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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문제(4 중 3)
- 강경애 -
함박눈이 소리 없이 푹푹 내리는 십이월 이십오일 아침, 용연 동네는
높은 집 낮은 집 할것 없이 함박꽃 같은 눈송이로 덮였다.
이윽고 종소리는 뎅그렁뎅그렁 울려 온다. 그 종소리는 흰눈을 뚫고
멀리멀리 사라진다.
“이애, 벌써 종을 치누나.”
옥점 어머니는 말큰말큰한 명주옷을 갈아입으며 곁에서 그에게 옷을
입혀 주는 선비를 보고 속히 입히라는 뜻을 보였다.
그는 치마를 입히고 나서 저고리를 들었다. 옥점 어머니는 입었던 저고리를
얼른 벗었다. 그의 토실토실한 어깨 위는 둥그렇게 드러났다.
“내 딸 용키는 해! 벌써 내 뜻을 알고 따땃이 해두었구나.”
아랫목에 미리 놓아 두었던 것이므로 잔등이 따뜻하였다.
그때 문이 열리며 덕호가 들어왔다.
“당신은 안 가려우?”
덕호는 아랫목에 와서 앉아 담배를 피워 문다.
“사무는 안 보고 갈까?”
“이렇게 기쁜 날 사무 좀 보지 않으면 못 쓰우, 뭐.”
웃음을 머금고 옥점 어머니는 덕호를 쳐다보았다.
간난이를 내쫓은 후부터는 별로이 싸우지를 않았다.
“오늘 연보를 해야겠는데…… 좀 주려우.”
옥점 어머니는 저고리 고름을 매고 버선을 신는다.
“무슨 연보를 또 하나?”
“오늘은 특히 없는 사람…… 저, 걸인들 말이요, 그런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하야 연보를 한다우. 좀 주오. 그런데 많이 하는 사람은 특히
이름을 써서 벽에 붙인다우. 하필 믿는 사람만 연보를 하는 게 아니라
구경 왔던 사람들 중에서도 연보하고 싶은 사람은 연보를 한다우.
당신도 좀 가서 한 오 원 내구려…….”
덕호는 픽 웃으며,
“웬 돈이 있나?”
“글쎄 내 낯을 보아 하는 게지, 뭘 그러시우.
그러지 않어도 면장댁, 면장 댁 하는데…….”
“아, 저 사람은 뻔히 보면서도 저래. 웬 돈이 있는가.”
“글쎄 오늘만 줘요. 내 몫으로 한 이 원 하고 당신 몫으로 한 오 원 해서,
합해서 칠 원만 합시다.”
남편의 이름과 그의 이름이 교회당 벽에 가지런히 씌어질 생각을 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덕호는 담배 꼬투리를 재떨이에 팽개치며,
“그 정, 어데 살겠기, 자꼬 쓰는 데는 많고 벌지는 못하고
어쩐단 말이…….”
덕호는 혼자 하는 말처럼 중얼거리며 조끼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낸다.
옥점 어머니는 손을 벌리고 대들었다.
“이 사람, 글쎄 돈은 어디서 나는가.”
십 원짜리 지화를 내쳐 준다. 그는 입을 실룩실룩하였다.
그가 좋아할 때마다 이런 버릇이 있었다.
“할멈, 어서 가우.”
옥점 어머니는 지화를 주머니에 넣으며 소리쳤다. 뒤미처 할멈이 들어왔다.
“그럭허고 갈 테야? 남부끄럽게.”
그의 시커먼 저고리를 보며 소리쳤다. 할멈은 머뭇머뭇하였다.
“어서 다른 저고리 갈아입어! 그게 뭐야. 무명저고리 있지, 왜?”
선비는 냉큼 일어나서 할멈 방에서 무명저고리를 가지고 들어왔다.
할멈은 올 가을에 새로한 이 무명저고리를 아까워서 입지 못하고 두었던
것이다. 할멈은 선비가 주는 무명저고리를 받아 입고 나서, 옥점 어머니가
깔고 앉을 방석과 책보며 신 넣을 주머니까지 들고 나섰다.
옥점 어머니는 덕호를 돌아보며,
“그럼 저녁엘랑 꼭 가우?”
대답을 듣고야 가겠다는 듯이 말똥말똥 쳐다본다.
덕호는 빙긋이 웃어 보이며,
“글쎄 형편 봐서 가지. 나 거…… 예배당에 가면 기도하는 꼴 보기 싫어서
못 가겠두먼, 그 것 뭐야…… 눈을 감고…… 허허.”
옥점 어머니는 또 저 소리가 나오누나 하고 돌아서 나간다.
선비는 나도 가보았으면 하며 늘어놓은 옥점 어머니의 옷을 거두어
착착 개고 있었다. 옆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덕호는,
“너 전날 내가 말한 것은 생각해 두었느냐?”
선비는 놀라 덕호를 바라보다 머리를 숙인다. 선비는 말한 지가 오래도록
덕호가 묻지 않으므로 아마 술김에 한 말인 게다 하고 스스로 풀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선비는 언제까지나 잠잠하였다.
“선비야, 내가 곧 묻고자 했으나 사무에 분주해서 그만 잊었구나, 허허.
아무래도 이 겨울이야 되겠니? 오는 봄에 가도 갈 터이니까,
그렇지? 선비야.”
그의 말은 몹시도 부드러웠다. 선비는 치미는 감격에 귀밑까지 빨개졌다.
“요새 사람치고 글 몰라서는 시집도 변변한 곳에 못 간다.
내가 너를 기위 내 집안 사람으로 인정하는 이상 너 하나의 소원이야
못 들어주겠니…… 자식도 없는 놈이, 허허허허…….”
덕호는 언제나 말끝마다 손 없는 것을 넣었다.
그가 넣고 싶어 넣는 것보다도 무의식간에 이렇게 넣게 되는 것이다.
“이애, 어서 말을 해.”
덕호는 앉은걸음으로 선비 곁으로 와서 그의 머리를 내려 쓸었다.
선비는 조금 물러앉았다.
“그럼 공부 가고 싶지 않으냐?”
머리를 기웃하여 들여다본다. 그는 너무 어려워서 부시시 일어났다.
“왜 대답이 없어? 허허…… 나는 너를 친딸같이 아는데……
왜 너는 그렇게 어려워하니? 응 선비야! 거게 앉아서 말을 좀 해.”
선비는 얼결에 일어는 났으나 도로 주저앉기도 싫고 그렇다고 나가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선 채 우두머니 서 있었다.
덕호는 시계를 쳐다보더니 벌컥 일어났다.
“그럼 후일 또 물을 터이니…… 이번에는 똑똑히 대답해……
어려울 것이 뭐냐, 부모 자식 새 같은 우리 새에……
글쎄 어려울 게 뭐야, 이애!”
덕호는 선비의 다는 볼을 손으로 가볍게 후려쳤다. 선비는 주춤 물러섰다.
“허허…… 그년, 이전 제법 내우를 하랴고 든다 말이어.”
덕호는 이렇게 말하며 문을 열고 나간다. 그의 신발 소리가 중대문 밖을
나갔을 때, 그는 호! 한숨을 쉬고 두 손으로 얼굴을 비비쳤다.
그때 이제 덕호의 손길이 부딪치던 것을 얼핏 느끼며, 참말 나를 공부시켜
주려는 셈인가? 하며 주저앉았다. 후일 또다시 물으면 뭐라고 할까,
나 서울 가겠소! 그럴까? 아니! 나 공부시켜 주! 그러지……
아버지 나 공부시켜 주, 그래야지! 이렇게 입 속으로 중얼거리고 나니,
참말 그가 서울로 공부를 가는 듯싶었다. 그리고 그가 철 알면서부터,
입에 올려 보지 못한 아버지를 부르고 나니, 웬일인지 어색한 맛이 있으나,
그러나 아버지를 오랫동안 보지 못하다가 만난 듯한, 그러한 감격에
그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아버지가 왜 옥점 어머니 있을 때는 그런 말을 하지 않을까? 무의식간에
이렇게 생각하고나니, 옥점 어머니 역시 어머니라고 불러야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옥점 어머니만은 그의 진심으로 ‘어머니!’ 하고 선뜻 불러지지를
않았다. 어머니 하면 벌써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가 얼른 생각히며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그리움에 잠기곤 하였다.
덕호가 옥점 어머니 없는 곳에서만 선비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것은
옥점 어머니가 이 말을 들으면 으레 반대할 것이므로 이렇게 몰래
말하는 것이라고…… 그는 깨달았을 때, 덕호에 대한 감격이 한층 더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결국은 옥점 어머니 몰래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마 나중에 나 서울 보내 놓고 말을 하려나? 그렇지 않으면 내일처럼
서울을 가게 되면 오늘 밤쯤 이야기하려나? 하고 생각하니 옥점 어머니의
놀라는 표정과 까칠하게 거슬린 눈썹이 시재 보이는 듯하였다.
제 그러면 소용이 있나? 벌써 언제부터 아버지가 나를 공부시키려고
했는데…… 하며 문 편을 흘금 바라보았다.
그가 이때까지 이 집에서 있게 된 것도 덕호가 자기를 끝까지 옹호하여
준 것이라고 생각 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자기의 장래까지도 덕호가
돌아보아 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 하였다. 보다도 주리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그러므로 어떤 때 밤 오래도록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는
큰집 영감님이 다 알아서 해줄 터인데…… 하고, 끝막음을 이렇게 막고는
그만 돌아누워서 잠이 들곤 하였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그의 어머니가 덕호를 가리켜 큰집 영감님, 큰집 영감님 하고
불렀으므로 그도 항상 큰집 영감님 하고 불러졌다. 그러나 오늘 아침
처음으로 불러 본 아버지! 그는 앞으로 맘먹고 아버지라고 부르리라
굳게 결심하였다.
“아버지! 나 공부시켜 주.”
그는 다시 한번 되풀이하였다. 그때 그는 극도의 감격에 눈물이
글썽글썽해졌다. 중대문 소리가 찌꺽하고 났다.
선비는 얼른 눈을 부비치고 유리창으로 내다보았다. 유서방이 짚신을 삼아
가지고 들어온다. 선비는 문을 열고 나왔다.
유서방은 빙글빙글 웃으며 마루까지 와서,
“이거 신어 봐라.”
선비는 가는 웃음을 눈썹 끝에 띠며 짚신을 받아 들었다. 어제 유서방이
그의 발을 재어 달라고 하므로 실을 끊어 재어 주었던 것이다.
“어서 신어 봐. 신어 봐서 안 맞으면 또 삼지.”
“유서방두…….”
선비는 유서방을 흘금 쳐다보며 이렇게 말하고는
신어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애 신어 보라구…….”
유서방은 자기가 정성을 다하여 삼은 것이 선비의 발에 꼭 들어맞는 것을
보고야 안심 될것 같았다. 선비는 신어 보려는 눈치를 보이고 허리를 굽혀
그의 발을 들여다보는 순간 그는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며,
“후일 신어 봐요.”
하고 얼른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버선을 굽어보며
이게 무슨 필까? 어서 떨어진 게야…… 아이 참 망신을 하려니까……
별일 다 있어! 하며 버선코 밑에 빨갛게 물들어진 동그란 흔적을 만져 보며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김칫물이 떨어져 말라진 자리였다.
그제야 그는 가볍게 한숨을 몰아쉬며 유서방이 이것을 피로 보았으면
어쩌나? 하며 유리알로 흘금 내다보았다. 유서방은 눈 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검정이를 바라보며 빙글빙글 웃고 있다. 검정이는 유서방의 웃는
눈치를 짐작함인지 혹은 눈이 오니까 좋아서 그러는지 주둥이로 눈을 헤치며
혹은 발로 긁어당기며 이리 뛰고 저리 뛰다는 딩굴딩굴 굴렀다.
그때마다 유서방은,
“잘 논다! 하하…… 잘 논다! 하하.”
입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웃었다.
유서방에게 있어서는 저 검정이가 유일한 동무였다.
역시 선비도 그러하였다. 웬일인지 검정이는 유서방과 선비와 할멈을
따랐다. 그것은 막연하나마 검정이에게 밥을 주는 까닭이라고 생각되었다.
한참이나 웃던 유서방은 유리창으로 흘금 들여다보았다.
“신 맞니?”
선비는 얼른 곁에 놓인 신을 보며,
“네.”
하였다. 유서방은 만족한 듯이 중대문을 향하여 나간다.
검정이는 눈을 하얗게 뒤집어쓴 채 그의 뒤를 따라나간다.
선비는 짚신으로 눈을 옮겼다. 그리고 신어 보니 꼭 맞는다.
“아이, 곱게두 삼았어.”
그는 발을 들여다보았다. 그때 그는 유서방이 자기를 생각하여 이렇게
신까지 삼아 주는 것이 끝없이 고마웠다. 반면에 그의 장래까지 누가 이렇게
신을 삼아 줄 것인가 하며 첫째를 생각하였다. 그는 나갔다지,
나쁜 일을 하다가 나갔다지…… 참 그가 웬일이어, 어미가 그러니 그 속에서
나온 자식인들 온전할 수가 있나. 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섭섭하였다. 그리고 나가기 전에 한번 그의 얼굴이나마 보았더면 하는
아쉬움이 새로 삼은 짚신을 싸고 언제까지나 돌았다.
나는 공부할 터인데 별것을 다 생각해…….
그날 밤 덕호네 집에서는 온 집안이 다 예배당으로 갔다. 오늘 밤은 특히
애들의 재미난 유희가 있다고 해서 유서방이며 덕호까지도 모두
갔던 것이다. 크나큰 방 안에 선비 혼자 앉아서 낮에 틀던 목화를 틀며
여러 가지 생각을 되풀이하였다.
씨앗에서는 흰구름 같은 솜이 뭉실뭉실 피어오른다.
마치 선비가 지금 생각하는 여러 가지 생각과 같이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피어오른다.
아까 낮에만 하여도 오늘 저녁에는 나도 예배당에나 좀 가보았으면
하였더니, 뜻하지 않는 덕호의 말을 들은 담부터는 혼자 이렇게 앉아
서울 공부 갈 생각을 하는 것이 재미나고 좋았다. 그러므로 옥점 어머니가
할멈은 집이나 보고 자기를 데리고 가려는 것을 일부러 할멈을 보내었던
것이다.
학교 공부할 생각을 할 때마다 언제나 앞서 생각히는 것은, 수놓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그가 직접 본 것이란 그것뿐이니까 그러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하는 학생은 옥점이와 같이 분과 크림과 배니칠을 하고,
또 양복을 입어야 하는 것 같았다. 따라서 남자들과도 부끄럼 없이 같이
다니고, 같이 밥 먹고, 같이 공부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괴롭고 그러고도 기쁜 감정이
서로 교착이 되어 가지고, 삐꺽삐꺽하는 씨아 소리를 따라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방문이 바스스 열린다.
뒤미처 찬바람이 선비의 등허리에 훌씬 끼친다. 그는 놀라 뛰어 일어났다.
“누구요?”
얼결에 소리를 지르며 돌아보니 뜻하지 않은 덕호였다.
선비는 너무 놀란 것이 무안하여 얼굴이 빨개졌다.
“놀랐니?”
덕호는 눈을 툭툭 털며 아랫목에 앉았다. 그리고 수염을 쓰다듬었다.
“뭐 볼 것 없더라. 웬 잡것들이 그리 많이 왔는지,
구경이 아니라 큰 고생이두구나.”
묻지도 않는 말을 덕호는 늘어놓는다. 선비는 씨아틀을 가지고 일어났다.
“왜…… 왜…… 일어나니?”
“건넌방에 가서 틀래요.”
“왜 여기서 틀지…… 이애 이애, 나가지 말아, 나 좀 할 말이 있다.”
선비는 씨아틀을 놓고 앉으며
아마 서울 공부 갈 말을 물으려는 것이구나…… 생각되었다.
“그 씨아틀은 놓고 이리 와 앉아, 응 이애.”
선비는 씨아틀도 만지지 않으면 앞이 허전한 것 같아서 그냥 붙들고 있었다.
덕호는 조금 올라와 앉는다.
“너 정말 공부 가고 싶으냐?”
웬일인지 선비는 가슴이 답답해지며 얼른 대답이 나가지 않았다.
“왜 말을 안 해 이년아, 어룬이 물으면 냉큼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허허 그년.”
선비는 약간 웃음을 띠며 머리를 푹 숙인다.
그의 가슴은 부끄러움과 감격에 교착이 되어 무섭게 뛰기 시작하였다.
“그럼 안 갈 터이냐?”
덕호는 아는 듯 모르는 듯 선비의 앞으로 조금씩 다가왔다.
선비는 씨아틀을 보며,
“공부하겠어요…….”
겨우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낮에부터 생각해 두었던 ‘아부지’가 빠졌다.
그래서 다시 말할까
하고 덕호를 흘금 쳐다보았다. 덕호는 빙긋이 웃었다.
“공부하겠어…….”
씨아틀에 가리워 반만큼 보이는 선비의 타는 듯한 볼!
덕호는 참을 수 없는 정욕의 불길이 울컥 내밀치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간에 바싹 다가앉았다.
“가만히 앉었어! 누가 어쩌냐.”
꿈칠 놀라 일어나려는 선비의 손을 덥석 쥐었다. 덕호의 손은 불같이
뜨거웠다. 그리고 약간 술내를 섞은 강한 장년 사나이의 냄새가 선비의
얼굴에 컥 덮씌운다. 선비는 어쩔 줄을 몰라 부들부들 떨었다.
“노셔요!”
점점 다가쥐는 덕호의 손을 뿌리치며 선비는 으악 쓸어 나오는 울음을
억제하였다. 그리고 벌컥 일어나렸을 때, 누런 살이 투덕투덕 찐,
늙은 호박통 같은 덕호의 볼이 선비의 볼 위에 힘껏 부비쳤다.
“선비야! 너 내 말 들으면 공부 아니라 그 우엣것도
네가 하고 싶다는 것은 다 시켜 줄게! 응! 이년.”
