 몸에 위기가 박두한
것을 느꼈다. 그는 이불을 막 쓰고 숨을 죽이었다.
신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선비는 감독이 저 문밖에 서서
이 방 사람들이 자는가 안 자는가를 엿보는 듯싶고, 그리고 금방 감독이
들어와서 그에게 덤벼드는 듯하여 가슴이 울렁울렁 뛰놀았다.
따라서 철모르고 자는 옆의 동무를 깨울까말까 망설이었다.
한참 후에 선비는 가만히 이불을 벗으며 신발 소리와 문소리를 들으려
하였다. 그때 옆의 동무도 역시 머리를 내놓고 있다가 선비를 바라보며,
 
“이제 문소리 났지?”
 
선비는 너무 반가워서 바싹 다가 누웠다.
 
“너도 깨었니?”
 
“그래, 그 무슨 문소리어…… 감독의 방 문소리가 아니어?”
 
“그런 것 같애…….”
 
옆의 동무는 선비의 귀에다 입을 대었다.
 
“저 요새 말이어…… 감독이 저렇게 자지를 않고 순시를 돌아.
  그런데 넌 그 이상스러운 종잇조각을 보지 못하였니?”
 
선비는 얼른 종잇조각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는 시치미를 떼고,
 
“몰라…… 무슨 종이냐?”
 
“딴 방에는 안 그런가 모르거니와 우리 방에는 요전에는 날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보면 무슨 종잇조각이 떨어져 있는데 그것에는 우리 공장 안의
  일을 모두 썼겠지. 네 전날 우리 월미도에 가면서
  구두를 신고 가지 않았니……?”
 
“그래.”
 
“그런데 그 구두도 말이어…… 이애 후일 말하자.”
 
동무는 문 편을 바라보며 말을 끊었다.
선비는 미리 간난에게서 들었던 말이므로 더 추궁하여 묻지 않았다.
더구나 감독이 저 말을 듣지나 않나? 하는 불안에 가슴이 한층더
졸이었다가, 잘되었다 하였다. 따라서 수없는 여공들의 수수께끼인
그 종잇조각은 아무래도 간난이가 어떻게든지 해서 돌리는 것 같았다.
간난이가 말하지 않아도 그의 하는 말이며 동작이 아무래도 그 수수께끼의
주인공인 듯싶었다. 그리고 그의 이면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 듯하였다.
간난이가 자기에게는 무엇이나 숨기는 비밀이 없으나 오직 그 일만은
숨기는 듯하였다. 그것이 무슨 일이며, 누구들이 뒤에서 조종하는지 모르나
어쨌든 그 비밀은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비는 처음에는 수상하게
생각되었으나 시일이 지날수록 그 일이 무슨 일이라는 것을 막연하게 짐작은
되었다. 확실하게 자기가 짐작하는 그런 일이라고는 꼭 말 할 수 없으나,
그저 막연하고 분명하지 않은 생각이었다.
 
그때 별안간 문이 바스스 열리며 회중전등이 쏴 하고 비쳤다.
그들은 얼른 이불을 막 쓰고 잠든 체하였다. 문이 가만히 닫히며
신발 소리가 가까워진다.
선비는 두 손을 가슴에 부둥켜안고 머리를 베개 아래로 내리며 숨을 죽였다.
그러나 가슴은 무섭게 뛰었다. 무엇보다도 이제 자기들이 한 말을 문밖에서
다 듣고 뭐라고 나무라려고 쫓아 들어온 것만 같았던 것이다.
한참 후에 선비는 그의 이불에 감독의 손이 닿는 것을 알자 이불이
벗겨진다. 선비는 몸을 흠칫하며 머리를 숙이었다.
 
“왜들 이때까지 잠을 안 자?”
 
감독의 무거운 음성이 방 안을 울려 주었다. 선비는 가만히 있었다.
 
“잠을 푹 자야 내일 일하기가 힘들지 않지.”
 
감독의 손길이 선뜩하고 선비의 볼에 부딪치므로 선비는 무의식간에 손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이불을 끌어 덮으며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이 방에는 종이가 떨어지지 않았더냐. 떨어진 것이 있으면 내놓아라.”
 
이번에는 선비의 머리를 툭툭 쳤다. 선비는 옆에 동무가 잠든 줄을 알면
대단히 무서울 것이나, 그러나 잠들지 않은 것을 뻔히 아는 고로 한결
무섭기가 덜하였다. 그러나 그만큼 감독이 그의 얼굴을 쓸어보고 머리를
툭툭 치는 것을 옆에 동무가 알 것이 부끄럽고 안타까웠다.
그리고 맘대로 하면 일떠나며 감독의 상통을 후려치고 싶었다.
그러나 역시 맘뿐이지 손가락 하나 까딱 하는 수가 없었다.
그때 그는 덕호에게 그의 처녀를 유린받던 장면을 다시금 회상하며 부르르
떨었다.
한참이나 우두커니 섰던 감독은 이불을 끌어당겨서 푹 씌워 주었다.
 
“잡생각들 말고 잠자.”
 
말을 마치며 감독은 돌아서 나간다. 선비는 그제서야 숨을 몰아쉬며 베개를
베고 제대로 누웠다. 그러나 감독의 손길이 부딪친 그의 볼에는 벌레가
지나간 것처럼 그렇게 불쾌한 감상이 오래 사라지지 않았다.
 
며칠 후에 선비는 감독에게 부름을 받아 사무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감독은 의자에 걸어앉아서
격문조각을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흘끔 쳐다보았다.
 
“거기 앉아…….”
 
책상 곁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선비는 주저주저하였다.
 
“이런 것 선비에게도 있지?”
 
감독은 선비의 속까지 뚫어보려는 듯이,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았다. 선비는 얼굴이 빨개졌다.
 
“없어요.”
 
“없는 게 뭐야. 거짓말 말어. 이 기숙사 안에는 안 간 방이 없는데,
   선비에게라구 안 갔을 탁이 있나? 바루 말해.”
 
선비는 약간 얼굴을 숙이며, 버선 갈피 속에 깊이 넣어 둔 종잇조각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감독이 혹시 그것을 미리 보고서 하는 말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들었다.
 
“이리 가까이 와.”
 
감독은 올백으로 넘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의자를 가지고 조금 다가왔다.
 
“이거 봐. 이런 종이를 만일 선비도 가졌다면 찢어 버리고 이런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야 해. 선비만은 내가 잘 알아. 온순하고 얌전하지,
  허허…… 그런데 한고향서 왔다는 간난이가 혹 밤에 나가는 것을 보지
  못하였는가?”
 
선비는 놀랐다. 한방에 있는 자기도 확실하게 눈치채지 못한 것을 감독이
어떻게 짐작하였는가? 하였다. 그리고 간난이가 그 일로 인하여 불행히
쫓기어 나가게나 되지 않으려나 하는 걱정이 들며 어떻게 감독을
곯리어서라도 그러한 의심을 풀어 버리게 하여야겠다고 생각되었다.
그것은 감독이 그에게만은 절대 호감을 가진 것을 아느니만큼
선비가 변호를 하면 아직 확실한 증거가 드러나지 않은 이상
가능하리라는 것이다.
 
“그런 일 없어요.”
 
선비는 용기를 내어 이렇게 대답하였다.
감독은 입 모습에 웃음을 띠며 조금 다가앉았다.
 
“한고향서 왔으니 변호하는 셈인가?…… 거게 좀 앉아! 응 자.”
 
선비는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흠씬 끼쳐진다. 그리고 그가 처음 덕호에게
유린받던 그날 밤 같아서 몸이 한줌만해졌다.
그래서 그는 조금 뒤로 물러섰다.
감독은 선비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면서 궐련을 피워 물었다.
 
“선비, 금년에 몇 살?”
 
감독은 궐련재를 털며 물었다.
선비는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며 어서 나오고 싶었다.
선비의 초조해하는 양을 바라보는 감독은 다소 위엄을 띠었다.
 
“누가 뭐라는가, 어서 거게 좀 앉았어. 뭐 물을 말이 많아. 응 거기…….”
 
의자를 가리켰다. 선비는 당황하였다.
그리고 그의 신변에 위기가 박두한 것을 느끼며 어떡해서라도 이 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숨이 가빠 오며 방 안의 공기가
자기 하나를 둘러싸고 육박하는 듯하였다.
그때 선비는 덕호에게 유린받던 경험을 미루어 감독이 어떻게 어떻게
할 것이 선뜻 떠오른다.
 
“저 난 일하던 것을 놓고 들어, 들어……왔에요.”
 
“응 무슨 일?”
 
선비의 불그레한 얼굴을 곁눈질해 보는 감독은 귀여운 듯이 빙긋이 웃었다.
 
“저 저고리를…….”
 
“저고리를?…… 돈 잘 벌어서 삯 주지, 허허허허. 그런데 말이어,
  이런 종이에 혹해 가지고 만에 일이라도 그릇 생각을 하면 안 되어.
  이 공장은 여러 여공들을 위하야 온갖 이익과 편리를 도모하는데,
  그러한 은혜를 모르고 이따위 말이나 곧이들으면 되는가. 후일 선비에게도
  이런 종이가 가거던 내게로 가져와…… 응, 그러겠나?”
 
선비는 화제를 돌린 것만 다행으로 생각하고 얼른 대답하였다.
 
“네.”
 
“그런 것을 써서 돌리는 것은, 벌이 없는 놈들이 남 벌어먹는 것이
  심술이 나서 그러는 게야. 선비는 그런 데 떨어지지 말고 나 하라는
  대로만 잘 순종하면 매일 상금을 줄 테야. 또는 이 기숙사에 있는
  여공들을 맘대로 부리는 감독을 하게 할 테야.
  이를테면 내 대리 격이지. 알아들었어?”
 
감독은 만족한 듯이 웃었다. 선비는 발끝만 굽어보았다.
 
“내가 선비는 아주 참하게 보았으니
  내 말만 들으면 그러한 권리를 줄 테야.”
 
선비는 어서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나 감독은 이런 부실한 말만 자꾸
늘어놓는다. 그리고 가만히 보니 별로 할 말도 없고 그를 세워 놓고
저런 말이나 언제까지나 되풀이할 모양이다. 선비는 머리를 번쩍 들었다.
 
“저는 나가서 일 마자 하겠습니다.”
 
“어 그런데 저…….”
 
