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소음 공해 - 오정희 -

하얀모자 1 2024. 10. 13. 03:00

 

 

                            소음 공해
                                                          - 오정희 -
 
 집에 돌아오자마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실내복으로 갈아입었다.
목요일, 심신 장애인 시설에서 자원 봉사자로 일하는 날은
몸이 젖은 솜처럼 무겁고 피곤하다.
그래도 뇌성마비나 선천적 기능 장애로 사지가 뒤틀리고
정신마저 온전치 못한 아이들을 씻기고 함께 놀이를 하고
휠체어를 밀어 산책을 시키는 등 시중을 들다 보면,
나를 요구하는 곳에서 시간과 힘을 내어 일한다는 뿌듯함이 있다.
고등학생인 두 아들은 아침에 도시락을 두 개씩 싸 들고 갔으니
밤 11시나 되어야 올 것이고,
남편은 3박4일의 출장 중이니 날이 저물어도 서두를 일이 없다.
더욱이 나는 한나절 심신이 지치게 일을 한 뒤라
당당히 휴식을 즐길 권리가 있다.
아이들이 올 때까지의 서너 시간은 오로지 내 시간인 것이다.
아이들은 머리가 커져 치마폭에 감기거나 귀찮게 치대는 일이 없이
 "다녀왔습니다." 한 마디로 문 닫고 제 방에 들어앉게 마련이지만,
가족들이 집에 있을 때에는 아무리 거실이나 방에 혼자 있어도
혼자 있다는 기분을 갖기 어려웠다.
사방 문 열린 방에서 두 손 모아 쥐고 전전긍긍 24 시간 대기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거실 탁자의 갓등을 켜고 커피를 진하게 끓여 마시며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틀었다.
첼로의 감미로운 선율이 흐르고, 나는 어슴푸레하고 아득한 공간,
먼 옛날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에 잠겨들었다.
몽상과 시와 꿈과 불투명한 미래가 약간은 불안하게,
그러나 기대와 신비한 예감으로 존재하던 시절,
내가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리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시절로…….
사람이 단돈 몇 푼 잃는 것은 금세 알아도
본질적인 것을 잃어 가는 것에는 무감하다던가?
 
"드르륵드르륵." 눈을 감고 하염없이 소나타의 음률에 따라 흐르던 나는
그 감미롭고 슬픔에 찬 흐름을 압도하며 끼어든 불청객에
사납게 눈을 치떴다.
무거운 수레를 끄는 듯 둔탁한 그 소리는
중년 여자의 부질없는 회한과 감상을 비웃듯 천장 위에서 쉼 없이 들려왔다.
십 분, 이십 분, 초침까지 헤아리며 천장을 노려보다가
나는 신경질적으로 전축을 껐다.
그 사실적이고 무지한 소리에 피아노와 첼로의 멜로디는
이미 소음에 지나지 않았다.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위층 주인이 바뀐 이래 한 달 전부터 나는 그 정체 모를 소리에
밤낮없이 시달려 왔다.
진공 청소기 소리인가?
운동 기구를 들여놓았나?
가내 공장을 차렸나?
식구들마다 온갖 추측을 해 보았으나 도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도깨비가 사나 봐요. 롤러 스케이트를 타는 도깨비."
 
아들녀석이 머리에 뿔을 만들어 보이며 처음에는 히히덕거렸으나,
자정 넘도록 들려오는 그 소리에 나중에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좀체 남의 험구를 하지 않는 남편도
 
  "한 지붕 아래 함께 못 살 사람들이군."
 
하는 말로 공동 생활의 기본적인 수칙을 모르는 이웃을 나무랐다.
일 주일을 참다가 나는 인터폰을 들었다.
인터폰으로 직접 위층을 부르거나 면대하지 않고
경비원을 통해 이쪽 의사를 전달하는 간접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은
나로서는 자신의 품위와 상대방에 대한 예절을 지키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나는 자주 경비실에 전화를 걸어,
한밤중에 조심성 없이 화장실 물을 내리는 옆집이나
때없이 두들겨 대는 피아노 소리,
자정 넘어까지 조명등 쳐들고 비디오 찍어 가며 고래고래 악을 써
삼동(三冬)에 잠을 깨우는 함진아비의 행태 따위가
얼마나 교양 없고 몰상식한 짓인가,
소음 공해와 공동생활의 수칙에 대해 주의를 줄 것을
선의의 피해자들을 대변해서 말하곤 했었다.
 
