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 현경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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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 현경준 -
 1. 1
 
달마다 한 번씩은 꼭 어김없이 오고야마는 수업료 납부기.
벌써 완납 기일을 사흘이나 넘은 교실 안은 처처에 빈 자리가 생겨서
횡뎅그레한데 아무 표정도 없이 눈알만 말똥거리는 중대가리들의
멍하니 벌린 괴지지한 입들, 훌쩍거리는 코들.
찌는 듯이 무더운 속에서 파리들이 앵앵거리며 햇볕을 좇아 날아다니고
가담가담 물쿤하고 콧구멍을 쿡쿡 찌르는 땀 냄새 방귀 냄새.
 
6월의 교실 안 공기는 웅덩이 속에 갇혀 있는 무겁고도 어지러운
흙탕물과도 같아 당장에 질식이라도 할 것 같다.
그러한 속에서 명우는 땀을 발발 흘려가며 거의 싸우다시피
악을 쓰는 것이었다.
 
 “이놈들아. 정신을 좀 차려서 선생님 설명을 들어라.”
 
그래도 아이들은 얼빠진 것처럼 멍하니 입만 벌리고 쳐다본다.
 
 “너희들은 대체 뭘하러 학교루 왔느냐”
 
그는 화를 버럭내며 교편으로 책상을 연달아 서너 번 후려갈긴다.
잠에서 깜짝 놀라 깬 듯이 아이들은 움칫하고 서로 얼굴을 마주 쳐다보다가
다시금 이전대로 무표정하게 돌아진다.
그의 손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맨앞에 앉은 중대가리로 날랐다!
 
 “엑기 소새끼 같은 새끼들아 너희들두 사람이냐. 개만두 못한 놈들.”
 
그는 전신을 푸들푸들 떨며 교단에 돌아가서 입술을 악물고
잠깐 동안 부풀어오르는 분을 진정시키기에 애를 썼다.
불의에 주먹 벼락을 얻어맞은 중대가리는 처음에는 얼떨떨해서
그저 입술만 실룩거리더니 선생의 표정이 얼마간 부드러워지는 것을 보자
갑자기 ‘앙 ──’ 하고 맺혔던 봇물 터지듯 왈칵 터진다.
명우는 대번에 달려가서 등덜미를 틀어 잡고 밖으로 내끌었다.
울음은 더 한층 기세를 올린다.
사지를 삐둑거리며 지랄 쓰듯 하는 것을 뒤뜰에다가 몰아낸 다음
다시금 교실로 들어오니 아이들은 숨 하나 쉬는 것 같지 않다.
구석에서 의자를 끌어다가 지친 몸을 힘없이 내맡기고
슬그머니 눈을 감으니 서늘한 돌덩이 같은 그 무엇이 가슴속에 스르르
내려앉는 것 같다.
 
그리고 눈자위가 자꾸 뜨거워 오른다.
그는 저 자신을 비웃는 듯한 찬 웃음을 지긋이 입가에 띠며 중얼거렸다.
 
 “더러운 놈 같으니라구 무엇을 못 해먹어서 이런 노릇을 한담.
   내가 어리석지 너희들을 가르쳐 먹겠다는 내가 도대체 잘못이다.
   엑 비열한 놈.”
 
격분 끝에 오는 뜻 모를 자조와 굴욕.
그것은 거의 미친 사람의 발작과도 같은 것으로서 그런 때면 아이들은
눈도 깜짝 못하고 선생의 동정만 살피는 것이었다.
갑자기 문소리가 와르륵 나더니 교장이 사뿐 들어서며
은근히 머리를 숙인다.
명우는 그대로 잠자코 앉아서 눈을 뜨지 않았다.
교장은 미간을 찌푸리다가 다시금 간사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김선생님 어디가 편치 않으십니까?”
 
자못 정중한 말소리다.
명우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아…… 아아니올시다. 잠깐 무얼 좀 생각하느라구요.”
 
하고 벌떡 일어섰다.
 
 “그렇습니까? 그러시다면 다행입니다만 난 또 어디가 편찮으신가 했죠.
   그런데 오늘은 결석 아동 수가 얼마나 됩니까?”
 
 “어제와 마찬가집니다.”
 
 “한 명두 줄지 않았습니까?”
 
 “………”
 
명우는 말하기에도 골머리가 아픈 듯 고개만 끄떡거린다.
 
 “허 ── 큰일났는데요.”
 
교장은 다 벗어진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무엇인지 생각하는 양을 하다가
다시금 은근하게 머리를 숙인 다음 들어오던 때와 마찬가지로
사뿐 문밖에 나선다.
 