돌아서서 나오는 선비에게 이러한 말이 치근치근하게 뒤따른다.
선비는 못 들은 체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가 방으로 들어오니 간난이가
와서 그의 하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사무실 문소리가 요란스레 나며
감독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구둣발 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다행으로 숨을 몰아쉬며 선비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하고
쳐다보았다. 선비는 그들을 대하니 반갑고도 다소 부끄러웠다.
 한참 후에 간난이가,
 
“우리 방에 가서 일할까?”
 
“그래.”
 
간난이는 주섬주섬 일감을 걷어서 선비를 준다. 선비는 받아 가지고
 간난의 뒤를 따랐다.
 
“이애들 모두 어데 갔니?”
 
선비가 방 안에 들어서면서 물었다.
그리고 속으로는 좋은 기회를 만났다 하고 생각하였다.
 
“야근하러들 갔지…… 그런데 뭐라던?”
 
선비는 얼굴이 붉어지며 무슨 생각을 하였다.
 
“저 감독이 말이어, 너와 가까이하지 말라구 하두나. 그러구 저…….”
 
간난의 귀에다 입을 대고 선비는 한참이나 수군거렸다.
 간난이는 머리를 끄덕이며,
 
“흥, 나두 짐작은 하였다…… 선비야!”
 
간난이는 갑자기 정색을 하고 불렀다. 선비는 무슨 일인가 하여 눈이
둥그래졌다. 간난이는 이렇게 선비를 불러 놓기는 하고도 말은 꺼내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선비를 바라보는 때에 아직도 선비가 그의 확실한
친구가 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게 생각되었다.
만일 선비가 확실히 계급의식에 눈이 떴다면 감독을 그의 손 가운데 넣고
농락해 가면서 얼마든지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든지 급한 일이 생기면 저 선비에게다 모든 중대사를 밀어
맡기고 자기는 마음놓고 이 공장을 벗어날 수가 있도록 되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간난이는 그가 오래 이 공장 안에서 일하지
못할 것을 슬프게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선비에게 이러한 뜻의 말을
미리 비추려고 얼결에 불러 놓고 보니 아직도 선비는 시일을 좀더 지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간난이는 알았던 것이다. 선비는,
 
“뭘? 어서 말하려마.”
 
간난이는 눈등이 불그레해졌다.
 
“후일, 응 후일!”
 
인천의 새벽.
검푸른 회색빛을 띠고 산뜻하고도 향기로운 공기가 무언중에 봄소식을
전해 주는 그 어느날 새벽이다.
부두에는 벌써 몇천 명의 노동자가 빽빽하니 모여들었다. 그들은 장차
새어 오려는 동편 하늘을 바라보면서 다시금 굳은 결심을 하였다.
백통테 안경은 붉은 끈을 가지고 머리를 휘두르며 여전히 눈알을 굴리어
노동자를 바라보았다. 전 같으면 저마다 붉은 끈을 얻으려고 대가리쌈을
하고 덤벼들 것이나 오늘은 백통테 안경이 붉은 끈을 봐란 듯이 팔에다
걸고 그들의 앞으로 왔다갔다하여도 그들은 눈 한번 깜박하지 않는
듯하였다. 백통테 안경은 이상스러운 반면에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시치미를 떼고 그중 친한 노동자를 불렀다.
 
“이리 와! 일끈을 줄 테니.”
 
그때 전깃불이 꺼풋 하고 꺼져 버렸다.
 
“일 안 하겠수!”
 
백통테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갑판으로 갔다.
축항에는 기선이 죽 들어와서 부두에 대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손발 하나
까딱하지 않고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때 노동자 몇 사람은 그들의 대표로
요구조건을 제출하려고 해륙운수조합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들은 그들의 대표 노동자들이 무슨 소식을 전하기까지 깜작하지 않고
사무실만 바라보고 정렬하여 서 있었다.
축항의 기선은 연기만 풀풀 토하고 있다. 그리고 선원들이 죽 나와서
이상한 듯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전 같으면 지금쯤은 짐을 푸느라고
벌떼같이 덤빌 터인데, 오늘은 이 축항이 쓸쓸하였다.
그리고 눈을 구루마 바퀴 굴리듯 잠시도 제대로 두지 못하던 백통테 안경도
오늘만은 날개 부러진 새 모양으로 머리를 푹 숙이고 한편 모퉁이에
서 있었다.
해가 벌겋게 타올랐다. 그들은 저 해를 바라보면서 단결의 힘이란 얼마나
위대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오늘의 저 햇발은 그들의 이 단결함을 보기
위하여 저렇게 씩씩하게 솟아오르는 듯하였다. 그들은 저 햇발에 비치어
빛나는 저 바다 물결을 온 가슴에 안은 듯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비치는 모든 만물은 새로움을 가지고 그들을 맞는
듯싶었다. 동시에 무력하고 성명 없던 자기들이 오늘 이 순간에는 이 우주를
지배하는 모든 권리란 권리는 다 가진 듯이 생각되었다.
자기들이 단결함으로써 이러하고 있으니 기세를 부리던 백통테 안경을
위시하여 기선의 기중기며 선원들까지 아주 동작을 잃어버리고 깜짝하지
못하였다.
경관들은 눈을 밝히고 군중 틈을 뚫으며 행여나 선동자를 발견할까 하여
주의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였다.
인천의 시민들은 종래에 없던 부두 노동자들의 단결을 구경하기 위하여
골목골목에 나와섰다. 그리고 끊임없이 경관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온다.
그래서 축항을 둘러싸고 무서운 대지로 공기가 팽팽히 긴장되어 있는 것을
누구나 느낄 수가 있었다.
 
짐 실은 기선은 하나둘 자꾸 몰려들어 와서 우두커니 맹랑하게 서 있었다.
그때 요구조건을 제출하려고 해륙운수조합으로 들어갔던 노동자들은
경관들에게 호위되어 나왔다.
 
“우리들의 요구조건은 틀렸소!”
 
“카이상!”
 
보고가 끝나기도 전에 길에 섰던 금줄 많이 두른 경관의 입에서
해산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때 욱 하는 무서운 움직임이 들려 왔다.
군중은 분기하여 인천 시가를 시위 행렬까지 하려다가 다수한 검속자를
내었다. 첫째가 집에 돌아오니 주인 할멈이 맞받아 나왔다.
 
“저 누가 아까 찾아왔어!”
 
첫째는 아직까지도 숨이 가쁘게 뛰었다. 그래서 숨을 돌려 쉰 후에,
 
“누가? 어떻게 옷을 입은 사람이유?”
 
첫째는 얼핏 형사? 신철이를 번갈아 생각하였다. 할멈은 빙긋이 웃었다.
 
“글쎄, 어떻게 옷을 입었던가?…… 자세히 생각나지 않어……
  하여튼 곧 또 오겠다구, 어데 가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두먼…….”
 
“기다리라고……?”
 
첫째는 때가 때니만큼 퍽으나 불길한 생각을 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할멈 보고 무슨 말을 더 물어 보려다가 그만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갔다. 누가 왔댔을까? 신철이가 무슨 급한 일이 있어 오지 않았나?
하며 망설일 때 문이 버썩 열린다. 첫째는 깜짝 놀라 바라보았다.
부두에서 낯익히 본 사나이였다. 더욱 신철의 집에서 몇 번 보기도 하였다.
 
“동무가 첫째 동무요?”
 
그는 방 안으로 들어오며 이렇게 물었다.
 첫째는 어떤 영문인지 몰라 두리번하다가,
 
“예……?”
 
첫째가 그의 내미는 손에 악수를 건네자,
 
“동무 큰일났소!”
 
첫째는 무슨 말인가? 하여 그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아까 새로 한시쯤 해서 신철 동무가 잡혔수!”
 
첫째는 그제야 눈을 크게 떴다.
 
“잡혔어유? 어데서?”
 
“집에서 잡혔는데, 지금 그 집 주위에는 경계가 심하오.
  동무도 이 집을 곧 옮겨야겠수. 우선 내가 집 하나를 얻어 놨으니 그리
  옮겼다가 다시 또 적당한 데로 옮기오. 어서 빨리 일어나시유.”
 
방 안을 휘 둘러보며 일어났다.
첫째는 신철이가 잡혔다니 앞이 아뜩하였다. 물론 신철이 아니라도 자기들의
배후에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수없는 동무들이 있을 것을 뻔히 아나,
그러나 신철의 지도를 받아 오던 첫째는 마치 어린애가 어머니를 떨어진
듯한 그러한 형용 할 수 없는 감정에 안타까웠다.
더구나 저 일이 끝도 나기 전에 잡혔으니…… 하며 첫째는 머리를 숙였다.
그는 첫째의 귀에다 입을 대고 뭐라고 수군수군하고 나가 버렸다.
첫째도 그 뒤를 따라 동무가 얻어놨다는 집으로 옮아오고 말았다.
낯선 방 안에 홀로 앉아 있는 첫째는 일만 가지 생각에 가슴이 뒤설레었다.
어느덧 날도 저물어진 모양이다. 첫째는 벌렁 누워 버렸다.
부두 노동자들의 움직임이 자꾸 눈에 어른거리고,
 그리고 신철이의 결박당한 모양이 떠오른다.
 
……(원문 탈락)……
 
이렇게 생각하다가 바라보니 벌써 밤이 이 방 안을 찾아왔다.
첫째는 벌떡 일어났다. 그때 문이 부시시 열리며,
 
“왜? 불도 안 켜시우.”
 
“동무유…….”
 
첫째는 딴놈이면 한대 붙이려다가 주저앉았다. 웬일인지 누구와 실컷
몸부림을 쳐가며 싸웠으면 이 안타까운 맘이 풀어질 것 같았다.
 
“어찌 되었수, 부두 노동자들은?”
 
첫째는 가만히 말하였다. 동무는 전등불을 켜놓고 나서 사온 빵을 가지고
첫째 곁으로 왔다.
 
“자시우! 그런데 부두노동쟁의는 딴 동무들이 맡아 보기루 했으니
  가만히 앉아 있수!”
 
첫째는 빵을 들어 무질러 먹으며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들의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뜨거운 사랑이 무언중에 알려진다.
 
“어서 다 자시유.”
 
