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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덕방
- 이 태 준 -
철석, 앞집 판장 밑에서 물 내버리는 소리가 났다.
주먹구구에 골독했던 안초시에게는 놀랄 만한 폭음이었던지,
다리 부러진 돋보기 너머로, 똑 모이를 쪼으려는 닭의 눈을 해가지고
수챗구멍을 내다본다. 뿌연 뜨물에 휩쓸려 나오는 것이 여러 가지다.
호박 꼭지, 계란 껍질, 거피해 버린 녹두 껍질.
“녹두 빈자떡을 부치는 게로군, 흥…….”
한 오륙 년째 안초시는 말끝마다 ‘젠―장……’이 아니면 ‘흥 !’
하는 코웃음을 잘 붙이었다.
“추석이 벌써 낼 모레지! 젠―장…….”
안초시는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었다. 기름내가 코에 풍기는 듯
대뜸 입 안에 침이 흥건해지고 전에 괜찮게 지낼 때,
충치니 풍치니 하던 것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아래윗니가 송곳 끝같이 날카로워짐을 느끼었다.
안초시는 그 날카로워진 이를 빈 입인 채 빠드득 소리가 나게
한번 물어 보고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천리같이 트였는데 조각구름들이 여기저기 널리었다.
어떤 구름은 깨끗이 바래 말린 옥양목처럼 흰빛이 눈이 부시다.
안초시는 이내 자기의 때묻은 적삼 생각이 났다.
소매를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은 날래 들리지 않는다.
거기는 한 조박의 녹두빈자나 한잔의 약주로써 어쩌지 못할,
더 슬픔과 더 고적함이 품겨 있는 것 같았다.
혹혹 소매 끝을 불어 보고 손 끝으로 튀겨 보기도 하다가
목침을 세우고 눕고 말았다.
“이사는 팔하고 사오는 이십이라 천이 되지…… 가만…… 천이라?
사로 했으니 사천이라 사천 평…… 매 평에 아주 줄여 잡아
오 환씩만 하게 돼두 사 환 칠십오 전씩이 남으니,
그럼…… 사사는 십륙 일만 육천 환하구…….”
안초시가 다시 주먹구구를 거듭해서 얻어 낸 총액이 일만 구천 원,
단 천 원만 들여도 일만 구천 원이 되리라는 셈속이니,
만 원만 들이면 그게 얼만가? 그는 벌떡 일어났다. 이마가 화끈했다.
도사렸던 무릎을 얼른 곧추세우고 뒤나 보려는 사람처럼 쪼그렸다.
마코 갑이 번연히 빈 것인 줄 알면서도 다시 집어다 눌러 보았다.
주머니에는 단돈 십 전, 그도 안경 다리를 고친다고 벌써 세 번짼가
네 번째 딸에게서 사오십 전씩 얻어 가지고는 번번이 담뱃값으로
다 내어보내고 말던 최후의 십 전,
안초시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것을 집어 내었다.
백통화 한 푼을 얹은 야윈 손바닥, 가만히 떨리었다.
서참의(徐參議)의 투박한 손을 생각하면 너무나 얇고 잔망스러운 손이거니
하였다. 그러나, 이따금 술잔은 얻어먹고, 이렇게 내 방처럼
그의 복덕방(福德房)에서 잠까지 빌려 자건만 한 번도,
집 거간이나 해먹는 서참의의 생활이 부럽지는 않았다.
그래도 언제든지 한번쯤은 무슨 수가 생기어 다시 한번 내 집을 쓰게 되고,
내 밥을 먹게 되고,
내 힘과 내 낯으로 다시 한번 세상에 부딪혀 보려니 믿어졌다.
초시는 전에 어떤 관상쟁이의 ‘엄지손가락을 안으로 넣고 주먹을 쥐어야
재물이 나가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늘 그렇게 쥐노라고는 했지만 문득 생각이 나 내려다볼 때는,
으레 엄지손가락이 얄밉도록 밖으로만 쥐어져 있었다.
