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인간문제(4 중 2)- 강경애 -

하얀모자 1 2023. 6. 21. 05:16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인간문제 ( 4 중 2 )
                                                                             - 강경애 -
 
신철이를 따라 몽금포에 내려가서 해수욕을 하고 올라온 옥점이는
오늘 아침차로 상경하겠다는 신철이를 만가지 권유로 겨우 붙들었다.
신철이는 옥점이보다도 덕호의 애써 말리는 데 못 이기는 체하고 떠나지
않았으나 실은 웬일인지 그렇게 쉽게 이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남의 집에 와서 하루 이틀도 아니요 거의 달지경이 되어 오니까 미안함에서
상경하겠다고 하였던 것이다.
옥점이는 신철의 남성다운 체격을 웃음을 머금고 바라보았다.
 
“우리 참외막에 가볼까요?”
 
“글쎄요…… 우리 둘이만이 가는 것이 좀…….”
 
옥점이는 냉큼,
 
“그럼 누구 또 말씀해 보세요?”
 
그의 속을 뚫고 보려는 듯한 옥점이의 강한 시선을 그는 약간 피하였다.
 
“아버지든지 혹은 어머니도 좋구요.”
 
“정말?”
 
“그러면요, 우리 둘만은 이런 시골에서는 좀 재미없지 않아요?”
 
“하긴 그래요, 그럼 어머니를 가자구 할까?”
 
“그것은 옥점 씨 생각에 맡깁니다.”
 
옥점이는 호호 웃으며 냉큼 일어나 안방으로 건너갔다.
신철이는 책상 앞에 조금 다가앉아서, 면경 속에 그의 얼굴을 비추어보며
무심히 밖을 내다보았다. 그때 선비가 빨래함지를 이고 부엌으로부터
나온다. 신철이는 얼른 몸을 똑바로 가지고, 지나치는 그의 왼편 볼을
뚫어지도록 보았다. 그가 중대문을 넘어가는 신발 소리를 들으며, 빨래를
하러 가는 모양인데…… 하고 생각할 때, 이상한 광채가 그의 눈가를
스쳐간다.
그가 이 집에 온 지 거의 두 달이 되어 와도 저렇게 먼빛으로 선비를
대할 뿐이고, 한 번도 한자리에 앉아 말을 건네어 보지 못하였다.
그만큼 그는 선비에게 어떤 호기심을 두었다.
그리고 특히 그의 와이샤쓰나 혹은 내의 같은 것을 빨아 다려 오는 것을
보면, 어떻게 그리 정밀하고 얌전스럽게 해오는지 몰랐다.
그때마다 그는 이런 아내를 얻었으면…… 하는 생각이 옷 갈피갈피를
뒤질 때마다 부쩍 들곤 하였다.
그리고 그의 고운 자태! 눈등의 검은 점…… 그의 머리에 강한 인상을 던져
주었다. 그와 말이나 해보았으면……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하든지 오늘 냇가에만 가면 그를 만날 수가 있을 터인데 어떻게 뭐라고
핑계를 대고 옥점이를 떨어치나가 문제 되었다. 옥점이가 건너오며,
 
“어머니가 가시겠다오.”
 
“예 좋습니다.”
 
이렇게 선뜻 대답은 하고도 신철이는 엉덩이가 잘 떨어지지 않는다.
 
“어서 일어나요, 더웁기 전에 가요.”
 
신철이는 무슨 생각을 잠깐 하다가,
 
“아버지도 모시고 가는 것이 어때요.”
 
“아이! 아버지는 뭐라구.”
 
헬끔 쳐다보며 웃는다. 그도 빙긋이 웃으며,
 
“노인네 부부도 산보해야지요, 하하.”
 
옥점이도 호호 웃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 자기들이 가지런히
서서 가는 것도 그럴듯한 일이었다.
 
“그럼 모시고 갈까…… 아이 아랫집에서 안 올라오셨을 게요.”
 
옥점이는 통통걸음을 쳐서 사랑으로 나간다. 신철이는 그의 나가는 뒷모양을
바라보면서 선비가 혼자서 빨래를 갔는가? 하였다.
옥점이는 곧 돌아 들어왔다.
 
“아버지가 안 오셔서…….”
 
그제야 신철이는 벌컥 일어났다. 그리고 벽에서 모자를 벗겨 쓰며,
 
“내 아버지는 모시고 갈 것이니 어서 먼저들 가시오.
   저번 갔던 그 막이지?”
 
옥점이는 약간 싫은 빛을 띠었으나 얼른 웃어 버렸다.
 
“그만둬요, 아버질랑.”
 
“글쎄 어서 가요. 내 가서 모시고 올라가리다.”
 
신철이는 밖으로 나왔다. 뜨거운 볕이 그의 전신을 후끈하게 하였다.
그가 큰대문을 나서며 어떻게 할까? 하고 우뚝 섰다.
신철이는 어떻게 하든지 옥점이만을 떨어칠 양으로 이렇게 서두르고
나오기는 했으나 막상 나오고 보니 어떻게 해서 선비를 교묘히 만나 볼까가
큰 걱정이다. 우선 그는 멀리 보이는 원소의 숲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덕호가 첩살림하고 있는 아랫마을을 돌아보았다. 따라서 옥점이와
같이 갈 참외막 있는 앞벌도 바라보았다.
그러자 옥점이와 그의 어머니가 나온다.
 
“왜 안 가셨수?”
 
옥점이는 물빛 양장에 밀짚모를 꼭 눌러 썼다. 그의 어머니는 딸과 신철이를

바라보며 언제 웃을지 몰라 입을 벌리고 있다. 비록 정식으로 말은
건네이지 않았으나 이 둘이는 장래 부부로 인정하였던 것이다.
 
“아버지한테도 같이 가려구요?”
 
“뭘, 나허구?…… 난 안 간다는 게야, 그년의 계집애 보기 싫어서.”
 
옥점이는 휭 돌아간다. 신철이는 옥점의 이러한 대답을 듣기 위하여
 부러 물었던 것이다.
 
“왜 그래요? 그이도 어머니가 되겠지우.”
 
“아라마 이야다와(어머 싫어요).”
 
이렇게 소리치며 어머니의 손을 끌고 간다.
몇 발걸음 걸어나가던 옥점이는 돌아보았다.
 
“얼핏 모시고 와요, 그리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이 순간에 그는 급한 숨결을 겨우 억제하였다. 모든 일이 자기가 상상하였던
것보다 예상 이외에 순조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신철이는 뛰는 가슴을 진정하며 옥점의 뒤를 슬금슬금 따라 섰다.
옥점이가 동구를 벗어나며 이편을 돌아본다. 그리고 무어라고 손질을
두어 번 치고 모밀밭 뒤로 사라진다. 신철이는 한숨을 후유 하고 쉬었다.
만사는 이제부터다 하고 그는 아무 거침 없이 원소를 바라보고 급히 걸었다.
원소의 숲이 가까워질수록 그의 숨결은 몹시도 뛰었다. 그리고 불행히
옥점이가 그의 뒤를 따르지 않는가 하여 자주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물소리가 졸졸졸졸 한다. 그는 우뚝 섰다. 그리고 버드나무숲을 헤치고
가만히 들어섰다. 길길이 늘어진 버들가지가 그의 어깨를 서늘하게
스치었다. 그는 나무 밑에 꼭 숨어 서서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를
훑어보았다. 
뚝 그쳤던 방망이 소리가 청청 울려 온다. 그 소리는 이 고요한 숲을
한층더 고요하게 하였다. 그는 방망이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버드나무숲에 가리어 잘 보이지는 않으나, 방망이 소리를 타고 오는 음향은
선비의 존재를 확신케 하였다. 그는 차츰차츰 그편으로 갔다.
선비의 바른편 볼이 둥그렇게 나타나 보인다. 신철이는 멈칫 섰다.
그리고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따라서 선비를 만나 무슨 말을 할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할 말이 있는 듯하고도 또다시 생각하면 아무
할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하누? 다시 한번 망설였다.
이제는 발길까지 무거워지고 그리고 숨결이 무섭게 뛰놀았다.
그가 동무를 따라 카페 같은 데도 더러 다녔으나 이렇게 여자를 어렵게
대하여 보기는 처음이었다.
방망이 소리가 뚝 끊어지며 빨래를 헹구는 모양인지 절벅하는 물소리가
들린다. 그는 버드나무에 몸을 기대어 에라 돌아가자! 내가 이게 무슨
짓이냐, 그와 말은 해봐서 뭘 하는 게야 하고, 그는 발길을 돌리렸으나,
꽉 붙고 떨어지지 않는다. 그는 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 지금 막에서 기다릴
옥점이를 생각하였다. 그러나 옥점이의 환영은 차츰 희미하게 사라지고,
선비의 얼굴이 뚜렷이 보인다.
 
“내가 이게 웬일이야, 며칠지간에.”
 
이렇게 중얼거리며 휙 일어났다. 그리고 흐르는 물 속으로 빛나는 차돌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았다. 지금 아버지는 내가 몽금포에서 수양하고 있는 줄
알 터이지 하는 생각이 버쩍 들자 그는 머리를 돌려 버렸다. 그때에 무심히
앞에 늘어진 버들가지 하나를 잡아 뚝 꺾었다.
그리고 손이 아프도록 잎을 죽 훑어서 후르르 물 위에 뿌리며 천천히
내려왔다.
그가 참외막까지 왔을 때 갑자기 우뚝 섰다. 덕호를 데리고 온다고 옥점이를
떨어치던 자기를 새삼스럽게 발견하였던 것이다.
옥점이는 막에서 달려 내려온다.
 
“왜 혼자 오우?”
 
그는 잠깐 주저하다가,
 
“그만 중로에 가기 싫기에 오구 말었수. 그 뭐…….”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옥점이는 말똥말똥 쳐다보다가,
 
“어서 저리로 올라갑시다. 내가 참외 맛있는 것으로 골라 두었수.”
 
신철이는 옥점이를 따라 몇 발걸음 옮겨 놓다가 무심히 바라보니 참외 덩굴
아래로 어린애 머리만큼이나 한 참외들이 수북하였다. 그는 얼른 그리로
가서 참외를 만져 보았다. 그리고 모자를 벗어 부채질을 하며,
 
“이거 보우, 이거 참 시굴이 좋기는 하다니!”
 
옥점이는 휙근 돌아보며 머뭇머뭇하다가 온다.
 
“아이 더워요. 어서 저리로 가요.”
 
옥점의 코밑에 땀방울이 방울방울 맺혔다. 신철이는 가뿐 숨이나 쉬어
가지고 막으로 올라가려고 밭머리에 펄썩 주저앉았다. 옥점의 어머니는
기웃하여 내다본다. 옥점이는 얼굴을 찡그렸다.
 
“아이, 거게 가 앉아?”
 
신철이는 모자로 해를 가리며 이마의 땀을 씻었다.
그리고 한숨을 푹 쉬었다. 옥점이는 그의 쩍 벌어진 양 어깨를 바라보며,
자기 같으면 저렇게 외면하고 앉을 것 같지 않았다. 그 동안이라도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이 갑갑해서…… 옥점이는 쓸쓸하였다.
신철이는 벌떡 일어나더니 저편으로 충충 걸어간다. 그리고 풀숲에서 무엇을
찾는 모양이더니 딸기 한 송이를 나뭇가지째 꺾어 들고 벙글벙글 웃으며
온다. 옥점이는 달려가며,
 
“그게 어디 가 있수? 아이, 빛이 곱지.”
 
신철의 손에서 빼앗으며, 옥점이는 갸웃하고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고레 안타노 하트(이게 당신의 마음)?”
 
얼굴을 약간 붉히며 쳐다본다. 신철이는 옥점의 얼굴을 거쳐 딸기를 보았다.
그때 그는 이상한 충동을 느꼈다.
 
“올라가요, 어서 저리로.”
 
옥점이는 앞섰다. 신철이도 그의 뒤를 따라 막으로 올라갔다.
옥점 어머니는 귀여운 듯이 그들을 번갈아 보며,
 
“왜? 안 오시겠다고 헙데까?”
 
옥점이는 참외를 고르며,
 
“그 계집애 꼴 보려고 거길 가!”
 
신철이를 흘금 쳐다보며 어머니를 돌아본다.
그의 어머니는 약간 섭섭함을 느끼며,
 
“그럼 더운데…….”
 
하고 웃음으로 쓸어치고 말았다.
 
“이게 달 것이라지? 어머니.”
 
옥점이는 참외를 들어 보인다.
 
“그래, 깎아 보렴.”
 
그는 칼을 들어 반을 갈랐다. 속이 새파란 것인데,
꿀내 같은 내가 물큰 올라온다.
 
“이것 보우, 참말 달겠수.”
 
옥점이는 참외를 들어 보이며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신철이를 주었다. 그는 받으며,
 
“어머니에게 올리시구려!”
 
“어서 받아요.”
 
눈을 헬끗해 보면서 칼을 내친다. 그리고 곁에 놓았던 딸기 송이를 들며
생긋 웃었다. 이것은 신철이가 자기에게 주는 사랑의 선물인 것 같았던
것이다. 그는 딸기 송이를 들고 이리 저리 보다가 모자에 꽂았다.
 
“이거 봐요, 곱지?”
 
옥점 어머니는 깜박 졸음이 오다가 옥점의 말에 놀라 바라보았다.
 
“그게 웬 딸기가?”
 
“아이, 입때 어머니는 못 보셨수? 호호.”
 
어머니를 바라보는 옥점이는,
 
“어머니? 졸음이 오나 봐…….”
 
낮이 기울어지면 옥점 어머니는 자는 버릇이 있다.
그의 어머니는 눈을 썩썩 비비쳤다.
 
“들어가자.”
 
“아이 벌써? 어머니는 먼저 가구려.”
 
그의 어머니는 괴로운 모양인지 그만 부시시 일어난다.
 
“놀다가 오시우, 난 먼저 가우.”
 
“왜, 같이 들어가시지요.”
 
신철이는 옥점 어머니의 뒤를 따라 막 아래까지 내려가서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옥점이는 막 위에서 이 모양을 바라보며,
 
“안타와 바카쇼지키와네(당신은 고지식도 하셔).”
 
호호 웃었다. 옥점 어머니는 신철이를 다시금 돌아보며 사위가 정말
되었으면 좋으련만 하고 생각하였다.
막으로 올라오니, 옥점이는 모자를 쓰며 딸기 송이를 보았다.
 
“어때요?”
 
“좋구먼요…… 그만 먹지, 먹고 싶구먼.”
 
옥점이는 모자를 벗어 들고 딸기 송이를 따서 신철이 손에 놓아 주며 그도
한 알 물었다. 빨간 물이 옥점의 입술을 물들일 때, 신철이는
아까 옥점이가 하던 말을 다시금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는 아쉬운 생각과
함께 빨래질하던 선비의 자태가 휙 떠오른다. 그리고 그가 뿌리고 온 버들잎
하나가 선비의 손끝을 스치었으련만,
그는 무심히도 버들잎을 치워 버렸으리라! 하였다.
 
“뭘 생각하시우?”
 
옥점이가 바싹 다가앉는다.
신철이는 얼른 수숫대 위로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구름을 가리켰다.
 
“저것 보우, 참 좋아.”
 
옥점이도 그편을 바라보았다.
 
“제법 시인이 되랴나 부.”
 
“시인?”
 
무심히 내친 이 말이 그의 가슴폭을 선뜻 찔러 주는 듯하였다.
그는 참말 요새같이 감정이 예민해 가다가는 큰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가 학교에서 휴가를 맡고 이렇게 오게 된 것도 신경이 약하기 때문인데,
수양하러 온다고 와놓고는 돌연히 사귄 이 여자로 말미암아 자기의 수양은
어디로 달아나고 말았다. 더구나 나날이 일어나는 이 번민! 이것은 자기
스스로는 도저히 억제치 못할 것 같았다.
처음에 기찻간에서 이 여자를 만날 때에는 다소의 흥미도 가졌지마는,
불과 며칠이 지나지 못해서 다만 일시일시로 데리고나 놀 여자지, 오래
사귀어 놀 여자가 되지 못할 것을 곧 알았다. 그러나 그는 웬일인지 이 집을
떠나기 싫고, 이 동네가 떠나기 싫었다. 그래서 몽금포에 가서도 오래 있지
못하고 곧 올라왔던 것이다.
옥점이는 피어오르는 구름을 한참이나 보다가 흘금 신철이를 보았다.
구름을 바라보는 그의 눈! 그 새를 타고 내려온 쇠로 만든 듯한 그의 코는
확실히 그의 이지를 대표한 듯하였다.
지금 그의 어머니나 그의 아버지까지도 신철이를 장래 사윗감으로 인정하는
모양인데, 보다도 현재 자기들의 이면에는 내약이 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실상 자기들 사이는 이때까지 아무러한 내약도 없었으며
그러한 눈치도 서로 보이지 않았다. 옥점이는 초조하였다.
그러나 저편에서 시치미를 떼고 있는데, 먼저 대들기도 무엇하여 눈치만
살살 보는 중이었던 것이다.
 
“무슨 이야기든지 하세요.”
 
신철이는 돌아보았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할 듯 할 듯하다가
 그만 웃어 버린다.
 
“아이 하세요.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그래서요. 이제…… 꼭 대줘요.”
 
어린애처럼 보챈다. 신철이는 조금 물러앉았다.
 
“옥점 씨, 이 담에 어떤 곳에서 살고 싶어요?
  말하자면 서울 같은 도회지에서 혹은 이러한 농촌에서?”
 
뜻하지 않은 이 물음에 옥점이는 머리를 갸웃하고 한참이나 생각하다가,
 
“그것 왜 물으세요.”
 
“심심하니까 이야기삼아 묻는 게지요.”
 
“신철 씨는 어떤 곳에서?”
 
“나요? 글쎄 어떤 곳이 좋을까…… 내가 먼저 물었으니 먼저 대답하세요.”
 
“나는…… 신철 씨가 좋아하는 곳에서.”
 
말끝이 입 속으로 숨어든다. 그리고 귀밑까지 빨개지며 그는 머리를 돌렸다.
이것을 바라보는 신철이는, 이 여자가 자기를 사랑하는 셈인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리고 “고레 안타노 하트?” 하고 그가 하던 말을
다시금 생각하는 신철이는,
 
“그래요, 참 고마운 말씀이구려. 그럼 우리 한동네서 삽시다.
  이렇게 한적한 농촌에서 저런 참외며 조며 콩 팥을 심어 가면서 삽시다,
  우리. 오작이나 재미나겠수.”
 
그는 눈치를 채지 못한 체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옥점이는 생긋 웃으며,
 
“그럼 이런 시굴이 좋으세요?”
 
“네, 저는 이런 곳이 좋아요…… 김도 매고 온갖 가축을 기르면서
  사는 것이 좋지요.”
 
“애이!”
 
옥점이는 그가 거짓말을 하는 듯하여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나 신철이는 웃지도 않고 그를 마주보았다.
 
“뭐, 김을 매시겠어요?”
 
“그러먼요, 김매는 것 좋지요.”
 
“참…… 우스워 죽겠네.”
 
