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문학 144

떡 - 김유정 -

떡 - 김유정 - 원래는 사람이 떡을 먹는다. 이것은 떡이 사람을 먹은 이야기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즉 떡에게 먹힌 이야기렷다. 좀 황당한 소리인 듯싶으나 그 사람이라는 게 역시 황당한 존재라 하릴없다. 인제 겨우 일곱 살 난 계집애로 게다가 겨울이 왔건만 솜옷 하나 못 얻어입고 겹저고리 두렁이로 떨고 있는 옥이 말이다. 이것도 한 개의 완전한 사람으로 칠는지! 혹은 말는지! 그건 내가 알 배 아니다. 하여튼 그 애 아버지가 동리에서 제일 가난한 그리고 게으르기가 곰 같다는 바로 덕희다. 놈이 우습게도 꾸물거리고 엄동과 주림이 닥쳐와도 눈하나 끔벅 없는 신청부라 우리는 가끔 그 눈곱 낀 얼굴을 놀릴 수 있을..

한국단편문학 2025.04.22

돌의 미학(수필) - 조지훈 -

돌의 미학(수필) - 조지훈 - 돌의 맛ㅡ 그것도 낙목한천(落木寒天)22)의 이끼 마른 수석(瘦石)1)의 묘경을 모르고서는 동양의 진수를 얻었다 할 수가 없다. 옛사람들의 마당 귀에 작은 바위를 옮겨다 놓고 물을 주어 이끼를 앉히는 거라든가, 흰 화선지 위에 붓을 들어 아주 생략되고 추상된 기골이 늠연한 한 덩어리의 물체를 그려 놓고 이름하여 석수도(石壽圖)라고 바라보고 좋아하던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흐뭇해진다. 무미한 속에서 최상의 미(味)를 맛보고, 적연부동(寂然不動)한 가운데서 뇌성벽력을 듣기도 하고, 눈 감고 줄 없는 거문고를 타는 마음이 모두 이 돌의 미학에 통해 있기 때문이다. 동양화, 더구나 수묵화의 정신..

한국단편문학 2025.04.17

도도한 생활 - 김애란 -

도도한 생활                                                    - 김애란 -   학원에서 처음 배운 것은 도를 짚는 법이었다. 첫 번째 음이니까, 첫 번째 손가락으로 도. 내가 건반을 누르자 , 도는 겨우 도- 하고 울었다. 나는 조금 전의 도를 기억하려 한 번 더 건반을 눌러 보았다. 도는 다시 당황한 듯 다시 도- 하고 소리 낸 뒤 제 이름이 지나가는 동선을 바라봤다. 나는 음하나가 깨끗하게 사라진 자리에 앉아, 새끼손가락을 세운 채 굳어 있었다. 녹색 코팅지가 발린 유리 벽 사이론 오후의 볕이 탁하게 들어왔고. 피아노와, 그것을 처음 만진 나 사이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신중하게 고른 단어를 내뱉듯 작게, 중얼거렸다. 도.......   건반에 손을 얹는 법..

한국단편문학 2025.04.11

노다지 - 김유정 -

노다지                                  - 김유정 -   그믐 칠야 캄캄한 밤이었다. 하늘에 별은 깨알같이 총총 박혔다. 그 덕으로 솔숲 속은 간신히 희미하였다. 험한 산중에도 우중충하고 구석배기 외딴 곳이다. 버석만 하여도 가슴이 덜렁한다. 호랑이, 산골 호생원!   만귀는 잠잠하다. 가을은 이미 늦었다고 냉기는 모질다. 이슬을 품은 가랑잎은 바시락바시락 날아들며 얼굴을 축인다.   꽁보는 바랑을 모로 베고 풀 위에 꼬부리고 누웠다가 잠깐 깜박하였다. 다시 눈이 띄었을 적에는 몸서리가 몹시 나온다. 형은 맞은편에 그저 웅크리고 앉았는 모양이다.    "성님, 인저 시작해 볼라우!"    "아직 멀었네, 좀 춥더라도 참참이 해야지……."   어둠 속에서 그 음성만 우렁차게, 그..

한국단편문학 2025.04.06

목넘이 마을의 개 - 황순원 -

목넘이 마을의 개                                                --  황순원  --  어디를 가려도 목을 넘어야 했다. 남쪽만은 패 길게 굽이 돈 골짜기를 이루고 있지만, 결국  동서남북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어디를 가려도 산목을 넘어야만 했다. 그래 이름 지어 목넘이 마을이라 불렀다. 이 목넘이 마을에 한 시절 이른 봄으로부터 늦가을까지 적잖은 서북간도 이사꾼이 들러 지나갔다. 남쪽 산목을 넘어오는 이들 이사꾼들은 이 마을에 들어서서는 으레 서쪽 산밑 오막살이 앞에 있는 우물가에서 피곤한 다리를 쉬어 가는 것이었다. 대개가 단출한 식구라고는 없는 듯했다. 간혹가다 아직 나이 젊은 내외인 듯한 남녀가 보이기도 했으나, 거의 다 수다한 가족이 줄레줄레 남쪽 산목을 넘..

