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사냥 - 이효석 -

하얀모자 1 2024. 3. 27.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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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냥
                                                               - 이효석 -
 
연해 두어 번 총소리가 산속에 울렸다.
몰이꾼의 행렬은 산등을 넘고 골짝을 향하여 차차 옴츠러들었다.
발밑에 요란히 울리는 떡갈잎 가랑잎의 어지러운 소리에
산을 싸고 도는 동무들의 고함도 귀 밖에 멀다.
상기된 눈앞에 민출한 자작나무의 허리가 유난스럽게도 희끔희끔 거린다.
 
수백 명 학생들이 외줄로 늘어서 멀리 산을 둘러싸고 골짝으로 노루를
모조리 내리모는 것이다. 골짝 어귀에는 오륙 명의 포수가 등대하고 섰다.
노루를 빼울 위험은 포수 편에 보다 늘 포위선에 있다.
시끄러운 책임을 모면하기 위하여 몰이꾼들은 빽빽한 주의와 담력으로
포위선을 한결같이 경계하여야 된다.
적어도 눈앞에서 짐승을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학년 사이의 연락은 긴밀히! ×학년 우익 급속 전진!”
 
전령이 차례차례로 흘러 온다.
 
일제히 내닫느라고 산이 가랑잎 소리에 묻혀 버렸다.
낙엽 속은 걷기 힘들다. 숨들이 막힌다.
 
학년의 앞장을 선 학보도 양쪽 동무와의 간격을 단단히 단속하면서
헐레벌떡거린다. 참나무 회초리가 사정없이 손등과 낯짝을 갈긴다.
발이 낙엽 속에 빠진다.
홧김에 손에 든 몽둥이로 나뭇가지를 후려치기도 멋없다.
 
“미친 짓이다. 노루는 잡어 무엇 한담.”
 
아까부터 실상은 처음부터 이런 생각이 마음속에 뱅 도는 것이었다.
노루잡이가 그다지 교육의 훈련이 될 듯도 싶지 않으며
쓸모없는 애매한 짐승을 일없이 잡음이 도무지 뜻없는 일 같다.
원족이면 원족,
거저 하루를 산 속에서 뛰고 노는 편이 더 즐겁지 않은가.
 
“인간이란 제 생각밖에는 못하는 잔인한 동물이다.
노루잡이는 무의미한 연중행사이다.”
 
기어코 입밖에 내서까지 중얼거리게 되었다.
땀이 내배어 등어리가 끈끈하다.
 
별안간 포위선의 열이 어지럽게 움직이더니 몽둥이가 날으며
날쌔게들 뛰어든다. 고함소리가 산을 흔든다.
 
“노루 노루 노루!”
 
“우익 주의!”
 
깨금나무 숲에 가리워 노루의 꼴조차 못 보고
어안이 벙벙하여 있는 서슬에 송아지만한 노루는
별안간 학보의 곁을 쏜살같이 자나 포위선을 뚫었다.
학보는 거의 반사적으로 몽둥이를 휘두르며 쫓았으나 민첩한 짐승은
순식간에 산등을 넘어 버렸다.
 
“또 한 마리. 놓치치 마라!”
 
고함과 함께 둘쨋마리가 어느결엔지 성큼성큼 뛰어오다
벼르고 있는 학보의 자세를 보더니 옆으로 빗 뛰어가
이 역 약빠르게 뒷산으로 달아나 버렸다.
 
껑충한 귀여운 짐승 극히 짧은 찰나의 생각이나
학보는 문득 놓친 것이 아까웠다. 동시에 겸연쩍고 부끄러운 느낌이 났다.
조롱하는 동무들의 말소리가 얼굴을 달게 하였다.
 
“바보, 노루 두 마리 찾아내라.”
 
이런 말을 들을 때에 확실히 몽둥이로 한 마리라도 두드려 잡았더면
얼마나 버젓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났다.
골 안에는 벌써 더 짐승이 없었다.
동무들의 조롱을 하는 수 없이 참으면서
힘없이 산을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요행히’ 잡은 것은 있었다. 망아지만한 한 마리가 배에 탄창을 맞고
쓰러져 있다. 쏜 포수는 쏠 때의 형편을 거듭 말하며
은근히 오늘의 수완을 자랑하는 눈치였다.
다른 포수들은 잠자코만 있었다.
소득이 있으므로 동무들의 문책은 덜해졌으나
학보는 검붉은 피를 흘리고 쓰러진 가여운 짐승을 볼 때
문득 문득 일종의 반항심이 솟아오르며 소득을 기뻐하는
몹쓸 무리가 한없이 미워지고 쏜 포수의 잔등을 총부리로 쳐서
꼬꾸라트리고도 싶은 충동이 솟았다.
 
품안에 들어온 두 마리의 짐승을 놓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위대한 공같이도 생각되었다.
잃어진 한 마리를 찾노라고 애달픈 가족들이
이 밤에 얼마나 산속을 헤매일까를 생각하면 뼈가 저렸다.
인간의 잔인성이 곱절로 미워지며 ‘인간중심주의’의 무도한 사상에
다시 침 뱉고 싶었다.
 
죽은 짐승을 생각하고 며칠을 마음이 언짢았다.
삼사 일이 지난 후에 겨우 입맛도 돌아섰다. 때가 유난스럽게 맛났다.
기어코 학보는 그날 밤 진미의 고기를 물어 보았다.
 
“장에 났더라. 노루고기다.”
 
어머니의 대답에 불현듯이 구미가 없어지며 숟가락을 던져 버렸다.
 
“노루고긴 왜 사요.”
 
퉁명스런 짜증에 어머니는 도리어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었다.
학보는 먹은 것을 모두 게우고도 싶었다.
결국 고기를 먹지 말아야 옳을까.
하기는 다시 더 생각이 날 것 같지도 않았다.
 
 
            < 출전 미상 1936년 이효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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