“왜 그러셔요?”
 
신철이는 눈을 크게 떴다.
 
“김을 매구 어떻게 살아요! 그렇게 할 바에는…….”
 
중도에 말을 끊었다. 신철이는 빙긋이 웃었다.
 
“그러면 옥점 씨는 시굴서 사실 생각이 아니십니다그려.”
 
“애이! 참.”
 
옥점이는 원망스럽다는 듯이 그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손톱 끝을
물어뜯으며, 그의 안타까운 그 맘을 어째서 신철이가 몰라주는가 하니,
그는 달려들어 신철이를 쥐어뜯고라도 싶었다. 그래서 그는 머리를 번쩍
들었다. 신철이는 여전히 저 앞을 바라보았다. 씨앗에서 몰려나오는 듯한
솜 같은 구름은 이젠 큰 산맥을 이루어서 그 높은 불타산 위를 눈이 부시게
둘러치고 있다.
옥점이는 신철이를 바라보며 무어라고 말을 하렸으나, 곁에 자기라는 존재를
전연히 잊은듯이 하늘만 쳐다보는 신철의 그 표정은, 끝까지 원망스러운
반면에 또한 극도의 위압에 눌리어 말끝이 쑥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들어가요, 그만.”
 
신철이는 돌아보았다.
 
“그럼 갑시다.”
 
성큼 일어난다. 옥점이는 말을 하자노라니 이런 말이 쑥 나갔으나 실은
이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좀더 신철의 맘을 엿보는 동시에
여기서 어떤 해결을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희미하게 들었다.
그러나 신철이는 아무 미련 없이 양복 바지를 툭툭 털며 그 거대한 몸을
사다리 위에 싣는다. 그리고 벌벌 기어 내려간다. 옥점이는 맘대로 하면,
내려가는 그의 엉덩이를 발길로 차서 떨어치고 싶었다.
막 아래로 내려간 신철이는 양복을 툭툭 털며 몸매를 휘돌아본 후에,
 
“어서 나려오시우.”
 
옥점이는 웬일인지 울음이 쓸어 나오는 것을 입술을 꼭 깨물고 참았다.
 
“어서 혼자 들어가세요!”
 
“언제는 가자고 하더니 또 이러시우?”
 
신철이는 눈가로 약간 웃음을 띠며 이런 말을 하였다. 신철이가 웃는 것을
보니 좀더 성은 나면서도 그는 따라 웃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였다.
그래서 픽 웃고 내려왔다. 막 주인은 어디 가 숨었다가 이제야 어실어실
참외밭으로 나온다. 그들은 참외값을 치르고 나서 길로 나왔다.
 
“이거 봐요, 동네 들어갈 때는 떨어져 들어갑시다.”
 
한참이나 걷던 신철이는 옥점이를 돌아보았다.
 
“왜요?”
 
옥점의 눈가는 빨개진다.
 
“창피하니까.”
 
“무엇이 창피해요?”
 
“애들이 따르고 개들이 짖고, 허허.”
 
뜻밖의 말에 옥점이는 호호 웃었다. 그러나 가슴은 무어라고 형용할 수 없이
바작바작 죄어 들어서 목이라도 놓고 울고 싶었다.
수수밭 옆을 지나며 신철이는,
 
“어떻게 할 테우?”
 
“뭘요?”
 
옥점이는 눈이 둥그래진다.
 
“옥점 씨가 먼저 가시겠수, 날 먼저 가라우?”
 
옥점이는 한숨을 푹 쉬며,
 
“뭘 어때요. 그까짓 것들 무서워서 그러셔요, 아이 참.”
 
옥점이는 무심히 수숫잎을 뜯어 입에 문다. 그리고 그의 양장한 몸에
수숫대 그림자가 길게 걸어나간 것을 신철이는 보았다.
 
“무섭지요. 세상에 농민들에게서 더 무서운 인간들이 있겠습니까……
  어서 먼저 들어가세요.”
 
옥점이는 말없이 뾰로통하고 섰더니,
 들었던 수숫잎을 휙 뿌리며 휭 돌아섰다.
 
“그럼 곧 들어오세요.”
 
돌아도 보지 않고 이런 말을 한 후에 옥점이는 수수밭을 지나 논둑을 타고
가물가물 멀어진다. 신철이는 그의 뒷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풀밭에
주저앉았다. 따라서 원소의 숲이 떠오르며 이젠 선비가 들어갔을 터이지
하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석양이 되니 몽금포에서 보던 낙조가 그리워진다. 그 망망한 서해에
한 줄기의 커다란 불기둥을 지르고 넘어가던 그 태양 앞에 가슴을 헤치고
섰던 자기가 어떤 명화를 대하는 듯이 떠오른다. 그리고 끊임없이 솨솨 하고
바위에 부딪치는 그 물결소리…… 그 소리를 타고 늠실늠실 넘어오는 고깃배
사공들의 ‘어이야, 어이야’ 하는 노젓는 소리가 금시로 들리는 듯하였다.
그는 빙긋이 웃었다. 멀리 낙조를 바라보며 옥점의 안달나 덤비던 장면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모른 체하고 그 고비를 넘겨 버렸다.
그는 옥점이가 그러한 태도를 그에게 보이면 보일수록 그의 가슴은
이상하게도 얼음같이 차지는 반면에 흥미가 진진하였다. 그리고 다시 오늘
막에서 지내던 일을 생각하며 어느덧 원소의 숲에서 청청 하고 울려 나오던
빨랫소리를 들었다. 그는 지금 눈앞에 선비의 청초(淸楚)한 자태를 보았다.
인간은 일하는 곳에서만 진실(眞實)과 우미(優美)를 발견할 수 있는
모양이다!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무엇이 그의 볼을 툭 치매 그는 놀라 바라보았다.
메뚜기 한 마리가 그 푸른 날개를 활짝 펴고 푸르릉 하고 저편 풀숲에
사라진다. 그는 무의식간에 볼을 슬슬 어루만지며 벌컥 일어났다. 그리고
내일 몽금포나 또 가서 며칠 있다가 상경할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가 동구까지 왔을 때, 유서방이 어실어실 나온다.
 
“어서 들어오시랍니다.”
 
신철이는 머리를 굽혀 보이고 집으로 들어왔다.
옥점이는 마루에 섰다가 신철이를 보고 생긋 웃었다.
 
“꽤두 오래 오십니다.”
 
그새 보지 못하였다가 보니 또 새로운 정이 그의 거대한 몸을 휩싸고
도는 것을 앞이 캄캄하도록 느꼈던 것이다.
 
“세수하시려우?”
 
신철이는 부엌 편을 흘금 바라보며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옥점이는 안방으로 들어가며,
 
“이리 들어오세요.”
 
분홍빛 수건을 내어 방으로 들어앉는 신철의 무릎에 던진다.
향수내가 물큰 스친다. 신철이는 수건을 머리맡으로 물려 놓으며 뒤뜰을
바라보았다. 울바자 끝에는 흰 빨래가 눈이 와서 덮인 것처럼 새하얗다.
그 중에 그의 와이샤쓰가 얼핏 눈에 띄었다.
 
“집에서는 누가 빨래하시우?”
 
옥점이는 냉큼,
 
“선…… 저 할멈이 해요, 왜?”
 
말끄러미 쳐다본다.
 
“옥점 씨는 빨래 안 해보셨습니까?”
 
옥점이는 잠깐 주저하다가,
 
“난 안 해봤어요.”
 
뒤뜰에서 그의 어머니가,
 
“아이 그게 빨래가 다 뭐유,
  집안의 일을 손끝으로나 대보는 줄 아시우? 호호.”
 
어쨌든 귀여운 모양이다. 더구나 자기 딸이 일해 보지 못한 것을 자랑거리로
아는 모양이다. 신철이는 빙긋이 웃을 뿐이다. 옥점이는 그 웃음이 웬일인지
불쾌하였다. 뒤뜰 장독 뒤로 백도라지꽃이 머리를 다소곳하였다. 그 뒤로
수세미외 덩굴이 울바자를 타고 보기 좋게 뻗쳐 올라가며
 노란꽃이 여기저기 피었다.
 
“저기 무슨 꽃이야요?”
 
신철이는 백도라지꽃을 가리켰다. 옥점이는 손을 통하여 바라보더니,
 
“응 저 꽃? 백도라지여요. 저 백도라지가 약이 된다나요.
  그래서 일부러 유서방이 캐다 심은 게라오.”
 
“네, 저 쑤세미오이도?”
 
“그것은 선비년이 다 심은 게라오.”
 
그의 어머니가 대답한다. 옥점이는 선비라는 이름만 신철의 앞에서 불러도
불쾌하였다. 신철이는 옥점이가 아니면 뛰어나가서 그 꽃을 꺾어
볼 위에 대고 싶으리만큼 귀여움을 느꼈다.
마침 바자 밖으로부터 이런 소리가 들렸다.
 
앉을방 줄방
파리 잡아 줄방
 
그들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그 노래는 차츰 바자 곁으로 오더니 뚝
그친다. 그리고 울바자에 세운 기둥 끝을 향하여 잠자리채가 올라온다.
뒤미처 잠자리 한 마리가 채에 얽혀들어 푸득거린다. 바자 밖에는 갑자기
애들의 환호소리가 “으아” 하고 쏟아져 나왔다.
 
앉을방 줄방
파리 잡아 줄방
 
또다시 이런 노래가 멀리 사라진다. 신철이는 그 노래가 끊어진 후에 비로소
자기가 장성하였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간에 한숨을 가볍게 내쉬었다.
 
“우리도 어렸을 때 저런 일을 했어요.”
 
옥점이는 눈에 웃음을 가득히 띠고 신철이를 쳐다보았다.
그날 밤, 신철이는 밤 오래 놀다가 자리에 누웠으나 잠 한 잠 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리뒤척 저리 뒤척 하고 누웠으려니 온몸이 쑤시는 것 같고
더구나 전신에서 땀이 부진부진나서 못 견딜 지경이다. 그래서 그는 부시시
일어앉았다. 그리고 문을 가만히 열고 내다보았다.
처마 그림자가 뜰 위에 뚜렷이 아로새겼다. 그는 무의식간에 달도 밝기도
하다 하고, 머리를 기웃하여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달은 지붕을 넘어간
까닭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옷을 주워 입고 밖으로 나왔다.
안방을 살펴보니 잠든 모양인지 잠잠하였다. 그리고 오직 마루 아래로 놓인
옥점 어머니의 흰 고무신이 달빛에 윤택하게 보일 뿐이다. 그는 변소간을
향하고 걸었다. 그가 변소까지 왔을 때 우뚝 섰다.
할멈 방문이 불빛에 빨개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안자나? 밤이 오랬는데
하고, 그는 어떤 희망을 가늘게 느끼며 뒤를 휘휘 돌아보고 방문 앞까지
왔다. 그래서 그는 문틈이 어디가 났는가 하고 두루두루 찾아보았으나
바늘구멍만한 구멍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는 귀를 기울였다.
누가 아직 자지 않나? 혹은 할멈과 선비가 다 깨어 있나? 그렇지 않으면
선비만 자지 않는가, 혹은 할멈만 자지 않는가? 누가 자지 않는 것만 알아도
좋겠는데,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그는 누가 볼까? 조바심하여 그만 변소 앞으로 왔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
소리가 나는가 하여 한참이나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무슨 옷갈피를 뒤지는 소리가 부시시 들릴
뿐이다. 그는 변소간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할멈 방에 누가 자지 않는 것을
어떻게 알까 하고 이리저리 궁리하였다. 그리고 웬일인지 선비가 아직까지도
자지 않고 일을 하는 것만 같았다.
 
선비―--- 그 이름만이라도 왜 그렇게 곱고 부드럽게 불러지는지 몰랐다.
그리고 항상 내리뜨는 겸손한 그 눈가로 안개가 서려 있는 듯한 그 눈매,
그는 맘대로 하면 당장에 저 얄미운 문짝을 집어젖히고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왜? 밖에를 나왔던고?
차라리 방 안에서 더운 대로 참았더면 하는 후회까지 겸쳐 일어난다.
그는 소리 없이 변소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방문은 여전히 빨갛다.
그때에 방 안의 사람이 일어나는 듯이 문 위에 그림자가 얼씬 비치더니
방문이 바스스 열린다. 찰나에 그는 아찔하였다. 다음 순간 변소 앞으로
일보 일보 다가오는 사람은 선비가 아니냐! 그는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벌컥 일어났다. 그리고 잠깐 뛰는 가슴을 진정한 후에 변소 밖으로
나왔다. 무심히 이편으로 오던 그는 신발 소리에 멈칫하며 흘금 바라보았다.
신철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양으로 돌아서 들어가려는 선비를 보고,
 
“이거 보세요, 네, 이거 보세요.”
 
선비는 거의 방문 곁까지 가서 머뭇머뭇하고 있다. 신철이는,
 
“저 냉수 한 그릇 주실 수 없을까요?”
 
얼결에 나온 말이건만, 하고 보니 그럴듯한 말이었다. 선비는 무엇을 좀
생각하는 듯하더니 그만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신철이는 그만 지하에
떨어지는 듯한 모욕을 전신에 느꼈다. 그리고 어째서 그가 변소에서 가만히
있다가 들어오는 선비를 꽉 붙들지 못하고 이렇게 나왔는가 하였다.
 
“할머니, 할머니.”
 
깨우는 선비의 가는 음성이 들린다. 신철이는 숨을 죽이고 들었다.
 할멈은 응, 응 할 뿐이지 용이히 깨지 않는 모양이다.
 
“할머니 서울…….”
 
그 다음 말은 들리지 않는다. 할멈은 이제야 깨었는지 굵다란 음성이
흘러나왔다.
 
“네가 가서 떠다 주려무나. 내가 어두워서 알겠니.”
 
또다시 선비의 음성이 소곤소곤 들렸다.
 
“뭐 어떠냐, 어서 그리 해라.”
 
신철이는 할멈이 깨었으므로 그만 낙망을 하였다. 그러나 선비가 또다시
자기 앞에 물그릇을 들고 나타날 듯하여 가슴이 두근두근하였다.
방문이 또다시 얼씬하더니 문이 열리며 선비가 나온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
부엌 편으로 돌아간다. 그는 변소 앞에 섰기도 좀 우스운듯하여 선비의 뒤를
따라섰다. 컴컴한 안방이 그의 앞에 나타나자 그는 누가 깨지나 않았나 하고
다시금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까 윤택하게 보이던 고무신조차도 금시로
사람으로 변하는 듯, 그리고 안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옥점이가
나오는 듯하여 한층더 가슴이 뒤설레었다.
부엌문을 소리 없이 열고 들어간 선비는 물그릇을 들고 나온다.
달빛에 새하얗게 묻혀 버린 그 자태! 낮의 선비보다 몇 배 더 고와 보였다.
신철이는 선비가 부엌으로 들어갈 때만 하여도 온갖 계획을 다 세워
보았지만 막상 그의 앞으로 오는 선비를 볼 때는 모든 계획이 홀랑 달아나
버리고 그저 조급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얼른 물그릇을 받아 입에
대었다. 목은 안타깝게 마르건만 웬일인지 목이 칵 막히며 물이 넘어가지를
않는다. 그는 사래가 들려 기침이 나오려는 것을 억제하면서 물그릇을 도로
돌리려 하고 보니 벌써 선비는 어디로 가고 보이지 않았다.
그는 휙근 돌아보았다. 선비의 치맛자락이 변소 가는 모퉁이로 흘금 보이고
없어진다.
그는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리고 선비가 자기를 그렇게도 싫어하는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따라서 어리석고 비겁한 자신을 새삼스럽게
발견하였다. 그는 맘대로 하면, 들었던 물그릇을 당장에 내던져 산산이
짓모고 싶었다. 그래서 성이 난 눈으로 물그릇을 들여다 보았을 때,
아까 방 안에서 보이지 않던 달이 물 속에 떨어져 가늘게 흔들리고 있다.
그는 이 순간 노엽던 그 맘이 약간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물 속에의 어떤 부분을 대표한 듯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간이고, 이렇게 해석하고 섰는 어리석은 자신을 그는 픽 웃어 버렸다.
그리고 온 가슴이 텅 빈 듯한 쓸쓸함이 그의 전신을 휩싸고 도는 것을 그는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는 물그릇을 든 채 건넌방으로 건너갔다.
그때 마루 위를 누가 걸어오는 소리가 나더니 바스스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선다. 그는 깜짝 놀라 바라보았다.
 
“어째 지무시지 않아요?”
 
크림내를 섞은 젊은 여자의 강한 살내가 후끈 끼친다.
그는 이태껏 옥점에게서 느껴 보지 못한 이상한 충동을 받았다.
 
“왜 옥점 씨는 자지 않고 나오시우.”
 
이렇게 천연스레 말하는 신철이는 저 여자가 모든 것을 보지 않았나?
하는 불안이 여러 가지 감정과 교착이 되어 가지고 일어난다.
옥점이는 전 같으면 신철의 곁으로 다가앉으며 무엇이라고 소곤거릴 터이나
오늘은 우뚝 선 채 머뭇머뭇하고 서 있었다.
 
“앉든지 들어가 지무시든지.”
 
신철이는 이런 말을 하며 이 여자가 모든 것을 보았구나 하고 직각되었다.
그리고 물그릇도 받아 주지 않고 간 선비가 이 여자를 보고 그리 하였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도리어 자신의 우둔함을 그는 나무랐다.
한참이나 무엇을 생각하고 섰던 옥점이는 신철의 곁으로 다가앉는다.
 
“선비 곱지?”
 
어두운데 주먹 내미는 것 같은 돌연한 이 물음에 신철이는 잠깐 주저하다가,
 
“곱지.”
 
하고 옥점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머리를 푹 숙이더니 다시 번쩍 든다.
 
“소개해 줄까?”
 
“것도 좋지.”
 
옥점이는 벌떡 일어났다.
 
“그럼 내 이제 데려올게.”
 
신철이도 여기에는 당황하였다. 그래서 얼핏 그의 잠옷가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진중한 위엄을 그에게 보이려고 음성을 둥글게 내었다.
 
“이거 무슨 철없는…… 소개를 하려면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는데 왜?
  하필 이 밤에만 맛인가?”
 
옥점이는 그의 잠옷가를 잡은 신철의 손을 칵 잡으며 흑흑 느껴 운다.
이때껏 참았던 정열이 울음으로 화한 모양이다. 신철이는 무의식간에 옥점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그 순간 신철이는 물 속에 잠겨 흔들리던 달이 휙
지나친다. 그리고 달빛에 새하얗게 보이던 선비가 천천히 보인다.
그는 슬그머니 손을 놓고 조금 물러앉으렸으나 속에서 울컥 내밀치는 어떤
불길은 옥점의 잠옷 한 겹을 격하여 있는 포동포동한 살덩이를 불사르고도
남을 것 같았다. 그는 눈을 꾹 감았다.
 
“옥점이, 들어가서 자라우.”
 