선비는 얼굴을 휙 돌렸다.
“아부지! 이것 노세요.”
“허허허 허…… 아부지! 아부지! 이 귀여운 년아,
아부지라면 왜 그렇게 무서워하누, 응 이년 같으니…….”
덕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진저리가 나도록 선비를 꽉 껴안았다.
선비는 덕호가 취했어도 너무 취한 듯하였다.
“아부지 취하셨에요.”
“응 그래 이년, 나 취했다.”
덕호는 씩씩하며 그의 입에 닥치는 대로 모조리 빨아 넘긴다.
선비는 덕호가 왜 이러는지?
아뜩하고 얼핏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품을 벗어나려고 다리팔을
함부로 놀렸다. 덕호는 생선과 같이 그렇게 매끄럽게 뛰노는 선비를 통째
훌떡 들이마셔도 비린내도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씨아틀을
발길로 차서 밀어 놓고 선비를 안고 넘어졌다. 그리고 치마폭을 잡아당겼다.
“아부지, 아부지, 나 잘못했수! 잘못했수.”
무의식간에 선비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흑흑 느껴 울었다.
그리고 덕호를 힘껏 밀었다.
“이년 가만히 안 있겠니? 나 하라는 대로 안 하면
이년 나가라! 당장 나가!”
덕호는 시뻘건 눈을 부릅뜨고 방금 죽일 듯이 위협을 한다. 전날에 믿고 또
의지했던 덕호! 그리고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같이 그의 장래를
돌보아 주리라고 생각했던 이 덕호가…… 불과 한 시간이 지나지 못해서
이렇게 무서운 덕호로 변할 줄이야 꿈밖에나 상상했으랴! 선비는 그 무서운
덕호를 보지 않으려고 머리를 돌리며 눈을 감아 버렸다.
밤늦게 돌아온 신철이는 대문을 가만히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방문 앞까지 왔을 때
소곤소곤하는 소리에 그는 멈칫 서서 들었다.
“……저야 뭐…… 신철 씨가 요새 애인이 있는 모양이어요.”
옥점의 음성이다.
“아이 그애가 애인이 뭐유.”
그의 의모의 변명하는 소리다. 그는 으흠 하는 아버지의 기침소리에 안방을
흘금 바라보고 나서 구두를 벗고 방문을 열었다. 그들은 놀라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 순간 신철이는 옥점이가 그의 의모와 흡사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발견하였다.
“아니, 왜 그리 신발 소리가 없이 다니냐?”
신철이는 빙긋이 웃으며 옥점이를 보았다. 그리고 외투를 벽 위에 걸었다.
“오셨수…….”
“어데를 그렇게 다니세요? 아마…….”
중도에 말을 끊으며 옥점이는 생긋 웃었다. 그의 의모도 따라 웃었다.
“옥점이는 초저녁에 와서 입때 너를 기다렸다.”
“아 그랬수. 실례했소이다.”
신철이는 선뜻한 방에 주저앉았다.
“방두 어지간히 차다.”
그의 의모가 밀어 놓는 방석을 그는 깔고 앉았다. 그의 의모는 해말쑥한
얼굴에 동그란 눈을 대굴대굴 굴리며 신철이와 옥점이를 번갈아 본다.
그리고 그의 독특한 덧니가 입술 새로 뾰죽 내밀었다. 옥점이는 신철의
빨개진 코끝을 보았다.
“저 집에서 편지 왔는데요.”
“편지…….”
신철이는 얼핏 선비를 생각하였다. 그리고 선비를 올려보내겠다고 편지를
하였나? 하는 호기심이 당기었다.
“아버지 안녕하시다고 하셨수?”
“네…… 그런데 저 선비는 말이우, 오는 봄에 보내겠다구 했구려.”
신철이는 다소 섭섭함을 느끼면서,
“좋지요. 더구나 그때 가야 입학하기도 좋지요.”
그의 의모는 일어난다.
“난 이전 돌아가우. 놀다가 가시우에.”
옥점이는 냉큼 일어났다.
“안녕히 들어가세요.”
그의 의모가 뜰 밖을 나갔을 때 옥점이는 한숨을 호 쉬었다. 그리고 멍하니
전등불을 바라 보았다. 멀리 택시 소리가 우르르 난다. 그리고 뿡뿡 하는
경적 소리가 가는 철사의 울림과 같이 귓가를 스친다.
“요새 어델 그리 다니세요? 아마 애인이 있지요.”
신철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신철이는 양복 바지 갈래를 툭툭 털며 입으로 후 불었다.
“글쎄요…… 제게 말입니까?”
“아이, 남의 말은 듣지 않고 딴생각만 하신다니…… 누굴 생각허세요?”
“내가요? 누굴 생각할까?”
머리를 돌려 생각해 보는 모양을 보였다.
“참 죽겠네…… 어째서 내 말은 말 같지 않아요? 왜 그러세요, 밤낮…….”
유리알같이 빛나는 그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신철이를 보려고
밤마다 이 집 주위를 돌아서 가던 생각이 얼핏 떠오르며, 저렇게 성의 없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가 그랬나 하는 후회가 일어난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난 가겠어요!”
“가겠어요?”
신철이는 일어나는 옥점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빙긋 웃으며,
“혼자 가시겠수?”
“가지, 못 갈 게 뭐야요!”
장갑을 끼며 목도리를 하였다. 그리고 목도리에 입김이 닿아 후끈하고
그의 볼을 적실 때 그는 울음이 북받치는 것을 깨달았다.
“자, 좀더 앉아 계시다가 가시유. 그러면 내가 집까지 바래다 올리지유.”
그는 옥점이가 일어나니 방 안이 쓸쓸해지는 것 같았다.
“정말?”
바래다 주겠다는 말에
그의 가슴에 엉기었던 어떤 뭉치가 절반나마 풀리는 것 같았다.
“참말이지유.”
옥점이는 잠깐 무슨 생각을 하더니,
“선생님이 날 보고 나무라시겠어요.”
하며 흘금 문 편을 바라보다가 다시 신철이를 보았다.
“우리집 가요. 그러면 내 뭘 사다 줄게.”
머리를 갸웃하고 어린애같이 조른다.
신철이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외투를 입으며 밖으로 나왔다.
문밖을 나선 그들은 가지런히 걸었다. 거리에는 버스도 택시도 보이지 않고
오직 골목을 지키고 섰는 가로등만이 희미하게 빛날 뿐이다.
그들은 긴 그림자를 땅 위에 던지며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겨울날 산뜻한
바람이 그들의 옷가를 싸늘하게 스친다. 한참이나 말없이 걷던 옥점이는
가로등을 흘금 쳐다보았다.
“내 이 길로 몇 번이나 다녔는지 몰라요…… 나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며 희미하게 올려다보이는 박석고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숨을 호 쉬었다. 신철이는,
“저…… 선비가 몇 살이오?”
“열여덟 살인지? 그것 왜 물으세요?”
“글쎄 알 일이 있어서…….”
“알 일이 무슨 알 일이어요?”
옥점이는 신철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신철이가 선비를 잊지 못함에서
저런 말을 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불시에 든다.
“아니 글쎄 그것 왜 물으세요?”
“그거요, 이제 봄에 온다면……
학교에 입학시키려면 나이를 알아야 하지요.”
신철이는 이렇게 돌라대었다.
“아이…… 참…… 나는…… 왜 호호…….”
옥점이는 웃었다. 신철이도 따라 웃었다.
“나이가 많아서 소학교에도 다니지 못하겠구,
학원 같은 곳에다 입학시켜야겠구먼요.”
“그렇게 되겠지요…… 웬걸 공부야 제대로 하게 되겠수.
그저 신철 씨 말씀대로 올라와서 내 시중이나 좀 들어 주다가
서울 구경이나 하고 그러고는 여기서 참한 곳이 있으면
시집이나 주지…… 그나마 촌구석에서는 그 인물이 아까우니.”
옥점이는 눈앞에 선비를 그려 보았다. 그리고 그런 시골 구석에 묻어 두기가
아까운 외모만은 가진 것이라…… 다시금 생각되었다.
“저 그때 말씀한 사촌동생이라는 이가 참말 시굴 처녀를 얻겠다나요?”
“네! 그애는 저 역시 공부한 것이 변변치 못하니까……
배우자도 아주 시굴뜨기를 얻겠답니다.”
“그렇지요, 뭐. 상대가 짝이 기울면 길래 살게 되나요. 어찌나 그애를
올려다가 학원에나 몇 달 보내어 국문이나 배운 후에
그이를 주게 하지요.”
“네 글쎄…… 그것은 추후 문제구…… 하여간 서루 만나 봐야 알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맘에 서루 들면 되는 것이니까요, 허허.”
“암! 그게야 그렇지요, 호호. 당자끼리 맘에 들어야 허지우.”
옥점이는 이렇게 말하며 신철의 곁으로 바싹 다가서서 걸었다.
그리고 자기들의 결혼도 빨리 성립이 되었으면…… 그만 오늘 밤에 내가
물어 볼까? 하고 생각하였다.
어느새 그들은 박석고개를 넘어섰다. 대학병원을 싸고 돈 컴컴한 수림
속으로 불어오는 약간 약내를 섞은 바람이 그들의 코끝을 흔들었다.
그리고 별 밑에 희미하게 보이는 창경원의 앙상한 나뭇가지며 그 주위를
싸고 구불구불 달아 내려온 담은
그나마 이조 오백년의 역사를 회상케 하였다.
“이거 보세요, 난 여기 혼자 다니기가 제일 싫어요.”
“싫어요?…… 싫으면 다니지 마시죠.”
“아이 참 죽겠네.”
옥점이는 신철의 외투 자락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이런 으슥한 곳에서는
손이라도 따뜻이 쥐어 주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신철이는 어찌 보면 감정을
가진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대체 이 사나이가 불구자가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새 벌써 옥점의 하숙까지 왔다. 신철이는 우뚝 섰다.
“자 들어가십시오, 여기가 댁이지요.”
“같이 들어가요.”
옥점이는 길을 막아 섰다.
신철이는 이 계집애가 단단히 몸이 단 모양인데…… 하며,
“밤이 오랬는데…… 가서 자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학교에도 가지요…….”
“글쎄 잠깐만…….”
옥점이는 신철에게 거의 매어달리다시피 하였다. 신철이는 계집이 달려드는
것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리 좋을 것은 되지 못하였다.
더구나 오늘 독서회에서 여자 교제에 관한 것을 토의하던 것이
얼핏 떠올랐다.
“자 내일 또 오지우.”
“오기는 뭘 와요. 그짓말만 하시면서…… 들어가세요.”
옥점이는 신철의 손을 잡아끌었다. 신철이는 들어갈까? 말까……
주저하였다. 망설이던 신철이는 자기도 모르게 대문 안에 들어섰다.
그때 신철이는 과오만 범하지 않았으면…… 된다! 하는 결심을 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책상 위에는 책들이 되는 대로 쌓여 있으며 방바닥에는
사과껍질이 벌여 있었다. 그리고 이불도 둥글둥글 말아 구석에 밀어 둔것을
보아 누웠다가 그의 집에 왔던 것 같았다. 옥점이는 돌아가며 사과껍질을
모아 놓으며 방석을 찾아 밀어 놓았다.
“뒤숭숭허지요…… 호호.”
이렇게 신철이가 올 줄 알았더라면 깨끗이 소제를 해둘 것을……
하는 후회가 일며 동시에 신철이가 자기를 게으른 여자라고 볼 것이
곧 두려웠다. 그러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이런 생각에 얼굴이 화끈
달았다. 신철이는 방석을 깔고 앉으며 돌아가며 치우는 옥점이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리고 전등갓에 뿌옇게 들어앉은 먼지며 되는 대로 벌여 있는
화장품들이며 구석구석에 밀어 놓은 양말을 보았다.
“편지 보시겠어요.”
옥점이는 이 모든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신철의 눈을 돌리기 위하여
책상 위 편지함에서 푸른 봉투를 꺼내 그를 주었다. 신철이는 봉투 속에서
편지를 꺼내 거듭 읽은 후에 도로 돌렸다. 옥점이는 벌써 그의 앞에
마주앉아서 배를 깎는다. 첫눈에 그 배 한 개에 사오 전은 주었으리라고
직각되었다. 옥점의 뾰족한 손끝이 깎인 배에 발가우리하게 보였다.
그때 그는 문득 바자 밖으로 넘어오던 그 미운 손! 그리고 호박을 든
그 손이 얼핏 떠오른다. 그게 누구의 손일까? 다시 한번 그는 생각하였다.
옥점이는 배를 쪼개 그 중 한쪽을 칼끝에 찍어 주었다.
신철이는 받아 들었다. 옥점이는 책상 서랍에서 초콜릿곽을 내놓았다.
“이것도 벗기셔요…… 뭐? 잡수시고 싶어요……
주인 깨워서 사오게 할 테니?”
갸웃하여 들여다보는 옥점의 눈은 정이 뚝뚝 듣는 듯하였다.
“아 이게면 좋지유, 여기서 더 좋을 것이 어데 있어요.”
“그래두…… 뜨뜻한 것으로 뭘 좀…….”
“그만두셔요. 저는 이것이면 만족합니다.”
“숯불이라도 피워 오랄까요, 방이 춥지?”
“괜찮아유, 좋습니다.”
신철이는 배를 먹고 나서, 이번에는 초콜릿을 벗기었다.
옥점이는 어석어석 배를 씹으며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집의 어머님 퍽두 좋은 어룬야요.”
“예…… 그렇습니다.”
옥점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생끗 웃는다.
“신철 씨 어데 애인 있지요?”
“글쎄요.”
“어머니가 있다고 그러시던데요.”
“어머니가? 글쎄 모르겠습니다.”
옥점이는 호호 웃으며,
“신철 씨는 왜 늘 저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요?”
“옥점 씨를 싫어한다…… 그 못 알아들을 말씀인데요…… 허허.”
신철이는 웃음이 나왔다. 옥점이가 자기의 맘을 알아보려는 것이 우스웠던
것이다. 그리고 공연히 쓸데없는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어서 가서 푹 잠을
자야겠다…… 하였다. 신철이는 수건을 내어 입을 씻으며 일어났다.
“잘 먹고 가겠습니다.”
“아이 왜 일어나세요.”
옥점이는 놀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외투 자락을 힘껏 잡고 늘어진다.
오늘은 좌우간 끝을 내리라고 결심하는 빛을 신철이도 짐작하였다.
“내일 또 와요. 가서 자야 내일 학교에 가겠습니다.”
“조금만 더…… 삼십 분…… 아니 이십 분만.”
“글쎄, 내일 또 온다니까요.”
“싫어요, 내일은 내일이구요.”
신철이는 난처하여 조금 망설였다. 옥점이는 외투 자락을 잡고 일어나며
신철이를 아랫목으로 밀었다.
“오늘 못 가요!”
옥점의 숨결은 색색하였다. 그리고 얼굴이 빨개졌다. 신철이는 이것이
우스워서 픽 웃었다. 그리고 속으로는 이제는 대담하게 달려붙기
시작하누나…… 하고 생각하였다.
“왜 웃어요? 흥! 내가 우습지요. 다 알아요! 왜 나를 놀립니까?”
시골집에서 그의 허리를 힘껏 껴안아 주던 때를 회상하며 옥점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신철이는 멍하니 옥점이를 바라보았다.
며칠 후에 신철이가 학교로부터 집에 돌아왔을 때 저녁상을 받은
그의 아버지는 얼굴에 희색을 띠며,
“요새도 도서실에서 그렇게 늦게 돌아오냐?”
전부터 신철에게 고문 시험 준비를 하라고 말하였으므로 신철이가
시험 준비를 열심으로 하거니…… 생각하였던 것이다.
신철이는 그의 동생인 영철이를 안으며,
“네.”
“나 미루꾸 주.”
영철이가 그의 턱밑에서 말끄러미 쳐다본다. 신철이는 포켓을 뒤져 보았다.
“오늘은 잊고 못 사왔구나. 내일 사다 줄게…… 응.”
“또 형두 거짓말하나? 아까아까 사온다구 했지.”
“아이 저애는 하루 종일 그것만 외구 앉았어…… 내 원…….”
그의 어머니는 귀여운 듯이 영철이를 바라본다.
신철이는 영철이를 들여다보았다.
“내일은 꼭 사다 주마 응…….”
영철이는 그의 까만 눈을 똑바로 떴다. 그때 어멈이 들고 들어오는 화로를
신철의 의모는 받아서 신철의 앞으로 밀어 놓았다.
신철이는 양볼 위에 솜털이 까칠하게 일어났다.
“이애 밥 마자 먹어…….”
영철이는 그의 어머니 곁으로 와서 안긴다. 그의 아버지는 손을 내밀었다.
“영철아, 이리 와.”
“그만두…… 어서 이 국에 밥 멕이게…….”
그의 어머니는 영철이를 굽어보았다. 그리고 새물새물 웃어 보인다,
그의 뾰족한 덧니를 내놓고. 신철이는 아버지가 술을 들지 않고 자기를
기다리고 있으므로 그만 밥상 곁으로
다가앉았다. 강한 양념내가 훅 끼친다.
“어서 미루꾸 사다 줘야지…….”
영철이가 볼이 퉁퉁 부어서 신철이를 바라보았다.
“그래 오늘은 잊었지만 내일은 꼭 사와, 응. 어서 밥 머…….”
“아이 넌 밤낮 미루꾸냐? 어서 밥 먹어. 호호 참 내…….”
그들은 영철의 부은 볼을 바라보며 웃었다.
신철이가 밥을 다 먹고 일어섰다.
“이애 거기 좀 앉았거라.”
아버지는 숭늉을 마시며 이렇게 말하였다. 신철이는 무슨 말을 하려누?
하는 생각을 하며 그의 의모의 얼굴부터 살펴보았다. 의모도 신철이를
바라보며 웃음을 띠었다. 그의 아버지는 밥상을 물리며,
“너 이전 장가도 가야지…….”