동무는 일어난다. 첫째는 인사도 없이 동무를 보낸 뒤에 전등불을 죽이고
빵을 다 먹었다.
그리고 우두커니 앉아서 부두 노동자들의 장래 승리를 생각하며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대동방적공장을 눈앞에 그리며, 그것들은 왜 가만히 있어?
답답해서 원! 선비가 정말 그 선빈가? 하였다. 그도 눈이 떠주었으면……
할 때 신철이 잡힌 생각이 다시 떠오르며 가슴이 뜨거워지고 머리가 화끈
달기 시작하였다.
공장에서 야근 교대를 마치고 나오는 선비는 얼핏 그의 손에 무엇인가
쥐어지는 것을 느끼며 돌아보니 간난이가 시치미를 뚝 따고 옆으로
지나친다. 그는 간난이를 보고야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짐작하며 꼭 쥐었다. 그리고 함께 밀려나오는 효애의 눈치를 살폈다.
효애는 여전히 뭐라고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였다.
선비는 그의 말은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고도,
 
“응, 응, 그래…….”
 
하였다. 효애는 그의 방으로 들어가며,
 
“그럼 내일 꼭 그래?”
 
선비는 무슨 말끝인지 알아듣지 못하였으나 다시 묻지는 못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상층으로 부리나케 달아올라가서 그의 방으로 들어왔다.
마침 동무들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가슴을 울렁거리며 줌 안의 조그만 종이를 펴보았다.
 
“밤 한시쯤 해서 밖의 변소로 나와 다고.”
 
선비는 누가 볼세라 하여 얼른 종이를 입 속에 넣어 씹었다.
그때 위층으로 올라오는 신발소리가 요란스레 들리었다. 선비는 자리를
펴기 시작하였다. 그때 문이 열리며 동무들이 들어왔다.
 
“선비는 참 빨라! 벌써 왔어.”
 
동무 하나가 이렇게 말하며 웃는다.
 
“아이구 고마워라. 내 자리까지 펴주네!”
 
나중에 들어오는 동무가 선비를 쳐다보며 주저앉는다.
 
“이애! 오늘 너 실 얼마나 감았니?”
 
그들은 옷을 훌훌 벗고 자리에 누우면서 이렇게 서로 묻는다.
선비는 못 들은 체하고 이불을 막 쓰며 무슨 통지가 또 들어온 모양이군
하였다. 그리고 뒤이어서 낮에 감독놈이 마주서서 싱글벙글 웃던 것을
다시금 생각하며
 그놈 참 죽겠어! 남부끄럽게 내 앞에만 와서 그 모양이야! 하였다.
숙직실 시계가 한시를 치는 것을 듣고 어렴풋이 잠들었던 선비는
놀라 일어났다. 그리고 베개를 자리 속에 집어넣어서 마치 사람이
누운 것처럼 꾸미고 그는 문밖을 벗어났다.
그가 이층에서 내려와서 큰문을 소리나지 않게 잘 비틀어서 열고 나왔다.
기숙사 큰문 위에 환하게 켜놓은 전등 불빛이 그의 온몸을 분명히 나타내
준다. 그는 깜짝놀라 어둠 속으로 얼른 몸을 피하였다.
그는 다시 사방을 둘러보며 혹시 감독이 나와 섰지나 않았는가?
하는 불안에 한참이나 머뭇거렸다. 그러나 아무것도 눈에 비치지 않으니
그는 다시 발길을 옮겼다. 그가 변소까지 오니 간난이는 벌써 와서 있었다.
 
“기다렸니?”
 
변소간으로 들어가며 선비는 소곤거렸다. 간난이는 선비 귀에다 입을 대고,
 
“이제 방금 감독이 이 앞을 지나갔다.”
 
선비는 흠칫하며 감독이 그의 뒤를 따라오지나 않았나 하고 뒤를 흘금
돌아보았다. 그들은 마주앉고 한참이나 말을 건네지 않았다. 간난이는,
 
“내 잠깐 가서 동정을 보고 올 것이니 여기 있거라.”
 
이렇게 말하며 그는 변소 밖으로 나갔다. 선비는 우두커니 서서 귀를
기울였다. 한참 후에 간난이가 돌아왔다. 그는 숨이 차서 헐떡헐떡하면서,
 
“감독이 기숙사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왔다…… 그런데 선비야,
  ××의 지령에 의하야 모든것을 네게 인계하고 나는 오늘 밤 이 공장을
  벗어나야 하겠구나!”
 
간난이는 선비의 손을 꼭 쥐며 희미한 변소간 전등불에 비치는 선비의
얼굴을 뚫어져라 하고 바라보았다. 선비는 너무나 뜻밖의 말에 멍하니
간난이를 보며 어깨가 차츰 무거워 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그렇게 가분작이, 오늘 밤으로, 뭐?”
 
이때 우수수 하는 소리에 그들은 말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바람소리다.
공장에서 흘러 나오는 소음은 더욱 요란하다.
 
“아무턴 긴급한 지령이다. 밖에서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
 
선비는 두 다리가 후르르 떨리며 가슴이 무섭게 둘렁거린다.
더구나 언니 겸 동무이던 간난이가 그의 앞을 떠나갈 생각을 하니
 눈이 캄캄하였다.
 
“선비야, 우리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싸워야 한다! 너도 맹세하였지?”
 
간난의 눈은 흥분으로 빛났다. 그리고 선비의 볼에 볼을 맞대었다.
 
“염려 마라! 나가서 몸조심해라!”
 
선비는 간난이를 쓸어안았다. 간난이는 선비의 눈물을 씻어 주었다.
 
“선비야! 어떠한 일이 있다더라도 낙심 말고 싸워야 한다.
  이렇게 눈물 흘려서는 못쓴다. 대담해라. 어서 난 가야겠다…….”
 
그들은 변소 밖을 나섰다.
간난이와 선비는 살살 기어서 담 밑까지 왔다.
그리고 간난이는 바짓가랑이 속에서 밧줄을 꺼내 들었다.
 
“네 어깨에 올라설 테니 단단히 힘을 써라.
  그리고 이 밧줄을 꼭 붙들어 다오.”
 
그때 바람이 휙 몰아온다. 그들은 사람의 신발 소리인가 싶어
휙근 돌아보았다. 바람은 점점 기세를 더하여 불었다. 그들은 바람 소리로
알았을 때 겨우 안심은 하였으나 가슴이 울렁거리고 숨이 차왔다.
그리고 번번이 바람 소리인 줄은 알면서도 바람이 불 때마다 뒤에서 감독이
칵 내닫는 듯하고 그들의 몸에 어떤 손이 감기는 듯하여 등허리에서
땀이 버쩍나곤 하였다.
선비는 담 밑에 붙어 앉았다. 간난이가 선비 어깨에 올라서자 선비는 담을
붙들고 일어나려 하였다. 선비의 양 어깨가 빠지는 듯만 했지 아무리 힘을
들이나 일어날 수가 없었다.
선비는 몇 번 만에 겨우 일어났다. 간난이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겨우
일어세우며 담위를 붙들기는 했으나 몸을 솟구는 수가 없었다.
그는 손에 든 밧줄을 입에 물고 두 팔로 담 위를 꼭 붙든 후에 다시 몸을
솟구었으나 힘만 들 뿐이고 손에는 땀이 나서 손이 미끄러워
떨어질 듯하였다.
간난이가 몸을 솟구려고 움찔하는 바람에 선비가 푹 거꾸러졌다.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고 간난이까지 떨어져 굴렀다. 선비는 얼른 간난이를
일어세우며 뒤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바람만 지동치듯 불 뿐이었다.
이런 때에 그 바람 소리는 자기들을 위하여 부는 듯하여 다행하였다.
 
“내가 나간 담에 이 신을랑 넘겨 다우!”
 
선비는 머리를 끄덕이며 여전히 담에 손을 대고 앉았다. 간난이가 선비의
어깨에 올라서서 다시 담 위를 붙들었을 때 휙 하는 휘파람 소리가
나는 듯하므로 간난이는 놀랐다. 그러나 선비는 어깨에 힘을 쓰기 때문에
그 소리는 듣지 못한 모양이다. 간난이는 이 소리가 담 안에서 나는 소린지,
담 밖에서 나는 소린지, 혹은 바람 소리가 그렇게 들리는지 하여
숨을 죽이고 가만히 들었다. 그 휘파람 소리는 어떻게 들으면 담 안에서
나는 것 같고, 또다시 들으면 담 밖에서 나는 듯하였다. 간난이는 몸을
솟구지도 못하고 어찌할 줄을 몰랐다. 봄바람이 되어 그 기세가 무서웠다.
간난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머리까지 담에 꼭 붙이고 휘파람 소리를
분간하여 들으려 하였다.
한참 후에 그 소리는 바람 소리인 것을 짐작하며 간난이는 힘껏 몸을
솟구었다. 그러나 솟구어지지 않았다. 한참 후에 간난이는 선비의 어깨만은
벗어났으나 아직도 담 위까지는 못 올라왔다.
아래서 선비는 발돋움을 하고 손으로 간난의 밑을 받들어 주었다.
이렇게 애쓰기를 거의 한 시간이나 넘어서 간난이는 비로소 담 위에까지
올라왔다. 선비는 밧줄을 꼭 붙들었다. 밧줄이 몇 번 잡아쓰이우더니
담 위에 올라섰던 간난이는 보이지 않았다. 선비는 얼른 신을 밧줄에 동여서
올려 치쳤다. 북북 소리를 바람결에 이따금 던지며 밧줄조차 어둠 속에
감추어졌다. 선비는 이마에 땀을 씻으며 사면을 살폈다.
그리고 한숨을 푹 쉰 후에 불행히 간난이가 어디 상하지나 않았는지?
하는 불안에 담 밑에 붙어 서서 간난의 신발 소리를 들으려 하였다.
반면에 이편 담 안에는 누가 숨어서 이 모든 것을 보지나 않았는가 하여
역시 주의를 하여 살펴보았다. 공장의 소음을 섞은 바람만이 그의
타는 듯한 볼에 후끈거릴 뿐이고 아무 소리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까보다 무서운 생각이 한층 더하였다.
그리고 그의 방까지 갈 것이 난처하였다. 어둠 속 저편에는 감독의
그 눈알이 선비를 노려보는 듯하고, 그리고 그의 신발 소리가 뚜벅뚜벅
들리는 듯하였다. 그는 담을 붙들고 서서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발길을
옮겼다.
그는 그의 방까지 아무 변동 없이 잘 들어와서 자리에 누웠다.
베개 위에 볼이 선뜻 하고 닿을 때 뜻하지 않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는
것을 그는 느꼈다. 그는 이렇게 무사히 방까지 들어와서 누웠으나 바람결에
유리 창문이 흔들릴 때마다 누가 방문을 열지나 않나?
그리고 너희년네가 간난이를 내보냈지 하고 위협하는 것만 같았다.
동시에 간난이가 저 무서운 바람을 안고 지금 어디로 분주히 갈 터이지!
하였다.
 