 
 2. 2
 
방과 후 ──.
직원실에서는 수업료 미납으로 하여 등교치 못하는 결석 아동에 대한
대책 강구 회의가 열렸다.
교장과 수석 훈도의 지리한 이야기가 약 반 시간이나 계속된 결과
며칠 동안 매일 방과 후면 담임 아동들의 가정을 일일이
방문하기로 결정되었다.
회의하는 동안 명우는 한마디도 말 참여를 안 하고 무표정하게 앉아서
맞은편 여선생의 만삭된 배만 건너다보며 장차 불원이면 세상에 태어날
숨덩어리에 대하여 생각을 기울여보았다.
애비도 교사고 어미도 교사인 그 아이는 과연 그 어시(어버이)들의 교훈을
철저히 받아서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지금 수석 훈도와 교장이 입이 모자라 떨어지도록 조선 사람의 가정 교훈에
대하여 지껄이지만 사실 그들의 가정 교훈은 그 자제들에게 철저하게
시행되고 있는가
 
말 단 집에 장이 쓰다고 자기는 여러 곳에서 교육자의 자제들이
한층 더 타락된 현상을 많이 보아왔다.
더구나 하나님의 교리를 죄의 인간에게 포교한다는 목사들의 자제들을
본다면.
명우는 잘 아는 동창생들 중에서도 타락된 그들의 자제들을 얼마든지
셀 수 있다.
그것을 생각하니 어쩐 일인지 쓰디쓴 웃음이 저절로 입가에 떠오른다.
문득 귀를 기울이니
 
 “제일 출석 성적이 나쁜 학년은 사학년입니다. 사학년은 해마다
   요때만 되면 절반 이상이나 결석합니다.”
 
하는 수석 훈도의 말을 뒤받아
 
 “그야 일이학년보다 사학년이나 삼학년이 제일 결석 수가 많은 것은
   부득이한 일이니까요.”
 
하고 교장이 걱정조로 받아넘기자
 
 “왜 그럴까요?”
 
하고 자던 잠에서 깬 듯이 말뚱하고 묻는 것은 여선생이다.
 
 “별 까닭이 없지요. 일이학년 때는 처음이 돼서 그럭저럭 지나오지만
  차츰 삼학년이나 사학년을 당하면 경제상 곤란이 점점 늘어나고
  또한 아동 교육에 대한 열성도 식어가니까요.
  그래서 대개는 삼학년이나 사학년에서 퇴학생이 많이 나고
  오학년이나 육학년은 인원 수가 적게 되는 겁니다.”
 
 “참 그렇군요.”
 
여선생님은 자세히 알았다느니보다 교장의 똑똑한 설명에 감탄된 듯
오랫동안 교장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연방 고개를 끄떡인다.
교장의 옆에 앉은 수석 훈도는 교장의 눈치만 힐끔힐끔 살피더니
약간 떨려 나오는 소리로
 

“교장 선생님의 말씀 참말 지당합니다. 그렇습니다.
  삼사학년이 제일 심합니다. 헌데 그 중에도 금년 사학년은 특히 심합니다.
  그건 무엇보다도 일학년 때부터 기록해온 출석부를 본다면
  자세히 알 것입니다.”
 
하고는 흘끔 명우의 편을 곁눈질한다.
명우는 가슴속이 부글부글 끌어오르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거동만 주시하였다.
동관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명우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수석 훈도는 졸한 빛을 애써 감추며 점잖은 태도로 다음을 계속한다.
 
 “그야 물론 금년 사학년 아이들을 본다면 전교에서 가장 포악하고
  나태하고 생활 수준이 낮은 집 아이들이 반수 이상이나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허지만 그렇다고 교육자로서 그것을 그대로 묵인한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자의 직무란…….”
 
 “최선생님.”
 
부른다기보담 내뿜는 듯한 소리다.
여럿은 깜짝 놀라 명우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명우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잠깐 동안 말을 못하고 상대편을 노려보다가
 
 “말씀을 좀 삼가시우. 같은 동관으로서 아무 정의도 없이 그렇게 꼬집어
  말씀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편을 고의로 상처를 내려는 증오에서
  나오는 천비한 수작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한 급이라도 위에 앉았다는
  되지 못한 우월감에서 나오는 비굴한 근성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구 생각합니다.”
 
수석 선생은 입술을 실룩거리며 어쩔 줄을 모른다.
 
 “사실 저는 교육자로서의 행동을 원만하게 못했습니다.
  저의 힘이 모자랐든지 그렇잖으면 성의가 부족했든지 최선생님처럼
  훌륭한 교훈을 주지 못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의 포학성이라든지 나태성이라든지 또는 여러 가지
  불순한 점을 그대로 공수방관하며 묵인한 일은 없습니다.
  만약에 그러한 일이 있다면 기탄없이 말씀해주십시오.”
 
명우는 처음과는 딴판으로 차츰 격정이 식어감을 따라
냉소까지 입가에 띠고 상대편을 노려보았다.
수석 훈도는 거의 신음하다시피 괴로운 목소리로 땀까지 흘리며
 
 “뭐? …… 천비한 수작? 비굴한 근성? 그게…… 어…… 어디서 나오는
   버릇이야?”
 