신철의 음성은 탁 갈리어 잘 나오지 않았다. 옥점이는 좌우로 몸을 흔들며
바싹 다가앉는다. 그의 몸은 불같이 달았다. 신철이는 그만 어쩔 줄을
몰랐다. 그때에 그의 이지가 무참히도 깨어지는 소리가 그의 귓가를
지나치는 듯이 들렸다. 그러나 그는 이 여자의 몸에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것을 그는 발견하였다.
그때 안방에서 콩콩 하는 기침소리가 건넌방 문을 동동 울려 주었다.
신철이는 벌떡 일어났다.
 
“이거 봐요, 어서 들어가. 어머니가 깨시었어, 응.”
 
옥점이도 그제야 부시시 일어나 앉는다. 그리고 신철이를 올려다보더니,
 
“아이 불 켜지 말아요! 나 들어갈 테야.”
 
벌써 불은 환하게 켜졌다. 신철이는 돌아보며 빙긋이 웃었다.
그때에 신철이는 범치 못할 계선을 벗어난 듯한 가벼운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선비의 그 고운 얼굴이 미소를 띠고 지나치는 것을 그는 확실히
보았다.
신철이는 옥점의 곁으로 오며 그의 흩어진 머리카락을 손질해 주었다.
너무나 상쾌한 맘은 그로 하여금 이렇게 하게 하였던 것이다.
옥점이는 귀밑까지 빨개져서 차마 신철이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어서 들어가요, 네, 자 어서.”
 
옥점이는 머리를 매만져 주는 신철의 손을 끌어다가 꽉 깨물었다.
그리고 진저리를 치며 그의 혀끝으로 손을 빨았다.
신철이는 얼굴이 빨개지며 손을 빼었다.
 
“자 어서 들어가요.”
 
“난 안 들어갈 테야!”
 
또다시 기침소리가 콩콩 울려 나왔다.
 
이튿날 아침 옥점이가 눈을 번쩍 뜨니 아버지가 곁에 와서 그의 구실러진
 머리카락을 내려쓸고 있었다.
 
“아부지네!”
 
어젯밤 신철의 손을 얼핏 생각하였다. 그리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희망이
 이 방 안에 빽빽히 들어찬 것을 그는 느꼈다.
 
“왜 이리 늦게 자냐.”
 
“어젯밤 오래 있다가 잤에요.”
 
어젯밤 신철이가 그를 꽉 껴안아 주던 생각을 하며 눈등이 불그레해졌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않으면 어젯밤 일을 아버지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아부지…… 저 나 뭐 안 사줄래?”
 
덕호는 빙긋이 웃으며,
 
“뭘?”
 
“저, 피아노 말이어?”
 
“피아노? 아, 피아노란 게 뭐냐?”
 
듣느니 처음이었던 것이다. 옥점이는 호호 웃었다.
 
“참말 아부지는…… 저 왜 학교에 가보면
  애들 창가 가르치는 풍금이라는 게 있지요?”
 
“응, 그래.”
 
“그렇게 모양이 되었에요.”
 
“응, 양금이라는 것을 사달라는 말이구나. 그것은 소용이 뭐냐?”
 
“뭐야 타지, 아부지두.”
 
“그만둬라야, 공부나 했으면 됐지, 그까짓 것은 사서 뭘 하니.”
 
“애이! 아부지두, 그게 있어야 되는 게야요. 어서 사줘요.”
 
“그래 값이 얼마가?”
 
“꼭 사줄 테요?”
 
“글쎄, 말해 봐.”
 
“꼭 사주면 말하구.”
 
옥점이가 조르기 시작하면 못 견딜 줄을 번연히 아는지라 덕호는,
 
“그래 사주지.”
 
“한 천 원 너머 가야 꽤 쓸 만하대요.”
 
“천 원?”
 
덕호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리고 다시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옥점이는 아버지의 손을 끌어다 꼭 쥐며,
 
“아부지, 그게 그렇게 놀라워요? 뭐 아부지 재산은 다 나 가질 것이지요,
  누구 딴 사람 주지 않지?”
 
눈에는 웃음을 가득히 띠었다.
 
“글쎄, 그게야 그렇지. 해두, 너 가질 것이라구 그따위 소용도 없는 것을
  사서 버리면 되느냐?”
 
“아니야, 버리는 게 아니야. 서울에 가보면 웬만침 집 거느리고 사는 집은
  다 있어요. 아부지는 보지 못하셨으니까 그런다니.”
 
“아 글쎄 그것은 뭐 하느냐 말이다. 그게서 은금보화가 나온다면
  혹시 사다 둘는지, 글쎄 왜 공연히 사다가 놓아 둔단 말이냐.
  넌 일년에 천 원의 이자가 얼마나 되는지 아니? 응.”
 
“아부지 정말 안 해주면 난 자꾸 앓을 테야, 그것 가지고 싶어서.”
 
“허허 그년 참, 그래 그게 가지고 싶어 앓는단 말이냐……
   좌우간 좀 두고 보자.”
 
그렇게 딱 잡아떼지 않는 것을 보니 사줄 모양이다.
 덕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이애 신철인가! 저 건넌방 학생이 무슨 학교를 다닌다?”
 
“경성제국대학 명년 졸업이라요.”
 
“응, 그리고 집에 가산도 좀 있는 모양인가.”
 
“그저 선생님의 월급 받는 것 가지고 살아가는 모양이야.
  모르지 뭐, 또 어데 시굴 토지 같은 것이 있는지 누가 알아요.”
 
옥점이는 얼굴이 빨개지며,
 
“아부지 저리로 가라우, 나 일어나게.”
 
“야, 그런데 사람인즉은 아주 점잖은 집 자손인가 부더라.
  아주 그 인사범절이 각별하두나.”
 
“그럼 뭐…….”
 
그는 신철의 얼굴을 머리에 그리며 어떻게 그를 보나 하는 부끄러움이 그의
가슴을 몹시 뛰게 하였다. 덕호도 만족한 듯이 빙긋이 웃으며 밖으로
나간다. 옥점이는 일어나며 자리 옷을 벗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자리옷을 다시 들어 꼭 껴안았다. 어젯밤, 이 자리옷이 신철의 품에
안기었던 생각을 하니 그는 진저리를 쳤다. 그리고 자리를 개어 얹으며
방문을 배움히 열고 보니 건넌방 문이 활짝 열렸으며 신철이는 보이지
않았다. 또 산보를 나간 모양이다. 그는 언제나 컴컴해서 일어나 나가곤
하였던 것이다. 옥점이는 가만히 건넌방으로 건너갔다. 방 안은 깨끗이
쓸렸으며 책상 위에 책들이 정돈되었다. 그리고 신철이가 신다 벗어 논
양말이 둥그렇게 뭉치어 책상 아래에 놓였다. 옥점이는 우두커니 서서
어젯밤 일을 되풀이하며 신철이가 나를 참사랑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앉은 그의 머리에는 또다시 선비와 신철이가 물그릇을
새 두고 마주섰던 장면이 휙 떠오른다. 그는 걷잡을 수 없는 질투의 감정이
욱 쓸어 일어난다. 신철이가 선비를 사랑할까? 어떤 것을 보고 사랑할까.
아니야, 그것은 내 착각이다. 신철이쯤 하여 일개 남의 집 하녀를 사랑할까?
더욱 공부도 못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뜨기를…… 얼굴만 고우면
무엇 해? 이렇게 생각하니 속이 후련하였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꺼림칙하고 불쾌함이 따랐다. 그는 얼른 선비를 보고 어젯밤 일을 물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분주히 부엌으로 나왔다.
선비는 설거지를 하느라 왔다갔다한다.
 
“이애 선비야, 이리 좀 와.”
 
선비는 옥점의 뒤를 따라서 뒤뜰로 나갔다. 새로 핀 수세미 외꽃이 노랗게
울바자를 덮었다. 선비는 귀여운 듯이 바라보며 옥점의 곁으로 왔다.
 
“너 어젯밤 뭘 하러 나왔어?”
 
선비는 얼른 생각나지 않았다.
 
“내 언제?”
 
“날 왜 속여. 너 밤에 나와서 서울 손님에게 물 떠주지 않았어.”
 
그제야 그는 어젯밤 일이 생각히었다.
 
“응! 나 어제 변소에 나오니 서울 손님도 아마 변소에 나오셨던 모양이야. 

 그런데 날 보고 냉수를 한 그릇 떠달라고 하기에 떠다 올렸지. 왜?”
 
“음.”
 
옥점이는 선비를 바라보다가 머리를 끄덕해 보이며,
 
“어서 들어가 일해라.”
 
하고 옥점이는 돌아서 들어간다. 선비는 무슨 일인가? 하고 의아한 생각을
하며 부엌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서울 손님이 무슨 말을 한 셈인가?
혹은 물그릇에 가 파리 같은 것이 들어갔던가? 그렇지 않으면 무슨 솔잎
같은 것이 들어가서 서울 손님이 흉본 모양인가? 이러한 생각으로 조반까지
달게 먹지 못하였다.
조반상을 치우고 난 선비는 아침 일찍이 할멈이 잿물 내온 빨래를 바자에
널며 무심히 안방을 보았다. 옥점이가 오늘은 무슨 생각을 하고,
수를 놓으며 선비를 오라고 손짓하였다.
선비는 또 무슨 말을 물어 보려는가 하고 가슴이 두근두근하였다.
그리고 서울 손님이 안방에 있는가 하고 두루두루 살펴보니, 으레 있을 그가
어째서 보이지를 않았다. 오늘 아침에 갔는가 하고 선비는 생각하며 빨래를
다 널고 나서 안방으로 들어왔다.
 
“선비야, 너 이 수 좀 배우라우.”
 
선비는 옥점이가 이 수를 놓을 때마다, 한번 나도 해보았으면 하고
 몇 번이나 생각하였던 것이다.
 
“할 줄 알어야지.”
 
“뭘 이렇게 하면 되는데.”
 
소나무 아래로 백학 한 쌍이 조는 듯한 그림이다.
 선비는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이것도 학교에서 배우나?”
 
“그럼 배우고말구. 이것뿐만이 아니다, 별 그림이 다 있다.”
 
선비는 오색으로 빛나는 수실을 보며, 나도 저런 실로 한 번만 놔보았으면
하고 차츰 얽혀지는 학의 날개를 보았다.
 
“이 그림 좋지? 이것은 우리 선생님이 고안해 그리신 게야.
  참 예술적이 아니냐.”
 
선비는 무슨 말인지 그의 말하는 것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였다.
다만 이 그림이 훌륭하다는 것을 자랑하는 셈인 모양이다.
그렇게 어림해 들었다.
 
“수라는 것은 별것이 아니어. 사람사람마다 제각기 좋아하는 산수나 무슨
  짐승 같은 것을 종이에 옮겨 그려 놓고, 실로 이렇게 얽으면
  수가 된단 말이어.”
 
옥점이는 묻지도 않는 말을 이렇게 늘어놓고 있다. 그것은 선비가
수놓는 것을 몹시 부러워하는 줄 아는 때문이고, 더구나 건넌방에 앉아
그의 어머니와 무슨 이야기를 하는 신철에게 자기가 이렇게 수놓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함이다. 막연하나마 신철이가 이렇게 일을 하는 것을
기뻐하는 줄 알기 때문이다.
선비는 옥점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그러면 수라는 것은 자기의 좋아하는 바
어떤 것이나 그려서 실로 얽어 놓으면 되나 하고 그의 하던 말을
다시 생각하였다. 옥점이는,
 
“넌 어떤 것을 그려 이렇게 놓고 싶니? 말하면 내 그려 주마,
  그리고 실도 주고.”
 
선비는 이런 후한 말에 어떻게 가슴이 뛰는지 몰랐다. 그리고 저 고운 실을
가지려니! 하니 앞이 캄캄하도록 좋았다. 선비는 머리를 숙여 생각해
보았다. 불타산? 원소? 무엇무엇을 생각하다가 선뜻 짚이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머리를 들고 말을 하려니 입술이 떨어지지를 않는다.
옥점이는 그의 뺨을 바라보며 어젯밤 일이 휙 지나친다.
 
“얼른 말해 봐.”
 
“난 몰라.”
 
“애이, 말하면 이 실도 준다니까.”
 
“난 달걀 낳는 것을…….”
 
“애이! 숭해라! 그게 또 뭐야!”
 
옥점이는 크게 소리쳤다. 선비는 얼굴이 빨개졌다.
어느덧 그 더운 팔월도 하루를 남기고 다 지나 버렸다. 옥점이와 신철이는
내일 아침차로 상경하기 위하여 모든 준비를 하였다.
옥점 어머니는 고리에 옷을 골라 넣으며 곁에서 시중드는 선비를 보고,
 
“이애 널랑 저 빠스껠라던가? 저것 말이다. 그게다 계란을 담아 놔라.”
 
선비는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 동안 옥점이가 아니면 계란 모은 것이
근 백 개는 되었을 터인데 옥점이가 내려온 후로부터 매일같이 낳는 계란을
하루도 건너지 않고 먹어 버렸다.
그것도 제 손으로 갖다가 먹었으면 좋겠는데 언제나 선비를 보고 갖다
달라고 하여서는 먹곤 하였던 것이다. 그때마다 선비는 웬일인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쉬움에 가슴이 울울하여지곤 하였다.
선비는 가만히 일어나서 광으로 나왔다. 그리고 독 위에서 계란 바구니를
내어 들었다. 전 같으면 이 계란 바구니가 얼마나 귀하고 중하게
보였으리요마는, 오늘은 반대로 바구니를 보기도 싫었다. 그리고 바구니
속에 하나하나 모은 그 귀여운 계란을 맘대로 하면 내어던져 모두 깨치고
싶은 감정이 울컥 내밀치는 것을 코허리가 시큰하도록 느꼈다. 글쎄 매일
같이 먹어 그만큼 먹었으면 쓰지, 이걸 또 가져가겠대, 참! 광 문턱을
넘어서며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선비가 마루로 올라서다가
넘어질 뻔하며, 계란 두 알이 굴러나 깨졌다. 옥점이는,
 
“이애! 계란.”
 
소리를 지르고 내달아온다. 그리고 계란 바구니를 앗아 빼었다.
 
“왜 그 모양이냐, 이런 것 들 때에는 조심해 다니는 게 아니라, 뭐냐,
  네가 아무리 가사에 능하다고 하지만 이런 일은 잘 못 하는구나,
   응 글쎄…….”
 
신철이가 듣도록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신철의 앞에서 선비의 결점을
잡은 것이 얼마나 통쾌하였는지 몰랐다. 뒤미처 옥점 어머니가 옷을 든 채
나왔다. 그리고 딸과 선비를 마주보다가,
 
“이애 이년아, 하마트면 큰일날 뻔했구나, 그게 웬일이냐.
  계집년이 천천히 다니는 게 아니라 되는 대로 뛰다가…… 글쎄.”
 
모녀의 공박을 여지없이 받은 선비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여태 참았던
설움이 일시에 폭발되는 것을 깨달았다. 선비는 쓸어 나오는 울음을
억제하며 섰노라니 옥점 어머니가,
 
“어디 무슨 일이나 맘놓고 시킬 수가 있어야지. 내가 안 돌아보면 일이
  안 되니까. 나이 이십 살이나 가차와 오는 게 왜 그 모양이냐?
  어서 넌 부엌에 나가서 무슨 일이든지 하구 할멈을 들여보내라!”
 
마루가 울리도록 소리를 지른다. 선비는 부엌으로 나왔다.
 할멈은 눈이 둥그래서 마주 나왔다.
 
“왜, 왜 그려?”
 
선비는 찬장 곁의 시렁을 붙들고 흑흑 느껴 울었다. 모녀한테 욕먹은 것도
분하지마는 봄 내 모아 온 계란을 한 개도 남김 없이 빼앗긴 것이 더욱
분하였다. 눈물이 술술 쏟아지면서도 그 눈에는 옹골차고 예쁘장스러운
타원형의 계란들이 수없이 나타나 보인다.
 
“할멈, 어서 들어와!”
 
옥점 어머니의 호통소리에 할멈은 뛰어 들어가며 눈물 흔적을 없이 하였다.
웬일인지 선비가 울면 할멈은 번번이 따라 울곤 하였던 것이다.
할멈이 들어오니 옥점 어머니는,
 
“아, 글쎄 선비년이 계란을 깨쳤구려.”
 
“뭐유?”
 
할멈도 놀랐다. 그리고 전일 계란을 들고 귀여워하던 선비의 모양이
 휙 떠오른다.
 
“얼마나 깨쳤나유?”
 
“얼마나? 뭐…….”
 
조금 깨쳤다고는 말하기 싫어서 이렇게 우물쭈물하고 나서,
 
“옥점이가 아니면 다 깨칠 게지. 그런 것을 옥점이년이 얼른 받았다니.
  아 그년, 그년이 이전 제법 살림의 일을 다 안다니.”
 
입에 침기가 없이 옥점이를 칭찬한다. 할멈은 수굿하고 옷을 고르며
다 제 자식이면 아무흉도 없고 곱게만 보이는 게다 하였다.
 옥점이가 들어왔다.
 
“어머이, 난 그런 것은 싫어요. 그게 뭐야, 누가 껄껄해서 그것을 입어.”
 
어머니가 고리에 넣은 광목 바지를 보며 옥점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럼 뭘 입겠니?”
 
“사 입지, 내의를. 이런 것…… 저 할멈이나 줘요.”]
 
옥점이는 광목 바지를 할멈에게 던졌다. 할멈은 꿈칠 놀랐다.
옥점 어머니는 광목 바지를 냉큼 주워서 농 속에 넣으며,
 
“너 안 입으면 나 입겠다.”
 
할멈은 광목 바지를 하나 얻어 입는 횡수가 돌아오는 줄 알고 주름잡힌
그의 얼굴이 몇 번이나 경련을 일으키어 벌렁벌렁했는지 몰랐다.
그러나 옥점 어머니의 그 얄미운 행동에 할멈은 생각지 않은 섭섭함이 그의
가슴을 찌르르 울려 주었다. 그리고 나프탈린의 독한 내가 한층더 그의 숨을
꾹 막아 주는 듯하였다. 그래서 그는 머리를 돌리며
 재채기를 두어 번하고 나니 눈물까지 흘렀다.
 
“정, 어머이, 계란은 신철 씨가 저 바스켓에다 넣겠다구 하우.
  그러면서 짚이든지 무어든지 밑에 받칠 것을 가져오라구 해요.”
 
“응 아이구! 안심찮아라. 내 바쁜 것을 생각해서 그러누나.
  사람인즉은 참말 진짜다. 할멈 그렇지? 어쩌면 계집애도 그리 찬찬치
  못하겠는데 항 장부로 태어나서 그렇단 말이우. 에그
  네 그 본떠야 헌다!”
 
옥점이는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저 할멈, 벽장 속에서 솜 꺼내 주.”
 
할멈은 갑자기 솜은 무얼 하려누 하고 벽장을 열고 솜보를 꺼내었다.
그리고 솜을 뒤져 보이며,
 
“어떤 것을…….”
 
“아이그 그것 못써! 서울까지 갈 것을 그런 낡은 솜을 넣으면 되나,
  그 밑의 햇솜을 주.”
 