‘간난아! 간난아!’ 선비는 몇 번이나 입 속으로 간난이를 불렀다.
웬일인지 선비는 간난이를 다시는 만나 보지 못할 것만 같았다.
더구나 앞으로 일해 갈 것이 난처하였다. 지금 생각하니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얼마든지 많았다.
이튿날 아침 기숙사에서는 무슨 큰일을 만난 듯하였다.
간난이와 함께 있던 여공들은 감독이 불러다가 위협을 하다하다가 나중에는
때리기까지 했단 말이 돌았다. 그래서 이 모퉁이를 가도 수군수군,
저 모퉁이를 가도 수군수군하였다.
선비는 감독이 그를 부를 터이지 하고 하루 종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일이 손에 붙지를 않고 툭하면 실이 끊어지곤 하였다.
평시에 간난이와 친하던 동무며, 간난의 방 옆에 있는 여공들까지
다 불러가나, 웬일인지 선비는 부르지 않았다. 그러니 선비는 한층더
가슴이 설레었다. 간난이와 그가 친하다는 것은 온 기숙사가 다 아는
터이고, 물론 감독까지도 잘 알 터인데, 그러므로 누구보다도 선비를
먼저 부를 줄 알았으나 해가 지도록 아무 소식이 없으니 도리어 선비는
 겁이 나고 이상하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이애 뭘 잘했지! 여기 있으면 뭘 하니.”
 
“잘하기야 열 번 스무 번 잘했지만, 글쎄 어떻게 나갔는지,
  참 귀신이 놀랄 일이 아니냐.”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는지 뉘 아니? 그래서 데려나간 게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드라도 하여간 그 높은 담을 넘지는 못했을 터이고
  어데로 나갔겠니……?”
 
식당에서 밥을 먹는 여공들은 이렇게 하늘이 무너져도 못 나가는 것으로
알았던 그들에게 비상한 센세이션을 일으키었다.
 
“선비야, 넌 알겠지? 그러니 너보고야 말하고 나갔겠지, 그렇지?”
 
선비와 마주앉은 농 잘하는 여공이 선비를 보며 웃음 섞어 말하였다.
선비는 그가 미리 알고 말하는 것 같아서 다소 얼굴이 붉어지려는 것을
머리를 숙여 그를 피하였다. 그리고 밥에 돌을 고르는 체하다가 머리를
들며 빙긋이 웃었다.
 
“간난이가 나가면서야 나두 나가자고 하는 것을 나는 이 공장에서
  일하기가 퍽 좋아서 안 나갔단다.”
 
그들은 허허 호호 웃었다.
 
“사실이지 나갈 수만 있다면 나두 나가겠다. 그까짓것 여기 있어 뭘 해.”
 
“이애 간난이가 요새 선비하고 덜 좋아했단다. 내 말을 하리?”
 
눈까풀 얇은 여공이 선비를 말끄러미 쳐다보며 입을 오물오물 놀렸다.
선비는 무슨 말인지를 알아들으면서 전 같으면 얼굴이 붉어질 것이나
지금에 있어서는 여공들이 그렇게 해석해 주는 것이 도리어 다행하였다.
 
“말할까? 말까?”
 
눈까풀 얇은 여공은 웃음을 띠고 물었다.
 
“이애 넌 무슨 말을 하랴면 속시원하게 얼른 하지,
  고 버릇이 무슨 버릇이냐. 주리틀게 눈치만 살살 보면서 무슨 말이기에
  그 모양이야? 극상해야 감독이 선비를 고와한단 말이겠구나. 그까짓 말에
  그리 얌통을 부릴 게 없지 않니? 왼 기숙사가 다 아는데…….”
 
얼굴 긴 여공은 이렇게 말하며 시치미를 뚝 떼고 밥만 푹푹 퍼넣는다.
선비는 왼 기숙사가 다 아는데…… 하는 그의 말에는 다소 불쾌하였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여러 말 하기는 선비의 가슴이 너무나 복잡하였다.
그래서 그는 억지로 웃어 보이고 말았다.
선비가 식당에서 올라왔을 때,
 
“선비!”
 
하고 사무실에서 감독이 불렀다. 선비는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그리고 감독이 물으면 대답하려고 어제 밤새도록 준비하였던 말이
어디로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선비는 어쩔 줄을 몰라 멍하니 서 있었다.
 
“죄 없으면 일없지, 무슨 걱정이야.”
 
옆에서 바라보는 동무가 이렇게 말하였다. 선비는 다리가 가늘게 떨렸다.
 
“방에 선비 없어!”
 
재차 부르는 소리를 듣고야 선비는 발길을 떼었다. 그가 문밖을 나서며
다는 얼굴을 부비쳤다. 그리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였으나 자꾸 뛰놀았다.
선비는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는 한 발걸음에 주저하고 두 발걸음에
망설였다.
 
‘내가 이래 가지고야 앞으로 일해 갈 수가 있나? 나는 대답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 앞에 거짓말을 곧잘 해야 한다!’
 
선비는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으며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감독은 궐련을 피워 물고 들어오는 선비를 바라보자 빙긋이 웃었다.
선비는 마음껏 용기를 내어 가만히 서 있었다. 감독은 기침을 하고 말을
꺼냈다.
 
“요새 어디 앓었는가?”
 
선비는 뜻밖의 물음에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래서 머리를
조금 들고 감독을 바라보았을 때 보기 싫게 눈을 흘금거리는 호랑이 감독이
아니라, 공장 안에서 까불이라고 별명이 있는 고감독이었다.
선비는 다소 맘을 가라앉히었다. 고감독은 체가 적으니만큼 까불기는 하나
눈치가 빨라서 여공들이 가장 친하게 대하는 감독이었던 것이다.
 
“왜 얼굴이 전만 못하구먼. 몸간수 잘해야 해.”
 
감독은 기침을 칵 하고 나서 선비의 숙인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요새 동료들 중에 암투의 초점인 이 계집! 언제도 새로운 미를 또다시
그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장차 저 계집은 누구의 손에 쥐어질지
모르나 어쨌든 지금 동료들끼리 맹렬한 알력을 계속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제각기 기숙사 당번을 즐겨 하고 집에 나가기를 싫어하였다.
그리고 서로 질시가 심하니, 누구나 적극적으로 선비에게 대들지는 못하고,
다만 선비의 호의만 사려고들 애썼던 것이다.
 
“여기 좀 앉아, 응 자.”
 
까불이는 의자를 버쩍 들어 옮겨 놔주었다. 선비는 의자에 주저앉으며,
그의 치마 주름을 내려쓸고 있었다. 그리고 감독의 입에서 어서 간난의 말이
나와서 얼른 대답을 한 후에 감독 앞을 벗어나고 싶었다. 선비는 감독만
대하게 되면 어쩐지 어렵고, 덕호를 대하는 듯한 불쾌감이 그를 싸고도는
 듯하였던 것이다.
 
“선비, 이번 나간 간난이와 한고향이라지?”
 
“예.”
 
“나가기 전에 선비보고 무슨 말이든지 하던 말이 없던가?”
 
약빠른 까불이 감독이 그의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저렇게 묻는 듯싶어 얼굴이
활짝 달아 왔다. 그리고 어떻게 대답할까 하고 두루두루 생각하다가,
 
“그저…… 무심히 대하였으니 지금 특별히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다.”
 
까불이는 눈을 깜박깜박하고 나서,
 
“별다른 말이 아니라…… 말하자면, 공장에서 일하기 힘든다든지
  어느 감독이 몹시 군다든지, 그러한 불평을 말하지 않던가?”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음.”
 
까불이는 선비의 임금빛 같은 두 볼을 바라보면서, 저 계집을…… 하고
안타깝게 생각되며 몸이 달았다. 그래서 단박에 달려들어 그를 쓸어안고
싶었다. 그러나 자기들의 동료 중에 그 어느 누가 알든지 하면, 두말도 없이
상부에 보고되어 생명줄이 떨어질 것이 무서웠다.
 
“간난이가 저렇게 나간 것을 선비는 어떻게 보는가?”
 
까불이는 선비의 태도를 보아, 그리고 그의 의젓한 성격을 미루어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더구나 딴 방에 있었으니 선비는 모를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선비와 이렇게 마주앉고 이야기하기 위하여 일부러 불러 놓고는
이리저리 묻는 것이다. 동시에 선비가 어느 정도로 자기에게 호의를
가졌는가? 하여 눈치를 살살 보았다.
 
“잘못된 행실이지요.”
 
선비는 맘에 없는 말을 겨우 빼었다. 감독은 빙그레 웃었다.
 
“암! 잘못된 행실이구말구. 계집이 혼자 나갈 수는 없고 어떤 놈과 짜구
  나갔을 게야. 제가 혼자서야 어디로 나가?……
  이감독이 자네보고 하는 말 없던가?”
 
이 말을 미루어 감독 자기네끼리도 의심하는 모양이다.
 
“없어?”
 
다시 한번 채쳐 물었다. 선비는 입에 손을 대고 기침을 가볍게 하였다.
그리고 감독이 자기를 의심하지 않는 것을 짐작하며
 가볍게 숨을 몰아쉬었다.
 
“응 왜? 대답이 없어. 뭐라고 말하지 않아?”
 
“예!”
 
“덮어놓고 예, 예만 하니까 알 수가 있나? 이번 일에 대하야 선비에게
  뭐라고 묻지 않아?”
 
치근치근한 이감독의 성질에 선비를 불러다 놓고 뭐라고 물었을 것이
틀림없는데 선비가 이감독과 벌써 무슨 약조가 있는 새가 되어서 저렇게
숨기나?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그때 선비는 간난이가 일상 하던 말이 문득 생각히었다.
 
“감독을 만나면 너는 뾰로통해만 있지 말고 더러 웃는 체도 해보이렴.
  그래서 네 태도를 저들이 분간하지 못하도록 하여라.”
 