 “뭐요?”
 
명우는 주먹을 바스라져라 하고 틀어 쥐었다.
 
 “노려보면 어쩔 테야? 그래 김선생이 교육자다운 행동을 한 것이
  무에란 말이우? 걸핏하면 매질을 하거나 밖으로 내쫓거나 하는
  그게 교육자의 태도란 말이우?”
 
 “뭐요? 언제 내가 그랬단 말이우?”
 
 “언젠가구? 아까 바루 시간중에 학무 위원 아들을 때려서 내쫓은 건
  그건 뭐란 말이우?”
 
명우는 말이 쿡 막혔다.
그는 그저 황소처럼 씨근거릴 뿐.
수석 훈도는 적이 아프게 말한다.
 
 “교육자로서 그러한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참으로 야만인의 행동이라고
  생각하오. 더구나 그 애로 말하면 학무 위원의 아들이 아니우.”
 
그 순간 명우는 무엇인지 가슴속에서 불덩어리 같은 것이
왈칵 치미는 것 같았다.
 
 “뭐? 학무 위원? ……그래 그 애가 학무 위원 아들이기 때문에
   때린 것이 나쁘단 말이지요?”
 
 “그건 억설이오.”
 
 “억설? 대답은 뻔뻔하군. 여보 최선생 사실 당신 말과 같이
  그 애가 학무위원 아들이 아니구 포악하고 나태하구 생활 수준이
  낮은 집 아이가 됐다면 당신은 이 자리에서 나를 칭찬했을 겝니다.
  허지만 나는 그렇게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교단에 서는 사람은
  아닙니다. 학무 위원 아들이든 누구든간에 매맞을 짓만 하면
  용서없이 때립니다.”
 
 “아니 뭘들 이러시우?”
 
하고 그제야 교장은 기회를 엿본 듯이 간사스럽게 나선다.
 
 “뭘 대수롭지 않은 일들을 가지구 이러시우? 아예 그만두시구
   서루 좋두룩 타협해가지구 일합시다.”
 
그 바람에 둘은 저 자신을 돌아보고 서로 머쓱해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실내의 공기는 좀처럼 완화되지 않았다.
 
 
 3. 3
 
저녁을 먹고나도 아까 낮에 학교에서 수석 훈도와 언쟁한 그것은
좀처럼 뇌리에서 사라질 줄을 모르고 명우의 마음을 극도로 산란케
하여주었다.
남의 허물을 꼬집어서는 교장에게 고해바치기를 잘하고 자기에게
아첨하지 않는 차석들은 어디까지든지 상처를 내주려고
기회만 엿보는 그것을 생각하면 당장에 달려가 모가지를 틀어 잡고
실컷 때려라도 주고 싶었다.
더구나 교육자란 간판 밑에서 별별 추악한 일을 다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는 그러한 속에서 허덕이게 되는 저 자신을 도리어
침 뱉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생활의 곤궁에 억눌려서 부득이 나오게 된 길이라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많은 포부와 이상이 있었다.
 
캄캄한 세상에 태양과도 같은 교육자.
남을 가르쳐준다는 혁혁한 사명.
그것은 어린 그의 가슴속을 흔들 대로 흔들어놓았던 것이다.
하나를 알면 하나를 배워주고 둘을 알면 둘을 배워주고 자기는 일생을
어둠 속에서 횃불이 되자.
태양이 되자.
그러나 그것이 너무나 허무하게도 깨어진 꿈으로 화하였을 때
그는 비로소 보잘것없는 저 자신을 발견하고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모순된 현실의 탁류.
그 속에서 그가 꿈꾸었던 진리라든지 이상이란 그러한 것은
흔적도 찾을 수가 없고 온갖 추잡물들만 대가리와 꼬리를 제멋대로
내저으며 엉클어져 흐르고 있지 않은가?
일조에 무너진 이상의 탑.
그는 자빠지려는 제 몸을 가까스로 부축하여가지고 3년이란 긴 세월을
허덕이며 지나왔다.
그러면서 그는 비록 깨어진 조각이나마 고이고이 간직하여가지고
어지러운 현실과 싸움으로써 태양은 못 되나 그믐밤 하늘에 별쯤은
되리라고 결심하였다.
그래서 그는 전력을 다하여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수업료 때문에 결석하는 아이들에게는 가끔 자기가
선납하여준 일도 있었다.
 
그 액수를 따지면 그 동안에 100여 원에 달한다.
 