할멈은 그제야 계란 밑에 놀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솜보 밑에서
말큰말큰한 햇솜을 꺼내어 옥점이를 주었다. 옥점이는 무엇이 그리 급한지
휙 빼앗는 듯이 받아 가지고 쿵쿵 뛰어 나간다. 할멈은 물끄러미 그의
뒤꼴을 바라보며 작년 가을에 따들이던 목화 송이를 생각하였다.
말은 엿 마지기라 하나 엿 마지기 좀 넘는 듯한 앞벌 목화밭에서
선비, 할멈, 유서방이 해를 꼭 지우며 목화를 따곤 하였다. 그러나 탐스러운
목화 송이에 취하여 지리한 것을 모르고 그 목화를 따곤 하였던 것이다.
한 송이 또 한 송이를 알알이 골라 가며 치마 앞이 벌어지도록 따서 모은
그 목화 송이! 목화나무에 손이 찔리고 발끝이 상하면서 모은
저 목화 송이! 머리가 떨어지는 듯한 것을 참고 이어 나른 저 목화 송이!
자기들에게는 저고리 솜조차도 주기 아까워 맥빠진 낡은 솜을 주면서,
계란 밑에 놓을 것은 서울 갈 것이니 햇솜을 준다. 여기까지 생각한 할멈은
눈가가 빨갛게 튀어오르며 다시 한번 재채기를 하였다.
 
“오뉴월 고뿔은 개도 안 앓는다는데 할멈은 웬일이유.”
 
우리는 개만두 못하지유! 하고 입술이 벌어지는 것을 도로 삼켜 버렸다.
그리고 옷을 뒤지는 그의 손에는 아직도 햇솜을 만지던 말큰말큰한 감이
떠나지를 않았다. 그리고 이 가을에 그 많은 목화를 또 따서 이어 날라야
하겠군! 하는 생각에 한숨을 푹 쉬었다.
 
“글쎄 할멈, 저 건넌방 손님이 대학당을 다니는데 우리 조선서는 끝가는
  학교라우, 그러구 오는 봄에 졸업하게 되면 아주 월급 많이 받고……
  아이고 무엇이 된다나?”
 
머리를 돌려 생각하더니,
 
“잊어서 모르겠군! 그러니 우리 옥점의 신랑감 되기 부끄럽지 않지?
  난 이전 내일 죽어도 맘을 놓아…….”
 
저 혼자 흥이 나서 주고받고 한다. 할멈의 귀에는 이런 말이 한 마디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 집에 오래 있을수록 일만 해주었지, 옷 한 가지
변변하게 얻어 입지 못할 터이니, 그만 이 가을철 들면 어디로 나갈까?
하는 생각이 금시로 든다. 그러나 마침 나가더라도, 무손한 자기로서 별
신통수는 없을 터이고 어떻게 한담? 어서 죽기나 해도 좋으련만…….
 
“할멈, 우리 옥점이 혼례식을 언제 하는 게 좋겠수?”
 
할멈은 무슨 말인지 잘 개어 듣지 못했다.
 그래서 멍하니 옥점 어머니의 얼굴만 바라본다.
 
“우리 옥점이 혼례식 말이어.”
 
“네.”
 
또 그 말을 꺼내누나 하고 머리를 숙였다.
 
“언제쯤 하는 게 좋을까?”
 
“글쎄요…….”
 
“남들은 가을에 잘 하는데, 우리도 이 가을에 했으면 좋으련만 어찌들이나
  할라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호호, 요새들은 저희들끼리 어쩌구 어쩌니까,
  우리 늙은 것들은 굿이나 보다가 떡이나 먹을 수밖에 없단 말이어.”
 
요새 옥점 어머니는 생각하느니 이것뿐이었던 것이다. 할멈은 잔치를 하게
되면 올해도 햇솜 구경을 못 하겠구나 하였다.
이튿날 아침, 컴컴해서 일어난 신철이는 타월과 비눗감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벌써 유서방은 물을 다 긷고 닭 모이를 주고 있다.
그리고 부엌에서는 나무 꺾는 소리가 딱딱 하고 들린다. 신철이는 중문을
나가며 얼른 부엌을 돌아보았으나 아직도 컴컴해서 누구가 누구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뿌연 속으로 아궁에서 비쳐 나오는 불빛만이
보일 뿐이다. 그는 곧 울고 싶은 감정을 느꼈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선비를
한번 마주앉아 말 한마디 건네어 보지 못하고 떠날 생각을 하니 그러하였던
것이다. 그는 큰대문을 나서면서 한참이나 망설망설하였다. 무엇 때문에?
어째서 이렇게 망설이는지 자신도 모르고 한참이나 빙빙 돌다 마침 울 뒤로
갔다. 여기 와서 울바자 새로나 한번 더 선비의 얼굴을 볼까 하는
실끝 같은 희망을 가지고 왔으나 그것은 뻔히 안 될 것이었다.
그는 우두커니 서서 차츰 새어 오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가 이제 떠나면 용이해서는 여기 오지 못할 것을 생각하며 그 동안
선비는 어떤 곳으로 시집을 가겠지! 그래서 아들도 낳고 딸도 낳고 농사를
지어 가면서 그 고운 얼굴에도 주름살이 한둘 잡힐 터이지! 하는 센티멘털한
생각이 그의 가슴을 힘껏 울리어 주었다.
따라서 이 순간 자기가 안타깝게 선비를 그리워하던 그 뜻조차도 영원히
스러질 한낱의 비밀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을 저 하늘가를 바라보면서 차츰
농후해지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한숨을 푹 쉬며 원소를 향하여 걸었다.
그는 매일 아침마다 원소에 가서 세수를 하고 체조를 하고 휘파람을 불면서
행여나 선비를 만나 볼까 하였다. 그러나 그날 버들잎을 뿌리며 먼빛으로
바라본 그 후로는 한 번도 원소에 오는 선비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몇 번 할멈은 보았으나, 선비는 웬일인지 만날 수 없었다. 선비라는
그 처녀도 역시 맞당해서 보면 별 인간은 아니련만…….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원소까지 왔다. 원소의 푸른 물은 말없이 그를
반겨 맞는 듯, 그리고 석별의 인사를 그 가는 물소리로 전해 주는 듯하였다.
그는 이슬이 방울방울 매어달린 풀숲을 들여다보며, 자연의 조화를
다시 한번 느꼈다. 그 때 거위 한 쌍이 긴 목을 빼고 푸른 물 위에
흰 그림자를 비추며 헴쳐 돌아간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이 거위 한 쌍!
얼마나 다정하고도 순결한 감을 일으켜 주는지…… 그는 벌떡 일어났다.
아침 연기에 어린 이 용연 동네! 이 역시 오늘 아침으로 마지막이다.
선비를 꼭 한 번만 만나 보고 그의 포부를 들었으면…… 그의 움직이던
시선이 옥점의 집에 멈추었을 때,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어제 낮에 옥점의 모녀한테 개물리듯 하던, 선비의 측은하고도
아리따운 자태가 눈앞에 보이는 듯하였다. 그리고 이리의 굴 같은 저 옥점의
집에서 온갖 모욕을 받으며 그날그날을 지내는 선비! 그 선비를 그 자리에서
구원할 의무도 역시 자기가 져야 할 것 같았다. 그가 국문이나 아는지?
어떻게 하든지 그를 서울로만 끌어올렸으면 좋겠는데…… 하였다.
그는 두루두루 또 생각해 보았다. 선비를 서울로 올리려면, 자기가 옥점이를
잘 꾀었으면 쉽게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옥점이와 결혼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그 오활한 성격! 더구나 미국 영화배우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애교가 넘쳐흐르는 그 눈매! 길 가던 남자라도 단박에 홀릴 만한
그의 독특한 표정, 그것이 신철이로 하여금 더욱 싫증나게 하였다.
 
도회지에서 어려서부터 자란 그였건만, 보고 듣는 것이 그런 사치한
것뿐이었건만 그는 웬일인지 몰랐다. 그러므로 그는 동무들에서,
변태적 성격을 가졌다고까지 조롱을 받은 때도 있다. 그러나 이번 여름
이 동네 와서 뜻하지 않은 선비를 만난 후로는 차디찬 그의 성격도 어디로
달아났는지 그 스스로도 놀랄 만큼 되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 선비를 서울로 올려 갈까를 곰곰 생각하며
그가 국문이라도 알면 자기의 이러한 뜻을 몇 자 지어서라도 전달하고
싶은데 역시 국문이나마 배웠을 것 같지 않았다.
그는 포켓에서 시계를 내어 보면서 점점 가슴이 죄어들었다.
그는 시간이 급하므로 세수를 하려고 언덕 아래로 내려와서 물에 손을
담그며 바라보았다.
푸른 물 위에 핑핑 돌아가는 저 거위! 그는 급한 것도 잊고 거위를 향하여
물을 후르르 뿌리고 또 뿌렸다. 한참이나 이렇게 하던 그는 정신이 번쩍
들어 세수를 하고 내려왔다. 그가 덕호의 집 울바자를 돌아오다 우뚝 섰다.
울바자를 타고 넘어오는 저 손을 보았기 때문이다.
신철이는 그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호박잎에 반만쯤 가린 호박 한 개가
얼핏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손은 이슬에 젖은 호박을 뚝 따가지고 천천히
바자를 넘어가고 있었다. 신철이는 무의식간에 한 걸음 다가서며,
저게 누구의 손일까? 하고 생각할 때, 그 손은 없어지고 말았다. 그 손!
마디가 굵고 손톱이 갈리어서 얼핏 누구의 손임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신철이는 얼른 바자 곁으로 가서 바싹 붙어 서며, 그 손의 임자를 찾았다.
그는 벌써 나뭇가리 옆을 돌아서 부엌으로 들어가는 치맛귀가 얼핏 보이고
사라진다. 누굴까? 할멈의 손이다! 선비의 손이야 설마한들 그럴 수가
있을까? 아무리 일을 한다고 해도 나이 있는데……
그렇지는 않아! 않아! 그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부엌에서 쓸어 나오는 그릇 가시는 소리, 도마 소리,
옥점의 호호 웃는 소리가 뒤범벅이 되어 쓸어 나온다.
 
그때, 그의 머리에는 끝이 뾰죽뾰죽한 가는 손가락이 떠오른다.
문득 그는 선비의 손! 하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손으로 인하여
불쾌하였던 생각이 스르르 풀리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선비의 손이야
그럴 리가 있나? 그렇게도 고운 선비에게…… 하며 언젠가 무의식간에 본
선비의 그 손이 오늘 아침 미운 그 손으로 인하여 어림없는 착각이 생겼던
것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이렇게 해석을 하고 나니 그는 한층더 선비가
그리워지고 그가 떠날 시간을 좀더 연장시키고 싶었다.
 
“유서방, 저 산에 가서 어서 서울 손님 나려오시라게.”
 
옥점 어머니의 이러한 말을 들으며 신철이는 집으로 들어왔다.
 
“아이 어서 들어와서 진지 자시고 떠나요.”
 
옥점이는 언제나 마찬가지로 아침 화장을 산뜻하게 하고 마루에 섰다가
신철이를 맞는다. 신철이는 분내를 강하게 느끼며 마루로 올라앉았다.\
안방에 앉았던 덕호는 나오며,
 
“오늘 가면 언제들이나 또 오려누.”
 
신철이가 덕호에게 대하여 말을 낮추어 하라고 한 후부터
 덕호는 이렇게 하게를 하였다.
 
“글쎄요…… 이번 와서 댁에 폐를 많이 끼쳤습니다.”
 
“아, 원…… 별소리를 다 하눈.”
 
길게 지어진 신철의 눈을 바라보면서, 옥점이와의 결혼을 이 자리에서 대강
말로라도 물어보고 결정할까? 하고 얼른 생각힌다. 그러나 저희들끼리는
벌써 내약이 있어 가지고 있는 모양이니 언제나 저희들이 먼저 말하기까지
가만히 있으리라 하여, 잠잠하고 말았다. 더구나 요새 공부한 것들은
혼인까지라도 저희들끼리 뜻이 맞아 가지고 되는 것을 알므로 그냥
내버려두자는 것이다. 밥상이 들어온다. 덕호는 넘성해서 들여다보았다.
 
“이거 찬이 없어 되었는가, 어쩌나 많이 먹게…… 그러구 이애,
  널랑은 저 닭국을 먹지 마라, 그 약 먹으면서는 고기는 일절 먹지
  않아야 한다더라.”
 
옥점이는 헬금 쳐다보았다.
 
“아버지 난 그 약 안 먹을 테야, 써서 먹을 수가 있어야지.”
 
“엣, 그년! 애비가 네 몸에 좋겠기에 먹으라는데…… 그 앙탈이냐……
  자네가 좀 착실히 모르는 것은 일러주게. 키만 컸지,
  귀히만 자라서 뭘 알아야지…….”
 
귀여운 듯이 옥점이와 신철이를 번갈아 본다. 신철이는 속으로 놀랐다.
그 말이 심상한 말이 아님을 깨달으며, 웬일인지 얼굴이 좀 다는 것을
느꼈다. 옥점이는 술을 들며 눈을 내리떴다.
 그의 눈썹은 너무 짙게 그린 듯하였다.
 
“어서 많이 먹우.”
 
부엌에서 옥점 어머니가 들어오며 이렇게 말한다.
 신철이는 저를 들다가 흘금 바라보았다.
 
“네, 많이 먹겠습니다.”
 
“이애, 그 국 한 그릇 더 떠오너라.”
 
뒤미처 선비가 국그릇을 들고 마루로 통한 부엌문에 비껴선다.
펄펄 오르는 국김에 불그레하니 타오르는 그의 얼굴! 그리고 언제 보아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의 눈등의 검은 사마귀는 그의 침착한 성격을 대표한
듯하였다. 그때 신철이는 옥점의 강한 시선을 전신에 느끼며 옥점 어머니가
주는 국그릇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이 국은 선비가 나에게 마지막 주는
국이거니 생각이 들자, 그의 손은 약간 떨렸다. 동시에 몇 달 동안 누르고
눌렀던 정열이 뜨거운 국그릇을 향하여 쏟아지는 것을 그는 느꼈다.
가을철 들면서부터 덕호는 읍의 출입이 잦아졌다. 그리고 안 입던
양복까지도 말쑥하게 입는 것을 가끔 볼 수가 있었다. 읍에 출입이
잦으면서부터 덕호는 간난이를 내어보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읍에
기생첩을 했다거니 처녀첩을 했다거니…… 하고 수군수군하는 말이
많아졌다. 그 바람에 옥점 어머니는 화가 치받쳐서 집안에 붙어 있지 않고
남편의 뒤를 따라 역시 읍 출입이 잦았다.
요새도 부부가 들어간 지가 벌써 닷새나 되어서도 읍에서 아무 소식이
없었다. 선비와 할멈은 그 크나큰 집에서 쓸쓸하게 지내었다.
밤이면 일하러 갔던 유서방이 와서 사랑에서 자나 그 역시 하루 종일
시달린 몸이라, 잠만 들면 그뿐이었다. 그러므로 할멈과 선비는 밤에도
맘놓고 자지를 못하고 방에 불을 끄지 못하였다.
오늘 밤도 할멈과 선비는 낮에 따온 목화송이를 고르며, 모녀같이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였다. 윗목에 놓은 화로에서 보글보글 끓던 두부찌개가
차츰 소리가 가늘어지다 이젠 끊어지고 말았다. 선비는 화로를 돌아보았다.
 
“오늘도 어머니가 안 오시려는 게요.”
 
“글쎄 이제야 오기 글렀지, 아마 퍽 오랬을 게다.”
 
벽에 걸린 괘종시계를 쳐다본다. 선비도 흘금 쳐다보았다.
 시계는 열한시 반을 가리켰다.
 
“벌써 열한시 반이어요.”
 
할멈은 멍하니 바라보며,
 
“난 저것을 암만 봐도 모르겠으니…… 저 큰바늘은 무엇 하고 작은 바늘은
  무얼 하는 게냐 ? ”
 
선비도 이렇게 꼭 집어 물으니, 분명히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빙긋이 웃으며,
 
“다 시간 보는 게지, 뭐유.”
 
할멈은 머리를 끄덕끄덕하였다. 그리고 목화 송이 속에 묻힌 고추 꼬투리를
골라 바구니에 넣었다.\
 
“이애, 올해두 고추섬이나 좋이 딸 것 같다. 그 밭에 목화를 갈지 말고
  다 고추를 심어 봤으면 좋겠더라.”
 
“목화는 어데 갈구요?”
 
“목화는 저 감골 밭에 갈구. 그 밭이 목화가 잘될 밭이니라.
  목화는 너무 땅이 걸어도 좋지 않구,
  가는 모래가 좀 섞인 땅이 좋으니라.”
 
선비는 목화 송이를 들어 할멈에게 보였다.
 
“이거 보세요. 참 이런 것은 꽤 큰 송이지요. 이런 것은 몇 송이만 가져도
  저고리 솜은 넉넉하겠어! 아이 참 크기도 해.”
 
휘황한 남포등 아래 빛나는 이 목화 송이는 얼마나 선비의 조그만 가슴을
흔들어 주었는지 몰랐다. 그는 문득 이런 것도 잘 그려 가지고 수놓으면
좋을지 몰라? 하였다. 그때에 비단을 찢는 듯한 옥점의 조소가 들리는
듯하여 그는 얼핏 머리를 숙였다. 따라서 그가 싫은 생각이 머리털 끝까지
훌썩 치미는 것을 느꼈다. 할멈은 가만히 말을 내었다.
 
“올 가을에는 이 솜으로 우리 둘의 저고리 솜이나마 주었으면
   좋지 않겠니? 네.”
 
할멈은 내리덮인 눈가죽을 번쩍 들고 목화 송이에서 티끌을 골라 낸다.
그리고 한숨을 푹 쉰다. 선비는 할멈의 저고리에 두던, 바람 가리지 못할
시커먼 솜을 생각하였다. 그 솜은 몇 해나 묵었는지 맥이 없고 가는 심사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잡아당기어 늘리려면 뚝뚝 끊어졌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할멈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그의 눈가는 벌써 뻘겋게 튀어오른다.
 
“할머니, 올해야 좀 주겠지! 뭘, 작년에는 목화를 전부 팔기 때문에
  그랬지만 올해야 안 팔겠지우.”
 
“이애 그만둬라, 여름에 옥점이가 가져가는 계란 받침까지두
   이 솜으로 했단다, 너 아니?”
 
선비는 계란이란 말에, 계란 바구니를 들고 나오다가 넘어질 뻔하던 생각을
하며 무의식간에 한숨을 호 하고 쉬었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서울 손님이
휙 떠오른다. 그들은 참말 복이 많은 사람들이어! 하였다.
옥점이와 서울 손님이 결혼하여 재미나게 살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앞길은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수록 캄캄하였다. 그때 첫째의 얼굴이
휙 떠오른다.
전에는 그런 것을 몰랐는데 이 가을철 들면서부터 분주해서 일할 때는
모르겠으나 밤이 되어 자리 속에 누우면 웬일인지 잠이 오지를 않고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끝에 번번이 첫째가 떠오르곤 하였다.
마침 중대문 소리가 찌꺽 하고 나므로 그들은 놀라 서로 바라보았다.
신발 소리가 저벅저벅 나므로 할멈은,
 
“유서방이우?”
 
