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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지 - 김유정 -

노다지                                  - 김유정 -   그믐 칠야 캄캄한 밤이었다. 하늘에 별은 깨알같이 총총 박혔다. 그 덕으로 솔숲 속은 간신히 희미하였다. 험한 산중에도 우중충하고 구석배기 외딴 곳이다. 버석만 하여도 가슴이 덜렁한다. 호랑이, 산골 호생원!   만귀는 잠잠하다. 가을은 이미 늦었다고 냉기는 모질다. 이슬을 품은 가랑잎은 바시락바시락 날아들며 얼굴을 축인다.   꽁보는 바랑을 모로 베고 풀 위에 꼬부리고 누웠다가 잠깐 깜박하였다. 다시 눈이 띄었을 적에는 몸서리가 몹시 나온다. 형은 맞은편에 그저 웅크리고 앉았는 모양이다.    "성님, 인저 시작해 볼라우!"    "아직 멀었네, 좀 춥더라도 참참이 해야지……."   어둠 속에서 그 음성만 우렁차게, 그..

한국단편문학 2025.04.06

산책길에서 만난 ...

2025,04,02 맑음   요즘 산책길은 시절에 맞추어 눈 닿는 곳마다 봄 풀꽃들과 나무꽃이 한창이다. 오가며 보는 꽃들이 생각보다 많다. 우선 꽃잔디(지면패랭이),빨간광대나물,노란민들레,하얀냉이,파란꽃마리,빨간살갈퀴,하얀목련,조팝나무,빨간동백,노란산수유,하얀벚꽃,영산홍...... 매화,노란영춘화는 벌써 졌고 백,자목련도 지는 중이며 벚꽃도 오늘부터 꽃잎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내일부터 몇일간은 부는 바람에 벚꽃잎의 꽃비가 내릴것 같다. 산책길에 생각이 많아져 카메라 들고 산책길을 훑어본다. 이것 저것 담기는 했지만 그 중에 몇가지만 기록으로 올려본다. 벚꽃    동 백   삼색제비꽃 ( 팬지 )   이 곳을 찾아주신 모든 분들 ! 오늘도 탈 없는 하루 되시고 웃음 가득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나들이 이야기 2025.04.03

목넘이 마을의 개 - 황순원 -

목넘이 마을의 개                                                --  황순원  --  어디를 가려도 목을 넘어야 했다. 남쪽만은 패 길게 굽이 돈 골짜기를 이루고 있지만, 결국  동서남북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어디를 가려도 산목을 넘어야만 했다. 그래 이름 지어 목넘이 마을이라 불렀다. 이 목넘이 마을에 한 시절 이른 봄으로부터 늦가을까지 적잖은 서북간도 이사꾼이 들러 지나갔다. 남쪽 산목을 넘어오는 이들 이사꾼들은 이 마을에 들어서서는 으레 서쪽 산밑 오막살이 앞에 있는 우물가에서 피곤한 다리를 쉬어 가는 것이었다. 대개가 단출한 식구라고는 없는 듯했다. 간혹가다 아직 나이 젊은 내외인 듯한 남녀가 보이기도 했으나, 거의 다 수다한 가족이 줄레줄레 남쪽 산목을 넘..

한국단편문학 2025.03.28

고장난 문 - 이범선 -

고장난 문                                                            - 이범선 -     "자, 그럼 처음부터 찬찬히 이야기해봐. 거짓말은 하지 않는 편이 좋아. 우린 벌써 다 알고 있으니까."    열 여덟 살 만덕이게게는 아버지뻘이나 되어 보이는 중년 수사관이 볼펜을 거기 조서 위에 굴려 놓고 걸상 등받이에 깊숙이 기대어 앉았다. 이미 조서는 꾸며졌으니 들으나마나 한 이야기지만 하도 애원을 하니까 한 번 더 들어 봐 준다는 그런 태도였다.    "형사님, 제가 왜 무엇 때문에 거짓뿌렁을 합니까.  정말 억울합니다! 제가 한 말은 다 사실입니다.  요만큼도 거짓뿌렁 없읍니다."    책상 모서리에 놓인 나무 걸상에 두 무릎을 모으고 단정하게 앉은 만덕은 ..

한국단편문학 2025.03.23

소금 - 강경애 -

소금                        - 강경애 -     1. 농가  2. 유랑  3. 해산  4. 유모  5. 어머니의 마음  6. 밀수입    1. 농가 용정서 팡둥(중국인 지주)이 왔다고 기별이 오므로 남편은 벽에 걸어두고 아끼던 수목두루마기를 꺼내 입고 문밖을 나갔다. 봉식 어머니는 어쩐지 불안을 금치 못하여 문을 열고 바쁘게 가는 남편의 뒷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참말 팡둥이 왔을까? 혹은 자×단(自×團)들이 또 돈을 달래려고 거짓 팡둥이 왔다고 하여 남편을 데려가지 않는가? 하며 그는 울고 싶었다. 동시에 그들의 성화를 날마다 받으면서도 불평 한마디 토하지 못하고 터들터들 애쓰는 남편이 끝없이 불쌍하고도 가여워 보였다. 지금도 저렇게 가고 있지 않은가! 그는 한숨을 푹 쉬며 없는..