그러나 그것은 홍로(紅爐)에 점설(點雪)과도 같은 것으로서 아무 효력도
없는 것이 아니였던가!
아무리 자기가 애를 쓰고 붙잡아주어도 달이 가고 해가 감을 따라
결석 아동 수와 퇴학 아동 수는 점점 늘어만 가고
결국 교실 안 이곳저곳에 가물에 씨앗 나듯 퀭하니 앉아 있는 것은
절반은 백치에 가까운 먹을 것이나 착실히 가지고 있는 집
아이들뿐이 아닌가?
그러니까 결국 생각한다면 자기가 부모 없는 고아로 보통학교 시대부터
남의 심부름을 하여주며 근근히 공부한 다음 다시금 사범학교까지
애쓰고 졸업한 것은 이러한 백치들을 상대로
1년 365일을 날마다 말싸움으로 보내자는 까닭이었던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원통하여 못 견딜 일이었다.
그리고 더구나 저지난해부터 자기처럼 교편 생활을 하기 시작한
단 하나뿐인 누이동생의 일을 생각하면
금시에 눈자위가 뜨거워지는 것이었다.
 
 ‘틀림없이 그도 지금 나처럼 이렇게 고민하고 있을 터이다.’
 
명우는 조용히 눈을 감고 누이동생의 얼굴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동시에 그의 생각은 어느덧 지나온 옛길을 더듬기 시작했다.
동리 품팔이로 그날그날의 먹을 것을 간신히 얻어 들이던 아버지가
지주댁 심부름으로 70리나 되는 읍에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얼음을 타다가 물고기 밥이 된 이후 어머니는 1년이나 수심에 싸여
한숨과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가 끝내 몸져눕더니
며칠 안 되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때 명우는 겨우 열 살 누이동생은 여섯 살이었다.
갑자기 의지할 곳이 없게 된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그다지 넉넉지는 못하나 일시 살아갈 만한 백부의 집에 의탁하게 되었다.
그후 명우는 다시 보통학교 교장의 집에 가서 심부름을 하여주며
그 보수로 그 집에서 얻어먹고 학교도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누이동생은 읍에 있는 어떤 사람이 양딸로 데려다가 기르며
공부도 시켜주었다.
보통학교를 졸업하자 명우는 다시 사범학교 관비생으로 들어갔다.
누이동생은 분에 넘친 호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유롭게 자라며
보통학교를 졸업하자 그는 서울 어느 여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그러므로 둘은 가끔 만나게 되었지만 그러나 서로 그리는 정은
장성함을 따라 더하여갔다. 즉 그 둘의 사이를 각별히도 그립게 하는 것은
단 둘밖에 없는 동생간이 단 한 번이라도 버젓하게 내 집 속에서
지내지 못하는 그것이었다.
그러다가 둘은 다시금 갈리게 되었으니
명우는 북쪽 시골 이 학교로 오게 되었고
누이동생은 그 이듬해 학교를 졸업하자 고향에 돌아가서
모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었다.
그 동안에 벌써 3년이나 되었다.
자기는 한 번도 고향에 가지 않고 아이들의 교육에 전력을 다하여왔다.
그러나 그 보수로 얻은 것은 무엇인가
얻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자기의 정력만 잃은 것을 생각하면
그는 세상의 한심을 원망하기보담
저 자신의 속절없음을 한탄치 않을 수가 없다.
여기까지 생각한 다음 그는 약간 피곤을 느끼고 그 자리에 모로 팔을 베고
드러누웠다가 근 한 달이나 누이동생에게 편지 못 한 것이 생각나자
그만 벌떡 일어나서 책상을 마주 앉았다.
 
 
 4. 4
 
그 이튿날 방과 후
명우는 자기가 담임한 아이들의 가정을 찾아서 처처에 무덕무덕
옹송그리고 있는 마을의 초가집들을 돌아보았다.
거의거의 찌그러지는 오막살이는 전부가 다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참혹하였다.
더구나 햇빛도 바로 숨어 들지 않는 어두운 그 속에서 노랗게 유황빛으로
부풀어오른 얼굴들이 도깨비처럼 불쑥 내밀 때에는 그는 가슴이 선뜻하여
더 무에라고 말하고 싶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요행 어떻게 큰맘을 먹고 찾아온 까닭을 말하면
 
 “월사금이요? 월사금두 먹구 봐야 어쩌지요.
  지금 풀뿌리도 없어서 때마다 굶는 판에 공부하는 게 다 무에란 말이우”
 
하고 그들은 마치 자기네의 굶는 탓이 선생에게나 있는 것처럼
역정을 내며 마주 서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떤 집 여편네는 생전 처음 보는 선생의 앞에서 훌쩍거리며
목메인 소리로
 
 “벌써 두 달이나 풀만 뜯어 먹구 지났수다.
   저는 밤낮 월사금을 내라구 야단치며 울지만 글쎄 어떻게 변통할 수가
   있어야지요. 아유 기가 막혀서 웬만하면 저 하나만은
   그래 보통학교나 보내서 하다 못하면 사무소 심부름을 해먹더라도
   일본말깨나 배우게 하려구 했는데요. 아이구 기가 막혀서.”
 