뒤미처 문이 열리며 유서방과 덕호가 들어온다. 그들은 뜻하지 않은 덕호가
들어오매 놀라 일어난다. 할멈은,
 
“영감님, 어떻게 밤에 오셔유.”
 
유서방은 비칠거리는 덕호의 손을 붙들고 들어와서 아랫목에 앉힌다.
갑자기 술내가 후끈 끼친다. 덕호는 눈을 번쩍 뜨고 선비와 할멈을 본 후에
드러누웠다. 선비는 얼른 베개를 꺼내서 유서방을 주었다.
 
“선비야, 나 다리 좀 주물러 다우.”
 
혀 곱은 소리로 덕호는 이렇게 말하였다. 선비는 가슴이 서늘해지며,
덕호의 곁으로 갈 생각이 난처하였다. 할멈은 속히 주무르라는 듯이
선비에게 눈짓을 하여 보였다.
 
“큰댁은 안 오시는가요.”
 
“음, 옥점 어미? 온정, 온정, 아이구 취한다, 푸푸.”
 
침을 뱉으며 덕호는 발짓 손짓을 하였다. 그들은 멍하니 덕호를 바라보며,
뭐라고 꾸지람이나 내리지 않으려나 하는 불안에, 덕호가 기침을 할 때마다
눈을 크게 뜨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진지 지을까유?”
 
한참 후에 할멈이 이렇게 물었다.
 덕호는 눈을 번쩍 뜨고 할멈과 선비를 보았다.
 
“아 아니, 선비야 나 다리나 좀 쳐다우.”
 
선비는 얼굴이 빨개지며 할멈을 쳐다보았다. 유서방과 할멈은 선비를
바라보며 어서 다리를 치라는 뜻을 보이었다.
 
“다리 쳐라. 이년 같으니, 응 아이구, 다리야, 다리야.”
 
다리를 방바닥에 쿵쿵 들놓았다. 할멈은 선비의 옆구리를 꾹 찌르며 덕호의
다리를 보았다. 선비는 하는 수 없이 덕호의 곁으로 갔다. 그리고 다리를
붙잡으며 툭툭 쳤다. 양복 바지에도 술을 쏟았는지 술내가 후끈후끈 끼쳤다.

 선비는 약간 눈살을 찌푸렸다.
 
“어, 내 딸 용하다.”
 
덕호는 머리를 넘성하여 선비를 보다가 도로 누우며,
 
“에, 취한다. 참 취한다. 어서 자네는 나가 자지.”
 
덕호는 유서방을 바라보았다. 유서방은 졸음이 꼬박꼬박 오나 덕호의
앞인지라 혀를 깨물고 앉아서 참다가 말이 떨어지자마자 곧 일어났다.
 
“할멈, 내일 밥을 일찍 하게.”
 
할멈은 황망히,
 
“예!”
 
하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머리를 숙이며 덕호의 시선을 피하였다.
 
“어서 나가 자게. 그래야 밥을 일찍 하지.”
 
“예.”
 
할멈은 일어났다. 선비는 일어나는 할멈을 보며 따라 일어났다.
 
“허…… 거 정 내일부터는 면사무소에를 간단 말이지.
  하기 싫어도 하는 수밖에…… 면장인지 동네장인지, 허허 허허.”
 
덕호는 혼자 하는 말처럼 이렇게 중얼거리며 웃었다. 할멈과 선비의 시선은
마주쳤다. 그리고 영감님이 면장이 되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자 그들도
좋았다.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미덥지 못하던 덕호가 차츰 미더운 것을
깨달았다.
 
“선비야 자리 펴다우, 그러구 너도 할멈과 같이 나가거라.”
 
선비는 가벼운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어떤 무거운 짐을 벗어난 듯이
몸이 가뿐하였다. 그는 냉큼 자리를 펴놓고 나오다가 다시 돌아서서 등불을
가늘게 하고 할멈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영감님이 면장을 하신 게지?”
 
건넌방으로 건너온 할멈은 말하였다. 선비는 빙긋이 웃으며 자리를 깔았다.
 
“이애 영감님이 잘나기는 하셨니라. 글쎄 면장까지 했으니
  이전 이 용연서는 누가 그를 당 하겠니.”
 
선비는 할멈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베개 밑에 손을 넣고 다리를 쭉 폈다.
해종일 피로해진 몸이 순간으로 풀리는 듯하였다. 그는 가볍게 한숨을
몰아쉬며, 덕호와 같은 아버지를 둔 옥점이가 끝없이 부러웠다.
나도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면…… 할 때, 앞집 서분 할멈에게
들은 말이 얼핏 생각히었다.
 
“너의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의 말이 덕호에게서 맞은 것이 원인이 되어
   돌아가셨다더라”
 
선비는 그 후부터 틈만 있으면 이 말이 문득 생각히었다. 그러나 그 말이
참말 같지는 않았다. 지금 덕호가 선비에게 구는 것을 보아서……
그는 지금도 굳게 그 말을 부인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돌아누웠다. 그리고 무심히 머리맡에 놓인 목화 송이를 집어다
 볼에 꼭 대었다.
 
“선비야!”
 
하는 덕호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선비는 냉큼 머리를 들었다.
 
“선비야.”
 
부르는 소리가 재차 들린다. 선비는 할멈을 흔들었다.
 
“할머니, 할머니.”
 
할멈은 응 소리를 지르며 돌아눕는다.
 
“왜 그러니?”
 
“영감님이 부르시어.”
 
“나를?”
 
“아니 나를 부르시어.”
 
“이애 그럼 들어가 보려무나.”
 
“할머니두 일어나라우, 같이 들어가자우.”
 
“이애, 무슨 일이 있냐? 무슨 심바람 시키려고 그러시는데.”
 
졸음이 오므로 일어나기 싫어서 할멈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선비는 기어코 할멈을 일으키어 가지고 마루까지 나왔다.
 
“부르셨습니까?”
 
“오냐 선비냐.”
 
“네.”
 
“물 떠오너라.”
 
할멈은 냉큼 건넌방으로 들어가고 선비는 부엌으로 가서 물을 떠가지고
마루로 오니 할멈이 없다. 그래서 머뭇머뭇하다가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조심히 들어갔다. 술내가 가득한데 가는 불빛에 덕호의 머리만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선비는 얼른 등불을 돋우었다. 그리고 덕호의 앞으로
갔다. 덕호는 아까보다 술이 좀 깬 모양인지 눈 뜨는 것이 똑똑하였다.
 
“술 먹은 사람 자는 데는 으레 물을 떠다 두어야 하느니라.”
 
덕호는 이불로 몸을 가리고 일어앉아 물그릇을 받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선비는 가슴이 뭉클해지며 되게 꾸지람이 내리려는가 하여 머리를 숙인 채
발끝만 굽어보았다.
 
“참 내가 잊었구나! 그제 옥점이년의 편지에 너를 서울로 올려 보내라고
  하였구나! 공부를 시키겠다구.”
 
선비는 생각지 않은 이 말에 앞이 아뜩해지며 방 안이 핑핑 돌았다.
 
“그래 너 서울 가고 싶으냐? 내 말년에 아무 자식도 없어 너희들이나
  공부시켜 재미 붙이지, 붙일 곳이 있느냐.”
 
덕호는 언제나 술이 취하면 자식 없는 푸념을 하곤 하였다.
덕호는 한참이나 선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한숨을 푹 쉰다.
 
“잘 생각해서 말해라. 내가 너는 옥점이년과 조금도 달리 생각지 않는다.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마는…….”
 
그때 선비는 돌아가신 어머니나 아버지가 살아온 듯한, 그러한 감격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뭐라고 말하여 자기의 맘을 만분의 하나라도
표현시킬까, 두루두루 생각해 보나 그저 가슴만 뛸 뿐이지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덕호는 물 한 그릇을 다 먹고 빈 그릇을 내준다.
 
“오늘은 밤두 오랬으니 나가서 자구, 잘 생각해서 내일이나 모레지간에
  대답을 하여…… 너 하고 싶다는 대로 해줄 터이니…… 응.”
 
덕호는 감격에 취하여 더욱 발개진 그의 볼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덕호의 맘은 선비가 어떠한 요구를 하든지 다 들어 줄 것 같았다.
선비는 물그릇을 들고 불을 가늘게 낮춘 후에 건넌방으로 나왔다.
그리고 목화보 위에 칵 엎디었다.
 
“옥점아!”
 
그는 처음으로 옥점이를 이렇게 불러보았다. 캄캄한 방 안에 오직 할멈의
코고는 소리가 들릴 뿐이고 잠잠하였다. 그는 옥점의 그 얼굴을 생각하였다.
쌀쌀해 보이던 그 눈과 그 입모습! 사정없이 나가는 대로 말하던 그의 말!
그것도 지금 생각하면 그리워졌다. 동시에 그것이 참일까,
그가 나를 공부시키겠다고 서울로 보내라고 했다지? 그말이 참일까?
영감님이 술취한 김에 되는 대로 하신 말씀이 아닐까? 온가지 의문과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불을 켜고 목화 송이를
고르기 시작하였다.
한 송이 또 한 송이, 흰 목화 송이가 치마 앞에 모일수록 그의 생각도
이 목화 송이와 같이 덮이고 또 덮여, 어느 것부터 생각해야 좋을지 몰랐다.
어떡허누? 참말이라면 나는 서울을 가볼까. 그래서 옥점이와 같이 학교에도
다니고, 그러면 그 수놓는 것도 배우게 될 터이지! 하였다. 그때의 그가
부럽게 바라보던 가지가지의 색실 타래가 눈앞에 보이는 듯이 나타났다.
그는 목화 송이를 꼭 쥐고 멍하니 등불을 바라보았다. 서울을 가? 내가
그러면 이 목화는 누가 트나? 그리고 물레질은 누가 하고? 하며 혼곤히 자는
할멈을 돌아보았다. 그때 뜻하지 않은 첫째의 얼굴이 또다시 휙 떠오른다.
그는 머리를 돌리며, 그는 종내 여기서 살려나…….
 

해가 지고 아득아득해서야 개똥이네 마당질은 끝이 났다. 어둠 속으로
뿌옇게 솟아오른 나락더미! 나락더미를 중심으로 둘러선 농민들은
술에 취한듯이 흥분이 되어 있었다.
유서방과 덕호가 나왔다. 유서방은 들어가서 등불을 켜가지고 나왔다.
땃버리는 대두를 들고 나락더미 앞으로 가서 나락을 손으로 헤쳐가면서
말을 되었다.
 
“한 말이요는 가서요우.”
 
땃버리는 그 둥글둥글한 음성을 길게 빼어 가지고 소리 곡조로 마디마디를
꺾어 돌렸다. 뒤미처 쏴르륵 하고 섬 속으로 흘러들어가는 벼알 소리!
그들의 가슴은 어떤 충동으로 스르르 뜨거워지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의식간에 그들은 눈을 썩썩 비비치고 동무의 어깨를 누르며
바짝바짝 다가들었다. 그때마다 옆의 동무는,
 
“이 사람아, 넘어지겠구먼!”
 
허허 웃으며 그들은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한 섬, 두 섬, 석 섬, 볏섬은
차례로 묶여 놓인다. 그들은 제각기 몇 섬이 날까? 하는 호기심에
묶어 놓은 볏섬과 나락더미를 번갈아 비교해 보았다.
땃버리가 마지막 말수를 되어 볏섬에 부으며,
 
“열닷 섬 말이요는 가서요우.”
 
수심가라도 한 곡조 부르려는 듯이 그렇게 흥이 나서 음성을 내뽑았다.
 
“열닷 섬 닷 말! 잘은 났다!”
 
가슴을 졸이고 섰던 그들은 똑같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땃버리는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개똥이 어깨를 탁 쳤다.
 
“이 사람아 한턱 내야 되리. 올 농사는 자네네만큼 된 사람이 없으리!”
 
“암, 허허.”
 
개똥이는 이렇게 대답하며 흘금 덕호를 쳐다보았다. 덕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가 가만히 섰는 것을 보아 만족해하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곡식이 잘 나지 못한 때면 덕호는 잔걱정을 하며 가만히 서 있지를
못하고 왔다갔다하면서 밭을 잘 거두지를 못하였느니 미리 베어다가
먹었느니 하고 야단을 치곤 하였던 것이다.
유서방은 구루마를 갖다 대고 볏섬을 쾅쾅 실었다.
그들도 볏섬을 받들어 올려놓으며,
 
“무겁다! 참 벼 한 섬이 이다지도 무거운가!”
 
덕호가 들으라고 일부러 이렇게 말하였다. 덕호는 어둠 속으로 궐련만 뻑뻑
빨면서 섰더니,
 
“개똥이! 자네 여기서 다 회계 끝내고 말지! 후일에 다시 쓰더라도……
  응? 자네 빚내 온 돈이 얼마인지?”
 
개똥이 말을 들어 보려고 덕호는 이렇게 물었다. 개똥이는 덕호가
말하기 전부터 빚 말을 내지 않으려나 하는 불안에 가슴이 조마조마하였다가
마침 이 말을 듣고 보니 전신의 맥이 탁 풀렸다. 아무 대답이 없는 개똥이를
안타까운 듯이 바라보던 덕호는 저놈이 빚을 물지 않으려는 속이구나! 하고
어떻게 하든지 이 자리에서 볏섬으로 차지하지 않으면 못 받을 것 같았다.
 
“자네 십오 원 내온 것이 간 정월달이 아닌가. 그러니 이달까지
  꼭 열 달일세. 그래 이자까지 하면 이십 원이 넘네그리. 우선 벼 넉 섬은
  날 줘야 하네. 그래도 내가 삼사 원은 못 받는 속일세.
  그러구 비료값과 장리쌀은 으레 여기서 회계할 것이지…….”
 
유서방을 돌아보았다.
 
“어서 저기서 일곱 섬만 가져오게. 그래도 나는 십여 원을 받지 못하는
  셈일세. 그러나 할 수 있는가, 자네들도 농사를 해먹고 살아가야겠으니
  우리에게로 오는 반 섬과 자네게로 가는 반 섬 합해서 한 섬은 내가 주는
  것이니 그리 알게. 그것은 이번 농사를 잘 지었다는 것 때문이어, 허허.”
 
유서방은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볏섬을 낑 하고 져다가 구루마에 실어
놓는다. 그들은 이제까지 깜박 잊었던 하루 종일의 피로가 조수와 같이
밀려드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볏 짚단 위에 펄썩펄썩 주저앉았다.
그때 첫째의 머리에는 풍헌 영감의 모양이 휙 떠오른다.
입도차압(立稻差押)을 당하고 정신없이 아래윗동네를 미친 듯이 달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여보게 이런 법이 있는가, 벼를 베기도 전에…….”
 
그 다음 말은 막히어 하지 못하였다. 첫째는 무슨 말인가 하여 풍헌의 뒤를
따라 논까지 가 보았다. 논귀에 세운 조그만 나무판자에는 무슨 글인지
써 있었다. 풍헌은 그 나무쪽을 가리키며,
 
“글쎄 집달리라던가? 하는 양복쟁이가 이것을 꽂아 놓으면서,
  벼를 베지 못한다구 허두먼 …….”
 
풍헌은 이렇게 말하며 누릇누릇한 벼이삭을 바라본다. 첫째는 다가서며,
 
“누구의 빚을 얼마나 졌습니까?”
 
“아 덕호의 빚이지, 그것 좀 참아 달라구 하는데, 이렇게까지 할 게야
  뭐 있겠나! 전날 편지 배달부가 이런 것을 갖다가 주고 가두먼.
  그래 나는 그게 무엇인가? 하고 두었더니,
  글쎄 글쎄 이런 일이 날 줄이야 누가 꿈밖에나 생각하였겠나.”
 
풍헌은 거지 안에서 다 해진 편지봉투를 꺼내어 보인다.
첫째 역시 그것을 한 자 알아볼 리가 없었다.
그래서 편지봉투만 이리저리 만지다가 풍헌을 주었다.
 
“거게 뭐라고 했나?”
 
풍헌은 허리를 굽혀 들여다본다. 첫째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내니 알겠쉬까.”
 
“저 노릇을 어찌해야 좋겠나.”
 
“덕호한테 가봤습니까?”
 
“가보기를 이를까. 어젯밤에도 밤새껏 가서 졸랐네. 그래두 소용없네,
  이를 어쩌면 좋겠나. 자네 좀 가서 말해 볼 수 없겠나?”
 
쳐다보는 풍헌의 그 눈! 첫째는 그만 머리를 돌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달음으로 덕호한테 와서, 하다못해 주먹 담판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을 짐작하는 첫째는 애꿎은 한숨만 푹 쉬고
저 앞을 바라보았다.
불과 십여 일 이내에 베게 될 이 벼이삭!
벼알이 여물 대로 여물어서 머리를 푹 숙이고 있었다.
 
“잘 됐지! 저것 좀 보게나.”
 
풍헌은 벼이삭을 가리키고 달려가더니 벼이삭을 어루만지며 불타산을 멍하니
노려보았다. 그의 희뜩희뜩 센 수염 끝은 무섭게 흔들리고 있다.
첫째는 뭐라고 위로할 말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주위를 싸고
있는 공기조차도 무거운 납덩이 같음을 느꼈다.
풍헌은 논귀에 펄썩 주저앉으며, 무심히 물에 채어 무너진 논둑을
다시 고쳐 놓는다. 첫째는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 논이 읍의 사람의 논이라지유.”
 
“그래 읍의 한치수라는 어룬의 논인데…….”
 
그는 후 하고 숨을 쉬었다.
 
“그런 법두 있는가.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난 암만 생각해두
  모르겠어! 내일 읍에 들어가서 한치수 어른에게 물어 보겠네.”
 
“그렇게 합슈.”
 
첫째도 그런 법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풍헌은 벌떡 일어났다.
 
“난 지금 들어가 보구 오겠네.”
 
이렇게 말을 하고 읍 가는 길로 나선다.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황황히
걸었다. 첫째는 물끄러미 그의 뒷모양을 바라보다가 그가 산모퉁이를 지나간
후에 들어왔다. 며칠 후에 풍헌이 보이지 않으므로 누구에게 물으니 그는
벌써 어디론지 가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때에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아내와 어린것들을 데리고 바가지 몇 짝을 달고 떠났다고 하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첫째는 구루마 구르는 소리에 정신이 버쩍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 겸 동무이던 풍헌을 내쫓은 덕호가 또다시 개똥이를 내쫓고 자기를
내쫓으려는 것임을 절실히 느꼈다. 그때,
 
“여부슈, 내가 빚을 안 물겠답니까?”
 