그래 드팀전을 하다가도 실패를 하였고, 그래 집까지 잡혀서 장전을
내었다가도 그만 화재를 보았거니 하는 것이다.
“이놈의 엄지손가락아, 안으로 좀 들어가아, 젠―장.”
하고 연습삼아 엄지손가락을 먼저 안으로 넣고 아프도록 두 주먹을 꽉 쥐어
보았다. 그리고 당장 내어보낼 돈이면서도 그 십 전짜리를
그렇게 쥔 주먹에 단단히 넣고 담배 가게로 나갔다.
이 복덕방에는 흔히 세 늙은이가 모이었다.
언제, 누가 와, 집 보러 가잘지 몰라, 늘 갓을 쓰고 앉아서
행길을 잘 내다보는, 얼굴 붉고 눈방울 큰 노인은 주인 서참의다.
참의로 다니다가 합병 후에는 다섯 해를 놀면서 시기를 엿보았으나
별수가 없을 것 같아서 이럭저럭 심심파적으로 갖게 된 것이
이 가옥 중개업(家屋仲介業)이었다. 처음에는 겨우 굶지 않을 만한
수입이었으나 대정 팔구년 이후로는 시골 부자들이 세금(稅金)에 몰려,
혹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서울로만 몰려들고, 그런데다 돈은 흔해져서
관철동(貫鐵洞), 다옥정(茶屋町) 같은 중앙지대에는 그리 고옥만 아니면
만 원대를 예사로 훌훌 넘었다.
그 판에 봄 가을로 어떤 달에는 삼사백 원 수입이 있어, 그러기를 몇 해를
지나 가회동(嘉會洞)에 수십 간 집을 세웠고 또 몇 해 지나지 않아서는
창동(倉洞) 근처에 땅을 장만하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중개업자도 많이 늘었고 건양사(建陽社) 같은 큰 건축회사가
생기어서 당자끼리 직접 팔고 사는 것이 원칙처럼 되어 가기 때문에
중개료의 수입은 전보다 훨씬 준 셈이다.
그러나 이십여 간 집에 학생을 치고 싶은 대로 치기 때문에 서참의의 수입이
없는 달이라고 쌀값이 밀리거나 나뭇값에 졸릴 형편은 아니다.
“세상은 먹구 살게는 마련야…….”
서참의가 흔히 하는 말이다. 칼을 차고 훈련원에 나서 병법을 익힐 제는,
한번 호령만 하고 보면 산천이라도 물러설 것 같던,
그 기개와 오늘의 자기, 한낱 가쾌(家儈)로 복덕방 영감으로
기생, 갈보 따위가 사글셋방 한 간을 얻어 달래도 네― 네 하고 따라나서야
하는, 만인의 심부름꾼인 것을 생각하면 서글픈 눈물이
아니 날 수도 없는 것이다. 워낙 술을 즐기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남몰래
이런 감회(感懷)를 이기지 못해서 술집에 들어선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러나 호반〔武人〕들의 기개란 흔히 혈기(血氣)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지 몸에서 혈기가 줆을 따라
그런 감회를 일으킴조차 요즘은 적어지고 말았다.
하루는 집에서 점심을 먹다 듣노라니 무슨 장사치의 외는 소리인데
아무래도 귀에 익은 목청이다. 자세히 귀를 기울이니 점점 가까이 오는
소리인데 제법 무엇을 사라는 소리가 아니라
‘유리병이나 간장통 팔거―쏘―’ 하는 소리이다.
그런데 그 목청이 보면 꼭 알 사람 같아 일어서 마루 들창으로 내어다보니,
이번에는 ‘가마니나 신문 잡지나 팔거―쏘―’ 하면서
가마니 두어 개를 지고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중노인이나 된 사나이가
지나가는데 아는 사람은 확실히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를 어디서 알았으며 성명이 무엇이며
애초에는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가 감감해지고 말았다.
“오―라! 그렇군…… 분명…… 저런!”