하면서 방정맞게 눈물을 쪽쪽 흘리는 것을 보고 그는 더 돌아볼 생각도 없이
그대로 돌아서고 말았다.
아이들은 집집마다 죄다 어디로 가고 없는지 하나도 만나볼 수가 없고
간혹 만나게 된다면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들키기나 한 것처럼
슬슬 꽁무니를 빼는 것을 볼 때
명우는 어쩐 일인지 눈자위가 뜨거워짐을 느꼈다.
해가 서산으로 누엿누엿 넘어갈 때 그는 고개 밑 마을에 이르러서
마을에 들까말까 잠시 동안 생각하다가 누군지 마을에서 이쪽으로
뛰어나오는 여남은 살 되어 뵈는 아이를 보고 길역 언덕 위에
선뜻 올라섰다.
아이는 무에라고 악을 쓰며 내닫고 그 뒤에는 부지깽이 같은 것을
손에 쥔 여편네가 그도 무에라고 떠들며 뒤쫓아 나온다.
 
 “요 때려죽일 새끼야. 가문 너 지금 어디로 갈 테냐?”
 
 “내 나무가지구 내가 팔려는데 왜 때려.”
 
 “뭣이 어째? 요 새끼 그럼 너 나무만 걸머지구 냉큼 나가라.”
 
 “나가라문 나갔지 못 나갈 줄 아니?”
 
 “머 어째? 어서 나가 뒈저라.”
 
쫓으며 쫓기며 명우의 앞에까지 이르렀을 때 아이는 깜짝 놀라
멎어선 다음 어쩔 줄을 모른다.
뒤에 따라오던 여편네는 그대로 악을 쓰며 욕설을 퍼붓다가 명우를 보고
머슥해서 길역 언덕 밑에 멈춰선다
명우는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오 남돌이냐?”
 
아이는 힐끗 쳐다보다가 선생의 시선과 마주치자 그만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리더니 흑흑 느끼기 시작한다.
명우의 가슴도 슬그머니 언짢았다.
 
 “왜 우니? 울지 말구 나좀 봐라.”
 
하고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으니 아이는 더 한층 느낀다.
명우는 어쩔 줄을 모르고 여편네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남돌의 어머니십니까?”
 
여편네는 계면쩍은 듯 어룸어룸 치마 고름만 주무르다가.
 
 “예 그렇습니다.”
 
하고 간신히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렇습니까. 저는 남돌의 담임 선생이올시다.”
 
명우의 말을 듣고 여편네는 더구나 황망해가며 어쩔 줄을 몰라 쩔쩔 맨다.
명우는 아이의 쪽으로 돌아서며

 “너 지금 집에서 말썽을 부렸지.
   왜 어머님 말씀을 잘 듣지 않구 그러니?”
 
하고 은근하게 책하였다.
아이는 억울하다는 듯이 선생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떠듬떠듬 말한다.
 
 “말썽부린 게 아니라우.”
 
 “그럼 뭐란 말이냐?”
 
 “산에 가서 나무한 걸 팔려니까 야단을 친답니다.”
 
 “누가 한 나무를?”
 
 “제가 해왔지요.”
 
 “뭐? 네가 했어!”
 
 “예. 월사금을 장만하려구 나흘 동안이나 해온 걸 팔려구 했지요.”
 
하면서 아이는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다시금 어머니를 흘낏 돌아본다.
어머니는 더욱 머리를 숙인다.
명우는 갑자기 얄미운 생각이 들며 무슨 말로서든지
어머니에게 핀잔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풀이 죽어서 머리를 숙이고 서 있는 어머니를 보았을 때
그의 마음은 그만 스르르 얼어 드는 것 같았다.
 
 “그러냐. 그렇지만 그렇게 어머니를 볶는 것은 못써…… 
   그래 월사금이나 얻게 됐니?”
 
 “팔어봐야 알지요.”
 
명우는 문득 어릴 때의 저 자신을 그려보고 어린것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지갑을 꺼냈다.
 
 “그럴 것 없이 자 이걸 가지구 내일부텀 학교루 오너라.”
 
아이는 깜짝 놀라 선생의 얼굴만 쳐다본다.
 
 “그러구 어머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
 
하면서 부드럽게 웃으려니 어쩐 일인지 눈자위가 뜨거워진다.
어머니는 그제야 겨우 큰맘을 먹은 듯 명우의 쪽으로 돌아서며
 
 “선생님한테 이런 꼴을 보여드려서…… 그렇게 폐단을 끼치니
   더 어떻다고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우는 듯이 말한다.
 
 “천만에 말씀을 다 하십니다. 사실은 너무도 결석하는 애들이 많으니
   가정 방문이나 좀 해보려고 떠났던 길인데요.”
 
 “아이 저런 황송하기라구. 사실은 저것두 날마다 월사금을 내달라구
   울며 야단이지만 어디 그럴 형편이 됩니까? 지금 쌀물을 구경해 본 지가
   두 달두 더 되는 형편에…… 그래 요즘은 저절루 산으로 다니며
   나무를 해다놓구 그걸 팔아서 월사금을 한다구 우줄렁거리지만
   그것두 어디 단돈 10 전이나 될겁니까? 참말 기가 막혀서……
   이루다 말하면 무엇합니까.”
 