개똥이 음성이 무거운 공간을 헤쳤다.
무엇보다도 일년 농사 지은 것이라고…… 그의 초가집 문전에나마 놓았다가
이렇게 빼앗기었으면 한결 맘이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벼 시세도 지금은
한 섬에 오 원이라 하나 좀더 있으면 육 원을 할지 팔 원을 할지 모르는데
이렇게 빼앗기기에는 너무나 억울하였던 것이다.
첫째는 개똥이 말을 듣자 무의식간에 욱 하고 달아갔다.
그리고 유서방을 단번에 밀쳐 넘어쳤다.
 
“뭐야 이게? 야들아! 다 오나라.”
 
남의 일이나 자기 일 못지않게 분하였던 그들도 욱 쓸어 나갔다.
그리고 구루마에 실은 볏섬을 끌어내렸다. 그리고 덕호를 찾았으나
그는 벌써 어디로 빠져 달아났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벼만 가져 봐라!”
 
개똥이가 호통을 하였다. 그때 저편에서 회중전등이 번쩍 하고 이리로 왔다.
그들은 순사가 오는구나! 직각되자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개 짖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었다. 그리고 신발 소리 또 신발 소리…….
이튿날 새벽에 개똥 어머니는 덕호네 집으로 갔다. 아직 대문은 걸린 채
그대로 있었다. 벌써 그가 어젯밤부터 이 문전에 몇 번이나 왔는지 몰랐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집으로 오다가, 또다시 무슨 생각을 하고 대문 옆으로
와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리고 안에서 누가 나오는가 하여 자주자주
문틈으로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검정개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그는 왔다갔다하면서, 이제 덕호를 만나 뭐라고 말할 것을 입 속으로 다시금
외어 보았다. 어제 밤새도록 생각해 온 이 말이건만, 이렇게 덕호네 문
앞까지 와서는 캄캄해지곤 하였다.
안에서 신발 소리가 나므로, 그는 조금 물러서서 동정을 살폈다.
덜그렁 하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찌꺽 열린다. 그리고 유서방이 다리를
절면서 나오다가 개똥 어머니를 보고 멈칫섰다.
 
“왜 왔소?”
 
유서방은 어젯밤 일을 생각하며 분이 왈칵 치밀었다.
개똥 어머니는 머리를 숙여 보이며,
 
“그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시우. 다 철이 없어 그 모양이지유.
  한때 살려 줍시우.”
 
“철없는 게 뭐야유, 그 새끼들이 철이 없어? 흥!
   이거 보우 내 다리가 병신 되었수.”
 
코웃음을 치고 나서 도로 들어간다. 개똥 어머니는 뒤를 따랐다.
 
“면장님 일어나셨수?”
 
“면장님은 왜 찾우?”
 
유서방은 흘금 돌아보았다.
 
“그저 한때 살려 주, 예? 살려 주, 예.”
 
개똥 어머니는 훌쩍훌쩍 울었다.
 
“난 몰라유. 그까짓 놈의 새끼들…… 사람의 은혜도 모르고 의리도 없는
  그놈들…… 김생 같은…… 에이.”
 
유서방은 이렇게 소리치며 들어간다. 개똥 어머니는 한참이나
머뭇머뭇하였다. 그때 안에서 덕호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거 누구니?”
 
“개똥 어미야유.”
 
유서방이 대답한다.
 
“개똥 어미가 왜?”
 
“모루지유.”
 
개똥 어머니는 방문 밖에 서서 머뭇머뭇하다가,
 
“그저 면장님, 한때 살려 주, 그놈들이 철이 없어서…….”
 
덕호는 아직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다.
 
“개똥 어민가, 이리 들어오게, 늙은이가 치운데, 왜 밖에 섰는가.”
 
뜻하지 않은 덕호의 후한 말에, 개똥 어머니는 앞이 캄캄해 왔다.
 그제야 유서방은,
 
“어서 들어가우.”
 
개똥 어머니가 방문을 여니, 덕호는 자리에 누워 있다. 그는 멈칫 섰다.
 
“어서 들어와.”
 
개똥 어머니는 들어가서 머리를 숙이며,
 
“그저 한때 살려 줍시유, 네? 한때만 사정 봐줍슈.”
 
덕호는 기침을 하며 일어나서 자리로 몸을 가리고 앉았다.
 
“글쎄 그놈들의 행세를 보아서는 분나는 대로 용서 없이 고생을
  시키겠지만 그러나 소위 면의 어룬이라는 나로서 더구나 저런 늙은이들이
  불쌍해서 그럴 수야 있는가.”
 
개똥 어머니는 너무 감격하여 소리쳐 울고 싶었다. 그리고 저런 후한 어른의
뜻을 몰라주는 개똥이와 그의 동무들이 끝없이 원망스러웠다.
 
“그저 살려 줍슈, 저를 봐서…….”
 
“응, 그런데 마침 오늘이 공일이니까 면에 출근도 안 하니 내 직접
  주재소에 가보리…… 저희 놈들이 암만 그래도 몇십 년을 내 덕에 산 것이
  아니겠나. 배은망덕이란 말이 이런 것을 두고 이름일세그려.
  허 거 정 나두 손두 없는 사람이라 저희들을 내 친자식들과 같이 사랑
  한단 말이어. 어제만 하더라도 내가 생각해서 벼 한 섬을 거저 주지
  않았나. 그런데 그놈이 그 은공을 몰라본단 말이어. 하필 올뿐인가,
  작년 재작년에도 그래 왔지.”
 
“그까짓 죽일놈들을 생각하실 게 있습니까. 그저 후하신 맘으로
  이 늙은 것을 한때 보아주셔야지우.”
 
“응, 그럼 돌아가게, 내 이따가 가보리.”
 
개똥 어머니는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덕호는 도로
자리에 누우며 이놈들을 더 고생시켜 세상의 법이 어떻다는 것을 알리어
정신을 들려 주렸더니 날은 점점 추워 오고 어서 눈 오기 전에 마당질은
끝내야겠으니 부득이 놓아 주랄 수밖에 별수가 있나! 하고 생각하였다.
더구나 이 가을부터 미곡통제안(米穀統制案)이 실시된다는 말이 있으니
그렇게 되면 곡가도 오를 것이다. 어서 바삐 그놈들의 빚도 현 곡가로
청산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곧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젯밤 주재소에서 자고 난 그들은 오늘 아침 덕호가 가서야 순사부장의
단단한 훈사를 듣고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기로 약속을 하고 놓여 나오게
되었다. 그들은 나오는 길로 아침밥도 잘 먹지 못하고 곧 타작 마당으로
왔다. 그래서 어젯밤 널어 놓은 짚단이며 나락 헤적인 것을 쓸어 모아 놓고
한편으로는 도급기를 횅횅 돌렸다. 그들은 일을 하니 안 아픈 곳이 없었다.
팔을 놀리면 팔이 아프고 다리를 놀리면 다리가 아팠다. 그리고 허리를
굽힐 수도 없고 목을 임의대로 돌리는 수도 없었다. 하루쯤은 쉬어서 했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을 그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똑같이 하였다.
 
그때 덕호가 나왔다. 그는 궐련을 피워 물고 단장을 짚었다. 그리고 명주
저고리 바지에 세루 조끼를 말큰말큰하게 입었다. 그들은 덕호를 보자
가슴이 울울해지며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그리고 뭐라고 나무라지나 않으려나 하는 불안에 쩔쩔매었다.
 
“어 자네들 어서 일들이나 잘 하여…… 밥 많이 먹고 일 많이 하는
  사람이야말로 튼튼한 면민일세그리. 허허 자네들은 나를 오해하지?
  아마 어제 일을 미루어 보더라도 말이어. 그러나 그것은 잘못 안 것일세.
  나는 더구나 면의 어룬이란 지위에 앉아 가지고 자네들의 이로움을 위하야
  애쓰는 것이 나의 의무가 아닌가.”
 
덕호는 큰기침을 하고 나서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합수를 하고 섰다.
 
“어제만 하더라도 내가 곡식으로 차지한 것이 전혀 자네들을 위함에서
  그렇게 한 게야…… 자네들의 형편에 그 곡식을 갖다가 팔아서 돈으로
  빚을 갚는다고 하세. 돈을 제때에 갚지도 못하게 될 뿐 아니라 그 곡식을
  제값을 못 받고 더구나 꼭 적당한 시기에 팔지를 못해.
  그러니 내가 곡식으로 차지하는 게여. 나야 손해가 되지마는……
  왜 손해가 되느냐 하면 말이어, 이제 좀더 있으면 자네들이 지내 보는
  바와 같이 곡가가 내리는 것만은 뻔한 사실이 아닌가 응, 왜 그런 줄을
  몰라주느냐 말이어. 나는 자네들을 친자식같이 아는데 자네들은 그것을
  몰라준단 말이어. 어제 일만 하더라도 내가 아니고 딴사람이라면 자네들을
  그냥 두겠나. 그러나 나는 자네들도 생각할 뿐만 아니라 자네들의
  가족들을 생각하야 친히 순사부장에게 사정을 하다시피 한 것을 자네들은
  아는가 모르는가. 한 번 실수는 누구나 있는 것이니
  이 다음부터는 주의들 해.”
 
덕호는 그들을 둘러보며 빙긋이 웃었다. 그들의 모양을 보아 자기의 말에
얼마나 감격하였는지를 그는 짐작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까지 저들이
서리 맞은 풀대같이 후줄근한 것이 전혀 주재소의 힘임을 깨달으며
무식한 놈들에게는 매가 제일이다 하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덕호가 그들의 앞을 떠난 후에 그들은 가볍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이제 덕호가 한 말이 다 옳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일을 계속하였다. 도급기 다섯 채를 좌우로 갈라 놓고
한 채에 세 사람씩 맡았다. 한 사람은 가운데 서서 돌리고 그 나머지
두 사람은 도급기 곁에서 날라 오는 볏단을 풀어 놓고 도급기 돌리는
그들에게 번갈아 집어 주며 혹은 벼낟가리에 올라서서 볏단을 내리고 또는
다 훑은 짚단을 묶어서 저편으로 날랐다.
 
“이애 이놈아, 빨리 다우.”
 
난장보살이 첫째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그리고 볏모개를 빼앗았다.
 
“흥! 어제는 이놈 때문에 우리들이 매를 죽도록 맞았다니.”
 
어젯밤 매맞던 생각을 하며 싱앗대를 돌아보았다.
싱앗대는 볏모개를 빨리 돌려 대었다.
 
“쥐뿔도 없는 놈이 맘만 살아서 그 꼴이지, 그저 없는 놈이야 무슨 성명이
  있나, 죽으라면 죽는 모양이라도 내어야지.”
 
곁에서 그들의 말을 듣는 첫째는 버럭 화가 치받치는 것을 억제하였다.
그러나 뱃속이 꾸물꾸물하며 얼굴이 빨개졌다.
어제는 이 타작마당에서 그들이 일심이 되었는데 겨우 하룻밤을 지나서
그들은 첫째를 원망하였다. 첫째는 덕호에게서 욕먹은 것보다도,
순사에게 밤새워 매맞은 것보다도, 그들이 자기 하나를 둘러싸고 원망하는
데는 그만 울고 싶었다. 그리고 캄캄한 밤길을 혼자 걷는듯한 적적함이
그를 싸고도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는 무심히 벼낟가리를 쳐다보았다. 전 같으면 저 벼낟가리들이 얼마나
귀여웠으리요마는…… 그때 저리로부터 순사가 왔다.
첫째는 놀랐다. 가까이 오는 순사는 지금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다 알고, 자기만 잡으려고 오는 듯싶었다. 그래서 그는 머리를 푹 숙이며
볏단만 헤치고 있다가, 칼소리가 멀어지매 그는 겨우 안심하고 흘금
바라보았다. 그때 순사의 구둣발에 툭툭 채는 칼은 햇빛에 번쩍번쩍하였다.
순사는 덕호를 만나서 다시 이리로 온다. 그는 또다시 아까와 같은 생각으로
겁을 먹었으나, 그들은 가벼운 궐련내를 던지고 저편으로 지나간다.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재미나게 하고는, 하하 웃었다.
 
“여보게, 자네 좀 돌리게.”
 
난장보살이 첫째를 보며 이렇게 말하고 나서, 도급기에서 물러간다.
첫째는 얼른 이편으로 왔다. 그리고 한 발로 도급기 발판을 짚어 가며,
난장보살이 집어 주는 볏모개를 훑는다.
그때 무심히 저편을 보니, 덕호와 순사가 면사무소에 앉아서 유리문을
통하여 이편을 내다 본다. 그때에 그는 난장보살이 저것들을 마주보기
싫어서 도급기에서 물러났구나! 하고 직각되었다. 따라서 지금 저들이
자기를 잡아갈 의논을 하면서 자기만을 주목해 보는 듯하여 머리를 숙였다.
솨르르 탁탁 튀어나는 벼알은 그의 볼을 가볍게 후려치고 떨어진다.
그리고 돌아가는 도급기 바퀴에서 일어나는 바람은, 그를 오한이라도 나게
하려는 듯이 싫었다. 전 같으면 이 바람에 얼마나 속시원할 것이건만……
 그때 난장보살이,
 
“담배 먹고 싶다!”
 
그때 첫째도 새삼스럽게 담배 먹고 싶은 것을 느끼며 난장보살을
바라보았다. 일하던 농민들은 약조나 한 듯이 일시에 시선이 마주쳤다.
그들은 누구나 상대의 눈동자에서 담배 먹고 싶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면사무소에 앉아 이야기하는 그들의 눈에 걸리는 것이 싫어서 누구
한 사람 쉬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숨을 후 쉬고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쉴새없이 떨어져 쌓이는 벼알을 바라보았다. 담배 한 모금 맘놓고
먹지 못하고서 저렇게 애써 지은 쌀알을 덕호네 함석창고에 들여보낼 생각을
하니, 어제 구루마를 부서트리던 그 순간의 감정이 또다시 폭발되는 것을
느꼈다. 마당이 보이지 않도록 쌓이는 저 벼알! 병아리의 털같이 그렇게
노란 수염이 하늘을 가리키고 재미나게 쌓인 저 벼알! 저 벼알은 역시
자기들에게는 귀엽고 아름다운 빛만 보이고 나서 맘놓고 만져 보기도 전에
덕호의 창고로 들어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 어린것들은 집에서,
 
“아빠 하얀밥 먹지, 오늘은?”
 
오늘 집에 들어가면 아버지를 붙들고 이렇게 소곤거릴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뭐라고 대답하랴! 여름내 가을에는 하얀밥 준다!고 어르던 그 말!
지금 와서는 또 뭐라고 말하랴! 그들은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금 저 벼알을
보았을 때 벼알이 아니라 그들의 가슴폭을 마디마디 찌르는 살대 같아
보였다. 그들은 멍하니 어제 일을 되풀이하며 첫째를 돌아보았다.
그때 순사와 덕호는 이리로 온다. 또다시 그들은 가슴이 두근거리며 하던
생각이 끊기고 말았다. 덕호는 순사와 같이 그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후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멍하니 불타산을 바라보았다.
오래잖아 저 산에는 눈이 하얗게 덮일 터인데…… 우리들은 그때에 뭘 먹고
사나? 하였다. 가을을 맞은 청초한 저 불타산.
그 위로 하늘이 파랗게 달음질쳐 갔다. 첫째는 그 하늘을 묵묵히 바라볼 때,
어젯밤 순사부장이 자기들을 모아 놓고
“너희들에게 법이란 것을 가르쳐야겠다” 하던 말이 그의 머리에
휙 떠오른다.
 
“법, 법…… 법, 법에 걸리면 죽이는 법까지 있다지?”
 
그가 법이란 막연하게나마 전통적으로 신성불가침의 것으로 알았지마는……
아니 지금도 그렇게 알지마는, 어제 일을 미루어 곰곰이 생각하니 웬일인지
그 법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형용할 수 없는 엉킨 실마리가 그의 온 가슴을
 꽉 채우고 말았다.
 
“우리들이 어제 덕호와 싸운 것이 법에 걸리는 일이라지?
  그 법…… 법…….”
 
그는 머리를 돌려 가며 몇 번이나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점점 더
답답만 할 뿐이지, 뒤엉킨 실끝을 고르는 수가 없었다.
 그때 난장보살이 휙 쳐다보았다.
 
“이 곰 뭘 그리 중얼거리니?”
 
첫째는 그의 말이 입 밖에까지 나간 것에 스스로 놀라며 머리를 푹 숙였다.
추수가 끝난 초겨울이었다. 읍에서 군수가 나와서 농민들을 모아 놓고
연설을 한다고 한다. 그들은 군수가 나왔다니까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가야만 되는 줄 알고 그러지 않으면 벌금이나 물리지 않을까?
하여 모두 모였다. 이십여 간이나 되는 면사무소 내에 농민들이 빽빽히
들어앉았다. 단상에는 군수와 면장이 앉았고 그 옆으로는 면서기들이
앉았다. 그들은 이번 신임 된 군수라는 뚱뚱한 양복쟁이를 눈이 둥그래서
바라보았다. 먼저 면장이 나와서 간단한 말로 군수를 농민들에게
소개하였다. 뒤미처 군수가 나와서 몇 번 기침을 한 후에,
 
“어…… 내가 이번에 여기 나온 목적은 여러분들도 이미 면사무소를
  통하여 알았겠지마는…… 내가 신임인만큼 군내 상황도 시찰할 겸 더욱
  여러분에게 절실하게 이르고 싶은 것이 있어 나온 것이오.
  우리 조선으로 말하면 어…… 팔 할 이상이 농민들이오. 그러니 농민들의
  성쇠는 즉 국가 흥망의 기원이 될 것만은 사실이오.
  옛날부터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니라 한 말이 있지 않소.”
 
여기까지 들은 그들은 저렇게 귀하신 어른의 입에서 자기들이 하는 농사를
찬사하는 말이 나오니 이것이 꿈인가 하였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감격에
 붙들리었다.
 
“우리가 농사를 부지런히 하여야 할 것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어……  거기에 대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말하고자 하오.
  재래의 농민들이란 그저 수굿수굿 김만 매면 되는 줄 알았으나
  그것은 틀린 것이오. 어떻게 하면 밭에서 곡식이 많이 날까,
  어떻게 하면 작은 밭을 가지고도 큰 밭에서 내는 곡식을 낼까,
  다시 말하면 농사하는 방법을 꼭 알아 가지고 농사를 지어야 한단
  말이오. 어…… 예를 들어 말하면 어…… 여기 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사람의 재주를 보아 그에 적당한 일을 시켜야 그 일이 잘될 것이
  아니오? 그러니 이것도 역시 마찬가지로 밭에 곡식을 심는 것도
  만일 어긋나게 심으면 좀더 곡식이 많이 날 것이로되 적게 난단 말이오.
  수수나 콩을 심어 잘될 밭에다 조나 육도를 심으면 적게 날 것이오.
  그러니 먼저 그 밭에 어떤 것이 적당할까를 생각하여 심어야 한단
  말이우. 어…… 그리고 퇴비 말이오, 무엇보다도 이 퇴비를 많이 제작해
  두었다가 봄에 가서 밭을 잘 거두어야 하우. 여러분이 좀더 부지런을
  내면, 어…… 일하다가 쉬는 틈을 타서 풀을 깎아다 퇴적장에 쌓아
  썩히시오. 이것이 봄에 가서는 훌륭한 거름이 될 것이오. 공연히
  읍 같은 데 가서 금비를 사 나를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서 자작 만들어
  쓰란 말이오.”
 