선비는 간난의 말이 우스워서 빙긋이 웃었다. 그때 층계를 올라오는
구두 소리……. 감독은 정색을 하였다.
 
“아주, 간난이가 나간 일에 대하여서는 모른단 말이지…… 나가!”
 
선비는 말이 떨어지자 곧 나왔다. 그리고 그의 방까지 왔을 때 감독의
방에서 두런두런하는 이야기 소리가 들려 왔다. 그의 동무들은 선비가
 무슨 말을 할까 하고 그의 입술만 말똥말똥 쳐다보다가,
 
“뭐라던?”
 
선비는 자리를 내려 폈다.
 
“뭐라기는 뭐래, 그저 그 말이지.”
 
“왜 야학에 안 가련?”
 
“몸이 좀 아프구나.”
 
“어데가?”
 
“글쎄…… 맥이 없어.”
 
그들은 풀기 없는 선비를 보며 감독에게서 단단한 나무람을 들은 듯하였다.
그리고 자기들도 감독에게 불림을 받을까? 하는 불안에 눈에 겁을 머금고
밖으로 나갔다.
선비는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렇게 맥을 놓으면 몸이 오슬오슬
추우면서도 이마에는 땀이 척척하게 흐르곤 하였다. 이런 때마다 그는
따뜻한 온돌방이 그리웠다. 그의 어머니와 단둘이서 살던 그 초가!
나무 반 단만 넣으면 잘잘 끓던 그 아랫목! 그 아랫목에서 이불을 막쓰고
땀을 푹 내었으면 그의 몸은 가뿐해질 것 같았다.
그가 한참 자고 어느 때인가 눈을 번쩍 뜨니 유리창에 달이 둥글하였다.
그는 이마에 척척하게 흐른 땀을 씻으며 달을 향하여 누웠다.
아까 감독이 묻던 말을 다시금 생각하니 그는 감독이 그를 의심하지 않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 그 일 때문에 졸이던 맘은 좀 풀리나,
그러나 어깨가 무겁도록 짊어진 이 사명을 어떻게 하여야 잘 이행할 것이
난처하고도 답답하였다. 간난이가 가르쳐 주던 공장 내부 조직 방침,
밖의 동지들과 민활하게 연락 취할 것, 그리고 밖에서 들어오는 문서며
삐라 등을 교묘하게 배부할 것 들이 그의 머리에 번갈아 떠오른다.
한참이나 생각하던 선비는 좀더 있다가 간난이가 나갔으면 내 이렇게
답답하지 않을 것을…… 하며, 그가 무사히 나갔는가 하였다.
그리고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그렇게 가분작이 간난이를
불러냈는가?…… 그들이 혹 잡히지나 않았는지? 할때, 적지 않은 불안이
일었다. 동시에 미지의 동지들이 모두 어떤 사람들인가? 첫째와 같은
그런 사람인지도 모르지? 혹 첫째도 그들 중에 한 사람인 것을 자기가
모르는가…… 하였다.
그러나 그때 월미도 가는 길에서 첫째를 만났을 때 일을 미루어 생각하니,
첫째는 어떤 공장 내에 있지 않고 그날그날 품팔이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웬걸 지도자를 만났으리…… 아직도 그는 암흑한 생활 속에서 그의
나갈 길을 찾지 못하고 동분서주만 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선비는 첫째를 꼭 만나 보고 싶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계급의식을 전해 주고 싶었다.
그러면 그는 누구보다도 튼튼한, 그리고 무서운 투사가 될것 같았다.
그것은 선비가 확실하게는 모르나 그의 과거 생활이 자신의 과거에 비하여
못하지 않은 그런 쓰라린 현실에 부대끼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는 아직도 도적질을 하는가?…… 지금 생각하니 어째서 그가 도적질을
하게 되었으며, 매음부의 자식이었던 것을 그는 깊이 깨달았다.
그러니 선비는 어서 바삐 첫째를 만나서 그런 개인적 행동에 그치지 말고
좀더 대중적으로 싸워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가 인천에나 있는지? 혹은 딴 곳으로 갔는지? 왜 나는 시골 있을 때 그를
무서워하였던가?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그가 소태나무 뿌리를 캐어 들고
새벽에 찾아왔던 기억이 떠오르며 소태나무 뿌리를 윗방 구석에 던지던
자기가 끝없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그 느글느글한 덕호가 주던 돈을 이불 속에 넣던 자신을 굽어볼 때,
등허리에서 땀이 나도록 분하고 부끄러웠다. 그뿐이랴! 마침내는
그에게 정조까지 빼앗기고 울던 자신! 몇 번이나 죽으려고 했던 자기!
얼마나 유치하고 어리석었는가! 그리고 그 덕호를 보고 아버지! 아버지!
하며 부르던 그때의 선비는 어쩐지 지금의 자기와 같지 않았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이때껏 의문에 붙였던 그의 아버지의 죽음이 얼핏
떠오른다. 옳다! 서분 할멈의 말이 맞았다!
그는 무의식간에 벌떡 일어났다. 그때 손끝이 몹시 아파 왔다.
그래서 손끝을 볼에 대며 덕호를 겨우 벗어난 자신은, 또 그보다 더 무서운
인간들에게 붙들려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며,
오늘의 선비는 옛날의 선비가 아니라……고 부르짖고 싶었다.
 
아버지와 면회를 하고 돌아온 신철이는 감방문 닫히는 소리를 가슴이
울리게 느끼며 맥없이 주저앉았다. 그가 처음으로 이 방에 들어올 때
저 문 닫히는 소리란 기가 막히게 그의 자존심을 저상시켰으며 반면에
비창한 결심까지 나도록 반발력을 돋아 주었는데,
오늘의 저 닫히는 소리는 그의 자존심이 이때까지 허위요 가장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하였다. 그는 머리를 움켜쥐고 얼굴을 찡그렸다.
아버지의 그 초라한 모양이 안타깝게 떠오른다.
아버지는 그로 인함인지 혹은 생활난으로 인함인지 이태 전과는 아주 딴
사람을 대하는 듯하였다. 아버지의 그 옷 모양이며 뼈만 앙상하게 남은
그 얼굴! 아들을 대하자 아무 말도 못 하고 눈가가 뻘개서 바라만 보던
그 눈! 그때의 아버지의 심정이야말로 말하지 않아도 너무나 그의 가슴속에
뚜렷하였다. 일 초, 이 초 지나는 동안에 부자는 언제까지나 입을 열지
못하였다. 한참 후에 신철이는,
 
“영철이 잘 있나요?”
 
그때 아버지는 눈물이 그뜩해지며,
 
“응, 응.”
 
하고 어리뻥뻥하게 대답을 하면서 머리를 돌려 버렸다.
아버지의 모호한 그때의 대답을 들을 때 신철이는 가슴이 선뜻해지며
그놈이 죽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들었던 것이다.
 
“미루꾸 사주!”
 
하던 그 음성도 다시 듣지 못할 겐가? 하며 신철이는 벽에 의지하여 눈을
꾹 감았다.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너 박판사를 만나 보았니?…… 박판사의 말대로 하여…… 응,
  공연한 고집 부리지 말고…….”
 
말을 마치자 면회는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 아버지의 그 떨리는 음성!
그것은 거의 애원이었다. 그리고 이때까지 그 어느 구석에 숨어 있던 그의
그 어떤 생각을 정면으로 찔러 주는 듯하였다. 어떻게 하나?
어제 만나 본 병식의 말대로 해버릴까?
병식이는 그가 최후로 도서실에서 어리석고 비열하게 보았던, 육법전서를
안고 외던 학생이었다. 그는 벌써 예심판사가 되었던 것이다.
병식이를 만나는 첫 순간, 신철이는 적이 놀라면서도 반면에 그의 자존심이
강하게 동하였다. 보다도 억지로 그의 자존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때에는 그가 권고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듣지도 않았지만
일단 그와 마주앉아 있기가 왜 그리 불쾌하였는지 몰랐다.
그러므로 신철이는 머리를 돌린 채 그의 묻는 말에 한 마디도 대답지
않았다.
그러나 병식이는 그의 직무상 옛날 동무로서의 우정을 생각해서 그랬는지
어쨌든 간곡히 말하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의 아버지가 병식이를 찾아가서 간곡한 부탁이
있은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렇게 깨닫고 나니 병식이가 열심으로 지껄이던
말이 그의 머리에 명랑하게 떠오른다.
 
“우선 나부터도 이 자본주의 사회제도를 전부가 다 옳다고 긍정할 수는
  없네. 따라서 이 제도를 부인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 보겠다는 용감한
  투사들이 일어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야! 그러나 이 제도를 없이하려면
  상당히 오랜 역사를 요구하게 될 것이 아닌가.
  즉 장구한 시일과 다수한 희생이 있어야 될 것은 자네가 더 잘 알 것일세.
  그러나 이 같은 떳떳한 일을 위해서는 나 개인 하나는 희생한다고……
  하는 것이 남아로서 장쾌한 일이라고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게 되나
  다시 한번 돌이켜 생각하면, 나 혼자가 더 그랬댔자 오늘낼로 곧 혁명이
  될 것도 아니요, 또 안 그랬댔자 될 혁명이 안 될 것도 아니니,
  이 세상에 한번 나서 어찌 나 개인을 그렇게도 무시할 수가 있는가?
  더구나 자네나 나는 집안 형편이 딱하게 되지 않았는가……
  자네나 내가 없으면 집안 식구는 내일부터라도 문전걸식할 형편이니,
  지금부터 이 감옥에서 십 년이 될지, 몇 해가 될지 모르는 그 세월을
  희생할 생각을 해보게…… 요즘 일본에서도 ××당의 거두들이 전향한
  것도 잘 알 터이지. 그들도 많은 생각이 있었을 것일세. 자네는 이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병식이는 얼굴에 비창한 빛을 띠고 신철이를 바라보았다. 신철이는
그의 타산에 밝은 개인주의적 그 이론으로 자기를 설복시키려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일종의 모욕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아무 대답도 아니하였다.
이 눈치를 챈 병식이는,
 
“그러면 돌아가서 깊이 생각해 보게. 나는 나의 직무를 떠나
  옛날의 우정을 가지고 진심으로 권하네…….”
 
그때 옆에 섰던 간수는 호령을 하였다.
 
“일어서!”
 