한국단편문학 2025.03.18

25,03,12 용추계곡 첫답사. 애기괭이,노루귀,얼레지,흰털괭이눈,백양꽃,남산제비꽃,매화,수선화,나팔꽃

25,03,12 용추계곡 첫답사.       애기괭이,노루귀,얼레지,흰털괭이눈,백양꽃,남산제비꽃,매화,수선화,나팔꽃   오늘 아침은 날씨가 흐릴거라는 일기예보를 가차없이 뒤집어 놓은 '맑음' 이다.이것저것 가방에 챙기고 길을 나선다.   김밥 2줄,사과 1.오렌지 1,사탕 2알,미니에너지바 3개 그리고 물 1리터, 카메라 여유밧데리 1셋트, 거리조정봉. 가방이 묵직하다.   계곡입구에 다다르니 주중이라 그런지 산객들이 보이지 않는다. 산길 좌우를 유심히 살피면서 길을 오른다. 산괴불주머니,현호색,제비꽃,산자고... 지난겨울이 엄청 추워서 그랬는지 모두 잎만 살짝 보인다. 하긴 매화를 예년보다 달포 정도 늦게 보았으니...   용추다리 2교에 이르러 물가를 살피니 애기괭이눈이 이제 나오기 시작한다. 봄이 ..

괜찮아(수필) - 장영희 -

괜찮아                                             - 장영희 -   초등학교 때 우리 집은 제기동에 있는 작은 한옥이었다. 골목 안에는 고만고만한 한옥 네 채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한 집에아이가 네댓은 되었으므로, 그 골목길만 초등학교 아이들이 줄잡아 열명이 넘었다. 학교가 파할 때쯤 되면 골목 안은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  어머니는 내가 집에서 책만 읽는 것을 싫어 하셨다. 그래서 방과 후 골목길에 아이들이 모일 때쯤이면 어머니는 대문 앞 계단에 작은 방석을 깔고 나를 거기에 앉혀 주셨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구경이라도 하라는 뜻이었다.    딱히 놀이  기구가 없던 그때, 친구들은 대부분 술래잡기, 사방치기, 공기놀이, 고무..

한국단편문학 2025.03.14

난중일기 7 중 7 - 忠武公 이순신 -

난중일기 7 중 7 - 忠武公 이순신 -                      무술년 (1598년)      조선시대 군사계급    https://blog.naver.com/udtssueod/90102541009   목 차 1.무술년 1월 (1598년 1월) 2.2월 기록에 없음 3.3월 기록에 없음 4.4월 기록에 없음 5.5월 기록에 없음 6.6월 기록에 없음 7.7월 기록에 없음 8.8월 기록에 없음 9.무술년 9월 (1598년 9월) 10.무술년 10월 (1598년 10월)   1.무술년 1월 (1598년 1월)   1월 초1일 (정해) 맑다.[양력 2월 5일]   저녁나절에 비기 잠깐 내렸다. 경상수사∙조방장 및 여러 장수들이 다와서 모였다.   1월 초2일 (무자) 맑다.[양력 2월 6일]  ..

한국단편문학 2025.03.10

난중일기 7 중 6 - 忠武公 이순신 -

난중일기 7 중 6 - 忠武公 이순신 -                  정유년 (1597년)      조선시대 군사계급    https://blog.naver.com/udtssueod/90102541009   목 차 1.1월 기록에 없음 2.2월 기록에 없음 3.3월 기록에 없음 4.정유년 4월 (1597년 4월) 5.정유년 5월 (1597년 5월) 6.정유년 6월 (1597년 6월) 7.정유년 7월 (1597년 7월) 8.정유년 8월 (1597년 8월) 9.정유년 9월 (1597년 9월) 10.정유년 10월 (1597년 10월) 11.정유년 11월 (1597년 11월) 12.정유년 12월 (1597년 12월)   1.1월 기록에 없음   2.2월 기록에 없음   3.3월 기록에 없음   4.정유년 4월..