그들은 자기들의 농사하는 이치를 이렇게 꼭꼭 알아내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되었는지 몰랐다. 그래서 서로 돌아보며 입을 쩍쩍 벌렸다.
 
“어…… 그리고 색의를 입어야 하오. 우리 조선 사람은 흰옷을 입는 것이
  못사는 원인의 하나요. 어서 바삐 색의를 입으시우. 흰옷을 입게 되면
  자주 빨아 입어야겠으니, 첫째 그만큼 시간이 소비되고, 둘째 빠는 데
  옷이 해지우. 어…… 그리고 고무신을 신지 말고 될 수 있으면 노는
  시간을 이용하여 짚신을 삼아 신도록 하오.
  이 외에 관혼상제비(冠婚喪祭費)도 절약하시우. 이렇게 하면 당신네들이
  앞으로는 다 부자가 될 것이오. 그렇지 않우? 허허.”
 
그들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 군수의 말대로 하면,
참말 내년부터라도 풍족한 생활을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어…… 마지막으로 말할 것은 면이라는 기관은 당신들이 잘살고
  건강하게 사는것을 위하여 힘써 지도하는 곳이니, 조금도 면사무소를
  허수히 알아서는 못쓰오. 면에서 지세나 혹은 호세나 기타 여러 가지
  세금을 당신들한테서 받아 내는 것은 다 당신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하여
  통치하는 데 소비하는 것이우. 그러니 그런 세금들을 꼭꼭 잘 바쳐야
  하오. 할 말은 많으나 훗기회로 미루고 위선 그만하니
  이 면사무소의 지도를 잘 받으시오.”
 
군수는 말을 마치고 의자에 걸어앉는다.
 면장은 만족한 웃음을 띠고 나왔다.
 
“이번 군수 영감께서 이렇게 나오시게 되어 우리에게 좋은 말씀을 들리어
  주시니 우리 면민은 군수 영감의 말씀대로 이행하기를 서약한다는 증거로
  일어나서 경례를 합시다. 자 일어나시우들.”
 
농민들은 일시에 일어나서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몇 번이나 거듭하고
헤어졌다. 첫째도 그들 틈에 섞여서 면사무소를 나왔다. 그는 어정어정
걸으며 내년부터 나는 누구네 땅을 부치나! 하고 우뚝 섰다. 그의 동무들은
그를 비웃는 듯이 흘금 돌아보고 저편으로 몰려간다.
첫째는 드디어 밭을 떼이고 말았던 것이다. 오늘 군수 영감의 말을 들으면
이 면사무소는 농민들이 잘살기 위하여 힘쓰는 곳이라는데……
여기까지 생각한 그는 자기만은 이 동네의 농민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부쩍 든다. 덕호로 말하면 이 면의 어른인 면장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치던 밭을 그에게 떼이지 않았는가? 응! 나는 그때
그 구루마를 깨친 것이 법에 걸리었기 때문이라지. 법 법…… 오늘 군수
영감의 말씀한 것도 역시 내가 행하지 않으면 법에 걸리게 될 터이지.
그러나 오늘에 부칠 밭이 없는데 거름은 만들어 두면 뭘 하나?
그 법…… 그는 날이 갈수록 이 법에 대하여 점점 더 의문의 실뭉치가 되어
그의 가슴을 안타깝게 보챈다. 그는 생각지 말자 하다가도 가슴속에서
뭉치어 일어나는 이 뭉텅이! 그 스스로도 제어하는 수가 없었다.
첫째 자신은 이 신성불가침의 법을 지키려고 애를 쓰나 웬일인지 날이
갈수록 자신은 이 법에 걸려 들어가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발견하였던
것이다. 집까지 온 첫째는 나뭇가리 옆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떻게 한담?”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그의 앞길은 암흑으로 변하여지는 것을,
볼을 후려치는 쌀쌀한 겨울날의 감촉과 같이 확실히 느껴진다.
그때 짚 부벼치는 소리가 바삭바삭 나므로 휙근 머리를 돌리니 그가
새끼 꼬다가 놓고서 면사무소에 갔던 기억이 얼핏 생각히며 이서방이
동냥하러 가지 않고 오늘은 집에 있는가 하여 얼른 들어왔다. 방문을 여니
갑자기 누가 방 안에 앉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캄캄한 속으로 짚
부벼치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벌써 오니? 왜 오라던?”
 
방 안에 들어앉은 그는 어머니가 새끼 꼬는 것을 비로소 발견하였다.
첫째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군수 연설 들으러 오라지.”
 
첫째 어머니는 실망을 하고 꼬던 짚을 밀어 놓는다. 아까 면서기가
면사무소로 첫째를 오라고 할 때는 아마 도로 밭을 부치라고 하려나? 하는
다소의 희망과 의문을 가졌는데, 아들의 이러한 말을 들으니 아주 낙망이
되었던 것이다.
첫째 역시 어머니의 이러한 낙망을 손에 든 것처럼 꿰뚫었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비애가 이 방 안으로 가득히 들어차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첫째는 어머니의 이러한 모양이 보기 싫어서 휙 돌아앉아 새끼를
꼬기 시작하였다. 전 같으면 이 새끼를 꼬아서 할 것이 많건만,
이 새끼를 꼬기는 꼬나, 무엇에다 어떻게 쓰려는 예정도 나지 않았다. 그저
심심하니 앉아 있으면 가슴이 터지게 일어나는 이 의문과 비애!
이것이 안타깝고 귀찮아서 이것을 붙여잡고 있는 것이다.
 
“이놈아, 글쎄 가만히 있지 왜? 그 지랄을 벌여서 그 모양을 한단 말이냐.
  암만 그래두, 우리는 없는 사람이니까 있는 사람에게 붙어 살아야 하지
  않니…… 오늘부터라도 굶고 앉았겠으니 좋겠다! 이놈! 날 잡아먹지 못해
  그래…… 그래도 밭을 부치면 장리쌀이라도 얻어 올 수가 있었지만,
  누가 쌀 한 줌 줄 듯하냐.”
 
“이거 왜 귀찮게 구는지 모르겠다!”
 
첫째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오냐 이놈아, 어려서부터 네놈이 어미의 머리끄덩이를 함부로 뜯어
  내더니, 그 버릇이 이 때껏 남아서 밥 굶게 되었으니 좋겠다! 이놈!”
 
“흥 잘하는 것 내가 그랬겠군!”
 
“그랴, 그래서 너 누구 덕에 밥 먹고 큰 줄 아느냐. 이놈, 너도 지내 봐라!
  누가 잘못하고 싶어 잘못하는 줄 아느냐? 나도 배고파서 헐 수할수없으니
  그랬다! 너두 지내 봐라! 어디 이놈!”
 
첫째는 이 말에 귀가 번쩍 틔며 이상하게도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그리고
나도 배가 고파서 헐수할수없으니 그랬다, 너두 지내 봐라! 하던
어머니의 말이, 살대와 같이 그의 가슴폭을 선뜻 찌르는 듯하였다.
헐수할수없으니 그랬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또다시 그 실마리가
두루뭉텅이가 져서 올라오려고 하였다. 그는 새끼 꼬던 짚을 밀어 내고
벌컥 일어났다. 그리고 벼락치듯 문을 열어 젖히고 나와 버렸다.
어느새에 싸락눈이 바슬바슬 떨어진다. 뜰 한 모퉁이에 쌓아 둔 나뭇가리에
싸락눈 쌓이는 소리가 한층더 뚜렷하다. 그는 저 싸락눈을 보니 한층더
가슴이 죄어들었다. 원 나무나 해다 팔아서 쌀말이나 마련해 올까……
그러니 그놈의 산림감시놈들이 나무를 베게 해야지…… 법?
그는 발길을 쿵 하고 들놓았다. 
한참이나 우두커니 섰던 첫째는 어느 동무네 집에나 가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아까 면사무소 앞에서 자기를 비웃는 듯이 돌아보던
동무들을 얼핏 생각하며, 그만 지게를 걸머지고 어정어정 나왔다.
싸락눈이 그의 다는 얼굴을 선듯선듯하게 하여 준다. 그는 뿌옇게 보이는
앞벌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아직까지 그의 온갖 희망과 포부가
이 벌 전부이었던 것을 그는 다시금 생각해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벌을
잃어버린 지금에 와서는 그에게 무슨 희망과 포부가 있으랴! 단지
그의 앞에 가로질린 것은 캄캄한 암흑뿐이었다.
그는 일하러 나올 때마다, 괭이를 높이 둘러메고 끝없는 공상에 잠기곤
하였다. 농사를 잘 지어서 먹고, 남는 것을 팔아서 저축해 두었다가
그 돈으로 밭 사고, 그리고 선비를 아내로 맞이해서, 아들딸 낳아 가면서
재미나게 살아 보겠다고 그는 몇 번이나 생각해 보았던가! 그는 자기의
이러한 어리석었던 공상을 회상하며 픽 웃어 버렸다. 따라서 희망에 불타던
그의 씩씩한 눈망울은 비웃음과 저주로 변하는 것을 확실히 볼 수가 있었다.
 
어느덧 그는 원소까지 왔다. 앙상한 버드나무숲은 어찌 보면 자기의
신세와도 흡사하였다. 그러나 다시 한번 그 숲을 쳐다보았을 때, 오는 봄에
싹 돋으려는 씩씩한 기운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는 버드나무를 의지하여
원소를 내려다보았다. 그때에 생각힌 것은 원소의 전설이다.
 
‘그들도 법에 걸려 혹은 죽고 혹은 매를 직사하게 맞았다지.’
 
몇천 년이나 몇백 년이 되었는지 분명하지 못한 그 옛날의 농민들도
자기와 같은 그런 궁경에 빠졌던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다시금 원소의
푸른 물을 들여다보았다.
그때 뒤에서 신발 소리가 난다. 그는 누가 물 길러 오는구나…… 하고
생각되었으나 머리를 돌려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누구나 자기를 보면
밭 떼인 것을 조소하는 듯하여 그만 얼굴이 뜨뜻해지곤 하였던 것이다.
신발 소리는 차츰 가까워진다. 그 신발 소리를 듣고 한 사람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라는 것을 직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여기 섰기가 좀 열적은
듯하여 버드나무 옆을 떠났다. 그래서 그가 저편 길로 옮아 섰을 때,
원소로 가는 두 여인을 발견하였다. 그 순간 그는 전신의 피가 갑자기
활기를 띠고 숨이 가쁘도록 심장이 뛰었다. 그는 멈칫 서서 바라보았다.
빨래 함지를 무겁게 인 여인 중, 그 하나가 선비가 아니었느냐! 귀밑까지
푹 눌러 쓴 흰수건 밑으로, 껍질 벗긴 밤알처럼 윤택해 보이는 그의 얼굴!
내리는 눈에 가리어 아리송아리송하게 보였다. 그러나 전날 선비와 같이
다정한 감을 주지 않고 웬일인지 차디찬 조소를 그의 윤택한 살갗을 통하여
차츰 농후하게 던져 주었다.
빨래 함지를 내려놓은 그들은 빨래를 돌 위에 놓고 빵빵 두드린다.
그 소리는, “이 자식 너 밭 떼였지, 너 밭 떼였지” 하는 소리같이 들렸다.
그는 한참이나 어쩔 줄을 몰랐다. 그때 선비가 방망이를 놓고 빨래를 헹구며
흘금 바라본다. 그는 얼핏 돌아서고 말았다.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나며
앞이 아뜩하였다. 그는 작대기를 꾹 짚으며, 계집은 해서 뭘 하는 게냐!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천천히 걸었다.
방망이 소리는 그가 걸을수록 점점 희미하게 들렸다. 그리고 선비의
그 모양까지도 차디찬 얼음덩이 같아지는 것을 그는 우뚝 서며 보았다.
그것은 자기 머리에 언제부터 들어앉았던 그 고운 선비의 환영이 이렇게
변하여지는 것이, 그가 눈을 크게 뜰 때마다 확실히 인식되었다.
그는 산등에 올라 되는 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지게를 진 채 멍하니
산 아래를 굽어보았다. 그때에 떠오른 것은, 어려서 이 산등에 나무 하러
왔다가 선비를 만나 싱아를 빼앗아 먹던 기억이다. 따라서 그때부터 자기가
선비를 맘 한구석에 생각하였다는 것이 옛날을 회상할수록 뚜렷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사모하던 선비를 한번 만나 이야기도 못 해보고 그만 영원히
만나지 못할 생각을 하여, 무의식간에 그는 작대기를 들어 그의 발부리를
힘껏 후려쳤다. 그리고 벌떡 일어났다.
 
싸락눈은 아까보다 더 내리는 듯하다. 그 속으로 멀리 보이는 동네!
벌써 집집에서 흐르는 저녁 연기가 구불구불 선을 긋고 올라간다.
그때 그는 무심히 이서방이 이젠 들어왔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첫째는 산 옆으로 돌아가며 마른 풀을 베어 가지고 돌아왔다.
그가 동구까지 왔을 때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밥 잦히는 솥뚜껑 소리며
청어 굽는 내가 그의 구미를 버쩍 당기게 하였다. 그 순간 그는 어젯저녁에
밥이라고 좀 먹어 보고는 오늘 아침은 국물만 되는 소죽 먹은 기억이 그의
가슴을 더 쌀쌀하게 하였다. 그러나 집에 가면 이서방이 그 시커먼 밥자루에
밥을 가득히 얻어 가지고 왔을 생각을 하니 발길이 얼른얼른 내디뎌졌다.
그가 집까지 와서 나뭇짐을 되는 대로 벗어 놓고 분주히 방으로 들어가며
이서방의 신발부터 있는가 하고 보았다. 그러나 찬바람이 실실 도는 봉당에
어머니의 짚신만이 놓여 있다.
그는 멈칫 섰다. 이서방이 안 왔나? 하는 생각을 하며 방문을 열었다.
어머니는 아랫목에 누웠다가 벌컥 일어나며,
 
“이서방이우?”
 
그때 첫째는 앞이 아뜩해지며 이때까지 이서방이 오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의 어머니는 첫째임을 알자 곧 도로 누워 버렸다. 그리고 으흠 하고
신음하는 소리가 방 안을 그윽이 울려 주었다.
그는 방문을 쿡 닫고 돌아섰다. 이서방이 왜 안 와 하고, 차츰 어두워 가는
저 밖을 바라보았다. 이서방이 밥자루를 무겁게 들고 돌아올 길에는 눈만이
푹푹 쌓일 뿐이고, 검정개 한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읍으로 통한 신작로를 바라고 성큼성큼 걸었다.
수굿하고 걷다가는 한참씩 서서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서방은 보이지
않았다. 저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이서방이 오는 것이 보이려나? 하고
그 산모퉁이를 돌아와도 역시 눈송이만이 벌떼같이 날 뿐이고,
이서방 비슷한 사람조차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젠 사방이 캄캄해서,
어디가 어딘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어찌 된 일일까, 혹 길가에서 얼어
죽었나? 그렇지 않으면 몸이 아파서 어디 물방앗간 같은 곳에 누웠는가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밤이 되어 갈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밤부터는 바람까지 일어서 휙휙 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싸락눈은 이젠 솜눈으로 변하여 무섭게 뺨을 후려친다.
첫째는 우뚝 서서 한참이나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오늘 밤으로는 이서방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고 그만 집으로 오고 말았다.
그 밤을 고스란히 새우고 난 첫째네 모자는 아침이면 이서방이 오겠지 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이서방은 아무 소식 없다. 첫째 어머니는 아무래도
이서방이 무슨 일을 만난 것 같았다. 그래서 첫째를 보고,
 
“이애! 이서방이 무슨 일을 만난 것 같으니 네 읍에 가봐라.”
 
어젯저녁만 해도 배고픈 것이 이렇게 견디기 어렵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어제는 걷기에도 별한 지장은 없었다. 그러나 이 아침부터는 너무
배가 고파서 운신을 할 수가 없다. 그는 어머니를 쳐다보며,
 
“배고파서 갈 수 있어야지? 어데서 밥 좀 얻어다 주슈.”
 
첫째 어머니는 맥없이 누워 이렇게 말하는 첫째를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였다. 그는 어디서 밥술이나 얻어 보려고 바가지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첫째는 어머니가 나가는 것을 보고 눈을 감았다. 수없는
그릇에 밥 담은 것이 얼씬얼씬 보여서 못 견딜 지경이다.
그는 다시 눈을 번쩍 떴다. 첫눈에 띈 것은 며칠 전까지 쌀 담아 두던
항아리였다. 그는 무의식간에 벌컥 일어나서 항아리 곁으로 왔다.
그리고 항아리를 기울여 보았다. 휑하니 비었다. 간 가을만 해도 쌀이
이 항아리로 가득 찼는데 벌써 그 쌀이 다 없어졌나? 하고 그는 다시 생각을
되풀이해 보았다. 가을에 밭 떼일 때 덕호가 특별히 생각하여 주노라고
하면서 빚과 장리쌀만 제하고 그 외에 비료값이니 이따금 꾸어다 먹은 쌀은
제하지 않고 그냥 첫째를 주었던 것이다. 그것이 이 항아리로 가득 찼던
것이다. 그때에는 이 쌀이 몇 달은 가리라고 생각했더니 막상 하루이틀
먹어 보니 불과 두 달이 못 가서 그 가득하던 쌀이 흔적도 없어졌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쌀항아리를 다시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행여나
어디가 쌀알이 붙었는가 하여 항아리를 들고 문 편으로 와서 뱅뱅 돌려가며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쌀 한 알 발견하지 못 하였을 때,
그는 한숨을 푹 쉬며 항아리 전에 머리를 기대고 문을 바라보았다.
그때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술술 흘러내렸다. 마침 밖에서 신발소리가
나므로 그는 벌떡 일어났다. 방문이 열리며 어머니가 들어온다.
 
“난 이서방이라구.”
 
“잡놈, 배는 용히 고픈 게다.”
 
첫째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손에 든 바가지를 그의 앞으로 밀어놓는다.
첫째는 얼른 들여다보니 도토리며 밥이 들어 있었다. 그때 첫째는 식욕이
욱 하고 치밀어 그의 어머니까지 밥으로 보였다. 그래서 바가지를 빼앗듯이
받아 가지고 손으로 움켜쥐어 먹었다. 언제 술을 들고 저를 놀리고가
다 배부른 사람들의 장난이지, 이때 첫째에게 있어서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애 작작 덤벼라!”
 
첫째 어머니는 자기도 몇 술 얻어먹을까 하였다가, 아들이 저렇게 집어
먹었으니 도토리 한 알 입에 대어 보지 못하였다. 따라서 첫째 어머니는
야속한 생각과 같이 못 견디게 가슴이 쓰리었다.
 
“또 없수?”
 
눈이 뻘겋게 뒤집힌 첫째는, 어머니가 밥을 더 얻어 오고도 내어 놓지
않는 것만 같아서 이렇게 대든다. 첫째 어머니는 아들을 한참이나
 노려보았다.
 