어머니는 어느덧 목이 막혀서 훌쩍거리며 치마끈으로 눈물을 닦고 있다.
명우는 아무말도 못 하고 덤덤히 서서 멀리 분홍빛으로 물들어가는
서천만 바라보았다.
 
 
 5. 5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명우는 뜻밖에도 아래편으로부터 꼴단을 지고 오는
학수를 만났다.
학수는 명우를 보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어룸어룸하다가
 
 “김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오래간만입니다.”
 
하고 사뭇 어른 투로 쳐다보며 인사한다.
 
 “아 학수냐. 잘 있었니?”
 
하고 대답은 하면서도 명우는 웬일인지 거북함을 느꼈다.
 
 “어디 갔다 오십니까?”
 
 “저…… 아이들 가정 방문을 좀 하구 오는 길인데.”
 
 “가정 방문이오?”
 
하고 학수는 뜻 모를 웃음을 벌신 웃는다.
명우는 불의에 모멸을 당한 듯한 느낌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러나 학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양을 하고 꼴단을 으슥하고 추어올리며
걸음을 옮겨놓는다.
 
 “그럼 안녕히 다녀가십시오.”
 
 “………”
 
명우는 목구멍까지 나온 말이 뱅뱅 돌며 입 밖에 얼른 나오지 않아서
그대로 머리만 꾸벅하고 지나쳤다.
그는 지친 다리를 힘없이 옮겨놓으며 학수의 뒷모양을 흘끔 돌아보았다.
한 1 년 동안 보지 않는 동안에 놀라게끔 자란 학수는 명우의 가슴 속에서
다시금 전일의 쓰라리던 기억을 들춰내게 하였던 것이니…….
 
학수는 작년 봄 오학년에 진급하자 가정 형편으로 퇴학한
금년 열여섯 살나는 아이다.
자기의 담당은 아니었지만 명우는 저지난해 가을 어느날
사학년 담임이 병으로 결근하였을 때 자기가 담임한 이학년생을
삼학년 체조 시간에 편입시킨 다음 자기는 결근 선생 대신으로
사학년 국어 시간을 맡았다.
그때 우연한 기회에 근면이라는 문제가 나오게 되자 문득 생각나는
‘버는데 따르는 가난은 없다’라는 속언을 들고 자기가 설명을 하자
갑자기 뒤편에서 한 아이가 벌떡 일어서며
 
 “선생님 그런데 어째서 우리 아버지나 형들은 밤낮없이 죽도록 벌어두
   죽물두 바루 못 얻어먹구 학무 위원 댁이나 장거리 김좌수 댁은
   가만히 놀구두 언제든지 흰밥에 소고기 닭고기만 먹게 됩니까.”
 
하고 묻는 바람에 명수는 천근이나 되는 쇠뭉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넋을 잃고 교단에 우두커니 서게 되었으니 그때 그 아이가 바로 학수였다.
그때 명우는 아무 대답도 못했다.
물론 그 뒤에도 거기에 대한 대답은 주지 못했다.
왜 대답을 못 하였는가?
그것을 생각할 때면 그는 제 신세가 끝없이 가여워 보였다.
그때부터 명우는 학수만 보면 비길 데 없는 고통을 느꼈다.
언제든지 자기를 조소하는 듯한 학수의 심술궂은 듯한 시선을 대할 때
명우는 저 자신의 몸둘 곳을 찾지 못했다.
지금도 그는 학수의 뒷모양을 흘끔 돌아다보며 그때 일을 다시금
생각하였던 것이다.
하숙으로 돌아오니 자기의 방에는 언제 왔는지 현옥이가 와 있다.
 
 “안 계신데 실례했습니다.”
 
현옥이는 부끄럼을 함뿍 머금고 살며시 일어서서 명우를 쳐다본다.
 
 “아 현옥이우 언제 왔소?”
 
 “아까 왔어요.”
 
 “늦어서 미안한데요.”
 
 “천만에…….”
 
하면서 웃음먹은 쌍가풀진 눈으로 할기죽 치떠보는 그 모양은
분명코 달빛에 웃는 월계꽃이다.
명우는 잠깐 동안 황홀하여져서 넋을 잃고 현옥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이 선생님 왜 그렇게 보세요?”
 
현옥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모로 돌아진다.
명우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허허허…….”
 
열쩍게 웃어넘긴다.
그러는데 방문이 열리며 주인 할머니가 저녁상을 들여보냈다.
 
 “아니 어디 가셨다 이렇게 늦었어요.”
 
명우는 싱그레 웃기만 하며 밥상을 마주 안는다.
 
 “저녁을 어떻게 했수?”
 
 “먹구 왔어요.”
 