신철이를 똑바로 쳐다본다. 신철이는 가슴이 선뜻하며 가벼운 부끄러움이
눈가를 사르르 스쳐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머리를 푹 숙였다.
“이전 네 나이 스물다섯…… 또 며칠이 안 가서 학업도 마칠 터이니……
그만하면 장가도 가야 허지…… 혹시 네 맘에 드는 여자가 있느냐?”
신철이는 어디서 혼인 자처가 있어났는가? 하였다.
“아직 결혼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 순간 신철의 머리에는 국사발을 든 선비의 모양이 휙 떠오른다.
따라서 용연 동네가 시재 눈앞에 보이는 듯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얼굴에 만족한 빛을 띠었다. 그리고 전날 아내에게서 들었던
말이 얼핏 생각힌다.
“옥점이가 우리 신철에게 짝사랑을 하나 봐! 호호.”
그때 그는 자기 아들이 공부에만 열중한다는 것을
가슴이 뜨거워지도록 느꼈던 것이다.
“그럼…….”
그의 아버지는 무엇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여기 늘 오는 옥점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순간 신철이는 전날 밤에 악을 쓰고 매어달리는 옥점이를 사정없이
물리치고 나오던 때를 다시금 되풀이하며 양미간을 약간 찡그렸다.
그의 아버지는 궐련을 피워 물었다.
“뭐, 그애가 외딸로 자라서 좀 와가마마 갓데(제멋대로 굴다)한 곳이
있니라……마는 내 보기에는 그애의 인간됨인즉은 괜찮다고 보았다,
어떠냐?”
신철이는 아버지가 이렇게 옥점이를 변호하는 이면을, 곁에 놓인 화로의
불을 바라보면서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때까지 결백하게 믿었던 아버지에
대한 신념이 화롯가에 수북이 쌓인 시커먼 숯덩이와 같이 변해 감을,
그는 슬픈 듯이 바라보았다. 따라서 그는 이 자리에 더 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머리를 번쩍 들었다.
“아버지…… 아직 저는 장가가고 싶지 않습니다.”
신철이는 벌컥 일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얼굴에 위엄을 띠었다.
“가만히 앉았어…… 옥점의 아버지가 올라오신 것 아느냐?”
신철이는 발길을 멈추고,
“모릅니다. 언제 올라왔나요.”
“그래 오늘 낮차에 왔다구 하면서 아까 집에 오셨다가 가셨다.
좀 가보아라. 온 여름내 폐를 끼치고도 서울 올라오셨는데
가도 안 보면 되겠니…… 가봐.”
신철이는 비로소 덕호와 아버지 새에 밀의가 있었음을 깨닫고 더욱 놀랐다.
동시에 덕호가 올라오면서 혹시 선비를 데리고 오지 않았나?
하며 가슴이 설레기 시작하였다.
“네, 가보겠습니다.”
신철이는 이렇게 대답을 얼른 하고 밖으로 나왔다.
“형 나 미루꾸 사다 주 응.”
영철이가 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마루에 불빛이 가로질리며 영철의
머리 그림자가 동그랗게 떨어진다. 신철이는 구두를 신으며,
“오냐.”
“응 꼭 사우.”
“뭘 좀 사가지고 가게 허지.”
그의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였다. 신철이는 선비가 꼭 온 것을 알면
아무것이라도 사가지고 갈 맘이 들었다. 그러나 왔는지 안 왔는지
모르는 지금에 꼭 사가지고 가고 싶은 맘이 없어서 포켓에 손을 넣어 지갑을
만지면서 밖으로 나왔다.
저편으로부터 버스가 뻘건 눈 퍼런 눈을 번쩍이면서 우르르 달려온다.
그리고 늘 보는 버스걸의 낯익은 얼굴이 차츰 가까워진다. 그는 저 버스나
타고 갈까 하고 몇 발걸음 옮기다가 에라 천천히 걸어가지…… 하며 버스를
등지고 돌아서 걸었다. 이번에는 택시와 버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이리로 달아온다. 신철이는 휘발유내를 강하게 느끼며 길 옆에 비껴섰다.
그리고 행여나 저 속에 옥점이, 선비, 덕호가 있지 않은가? 나를 찾아오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그 속에 앉은 젊은 여자를 볼 때마다 들곤 하였다.
그는 천천히 걸으며 선비, 옥점이 두 여자를 놓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까 그의 아버지가 하던 말을 다시 곰곰이 생각하였다.
따라서 자기가 지금 결혼을 해야 좋을 것이냐? 안 해야 될 것이냐를
이론으로 따져 보았다. 그는 이때까지 결혼 문제 같은 것은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옥점의 하숙이 가까워질수록 이 여러 문제는 뒤범벅이 되어 횅횅 돌아가고
있다. 더구나 선비가 이번에 올라왔다면 어쩔까? 하고 그는 우뚝 섰다.
그가 선비를 서울로 올라오게 하려고 별별 수단을 다하여 옥점이를 꾀었으나
기실 선비가 지금 올라왔다고 가정하고 나니
뒷문제 해결할 것이 난처하였다.
“신철 군 아닌가?”
어깨를 툭 치는 바람에 신철이는 놀라 돌아보았다. 그는 그와 한 학급에
있는 인호였다. 그는 사각모를 팽팽히 눌러 쓰고 대모테 안경을 썼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궐련을 피워 물었다.
“어데 가나?”
“나? 누가 좀 오라구 해서.”
“누가? 아마 러브한테 가는 모양이지…….”
그의 안경이 뻔쩍 빛난다.
“글쎄…….”
신철이는 빙긋이 웃으며 걸었다. 인호도 따랐다.
“요새 카페 따리아에는 예쁜 계집애가 하나 시굴서 왔는데……
가보지 않으려나?”
“예쁜 계집애가 시굴서…….”
신철이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선비의 얼굴을 그려 보았다.
그때 강하게 궐련내가 끼치므로 신철이는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이 자가
늘 피우는 시키시마인 것을 신철이는 느꼈다.
“자네 어델 가? 똑바로 말해.”
“나 우리 아버지 심부름 갔댔네.”
인호를 떨어치려고 이렇게 꾸며 대고 보니 기실은 아버지의 심부름에서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선비가 왔을까? 그는 다시 한번 생각하였다.
“심부름?…… 에이 이 사람아! 젊은 사람이 그 뭐란 말인가. 자네는 너무
고린내가 나서 틀렸데…… 허허허허.”
“고린내가 나, 허허.”
신철이는 코 안이 싸하게 찔리도록 시키시마내를 맡으며,
저편으로 지나가는 야키구리(군밤) 장수를 바라보았다.
“자 후일 다시 만나세.”
인호는 악수를 건네고 나서 절반도 타지 않은 시키시마를 휙 집어뿌렸다.
길바닥에서 불티가 발갛게 일어난다.
용산행 전차를 타려고 뛰어가는 인호를 바라보며 신철이는 저 자가 또
카페로 가는구나…… 하였다. 그리고 무의식간에 예쁜 계집애, 시굴서……
하고 중얼거렸다. 그가 옥점의 하숙까지 와서는 곧 들어가지 못하고
한참이나 동정을 살폈다. 그리고 뛰노는 가슴을 진정하며 기침을 하였다.
기침소리에 옥점의 방에서는 누가 나오는 모양이다.
“누구요?”
방문을 빠끔하고 내다보는 것은 옥점이었다.
신철이는 방문 앞으로 다가섰다.
“나외다.”
“아니 신철 씨! 우리 아버지 올라오신 것 보셨에요?
이제 댁에 가셨는데요.”
“아버지가 오셨에요? 난 못 뵈었습니다.”
“아니 그럼 길이 어긋났구먼요…… 어서 들어오세요.”
신철이는 방 안에 선비가 앉았는가 하여 얼굴이 화끈 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구두를 벗고 방 안을 얼른 살펴보았다. 그 순간 그는 이 방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았다.
“어서 들어오세요.”
머뭇머뭇하고 섰던 신철이는 비로소 방 안에서 옥점을 발견한 듯하였다.
그는 그만 돌아서 가고 싶었다. 그리고 신철이를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는
옥점이조차 원망스럽게 보였다.
신철이는 안 들어가는 발을 억지로 몰아넣었다. 그때 가벼운 약내가
방 안에 떠도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옥점이가 누웠다 일어난 듯한 아랫목에
깔아 놓은 자리를 보았다. 옥점이는 면경 앞으로 가서 얼굴을 비추어 보며,
“난 세수도 안 했어요. 아이 숭해라.”
머리를 매만지며 얼굴을 약간 찡그렸다. 그때 신철이는 옥점 어머니가
선비를 나무랄 때 찡그리던 얼굴임을 얼핏 발견하였다.
그리고 선비는 안 데리고 온 모양이지…… 하고, 방안을 휘둘러보았다.
“난 입때 앓았어요.”
“어데를?”
옥점이는 얼굴이 붉어지며,
“그날 밤부터…….”
그들의 머리에는 전날 밤 일이 휙 떠오른다. 신철이는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지금 덕호가 그의 아버지와 결혼 문제를 걸어 놓고 이야기할 것을
얼핏 깨달았다.
“아버지 혼자 오셨나요? 왜 옥점 씨 어머니도 같이 오실 것이지요.”
신철이는 선비가 안 왔음을 뻔히 보면서도,
그래도 이렇게까지 묻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였다.
“글쎄요…… 난 어머니를 오시라고 했더니만, 아버지 혼자 오셨구먼요.”
신철이는 어떤 실망이 저 빛나는 전등을 싸고 도는 것을 느꼈다.
“난 도무지 안 오실 줄 알았어요. 이전 다시는 신철 씨를 뵈옵지 못하고
죽는 줄…… 알았지요.”
옥점이는 머리를 숙이며 울먹울먹한다. 신철이는 그의 발그레한 볼 위로
흐르는 눈물을 보니 그도 따라서 속이 언짢아졌다.
그리고 자기도 시원하게 울어 봤으면…… 하였다. 동시에 자기가 선비를
사랑하는 셈인가? 하며…… 아까 아버지가 맘에 드는 여자가 있느냐고 묻던
것이, 또다시 들리는 듯하였다.
옥점이는 깜박 잊었던 것이 생각난 듯이 일어나더니, 고리를 열고
사과, 배, 감, 밤, 떡…… 이런 것들을 차례로 꺼내놓았다.
“잡수세요…… 아버지가 지금 집에도 가져갔어요.
이게 다 아버지가 가져온 게야요…… 호호.”
눈물 괸 눈에 웃음을 띠었다. 신철이는 멍하니 바라보며,
“자그마한 잔채 차림만이나 합니다그려.”
“아이 잔채에 이까짓 것이 뭐겠어요.”
옥점이는 신철이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할 때 어서 우리도 결정하고 결혼식을
굉장히 합시다 하는 말이 거의 입 밖에까지 나오는 것을 참아 버렸다.
“어느 것이나…… 잡수시고 싶은 것으로 택하세요. 요거? 요거? 요거요?”
옥점은 손가락을 내밀어 꼭꼭 짚어 가며 물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신철이는
먹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속이 뒤숭숭한 것이 마치 자기가 항상 가지고
있던 어떤 물건을 잃어버린 것도 같고
누구한테 몹시 속았을 때의 기분 같기도 하였다.
“그럼 이것을 잡수시겠어요?”
책상에서 전날 밤 먹던 초콜릿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중 한 개를 정성스레 벗겨서,
“자 입 벌리고 받으세요. 내 여기서 팡개칠 터이니.”
옥점이는 얼굴이 빨개지며 신철이를 보았다.
신철이는 약간 얼굴을 찡그리다가 웃어 보였다.
“자 이리 주세요.”
신철이는 손을 쑥 내밀었다. 옥점이는 원망스러운 듯이 힐끗 쳐다보고 나서
초콜릿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귀밑까지 빨개진다. 신철이는 초콜릿곽을
당기어 한 개 꺼내 벗기는 체하다가 밖에서 신발 소리가 나므로
그만 놓고 말았다.
“아버진가 몰라…….”
이렇게 중얼거릴 때 문이 열리며 덕호가 들어온다. 신철이는 성큼 일어났다.
그리고 머리를 숙여 보였다.
“아, 이 사람 여기 왔구먼…… 난 이제 댁에 갔댔지……
그새 공부나 잘 했는가?”
덕호는 외투를 벗어 놓았다. 그리고 딸을 흘금 돌아보고 나서 다시
신철이를 보며 눈가로 가는 주름을 잡히고 웃는다.
“글쎄, 저 애가 아프다고 허기에 만사를 전폐하고 올라왔구먼……
이애 어서 눠.”
아까 같아서는 방금 죽는 줄 알았더니 지금 보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앉아 있다. 덕호는 한편으로 딸의 병이 중하지 않은 것이 맘이 놓이나
반면에 신철이와의 결혼을 어떻게 하든지 하루라도 속히 결정하여야겠다는
것이 염려가 되었다.
“그래 자네 이번 졸업이라지?”
“네.”
“자…… 이거 변변치는 않지마는 좀 자셔 보지……
졸업하구는 또 무슨 시험을 친다구……?”
신철이는 자기 아버지에게서 무슨 말을 들었구나…… 직각하자 불쾌하였다.
“글쎄요…… 아직 분명치 않습니다.”
“음…… 어쨌든 성공만 바라네…… 난 급하니 내일 차로 그만 내려가겠네.
사무 보던 것을 그냥 버리고 와서 맘이 놓여야지…….”
그때 신철이는 전날 옥점에게서 들은 말이 얼핏 생각났다. 그리고 이 자가
면장이 되었다더니 저렇게 값비싼 양복까지 입었구나…… 하였다.
“그런데 넌 어떻게 하겠느냐? 보아하니 병은 그리 되지 않은 모양인데……
나하고 내려 가련? 여기서 그렁저렁 치료하겠느냐? 바로 말해라.”
옥점이는 눈을 굴려 생각해 보더니,
“우리 시굴 가시지 않겠어요?”
신철이를 바라본다. 신철이는 선비를 생각하며, 내려가 볼까 하는 생각이
부쩍 든다. 그러나 그 순간 자기가 맡은 사명을 깨달으며, 동시에 이번에
내려가면 결혼하지 않고는 견디어 배기지 못할 것을 알았다.
“저야 뭘 가겠습니까, 그때도 우연히 몽금포 가는 길에 옥점 씨를
만났으니, 가서 폐를 끼쳤습니다마는…….”
덕호는 신철의 말을 일언일구 새겨들으니, 다소 불안도 없지 않아 들게
되었다. 그때 자기들은 신철이와 옥점이 새에 의심 없이 내약이 있는 것으로
알고 한 방에서 뒹구는 것을 묵과하였는데 지금 자기 앞에서 저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 발을 빼기 위한 변명 같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신철의 아버지를 만나 본 결과 혼인은 다 된 혼인 같았다.
그는 스스로 안심하고,
“지금이야 갈 형편도 되지 않겠지만…… 봄에 졸업이나 하고 날이나
따뜻해지면…… 그 때는 우리 저년의 몸도 쾌차해질 터이니……
함께 다녀가게나…… 우리 집사람은 저년보다도 자네를 더 보고 싶다고
야단일세…….”
“천만에…….”
신철이는 머리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 눈을 내리뜨며 무릎 위에
그의 큰 손을 올려놓았다.
옥점이는 그의 남자답고도 의젓한 얼굴과 그 손! 아버지만 아니면 덥석
쥐어 보고 싶게 가슴이 울렁거렸다. 덕호는 물끄러미 신철이를 바라보며
어딘지 모르게 신철이가 옥점이에게 짝이 좀 지나치는 것 같았다.
사윗감인즉은 훌륭한데…… 하며 신철이를 다시금 바라 보았다.
아까 옥점의 말을 들어 보건대 신철이가 옥점이를 사랑은 하면서도 너무
점잖고 수줍어서 이때까지 노골로 드러내지를 않는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마주앉고 보니 그럴 사나이 같지도 않았다. 보다도 신철이가
옥점이를 눌러 보는 데서 이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으면 둘 새에 벌써 육적 관계까지 되어 가지고 지금은 싫증이
나니깐 그러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이 두 문제 중에 어느 것 하나가
꼭 맞으리라…… 하니 더욱 불안이 일어나며 따라서 이번에 결혼 문제도
정식으로 낙착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서울 올러오신 바에는 좀 노시다가 가시지요.”
“글쎄 맘인즉은 자네 부친님과 함께 며칠이든지 놀고 싶네마는……
어디 사정이 그런가…… 내가 없으면 면의 일이 다 틀리네그리.”
신철이는 아까 인호에게서 들은 말이 얼핏 생각난다.
“자네는 고린내가 나서 틀렸데.” 신철이는 속으로 웃으며 일어났다.
“또다시 와서 뵈겠습니다…….”
식당에서 가케우동 한 그릇을 먹은 신철이는 여전히 도서실로 들어왔다.
도서실 안을 휘둘러보니, 식당으로 가기 전보다 인수가 좀 줄어진 듯하였다.
나도 어디로나 가볼까 하며, 포켓에서 시계를 꺼내 보니 여섯시 십 분……
그는 의자에 걸어앉으며 엉덩이가 아픈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는 하루 종일 이 도서실에 앉아서 강의 시간에도 강당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다시 일어나서 자세를 바르게 해가지고 도로 앉았다.
그리고 가방 속에 집어넣어 두었던 책을 꺼내어 펴들었다.
책을 펴드니 아까와 같이 또다시 여러 가지 생각에 머리가 띵하였다.
아침 학교에 올 때 그의 아버지가, 오늘은 좀 일찍 오너라…… 하던 말이
또다시 가슴에 쿡 맞찔린다. 필연 오늘은 결정적으로 그의 대답을 들으려고
하는 모양이다. 어젯밤 덕호와 아버지는 단단한 의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오늘은 그 하나를 두고,
여럿이 강박하다시피 대답을 요구할것 같았다.
어쩐담……?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팔로 머리를 괴었다.