하고 그는 한참 만에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 유리병과 간장통을 외는 소리가 골목 안으로 사라져 갈 즈음에야
서참의는 그가 누구인 것을 깨달아 낸 것이다.
“동관(同官) 김참의…… 허!”
나이는 자기보다 훨씬 연소하였으나 학식과 재기가 있는데다 호령 소리가
좋아 상관에게 늘 칭찬을 받던 청년 무관이었었다.
이십여 년 뒤에 들어도 갈 데 없이 그 목청이요 그 모습이었다.
전날의 그를 생각하고 오늘의 그를 보니 적이 감개에 사무치어
밥숟가락을 멈추고 냉수만 거듭 마시었다.
그러나 전에 혈기 있을 때와 달라 그런 기분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중학교 졸업반인 둘째 아들이 학교에 갔다 들어서는 것을 보고,
또 싸전에서 쌀값 받으러 와 마누라가 선선히 시퍼런 지전을 내어
헤는 것을 볼 때 서참의는 이내 속으로,
‘거저 살아야지 별수 있나.
저렇게 개가죽을 쓰고 돌아다니는 친구도 있는데…… 에헴.’
하였을 뿐 아니라 그런 절박한 친구에다 대면
자기는 얼마나 훌륭한 지체냐 하는 자존심도 없지 않았다.
‘지난 일 그까짓 생각할 건 뭐 있나. 사는 날까지…… 허허.’
여생을 웃으며 살 작정이었다. 그래 그런지 워낙 좀 실없는 티가 있는데다
요즘 와서는 누구에게나 농지거리가 늘어 갔다.
그래 늘 눈이 달리고 뾰로통한 입으로는 말끝마다 젠―장 소리만 나오는
안초시와는 성미가 맞지 않았다.
“쫌보야, 술 한잔 사주랴?”
쫌보라는 말이 자기를 업수이여기는 것 같아서
안초시는 이내 발끈해 가지고,
“네깟 놈 술 더러 안 먹는다.”
한다.
“화투패나 밤낮 떼면 너이 어멈이 살아온다덴?”
하고 서참의가 발끝으로 화투장들을 밀어 던지면 그만 얼굴이 새빨개져서
쌔근쌔근하다가 부채면 부채, 담뱃갑이면 담뱃갑, 자기의 것을 냉큼
집어 들고 다시 안 올 듯이 새침해 나가 버리는 것이다.
“조게 계집이문 천생 남의 첩감이야.”
하고 서참의는 껄껄 웃어 버리나 안초시는 이렇게 돼서 올라가면
한 이틀씩 보이지 않았다.
한번은 안초시의 딸의 무용회(舞踊會) 날 밤이었다.
안경화(安京華)라고, 한동안 토월회(土月會)에도 다니다가 대판(大阪)에
가 있느니 동경(東京)에 가 있느니 하더니 오륙 년 뒤에
무용가로라 이름을 날리며 서울에 나타났다.
바로 제일회 공연 날 밤이었다. 서참의가 조르기도 했지만,
안초시도 딸의 사진과 이야기가 신문마다 나는 바람에 어깨가 으쓱해서
공표를 얻을 수 있는 대로 얻어 가지고 서참의뿐 아니라
여러 친구를 돌라줬던 것이다.
“허! 저기 한가운데서 지금 한창 다릿짓하는 게 자네 딸인가?”
남은 다 멍멍히 앉았는데 서참의가 해괴한 것을 보는 듯
마땅치 않은 어조로 물었다.
“무용이란 건 문명국일수록 벗구 한다네그려.”
약기는 한 안초시는 미리 이런 대답으로 막았다.
“모르겠네 원…… 지금 총각놈들은 모두 등신인가 바…….”
“왜?”
하고 이번에는 다른 친구가 탄하였다.
“우린 총각 시절에 저런 걸 보문 그냥 못 배기네.”
“빌어먹을 녀석…… 나잇값을 못 하구 개야 저건 개…….”
벌써 안초시는 분통이 발끈거려서 나오는 소리였다.