위층의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드르륵거리는 소리에 머리털이 진저리를 치며 곤두서는 것 같았다.
철없고 상식 없는 요즘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집 안에서 자전거나 스케이트 보드 따위를 타게도 한다는데,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인터폰의 수화기를 들자,
경비원의 응답이 들렸다.
내 목소리를 알아채자마자 길게 말꼬리를 늘이며 지레 짚었다.
귀찮고 성가셔하는 표정이 눈앞에 역력히 떠올랐다.
 
  "위층이 또 시끄럽습니까? 조용히 해 달라고 말씀드릴까요?"
 
  잠시 후 인터폰이 울렸다.
 
  "충분히 주의하고 있으니 염려 마시랍니다."
 
경비원의 전갈이었다. 염려 마시라고?
다분히 도전적인 저의가 느껴지는 전언이었다.
게다가 드르륵드르륵 소리는 여전하지 않은가?
이젠 한판 싸워 보자는 얘긴가?
나는 인터폰을 들어 다짜고짜 909 호를 바꿔 달라고 말했다.
신호음이 서너 차례 울린 후에야 신경질적인 젊은 여자의 응답이 들렸다.
 
  "아래층인데요. 댁이 그런 식으로 말할 건 없잖아요?
   나도 참을 만큼 참았다고요.
   공동 주택에는 지켜야 할 규칙들이 있잖아요?
   난 그 소리 때문에 병이 날 지경이에요."
  
  "여보세요, 난 날아다니는 나비나 파리가 아니에요.
   내 집에서 맘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나요?
   해도 너무하시네요. 이틀거리로 전화를 해대시니
   저도 피가 마르는 것 같아요. 저더러 어쩌라는 거예요?"
 
  "하여튼 아래층 사람 고통도 생각하시고 주의해 주세요."
 
나는 거칠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뻔뻔스럽긴. 이젠 순 배짱이잖아?"
소리내어 욕설을 퍼부어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경비원을 사이에 두고 '하랍신다', '하신다더라' 하며
신경전을 펼 수도 없는 일이었다.
화가 날수록 침착하고 부드럽게 처신해야 한다는 것은
나이가 가르친 지혜였다.
지난 겨울 선물로 받은,
아직 쓰지 않은 실내용 슬리퍼에 생각이 미친 것은 스스로도 신통했다.
선물도 무기가 되는 법.
발소리를 죽이는 푹신한 슬리퍼를 선물함으로써
소리를 죽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소리 때문에 고통받는 내 심정을
간접적으로 나타낼 수 있으리라.
사려 깊고 양식 있는 이웃으로서 공동 생활의 규범에 대해
조곤조곤 타이르리라.
  
위층으로 올라가 벨을 눌렀다.
 
안쪽에서 "누구세요?" 묻는 소리가 들리고도
십 분 가까이 지나 문이 열렸다.
 '이웃사촌이라는데 아직 인사도 없이…….' 등등 준비했던
인사말과 함께 포장한 슬리퍼를 내밀려던 나는 첫마디를 뗄 겨를도 없이
우두망찰했다.
좁은 현관을 꽉 채우며 휠체어에 앉은 젊은 여자가
달갑잖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안 그래도 바퀴를 갈아 볼 작정이었어요.
   소리가 좀 덜 나는 것으로요. 어쨌든 죄송해요.
   도와주는 아줌마가 지금 안 계셔서 차 대접할 형편도 안 되네요."
 
여자의 텅 빈, 허전한 하반신을 덮은 화사한 빛깔의 담요와 휠체어에서
황급히 시선을 떼며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부끄러움으로 얼굴만 붉히며 슬리퍼 든 손을 등 뒤로 감추었다. 
 
소음 공해(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