오늘 아버지의 애원을 듣던 그때, 그리고 아버지의 파리해진 얼굴을
바라보는 그 순간에 자신의 그 비창한 결심이란 얼마나 약한 것이었던가?
신철이는 한숨을 후 쉬었다. 그때 이 형무소에 같이 들어온 밤송이 동무며
그 밖에 여러 동지의 얼굴들이 번갈아 떠오른다. 특히 인천에 있는 첫째의
얼굴이 무섭게 확대되어 가지고 그의 앞에 어른거려 보인다. 신철이는
그 얼굴을 피하려고 눈을 번쩍 떴다. 어젯밤만 해도 첫째의 얼굴을 머리에
그려 보며 그리워하였는데, 이 순간에는 어쩐지 첫째의 그 얼굴이 무섭게
보였던 것이다.
창문으로 쏘아 들어오는 붉은 실타래 같은 햇발이 벽 위에 아로새겨졌다.
유리, 철창, 굵은철망, 가는 철망의 네 겹을 뚫고 들어오는 저 햇빛!
그에게 있어서는 유일한 동무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간수가 미하리(망)
구멍으로 들여다볼 때마다 시간을 물어 가지고 그 햇빛을 따라 벽 위에
가는 금을 그어 놓았다. 그래서 시간을 짐작하곤 하였던 것이다.
신철이는 저 햇발을 바라보면서 지금 열한시 반이나 되었을 것을
짐작하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지금 집에 돌아가셔서 몹시 번민하시겠지……
하였다. 아버지의 모양을 보아 말하지는 않아도 그나마 학교에서도
나온 것임을 알 수가 있었다. 몇 식구가 오직 아버지만 바라보고 있던 터에
아버지마저 학교에서 나왔다면 그 생활의 궁함이야말로 보지 않았어도
능히 짐작 할 수가 있었다.
어떻게 한담? 그의 집안을 돌아보아서 여기서 꼭 나가야 하겠고,
보다도 자신의 약한 육체를 보아서 여기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때 그는 경찰서에서 고문받던 생각을 하고 소름이 쭉 끼쳤다.
두 번은 못 당할 노릇이었다. 그리고 모르고나 당할 노릇이지
지금과 같이 그 맛을 뻔히 알고서는 넙죽 죽으면 죽었지 그 노릇은
다시 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확실히는 모르나 미결에서 기결로 옮아가게 될 것도 일이 년은 걸릴
듯하였다. 그리고 다시 기결에 들어서는 십 년이 될지, 십오 년이 될지?
그것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십년 밖이지 십 년 내로는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일생을 이 감옥에서 보내지 않으면 안될 것이었다.
생각만 해도 앞이 아뜩해졌다. 그때 그는 병식이를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의 하던 말을 곰곰이 되풀이하였다. 어제 병식의 앞에서는
그의 말에 구역증이 나고 듣기도 싫더니 불과 하루를 지난 오늘에는 그 말이
그럴듯하게 생각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병식의 앞에서 머리를 굽혀
보이기는 그의 자존심이 아직도 강하였다. 그는 한숨을 푹 쉬고 무심히
발끝을 굽어보았다. 그때 발가락에 개미 한 마리가 오르고 내리는 것이
보였다. 신철이는 반가운 생각이 들어 개미를 붙잡아 손바닥에 놓았다.
개미는 어쩔 줄을 몰라 발발기어 달아난다. 달아나면 또 붙잡아다 놓고서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그가 개미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자신이 이 개미와 같이 헛수고를 하는
듯싶었다. 개미야말로 모르고서나 이 감방에를 찾아 들어온 것이지,
아무 먹을 것이 없는 이 쓸쓸한 감방에 들어올 까닭이 없었다.
오늘 이 개미는 먹을 것도 얻지 못하고 자기에게 붙잡혀서 고달플 것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이 몸은 아무 소득도 없는 고생을 이때까지 해오다가,
또다시 여기까지 들어온 것 같을 뿐 아니라, 앞으로 몇십 년을 지나고
다행히 목숨이 붙어서 밖에 나간댔자, 벌써 자신은 그만큼 뒤떨어져서
여기도 저기도 섞이지 못하고, 결국은 일포나 기호 같은 그런 고리타분한
전락된 인텔리밖에 될 것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 자리를 벗어날 것인가? 신철이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러나 그의 머리는 강하게 흔들리지를 않고 아주 약하게 흔들리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마침 버들피리 소리가 끊어질 듯 질 듯하게 들리므로 그는 벌떡 일어났다.
신철이는 얼른 미하리 구멍부터 돌아보았다.
그리고 어디서 간수의 신발 소리가 나는가 하여 귀를 쫑긋 세우며 창 앞에
다가섰다. 창의 높이는 신철의 턱을 지나쳐 입술과 거의 맞닿았다.
신철이는 한숨을 푹 쉬면서 인왕산을 바라보았다. 따스한 햇볕을 안고
반공중에 뚜렷이 솟은 저 인왕산……
그때 가까이서 새소리가 나므로 시선을 옮겼다.
창 밖에는 조그만 못이 있고, 그 옆에는 그리 작지도 크지도 않은
수양버드나무가 마치 여인의 풀어헤친 머리카락처럼 가지 가지가 척척 휘어
늘어졌다. 그리고 버들잎이 파릇파릇 하였다. 신철이가 처음 여기 와서
저 버드나무를 볼 때는 앙상한 가지만이 봄바람에 휘날리더니 어느덧 벌써
잎이 저렇게 좋아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바라보는 저 버드나무!
바라볼 때마다 그는 새로운 느낌을 가지고 대하곤 하였다.
그리고 용연의 원소가 떠오르고 선비가 눈결에 지나쳤다. 그러나 그 선비는
옛날의 그 선비와는 어딘지 모르게 거리가 먼 것을 그는 느끼곤 하였다.
지금 그의 머리에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은 반대로 옥점이었다.
옥점이! 그는 다시 한번 옥점이를 불러 보았다. 아직까지도 그가 시집가지
않고 나를 기다릴까? 그렇지야 못하겠지?
벌써 어떤 사람의 아내가 되었겠지! 그러나 나를 아주 잊지는 못하리라……
하고 멍하니 못을 바라보았다.
못 속에는 버들가지 그림자가 파랗게 떨어져 깔리었다.
그의 가슴속에 옥점의 얼굴이 파묻힌 것처럼…….
그때 잠깐 끊어졌던 버들피리 소리가 아우아우 하고 들려 왔다.
그가 어려서 과부의 넋두리라고 하며 버들피리 끝에 손을 대고 마디마디를
꺾어 불던 그 곡조였다. 신철이는 머리를 번쩍 들어 피리 소리 나는 곳을
찾았다. 봄을 만난 인왕산…… 어린애들이며 청춘 남녀가 가지런히 갈서서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애들의 떠드는 소리가 푸른 하늘가에서
재재거리는 종달새 소리같이 그렇게 명랑하게 들리었다.
그가 동무들과 저 산에 올라가던 그때가 엊그제 같건만……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니 발버둥을 치고 싶게 안타까웠다.
그리고 차라리 아버지의 말씀대로 하였더면 하는 후회까지 절실히 일어난다.
그는 이러한 생각이 아주 비열하고 더러운 생각이라고 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이 꽃다운 청춘기를 그가 이 철창 속에서 이러한 망상과
공상에서 썩힐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혔다.
그러니 나 혼자만 무의미한 희생이지…… 그는 인왕산에 오른 남자를
바라보면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였다. 그러나 맘은 보채었다.
안타깝게 보채었다. 이렇게 번민과 쓰림을 당하는 것이 자기만이 아니고
이 안에 들어 있는 수없는 인간들인 것을 그는 깨달았다.
피리 소리는 차츰 가늘어진다. 그의 안타까운 이 가슴의 굽이굽이를
바늘끝으로 꼭꼭 찌른다고 할지? 예리한 칼끝으로 심장의 일부를 살짝살짝
저민다고나 할지? ……저 푸른 하늘아래 가는 연기와 같이 떠도는 저 피리
소리! 신철이는 어느덧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 시커멓게 가로질러 나간 철창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물 먹고 싶듯이 저 세상이 그립다.
저 세상의 푸른 공기를 맘껏 들이마시고 싶다.
그때 절그럭 하는 소리에 신철이는 깜짝 놀라 펄썩 주저앉았다.
 
“이놈아!”
 
간수의 호통소리에 그의 가슴은 푸르르 떨렸다.
 
“이리 와 앉아!”
 
신철이는 하는 수 없이 이편으로 와서 주저앉았다.
 
“내다보면 못써. 이 담엔 벌이 있을 테야!”
 
신철이는 울분이 목구멍까지 치받치는 것을 꾹 참았다.
그는 기가 막혀서 묵묵히 앉았을뿐이다. 간수는 한참이나 서서 신철이를
노려보다가 절그럭 하고 미하리 구멍을 닫는다.
그는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손을 펴보니 개미는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개미 동무를 잃어버린 그는 곁에 놓인 <법화경(法華經)>을 끌어당기어
펴들었다.
입맛이 당기지를 않아서 저녁도 먹지 않은 선비는 여러 동무와 같이
공장으로 들어왔다. 이날 선비는 야근할 차례였던 것이다.
여공들은 누구나 다 밤일은 싫어하였다. 그래서 제각기 야근 차례만
돌아오면 얼굴을 찡그리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남직공과 친해진
여공들은 야근하기를 좋아했다. 물론 밤에도 감독이 감독을 하지마는,
감독들은 하룻밤에도 몇 번씩이나 교대를 하였다.
그러므로 교대하는 그 틈마다 고치통을 들고 들어오는 남직공과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밤이니 감독들은 낮과 같이 그렇게 심하게 보지를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밤에 남직공을 틈틈이 만나 보려고 애를 쓰곤 하였던 것이다.
요새는 남직공과 여직공들이 배가 맞아서 나간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러니 감독들이 눈을 밝히고 감독은 한다면서도 어쩐지 그런 일이 자꾸
일어났다. 선비는 육백삼호인 가마 곁으로 와서 동무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이전 나가세요. 제 시간이어요.”
 
동무는 가마 소제를 하다가 휙근 돌아본다.
 
“내 소지하지요.”
 
“아슴찮아라…… 참, 아픈 것 낫소?”
 