한국단편문학 2025.03.28

고장난 문 - 이범선 -

고장난 문                                                            - 이범선 -     "자, 그럼 처음부터 찬찬히 이야기해봐. 거짓말은 하지 않는 편이 좋아. 우린 벌써 다 알고 있으니까."    열 여덟 살 만덕이게게는 아버지뻘이나 되어 보이는 중년 수사관이 볼펜을 거기 조서 위에 굴려 놓고 걸상 등받이에 깊숙이 기대어 앉았다. 이미 조서는 꾸며졌으니 들으나마나 한 이야기지만 하도 애원을 하니까 한 번 더 들어 봐 준다는 그런 태도였다.    "형사님, 제가 왜 무엇 때문에 거짓뿌렁을 합니까.  정말 억울합니다! 제가 한 말은 다 사실입니다.  요만큼도 거짓뿌렁 없읍니다."    책상 모서리에 놓인 나무 걸상에 두 무릎을 모으고 단정하게 앉은 만덕은 ..

한국단편문학 2025.03.23

소금 - 강경애 -

소금                        - 강경애 -     1. 농가  2. 유랑  3. 해산  4. 유모  5. 어머니의 마음  6. 밀수입    1. 농가 용정서 팡둥(중국인 지주)이 왔다고 기별이 오므로 남편은 벽에 걸어두고 아끼던 수목두루마기를 꺼내 입고 문밖을 나갔다. 봉식 어머니는 어쩐지 불안을 금치 못하여 문을 열고 바쁘게 가는 남편의 뒷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참말 팡둥이 왔을까? 혹은 자×단(自×團)들이 또 돈을 달래려고 거짓 팡둥이 왔다고 하여 남편을 데려가지 않는가? 하며 그는 울고 싶었다. 동시에 그들의 성화를 날마다 받으면서도 불평 한마디 토하지 못하고 터들터들 애쓰는 남편이 끝없이 불쌍하고도 가여워 보였다. 지금도 저렇게 가고 있지 않은가! 그는 한숨을 푹 쉬며 없는..

한국단편문학 2025.03.18

괜찮아(수필) - 장영희 -

괜찮아                                             - 장영희 -   초등학교 때 우리 집은 제기동에 있는 작은 한옥이었다. 골목 안에는 고만고만한 한옥 네 채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한 집에아이가 네댓은 되었으므로, 그 골목길만 초등학교 아이들이 줄잡아 열명이 넘었다. 학교가 파할 때쯤 되면 골목 안은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  어머니는 내가 집에서 책만 읽는 것을 싫어 하셨다. 그래서 방과 후 골목길에 아이들이 모일 때쯤이면 어머니는 대문 앞 계단에 작은 방석을 깔고 나를 거기에 앉혀 주셨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구경이라도 하라는 뜻이었다.    딱히 놀이  기구가 없던 그때, 친구들은 대부분 술래잡기, 사방치기, 공기놀이, 고무..

한국단편문학 2025.03.14

난중일기 7 중 7 - 忠武公 이순신 -

난중일기 7 중 7 - 忠武公 이순신 -                      무술년 (1598년)      조선시대 군사계급    https://blog.naver.com/udtssueod/90102541009   목 차 1.무술년 1월 (1598년 1월) 2.2월 기록에 없음 3.3월 기록에 없음 4.4월 기록에 없음 5.5월 기록에 없음 6.6월 기록에 없음 7.7월 기록에 없음 8.8월 기록에 없음 9.무술년 9월 (1598년 9월) 10.무술년 10월 (1598년 10월)   1.무술년 1월 (1598년 1월)   1월 초1일 (정해) 맑다.[양력 2월 5일]   저녁나절에 비기 잠깐 내렸다. 경상수사∙조방장 및 여러 장수들이 다와서 모였다.   1월 초2일 (무자) 맑다.[양력 2월 6일]  ..