한 가지가 끝나고 불이 환하게 켜졌을 때다.
“도루, 차라리 여배우 노릇을 댕기라구 그래라.
여배운 그래두 저렇게 넓적다린 내놓구 덤비지 않더라.”
“그 자식 오지랖 경치게 넓네. 네가 안방 건는방이 멫 칸이요나 알았지
뭘 쥐뿔이나 안다구 그래? 보기 싫건 나가렴.”
하고 안초시는 화를 발끈 내었다.
그러니까 서참의도 안방 건넌방 말에 화가 나서 꽤 높은 소리로,
“넌 또 뭘 아니? 요 쫌보야.”
하고 일어서 버리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안초시는 거의 달포나 서참의의 복덕방에 나오지 않았었다.
그런 걸 박희완(朴喜完) 영감이 가서 데리고 왔었다.
박희완 영감이란 세 영감 중의 하나로 안초시처럼 이 복덕방에 와
자기까지는 안 하나 꽤 쏠쏠히 놀러 오는 늙은이다. 아니 놀러 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와서는 공부도 한다. 재판소에 다니는 조카가 있어
대서업(代書業)운동을 한다고 『속수국어독본(速修國語讀本)』을
노상 끼고 와 그 『삼국지(三國志)』 읽던 투로,
“긴―상 도코―에 유키이마스카.”
어쩌고를 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속수국어독본』 뚜껑이 손때에 절고,
또 어떤 때는 목침 위에 받쳐 베고 낮잠도 자서 머리때까지 새까맣게 절어
조선총독부편찬(朝鮮總督府編纂)이란 잔 글자들은 보이지 않게 되도록,
대서업 허가는 의연히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너나 내나 다 산 것들이 업은 가져 뭘 허니. 무슨 세월에…… 흥!”
하고 어떤 때, 안초시는 한나절이나 화투패를 떼다 안 떨어지면
그 화풀이로 박희완 영감이 들고 중얼거리는 『속수국어독본』을 툭 채어
행길로 팽개치며 그랬다.
“넌 또 무슨 재술 바라구 밤낮 화투패나 떨어지길 바라니?”
“난 심심풀이지.”
그러나 속으로는 박희완 영감보다 더 세상에 대한 야심이 끓었다.
딸이 평양으로 대구로 다니며 지방 순회까지 하여서 제법 돈냥이나
걷힌 것 같으나 연구소를 내느라고 집을 뜯어고친다, 유성기를 사들인다,
교제를 하러 돌아다닌다 하느라고, 더구나 귀찮게만 아는 이 애비를 위해
쓸 돈은 예산에부터 들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얘? 낡은 솜이 돼 그런지, 삯바느질이 돼 그런지 바지 솜이 모두 치어서
어떤 덴 홑옷이야. 암만해두 사쓸 한 벌 사입어야겠다.”
하고 딸의 눈치만 보아 오다 한번은 입을 열었더니,
“어련히 인제 사드릴라구요.”
하고 딸은 대답은 선선하였으나 샤쓰는 그해 겨울이 다 지나도록
구경도 못 하였다. 샤쓰는커녕 안경다리를 고치겠다고 돈 일 원만 달래도
일 원짜리를 굳이 바꿔다가 오십 전 한 닢만 주었다.
안경은 돈을 좀 주무르던 시절에 장만한 것이라 테만 오륙 원 먹은 것이어서
오십 전만으로 그런 다리는 어림도 없었다. 오십 전짜리 다리도 있지만
살 바에는 조촐한 것을 택하던 초시의 성미라 더구나 면상에서 짝짝이로
드러나는 것을 사기가 싫었다. 차라리 종이 노끈인 채 쓰기로 하고
오십 전은 담뱃값으로 나가고 말았다.
“왜 안경다린 안 고치셨어요?”
딸이 그날 저녁으로 물었다.
“흥…….”
초시는 말은 하지 않았다. 딸은 며칠 뒤에 또 오십 전을 주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지,
“아버지 보험료만 해두 한 달에 삼 원 팔십 전씩 나가요.”