동무는 손빠르게 와꾸를 뽑아서 통에 넣어 가지고 돌아서 간다.
선비는 솔을 들고 가마를 얼핏 가신 후에 낡은 물을 내뿜고 새 물이
들어오게 하였다. 이렇게 기계를 소제하는 동안에도 기계의 운전은 쉬지
않았다. 그래서 선비는…… 아니 이 공장 안의 여공들은, 이 기계란 쉴 줄
모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기계에 머리카락이나 혹은 옷이
끼일까 봐 무서워서 머리에 수건을 막 쓰고 검은 통옷을 만들어서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시커멓게 내려 입었다.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으나
간봄에 여공 하나가 머리카락이 와꾸에 끼어서 마침내는 기계에 말려들어
무참하게도 죽었던 것이다.
공장에서는 이것을 극비밀에 붙이고 거기에 대한 이야기도 못 하게 하나,
곁에서 이 참경을 본 몇몇의 여공들이 있으므로, 아는 듯 모르는 듯
그 말이 전 공장 안에 좍 퍼졌던 것이다.
그 후로 이 공장에서는 여공들에게 이런 작업복과 수건을 쓰라고
엄명하였다. 물론 공장에서 내 준 것이 아니고 여공들 스스로 해입게
하였던 것이다.
선비는 남직공이 갖다 주는 삶은 고치를 가마에 들어부었다.
끓는 물 소리가 와스스 하고 나며 고치는 가마 물 속에서 핑핑 돌아간다.
그때 어깨 위가 오싹해지며 오슬오슬 추워 왔다. 그리고 기침이 연달아
칵칵 일어난다. 그는 기침을 안 하려고 입을 꼭 다문 후에 숨을 쉬지
않았다. 그러나 기침은 안타깝게 목구멍에서 간지럼을 태우며 올라오려고
애를 썼다.
선비는 이렇게 기침을 참아 가면서, 조그만 비를 들고 끓어오르는 고치를
꾹꾹 눌러 가며 비 끝에 묻어나는 실끝을 왼손에 감아 쥐었다.
가마에서 끓어오르는 물김에 그의 얼굴이 화끈화끈 달며 벌써 손끝이
짜르르해 왔다. 그러나 반대로 등허리는 오싹오싹 오한이 난다.
선비는 간봄부터 확실하게 이러한 것을 느끼면서도 그저 일시 일어나는
몸살이거니…… 하였다. 그러나 여름철이 닥친 지금까지도 이 추운 증세는
떨어지지 않고 기침까지 곁들였다. 그래서 그는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으나,
그러나 의사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선비는 비를 놓고 왼손에 쥔 실끝을 한 오라기씩 돌아가며 사기바늘에
번개치듯 붙인다.
그러나 바늘 하나에 여러 번 붙이면 실오라기가 너무 굵어지니,
사기바늘 하나에 다섯 번 이상은 못 붙이는 것이다.
사기바늘을 통하여 뽑히는 실끝은, 마치 재봉침 실끝이 용쇠를 통하여
올라가는 것처럼, 비틀비틀 꼬여져서, 와꾸를 향하여 쭉쭉 올라가서 감긴다.
와꾸 옆에는 유리 갈고리가 공중에 매어달려서 와꾸에 실이 고루 감기도록
실끝을 물고 왔다갔다 한다.
 
전등불이 낮같이 밝은데 그 위에 유리창문과 유리천장에 반사가 되어 눈이
부시게 휘황하였다. 그리고 발전기 소음 때문에 귀가 막막하게
메어지는 것 같았다. 선비는 기침을 칵칵 해가면서 자리를 붙지 못하고
몸부림을 쳤다. 그것은 이십 개나 되는 와꾸를 혼자서 조종하려니
그러지 않고는 도저히 불가능하였던 것이다.
오슬오슬 춥던 것은 이젠 반대로 뜨거운 열이 되어 옷이 감기도록 땀이
흘렀다.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사뭇 빗방울같이 흘러서 어쩌는 수가 없었다.
그리고 숨이 차와서 흑흑 느끼었다. 손끝은 뜨거움이 진해서 차츰 무신경
상태에 들어간다. 그래서 남의 손인지 내 손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마침 실이 여기저기서 끊겼다. 선비는 발판을 꾹 눌렀다 놓아 기계를
정지시킨 후에 손빠르게 실끝을 쥐었다. 그때 옆에서 감독이 소리쳤다.
 
“얼른 이어! 요새 선비가 웬일이어?”
 
감독은 들었던 채찍으로 와꾸를 툭 치어 기계를 돌리었다.
그러니 실끝은 채 이어지지 못한 채 와꾸는 핑글핑글 돌았다.
선비는 울고 싶었다. 오늘 밤새도록 일한 것이 헛수고였던것이다.
감독이 이렇게 와꾸를 돌리게 되면 으레 이십 전 벌금을 물게 되는 것이다.
선비는 어쩔 줄을 몰라서 돌아가는 와꾸를 바라보며 실끝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앞이 아뜩아뜩해지며 기침이 자꾸 기어나오려고 하였다.
 
“무슨 딴생각을 하는 게야! 이렇게 일에 성의가 없이 할 때에는,
  응 그러하지?”
 
선비는 가슴이 뜨끔해지며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리고 이 자들이 눈치를
채지나 않았는가? 하였다. 따라서 요새는 거의 날마다 선비를 나무라는
이유가 그것 때문인가? 하였다.
그래서 선비는 한층더 가슴이 떨리고 다리가 허둥거렸다.
한참 후에 선비는 겨우 실끝을 이었다. 벌써 감독은 수첩에 무엇인가 쓰고
있다. 그리고 선비를 흘금흘금 곁눈질해 보며 수첩을 포켓에 집어넣고
그의 앞을 떠났다. 선비는 비로소 한숨을 후 쉬었다. 기침이 야무지게 칵
나왔다. 그는 감독이 그의 기침소리를 들었을까 하여 얼른 감독의 뒷모양을
바라보았다. 감독은 요새 갓 들어온 여공 앞에 서서 무어라고 웃으며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그의 실팍한 궁둥이를 툭 쳤다.
 
“일 잘해! 그래야 상금을 타지.”
 
여공은 몸을 꼬며 애교를 피웠다. 그리고 감독의 눈을 슬쩍 맞추고 눈을
스르르 감으며 웃었다. 이 여공의 특색은 웃으면 저렇게 눈이 되곤 하는
것이다. 선비는 요새 감독이 그의 앞을 떠나 신입 여공에게 저렇게 구는
것이 잘되었다고 생각은 되면서도 그것으로 인하여 그의 맡은 사업이 속히
드러날 위험을 느끼었다. 그리고 전에는 이따금 상금을 주었을망정 이렇게
와꾸를 돌리며 나무라지는 않았는데, 신입 여공이 감독의 비위를 맞추어
주면서부터는 감독의 태도가 아주 냉랭해졌다.
그리고 오늘까지 하면 벌금 문 것이 세 번째나 되었다. 선비는 여전히
바쁘게 손을 놀리면서도 한숨을 폭 쉬었다.
그리고 아까보다 몸이 더 괴롭고 기침만 나오려고 가슴이 죄어들었다.
그나마 아까는 다만 몇십 전의 벌이라도 되거니…… 했다가 그 희망조차
아주 끊어지고 나니 복받치는 것은 아픔과 설움뿐이었다.
그때 그는 간난이가 하던 말을 다시금 생각하고 어느 정도까지 감독의
비위를 맞추어 둘 것을…… 하는 후회도 다소 일었다.
선비는 안타깝게 올라오려는 기침을 막기 위해서 얼른 비 끝으로 번데기를
건지려 하였다.
전등불에 비치어 금빛같이 빛나는 가마 물속에서 끊임없이 뽑히어 올라가는
저 실끝! 하루에도 저 실을 수만 와꾸나 감아 놓는 것이다.
선비는 번데기를 건져 입에 물며 머리를 들어 와꾸를 바라보았다.
번개치듯 돌아가는 와꾸에 흰 무지개같이 서기를 뻗치며 감기는 저 실!
처음에 그가 저 와꾸를 바라볼 때는 뭐라고 형용 못 할 애착을 느끼었으며,
그리고 저것들을 뽑아서 하꼬(상자)에 담아 가지고 감정실로 들어갈 때의
만족이란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에 저것을 바라볼 때는 그것들이
그의 생명을 좀먹어 들어가는 어떤 커다란 벌레같이 생각되었다.
감독이 이리로 오는 눈치를 채고 선비는 얼른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실끝을 골라 바짝 쥐
고 사기바늘에 붙였다. 이번에는 감독이 눈도 거들떠보지 않고 지나간다.
선비는 감독이 지나친 것만 다행으로, 하던 생각을 다시 계속하였다.
감독의 소리가 크게 나므로 흘금 바라보니, 곁의 동무의 와꾸를 툭 쳐서
돌린다. 동무는 얼굴이 빨개서 실끝을 이으려고 허둥거린다…… 그 팔!
그 손끝! 차마 눈 가지고는 바라보지 못할 것이다.
선비는 이마의 땀을 씻으며, 그의 손가락을 다시 보았다.
빨갛게 익은 손등! 물에 부풀어서 허옇게 된 다섯 손가락!
산 손등에 죽은 손가락이 달린 것 같았다. 그는 전신에 소름이 오싹 끼치며,
이 공장 안에 죽은 손가락이 얼마든지 쌓인 것을 그는 깨달았다.
 
 와꾸 와꾸 잘 돌아라
 핑핑 잘 돌아라
 
발전기 소음을 타고 이런 노래가 꺼졌다…… 살았다…… 하였다.
선비도 어느덧 그 노래에 맞추어,
 
 와꾸 와꾸 잘 돌아라
 핑핑 잘 돌아라
 네가 잘 돌면 상금
 네가 못 돌면 벌금
 
겨우 이렇게 입 속으로 부른 선비는 눈등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괴롬을 잊기 위한 이 노래! 일에 재미를 붙이기 위한
이 노래도 선비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했다.
활활 다는 가마 속에 그의 몸뚱이를 넣고 달달 볶는 것 같았다.
목이 타고 가슴이 울렁거리고 코 안이 달고 눈알이 뜨거웠다.
그는 맘대로 하면 이 자리에 칵 엎어져서 몇 분 동안이나마 쉬었으면
이 아픈 것이 좀 나을 것 같았다. 선비는 지나는 감독의 구두 소리를
들으며 몸이 아파서 오늘은 일을 못 하겠어요 하고 몇 번이나
말을 하렸으나 입이 꽉 붙고 떨어지지 않았다. 어딘지 전날에도 선비는
감독들만 대하면 이렇게 입이 굳어졌는데 더구나 몸이 아프니 말할 것도
없었다.
 