그의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이 옥점이가 재산가 집 외동딸임에 이렇게
서두르는 것이 뻔한 일이다. 돈…… 돈! 그 돈 때문에 자기 아버지는
환장이 되어 아들의 일생을 망치려고 덤벼드는 것 같았다.
신철이는 눈을 꾹 감았다. 그의 머리에는 옥점이가 보인다. 그리고 선비가
떠오른다. 내가 선비를 사랑한다 하고 선뜻 대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따라서 선비와 결혼까지 하기도 그의 마음이 허락지를 않았다.
그것은 왜 그런지는 몰라도, 어쩐지 그렇게 생각이 된다. 그러면 왜 내가
선비를 잊지 못하는가? 그것도 역시 꼭 집어 댈 수 없었다.
그러나 최대 원인은, 선비가 자기가 좋아하는 타입의 미를 구비한 것이며
그리고 그의 근실성! 그것뿐이다. 그 위에 두 달 동안이나 한 집에
있으면서도 말 한마디 건네 보지 못한 것이, 자신으로 하여금 이렇게
생각나게 하는 것 같았다.
만일에 선비도 옥점이와 같이 그렇게 여지없이 놀았다면, 역시 지금 자기가
옥점이를 대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감정으로 선비를 대할는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그가 이때까지 맞당해 본 여성이 그리 적은 수가
아니나 그렇게 꼭 맘에 드는 여성이 하나도 없음을 깨달았다.
그나마 억지로 골라 내라면 역시 선비일 것이다.
처음부터 옥점에 대하여는 그렇게 생각하였지마는 옥점이야말로 여행중에나
잠시 사귀어 심심풀이나 할 여성에서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여자와 결혼을 하라…… 그는 픽 웃어 버렸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에
대한 이때까지의 신념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자기 아버지
역시 박봉을 받아 가지고 너무 생활에 쪼들려 이젠 돈이라면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덤벼들게 된 것 같았다.
오늘 저녁에 집에 가면 아버지는 늦게 왔다고 불호령이 내릴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결혼 문제를 꺼내 놓을 터이지…… 흥 나 싫은 것이야
어떻게 한담…… 이렇게 생각하며 덕호가 오늘 내려갔는가? 아직 있는가?
그는 다시 덕호와 마주앉기도 싫었다. 그러나 내려가기 전에 덕호를 만나
선비를 꼭 오는 봄엘랑 올려 보내도록 꾀었으면……도 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옥점이와의 결혼을 승낙하기 전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안 되면 말지…… 내…… 일개 여자로 인하여 머리를 썩일 내가
아니니까…… 이렇게 생각을 하였으나……
그러나 선비만은 꼭 한번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그의 음성을 듣고 싶었다.
옥점이와의 결혼을 그가 거절한다면 이 선비와의 앞길도 막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섭섭한 일이다. 그래서 이 여러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선비를
서울로 올려 오게 하려던 것이 그만 실패되고 말았다. 이 겨울 지나
봄만 되어도 선비를 어디로 출가시키고 말는지도 모르지……
그는 무의식간에 책을 덮어 놓고 멍하니 전등불을 바라보았다.
빛나는 전등? 검은 사마귀?…… 그때 중얼중얼하는 소리에 신철이는 휙근
돌아보았다. 병식이가 육법전서를 가슴에 붙안고 눈을 찌그려 감았다.
그리고는 일백삼십일조…… 일백삼십일조…… 일백삼십일조……
일백삼십일조…… 응 일백삼십일조…… 하고 외우고 있다. 그의 얼굴은
폐병 초기를 지난 것 같고 그의 독특한 이마는 전등불에 비치어 한층더 툭
솟아 나온 듯하였다. 그는 생각지 않은 웃음이 픽 나왔다.
지금 저들은 사무관이나 판검사를 머리에 그리며 저 모양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불시에 이 도서실이 싫어졌다. 그래서 그는 가방을 들고 벌컥
일어났다.
밖으로 나온 신철이는 푸떡푸떡 떨어지는 눈송이를 얼굴에 느꼈다.
그는 눈이 오는가…… 하며 바라보았다. 가로등에 비치어 떨어지는 눈송이는
마치 여름날 전등불을 싸고 날아드는 하루살이떼 같았다. 그가 어정어정
걸어 정문까지 나왔을 때 도서실에서 흘러나오는 폐실(閉室) 종이 뗑겅뗑겅
울렸다. 그는 벌써 아홉시로구나!…… 하며 휙근 돌아보았다. 컴컴한 공간을
뚫고 시커멓게 솟은 저 건물, 저것이 조선의 최고 학부다!
그는 우뚝 섰다. 그리고 자기가 삼 년 동안 하루같이 저 안에서 배운 것이란
무엇이었던가? 하는 커다란 퀘스천마크(?)가 눈이 캄캄해지도록 그의 앞에
가로질리는 것을 똑똑히 바라보았다.
도서실에서 흩어져 나오는 학생들의 말소리를 들으며 그는 다시 걸었다.
그가 그의 집까지 왔을 때 아버지의 으흠 하고 기침하는 소리가 전날같이
무심히 들리지를 않았다.
“신철이냐?”
신철이가 그의 방문을 열 때, 아버지의 이러한 말이 그의 뒷덜미를
후려치는 듯이 높이 나왔다.
“네.”
“왜 일찍 오라니까 늦게 오느냐? 어서 저녁 먹게 하여라.”
신철이는 잠잠히 들어와서 가방을 책상 위에 놓고 책들을 가방 속에서
끌어내어 차례로 혼다테(책꽂이)에 꽂아 놓았다. 맘은 부절히 분주하지마는
이렇게 착착 정리하지 않고는 맘에 걸리어 그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책상 위를 정돈하고 걸레로 훔쳐 낸 후에 벽을 기대어 아버지가
또 뭐라고 하는가? 하며 귀를 기울였다.
신발 소리가 콩콩 나더니 그의 의모가 방문을 열었다.
“어서 들어와 저녁 먹어.”
“난 먹었수.”
“어데서?”
“저 누가…… 동무가 한턱 내서…….”
의모는 말끄러미 그의 눈치를 채더니 방 안으로 들어온다.
“왜 일찍 나오지…… 안 나왔니?”
“왜? 나와서 할 일 있수?”
의모는 생긋 웃었다. 그리고 다가앉으며,
“아까 아버지와 옥점의 아버지가 너를 기다렸다. 아마 결혼을 아주
결정하랴나 부더라…… 어떠냐 아주 재산이 많다지?”
신철이는 멍하니 그의 의모의 나불거리는 입술만 바라보기에
무슨 말을 했는지 몰랐다.
“이애 어서 오늘 저녁 결정하게 하여라…… 좀 좋으냐! 사람이 결점 없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 줄 아니?
아버지는 꼭 마음에 있어서 그러시는데…… 넌 그러니?”
신철이는,
“내가 뭐라우?”
“아 글쎄 말이야…… 그럼 됐지, 어서 안방으로 건너가자.
이제 좀 있으면 옥점 아버지가 오실지 모르니…….”
“뭐 오늘 안 갔수?”
“아이 그 일 때문에 못 갔지…… 이 밤차로 나려가랴다가
어데 네가 오더냐? 하루 종일 와서 기다렸다.”
신철이는 픽 웃었다. 그때,
“신철아!”
하고 아버지가 부른다.
신철이는 무슨 생각을 잠깐 하고 나서 벌컥 일어났다. 그의 의모는 또다시,
“이애, 아버지 속 태우지 말구 얼른 대답해…… 응.”
신철이가 방으로 들어오니 아버지는 안경을 벗어 놓으며,
“어서 저녁 먹게 하지.”
아내를 바라보며 밥상 차리라는 뜻을 보였다.
“먹구 왔다우…… 어느 동무가 한턱을 내서.”
“응…….”
그의 아버지는 신철의 숙인 머리를 바라보면서
한참이나 무슨 생각을 하더니,
“너 옥점이와의 결혼에 대해서 별 이의가 없을 터이지……?”
신철이는 머리를 들며,
“싫습니다!”
의외로 명확한 대답에 아버지의 얼굴은 순간으로 변하여진다.
“어째서?”
“별 깊은 이유는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뚝 잘라 말하며 다시 머리를 숙였다.
신철의 아버지는 조금 다가앉았다.
“이유 없이 싫다?…… 그럼 네 맘으로 정해 둔 여자가 있느냐?”
그 순간 신철이는 선비를 멀리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환영은 순간으로 희미하게 사라졌다.
“없습니다.”
“그러면 이번에 정하고 말아! 무슨 잔말이냐.”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평상시의 신철의 성격을 미루어서 자기의 말이라면 아무리
그의 비위에 다소 틀리는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묵과할 것만 같아서 이렇게
명령하듯이 말하였다. 신철이는 아버지의 이러한 말을 듣고 적지 않게
놀랐다. 자기의 일생에 관한 중대사를 당자의 의사는 무시하고 저렇게까지
덤벼들게 상식이 없는 아버지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다소 권해 보다가 싫다면 말겠거니…… 하였던 것이다.
“이제 옥점의 아버지가 올 터이니, 너는 잔말 말고 쾌히 승낙해라……
글쎄 그런 자리가 쉽겠느냐…… 생각해 봐라. 너는 지금 쓸데없는 공상에
들떠서 모르지마는 현실사회란 그렇지 않은 게야. 나두 한때는 공상에서
대가리만 커서 한동안 감옥생활까지 해보았다마는……
그래서 지금 이렇게 달달 꾀어 돌아간다. 그러니 시재라도 내가 저게서
나오게 되면 생활도 딱하지 않으냐?…… 네가 이 봄에 졸업하고
고문 시험이나 패스되면 걱정 없지만…… 그래도 뒤에서 후원이 상당해야
네가 출세하기도 힘이 들지 않는 게다…… 알아들었니? 이번 결혼만
되게 되면 네 앞길은 아주 유망하다. 그러니 아비는 너의 장래를 생각해서
그러는 게야.”
그의 아버지는 음성을 낮추어 가지고 이렇게 간곡히 말하였다.
신철이는 처음부터 아버지의 뜻을 모른 것은 아니나 이렇게 맞당해서
그의 간곡한 말을 들으니 아버지의 그 머리로써는 이렇게밖에
더 생각할 수가 없으리라…… 하였다. 지금 이 집의 유일한 후계자는
자기라고 아버지는 생각할 것이다. 동생인 영철이가 있으나
아직 그는 어렸고 더구나 영철이는 항상 앓아 가지고 있으니
장차 생존 여부조차도 믿지 못할 만큼이었다. 그렇다고 그는 아버지의
말대로 고문 시험을 패스하고 재산가 집 사위가 되고 또 이 집의 후계자로만
그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더구나 결혼 상대가 맘에 들지 않으니
그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었다.
“아버지, 상대는 맘에 있거나 없거나 재산만 보고 결혼을 하랍니까.”
신철이는 아버지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이렇게까지
노골로 대어들 줄은 몰랐다가 적이 놀랐다.
“음…… 상대가 맘에 없다? 그러면 왜 옥점의 집에 가서 근 석 달이나 같이
있었냐? 그리고 날마다 함께 몰려다니구?”
신철이는 딱 쏘아보는 아버지의 시선을 약간 피하였다.
“총각의 몸으로서 처녀의 집에 가서 하루 이틀도 아니요 두세 달씩이나
있었으니 누가 평범하게 본단 말이냐? 응 어데 말해 봐.”
“……”
신철이는 대답에 궁하여 가만히 있었다.
“그럼 네가 색마란 말이냐? 며칠 데리고 놀았으니
싫증이 난단 말이지…….”
이 말에는 신철이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반항의 불길이 확 일어남을 깨달았다.
“아버지! 너무하십니다. 동무로 인정하는 이상 얼마든지 함께 다니고 함께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아버지의 봉건적 선입관으로
남자와 여자는 함께만 있으면 서로 관계가 있는가? 하고 생각하는 데서
하시는 말씀이시지…… 어데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그때만 해두
아버지의 제자란 명칭하에서 간곡히 권하니 그저 하루 이틀 물린 것이
그렇게 되었지…… 절대로 옥점이를 배우자로 인정함은 아니었습니다.”
“이애, 이애 듣기 싫다. 봉건적이니 무어니 해두 사내와 계집이 함께
몰려다니면 별수가 있니? 네가 이제 와서 결혼을 하지 않겠다면 젤단
내가 낯을 들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너…… 네 책상에는 그게 다 뭐
하는 책들이냐? 아비가 담배 한 갑을 맘놓고 사먹지 못하고 애쓰는 줄은
모르고 쓸데없는 책만 사들여다 보구는 봉건적이니 무슨 적이니 하고
애비 대답만 기성스레 해? 이놈! 그런 버르장이를 얻다 대고 하니?
대학까지 다녔다는 놈이…….”
아들의 말 나오는 것을 들으니 그의 아버지는 이때까지 자식에게 취하여
왔던 희망이 졸지에 전부가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참을 수 없는 분이 머리털 끝까지 치미는 것을 깨달았다.
“고문 시험 칠 게나 보지…… 이놈! 별 책 다 사다 보더니…….”
“그 책들이 나의 교과서외다…… 아버지는 고문 시험을 치라지요?
내 이때껏 노골로 말을 안 했지만 고문 시험은 쳐서 뭘 하는 겝니까!”
“이애, 잘한다…… 허허 이놈아! 무슨 개소리를 치고 앉았냐!
썩 나가지 못하겠냐?”
그의 아버지는 달려들어 신철의 따귀를 후려쳤다.
그리고 그의 앞가슴을 움켜쥐고 문밖으로 내몰았다.
“너와 나와 아무 상관 없다. 남이다. 우리집에 있을 턱이 없어! 나가!”
신철의 의모는 남편을 붙들며,
“아이 망령이시네, 이거 왜 이러세요.”
“나가! 난 네 아비 될 것 없고, 넌 또 내 아들 될 것이 없어.”
신철이는 허둥허둥 건넌방으로 건너와서 몇 권의 책과 몇 벌의 양복가지를
가방 속에 넣어가지고 뛰어나왔다. 그의 의모는 안방에서 달려나왔다.
“이애, 너 미쳤구나. 오늘 네가 웬일이냐.
아버지가 다소 꾸지람을 하시기어던 너 이게 웬일이냐.”
신철의 외투 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신철의 아버지는 벼락치듯 문을 열고
나와서 아내를 끌고 들어간다.
“어서 나가! 나가지 못하는 것도 아주 비겁한 놈이야, 응 어서, 어서.”
자던 영철이가 문소리에 놀라 으아 하고 울며 나온다.
그의 아버지는 신철이가 이렇게 극단으로 나갈 줄까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더구나 나가란다고 신철이가 가방을 들고 나오는 것을 보니 앞이
아뜩하여지며 전신이 사시나무 떨리듯 하였다.
신철이는 영철의 우는 소리를 들으며 문밖을 나섰다. 눈은 아까보다
더 퍼붓는다. 삽시간에 그의 옷은 눈에 허옇게 되었다. 그가 박석고개까지
왔을 때 뒤따르는 신발 소리가 흡사히 그의 의모의 신발 소리 같아 휙근
돌아보았다. 그는 어떤 낯선 부인이었다. 순간에 신철이는 말할 수 없는
쓸쓸함을 느끼는 동시에 새삼스럽게 돌아가신 어머님이 눈물겹게 떠올랐다.
그는 천천히 걸으며 어디로 가나? 하며 생각해 보았다.
암만 생각해 보아도 갈 곳이 없다.
그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며 종로까지 왔다.
종로도 이젠 적적한 감을 주었다. 간혹 사람들이 다니기는 하나 자기와 같이
갈 곳이 없어 헤매는 사람들 같지 않았다. 모두 활개를 치며 분주히 걸었다.
그리고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레코드 소리만이 요란스럽게 들린다.
그는 파고다공원 앞까지 와서 우뚝 섰다. 그리고,
“그 동무의 집에라도 가볼까?”
이렇게 중얼거렸다. 전날 밤에 이 파고다공원에서 만났던 동무의 생각이
얼핏 났던 것이다. 그는 조선극장 앞을 지나 안국동 네거리로 들어섰다.
그때 비창한 어떤 결심이 그의 전신을 뜨겁게 하였다. 그리고 다시는 집에
발길을 들여놓지 않으리라…… 하였다. 그나마 자기 뒤를 따라 의모가
나오거니, 나오거니…… 생각했다가 이 안국동 네거리에 들어서면서부터
아주 단념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의모가 그의 뒤를 따라와서 집으로 끈다 하더라도 이미 나온 신철이라
다시 집으로 들어가지는 않겠으나 그러나 웬일인지 자꾸 의모가 그의 뒤를
따르는 것만 같았던 것이다. 보성전문학교 앞을 지나칠 때,
“이게 누구요?”
손을 내민다. 그는 놀라 자세히 보니 그가 찾아가던 동무였다.
“아 동무! 난 지금 동무를 찾아가던 길이오.”
“나를?”
그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말끄러미 쳐다본다. 그는 얼굴빛이 희며 눈까풀이
엷다. 그리고 몸이 호리호리하면서도 키가 작다. 그러나 툭 솟은 그의
앞가슴과 올백으로 넘긴 그의 머리카락이 밤송이같이 까칠하게 일어선 것을
보아, 누구나 그의 담력을 엿볼 수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를 대하면
다정해 보이기도 하고 또 쌀쌀해 보이기도 하였다.
한참이나 훑어보던 동무는,
“웬일이오? 이 트렁크는 왜 밤중에 가지고 다니우?”
신철이는 주저주저하다가,
“동무, 난 우리집에서 아주 나왔소이다.”
“아주 나왔다?”
동무는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하고 이렇게 되풀이하며
신철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신철이는 묵묵히 동무를 바라보다가,
“왜, 아주 나온 것이 안되었소?”
“아니, 어떻게 하는 말인지…… 동무가 집에서 아주 나왔어요?”
“예…….”
신철이는 쓸쓸한 웃음을 웃었다. 동무는 무슨 일인가?……
생각하며 눈이 둥그래서 쳐다 보았다.
“그런데 동무는 어델 가댔수?”
한참 후에 신철이는 물었다.