하였다. 보험료나 타먹게 어서 죽어 달라는 소리로도 들리었다.
“그게 내게 상관 있니?”
“아버지 위해 들었지 누구 위해 들었게요 그럼?”
초시는
‘정말 날 위해 하는 거문 살아서 한푼이라두 다우.
죽은 뒤에 내가 알 게 뭐냐’ 소리가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오십 전이문 왜 안경다릴 못 고치세요?”
초시는 설명하지 않았다.
“지금 아버지가 좋고 낮은 걸 가리실 처지야요?”
그러나 오십 전은 또 마코 값으로 다 나갔다.
이러기를 아마 서너 번째다.
“자식도 소용 없어. 더구나 딸자식……
그저 내 수중에 돈이 있어야…….”
초시는 돈의 긴요성(緊要性)을 날로 날로 더욱 심각하게 느끼었다.
“돈만 가지면야 좀 좋은 세상인가!”
심심해서 운동삼아 좀 나다녀 보면 거리마다 짓느니 고층 건축들이요
동네마다 느느니 그림 같은 문화주택들이다. 조금만 정신을 놓아도
물에서 갓 튀어나온 메기처럼 미끈미끈한 자동차가 등덜미에서 소리를 꽥
지른다. 돌아다보면 운전수는 눈을 부릅떴고 그 뒤에는 금시곗줄이
번쩍거리는, 살진 중년 신사가 빙그레 웃고 앉았는 것이었다.
“예순이 낼 모레…… 젠―장할 것.”
초시는 늙어 가는 것이 원통하였다. 어떻게 해서나 더 늙기 전에
적게 돈 만 원이라도 붙들어 가지고 내 손으로 다시 한번 이 세상과
교섭해 보고 싶었다. 지금 이 꼴로서야 문화주택이 암만 서기로
내게 무슨 상관이며 자동차, 비행기가 개미떼나 파리떼처럼 퍼지기로
나와 무슨 인연이 있는 것이냐, 세상과 자기와는
자기 손에서 돈이 떨어진, 그 즉시로 인연이 끊어진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면 송장이나 다름없지 뭔가?”
초시는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는 지가 이미 오래였다.
“무슨 수가 없을까?”
또,
“무슨 그루테기가 있어야 비비지!”
그러다도,
“그래도 돈냥이나 엎질러 본 녀석이 벌기도 하는 게지.”
하고 그야말로 무슨 그루터기만 만나면 꼭 벌기는 할 자신이었다.
그러다가 박희완 영감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관변에 있는 모 유력자를 통해
비밀리에 나온 말인데, 황해 연안에 제이의 나진(羅津)이 생긴다는
말이었다. 지금은 관청에서만 알 뿐이나 축항 용지(築港用地)는 비밀리에
매수되었으므로 불원하여 당국자로부터 공표가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럼, 거기가 황무진가? 전답들인가?”
초시는 눈이 뻘개 물었다.
“밭이라데.”
“밭? 그럼 매평 얼마나 간다나?”
“좀 올랐대. 관청에서 사는 바람에 아무리 시굴 사람들이기루
그만 눈치 없겠나. 그래두 무슨 일루 관청서 사는진 모르거든…….”
“그래?”
“그래, 그리 오르진 않었대…… 아마 평당 이십오륙 전씩이면
살 수 있다나 보데. 그러니 화중지병이지 뭘 허나 우리가…….”
“음…….”
초시는 관자놀이가 욱신거리었다. 정말이기만 하면 한 시각이라도 먼저
덤비는 놈이 더 먹는 판이다. 나진도 오륙 전 하던 땅이 한번 개항된다는
소문이 나자 당년으로 오륙 전의 백 배 이상이 올랐고 삼사 년 뒤에는,
땅 나름이지만 어떤 요지(要地)는 천 배 이상이 오른 데가 많다.
‘다 산 나이에 오래 끌 건 뭐 있나.
당년으로 넘겨두 최소한도 오 환씩야 무려할 테지…….’