“이애 무섭다. 흥! 혼자 다 처먹구두, 뭐가 나뻐서 그러냐.”
 
이 말을 하지 않고는 곧 가슴이 바늘로 찌르는 것 같아서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까 길에서 왜 내가 한술이라도 먹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일어난다. 첫째는 먹은 것도 없이 먹었다는 말만 들으니
 기가 막혔다.
 
“날 뭘 주었기 그래!”
 
첫째는 바싹 대든다. 그의 눈에서는 불이 펄펄 날아 나오는 것 같았다.
첫째 어머니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돌아앉으며 그만 벽을 향하여 누워
버렸다. 어머니의 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첫째는 어머니가 밥이라면
 그저 이 배가 터지도록 먹으련만…… 하였다.
 
“그 밥은 어서 난 게유?”
 
아무래도 그 밥의 출처를 알아 가지고 좀더 먹어야지, 뱃속이 요동을 해서
못 견딜 지경이다. 그의 어머니는 그린 듯이 누워 있을 뿐이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첫째는 어머니의 궁둥이를 냅다 차고 싶은 것을 꾹 참으며
천장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누구네 집에 가서 밥을 좀 얻어먹나?
개똥이네 집에나 가볼까? 하고 벌컥 일어날 때, 생각지 않은 트림이 꺽 하고
올라온다. 그의 어머니는 갑자기 방바닥을 치며,
 
“이놈아, 너만 트림까지 하도록 처먹을 것이 뭐냐!”
 
자기도 몇 술 주어서 같이 먹었다면 이렇게 가슴은 아프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첫째는 달려들어 어머니의 궁둥이를 내려 밟았다.
 
“날 뭘 주었어? 한 바리를 주었어, 한 대접을 주었어, 뭘 얼마나 주었어?”
 
그의 어머니는 악이 치받쳐서 벌떡 일어나며 첫째에게로 달려들었다.
 
“이애 이놈의 새끼야, 넌 트림까지 하지 않니. 처먹었기에 트림을 하지.
  이놈아, 그래 너만 처먹고 살려느냐, 다른 사람은 다 죽고…… 그것을
  같이 먹겠다고 가지고 오니께 저만 다 처먹어. 어데 보자 이놈아,
  에미를 그렇게 하는 데가 어데 있냐, 하늘이 있니라! 응…… 응…….”
 
목을 놓고 운다. 첫째는 우는 꼴이 보기 싫어서 밖으로 뛰어나왔다.
뜰 위에 소복이 쌓인 눈 위에는 신발 자국이 뚜렷이 났다. 그는 멍하니
그 발자국을 바라보다가 이서방이 오늘은 오려나 하고 저 앞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여전히 뭐라고 몹시 떠들면서 운다. 첫째는 이서방이 오는가?
오는가 하여 가슴을 졸이다 못해서 그만 누구네 집에든지 가서 한 술
얻어먹으리라 하고 문밖을 나섰다. 그가 개똥이네 싸리문 안에 들어서니,
개똥 어머니가 문을 열고 내다본다. 전 같으면 어서 들어오라고 할 터인데
그런 말은 없고 거칠게 눈을 뜨고,
 
“왜 왔는가?”\
 
“개똥이 있수?”
 
“이제 면장 댁에 일하러 갔네…… 왜?”
 
그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그저 놀러 왔댔수.”
 
얼른 이렇게 말하고 돌아서 나왔다. 이젠 누구네 집에를 좀 가볼까 하며
어정어정 걷다가 멈칫 섰다.
저리로부터 덕호와 어떤 양복쟁이가 궐련을 피워 물고 이리로 온다.
그는 머리를 푹 숙이고 이편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며 지나간다. 그때 덕호는 손에 든 단장을 휙휙 돌린다. 덕호의 얼굴을
대하는 순간 첫째는 전신의 피가 머리로 치밀고 온몸이 푸르르 떨리었다.
 
그날 밤 밤이 퍽 깊은 후에 첫째는 밖으로부터 들어왔다.
 
“어머이!”
 
방 안으로 들어선 첫째는 목멘 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첫째 어머니는
이서방인 줄 알고 일어났으나 첫째 음성임에 대답도 하지 않고 도로 누워
버렸다. 첫째는 어머니 손에 무엇을 들려 준다. 그때 그의 어머니는 쌀내를
후끈 느끼며 손에 든 것이 쌀자루라는 것을 깨닫자 단숨에 일어났다.
그리고 부엌으로 나가며,
 
“이애, 어서 널랑 나와서 불때라!”
 
첫째는 어머니를 따라 부엌으로 나왔다. 그리고 아궁에 불을 살라 넣었다.
그의 어머니는 쌀을 졸졸 일어 내리며 아궁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에 비추이는
아들의 하반신을 흘금 바라보았다. 그때 그는 놀랐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무슨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곧 머리를 돌리고 말았다. 그의 옷은
갈가리 찢기었던 것이다. 첫째는 오래간만에 쌀 일어 내리는 소리를 들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그래서 불빛에 어림해 보이는 물 속으로 하얗게
보이는 쌀을 바라보며 몇 번이나 침을 모아 넘기다가 종내 못 견디어서
물독 곁으로 가서 물 한 바가지를 떠서 들이마셨다.
그들이 밥을 퍼가지고 방으로 들어왔을 때 대문 소리가 쿵쿵 났다.
첫째는 눈이 둥그래지며 뒷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첫째 어머니는 얼른
밥그릇을 감추어 놓고 귀를 기울였다.
 
“자우?…… 첫째야, 자니?”
 
그 음성에 첫째 어머니는 왈칵 내달았다.
 
“어서 문 열어 주…….”
 
숨이 차서 헐떡헐떡하는 소리가 들린다.
첫째 어머니는 봉당까지 나오기는 하고도 손이 떨리어 문을 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누가 딴사람이 이서방이라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가
 하는 불안이 든다.
 
“문 열어 주, 아이구! 에…… 으흠.”
 
“아니 정말 이서방이유?”
 
첫째 어머니는 문 새에다 입을 대고 이렇게 물었다.
이서방은 기가 막히는 모양인지 머리로 대문을 쿵 받는다.
 
“아이 참 이서방이구려! 이서방 어서어서.”
 
그제야 첫째 어머니는 안심을 하고 문을 열었다.
 이서방은 벌벌 기어들어 온다.
 
“아니 나무다리는 어찌 했수?”
 
“아이구!”
 
소리를 내며 그는 아무 말 없이 방 안으로 들어와서는 맥없이 누워 버렸다.
그리고 앓는 소리를 무섭게 하였다. 첫째 어머니는 감추어 두었던 밥그릇을
꺼내 놓고 밥 한 그릇을 다 먹은 후에야 정신이 조금 들었다.
그리고 이서방의 몸이 불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어데가 아프시유?”
 
이서방은 역시 아무 말이 없다. 그때에 첫째 어머니는 겁이 나서 바싹
다가앉아서 그의 머리를 짚어 볼 때
 방 안이 캄캄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불이나 좀 켰으면 좋겠는데…… 기름이 있어야지.”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서방은 으흠 하고 돌아누웠다.
 
“첫째는…… 첫째는.”
 
이서방이 말하는 것을 들으니 겁나던 것이 조금 덜리는 듯하였다.
 
“어디 아푸, 왜 그러우?”
 
“고뿔에 걸렸수.”
 
“고뿔이요…… 그래 못 왔구려.”
 
그때 뒷문이 부시시 열리며,
 
“이서방 왔수?”
 
첫째가 묻는다.
 
“그래 너…….”
 
그 다음 말은 하지 못하고 우는 모양이다. 첫째는 적이 안심하고 들어왔다.
 
“어머이, 밥!”
 
첫째 어머니는 밥그릇을 그의 손에 들려 주었다. 이서방은,
 
“내 자루에 밥 있다!”
 
눈물을 씻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첫째 어머니는 부엌으로 나가서
나무 한 뭇을 더 넣고 들어왔다.
그 밤을 무사히 지낸 그들은 다음날 정오쯤이나 되어 눈을 떴다.
방문에는 햇빛이 발갛게 비치었다. 첫째는 머리를 넘성하여 이서방을
보았다. 본래부터 뼈만 남았던 그가
 한층 더하여 마치 해골을 대하는 듯하였다.
 
“이서방!”
 
“왜.”
 
감았던 눈을 번쩍 뜬다.
 어젯밤 덥게 자서 그런지 오늘은 덜 아파하는 것 같았다.
 
“어데 가서 그렇게 안 왔수.”
 
첫째는 원망스러운 듯이 바라보았다.
 
“난 아파서 죽을 뻔하였다…… 네가 기다리는 것을 뻔히 알지만,
  몸을 운신하는 수가 있드냐. 그러구 그 나쁜 놈의 애새끼들이
  내 나무다리를 얻다가 감추고 주어야지…… 흠!”
 
한숨을 푹 쉬며, 첫째를 바라보는 그 눈에는 세상을 원망하는 빛이
가득하였다. 첫째는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그리고 이서방이 없는 동안에
자기가 당한 일을 얼핏 생각하였다. 불과 사오 일 동안이건만,
몇십 년 동안이나 지난 것처럼 지리하고 아득해 보였다.
첫째 어머니는 불을 한 화로 담아 가지고 들어온다. 방 안이 훈훈해지는
것을 그들은 느꼈다. 이서방은 그의 동냥자루를 보았다.
 
“첫째 떡 구워 주.”
 
떡이란 말에 첫째는 구미가 버쩍 당기어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시커먼 자루 안에서 한 개씩 꺼내 놓는 떡을 얼른 집어
 뚝뚝 무질러 먹었다.
 
“이애 궈먹어라.”
 
첫째 어머니는 불 속에 떡을 집어넣는다.
이서방은 물끄러미 이것을 바라보며 가슴이 후련해졌다. 어젯밤 그가
떡자루를 목에 매달고 눈 위를 기어올 때는, 그만 머리가 떨어지는 듯하고
숨이 차서 떡자루를 몇 번이나 내버리려다가도, 집에서 첫째와
첫째 어머니가 배를 곯아 가며 이 떡덩어리를 눈이 감기도록 기다리고
앉았을 생각을 하고는, 가다가 죽더라도 이 자루는 가지고 가야 한다
하고 필사의 힘을 다하여 가져온 저 떡! 그들 모자가 그 떡을 저 화롯불에
넣고, 어서 익으면 먹겠다고 머리를 기웃하여 화로만 들여다보는 저 모양!
이서방은 이젠 이 자리에서 숨이 끊어져도 원통할 것이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 차라리 지금 먹을 것을 앞에 논 저들을 보고 그만 죽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이젠 더 밥을 얻으러 다니기도 괴로워서 못 견딜 지경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며 그는 무의식간에 다리를 만져 보다가,
 
“그놈의 새끼들! 글쎄, 남의 다리는 왜 가져가.”
 
그때 다리를 빼앗기던 장면이 휙 떠오른다.
 
“누가 다리를 앗아 갔수?”
 
“애새끼들이 나 연자방앗간에 누웠는데 달려들어 오더니 글쎄 그것을
  빼앗아 갔지! 흥 그놈의 새끼들.”
 
“그놈의 새끼들을 그대로 둬요? 모두 목을 꺾어 주지!”
 
첫째는 눈을 부릅뜨며 이렇게 말하였다. 첫째 어머니는 첫째를 노려보았다.
 
“이애! 너두 그 버릇 좀 고쳐라! 툭하면 목을 부러친다는 말은
  그 웬 수작 따위냐?”
 
“아 그래, 그따위 새끼들을 그만두어야 옳겠수?”
 
“세상에 옳은 일은 다 맘대루 하는 줄 아니? 흥 저놈의…….”
 
그때 모자의 머리에는 어젯밤 일이 휙 지나친다. 첫째는 머리를 푹 숙였다.
그리고 한참이나 화로를 들여다보던 그는 머리를 들며,
 
“이서방, 법이 뭐나?”
 
뜻하지 않은 이 말에 이서방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법?”
 
첫째는 이서방이 알아듣지 못한 것을 알고, 무엇이라고 설명하여 깨치어
주렸으나, 뭐라고 말을 할지 몰라 멍하니 바라보았다.
 
“법이 무슨 말이야, 법?”
 
이서방은 안타까워서 또다시 채쳐 묻는다.
 
“아니 왜 법이라구 있지, 왜.”
 
“아? 이애 똑똑히 말해, 법이 뭐냐?”
 
그의 어머니도 첫째를 바라본다. 첫째는 눈살을 찌푸렸다.
 
“모르겠으면 그만두!”
 
소리를 가만히 치고 나서 화롯불을 헤치고 떡을 꺼내 먹는다. 첫째 어머니는
그중 말큰말큰하게 익은 찰떡을 골라 이서방을 주었다. 이서방은 받아서
한 입 씹을 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첫째 어머니도 이 모양을
바라보며 목이 메어 울었다. 첫째는 휙 돌아앉았다.
 
“울기는 왜들 울어, 정 보기 싫어서.”
 
이렇게 중얼거리며 빨간 문을 시름없이 바라보았다. 그때 원소에서 빨래하던
선비가 보인다. 그리고 그날 군수가 연설하던 말이며 개똥네 집에
밥 얻어먹으러 갔던 것, 길에서 덕호를 만나던 일이 휙휙 지나친다.
 
“법이 무슨 말이냐?”
 
이서방이 다시 묻는다. 첫째는 얼른 돌아보았다.
 
“참 답답해 죽겠수, 왜 법에 걸리면 주재소에 잡혀가지 않우.”
 
첫째는 전신에 소름이 쭉 끼쳐진다.
첫째는 법을 설명하느라 이렇게 말하는 새, 어젯밤 자기의 행동이 역시
법에 걸린 노릇임을 가슴이 뜨끔하도록 느꼈던 것이다. 그의 가슴에는
또다시 그 실뭉치가 욱 쓸어 올라온다. 그리고 어머니가 하던 말이
얼핏 생각힌다. “배가 고파서 헐수할수없이 그랬다!” 역시 자기도 배가
고프니 헐수할수없이 그랬다. 그러나 법에는 걸려들 일이다.
그때는 배고픈 차라 아무것도 생각나는 것 없이 그저 답답히 먹을 것만
찾기에 몰랐으나 이렇게 떡이며 밥을 먹고 나니 자신은 법에 걸릴 노릇을
또 한 가지 하였던 것이다.
이서방은 그제야 알아는 들었으나 뭐라고 설명할 아무것도 없다.
 
“법이 법이지 뭐냐, 본래 법이란 것이 있느니라.”
 
“그저 본래부터 있는 게나?”
 
“암! 그렇지! 그저 법이니라.”
 
이서방은 이 법이란 것이 어떤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나기 전부터
이 세상에는 벌써 이 법이란 있었던 것같이 생각되었던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첫째는 한층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비애를 느꼈다.
동시에 벗어나지 못할 철칙인 이 법! 어째서 자기만이, 아니 그의 앞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서방,
그의 어머니만이 여기에 걸려들지 않고는 못 견딜까……?
그는 이러한 생각에 그의 온 가슴은 뒤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쌀 잃어버린 집에서는 지금쯤 떠들 것이다. 물론 주재소에 가서
도적맞았다는 말을 하였을 터이지…… 순사는 조사하러 떠났는지도 모른다.
보다도 우리집 문밖에 서 있는지도 모르지? 이렇게 생각을 하며 문 편을
흘금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어도 순사가 오는 것 같고, 이서방이 뒤쳐만 누워도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듯하여 첫째는 그 큰 눈을 둥그렇게 뜨고 흘금흘금
문 편을 바라보곤 하였다.
이렇게 가슴을 졸이면서도 첫째는 또다시 이 노릇을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였다. 그래서 밤마다 그는 나가곤 하였다. 이서방과 그의 어머니는
첫째를 대하여 아무 말도 못 하면서도 날이 갈수록 가슴만은 바짝바짝
타들어 왔다.
어떤 날 밤에 첫째가 들어왔을 때 이서방은 그의 곁으로 바싹 앉았다.
 
“첫째야! 너 그만 이 동네를 떠나라!”
 
첫째는 씩씩하며,
 
“왜?”
 
“왜는 왜! 떠나야 하지, 여기만 사람 사는 데냐…… 말 들으니,
  서울이나 평양에는 공장이라는 것이 있어 가지고, 우리같이
  없는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가 돈 받고 일하며 살기 좋다더라.
  너두 그런 곳에나 가보렴.”
 
오늘 낮에 순사가 왔다 간 후로 이서방은 번쩍 더 겁이 났다.
그리고 첫째가 이 밤으로라도 잡힐 것만 같았던 것이다.
 
“나는 이웨…… 이렇게 병신이니까, 어데를 못 가나 너같이 다리만
  성하다면 이 구석에만 박혀 있겠니.”
 
말을 듣고 보니 그 말이 옳은 듯하였다.
 
“이서방 꼭 알우? 뭐…… 응…… 공장이라는 것이 있는 것을 꼭 알어?”
 
“내니 똑똑히야 알겠니……마는 서울이나 평양에서 온 동무들이
  그렁하두나! 그들도 젊었을 때는 모두 공장에 다니다가 늙으니까
  그만두고 나와서 얻어먹누라고 허더라.”
 
“그럼 나가 보겠수!”
 
공장에서 돈 받고 일한다는 말을 들으니 그의 캄캄하던 앞길에는 다시
서광이 환하게 비쳐지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한시라도 이런 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벌떡 일어났다.
 
“이서방, 난 그럼 이번 나가서는 평양이나 서울까지 가보겠수.”
 
이서방은 그가 불시에 잡힐 것 같아서 이런 말을 하였으나 금방 떠나겠다는
말을 들으니 앞이 아뜩해졌다.
 
“뭐 그렇게 가?”
 
“가지! 그럼…… 몰라서 이런 곳에 있지.”
 
그는 밖으로 나가며,
 
“이서방 잘 있수. 내 돈 많이 벌어 가지고 올게……
  어머이보군 잠자꾸 있수…….”
 
이서방은 요새 첫째가 만들어 준 나무다리를 짚고 그의 뒤를 따랐다.
 
“이애 나두 잘 몰라, 공장이라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그러니 내가 읍에
  들어가서 잘 알아 보고 떠나라. 그저 가기만 하면 어떻게 한단 말이냐.”
 
첫째는 아무 말 없이 달아난다. 이서방은 기가 나서 쫓아간다.
이제 떠나면 다시 볼지 말지한 첫째! 그는 마지막으로 손이라도 잡아 보고
싶은 맘에 허둥지둥 동구 밖을 벗어났다. 그러나 첫째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저 산등 위로 그믐달이 삐죽이 내밀었다.
  
                                   ***** 이어서  ( 4 중 3 )  ***** 

https://cammhl10.tistory.com/487

 

인간문제(4 중 3)- 강경애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인간문제(4 중 3) - 강경애 - 함박눈이 소리 없이 푹푹 내리는 십이월 이십오일 아침, 용연 동네는 높은 집 낮은 집 할것 없이 함박꽃 같은 눈송이로 덮였다. 이윽고

cammhl10.tistory.com

 
                 출전:동아일보(1934.8.1~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