“나요? 지금 저녁 얻어먹으러 떠났소, 허허.”
동무는 어깨의 눈을 툭툭 털었다.
“그럼 나와 가오.”
우동 한 그릇씩 먹은 그들은 빵 몇 개를 사가지고 동무의 집까지 왔다.
“자, 빵이오. 손님이오.”
신철의 앞을 서서 문을 열고 들어가는 동무는 웃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육촉밖에 안 돼 보이는 컴컴한 전등을 가운데 두고 마주앉아 샤쓰를 벗어
들고 이 사냥을 하던 그들은 놀라 샤쓰를 입으며 눈이 둥그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무의 내처 주는 빵을 들고 뚝뚝 무질러 먹는다.
신철이는 무슨 고리타분한 냄새를 후끈 맡으며 방으로 들어앉았다.
불은 언제 때봤는지? 안 때봤는지? 마치 얼음덩이 위에 앉는 것 같았다.
“이 동무는 유신철이라는 동무요.”
동무는 그들에게 소개하였다. 그들은 빵을 씹으며 서로 인사를 하고 픽
웃었다. 그들의 입모습에는 일종의 비웃음이 떠돌았다.
“우리 셋이서 자취생활을 하였소.
이제부터 동무도 우리와 같이 고생을 하여야 하오, 하하.”
동무는 그 밤송이 머리카락을 흔들며 웃었다. 그리고 새카만 내의를 입고
추워서 웅크리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며,
“오늘 굶지 않을 수가 나려니……
별일이 다 있거든! 이 동무가 나를 찾아온단 말이어, 하하.”
“그러니 내일 아침 먹을 것이 걱정이지…….”
얼굴 둥근 기호라는 사람이 말하였다.
“무슨 내일 일까지 걱정하고 있어……
그래도 사람은 살아나가는 수가 있는지라…….”
동무는 신철이를 돌아보았다. 신철이는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며 이 밤을
여기서 지낼 것이 난처하였다. 무엇보다 이 토굴 같은 방에서 자리도 없이,
더구나 살을 에어 내는 듯한 찬방에서 지낼 것이 기가 막혔다.
그리고 내일 아침부터라도 신철의 가방이며 외투까지……
그가 몸뚱이 하나를 내놓고는 다 전당포로 들어가야 할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는 앞이 아뜩하였다. 그가 집에서…… 아니! 책상머리에서 생각하던
바와는 너무나 현실이 무서움을 깨달았다. 동시에 이제 앞으로 닥쳐올 현실!
그것을 상상하여 볼 때, 그의 앞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캄캄하였다.
그 밤을 고스란히 새운 신철이는 지갑을 톡톡 털어 동무를 주었다.
그는 쌀과 나무를 사왔다. 그래서 한 사람은 쌀 일고 한 사람은 불 때고
이렇게 서둘러서 밥을 지어 놨다.
“이애, 이거 오늘은 상당하구나!”
밤송이 머리에 재티가 뿌옇게 앉았다. 신철이는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동무의 만족해하는 모양을 바라보며 오냐 나도 견디자! 이렇게 굳게
결심하였다. 밥을 다 먹고 난 그들은 저마다 설거지를 하라고 내밀다가
나중에는 각기 한 그릇씩 들어다 부엌 구석에 몰아 두었다.
“여보게, 오늘은 안 간 모양이지?”
일포가 눈을 끔쩍하며 앞문을 바라보았다.
“어제 야근 아니어?…… 그러니 오늘은 한시부터야 출근하실 터이지……
오늘은 좀 가서 만나 보기나 하자.”
기호가 맞장구를 친다. 동무는 신철이를 바라보고 소리를 낮추며,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나? 저 건넌방에 말이지……
방직공장에 다니는 미인이 있단 말이어…… 그러니 저놈들이 저마큼
연애를 걸어 보려누먼…….”
“이애 이놈아, 누가 연애를 걸랴냐? 실은 네놈이 몸이 백 퍼센트로 달지
않았냐?”
그들은 일시에 웃었다.
이튿날 신철의 동무는 신철이와 함께 있는 것이 재미 적다고 생각해서
둘이서 의논한 끝에 동무는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부득이
만날 일이 있어야 혹간 오곤 하였다.
그 후로부터 신철이는 자취생활에 익숙해져서 밥도 짓고 내의도 빨아 입곤
하였다. 그리고 밥 해먹고 나서는 돌아앉아 이 사냥으로, 양말 뚫어진 것을
깁기에 분주하였다. 더구나 신철이는 차근차근하게 무엇이든지 잘하므로
그는 주부역을 맡았다.
일포나 기호는 이미 감옥생활을 거친 사람들로서, 지금은 그저 픽픽 웃기만
하고 여기도 저기도 가담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루 종일 누구는 어떻고……
어떻고 하면서 비웃기로 소일을 하고 있었다. 더구나 여자 말이라 하면
기를 쓰고 덤벼들었다.
“여보게 신철 군! 어젯밤 이 앞 다리에서 그 미인과 마주쳤구먼……
그런데…….”
앞방 여직공을 가리켜 그 미인이라 하였다.
피아노를 뚱뚱 치고 있던 옥점이는 창문으로 쏘아 들어오는 달빛을 쳐다보며
한참이나 무슨 생각을 하더니 머리를 돌려 선비를 바라보았다.
“선비야, 너 그날 밤에 신철이가 뭐라고 하지 않던?”
문 앞에서 낮에 따온 외를 다듬던 선비는 외를 든 채 멍하니 옥점이를
바라보며 그게 무슨 말인가? 하였다. 옥점이는 성을 발칵 내었다.
“넌 이따금 혼이 나가는 모양이두나. 그게 뭐야, 어따 좋다!”
선비가 돌려 생각할 새도 없이 옥점이는 이렇게 비웃었다. 선비는,
‘그날 밤 신철이가 뭐라고 하지 않던? 그게 무슨 말이야?……’
하고 입 속으로 외어 보나 도무지 그의 기억에서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가 하필 이 말귀만을 못 알아들은 게 아니라 종종 그러하였다. 웬일인지
몰랐다.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그의 머리에는 뭐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안타깝고 초조함이 저 바구니에 외가 들어 있는 것보다도 더 가득히 들어찬
것을 그는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동시에 그가 언제부터 옥점의 말과 같이
정신이 나갔는지 몰랐다. 어쨌든 그의 맑고 선명하던, 그 무엇인지는 모르나
그것이 확실히 자신에게서 떠나간 듯하였다.
그는 칼로 외꼭지를 자르며 한숨을 가볍게 쉬었다.
“그래 아직도 생각 안 나?”
한참 후에 선비는 머리를 들며,
“안 나.”
“아이 저런! 바보가 어디 있나? 참 죽겠네!
아 작년 여름에 서울서 왔던 손님 말이어…….”
“손님이 뭐?”
“아이구 저걸 어째? 쟤가 저러다 정말 바보가 되랴나 봐. 에이 모르겠다,
어서 외나 다듬어서 김치나 담거! 네게 말하느니, 쇠귀에 경을 읽어야
낫겠다. 그게 뭐야…… 참.”
옥점이는 횡 돌아앉는다. 그리고 다시 피아노를 치며, 그 소리에 맞춰 무슨
노래인지 슬프게 부른다. 선비는 물끄러미 그의 모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노래를 들었다. 그 노래는 선비의 모든 것을 비웃는 듯, 조롱하는
듯하였다. 그리고 창문으로 쏘아 들어오는 무지개 같은 달빛에 비치어 그의
백어 같은 손길은 가볍게 뛰놀았다.
“이애 선비야! 그 방에 불 켜놓으려무나.”
옥점 어머니가 밖으로부터 들어오며 이렇게 소리쳤다. 선비는 깜짝 놀라
일어났다. 언제나 그는 옥점 어머니의 음성만 들으면 가슴이 후닥닥 뛰며,
그 담 말에는 자기를 나무라지 않으려나? 혹은 이년 더러운 년! 나가라!
하지 않으려나? 하는 불안에 도무지 마음을 진정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만둬라…… 어머이, 난 이대로가 좋아. 저 달빛이면 그만이지……
불은 켜서 뭘 해…… 아이, 난 죽으면 좋겠어, 어머이.”
방 안을 들여다보는 그의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옥점 어머니는 딸이 죽고 싶다는 말에 앞이 아뜩해서,
“그게 무슨 말이냐? 소위 배웠다는 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냐?
다시는 그런 말 내 앞에서 내지 말아!”
옥점 어머니는 목이 메어, 할 말이 아직 많은데 그만 그치고 말았다.
“넌 무슨 오이를 아직도 다듬냐? 어서 그걸랑 들여다 두고 안방에 불도
켜고, 자리도 펴고, 이 방에도 그렇게 해! 원? 어쩐 일로 계집년이 점점
느릿느릿하냐, 그나마 그 할멈을 그냥 두었으면 좋을 것을…….”
옥점이가 졸업하고 내려오니 선비가 할멈 방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그 바람에 덕호가 할멈을 내보냈던 것이다.
“어머이! 나…… 참…… 저…… 온정서 말이야…… 할멈을 만났지!
그런데 자꾸 울겠지! 불쌍해!”
“아 글쎄, 네 아비라는 물건짝이 기어코 할멈을 내보냈구나!
내야 할멈이 불쌍해서…… 그냥 두려고 했지…….”
그 순간 옥점 어머니는 외 바구니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는 선비를 흘금
보며, 전부터 마음속에 깊이 자라 오던 질투의 불길이 그의 젖가슴을 따갑게
스치는 것을 느꼈다.
“그것도 다 저년 까닭이지…… 글쎄…….”
할멈과 함께 있으면 어드래서 할멈을 내보냈겠니? 아무래도 네 아비가
수상하니라…… 하고 말이 나오는 것을 그만 꾹 눌러 버렸다.
옥점이는 피아노에 엎디며,
“참, 이상해…….”
하며 젖가슴을 꾹 쥐었다. 옥점 어머니는 신이 나서 들어온다.
그리고 옥점이를 들여다 보았다.
“너두 이상하게 생각했니?”
옥점이는 어머니를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글쎄 늙은 첨지가 뭐겠니? 아무래도 수상하지?”
옥점이는,
“아이 참 죽겠네…… 어머니는 뭘 그래? 뭘 수상하단 말이어? 호호호.”
옥점 어머니는 그제야 딸이 딴말을 한 것을 잘못 알아들은 것으로
눈치채었다. 동시에 말할 수 없는 노염이 치받쳤다.
“넌 그게 무슨 웃음소리냐?”
“어마이는 그게 무슨 말이오?”
옥점 어머니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그만 홱 돌아섰다.
안방에서는 성냥 긋는 소리가 막났다. 뒤미처 불이 빨갛게 켜진다.
옥점 어머니는 안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자리를 펴는 선비를 노려보았다.
“좀 똑바루 펴라!”
선비는 벌써 가슴이 진정할 수 없이 뛰었다. 그리고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동시에 그는 눈 한번 맘놓고 뜨지 못하고 자리를 펴놓은 후에 마루로
나왔다. 옥점이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머리를 숙이고 있다.
자는지 혹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 선비는 아까 옥점이가 불켜는 것이
싫다고 한 것만은 기억하고 건넌방 문 편에 비껴앉아 그의 동정만 살피고
있었다. 불 켜리? 하고 묻고 싶으나 옥점이가 또 뭐라고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고 비웃을 것만 같아서, 그는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내일 그만 경성에나 갈까?”
자는 듯이 엎디어 있던 옥점이는 벌컥 일어나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의자에서 물러나며,
“이애 불 켜! 왜 그러고 앉았니? 이 바보야! 에크! 뭐이 쏟아졌나 봐!”
옥점이는 물바리를 쏟아치고, 이렇게 소리쳤다. 선비는 얼른 뛰어들어가며
불을 켜놨다. 물바리의 물이 전부 쏟아졌다.
“아니, 넌 불을 켤 것이지, 그럭하고 앉아서, 이런 일이 나게
헐 탁이 뭐냐? 아이구! 참 죽겠네! 저런 꼴 보기 싫어서 난 더 속이
상한다니…… 얼른 펄펄 치워 놔라.”
옥점이는 냉큼 안방으로 건너간다. 그리고 모녀가 주거니 받거니,
무슨 말인지 하고 있다. 선비는 걸레로 방을 훔쳐 낸 후에 빈 바리를 들고
할멈 방으로 나왔다. 그가 방 안에 들어서면서야, 아이 내 이 빈 바리는
부엌에 들여다 두자고 한 것을 가지고 왔네…… 이렇게 생각을 하며 도로
문밖으로 나오다가, 에라 내일 아침에 들어가지…… 하고 주저앉았다.
그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너무도 하루 종일 들볶여서
어리뻥뻥할 뿐이고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창문으로 새어드는
달빛을 보며 저 달빛을 따라 이 집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만이
시간이 지날수록 농후해짐을 느꼈다.
“어떻게 하누?”
그는 한숨 섞어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밤마다 저 창문을 바라보며 그 몇 번이나 이 집을 벗어나겠다고
결심하였다가도 막상 나가려고 봇짐을 들고 나서면 갈 곳이 없다.
그래서 그는 할 수 없이 주저앉곤 하였다. 그는 무심히 이제 들고 들어온
빈 바리를 어루만지며 오늘 밤엘랑 아주 단단한 맘을 먹고 나가 볼까?
나갈 때는 이 바리도 가지고 가지…… 할 때 옥점 어머니의 성난 얼굴이
휙 지나친다. 그는 진저리를 치고 바리를 저편으로 밀어놨다.
그러나 그 바리만은 웬일인지 놓고 나가기가 아까웠다. 보다도 섭섭하였다.
동시에 부엌 찬장에 가득히 들어 있는 바리 사발이며 탕기, 대접, 접시,
온갖 그릇들이 그의 눈에 뚜렷이 나타나 보인다. 그가 하루같이 알뜰히도
만지는 그 그릇들! 꽃무늬에 짐승 무늬를 돋쳐 동그랗게 혹은 네모나게,
크고 또는 작게 만든 그 그릇들! 그가 그나마 이 집에 정붙인 곳이 있다면
이 그릇들일 것이다.
그는 다시 바리를 끌어당기어 가슴에 꼭 붙안았다. 그리고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때에 불시, 이 방 안을 떠나고 싶은 맘이 들어 가만히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봇짐을 쥐어 보며…… 가면 어디로 가나? 만일 밖에
나갔다가 덕호보다도 더 무서운 인간을 만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에 봇짐을
슬며시 놓고 물러났다. 그러나 아무리 돌려 생각해도 이 집에서는 오래 있지
못할 것 같았다. 덕호가 들어오기 전에 어디로든지 가야 할 터인데……
하고 선비는 우선 사랑에 덕호가 있는지? 없는지? 알고자 하여 밖으로
나왔다. 사랑에는 불도 켜지 않고 문 위에 달빛만이 환하게 드리웠다.
그는 가볍게 한숨을 몰아쉬며 그의 방으로 도로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온 선비는 몇 번이나 봇짐을 들어 보다가 아무래도 대문 밖에
덕호가 섰는 것 같고, 그가 나가다가 길거리에서라도 만날 것 같아서 그만
봇짐을 놓고 한참이나 망설거리다가 우선 밖에 누가 있지 않나 보려고
문밖을 나섰다. 중문밖을 나서니 유서방의 방에 불이 발갛다.
그는 멈칫 섰다가 대문 밖으로 쫓겨 나오는 듯이 나와 버렸다.
대문 밖을 나선 그는 휘휘 돌아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는 누가 볼세라 하여 바자 곁에
착 붙어 서서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왔다. 그가 나간대야 너 이년 어디
가니…… 하고 붙들 사람조차 없는 것 같은데 그는 이렇게도 나가기가
무서웠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숨어 걷지 않고는 견디지 못 하였다.
한참이나 나오던 그는 멈칫 섰다. 읍으로 들어가는 새로 닦은 신작로가
달빛에 뚜렷이 바라다보였다. 그는 언제나 이 길을 바라볼 때마다,
그가 이 길로 외롭게…… 쓸쓸하게 나가게 될 날이 멀지 않으리라……
하였다. 그렇게 막연하게 생각은 들면서도 마침 나가려고 단단히 맘을 먹고
이 길 위에 올라서면 멀리 바라보이는 컴컴한 솔밭과 솔밭 새로 뿌옇게
사라져 간 이 길 저편에는 덕호보다도 몇 배 더 무서운 사나이가 눈을
부릅뜨고 자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는 전신에 소름이 오싹 끼쳐지며
무의식간에 휙 돌아섰다. 그의 앞에 나타나 보이는 이 용연 동네! 보다도
함석창고를 보아란 듯이 앞세우고 즐비하게 들어앉은 덕호의 집!
다시 그 집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니,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이 온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그는 다시 돌아서며 솔밭길을 바라보고 몇 발걸음을
옮기다가는…… “어찌나? 난! 난 어째!” 이렇게 중얼거리며 저 달을
쳐다보았다. 달은 언제나처럼 저편 하늘가를 향하여 슬슬 달음질쳤다.
그때 그는 얼핏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간난이였다. 그가 덕호에게
유린을 받기 전만 하여도 간난이를 아주 몹쓸 여자로 알았지마는,
그가 한번 그리 된 후에는 웬일인지 꿈에도 간난이를 종종 만나 보고 서로
붙들고 울기까지 하곤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나갈까 말까 하고 망설일
때마다 문득 그의 머리에는 간난이가 떠오르는 것이다.
그가 어디라던가? 가서 돈벌이를 잘한다지…… 편지나 좀 할 줄 알면
해보았으면…… 하고 생각할 때, 그의 발길은 어느덧 간난네 집을 향하여
옮겨졌다. 그는 몇 번이나 간난의 소식을 알고자 달밤이면 이렇게 찾아오곤
하였다. 그러면서도 차마 들어가지는 못하고, 바자 밖으로 어실어실
돌아가다가는 에라 후일 알지,
간난 어머니라도 나를 수상히 보면 어쩌나 하는 불안에 돌아서 오곤 하였다.