현옥이는 머리를 쳐들지 못한다.
명우는 시장하던 판이라 밥그릇을 죄다 가시고 물까지 한 그릇 다 들이켠
다음 상을 물렸다.
 
 “그래 요즘 자미가 어떠시우?”
 
 “자미가 다 무엡니까? 그저 죽지 못해 살아갑니다.
 
현옥이는 갑자기 숫기를 띠고 한숨 쉬며 말한다.
 
 “어째서요?”
 
 “동생들은 월사금 때문에 밤낮 집에 들어 싸움이구 살림살이는 어려운데
   아버지는 매일 장취하구 참말 싫증이 납니다.”
 
명우는 잠자코 앉아서 현옥의 집안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자기가 처음으로 이 지방에 왔을 때 주인을 잡았던 그때의 현옥의 집안과
지금의 그의 집안을 비겨본다면 참말 말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사업에 실패를 본 현옥의 아버지의 술주정은 매일 심하여가고
게다가 그의 어머니는 항상 병으로 신음하고.
명우는 가끔 이전 정의로 찾아와서는 딱한 형편을 호소하는
이 어린 처녀의 심정을 생각할 때면 남의 일 같지 않아 자연히
가슴속이 쓰라려지는 것이었다.
 
 “그래 저는 요즘 어디 좀 가볼까 하구 선생님한테 상의하러 왔어요.”
 
 “어디루요?”
 
 “제사 공장으루 가볼까 해요.”
 
 “제사 공장에요?”
 
 “예 어찌 하는 수가 있어야죠. 그리 가면 한 달에 한 15원 가량은
   벌 수가 있다니까 가서 밥값 치르고 남는 게 있다면
   동생들 월사금이나 보태줄까 해서…….”
 
명우는 어안이 막힌 듯 벙벙하게 앉아 있다가
 
 “그런데 혼자 가렵니까?”
 
 “아녜요. 동무들이 많아요. 요즘 장거리에 여공 모집들 하러 왔어요.
   한 100명 모집한대요. 그래 저두 그 사람들을 만났는데 어머니가
   한사코 반대해서 큰일났어요.”
 
 “어머니가 반대하시는 걸 어떻게 가요.”
 
 “할 수 없죠. 몰래 가야죠.”
 
 “몰래요?”
 
 “그럼 어떻게 합니까. 어머니가 반대한다구 앉아서 굶을 수는 없구요.”
 
현옥이는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문다.
명우는 무에라고 말하였으면 좋을지 생각이 안 난다.
현옥이는 그대로 고개를 숙인 채
 
 “그래서 오늘 저녁에 선생님께루 찾아왔는데요.
   제가 간 다음에 어떻게 해서든지 어머님께 잘 말씀하셔서 양해하시두룩
   힘써주세요.”
 
한 다음 애원하는 듯한 빛으로 명우를 말끄러미 쳐다본다.
이윽고 현옥이는 일어섰다.
명우도 그를 바래다주려고 뒤따라 일어섰다.
시골의 밤길은 지척을 분간키 어렵게 캄캄하다.
현옥이네 마을로 가자면 조그마한 언덕을 넘어야 한다.
명우는 부득이 언덕까지 그를 바래다주지 않을 수가 없다.
어두운 밤길을 나란히 서서 걸으려니 웬일인지 이전에 느껴지지 않던
얄궂은 불안이 슬며시 전신을 엄습한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가슴속이 두근거리며 어디라 없이 전신이 안타깝게도
간지러워지는 것 같다.
그는 옆에 따르는 현옥이를 슬쩍 돌아다보았다.
와락 끌어안고 싶은 충동이 무럭 치미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언덕에 올라서니 마을의 불빛들이 까물거리고 개들이 컹컹 짖는다.
둘은 마주 선 채 빤히 얼굴을 쳐다보았다.
뜨거운 입김이 서로 상대편의 얼굴에 부딪칠 때 현옥이는 겨우 할딱거리며
 
 “그럼 전 선생님을 믿구 가겠어요.”
 
하고는 뒷말을 잇지 못하고 어깨를 들먹거린다.
그 순간 명우는 완전히 자아를 망각하였다. 그는 저로서는 한마디도
 깨닫지 못하는 말로
 
 “현옥씨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면서 으스러져라고 현옥의 어깨를 바득바득 끌어안고 몸부림쳤다.
 