한국단편문학 2025.03.10

난중일기 7 중 6 - 忠武公 이순신 -

난중일기 7 중 6 - 忠武公 이순신 -                  정유년 (1597년)      조선시대 군사계급    https://blog.naver.com/udtssueod/90102541009   목 차 1.1월 기록에 없음 2.2월 기록에 없음 3.3월 기록에 없음 4.정유년 4월 (1597년 4월) 5.정유년 5월 (1597년 5월) 6.정유년 6월 (1597년 6월) 7.정유년 7월 (1597년 7월) 8.정유년 8월 (1597년 8월) 9.정유년 9월 (1597년 9월) 10.정유년 10월 (1597년 10월) 11.정유년 11월 (1597년 11월) 12.정유년 12월 (1597년 12월)   1.1월 기록에 없음   2.2월 기록에 없음   3.3월 기록에 없음   4.정유년 4월..

한국단편문학 2025.03.06

난중일기 7 중 5 - 忠武公 이순신 -

난중일기 7 중 5 - 忠武公 이순신 -                   병신년 (1596년)      조선시대 군사계급    https://blog.naver.com/udtssueod/90102541009   목 차 1.병신년 1월 (1596년 1월) 2.병신년 2월 (1596년 2월) 3.병신년 3월 (1596년 3월) 4.병신년 4월 (1596년 4월) 5.병신년 5월 (1596년 5월) 6.병신년 6월 (1596년 6월) 7.병신년 7월 (1596년 7월) 8.병신년 8월 (1596년 8월) 9.병신년 閏8월 (1596년 윤8월) 10.병신년 9월 (1596년 9월) 11.병신년 10월 (1596년 10월) 12.11월 기록에 없음 13.12월 기록에 없음   (** 1596년(병신) 1월 1일의..

한국단편문학 2025.03.03

난중일기 7 중 4 - 忠武公 이순신 -

난중일기 7 중 4 - 忠武公 이순신 -    을미년 (1595년)      조선시대 군사계급    https://blog.naver.com/udtssueod/90102541009          목 차 1.을미년 1월 (1595년 1월) 2.을미년 2월 (1595년 2월) 3.을미년 3월 (1595년 3월) 4.을미년 4월 (1595년 4월) 5.을미년 5월 (1595년 5월) 6.을미년 6월 (1595년 6월) 7.을미년 7월(1595년 7월) 8.을미년 8월 (1595년 8월) 9.을미년 9월 (1595년 9월) 10.을미년 10월 (1595년 10월) 11.을미년 11월 (1595년 11월) 12.을미년 12월 (1595년 12월)   1.을미년 1월 (1595년 1월) 1월 초1일 (갑술) 맑다..

한국단편문학 2025.02.27

난중일기 7 중 3 - 忠武公 이순신 -

난중일기 3 - 忠武公 이순신 -        갑오년 (1594년)      조선시대 군사계급    https://blog.naver.com/udtssueod/90102541009         목 차   1.갑오년 1월 (1594년 1월) 2.갑오년 2월 (1594년 2월) 3.갑오년 3월 (1594년 3월) 4.갑오년 4월 (1594년 4월) 5.갑오년 5월 (1594년 5월) 6.갑오년 6월 (1594년 6월) 7.갑오년 7월 (1594년 7월) 8.갑오년 8월 (1594년 8월) 9.갑오년 9월 (1594년 9월) 10.갑오년 10월 (1594년 10월) 11.갑오년 11월 (1594년 11월) 12.12월 기록에 없음   1.갑오년 1월 (1594년 1월) 1월 초1일 (경진) 비가 퍼붓듯이 내..

한국단편문학 2025.02.24

난중일기 7 중 2 - 忠武公 이순신 -

계사년 (1593년)   조선시대 군사계급    https://blog.naver.com/udtssueod/90102541009    목   차   1.1월 기록에 없음 2.계사년 2월 (1593년 2월) 3.계사년 3월 (1593년 3월) 4.4월 기록에 없음 5.계사년 5월 (1593년 5월) 6.계사년 6월 (1593년 6월) 7.계사년 7월 (1593년 7월) 8.계사년 8월 (1593년 8월) 9.계사년 9월 (1593년 9월) 10.10월 기록에 없음 11.11월기록에 없음 12.12월 기록에 없음   1.1월 기록에 없음     2.계사년 2월 (1593년 2월)   계사년 2월은 대길하다.   2월 초1일 (병술) 종일 비가 내렸다.[양력 3월 3일]   발포만호(황정록)∙여도권관(김인영)..

한국단편문학 2025.02.20

난중일기 7 중 1 - 忠武公 이순신 -

임진년 (1592년)                조선시대 군사계급    https://blog.naver.com/udtssueod/90102541009     목 차   1.임진년 1월 (1592년 1월) 2.임진년 2월 (1592년 2월) 3.임진년 3월 (1592년 3월) 4.임진년 4월 (1592년 4월) 5.임진년 5월 (1592년 5월) 6.임진년 6월 (1592년 6월) 7.임진년 7월 (1592년 7월) 8.임진년 8월 (1592년 8월) 9.임진년 9월 (1592년 9월) 10.임진년 10월 (1592년 10월) 11.11월 기록에 없음 12.임진년 12월 (1592년 12월)   1.임진년 1월 (1592년 1월)   1월 초1일 (임술) 맑다.[양력 2월 13일] 새벽에 아우 여필(汝弼..