그때마다 그는 ‘간난아!’ 이렇게 목이 메어 입 속으로 부르면서,
그와 자기가 어려서 놀던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간난이가 여기 있을 때
어째서 자기는 그의 맘을 이해해 주지 못하였던가? 따라서 다만 한마디라도
그를 붙들고 위로나마 해주지 못하였던가…… 하니, 기가 막혔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되풀이하는 새 벌써 간난네 집까지 왔다.
그는 멈칫 서서 이번에는 꼭 들어가서 그의 소식을 알아 가지고 가리라……
굳게 결심하였다.
그는 안에 누구들이 마을이나 오지 않았는가를 살폈다. 그 담엔 간난이
아버지가 집에 있는가 하고 동정을 보았다. 그러나 안은 괴괴하였다.
그리고 어슴푸레한 불빛만이 문 위에 비치어 있을 뿐이고, 그리고 누구의
기침소리인지 쿨룩쿨룩…… 하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들 다 자는 모양인가.
그만 갔다가 내일 낮에 올까…… 하고 돌아서다가, 에라 들어가 보자하고
안 들어가는 발길을 힘껏 들이몰았다. 신발 소리에 안에서는,
“누구요?”
간난 어머니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선비는 멈칫 서서 주저하다가
방문이 열릴 때에야 하는 수 없이 앞으로 나갔다.
“저여요.”
간난 어머니는 나와서 선비를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난 누구라고…… 네가 어찌 우리집엘 다 왔느냐.”
간난의 어머니는 선비의 손을 붙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이애가 어떻게 우리집엘 왔을까? 혹은 덕호란 그 죽일 놈이 간난이가
서울 가서 돈벌이를 잘한다니까 알아보려고 보내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이
불시에 든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애 역시 간난이와 같은 경우를 당하지
않았나? 하였다. 그래서 간난 어머니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눈치를 살폈다.
“너 본 지가 얼마 만이냐. 어머니 상사 났을 때 보고는 여직 못 봤지……
그새 넌 퍽으나 고와졌다.”
풀기 없이 앉아 있는 선비를 보며 간난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고 선비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선비는 이렇게 들어오기는 하고서도 옥점 어머니나 혹은 덕호가 자기의 뒤를
따라와서 문 밖에 섰는 것 같고, 그리고 자기가 이 집 문밖만 나서면
너 이년, 여기는 뭣 하러 왔느냐고 달려들 것만 같아서 말 한마디 맘놓고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문 편만 흘금흘금 바라보면서 가만히 있다.
간난 어머니는 그의 태도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딸이 서울가기 전에 밤잠을 못 자고 돌아다니다가 들어와서는,
“어마이, 아무래도 덕호가 선비를 얻으랴나 부야! 날 버리고…….”
이렇게 한숨 섞어 하던 말이 방금 귀에 들리는 듯하며, 이 계집애가 역시
우리 간난이와 같이 배척을 받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시간이 오래질수록
차츰 농후해졌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너 이년 우리 간난의 맘을 그렇게
아프게 하더니 잘되었다! 하였다. 그러나 반면에 선비의 풀기 없는 것을
바라볼 때 흡사히 자기 딸이 앉아 있는 것 같고, 그래서 그의 눈에는 간난의
모양이 뚜렷이 보이는 듯하였다. 한참 후에 선비는,
“어머이, 지금 간난이가 어디 가 있수?”
“왜? 그것은 알아 뭘 하랴고?”
덕호가 보내어 묻는 것만 같아서 간난 어머니는 이렇게 쏘는 듯이
반문하였다. 선비는 다시 물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또다시
잠잠하고 고름 끝만 돌돌 말고 있었다. 간난 어머니는,
“글쎄, 그애 간 곳은 알아 뭘 하겠다디? 남의 딸의 일생을 망쳐 놓고,
또 무엇이 부족해서 그런다더냐?”
간난 어머니는 나오는 줄 모르게 이렇게 지껄였다. 선비는 볼이나 몹시
쥐어박힌 것처럼 얼얼한 것을 느끼며 안 올 데를 왔다…… 하는 후회까지
일었다. 그리고 자기의 일생이란 것도 덕호로 인하여 망치게 되었다는 것을
명확히 깨달아졌다. 동시에 참을 수 없는 분이 울컥 내밀치며, 그나마
간난이는 부모라도 있으니 저렇게 분해서 그러지마는 자기의 배후에는
저렇게 분해해 줄 사람조차 없는 것을 또한 발견하였다.
그는 얼결에 눈물 섞어,
“어머니!”
하고 불렀다. 간난 어머니는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선비를 뚫어지도록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하려누…… 하였다.
선비는 얼결에 이렇게 불러 놓고 보니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자기가 부르는
그 어머니가 아닌 것 같고, 어찌 보면 자기가 부른 어머니 같아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바람에 꺼질 듯
꺼질 듯하는 등불로 시선을 옮겨 버렸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샘솟듯 하였다. 간난 어머니는 이 순간 저것이 확실히
간난이와 같은 경우를 당하였다는 것을 무언중에 깨달았다. 동시에 저것의
맘이 오죽하랴! 아 죽일 놈, 저놈이 내 생전에 벼락을 맞지 않으려나……
하느님은 참 무심하다! 하고 그는 맘속으로 덕호를 눈앞에 그리며
이렇게 부르짖었다.
“선비야! 너 왜 그렇게 덜 좋아하니…….”
말끝에 간난 어머니는 목이 메어 머리를 숙이며 치맛귀를 당겨 눈물을
씻었다. 선비는 간난 어머니가 우는 것을 보니 참을 수 없이 울음이 응응
쓸어 나오는 것을 입술을 꼭 깨물며,
“어머니 간, 간…… 간난이가…… 어디 있수?”
“너두 그애 있는 데 가보련?”
“네.”
간난 어머니는 일어나더니 농문을 열고 편지봉투를 꺼내 가지고
선비 앞으로 왔다.
“서울, 아이 어데라던가? 난 늘 들으면서도 모른다니,
네 이것 봐라. 여기에는 그애 있는 곳이 쓰여 있다고 하더라……
죽일 놈 그놈의 원수를 어떻게 해야 갚겠니. 너의 어머니가 살아 계셨더면
오작이나 하시겠니! 아이구 가슴 아파라!”
간난 어머니는 가슴을 툭툭 친다. 선비는 봉투를 쥐며 간난 어머니가 덕호와
자기 새를 눈치챈 것을 느끼자, 덕호에 대한 증오심과 함께 부끄러운
생각이 그의 전신을 잡아 흔드는 듯하였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쥐고
들여다보니 워낙 불도 희미하여 잘 보이지 않지마는 그가 국문이나 겨우
아는 터라 이런 한문으로 쓴 것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봉투를 쥔 채
일어났다. 일어나는 선비를 바라본 간난 어머니는,
“그 봉투는 이전 다 보았겠지…… 이리 다오.”
선비는 서서 한참이나 주저하더니,
“어머니 이걸 나를 주시오.”
“못 한다! 만일에 덕호가 보면 재미없는 것 아니냐?”
“어머니두 내가 뭐 그렇게 하겠기…… 그래요.”
“그럼 꼭 간수했다가 가져오너라. 부디 그놈 보여서는 못쓴다, 응 이애.”
문밖을 나서는 선비의 뒤를 따라나오는 간난 어머니는 재삼 부탁하였다.
선비는 봉투를 가슴속에 집어넣다가 덕호의 손이 그의 젖가슴을 어루만지는
생각이 얼핏 들자 봉투를 꺼내 들었다. 동시에 이 봉투 하나도 감출 곳이
없이 자신의 비밀을 여지없이 그 늙은 덕호에게 빼앗긴 생각을 하니 금방
푹 엎뎌 죽고 싶도록 안타까웠다.
그는 간난 어머니를 작별하고 역시 아까와 같이 바자와 바자 곁으로 붙어
서서 덕호의 집까지 왔다. 이 봉투는 어떻게 할까? 한참이나 주저하던 그는
버선 속에다 쓸어 넣고 나서 대문을 가만히 열었다. 이젠 유서방의
방문까지도 컴컴하였다. 그리고 처마끝 그림자가 뚜렷이 드리웠다.
그리고 사랑은 여전하다. 그는 가슴을 설레며 덕호가 나 없는 새 방에
들어와 있지나 않나? 하는 불안으로 중대문까지 와서는 한참이나
주저하였다. 그러나 사방이 죽은 듯이 고요하므로 그는 소리 없이 대문을
닫고 들어와서 그의 방문을 열었다. 맞받아 나오는 듯한 이 어두움! 그는
잠깐 주저하며 덕호가 술이 취하여 저 안에 누웠는 것만 같았다.
그는 휙 돌아서 어디로든지 달아나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버선 갈피에 들어 있는 그의 유일한 비밀을 다시 한번
생각하였다.
마침내 방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알자 선비는 들어갔다. 그리고 오늘은
이 문을 열어 주지 않으리라 결심을 하며 문을 힘껏 잡아당겨 걸고 자리도
펴지 않은 채 누워 버렸다. 누우니 일만 가지 생각이 뒤끓어 마치 환등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저 문 밖에서 덕호가 문을 잡아당기는 것만 같았다.
한참 후에 참말 문이 바짝하였다. 에그 또 왔구나…… 하고 눈을 꼭 감아
버렸다. 그러나 가슴만은 못 견디게 벌렁거렸다. 또다시 바짝바짝하였다.
덕호가 전날을 미루어서 자기가 자지 않을 것을 뻔히 알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문을 안 열어 주면 덕호가 자기를 미워 할것만은 사실이나
상에 쫓겨나기밖에는 더 하겠니? 하고 가만히 있었다.
문은 점점 더 바짝거렸다. 그러다 어떻게나 하는지 짝짝 하는 문창지 찢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고리가 절걱 벗겨진다. 선비는 그냥 누워 자는 체하였다.
덕호는 씩씩하며 문을 걸고 선비의 곁으로 오
더니 발길로 그의 엉덩이를 내려밟았다.
“이년의 계집애, 왜 문을 안 열어. 건방진 놈의 계집애,
저를 예뻐하니까…… 아주 버틴단 말이어…… 어디 보자!”
선비는 이제야 깨어나는 듯이 부시시 일어앉았다.
“이제 문 열라는 것 들었지?”
“못 들었에요.”
“이놈의 계집애.”
선비를 끌어안는 덕호에게서, 항상 그에게서 많이 맡을 수 있는
독특한 냄새가 후끈 끼친다. 선비는 덕호의 품에 오래 안겨 있으면 모르나,
이렇게 처음 안기게 될 때마다 이러한 강한 냄새를 느끼곤 하였다.
그는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그의 품을 벗어나려고 몸을 꼬며 내려앉으려
하였다. 덕호는 더욱 쓸어안았다.
“이년, 너 내가 싫은 모양이지…… 딴 계집 얻으리? 응,
이애, 말을 좀 들어 보자.”
덕호는 씩씩하며 선비의 귀에다 입을 대고 이렇게 수군거렸다.
선비는 소리치게 간지러움을 느끼며 물러앉았다.
“너 이년, 딴 사내가 있는 게로구나…… 그렇지 않으면 그럴 수야 있나?
계집이란 것이 사내가 들어오도록 잠을 자지 않다가 사내가 들어오는
것을 맞받아들여야 허는 게고, 또는 아양도 떨어서 사내의 환심을 사도록
하여야 허는 게지…… 그게 뭐냐. 잔뜩 자빠져서 자고 있어?
에이 고약한 년 같으니, 내 저를 예뻐하니까 버릇이
사나워졌단 말이어…… 너 이달 월경은 어찌 되었냐?”
선비는 옥점 어머니가 밖에 섰는 것만 같아서 그의 조그만 가슴이
달랑달랑하였다. 그리고 덕호의 지껄이는 말이 하나도 귀에 거치지 않았다.
언제나 선비는 덕호가 들어올 때마다 이러하였다.
“이애 대답을 해.”
덕호는 선비의 배를 어루만진다. 선비는 대답을 안 하려니 자꾸 여러 말을
늘어놓는 것이 싫어서,
“아직 안 나…….”
“음 이번에는 무슨 수가 있나 부다. 뭐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꼭꼭 말해.
감추어 놓고 우물쭈물 말도 하지 않고 있지 말구…… 뭐 먹고 싶으냐?”
선비 볼에다 입술을 들이대고 슬슬 핥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선비는 구역이 금방 나오는 것을 참으며 내려앉았다.
“갈비나 한 짝 떠오랴?”
“아이 참, 듣기 싫어요.”
“어…… 그년 듣기 싫다고만 하면 되나.
이 속의 내 아들의 생각을 해야지.”
덕호는 선비를 껴안으며 진저리가 나도록 선비의 귓가를 빨았다.
그리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 선비에게 들려 주었다.
“이것 가지고 너 쓰고 싶은 데 써라.
그리고 뭐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날 보고 말해, 응.”
선비는 돈을 쥐며 버선 갈피의 봉투를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인지는 모르나, 이것을 여비로 간난이한테 가야지……
하는 맘을 단단히 먹었다.
“어서 들어가세요, 어머이가 나와요.”
“나오면 어떠냐? 네가 이전 제일이야. 이 속에 내 아들이 있는데……
그까짓 년이 뭐기 그러냐. 걱정 없다. 너 이제 두 달만 지나면 완전히
알 것 아니냐. 그러면 저년은 내보내구…… 너를 아주 내 정실로 삼겠다.
알았니?”
“가만가만히 하세요. 누가 듣겠어요.”
“들어도 일이 없어. 네가 이전 이 집안에서는 제일이야. 그런데 이애!
애가 배면 신 것이 먹구 싶다는데…… 넌 그렇지 않으냐?”
선비는 아이에 미쳐 덤비는 덕호가 한층더 밉살스러웠다.
반면에 이때까지 월경이 나오지 않는 것이 덕호의 추측과 같이 참말 임신이
아닌가? 하였다. 따라서 차라리 이렇게 몸을 더럽힌 바에는 아들이라도
하나 낳아서 이 집안의 세력을 모두 쥐었으면…… 하는 생각도,
이렇게 덕호와 마주앉을 때마다 어느 구석엔가 모르게 자라 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그는 마침내 구역질을 욱 하고 하였다.
덕호는 놀라면서 선비의 입술 밑에 손을 대었다. 선비는 머리가 지끈
아프고, 그 손끝에서 한층더 그 내가 나는 것을 느끼자 머리를 돌렸다.
“이애 너 정말 임신이구나. 구역질이 언제부터 나느냐?”
선비는 그의 무릎에서 물러앉으며,
“어서 들어가세요. 난 몸이 아주 괴로우니……
제발 오늘만은 어서 들어가세요.”
“음, 몸이 괴로워…… 필시 잉태중이다. 애 배었다! 밥맛이 없지?
과실이나 좀 사다 주랴?”
“싫어요. 어서 들어만 가주세요.”
밖에서 옥점 어머니가 이 말을 다 엿듣는 것만 같았던 것이다.
“오냐, 그러면 내 들어갈 것이니 이 배를 잘 간수해라. 그러구 내일은
갈비를 떠올 터이니…… 배껏 먹어! 응? 이 귀여운 년아!
넌 내 아들 배었지?”
덕호는 선비를 힘껏 껴안아 보고 나서 밖으로 나갔다. 선비는 가볍게 한숨을
몰아쉬며, 손에 쥔 지화가 얼마짜리인지 몰라 애가 쓰였다. 밖으로 나간
덕호는 이제야 큰대문 소리를 찌꺽 내며 쿵쿵 하고 중대문을 들어선다.
언제나 그가 이렇게 선비의 방에 들어왔던 날은 소리없이 밖으로 나가서
저 모양을 하는 것이다. 으흠 하는 덕호의 기침소리와 함께 중대문 거는
소리가 떨그렁 하고 난다. 그러고는 안방을 향하여 충충 들어가는
신발 소리가 뚜렷이 들렸다. 그때 선비는 웬일인지 가벼운 한숨과 함께
질투 비슷한 감정을 확실히 느꼈다. 선비는 안방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를
들으면서야, 다시 그의 손에 지화가 들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얼마짜리인지 알고 싶은 궁금증에 등 아래를 어루만져 성냥을 가만히
그어 보았다. 성냥불에 비치는 지화, 그것은 똑똑히는 몰라도
옥점의 지갑에서 늘 볼 수 있는 십 원짜리 같았다. 선비는 불꽃만 남기고
꺼지는 불을 바라보며, 이것과 어머님 살아 계실 때 준 것과 합하면,
십 원하고 오 원이나? 그럼 얼마가 되는 셈일까, 백 냥하고 또 쉰냥하고……
하니까…… 일백쉰 냥이나? 그러면 항용 부르기는 십오 원이라지?
그는 난생에 처음으로 십오 원을 불러 보았다. 이걸 가지면 서울을 갈지
몰라? 그는 지화를 꼭 쥐었다. 그리고 아는 듯 모르는 듯이 그는 안방으로
귀를 기울였다. 어떤 불쾌한 생각과 아울러 자기도 모를 감정에 떠돌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여름철이 잡힌 그 어느 날 저녁이었다.
하루 종일 흐려 있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선비는 부엌으로 나왔다.\
옥점 어머니는 요새 확실하게 눈치를 챈 모양인지 어젯밤에도 자지 않고
덕호와 밤새도록 싸웠다. 그리고 아침도 안 먹고 점심도 면 소사를 시켜서
국수를 사다 먹고서는 사뭇 앓는 사람 모양으로 머리를 동이고 누워 있었다.
선비는 그들과 같이 어젯밤도 고스란히 새웠으며 지금까지도 부엌문으로
바라보이는 저 하늘과 같이 그의 맘은 캄캄하게 흐리고 걷잡을 수 없는
불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쌀을 일어서 솥에 해 안치고
나서는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몰라 한참이나 왔다갔다하다가 광에 가서 쌀을
퍼내 오고 생각을 하니 금방 솥에 쌀 일어해 안친 것을 깨달으며 그는
우뚝 섰다. 내가 왜 이래…… 그는 시렁을 붙잡고 좀 마음을 진정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쓸데없었다. 옥점 어머니가 그 일을 알았어!