혼자 생각한 초시는,
“대관절 어디란 말야 거기가?”
하고 나앉으며 물었다.
“그걸 낸들 아나?”
“그럼?”
“그 모씨라는 이만 알지. 그리게 날더러 단 만 원이라도 자본을 운동하면
자기는 거기서도 어디어디가 요지라는 걸 설계도를 복사해 낸 사람이니까
그 요지만 산단 말이지, 그리구 많이두 바라지 않어,
비용 죄다 제치구 순이익의 이 할만 달라는 거야.”
“그럴 테지…… 누가 그런 자국을 일러주구 구경만 하자겠나……
이 할이라…… 이 할…….”
초시는 생각할수록 이것이 훌륭한, 그 무슨 그루터기가 될 것 같았다.
나진의 선례도 있거니와 박희완 영감 말이, 만주국이 되는 바람에 중국과의
관계가 미묘해지므로 황해 연안에도 으레 나진과 같은 사명을 갖는
큰 항구가 필요할 것은 우리 상식으로도 추측할 바이라 하였다.
초시의 상식에도 그것을 믿을 수 있었다.
오늘은 오래간만에 피죤을 사서, 거기서 아주 한 대를 피워 물고 왔다.
어째 박희완 영감이 종일 보이지 않는다.
다른 데로 자금운동을 다니나 보다 하였다. 서참의는 점심 전에 나간 사람이
어디서 흥정이 한 자리 떨어지느라고인지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
안초시는 미닫이틀 위에서 낡은 화투를 꺼내었다.
“허, 이거 봐라!”
여간해선 잘 떨어지지 않던 거북패가 단번에 뚝 떨어진다.
누가 옆에 있어 좀 보아 줬으면 싶었다.
“아무래두 이게 심상치 않어…… 이제 재수가 티나 부다!”
초시는 반도 타지 않은 담배를 행길로 내어던졌다. 출출하던 판에 담배만
몇 대를 피고 나니 목이 컬컬해진다. 앞집 수채에는 뜨물에 떠내려 가다
막힌 녹두 껍질이 그저 누렇게 보인다.
“오냐, 내년 추석엔…….”
초시는 이날 저녁에 박희완 영감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딸에게 하였다.
실패는 했을지라도 그래도 십수 년을 상업계에서 논 안초시라 출자(出資)를
권유하는 수작만은 딸이 듣기에도 딴사람인 듯 놀라웠다.
딸은 즉석에서는 가부를 말하지 않았으나 그의 머릿속에서도
이내 잊혀지지는 않았던지 다음날 아침에는, 딸 편이 먼저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었고, 초시가 박희완 영감에게 묻던 이상으로
시시콜콜히 캐어물었다. 그러면 초시는 또 박희완 영감 이상으로
손가락으로 가리키듯 소상히 설명하였고 일년 안에 청장을 하더라도
최소한도로 오십 배 이상의 순이익이 날 것이라 장담 장담하였다.
딸은 솔깃했다. 사흘 안에 연구소 집을 어느 신탁회사(信託會社)에 넣고
삼천 원을 돌리기로 하였다.
초시는 금시 발복이나 된 듯 뛰고 싶게 기뻤다.
“서참의 이놈, 날 은근히 멸시했것다. 내 굳이 널 시켜 네 집보다
난 집을 살 테다. 네깟놈이 천생 가쾌지 별거냐…….”
그러나 신탁회사에서 돈이 되는 날은 웬 처음 보는 청년 하나가 초시의
앞을 가리며 나타났다. 그는 딸의 청년이었다.
딸은 아버지의 손에 단 일 전도 넣지 않았고 꼭 그 청년이 나서 돈을 쓰며
처리하게 하였다. 처음에는 팩 나오는 노염을 참을 수가 없었으나
며칠 밤을 지내고 나니, 적어도 삼천 원의 순이익이 오륙만 원은 될 것이라,
만 원 하나야 어디로 가랴 하는 타협이 생기어서 안초시는 으슬으슬
그, 이를테면 사위녀석격인 청년의 뒤를 따라나섰다.