한국단편문학 2025.02.17

탁류(濁流) - 채만식 -

탁류(濁流)                                                    - 채만식 - 인간기념물   금강(錦江)……. 이 강은 지도를 펴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동께서 남북으로 납작하니 째져 가지고는―--- 한강(漢江)이나 영산강(榮山江)도 그렇기는 하지만―--- 그것이 아주 재미있게 벌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번 비행기라도 타고 강줄기를 따라가면서 내려다보면 또한 그럼직할 것이다. 저 준험한 소백산맥(小白山脈)이 제주도(濟州島)를 건너보고 뜀을 뛸듯이, 전라도의 뒷덜미를 급하게 달리다가 우뚝…… 또 한번 우뚝…… 높이 솟구친 갈재〔蘆嶺〕와 지리산(智異山) 두 산의 산협 물을 받아 가지고 장수(長水)로 진안(鎭安)으로 무주(茂朱)로 이렇게 역류하는 ..

한국단편문학 2025.02.13

불 - 현진건 -

불                                                          - 현진건 -    시집 온 지 한 달 남짓한 금년에 열다섯 살밖에 안 된 순이는 잠이 어릿어릿한 가운데도 숨길이 갑갑해짐을 느꼈다. 큰 바위로 내리눌리는 듯이 가슴이 답답하다. 바위나 같으면 싸늘한 맛이나 있으련마는, 순이의 비둘기 같은 연약한 가슴에 얹힌 것은 마치 장마지는 여름날과 같이 눅눅하고 축축하고 무더운데다가 천 근의 무게를 더한 것 같다. 그는 복날 개와 같이 헐떡거렸다. 그러자 허리와 엉치가 뻐개 내는 듯, 쪼개 내는 듯, 갈기갈기 찢는 것같이, 산산이 바수는 것같이 욱신거리고 쓰라리고 쑤시고 아파서 견딜 수 없었다. 쇠막대 같은 것이 오장육부를 한편으로 치우치며 가슴까지 치받쳐 올라..

한국단편문학 2025.02.06

그믐달 (수필)- 나도향 -

그믐달 (수필)                                                - 나도향 -   나는 그믐달을 사랑한다. 그믐달은 요염하여 감히 손을 잡을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린 가련한 달이다.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 버리는 초생달은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독부(毒婦)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怨婦)와 같이 애절하고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에 둥근 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과도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와 같은 달이다.   초생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

한국단편문학 2025.01.30

이순신전(李舜臣傳) - 신채호 -

이순신전(李舜臣傳)                                                                                - 신채호 -    목   차  1. 제 1 장 서 론  2. 제 2 장 이순신의 어렸을 적과 젊은 시절  3. 제 3 장 이순신의 과거급제와 그 후에 당한 곤경  4. 제 4 장 오랑캐를 막던 작은 싸움과 조정에서 인재를 구함  5. 제 5 장 이순신의 전쟁 준비  6. 제 6 장 부산 앞바다로 구원하러 나가다  7. 제 7 장 이순신이 치른 첫 번째 싸움 : 옥포해전(玉浦海戰)  8. 제 8 장 이순신의 두 번째 싸움 : 당포(唐浦) 해전  9. 제 9 장 이순신의 세 번째 싸움 : 견내량(見乃梁) 해전  10. 제 10 장 이순신의 네 번째..

한국단편문학 2025.01.23

자전거 도둑 - 박완서 -

자전거 도둑                                                        -박완서 -   수남이는 청계천 세운 상가 뒷길의 전기 용품 도매상의 꼬마 점원이다. 수남이란 어엿한 이름이 있는데도 꼬마로 통한다. 열여섯 살이라지만 볼은 아직 어린아이처럼 토실하니 붉고, 눈 속이 깨끗하다. 숙성한 건 목소리뿐이다. 제법 굵고 부드러운 저음이다. 그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면 점잖고 떨떠름한 늙은이 목소리로 들린다. 이 가게에는 변두리 전기 상회나 전공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가 잦다. 수남이가 받으면,    "주인 영감님이십니까?"   하고 깍듯이 존대를 해 온다.    "아, 아닙니다. 꼬맙니다."   수남이는 제가 무슨 큰 실수나 저지른 것처럼 황공해 하며 볼까지 붉어진다.  ..

한국단편문학 2025.01.14