한국단편문학 2025.03.06

난중일기 7 중 5 - 忠武公 이순신 -

난중일기 7 중 5 - 忠武公 이순신 -                   병신년 (1596년)      조선시대 군사계급    https://blog.naver.com/udtssueod/90102541009   목 차 1.병신년 1월 (1596년 1월) 2.병신년 2월 (1596년 2월) 3.병신년 3월 (1596년 3월) 4.병신년 4월 (1596년 4월) 5.병신년 5월 (1596년 5월) 6.병신년 6월 (1596년 6월) 7.병신년 7월 (1596년 7월) 8.병신년 8월 (1596년 8월) 9.병신년 閏8월 (1596년 윤8월) 10.병신년 9월 (1596년 9월) 11.병신년 10월 (1596년 10월) 12.11월 기록에 없음 13.12월 기록에 없음   (** 1596년(병신) 1월 1일의..

한국단편문학 2025.03.03

난중일기 7 중 4 - 忠武公 이순신 -

난중일기 7 중 4 - 忠武公 이순신 -    을미년 (1595년)      조선시대 군사계급    https://blog.naver.com/udtssueod/90102541009          목 차 1.을미년 1월 (1595년 1월) 2.을미년 2월 (1595년 2월) 3.을미년 3월 (1595년 3월) 4.을미년 4월 (1595년 4월) 5.을미년 5월 (1595년 5월) 6.을미년 6월 (1595년 6월) 7.을미년 7월(1595년 7월) 8.을미년 8월 (1595년 8월) 9.을미년 9월 (1595년 9월) 10.을미년 10월 (1595년 10월) 11.을미년 11월 (1595년 11월) 12.을미년 12월 (1595년 12월)   1.을미년 1월 (1595년 1월) 1월 초1일 (갑술) 맑다..

한국단편문학 2025.02.27

난중일기 7 중 3 - 忠武公 이순신 -

난중일기 3 - 忠武公 이순신 -        갑오년 (1594년)      조선시대 군사계급    https://blog.naver.com/udtssueod/90102541009         목 차   1.갑오년 1월 (1594년 1월) 2.갑오년 2월 (1594년 2월) 3.갑오년 3월 (1594년 3월) 4.갑오년 4월 (1594년 4월) 5.갑오년 5월 (1594년 5월) 6.갑오년 6월 (1594년 6월) 7.갑오년 7월 (1594년 7월) 8.갑오년 8월 (1594년 8월) 9.갑오년 9월 (1594년 9월) 10.갑오년 10월 (1594년 10월) 11.갑오년 11월 (1594년 11월) 12.12월 기록에 없음   1.갑오년 1월 (1594년 1월) 1월 초1일 (경진) 비가 퍼붓듯이 내..

한국단편문학 2025.02.24

난중일기 7 중 2 - 忠武公 이순신 -

계사년 (1593년)   조선시대 군사계급    https://blog.naver.com/udtssueod/90102541009    목   차   1.1월 기록에 없음 2.계사년 2월 (1593년 2월) 3.계사년 3월 (1593년 3월) 4.4월 기록에 없음 5.계사년 5월 (1593년 5월) 6.계사년 6월 (1593년 6월) 7.계사년 7월 (1593년 7월) 8.계사년 8월 (1593년 8월) 9.계사년 9월 (1593년 9월) 10.10월 기록에 없음 11.11월기록에 없음 12.12월 기록에 없음   1.1월 기록에 없음     2.계사년 2월 (1593년 2월)   계사년 2월은 대길하다.   2월 초1일 (병술) 종일 비가 내렸다.[양력 3월 3일]   발포만호(황정록)∙여도권관(김인영)..

한국단편문학 2025.02.20

난중일기 7 중 1 - 忠武公 이순신 -

임진년 (1592년)                조선시대 군사계급    https://blog.naver.com/udtssueod/90102541009     목 차   1.임진년 1월 (1592년 1월) 2.임진년 2월 (1592년 2월) 3.임진년 3월 (1592년 3월) 4.임진년 4월 (1592년 4월) 5.임진년 5월 (1592년 5월) 6.임진년 6월 (1592년 6월) 7.임진년 7월 (1592년 7월) 8.임진년 8월 (1592년 8월) 9.임진년 9월 (1592년 9월) 10.임진년 10월 (1592년 10월) 11.11월 기록에 없음 12.임진년 12월 (1592년 12월)   1.임진년 1월 (1592년 1월)   1월 초1일 (임술) 맑다.[양력 2월 13일] 새벽에 아우 여필(汝弼..

한국단편문학 2025.02.17

탁류(濁流) - 채만식 -

탁류(濁流)                                                    - 채만식 - 인간기념물   금강(錦江)……. 이 강은 지도를 펴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동께서 남북으로 납작하니 째져 가지고는―--- 한강(漢江)이나 영산강(榮山江)도 그렇기는 하지만―--- 그것이 아주 재미있게 벌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번 비행기라도 타고 강줄기를 따라가면서 내려다보면 또한 그럼직할 것이다. 저 준험한 소백산맥(小白山脈)이 제주도(濟州島)를 건너보고 뜀을 뛸듯이, 전라도의 뒷덜미를 급하게 달리다가 우뚝…… 또 한번 우뚝…… 높이 솟구친 갈재〔蘆嶺〕와 지리산(智異山) 두 산의 산협 물을 받아 가지고 장수(長水)로 진안(鎭安)으로 무주(茂朱)로 이렇게 역류하는 ..