일년이 지났다.
모두 꿈이었다. 꿈이라도 너무 악한 꿈이었다. 삼천 원 어치 땅을 사놓고
날마다 신문을 훑어보며 수소문을 하여도 거기는 축항이 된단 말이
신문에도, 소문에도 나지 않았다.
용당포(龍塘浦)와 다사도(多獅島)에는 땅값이 삼십 배가 올랐느니
오십 배가 올랐느니 하고 졸부들이 생겼다는 소문이 있어도 여기는
감감소식일 뿐 아니라 나중에, 역시, 이것도 박희완 영감을 통해 알고 보니
그 관변 모씨에게 박희완 영감부터 속아떨어진 것이었다.
축항 후보지로 측량까지 하기는 하였으나 무슨 결점으로인지 중지되고
마는 바람에 너무 기민하게 거기다 땅을 샀던,
그 모씨가 그 땅 처치에 곤란하여 꾸민 연극이었다.
돈을 쓸 때는 일 원짜리 한 장 만져도 못 봤지만 벼락은 초시에게 떨어졌다.
서너 끼씩 굶어도 밥 먹을 정신이 나지도 않았거니와
밥을 먹으러 들어갈 수도 없었다.
“재물이란 친자간의 의리도 배추 밑 도리듯 하는 건가?”
탄식할 뿐이었다. 밥보다는 술과 담배가 그리웠다.
물론 안경다리는 그저 못 고치었다. 그러나 이제는
오십 전짜리는커녕 단 십 전짜리도 얻어 볼 길이 없다.
추석 가까운 날씨는 해마다의 그때와 같이 맑았다. 하늘은 천리같이
트였는데 조각구름들이 여기저기 널리었다. 어떤 구름은 깨끗이 바래 말린
옥양목처럼 흰빛이 눈이 부시다. 안초시는 이번에도 자기의 때묻은
적삼 생각이 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매 끝을 불거나 떨지는 않았다.
고요히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 더러운 소매로 닦았을 뿐이다.
여름이 극성스럽게 덥더니, 추위도 그럴 징조인지 예년보다 무서리가 일찍
내리었다. 서참의가 늘 지나다니는 식은관사(殖銀官舍)에들 울타리가 넘게
피었던 코스모스들이 끓는 물에 데쳐 낸 것처럼 시커멓게 무르녹고 말았다.
참의는 머리가 띵―하였다. 요즘 와서 울기 잘하는 안초시를 한번 위로해
주려, 엊저녁에는 데리고 나와 청요릿집으로, 추탕집으로 새로 두 점을
치도록 돌아다닌 때문 같았다. 조반이라고 몇 술 뜨기는 했으나
혀도 그냥 뻑뻑하다. 안초시도 그럴 것이니까 해는 벌써 오정 떄지만
끌고 나와 해장술이나 먹으리라 하고 부지런히 내려와 보니,
웬일인지 복덕방이라고 쓴 베 발이 아직 내어걸리지 않았다.
“이 사람 봐아…… 어느 땐 줄 알구 코만 고누…….”
그러나 코고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미닫이를 밀어 젖힌 서참의는 정신이
번쩍 났다. 안초시의 입에는 피, 얼굴은 잿빛이다.
방 안은 움 속처럼 음습한 바람이 휭― 끼친다.
“아니?”
참의는 우선 미닫이를 닫고 눈을 비비고 초시를 들여다보았다.
안초시는 벌써 아니요, 안초시의 시체일 뿐,
둘러보니 무슨 약병인 듯한 것 하나가 굴러져 있다.
참의는 한참 만에야 이 일이 슬픈 일인 것을 깨달았다.
“허!”
파출소로 갈까 하다 그래도 자식한테 먼저 알려야겠다 하고 말만 듣던
그 안경화 무용연구소를 찾아가서 안경화를 데리고 왔다.
딸이 한참 울고 난 뒤다.
“관청에 어서 알려야지?”