글쎄 모를 리가 있나…… 아니야 아직도 몰랐어! 알았으면야 내가 견디어
낼 수가 있나? 어젯밤으로 당장 쫓겨났지…… 무엇이 자끈 하므로 그는
깜짝 놀라 굽어보았다. 그의 손에 든 쌀 담은 바가지가 내려지면서,
그 아래 놓아 둔 개숫물 자배기가 깨어졌다. 물이 와르르 흘러지며,
바가지 역시 깨어져서 쌀이 물과 같이 흘러내린다. 그는 숨이 차서 쌀을
주워 모았다. 신발 소리가 쿵쿵 났다.
“저년이 무슨 지랄을 저리 벌여! 이년아!”
머리를 갈래갈래 헤친 옥점 어머니가 마루로부터 뛰어내려와서
선비의 머리끄덩이를 움켜 쥐었다.
“이애 이 계집애야, 우리집에 있기 싫거든 나가지 그릇은 왜 짓모고 있어!
이 주리를 틀 년의 계집애, 나가라!”
무슨 흠을 잡지 못해서 애쓰던 차라 옥점 어머니는 선비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소리가 나도록 쥐어뜯었다. 선비는 반항하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얼굴이 새까맣게 질려 가지고 그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옥점이가 눈이 둥그래서 나왔다.
“왜들 이래…… 아이거…… 저 꼴…… 호호호호.”
선비의 옷이 쏟아진 물에 적시우고 흙에 이겨진 것을 보매 옥점이는
이렇게 웃었다. 그리고 그날그날에 아무 새로운 일이 없이 밥 먹고 피아노
치고 잠자고 이렇게 단순하게 되풀이하던 그로서는 이렇게 싸우는 일도
한 새로운 일이므로 일어나는 흥분과 함께 통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막연하나마 신철이가 자기보다 선비를 더 생각하였거니 하는
질투심에서 항상 밉게 보던 선비라 그도 달려가서 어디든지 쥐어박고
싶은 충동까지 일어났다. 옥점 어머니는 흑흑 하면서 양과 같이 아무 반항이
없는 선비를 눅쳤다 닥쳤다 하면서 부엌바닥에 굴렸다. 선비는 처음에는
아프기도 하고 쓰리기도 하였지마는 시간이 오랠수록 의식이 몽롱해지며
아픈 것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리고 이 매맞은 끝에 그만 죽어 버렸으면
이 부끄럼, 이 고통을 면할 수 있으려니…… 보다도
무서운 이 집을 벗어날 수가 있으려니……
생각하니 오히려 이런 매를 맞기 전보다 맘의 고통은 좀 덜리는 것 같았다.
옥점 어머니가 기운이 진하여 물러나며 머리를 매만진다.
“이년 당장에 나가라. 내 너를 친딸과 같이 길렀지…… 너두 생각이 있으면
알겠구나. 그런데 이년…… 내가 가만히 있어도 너의 연놈들의 일을
다 알아. 응 이년, 이 죽일 년의 계집애.”
“어머니 남부끄럽소! 설마한들 그따위 짓이야 아버지가 했겠소?
그러나 저 계집애 맘으로는 그렇지 않을 게야…… 그때도 신철이와 밤에
마주서서 어쩌구 어쩌구…… 하는 것을 잡았다니…… 그때 신철이놈은
저 계집애와 무슨 관계가 있었는지 몰라. 저년이 겉으로는 바보같이
가만히 있으나 속으로는 한몫 더해…….”
옥점이는 어느 때나 신철이를 잊지 못하는 반면에 그만큼 더 미웠던 것이다.
그래서 별별 추측도 다 해보곤 하였던 것이다. 옥점이는 달려들어 피가
흐르는 듯한 선비의 볼을 철썩 후려쳤다. 선비는 부엌 구석에 박히며
어서 죽어지면 하였다. 그때 덕호가 들어왔다.
“왜들 이러냐?”
옥점이는 아버지를 돌아보며,
“아버지 내 입때 말 안 했지만…… 저 계집애와 신철이와 아마 관계가
있었나 봐?”
“뭐? 신철이와…….”
덕호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네가 꼭 아냐?”
“알구말구요. 달밤인데 저 계집애와 신철이가 마주서서 무슨 얘기를
재미나게 하더라니요. 그리고 서울 가서도 신철이가 저놈의 계집애를
올려오지 못해서 한동안 애쓰지 않았수?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저 계집애와 상관이 되어 가지고
그랜 것을 내가 몰랐다니.”
옥점이는 다시 돌아섰다.
“너 참말 신철이와 관계되었지?
말 안 하면 이년의 계집애 죽이고 말겠다!”
옥점이는 대들었다. 덕호는 눈을 무섭게 뜨고 선비를 노려보았다.
무엇보다도 간봄에 어린애를 밴 줄 알고 가지각색으로 사다 먹인 생각을
하니 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선비는 덕호를 보니 이때껏 불이 붙는 듯하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나마 덕호만이야 그의 억울함을 알아주려니
하였던 것이다. 덕호는 선비 앞으로 조금 다가섰다.
“네 정말 신철이와 관계가 있었냐?……
저 계집애를 둬두기 때문에 애매한 헌 멍덕만 나까지 쓰게 되었단
말이어…… 하, 거 정 자네 나를 의심하지마는 쟤보고 물어 보라구.
아 신철이 녀석과 벌써부터 관계가 있어 가지고 서울 가랴고 애쓰는
계집애가 내 말을 들을까?
응 이 사람아, 사람을 의심해도 분수가 있지…… 응, 이 사람?
오늘 뭐 좀 먹어 봤나? 아까
면소사 국수 가져온 것 먹어 봤나?”
덕호는 선비와 마주섰기가 거북해서 옥점 어머니의 손을 끌고 방으로
들어간다. 옥점이는,
“이 계집애 당장 나가라. 우리집에 이전 못 있어.”
소리를 치고 나서 그들의 뒤를 따랐다. 선비는 나가야 할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나마 믿었던 덕호까지도 저런 시뻘건 거짓말을 하는 것을 들으니,
이젠 다시는 선비를 가까이하지 않고 내보내려는 심산인 것을 깨달았다.
잘되었다! 선비는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그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악이 치받쳐서 부들부들 떨릴 뿐이지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그는 봇짐 위에 칵 엎어지며 어서 밤 되기를 기다렸다.
그날 밤! 선비는 봇짐을 옆에 끼고 덕호의 집을 벗어났다.
사방은 먹칠을 한 듯이 캄캄하였다. 그리고 낮에부터 쏟아질 줄 알았던
비는 쏟아지지 않으나 바람만 슬슬 불기 시작하였다. 선비는 읍으로 가는
신작로에 올라섰다. 선들선들한 바람이 그의 타는 볼 위에 후끈후끈
부딪치고 지나친다.
저편 동쪽 하늘에는 번갯불이 번쩍 일어서 한참이나 산과 산을 발갛게
비추어 주었다. 그때마다 우르르…… 타는 소리가 들린다.
선비는 전 같으면 이런 것들이 무서우련만 이 순간 그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는 죽음으로써 모든 것을 당하리라고 최후의 결심을 굳게
하였던 것이다.
길가 좌우로 빽빽히 들어선 수숫대며 좃대는 바람결을 따라 시르르 솨르르
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는 물결처럼 멀리 흩어졌다가는 또다시 밀려오곤
하였다. 그 물결을 타고 넘실넘실 넘어오는 듯한 피아노 소리! 뚱뚱! 어찌
들으면 곁에서 듣는 것 같고 또다시 들으면 꿈속에서 듣는 것처럼
희미하였다. 그러나 그 소리는 확실히 선비의 가슴 복판을 찔러 주었다.
선비는 눈앞에 옥점의 피아노 치는 것을 그리며 귀를 막았다.
그때 낑낑 하는 소리가 나며 선비의 앞을 막아 서는 무엇이 있으므로
선비는 놀라서 물러섰다. 다음 순간 그것은 자기가 항상 밥을 주던
검둥이임을 알았을 때 선비는 와락 검둥이를 쓸어안으며 머리털 끝까지
치받쳤던 악이 울음으로 변하여 쓸어 나왔다. 검둥이는 꼬리로 선비의
얼굴을 툭툭 치며 한층더 낑낑거렸다. 그리고 주둥이로 그의 볼을 핥았다.
“검둥아!”
선비는 검둥이의 목에다 볼을 대며 길에 펄썩 주저앉았다. 멀리 마을에서
깜박여 오는 저불빛! 붉은 실타래같이 갈가리 찢기어 그의 눈에 비치어진다.
그 순간 그는 그 불빛이 그의 어머니를 숨지어 놓고 바라보던 그 등불과
흡사함을 느꼈다.
“어머니!”
그는 무의식간에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묻힌 산 편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 때 얼핏 떠오른 것은 소태 뿌리였다. 뒤미처 눈이
둥그렇게 큰 첫째의 눈방울이 뚜렷이 떠올랐다. 그는 머리를 푹 숙였다.
그때의 일이 번개같이 그의 머리를 싸고도는 것이다. 덕호가 주는 돈은
이불 속에 넣고 첫째가 캐온 소태나무 뿌리는 윗방 구석에 내어던지고……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검둥아! 너 나하고 같이 가련?”
번갯불이 환하게 일어났다 꺼진다.
*******
“이 사람아, 잠을 자도 분수가 있지, 이게 무슨 잠이람.”
신철이는 깜짝 놀라 깨었다. 벌써 동무들은 일어나서 세수까지 한 모양인지
이맛가가 반들반들 하였다. 기호는 신철이를 들여다보았다.
“오늘 조반 할 것이 없네그리.
어서 자네 일어나서 좀 변통하여야겠네…….”
“가만히 있어. 나 조금만 더 자구.”
“어서 일어나게. 해가 중낮이나 되었네. 아침은 못 먹는다더라도 점심이나
저녁이나 그 어느 한 끼는 먹어야지…… 긴긴 해에 이렇게 굶고야
사는 수가 있나? 허허, 참.”
신철이는 벌떡 일어났다. 햇빛이 산뜻하게 방 가운데 떨어졌다.
“이거 물어 살겠기…… 어데.”
신철이는 내의를 훌떡 벗었다. 그리고 보리알 같은 이를 잡아 내기
시작하였다. 일포가 문곁에 바싹 붙어 앉아 그나마 돈푼이나 있을 때
사다 먹고 내친 담배 꼬투리를 붙여서 한 모금 쑥 빨았다. 콧구멍으로
내뿜는 연기야말로 제법 길게 올라간다. 그리고 건넌방을 흘금흘금 내다보는
것을 보아 건넌방 미인이 오늘은 집에 있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일포는 언제나 저렇게 뚱뚱한 채 살폭이 좋았다. 시재 먹을 것이 없고
땔 것이 없어도 그는 한 번도 초조한 빛을 남에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는 아침만 되면 일어나서 저렇게 문 곁에 앉아 가지고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코 안을 우벼 내고 발새를 우벼 내어 그 손을 코에 대고 흥흥 맡아
보면서 건넌방을 흘금흘금 내다보는 것이다.
신철이는 이 모든 것을 못 본체하고 곁눈질도 해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기호만은 일포가 발새를 우벼서 흥흥 하고 맡아 볼 때마다,
“이 사람아! 저…… 또 저 짓이야. 그 왜 사람이 그렇게 고리타분해!
그래 맡아 보니 맛이 어떤가?”
일포는 못 들은 체하고 있다가 여전히 또 우벼 내서 맡아 보곤 하였다.
그러고는 손끝은 으레 양말짝에 부벼치는 것이 그의 늘 하는 버릇이다.
오늘은 다행히 담배 꼬투리나마 있으니 그것을 빨면서 발새를 우벼 내지
않았다.
“오늘은 자네 좀 구해 보지 못하겠나?”
기호는 일포를 바라보았다. 일포는 역시 못 들은 체하고 열심으로
담배 꼬투리만 얻는다. 그가 흥이 나서 지껄이는 것이란
건넌방 미인 이야기와 누구의 험담밖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쌀이나 나무를 구해 오라든지 발새와 콧구멍을 우벼 낸다고 기호가
벌컥 뒤집고 웃어도 그저 못 들은 체하였다. 일포는 담배 꼬투리를 얻어
가지고 빙긋이 웃었다. 신철이는 이를 다 잡고 나서 내의를 입었다.
그리고 무엇이든지 전당 잡힐 것이 없는가 하고 두루두루 생각해 보았다.
그나마 그의 전재산이다시피 한 책권까지도 다 갖다 잡혔으니 이제야말로
세 몸뚱이밖에 남은 것이 없었다. 신철이는 밤송이 동무한테나 가서
또 물어 볼까? 하였다. 요새 밤송이 동무는 어떤 신문사의 배달부로
들어갔기 때문에 돈푼이나 좋이 있었다.
그래서 신철이는 늘 그에게서 십 전, 오 전 얻어서는 빵이나 쌀을 사오곤
하였던 것이다.
신철이는 세 사람의 출입옷으로 정해 있는 그의 양복을 입고 나왔다.
“꼭 구해 가지고 오게…… 정 할 수 없거든 자네네 댁에 가서라도
좀 변통해 가지고 오게나. 배고픈 데야 무슨 염치를 보겠나. 허허……
그렇지 않은가?”
“암! 그렇지.”
이 말에는 비위가 당기는지 일포는 이렇게 동을 단다. 신철이는 빙긋이
웃으며 대문 밖을 나섰다. 그는 일포의 둥근 얼굴과 건넌방으로 추파를
건네는 그의 긴 눈을 눈앞에 그리며, 일편으로는 그 배짱 실하게 구는
모양이 밉살스럽기도 하나, 콧구멍과 발가락을 우벼 내서 맡아 보곤 하는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혼자 픽 나왔다. 일포야말로 전락된 인텔리의 전형적
인물과 같이 생각되었던 것이다. 자신도 인텔리라면 인텔리층으로 꼽힐
것이나 그러나 요새 신철이는 인텔리에 대한 싫증을 극도로 느꼈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일포가 발새를 우벼 맡아 보는 듯한,
그러한 고리타분한 냄새를 피우는 것이 인텔리의 특징인 듯싶었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바라보니 벌써 풀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와와
떠들고 있다.
그리고 햇빛에 번쩍이는 물 위로 헤엄쳐 돌아가는 빨간 모자, 파란 모자가
그의 눈에 선뜻 띄었다. 그는 작년 여름에 옥점이와 같이 그 넓은 서해에서
뛰놀던 생각이 얼핏 들었다. 따라서 용연 동네가 떠오르며 선비의
고운 자태가 눈앞에 보이는 듯하였다.
어느덧 신철이는 뜨거운 햇볕을 잔등에 느끼고 그의 배에서는 꼬르륵……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천천히 삼청동 비탈길을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거기서 구하지 못하면 또 어디 가서 구한담…… 너무 돌아가면서 몇십 전씩
취해 놔서 이젠 달라고 할 염치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이르니까, 배가 덜 고파서 그렇지 한 결만 지나면
그때야말로 아무 동무에게나 가서 다리아랫소리를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신철이는 관철동 밤송이 동무의 집까지 왔다.
그러나 마침 동무는 금방 나갔다고 하였다.
그는 입맛을 쩍쩍 다시고 돌아나왔다. 그리고 종로까지 나와서는 우두커니
섰다. 동소문을 향하여 닫는 버스가 먼지를 뿌옇게 피우며 지나친다.
그는 집이 그리웠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나 미루꾸 주…… 하고 손 내밀던
영철이가 그리웠다. 보다도 빨간 고추장에 두부와 고기를 넣어 끓여서
마늘 양념을 푹 쳐서 상에 놓아 주던 그 두부찌개가 그리웠다.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며 어정어정 걸었다. 배는 현저히 고파 왔다.
이놈이 어델 갔을까? 갈 만한 곳을 짐작해 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조간은 벌써 배달했을 터이고 석간은 아직 멀었고……
그놈이 어딜 갔어?…… 그는 이렇게 생각을 해가며 종로를 한 바퀴 돌아
황금정으로 향하였다. 윙 달려오고 달려가는 전차는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수없는 버스며 택시가 서로 경쟁을 하며 달려오고 달려간다.
신철이는 목구멍이 알알하도록 먼지를 먹으며 아스팔트 위를 힘없이 걸었다.
차츰 햇볕은 강하게 내리쬔다. 신철이는 아직도 겨울 중절모를 그냥 쓰고
있었다. 그는 누가 볼세라…… 하여, 더구나 아버지나 의모라도 나왔다가
만날세라 하여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발끝만 굽어보며 걸었다.
학교 갈 때마다 닦던 이 구두도 약이 없어서 닦아 본 지가 언제인지 몰랐다.
코끝이 희뜩희뜩 벗겨지고 먼지가 부옇게 오른 구두는 말쑥하게 닦은 때보다
발이 달고 한층더 무거웠다.
“이 사람아, 오늘 얼마나 팔었는가?”
“오늘은 밑천이나 건졌지…… 자네는?”
“나두 역시 한모양일세.”
신철이는 머리를 돌렸다. 그들은 지게를 지고 갈서서 가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그때 신철이는 나도 저 지게꾼이나 해볼까…… 그래서 뭐든지
지고 다니면서 팔지. 지금 흔한 배추 같은 것이나, 기타 아무것이라도……
이렇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차마 지게를 지고 이 거리를 저들과 같이
활보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왜? 무엇 때문에? 그것은 역시 일포가
발새와 콧구멍을 쑤시고 앉아 고스란히 굶어 있을지언정 선뜻 나가서
하다못해 저런 지게꾼 노릇이라도 못 하고 있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그런 고리타분한 까닭이라고 막연히 생각되었다.
여기 일은 딴 동무에게 맡기고 난 시골 같은 데로 전임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땅도 파보고 농부들과 함께 아무것이라도 배워 가면서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서울에서만은 차마 그런 일을 할 것 같지 않았다.
