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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광대나물

사진을 클릭하여 큰사진으로 보세요.   오늘도 하루를 마감하며 산을 내려 온다.   해는 서산에 뉘엿뉘엿 하는데 산 밑 아파트 공사장에 들어선다. 빨간 광대나물이 지천이다.   "흰색은 못 보았는데 여기 어디 쯤 있으려나 ?"   그 넓은 공터를 광대나물을 기준으로 한 바퀴 돌아본다.   "쟤는 뭔데 하얗지? "   궁금하면 가 봐야 한다. 빨간광대는 무리지어 함께 있는데 이 아이는 하얗다고 따를 당했는지? 아님 자기는 별나다고 따로 노는건지? 외따로 멀찍이 떨어져서 혼자 피어 있다. 그 것도 한송이 만 !   아무튼 마음은 흐뭇하다. 여지 껏 그림으로만 보던 아이인데 이렇게 보았으니...   카메라를 다시 꺼내서 흰광대와 눈을 맞추며 예쁜얼굴 찾아가며 셔터를 누른다.      오신 손님,  모두 즐겁고..

야생화-단일 2024.03.25

홍염(紅焰)- 최서해 -

사진을 클릭하여 큰사진으로 보세요. 홍염(紅焰) - 최서해 - 1 겨울은 이 가난한---백두산 서북편 서간도 한귀퉁이에 있는 이 가난한 촌락 빼허[白河]에도 찾아들었다. 겨울이 찾아들면 조그만 강을 앞에 끼고 큰 산을 등진 빼허는 쓸쓸히 눈 속에 묻히어서 차디찬 좁은 하늘을 치어다보게 된다. 눈보라는 북국의 특색이다. 빼허의 겨울에도 그러한 특색이 있다. 이것이 빼허의 생령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오늘도 눈보라가 친다. 북극의 얼음 세계나 거쳐오는 듯한 차디찬 바람이 우하고 몰려오는 때면 산봉우리와 엉성한 가지 끝에 쌓였던 눈들이 한꺼번에 휘날려서 이 좁은 산골은 뿌연 눈안개 속에 들게 된다. 어떤 때는 강골 바람에 빙판에 덮였던 눈이 산봉우리로 불리게 된다. 이렇게 교대적으로 산봉우리의 눈이 들로 내..

한국단편문학 2024.03.19

탈출기(脫出記)- 최서해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탈출기(脫出記) - 최서해 - 1 김군! 수삼차 편지는 반갑게 받았다. 그러나 한번도 회답치 못하였다. 물론 군의 충정에는 나도 감사를 드리지만 그 충정을 나는 받을 수 없다. ―박군! 나는 군의 탈가(脫家)를 찬성할 수 없다. 음험한 이역에 늙은 어머니와 어린 처자를 버리고 나선 군의 행동을 나는 찬성할 수 없다. 박군! 돌아가라.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 군의 보모와 처자가 이역 노두에서 방황하는 것을 나는 눈앞에 보는 듯싶다. 그네들의 의지할 곳은 오직 군의 품밖에 없다. 군은 그네들을 구하여야 할 것이다. 군은 군의 가정에서 동량(棟梁)이다. 동량이 없는 집이 어디 있으랴? 조그마한 고통으로 집을 버리고 나선다는 것이 의지가 굳다는 박군으로서는 너무도 박약한 소위이다...

한국단편문학 2024.03.12

2024년 3월 6일 용추계곡 답사

2024년 3월 6일 용추계곡 답사 노루귀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일기예보에 오후내내 흐림으로 되어 있어 갈까 말까 작은 고민이 생긴다. 생각에 잠기다가, 산행길을 결정하고 일어선다. 고산마을에서 출발. 길가 양지쪽에 파란 큰개불알풀꽃과 빨간 광대나물이 제얼굴을 보여주며 봄이 왔음을 알린다. 고산 쉼터에 도착. 전에 옮겨 심은 백양꽃이 잘 있는가 살펴보니 지금쯤 씩식한 초록 잎이 힘차게 나와 있어야 하는데 하나도 보이지를 않는다. 다시 산을 오르며 누군가 "캐 갔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언짢다. 산능선을 넘어 아래로 내려와 용추계곡 포곡정에 이른다. 산을 오를때는 다른 곳에서의 꽃소식이 있어서 좀 늦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 이다. 보여야 할 꽃들이 보이지를 않는다. 날도 흐..