한국단편문학 2025.02.13

불 - 현진건 -

불                                                          - 현진건 -    시집 온 지 한 달 남짓한 금년에 열다섯 살밖에 안 된 순이는 잠이 어릿어릿한 가운데도 숨길이 갑갑해짐을 느꼈다. 큰 바위로 내리눌리는 듯이 가슴이 답답하다. 바위나 같으면 싸늘한 맛이나 있으련마는, 순이의 비둘기 같은 연약한 가슴에 얹힌 것은 마치 장마지는 여름날과 같이 눅눅하고 축축하고 무더운데다가 천 근의 무게를 더한 것 같다. 그는 복날 개와 같이 헐떡거렸다. 그러자 허리와 엉치가 뻐개 내는 듯, 쪼개 내는 듯, 갈기갈기 찢는 것같이, 산산이 바수는 것같이 욱신거리고 쓰라리고 쑤시고 아파서 견딜 수 없었다. 쇠막대 같은 것이 오장육부를 한편으로 치우치며 가슴까지 치받쳐 올라..

한국단편문학 2025.02.06

그믐달 (수필)- 나도향 -

그믐달 (수필)                                                - 나도향 -   나는 그믐달을 사랑한다. 그믐달은 요염하여 감히 손을 잡을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린 가련한 달이다.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 버리는 초생달은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독부(毒婦)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怨婦)와 같이 애절하고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에 둥근 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과도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와 같은 달이다.   초생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

한국단편문학 2025.01.30

이순신전(李舜臣傳) - 신채호 -

이순신전(李舜臣傳)                                                                                - 신채호 -    목   차  1. 제 1 장 서 론  2. 제 2 장 이순신의 어렸을 적과 젊은 시절  3. 제 3 장 이순신의 과거급제와 그 후에 당한 곤경  4. 제 4 장 오랑캐를 막던 작은 싸움과 조정에서 인재를 구함  5. 제 5 장 이순신의 전쟁 준비  6. 제 6 장 부산 앞바다로 구원하러 나가다  7. 제 7 장 이순신이 치른 첫 번째 싸움 : 옥포해전(玉浦海戰)  8. 제 8 장 이순신의 두 번째 싸움 : 당포(唐浦) 해전  9. 제 9 장 이순신의 세 번째 싸움 : 견내량(見乃梁) 해전  10. 제 10 장 이순신의 네 번째..

한국단편문학 2025.01.23

자전거 도둑 - 박완서 -

자전거 도둑                                                        -박완서 -   수남이는 청계천 세운 상가 뒷길의 전기 용품 도매상의 꼬마 점원이다. 수남이란 어엿한 이름이 있는데도 꼬마로 통한다. 열여섯 살이라지만 볼은 아직 어린아이처럼 토실하니 붉고, 눈 속이 깨끗하다. 숙성한 건 목소리뿐이다. 제법 굵고 부드러운 저음이다. 그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면 점잖고 떨떠름한 늙은이 목소리로 들린다. 이 가게에는 변두리 전기 상회나 전공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가 잦다. 수남이가 받으면,    "주인 영감님이십니까?"   하고 깍듯이 존대를 해 온다.    "아, 아닙니다. 꼬맙니다."   수남이는 제가 무슨 큰 실수나 저지른 것처럼 황공해 하며 볼까지 붉어진다.  ..

한국단편문학 2025.01.14

낙엽기 - 이효석 -

낙엽기                                                                     - 이효석 -    창 기슭에 붉게 물든 담장이 잎새와 푸른 하늘-가을의 가장 아름다운 이 한 폭도 비늘구름같이 자취 없이 사라져 버렸다. 가장 먼저 가을을 자랑하던 창밖의 한 포기의 벚나무는 또한 가장 먼저 가을을 내버리고 앙클한 휘초리만을 남겼다. 아름다운 것이 다 지나가 버린 늦가을은 추잡하고 한산하기 짝없다. 담장이로 폭 씌워졌던 집도 초목으로 가득 덮였던 뜰도 모르는 결에 참혹하게도 옷을 벗기어 버리고 앙상한 해골만을 드러내 놓게 되었다. 아름다운 꿈의 채색을 여지없이 잃어버렸다. 벽에는 시들어 버린 넝쿨이 거미줄같이 얼기설기 얽혔고 마른 머루송이 같은 열매가 함빡 맺..

한국단편문학 2025.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