“아니야요. 앗으세요.”
딸은 펄쩍 뛰었다.
“앗으라니?”
“저…….”
“저라니?”
“제 명예도 좀…….”
하고 그는 애원하였다.
“명예? 안 될 말이지, 명옐 생각하는 사람이 애빌 저 모양으루
세상 떠나게 해?”
“……”
안경화는 엎드려 다시 울었다.
그러다가 나가려는 서참의의 다리를 끌어안고 놓지 않았다. 그리고,
“절 살려 주세요.”
소리를 몇 번이나 거듭하였다.
“그럼, 비밀은 내가 지킬 테니 나 하자는 대루 할까?”
“네.”
서참의는 다시 앉았다.
“부친 위해 보험 든 거 있지?”
“네 간이보험이야요.”
“무슨 보험이든…… 얼마나 타게 되누?”
“사백팔십 원요.”
“부친 위해 들었으니 부친 위해 다 써야지?”
“그럼요.”
“에헴, 그럼…… 돌아간 이가 늘 속사쓸 입구퍼 했어.
상등 털사쓰를 사다 입히구, 그 우에 진견으로 수의 일습 구색 맞춰
짓게 허구…… 선산이 있나, 묻힐 데가?”
“웬걸요, 없어요.”
“그럼 공동묘지라도 특등지루 널찍하게 사구…… 장례식을 장―하게
해야 말이지 초라하게 해버리면 내가 그저 안 있을 게야. 알아들어?”
“네에.”
하고 안경화는 그제야 핸드백을 열고 눈물 젖은 얼굴을 닦았다.
안초시의 소위 영결식(永訣式)이 그 딸의 연구소 마당에서 열리었다.
서참의와 박희완 영감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 갔다.
박희완 영감이 무얼 잡혀서 가져왔다는 부의(賻儀) 이 원을 서참의가,
“장례비가 넉넉하니 자네 돈 그 계집애 줄 거 없네.”
하고 우선 술집에 들러 거나하게 곱빼기들을 한 것이다.
영결식장에는 제법 반반한 조객들이 모여들었다. 예복을 차리고 온 사람도
두엇 있었다. 모두 고인을 알아 온 것이 아니요, 무용가 안경화를 보아 온
사람들 같았다. 그 중에는, 고인의 슬픔을 알아 우는 사람인지,
덩달아 기분으로 우는 사람인지 울음을 삼키느라고 끽끽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안경화도 제법 눈이 젖어 가지고 신식 상복이라나
공단 같은 새까만 양복으로 관 앞에 나와 향불을 놓고 절하였다.
그 뒤를 따라 한 이십 명 관 앞에 와 꾸벅거리었다.
그리고 무어라고 지껄이고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분향이 거의 끝난 듯하였을 때,
“에헴!”
하고 얼굴이 시뻘건 서참의도 한마디 없을 수 없다는 듯이 나섰다.
향을 한움큼이나 집어 놓아 연기가 시커멓게 올려 솟더니 불이 일어났다.
후― 후― 불어 불을 끄고, 수염을 한번 쓰다듬고 절을 했다. 그리고 다시,
“헴…….”
하더니 조사(弔辭)를 하였다.
“나 서참읠세, 알겠나? 흥…… 자네 참 호살세 호사야…… 잘 죽었느니.
자네 살았으문 이만 호살 해보겠나?
인전 안경다리 고칠 걱정두 없구…… 아무튼지…….”
하는데 박희완 영감이 들어서더니,
“이 사람 취했네그려.”
하며 서참의를 밀어냈다.
박희완 영감도 가슴이 답답하였다. 분향을 하고 무슨 소리를 한마디 했으면
속이 후련히 트일 것 같아서 잠깐 멈칫하고 서 있어 보았으나,
“으흐읅…….”
하고 울음이 먼저 터져 그만 나오고 말았다.
서참의와 박희완 영감도 묘지까지 나갈 작정이었으나 거기 모인 사람들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아 도로 술집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가마귀』, 한성도서,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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