화수분- 전영택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화수분 - 전영택 - 1925년 1. 1 첫겨울 추운 밤은 고요히 깊어 간다. 뒤뜰 창 바깥에 지나가는 사람 소리도 끊어지고, 이따금 찬바람 부는 소리가 ‘휙― 우수수’ 하고 바깥의 춥고 쓸쓸한 것을 알리면서 사람을 위협하는 듯하다. “만주노 호야 호오야.” 길게 그리고도 힘없이 외치는 소리가 보지 않아도 추워서 수그리고 웅크리고 가는 듯한 사람이 몹시 처량하고 가엾어 보인다. 어린애들은 모두 잠들고 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눈에 졸음이 잔뜩 몰려서 입으로만 소리를 내어 글을 읽는다. 나는 누워서 손만 내놓아 신문을 들고 소설을 보고, 아내는 이불을 들쓰고 어린애 저고리를 짓고 있다. “누가 우나?” 일하던 아내가 말하였다. “아니야요. 그 절름발이가 지나가며 무슨 소리를 지껄..

한국단편문학 2024.03.05

오발탄 - 이범선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오발탄 - 이범선 - 계리사(計理士) 사무실 서기 송철호(宋哲浩)는 여섯 시가 넘도록 사무실 한구석 자기 자리에 멍청하니 앉아 있었다. 무슨 미진한 사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장부는 벌써 집어치운지 오래고 그야말로 멍청하니 그저 앉아 있는 것이었다. 딴 친구들은 눈으로 시계바늘을 밀어 올리다시피 다섯 시를 기다려 후다닥 나가 버렸다. 그런데 점심도 못 먹은 철호는 허기가 나서만이 아니라 갈 데도 없었다. "송 선생은 안 나가세요?" 이제 청소를 해야 할테니 그만 나가달라는 투의 사환애의 말에, 철호는 다 낡아빠진 해군 작업복 저고리 호주머니에 깊숙이 찌르고 있던 두 손을 빼내어서 무겁게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나가야지." 하품 같은 대답이었다. 사환애는 저쪽 구석에서부터..

한국단편문학 2024.02.27

노루귀 3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 노 루 귀 3 " 이른 봄부터 진사님 꽃쟁이들의 가슴을 헤집어 놓고 청,백,홍 삼색으로 뽀얀 얼굴을 보이는 너는 특별 할것도, 대단 할것도 없지만 그 이름이 "노루귀" 라 했지. 복수초 다음으로 이 땅에 2.3번째로 모습을 보이기에 귀한 대접을 받는가 보다. 이후로는 현호색,바람꽃,제비꽃,얼레지,괴불,참꽃...... 꽃쟁이들의 바쁜 일정이 시작되니까. 네 이름은 고운 네 얼굴의 이름이 아니라 뒤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잎사귀의 이름 이란다. 3개의 잎은 삼각형으로 보기에도 아주 멋진 모습이지. " 노루귀 " 새봄이 오면 너 찾느라고 진사님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그건 그거고 한가지 바램 이라면 많이 많이 더 많이 번성하여 이 강산을 아름답게 수 놓아 주기를 바랄..

야생화-단일 2024.02.25

2024년 첫출사 (변산바람꽃,복수초,노루귀)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2024,02,17 첫출사 입니다. 올해는 날도 푸근하고 비도 적당히 내려서 보름정도 이르게 꽃이 핀것 같습니다. 창원 내서읍 소노골의 봄소식 입니다. 소식이 빠르고 결과가 알차며 교통도 편리해서 해마다 빼놓지 않고 다니는 장소 입니다. 산행도 짧아 쉽게 오를 수 있어 편한 곳 입니다. 아쉽다면, 위치가 알려지면서 해마다 바람꽃 자생지 면적이 점점 줄어 드는것 같아 그게 좀 아쉽습니다. 촬영은 순광보다 역광이 많습니다만, 그래도 차분하게 꼼꼼히 보시면 알차게 다 보실수 있습니다. 하얀얼굴은 "변산바람꽃" (변산아씨)이고 노란얼굴은 "복수초" 입니다. 복수초는 손님이 어찌나 급하게 왔다 가는지 붙잡는데 한참이나 애를 먹었습니다. 분홍빛의 수줍은듯한 얼굴은 노루귀 입니다. 오늘..