선비는 이제야 자기의 병이 심상하지 않음을 알았다.
그리고 기침할 때마다 침에 섞여 나오는 붉은 실 같은 피도 더욱 더욱
관심되었다. 내일은 병원에를 가야지! 꼭 가야지! 하였다.
그리고 예금통장에 적혀 있는 돈 액수를 회계하여 보았다.
선비가 이 공장에 들어온 지가 벌써 거의 일년이 되어 온다. 그 동안 식비
제하고 그리고 구두 값으로, 일용품값으로 제하고 겨우 삼 원 오십 전 가량
남아 있다. 이제 그것으로 병원에까지 가면 도리어 빚을 지게 될 것이다.
무슨 병이기에 삼 원씩이나 들까? 그저 극상해야 한 일 원 어치 약 먹었으면
낫겠지? 하였다.
그는 저편 벽에 걸린 커단 괘종시계를 바라보았다.
새로 두시 십 분을 가리키고 있다. 선비는 그의 다는 가슴에나마 한줄기의
희망과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실이 끊어져 너풀거리므로 선비는 얼른 실끝을 이으며 감독의 눈에 띄지
않았는가 하여 머리를 들 때 앞이 아뜩해지며 쓰러지려 하였다.
그 바람에 그의 바른손이 가마 물 속에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는,
 
“아!”
 
비명을 내며 얼핏 손을 챘다. 그때 손은 이미 뜨거운 물에 담기었었으니
아픈지 어떤지 분명하지 않았으나 이윽고 손과 팔이 저리고 쓰리어서
 죽을 지경이었다.
 
“어데 몹시 다았수?”
 
선비는 머리를 들고 바라보았다. 그 순간에 자기에게 말을 던진 것이
고치통을 들고 온 남직공이라는 것을 알자 첫째의 그 얼굴이 휙 떠오른다.
선비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머리를 돌렸다.
남직공은 멍하니 섰다가 돌아간다.
전 같으면 부끄럼이 앞을 가리었을 터이나 오늘은 온몸이 아프고 팔목까지
데었으니 그런지 부끄럼도 아무것도 모르겠고 그저 남직공에게 무엇인가
호소하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끼었다. 그리고 그가 첫째라면
선비는 서슴지 않고 그의 몸에 피로해진 자신의 몸뚱이를 맡기고 싶었다.
선비는 못 견디게 쓰린 팔목을 혀끝으로 핥으며, 돌아가는 남직공을 흘금
바라보았다. 눈물이 앞을 가리어 그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인다.
선비는 아무래도 이 밤을 새워 일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는 시계를
바라보면서 감독이 이리로 오면 말하겠다 하고 생각하였다.
 
멀리 서 있는 감독이 그림자같이 눈앞에 희미하게 어른거리므로 그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때 감독이 그의 앞을 지나치는 듯하여 그는 입을
떼려 하였다. 그 순간 기침이 칵 나오며 가슴에서 가래가 끓어 올라오므로
그는 얼핏 입에 손을 대었다. 기침이 뒤를 이어 자꾸 나오려 하는 것을
참으려고 애를 쓸 때 마침내 그의 입에 댄 다섯 손가락 새로 붉은 피가
주르르 흐르며 선비는 그만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어떤 토굴 속 같은 방 안에 첫째는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매일같이 노동하던 그가 이렇게 우두커니 앉아 있으려니 이 이상 더
안타까운 괴롬은 또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숨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므로
동무들이 전전 푼푼 갖다 주는 것을 가지고 요새 이렇게 들어앉고만
있었던 것이다.
잡생각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그도 하루 종일 하는 일이 없으니 별의별
생각이 다 일어나곤 하였다. 그는 요새 신철이를 몹시 생각하였다.
철수를 통하여 신철의 소식을 가끔 들으나 언제나 시원치 않은 소식이었다.
어서 빨리 나가서 다시 손에 손을 마주잡고 전날과 같이 일을 했으면
좋을 터인데…… 여기까지 생각한 첫째는 월미도를 향하여 가던 긴 행렬을
다시금 눈앞에 그려 보았다. 그리고 선비의 놀라던 모양이 문득 생각난다.
참말 선비였던가? 그가 참말 선비라면 어느 때든지 만나 볼 것 같았다.
그때 그는 어젯밤 철수에게로 나왔을 대동방적공장의 보고를 듣고 싶은
생각이 부쩍 났다. 그리고 속이 달아 못 견디겠으므로 밖으로 나왔다.
 
그가 철수의 집까지 오니, 마침 철수는 집에 있었다.
 철수는 소리를 낮추어,
 
“서울서 어떤 동무 편에 신철의 소식을 알았소…….”
 
첫째는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 커다란 눈을 둥그렇게 떴다.
 
“불기소가 되어서 나왔대우…… 이유는 사상 전환이라우.”
 
“전환……?”
 
첫째도 무의식간에 그의 말을 받고 나서 이 말을 믿어야 할까?
믿지 않아야 옳을까?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갑자기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힘이 그의 가슴을 짝 채우고 말았다.
철수는 첫째의 낙심하는 모양을 살피고,
 
“동무! 신철이가 전향했다는 것이 그리 놀랄 것이 아닙니다.
  소위 지식계급이란 그렇지요. 신철이는 나오자 M국에 취직하고
  더욱 돈 많은 계집을 얻고 했다우.”
 
취직하고…… 돈 많은 계집을 얻구……? 이 새로운 말에 첫째는 무엇인가
번개같이 그의 머리를 찔러 주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무엇이라고 꼭 집어대어 철수와 같이 술술 지껄일수는 없었다.
그때 밖에서 신발 소리가 벼락치듯 나더니 문이 홱 열리었다.
그들은 벌떡 일어났다. 그들은 뒷문 편으로 다가서며 바라보았다.
간난이였다. 철수는 나무라듯이 간난이를 보았다.
간난이는 숨이 차서 한참이나 머뭇머뭇 하다가,
 
“지금…… 곧 와주셔야 하겠수, 네? 빨리…….”
 
간난이는 겨우 이렇게 말하고 홱 돌아서 나가 버렸다.
그들의 놀란 가슴은 아직도 벌렁거린다. 첫째는 간난이를 바라볼 때,
몹시 낯이 익어 보이는데도 얼핏 누구인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철수는 첫째를 돌아보았다.
 
“같이 갑시다…… 아마 죽어 가는 모양이오!”
 
첫째는 철수의 눈치를 살피며 그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철수는 급하게 걸으며 앞뒤를 흘금흘금 돌아본 후에 가만히 말을 꺼냈다.
 
“어젯밤 대동방적공장에서 여성 동무 하나가 병으로 인하야
  해고되었는데…….”
 
그때 자전거가 휙 지나치자, 물고기 비린내가 훅 끼친다.
첫째는 물고기 장수를 눈결에 보고 철수의 말을 다시 한번 속으로
되풀이하여 보았다. 그때 그는 가슴이 묵직함을 느꼈다.
 
“병인즉은 폐병인데…… 후!”
 
철수는 그 조그만 눈을 쭉 찢어지게 뜨며 입술을 꾹 다물어 보인다.
그때 첫째는 멀리 수림위로 보이는 대동방적공장의 연돌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시커먼 연기를 풀풀 토한다. 첫째는 선비도 그러한 병에나 걸리지
않았는지? 하였다.
그들이 간난이 집까지 왔을 때 간난이는 맞받아 나왔다.
그리고 입을 실룩거리며 무슨 말을 하기는 하나 음성이 탁 갈리어서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벌써 눈치를 채고 나는 듯이
방으로 뛰어들었다. 철수는 병자의 곁으로 와서 들여다보며 흔들었다.
 
“동무! 정신 좀 차리우, 동무!”
 
병자의 몸은 벌써 싸늘하게 식었으며 얼굴이 파랗게 되었다.
철수는 후 하고 한숨을 쉬고 첫째를 돌아보았다.
가슴을 졸이고 섰던 첫째가 한 걸음 다가서며 들여다보는 순간,
 
“선비!”
 
그도 모르게 그는 소리를 지르고 나서 우뚝 섰다.
그의 앞은 아득해지며 어떤 암흑한 낭 아래로 채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어려서부터 그리워하던 이 선비! 한번 만나 보려니…… 하던 이 선비,
이 선비가 이젠 저렇게 죽지 않았는가! 찰나에 그의 머리에는
아까 철수에게서 들었던 말이 번개같이 떠오른다.
 
“돈 많은 계집을 얻구, 취직을 하구…….”
 
그렇다! 신철이는 그만한 여유가 있었다! 그 여유가 그로 하여금 전향을
하게 한 게다. 그러나 자신은 어떤가?
과거와 같이, 그리고 눈앞에 나타나는 현재와 같이 아무러한 여유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신철이는 길이 많다.
신철이와 나와 다른 것이란 여기 있었구나!
이렇게 생각한 첫째는 눈을 부릅뜨고 선비를 바라보았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사모하던 저 선비! 아내로 맞아 아들딸 낳고 살아 보려던
선비! 한번 만나 이야기도 못 해본 그가 결국은 시체가 되어 바로 눈앞에
놓이지 않았는가!
이제야 죽은 선비를 옜다 받아라! 하고 던져 주지 않는가.
여기까지 생각한 첫째의 눈에서는 불덩이가 펄펄 나는 듯하였다.
그리고 불불 떨었다. 이렇게 무섭게 첫째 앞에 나타나 보이는
선비의 시체는 차츰 시커먼 뭉치가 되어 그의 앞에 칵 가로질리는 것을
그는 눈이 뚫어져라 하고 바라보았다.
이 시커먼 뭉치! 이 뭉치는 점점 크게 확대되어 가지고 그의 앞을 캄캄하게
하였다. 아니, 인간이 걸어가는 앞길에 가로질리는 이 뭉치……
시커먼 뭉치, 이 뭉치야말로 인간 문제가 아니고 무엇일까?
 
이 인간 문제! 무엇보다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인간은 이 문제를 위하여 몇천만 년을 두고 싸워 왔다.
그러나 아직 이 문제는 풀리지 않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앞으로 이 당면한 큰 문제를 풀어 나갈 인간이 누굴까?
 
 
                                              ---  끝  ---
 
                 출전:동아일보(1934.8.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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