자기 낯을 아는 사람이 많고, 더구나 아버지, 의모가 있고,
아는 여자가 많고…… 아스팔트 위에 그들의 비웃는 눈매가 또렷또렷이
나타나 보인다.
어느덧 신철이는 발길을 멈추고 우뚝 섰다. 흘금 쳐다보니 미쓰고시였다.
저기나 또 들어가 보자…… 하고 몇 발걸음 옮겨 놀 때 저 안에 혹은
나 아는 사람들이 무엇을 사러 오지나 않았는지? 하며 주저하였다.
그는 언제나 여기 올 때마다 그러한 생각을 하며 그의 초라한 모양을 다시
한번 굽어보곤 하였다.
미쓰고시를 향하여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은 모두가 말쑥한 신사고 숙녀였다.
자신과 같이 이렇게 초라한 양복에 중절모를 아직까지 쓴 사람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모두가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여름 모자였다.
그리고 여름 양복을 시원스레 입었다. 그는 다시 한번 주저하였다.
그러나 신철이는 그나마 여기 아니면 곤한 다리를 쉬일 곳조차도 없었다.
남산에나 가야 할 터이니 그곳까지 가자면 덥고, 우선 여기 들어가서 쉬어
가지고 가리라…… 하고 발길을 옮겼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미쓰고시 상층까지 올라온 신철이는 의자에 걸어앉아
멍하니 분수를 바라보았다. 곁의 의자에 앉은 어떤 남녀는 빙수를 청하여
놓고 먹으면서 무슨 이야기를 재미나게 하다가는 호호 웃었다. 그때마다
신철이는 그들이 자기의 초라한 모양을 바라보고 웃는 듯하여 한참이나
그들을 노려보다가 휙 돌아앉았다. 그리고 그는 도리어 그들을 대하여
떳떳한 길을 밟지 못하고 있는 인간들아! 하고 소리쳐 주고 싶은 생각을
억지로 해보았다.
곁에서 빙수를 마시며 호호…… 하하…… 하는 두 젊은 남녀의 웃음소리에
비위가 상해서 신철이는 그만 돌아앉았으나 그들의 시선이 그의 잔등과
뒷덜미를 향하여 여지없이 쏟아지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햇볕이
못 견디게 내리쪼인다. 그는 포켓에서 수건을 내어 이마를 씻었다.
수건 역시 이것이 마지막이다. 집에서 나올 때 사오 개 가지고 나왔지마는
동무들에게 하나하나 빼앗기고 그나마 해어진 것 이것이 있을 뿐이다.
그는 곁에서 빙수를 먹는 여자의 음성이 차츰 옥점의 그 음성과 흡사하였다.
옥점이는 어디로 출가했는가? 아직도 나를 생각하고 있는가? 이런 생각이
내리쬐는 햇볕과 같이 강하게 일어나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픽 웃어 버렸다. 그리고 그 생각을 묻어 버리렸으나 웬일인지 그때가
그리운 듯하였다. 아니! 확실히 그리워졌다.
그나마 그때가 자신에게 있어서는 얼마나 행복스러운 시절이었는지 몰랐다.
그는 그만 벌떡 일어났다. 그 생각이 마치 일포가 콧구멍을 우벼 내고
발가락을 우벼 내는 것보다도 더 고리타분하게 생각되었던 때문이다.
그는 달아가고 달아오는 전차―--- 또 전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끊일 새 없이 뒤를 이어 오는 택시며 또 버스를 눈이 아물아물하도록
바라보았다. 따라서 그가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자기가 이 높은 데서
그것들을 아득하게 바라보는 것과 같이 전차며 택시며 버스가 그렇게도
자기와 거리가 멀어진 것을 그는 가슴이 뜨겁게 깨달았다. 생각해 보아도
저 전차를 타고 한강에 나가 본 것이 작년 여름에 옥점이와 함께 나갔던
기억밖에는 찾아낼 수가 없었다. 물론 그가 그 후에도 몇 번이나 전차를
탔을 것만은 분명한데 도무지 그 기억은 몽롱하고 오직 옥점이와 같이
전차를 타고 혹은 택시를 타고 드라이브하던 기억만이 뚜렷하였다.
그는 불쾌하였다. 빙수 먹는 계집으로 인하여 이런 불쾌한, 아니 비열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신철이는 어정어정 걸으며
어젯저녁에 밤송이 동무에게서 얻어 두었던 신문을 포켓에서 꺼내 들었다.
그는 신문을 펴들자 정치면부터 보기 시작하였다.
그는 뚜렷이 드러난 미다시(제목)를 죽 훑어보며 약간 양미간을 찡그렸다.
점점 더 못견디게 배가 고파 오고 그리고 골머리가 띵하니 아팠던 것이다.
그는 눈결에 보니 남녀는 저편 화초 진열장으로 들어간다.
그는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사이렌이 난 것을 짐작하여 아마 오후 세시나 두시 반은 넉넉히
되었으리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부절히 이 상층에 올라왔다 내려가곤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정신을 차려 그들을 볼 수가 없이 배가 몹시 고파
온다. 입에서는 침조차 나오지 않고 배는 등에 붙은 것 같다.
그는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대었다. 돌아가신 어머님이 계셨으면 자기가
뛰어나온다고 하더라도 뒤미처 따라와서 자기를 집으로 데려갔지,
아직까지도…… 아니 이렇게 배가 고파 운신을 하지 못하게까지
내버려 두었으랴! 하였다. 그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의모는
더 말할 여지가 없었다. 따라서 아무 철 없는 영철이까지도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그것은 비겁한 생각이라…… 하였다.
단 오 전만 가졌으면 이렇게 배는 고프지 않으련만…… 오 전! 오 전!
그의 눈에는 오 전짜리 백동전이 뚜렷이 나타나 보인다. 십 전보다도 좀
작은 듯한, 그리고 좀 얇은 듯한 그 오전! 그것이 없어서 자기는 이렇게
배를 곯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휘돌아보았다.
행여나 그 남녀가 빙숫값을 치르다가 그 오 전을 떨어치지 않았는가?
하여 보고 또 보나 아무것도 발견치 못하였다.
남녀는 앵무새를 사가지고 나왔다.
“곤니치와(안녕하세요)…….”
계집이 조롱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고는 호호…… 하하……
웃었다. 신철이는 저것에 오 전짜리를 몇 개나 주었을까? 생각을 하며
그 오 전을 멍하니 헤어 보았다. 남녀는 이젠 집으로 가는 모양이다.
신철이는 그들의 모양을 흘금 바라보며 내가 옥점이와 결혼을 하였다면
아마 지금쯤은 저런 것이나 사러 다니겠지…… 하였다.
그들이 사라진 후에 신철이는 그놈이 들어왔을까? 어서 가야지……
석간 돌리러 가겠으니까…… 하고 일어났다. 앞이 아뜩해지며 횡 잡아
돌리는 듯하여 그는 의자를 붙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그의 머리에는
이러한 것을 생각하였다. 누구든지 돈 오 전만 주면서
너 여기서 저 아래까지 뛰어내려라 하면 그는 서슴지 않고 뛰어내릴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그런지 이 꼭대기와 저 아래 땅과의 거리가
차츰 가까워지는 것을 그는 보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하층으로 내려온 신철이는 저편으로부터 아는 여자가
마주 오는 것을 보고 그만 당황하였다. 그래서 식당 편으로 피하였다.
그리고 진열대에 진열한 상품을 보는 체하면서 그 여자가 어서 상층으로
올라가기만 고대하였다. 그러나 그 여자는 돌아가며 무엇을 부지런히 찾고
있다. 신철이는 초조한 맘으로 얼굴을 돌리니 유리알 속으로 빛나는
카레라이스, 다마고돈부리, 스시 등의 요리 표본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쓸쓸히 말라 가고 있을 뿐이었다. 순간에 그는 참을 수 없는 식욕을 느끼며
휙 돌아섰다.
“아니? 신철 씨 아니세요?”
마침내 그 여자는 신철의 앞으로 다가왔다. 신철이는 얼결에 중절모를
벗어 움켜쥐고 뒷짐을 졌다. 그리고 헤어진 구두를 보이지 않으려고
진열대 앞으로 바싹 다가섰다.
“네, 참 오래간만입니다.”
“왜 놀러 안 오세요?”
“네…… 네…… 뭐 그저 바뻐서…….”
식당 곁에 섰느니만큼 한층더 어려웠다. 그리고 어서 이 여자가 물러났으면
하나 좀처럼 물러나지 않을 모양이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이편으로 슬슬
뒷걸음질하였다.
“자, 저는 먼저 갑니다.”
그 여자는 이상한 듯이 신철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네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놀러 오세요.”
“예…… 예.”
신철이는 도망하듯이 미쓰고시 문 밖을 나섰다. 그는 한숨을 후 내쉴 때
땀방울이 등허리를 씻어 근질근질하게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이가 무는 것같이 등허리가 가려우나 지나가고 오는 사람들의 눈이
어려워서 서서 긁지도 못하고 걸어가려니 땀만 부진부진 더 났다.
그는 본정으로 들어섰다. 좌우 상점에서 울려 나오는 레코드 소리며
아스팔트 위를 걸어오고 가는 게다 소리, 각 상점에서 상품을 사고 파는
부산한 소리, 이 모든 소리가 교착이되어 가지고 흐르고 또 흐른다.
그리고 그 새를 물고기같이 헤엄쳐 나가고 오는 사람의 홍수! 그들은 모두가
앞가슴을 불쑥 내밀고 생기 있게 팔과 다리를 놀렸다.
신철이는 더욱 어깨가 늘어지고 잔등이 몹시 가려웠다.
그때 포마드 향유내가 물큰 스치므로 얼른 바라보니 그의 앞으로 다가오는
어떤 젊은 일인은 유카타(浴衣)를 서늘하게 입었으며 머리에서는 향유가
빛났다. 그리고 새로 목욕이나 하고 나오는 듯이 그의 얼굴은 윤택하였다.
순간에 신철이는 자신의 몸에서 발산하는 악취를 느끼며 다리는 천근이나
만근이나 무거운 듯하였다.
그는 영락정을 거쳐 황금정을 건너서서 수표교까지 왔다. 그때 얼른 샅에
손을 넣고, 잔등에 팔을 돌려 시원히 긁고 나서 이놈이 이젠 신문사에
들어갔기 쉬운데…… 혹시 지금쯤 배달하러 나오지 않는가…… 하였다.
그리고 중국인 거리를 총총히 지나서 종로까지 나왔다. 확실히 이 종로는
횡 빈 듯한 느낌을 그에게 던져 주었다. 간혹 전차가 달아오고 달아가나
그 안은 몇 사람이 탔을 뿐이고 쓸쓸하였다. 그는 밤송이 동무의 집까지
왔으나 그를 만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의 배달 구역을 향하여 걸었다.
마침 저편으로부터 방울 소리가 나며 밤송이 동무가 이리로 오다가 신철이를
보고 눈을 껌벅 하며 오라는 뜻을 보였다.
신철이는 그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갔다. 밤송이 동무는 좌우를 휘휘
돌아본 후에 소리를 낮추어,
“자네 인천으로 가게 되었네, 오늘 저녁차로나 내일 아침까지 곧 떠나게.”
“인천? 좋지! 나 역시…….”
신철이는 땀을 씻으며 쓸쓸한 웃음을 입모습에 띠었다.
밤송이 동무는 지갑을 꺼내어 일원짜리 지화 석 장을 그에게 주었다.
“이것으로 여비와 기타 비용을 쓰도록 하게. 인천 가면 아마 노동시장에
직접 나가야 허리…… 그런데 인천 가서 이 주소를 찾아가게.”
그는 종잇조각과 연필을 내어 신철에게 무엇을 써서 보였다.
신철이는 한참이나 들여다 보다가 고개를 흔들어 보인다. 밤송이 동무는
그 종잇조각을 입에 넣고 씹으며 좌우 골목을 살펴보고,
“자, 그러면…… 안녕히…….”
밤송이 동무는 껑충껑충 달아났다. 신철이는 돈 삼 원을 쥐었으니 그런지
아까보다 발길이 거분거분해진 것을 깨달으며 우선 우동이나 한 그릇
사먹으리라…… 하고 그 골목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밤송이 동무가 써서
뵈던 종잇조각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인천부 외리 삼번지 김철수’ 신철이는 입 속으로 다시 외어 보았다.
신철이는 우미관 앞에서 오 전짜리 우동 두 그릇을 사먹고 나서야 기운이
났다. 그리고 봉투쌀과 빵 몇 개를 사가지고 그의 집까지 왔을 때,
일포와 기호는 타월로 머리를 동이고 누워 있다가 신철이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빵을 저마다 빼앗아 들고 맛있게 뚝뚝 무질러 먹었다.
“이거 웬일이야? 오늘은 빵 사오고 쌀 사오고 횡재수가 났지 아마?”
기호는 빵 한 개를 다 먹고 나서야 이런 말을 하며, 신철이가 무엇이든지
배부르게 먹고 들어왔다는 것을 깨닫는 동시에, 저놈의 포켓에 돈이 좀
들어 있는 모양인가 하고 눈치를 살피고 있다. 일포는,
“나 오 전 한 닢만 주게. 막걸레 한잔 먹겠네. 이게야 어디 살겠나.”
눈가가 뻘개서 아편쟁이의 손같이 핏기 없는 손을 내밀었다.
“이 사람아! 나무도 없는데 술만 처넣겠다? 어서 돈 내게.
나무 사다가 밥 해먹세.”
두 놈이 손을 저마다 내밀었다. 신철이는 술값으로 십 전, 나뭇값으로
삼십 전을 주고 나서 양복을 활짝 벗어던졌다. 그리고 중절모를 방바닥에
들어 메치었다. 일포와 기호는 기가 나서 밖으로 나간다. 그는 땀에 젖은
내의를 벗어 밖에 내다 널며 다시는 그런 비겁한 생각을 하지 않으리라……
결심하였다. 자기가 아버지 앞을 떠날 때부터, 아니! 그 전부터 모든 것을
각오해 온 바가 아니냐. 그런데 지금 와서 약간의 고통이 된다고 다시
옛날을 회상하는 그러한 비겁한 자식! 그는 입 속으로 이렇게 자신을
꾸짖으며 인천의 월미도를 얼핏 생각하였다.
인천만 가면 그는 모든 이 비겁성을 홱 풀어 던지고 아주 노동자의 씩씩한
참동무가 되리라고 굳게 결심하였다. 그리고 오늘 밤차로 내려갈까? 철수!
외리 삼번지, 그는 이렇게 되풀이하며 방으로 들어왔다. 기호는 장작을
사가지고 약간의 반찬감도 산 모양이다.
“여보게, 우리는 자네 기다리누라 아주 죽을 뻔했네……
나 거 일폰가, 그 자식 보기 싫어서, 그저 발가락 새만 하루 종일 쑤시고
앉았데그리.”
기호는 웃어 가며 발가락 우벼 내는 모양을 흉내낸다.
신철이는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이 동무들이 그나마 자기가 인천으로 가면
어쩔 셈인가? 하였다. 그리고 차라리 저러고 있을 바에는 시골집으로
내려가서 아내가 하는 농사일이나마 뒷배를 보아 주었으면 좋으련만,
그 고생을 하면서도 그래도 이 서울 구석에 붙어 있으려는 그들의 심리가
생각수록 우습고도 맹랑하였다.
그들의 유일의 희망은 어떤 자본가를 붙잡아 가지고 무슨 잡지나 신문사나
경영해 볼까 하는 그런 심산이었다. 어쨌든 민중의 지도자가 되는 동시에
그들의 이름을 작으나마 전선적으로 휘날리는 데는 반드시 중앙에 앉아
가지고 그런 잡지나 신문사를 경영하는 데서만이 가능한 것으로 인정하는
모양이다. 저렇게 배고플 때에는 아무 말이 없다가도 배만 부르고 나면
어느 신문이 어떻고 어느 잡지가 어떻고 시비를 가려 가며 비평을 하곤
하였다. 한참 떠들 때에 보면 모두가 일류 논객이었다.
신철이는 이러한 봉건적 영웅심리에서 나온 야욕과 가면을 몇 겹씩 쓰고
회색적 행동을 하고 앉은, 그야말로 고리타분하고 얄미운 소부르주아지의
근성을 철저히 버려야 할 것을 그는 일포나 기호를 바라볼 때마다 절실히
느끼곤 하였다. 그러나 자신도 역시 그들의 근성을 어딘가 모르게 끼고
다니는 것을 오늘 일을 미루어 생각하면 뚜렷이 드러난다.
이튿날 아침, 신철이는 그들에게 어디 잠깐 다녀온다고 말하고 나왔다.
그가 종로까지 나와서 상점 시계를 보니 거의 차 떠날 시간이 되었으므로
전차를 탈까 혹은 버스를 탈까? 하였다. 어제만 해도 오 전짜리가 큰돈
같더니 막상 돈푼이나 지갑 속에 있으니 정거장까지 걸어가기가 싫었다.
에라! 전차나 오래간만에 타보자 하고 달아가는 전차를 따라가서 올라섰다.
전차는 윙 하고 달아난다. 벌써 화신상회 앞을 지나 황금정으로 달아난다.
황금정에서는 용산으로 가는 듯한 월급쟁이들이 가득 들이몰리었다.
신철이는 좁은 자리에 끼여 불편함을 느꼈다. 보다도 월급쟁이들의 시선과
마주칠 때마다 저 가운데는……? 하고 가슴이 선뜩해지곤 하여 머리를 돌려
버렸다. 그때 조선은행 앞 저리로부터 오는 인력거 한 채가 보인다.
인력거에 앉은 색시는 웬일인지 인력거를 처음 탄 듯하게 몸가짐이
어색하게 보여 그는 자세히 바라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아!” 소리를
지르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사람들의 틈을 뻐개려고 애를 쓰나 뻐개는 수가 없었다.
***** 이어서 ( 4 중 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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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전:동아일보(1934.8.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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