어떤 醫師의 手記(붉은산)- 김동인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어떤 醫師의 手記(붉은산) - 김동인 - 그것은 여(余)가 만주를 여행할 때 일이었다. 만주의 풍속도 좀 살필 겸 아직껏 문명의 세례를 받지 못한 그들의 사이에 퍼져 있는 병(病)을 조사할 겸해서 일년의 기한을 예산하여 가지고 만주를 시시콜콜이 다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에 ××촌이라 하는 조그만 촌에서 본 일을 여기에 적고자 한다. ××촌은 조선사람 소작인만 사는 한 이십여 호 되는 작은 촌이었다. 사면을 둘러보아도 한개의 산도 볼 수가 없는 광막한 만주의 벌판 가운데 놓여 있는 이름도 없는 작은 촌이었다. 몽고사람 종자(從者)를 하나 데리고 노새를 타고 만주의 촌촌을 돌아다니던 여가 그 ××촌에 이른 때는 가을도 다 가고 어느덧 광포한 북극의 겨울이 만주를 찾아온 때였..

한국단편문학 2024.02.19

다시 읽는 글모음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생일 선물                                                                               김태우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묻는다. 생일에는 미역국이지 답했다. 함께 먹는 것은 무엇이든지 좋다는 걸 그녀는 모르는 것 같다.   받고 싶은 게 뭐냐고 묻는다. 백석의 시집이라고 답했다. 이 세상에서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은 당신이라는 걸 그녀는 모르는 것 같다.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묻는다. 손잡고 해변을 걷는것이라고 답했다. 함께라면 뭐든지 좋다는 걸 그녀는 모르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참 바보 같다. 그러나 그렇게 물어주는 당신이 나는 참 좋다.     --  %  --  %  --  %  -..

한국단편문학 2024.02.12

소낙비 - 김유정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소낙비 - 김유정 - 음산한 검은 구름이 하늘에 뭉게뭉게 모여드는 것이 금시라도 비 한줄기 할 듯하면서도 여전히 짓궂은 햇발은 겹겹 산속에 묻힌 외진 마을을 통째로 자실 듯이 달구고 있었다. 이따금 생각나는 듯 살매들린 바람은 논밭간의 나무들을 뒤흔들며 미쳐 날뛰었다. 뫼 밖으로 농꾼들을 멀리 품앗이로 내보낸 안말의 공기는 쓸쓸하였다. 다만 맷맷한 미루나무숲에서 거칠어가는 농촌을 읊는 듯 매미의 애끓는 노래…. 매움! 매애움! 춘호는 자기 집 - 올봄에 오 원을 주고 사서 들은 묵삭은 오막살이집 - 방문턱에 걸터앉아서 바른 주먹으로 턱을 고이고는 봉당에서 저녁으로 때울 감자를 씻고 있는 아내를 묵묵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사날 밤이나 눈을 안 붙이고 성화를 하는 바람에 농..

한국단편문학 2024.02.05

뫼비우스의 띠 - 조세희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뫼비우스의 띠 - 조세희 - 수학 담당 교사가 교실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그의 손에 책이 들려 있지 않은 것을 보았다. 학생들은 교사를 신뢰했다. 이 학교에서 학생들이 신뢰하는 유일한 교사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제군, 지난 1년 동안 고생 많았다. 정말 모두 열심히들 공부해주었다. 그래서 이 마지막 시간만은 입학 시험과 상관이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는 몇 권의 책을 뒤적여보다가 제군과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은 것을 발견했다. 일단 내가 묻는 형식을 취하겠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학생들은 ..