 
 6. 6
 
현옥이네가 제사 공장으로 간 뒤
명우는 매일 실신한 사람처럼 멍하니 지났다.
꽃다운 처녀들을 잃어버린 마을은 온통 활기를 잃어버리고
산비탈을 타고 넘는 목동의 아리랑 타령도 흥겹던 농부들의 농부가도
어쩐 일인지 힘없이 들려온다.
어느날 아침 명우는 밤새껏 어지러운 꿈에 들볶인 흐리터분한 머리를
식힐 작정으로 해돋기 전에 일찍 뒤 재고개로 올라갔다.
보얗게 안개에 가려진 건너편 산은 아직도 달콤한 잠에서
깨지 못한 듯 바람 소리 하나 들을 수 없고 장마 뒤라 검붉은 흙탕물이
무겁게 흘러내리는 강물은, 가끔 사품을 치며 구비진 언덕에
세차게 부딪치고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갑자기 아래편 바닷가로부터 자욱한 안개를 휘몰아치며 불어오는
한떼의 해풍. 버들가지가 나부낀다.
풀잎이 하늘거린다.
우수수 깨쳐지는 이슬 방울.
어느 사이엔지 동쪽 산마루에는 햇살까지 불그레 치민다.
어디서인지 명랑하게 들려오는 종달새의 울음소리.
명우는 가슴이 터지라고 양껏 숨을 들이켰다.
흐리터분하던 머릿속이 일시에 탁 트이는 것 같았다.
그는 양복 저고리를 벗어 던지고 아이들을 가르치던 식으로
라디오 체조를 저 혼자 멋에 겨워 두 번이나 거듭하였다.
그러고는 알맞은 돌을 찾아 걸터앉은 다음 당장에 치밀려는 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다. 바로 고개 아래편에서 누군지 두 사람이 바삐바삐
이쪽으로 올라 오는 것이 보였다.
얼핏 보아도 키 작은 편은 분명코 학수다.
학수도 명우를 알아본 듯 빤히 올려다보며 걸어온다.
어디로 가는지 둘의 등에는 제각기 자그마한 짐짝이 달려 있다.
학수는 고개 마루턱에 이르러서 명우를 마주치게 되자 어설픈 웃음을 띠고
어쩐 일인지 그전과는 달라서 명우의 눈치만 살핀다.
명우는 수상한 학수의 모양에 다소 호기심이 나서
 
 “너 어디루 가니?”
 
하고 물은 다음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예 어디 좀 가는 길입니다.”
 
 “어디루 가니?”
 
학수는 얼른 대답을 못하고 어룸어름하며 앞에 서서 기다리는 동행인의
눈치를 살피다가 그만 될 대로 되란 듯이 벙긋 웃은 다음
 
 “돈 벌러 갑니다.”
 
 “뭐 돈 벌러?”
 
 “예.”
 
 “어디메루?”
 
 “어디든지 가는 대루 가지요.”
 
열 여섯 살로는 지나치게 야무지고 건방진 말씨다.
명우는 이슥히 학수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뇌리에는 또다시 저지난해 기억이 떠오른다.
 
 “학수 너는 기어코 가야만 되느냐?”
 
 “가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아무리 벌어야 고향서는 하루에
   한 끼두 못 먹게 되는 것을…….”
 
학수의 표정은 갑자기 침울하여진다.
명우는 가슴속이 뭉클하여져서 얼른 말을 못하고
 학수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학수 나는 어느 때인가 너의 질문에 대답을 못 한 때가 있었다.”
 
학수는 잠자코 서서 명우의 얼굴만 빤히 쳐다본다.
 
 “그때 나는 너에게 대답을 주지 못했지만…….
   학수 인제는 나한테서 듣기보담 더 훌륭하게 얻어들을 데가
   너한테는 수없이 많다……. 자 이건 약소하다만
   가다가 점심이나 사먹어라.”
 
하고 그는 지갑째로 학수에게 내주었다.
학수는 명우의 얼굴에서 응결된 듯한 시선을 떼지 못하다가
자기 어깨를 들먹거리며 입술을 실룩거리더니
 
 “선생님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주먹으로 눈물을 씻는다.
이윽고 학수네를 보낸 다음 명우는 버들둑을 끼고 하숙으로 향하였다.
이슬에 젖은 풀잎을 툭툭 차며 그는 다시금 학수의 질문을 받던
그 때를 생각하여보았다.
사실 어린것들의 정당한 질문에 대하여 현대 교육은
그 얼마나 정당한 대답을 주고 있는가?
검은 것을 희다고 흰 것을 검다고 하는 거기에 교육의 사명이 있지 않다면
자기는 어린것들의 그러한 질문에 과연 어떠한 대답을 주어야 할 것인가.
일찍이 자기는 태양은 되지 못할지언정 캄캄한 하늘에 별은 되리라고
결심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자기는 어떻게 해야만 그 별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검은 것은 검다고 흰 것은 희다고.
 
그렇다. 캄캄한 하늘에 반짝이는 그 별이 되려면
검은 것은 검다고 흰것은 희다고 해야만 된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어째서 검은 것은 검고 흰 것은 흰지 그 까닭까지 캐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그때면 자기도 태양은 되지 못할지언정 캄캄한 하늘에 별쯤은
될 터이지.
 
명우는 몇 해를 내리 진정치 못한 자기의 갈길을 비로소 발견하고
옹기종기 모여앉은 중대가리들의 환영을 조용히 눈앞에 그려보며
경쾌하게 발길을 옮겨놓았다.
 
 
                   1937.5  - 현경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