한국단편문학 2024.01.29

별 - 현경준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별 - 현경준 - 1. 1 달마다 한 번씩은 꼭 어김없이 오고야마는 수업료 납부기. 벌써 완납 기일을 사흘이나 넘은 교실 안은 처처에 빈 자리가 생겨서 횡뎅그레한데 아무 표정도 없이 눈알만 말똥거리는 중대가리들의 멍하니 벌린 괴지지한 입들, 훌쩍거리는 코들. 찌는 듯이 무더운 속에서 파리들이 앵앵거리며 햇볕을 좇아 날아다니고 가담가담 물쿤하고 콧구멍을 쿡쿡 찌르는 땀 냄새 방귀 냄새. 6월의 교실 안 공기는 웅덩이 속에 갇혀 있는 무겁고도 어지러운 흙탕물과도 같아 당장에 질식이라도 할 것 같다. 그러한 속에서 명우는 땀을 발발 흘려가며 거의 싸우다시피 악을 쓰는 것이었다. “이놈들아. 정신을 좀 차려서 선생님 설명을 들어라.” 그래도 아이들은 얼빠진 것처럼 멍하니 입만 벌리..

한국단편문학 2024.01.22

봄과 따라지 - 김유정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봄과 따라지 - 김유정 - 지루한 한 겨울동안 꼭 옴츠러졌던 몸뚱이가 이제야 좀 녹고 보니 여기가 근질근질 저기가 근질근질. 등어리는 대구 군실거린다. 행길에 삐쭉 섰는 전봇대에다 비스듬히 등을 비겨대고 쓰적쓰적 비벼도 좋고. 왼팔에 걸친 밥통을 땅에 내려놓은 다음 그 팔을 뒤로 젖혀올리고 또 바른팔로 다는 그 팔꿈치를 들어올리고 그리고 긁죽긁죽 긁어도 좋다. 본디는 이래야 원 격식은 격식이로되 그러나 하고 보자면 손톱 하나 놀리기가 성가신 노릇. 누가 일일이 그러고만 있는가.\ 장삼인지 저고린지 알 수 없는 앞자락이 척 나간 학생복 저고리. 허나 삼 년간을 내리 입은 덕택에 속껍데기가 꺼칠하도록 때에 절었다. 그대로 선 채 어깨만 한번 으쓱 올렸다. 툭 내려치면 그뿐. 옷..

한국단편문학 2024.01.15

술 권하는 사회 - 현진건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술 권하는 사회 - 현진건 - "아이그, 아야” 홀로 바느질을 하고 있던 아내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가늘고 날카로운 소리로 부르짖었다. 바늘 끝이 왼손 엄지손가락 손톱 밑을 찔렀음이다. 그 손가락은 가늘게 떨고 하얀 손톱 밑으로 앵두빛 같은 피가 비친다. 그것을 볼 사이도 없이 아내는 얼른 바늘을 빼고 다른 손 엄지손가락으로 그 상처를 누르고 있다. 그러면서 하던 일가지를 팔꿈치로 고이고이 밀어 내려놓았다. 이윽고 눌렀던 손을 떼어보았다. 그 언저리는 인제 다시 피가 아니 나려는 것처럼 혈색이 없다 하더니, 그 희던 꺼풀 밑에 다시금 꽃물이 차츰차츰 밀려온다. 보일 듯 말 듯한 그 상처로부터 좁쌀 낟 같은 핏방울이 송송 솟는다. 또 아니 누를 수 없다. 이만하면 그 구멍이..

한국단편문학 2024.01.08

복덕방 - 이 태 준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복덕방 - 이 태 준 - 철석, 앞집 판장 밑에서 물 내버리는 소리가 났다. 주먹구구에 골독했던 안초시에게는 놀랄 만한 폭음이었던지, 다리 부러진 돋보기 너머로, 똑 모이를 쪼으려는 닭의 눈을 해가지고 수챗구멍을 내다본다. 뿌연 뜨물에 휩쓸려 나오는 것이 여러 가지다. 호박 꼭지, 계란 껍질, 거피해 버린 녹두 껍질. “녹두 빈자떡을 부치는 게로군, 흥…….” 한 오륙 년째 안초시는 말끝마다 ‘젠―장……’이 아니면 ‘흥 !’ 하는 코웃음을 잘 붙이었다. “추석이 벌써 낼 모레지! 젠―장…….” 안초시는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었다. 기름내가 코에 풍기는 듯 대뜸 입 안에 침이 흥건해지고 전에 괜찮게 지낼 때, 충치니 풍치니 하던 것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아래윗니가 송곳 끝같..

한국단편문학 2024.01.01

미스터 방 - 채만식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미스터 방 - 채만식 - 주인과 나그네가 한가지로 술이 거나하니 취하였다. 주인은 미스터 방(方), 나그네는 주인의 고향 사람 백(白)주사. 주인 미스터 방은 술이 거나하여 감을 따라, 그러지 않아도 이즈음 의기 자못 양양한 참인데 거기다 술까지 들어간 판이고 보니, 가뜩이나 기운이 불끈불끈 솟고 하늘이 바로 돈짝만한 것 같은 모양이었다. "내 참, 뭐, 흰말이 아니라 참, 거칠 것 없어, 거칠 것. 흥, 어느 눔이 아, 어느 눔이 날 뭐라구 허며, 날 괄시헐 눔이 어딨어, 지끔 이 천지에. 흥 참, 어림없지, 어림없어." 누가 옆에서 저를 무어라고를 하며 괄시를 한단 말인지, 공연히 연방 그 툭 나온 눈방울을 부리부리, 왼편으로 삼십도는 넉넉 삐뚤어진 코를 벌씸벌씸 해가면..

한국단편문학 2023.12.25

땡볕 - 김유정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땡 볕 - 김유정 - 우람스레 생긴 덕순이는 바른팔로 왼편 소맷자락을 끌어다 콧등의 땀방울을 훑고는 통안 네거리에 와 다리를 딱 멈추었다. 더위에 익어 얼굴이 벌거니 사방을 둘러본다. 중복 허리의 뜨거운 땡볕이라 길 가는 사람은 저편 처마 밑으로만 배앵뱅 돌고 있다. 지면은 번들번들히 달아 자동차가 지날 적마다 숨이 탁 막힐 만치 무더운 먼지를 풍겨 놓는 것이다. 덕순이는 아무리 참아 보아도 자기가 길을 물어 좋을 만치 그렇게 여유 있는 얼굴이 보이지 않음을 알자, 소맷자락으로 또 한번 땀을 훑어 본다. 그리고 거북한 표정으로 벙벙히 섰다. 때마침 옆으로 지나는 어린 깍쟁이에게 공손히 손짓을 한다. "얘! 대학병원을 어디루 가니?" "이리루 곧장 가세요!" 덕순이는 어린 깍..

한국단편문학 2023.12.18

가실(嘉實)- 이광수 -

사진을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가실 (嘉實) - 이광수 - 1 때는 김 유신이 한창 들날리던 신라 말이다. 가을 볕이 째듯이 비치인 마당에는 벼 낟가리, 콩 낟가리, 모밀 낟가리들이 우뚝우뚝 섰다. 마당 한쪽에는 겨우내 때일 통나무더미가 있다. 그 나무더미 밑에 어떤 열 예닐곱살된 어여쁘고도 튼튼한 처녀가 통나무에 걸터앉아서 남쪽 한길을 바라보고 울고 있다. 이때에 어떤 젊은 농군 하나이 큰 도끼를 메고 마당으로 들어오다가, 처녀가 앉아 우는 것을 보고 우뚝 서며, " 아기, 왜 울어요? " 하고 은근한 목소리로 묻는다. 처녀는 깜짝 놀라는 듯이 한길을 바라보던 눈물 고인 눈으로 그 젊은 농군을 쳐다보고 가만히 일어나며, " 나라에서 아버지를 부르신대요. " 하고 치마 고름으로 눈물을 씻으며 우는 양을 ..

한국단편문학 2023.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